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7 22:44
다섯가지 겸한 믿음
1987. 3. 8. 주일새벽
본문:마가복음 10장 52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오늘로서 이 공과를 마지막 가르치는 날인데, 자기가 맡아 있는 그 학생에게 이 바디매오를 통해서 우리에게 곧 학생들에게 주님이 주시는 그 은혜를 그들이 다 받아서 이 눈 뜬 바디매오와 같은 이런 사람이 되어지도록 하는 그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바디매오와 같은 사람을 만든다면 그 사람은 영원히 예수님 한 분만을 따르는 사람이 되겠고 못 만든다면 세상에 이걸 해야 산다 저거 해야 된다 하는 구주가 뭐 백도 천도 넘은데 제각각 이것 따르고 저것 따라서 다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금생과 내세에 사람을 구원하는 이 구주는 하나뿐인 것을 성경이 말씀했고 또 믿는 사람들은 이렇게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구주는, 우리를 구원할 이는 예수님 한 분뿐인 것을 믿는 사람들은 다 성공을 하고 이 외에 무슨 세상 과학을 알아야 된다, 또 세상에 이런 저런 지식들을 구비해야 된다, 뭐 이런 연습 저런 연습 육체의 연습, 요새는 육체의 연습들이 많이 있어서 이런 참피온 저런 참피온 하나만 따면, 금메달 하나만 따면 돈이 얼마 되니까 살 수 있다.
사람들이 자기의 행복의 길이 이것 저것이라고 그렇게 행복의 길을 여러 수천 수만이라고 할 만치 그렇게 행복의 길이 많습니다. ‘나는 또 누구를 사귀어야, 무엇이 어찌 돼야, 또 무슨 기술을 배워야, 뭘 어떻게 해야, 나는 이 직장에서 한 다리 두 다리 밟아 올라가야,’ 그렇게 자기의 행복의 구주, 자기를 행복되게 해 줄 것이 너무도 종류가 많습니다.
이래 놓으니까 사람들이 행복의 길이 천 가지인 줄 아는 사람이 모이면 천 가지 종류의 길을 걷고 만 가지 종류인 줄 아는 사람이 모이면 만 가지 종류의 길을 걷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은 하나가 되지 못하고 이래 가지고 다 멸망을 하고 있읍니다.
이것이 예수님 구름타고 오시면 싹 불태워 버립니다. 싹 불태워 버리고 무궁세계에는 모든 소망관도 지식도 비판도 전부 하나만 가지고 영원히 삽니다.
하나뿐입니다. 그때는 없는 가운데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기르시는 하나님께서 당신과 맞은 것은 보존해서 영원히 행복되게 두고 당신과 틀린 것은 다 전멸을 시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보면은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모든 지식이, 모든 지식이라 하면은 뭐 세상 지식 전부입니다. 이 지식 그런 것이 다 하나도 없이 다 폐해진다 이랬읍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세세토록 영원 무궁토록 있다고 했읍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는 믿음을 분류하면은 많지마는 우리가 이 학생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으로서는 믿음에 다섯 가지를 겸한 믿음을 말했읍니다.
이 믿음은 다섯 가지가 겸하여 있는 믿음, 다섯 가지. 요 다섯 가지가 뭉쳐 있는 믿음. 다섯 가지가 구비되어 있는 믿음 이 믿음이면 그만 환하게 모든 것을 바로 보게 됩니다.
바디매오는 눈이 떠봐도 이 육신의 눈이 뜨였기 때문에 육신의 눈으로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됐지마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는 이 믿음이 우리에게 있을 때에는 우리는 모든 존재를 바로 보게 됩니다, 모든 존재를.
모든 존재를 바로 본다 말은 첫째는 창조주를 바로 보고, 또 모든 피조물을 바로 보고, 또 하나님의 심판을 바로 보고, 또 금생이 뭐 하기 위해서 있는 세상인 것을 바로 보고, 또 영원 무궁한 지옥을 바로 보고, 영원 무궁한 천국을 바로 보고, 인생의 죽음에 대해서도 바로 보고,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바로 보고 모든 것을 바로 본다고 하면 그 사람은 영원한 행복된 그 길을 자기가 취하지 그 길 두고서 엉뚱한 딴 길 취하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첫째 가르치는 반사들이 ‘아, 참 이거 사람들이 다 바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망한다. 모든 면을 바로 본다면 행복되지 못할 사람이 하나도 없다. 모든 걸 바로 보지 못하고 다 마귀에게 속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헛일이다.’ 하는 그것을 느껴야 될 것입니다.
