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선지자선교회 1985년 10월 12일 토새

 

본문 : 마태복음 5장 14절∼16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은밀히 말하면 우리는 빛자체가 아닙니다. 빛자체가 아닙니다. 우리는 빛을 받아서 빛을 반사하는 우리들입니다. 깊이 분석하면 이러하지만 일반적으로 다른 것이 볼 때는 우리가 빛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래서, 빛은 그 빛으로만 가치가 있는 것이지 빛은 빛을 잃어버리면, 빛이 없으면 그거는 아무짝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빛은 빛으로만 가치 있지 빛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구를 사다가 불을 켜 봐서 불이 안 켜지면 그것을 집에 간수할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다 쓰레기통에 넣어 버리고 맙니다. 빛을 발할 수 있는 그 전구라면 우리가 돈을 주고 사오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세상의 빛이기 때문에 빛이 있으면 가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빛이 빛노릇을 못하게 되면 그것은 폐물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빛이라는 것은 진리, 영감, 주님의 피 이 셋을 가리켜서 빛이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것만 빛이 되지 딴것은 빛이 되지 않습니다. 빛에 대한 정의가 너무 흐미하고 가리워져 가지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빛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사람들이 좋다, 옳다, 바르다, 깨끗하다, 참 덕이 있다, 감화 감동을 많이 받을 수 있다, 이런 모두 좋은 그런 행위를 빛이라고 그렇게 사람들이 생각을 하는 가운데에서 기독교는 점점 일반화되어 가고, 또 신앙을 버리고 도덕주의의 기독교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거는 타락이요 그거는 못 쓰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올바른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가치가 있고 잘못 깨닫는 것은 사람들을 마구 죽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군들이 받을 심판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스승되기를 좋아하지 말아라. 물론 스승이 가치가 있는 것이지만 중한 문제가 있다. 스승노릇을 바로 하면 상급이 굉장하고 잘못하면 받을 심판이 크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받는 이 하나님의 도는 순전히 객관의 것입니다. 땅에 없는 것입니다.

땅에 없는 것을, 하늘의 것을 예수님께서 가져 오셨고, 또 예수님이 하늘의 것을 연결을 시켜 주셨습니다. 예수님 자체가 하나님의 것, 하나님에게 속한 것, 다시 말하면 완전에 속하고 영원에 속하고 불변에 속하고 영생에 속한 것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왔고, 첫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다 가리워지고 끊어졌던 것입니다. 첫째 아담으로 진리에 속하고 영원에 속하고 불변에 속하고 생명에 속하고 완전에 속한 것들은 첫째 아담으로 인해서 완전히 절단돼어져 버렸습니다.

그 끊어진 거는 왜 끊어졌는가? 마귀가 뱀의 형상으로 와 가지고 유혹할 때에 그 유혹에 끌려 가지고 하나님을 배반함으로 완전히 끊어졌습니다. 끊어진 것을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셔서 친히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마귀로 더불어,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사람을 입고 사람으로 마귀를 대적 했습니다. 마귀에게 다시 도전해 가지고 마귀를 이겼습니다. 마귀를 이긴 것은, 마귀는 하나님 배반하고 자기를 위주로 자기를 중심으로 삼으라 하는 그 미혹에 하와는 제 중심 제 위주로 삼으라 하니까 좋다고 해 가지고 잘될 줄 알고 그래 가지고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 위주로 한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동등될 거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어 종의 형상을 가겼고 사람같이 되었고 죽기까지 복종했습니다. 말 한 마디도 당신이 한, 말 한 마더도 생각 하나도 없었습니다. 만일 말 한 마디나 생각 하나라도 당신이 능동으로 말했다면 우리 대속은 안 됩니다. 그렇게 엄격하게 구별이 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둘째 아담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온전한 것이 연결됐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구원은 간단하게 말하면 지식이 와야 되고 능력이 와야 되고 생명이 와야 되고 평강이 와야 되고 영광이 와야 되는데, 이것은 다 인간에게 속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이 하나님에게 속한 완전한 것들이요 영원한 것들이요 불변하는 것들입니다. 기독자의 기쁨도 영원한 기쁨이 기독자의 기쁨이요, 완전한 기쁨이 기독자의 기쁨이요, 불변의 기쁨이 기독자의 기쁨이요, 그것만 그런 게 아니라 지식도 그러합니다. 기독자의 지식은 완전한 지식, 영원한 지식, 불변의 지식 이 지식이 기독자의 것입니다. 이것은 타락한 사람들에게는 없는 것일니다. 순전히 하늘에 서 와 가지고 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기독자의 구원이 소나무 솔씨가 자라는 것같이 그렇게 자라는 것이냐, 장기짝을 포개는 거와같이 포개지는 것이냐, 그것을 제가 장생골서 비유로 쓴 일이 있습니다. 솔씨는 한 개가 그것이 자꾸 다른 요소를 받아 가지고 자꾸 이렇게 먹고 자라는 것이지만 장기짝은 하나 둘 포개 가지고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자체에 있는 무엇이 자라 가는 게 아니고 하나님은 은혜가 새 은혜 새 은혜가 자꾸 와서 보태져 가지고 이것이 켜져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도 세계 기독교 교리에 대해서 중대한 것인데 아직까지 여게 대해서 시비는 있기는 있습니다. 그러면 순전히 하늘의 것이 새것이 와 가지고 이것이 점점 쌓여짐으로 커지느냐? 이미 한 번 받은 것이 커지는 것이냐! 하는 데 대해서는 두 가지 논설은 있기는 있지만 하나로 판정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이런 데는 가서 건드리지 안하고 이것도 정통이요 저것도 정통이라고 다 인정 하는 그런, 단일 정의를 가지지 안하고, 단수의 정의를 가지지 안하고 복수의 정의를 가졌기 때문에 이것은 거룩이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이라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것을 사람이 받아 가지고 반사하는 것이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것을 아는 것이 제일 중요찹니다. 그런데 오늘 기독교는 타락한 인간, 예수 믿지 않는, 그 지방에서 천 년이고 이천 년이고 예수 없이 인간들이 움틀거리면서 살아 온 그 역사에 있는 모든 도덕, 사상, 뭐 옳다, 선이라 이렇게 비판하는 그런 모든 것 그것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좋다고 감화 감동 받고 인정받는 그것을 빛이라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아닙니다. 순전히 그런 사람들과는 반대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은 이번 공과에 깜깜한 어두운 세상이라 하는 것을 말했습니다.

