2015.10.31 12:04
믿음
1980. 7. 3. 새벽(목)
본문 : 요한복은 14장 1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근심하지 말라는 이 근심은 단순히 사람이 걱정하는 그것만을 말하는 것 아닙니다. 사람에게는 근심과 기쁨 이 두 가지만 가지게 됩니다. 근심이 아니면 기쁨의 평강이든지, 기쁨의 평강이 아니면 근심이든지 그 두 종류 다른 말로 말하면 사람이 행복스럽든지 불행스럽든지 그 두 가지, 또 다른 말로 말하면 잘 되든지 못 되든지 하는 그 두 가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는 이 말씀은 사람에게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세상적으나 영원무궁적으로 불행한 것을 네가 가지지 말아라 그말입니다. 불행한 것을 가지지 마라, 네게 해로운 것을 가지지 말라, 더러운 것을 가지지 마라, 고통스러운 것들을 가지지 마라, 실패를 가지지 마라, 천한 것을 기지지 마라, 그런 모든 인간에게 좋지 못한 그런 것을 가지지 마라. 인간이 그것이야 가지기 싫고 안 가질려고 애를 쓰지만 안 가져질 수가 있는가요? 그러나 기독자에게는 안 가져질 수가 있습니다. 안 가질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기독자에게는 안 가질 수가 있는가? 하나님을 믿고 중보자 주님만 믿으면 그런 것은 하나도 가져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주님을 믿으면 믿는 그 일로 인해서 자기 사람 속에 자기를 해칠 것은 다 제거 되어지고 자기가 유익될 그 유익되게 할 자기만 차차 커집니다. 이러니까 옛사람은 소멸되어지고 새사람은 점점 성장해 됩니다.
이러니까 생각도 그렇게 됩니다. 생각도 자타를 망칠 생각은 차차 없어지고 자타를 유익되게 할 생각은 커지고 생겨지고, 말도 그렇습니다. 믿으면 말도 자타를 해롭게 할 말은 차차 제거 되어지고 자타를 유익되게 복되게 구원되게 할 말만 나오게 되고, 그만 비판도 그렇게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너는 왜 네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있으니까 얼마든지 행복스러울 수 있는데 왜 네가 불행을 네가 취하느냐? 너는 얼마든지 존귀해질 수 있는데 왜 천대를 취하느냐? 너는 어디서든지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기쁨을 가지고 살 수 있는데 왜 네가 항상 근심과 걱정 그런 것을 취하느냐? 그것은 뭣 때문에 처음에 생겨졌느냐? 생겨지기를 하나님을 믿지 않는 거게서 생겨진 것인데 하나님 믿지 아니함으로 생겨진 그것은 인간이 어떻게 변동할 수 없게 됐는데 하나님 믿지 아니함으로 생겨진 그 화를 다 변해서 구원시키기 위해서 신인양성일위이신 중보자 예수님께서 나타나시고 대속의 공로를 베푸셨기 때문에 네가 하나님 믿는 일을 다시 복구해라. 하나님 믿는 일을 다시 시작해라. 어떻게 시작할 수 있습니가? 나를 믿으라 중보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 일을 시작해라 그러면 네 육에도 모든 불리한 거는 다 제거가 되고 유익된 것만 마음으로도, 생각으로도, 뜻으로도, 성질로도, 자체로서도, 행위로도, 소유로도 전부 복된 것만 생겨지고 화되는 것은 다 제거되니.
왜 네가 불행 가운데 있느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너는 불행을 가지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믿으면 그 모든 것이 다 변화되어진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믿는 것은 어떤 것이 믿는 것인가? 믿는 것은 순종으로 알고 순종으로 행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에게 순종으로 알고, 순종으로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불교도 믿음이 있고, 공산주의도 믿음이 있고, 가정에도 믿음이 있고 믿음이 그거는 뭐 천 종류 만 종류도 아니고 수없이 많지만 여게 믿으라는 것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그 방편은 진리를 진리라면 뭐인 진리인가? 하나님의 의사가 진리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그 방편은 하나님의 뜻인 그 진리로 방편을 삼는 이 믿음을 가르켜서 말합니다.