이 다섯 가지 믿음이 뭣뭣이 겸한 믿음이냐 하면은 제일 처음에는 자기는 참 불행스러운 사람이라 비참한 사람이라 하는 자기의 정체와 정상을 바로 본 사람입니다. 정체와 정상을 바로 본 사람이오.
홍포 입은 부자가 그 사람이 자기가 불쌍하고 가련하다는 것, 홍포 입은 부자라 말은 거게 홍포는 뭘 가리켰느냐 하면은 이 세상에 제일, 왕이 홍포를 입습니다.
예수님을 홍포를 입힌 것은 그 조롱하는 것이오. 왕은 홍포 입는다는 것이요.
이러니까 홍포라면은 아주 왕이 입는 왕복입니다.
이런데 그렇게 모든 것이 겸하고 권세, 지위, 재물, 뭐 자기 또 모든 가족들, 모든 복을 다 갖춘 사람이라. 그래 놓으니까 자기만치 행복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서 날마다 호화롭게 잔치했어. 호화롭게 잔치하는 것은 잔치하면은 많은 사람을 청해 놓고 자기를 지금 송축하고 자기에게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이 잔치입니다.
그러니까 환갑 잔치하면 환갑 잔치는 그날 모이는 사람들이 뭐 술 고기 얻어먹고 그 사람 막 이래 추켜 올리고, 혼인 잔치하면 그 사람 추켜 올려. 생일 잔치 할 때 또 생일 잔치는 그 사람 추켜 올리고, 잔치라 하는 건 그런 것이오. 왕이 잔치를 했으면 또 왕을 이래 막 이래 높여서 이렇게 하는 것이오.
그런데, 그렇게 행복된 줄 알았지마는 그분이 자기가 불행하다는 그것을 봤더라면 그럴 터인데 자기가 잘못 봐서 어리석게 그 행복이 불행이라는 것을 보지 못하고 행복인 줄만 봤는데 자기의 불행하다는 것을 언제 봤읍니까? 홍포 입은 부자는 불행이라는 것을 언제 봤읍니까? 한번 대답해 봐. 언제 봤지? 죽고 난 다음에 봤다 그거요. 죽고 난 다음에 음부에 가 가지고 그때사 봤어.
그때 가 보니까 이제 홍포 입은 부자의 모든 생각이 달라집니까 같습니까? 영 확 달라져 버렸어. 그래 가지고 저거 형제 다섯이 있으니까 이곳에 오지 않도록 좀 전달해 달라고 그렇게 말을 했어.
이러니까, 사람이 자기의 그 비참한 것을, 비참하고 불행하다는 것을 그것을 보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자기의 비참하고 가련한 불행한 그것을 보는 믿음이라, 그것을 보는 믿음.
믿음이라는 거 뭐이요? 믿음이라는 거는 뭐이 믿음입니까? 믿음이라는 것은 이거 학생들에게 이거 가르쳐야 몰라. 여러분들이 선생이 알고 가르치면 된다 그거요.
알고 가르치면 그들 속에 들어가요. 모르고 가르치면 헛일이라. 설교하는 걸 들어 보면은 저 뭐인지도 모르고 앵무새 모양으로 전달하는 자만 있어, 제가 알지 못하고.
비참한 것을 그 뭘로 보느냐? 이 세상 마귀의 지식으로 보면은 홍포 입은 그 부자의 비참한 것이 홍포 입은 부자가 비참한 게 아니고 행복된 사람라. 제가 가장 행복된 사람이었었어. 홍포 입은 부자가 자기가 행복되다는 것을 본 것은 이 세상 지식대로 봤고, 믿음의 지식으로 봐서 비참한 것을 아는 것은 무슨 지식으로 봐서 비참한 것을 아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성경 지식으로 봐서 비참한 것을 아는 것이라 그거요.
