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6 14:11
기독교 신비한 권능성
1987. 8. 27. 새벽 <목>
본문:히브리서 2장 3절∼4절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 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우리는 여기 성경에 있는 대로 하나님의 역사를 다 받은 우리들입니다. 주님이 친히 사도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신 주님이 친히 사도들에게 말씀하셨고 또 그 사도들에게 우리가 들어서 받은 말씀입니다.
주님이 친히 사도들에게 말씀하셨고 사도들이 또 친히 성경에 기록해 가지고 우리에게 확증해 주셨고 또 이 확증해 주신 이 성경 말씀을 우리들이 하도 책이 많으니까, 별별 책들이 많으니 우리에게 주신 이 신구약 성경 말씀도 이런 말씀이 아닌가 또 그렇게도 생각할 수도 있고, 또 성경은 다 일반적으로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 성경 말씀은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 이렇게 믿는다 할지라도 너무도 말세가 돼서 사람들이 제각각 다 이렇게 말하고 저렇게 말을 해서, 일치된다는 것보다도 다 저거 교파에서 하는 말은 다 정통이요 진리요 다른 데서 증거하는 것은 저거만 못하다고 이렇게 사람들이 생각하고 다 이러니까 사람들은 어떻게 되느냐? ‘ 종교는 모두 다 저거 종교 좋다고 말하고 바르다고 말하고 하는 거는 꼭 같다.
이러니까 종교는 같다.’ 이래 사람들이 이런 미혹도 받아 가지고 있고, 또 여게나 저게나 그 도리를 말하는 데에는 세월이 많이 지나가고 성경은 간단하게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뭐 무신론자, 공산주의는 무신론자인데 무신론자 공산주의라도 성경대로 그대로 설교를 꼭 같이 잘하고, 또 범신론자들도 그러하고, 우상 종교자들도 다 그러하고, 기독교들도 다 이렇게 저렇게 말하니까 사람들은 ‘다 이는 어느 종교나 꼭 말하는 하나의 궤변이지 이것은 믿을 수 없다.’ 모든 종파들이 다 그렇게 말하고 다 제각각 제 말 들으라고 이렇게 하니까 ‘으례히 이 종교는 다 이렇게 말한다. 그거는 하나의 사람을 꾀우고 속이는 궤변이지 그 하나의 기만적인, 속이는 기만적인 그런 말들이지 진실한 사람은 그거 들을 필요가 없다.’ 이래 가지고 ‘종교는 다 같다. 종교는 궤변들이다. 다 그거는 하나의 속이고 꾀우는 기만들이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전도를 하면은 노를 합니다. ‘예, 좋습니다.’ 그저 `수고합니다’ 이랍니다, 전도를 하면. 제가 찻간에 다니면서 만나서 전도하면 ‘수고하십니다. 녜.’ 그러며 웃습니다. 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진정 믿나 안 믿나 하는 것이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거 아마도 속은 달리 생각하면서 이렇게 이 기독교도 하나 종교 유사 단체로서 이래 보고 ‘이 종교라 하는 것은 하나의 기만이요 다 하나의 신화인데 이 모두 사람들이 그래도 그 말은 다 선한 말을 했기 때문에 그 말들이 권선징악이라, 선을 권하고 악을 징계하는 말이기 때문에 그 말은 다 뭐 다 믿어야 되지.’ 이렇게 생각하고, ‘녜, 믿는 게 좋습니다. 다 믿고, 믿는 게 있어야 안 되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는 것이 그 사람이 벌써 기독교나 종교를 멸시하고 그 종교라 하는 것은 하나의 불건전한 사람, 하나의 허영과 허욕의 사람, 뭣인가 믿고 의지하지 안하면 허젓해서 못 견디는 그런 공허감을 가지는 그런 그 비정상인 사람들이 다 그렇게 종교를 믿지 참 건전하고 경건해서 이 과학적으로 사는 그런 건전한 사람들은 종교를 안 믿는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라 그거요.
그래서 제가, 아마 그 사람이 어데 교수같이 보여지는데, 얘기를 하면서 ‘천국이 있습니다.’ 내가 그라니 나는 그걸 알기 때문에 또 `예수님 믿는 것은 이 세상에서 무슨 수양이나 도덕이나 또 권선징악이나 또 허무한 사람이 그저 하나의 자기의 그 신념을 가지고 살라고 하는 그런 것이 아니고 지옥과 천국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천국 가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아니면 지옥 갑니다.’ 이렇게 말하니까 그 사람이 그만 성을 내면서 달라듭니다. ‘여보시오, 자기나 믿지 나한테는 권하지 마십시오. 나는 그런 데에 피동돼 유혹되는 그런 허영과 허욕의 그런 사람 아닙니다.’ 사람을 어째 보고 하느냐고 막 그라며 성을 팩 내서 그만 달라든다 말이오.
그거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너무도 요새는 뭐 기독교인지 불교인지 마호메트교인지 뭐 회회교인지 뭐 말세 그리스도 교회 하는 교인지 뭐 모릅니다.
전부 보면은 다 통해 가지고 있어. 성경 보고 그 사람들이 또 말하고 전부 한테 다 한테 버멀거리를 해서 아이들 말로 짬뽕을 만들어 놨기 때문에ㅡ그 짬뽕 하니까 짬뽕이 나는 뭐인지 모르는데 그래 아레 저녁에 누가 짬뽕을 한 그릇 가져왔어요. ‘이 짬뽕을 목사님이 모르는 모양인데 이게 짬뽕입니다’ 하며 가져왔는데 보니까 뭐 여러가지 섞어 가지고 이랬는데 그래 그거 한번 먹어봤습니다.
이렇게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주님이 우리들이 이 증거하는 것을 우리 개교회서도 그러하고 또 그 여러 차례 우리가 대구에서와 거창서 증거할 때에 저는 하나님 앞에 그렇게 말했습니다.
아무리 이렇게 사람이 말해도 이 말은 다 할 줄 알고 다 공통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아무리 말해 봤자 믿지 않습니다. 안 믿으니까 이것이 참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당신이 뭘 표적으로 증거를 해 줘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사람마다 제각각 다 저 따라오라고 다 이래 하고 있으니까 알 수가 있습니까? 참의 도이면 당신이 증거해 주셔야 되지 인간이 할 수 없는 당신의 증거가 있어야 다른 사람들이 모두 다 ‘그거는 참 생명의 도요 참 도인갑다’ 이래 알지 기독교 가운데서도 강단마다 다 그렇게 말하니까 그 순전히 믿지 않는, 믿는다 하고 말만 믿고, 말로만 믿고 그저 의식으로만 믿고 하나도 믿는 사람 아닌 그런 사람들도 다 말은 꼭 같이 하니까 나도 지금 의문이 납니다.
