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6 15:11
기독자의 참 자아
1989. 4. 29. 월새.
본문: 약 1:14-18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우리 기독자들은 자기가 있은 지 후에 자기 주관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겠다고 해서 그때부터 된 것이 아니고 나기 전 영원한 때 전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 곧 선택을 받은 우리들이요, 또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모든 것을 예정하시고 창조하시고 또 오늘까지 보존도 하시고 섭리도 하시고 관리하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정하신 택자들의 구원을 이루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주관이 알기 전에 우리 구원이 있은 것은 우리가 존재하기 이전, 존재하기 전 하나님의 목적 정하실 때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을 정하신 그 목적이 곧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신 그 선택인데 거게서부터 시작되어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시작이 없는 하나님이시고, 시작한 시간도 없고 마치는 시간도 없고 그는 알파와 오메가로 이렇게 영원하신 하나님인데 이 분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우리들은 시작도, 있지마는 끝은 없습니다. 왜? 끝이 없는 것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났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이래서, 우리가 중생된 것이 성령으로, 진리로 중생됐습니다. 요한 복음 3장에는 물과 성령으로 우리가 거듭났다 이렇게 말씀을 했고 베드로전서 1장에 보면은 물을 가리켜서 말씀의 씨로 '말씀의 씨로 우리가 거듭났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고, 또 여게 야고보서 1장 18절에는 '그가 그 조물 중에' 피조물 중에 영계나 물질계 모든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첫 열매라 말은 하나님의 목적 달성이라 그말입니다. 열매라 말은 결과를 말하는데 모든 피조물 중에 제일호로, 첫째로 결과를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무슨 우리로 말미암아 어떤 피조물로 말미암아가 아니고 당신 영원 자존하신 자존의 뜻을 따라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우리를 낳았다는 이 말은 곧 우리를, 낳았다 말이요, 우리를 생산했다 그 말이오. 우리를 말하자면 탄생하셨다 그 말이오.
이래서, 물과 성령으로 우리가 거듭났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물은 진리를 말하고 성령은 곧 삼위일체 중에 제삼위인 성령을 가리켜서 말씀을 합니다.
이래서 '성령과 진리로 우리가 거듭났다' 거듭났다 이라는 것은 다시 살아났다는 말도 되지마는 살아났다고 해도, 그 결과는 살아난 것이기 때문에 첫째 아담의 자손이 그것이 변하지 안하고, 첫째 아담의 자손이 다만 악령 악성 악습에게 속해 가지고 영원히 사망되어 있는 첫째 아담의 자손을, 죽은 것을 다 예수님이 대신 죽으심으로 다 제거하시고 우리가 행하지 못한 것을 대신 행하심으로써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로 세웠고, 대신 화친해 가지고 하나님과 화친된 하나님의 자녀로 이렇게 세우시는 이 공로를 설정하시고 이 공로로 책임진 자, 이 공로를 은혜로 입은 자, 곧 택함을 받은 그자들은 다시 출생하도록 했습니다. 다시 생산하도록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래. '새로운 피조물이라' 우리가 창조주의 완전자의 요소를 가지고 우리가 났지마는 피조물은 피조물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과 진리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하늘의 소망으로 우리가 다시 출생했습니다.
이래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다' 하는 것을 우리가 죽었던 자가 다시 살아났다는 말로 하나 또 우리가 죽었던 자가 다시 살아났다는 말로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실상은 하나님의 신적 요소로 우리가 출생했습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가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아난 줄만 알고, 하나님 능력이 우리를 살렸다는 살아난 줄만 알고 이렇게 알고 있지마는, 첫째 아담의 자손이 첫째 아담의 그 요소가 우리에게 와 가지고 우리가 됐습니다. 부정모혈이 와 가지고 곧 우리가 됐습니다. 우리가 뭐 법적이나 제도나 계약적으로나 이것만이 아니고 실제로 부모의 요소가 와 가지고 우리가 된 것을 가리켜서 자손이라 자녀라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둘째 아담의 자손된 것도 둘째 아담의 그 요소가 친히 우리에게 와 가지고 우리가 됐습니다.
그러면 첫째 아남의 자손 속에, 첫째 아담의 자손 속에 둘째 아담의 씨가 와 가지고 우리가 생겨졌습니다.