깜깜한 어두운 세상이라. 그러면, 어두운 세상인데 어두운 세상은 뭘 가리켜 말하는가? 타락한 인간과 악령과 그들의 모든 건설 이것을 뭉쳐서 악령, 악성, 악습 이것이 옛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고 이것을 어두움이라고 말하는 것인데 그런 것 들뿐입니다.

빛은 하늘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왔지 다른 데는 오지를 안했습니다.

이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절도요 강도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은 무슨 말이냐 하면 예수님이 오기 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 인간들에게 있는 모든 지식이나 능력이나 지혜나 그 모든 것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와서 있는 것이라 그렇게 말씀하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의 빛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어두움에 속한, 마귀에 속한, 악령과 악성에 속한, 죄에 속한, 사망에 속한 그런 사람들이 찬성할 수 있는 그런 것이 빛이 아닙니다. 그런 것을 죽이는 것입니다. 빛은 어두움을 멸하는 거와같이 예수님이 오신 것은 마귀와 죄와 사망의 일을 멸하기 위해서 오셨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런 거를 멸하기 위해서 왔지, 그런 것이 멸해지지 그런 것이 이해되고 감동되는 그런 거 아닌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안 믿는 사람들이 보고 감화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그 행위가 세상 빛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불교인에게 가 가지고는 불교인이 감동받아야 되고 유교인에게 가 가지고는 유교인이 감동 받아야 되고 모든 이런 이종교의 어떤 종교라도, 어떤 도덕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이어야 된다 이렇게 하는데, 그거는 어두운 것이기 때문에 기독교의 빛은 그런 것을 소멸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빛이라는 이 빛에 대한 정의를 아직도 바로 되지 못합니다. 이래서 빛을 세상 도덕이라, 도덕이라 이렇게 봅니다. 도덕을 멸하는 것이 빛입니다. 세상 도덕을 멸하는 게 빛이오. 세상 인간의 윤리나 또 도덕이나 모든 그런 것들을 다 멸하는 것이 빛이오. 이래서 세상 사람들이 세워 놓은 제도를 주를 위해서 복종하지만 복종하나 가다가서 배치되는 일이 있으니까 배치될 그때에 배치가 돼야 되지 무조건 끝까지 복종하면 그게 다 사망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것은 신구약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인 진리와 또 그 안에 은밀히 역사하는 영감과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가리켜서 빛이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빛은 성경 가운데 있는데 성경 가운데는 둘이 나타나 있으니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요 하나는 진리라 그렇게 공과에다가 말씀을 해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빛을 맡은 자지만 우리는 빛이기 때문에 빛은 빛으로 가치 있는 것이지 빛을 떠나면 가치가 없고 그것은 폐기물로서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위에 또 두려운 말씀을 해 놓았습니다. "산 위에 있는 동리 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산 위에 있는 동리가 암만 제가 숨을라고 해도 숨지 못한다. 암만 숨기울라고 해도 숨기우지 못하고 환하게 들나게 된다 하는 이것은 기독자가 기독자의 그 증거를, 기독자의 증거를 아무리 피할라고 해도 피하지 못하고 기독자의 증거를 하고야 만다. 기독자는 기독자의 증거를 하고 만다.