나는 것이 내가 성경 보고 깨달아서 이렇게 증거를 하지마는 이 증거하는 것이 정말로 당신이 나에게 깨닫게 해 주셔 가지고 바른 것을 깨닫고 바로 증거하는 것인지, 나도 증거 하면서도 의심이 나오고 ‘이거 모든 사람들이 꼭 같은 이 설교를 하고 교회마다 다 이렇게 설교를 하고 하니까 이게 다 옳은 건가?’ 또 그뭐 아주 안 믿으면서 공산주의자들도 이 설교를 꼭 같은 이런 설교를 합니다.
그 사람들 재주 있는 사람 택해 가지고 그 사람들 설교집이나 이런 거 가지고 이래 설교하면서 ‘우리도 다 이래 믿는다’ 이렇게 말합니다.
이러니까 이거 주님 당시에도 주님이 설교를 해도 누가 믿었습니까? 안 믿지 안했습니까? 안 믿고 말하기를 ‘그러면 당신이 하늘에서 온 구주라고 하면 우리가 뭘 보고 믿겠느냐? 믿을 만한 무슨 표적을 달라.’ 그렇게 말하지 안했습니까? ‘우리가 당신이 하늘에서 온 우리의 구세주라는 것을 믿을 수 있는 표적을 주시옵소서’ 이렇게 말할 때에 주님이 오병이어로 오천 명 먹이는 인간이 할 수 없는 그런 일도 했고, 죽어서 썩은 것을 살리기도 했고, 모든 그 바다의 풍랑도 잔잔하라 하니까 잔잔해지고 이렇게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당신이 해서 보이시기 때문에 믿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서 믿지 안했습니까? 오늘도 그렇습니다. 암만 내가 이거 지금 설교를 해도 다른 사람들이 다 도매금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여게는 하나님이 직접 인간을 통해서 당신이 말씀해 주시는 것이라’ 이렇게 그들이 어떻게 믿겠습니까? 이러니까 증거하는 나조차도 그렇습니다. 이러니까 당신이 무슨 표적을 보여야 ‘이는 하나님이 같이 하셔서 증거하는 것이다’ 이래 알지 그러면 사람들이 믿겠습니까? 이러니까 이 말씀이 당신이 친히 증거하는 말씀이라면 이제 표적을 보여 주옵소서 하는 그것을, 그전에는 제가 증거하지를, 그런 기도를 안 했습니다. 안 했는데, 언제부터 그런 기도를 하게 됐느냐 하면은 너무, 저는 처음 믿을 때에 제가 설교할 때마다 하나님이 뭐 기적과 표적 이런 걸 내서 그때에 않은뱅이도 일어났었고 문둥이도 깨끗해졌고 이렇게 뭐이든지 이렇게 해서, 그러니까 집회에 그만 환자들이 꽉 차지하고 할 만치 이렇게 됐었는데 제가 이 신학교 오고 난 다음에 신학교서 ‘지금 표적은 그거는 옛날은 있지만 지금은 표적은 없는 것이다. 지금 표적 있는 것은 다 불건전한 것이다.’ 이렇게 다 그뭐 학자들이 그렇게 가르쳐 이라니까 내가 산골에서 처음 믿는 사람이 ‘이거 나는 옳은 도를 받지 못하고 지금 이거 하나의 이 잡신의 도를 내가 받아 가지고 있는가보다’ 해서 그 표적이 있는 그런 것을 부끄러워했더라 말이오.
이래 가지고 그것을 그저 안 나타나기를 힘을 쓰고 자꾸 이렇게 증거했는데 나중에 성경을 깨닫고 보니까 그것도 아니고 그저 모든 사람이 요구하는 것은 증거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증거하시고 하나님이 직접 사람을 통해 말씀하셨다는 그뭐 표적이 증거가 있어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믿지 못하고 겉어머리나 쭐쭐 따라다니고 뭐 이 정통이니 이라며 이래 쌓아도 그 사람들 속에 자기의 주관을 파서 깨뜨리고 완전히 변화시키는 이런 아무런 그 신앙이 생겨지지를 않는 것을 보고 마음에 오랫 동안 고민을 하고 있다가, 오랫 동안 고민하고 있다가 제가 이번에 팔십이년도에 아프고 나서 아무래도 보니까 이거 안 됐어서 그것을 교역자회 때에 제가 말했습니다.
이거 아무래도 이 기독교는 하나님의 도인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도를 사람이 증거하는 거 하나님이 뭐인가 볼 수 있게 과거에도 표적을 나타내니까 사람들이 믿었는데 오늘은 표적을 부인하는 이게 딴게 아니다. 그 사람들이 자꾸 하나님 앞에서 신앙 생활을 바로 할라고 애를 쓰지 안하고 책상 위에서 자꾸 예수를 다 믿어버리고 연구 다 하고 자기 경험 체험에서 이거, 경험의 지식과 체험의 지식.
실행하는 여게서 실천 신학에서 배워 가지고 이래 증거를 해야 될 터인데 이 책상에서 자꾸 책만 보고 이렇게 하니까 그 사람들은 이 기독교의 신비한 그 권능성을 모르고 하는 것이고, 또 그들은 그래 놓으니까 아무런 하나님과 친히 밀접한 관계가 없으니까 참 믿지를 안하니, 믿지를 안하니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수 없고 능력이 나타나지 안하니 사람으로서는 최고의 이런 위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에게 아무 능력도 나타나지 안하고 이라니까 이 능력 나타나는 것을 부인하지 안하면 자기들이 이 최고의 지위를 지킬 수가 없기 때문에 이래 하는 것이다 하는 것을 그때, 오래 동안 생각은 가졌지마는 발표 못 하다가 그때 내가 발표를 했습니다, 교역자회에서. 저 삼층에서 하면서.
아무래도 우리가 다시 이걸 회개하고서, 기독교는 신비의 도요 또 하나님의 지극히 큰 능력이 역사하는 것이 예수님도 그랬고 과거 선지자들도 아무리 말해도 안 듣다가 하나님의 표적이 나타날 때에 그들이 믿었다.
