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6 15:05
기독자의 어려움 목자에게 안기라고
1988. 11. 11. 금밤
본문:마태복음 10장 16절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내가 너희를" 하는 말씀은 주님이 구속받은 중생된 성도들에게 대해서 하신 말씀 이라는 뜻입니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보낸다는 말씀은 이 세상 생활하도록 세상 에 내 보내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면 이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예수님 믿는 생 활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내가 너희를 보냄이" 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이 세상에서 신앙 생활하게 하심이 무엇과 같은고 하니 "양 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거와 같도다 비유컨대 이 러하다는 말씀입니다. 양은 우리 성도를 가리켜서 양이라 이렇게 여게 비유했고 이 리라는 것은 아주 양을 제일 잘 잡아먹는 맹수입니다. 양에게는 제일 해독을 많이 끼치는 맹수입니다. 이 맹수는 그렇게 크지는 않고 사자나 범이나 그런 맹수와 같은 그런 맹수는 아니고 좀 그보다는 작은 맹수인데 양에게 대해서는 제일 두려워하는 그 맹수입니다.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면 우리에게 제일 두렵고 무섭고 또 우리를 많이 해하는 그런 그 속으로 보낸다. 양을 이리 가운데라고 하니까 가운데라 하니 그 이리 속으로 보낸다, 이리 가운데 이리 속으로 보낸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서 신앙 생활할 때에 어떤 그 환경 속에서 신 앙 생활하도록 하느냐 하면 우리를 제일 해치는 쉬지 않고 해치는 아주 양에게 대해 서는 이리와 같은 그런 것으로 가득 찬 그 속에 우리를 살게 하신다 하는 말씀입니 다.
그러면, 믿는 사람이 이 세상 신앙 생활 할 때는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요 또 창조주시요 모든 것을 주권하시는 이 하나님이 우리를 피로 구속하시기까지 사랑 하셨으니까 이 하나님이 모든 권세를 가졌으매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때에 아주 평안 하고 참 안심하고 잘 살 수 있도록 이렇게 우리 주위 환경을 만들어 주시지 아니하 고 우리가 견딜 수 없는 아주 심히 고통스럽고 원수 많고 가해자가 심히 많은 그런 가운데에 살도록 이런 세상을 만들어 가지고 이런 세상 속에 살게 한다 하는 이 이 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했습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신앙 생활할 때는 아예 세상에서 평안함을 기 다리면 안 됩니다. 평안함은 없습니다. 평안한 환경 주위를 찾는 것은 그것은 믿는 사람이 믿음을 다 버리고 안 믿는 사람들과 같이 살게 되면 세상에서 일시는 평안한 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이 믿는 생활을 하면 세상에는 평안한이 없는 것입니다.
세상은 다 악한 자 안에 있는 것이 세상이요 또 세상은 죄로 되어 있는 세상이요 또 마귀가 왕권을 가지고 있는 세상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요한복음 15장에 말씀한 거와같이 우리가 세상과 하나가 되면 세상은 저의 것이라고 우리를 사랑하고 보호하 고 참 우리를 잘 도와 줍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에서 나와서 세상과 같은 언행심 사를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따라 언행심사를 하는 이 신앙 생활을 하려고 하면 온 세상은 우리의 적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대립이 되는 것입니다.
그거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물은 아래로 흘러내려가고 있는데 거게서 물을 따라 서 아래로 흘러내려가면 아무 마찰 없고 좋지마는 그 물이 위로 거슬려서 올라가면 내려가는 물과 서로 충돌이 돼 가지고 거게 여러가지 물결이 거슬리는 물살이 일어 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믿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마귀의 법대로 세상 법대로 죄악의 법대로 산 다면 아무 문제가 없지마는 이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좇아서 의롭게 이렇게 살려고 하면 여게는 마찰이 있는 것은 필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마찰 있는 것이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 이 렇게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그러면 주님이 우리를 이리 가운데로 보내서 우리 환경 이 이리가 되도록, 우리 환경이 모든 어려움과 고통과 마찰되는 이런 환경에 살도록 주님이 우리를 그렇게 인도하시고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 때에 내가 신앙 생활 할 때에 무슨 반대든 지 어떤 반대든지 어떤 마찰이든지 어떤 어려울이든지 있는 것은 그것은 나로 하여 금 그런 어려움을 좋어야 될 것이기 때문에 그런 어려움을 주님이 당하게 해 주셨 다. 그러면 목자가 이리 없는 데로 저리 딴 데로 보내면 이리를 안 만날 터인데 하 필 이리 가운데로 보냈기 때문에, 이리 속으로 보냈는고로 그 이리는 목자가 그랬기 때문에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우리를 이 세상 의롭게 옳게 바르게 살려고 할 때에 여러가지 마찰 과 고통과 모든 총들과 박해가 있는 그런 환경을 당신이 만들어 가지고 또 나를 그 가운데 살도록 집어넣어 가지고 우리를 믿음을 기르고 우리 구원을 이루어 가도록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우리에게 어떤 그 환경의 마찰이 있든지 어려움이 있든지 고난이 있든지 대립이 있든지 충돌이 있든지 어떤 것들이 있 든지간에 그것은 다 주님이 그 렇게 일으키셨다 하는 요것을 먼저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에게는 어떤 어려움이든지, 우리에게 어려움은 우리가 신앙 생활 할 때에 어려 움도 있고 양심 생활 할 때에 어려움 있는데 어려움 있는 또은 이 경제적 어려움도 있고, 또 사업적으로 어려움도 있고, 또 우리가 이런저런 활동하는 활동적으로 어려 움도 있고, 또 우리 신체상 어려움도 있고, 뭐 여러가지 종류의 어려움들이 많이 있 는 어려움들 속에 살도록 하셨다 하는 요것을 우리가 단단히 기억해야 됩니다.
