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7 22:34
다섯 가지 지도
1984. 12. 17. 월새벽
본문 : 마태복음 6장 19절∼23절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제가 하나 생각한 것은 가르치는 것이 너무 일반 교인들과 거리 먼것을 가르쳐서 늘 들어도 뭣이 뭣인지를 깨닫지를 못하고 참 수박 겉 핥기로 그러니까 믿음이 자라지 안하고 이렇지 않는가 그런 것을 제가 하 새로 한시, 될 때까지 그것을 늘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래서, '아무래도 이제는 좀 하나씩이라도 똑똑히 가르쳐서 실행을 하도록 해야 되겠다' 그것을 느꼈습니다.
야고보서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대해서 면경. 거울이라고 이렇게 말씀을 하셨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신앙과 인격과 모든 행위와 축복과 저주의 거울이라 말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아, 이 말씀 보니까 나는 내게 지금 하나님의 저주가 와 가지고 있구나.'아, 이 말씀 보니까 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축복을 받고 있구나' 이것을 성경 말씀을 보았으면 알 수 있는 건데, 성경 말씀을, 그러면, 거울을 들여다 보고 있을 때에는 자기 몸이 어떻게 되었는지 그것을 알 수 있지마는 그만 거울을 치워 버리면은 자기 얼굴이 어떤지 그것을 알지 못하는 거와 같이, 이 성경 말씀이 우리 거울이라 이 성경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 요구하시는 것이 뭣이며 진노하시는 것이 뭣이며, 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는지 노엽게 하고 있는지, 축복이 오는지 저주가 오는지 이것을 알 수 있지마는 거울을 치워 버리면 자기 얼굴이 어떻게 생겼든지 그것을 모르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그만 치워 버리면 그걸 모르게 되는데, 하나님 말씀을 거울을 들여다 보듯이 항상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은 이렇게 하는 것이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인고 하니 말씀을 듣고 고대로 자기가 믿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 마음으로 믿는 것이나 몸으로 행동하는 것이나 그 실행이라는 그것을 하면 그 사람은 거울을 항상 들여다 보고 있는 사람으로서 항상 자기를 알지마는서도 말씀을 아무리 들어서 자기가 외운다 할지라도 실행하는 일을 하지 안하면 자기를 볼 수 있는 거울을 들여다 보고 있는 사람이 아니고 거울을 고만 치운 사람이 돼서 자기를 모르게 된다 하는 그런 말씀이 야고보서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한 성경을 보면 거게 대해서 그저 많이 가르칠라고 이렇게 통털어서 이렇게 가르쳐 놓으니까 그저 '그런가' 이렇게 짐작만 하고 고만 잊어버리고, 또 자기가 외우기는 해도 그 속에 뜻은 뭐인지를 모르고 이래서, 이제는 내가 이 허욕을 가지지 말고 한 마디씩이라도 그저 알도록 이렇게 가르쳐서 그래야 뭣이 돼 나가지 이라면 자꾸 수박 겉 핥기로 헛일하고 말겠다 그런 생각을 가졌습니다. 앞으로는 혹 여러분들이 과거와 같이 이렇게 그만 마구 많이 듣고 많이 배우고 이라던 그 습성이 속에 있어서 이렇게 조그매씩 가르치고 조그매씩 이렇게 배워서 실행하는 고 일을 시킬라고 하면 아마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식물, 육체의 식물도 그저 들어가면은 십분지 일도 소화되지는 안하고 버물버물해서 그만 썩히기만 해서 그만 내 보내 버리고 양분을 취하지 안하고 이렇게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의 그 체격에는 그 식물의 십분지 일만 먹어도 정상으로 소화되면 넉넉히 될 수 있는데 그것이 다 소화되지 안하고 이렇게 그만 거튼거튼 버물어서 통과만 시켜 버리니까 정상의 양의 십 배를 먹어도 그저 유지할 만하고, 그러니까, 그 식물 속에 있는 구비한 요소는 먹지 못하니까 결국은 그 몸이 편식 모양으로 겉만 강해지고 튼튼해지지 속은 실로 허약한 사람이 되어지는 것처럼 그렇겠다 그런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는 사람은 실행하는 그 능력을 얻도록 그렇게 하시고, 조조하게 생각지 말고, 알지도 못하고 공연히 아는 양으로 그렇게 하지를 안해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너무 깊숙한 그런 가르침을 가진 데에서 내가 실패했다 하는 그런 걸 하나 가졌고, 너무 여러분들이 따라오지도 못하고 생각지도 못하는 걸 그런 걸 말하니까 그저 봉사가 짐작하듯이 으례 짐작만 하지 그 속에 뜻을 모른다는 거 그것이 내게 실패를 했고, 하나는 그러면서 그만 그것을 거튼거튼하게 너무 빨리 가르치기 때문에 다 헛일했다 하는 그거를 내가 깨달아서 얼마 동안 이렇게 해 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이제 봉독한 여게 대해서 내가 가르쳐야 되겠다 하는 그런 생각을 가졌습니다.
척 스미스 목사, 그 목사님 가르치는 거 보니까 거튼거튼 이렇게 가르치고 그 속에 깊은 그런 걸 가르치지 안해도 모두 막 부흥이 되고 이랬는데 이거 내가 가르친 거 너무 지나치게 가르쳤다 그런 생각이 제게 들었습니다. 그때 제가 여게서 교역자회 때에 그걸 듣고, 그래는 들었고 또 지난밤에 '보자 그거 한 번 더 들어 보자' 하고서 한 너덧 시간 한 것을 한번 들어 봤습니다.