예수님 당시도 ‘네 말을 우리가 어찌 믿겠느냐? 못 믿는다. 만일 하늘에서 내려왔으면은 우리가 믿을 수 있는 표적을 달라.’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말할 때에 표적이 인간이 할 수 없는 역사가 나타나니까 사람들이 믿게 됐는데 오늘도 이거 완전히 자기를 세우기 위해서, 자기 무능한 그것을 유능하게 세우기 위해서 이 표적을 부인했기 때문에 이 큰 유혹을 받았다. 이러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해 가지고 당신이 우리와 함께 하셔서, 순복음교회 그 사람들은 다 그런 거 이러니까 교회가 부흥이 되고 모든 사람들이 다 따르고 이라는데 우리는 이거 표적을 기적을 이거 부인하는 이런 큰 미혹을 받아 가지고 이랬기 때문에 우리의 이 참된 복음이 전달하지 안하고 또 우리 자신도 모르겠다.
자신도 모르겠는 것이 나도 처음에 믿을 때에는 확실히 믿기 때문에, 그뭐 그때는 모두 다 그런 것이 많이 나타나서 따르는 사람들도 그랬고 그들도 그랬고, 별 참 변화가 일어나고 그러니까 사람들이 변화가 일어나고 이랬는데 맹맹하니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뭐 교리만 가지고 이렇다 저렇다 하고 있지 아무 생존하신 그 능력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거 기이하다.
이래서 말하니까 우리 그 교역자 가운데서도 ‘그것만 자꾸 주장하면 그거 좀 일반 교계에서 이상하게 보기 때문에 그렇다’ 이래도, 하나님은 나에게 강하게 말씀해서 대구 집회 때에 ‘이번 집회에 하나님이 만일 당신이 친히 우리에게 함께 하시면 이 말씀은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이 참된 도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기 위해서 당신이 모든 사람 믿도록 하기 위해서 표적을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한 그때에 그 많이 나타났었습니다.
그 기도를 강하게 하고 나서 육백여 명이 그때 나타났었습니다. 그라고 나서는 늘 이렇게 부정하지 안하고, 또 그라고 나니까 교역자회에서도 또 그 말이 있었어.
요번에는 내가 그 말 했지마는. ‘자꾸 표적을 이라면은 만일 모였다가 위급한 환자들이 와 가지고 참여해 가지고 낫지도 안하고 죽어서 만일 초상이 난다면 어떻게 할랍니까?’ 이런 문제도 자꾸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자꾸 말한다 말이오.
그래 내가 그때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에 ‘우리가 오라 해서 안 오고 저거가 왔고 또 와 가지고 하나님이 안 고쳐 주셔 죽었으면 그거는 핍박을 당해도 하나님이 핍박당하고 하나님의 교회가 핍박당하지 우리는 진리 증거하고 또 당신이 표적으로 나타내는 그거 우리가 바라고 기다리고 또 원하고 이래야 될 것 아니냐?’ 그래 가지고 이게 겨우, 겨우 돌파가 돼서 이제 우리 진영에서 기적과 표적을 인정한다 하는 것이 됐습니다.
지금 다른 진영에서는 그걸 별로이 인정을 안 합니다. 특별히 장로교에서는 별로 인정을 안 하고 이런데 장로교 중에서도 저 불파라는 그 사람들이 좀 인정하고 순복음교회 그 사람들이 인정하고 또 감리교에서 인정하고 또 침례교에서 인정하고, 장로교에서는 지금도 이 고신 같은 데서는 그런 표적이라 하는 그런 것을 인정을 거의 안 하고 있습니다.
이런데 우리에게는, 3절에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하나님의 진노를 어찌 피하리요 그말입니다. 그 위에 보면은 있어.
“피하리요 이 구원은”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주님이 친히 사도들에게 말씀하신 바요, 또 성경에다 기록해 가지고 우리에게 주신 바라 말이오.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들은 자들이 다 영감으로 또 우리에게 확증을 해서 증거를 해, 확증이라면 확실히 증거했다 말이오.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하나님도” 이런데 이까지는 사도들이 성경 기록해 가지고 또 우리에게 증거해 준다 할지라도 그 인간이 하는 일이지 거기 무슨 인간이 하지 않는 일이 없다 그말이오. 인간이 하지 않는 일이 없어.
그랬는데 하나님이 인간이 하지 않는 일을 우리에게 보여 줘 가지고 이 문서계시나 당신들이 친히 우리에게 전한 이 복음이 하나님이 친히 말씀해 주신 것이라는 것을 인정시키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도 표적과” 표적과, “기사들과” 기사들과, 또 “여러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 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였느니라” 그러면 우리에게 성령의 충만함으로써 우리가 증거도 받았고 표적으로도 받았고 기적으로도 받았고 또 능력이 나타나 가지고 하는 것도 우리가 체험하고 경험했고 이래 가지고, 뭐 크나 작으나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친히, 이거는 사람이 한 게 아니고 하나님이, ‘사람이 한 거는 아니다. 어쨌든지 보이는 사람이 한 것은 아니고 나도 한 것 아니고 이것은 나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뭣이 와 가지고 이렇게 했다.’ 하는 그런 표적과 기적과 그런 능력의 역사와 그 영감을 전부 다 받았을 거라 말이오.
안 받은 사람이 하나도 없어.
지난밤에도 손 들라 하니 다 표했지마는 이렇게 하나님이 확증해서 우리에게 주신 이 구원이니 이 구원을 이렇게 확실히 증거했고 이 구원이 얼마나 큰 구원인데 이 구원을 등한히 여긴 사람이 앞으로 큰 화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것은 이 구원을, 이렇게 큰 구원을 큰 구원으로 인정하면 신앙 생활 못 할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가 참되다 인정하는 것만치 실행은 됩니다. 실행은 안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실행은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이 지극히 큰 구원을 자기가 참으로 인정하나 안 하나 하는 거게서 실행이 되고 안 되는 것이지 인정하면 실행하지 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자기가, 등한이 여긴다 말은 예사롭게 여긴다는 말이요 또 그렇게 무심히 여긴다는 말이요 또 무시한다는 말이요 멸시한다는 말이요 그뭐 이런 아이들 그저 이야기 잠꼬대 하는 말 같은 그렇게 듣지 이 말씀이 이렇게 이 큰 구원을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다는 이것을 사람들이 인정치 않는다 그거요.
그걸 가리켜서 “우리가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떻게 피하리요” 그 위에 “천사들을 통해서 한 말도 범한 자를 하나님께서 다 남김이 없고 다 징계를 하고 징벌했거든 하물며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의 징계를 피하리요” 하는 그말입니다. 그거는 뭐 등한히 여긴 것만치 지옥에 타 버립니다.