어떻게? 둘로 증거하는데, 하나님은 당신의 법도대로 믿지 않는 택한 자들을 저주하시고 진노하시고 멸하시는 하나님이라 하는 것을 그 사람이 증거하는 사람이 되든지 아, 저 사람 봐서 '하나님은 진노의 하나님이요, 하나님은 저주의 하나님이요, 멸망시키는 하나님이로구나' 그걸 나타내든지 '저 사람 예수 믿는데 멸망하고 저주받고 망해 버렸다' 이걸 나타내든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축복하시고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사랑하시고 모든 은혜를 베푸셔서 영육이 다 잘되게 하시는 하나님이라' 그걸 나타내든지 망하게 하는 하나님으로 나타내든지 안 나타낼래야 안 나타낼 수가 없다 하는 그것을 증거합니다. 이래서, 우리 예수 믿는 사람, 택한 사람들은 '하나님은 저런 자들을 망치는 하나님이라' 하는 망치는 하나님으로 증거를 하든지 '아, 하나님은 저런 사람은 축복하시는 하나님이라' 해서 축복의 하나님으로 증거를 하든지 둘 중에 증거는 하고야 말지 제가 증거 안 하고는 못 견딘다 그 말이오. 요것을 우리가 단단히 알아야 됩니다. '아, 예수 잘 믿으면 예수 잘 믿은 효력이나 보고 예수 못 믿어도 안 믿는 사람과 같이 그만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싶으지만, 하나님이 절대 그래 하시지 않습니다. 잘못 믿으면 망칩니다. 바로 믿으면 하나님이 더 축복을 줍니다.

축복이냐 저주냐? 그래서 너는 하나님의 빛을 받은 자이기 때문에 빛을 버렸으면 너는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것으로, 멸망을 받는 것으로 그게 되든지 빛을 나타내면 보물로 하나님의 안보를 받든지 둘 중에 하나이지 네가 빛을 버리고도 그저 아무 일 없이 그래 그만 안 믿는 사람과 같이 그렇게 취급을 당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절대 숨기우지 못한다. 산 위에 있는 동리가 숨기우지 못한다.

가리우지 못한다. 덮어 갸리우지 못한다. 암만 네가 숨을라고 해도 숨어지지 못한다 그 말이오 숨어지지 못한다. 너는 잘못 믿어서 '예수를 저래 믿으면 망하는구나' 하는 것을 드러내든지, '아, 예수를 저래 믿으면 참 행복을 받는구나' 하는 것을 나타내든지 네가 예수 믿기는 믿는데 예수 믿는 것으로써 망하는 것을 드러내든지 행복 받는 걸 드러내둔지 둘 중에 네가 드러내고야 말지 너는 가리우지는 못한다. 숨지 못한다. 그걸 말했습니다. 요걸 똑똑히 깨달아야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흥하든지 망하든지 둘중에 하나이지 흥하는 그 일을 안 하면 그만 그대로 안 믿는 사람같이 되는 줄 알아도 아니오. 흥하는 일을 못 하면 꼭 멸망하는 자로 돼 가지고 요런 자는 멸망받는다 하는 요것을 드러낸다 그 말이오.

여게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하는 요것을 단단히 기억해야 됩니다. 숨기우지 못한다는 것은 제가 덮어 숨어서 가리워서 안 나타날라고 애를 쓴다고 해도 그렇게 숨기우지 못한다. 숨지 못한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이 빛노릇을 안 하면, 영감과 진리와 예수의 피 이 셋을 입으로 증거하고 행동으로 증거하고 사람으로 증거해서 이렇게 이 세 가지를 증거하면 하나님이 천상 천하의 것을 다 줘서 '봐라 이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같이 한다.' 이래 가지고 영광과 존귀와 빛을 보이고, 또 예수 믿는다는 택한 사람과 중생된 사람이 이 세 가지 생활을 하지 안할 때에는 하지 안했으면 그만 하나님의 간섭이 없었으면 좋겠다 싶으지만, 아니오. 하나님의 간섭이 있어서 지질라게 그 멸망을 시킵니다.