이랬는데 이 하나님 말씀을 들어서 깨달아서 확실히 자기가 알게 되면 사람이 변해질 터인데 도무지 이거 변해지지 안하고 항상 봐야 자기네들대로 돼지고 뭐 말을 해도 그런 말을 잘 모릅니다. 어제 ○○○목사님이 와 가지고 한 것이 똑 제가 시켜서 제 소개한 거 같이 그렇게 말을 했는데 그런 말 들어도 여러분들에게는 그게 들려지지를 안합니다. 잘 들려지지 안하고 '저 뭐 백 목사 자꾸 무슨 자랑만 하고 저와 같이 지금 소개만 한다' 그렇게 여러분들이 들려지지 그 진상에 대해서는 하나도 들리지 안하니까 앞으로 일을 닥치면 뭐이 되느냐 그렇게 생각이 돼집니다.
왜정 말년의 신사 참배라는 그 어려움이라 하는 것은 하루 이틀 지나간 것이 아니고 육 년을 계속했습니다. 육 년을 밤낮으로 이렇게 늘 거게 대한 계속이 있었는데, 물론 신앙이라 하는 것은 위에 머리되는 사람이 언제든지 그 앞에 일선에 나서서 어려움을 당하지. 그 사람이 패전되기 전에는 그 밑의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닥쳐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일반 교인들에게는 그렇게 큰 마찰이 없지마는서도 교회를 인도하고 있는 책임자에게 대해서는 어려움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육 년 동안 온 전국이 다 그 앞에 다 굴하고 굴하지 않은 사람들은 몇 사람은, 그저 감옥에 가 있고 또 그렇지 않은 사람은 외국으로 다 망명해 버리고 그랬는데. 그때 거게서 그렇게 싸울라고 하면은 어땠던가 하는 그런 것을 한 번도 생각해 보는 것이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때에 어느 정도 어려웠으며 어느 정도 괴로웠겠는가, 그러면, 거게서 한 육 년이나 계속하는데도 그들의, 외국 사람들, 일본 사람들인데. 고렇게 학대한 아주 학정을 했는데 그런 학정 밑에서 어떻게 됐는가 그런 것도 한번 생각해 보지를 않습니다.
6·25때에 전쟁이 나 가지고서 모두 다 거석한 사람들은 전부 다 피난 다 내려왔습니다. 그들은 그때는 전시이기 때문에 뭐 하루 백 명 죽여도 아무 일은 없습니다. 살인이니 그런 거 없습니다. 그러니까 거게서도 오십 명씩 그저 오늘 오십 명 엮어 가지고 가 가지고 총살해 죽이고 또 며칠 후에는 뭐 칠십 명 죽이고 자꾸 이라는 그 자리에서 집회를 두 달 동안을 계속했다, 하루 세 번씩 계속했다. 거기서 그들이 와 가지고서 포위를 해 가지고서 나가지 못하게 그렇게 하는 그런 일 당해도 그 가운데에서도 신앙을 지켰고 한 번도 강단을 비운 일이 없었다 그진 걸 좀 실상을 생각해 보면 될 건데 생각해 보지를 않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네들 신앙이 지금 전부 헛되이 위로를 받고 있기 때문에. 참 한국 교회가 과거 왜정 말년에는 한번 세례를 받았고 그 후에 6·25로 한번 세례 받았지마는서도 6·25도 벌써 삼십여 년이 지나갔으니까 까마득하게 교인들이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안 잊어 버렸으면 지금 한 육십이나 육십 세 이상 되는 그런 사람들은 지금 그렇게 벌로 날뛰지를 못할 것입니다. 이러니까, 대개 보면 그런 사람들은 다 자중하고 있지마는서도 뭐 사십이니 지금 뭐 마흔 댓, 오십 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은 그때 아무것도 모르고 철없이 지내왔기 때문에 생전 한번 몽둥이로 맞아 보지도 못했고 어려움을 겪어 보지도 못하고 그 때에야 뭐 마귀 시키는 대로 세상 시키는 대로 그대로 끌려간 사람이니까 무슨 신앙에 대해서 마찰이 있었겠습니까? 이런 사람들이니까 이 세상은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면 한번 참 세례를 한번 베푸시는 일이 있을 것이고 이대로 있다가 지나가면은 이거 쭉뎅이 되지 않겠느냐 그질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런 꼴을 보지 안했기 때문에 제 생각대로 무책임한 말을 하고, 입술을 벌로 놀려서 입술 하나 벌로 놀린 그 값으로써 크게 당하는 그런 꼴도 당해 보지 안하고 죄 지은데 대해서 당해 보지도 안하고 이라니까 너무 무관심하다 그거요.
여기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이랬는데, 보물이라 말은 보배로운 물질이라 그 말입니다. 그러면, 보배로운 물질이 무엇이 보배로운 물질인가? 보배로운 물질은 우리의 마음과 몸과 자기가 가진 모든 재물과 모든 사건들이런 것이 다 물질입니다. 네 가지로 생각을 하십시오, 네 가지. 자기 마음. 몸. 또 재물, 자기가 이런 일 저런 일 하는 그 일 그것이 다 물질입니다.
왜 그게 물질인가? 거게서 몸은 물질이라고 하는 것까지는 이해가 될 것이고 위에 마음이 물질이라 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를 안하기 쉽겠습니다. 그러나 물질은, 마음은 신령한 물질이요 영은 아닙니다. 그거는 물질에 속한 것인데 마치 육신의 생명 그것은 물질입니다. 물질의 신비한 것으로서 되어 가지고 있는 것이 육체의 생명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생명은 세상을 떠날 때에 그 생명은 세상 밖에 나가지를 못합니다. 물질계 밖에는 나가지 못합니다. 이 물질계라는 이거, 우주는 물질계인데 물질계 밖에를 나가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죽기 전에 사람이 새생명을 얻어 가진 사람은 이 물질의 생명은 두고 가고 새생명으로 살아납니다. 새생명으로 살아 가지고 살다가, 새생명으로 살다가 또 물질의 생명으로 살다가 이렇게 시비를 해 나가다가 새생명으로 산 것이 장성한 사람들은 세상을 떠날 때에 새생명으로 세상을 떠나니까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가는 사람 처럼 이렇게 그 죽음이라는 것이 없이 그대로 통과해서 갑니다.