등한히 여긴 것만치, 등한히 여긴 것만치 눈의 시력도 눈의 기능도 타고 손의 기능도 타고 다 타 버리고 껍데기만 이다음에 부활해서 가고 속에 기능이라 하는 거는 다 타 버리고 그 기능이 다 부활할 때에 부활의 능력, 부활의 능력, 이러기 때문에 바울도 “어짜든지 부활의 능력에 참여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그 고난에 참여해서, 사는 것도 죽는 것도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할라고 애를 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지난밤에 우리가, 구원의 근거라 말은 구원의 기초라 말입니다. 구원의 기초 다섯 가지를 우리가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인 피택, 우리가 택함을 입었다. 택함을 입은 거 또, 이게, 이것도 지난밤에 ‘지극히’, 이거 자꾸 생각해야 돼요. 자꾸 생각하면 이게 ‘이 큰 구원이라’ 다시 그 이상 더 큰 게 없어. 이렇게 이걸 자꾸 생각해서 자기에게 알아지고 믿어지면 자기라는 사람도 변해지고 행위도 변해지고 우리가 알고 믿으면 또 실지로 그 능력이 와 가지고 역사하는 것인데 우리가, 마귀란 놈이 자꾸 믿지 못하게 만들지, 믿지 안하지, 이러니까 믿지 안하니까 우리에게 담대한 변화도 오지 안하고, 소욕하는 변화도 오지 안하고, 우리가 소원과 포부가 커지는 변화도 오지 안하고, 이거 실행하는 변화도 오지 안하고, 실행 안 하니까 능력이 와 가지고 하지를 안한다 말이오.
아예 믿지 안하고 실행 안 하니까 능력이 와 역사할 수가 있습니까? 이러니까 자꾸 지금 생각해. 하나님이, 유일하신 하나님 자존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유일한 목적으로 정한 그 목적이 우리의 선택이라. 목적.
또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예정하셨어. 이 예정이라 하는 게 얼마나, 예정이라 하는 거는 이 역사에 모든 순서로 나타나는 거는 그분의 예정대로 순서로 나타나는 것인데 이 예정이 얼마나 큽니까? 이 사람이 못났고, 아주 못났기 때문에, 이 어린아이들은 그것이 아주 무식하고 그러기 때문에 이것은 뭐, 만일 몇천만 원 수표 하나와 사탕 하나 말하면 사탕 하나 취하지 그걸 취하겠습니까? 그거 몰라 무식해 그렇다 말이오.
이와 마찬가지로 이제 돈이니 지위니 권세니 이 세상에 뭐, 오늘 떠나면 그만인데 어리석어서 마귀에게 꼬여, 오늘 떠나면 그만인데 이런 것만 가지고 가치 있게 여기지 이 큰 거는 가치 있게 못 여긴다 말이오. 우리가 못나서 그렇고, 못나고 무식해 그렇고, 어려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이 구원 위해서 예정됐다. 예정이 순서로 나타나는 것은 예정 아닌 순서는 하나도 없는데 모든 역사에 나타난 이 전부가 우리 구원을 위해서 이렇게 다 나타나고 있는 것이지, 모든 존재가 이 구원 위해서 창조해서 이루어진 것이지, 하나님이 세상에 사람, 우리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되어 왔다, 하나님이 창조주가 피조물이 돼 가지고 와서 우리를 구원할라고 도성인신 이게 얼마나 큰지 몰라, 얼마나 큰 일인지 몰라. 도성인신 하셨다. 또 도성인신 해 가지고 신인양성일위가 죽고 살아서 사활로 우리를 구속하셨다.
이 다섯 가지 구원의 근거 이것이 “집을 터 위에 짓는다” “반석 위에 짓는다” 이것이 반석입니다. 우리의 구원의 기초 이것이 반석이오. 근거요. 그거 한 말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신데 기초라. 구원의 기초라.
그라고 난 다음에 그 위에 건설되는 것이 몇 가지 있느냐? 이제, 예수님의 사활이 우리의 기초의 근거인데 그러면 예수님의 사활로 무엇이 건축됐느냐? 예수님의 사활로 건축된 것이 뭐이냐?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다섯 가지가 건축됐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써.
다섯 가지가 건축된 것은 첫째는 우리가 이 죄에서 해방돼 자유하는 거, 우리가 무서운 죄를 범하고, 한 죄라도 범했으면 그 죄의 값은 사망인데 이 죄에서 해방이라 하는 것이 이것이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이 죄에서 해방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죄에서 해방이라는 게 있을 수가 있습니까, 이거? 죄에서 해방이라 하는 거는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정죄해 가지고 범죄 죄값은 사망인데 이 죄에서 해방된 것. 예수님의 죽으심으로써 죄에서 해방된 것.
또 이 사망에서 해방된 것. 우리가 사망에서 해방을 어떻게? 사망을 어떻게 사람이 벗을 수 있어? 사망을 벗을 인간이 없다 말이오. 이거 인간으로는 할 수 없는 이거, 사망을 벗었으니까 죽음이 없는 이것을 알고 참되다 인정하고 믿으면 사망 없는 능력, 죽음에게 종되지 않는 이런 능력이 와서 능력 생활 하는데 이걸 믿지 않기 때문에 이 실지의 능력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역사를 못 한다 말이오.
다니엘 같은 그런 사람도 모든 주기철 목사 같은 그런 분들도 다 죽음에 종되지 안하고 죽음을 이겨서, 손양원 목사 그런 분들도 죽음에 종되지 안했다 말이오.
죽음이 와 가지고 협박한다고 죽음으로 말미암아 털끝만치라도 하나님의 뜻이나 하나님에게 대해서 거리끼는 일을 하지 안했어. 이러기에 그런 사람들은 다 사망을 벌써 초월했고 사망을 이겼다 말이오.
우리를 사망에서 해방시켜서 사망에서 자유하는 것.
마귀 이놈을 이겨서 마귀에게 자유하는 것. 마귀 그놈이 암만 그렇지만 마귀를 우리가 이겨서 자유한다 그거요. 우리가 그것도 신앙 생활 하는 사람은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마귀란 놈들이 역사하는 걸 마귀를 이긴다 그말이오. 우리가 마귀 이기는 것이 날마다 마귀를 수십 번 이기고 있지 않습니까? 수십 번 싸우고, 수십 번 이기고.
이러기 때문에 과거에는 이거 뭐 귀신이 있다 하면 이렇게 뭐 떨고 이랬지마는 어데 지금은 우리는 그런 일이 없다 그거요. 믿는 사람이, 안 믿는 사람들은 저 절에 가면 막 그림을 이래 그려 놓고 야단치고 또 귀신들이 야단을 칩니다.
귀신들이 움직이기도 한다 그말이오.