그러면 믿음은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그대로 아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아는 것이 믿음이요. 하나님이 '이것은 콩이라' 하실 때에 콩이라 하지만 '다른 사람은 이것을 팥이라 하던데요.' 이러면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에게 배운 대로 아는 게 아니요. 하나님에게 배워서 배운 그대로 아는 것이 반쪼가리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그대로 안다는 말이 하나님이 이렇다 할 때에 그 하나님을 따라서 하나님같이 하는 것이니까 순종으로 아는 것이라 이거요. "알지 못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하는 그 로마서에 말씀한 것이 전파하지 안하면 어떻게 들으면 듣지 아니하면 어떻게 알겠느냐 고 속에 아는 것 믿음에 많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앎으로 믿는 그것은 근원은 아니고 그 다음 순서를 말하는 거고, 아는 순서 뒤에 우리는 아는 것이 자기가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고대로 아는 것이 하나님에게 배워서 아는 고것이 반쪼가리 믿음입니다. 하나님에게 배워서 배운 그대로 알려고 하니까 그 반대로 적이 어떤 게 있느냐 하면, 피조물 인간이든지 또 자기든지 경험이든지 모든 자연 만물이든지 그걸 제가 보고서 견해를 잘못했다 이거요. 인간이 가르치는 것은 자연 만물 어떤 식물은 변해지지 안했소. 안했는데 인간과 천사만 변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지으신 그대로의 있지 않고 변질된 것은 천사하고 인간하고 둘만 변질됐습니다. 다른 것은 변질되지 아니하고 전부 그대로 있습니다. 짐승도 변질 안 됐고, 식물도 동물도 곤충도 다 변질 안 되고, 그대로 있는데 다만 변질된 것은 그 천사 또 사람 요 둘만 변질됐는데 천사가 변질된 것을 가리켜서 마귀라고 말하고, 사탄이라고 말하고, 용이라고 말하고, 뱀이라고 말했고, 귀신이라고 말했고 인간이 변질된 이것을 악인이라, 여왕이라, 옛사람이라, 악성이라, 악습이라 이렇게 여러 가지로 표현했습니다.
믿음은 왜 믿기가 어려우냐?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그대로 그만 배워서 '이것 콩이다.' '아, 예 콩입니까.' 이러니까 이 피조물들이 악령하고 한덩어리가 돼 가지고 말하기를 '야 그 콩이 아니다 팥이다.' '아무리 그래도 너거는 다 거짓말쟁이고, 거짓말쟁이 아비들이요, 전부 반거짓말쟁이기 때문에 너거가 가르친 대로 나는 알기 싫어. 물러가.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대로 안다.' 요것이 반쪼가리 믿음이오.
인간들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이 신구약 성경은 이것 멸시합니다. 인간들이 말하는 무슨 철학이니 뭐 과학이니 어떤 그 사상이니 이렇게 거짓말로 능란한 말을 해 놓으면 그 말은 유식한 말로 알아서 그 말을 말하면 '아, 이 사람 유식하구나!' 하고 그거는 하나도 말하지 아니하고 신구약 성경 말씀 말하면 '이거는 아주 참 무식꾼이구나!' 이렇습니다. 그거 죽은 자요. 그게 죽었기 때문에 죽었기 때문에 죽은 것은 죽은 것만 알지 산 거는 모릅니다.
천하의 인간들의 머리에서 내는 지식이라는 것을 똘똘 뭉쳐서 다 뭉친 그것이 신구약 성경 하나님이 말씀하신 획 하나를 못 당합니다. 아 그까짓 거 지구땅덩어리에 속에 있지 않소. 획 하나는 천지보다 중량을 크다고 예수님이 말해 놓지 않았소. 그러나 그렇게 안 믿는다 말이오. 그렇게 안 믿는 것이 뭐이냐? 인간들에게 배워서 배운 그것을 크게 여기고 하나님에게 배운 그것을 크게 여기지 않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말이오.