믿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생명을 우리 위해서 제물로 버려 주시기까지 하셨 으니까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 세상살이 하게 할 때에 아주 평안하게 잘 살게 그렇게 해 주시리라 이렇게들 생각하기 쉬운데 그와 정반대입니다. 내가 너희들을 세상살이 하는 것은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낸 거와 같은 그런 세상살이를 하도록 내가 했다 하 는 요것을 우리가 단단히 기억을 해야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살 때에 뭐 평안하고 즐겁고 좋고 아무 일 없이 하 나님의 보호로 이렇게 살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반대로 이리 가운데 보내는 거와 같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어려운 가운데 살도록 해 놨는 데 어려운 가운데 살도록 한 것은 사랑하는 주님이 어려운 가운데 살도록 했으니까 어려운 가운데 사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가 있기 때문에 어려운 가운데 살도록 했지 필요가 없으면 어려운 가운데 살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반드시 우리는 세상에 살 때에 어려움 속에서 살아야 된다. 주님이 이렇게 만들어 놨다. 어려움 속에 살아야 된다. 뭐 이런 어려움이 안 있으만 저런 어 려움이 있고 저런 어려움이 없으면 이건 어려움이 있고 뭐 어쨌든지 어려움이 이것 저것 자꾸 이렇게 되바꿔 교체가 돼 가지고 어려움이 있는 어려움 속에서 살도록 했 다 그 말이오.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 너희들을 세상 생활에서는 어려움 속 에서 살도록 그렇게 주님이 하셨습니다.
어려움 속에서 살도록 하신 것은 주님이 그 어려움으로 인해서, 이리로 인해서, 이 리로 인해서 이리에게 잡아먹히도록 그렇게 주님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낸 것 아닙 니다. 양을 이리에게 잡아먹히도록 이리 가운데 보낸 것 아니고 주님은 양을 이리 가운데 당신의 피로 값 주고 산 성도를 이리와 같은 이 속에 보내는 그 사랑의 목적 이 있고 사랑의 뜻이 있는 것와 우리가 여게서 잘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 목적과 뜻은 뭐인고 하니 이리의 어려움을 인해서 더 좋게 되는 이유가 뭐인가? 이리가 환경에 둘러싸고 있으니까 이리가 무서워서 그 사람이 그만 이리에게 기합이 돼서, 이리에게 기합이 돼서 이리에게로 기어들어가면 참 물려 죽습니다.
이 고양이 보면 쥐를 잡아다 놓고, 쥐라는 놈이 고양이를 보고 그만 거게서라도 죽 자 살자하고 한번 훅 뛰어서 그만 어데 구멍으로 들어가 버리면 좀 살 수 있을 건데 겁이 나 가지고 고양이 앞에 있는 좋가 가지를 못합니다. 가지를 못하고 이 쥐를 고 양이가 훅 던져 놔도 그 쥐가 고양이 앞으로 기어들어옵니다. 고양이를 피해 가지 못하요. 겁이 나서 자꾸 고양이 앞으로 들어오지 고양이를 피해서 도망을 못 놔.
그와 마찬가지로 믿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어려움을 닥치면 그만 어려움을 주는 그것 은 이리인데, 여게 이리로 비유했는데 이리 앞으로 기어들어가면 그만 죽습니다. 이 리가 있으니까 옆에 목자가 있으니까 목자에게로 피해가야 되지 이리가 겁이 나서 이리에게 기어들어가면, 이리에게 아부하면, 이리에게 속하면, 이리에게 들어붙으면, 이리로 인해서 자기가 구원을 얻고 피난을 하려고 이렇게 생각해서 이리에게로 기어 들어가면 그만 잡아먹히고 맙니다. 쥐라는 놈이 고양이가 너무 무서우니까 고양이 앞으로 기어들어가 사람도 못난 사람은 아주 잘나고 강한 세력 무서운 세력 있으면 그 세력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리 기어들어갑니다.
제가 6·25 때 보니까 그 인민군들이 사람들을 저희에게 반동분자라 해 가지고 사 람을 잡아서 사십 명이고 오십 명이고 이 전선줄로 묶어 가지고 그래 가지고 지금 죽이러 갑니다. 그런데 인민군 찍해야 둘 따라가요. 둘 따라가지 여럿이 따라가지 않 아. 둘 따라가는데 사람은 한 사오십 명 묶어 가지고 갑니다. 가면 그래 가 가지고 그 산골짝에 가 가지고는 손을 마을 풀어 놓으면서 연장을 가지고 구덩이를 파라 합 니다.
구덩이를 파라 하면 그뭐 파 봤자 그 구덩이제가 묻혀 죽을 터인데 뭐 팔 게 뭐 있 겠습니까? 이미 죽기는 죽는 것이니까 '뭣 때문에 나 묻혀 죽을 그 구덩이를 팔 게 뭐꼬? 안 판다.' 이럴 수 있는데 사람들은 그래 못 합니다. 파면 좀 그동안에도 좀 잘 보이면 뭐 효력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팝니다. 끌러 놔 가지고 파라 하면 열심히 파면 지금 아마 살려 줄까 해서 열심히 파요, 그 인민군에게 잘 보이려고. 그럴 때에 밑에서 자꾸 하나씩 들어가서 죽이고 난 다음에, 안 들어가려 합니다. 들어가라 할 때 안 들어 가면 호통을 치면, 들어가 봤자 땅 속에 묻힐 건데 그 호통 만나 봤자 별게 뭐 있겠소, 있기를? 이래도 거게서 호통을 치면 반항하지 못하고 '안 들어가 나?' 고함 지르면 쪽 들어간다 말이오. 인간은 그렇게 죽음 앞에 두려워하는 거와 마 찬가 지로 쥐 그놈도 고양이 앞에 가면 자꾸 기어들어가요, 피해 달아나지 못하고.
이거 모양으로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어려움을 당 하면 어려움 그까짓 놈을 네까짓 게 어려움을 주든지 말든지 해라 하고 그만 주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면 되는데 그 어려움 그것으로 인해서 좀 구원을 얻어볼까 해 서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으면,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으면 이 돈으로 말미암아 제 가 어려움을 면해 볼라고 돈에게 기어들어갑니다.
돈에 종이 돼서 돈에 굴복하고, 무슨 세상 권세가 어려움을 주면 세상 권세한테 들 어붙어 가지고 어려움을 면하려고 해 보고, 또 무슨 사업적인 어려움이 있으신 그 어려움을 주는, 사람이 주든지 사회가 주든지 정권이 주든지 하면 거게 들어붙어 가 지고 그 어려움을 면해 보려고 또 그렇계 지금 애를 쓰고, 또 병이 들어서 그 고통이 되면 이 병이 들었으면 병에 들어붙어 가지고 해결을 지 으려고 그 병을 어떻게 하든지 그 병에서 치료를 받으려고 병에 들어불어 가지고 병 으로 인해서 자기가 치료를 받고 고침을 받으려고 자꾸 병에 들어붙습니다. 병이 들 었으면 자꾸 병으로 들어붙어요. 병에 치료받을라고. 병으로 말미암아 자기는 그 해 방을 받아 병에게 해방을 받으려고 자꾸 이렇게 병으로 들어붙는다 말이오. 그게 꼭 쥐라는 놈이 고양이가 너무 무서워서 고양이 앞으로 기어들어가는 것 한가지라. 그 러는데,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다 절단이 납니다.