이래서, 하나님께서 없는 가운데서 모든 걸 창조하셨지 관리하시지 앞으로 하나님이 당신 뜻대로 모든 것을 다 결정을 지우고 정리를 하고 그대로 결론을 딱 맺을 거라 말이오. 당신의 뜻대로 다 결론을 맺을 터이니까 하나님의 뜻에 위반된 그런 거는 암만 돼 봤자 다 멸해질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딱 돼야 될 거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믿음의 눈으로 자기의 불행한 것을 봐야 된다 하는 그말이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이 선포해 놓으신 이 지식, 하나님의 지식, 하나님의 계약, 하나님의 계약대로 모든 것을 논평하고 하나님의 지식대로 논평하고 보니까 자기가 불행하다 하는 이걸 알아야 돼요.
하나님의 지식 외에는 전부 속이는 거짓말이요 참말은 하나님 말씀 하나뿐입니다.
땅위에는 전부 거짓말쟁이가 한 것이요 거짓말쟁이 애비가 말해 놨기 때문에 이 세상 지식은 전부 거짓말쟁이 만들고 거짓말쟁이 애비 만드는 거라 말이오. 자기 새끼는 전부 거짓말로 가지고 다 거짓말쟁이 만드니까 망하지 않습니까? 왜? 이 세상에 있는 학문과 과학과 지식 이런 것이 행복되다고 자꾸 이래 가지고 그것만 가르쳐, ‘네가 새벽기도 못 나와도 공부해야 된다. 네가 주일을 범해도 공부해야 된다. 네가 믿음을 떠나서 믿음을 팔아먹어도 네가 서울대학 가야 된다!’ 서울대학이면 제일인 줄 알았다 그말이오.
그것이 다 행복되다고 그렇게 가르쳐 놨는데 행복되다고 이거 하면 행복되다, 이거 하면 행복되다 했는데 그것이 행복되지 안하고 자기를 다 아무 소용 없고 자기 망치는 것이 됐다면은 그거 뭐입니까? 그 말이 무슨 말이요? 자기를 행복되다고 했는데 과연 행복되니까 행복되다고 다 했는데 나중에 결과를 보니까 그것이 불행이 됐다고 하면은 그 말하는 사람은 자기를 속인 사람입니까 안 속인 사람입니까? 그거 거짓말쟁이요 거짓말쟁이 아닙니까? 거짓말쟁이.
그러기 때문에 땅위에 있는 지식은 전부 거짓말 지식입니다. 알겠읍니까? 이러니까, 세상 그 거짓말 지식대로 봐서 행복된 거는 다 소용이 없어. 거짓말 듣고 거짓부리로 행복됐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망하고 마는 거라. 이러니까 믿음으로 보는 불행을 알아야 돼요.
믿음으로 보는 불행을 알아야 된다 하는 말이 무슨 말이요?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성경 지식으로 볼 때에 불행한 그것을 아는 사람이 바로 아는 사람이오. 또 성경 지식대로 이거는 성경 지식이 행복되다 하는, 성경 지식대로의 행복을 가져야 행복된 사람이고 성경 지식대로의 불행을 가진 사람은 불행인데 이 세상은 성경 지식대로의 불행은 행복이다. 성경 지식대로의 불행은 행복이다.
행복은 불행이다 이렇게 말해.
세상 지식에 행복되다 하거들랑은 그만 불행인 줄 알아요. 세상 지식이 불행하다 하거든 행복된 줄 알아요. 왜? 세상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하고 정반대가 돼 가지고 있어. “세상 지혜가 자기 지혜로 인해서 하나님의 지혜를 다 업신여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세상 지혜를 다 폐했다” 이랬읍니다.
이러니까, 결국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요대로 됩니다. 결국은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창조하신 이 조물주 이분의 뜻대로 이분의 법칙대로 결국은 되고야 맙니다.