그러면 물질의 생명이 강하던 사람은 죽음이 강하게 되고, 물질의 생명이 벌써 시들어 죽어서 있느냐 없느냐 하는 그런 사람들은 세상을 떠날 때에 물질의 생명 그것의 죽음이라 하는 것이 아주 뭐 하나 주먹 한 대 맞는 것 만도 못한 그렇게 아주 빈약한 것이기 때문에 물질의 생명이 끝난데 대한 고통이라 하는 것은 전혀 없습니다.
짐승은 사람과 달라서 영이 없이 혼만 있는 것입니다. 그래 짐승은 죽을 때에 그 몸과 혼이 다 땅으로 내려가고, 아래로 내려가고, 사람들은 죽을 때에 몸은 땅으로 처지고 혼은 위로 올라간다 그렇게 성경에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짐승은 사람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짐승은 물질로 된 것이지 순전히 물질 외에 딴것은 섞여 있지를 않습니다. 하나님이 짐승을 지으실 때에는 물질인 흙으로 지어 가지고 흙으로 지은 그것이 배암이면 배암으로서 그 생명 가지고 일하고 또 살고 있고 마음도 그 마음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짐승들이 가진 마음이나 사람이 가진 마음이나 좀 고등, 고등 동물과 아주 저급의 동물과 그 차이 있는 것이지 다 동물성은 동물성입니다.
그런고로 사람의 영을 빼고 나면은 사람들은 이거는 고등 동물이라, 그러기 때문에 이방인들은. 그 사람들이 삼혼 칠백이라 이렇게 말을 내서 삼혼이라고 말하는 것은 영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영은 그들은 모릅니다. 영은 타락한 사람들은 모르고 성경에서 말하는 그 영인데. 그들이 삼혼이라고 말하는 것은 생혼을 말하고 각혼을 말하고 육혼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혈육의. 혈육을 가리켜서 말하고 생명을 가리켜서 말하고 깨닫는 그것을 말해서 삼혼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기에, 사람의 마음은 물질에 속했고, 영은 물질에 속한 것이 아니고 영은 영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사람은 다른 동물보다 달리 지은 것은 이것은 뭐이냐? 마치 개구리나 배암은 양서 동물로서, 물속에서도 살고 물 밖에서도 살 수 있는 걸 가리켜서 양서 동물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물에도 살고 육지에서도 살고 두 군데서 살 수 있다 하는 그와 같은 거와 같이, 사람이라는 것은 영이 있어 영계에서도 살고 물질계에서도 살 수 있는 것이 사람이 지은 특수 지음을 받은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의 이 마음이라 하는 것은 육에 속한 것이라 이것도 일반 교계에서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반 교계에서는 성경에 영이라고 가르쳤으니까 영을 말하기는 말하지마는서도 영이 뭐인지 모르니까 마음을 영이라고 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개 전 기독자들 가운데 말하면 아마 십분지 구라는 것보다도 오히려 그 이상의 프로 수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이래서, 마음이 영이라, 그 보다 좀 또 더 생각한 사람은 일반적 마음이 아니고 그 속에 양심이 영이라 영이 양심이라 이렇게 말하는데, 양심이든지 어떤 마음이든지 그 마음은 다 물질에 속한 신비한 물질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게 보물이라 하는 것은, 네가 보배로운 물질 그것은 하늘에 쌓아 두라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보배로운 물질을 하늘에 쌓아 두라 그 말은 네 마음을 하늘에 쌓아 둬라. 네 몸을 하늘에 쌓아 둬라, 네 물질을 하늘에 쌓아 둬라, 네 모든 일들을 하늘에 쌓아 둬라 하는 그런 말씀입니다.
그러면 마음을 어떻게 하늘에 쌓아 둘 수 있을까? 마음을 하늘나라에 우리가 보낼 수가 있을까? 보내지 못합니다. 보내지 못하는데. 마음을 사용하기를 마음 사용하기를 하늘나라에 있을 것을 위해서 사용하라 그 말입니다. 마음을 사용할 때에 땅에서 없어질 그런 것을 위해서만 사용하지 말고, 그것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은 암만 사용해 봤자 세상을 떠날 때에는 다 없어지는 것이니까, 네 마음은 하늘에 저축을 해라. 하늘에다 어떻게 저축할 수 있느냐? 하늘에 있을 것을 위해서 그 마음을 사용하면 하늘에 저축이 되고, 또 몸도 하늘에 있을 것을 위해서 사용하면은 그 몸이 하늘에 저축이 되고, 또 물질도 하늘에 있을 것을 위해서 사용하면은 그 물질이 하늘에 저축이 되고, 모든 일들도 하늘에 있을 것을 위해서 사용하면은 그것이 하늘에 저축이 됩니다.