하나님 말씀 그 말씀은 진리인데 진리 그것보다도 단어 한마디를 크게 여기요 여 (신덕범) 목사라고 여 지금 이제 아미동에 와서 있다 하는데 그때 여 오려고 하는 것을 '와야 네가 고신에서는 네가 일등 목사 노릇을 하지만 여기는 와 봐야 목사 노릇을 못한다. 아무 교회 가도 나중에 배척을 당할 터이니 그 일을 어찌하노.' 할 수 없어 오지 말고 거 있으라 했습니다.
그분은 아 진리보다도 단어 한마디를 크게 여기요. 그러니까 그런데만 신경을 쓰니까 진리에는 어둡고 아주 단어 한국말 단어는 똑똑히 알고 있습니다. 단어 잘못 알면 어때 좀 잘 아는 것만 못하기야 못하지만 믿느냐 안 믿느냐, 믿음이 많으냐 적으냐, 믿음이 강하냐 약하냐 하는 것이 뭐이냐? 하나님에게 배운 그 배움이 있고 세상이 가르치는 세상에게 배운 배움이 있는데, 세상에게 배운 배움을 참되다 인정하고 하나님에게 배운 배움을 부인하는 그 사람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또 하나님에게 배운 그 배움을 세상에서 배운 배움보다 크게 여겨 세상에서 배운 배움과 하나님에게 배운 배움이 둘이 대립이 될 때에는 세상에서 배운 배움을 부인하고 하나님에게 배운 배움을 인정할 때에 그게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또 믿음이 적는 자는 어떤 게 적은 자인가? 하나님에게 배운 것을 고대로 인정하고 고대로 아는데 알지만 세상에서 배운 그것이 와 가지고 달라드니까 아 열이 달라들 때에는 하나님에게 배운 지식을 부인치 않고 있다가 백이 달아드니까 그만 하나님에게 배운 지식을 부인해 버립니다. 그 사람 믿음이 적은 사람요. 믿음이 많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에게 배워서 아는 그것을 그 세상에서 가르치기를 '그거는 틀렸다. 이렇다. 이렇다.' 하는 그것이 백이고 천이고 많이 달라들어도 하나님에게 배운 것을 부정하지 않고 그 많이 가르치는 그걸 부정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믿음이 많은 사람이라.
믿음이 견고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 견고한 사람이냐? 하나님에게 배워서 아는 고 지식을 온 세상이 달라들어서 '죽인다 살린다' 별별 수단 방법을 뭐 그 왕이, 부자가, 학자가, 박사가, 세상 전체 총론이 말해도 하나님께 배운 것을 부인치 아니하고 고대로 압니다. 고 아는 것을 고대로 알고 그것을 다 부인해 버립니다. 세상이 말하는 걸 부인해 버리요. 그 사람은 이 사람은 뭐이냐? 믿음이 강한 사람입니다. 세상을 이겼소.
믿음이 세상을 이겼다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에게 배운 그 지식을 온 세상이 다 달라들어도 부인시키지를 못했고 온 세상이 오는 그것을 부인하고 하나님에게 배운 지식을 고대로 견고히 인정하고 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지식으로 세상을 이긴 것입니다. 세상을 이긴 것, 또 요것 반쪼가리 믿음이요.
또 반쪼가리 믿음은 어떤 것이 반쪼가리 믿음이냐? 요것은 하나님이 시키십니다. 하나님이 '네가 이래라' 배웠다 말이오. 하나님께 배워서 '네가 나한테 배운 그대로 해라' 그러면 하나님이 가르치신 그대로 행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그대로 행하라 하고 이 세상은 또 정반대로 이렇게 하라 하고 이러니까 그 사이에 끼어서 세상은 이렇게 하라 하고 하나님은 이렇게 하라 하고 말씀하시고 두 사이에 끼어서 누구의 말을 들을까? 나는 어떤 자입니까? 나도 두쪼가리입니다.