뭐 이 세상이 아무리 이거 모두 말하기를 천추만대라 뭐 영원히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마는 오늘 주님이 오시면 불탈란지 내일 오시면 불탈란지 결국은 주님이 말씀하신 요 말씀대로요. 신구약 성경에 말씀하신 요대로는 획 하나도 가감이 없이 요대로 다 된다 했는데 이 말씀을 모르고 이 말씀에 정반대 되는 걸 이렇다 이렇다 말하면 그거 전부 거짓말 아닙니까? 이러니까 우리가 ‘신구약 성경 말씀만 바로 가르치는 참말이고 다른 건 다 거짓말이니까 신구약 성경 말씀으로 보자. 신구약 성경 말씀으로 보면 내가 불행스러운 사람이냐 행복스러운 사람이냐?’ 이것을 자기가 알아야 될 거라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대로 성경 지식으로 볼 때에 불행스러운 것이 불행스러운 것입니까 세상 지식대로 봐서 불행스러운 것이 불행스러운 것입니까? 거지 나사로는 세상 지식대로 보면 그 사람 불행스러운 사람이요 행복된 사람이요? 불행스러운 사람 아니요? 그러나 성경 지식대로 보면은 홍포 입은 부자보다도 나사로와 두 사람을 볼 때에 누가 행복된 사람입니까? 나사로가 행복된 사람이라 그말이오.
그러면 나사로가 행복되다는 그 지식과 홍포 입은 부자가 행복되다 그 지식과 두 가지 지식이 세상에 있는데 어느 지식이 마지막에 그대로 이루어졌읍니까? 하나님의 지식대로 이루어졌다 그거요.
이러니까, 이거 뭐 간단히 해 그렇지,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기도해 가지고 성령이 가르쳐야 되지 성령이 안 가르치면 알릴 도리가 없다 그말이오. 자기가 기도 많이 하고 성령이 가르쳐야 되지.
이러니까 제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는 그 믿음 가운데 첫째 믿음이 뭐이냐 하면 자기는 이 불행스럽다, 자기는 보지 못함으로 불행하다 하는 요것을 아는 믿음이라 말이오. 보지 못함으로 불행하다 하는 것을 아는 믿음이라, 보지 못함으로 불행이라는 걸 아는 믿음.
보지 못함으로 뭐? 그라면 뭐 과학적으로 보지 못하는 걸 말합니까, 이 세상 대학자들이 꽉 찼고 서울대학 뭐 미국에 포드 대학이니 뭐 저, 뭐라 하더라? 뭐? 하버드 대학이니 뭐 또 어데 옥스포드 대학이니 뭐이나 하는데 그 지식대로 보지 못하는 그걸 말합니까 성경 지식대로 보지 못하는 걸 말합니까? 성경 지식대로.
이 성경 지식대로 될 터이니까 성경 지식 외에 거는 다 거짓말이라. 소용 없어.
다 그대로가 아니라. 그대로 되는 것 같은데 인간은, 이 세상살이는 한 시간 같이 짜빡 지나가고 영원 무궁이 있어. 그러기 때문에 요 한토막 세상 시간 요것만 봤지 영원 무궁세계를 보지 안했어. 그러기에 성경은 이 금생과 영원 무궁세계를 다 보고 바로 가르친 것이 성경이라 그말이오.
성경 지식대로 비판하고 평가할 때에 성경 지식대로 말하면 불행스러운 그것, 성경의 지식이 말하는 그대로의 불행한 그 불행을 보는 사람이 돼야 돼.
자기가 이 성경에 있는 이 지식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가 불행스럽다는 것.
성경에 복이라 하는 것은 이 세상 마귀란 놈이 화라, 또 성경에 영생한다는 것은 이 세상은 죽는다, 또 성경에 이거는 죽는다 하는 것은 이거는 사는 것이라, 이라니까, 본디오 빌라도와 예수님과 같이 있을 때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이 영생하는 것으로 예수님은 봤고 본디오 빌라도는 ‘너 지금 그라면 가이사에 충성이 아니기 때문에 나중에 가서 모가지 달아난다’ 하니까 그게 죽는 줄 알았기 때문에 그거 취했다 말이오.