그러면 하늘에 저축되면, 하늘에 저축된다 말은 하늘은 뭘 가리켜 말하는 것인고 하니 예수님이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통치하고 우리에게 주실 그 천국을 가리켜 말합니다. 천국, 그 천국에는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요 죽음이 없는 나라요, 끝이 없는 나라요, 또 곡하는 것과 슬픈 것과 병드는 것과 그런 것이 없는 장생 불사하는 우리가 장차 가서 살 그 하늘나라를 가리켜서 여게 하늘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이 나라에 가서 살, 이 나라에 가서 살 때에 그때에 내게 필요한 거, 그때에 내것으로 가질 거 이것을 위해서 사용하라 그 말입니다. 물질을,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물질, 돈을 하늘에 쌓아 두라 말은 네가 영원히 가서 살 하늘나라에, 그 나라에, 예를 들면은 그 나라의의 복을 네가 마련해라, 그 나라의 양식을 마련해라, 그 나라의 실력을 마련하라, 그 나라의 지위를 마련하라, 그 나라의 부요를 마련하라 그 나라의, 마치 우리가 이 세상에 있으면서 세상에 우리에게 필요한 거 이 세상에 있으면서 세상 안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한 가지 두 가지가 아니라 여러가지가 있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 우리의 필요한 것이 뭐 몸에 필요한 거.
자기 집에 필요한 거, 또 자기 생활에 필요한 거 일 하는데 필요한 거 이 필요한 것들이, 모두 필요한 것이 모아 가지고서 어떤 필요한 것을 만들고, 아주 필요한 거 중에도 하등이 있고 하등 중에도 중등이 있고 중등 위에 고등이 있는데, 하등은, 하등 필요한 것은 중등을 위해서 필요하고 중등 필요한 것은 상등을 위해서 필요하고 그 상등 필요한 것들은 제일 필요한 것들을 위해서 다 필요하고 그렇게 되지 않습니까? 이러니까, 예를 들면은 만일, 도시에서는 장사하는 사람이니까. 장사하는 사람이 자기에게 서로 거래하고 있는, 거래하고 있는 단골이 있을 것이고, 단골 속에는 자기의 상점이 있을 것이고, 또 상점 속에는 자기의 수입된 수입이 있을 것이고. 또 그 수입은 그것이 자기의 몸을 위할 것이고, 또 자기의 몸은 자기 마음을 위할 것이고 이렇게 첩첩이 돼 가지고 있는 것이 그것이 세상에 있는 필요한 것들인 것입니다. 이래서, 많이 필요한, 제일 필요한 것은 안에다가, 제일 귀한 자리 안에다가 잘 간직하고, 좀 덜 필요한 것은 그저 방 안에 그냥 간직하고 더 덜 필요한 것은 자기 울타리 안에 간직하고, 또 더 덜 필요한 것은 울타리 밖에 그저 자기의 뭐 토지라든지 그런 들에다가 간직하고 이렇게 하는 것처럼 그러면, 이 세상에 우리에게 여러가지 필요한 그런 것들이 있는 것처럼 하늘나라도 그와 같습니다. 우리가 하늘나라 가서 살 때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면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한 성경에 말씀하신 그 말씀은 그 말씀대로 하면 그것이 땅에서 필요한 것을 말씀한 말씀도 있습니다. 그러나 땅에서 필요한 것이 아니고 하늘나라에서 필요한 것을 말씀한 말씀도 있습니다. 땅의 것을, 땅.의 것을 필요로 해서 말씀하신 그 말씀은 땅의 것이 마련돼지고. 땅의 것이 마련된 그것은 뭣 때문에 땅의 것을 마련하느냐? 그거는 하늘의 것을 마련하기 위해 가지고서 그런 것들을 마련되게 하는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늘에 쌓아 두는 것은 하늘에 가서 어떤 것이 쌓여질란지 그것을 우리가 아는 것도 있지마는서도 모르는 거 많습니다. 성경 지식이 많은 사람들은 많이 알고 모르는 사람들은 조금 알고 이래서, '하늘나라에 뭐이 필요할 것이다. 하늘나라에는 하늘나라의 기능이 필요하다, 실력이 필요하다, 하늘나라에도 부한 자가 있으니 그 부가 필요하다, 하늘나라에도 높은 자 낮은 자 있으니까 그게 필요하다 하늘에도 큰 자 작은 자 있으니까 그것도 필요하다, 하늘나라에도 영광과 부끄러움이 있으니 그 영광 그것도 필요하다' 그런 것, 대충 그런 것으로 서는 이렇게 생각하지마는서도 세밀한 것은 우리들이 모르는 거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성경에 이런 말씀 저런 말씀이 있는데. 이 성경에 이런 말씀 저런 말씀이 있는 그 말씀대로 행하는 그것은 여러분들이 가만히 생각해 보면은 말씀대로 행하는 가운데에 그 말씀이 세상 것을 마련하는 데에 필요한 말씀도 있고 하늘나라의 것을 마련하는 데에 필요한 말씀도 있는 것을 잘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성경에 네가 진실하라 하면은 진실이라 하는 그것은 세상에서도 필요하고 하늘에서도 필요하고 둘 다 필요합니다. 또 네가 사랑하라 하는 사랑도 세상에서도 필요하고 하늘에서도 필요합니다. 또 네가 이제 믿음을 가지고서 믿음으로 살아라 하는 그것은 그 믿음도 세상에도 필요하고 하늘나라에도 필요합니다. 또 네가 하나님의 날이 나타나기를 바라보면서 간절히 사모하라는 그것은 주님의 재림 때에 필요한 것이니까 그것은 다 하늘나라에 필요한 것들이요, 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줄로 알고 너희들이 모든 것을 하라 하는 그런 것은 벌써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을 준비한다는 것은 벌써 죽음 저편 영원무궁 세계의 것을 다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현실을 주시고 고 현실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은 고것이 땅의 것만 마련되는고 순종도 있고, 땅의 것과 하늘나라의 것이 한목 겸해서 마련되는 순종도 있고, 땅의 것은 아니고 순전히 하늘의 것만 마련되는 순종도 있는 것이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이 말씀은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저지한 지혜로써 옳은 방편을 가지고 세상 것이나 하늘나라의 것이나 그것을 마련하라 하는 그 마련하는 그 이치를 가르쳐 주신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대로 우리가 순종하는 것은 그것은 세상에 필요한 세상 것도 바로 마련하는 법이요 또 하늘나라 것도 바로 마련하는 법인데, 배암이라는 놈은. 