귀신들이 어떤 데 거석하다 하면은 귀신이 거기 와 가지고 무슨 소리를 내고 뭐 지동을 하는 그런 것까지 해. 귀신도 그런 능력이 있어요. 출애굽기에 보면 첫째 기적 둘째 기적 셋째 기적까지는 귀신들도 했어. 술객들도 한다는 건 귀신도 했어. 넷째는 그놈들이 따라오지 못하고 꺼꾸러지고 말았다 그말이오. 이렇게 하는 거, 믿음 있는 사람은 그런 게 암만, 그 사람이 가는 데는 그런 게 없어진다 말이오. 이 점쟁이들이 점을 할라 하다가 신앙 있는 사람이 가면 점이, 귀신 점쟁이는 점을 못 해요. 이렇게 귀신에게서 마귀에게서 해방 자유.
하나님의 전지의 지혜로써 입법해 놓은 전지 입법, 공심판을 우리가 다 예수님이 대신 죽으심으로써 통과했다 말이오.
또 하나님으로 더불어 이 원수된 것을 예수님이 죽으심으로써 우리에게 화친해서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되지 안했어? 하나님을 우리가 밤중이라도 불러 가지고 대답 안 한 일이 없다 그말이오.
그러면 자기가 어떤 답답할 때에 아버지를 부를 때에 아버지가 자기에게 와서 뭐 소원하는 것을 들어도 주시고 또 위로도 주시고 그분을 부를 때 그분이 우리 심령 속에 와서 우리 심령에 평강과 모든 지혜를 줘 모든 걸 환하게 바로 알게 하시지 또 우리의 소원을 들어 주시지, 이 화친.
그러면 예수님이 죽으심으로써 우리에게 구원 건설을 다섯 가지를 해 놨다 말이오. 이 다섯 가지 기초에다 예수님이 죽으심으로써 건설해 주신 그 건설해 놓은 구원이 우리에게 다섯 가지를 주셨어. 건설의 구원 다섯 가지를 주셨어.
그러면 예수님이 죽으심은 몇 가지 종류로 예수님이 죽으셨습니까, 손가락으로? 녜, 세 가지 종류로 죽으셨어, 세 가지 종류로.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셨고 우리를 하나님 앞에 의롭게 세우시기 위해서 대행으로 죽으셨고 대화친으로 죽었어. 대형으로 죽으셨고 대행으로 죽으셨고 대화친으로 죽으셔 가지고 이 다섯 가지 구원을 건설해 주셨다 그말이오.
건설해 주시고 또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여섯 가지 구원을 건설해 줬어. 우리에게 하나님을 향해서 사는 완전 생명, 완전 생명을 가진 자가 누가 있습니까? 이거 인간이 되는 게 아니라. 이 인간들이 거석하니까 ‘영생’ 뭐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좀 장수한다 하면 막 모든 걸 애끼지 안합니다. 이런데 그거 암만 해 봤자 그건 뭐 죽고 말지 그건 안 되는 거지만 우리에게는 영생이 있다 말이오.
영생이 있는 걸 처음에 어릴 때는 영생을 몰라요. 어릴 때는 영생을 믿지 안하지마는 차차 차차 믿고 보면은 육체의 생명 이거는 의심을 해도 영생은 의심이 안 돼. 영생은 더 확실히 믿어지고 또 영생이 있는 걸 자기가 많이 안다 그말이오.
하도 모르니까 어떤 사람들은, 나도 그런 꼴 봤어. 여러분들도 아마, 사람마다 그런 증거를 해 주실 것이라. 자기는 고기덩어리의 이 생명은 죽었는데 자기는 살아 있는 그런 것을 많이 환상 가운데 본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뭐 입신 가운데 본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꿈으로써 본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있을 거라 말이오.
자기는 죽어서 벌써, 자기는 죽어서 벌써 자기는 죽어서 장사하고 있는데 자기 시체는 장사하고 있는데 자기는 살아 가지고 있는 것을 그걸 본 그런 증거를 본 사람들이 많이 있을 거라 말이지. 자기는 지금 살아 있는데 그 육체는 죽었다고 환상 가운데서 혹은 꿈에서 그럴 때에 그 사람들이 죽은 시체를 장사하는 것을 많이 봤을 거라 말이오. 그런 걸 꿈에나 환상에나 실지로 본 사람 손 들어 봐요.
그런 거 본 그런 경험 있는 사람. 그런 거 본 사람 경험 있는 사람 손 들어 봐요.
요거 밖에 없어요? 손 들어 봐요. 없어요? 안 그럴 건데.
이렇게, 차차 차차 자기의 생명에서는 영생하는 생명이 확고하고 이 육체의 생명 이거는, 이거는 바람에 날리는 것같이 여기기 때문에 부인하는 건 아니지만 있기는 있지마는 이거 생명보다도 하나님을 향해서 중생된 이 생명이 확고하고 완전한 생명인 것인 것을 자기가 확실히, 육체의 생명을 보는 것보다 확고히 보는 그런 자꾸 신앙의 단계에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의 이 부활하심으로써 하나님을 향해 사는 완전 생명으로 우리가 중생됐지, 또 진리로 영생하지, 또 영감으로 영생하지, 또 우리가 영원한 천직, 이것도 뭐 암만 말해야 참 모르기 때문에. 이 제사장직이 얼마나 영광의 직인지 모릅니다, 제사장직.
그러기 때문에 성자들이 다 제사장직을 하기 때문에 자기가 이 땅위에서 어리석은 십자가의 걸음을 걷지. 우리는,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중보된 것이 교회입니다, 중보된 것. 그러기 때문에 만물이 우리가 중보 역할을 바로 하기를 탄식하면서 고대한다고 하지 안했습니까? 이러니까 이 제사장직 선지직, 이 선지직 이런 것도 우리가 자꾸 경험해 보면 아는 것이 사람에게 이라면 안 된다 이렇게 살아라 할 때에 그 사람이 그렇게 살면 그만 구원된다 말이오. ‘네가 이런 지금 환난을 만나고 있는데 네가 요렇게 살아라.’ 살라고 시키는 대로 그대로 살면 그 환난도 없어지지 변화도 돼지지 하나님의 축복도 오지.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요렇게 해라’ 하나님의 뜻인 진리를 알려 줄 때에 우리가 그 사람에게 전하면 그 사람이 진리대로 안 해서 탈이지, 내가 여기서 암만 전해도 여러분들이 하지 안해서 탈이지, 내가 이대로 하나님 말씀 전해 준 대로 여러분들이 했으면 벌써 다 변화돼 가지고 뭐 굉장하게 다 존귀해져 버렸습니다. 존귀해지지 않는 것은 뭐이냐 하면 하지 안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말이오. 해 보라 그거요. 이게 선지직이라, 선지직.