이러기에, 구약에 신정 국가의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오해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백성들을 지독스레 따라다니면서 멸망을 시켰습니다. 뭐 그렇츰 멸망할 자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대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모질받게 멸망을 시키고 모질받게 고생을 시키고 천함을 당하게 하셨던지 굉장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볼 때는 '아, 하나님은 이거 참 가까이 하지 못할 하나님이요 이거 하나님 되했으면 좋겠다' 피해지지 않습니다. 택한 자는 숨을 수가 없습니다. 택한 자는 예수 잘못 믿으면 따라가며, 제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 광선의 속도라 하면 굉장히 신속한 것입니다. 이거 뇌성할 때 번개는 번쩍거리고 난 다음에 한참 있으면 우르르르 소리가 나옵니다. 이 소리가 들리는 소리의 속도보다 이 광선의 속도라 하는 거는 굉장히 빠른 것입니다. 지금 광선의 속도보다도 더 빠른 속도는 아직까지 나타나지 안했습니다. 이런 빠른 속도 가지고 네가 바다 가에 도망갈지라도 내가 거기가서, 먼저 기다리고 있다 이랬습니다. 네가 애굽으로 도망을 갈지라도 애굽에 내가 먼저 가 기다리겠다 너는 빛을 나타내야 되지 빛을 나타내지 안하고 네가 어떤 짓을 한다 할 지라도 너는 아무 데도 숨지 못한다 숨기우지 못한다.

산 위에 있는 동리에 무슨 빛이 있습니까? 빛 없는 그 동리가 암만 숨기울라 해도 숨기우지 못한다 너는 숨을래야 숨을 수가 없다 너 택한 자로 중생된 자가 네가 예수 잘 안 믿고 이라면서 안 믿는 사람처럼 어떻게 이렇게 살리라고 생각하지만 택한 자가 예수 잘못 믿으면 모든 사람이 볼 때에 '아, 하나님은 저런 자를 망치는 하나님이로구나 저주하는 하나님이로구나. 진노하는 하나님이로구나 비참하게 하는 하나님이로구나' 이렇게 멸망시키는, 너같은 자를 멸망시키는 하나님으로 증거를 하든지 너같은 자를 축복하는 하나님으로 증거하든지 축복의 하나님으로 멸망의 하나님으로 이렇게 증거가 되고야 만다.

이스라엘 백성 역사가 전부 그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그 역사를 살펴보면 '하나님은 '아, 이런 이 시대의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이 굉장히 축복하셨다. 이 시대의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이 모질받게 지독스레 진노해서 망치고 저주했다' 죽기나 죽습니까? 안 죽습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서 이스라엘 종교 말년에 저주받고 난 다음에 그 뒤에 세계에서 내치 유리하고 돌아다녔는데, 그만치 그 십분의 일만 고생당해도 다른 민족은 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 십분의 일의 어려움만 당해도 다른 민족은 다 멸망하고 없어겼었는데 이스라엘은 없어지지도 안하고 모질 받게 모질받게, 도무지 세상의 어떤 민족에게 당한 환난이 그런 환난이 없습니다. 그렇게 모질받게 멸망을 시켰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산 위에 있는 동리가 숨기우지 못한다. 모든 사람들이 다 주목 해 보도록 이렇게 해 놨기 때문에 그것은 아무리 숨을래야 숨지 못한다 너는 멸망시키는 하나님으로 네가 증거를 하든지 구원하는 축복의 하나님으로 증거를 하든지 둘 중에 너는 하나이지 숨기우지 못한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가 빛의 노릇을 하지 안한 그것은 꼭 그 값이 세상 사람이 환하게 알도록 나타내고, 기독자가 빛의 노릇을 한 것은 그 상급으로 축복으로 나타난 것을 세상 사람들이 다 알도록 그래 된다. 이 말씀이 얼마나 이 두려운 말씀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 나니" 이는 주인이 불을 켜 가지고 등경 위에 두기 때문에 말 아래 누가 둔다 할지라도 안 됩니다. 이게 자기가 빛의 생활하면, 주의 피와 성령과 진리의 생활을 하면 이것을 덮어 가리우는 말노릇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거는 이단이라, 그거는 이단이라, 그거는 뭐 틀렸다 또 다른 사람이 빛노릇한 것은 사람들은 가룰라고 애를 씁니다. 다른 사람들 이 빛노릇한 거. 제게 빛이 있으면 이것은 막 광고를 해서 선전할라고 하지만 다른 사람이 빛노릇한 것은, 다른 사람이 피를 나타내고 진리를 나타내고 그 감을 나타내는 것은 이것을 덮어 가룰라고 하는 것이 오늘 악령들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분명히 빛을 나타내고 있는데, 그 사람이 진리를 가르치고 영감을 가르치고 예수님의 피의 이 증거를 하고 있는데, 참 올바른 기독자의 신앙 생활하고 있는데 이것을 마구 덮어 가루어 가지고 그게 나타나지 안하도록 할라고 교파적으로 야단을 지기고 하지만 절대 가루지 못한다, 말입니다. 절대 가루지 못한다. 아, 주인이 등경 위에 두는데 누가 등불을 켜서 말을 이래, 말 아래 두느냐? 말을 놓고 딱 꺼꾸로 덮어 버리면 빛 하나도 안 나오지 않습니까? 그래서 진리를 나타나지 못하구로 가루게 할라고 온 세상이 달라들어서 우겨쌓지만 절대 가루지 못한다. 이 빛의 주인인 하나님이 환하게 드러내기 때문에 이는 나타내지, 환하게 드러나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옳은 행위를 하고 옳은 행위 한 것을 다른 사람이 가루면 가루어질 줄로 알고, 자기가 또 참된 그 일을 했는데 참된 일 한 것을 누가 매장을 시키고 거짓말로 핍박하고 욕하고 이렇게 위협하고 매장시킨다고 해서 매장이 될 줄 아느냐? 매장 안 된다. 조물주가 이것을 높이 들기 때문에 매장되지 않는다. 다만 네가 빛이 되느냐 안 되느냐 그게 문제지 네가 빛만 되면 이 빛을 아무도 가리우지 못한다. 아, 네가 조그만한 빛을 나타내 놓고 난 다음에 '다른 사람이 가룬다' 이렇게 지금 말을 하고, 가리워 질까 염 려하고 '내가 이거 옳은 것인데 왜 옳은 거 정죄를 하느냐?' 이와같이 너는 대적하고 염려를 하지만 이런 염려는 필요 없다. 세상이 들어서 너를 가루는데 한 자를 가리워 가지고 빛이 보이지 못하게 하면 주님이 두 자를 높이기 때문에, 등대를 두 길 높이니까 가리운 게 소용없다. 백 자를 높이 해 가지고 둘러싸서 가뤄 버리면 천 자를 높여 가지고 많이 드러나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빛은 드러나고 빛은 가루지를 못한다.