내 곁에 겉사람은 옛사람은 세상하고 비유가 딱 들어 맞어 가지고 세상이 하라 하는 대로 요대로 하자고 하고 있고, 중생된 속사람 새사람은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요대로 하자 하고 이러니까 나도 두쪼가리요. 나도 두쪼가리요. 내 밖에는 하나님이 시키시는 것과 또 세상이 시키는 이 둘이 있으니 이 둘 가운데에 어느 것을 지금 취하느냐? 여게서 죽느냐? 사는 것이 결정이 됩니다. 어는 것을 부인하고 어느 것을 인정하느냐? 세상을 부인하고 세상 부인하면 자기 옛사람도 함께 부인돼야 된다 말이오.
자기 옛사람과 세상을 부인하고 하나님과 새사람을 인정하면 고것은 믿음을 가진 것이고 믿음을 가진 것이고 그럴 때에 하나님과 새사람은 부인해 버리고 옛사람과 세상을 따라서 움직이는 그 사람은 이제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 그기요. 믿음은 하나님을 따라서 아는 것 다시 말하면 하나님에게 배워서 아는 것 또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고대로 행하는 것 요 두 가지가 합해서 믿음입니다.
천지 만물을 하나님이 지으신 것을 우리가 지을 때 봤소. 어쨌소. 어째 압니까? 천지 만물 지으신 것을 하나님이 지으신 것을 어떻게 압니까? (김진태) 조사님. 예? 믿음을 가지고 좀 다른 말로 한번 해 보지. 무슨 믿음, 불교 믿음으로 네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대로 하나님에게 배웠다 그말이오. 하나님에게 천지 만물을 하나님이 지으셨다 하는 하나님에게 배웠어. 인생에게는 이 금생은 나그네 세상이요. 죽었다가 부활해 가지고 심판받아 가지고 영원무궁토록 유황불 구렁텅이 지옥에 가든지 하늘나라에 가든지 이것이 인간의 영원이다. 그것을 어찌 압니까? 하나님이 가르쳐 주셔서 배웠다 말이오. 하나님이 가르쳐 주셔서 배웠어.
그러면 어린아이가 학교 갔을 때에 그러면 아무것도 몰라. 이 낫같이 이렇게 만들어 놓고 '이것은 기역.' 그 제가 알아서 인정하는 게 아니라 기역 하니까 아 배울러 갔으니까 기역. 그 다음에는 저거 집에 가 가지고 뜩 그걸 하나 뜩 써 놓고 '엄마 이것 뭐인지 아나? 이것 뭐인지 아나?' 그래 '너는 뭐인지 아나?' '이것 기역이다.' '기역이라니 어떻게 기역인 줄 아노?' '선생님이 기역이라고 가르치더라.' 그 선생님에게 배워 가지고 안다 그거요. 단순히 하나님께 배워 가서 알아.
배워 가지고 아는 것, 하나님께 배워 가지고 아는 고것이 믿음이오. 하나님 외에 피조물 어떤 세상의 역사든지 통계든지 그 자기는 어떤 피조물이 가르치는 그대로 배워서 알면 하나님에게 대해서 하나님을 부인하고 그것을 믿는 것이요. 그걸 부인하고 하나님을 믿는 것, 하나님에게 배운 대로 아는 것, 또 하나님에게 배운 고대로 하나님이 하라고 시키시는 고대로 행하는 것이 믿음이라 그거요. 이 믿음만 가지면 우리는 인간에게 불행이라 하는 것은 소멸되고 행복이라는 이것이 다 갖추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은 언제 믿느냐? 믿음은 그것은 과거에 믿었던 것 앞으로 믿겠다는 것 그것이 다 죽은 믿음입니다. '과거에 나는 그렇게 믿었다.' 그게 아무 소용이 없어. '앞으로 나 이렇게 믿을란다.' 그것도 소용 없어. 믿음은 꼭 현재만 있는 것입니다. 현재에만 있는 것이요. 하나님께 배워서 자기가 과거에는 아무리 그걸 인정했다 할지라도 이 시간에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하나님에 배운 대로 자기가 인정 안하면 소용 없어요. 이 시간 인정하라 말이오. 이 시간 인정하고, 이 자리에서 인정하고, 요게 대해서 인정하고, 인정하라 그말이오.