이래서, 거듭났다는 말을 다시 살아났다고도 해도 되지마는 살아났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새로, '다시 새로 지음받은 피조물' 새로 지음을 받은, 새로 생겨난 것입니다. 새로 생겨났기 때문에 우리는 첫째 아담에게도 자손이 됐고 둘째 아담의 자손도 됐습니다.
이러기에, 예수님의 피를 말하는 것은 예수님은 제이위 하나님이신 신성만 가진 게 아니고 신성 인성을 가져 가지고 우리를 완전히 대속하시는 역사를 해 가지고 우리가 대속을 받았기 때문에 이 대속으로 인해서 우리가, 첫째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또 성령으로 인하고, 또 대속과 성령으로 인한 이를 인해서 우리가 진리로 인해서 우리가 살아날 뿐만 아니라 우리는 다시 났습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났습니다.
이래서, 꼭 말하는 것은 뭣 때문에 자꾸 이런 말을 하느냐? 이 말이 세상에 있는 말이 아니고 이러기 때문에 세상 말로 표현을 할라 하니까 세상 방언이라 하는 것은 이것은 아주 둔한 것이고 또 얕은 것이고 또 좁은 것이고 이러기 때문에 세상 방언을 가지고는 하나님의 도를 발표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의 방언으로 발표할 정도로 발표하는데 자꾸 그 말을 거듭거듭하는 것은 인간의 방언으로 발표할 수 없는 속에 성신의 감화로만 발표되는 그것이 건너가 가지고 이런 가운데서 성신의 감화로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자꾸 이런게 거듭거듭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친히 우리 안에 와서 계십니다. 이래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가 서로 내주하심과 같이 우리들에게도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 안에 친히 내주하십니다. 그래서 이것을 가리켜서 우리를 성전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또 하나님의 지체라 몸이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꾸 이렇게 증거하는 것은 첫째 아담의 자손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영원히 첫째 아담의 자손이 영원히 있는데 영은 영원히 있을 수 있고 마음도 영원히 있을 수 있는데 몸뚱이는 영원히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부득불 이것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약한 것이 강한 것으로, 이 혈육의 것이 신령한 것으로, 모든 제한 받은 것들이 제한을 초월한 것으로 다시 부활합니다.
우리가 이 육체만 부활합니다. 이 부활하는 것은 이것은 우리를 완전자와 함께, 완전자는 우리 속에 우리의 생명이 되셨고 생명이 되실 뿐 아니라 완전자가 우리의 영원토록, 손가락 놀리는 것도 완전자로 놀리고, 우리가 눈동자 놀리는 것도 완전자로 놀리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완전자로 놀려져 가지고 우리가 영생하도록 됩니다.
이래서, 거듭난 것도 우리가 그 비밀을 참 모르나 이제 그후에 비로소 우리의 이 심신이 알게 되는 것은 이것은 예수 믿기 시작해서 부르심을 받았을 그럴 때에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고로 우리 중생된 사람은 천 명이고 만 명이고 억만 명이고 모든 중생된 사람들은 생명이 하나입니다. 첫째 아담에 속한 생명은 죽었습니다. 그리스도로 인해서 그것이 죽어서 끝나버렸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죽으실 때에 그것은 못쓸 것이기 때문에 대신 죽으셨음으로 대신 죽으실 때 같이 죽어서 끝나버리고, 중생된 자의 우리의 생명은 뭐이냐? 생명은 진리가 우리 생명이요, 영감이 우리 생명이요, 이 진리와 영감이 어떻게 우리 생명이 됐느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의 생명이 됐습니다.
그래 가지고 이렇게 피와 성령과 진리로 다시 난 우리들은 하나님을 향한 영원한 소망을 가지고 살게 되는데 하나님과 하늘나라의 소망, 하늘나라의 소망은, 하나님이 소망이니까 하늘나라 소망이지 하나님이 소망입니다. 하나님 소망으로 하나님으로 더 커지고, 하나님으로 자라가고, 하나님으로 부유해지고, 뭐 우리의 희로애락 지정의 전부 하나님으로 이와같이 충만해져 가지고 이와같이 나아가는 이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근본이시요 우리는 그의 모형이요 이래서 우리 안에 내주하는 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생된 사람들은, 이 첫째 아담의 자손은 그 생명이 열 명이면 생명이 열이요 백 명이면 백 이오. 그랬는데 이것이 각각 다릅니다. 이거는 죽어도 저거는 살아 있고 저거는 죽어도 이것은 살아 있지마는 우리자 중생된 이 자의 생명은 하나입니다. 단일 생명. 단일 생명이오. 기능도 지능도 단일 기능이오.
