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8 11:43
대구집회에 옥토밭을 만들어
1988. 4. 8. 금야
본문 : 마태복음 13장 3절-9절 뿌릴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우리가 앞으로 대구 집회를 기다리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 대구 집회에서는 하나님께서 옥토에 뿌린 씨가 되어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 결실이 있기를 원하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번 집회에 물론 온갖 사람의 병든 그 죄병 뭐 여러 가지의 죄병들도 다 치료받아서 사람 병이 많이 고침 받을 것입니다. 또 그라고 육체의 병도 다 고침받아서 참 하나님을 잘 믿어 대접하고 구원을 잘 이루어갈 수 있는 그런 은혜를 하나님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이 집회 준비에는, 물론 우리가 참여하는 것이 먼저 중요하고, 또 그 위에 하나님의 이 온갖 은혜 주시는 은혜를 우리가 받는 것이 중요하고, 그보다도 이 은혜를 받아서 두 가지 병을 고침 받아서 강건한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는 사람이 병든 병, 마음이 온갖 죄악으로 더러워져 병든 것, 생각이 병든 것, 욕심이 병든 것, 성질이 병든 것, 모든 정신의 습성의 온갖 병든 그 사람병 고침 받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성경대로 되지 안한 사람은 다 병든 사람이요 성경대로 된 사람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된 사람이라야 그것이 건전한 사람입니다.
그러고. 이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 돼도 이 고깃덩어리가 병이 들면 많은 지장을 봅니다. 이러니까 몸의 병도 이거 다 고침을 받아야겠습니다.
저는 나이가 많아서 늙어 보니까 마음에 원하는 거 많지마는 몸이 약해지니까 그 할 일을 제대로 만족히 다 못 하는 그런데에 안타까움을 많이 가집니다.
그런데, 이는 뭐 늙어서 하나님의 자연 법칙에 따라서 노쇠해 가는 거니까 이것은 어짤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하나님께 달라고해서 육체도 이 건강해 가지고 사명을 감당하도록 그렇게 해 달라고 하고 있고 또 그렇게노력도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 은혜를 받기 위해서 준비하는 데에는 길이 되어있는 밭, 또 돌이 들어 있는 돌밭, 또 덤불 있는 덤불밭 이것을 옥토로 완전히 바꾸어 가지는 이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래 가지고 집회에 참석하면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할 수 있는 그 우리 구원 성공이 이루어집니다.
늘 전 시간도 말했지마는 이거 씨를 뿌리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또 씨는 하나님의 이 복음입니다. 피와 성령과. 진리 이 셋이 합해서 복음인데 이 복음을 예수님께서 우리 각자들에게 꼭 같이 오월 집회에 주실 것입니다. 주시는데 우리가 각자들이 준비한 대로 거기에서 받을 것입니다.
만일 준비를 길바닥같이 준비했으면 복음을 받았다가 새에게 다 뺏겨버리는 거, 새는 악령의 역사를 말합니다. 이러니까 아무리 하나님 말씀 들어봐도 복음을 들어도 악령에게 다 뺏기고 말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돌밭으로 준비한 사람은 이 복음을 듣고 좋아서 실행을 시작했으나 이 복음으로 인해서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닥치게 되면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그만 어려움을 못 견뎌서 어려움이 닥치니까 이 복음대로 살라고 하면 자기에게 큰 희생이 되고 곤란이 오니까 자기 어려움 당하지 않기 위해서 이 말씀을 배반해서 중단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맙니다.
또, 자기가 하나님의 도를 듣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 할지라도 신앙생활 해 나가니까 악령은 이것을 방해해서 모든 신앙생활하기에 방해되는 사건들을 자꾸 발생시킵니다. 모든 사건들이 발생이 돼지지 또 물질 문제가 여러 가지로 어렵게 자꾸 일어나게 되지 이라니까 그만 아주 용기를 내 가지고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겠다고 시작은 했지마는 물질 문제 이 세상 문제, 덤불 밑에 뿌린 씨는 세상 염려 재리 이런 문제가 닥치면 그만 그 신앙 다 팔아 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돌밭에 뿌리운 씨도 우리가 완전히 회개를 해서 옥토를 만들어야 되겠고 또 돌밭도 옥토를 만들어야 되겠고 덤불밭도 옥토를 만들어야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 결실을 얻습니다.
이런데, 혹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 결실을 얻는다 하는 요 비유를 요것을 제가 깨달은 대로에 이것을 이렇게 해석을 해서 맞느냐 안 맞느냐 이걸 가지고서 오래 동안 신강을 하고 마음에 자신이 없어서 그저 이대로 해석을 해서 증거한 것은 몇 십 년 됐지마는 용감스럽게 증거를 하지를 못하고 늘 몇 만 모이면 증거하고 많은 데서는 증거를 하지 못하고 이러다가 작년 오월 집회 때에 제가 확실히 증거하고 그 후부터는 차차 차차 성경을 따지고 연구해 볼 때에 이 비유의 해석이 확실하다 하는 것을 제가 잡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비유에 대해서 제일 중요한 것이 백 배, 육십 배, 삼십배 결실한다, 하는 이 소망이 이 비유 중에는 제일 중요하고 가치 있는 요긴한 주제가 되는 그 토막이다 그렇게 저는 생각을 가집니다.
제가 진주 성경 학교. 갔을 때에 여러 군데서 학생들이 왔는데 보니까 남해 등지에서 온 학생들이 신앙이 제일 좋았었습니다. 그래서 아마 거기에는 좋은 하나님의 일꾼이 계시는가보다 해 가지고서 나는 그 생각만 두고서 설설 이래 자꾸 물어 들어가니까 최상림 목사람이라는 목사님이 남해읍교회에 시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경남노회에 노회장도 지내고 이랬는데 그분의 그 교훈을 받은 학생들이 다 신앙이 살아서 아주 활발합디다.
이런데, 그분의 밑에서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오늘 뭐이 돼 있느냐 하면은 재건교회라고 있는데 그 재건교회 의 교인들은 다 최상림 목사님 밑에서 배운 사람들이 재건교회를 일으켰습니다. 지금도 재건교회 교인들은 만나보면 신앙 맛이 있고 예수 믿는 향기가 나옵니다. 그러나 다른 교파는 뭐 네나 내나 봐도 아무 모두 흐리텁텁하게 이래 가지고서 세상인지 교회인지 불교인지 뭐 유교인지 뭐인지 판별 못 할 만치 그렇게 심히 속화돼 있습니다.
그 목사님에게 출애굽기를 제가 공부를 했는데 다른 목사님들에게 성경 배운 것은 하나도 뭐 들을 것도 없고 배울 것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어요. 참 쭉덩이라. 아무것도 없어. 그런데 그 목사님이 출애굽기 가르치는 거는 그때 제가 배울 때에 아주 은혜를 받고 지금 생각해도 그 어른이 성경을 많이 알았고 또 영감을 많이 받아서 안 분이라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그분이 고 다음에 가르치러 오는 순서가 돼서 가르치러 오신다는 말을 듣고 날마다 지금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어른이 오면 내가 그 어른이 첫째는 어째 생겼는 고 좀 한 번 보고 싶고, 또 그 다음에는 그 어른이 표어가 뭐인고 표어를 한 번 묻고 싶고, 또 그분에게 한 번 배우고 싶고 그래서 지금 기다리고 있는데 왔습니다. 그래 왔는데 꺼무트드리하게 그렇게 생긴 어른입니다.