이러니까 이 우리 기독자에게 오는 모든 어려움은 이리가 주는 어려움 같은 어려움 인데 그 어려움을 당할 때얘 어려움에게로 기어들어가는 사람은 다 죽습니다. 이리 가 있는데 그 이리에게로 들어붙어, 이리가 무서워서 이리 앞에 기어들어가면서 이 리에게로 들어붙고, 이리에게 기어들어가고 그리 붙으면 살 줄 알지마는 들어가면 잡아먹히고 만다 그 말이오.
그와 마찬가지로 이제 우리 기독자들이 어떤 종류의 어려움이 오든지 어려움이 올 때에 그 어려움 그것에게 들어붙으면 우리는 죽습니다. 어려움을 주는, 어려움을 주 는 거게 들어붙으면 헛일입니다. 어려움 주는 그거는 여기 이리로 비유했는데 어려 움 주는, 정권이 어려움 주면 정권에게 또 세상 법이 이제 사형을 주려고 뭐 사형선 고를 내리면 세상 법과 권세에게 들어붙어 가지고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마지막까지 그렇게 사람들은 노리고 있는 것이 인간인 것입니다.
그러나 요 비유에 보면 이리에게로 들어가면 죽습니다. 그러면 사는 같이 뭐이 사 는 길인가? 사는 길은 목자가 우리를 이리 가운데로 보낸 거와 같은 그런 이 환경을 만들어 가지고 자기가 처세가 되어지도록 그렇게 하는 이유가 뭐인가? 목자가 양을 이리에게 잡아먹히라고 그렇게 했는가? 그게 아니고 목자는 이리 가운데 양을 보내 고 목자가 있으니까 그 양들이 이리가 무서워서, 이리가 무서움으로 인해 가지고 목 자에게로 빨려 기어들어갑니다. 목자에게로 그만 뛰어가.
목자에게로 보고 들어갈 때에는 목자와 자기 사이에 구렁이 있으면 뭐, 구렁텅이가 있으면 구렁텅이 빠져도 죽자살자하고 목자에게로 달려들어가고 또 가시덤불이 있으 면 가시덤불에 막 뜯겨도 목자에게로 기어들어가고. 왜? 이리가 무서워서 무서운 그 것을 인해서 이리의 무서운 그것이 목자에게로 빨리 달려가고 급하게 달려가고 전심 전력 기울여서 달려 목자에게로 가도록 하는 그 이리떼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 님이 이리떼를 만들어서 이리떼 속으로 우리를 보낸다 하는 요것을 여게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이래서, 믿는 사람들에게 어떤 모양의 어려움이든지 어려움 오는 그것은 다 주님이 그 어려움이 일어나도록 당신이 조절을 하셔 가지고 다 설정해서 영원 전부터 그렇 게 해 놓은 것인데 그 어려움은 그 어려움으로 인해서 주님에게 빨리 달려가서 주님 으로 더불어 가까와져 주님의 품에 안기는 그것을 주님이 원하셔서 그렇게 어려움을 주신 요 사실을 우리가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어떤 어려움이든지 올 때 그 어려움으로 망하라고 주님이 그 어려움 주신 것이 아니고 또 그 어려움을 주님께서는 면해 주실 권리가 없는 게 아니고 얼 마든지 면해 주실 능력이 있고, 있는데 다만 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에 우리 믿는 사 람이 어려움으로 기어들어가고 목자를 피해서, 목자는 자기가 소용 없다 생각하고 어려움을 주니까 어려움 그것에게 가서 아부나 하고 들어붙고 이래 가지고 살려고 어려움을 주는 그 어려움 그것에게로 기어들어가면 다 잡아먹힙니다. 다 잡아먹혀.
이러니까, 믿는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올 때에 이제 경제적으로 어려움 오 니까 경제에게 들어붙어 가지고 해결지으려 하는 사람은 그 경제로 말미암아 망하고 맙니다. 자기에게 또 신체적 병이 들어서 어려움이 있으면 거게 그로 인해서 주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지 않고 자기는 그 병에게 들어붙어서 그 병에게 자기는 어떻게 혜택을 입어서 해방을 받으려고 자꾸 성에 들어붙는다 말이오. 병에. 주님에게 들어 붙지 않고 병원에 들어붙든지 병원 의사에 들어붙든지 약에 들어붙든지 자꾸 그리 들어붙는다 말이오. 그러면 그런 것에 들어붙는 사람은 다 절단나고 망하고 맙니다.
또, 자거가 이 세상에 무슨 어떤 그 정권이든지 어떤 세력이든지 이런 것으로 인해 서 어려움을 당하면 어려움 당할 때에 그 어려움으로 인해서 '아, 이러니까 어려움, 어려움이 세상 정권이 나에게 어려움을 주니까 정권보다 더 강하시고 크신 주님이 계시고 나를 위해서 피흘려 구속 하시기까지 사랑하신 주님이, 주님이 계시니까 주 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니까 나는 주님 앞으로 들어가서 나는 이 피난하련다.' 이렇 게 생각하지 않고 정권이 어려움 주니까 이 정권에게 들어붙으려고 온갖 노력을 합 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그 정권으로 말미암아 멸망을 받고야 맙니다.
또 이 세상 모든 운동이 들어서 이런 인간들의 이런 거짓말 운동 뭐 참말 운동 복 술 운동 뭐 궤휼 운동 그 사기 협잡 운동 별별 운동들로 인해 가지고 자기가 큰 고 통을 당하면 자기도 아이쿠 이러니까 나는 그 운동을 더 심하게 해 가지고 더 권세 있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 가지고 운동을 해서 내가 이 어려움을 면해 보겠다. 그러 면 인제 그때 어려움 당할 새 권세로 말미암아 어려움 오면 권세에 들어붙어 가지고 권세로 인해서 해결을 지으려고 권세에 들어붙는 사람들은 다 멸망을 받고 맙니다.