마귀란 놈은 우리에게 바로 마련하는 그 법을 꼭 이것을 틀리게 해 가지고 정반대로 해서 '이래야 마련된다' 하는, 그렇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한 말로 말하면 마귀는 거짓말쟁이라 거짓말쟁이 애비라, 이래서, 악령이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은 전부가 다 그것은 꾀움을, 꾀움에 내가 빠지는 유혹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그 말은 하나님이 말씀해 주시는 대로 고대로 행하게 되면 고 행한 그것이 바로 직접 하늘나라의 것을 마련하는 것도 되어지고 또 하늘나라의 것을 마련하기 위한 그 재료로 이렇게 마련되어지는 것도 마련되어 진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믿음의 사람들 신앙생활 한 것을 보면은 그 신앙생활은 다 두쪽입니다. 두쪽으로서, 직접 하늘의 것이 마련되는 거 있고 땅의 것이 마련되는 거 있고, 아브라함이 예를 들면 땅에서 부요해진 것은 그것이 땅의 것 마련된 것이고. 그렇게 됨으로써 그 것들이 성화됐다든지 또 하나님께서 그 아브라함을 인정했다든지 하는 이런 것은 다 하늘의 것이 마련된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의 것이 마련된 것은 그것은 다시 시험이나 변동이 없었고. 땅의 것이 마련된 것은 땅의 것 마련된 이것을 하늘의 것으로써 도로 이것을 재제조해 가지고 재가공을 해 가지고 하늘의 것을 만드느냐 땅의 것으로 만들어 그대로 가지고 있느냐 그것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시험한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땅의 것을 마련해 준 것은 그것을 하나님께서 시험해서 그것이 없어지게 만듭니다. 그걸 빼앗기게 만듭니다. 그걸 안 뺏길라고. 안 뺏길라고만 하면은 하나님을 배반해야 되고 하나님을 배반 안 할라 하면 그걸 빼앗겨야 되고 할 때에 아브라함은 그걸 다 빼앗겨도 하나님을 배반치 안했기 때문에 하나님 때문에 뺏겨진 그것이 전부 하늘나라의 것으로 다 바꾸어지고서 이렇게 재가공이 되고 만 것입니다.
이삭도 하나님이 이삭의, 육체를 가지고 있는 그 이삭은 그것은 땅에 속한 것이고 땅의 걸 준 것인데,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줘 놓고 이 이삭을 하늘의 것을 위해서 하늘의 아들로 이 아브라함이 가지느냐 땅의 아들로 가지느냐 이렇게 시험할라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모리아 산에 가 가지고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이래 할 때에 아브라함이 '백세에 난 아들이니까 이거는 아까워서 내가 죽었으면 죽었지 이거는 번제로 못 드립니다. 어떻게 드릴 수 있습니까?' 그렇게 이의를 달았으면 그 이삭은 아브라함의 땅의 아들이 돼 버렸고 하늘의 아들은 안 될 터인데 아브라함은 지체하지 안하고 단마음으로 모리아 산에 가 가지고 번제로 제사를 드릴라고 할 때에 그때에 하나님께서 '이제야 네가 나를 두려워하는 것을 내가 알았다. 이제는 이삭은 네가 땅의 이삭으로 가지는 거 아니고 하늘의 네 아들로서 가졌으니까 이제 그에게 축복한다' 하고서 그렇게 축복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그 말은 보물을 쌓는 방법이 어떤 방법이냐? 하나님이 시키시는 말씀대로 하면 보물이 쌓여집니다. 돈도 말이오, 돈도 내가 호주머니에 있는 돈 백 원이 있는데 이 돈 백 원을 하늘나라로 옮겨서. 하늘나라로 부쳐서. 하늘나라로 옮겨서 하늘나라에 저축할 수도 있고, 이 백 원을 땅에다가 이래 지금 저축할 수도 있고, 또 이 백 원을 땅에서 흩어 버리는 수도 있고 그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면, 백 원 가진 그것을 나쁘게 불의하게 써 버렸으면 그 백 원은 없어졌지마는서도 이 세상에다 흩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거는 다 그거는 세상에 흩어서 자기는 버리고 만 것이라.
세상에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또 자기가 호주머니에다가 단단히 간직했다가 저금 통장에다 넣어 놨으면 그것은 땅에다가 보물을 쌓아 놨습니다.
그 백 원이라는 보물을 땅에 쌓아 놨습니다.
그러나 보물을 백 원짜리를 하늘에 쌓아 둔 것은 그 백 원 그것을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걸 사용했으면, 그것을 어떻게 뭐 다른 사람을 구제하는, 하나님 말씀에 고아와 과부를 네가 구제하고 아주 배 고픈 사람에게 먹여 주고 목 마른 자에게 마시워 줘라 말씀하신 대로 그런 사람을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의 말씀을 생각해서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기 위해서 그 백 원을 구제로 했다든지 그 백 원을 연보를 했다든지 그 백 원을 또 어떤 전도비로 이렇게 사용했다든지 그 백 원을 자기가 사람 구원하기 위해서 차비로 사용했다든지 했으면 그 백 원은, 하나님 말씀대로 사용했으면 그 백 원은 하늘나라에 저축이 되는 것입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둔 것이 됩니다.