이런데, 그분이 전도받을 때에 전도 부인을, 전도를 안 받고 전도부인을 어떻게 박해를 했던지 전도 부인을, 힘이세요. 요래 볼끈 거머쥐고, 볼끈 거머쥐고 저 해치 구덩이에 가 가지고서 물에 폭 담가서 모가지까지 딱 담갔다가 또 올라오고 또 이렇게 하면서 또 전도할거냐고? 그래도 그 전도 부인이 성도 내지도 안하고 그 사랑으로, 그래해 되느냐고 믿어야 된다고. 이라고. 그뭐 이렇게 해도 꼭 그 참 덕있게 복음을 전했고.
그러다가 한번은 전도하러 오니까 함부레 전도하러 을 줄 알고 마당 가운데다가 장작으로 불을 피워 놓고 기다리고 있다가서 전도 부인이오니까 성경 뺏들어 가지고 볼끈 거머쥐고, 막 동동하니 소용 있습니까? 볼끈 한 손으로 거머쥐고 그 성경 전부 불에 뜯어서 다 태우고 그래도 또 그래도 전도합니다.
그랬는데, 그분이 남해읍교회 부임을 해서 가니까 남해읍교회, 여름인데 가보니까 전부 예배당 뺑 돌아가며 소먹이, 새초동을 뺑 돌려세워놨어. 그뭐 문이 열리지도 안하구로 뺑 둘러 해 놨더랍니다. 이거 인제 뭐인 게 아니라 ‘아무 집사는 갖다 세우는데 우리는 왜 못 갖다 세웁니까? 나도 한 동 갖다 세워야 그뭐.’ 예배당에 새초동 갖다 세우는 그게 무슨 출세하는 건 줄 알고 ‘너도 세우는데 나는 못 세워’ 이래 가지고서 이래 가지고서 시세해 세우다 보니까 뺑 돌려 세워놨고, 또 널쩍하게 마루니까 안 좋습니까? 뭐 지금 그때와 달라. 그때는 참 마루도 없어요. 없는 때인데. 여름에 논 매든지 품앗이를 하면은 ‘아무 것이 일꾼은 예배당에 가 쉬는데 우리 일꾼은 못 쉬어?’ 이라니까 그 뭐 예배당에 가서. 저거 일꾼 가 쉬는 것이 그게 서로 쟁기고 그게 출세고 그게 세도라.
이래 놓으니까 여름이 되면. 여름에 부임했는데 가 보니까 전부 예배당에 빡빡하게 드러누워서 뭐 전부가 더워 놓으니까 웃통 다 벗고 이래 가지고서 다 드러누워서 꽉 드러누워 자더랍니다.
그래 이 최상림 목사님이 어떻게 마음에 분했던지 기도하고, 나서 그만 저 작대기를 가져 와 가지고 몽둥이를 가지고 와서 각단지게 드러누운 걸 탁 뚜드려 댔어. 사정 없이 막 뚜드려 대니까 그만 이 사람들이 어떻게 놀라놨든지 일어나 가지고서 어떤 놈이 와서 이래 뚜드리느냐고, 이래도 원청 보니까 뚱뚱하이 꺼머투드리하이 힘이 에게 생겼거든. 그러니까 혹 뭐 달라들면 거머쥐고 확 집어던져 버리고 이라니까 그만 다 도망을 쳐 버리고 그래 인제 성전 청결 한 번하고, 저놈의 새초동이 저래 있는데 저걸 언제 완전히 썩히구로 해야 될 터인데 저거 언제사 할까? 여름에, 여름에는 풀 베지를 못하니까 그거 인제 여름에 농사 지을 때에 이종할 때에 먹일라고 짚북더기를 갖다 그래 세워 놨는데 함부레 낫을 하나 잘 준비해서 드는 낫을 준비해가지고 딱 놨다가 여름에 한창 소나기가 되게 올 때 가 가지고서 마구 그만 파 흩어대고 온 마당에 전부 짚북더기를 다 널어 놓으니까 뭐 비가와서 홈빡 맞았으니까 대번 뜨끔뜨끔 떠 가지고서 거름될 거 아닙니까? 그래 놓으니까 저거끼리 숙떡숙떡 하면서 저 목사 저거 당장 쫓아 보내라 야단지기지마는 뭐 어림이나 있습니까, 막 위에서 설교를 해서 벼락을 때려 대는데? 그래 인제 그라고 나니까 장로님들이 있다가 말하기를, ‘지금 저 어른이 노회 가면 제일 발언권이 세고 이러니까 우리 교회 지금 목사님이 됐으니 이제는 우리 교회서 노회에 보조를 올해는 좀 많이 받을 수 있다. 인제 올해 많이 받도록 하겠다.’ 그래 가지고 ‘목사님 요번에 노회 가시거들랑은 어짜든지 좀 보조 좀 많이 좀 받아 가지고 오시이소. 우리 남해는 지금 논을 사서 모두 이래해 놔서 뭐 연보 한 푼도 안 해도 됩니다. 이제 목사님은 아무리 써도 목사님 이 양식이라든지 대접할 것은 그저 논 이거 가지고서 보조만 받으면 실컷 됩니다. 우리 주머니끈 끌러 가지고 돈 한 푼도 안 내놔도 됩니다.’ 이라면서, 요번에는 좀 보조를 좀 더 받아 가지고 오시면 인제 다른 걸 또 그래 준비하기로 그래 하겠다고서.
그래서 이 목사님이 고래그래 하고서 인제 노회 가서, 그래 노회 가 가지고 부담하는데 노회 부담금을 그만 남해읍교회가 홀빡 다 그만 책임져 버렸어요. 다 책임 다 지고 와서 아무 말도 안 하고와 가지고 그만 그 논 있는 걸 뭐 헐값으로 싹 다 팔아 버렸어요. 논 있는 걸 싹 다 팔아버려.
이래 뭐 헐해 놓으니까 안 믿는 사람들이 사지 안 살턱이 뭐입니까? 헐하게 다 팔아 도장 다 찍어 다 팔아 가지고서 그래 가지고 노회에 이 뭐 구제금 전도비로 싹 다 내고 그만 남해읍교회를 완전히 거지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라고 나니까 남해읍교회서 야단이 나고 이랬지마는 하나님의 권능이 같이 하는데 어짤 수가 있습니까? 그래 가지고 남해에 논 있는거 다 없애 버렸어, 예배당 청소해, 그라고 나니까 남해읍교회가 어떻게 부흥이 되고 이라든지 거기에서 재건교회가 나왔습니다. 최덕지 선생이니다 그런 분들 다 그 밑에서 배운 분들입니다.