요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이 진리의 법칙이라는 것을 여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럴 때에 어떻게 해야 되는가? 목자에게로 달려가면 된다. 목자에게로 달 려가면 된다. 목자에게로만 달려가서 목자만 만나면 이리 그까짓 놈이 뭐 이리가 가 까이 오면 목자가 잡아버립니다. 그만 목자 들은 능숙해서 목자가 지팡이를 가졌지 또 이런 맹수를 치는 연장을 가졌지 이러니까 이리가 가까이 오면 맞아 죽을 터이니 까 이리 그놈이 그만 가까이 오지 않아요. 목자에게로 가면 목자에게 가까이 올 때 는 따라오지마는 목자에게 딱 안기기 시작하면 그만 도망쳐 버려요. 요것을 요 간단 하게 말했습니다.
그것을 어데서 보고 가르쳤느냐 하면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요래 놓고 "같도다 그러므로",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보다 그 러므로" 그렇기 때문에 너거 할 일이 뭐이냐?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 둘기같이 순결하라"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배암은 마귀를 말합니다. 또 배암은 이 세상을 말합니다. 이 세상을 배암, 이 세상 지식을 배암으로 배암의 지식이라고 했고 이 세상 지혜를 배암의 지혜라고 이렇게 해서 지혜는 배암같이, 배암같이 지혜롭고 하는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이 세상의 온갖 지혜들이 있습니다. 세상의 온갖 지혜들이 가득 찼어. 세상. 세상 지혜, '세상 지혜 같고' 그말은 무슨 말이냐? 요걸 잘 알아야 돼. 세상 지혜 같고 '배암같이 지혜 롭고' 하는 거는 배암의 지혜, 배암의 지혜와 같이 지혜롭고 요 말은 무슨 말인고 하 니 배암의 지혜를 잘 네가 관찰하고 그 말이오. 배암의 지혜를 네가 네 지혜로 삼으 라 말이 아니고 배암같이 지혜롭고 하는 그말은 배암의 지혜를 네가 잘 관찰하고 바 로 관찰하고 이 세상 이런 저런 모든 그 세상의 역사에 방편, 또 마귀들의 모든 역 사의 방편, 운동, 그런 것을 네가 잘 관찰해라. 어떤 것인고 네가 잘 보고 살피라 그 말이오. "지혜롭고" 하는 말은 관찰하라 그 말이오. 관찰하고.
그러면 관찰하고 그대로 살면 안 돼 그대로 살라 말이 아니라. 네가 그게 이 세상 에 하는 그 모든 그 역사를 네가 잘 관찰하고 너는 "비 둘기같이 순결하라" 비둘기 는 성령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성령님의 그 온전하심같이 너는 성결로 살아라. 성결로 살아라.
그러면, 이 세상 온갖 마귀의 역사를 잘 관찰하고 거게 물들지 말고 거게 피동되지 말고 거게 따라가지 말고 그로 인해서 움직이지 말고 잘 관찰만 하고 난 다음에 관 찰을 해서 관찰하고 너는 그와 정반대인 비둘기 순결로 살아라. 성령의 감화 감동의 진리로 네가 살아라 요걸 가리킨 것입니다.
요게 뭐이냐 하면 위에 뜻이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 다" 그러기 때문에 이리 가운데 보낸 것은 이 세상 모든 죄악의 어려움 속에 보내는 그것은 이 어려움을 인해서 더 너를 성결하도록 하기 위해서 보냈다. 이 어려움을 인해서 주님으로 더불어 더 밀접하도록 하기 위해서 보냈다 요 진리를 깨닫고 자기 에게 어떤 어려움이 오든지, 가정 어려움이든지 사회의 어려움이든지, 개인 어려움이든지, 부부 어려움이든지, 사업 어려움이든지, 신체 어려움이든지, 활동 어려움이든지 출세 어려움이든지 뭐 어 떤 어려움이 오거들랑은 요 어려움은 주님이 주셨다. 이 어려움 주신 목적이 뭐이 냐? 목적은 이 어려움을 인해서 어려움 그놈에게 달라붙지 말고 어려움을 인해서 어 려움에게 들어붙지 말고 어려움을 네가 해결지으려고 하지 말고, 네가 이리떼가 왔는데 양 네가 이리가 주는 그 어려움을 네가 들어서 면해 보려고 이리가 오니까 너도, 양 너도 막 머리를 들고 이래 가지고 이리하고 싸우려 한번 이 래 달려들면 탁 뭉켜서 삼켜 버리고 만다 말이오. 이러니까 이 세상 어려움을 네가 해결하려고 달려들지 말고 네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보려고 달려들지 말고 이 어 려움에 달려들지 말고 너는 그 어려움을 인하여, 그 어려움을 인하여 주님에게 들어 붙어라. 어려움을 인해서 주님에게 들어붙어라.
이러니까 그 어려움에게, 당하는 그 어려움을 그놈에게 어려움 당하지 말고 그 어 려움을 이리에게 어려움 당하지 말고 이리에게 어려움 당하는 그 어려움을 그놈에게 어려움 당하지 말고 이리에게 당할 그 어려움을 네가 주님 앞으로 달려가는 그 어려 움으로 이와같이 선용을 해라, 그리 옮겨라.
그런고로 이 세상에서 믿는 사람들이 요만한, 요만한 어려움이 오면, 요만한 어려움 이 오면 요만한 어려움을 고통을 당할 터인데 그 어려움에 고통당할 요만한 고통을 요것을 주님 앞으로 가까이 가는 데 요걸 기울이라. 네가 만일 이 집채 무더기만한 어려움이, 네가 치여죽을 만한 그런 어려움이 오거들랑 그 어려움에게 네가 치여죽 는데, 치여죽을 만한 그런 어려움인데 치여죽을 만한 그런 어려움이 오거들랑 그 어 려움에게 네가 치여죽는 그 치여죽음 그걸 거게 치여죽지 말고 어려움을 그 치여죽 는 그 고통과 그 모든 전력을 그걸 목자에게로 달려가는 데 기울여서 목자에게로 가 까이 가서 목자의 품에 안기는 것으로 네가 이용을 해라.