거게서도 빌라도가 죽고 사는 걸 보는 것과 예수님이 생사를 보는 것이 달랐읍니까 같앴읍니까? 같앴어 달랐어? 정반대 됐어, 정반대. 누가 바로 봤어? 예수님이 바로 보고 본디오 빌라도는 그거 그만 영원히 멸망하는 그 길을 택했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는 요 믿음은 무슨 믿음이냐 하면 이 성경 지식대로 될 터이니까, 성경 지식대로 될 터이니, 성경 지식대로 될 터이니까 성경 지식대로 판단한다고 하면은 자기가 모든 게 불행하다. 그러면 성경대로 모든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불행이라는 요걸 알아야 됩니다. 성경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불행이라.
이거 뭐 이 말을 아는지. 이해가 됩니까? 성경대로 보지 못한 요것 때문에 자기는 성경대로의 행복을 갖추지 못했다. 성경대로의 불행을 보지 못하고 성경대로의 행복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성경대로의 행복을 준비하지 못했다. 요거 이해 됩니까? ○○○장로님 이해 돼요? 이해가 됩니까? 꼭 이해가 됩니까? 성경대로의 불행을 저는 행복이라고 가지고 있어. 성경대로의 성경이 말하는 불행은 불행으로 알고 성경이 말하는 행복은 행복으로 알아야 될 터인데 성경대로의 지식을 가지지 안하고 마귀들의 지식을 가지고 이와같이 모든 생사 화복, 흥망 성쇠를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이 꺼꾸로 잡았고 헛되이 잡았고 다 실패했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하는 그 믿음은 무슨 믿음이냐? 제일 중요한 것이 성경대로의 자기가 불행을 가졌다 하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 성경대로의 불행. 성경대로의 불행이 불행이지 마귀 지식대로의 불행 그까짓 거 상관 없어. 그대로 돼져야지? 마귀 지식대로는 돼지지 안하거든. 하나님께서 당신이 당신 지식대로 만들 것이기 때문에 이 세상 지식대로 하는 그까짓 거는 다 헛말이라. 소용 없어.
성경 지식대로 다 만들 터이고 결국은 그대로 될 터이니까 성경 지식대로의 불행을 자기가 가졌다는 것을 아는 것이 제일 문제인데 첫째, 요것을 성경 지식대로의 불행을 가진 것을 아는 믿음.
또 둘째로는, 성경 지식대로의 알지 못해서 보지 못해서 불행한 이 불행을 해결해 줄 이는 예수님뿐이라는 거. 예수님뿐이라는 요 믿음. 예수님뿐이라는 믿음.
예수님뿐이니까, 예수님뿐이니까 성경대로의 불행과 행복을 자세히 바로 볼라고 하면은, 바로 볼라고 하면 예수님밖에는 바로 보여 줄 이가 없는데 예수님밖에 바로 보여 줄 이가 없으니까 예수님이 보여 주는 것은 어떤 것이 예수님이 보여 주시는 것입니까, 저 ○선생? 예수님이 보여 주는 건 어떤 게 보여 주는 보여 주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보여 주는 건 어떤 게 예수님이 보여 주는가? 예수님이 어떻게 보여 줘? 예수님이 보여 주는 건 어떤 게 예수님이 보여 주는 것인가? 성경이 보여 주는 것이 예수님이 보여 주는 것이오. 알겠소? 영감이 보여 주는 것이 예수님이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감과 진리가 보여 주는 요것이 예수님이 가르쳐 주는 것이라고 요것이 이해가 됩니까? 예수님만이 요 눈을 띄워 줄 수 있다. 예수님이 눈 띄워 준 거는 뭐입니까? 예수님이 눈 띄워 준 거는 뭐이요? 성경이 예수님이 가르쳐 주는 것이요 영감이 예수님이 가르쳐 주는 거라. 그러면 영감과 진리, 피와 성령과 진리는 하나라 했어.
이러니까 예수님밖에는 나에게 모든 금생 내세, 창조주 피조물, 모든 영계 물질계 모든 것을 바로 보여 주시는, 바로 보여 주시고 바로 가르쳐 주실 이는 예수님뿐이다. 예수님뿐이다. 성경과 영감뿐이다. 성경과 영감뿐이다.