그러면 하나님에게 배운 대로 인정하라고 하는데 그걸 인정하려고 하니까 처음에 잘 됩니까? 안 되니까 인정하려 하고 인정 못하게 하고, 자꾸 애를 쓰는 이것이 뭐이냐 하면 믿음을 만드느냐 믿음을 못 만드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배운 대로 인정하면 공산주의자가 그 열두 순교자에게 와 가지고 막 욕을 하면서 '이놈들 예수가 다 뭐이야. 아, 하나님이 다 뭐이냐? 그가짓 다 뒤져서 없어. 이 정신병자들아.' 그러면서 '예수를 부인 안하면 하나님 부인 안하면 총으로 맞아 죽인다.' 딱 총을 들이대고서 이래 할 때에, 그때 하나님이 배운 대로 알아 그때에 하나님께 배운 대로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게 산 것이요. 하나님께 배운 대로 아는 것, 또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는 것, 하나님께 배울 때에 하나님께 배울 때에 하나님이 뭐라고 가르쳤습니까? 그 공산주의자 그 자를 누가 만들었다 했습니까? 누가 만들었다고 배웠소? 예, 하나님이 곧 우리 주님이 만들었다고 했지요. 요한복음 1장에 보면 그 만들어진 것이 주님이 없이는 만들어진 것이 하나도 없다고 했지요.
그러면 그때에 그게 고 자리에서 '아, 이 공산주의 자는 주님이 만드셨다고 주님이 말씀했다.' 고기 믿느냐? 안 믿는 것이요. 고기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 인정하면 평강이 있지, 인정하면 담대하지, 또 '아, 총은 총도 주님이 만드셨지.' 그게 뭐이요? 재창조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만드신 재료를 가지고 그 총을 만들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재창조에 들었단 말이오. 하나님의 창조에 든 것은 아니고 재창조, 창조에 된 재료 가지고 재창조해서 만든 것이요. 사랑하는 주님이 만드셨어. 뭐 하려고, 뭐 하려고 만드셨다고 했소? 저 (김정식) 조사님 한번 대답해 보이소? 예, 아마 우리 구원 우리 구원 이루기 위해서 만드셨지요. 네 그말이지요. 네, 만드셨습니다.
그러면 총뿌리를 가지고 욕을 하고 드리대고 욕을 하고 고함을 지르고막 믿는다고 '죽인다 죽인다' 합니다. 고것은 누가 그렇게 움직이게 합니까? 누가 그렇게 움직이게 하요? 그것이 무엇에 들었소? 주님의 뭐에 들었소. 주님의 개별 뭐에 들었소? 개별 섭리에 들었다 말이오. 개별 섭리, 그러니까 주님이 하는 것이니까 자 생명보다 사랑하시고 모든 걸 다 희생하신 그 사랑하시는 주님이 우리에게 하셨는데 그러면 그 주님은 원수라고 말했소, 그 자기 목숨도 애끼지 아니하시고 지금도 우리 위해서 기도하고 계신다고 그러면 주님은 우리를 해하는 주님이라고 배웠소? 우리를 사랑하는 주님이라고 배웠소, 뭐라고 배웠습니까? 사랑하는 주님으로. 그러면 주님이 만들었소 또 주님이 섭리하셨어. 우리 구원 위해서 있어. 누가? 사랑하는 주님이.
그러면 거게서는 자기가 어떻겠소? 사랑하는 자의 움직임이 자기를 향해서 있으면 자기는 기쁘고도 즐겁겠어. 기쁘겠어. 즐겁겠어. 네 여러분들은 부부간에 연애 안해 봅니까? 어머니와 그 자기와 연애 안해 봤습니까? 아버지와 연애 안해 봤습니까? 사랑하는 아버지가 자기에게 하는 것이 의례히 좋은 것 줄 줄 알고 뭐이 얄굿은 걸 '아이 이게 뭐인데요.' 선물같이 받지. 어머니가 하면 선물같이 받지. 사랑하는 남편이 말하면 선물 같이 받지. 아내가 하면 선물같이 받지. 그렇지 않소. 그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고 그런 나를 지극히 사랑하고 만에 하나라도 해치는 것 없고 사랑만 하는 분이라면 그의 움직임은 내가 언제든지 기쁘게 즐겁게 반갑게 받을 수가 있지 않겠소.
