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8 11:35
담대히 계명을 지킬 이유
본문: 요한복음15장 9절-11절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우리 구속받은 성도들이 한 현실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실은 하나님의 기쁨과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사는 현실도 될 수 있고 또 하나는 하나님이 근심하시고 미워하시고 침노에도 살수도 있는 것입니다. 다같이 밥 먹고 옷 입고 가정 가지고 이런 저런 생활을 하고 있지만 어떤 형편 사정에서 살든지 문제는 하나님의 기뻐하심과 그 사랑 안에서 살고 있느냐 그밖에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저주에서 헤메고 살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는 세상이 해 할 수 없는 온전한 것이 있고, 또 죽음, 조금도 해하지 못하는 그런 능력 있는 것이 있고 하나님의 심판도 해 할 수 없는 영원한 것들이 이루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르쳐서 반석 위에 지은 집이라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어 소멸되지 아니할 건설들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어떤 고문과 고형이 와도 조금도 훼손 할 수 없는 건설, 어떻게 두렵고 외로움 속에서도 조금도 요동치 않고 변동 없는 건설, 늙어도 전쟁이 일어나도 지금 흉년이 들어도 무슨 무기로 소멸 당하는 일이 있어도 온 세계가 떠들고 국가가 일어나고 사회나 전 인류가 물끓듯 끓드라도 조금도 요동치 않는 이런 건설이 하나님 사랑 안에 있습니다.
죽음이 와도 조금도 침해 할 수 없고 무궁한 영원한 세월이 지나가도 조금도 침노 받지 않는 이런 참 완전하고 영원하고 무궁하고 참되고 깨끗과 진리와 능력으로 온전함을 이루는 이 건설이 우리 앞에는 있습니다. 이것은 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사랑 안에 행동하는 자들이요 이 사랑 안을 떠나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저주의 행위로 가는 것은 온 천하를 얻어도 그는 불쌍하고 가련한 자인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아 이 사실을 기준 하여 사는 신자라면 세상이 그의 기쁨과 평강을 흔들지 못합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이 이 기독자의 영원한 이 소망에 뿌리박지 아니하고 믿는 다고 하나 안 믿는 사람과 같은 없어질 이 모든 실력 없는 거짓된 모두 삐뚤어진 이 세상과 세상에게 있는 그것들에게 소망을 두는 자들이 환경을 따라 변해지고, 시대를 따라 변해지고, 상대를 따라 변해지고, 자기의 신체의 당하는 모든 기술들로 인해서 요동되는 것을 가르쳐서 모래 위에 지은 집이라 모든 시험에서 불타버리는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집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기쁨과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이 비결이 무엇인가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과 같이 너희들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십자가상에서도 기쁨이 충만하고 감사가 충만해서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이런 한없는 기쁨 세상이 빼앗지 못하는 그 기쁨, 심판에서도 세상을 떠날 때에도 세상 물끌듯 요동하는 때에도 변하지 않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으로 충만케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이 생명 안 하나님의 사랑 안 완전 영원 무궁 안에 살게 되는 그 유일한 법칙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계명을 지키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역사에 보면 사상 혁명이 될 때에 정권 교체가 될 때에 모든 세계의 풍조가 요동될 때에 그 때에 일어나는 모든 관경들을 보면은 별별일들이 많이 있어 그 고문과 고형과 그 고역과 인간 건설이 다 깨어져서 없어지는 광야와 같은 순전히 하나님의 자연만 남아 있는 그런 때를 당하면 요동치 않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왜정 말년에도 일본 사람들이 그 고문한 것, 소련에서도 그 혁명 될 때에 참사된 것, 인민주의와 공산주의 정권으로 사상으로 정권 교체 될 때에 일어난 모든 고문 고생, 그런 것이 조금도 침노하지 못한 그 인격 그 의지 그 사상 그 담력 그 책망 이것은 예수 안에만 있는 것입니다. 이 예수 안에 있으려는데는 그 계명을 지키는 방법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계명이라는 간추려 강령으로 만들어 놓은 것은 십계명이요 또 신.구약 66권 도리는 십계명을 해설해서 놓은 것이 66권 성경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계명을 지킬 이유가 무엇이냐? 주님의 사랑 안에 있는 방편이기 때문에 사랑 안에 있기 위해서 이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또 요한복음 14장 15절에 보면은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면 내 계명을 지키리라” 말씀했습니다. 우리를 피흘려 구속하신 하나님이 천한 나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날 구원하기 위해서 희생하시고 또 나로 하여금 당신처럼 존영케 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내어놓으신 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기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 있기 위해서 그 좋은 것을 얻기 위해서 그 계명을 지킬뿐만 아니라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 이 주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입으로 아무리 그 분을 사랑한다고 마음으로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그것은 잘못 되기 쉽습니다. 