그러면, 그것은 여러분들이 말하면 잘 알아 듣지마는서도. 그러면, 그 물질을 그와 같이 한 그것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걸 쓰면은 하늘에 그 물질이 저축이 됩니다. 돈이 그대로 가는 것이 아니고 돈에 대한 그 권세 돈에 대한 가치라는 것이 벌써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했기 때문에 그 가치는 하늘에 가서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또 어떤 권세가 있으면 그 권세 그것은 자기 마음이 가진 것이요 자기 몸이 가진 것인데, 그 권세라 하는 것은 몸뚱이만 가졌으면 바보가 무슨 권세를 가집니까? 또 마음만 가진다면은 그 마음만 가지고 몸뚱이 없는 것이 무슨 권세를 가집니까? 권세 그런 것은 마음과 몸이 가진 것인데, 그 권세를 가지고서 자기가 땅 위에 있는 자기를 위해서 홍포 입은 부자와 같이 그렇게 사용할 수도 있고, 그 권세를 주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데에 그 권세를 투자할 수도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대로 그 권세를 쓰기 위해서 자기 밑의 사람을 위해서 쓰는 수도 있고 자기 위의 사람을 위해서 쓰는 수도 있고, 또 그 권세를 가지고서 이 세상이 불의하게 그 권세를 쓸라고 위의 상관이 있다가서 죄되는 데로 '너는 오늘은 주일이지마는서도 네가 이 일을 해야 되지 오늘은 교회 가면 안 된다. 오늘은 주일날 교회 가면 안 된다.' 그 상관이 들어서 그 권세를 자기 상관이 쓸라고 할 때에 상관에게 주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아, 나는 이거 내가 이 권세를 내놨으면 내놨고 면직을 당했으면 당했지 나는 오늘 죄를 범할 수 없습니다.' 했으면 그 사람은 그 권세를 이제 하나님의 말씀에다가 썼다 말이오.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권세를 사용했다 그말이오. 알아 듣습니까? 이렇게 지금 어려운데 그걸 이래 놓으니까 한 마디도 못 알아 듣고 그만 겉으로 술술 간것 같아요. 그래 놓으니까 사람들이 도무지 변화가 안 돼요.
그러면, 그 사람은 그 권세를, 다니엘은 그 권세를 사람에게 주지 안 하고 그 권세를 하나님에게 드렸습니다. 자기는 사자 구덩이에 들어가 또, 총리대신에 있는 그 총리대신의 그 권세를 사자 구덩이에 들어가도 기도하겠다고 그렇게 했으니까. 그 권세 때문에 사자 구덩이에 들어 갔지 다니엘이 보통 평민 같으면 사자 구덩이에 잡아 넣지 않습니다. 총리 때문에. 이거 총리이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생겨져 가지고 그랬던 것입니다.
이러니까, 그 권세를 그래 가지고 하늘나라에 쌓은 사람도 있고 또 그 권세를 가지고서 믿지 않는 사람에게, 그 사람에게 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 권세를 가지고 그 사람을 잘 정직하게 공의롭게 도와 주니까 그 사람이 '아, 그 사람은 참 권세 자리에 앉을 만한 사람이다. 아주 공의롭고 정의롭다' 이래 가지고 거게 감화를 받아 가지고 그 사람 예수 믿는 사람도 있고, 안 그러면 그 권세를 또 죄악으로 쓸 수도 있습니다. 자기 위해서 쓸 수 있는 것을 복음 위해 쓸 수도 있고 하나님 말씀 순종하는데 쓸 수 있으면 그것이 다 하늘에 쌓이는 것이라 말이오.
자기 몸뚱이도 그러하고, 자기 마음도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순전히 마음이 되고, 마음으로 순종할 뿐만 아니라 그 마음이 그 몸뚱이를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 배후에서 그 마음이 자기 몸을 독촉을 하고, 재촉을 해서 그 몸뚱이가 돈 시키는 대로 하지 못하고 가족 시키는 대로 하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이 시키는 대로 그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가 돼 가지고 몸뚱이에다가 강하게 강직하게 시키니까 그 마음이 원첨 강하게 자극을 주고 어짜고 이라니까. 그 몸뚱이를 가지고 하나님 말씀 순종하는 일을 하게 된다 그거요.
이러니까, 그 마음이 직접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일도 있고, 그 마음이 들어서 자기가 주관하는 그 몸뚱이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도록 이렇게 하는 것도 있고 이래서, 그 마음이 하늘나라의 저축을 위해서, 하늘나라의 복을 위해서. 하늘나라의 유익을 위해서, 하늘나라의 영광을 위해서 하늘나라의 상급을 위해서 하늘나라의 칭찬을 위해서. 그 나라에 가서 살 때에 필요한 그 일을 위해서 땅위에서 그 마음을 사용하고 그 몸을 쓰고 그 마음을 쓰고 그 재물을 쓰고 그 모든 일들을 다 그것을 위해서 그 일들을 사용하고 이랬으면 그것이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는 것입니다. 그것이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래 쌓아 두면 거게는 좀이 안 먹는다 그 말은, 좀이라는 것은 상징적으로 말했는데. 속담에 그런 말이 있습니다. 신선들이 내려와 가지고 바둑을 두는 데에 나무하러 간 일군이 가 가지고 신선들 바둑 두는 데에 거게 좀 잠깐 구경하고 나서 보니까 '아, 이거 나무를 해 가지고 가야 될 터인데 나무를 못 해 가지고 갔다' 이래 가지고서 나무 할라고 일어나서 도끼를 보니까 도끼자루가 좀이 먹어서 벌써 도끼를 쓰지 못하게 됐다고. 그러니까, 그 바둑 두는 잠깐 동안에 벌써 여러 수백 년이 지나가서 그 도끼 자루가 좀이 먹어서 파근파근하다. 그러면, 물질이 세윌이 지나가면은 좀을 먹는 것입니다. 좀이 먹는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땅에 있는, 보물을 땅에 쌓아 두면 네가 세월이. 지나가면은 땅에 있는 보물 그거는 없어진다 그 말입니다. 없어진다는 그것을 우리에게 알리기 위해서 좀먹는다 그렇게 말했고.