또 이 모든 것이 단일 기능인데 이러기 때문에 세계 교회는 단일 교회라 하는 것은 단일성으로 인한 출생된 자들이기 때문에 이거 단일입니다. 이래서 성경에서 '성령도 하나요 예수님의 피도 하나요 진리도 하나요' 우리가 중생된 것도 하나로 중생됐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거 단일 교회가 되는 것입니나.
이래서 다만 이리 되는데 우리가 주의할 것은 뭐이냐? 첫째 아담의 요소는 우리에게 왔을 때에 갈라져 왔습니다. 나뉘어져 왔습니다. 이러니까 아담의 요소가 와서 내가 생겨졌으나 아담과 나와 갈라져 있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은 것은 둘째 아담의 신인양성의 요소와 신인양성의 설정된 공로의 요소가 우리에게 와 가지고 이리 됐으나 첫째 아담의 자손과 다른 것은 그것이 분리되지 못합니다. 나누어지지를 못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진리, 성령, 이 역사가 나뉘어지지 못하고 그는 완전자이기 때문에 불가분리의 존재입니다. 불가분리의 존재요 무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분의 역사가 우리 안에 와 가지고 친히 역사합니다.
우리 안에 와 가지고 친히 역사하나, '그러면 내 모가치 있고 하나님 모가치 있고, 그러면 백 명 속에 와서 계시는 진리라면 백 가지로 쪼개진 백 가지인가보다' 그런 게 아니고 한 진리가 백 명 속에서 역사하고 한 성령이 백 명 속에서 역사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단일 생명이요, 단일 활동이요, 단일 결실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세계 교회가 다 단일 교회라 하는 것은 처음에 깨달은 사람은 여게서부터 시작된 것을 알아서 단일 교회라 했지마는 그 다음에 단일 교회라 하는 건 그저 '이 교회는 하나라' 이름이 좋아서 단일 교회라 이렇게 말하고 있지 단일 교회 근본이 뭐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가 독재주의니 뭐 민주주의니 하는 이 말이 신강이 있고, 그런 말을 할 때에 깜짝 놀라서 '그게 어데 그럴 수가 있겠느냐?' 이래야 될 터인데 그것이 머뭇거리고 그래도 옳다고 긍정을 하고 뭐 또 이러니 저러니 논리 시비를 하고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이 이것이 도에서 멀어져서 그런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힘이 뭐인가? 그전에 늘 말하기를 힘과 힘을 구별해야 된다. 첫째 아담에게 속한 힘이 있고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새로 난 자, '새로운 피조물' 그러기 때문에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보면은 '이제는 우리가 육체대로 사람도 안 알고 육체대로 그리스도도 알지 않는다. 이전 것은 다 지나간 것이다. 새로운 피조물이다.' 그 말은 우리가 중생된 사람이 예수님도 알고 사람도 알고 그러면 피와 성령과 진리와 하늘의 소망으로 이제 다시 난, 다시 난 우리.
여게는 내라는 개성을 붙힐 수 없는 것은 꼭 주님과 연합이 되는, 죽으심에, 부활하심에, 존재하심에 연합이 된 이것이 아니면 이런 피조물을 초월한 이 고차원의 유일의 이런 구원을 우리가 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중생된 사람이 내가 됐으니 거듭난 사람이 이게 내라, 이것은 영생을 가진 사람이요, 참 내요, 그리스도인인데 이 사람으로 살면 사는 그것이 쇠해지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영생이 돼 버려. 이러니까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어떤 사람은 영생하는 생명으로 사니까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약한 것이 강한 것으로. 욕된 것이 영광스러운 것으로 혈육의 것이 신령한 것으로 이렇게 자꾸 성화돼서 바꾸어지고, 어떤 사람은 그것마저 그것이 하루 살면 죽어졌습니다. 하루 살면 다시 찾지 못하고 죽어졌습니다. 이다음에 부활은 하지마는 심판부활 받아 가지고 그것이, 그렇게 하나님과 떨어져 살앗기 때문에 심판부활 받는데 우리가 사는 것은 생명부활 받는 것은 이제 살아 있는 동안에 첫째 아담의 것은 차차 차차 이것이 둘째 아담의 것으로서 이것이 성화됩니다.