그래 내가 그 목사님을 만나 가지고, 소문을 들으니 그런 목사님이라. 이래서 어렇게 기다리고 있다가 왔기 때문에 살며시 들어갔어, 인제. 여럿이 따라 들어오면 안 되기 때문에. 들어가 가지고서 인사하고서 ‘목사님이 최상림 목사님입니까?’ 그렇다고서. 그래 인제 많은 시간을 가지지 못하고 ‘목사님 그 표어가 뭐입니까’ 이래 물으니까 옥토에 뿌린씨라. 그 어른 표어가 옥토에 뿌린 씨. ‘나는 그저 옥토에 뿌린 씨 백배, 육십 배, 삼십 배 결실 맺는 옥토에 뿌린 씨가 나의 표어입니다.’ 그렇게 말해요.
그런데, 그때 소견이 없어서 그까지만 물어봤지 백 배 육십 배 삼십배 결실 거기에 대한 뜻이 뭐입니까 그걸 물어 보지를 못했어요, 그만. 물어 보지를 못하고 그저 옥토에 뿌린 씨가 표어인 줄 알았는데 자꾸 살아가며 이래 볼수록 이 그 어른 표어가 참 그만치 표어를 이런 표어를 가졌기 때문에 그분은 순교를 했다. 그분이 순교했습니다.
진주 그 성경 학교, 있을 때 보면 거기에 있는 OOO 목사님이니 모두 뭐 박사들 그런 분들인데 그저 예배 볼 때 보면은 그저 뭐 이 꺼뜩꺼뜩 이래 쌓으면서 뭐 이리 쌓고 이라니까 그 모두 교수들이 모두 조롱을 합니다. 그래도 그만 그분의 말씀에는 다 붙이 붙어 버려, 그만. 그 말씀대로 실행 실천하기 때문에.
이래서, 하나님이 이번에, 이걸 주셨는데 제가 지나간 그 수요일 밤에 내가 강단에 안 설라고 하고 너무 총공회 하고 나니까 좀 피곤하고 이래서 안 서기로 하고 지금 다른 사람한테 부탁을 하고 이래 모두 다 준비를 하는데 식사를 하는데 갑자기 이 말씀을 증거해라. 증거하라 해서 할 수 없어 그만, 내가 증거하러 가야 되겠다고. 그래 ‘가지고 증거를 했습니다. 그래 지금까지 계속해서 증거를 합니다.
이래서, 이번 집회에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이 밭을 개간해가지고서 옥토를 만들어 가지고 다 집회에 참석할 것과, 옥토를 만들어가지고 참석하면 당신이 이 옥토에다 씨를 뿌려서 백 배, 육십 배, 삼십배 결실하는 이런 사람을 만들어 주실라고 당신이 이번에는 계획을 가졌는가보다 하는 그것을 제가 깨닫고 좋아서 그저 늘 증거합니다. 오늘도 기도하고 오늘도 또 이 말씀 또 천막에 가서도 기도하고 또 기뻐하고 이래 했습니다.
그런데, 요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 이것을 제가 해석하는 대로 요대로 다른 사람들이 해석을 가지지 안하는데 요 해석이 자꾸 읽어보고 밑에 거석을 보니까 확실합니다. 뭐 이제 이거는 뭐 천인 만인이 다, 확실하다는 확정을 가지고 저는 증거하도록 깨달음을 가졌습니다.
이래서, 백은 인간의 만수요 육십은 마귀의 만수요 삼은 하나님의 만수입니다.
열이라는 것은 사람의 만수인데 하나님에게 대해서 사람으로 만점, 마귀에게 대해서 사람으로 만점, 또 사람에게 대해서 사람으로 만점.
사람에게 대해서도 사람과의 관계도 완전 관계, 또 악령을 상대하는 생활도 완전 생활 완전 관계, 악령은 죄와 사망과 마귀인데 이 셋에 대해서 완전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것. 또 하나님을 대해서도 완전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것, 이거는 참 완전인데 뭐 이보다 더 영광스럽고 존귀한 것이 없는데 이것을 요번 집회에 하나님이 주시려고 우리에게 약속으로 계시해 주셨습니다.
이러니까 누구든지 이번 집회에, 하나님아 주실 때는 받으면 쌓요.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하실 때에 이 흙덩어리에게다 말하기를 ‘흙덩어리야 네가 씨맺는 모든 각종 식물을 내라’ 하니까 땅 그게 무슨 낼 힘이 있습니까? 아무 그 낼 힘없어.
그러나, 그 때가 돼서 내라 하니까 그들이 낼 때에 땅에서 모든 식물이 다 생겼습니다.
또 공중에게 말하기를 ‘공중아 네가 지금 공중을 향해서 사는 모든 이 날음의 ’모든 짐승들을 다 나게 하라’ 하니까 다 나와 버렸어. 또 바다에도 말하기를 그랬어요.
이거 모양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무엇을 하실라고 할 때에 그 시기를 놓치지 안하고 우리들이 순종만 하면 다 됩니다. 이번 기회에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할 수 있는 이런 능력의 사람들을 이번에 오월 집회에 주시려고 하나님이 작정하신 것으로 그렇게 저는 믿습니다.
다 받으면 좋은데 다 받을는지 몇 사람이 받을 갈지 모르나 어짜든지 이번 오월 집회 때에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 요걸 확신을 해야 돼요. 백 배 하는 요 해석이 인간은 열이 만수인데 인간 수에다가 그 만을 가하면은 백이 돼요.
이러니까, 마귀수는 여섯인데 거기다가서 인간만수를 가하면은 육십이 돼요. 또 하나님의 수는 셋인데 인간 만수를 가하면은 삼십이 돼요.
이래서 이거는 성경에 하나님을 삼수로 마귀를 육수로, 이래서 마귀수를 육십이라 할 때도 있고 육백 육십 육이라 할 때도 있고 이렇습니다. 또 사람의 수는 열을 많이 말했습니다. 열흘 동안 네가 시험을 받으리라. 이렇게 십수를 많이 말했는데, 요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라는 요 비유가, 인인관계 완전, 우리는 이세상에 살면서 뭐 준비하느냐? 준비하는 것은 무궁세계 우리가 가 살 터인데 세상에서 인간과의 관계가, 인간이 수많은 사람이 있지 안해요? 별별 사람이 있는데 어쨌든지 전 인류와, 전 인류와 올바른 관계를 가진다는 것이 이것이 얼마나 크고 얼마나 존영한 일인지 모릅니다. 이거 뭐 가치가 얼마나 크고 얼마나 범위가 넓은 지 사람들은 생각 못 해요. 전 인류와 완전 관계, 전 인류와 완전 관계, 그러면, 전 인류와 완전 관계 그라면 과거에 지금 뭐 근 육천 년전에도 지나간 사람이 있으니까 아담과 해와와도 완전 관계, 가인과 아벨과도 완전 관계, 노아 때에 홍수에 멸망 받은 그런 사람과도, 완전 관계, 이렇게 어떻게 인잔과의 완전 관계라 하는 것이 되겠습니까? 완전 관계 안 되는데 이제 옥토를 가지고 하나님이 주실 때에는 완전관계를 가질 수 있는 그 은혜를 하나님이 부어 주신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이제 전 인류와 완전 관계, 이 관계를 가지는, 인간으로서 완전자 예수님은 이 모든 인간과 완전 관계를 가졌습니다. 예수님은 인간과 완전 관계를 맺어서 물 속에 그 땅 아래 있는 분을 다 지옥에 있는 자들도 예수님과는 관계를 완전히 가져서 예수님을 주라고 시인을 했습니다.