하나님이 인간에게 뭐 주실 때 그 충만함을 주실 때 뭘로 줍니까? 말씀으로, 진리로 줘. 진리를 줘서 진리로 주시는 그대로 행하면 그만 모든 게 다 된다 그말이오.
선지직이지 왕직이지, 우리를 모든 피조물을 하나님의 단일 통치, 단일 통치에 거게 소속해 가지고 단일 통치로 움직이면 이거는 영원히 멸해지지 않는다 그거요.
이러니까 이 구원이, 우리의 구원의 기초가 다섯 가지, 또 이 기초 위에 예수님이 죽으심으로써 우리에게 건설해 가지고 주신 구원이 다섯 가지,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써 또 건설해 가지고 우리에게 주신 구원이 여섯 가지 이래서 전부 다 말하면 열여섯 가지의 구원인데 이 구원을 우리가 자꾸 생각하면, 이 구원만 생각하면 그만 뭐 먹기는 뭐 먹고 살라고, 이 구원만 생각하면? 자꾸 이 구원만 생각해. 이 구원만 생각하면 살아. 이 구원만 생각하면 살아.
이 구원만 생각하면 어찌 먹고 사요? 먹고 사는 그까짓 거는 문제가, 육체의 먹고 사는 거는 문제가 없어. 왜? 이 구원만 자꾸 생각하고 ‘내가 요대로만 살아야 되겠다’ 하는 결심하고 그대로 살아, 어떤 현실이라도. 하나님께서 이 현실 줄 때에 그 현실에도 그 구원대로 살고 조 현실 주실 때도 그 구원대로 살고 이 사람은, 예를 들어서 만일 ‘신사참배 안 하면 죽인다’ 해도, 죽인다 해도 죽었으면 죽었지 신사참배 안 하고, ‘너 이거 우상에게 절하지 안하면 불미 가운데 집어 넣는다’ 해도 우상에게 절하지 안하고, ‘너 이거 지금 기도하면은 사자구덩이 집어 넣는다’ 해도 기도하는 걸 중단 안 하고 기도하고, 자꾸 이리 하는 것이, 이런 현실 저런 현실을 줄 때에 그 현실을 따라서 살지 안하고, 현실에 피동돼서 살지 안하고 어떤 현실이 오든지 하나님의 이 도로써 그 현실을 꿰뚫는다 말이오. 어떤 현실이 와도 이 현실이 변해져도 하나님의 도대로 사는 생활이 변해지지 안해. 알겠습니까? 어떤 현실이 변해 와도 하나님의 도대로 사는 생활이 변해지지 안할 때에 그 사람은 세상을 이겼고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이 주시는 걸 다 받을 수 있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우리는 뭐 이것만 자꾸 생각해서, 그러면 이 현실에 따라서, 현실 따라서 사는 것이 그것이 에덴동산에서도 “이 동산을 다스리며 지키라” 다스리라 했는데 다스리지 안하고, 하와가 동산을 다스리지 안하고 동산에게 다스림을 받았다 그말이오. 받지 안했어? 동산에 배암이 있는데 배암에게 통치를 받아 가지고 배암 따라서 피동했지 제가 그것을 통치했다면은 문제가 없어. 통치하면 그것을 다 정복하고 지배했을 거라 말이지.
그것이 우리에게 도를 가르친 것인데 오늘도 자꾸, 지금 열여섯 가지. 또 열네 가지라 할 때도 있고 열한 가지라 할 때도 있고 자꾸 그걸 좀 어릴 때에는 간단하게 하고 또 나중에는, 뭐 어릴 때에는 이 세 가지, 사죄 칭의 화친 이라고 또 좀 거석하면 좀 세밀히 알기 위해서 대형으로 사죄, 대행으로 칭의, 또 대화목으로써 화친 이렇게 영생의 생명을 이렇게 말하는데, 자꾸,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로다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영생이 있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고 모두 다 죽지 안하고 멸망하지 않고 다” 이 피와 살을 먹음으로써 된 것은 다 부활한다 말은 그거는 뭘 말하느냐 하면, “영생이 있고 부활한다” 말은 이 고기덩어리의 기능은, 고기덩어리 이거는 죽지만 부활한다 그말이오. 이 마음의 기능은 그대로 살아서 하늘나라 바로 가 버리고.
이러니까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나로 인하여 살리라” “나로 인하여 살리라” 나로 인하여 살리라 말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산다 그말이오.
주님으로 인하여 사는 것 주님으로 인하여 사는 게 뭐입니까? 주님이 오늘 아침에 말한 걸로 말하면 열여섯 가지 구원이라 말이오. 그렇지 않습니까? 열여섯 가지, 기초가 다섯이요 또 죽으심으로, 세 가지 종류의 죽으심으로써, 예수님의 죽으심도 한 죽으심이지마는 세 가지 면으로 죽으셨다 그말이오. 또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여섯 가지를 건설해 준 거, 이 열여섯 가지를 자꾸 자기 마음에 생각해서, 딴거 안 생각하고 이 열여섯 가지만 생각해 ‘주여, 내가 요 열여섯 가지 지극히 큰 구원을 내가 등한히 여기는 이런 죄를 짓지 안하고 이 큰 구원을 받았으니 지극히 큰 이 구원으로 살게 해 주옵소서. 이 구원을 버리지 안하고 이 구원을 보수하고 이 구원을 가진 자로 살게 해 주옵소서. 이 구원으로 살게 해 주옵소서.’ 자꾸 이걸 기도하니까 이 구원으로 살게 해 달라 하니까 이게 뭐 이런 이 구원을 버리지 안하면 안 되는 그런 환경을 줘도 버리지 안하고 그 구원으로 살고 보니까 그게 의라. 그게 축복이라, 바로. 복을 끌어와.
이렇게 하면 우리가 이 육도, 말씀하시기를, 주님 말씀하시기를 “나와 내 복음을 위해서 부모나 형제나 자매나 처자나 전토나 손해본 자는” 버린 자는, “손해본 자는” 왜? 이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 복음이 뭐입니까? 주님과 복음이 뭐입니까? 이 열여섯 가지가 주님과 복음이라 그말이오.
“이를 위해서 손해본 자는 금세에 있어서“ 뭐라 했습니까? “금세에 있어서 백 배나 받고” 백 배도 더 받아. 백 배도 더 받아. “백 배나 받고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다” 영생을 다, 현실에서 전부 영생 영생으로, 그 기능이 전부 영생 영생으로 다 화해지고 말아.