그게 뭐이냐? 그걸 내가 현재하고 있느냐 그말이오. 알고 있느냐? 현재 하나님에게 가르치는 그대로 네가 알고 있느냐? 그대로 인정하고 있느냐? 그것이 그것 연습 시키는 것이요. 그것 연습 시키고 이제까지 인정 못 했으면 지금 인정하려고, 지금 인정하려고 노력해서 인정을 만드는 것이요.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그대로 자기가 알려고 노력하는 것이요.
알면 어찌됩니까? 알면 아는 효력이납니다. 그게 믿음 써먹는 것이요. 알면 합격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아는 그 사람을 통해서 마음 놓고 일할 수가 있다 그말이오. 네, 언제는 인정했다 언제는 부정하는 날이면 하나님이 함께 하던 그 역사가 결국은 영광은 딴 것이 따먹고 도적 맞을 것 아니겠습니까.
이러니까 자 이 시간 네가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그대로 인정을 하느냐, 그대로 안 하느냐? 그대로 인정하느냐 그러면 이 시간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대로 네가 고대로 시키시는 대로 하느냐 고것입니다. 고것을 시험하요. 그것이 있으면 뭐 있습니까? 자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고대로 자기가 인정하면 자기에게는 어찌 됩니까? 기쁨이 오겠소, 고통이 오겠소? '사자구덩이 집어 넣는다. 어느 사자구덩이 집어 넣는다.' 이럴 때에 다니엘에게 기쁨이 오겠소, 근심이 오겠소? 그런데 다니엘에게는 기쁨이 왔습니다. 기쁨이 온 것은 뭣 때문에 기쁨이 왔습니까? 그 사람은 간이 커서 기쁨이 왔소, 죽고 싶어서 기쁨이 왔소? 뭣 때문에 기쁨이 왔소? 어째 기쁨이 왔습니까? 어떻게 기쁨이 왔소? 그 모르겠소. 저 (강)집사 다니엘에게 왜 기쁨이 왔소? 감사함으로 기도했는데 하나님 말씀 고거 하나님 말씀 하는 것 보다도 지금은 하나님이 가르치신 고대로 알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고대로 지식하고 있었어. 하나님이 가르치신 그대로 알고 있으니까 또 뭣 때문에 기쁘요? 과거에 시키시는 대로 해 보니까 다 좋았거든 경험이 있다 말이오. 고것이 자기가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해 봤기 때문에, 또 하나님이 가르치신 대로 고대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답안은 기쁠 수 밖에 없었어. 담대할 수 밖에 없어. '야, 하나님께서 뭘 주실란가?' 즐거워 좋은 선물 받을 것이고 기다리고 있지 그렇지 않겠소. 모세도 다 그런 것이라 이거요.
그런고로 믿느냐, 안 믿느냐? 그런데 지난밤에 설교한 그 (문) 조사님 아무 교회 가도 부흥은 일으키지 못합니다. 회개해야 부흥을 일으킵니다. 부흥 못 일으키요. 고 가르치는 것은 또박 또박 바로 가르쳤는데 고만 능력이 없어. 하나 구변쟁이라 구변쟁이. 말만 하는 말쟁이라. 능력이 없어. 영감이 없어. 무엇이 있기 때문에 그래. 잘못 알았어. 하나님의 형상은 예수님은 만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당신의 택한 자를 다 구원하기 위해서 종말적으로 만물을 구원하기 위해서 구원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해 그것을 구원하고 싶어서 구원하기 위해서 당신의 지위도, 영광도, 소유도, 몸도, 생명도 구원하고자 하는 그 간절한 사랑에서 다 애낌없이 사랑하기 위해서 녹아져버리는 것이 그 예수님이 형상입니다. 예수님의 형상이요.