그러면, 전 인류와 완전 관계, 그뭐 어떻게 큰지? 전 인류와 완전관계, 이거 하나님이 된다 했기 때문에 됐지 우리는 그 측량도 못 해요. 전 인류와의 완전 관계라는 그걸 뭐 어떤 인간이 있는지 어떤 관계인지 그것도 모. 릅니다.
어쨌든지 전 인류와의 완전 관계를 하나님이 해주실라고 약속을 했다 저는 그걸 믿어집니다.
또, 육십은 마귀 수인데 마귀는, 죄 사망 마귀 이거는 하나입니다. 죄하고 사망하고 마귀하고는 이거는 하나요. 하나인데 이 죄, 사망, 마귀와의 완전 관계, 죄에 대해서도 흠이 없고 사망에 대해서도 흠이 없고 마귀에게 대해서도 털끝만치도 흠이 없는 이 완전 관계를 가지는, 이러니까 이거는 뭐 하나님이나 그럴까 하나님 외에는 그럴 자가 없는데 우리가 하나님과 꼭 같이 된다 그거요.
완전 관계.
또, 하나님에게 대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도. 완전 두려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도 완전. 경외 하나님을 믿는 것도 완전 믿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도 완전 기쁨, 하나님께 대해서도 완전.
하나님께 대해서 완전, 이 마귀와 죄와 사망에 대해서도 완전, 인류에 대해서 완전 이 세 가지 완전을 하나님께서 이번에 주시려고 지금 약속을 하시고 그것을 저에게 선포를 해 주셔서 저도 믿고 여러분들에게도 내가 자꾸 전합니다. 이걸.
시간마다 전해요. 전하는 것은 나는 지금 받은 증거가 있고 중요하기 때문에 전합니다.
이러니까, 이번 오월 집회 때에 하나님이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 맺는 이 지금 뭐 측량도 못 해요, 그게 얼마나 크고 넓은 게 아니고 뭐. 측량 못 하는 지극히 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을 저는 믿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예고를 해 주셨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전하게 된 것이 그냥 이래 생각으로 전한 게 아니라. 생각해서 새가 전한 게 아니라. 내가 생각해서 뭘 이래 연구해 그런 게 아니오. 나는 아예 안 오기로 하고 식사하고 앉았는데 내게 콱 찔러서 ‘이걸 전해라’ 하기 때문에 내가 그래 와서 전합니다. 지금.
지금 이 한국뿐 아니라 세계 교회에 교회들이 그저 한 번 믿어 볼라고 하는 사람들 있고, 또 하나의 그저 자기 인간 생활에 한 과목으로 삼아서 그저 ‘종교는 가져야 된다’ 이런 것으로서 예수 믿는 사람 있고 참 한 번 예수님을 믿어 볼라는 사람 있고 있는데 참 한 번 예수님을 잘 믿어 볼라고 하는 사랑들은 어떻게 믿어야 되느냐 하는 그것을 지금 몰라서 모두 다 문제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불파로 가 볼까, 지시파로 가 볼까, 무슨 신유과로 가볼까, 무슨 어떤 신비파로 가 볼까, 예수를 어떻게 믿어야 된다 하는 그걸 참 모릅니다. 그저 어떻게 믿으면 잘 믿느냐? 믿어야 되는 그 길을 그 방편을 모르고 있어요. 모르고 있어서 지금 모두 다 더듬고 있어요. 이런데 이 길을 아는 사람은 참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랬는데, 여기에 길가에 뿌리운 씨 길가 밭. 그러면 이 밭은 뭘 가리키는가? 밭은 가리킨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 마음을 밭이라 마음 밭이라 이렇게 사람들이 해석을 많이 하는데 그게 아니고 이 밭이라는 것은 내라는 이 자체입니다. 내라는 자체 이것이 밭입니다. 그러면, 나의 영, 혼, 몸, 또 내 소유, 내라는 나와 내게 소유되어 있는 나 전부, 나 전부를 가리켜서 여기에 밭이라고 여기에 비유한 것입니다. 이랬는데, 길바닥과 같은 내가 돼 가지고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을 것이고 또 돌밭과 같은 자기가 돼 가지고서 참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덤불밭과 같은 그런 사람이 돼 가지고서 참여하는 사람도 있겠고 옥토와 같은 자기를 만들어 가지고서 참석하는 사람도 있을 터인데 이번에는 옥토와 같은 자기를 만들어 가지고 참석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큰 능력의 역사를 줄 것입니다.
이러면 인인 관계에 완전이라고 하면은 공산주의가 독침을 찌르든지 독약을 먹이든지 고문과 고형을 하든지 천하의 영광을 다 줘서 이렇게 높여 주든지 어떤 일을 해도 인인 관계에 대해서 완전한 그 완전한 생애, 인간관계에서 완전한 사람 완전자가 되어지는 이게 얼마나 뭐 크고 영광스러운지 몰라요.
이래서, 이렇게 되는데, 그러면 길바닥은 뭣을 말하는가? 길바닥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면. 길이 다져집니다. 많이 다니면 길이 다져져서 길이 땐땐 야무니까 종자를 뿌려야 그 속에 들어가지 안해요. 들어가지 안하고 안 들어가니까 새가 와서 다 주워 먹어 버리고 나지를 안한다 이랬어.
이러니까, 그러면 인간을 많은 사람들이 밟아 다진다. 인간들이 나를 밟아서 다진 것이 뭐이겠습니까? 이것은 세상에서 그 사람들이 발로 나를 밟는 게 아니고 내 마음을 강퍅하게 나를 완패하고 나를 그만 뭐 낡아지게 말이지요, 강퍅하게 완패하게 탄드는 것인데 만드는 것은 그것은 이 세상 모든 이런 말 저런 말 거짓말 참말 꾀우는 말 별별 말들 별별 지식들이 많기 때문에 이것이 들어서 사람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듭니다. 미련하게 만듭니다. 이래서 하나님 말씀을 들어도 아무 감각이 없어 주일학교 학생들은 이 말씀을 들으면 좀 참되게 들어서 기억하는데 중학을 가면은 하나님 말씀을 들어도 그만 시시하게 듣습니다. 그 보다 좀 국민학교 일학년보다는 많은 말을 들었기 때문에 그런 말은 세상에 꽉 찼는 거 성경 말씀 그런 말과 같은 하나로 이렇게 보기 때문에 그렇게 신중히 듣지를 안해요.