또, 기독자가 빛 없는 생활하는, 동리야 무슨 빛이 있소? 빛 없는 생활하는 그것을 제가 암만 숨으려 해도 숨지 못한다. 빛 없는 생활도 하나님께서 '예수 저따위로 믿으니까 저렇게 망했다' 하는 것을 역력히 드러내게 된다. 또 네가 빛의 생활을 했으면 그것도 아무리 세상에 가룰라 해도 가루지 못하고 환하게 드러나게 된다. 여게 무서운 하나님의 역사의 말씀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췬다, 요 집안을 말하는 것은, 집안을 말하는 것은 자기에게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분량, 그 분량을 말합니다. 그 등경불을 켰는데 그 집안에, 그 주인이 요 방에 켤라고 한 불은 그 방에 환하게 밝고 조 구석에 켤라 하는 불은 조 구석에 환한 것처럼 이제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자기에게 분담된 식구가 있다. 분담된 식구가 있다. 분담된 식구가 있는 데, 온 집안 사람들에게 비취느니라. 분담된 식구가 있는데, 불은 한 개만 켰는데 그 방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빛 가운데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빛 가운데 있어. 모든 사람은 빛이 아니고 빛이 없는 데도 모두 환한 빛 가운데 있다 그 말이오. 이래서 너만 바로 빛의 생활을 하면 네게 속한 자들은 다 진리 안에 살고 영감 안에 살고 예수님의 피 안에 살 수가 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네게 있지 다른 데 있지 않다 너는 빛이 되지 안하고 자꾸 다른 데 뭐 할라고 이래 하느냐? 또 네가 빛을 나타내는데 다른 사람이 이단이라고 숨기고 가루고 덮는다고 이렇게 염려를 하니 거게 대해서 우리도 대비를 해야 되지 않는가? 대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비할 필요가 없어. 옳은 건 옳다, 아닌 건 아니라만 증거 하지 그 이상 증거할 필요가 없어.

그래서 우리는 참, 좋은 점이 그렇게 많지는 못하지만 우리가 옳은 증거한 거는 그 진리인데, 진리 그걸 가룰라고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저렇게 덮어 가룰 때에 그때에 우리는 거게 대해서 아무 상관하지 안 해, 상관하지 안하고 다만 옳은 겋 옳다, 아닌 건 아니라 증거를 해야 되기 때문에, 그때 OOO씨가 말한 것을 가 가지고 여게 그들이 내놓은 모든 서류를 갖다 보이니까 그 사람이 있다가 말하기를 '외나 진짜 OO교파는 여게 있구먼' 그 사람 말로, 여기 목사들이 다 갔었는데 그렇게 말하더라고. 그 사람 그렇게 말한 다음에 그 사람이 '집회도 한번 와서 참 그런가 보자' 와서 구경하고 난 다음에 참 이게 사경회라고 이렇게 말을 하고 그 사람이 아무데 돌아다녀도 우리 총공회를 욕하는 말은 한마디도 그 후에 내지를 안했습니다. '옳은 건 옳다. 아닌 건 아니라' 그 사람들 실수하지 않고 죄 짓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렇지 자기를 변명하기 위해서 할 필요가 없어. 자기의 옳은 것은 변명 안 해도 주인되신 창조주 하나님이 빛의 주인이 그분이 높이 등경 위에, 주인이 높이 등경 위에 둔다 이래 했어. 그라기 때문에 가리우지 못한다는 요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만 빛이 되면 이 빛된 것을 천하 만민이 덮어 가룰라고 해도 가루지 못한다, 천하 만민보다도 더 크신 하나님이 들어내기 때문에 그것을 가루지 못한다 하는 그것을 우리가 요게서 깨달아야 되고, 또 빛만 되면, 등불 하나 켰는데 온 집안 식구에게 비취느니라 보니까 그 모든 사람이 빛 속에 있다 말이오. 모든 사람이 빛 속에 있어. 빛 속에 있다 말은 진리 속에 있다 말이요, 영감 속에 있다 말이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 속에 있다 말이오. 그러면 나 한 사람만 되면 내게 속한 자들이 다 그와 같이 된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 인간 구원을, 자기에게 속한 자의 구원은 자기 구원에 주력하는 것이 자기에 속한 자의 구원이 된다는 거, 이래서 '아브라함아, 네가 복의 기관이 되리라.' 아브라함 너 하나 잘 되면 네게 속한 사람 다 잘된다 그것을 복의 기관이라 말했어 네가 복의 기관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다 복 받는다.