괴로워도 외로워도 바빠도 주의 계명을 하나하나 자기 현실에서 또박 또박 지키는 이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은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또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보면은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내 율례와 법도를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도 그를 사랑할 것이요” 했습니다. 나도 그를 사랑한 것이요 했습니다. 또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니 나와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을 사랑하므로 주의 율례와 법도,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주님을 사랑하는 자니 이 자를 주님도 사랑하시겠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도 그를 사랑하시겠다고 계약하셨습니다. 또 이뿐만 아니라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을 통하여 주님은 능력을 나타냅니다. 주님의 능력을 그 사람을 통하여 나타내고 주님의 전지를 그 사람을 통해서 나타내고 주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그 사람을 통해서 나타내고 주님이 주홍같고 진홍같은 이 죄인을 구원하시는 이 구원 역사를 그 사람을 통해서 나타내고 그 사람을 통하여 모든 의를 나타내 주님이 세상에서 어떠하심 같이 그를 통하여 그 사람도 그러하게 하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계명을 지킬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요한복음 14장 23절에 보면은 “주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가 주를 사랑하는 것이요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니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가 이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 오셔 가지고 거처를 같이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 주를 사랑함으로 계명을 지키는 그 사람이 계명을 지키는 일을 버리게 되면 삼위 일체 하나님이 오셔서 거처를 같이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전능자가 같이 계십니다. 전지자가 같이 계십니다. 어두움이 가까이 올 수 없는 빛이 같이 계십니다. 모든 것을 주권하시는 삼위일체가 같이 계십니다. 지극히 작은 것까지 섭리하시는 삼위 일체의 하나님이 같이 계십니다.
생명의 하나님, 모든 것을 가지신 대 주재의 하나님이 거처를 같이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동거 동행입니다.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거처를 같이 하겠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현실을 당하든지 생명의 양식인 내 지식이 나에게 알려 주는 주의 율례와 법도 그 계명을 떠나지 않고 내가 있을 때에는 하나님이 나를 떠나지 않습니다. 전능이 나를 떠나지 않습니다. 전지가 나를 떠나지 않습니다.
생명의 하나님이 나를 떠나지 않습니다. 개별 섭리를 주권하시는 하나님께서 떠나지 않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를 해할 피조물은 하나도 없습니다. 얼핏 보면 해하는 것 같으나 그를 영원한 그의 찬양을 만들어 줍니다. 해하는 것 같으나 그를 칭찬과 영광으로 영원히 관씌우기 위한 그 모든 영광을 말하는 것이지 절대로 해는 없습니다.
요한복음 12장 50절에 보면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계명은 영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계명 그 자체가 영생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 그 생애는 영원합니다. 그 능력은 영원하고 그 기능은 영원하고 그 생애는 영원히 쇠해지지 않습니다. 영원합니다.
이런고로 주님은 계명관이 이랬기 때문에 계명을 떠나지 아니하고 계명과 함께했으므로 그는 사망을 완전히 이겼습니다. 십자가의 고문과 고형이 와도 그는 계명을 떠나지 아니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된 원수를 깨뜨려서 화친을 이루었고 사망과 저주를 완전히 깨뜨려 영생으로 정복했습니다.
마귀를 완전히 꺾어서 발아래 밟아 영원한 수종자의 종을 삼았습니다. 이것은 달리 아버지를 사랑함으로 그의 계명 지키는 방편 외에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그의 전 정신도 육체도 정서도 이 계명을 지키는 것이 되었을 때 아버지 우편에 앉게 된 것입니다.
요한복을 6장 68절에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하늘의 음성을 말할 때에 모든 허영과 허욕을 가지고 땅에 있는 모든 외모의 것들을 바라보면서 주를 따르는 자들이 다 돌아 왔습니다. 다시 세상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때에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들도 갈려면 가라 너희들도 가겠느냐’ 할 때에 베드로가 성령의 감동으로 깨달아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영생의 계명이 주께 있사오니 영생의 율례와 법도가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하고 가더라니 이것이 성령이 대답 한 것입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 이하에 보면 “너희가 내 계명을 지키고 내 율례를 행하면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고 내 계명이 무엇인가 현실에서 찾으려고 애를 써 주의 율례와 법도를 지키면 내가 애굽에게 내린 그 재앙을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오는 모든 불행이라는 모든 손해라는 모든 침해라는 신체적으로 생명적으로 명예적으로 권위적으로 심리적으로 경제적으로 쾌락적으로 어떤 것이든지 너희에게 좋은 것을 해치는 하나도 이르지 못하게 하겠고 너희에게 해로운 것은 호리의 것도 내가 너희들에게 보내지 않겠다 약속 하셨습니다.