그런데 교회가 뭐 숫자가 커지거나 많아지거나, 부흥이 되거나 그거는 그거는 상관 없다. 그걸 그것만 보는 사람은 그것만 하는 말, 그 말 똑똑히 좀 안했다 말이야. 그거는 내나 그 땅에 있는 기업을 취하는 사람이라. 내가 그 말할 때에는 그걸 똑똑히 말했어. 그것만 위주로 하고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상 입는 것, 자기가 그 목회를 하는 목회업 중에서 목회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을 입는 것 고것을 위해서 있는 것인데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안하면 아무리 수가 많이 모아도 하나님의 형상 입는 그 역사와 그 작용과 그 건설이 안된다고 하면 그거는 인간 모임뿐이기 때문에 그거는 내나 세상 놀이요. 암만 가져야 소용 없다 고것을 똑똑히 밝혀야 될 터인데, 이러니까 교인 이제껀 가야 한 여나믄 모아 놓고 그래 놓으니까 그만족을 하고 이래도 내 구원은 잘 이룰 수 있다. 저는 열 명에 대한 긍휼만 갖는데 만 명에 대한 긍휼 갖는 그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더 입은 사람입니다. 자기는 다른 사람을 여나믄 명 모아 놓고 이 사람만 구원해도 뭐 '나는 여게서 내 구원만 이루면 된다' 하는 고 사욕쟁이 욕심쟁이 그것보담은 그 지방 사람 이 골짝 사람을 구원하지 않고는 자기가 견딜 수 없어 골짝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몸과 생명이 다 거게 녹아진 소금으로써 다 희생이 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으면 그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충만히 입은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형상을 잘 깨닫지 못했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고 아는 데에서 고걸 깨닫고 그러니까 고리 되면 뭐이냐면 능력도 없고 그것 일본 말로 니그스보이 그 말쟁이 변론쟁이 구변쟁이 고것 돼 가지고 고런 것만 해 가지고 되는 것 아니요. 거게 뭐이냐? 자기가 속에 사람을 구원코자 하는 사랑,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주님이 원하시는 그 포부에 사랑하는 자가 원하고 있으니까 '내가 그이를 어떻게 기쁘게 할까? 그이가 근심하는 걸 자꾸 근심하는 걸 풀어야 되겠다.' 그이가 소원하고 있으니까 그이를 자기가 협조를 해야 되겠다 말이오. 여게 불이 붙어 가지고 하는 그게 아니면 아무 소용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거게서 기도해야 되요. 기도 않고 기도가 없어. 기도 있으면 알 것이고 또 실행을 했으면 그 알것인데 그 자기가 벌써 그 골짜기 간지가 오래 됐는데 교인이 한 여나무 그것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 뭐이냐? 알기를 고래 했기 때문에 알아요. 고래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부흥이 안 돼. 다른 사람 가 봐요. 그 골짝이 들먹 들먹 안 것는가? 그만 그 골짝이 마 들먹 들먹 거려서 당장 주일학생 그만 몇백 명 그만 장년반이 몇십 명 그만 들먹 들먹 것는 기라.
우리가 시간이 많고 공간이 많지마는 이 우주가 얼마나 넓지만 내게는 내가 지금 서있는 자리, 내가 지금 앉아있는 자리, 내가 있는 요 자리 요 자리가 내게는 우주보다 필요합니다. 우주보다 내게 큰 것입니다. 천 년 만 년 영원이라는 시간이 있지만 그 모든 시간보다도 과거도 수천 년 있었고 미래도 새로 억억만 년 그런 많은 시간이 있지만 내게는 요 시간이 중요해. 요 시간이 요 시간 뺏겨 버리면 헛일이야. 요 시간이 제일 중요해. 내게는 요 시간이 제일 중요해요.
종류가 사람도 있고, 나라도 있고, 뭐 사회도 있고, 돈도 있고, 사업도 있고, 별 큰 게 다 있지만 내게는 제일 중요한 종류가 뭐이냐? 내가 지금 당면하고 지금 상대해 가지고 있는 요 종류, 사람이면 사람, 물질이면 물질, 일이면 일 요 종류가 나에게 제일 필요하다 그말이오. 요 종류를 믿음으로 하느냐 안 하느냐 요기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요 믿음이라는 것을 암만 말해야 믿음이라는 이것을 파악을 못하는 것 같애. 그거는 뭐냐?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그래.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고 실행하지 않기 때문에 자꾸 그런 것입니다.