그러면, 그리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그 이리에게 당했으면 다리가 하나, 먼저 다리 도, 부러질 것이고 뭐 이와같이 엉덩이도 물어서 삼켜 지고 이럴 터인데 그와같이 될 것을 목자에게 가기 위해저 달리다가 다리가 부러져도 내나 이리에게 다리 부러 지는 거나 목자에게 달려 부러지는 거나 한가지니까 목자에게 달린다 말이오. 이리 에게 엉덩이 물려서 거게 잡아먹히는 그거나 뭐 이제 목자에게 가다 죽으나 다 한가 지니까 여기에 당할 해를 그놈에게 당하지 말고 주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는 데로 다 기울이라.
그러면, 그 양이 목자에게로 갔으면 그러면 이리가 해치는 그 해는 당하지를 아니 합니다. 당하지 않는데 그러면 양 같은 우리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에 목자에게로 가 면 피난은 되는데, 목자에게로 가면 피난은 되는데 목자에게로 가는 것이 어떻게 가 는 것이냐? 목자에게로 어떻게 더려가야 되느냐? 달려가야 되는 것, 마태복음 4장 17절에 보면 주님이 비로소 말씀하시기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 이랬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 천국이라는 것은 주님 계시는 공이 천국이 요 거게는 죽음이 없는 곳이요, 근심 걱정 고통이 없는 곳이요, 두려움이 없는 곳이 요, 평안과 즐거움과 만족과 그 사랑뿐인 곳이 천국입니다.
천국이 가까왔으니까 회개하라. 그러면 천국을 가는 데에는 어떻게 가야 되느냐? 회개라는 것으로 가게 된다. 그러면 회개를 하면, 회개를 하나 하면 또 그만치 천국 이 가까왔고 둘 하면 그만치 가까왔고 회개 열을 하면 그만치 가까왔고 만일 회개할 것이 하나도 없이 다 해 버리면 천국 속에 살게 된다.
천국 속에 살게 된다는 것은 주님 안에 살게 된다, 주님 품 안에 살게 된다, 생명 속에서 살게 된다, 평안 속에서 살게 된다, 능력 속에서 살게 된다, 한없는 쾌락 속 에 살게 된다, 영광 속에 살게 된다, 뭐 성공 속에 살게 된다 말이오. 살게 된다 그 말이오. 몸에 질병이라면 완전한 이제 건강 속에 살게 된다 말이오. 이러니까, 이래 서 회개로만 이 천국은 갈 수 있다.
그러면, 여게 그 목자가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낸 거같이 이렇게 보내는 것은 이것은 목적이 어데 있느냐? 목자이신 주님이 양이 목자를 알지 못하고 목자를 등한히 하고 비실비실하고 자꾸 이와같이 돌아다니니까 어쩌든지 이 양을 한번 놀라게 해 가지고 이 양이 목자에게 딱 들어 붙어서 '아이구 이제 목자 없으면 죽겠다.' 주님에게 딱 들어붙어서 주님 아니면 죽겠다는 그것을 가지고 언제든지 밤이나 낮이나 주님만 생 각해서 주님에게 딱 들어불는 요 사람 만들기 위해서 주님이 하시는 것이라 그 말이 오.
그러면 좋지 않습니까? 주님은 하나님 아니시요? 전지 전능자가 아니시요? 완전자 가 아니시요? 대주재자가 아니시요? 사랑의 주님이 아니십니까? 긍휼의 주님이 아니 십니까? 완전하고 깨끗하고 거룩하신 주님이 아니십니까? 이러니까, 이 주님이, 이 주님이, 이 세상에서 요새 내 보니까 그 남편은 대학 졸업 맡았고 자기는 중학 졸업 맡아 놓으니까 '아이구, 나 중학 졸업 맡은 나 같은 걸 이 대학 졸업 맡은 이 총각이 결혼하자 하니까 나는 결혼하면 참 얼마나 내가 충성해야 되겠다.' 결혼하고 난 다음에 종 모양으로 벌벌 떨며 충성해. 자기가 못날수록 휼륭 한 남편에게 시집을 가 놓으면 뭐 그렇게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고 그렇게 있는 마 음을 다 기울여서 그렇게 합디다, 내가 보니까.
이런데 자, 이렇게 아무리 좋은 남자가 있어 봤자, 아무리 좋은 부모가 있어 봤자, 아무리 좋은 주인이 있어 봤자, 상전이 있어 봤자 주님보다 더 좋은 분이 어데 있겠 소? 주님보다 더 좋은 분이 없는데 이분이 발길로 차도 들어붙을 건데, '너하고는 결 혼 안 하련다' 발길로 차도 들어붙을 거고 이제 이런 권세 있는 분이 그 면접하려 하면 '면접 못 한다. 면접 사절.' 이렇게 해도 자꾸 면접하려고 애를 쓸 건데 이 주님 이 지금 이렇게 지극히 크신 분이 우리하고 이렇게 밀접해서 하나 되기를 원해 가지 고 이렇게 환경을 이리 환경을 만들어 가지고 당신에게 들어붙도록 하는 그런 목적 으로서 이래 만들었으니까 이 얼마나 이게 우리에게 참 행복스러우며 기쁜 일입니 까? 이러기 때문에, 모든 우리 기독자에게 주위 환경에 어려움이 오거든 주님이 그 어 려움을 만들어서 있게 하셨다, 뭐하려고? 나하고 밀접한 연애를 하기 위해서, 당신이 나를 원해서, 내가 당신에게 폭 안기기를 원해서, '아이고, 당신 안 떨어지렵니다. 이 제 당신 안 떨어지고 당신만 나는 보고 살렵니다.' 안 떨어지고 당신에게 딱 들어붙 도록 하기 위해서 이렇게 모든 어려움을 주시는 것이니까 이걸 깨달으면 얼마나 기 쁜지 즐거운지 모른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요것흘 깨닫고 믿는 사람이 어려움을 닥칠 때에 어려움에게 들어 붙어 가지고 제가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하면 그 사람은 목자에게로 가는 것입니까 이리에게로 기어들어가는 것입니까? 이리에게로 기어들어가요. 그러면 죽습니까 삽 니까? 죽습니다. 요거 꼭 볼끈 거머쥐어요. 믿는 사람들이 그리 안 하고 이리 속으로 들어가 가지고 그놈한테 다 삼켜서 일생을 삼키는 그런 사람들이 대개 기독자들입니 다.