동록 슨다 말은, 동록은 바짝 마른 데에다가. 무슨 물건이든지 무슨 옷 같은 거라도 바짝 바른 데다가 두면은 옷에 곰팡이가 안 핍니다. 곰팡이가 안 피지마는 아무리 여문 베라도 아주 주위 주변이 썩어서 습기 있고 썩는 그 주변이 썩는 썩은 것에게 접촉해 가지고 썩은 속에 파묻어 놓으면 그것은 그것이 동록이 슬어서 썩게 됩니다. 세상에다 두면은 세상에는 동록 슨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환경이 전부 죄악이기 때문에 환경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네가 가진 그것도 죄악이 멸할 때에 너도 망하고 만다. 죄악이 멸해질 때에 멸해지고 만다.
그것을 가리켜사 동록 슨다 그렇게 말했고, 도적이 구멍을 뚫는다 그 말은 사람이 탄탄히 자기는 믿고 있지만 죽음이 어느 구멍으로 들어왔는지. 죽음이 어느 구멍을 뚫고 들어왔는지 죽음이 들어와서 자기를 탁 삼켜 버리면은 그만 죽음이 자기 생명도 도둑해 가 버렸고 자기의 모든 땅에 있는 준비해 놓은 거, 홍포 입은 부자가 그렇게 구비하게 해 가지고 있었지마는서도 그만 죽음과 동시에, 그것을 도적이 구멍 뚫고 와 가지고 죽음이라 하는 것이 완전히 삼키고 말았습니다. 이래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온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주님이 재림하시면 모든 사람들이 소유했던 그 소유가 당장 다 자기는 씻겨지고 만다 잊어버리게 된다 그걸 가리켜서 도적같이 임한다 그렇게 말을 표시를 했습니다.
이러니까, 좀먹는다 말은 땅에다가. 네가 땅의 것을, 네 마음이든지 네 몸이든지 네 물질이든지 네 모든 네가 움직이는 그 움직임의 일이든지 그 모든 것을 땅의 것을 위해서 네가 하면은 그것은 세월이 가면 차차 차차 그거는 없어진다. 네가, 아무리 네가 재산은 고대로. 예를 하나 들면은 재산이든지 네가 지식을 그대로 가졌다 할지라도 네가 차차차 나이가 많아서 이제 나이가 오십이 되면은. 오십이 되면은 열 살 먹을 때에 입던 옷은 못 입는다. 암만 돈 있어도 못 입습니다. 세월에 따라서 자꾸 재물을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사용권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사람들 모두 젊게 할라고. 백 목사도 지금부터 한 아마 삼십 년 전 같으면 발간 넥타이를 매고 이렇게 다닐 수가 있을 터인데 지금은 발간 넥타이를 돈이 없어 못 사서 못 매는게 아니라 벌써 세월이 지나가기 때문에 좀이 먹어서 빨간 넥타이를 맬 만한 그것은 다 좀이 먹어서 없어져 버렸기 때문에 못 맨다 그거요. 지금 색동 저고리를 입고 다닐 수가 있겠습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서 차차 차차 그 소유권이 박탈되어집니다.
또 이 모든 다 환경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차차 죄악에 물들어서 전부가 죄악화되니까, 죄악화되니까, 죄악에 물들어 죄악화가 되니까, 죄악화되니 그것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옆의 사람 암만 죄 지어도 내가 죄 안 지으면 되는데 모두가 다 죄를, 주위 환경이 전부 죄악이기 때문에 죄악과 연관성이 있고 죄악에 동참하고 이랬기 때문에 그 죄악에 물들어 가지고 결국은 다 망하게 된다.
또 죽음이라는 이 도적이 왔을 때에는 다 도적 맞게 된다. 그것을 가리켜서 동록 쓴다 좀 먹는다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한다. 그러나 네가 하늘에 쌓아 두면은 거게는 이 좀도 없고 동록도 없고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지도 못한다 그렇게 여게 비유로 우리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그렇게 말씀해 놨고,
'보물 있는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네가 소망이. 네 마음이나 네 몸이나 네 물질이나 네 모든 움직임이나. 이것이. 이거 모두 다 물질에 속한 것인데, 이 네 가지 물질을 네가 하늘나라의 저축을 위해서, 하늘나라에 가서 앞으로 살 터이라, 그 나라는 영원한 내 나라라, 세상은 언제 떠나도 떠날 나라라, 그러니까 그 나라에 가서 살 일을 위해서 내가 준비해야 되겠다 하고서 그 나라에 순전히 소망을 하고서 이 네 가지를 그 나라에 살 준비를 위해서 네가 투자하는 사람이 되게 되면 자연히 네 마음이 거게 가 있게 된다. 네 마음이 전부 하늘나라에 가서 있게 된다.
'보물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 네 마음이 하늘나라에 가서 있게 된다.