이렇기 때문에, 기독자는 무슨 일에 인인 성사, 사람으로 더불어 일을 하는데, 사람으로 더불어 이 성사를 하는 것인데, 기독교는 다른 사람에게 가 가지고 어떻게 해야 된다는 그게 아니고 저만 바로 되면 모든 사람은 저절로 잘 된다 하기 때문에, 남을 붙들고 잘하기가 쉽소, 저 혼자 잘 하기가 쉽소? 예? 저 혼자 잘할 수 있는 길이 있고 모든 사람을 다 의논해 가지고 협의해 가지고 잘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있고 할 때에 자기 혼자 잘할 수 있는 그 길이 그 방편이 쉽소, 다른 사람하고 의논해 가지고 잘할 수 있는 그 방편이 쉽겠소? 천인이 있는데 이 천인을 다 바로 고쳐야 되겠는데, 천 인을 바로 고치도록 이래 하는 것이 쉽겠소, 자기 하나 고치면 천 인이 다 고쳐지는 그 방편이 쉽겠소? 어느 방편이 쉽습니까? 자기 하나 고치면 천인이 고쳐지는 그 방편이 쉽지 않소! 우리에게는 이 방편을 했습니다. 이 방편을 줬기 때문에 우리는 요것을 진리를 깨닫고 네가 빛을 나타내면 온 집안 식구가 다 환하게 비취느니라. 그들이 다 빛 속에 있을 수가 있다.

그러기 때문에, 이 교회는 수많은 교인들이 모인다 할지라도 목사는 나 하나 바로 되면 다 된다. 여게만 주력을 해야 되지 이거 뭐 말단에 저거 무슨 범죄하니까 저걸 가 가지고 어떻게 되나 그런 것은 공연히 쓸데없는 걱정이지 이제 너 하나만 자꾸 비추어서 바로 되면 그것이 바로 돼진다 하는 그것을 여게 우리에게다가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고,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요 착한 행실이라고 하는 요 정의를 우리가 바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악한 자의 꾀를 좇지 말며' 악의 대적은, 악의 상대는 선인데, 이 악과 선에 대해서 정의가 바로 되어 있지를 못합니다. 악과 선에 대해서 정의가 바로 돼 있지를 못한데, 이것을 내가 말할 때에 이제 평신도는 대번 듣는데 목사는 더디 듣고 박사는 더 더디 듣습니다. 더디 들어도 요것이 틀림없습니다. 성경에 선이니 악이니 하는 것을 요걸로 정의를 내리지 안하면 그 성경 해석은, 그 사람은 그거 하나에서 다 삐뚤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악이 뭐이 악이냐? 악은 조물주, 자존자, 우리의 구속주, 유일하신, 이분 중심 아닌 것은 전부 악입니다. 전부 악이오. 선은 이분 한 분의 중심, 위주하는 것이 선인 것입니다.

너희 착한 행실이라 말은 선한 행실이라 말인데, 선한 행실이라 말은 하나님 위주, 하나님 중심 생활, 진리 생활도 하나님 중심 생활 위주 생활이요, 영감 생활도 하나님 중심 위주 생활이요, 피의 생활도 하나님 중심 위주 생활이라, 이 생활을 해야 사람들이 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 영광 돌리니까 하나님의 택한 사람들 아니오? 이 믿는 사람은 택한 사람에게 관련되는 것이지 택하지 안한 사람들에게는 사명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사람을 위해서 하되 믿는 사람에게 더욱 더 너희들이 선을 행하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 영향은 받지요.