이러다가 이게 고등학교를 가면은 신중히 듣는 게 아니라 ‘헤, 이 성경말씀보다 기이한 기묘한 말이 더 많다. 이 성경 말씀보다도 더 묘한 말이 많이 있다.’ 이라기 때문에, 성경 말씀의 가치를 일학년 때에는 예를 들면 백 프로 가치를 믿던 것이 중학교 되면 한 오십 프로, 고등학교 되면 한 삼십 프로 믿고 대학 가면은 한 뭐 일 프로나 믿고. 좀이 사회생활 많이 하고 이래 놓으면 그저 그렇다는 것이지 종교서적이나 그런 거 많이 본 사람들은 성경 말씀을 그래 참이라고 믿지를 않습니다.
이래서, 세상 모든 지식 이것으로서 우리 마음을 강퍅하게 다져서 완패하게 만든 것인데 이 길바닥을 옥토를 만드는 데에는 어떻게 하면 옥토가 되어지느냐? 길바닥을 옥토 만드는 것은 이 신구약 성경 말씀외에 있는 모든 지식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모든 지식. 성경 말씀 외에 모든 지식을 다 부인하는 거.
부인한다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은 이 성경 말씀과 세상에 모든 지식이 둘이 이렇게 할 때에는 이 성경 지식을 따라 하느냐 이 세상 지식따라 하느냐 이 둘이 이럴 때에 이 세상 지식이 없으면 성경 지식 말씀만 따라서 행할 터인데 세상 지식에 사이비한 것이 있다 보니까 세상 지식. 많은 사람은 성경 지식을 따라 하지 안하고 세상 지식을 따라서 가게됩니다. 이러니까 그것이 곧 길바닥인 것입니다.
그래서, 길바닥을 옥토로 만드는 데에는 뭐이냐? 길바닥을 옥토 만드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게 길바닥을 옥토 만드는 것이냐 하면 내가 가진 이 모든 세상 지식, 모든 세상 지식 그 지식이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알고 믿고 고대로 실행할라고 할 때에, 하나님 말씀을 실행할라고 할 때에, 하나님 말씀을 들어서 깨달을라고 할 때에. 하나님 말씀을 믿을라고 할 때에, 하나님 말씀을 깨달을라고 할 때에 믿을라고 할 때에 실행할라고 할 때에 그럴 때에 방해하는 것이 그것이 길바닥인데. 방해하는 것이 길바닥인데, 그러면. 방해하는 것이 그것이 없어지면 방해하는 것이 없어지면 길바닥이 안 될 것이고, 방해하는 것이 없어지면, 방해하는 그 방해성이 없어지면 길바락이 아닐 것이고, 또 방해하던 세상 모든 지식이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데에 잘 순종되도록 그런 지식이 도움이 된다면 뭐이 되겠습니까? 도움이 된다면 이제 그 길바닥이 뭐이 되겠습니까? 자기의 가진 세상 모든 지식이 하나님의 이 지식에 순종하는 데에 보조 역할을 하고 이 순종하는 데에 도움이 되고 이용이 되고 이게 있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더 세밀하게 강하게 정확하게 또 광대하게 이렇게 순종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지식이 된다고 하면은 그 길바닥이 변해서 뭣 됐습니까? 옥토가 되는 것입니다. 옥토가 되는 것이오.
이래서. 길바닥을 옥토 만드는 것은 내가 이 땅 위에 있는 가지는 내가 모든 지식, 세상 모든 지식을 내가 가지나 이 지식이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데에 도움이 되도록, 순종하기 위해서, 순종하는 이 믿음지키는 데에 이용하기 위해서 세상 지식을 가지고 세상 지식 가진 그것으로 인해서 하나님 말씀 순종하는 데에 이용이 되고 도움이 되고 유익이 되도록 이것을 활용해서 가질 때에는 그 사람이 길바닥이 변해서 옥토가 되는 것입니다.
또, 돌밭은 어떤 것이냐 하면은 자기 욕심인데, 자기 욕심, 자기욕심인데 자기 욕심 이것이 들어서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할라 하니 순종을 못 하게 만들었는데, 자기 욕심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라 하니까 순종하지 못하게 만들었는데 이 자기 욕심 그것이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데에 도움이 되도록 자기 이 욕심, 자기 육신의 욕심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데에 도움이 되도록 그렇게 만들때에 그 돌밭이 옥토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또, 자기가 이 세상 염려와 재리의 염려, 세상 염려와 재리의 염려인데 이것은 이 세상 염려와 재리 염려가 왜 되느냐 하면은 세상 소망과 재리에 소망이 있기 때문에 염려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돈 욕심 세상 욕심 이 욕심 가지는 그 전부가, 욕심 가진 그 욕심이 성령의 소욕대로 하나님 말씀대로 내가 순종하는 데에 방해하는 욕심이 되지 말고 이것을 성경대로 순종하는 데에 듣는 욕심이 되어 진다고 하면 요것이 이제 덤불밭이 옥토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해가됩니까? 이래서 길가 밭은 이 인간 지식인데 인간 지식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나 깨닫는 대나 귀중히 여기는 데나 이 말씀대로 실행하는 데에 방해가 되는 이 지식으로 돼 가지고 있으면은 그 사람의 그 지식이 그 사랑을 뭘로 만들었습니까? 그 사람을 뭘로 만들었소? 저 OOO사모. 뭘로 만들었어? 고걸 자꾸 깨달아야 돼요, 자꾸 지금.
그 사람의 모든 세상 지식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믿고 실행할라 할 때에 이지식이 들어서 방해를 하면은 그 지식이 들어서 그 사람을 뭘로 만들었습니까? 길가 밭으로 만들었다 말이오.
이랬는데, 이제 옥토로 만드는 것은 그 사람의 가진 모든 세상 지식이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믿는, 깨닫는 데에, 순종하는 데에, 믿는 데에 실행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지식으로 이 위치를 완전히 바꾸어서 도움이 되는 지식으로 자기가 딱 확정을 하고 그렇게 딱 평가하고서 요것이 회개해서 되어지면은 그 사람 길바닥이 옥토가 되는 것이라 그말이오.
또 그 사람이, 돌밭은 자기 욕심인데 이걸 말하자면 쉽게 말하면 육체의 욕심인데 육체의 욕심이 들어서 성령의 소욕을 이를라고 할때에 이루지 못하게 방해를 하는데 방해하는 데에 그 사람 욕심이 이, 모든 세상 욕심이 들어서 성령의 소욕대로 살라고 할 때에 방해를 하고 있으면은 그 사람의 욕심이 그 사람을 뭘 만들었습니까? 그 주인을 뭣 만들었소? 돌밭 만들었다 말이오.
돌밭 만들었는데 이 육체의 소욕 이것이 성령의 소욕의 그 생애를 할때에 성령의 소욕대로 살라고 할 때에 성령의 소욕을 돕는 이 육체의 소욕이 되면 뭐이 됩니까? 그러면 돌밭이 옥토가 되는 것입니다. 그저 여러분들이 알고만 하고 많이 연구해야 나중에 알아지니까.