이러기 때문에 이제 한 사람이, 한 사람이 이 세계 믿는 신자 전부의 구원 중량보다 기능 중량이 큰 사람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것을 다 당신이 벌써 상속 받았고 모든 만물 가운데에 다 중보자의 중보자가 됐다 그거요.
이러니까 우리가 이 큰 구원을 자꾸 이렇게 생각하면 이것만 생각하면 삽니다.
요게 해결이 안 돼 그래요, 다. 이 큰 구원만 자꾸 생각하면 어찌 돼요? 이 큰 구원만 생각하면 부자도 돼요. 왜? 이 큰 구원만 생각하면 실수를 안 해. 이 큰 구원만 생각하면 하나님이 볼 때 ‘너는 인격자다. 억만금을 돈을 줘도 너는 돈으로 시험에 들 자가 아니다.’ 하나님이 억만금을 뺏들어도 보고 줘도 보고 이라니까 그런 것으로 피동되지 안하니 그것에 물질로 피동되지 안할 때에 벌써 물질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얼마든지 맡길 수 있고 권세로 피동되지 안할 때에 권세를 맡길 수 있고, 자기가, 그거는 그런 걸 다 소분지로 여기고 그건 사소한 걸로 여기고 오히려 하나님을 얻고 진리를 얻고 영감을 얻는 거 이게 큰 줄 아는 사람은 그뭐 땅위에 그런 것을 가치로 보지를 안합니다. 여러분들이 암만 함께 살아도 몰라. 아무리 한 자리에 살고 같이 한 방에 누워자고 같이 살아도 서로 모른다 말이요, 이거 사람이 이래 큰 사람 되는 거는.
이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나는 스스로 부요하여 부족함이 없다 하나 실상 너희가 가난한 것과 가련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을 것을 알지 못한다”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안약을 사서 발라서 보게 하라. 안약이 뭐이요? 안약이 뭐입니까? 영감과 진리입니다.
영감과 진리대로 모든 것을 생각하면은, 영감과 진리의 맞보기를 말이요, 눈이 깜깜하게 어두워 못 보는 사람이 안경 쓰면 보이지 안해요? 이와 마찬가지로 영감과 진리의 안경을 쓰고 보면은, 영감 이 성경 지식대로 모든 것을 비판하고 평가하면 그거는 완전하다 그말이오. 이것을 가리켜서 “안약을 사서 발라서 보게 하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이 구원의, 지극히 큰 이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우리는 멸망 받습니다.
등한히 여긴 것만치 멸망받습니다. 등한히 여긴 것만치 그 현실에서 영생시킬 심신의 기능을 다 멸망을 시키고 맙니다.
이 지극히 큰 구원의 큰 것을 자꾸 새기고 새기고 자꾸 새겨 봐. 새겨 봐서 이 구원의 큰 것을 아는 것만치 그 사람의 심신의 기능은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하나님이 나 위해서 죽어 주셨다는 거,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세 가지 종류의 죽으심으로써 나에게 인간이 할 수 없는 다섯 가지 큰 구원을 주셨지마는 이것이 뭐 하나 아이들 이런 뭐 그저 콧노래 부르는 말하는 거 이런 걸로 여기지 이렇게 그 가치를 여기지 않는다 말이오.
이거 우리가 자꾸 이래 자꾸만 이거 새겨, 할 일이 다른 게 아니고. 이것만 자꾸 새기요, 새겨. 깨어 있을 때는 이것만 자꾸 새겨. 딴거는 안 하고? 딴거는 안 하고? 이대로만 나는 살라고 자꾸 애를 쓰고 이러니까 그저 이대로 이 열여섯 가지 하나님이 주신 이 지극히 큰 구원을 나는 생각하고 또 그대로 행하고 생각하고 그대로 행하고 생각하고 그대로 행하고 그라는데, 그러면 생각하고 그대로 행하는데 항상 그 현실뿐이면은 우리는 생각하고 행하는 것이 뭣 되겠어? 꼭 같습니까 다릅니까? ○ 뭐꼬, ○장로 아들 뭐꼬, 이름이? ○○○이가? ○○○이 너는 무슨 교회고, 그 교회가? 무슨 교회지? ○○교회지? ○○○교회서 제가 잘 믿겠다고 뛰어나온 게 여기 와 가지고 무슨 준비하는지 몰라. 뭣을 하고 있는지? 조거 내가 언제 한번 시켜 보니까 고 희망이 있다 봤는데, 아주 철두철미하고 세밀하고, 내가 뭐 많은 거 안 시켰어. 잠깐 한, 한 서너, 두 시간인가 한 시간 시켜 보고 난 다음에 ‘조놈이 뭐 할라면 할 수 있기는 있겠다’ 싶은데 지금 뭐 고물상을 해 가지고 돈을 얼마나 벌은지 몰라도, 얼마나 벌어 놨나? 좀 벌었나? 벌어놨어? 지금 개척교회 하나 할라면 그래 인제 저 집 사 가지고 그래 할 수 있을 만치 돈 벌었나? 못 벌었어? 돈만 번다 하며 그걸 못 벌어? 참 돈 벌기가 힘드는 모양이라. 어찌 그리 힘들꼬? 나는 돈을 줍겠던데. 지금도 뭐 막 시가에 널린 게 막 돈이라. 전체가 널린 게 막 돈이라. 막 돈인데, 돈인데 이 돈을 제가 자꾸 흩쳐 버리거든. 왜? 현실 당할 때마다 요렇게 해 가지고 요 열여섯 가지 구원으로 살면 당장에 하나님도 축복하시지 사람도 축복하지 인정돼지지 이러니까 요대로만 하면은 하나님이 현실에 딱 예를 들어서 돈을 놔놓고 요 돈은 하나님이 열여섯 가지 이 구원대로 하면 고거 쥐고 구원대로 안 하면 쥐지 못하도록, 구원대로 하면 그것이 제것이 되고 구원대로 하면 그게 보여지고 구원대로 하면 뽈끈 거머쥐고, 구원대로 요 구원대로 하지 안하면 튕겨트려 내트리게 요래 되도록 딱 만들어 놓으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전능자요? 얼마나 지혜자입니까? 이래 놓으니까 다 거지가 돼지지. 뭣 때문에 거지가 됩니까, 거지되기를? 요대로 자꾸, 요 열여섯 가지 구원만 자꾸 생각해요. 생각하면, 요 현실에도 요 성경대로 조 현실에도 성경대로, 자꾸 하나님이, 현실은 하나님이 바꿔 주시요.
하나님이 현실을 바꿔 주시니까 바꿔 주시는 현실마다 요 말씀대로 영감대로 진리대로만 나는 살아. 나는 영감과 진리 생활만 하고 있어, 딴거 안 하고.