이 계명을 지키는 이 계명을 떠나지 아니하고 지킬 때에 하나님이 인생에게 해로운 것은 하나도 이르지 않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것을 경제에 대한 모든 방어를 지위 권세 명예 건강 평강 쾌락을 모든 해치는 것들을 방어하는 방어로 요렇게 믿고 계명을 지키는 것을 주님이 원하십니다.
내게 오는 모든 해, 인간이라서 내가 내 권세를 빼앗으려고 한쪽머리 침노하고 한쪽머리 그들과 더불어 어떤 아름다운 그런 능란한 그 침노를 가지라 하나님의 계명은 이렇게 하라는데 하필 계명은 주일을 지키라했는데 내게 모든 어려운 난제가 해결은 누구누구가 오늘 만나가지고 해결해 줄려고 했는데 그 날이 꼭 주일입니다. 이러니 하나님의 계명 지키면 나를 침노하는 사람들을 그를 반대해서 나를 옹호하는 사람들까지 나를 대립해서 한 덩어리가 되어, 하나님의 계명은 하필 그 사건이 주일날 딱 닥치도록 해서 계명과 상충됩니다.
그럴 때에 애굽에 내리는 모든 질병이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하는 요 주권자 개별 섭리자 공간계를 주권하고, 인간의 심리계를 주권하고, 인간의 활동계를 주권하고 인간의 생사를 홀로 주권하는 이분이 주님이시라 하실 때에 이것을 바라보면서 모든 것을 물리치고 주일을 마음 놓고 담대히 지키는 그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자에게 하나님은 ‘이제가 네가 나를 믿는 것을 아노라, 나를 바라보고 이런 모든 것들을 물리쳤으니 내가 너를 책임지노라 내가 너의 상급과 방패가 되겠노라’ 하는 것이 모든 의인들이 쌓아 나온 걸음입니다.
또 그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스라엘을 치료하시는 여호와임을 보여 주겠다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계명을 지킬 때에 우리에게 이미 와 있는 재앙, 이미 와 있는 모든 해독, 우리에게 있는 모든 불행, 모든 멸망의 것들 이것을 우리가 주님이 내가 계명과 법도를 지키는 그 계명에 귀를 기울이고 그 법도를 지키면 이것들을 치료해 주시는 계약자라는 것을 믿고 엉뚱스런 일을 했지만 그런 것을 인간적으로 인위적으로 인간적으로 해결할 길을 두고서 하나님의 법도 지키는 데만 집중하니 여기에서 전공을 하니 사람 보기에는 미련하기 짝이 없지만 이는 내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그에게 함께하시고 책임지시고 치료합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계명지키는 자에게 대한 치료자이십니다.
또 출애굽기 20장 6절에 보면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나하나뿐만 아니라 내게 따른 모든 자손들이 있습니다. 믿음의 자손도 있고 혈육의 자손도 있으니 나 하나만 되도 그것도 문제입니다. 자기 다음가는 문제입니다. 이런데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주시겠다고 계약했습니다.
이 계명은 내게만 대해서 모든 영면과 육면이 좋은 것이 아니라 내 신앙의 후배 혈육의 후손에게 이렇게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겠다고 계약했으니까 우리가 이 계명을 지키는 데에는 아무런 염려가 없습니다. 난제 될 것이 없고, 염려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염려 주께 맡기고 우리는 이 계명을 지키기를 확실히 작정하고 발송 해야 될 것입니다.
살림이 절단 나도 권세나 지위가 절단 나도 내가 오랫동안 공작해서 건설해 놓은 것이 바싹 깨진다고 할지라도 계명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내가 취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지 전능자 대 주재를 내 하나님으로 삼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일생동안 만들어 놓은 것이 깨어진다고 할지라도 손해가 아닙니다. 왜 없는 가운데서 있게 하신 이가 깨어진 것을 재건하십니다.
이런고로 믿는 사람의 지혜는 계명 지키는 것이요 능력은 계명 지키는 것이요 승리와 부강은 계명 지키는 것입니다. 나 하나만이라도 계명 지키는데 전심전력을 기울여 어떤 환경 추위가 몰아쳐도 계명지키는데 요동치 않는 그 사람은 모든 피조물은 그의 발등상이 되는 것이고 창조주는 그의 머리와 그의 전부가 되어지는 이것이 신구약 성경 계약입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가 헛된 인본을 버립시다. 자기를 망치는 자율이나 그 모든 사욕을 버립시다. 하나님이 주시는 담대함을 가지고 이 법칙을 반드시 지킬 것입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땅 위에 어떤 세력도 큰 것도 어떤 부요한 것도 여기에 비교 할 수가 없는 것들 입니다. 다 그 솜씨가 그것들을 만든 것들입니다. 그것의 주인공은 주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