믿음은 모든 불행을 물리칩니다. 믿음은 뭐이냐? 믿음은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그대로 자기가 하는 것, 천인 만인이 말해도 안 들어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그대로만 들어. 아 개도 좀 길들인 개는 보니까 다른 사람이 주는 것은 안 먹습디다. 꼭 주인이 줘야 먹지.
아, 짐승도 길드리는데 오늘날까지 예수 믿는 사람이 내가 가르친 것만 네가 받아 드려서 그것만 옳다 참되다 인정해야 되지 인간들이 가르치는 것을 올다 참되다 인정하지 말아라. 그게 다 거짓말쟁이 마귀를 뭐라 했소. '거짓말쟁이라. 거짓말쟁이 애비된다.' 그 말은 마귀에 속한 인간들은 거짓말쟁이다 그말이오. 거짓말쟁이가 거짓말쟁이 애비가 말한 그거는 참되다 인정하고, 하나님이 가르치는 것은 인정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타락,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것 신구약 성경에 기록한 말씀 성신의 감동으로 양심 속에서 울려서 알려 주는 것 요것만 인정하는 요기 믿음이요.
하나님에게 배운 그대로, 하나님에게 배운 그대로만 알지 천인 만인이 가르쳐도 안 들어. 하나님이 가르쳐 준 그것만 꼭 들어. 요것이 반쪼가리 믿음이요. 또 천인, 만인이, 나라가, 사회가 시키고 죽인다고 시켜도 어째도 시켜도 안 들어. 하나님이 시키시는 그대로만 또박 또박 하는 죽어도 그대로만 하고, 살아도 고대로만 하고, 죽는 것도 그대로 죽고, 사는 것도 고대로 살아. 이게 뭐이냐? 이제 행함의 믿음, 두 앎의 믿음 행동의 믿음 요 두 믿음을 합해서 온전한 믿음이라 온전한 이 믿음이 되면 세상은 자기 것이 됐습니다.
세상하고 싸우는데 세상이 내 믿음을 꺽지 못했고 나는 세상이 어떻게 해도 믿음을 그대로 지켰으면 세상을 나는 이긴 자라 말이오. 그게 세상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얼마나 점령했느냐? 점령한 그게 사상을 점령한 것이요. 욕심을 부린다고 되는 줄 압니까? 믿음으로 세상을 점령하요. 우주를 믿음으로 하나님에게 상속 받소. 영게도 그렇소. 그러면 하나님은 내가 모셔서 내 하나님 삼는 것이 믿음으로 삼습니다.
이러니까 믿음을 지극히 보배로운 믿음이라. 보배로운 믿음이라 말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엊저녁에 설교한데 고기 틀렸어요. 고게 하나님의 형상이요. 뭐이냐? 교인 한 사람에게 관심 가는 것보다 열 사람에게 관심 가는 게 크고, 한 사람 위해서 희생하는 것보다 백 사람 위해서 희생하는 게 더 크고, 그 한 사람을 구원하고 만족하는 것보다 억만 사람을 구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이 자기에게 더 많이 이루어져 있다 말이오. 하나님의 모양이라 말이오. 하나님의 예수님의 모양, 에수님의 모양은 속성의 모양도 있지만 행동의 모양도 있지 않습니까? 그 말의 모양도 있지 않습니까? 그 모양 그것이 우리가 입을 것들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좋은 것 고 진리를 배워서 또박 또박 따지는 거, 고거 아주 고거는 좋은 것입니다. 고것은 버리지마. 기도해야 돼. 권능이 있어야 돼. 영감이 있어야 됩니다. 가서 어쨌든지 그 골짝에 지금 그 자립할 수 있는 교회를 못 세우면 하나님의 형상이 그 속에 뭐라고 싸도 그만 그것을 없으면 하나님의 형상이 그 속에 없는 사람이요.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 자기 믿고 있지 열매를 보아서 나를 알라고 하지 안했소. 그 사람의 그 나타난 모든 결과를 보아서 볼 수 없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