네 마음이 하늘나라에, 죽어 심판받아 무궁세계에 갈 거기에 네 마음이 있게 되면 네 마음은 자연히 밝은 마음이 된다. 깨끗한 마음이 된다. 어두운 마음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이 세상 소망을 둘 때에 어두워집니다. 세상 소망 중에도 당장에 무슨 성공할라 하는 그런 데에 욕심을 부릴 때에 어두워지는 것입니다. 우리 눈이 무엇이든지 가깝게 생각하는 우리 눈은 어두워지고, 여게 우리 눈을 말한 말은, 여게 눈은 뭐이냐 하면 마음의 눈을 말한 것입니다. '네 눈이' 이 육신의 눈으로 비유했지, 육신의 눈이 어두우면 온 몸이 어둡고 육신의 눈이 밝으면 온 몸이 밝은 것처럼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얼마나 그 어두움이 크겠느냐 하는 그 빛을 말하는 것은 마음의 눈을 가리켜서 여게 빛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네 마음의, 마음의 눈이 밝으면 네 모든 생활이다 밝아질 것이고 네 마음의 눈이 어두우면 전 생명이 다 어두워지고 만다. 이러니까 마음이 어떻게 하면 밝을 수 있느냐? 마음은 가깝게 보면은 어두워진다. 마음은 가깝게 보면 어두워진다. 가깝게 보면 자꾸 가깝게 볼수록이 마음이 어두워지고 멀리 볼수록 마음의 눈이 밝아지고. 가깝게 볼수록이 마음의 눈은 어두워지고 멀리 볼수록 마음의 눈은 밝아지고 좁게 볼수록 마음의 눈은 어두워지고 넓게 볼수록 마음의 눈은 밝아집니다.
이러기 때문에, 네가 소망을 하늘에 두면은 네 마음은 이 세상살이 전 생활을 간추려 가지고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가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가 가지고 심판받아서 무궁세계에 갈 그걸 생각하게 되면은 네 마음은 벌써 밝아져서 모든 일에 실수하지 안하게 된다. 사람들이 좁게 보는 데에서 오해도 곡해도 있고 다 자기가 후회할 말도 하고 후회할 생각도 하고 벌로 날뛰지, 이제 넓게 보는 사람은 벌로 날뛰지 안하고 실수가 적다. 그러니까, 보물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
고라고 난 다음에 비유로 말하기를 네 육신의 눈이 어두우면 전신이 다 깜깜해지지 않느냐? 소경이 뭐 자기 몸뚱이를 뭘 보느냐? 평생 있어도 자기 몸 하나를 못 봅니다. 손가락이 어떻게 생겼는지 못 봅니다. 이러나. 눈이 밝으면은 온 몸이 다 환하이 밝아진다. 그러니까, 눈이 밝으면은 그 몸이 그 다리가 빠질 데는 안 가고 또 이마 받힐 때는 안 가고 그와 같이 하지 않느냐? 그와 마찬가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네 마음이 어두워지면 그 빛은 인간의 양심, 양심인 마음을 가리켜 말합니다. 거게 빛이라고 말하는 자연의 빛이라 말한 것은 인간의 양심은 자연의 빛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이러기에, 네 마음이 밝으면 모든 일이다. 사리 판단과 가치 평가와 계획과 경영과 소원과 그 모든 것이 다 밝지마는서도 네 마음이 어두워 놓으면 얼마나 어둡겠느냐? 그 마음이 어두워 놓으면 생각이나 계획이나 비판이 어둡기 때문에, 제가 좋아하는 그것도 마음이 밝으면 내가 좋아하는 이것이 얼마나 망할 일이며 이게 얼마나 기막허는 일이니 이 내가 좋아하는 거 이걸 할 수 없다. 술 좋아하는 자는 술 좋아하는 자든지 돈 좋아해서 돈이면 뭐 다 됐다 해 가지고 이와같이 벌로 날 뛰는 사람도 이 돈 좋아하는 이것이 나를 얼마나 망친다는 것을 제가 알면 그런 일을 할리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음의 눈이 어두운 데서 전부 죄악이라 하는 것은 다 들어오고 맙니다.
이러기 때문에, 네 마음이 어두우면 어찌 되느냐? 네 마음이 하늘에 소망을 두면은 마음이 점점 밝아지게 된다. 땅에 소원 소망을 두면은 점점 어두워지게 된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에는 좀도 동록도 도적도 없는 곳이다. 땅에는 좀에 상하고 도적에 상하고 동록이 슬고 다 상한다. 또 보물을 네가 하늘에 쌓아 두라, 이렇게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서 하늘'의 소망 위주로 네가 살게 되면은 네 마음의 눈이 자연히 밝게 된다. 네 마음의 눈이 밝으면은 네 생활 전체가 밝아질 수가 있고 네 마음이 어두워지면 네 생활 전부가 어두워지게 된다 그것을 가리켜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녜, 내일 아침에는 그 다음에 계속해서 요 말씀을 증거하겠으니까 좀 단단히 읽고 자기가 요렇게도 생각해 보고 조렇게도 생각해 보고 거기서 내 생각은 이랬는데 내일 아침에 가르칠 때에 목사님의 깨달은 거는 어떤고 요 대조도 해 보고 고래 가지고서 조금씩 조금씩 자꾸 자라가게 되면은 자꾸 얼마든지 자라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벽기도 나온 사람들이 자기만 나올게 아니라 가족들도 깨우고.
새벽기도 못 나온 사람은 그만큼 약한 사람이요 어두운 사람이요 그만큼 병이 들어 있는 사람이요 그만큼 병신입니다. 그만큼 어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꾸 권유해서 나오도록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 밤에는 재독에 참여한 사람이 백 구십 사 명, 조금 낫게 참여했는데, 내가 지난밤에도 내가 재독을 나도 들었는데 그거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여러분들이 그걸 껍데기로 할고 있지 똑똑히 알면은, 똑똑히 알면은 땅에 있는 소망을 가질리가 없는 것입니다. 똑똑히 알면.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짜든지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저버리지 말고 자꾸 생각하고 실행해 보고 생각하고 실행해 봐야 그 말씀이 내 속에 있어서 내가 고 말씀과 같은 마음으로 생각으로 몸뚱이로 행동으로 소원으로 자꾸 이래 변화가 돼지지, 그 변화된 그것이 새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