예수님이 지금 뭘로 역사해요? 지금 예수님이 뭘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요? 지금 내가 아침에 말하는 것은 누가 말하고 있어요? 백 목사가 껍데기는 말하고 있는데 속에 알맹이는 누가 말하고 있어요? 누가 말하고 있어요, 알맹이는? 영감, 성신의 감화. 영감이 뭐입니까? 그리스도의 영감이라. 예수님의 영감이라. 영감과 진리가 가르치고 있어. 진리는 뭐인데? 진리는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라. 영감은 예수님의 영이 성령이라. 영감이라. 이렇게 예수님밖에는 가르쳐 줄 이가 없다. 요 두 가지 있는 믿음.
또 셋째는 뭐이요? 셋째는 요렇게 예수님에게 배워서 바로 알라고 애를 쓰니까 뭐입니까? 셋째 뭐이요? 방해물들이 많았어. 막 잠잠하라 야단을 쳐서 방해들이 있었어. 요렇게, ‘우리가 모든 것을 성경대로의 지식을 가져야 되고 그대로의 모든 것을 비판하고 평가해야 된다. 이러니까 요렇게 해 주는 데는 예수님밖에는 없다.’ 해서 예수님에게 달라붙으니까 ‘새벽기도 가지 마라. 이놈아 예배당에 가면은 공부 못 한다. 가지 말아라.’ 이래 가지고 방해하는 것들이 그거 뭐이냐 하면은 다 예수님 만나서 해결할라 하니까 못 하구로 방해하는 것이라 말이오.
이해가 됩니까? 이해가 돼져요? 이 반사들, 이해가 돼지느냐 말이요? 방해하는 거. 그걸 가르치기 위해서 그걸 해 놨어. 방해하는 데 요 세 가지가 있는 믿음이라야 돼.
또 넷째로는 뭐입니까? 넷째로는, 이제 예수님이 오라 한다 이라니까 그만 겉옷을 내던지고 뛰어서 일어나 가지고 예수님께로 달려갑니다. 요 믿음 있어야 돼.
예수님에게, 모든 것을 진상을 바로 보게 해 주실 이는 예수님밖에 없는데 예수님이 오라고 하는 이 소리 듣고서 예수님에게 달려가는 데에는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버리고 미친듯이 달려가야 돼. 있는 힘을 다 기울여 가지고, 일어서 가지고, 척 일어서 가지고 가는 게 아니고, 모든 거 다 침 챙겨 가지고 가는 게 아니고, 짐을 챙겨 가지고 가는 것과, 또 일어서 가지고 가는 것과, 훌떡 뛰기부터, 이 똑 구불텅이 해 가지고 굼벵이가 쑥 뛰니까 훌떡 막 미친듯이 훌떡 뛰더니마는, 훌떡 뛰더니마는 일어서. 뛰더니마는 일어서. 일어서 가지고 뛰는 거와 뛰어 가지고 일어서는 거와 같애요? 그래 그게 있어야 돼. 모든 것 버리고 뛰어 일어서는 것이 있어야 돼. 고거 몇 가지 입니까? 몇 가지 믿음입니까? 네 가지 믿음이 있어야 돼.
또 마지막에, 예수님께서 ‘내가 너한테 뭐 해 줄까?’ 그러면 예수님이 이것 저것 소원하면은 예수님이 줄 수 있어요, 없어요? 예수 믿어서 오만 거 다 있어.
예수 믿으면 이것도 되고 저것도 다 소원 있지마는 모든 소원 다 버려 버리고 단일 소원을 가졌어. 단일 소원 무슨 소원이요? “보기를 원하나이다” 요 다섯 가지 요 믿음을 가져야 된다 그말이오. 알겠소? 요 믿음 다섯 가지 믿음.