아예 거게서 그럴 때는, 이 어려움은 나를 사랑하신 주님이 이 일을 일으키셨다. 왜 이렇게 어려움을 일으켰느냐? 어려움을 일으킨 것은 당신과 나와의 밀접한 이 친합 을 가지고 나로 하여금 '당신 없이는 내가 못 삽니다. 일시도 일순간도 당신 떨어지 면 못삽니다.' 하는 당신에게 딱 들어붙어서 밤이고 낮이고 떨어질 줄 모르는 요 사 람을 만들기를 목적하고 당신이 하는 것이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그러면 목자에게로 달려가기는 달려가는데 목자에게로 달려갈 때는 어떻 게 달려가야 되느냐? 달려가야 되는 것은 우리가 달리는 달려가지 못합니다. 오른발 왼발로 달려가라 했는데, 오른발 왼발로 달려가라 했는데 오른발 왼발을 뭐이라고 가르쳤지요, OOO집사님? 오른발은 마음이고 왼발은 몸뚱이고, 오른발은 마음이고 왼발은 몸뚱이고. 그 오른발 한 자욱 왼발 한 자욱 자꾸 떼 놓으면 목자에게로 달려 간다 그 말이오.
가는데, 그러면 오른발은 마음이고 왼발은, 비유라 말이오. 오른발은 마음이고 왼발 은 몸뚱이인데 그러면 이 발자욱을 어떻게 몇 놔야 됩니까? 마음 한번 몇 놓고 몸뚱 이 한번 떼 놓고 이러는데 이것을 어떻게 떼 놔야 됩니까, 이거? 발자욱을 어떻게 떼 놔야 되지요? 회개로 떼 놔야 돼, 회개로. 회개로. 마음에 잘못된 것 고치고 또 몸으로 잘못된 것 고치고 마음으로 잘못된 것 자꾸 고치고 마음으로 잘못된 것 고치 고 몸으로 잘못된 것 고치고 자꾸 고치고 고치고 막 이 고쳐 대니까 주님 앞에 떡 들어붙었다 말이오.
이랬는데, 주님이, 이 비유에는 목자가 환하게 눈에 보이지마는 우리는 목자를 믿음 으로 보지 육안으로는 보지를 못한다 그 말이오. 그러면 내가 이 목자의 품에 안겼 나 안 안겼나? 안겼나 안 안겼나, 안기면 우리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지마는 우리의 심령은 보게 됩니다.
목자에게 안기게 되면 우리 심령이 어쩐지 평안해집니다. 평안해지요. 목자에게 안 겼는가 안 안겼는가, 내가 목자를 만났나 못 만났나 하는 것은 우리 심령이 안다 말 이오. 이 육안 이까짓 거는 둔해요. 우리 심령은 알아요. 심령은 알아서 목자에게 안 겼나 안 안겼나 하는 이것을 무슨 증거로 아느냐? 우리 마음이 평안해 집니다. 우리 마음이 평안해 안심이 됩니다. 뭐 사형이 내렸다 해도 문제가 없고 평안해져. 어떤 어려움이 왔다고 해도 마음이 평안해지고 즐거워지고, 마음이 평안해지고 즐거 워지 고 강해지고 담대해지고 희망이 넘칩니다.
된다! 된다! 문제가 없다! 하나님은 나를 돕는 자시니 인간이 나를 어떻게 하며! 병 이 나를 어떻게 하며! 사회가 어떻게 하며! 국가가 어떻게 하며! 인류가 어떻게 하겠 느냐! 이제 소망의 확신이 생겨집니다. 그럴 때에 주님의 능력이 턱 오는 것이오. 이 러면 이제 주님에게 안겼다 말이오.
안겼으니까 마음에, 이제는 죽을 지경이라서 '아이고, 내가 이래 사느니 뭐 자살해 야 되겠다, 죽겠다.' 이렇게 자살도 하려 하고 오만 악독도 부리고 '에, 뭐 이러니까 이미 죽을 것 나 죽고 저 죽고 둘이 죽지.' 살인도 도모하고 오만 계획 다 가지고 있 어. 막 독사같이 이래 가지고 마음에 독도 피워 보고, 낙망도 해 보고, 비관도 해 보 고, 울분도 가져 보고, 뭐 독도 가져 보고 이렇게 해서 못견뎌서 어쩌다가 이제 산으 로 갑니다. 그 사람이 산으로 가. 못 견뎌서 이제 산으로 가. 산으로 떡 가서, 가 가 지고, 좌우간 이거 주님 만나야 해결이 되겠는데 주님 만나면 천국에 들어갔으니까 천국만 들어가면 그만 문제가 없는데 해결이 되겠는데 이 목자를 만나야 되겠는데 이 어려움 이것도 분명히 이리는 이리인데, 이것도 이리는 이리인데 내가 목자를 만 나야 되겠는데 이 목자? 만나러 지금 내가 산에 올라갔어요. 산에 올라갔는데 목자 를 만나려고 밤새도록 애를 씁니다. 애를 쓰는데 목자를 만나려고 밤새도록 애를 쓰 면 어떻게 해야, 가만히 서서 애를 써요? 목자에게로 기어들어가야 되지. 목자에게로 기어들어가야 가까이 가야 목자를 만나지. 목자에게로 기어들어가는 데는 뭘로 기어 들어갑니까? 목자에게로 기어들어가는 발이 몇 개입니까? 손가락으로? 발이 몇 개 요? 두 개라, 두 개. 오른발 왼발 두 개. 오른발 왼발 두 개라. 오른발 왼발 두 개인 데, 오른발 왼발 우리는 두 개인데 이 하나님깨로 가까이 나가는 발은 오른발은 뭐 입니까? 마음 발, 왼발은? 몸뚱이 발, 이러니까 마음 발로 한 자욱 또 몸뚱이 발로 한 자욱 자꾸 이래 걸어갑니다. 이제 이 떼 놓는 거는 뭘로 몇 놔야 돼요? 회개로 떼 놔야 돼요.