또 이 덤불 밑에 뿌린 씨, 그 밑에 주님 말씀하시기를 세상 염려와 재리의 염려로서 그 하나님 말씀 순종하지 못하는 것을 가리켜서 덤불위에 뿌린 씨라 그렇게 한다고 해석을 해 놨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재리 염려 세상 염려는 뭐인고 하니 이것은 곧 세상 염려인데 재리 염려인데 세상 염려 재리 염려를 그거 그 무슨 말로 하느냐 하면은 세상 염려 재리 염려라 말은 세상에다가 소망을 둔 것이라 말이오.
맞습니까? 예수님께서 그 모든 재리의 염려 또 세상 모든 일들의 모든 세상일의 염려 물질 염려 이 염려하는 그것이, 그것이 세상 소망을 가리켜서 말씀한 것이라 그렇게 해석하면 맞겠소 안 맞겠소? 맞소 안 맞소. 맞는다 그말이오. 이 첩첩이 되는 거 이걸 말해 놓으니까 무슨 말인지 암만 가르쳐야 몰라. 이거는 세상 소망이라 말이오.
세상 소망과 하늘나라 소망이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이 복응은 하늘나라의 소망인데 하늘나라의 소망을 세상 소망 이것이 방해를 합니다. 하나님의 소망대로 살라고 할 때에 세상 소망이 방해를 해요. 세상 소망이 하늘나라의 소망을 방해를 하면 이 세상 소망이 그 사람을 뭐를 만들었습니까? 그 사람을 뭘 만들었소? 덤불밭을 만들었어. 그런데. 이 세상 소망이 하늘 소망을 이루는 데에 돕는, 하늘 소망을 돕는, 하늘 소망을 위해서 투자가 되고 하늘 소망을 위해서 이용이 돼. 어떤 사람이 세상에서 탁 부지런히 해 지고 돈도 벌고 지위도 얻고 권세도 얻고 다 얻는데 세상 소망 가지고 세상 것을 자뿍 취하는데 이거 전부 춰해 가지고 하늘나라의 소망을 위해서 마구 투자를 해 재킨다 말이오. 세상 소망으로 싹 꺼머 가지고서 하늘나라 소망에다 투자를, 하고서 이리 하면은 그 사람의 그 가진 세상 소망이 그 사람에게 하늘나라 소망을 위해서 투자가 되어지면 이용이 되고 하늘나라 소망을 돕고 위하고 이루도록 이용이 돼지고 하면은 그 세상 소망 가졌던 그것이 그 사람을 덤불밭을 만들었습니까 옥토를 만들었습니까? 옥토를 만들었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옥토 되는 것이 이것이라 그말이오. 이래 껍데기로 말하면, 껍데기로 말하면 세상 모든 지식을 다 부인하고 하나님의 지식만을 인정해야 된다 하는 것이 껍데기요 고 속에 들어가면 세상 모든 지식이 하나님의 지식에 이용이 되어서 세상 공부 지식하는 것은 하나님의 지식을 더 똑똑히 알고 더 범위 넓게 알고더 확실히 알고 하나님의 지식대로 실행하는 데에 돕기 위해서 세상공부를 하는 것이지 그리 안 하면 안 한다는 그 사람은 이제 그것이 길바닥이 아니고 옥토가 된다 말이오.
이러니까, 이제 시간 많이 갔으니까. 고걸 여러분들이 가만히 생각해요.
그러면, 길바닥은 옥토를 만들어 가지고 가야 되겠는데 길바닥을 옥토 만들어 가지고 가야 되겠고 또 돌밭을 옥토 만들어 가야 되겠고 또 덤불밭을 옥토 만들어 가야 되겠는데 길바닥은 옥토 만들라. 면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OOO 선생. 뭐라 하노? 자신을 부인해? 그안 맞아. 핀트가 안 맞아. 엉뚱한 소리라.
자, 길바닥 밭을 옥토를 만들라고 하면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방식을 알아야 그거 만들지. 길바닥 밭을 옥토를 만들라 하면은 어떻게 하면 되는가 그것을 알아야 만들어 가지고 가지. 만드는 것은 자기가 각오하고 결심하고 고대로 지금 단행을 하고서 하는 고것이 지금 만드는 것인데 길밭을 옥토를 만들라고 하면은 어떻게 하면은 길밭이 옥토가 됩니까? 길밭은 이 씨가 먹지를 못합니다. 씨가 들어박히지도 못하고 땅지기를 빨아먹지도 못하니까 새가 다 먹어 버리요. 그러면 길바닥이 옥토가 되면 그 씨가 심어지고 또 그 씨가 양분을 빨아먹고 자라고 그라지 않습니까? 길바닥이 옥토되는 것은 길바닥이 흐분흐분해서 이 씨가 심어질 수 있어야 옥토가 되고 또 이 씨가 양분을 빨아 먹을라 할때 빨아 먹혀져야만 옥토가 된다 말이오.
이러니까, 자, 길바닥이 옥토 되는 데에는 어떻게 하면 옥토가 됩니까? 어떻게 하면 옥토가 되지요? 이것도 시험쳐 놓으면 다 빵점일거라. 여기 총공회 이거 목사들 막 이거 앵무새 모양으로 외워 가지고 줄줄 쌓지 속에 모르기 때문에, 모르기 때문에 암만 믿어도 속에 생명의 도가 들어가지 안해. 이러니까 그뭐 가봐야 참 한심해. 앞으로 환난 오면 다 이거 어린 주일학생들 이기지 목사들 다 패전할 거라. 몰라.
자, 그러면 길바닥 밭은 옥토가 되도록 할라 하면은 어떻게 하면 어떻게 개간하면은 옥토가 됩니까? 그거 한 번 좀 말해 봐요. 이 목사님들 말하면 대답 못 하면 그 부끄러울까 싶어서 내가 못 하겠는데 유명한 목사님들이 와 있으면 좀 내가 물어보면 좋겠는데 그 유명한 목사님들은 또 그래 안 왔구만.
이래도 안 옵니다. 저거가, 그것도 새벽 기도 나온 그거는 싫고 주일날 오전 오후 그것만 큰, 설교인 줄 알고. 오전 오후는 껍데기 설교요. 알겠소? 껍데기 설교. 그거는 오전 오후는 많은 껍데기 신자 많이 왔는데 껍데기를 줘야 되지 알맹이 주면 알아듣지도 못할 거고 어짤거야? 새벽 설교가 그런데 새벽 설교는 그렇다고 껍데기 설교만 듣고 가거든. 그러니까 또 울어야 몰라. 그런 사람들 여기 오면, ‘거기 만날 거기 배울 게 뭐 있는가? 내가 뭐 혼자 연구하면 되지.’ 고 속에 교만이 들어 가지고서 배우지도 안하고 그래요.