영향은 받지만 그것은 간접적이요 간간접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나 하나가 빛의 생활을 하면 내게 소속한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

빛 가운데 있지 하나님께 영광 돌리니까 다 안 됐습니까? 아, 그 사람들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사람됐으면 다 됐지 완전자 됐지 뭐 못 쓸 게 뭐 있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는 요 착한 행실이라는 것, 우리가 석가모니가 볼 때에 좋아하고, 또 공자가 볼 때에 좋아하고, 불신자가 볼 때에 좋아하고, 범신론자들이 볼 때에 좋아하고, 그거 다 좋아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택한 자,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자 그자들이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그 생활이 되는 것을 가리켜서 여게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영광을 돌리 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불신자가 영광 돌리는 거 아니오.

저와 아주 친한 친구 OO집사님이라고 한 분 있었습니다. OOO집사님이라고 한 분 있었는데 이분은 온 동리 사람이 다 좋아합니다. 다 존경하고 다 좋아하요. 다 좋아하는데 그러니까 저녁 먹으면 사랑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분 오기를 기다리고 있소. 또 저녁 먹으면 한번 떡 사랑에, 사랑이라 하는 거는 뭐 동리 사람이 모여서, 저녁 먹고는 모여서 노는 곳이 사랑 아니오? 사랑에 갑니다.

오늘밤에는 이 사랑에 떡 가 가지고 하루밤 놀고, 또 저 사랑에 가 놀고, 이라니까 동리 사람들도 기다리고 있고, 또 가면 참 좋아하고 모두 좋아합니다. 이라는데, 그러니까 저녁만 먹으면 그만 사랑으로 나가요. 나가 가지고 온 사랑, 사람들이 다 좋아하고 이래 재미있게 놀고, 사랑 소식은 잘 알아요.

이런데, 내가 여러번 말했습니다. '우리 OOO집사님은 이상해요', 그래 '예, 왜 그렇습니까?' 이래서 '어떻게 해서 안 믿는 그 사랑방에 가 가지고 하는데 가기야 가지만 가는데 그 사람들이 OOO집사님을 좋아하는 이유가 그거 이상해요.

이상해요. 우리는 가 가지고 그 사람들에게 조식도 하고 위하기도 하고 뭐 물건도 주고 이렇게 봉사하고 이렇게 해도 가면 그만 물하고 기름하고 갈라지는 거 모양으로 뚝 갈라져서 그 사람들이 합해지지 안하는데 어떻게 안 믿는 사람들하고 그렇게 화합이 잘되고 호흡이 되고 어떻게 그렇게 마음에 중심이 통하고 그렇게 삽니까? 내가 몇 번 말했어. 몇 번 말하면서 나중에는 내가 그런 말을 했어 '그것은 집사님이 거기서 빛의 노릇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지 진리와 영감대로의 생활을 하고 언행 심사를 하면 그 사람들이 입도 벌리지 안 하고 '어서 저거 없어졌으면 좋겠다' 이렇게 하지 그렇게 기다리지를 않습니다. 분명히 속화되고 이렇기 때문에 그렇지 그렇지 안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을 내가 아마 수십 번 말했어. 만나면 그말 합니다. 이래도 자기도 그만 재미가, 안 믿는 사람에게 가서는 재미가 있으니까 가서 재미를 누려야 되겠으니까 사랑방에 찾아가고, 또 사랑방 사람들도 좋아하고, 이랬는데 나중에 마지막에 신사 참배 때에 주재소 불러다 놓고 '너 예수 안 믿겠다고 여기서 맹세하고 도장 찍어라' 예수 안 믿겠다 하고 도장 찍고 올라왔다 말이오. 그게 달라. 그것도 산 위에 있는 동리가 숨기우지 못해 '저렇게 예수 믿으니까 신사 참배에 다 절단 났다' 그거 보여 주는 거야.

왜정 말년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그렇츰 많지만 예수 믿는 사람들이 저 신사 참배하는 게 나오니까 신사 참배 하고, 여게 OOO목사님도 천조대신 이름으로 저게 송도 앞 바다에 가 가지고 세례를 줬소. 성부, 성자, 성신의 이름으로 세례 주던 그 사람이 이제 천조대신 이름으로 세례를 줬으니까 얼마나 그 마귀란 놈이 이용을 하고 조롱을 하고 그렇게 수치를 시켰습니까? 못 숨겨.

이렇게, 산 위에 있는 동리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라.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를 진실되이 믿지 못한 자는, 진실되이 믿지 안한 자는 진실되이 믿지 안하니까 이것은 이런 천물이요, 이렇게 예수님을 배신하는 자요, 이렇게 마귀의 것이 되어졌다는 걸 똑똑히 하나님이 드러내 주신다 그 말이오. 산 위에 있는 동리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오. 덮어 가루지 못한다.