예수 믿어도 이 다섯 가지 믿음을 가지지 안하기 때문에 항상 소경 놀음하고 있어. ‘나를 출세를 시켜 주십시오. 나를 뭘 주십시오. 뭐 잠을 주십시오. 재산을 주십시오. 뭐 주십시오.’ 이라고 이렇지 ‘이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이 사실을 보게 하는 이 진리의 눈을 띄우고 영감으로 눈을 띄워 주시옵소서. 이거 모든 진상을 바로 보게 해 주옵소서.’ 요것을 원하는 요 믿음이라야 눈이 떠지지 그리 안 하면 눈이 안 떨어져. 요 믿음을 가지고 눈 뜨고 난 다음에는 다 안 따라.
주님만 따랐어. 길에서 주님을 따랐다 했어.
주님 따르는 게 뭐요? 주님 좇는 게 뭐요? 주님 따르는 거라. 주님 따르는 게 뭐입니까? ○○○선생? 뭐라 해? 주님 좇는 게 뭐인데? 그래 주님 닮는 것, 주님 배우는 것, 주님과 같이 되는 것 이것이 주님 좇는 거라.
자, 이보다 더 큰 소원 있소? 사람이 죽고 난 다음에 이 생활 했으면은 후회 될까 안 될까? 이 길에서, 길이라 하는, 길 가는 건 내치 해석 많이 했지. 죽는 날까지 다 우리는 길 가는 나그네기 때문에 이 남은 여생 전부를 주님 좇는 것만 전공했는데, 주님 닮는 것만 전공했는데, 주님같이 되는 것만 전공했는데 그 생활 했으면은 뒤에 죽고 난 다음에, 죽을 때 가면 후회가 될까 안 될까? 후회 되겠소 안 되겠소? ○○○ 말해 봐. 후회 안 돼, 정말로 안 돼, 후회 안 돼. 무궁세계 가면 후회될까? 후회 안 돼. 이보다 더 행복된 길이 없어.
이러니까, 우리가 자꾸 새기고 새기고 해서, 이거 뭐, 이 세상에 둬도 다 두지 못하는 걸 간단하게 신구약 육십육 권을 해서 이래 놓으니까 이 한 성구에 해석할라 하면은 막 책을 만들라 하면 여러 수십 권 만들어도 남아. 이런데 이것을 성신의 감화가 아니면 안 된다 그말이오.
그런고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됐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셨다” 요 믿음 속에는 몇 가지가 들었어요? 손가락으로 가리켜. 요 믿음 속에는 몇 가지 들었어요? 다섯 가지 들었어, 다섯 가지. 요 믿음 속에는 다섯 가지 들었어. 다섯 가지 요 믿음이 있으면은 지금도 눈 떠. 이게 있는 사람은 눈 떠.
이러니까 자기가 다섯 가지를 자꾸 새기고 새겨 가지고 아, 요 다섯 가지를 다, 뭘 버려도? “겉옷을 버려” 자기 재산 다 버려도 사업을 다 버려도, 사업을 다 버리고 모든 걸 다 버리고 거지가 돼서 이와같이 뭐 거지가 돼도 요 믿음, 요 믿음 가지는 거. 요 믿음이 무슨 믿음인데? 다섯 가지 겸한 믿음이라, 다섯 가지 겸한 믿음.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요것을 반사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뭐 다 가르칠 수는 없어. 이러니까 오늘 결론적으로 요 다섯 가지 요걸 믿음만 말해 줘. 다섯 가지 믿음 요것만 그저 따라 외우라 하고 자꾸 저거 주입을 시켜, 따라 외우라 하고. 따라 외우라 하고 주입을 시키는데 시켜 놓으면 그 속에 중생됐기 때문에 성령이 뒤에 때를 따라서 감화시켜서 깨닫게 해 주시요. 이래 지금은 주입식으로 자꾸 교훈해. 주입식으로 교육시켜.
해석할라 하면은 안 됩니다. 해석하지 말고 그저 “네 믿음이” 했는데 이 믿음 속에는 다섯 가지가 든 믿음이다. 요 다섯 가지 든 믿음 요것을 간단하게 그들에게 자꾸 따라 읽으라 하고 외워라 해 가지고 속에 집어넣어 놓으면 그 속에 성령이 뒤에 와서 그 지식 가지고 요리를 만들어요. 그 지식 가지고 모든 것을 생활을 만들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