마치 그전에 물을 들여서 탈색시켜 가지고 물들인 것과 마찬가지로 첫째 아담에게 속한 그것이 타락돼서 악령 악성 악습으로 완전히 물을 들여서 우리의 영육을 그것이 꽉 물들여 가지고 악령 악성 악습의 영도 되고. 마음도 되고, 고기덩어리도 됐던 이것을 예수님의 대속으로 탈색을 시켜 가지고 이것을 다시 거듭나게 했기 때문에 껍데기는 볼 때에 첫째 아담의 자손이지마는 알맹이는 볼 때에는 둘째 아담의 자손입니다.
이러니까 첫째 아담의 자손은 이것은 완전히 무능해서 형체만 가지고 있지 아무 작용은 하지 못하고 둘째 아담의 자손이 주장합니다. 둘째 아담의 자손은 뭐인데? 그것은 피. 성령, 진리, 하늘의 소망 이것이 주장을 해 가지고 그로 움직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는 육체대로의 사람을 알지 안한다' 그 말은 이제 중생된 이 사람이 사람 접촉도 하고 예수님을 믿는 것도 이래 믿지 육체의 사람으로 믿는 게 아니라, 첫째 아담의 자손으로 믿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힘과 힘을 구별해야 되니 우리 힘은 뭐인가? 우리의 힘은 예수님의 완성이 우리의 힘입니다. 예수님의 완성이 우리의 힘이오. 예수님의 완성은 어떤 것이 완성인가? 예수님은 네 가지 완성했는데 예수님의 완성이 우리의 힘이요, 성령이 우리의 힘이요, 진리가 우리의 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욜 너희들이 알리라' 이랬어, '알리라' 이래서 우리를 성전이라고, 우리가 하나님되는 게 아니고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구별하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거처하시는 성전이요 하나님은 그 안에 계시는 하나님이시라. 이래서 이분이 우리의 힘이요, 능력이요, 생명이요, 지혜고 이러기 때문에 이 분이 우리의 힘이라.
그러기 때문에 목회하는 사람들도 이 능력이 제 능력인 줄 알아야 되지 뭐 세상의 과학의 힘이. 과학의 힘은 힘이지만 과학의 힘은 죽은 것이기 때문에 죽은 것은 생명을 만들어 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생명이 자라가지 죽은 건 자라지 못합니다. 이러니까 죽은 것을 산 것이 먹고 자라 갈 수는 있습니다. 이래서 '썩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첫째 아담에게 속한 이 모든 것, 일차 창조의 이런 것들은 이거 무슨 과학이라든지, 세상의 지식이라든지 뭐 이런 거는 다 이것이 밥이 돼서 그것을 먹고 이제 자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런 것이 우리에게 밥이 돼서 그것으로서 우리가 생명이 삶켜서 생명화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 필요한 것이지 세상의 과학이라 하는 것이 거게 생명이 들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라. 천하 과학을 다 보태도 생명이라고는 조그만치도, 먼지만치도 생명은 들어 있지를 않습니다. 다만, 순전히 죽은 것이오. 순전히 죽은 것인데 그러면 그거는 우리가 잡아먹고 우리가 먹음으로서 생명의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뼈가 되고 힘이 됩니다. 중생된 사람의 것이 됩니다.
이래서, 이 생활을 한 그 차이가 있으니 그것을 가리켜서 '부활한 자의 영광이라' 이래서 부활한 자의 영광의 차이가 있다 이러기 때문에 바울이 빌립보 3장에 말하기를 어떻게 하든지, 이제 얻었다 함도 아니요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뒤에 모든 거 두고 앞을 향해서 지금 자꾸 얻고 자라가고 자꾸 성화돼 나가기만 힘을 쓰는데 이것은 뭐이냐? 최종으로 한 마디로 말하면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하여 그리스도가 어떻게 죽었으며, 그리스도의 죽음이라 말은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완성이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의 완성을 나도 붙들어서 어떻게 하든지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해 가지고 예수님의 부활의 권능에도 동참하려고 한다.