주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는 데는 주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거는 전부 죄 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주님과 나 사이에 가로막고 있는 거는 죄가 가로막고 있다 그 무슨 말이요? 죄가 가로막고 있다 그말은 삐뚤어진 것 잘못된 것이 가로막고 있 다 말이오. 주님과 나 사이에 잘못된 것이 가로막고 있다 말이오. 내 말에 잘못된 것, 생각에 잘못된 것, 욕심에 잘못된 것, 성질에 잘못된 것, 고집통에 잘못된 것, 못 된 버르장이에 잘못된 것, 이런 잘못된 욕심, 돈 욕심, 권세 욕심, 명예 욕심, 지위 욕심, 모든 음욕, 성욕, 또 이거 행락욕, 오락욕, 뭐 욕심에도 그만 그 많아. 이런 것 저전 것 모든 면에 하나씩 둘씩 회개를 합니다. 삐뚤어진 걸 고친다 말이오. 자, 주 님과 우리 사이에 가로막힌 거는, 막은 거는 뭐이 가로막고 있어요? 죄가 가로막고 있는데 죄가 뭐이라요? 죄가 뭐입니까? 삐뚤어진 것, 주님과 나 사이에 뻐뚤어진 게 가로막고 있어. 마음에 온갖 삐뚤어진 것, 마음이 삐뚤어진 것 하나 척 고쳐서 한 자 욱 떼 놓고 또 그 다음에 내 말에나 행실에나, 눈으로 보는 것이나 귀로 듣는 것이 나 이거는 다 몸뚱이로 하는 것이라. 이런 거는 몸뚱이로 하는 것이라. 몸뚱이로 하 는 것도 잘못된 것도 하나 또 고칩니다. 하나 고치니까 주님과 나 사이에 열 개가 막혀 있는 데에 하나 고치니까 아홉 개 막혀 있고, 둘 고치면 여덟 개 막혀 있고, 나 중에 아홉 개 고치면 한 개 막혀 있고, 다 고치면 하나도 막힌 게 없고 이런 것이라, 자꾸 이래 떼 놔요. 회개로. 마음의 회개 몸의 회개. 보자, 어짜든지 이렇게 자꾸 그 것만 찾아 가지고 하나 둘 회개하면서 '내가 요거 잘 못했다 주님이여 용서해 주옵 소서. 사해 주읍소서.' 고치고 고치고 다 그러니까, 고치다 보니까 나중에 가서 그날 분해서 못견뎌 간 사람이 가 가지고는 그만 안심 이 되는 것이 기쁘고 즐겁다 그만 찬송이 나와, 그만 찬송이 나와요. 그만 찬송이 나 와요. 기쁘고 즐거워서.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바울이 빌립보 옥중에 들어가 가지고 얼마나 뚜드려 맞았던지 아파서 못 견디고 이랬는데 밤에 그 앉아서 회개를 했다 말 이오. 내가 하나님 앞에 뭘 내가 잘못됐는고 자꾸 이래 하니까 회개를 나중에 하고 나니까 그만 얼마나 기뻤든지 그만 찬송이 터져 나왔어. '찬송하는 소리 있어 사람 기뻐하도다' 하는 찬송 소리가 터져 나오니까 찬송을 하니까 그만 그 옥터가 드르르 르르 하며 그만 지진이 나 버렸어. 지진이 나니까 뭐 옥문이 다 열려 버렸어. 옥문이 다 열리고 보니까 죄수들이 묶인 죄수들이 다 착고가 다 끌렸어요. 바울도 착고가 다 끌리고 다 끌려 버렸어.
이러니까 옥사장이 보니까 벌써 옥문이 지진이 나서 열렸는데 죄수들이 전부 매인 것이 다 끌러지고 이랬으니까 '죄수들이 도망갔으면 나는 이제 죽는 거다. 이제 내가 뭐 형벌받는 것보다 죽는 게 낫다,' 하고 자결하려 하는 걸 보고 '죽지 마라. 여기 죄 수 하나도 안 갔다.' 이러니까 이 옥사장이 와 가지고 엎드려서 절하면서 '어떻게 해 야 내가 살 수가 있겠습니까, 구원 얻겠습니까?' 그래 묻지 않았습니까? '너와 네 집 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다 구원 얻는다.' 이러지 않았습니까? 찬송 터져 나 오는 게 그 찬송이라. 자꾸 이래 하나님과 자기와 사이에 뭐이 막혔나? 사도 바울 같은 그런 이야 의인인데 뭐 막힐 거 없지마는 그래도 찾았어. 또 찾고 찾고 가리워 진 걸 자꾸 이렇게 찾고 보니까 탁 대이니까 뭐이 일어나느냐 하면, 뭐라 하더라? 음전기 양전기가 둘이 한테 합하면 뭣 돼? 폭탄 폭발해? 폭발? 그거 스파크라 하나? 꽝 그래, 우리 학교에서 배울 때 보니까 요래 가지고 있는데 쩔 이래 가지고 이래 뭣을 가지고 음전기라 양전기라 이래 가지고 있는데 마이너스 플러스 요래 가지고 딱 대이니까 꽝 그러며 이거 뭐 똑 그 벼락치는 것같이 그래 하데요, 이거 모양으로 그만 꽝 그러는 거라. 그러니까 그만 '내 주는 강한 성이요' 이래 가 지고 고함이 나왔다 말이오. 이러니까 그만 지진이 딱 떨어, 그만. 그러니까 지진도 나왔지 다 그만 해결이 돼 버려. 하룻밤 동안에 교회 세운 것이 빌립보 교회입니다.
그날 밤에 그만 교회 세우고 그 이튿날 떠나 버렸어. 그래 그 교회가 아주 교회 중 에 훌륭한 교회가 됐습니다.
그래서, 이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그러면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은 회개 로 들어가. 이러니까 목자를 만났나 안 만났나 하는 것은 만났나 안 만났나 그 증거 는 뭐입니까? 증거는 뭐이오? 평안도 평안인데 더 좋은 것 좀 답을 하지. 더 좋은 걸 좀 답을 해 봐. 만나면 뭐이야? 찬송 그것보다도 폭발, 폭발. 폭발. 폭발이 돼요.
폭발이 나오니까 폭발 나온 증거로 찬송 터져 나왔지. 폭발이 나와. 마음에 그만 이 제 문제가 다 해결이라. 전부 다 보니까 뭐 전체가 전부 소망이요, 이것도 절망 저것 도 절망 모두 절망인데 전부 절망이 변해서 소망이 됐습니다. 불안이 변해서 평안함 이 됐습니다. 공포가 변해서 강하고 담대함이 됐습니다. 또 원망 불평이 변해서 감사 가 됐습니다. 그만 그분 만나니까 다 돼 버렸어. 이것이 주님 만난 증거입니다. 음전 기 양전기 둘이 한테 들어붙었나 안 붙었나 하는 것은 꽝 하는 그게 들어붙은 증거 라.