자, 길바닥을 옥토를 만드는 데에는 어떻게 노력을 해서 개간을 해야길 바닥이 옥토가 될는지? 길바닥이 옥토되는 데는 먼저 씨를 심을때에 씨가 거기에 심겨져야 돼지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지기를 그 씨가 빨아먹을 수 있어야 되고 이 둘이 돼야 되는데 그러면 그 길바닥이 옥토가 되는 데에는 어떻게 하는 것이 옥토가 됩니까? 저 누구를 한 번 말해 볼꼬? OOO 조사님.
네, 사람의 지식이, 자기 모두 국민학교 배운 것 또 학교 입학하기 전에 동무들 하고 배운 것 이 세상에서 모든 가진 지식 그 전부가 이것이 하나님 말씀을 들어 깨닫는 데에 방해하는 것이 되지 안하고 이 모든 지식이 다 동원돼 가지고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깨닫는 데에 도움이 되면 흐분흐분한 땅이 됩니다. 그 다음에 이 말씀대로 실행하는데 이모든 지식이 도움이 되면 그거는 이제 옥토가 됩니다.
그러면, 길바닥을 옥토 만드는 방법 알아요? 제가 이 세상에 있는 지식 그것을 하나님의 도리를 깨닫는 데에 이용하지 안하고 그 지식을 하나님 말씀과 동등 여겨서 그 지식 가지고 월 할 줄 알고 그 지식가지고 하나님의 도리를 깨닫는 데에만 이용하고 하나님의 도리를 믿는데에 이용을 해서 도움이 되고 하나님 말씀대로 실행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그 지식으로 만들지 못하면 저는 언제든지 길바닥으로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이해가 됩니까? OOO 장로님 이해가 됩니까? 이치가 맞아요? 이해가 돼요? 저 OOOO 장로님, 이해가 돼요? 이해가 됩니까 아멘이 됩니까? 고 틀림없다. 고거는 뭐 달리 변동할 수 없다 틀림없다 그렇게 확신이 돼져야 되지 확신 안 되면 소용 없어. 그냥 그래 알아 가지고는 일이 안 돼요. 확신이 돼요? 이렇게 자기의 가진 모든 지식이 하나님의 도리를 아는 데에 이용이 되고 믿는 데 이용이 되고 요대로 실행하는 데에 이용이 되는 것은 양분을 빨아먹는 거라.
실행하는 데 이용되면 자기라는 것이 이 말씀에게 쪽 빨려 먹혀 버려.
자기를 이 말씀이 쪽 빨아먹고, 쪽 빨아먹고 나중에 껍데기만 붙어서, 죽을 때에 보면, 죽을 때 이 모든 영과 마음과 몸 이것을 이 하나님의 복음이 쪽 빨아먹고 다 빨아먹고 딴 데 하나도 허비 안 하고 다 빨아먹은 그것이 뭐이냐 하면은 지식면에 있어서 개간돼서 옥토된 것입니다. 이렇게 할라면 쉽게 돼요? 자기 모든 가진 지식이 다 하나님 말씀을 깨닫는 데에 이용되고 믿는 데에 이용되고 실행하는 데에 이용이 되도록 거기에 활용을 하고 이게 앞에 대가리 들고 나서지 못하고 이거는 순전히 이 지식은 하나님의 도를 믿고 깨닫고 실행하는 데에만 이용되도록 실행하는 데 도움만 되도록 요렇게 지식을 활용하기로 작정이있어야 돼.
저 OOO 장로님. 확정해요? 모두 다 이 고등학교 선생들 뭐 대학선생들 되면 뭐 그게 들어서 자꾸 이 지식 가지고 ‘내가 이 지식 가졌는데’ 이 지식 가지고 하나님의 지식을 업신여기고 하나님의 지식을 부인하게 하고 하나님의 지식을 애사로 만들고 하나님의 지식도 이런 지식과 같은 지식이라 이래 가지고 하나님의 지식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권위를 떨어뜨리고 업신여기고 거기 대해서 믿는 것을 훼방하고 요라면은 자기는 자기 가진 지식이 자기라는 인품을 길바닥을 만들었기 때문에 망하고 맙니다.
이것을 학자들 박사들이 알아야 할터인데 전부 박사들이 다 길바닥이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 망하고 만다 그말이오. 이해가 돼요? 모르면 헛일이라. 그까짓 거 있간 지식 그거 다 불탈 것인데 그거 뭐 힘이 있는 줄 알아요? 그래, 자기의 모든 지식을 이것을 힘을 쓰고 애를 써 가지고 이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을 연구하는 데에, 아는 데에, 믿는 데에, 실행하는 데에 이용물이 되고 도움이 되도록 요렇게 이 세상 지식의 위치를 요게다 딱정해 놓고 가치로 정해 놓고 이거는 위하기만 하지 ‘하나님의 지식과뭐 동등이라, 비교가 된다.’ 이렇게 망령을 부리지 안하고 이것을 하나님의 지식을 아는 데에 믿는 데에 실행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이용물로 요 가치를, 하나님의 지식은 살았고 무한하고 이거는 천한 거로 요렇게 이용으로 요 가치 평가 요 위치를 요렇게 정해 놓고 요렇게 되도록 제가 노력을 하고 힘을 써야만 길바닥이 옥토가 된다 긍거요, 사람에게는 육체의 소욕심이 있고 인간 욕심이 있고 하나님의 욕심이 있는데 하나님의 욕심을 가리켜서 성령의 소욕이라고 했고 인간 욕심을 가리켜서 육체의 소욕이라고 했는데 돌밭은 내 욕심 내 세상 욕심 온갖 욕심이 하나님의 욕심 성령의 소욕을 돕는 게 되고 이용되고, 땅위에 것 뭐 욕심 뭐할고 내는가? 욕심내는 거는 하나님의 성령의 소욕대로 하는 데에 자본이 되도록, 비용이 되도록. 그 도움이 되도록, 협조가 되도록, 이용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이 모든 이 세상 욕심 이 육체의 욕심을 이렇게 하나님의 성신에 소욕에 이용이 되도록 협조가 되도록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요 노력이 얼마나 힘드요? 요 노력을 해 가지고라야 비로소 돌밭이 옥토가 된다 그말이오.
세상과 재리 염려 이거는 세상 소망인데 세상에서 부자도 되고 싶고 뭣도 되고 싶고 공부도 하고 싶고 지위도 높아지고 하는 세상에 온갖 소망, 세상에 온갖 소망 가진 그 소망을 하늘의 소망과 비교할 때에 하늘의 소망은 멀리 있고 세상 소망은 가까이 있으니까 이걸 더 높이 평가하는 그 자는 암만 예수 믿어야 기본구원뿐이지 건설구원은 하나도 없습니다. 알겠소? 이거 쉬운 게 아니라.