그래 가지고 그 소리를 내가 듣고 하도 기가 차서 넘어갔습니다. 나하고 잿만당이 하나 사이인데, 그래 넘어갔어. 넘어가니까 집에 없어, 그 소리를 듣고 기가 차서 갔다 말이오. 가니까, 논 가에 가니까 논 가에 없어. 이쪽에 보니까 드러누웠어 그만 이제 탈기가 났어. 그래 그라고 나니까 그만 기운도 빠지지 기가 차서 지금 죽을 지경이라. 지금 그만 늘어져 가지고 드러누웠어. 늘어져 가지고 드러누워 있어서 내가 거게 그때 또 설명을 또 했어. '아, 집사님이 빛의 노릇을 하지 안하고 사람 좋도록만 했지 하나님 좋도록 하지 안하고 이랬기 때문에 결말이 이런 결말이 나지 안했습니까?' 이라니까 이제까지 예수 믿는 거 헛일 아닙니까? 그만 그 때 조금만 그대로 가면 예수 안 믿고 말겠어, 보니까. 그만 딱 낙심해 가지고 죽을 지경이라 그래 내가 다시 지금이라도 하루 일혼 번씩 일곱 번 이라도 회개하면 되는 것이니까 지금이라도 그게 잘못된 줄 알고 회개를 하고 앞으로 하나님이 그런 기회를 주실터이니까 그런 기회를 주시거든 나는 죽어도 나는 예수 믿고 하나님의 진리대로 하겠다. 나는 그 신사 참배 안 하겠다' 그렇게 말하이소. 속 말고 '그렇게 말하면 살아납니다.' 이랬는데, 그 뒤에 그런 일을 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하지 못하고 끝을 마쳤습니다. 우리 교회에 그 지금 따님이 여기 나왔는데 오늘 새벽 기도에 나와 가지고 아마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자기의 잘못된 것을 그것을 우리가 회개치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역력히 그것을 갚아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그때 저는 내나 그 면에 있었는데, 그 면에 교회가 넷이요. 교회가 넷인데 셋 교회는 전부 한 사람 한 사람 전부 도장 다 찍고 그들에게 다 맹세했습니다.

그러나 한 교회는 한 사람도 도장 찍지 안하고 한 사람도 신사 참배 한 사람 없고, 그라면서도 내나 그들이 암만 오라고 해도 가지도 안하고 그렇게 게 그 사명을 감당하고, 신사 참배에 그때 신사 참배는 이긴 한 교회 그 교인은 주일학교 학생 하나도 신사 참배 하지 안하고 꼿꼿하게 이기고 나간 그런 교회가 하나 있었고, 세 교회는 그랬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언행 심사하는 그것이 예수 믿는 사람은 역력히 하나님께서 보응을 시켜서 세상에게 보여 준다 잘믿고 못 믿은 거, 조금 믿은 거 많이 믿은 거 전부 역력히 보여 주지 숨기지 못한다. 숨기지 못 한다 다 역력히 보여 준다. 네가 옳은 생활해서 사람들이 몰라 주고 상도 주지 안하고 인정 안 한다고 염려하지 말아라. 절대 세상이 달라들어 숨 길라 해도 숨기지 못한다.

조물주가 등대 위에 높이 든다. 이러기 때문에 너 하나 빛이 되면 네게 속한 사람들은 다 빛 속에서 살고, 진리 속에서 살고, 예수님의 피 속에서 살 수가 있다. 살면 어찌 되느냐? 그들이 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이 되고 만다.

완전히 됐다 그 말이오. 여기서 우리는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을 지워야 할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짜든지 껍데기로 알지 말고 새겨서 진리를 바로 들어야 됩니다. 요 진리를 바로 듣고 고와같이 하면 되는 요걸, 참을 듣는 사람은 자꾸 참만 들으면 좋고 어짜든지 거짓부리로 훌륭하게 미끔하게 사이다 설교를 듣고 있는 사람은 사이다 설교를 좋아하고, 또 그저 취미 있고 아무 꼭꼭 찔리지 안하는 그런 그래 둥굴둥굴하게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듯 흐리멍덩한 그런 설교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런 설교를 좋아하고, 또 저 순서는 하지 안하고 저 그트머리 좋은 것만 떨렁떨렁 뜨니까 이제 구경만 하고 좋아서 날뛰는 사람, 그러기 때문에 보배의 탑을, 보배탑을 건축하는 대지, 터를 닦아야 된다. 기초를 삼아야 된다. 쌓아 올린다 하는 그런 소리는 듣기 싫어합니다. 이제 '금탑이 됐다' 금탑됐다는 그런 결과 좋은 것만 자꾸 말하면 좋아서 우쭐거리고, 그 결과를 이루는 데에 그 순서의 과정을 말하면 다 듣기 싫다 말이오. '에이고 잔소리 많이 하고 갑갑하게 듣기 싫다' 듣기 싫으니까 너는 멸망당하지. 우리가 회개를 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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