이거 모양으로 주님과 나와의 들어붙어 가지고 이게 마음에 모든 염려 없고 다 모 든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고 평안하고 즐겁고 소망으로만 넘쳐지는 내 사람 변화 되는 것이 그것이 주님 만난 증거라 말이오. 요렇게까지 해 봐요.
오늘 저녁에 또 말 들으니까 지금 여기 어떤 구역은 저 양산동 산에까지 또 저녁에 기도하러 간다 하는데 거게 가서 산만당에 가 가지고 뭣 하러 가? 주님 만나러 가 지. 거게 가서 기도하고 또 거기서 내일 거기서 출발해 가지고 심방하고 이래 한다 하는데 가 가지고 뭐이냐 하면 주님 안 만나면 헛일이야. 암만 가도 말이지요 주님 못 만나면 헛일입니다. 주님 만나야 돼요.
주님 만나는데 주님 만나려면 다리 몇 개 가지고 만나야 돼요? 두 개 가지고 만나 야 돼요, 두 개 가지고. 두 개 가지고 만나는데 그러면 이 다리 두 개를 어떻게 떼 놔야 돼요? 회개로 떼 놔야 돼요, 회개로. 회개 뭐 회개? 죄 회개. 죄라 하는 건 삐 뚤어진 것입니다. 회개는 삐뚤어진 걸 고치는 거라. 자꾸 삐뚤어진 걸 하나 고치고 둘 고치고 자꾸 그러니까 주님과 나 사이에 삐뚤어진 게 가로막아져 있는데 삐뚤어 진 걸 고치니까 주님과 나와. 가까와집니까 멀어집니까? 가까와져. 삐뚤어진 것 고치 니까 자꾸 가까와져. 삐뚤어진 것 뽑아 버리니까. 이래서,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가 리워져 있는 휘장이 그것이 삐뚤어진 것을 상징해서 그렇게 하나 해 놓은 것입니다.
이러니까 자꾸 삐뚤어진 것 고쳐. 삐뚤어진 잣 고쳐서 이거 고치면 주님 만나게 되 니 주님 만나면 돈 문제 어찌 돼요? 주님 만나면 돈 문제 어찌 돼, OOO조사님? 해 결돼? 주님에제는 돈도 있어. 주님에게는 돈도 있어. 권세도 있어. 지위도 있고 사업 도 있고 모든 출세도 있어요. 그분은 죽은 자를 썩어서 내음새 나는 걸 살리기도 했 어. 세상에 아무리 병들어도 뭐 썩어 내음새 나는 거 살리는 그만한 의술이면 병든 것 그까짓 거야 문제가 뭐 있소? 이러니까 이제 이분만 만나먼 다 돼요, 그런데 오늘밤에 증거하는 건 뭐이냐? 이분을 만나러 가야 되는데 이분을 만나지도 못하고 근방에 가지도 않고 백지 저 혼자 좋아서 주님 만낫다 하면 헛일이라. 주님 만난 증거가 뭐입니까? 주님 만난 증거가 폭발이라. 마음에 이제 소망이 폭발이 콱 터져나와. 기쁨의 폭발이 터져나와. 모든 희망의 폭발이 터져나오고, 사랑의 폭발이 터져나오고, 안심의 폭발이 터져나오고, 만족의 폭발이 터져나오고, 강하고 담대함의 폭발이 터져나오고, 이래 터지니까 성도들이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다 순교의 승리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밤에는 주님 만난 증거가 있어야 돼, 주님을 만나야 되지 안 만나면 안 돼. 만 나는 데는, 못 만나는 건 뭣 때문에 못 만나요? 뭣 때문에 못 만나지요? 죄 때문에 못 만나. 그러니까 만나는 데는 죄만 없애 버리면 만나져요 안 만나져요? 만나져요.
이래서, 우리가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이래서 요 도리를 가지고, 어쨌든지 주님 만 나면 다 되니까 우리 교인들이 전부 어려움을, 거게 눌리지 말고, 어려움을 제가 해 결하려고 하지 말고 주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는 회개함으로 주님 만나서 주님이 해결해 주도록 요 방법을 취해야 되지 딴 방법은 암만 취해 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믿습니까! (아멘!) 내일 아침에 새벽기도 나올 사람들 손 들어 봐요. 새벽기도 나올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봐요. 내일 아침에는 이 자리가 꽉 차겠다. 내일 아침에는 이 자리가 꽉 차겠 어. 새벽기도 못 나오거든 작정해요. 새벽기도 못 나오면 몸뚱이한테 '네 요놈, 내일 새벽기도 안 나오면 내일 아침에 밥 안 먹여 준다. 밥 안 먹여 준다.' 딱 고렇게 약 속해 놓고 아예 가면서 '내일 아침에 너 밥 굶으려면 새벽기도 못 나오도록 깨울 때 에 아이구 좀 더 누워자자 이러고 밥 안 굶으려면 그래 새벽기도 같이 나가자.' 새벽 기도 나가면 몸뚱이 너도 좋고 마음 나도 좋고 영도 좋고 다 좋으니까 자기 몸뚱이 하고 마음하고 살살 달래요. 살살 달래요, 자꾸, 살살 달래서 '내일 새벽에는 가자' 달래 가지고 어쨌든간에 내일 새벽에 다 나오도록 해. 자, 내일 새벽에 이제 새벽기 도 꼭 나올 사람 한번 손 한번 들어 봐. 녜, 내일 새벽에는 이 자리 가뜩 찰세요. 인 제 못 나은 사람은 아침을 굶으면 거짓 약속은 아니고 약속한 것이 돼져요.
부장 선생님들은 반사 보조반사 통솔하고 반사는 보조반사 학생 통솔하고 보조반사 는 이제 자기 밑에 있는 학생들 통솔해 가지고 이걸 잘 기르는데 기르기는 어데다 두고 길러요? 저 담요 속에 싸놓고 길러요 어쌔 놓고 길러요? 마음 속에 넣어 놓고 길러야 돼, 마음 속에. 마음 속에 넣어 놓고 길러야 잘 길러지지 담요 속에 길러 가 지고는 안 돼요. 육신의 자녀는 뱃속에 넣고 하면 되고 우리 믿음의 자녀는 마음 속 에 넣어 놓고 낙태하면 안 돼. 낙태 안 하고 길러야 돼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