세상 소망 하늘나라 소망 있는데 세상 소망하고 하늘나라 소망하고 비교해서 한번은 하늘의 소망대로 살고 한번은 땅의 소망대로 살고 이렇게 사는 자는 그자는 암만 그래 쌓아도 ‘보다’가 아니기 때문에 그거는 가보면은 다 쭉정이고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었지 불타지 안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세상 소망과 하늘나라 소망이 있는데 세상 소망을 막 가지고 이래 주 설쳐 가지는 것은 ‘뭐 할라고 너 가지노?’하늘의 소망을 이루는 데에는 이것이 자본이 되기 때문에 하늘의 소망을 돕기 위해서 하늘의 소망을 이루는 비용으로 또, 자본으로 이렇게 하기 위해서 세상 소망을 가진다해서 세상 모든 소망을 하늘의 소망을 위해서 완전히 투자하고 하늘의 소망을 위해서 세상 소망이 있는 이 위치를 잡고 이용하는 그 사람이 덤불 밑에 뿌린 씨 덤불 밑에 밭을 옥토를 란든 사람입니다.
이거는 인간의 노력으로 돼요, 노력으로. 밤낮 기도하고 밤낮 소원하고 이래 가지고 되어지는 것이지 그게 쉽게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러기 때문에 천국 이루는 것이 힘이 들어 이런데 우리 진영에는 병이 큰 병이 들어왔어. 어짜든지 복음으로 가지고 이라니까 이 복음을 가르치니까 한쪽머리는 마귀가 들어라 가지고 자꾸 넓게 ‘아이고, 예수를 그렇게 자꾸 그래, 나는 그래 못믿어요. 나는 그렇게 좁게 못 믿고 그래 열심이 못 믿고 나는 그렇게 열심 있게 못 믿어요. 나는 천천히 믿어요. 나는 천천히 믿어요. 좀 널평하게 믿어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렇게 백 목사 모양으로 자꾸들이 조져대니까 사람이 뭐 정신을 못 차리도록 조져대니 이 말씀과 꼭 같이 하라 하니 말씀대로 하다 보니까 세상일도 아무것도 하지 못 하겠다. 또 좀 사람이 놀아야 재미나는데 놀지도 하나도 놀지도 못한다. 그래 그래, 이 서부교회 교인이 되면 밤이 짧아요. 낮이 짧아요. 정신이 없어. 혼이 나가. 그만. 내 밑에 가까이 하는 사람들은 그만 정신이 없어, 그만. 밤인지 낮인지 정신이 없어. 왜? 바쁘거든. 이래도 잘 안 돼요, 이런데, 제 마음대로 멋대로 제 재미 다 보고 제 할 노릇 다 하고 놀음다 하고 취미 다 가지고 관광 다 돌아다니고 해 가지고 예수를 믿어 이렇게 구원이 이루어져요? 안 됩니다.
여러분들, 하나도 똑똑히 몰라.
그 길밭을 옥토 하나 만들라 해도 그게 얼마나, 밤낮 소원이 돼야 되고 기도하고 밤낮 노력해야 돼져요. 그리 안 하면 안 돼요, 돌밭을 옥토 만드는데 그래 쉽게 됩니까? 덤불밭을 옥토 만드는데 쉽게 됩니까? 이거 다 뭐이냐? 우리가 힘씀으로.
그러기 때문에, ‘하늘나라는 힘센 사람이 얻는다. 하늘나라는 힘센 사람이라야 얻는다.’ ‘하늘나라는 힘쓰는 사람이라야 얻는다’. 어느 게 탕아요? 힘센 사람이 얻어요 힘쓰는 사람이 얻어요? 힘쓰는 사람이 얻어. 지극히 작은‘ 자라도 힘만 쓰면 다 돼요.
힘쓰는 자는 하나님이 주시고 ‘아, 나는 얼마든지 장사니까 저거 뭐 열 시간 힘쓰는 것보다 내가 한 시간만 힘써도, 나올 건데.’ 하는 그자는 전부 멸망입니다. 이걸 알고 예수를 믿어야 돼요.
요새 우리 진영에는 안일주의가 들어와 가지고서 널펑하게, 예수믿는 다고서 이래 가지고서 ‘그래야 신사적으로 예수 믿지’ 참, 이제 한 번, 예수님의 재림이 바로 올는지 한 번 위에서부터 공산주의로 싹쓸어서 이 안일주의자 이 모든 잡탱이를 싹 쓸어버리고 한 번 또 멋지게 믿구로 할는지 몰라요. 언제든지 옵니다.
노아 때도 ‘저 영감 저거는 하나님 말씀을 들을 건 듣고 안 들을 건 안 듣고 슬금슬금 그래야지 고대로만 하니까 놀러도 가지도 못하고 만날 똥땅똥땅 시키는 대로 꿇고 뻣고 맞추고 방주만 모으고 말 거냐?’ 다른 사람한테 조롱 받았지.
나중에 가 보니까 잠시만 쉬었으면 구멍 나와서 헛일이라. 쉴 새가 없어.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죽도록 충성해라 그래야 생명이 승리하는, 면류관 얻는다’ 어쨌든지 예수 믿는 것은, 어째야 돼요? 예수 믿는 건우리가 영생 얻을라 하는 것인데 영생은, 우리는 영생하는 생명을 가졌는데 영생이라 하는 것은 자기 행위 구원을 말합니다. 영생은 행위구원을 말하는 것이고 기본구원 말하는 것 아닙니다.
영생은, 행위 구원 영생 얻을라 하면은 어떻게 해야 돼요, 몇 가지를 다해야 돼요? 몇 가지 다해야 돼요? 네 가지.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하고 이래야 되는데, ‘목숨은 언제 살고 믿지 뭐’ 목숨 다한다는 거 천리도 만리도 거리 멀고 마음도 자기 마음대로 쓸 대로 다 쓰고 찌끄러기 가지고, 힘도 찌끄러기 뜻도 찌끄러기, 좋은 거는 전부 다 제 욕심 다 차리고 찌끄러기 가지고 예수 믿어서 영생을 얻어? 안 돼요! 안 됩니다 어리석지 마십시오.
이래서, 요번 대구 집회가 있는데 어짜든지 길바닥을 옥토로 만들고 돌밭을 옥토로 만들고 덤불밭을 옥토로 만들어 가지고 가서 이거 이래가 가지고 이번에 주님이 하나 둘 주시는 대로 딱딱 아멘 아멘으로 딱 받아 가지고 그래 가지고서 실상의 권능 얻어 가지고 능력 얻어서 앞으로 뭐 공산주의가 오든지 말든지 독침이 오든지 말든지 훌훌 날아다니면서, 날아다니며 자유로 얼마든지 자유 생활 하고 아무 데도 제재받지 안하고, 왜정 때에도 오행선 장로님은 신사참배 반대하고 평양 시내에 마음대로 돌아다니면서 반대 전도하고 그래도 명대로 살다 갔습니다. 순교도 당하지 안했어. 고문도 안 당했어.
이번에 어짜든지 하나님이 큰 역사를 해 주실라고 약속을 했어요. 옥토에 뿌린 씨.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 인인 관계에 완성, 인인 관계를 완성해. 완전 성공해. 인인 관계 완성. 마귀와 죄와 사망 관계 완성, 하나님 관계에 완성, 이러니까 하나님 다음 사람 돼. 완성돼요. 이것이 우리에게 가능합니다.
예수님의 대속이 이것 때문인데 믿는 자는 다 되는데 안 빌기 때문에 안 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