하는 그것이 곧 부활한 자들의 영광의, 차이를 가리켜서 말씀한 것입니다.
반사 선생님들은 공과를 외우고 실행 실천해서 거게서 경험과 체험의 지식을 얻어 가지고 요 성경 지식을 증거해야 됩니다. 요 성경은 진리인데 성경 진리를 자기가 경험하고 체험한 요 지식은 요것은 주관 지식 자기 지식이 돼져.
자기 지식으로 하나님의 이 지식을 전달합니다. 그럴 때에 자기가 경험하게 된 그 경험도 전달되고 체험도 전달놨서 그 능력도 전달이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실지로 행하는 자는 행함이 전달될 수 있고 행하지 않는 자는 행함은 전달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반사 선생님들은 꼭 그걸 주의하고 하루 삼십 분 기도 잃지 맙시다. 이 지금 뭐 하나의 무슨 조롱거리 같은 그런 말을 지금 듣고 있습니다. 왜? 하루 삼십 분 기도 우리가 팔년째입니다. 계속해서 지금 이렇게, 광고를 매일 하지는 안했지마는 자꾸 드문드문하게, 매일 한 지도 벌써 오래 됐습니다.
이렇게 하루 삼십 분 기도 한다는 이것이 이게 뭐이냐? 우리는 연약하고 앞으로는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찰, 그때는 새로 성전에 들어오는 사람이 없어. 가득 찰 수 있는 하나님의 이 교회에 마지막에 탑을 쌓고 꼭지를 만드는 것처럼 이렇게 완성할 수 있는 이것이 신약교회인데 구약교회가 사천 년 동안에 지내왔고 이천 년 동안 신약교회가 이것이 말세요 이거 마지막에 완성을 이루려고 하는 것인데 이런 데에는 그만침 연단이 심합니다. 연단이 약하면은 그 연단된 물 건이 그것이 온전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금으로 비유했는데 금도 백 도에 연단하는 것과 뭐 예를 들어 천 도에 연단받은 것과 다르니까 이제 최고로 연단하기 위함이니까 최고의 연단할 그 불이 나올 것이고 환란이 올 터이니까 이것을 가리켜서 베드로전서에 말하기를 불시험이 나온다 불시험이 나온다 이랬어. '불시험이 나올 때에 너회들이 이상하게 여기지 말고 이것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요, 불시험 받은 자 머리 위에는 성령이 지금 같이 동행하고 계신다.'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이런 능력을 받지 안하면은 우리가 자유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자유는 했지마는 자유를 다 뺏기기 쉽다 말이오. 뺏겨 버리면 이 건설구원이라는 것은 절단이 나 버려, 이렇기 때문에 삼십 분 기도 꼭 잃지 안하고 해야 됩니다.
그라고 권사님들은 아홉 분이, 또 목사님들은 두 분이, 장로님들은 열한 분이, 왜 이분들을 이래 자꾸 소개하느냐 하면은 이분들도 이와 같이 한다 하는 것으로서 교인들에게 힘이 되리라 해서 그걸 바라고 이래 말하고, 이라니까 장로님들도 자기네들이 '내가 나은 것은 무슨 세밀한 조사로 해 가지고 자꾸 이래 가지고 뭐 나오고 안 나오고 이래 한다' 하는 그렇게 귀신 생각일랑 가지지 말고, 그것 다 귀신 생각이라 그거는.
그런 거 하지 말고, 내가 나온 것은 자꾸 이래 가지고 말해서 모든 사람들이 '장로님들도 이렇게 기도하고 있는데 우리들도 열심히 따라 해야 되겠다.' 이렇게 모본을 보여서 그들에게 좀 이 기도하는 것을 격발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래 한 것이니까 책임이 무거운 줄 알고 이래야 될 터인데.
'장로는 기도 하러 왔다 하는 이 조사를 심히 해 가지고 이렇게 발표하니까 참 서부교회 장로 하기는, 무슨 영광은 없고 장로라고 막 높여 주는 거는 하나도 없고 자꾸 이런게 치기만 치고' 그게 높여 주는 거라 말이오. 그게 참 높여 주는 것이요 세상에서 '장로님' 이렇게 높여주는 거는 죽이는 것이라 그 말이오.
내가 애양원 교회에 가니까 장로석이 있어요. 장로석이 주루루 있는데 장로들은 거게 떡, 거게 장로석에 앉는 그게 영광이라, 이제. 장로님들 이래 떡 앉았는 것이.
그것은 죽이는 것이요, 낮추는 것이오, 거게서도 잘 알면 '나를 이렇게 이래 의자에 놓은 것은 모든 교인들의 표본으로 앉혀놨기 때문에 나와 같이 되라고 하는 것이니까 내가 먼저 되지 안하면 안 되겠다.' 그 자리에 앉는 것이 영 떨리고 기가 차야 될 터인데 그거는 모르고 하기 때문에, 손 목사님은 그런 뜻으로 앉혔지마는 실제 장로들은 그걸 모르더라 그 말이오.
이래서, 자꾸 광고 하고 이라니까 '내가 빠져서는 안 되겠다' 이렇게 성신의 감화로 와야 될 터인데 성신의 감화로 안 오면 안 돼요. 목사도, 장로도, 나도 마귀 감화 올 때도 있고 성령 감화 올 때도 이래 있으니까 그것은 보거들랑은 자꾸 힘써 죽여서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것은 죽이고 중생된 새사람이 살아서 이 제는 것든 것을 육체대로 모든 것을 접하지 안하고 알지 안하고 이제 중생된 새사람으로,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이렇게 우리가 모든 것을 내가 돼 가지고 다른 것을 상대해야 되겠다 그거요.
시간이 벌써 한 팔분이나 지났습니다. 이러니까 빨리 가서 또 자녀들을 이렇게 깨워서 주일학교, 중간반 새벽기도에 나오도록 하십시오. 이것이 우리의 힘입니다.
이게 영생하는 힘이오. 천하에 있는 지식 까짓 거 다 뚜드려 뭉쳐도 하나님의 지혜에 억만분의 일도 되는 게 아니라 그거는 다 죽은 것이고 이거는 산 것이라.
이러기 때문에 영원한 이 완전한 생명 능력으로 장성해지고 강건해지려고 자꾸 이래 해야 되는데 나도 속았어요. 그 전에 처음 예수 믿을 때에, 나는 그걸 원했지마는 자녀들이 자꾸 공부를 앞세우고 이 진리를 뒤세우고 이렇게 할 때 공부하기, 공부시키기 위해서 뭐 이리 저리 했지마는 다 속은 일이라 그 말이오.
그러니까 내가 그전에 말하기를 '지식은 두 가지 지식인데 하나님의 지식이 앞서고 주격이 되고 이 모든 세상 지식은 거게 피소유격이 되어져야 되지 이게 동등 되거든 세상 지식을 이걸 쉬어라. 쉬어 가지고 어쨌든지 하나님의 지식이 주격 위치가 뺏기지 안하고 그래 돼야 된다.' 하는 그것을, 그때 나는 배우지도 못했고 그리 가르쳐 주는 사람들도 없었고, 이랬으니까 그 모두 또 후회가 돼서, 나는 경험하고 체험해서 후회가 돼서 꼭 그렇게 하라 하지마는 또 저거는 지금 '자기네들은 그래 하고 지금 우리는 못 하구로 그란다' 마귀 요놈이 그래 꼬우고 요래 꼬우고, 어짜든지 마귀란 놈이 이렇게 저렇게 꼬우는 것은 굉장합니다.
마귀의 꾀움이라 하는 것은 뭐 살아가 볼수록이 어떻게 사이비하게 묘해서 그만 훼딱 유혹시키고 요리 조리 해 가지고 그 방편이 백도 천도 아니요, 굉장해요.
요거 가지고 안 되면 조거 하고, 조거 가지고 안 되면 요거 하고 그러니까 마귀의 이 유혹에 안 빠지기가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빨리 가서 자꾸 참석시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그 속에 없으면 예수 팔게 됩니다. 딴거 없어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