요 현실 줘도 영감과 진리 생활 조 현실 줘도 영감과 진리 생활 그러니까 그대로만 하니까 그것이 하나님 차지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다 차지하는 것입니다.
요대로 실행하면 뭐 우리 서부교인들이, 뭐 세월이 남아 있는지는 모르지마는 삼 년 하면 전부 부자 다 됩니다. 부자 다 돼. 다른 사람들이 다 얼추는 다 부자가 다 돼, 뭐. 다 거부가 다 돼요, 삼 년만 하면. 삼 년까지 가지 안해. 일 년만 가도 말이요? 자꾸 와 가지고 막 들이 쌓여 재끼요.
보면은 사람을 지도해 볼라 하면은 ‘너는 참 탈이다. 너는 병이 이게 병이다.’ 어떤 사람은 보면은 그놈 욕심 하나가 병이라. 어떤 욕심 하나 병이라. 어떤 사람은 음욕 하나가 병이라. 어떤 사람은 그 고집 하나가 병이라. 어떤 사람은 물욕 하나가 병이라. 그놈만 없으면 싹 얼마든지 막 형통해 가지고 복이 있을 건데 그놈이 들어서 딱 어둡게 만들고 실패를 만들고 말거든.
이러니까 여러분들 요렇게 똑똑히 가르쳐 줘도 못 한다면 이거는 뭐 여러 수십 번 수백 번 경험하고 체험해 가지고 환하게 경험하고 체험했기 때문에 말하는 것인데 이대로 실행 안 하니까 몰라. 이 도는 제가 거리가 멀기 때문에 실행을 해 봐야 받은 증거가 있지,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그거 찬송 한번 합시다. 몇 장이지? 63장이가? 63장.
구주 예수 의지함이 심히 기쁜 일일세 허락하심 받았으니 의심 아주 없도다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 예수 귀한 예수 믿음 더욱 줍소서 구주 예수 의지함이 심히 기쁜 일일세 주를 믿는 나의 맘을 그의 피에 적시네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 예수 귀한 예수 믿음 더욱 줍소서 구주 예수 의지하여 죄악 벗어버리네 안위받고 영생함을 주께 모두 얻었네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 예수 귀한 예수 믿음 더욱 줍소서 구주 예수 의지하여 구원함을 얻었네 영원 무궁 지나도록 함께 계시리로다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 예수 귀한 예수 믿음 더욱 줍소서
이 믿음이 생기는 거는 우리가 노력을 해야 돼요. 제가 거창 있고 그때 집사로 다니고 이렇게 하면서 집회 다닐 때에는 밤새도록 찬송해요. 찬송하면 이거 꼬쟁이 이거 뚜드리는 꼬쟁이가 이 팔뚝만한 것이 있어요. 이거 이거만 가면 이거 가지고 막 뚜드리면 이 꼬쟁이가 다 그만 피어서 달아나고 어데든지 그만 책상, 어데 교회든지 가면 그만 책상이 이거 그만 다 절단나 버리고 그만 이래 가지고 이래서 하니까 그 사람들 다 6 5 때에 다 승리했고 왜정 말년 때에 다 승리했어.
뭐 신사참배 암만 그래 쌓지마는 그 문제가 없었어. 6 25 때도 그 사람들은 뭐 콧노래 부르고 돌아다녔어. 하거나 말거나 하루 세 번씩 종치고 딱딱 그렇게 예배 보고 이랬어. 그 조그마치라도 그 사람들한테 굴하거나 그렇지를 안했어요.
이러니까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자는’ 그거 있지? 그 찬송 참 좋아요. 자꾸 해요. 하고, 어짜든지 뭐 부자되는 비결이 딴거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삼아 가지고 하나님 법도대로 하면 아무리 뭐 빚투성이 어떤 궁지에 빠져도 삼 년이면 다 헤어나고 큰 부자 다 돼요. 부자되는 그까짓 거야 문제가 없어.
가다가 올라가다가서 되다가 딱 자기 주관으로써 ‘요럴 때는 이거 믿으면 안 되겠다.’ 그럴 때가 자기 부인하는 것인데. 그럴 때에 자기를 인정하면 예수님을 부인하게 되고 예수님을 인정하면 자기를 부인하게 되는데 그럴 때가 자기 부인하는 그때가 하나님 인정하는 때요 인정하는 때가 하나님의 축복 받는 때라 말이오. 이런데 이걸 도무지 경험하지 안하기 때문에 안 돼. 경험해서 자꾸 살아 가지고 이와같이 돼 나가는 건데.
세계 기독교가 다 모든 면에 이렇게 부흥돼 나간 것은 다 경험과 체험의 종교에서 그렇습니다. 이랬는데 지금은 많이 침체가 돼 가지고 있는데 지금도 뭐 재미 있는 꼴 많이 봐. 어떤 사람은 이 신앙으로 사는 사람들은 믿음이면 다 된다 하는 용기를 가지고 백절불굴의 신앙으로 나가고 다 믿음 하나 가지고 다 돌파하는데 이 입술만 가지고 믿고 실행을 아주 안 해 본 사람은 예수 믿는 게 어떻게 피곤하고 된지? 네가 네 생각으로 하는 그게 너 망하는 거라. 네 생각으로 하는 그게 네 망하는 것이고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그게 성공이라.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십 분 기도 후에 결혼 상담 있습니다. 주일학교 반사 선생님들은 공과를 꼭 외우도록, 지난 주일 공과가 한번 더 하게 되니까 외우도록 하시고, 지하철 공사 위해 그거 계속 기도합시다. 이 계속 기도하면 하나님이 해 주실 때에는, 하나님이 해 주실 때에는 굼벵이가 가도 그 일이 성공이 잘 돼요. 하나님이 안 하시면 아무 소용 없어. 아무리 잘난 사람이 와도 소용 없어. 이러니까 자꾸 기도를 많이 해요.
많이 해 가지고 그 일이 잘되도록.
또 하루 삼십 분 기도 놓지 말고 기도합시다. 이 기도 빠지면 헛일이라. 삼십 분 기도 빠지면 헛일이라. 강퍅하게 이 말 해도 예사로 듣는 사람들, 앞으로 슬기 없는 다섯 처녀 나중에 급하게 날뛰었지만 무슨 소용이 있었습니까? 급한 꼴 봤지마는 아무 소용이 없어.
이거 다 죽었기 때문에, 이거 새벽기도가 이것밖에 안 나와. 인제 내가 아파 안 나오니까 안 나오지 싶어서 어누리해 가지고 안 나온 사람들 많을 거라. 어째 그럴 때는 마귀란 놈이 주는 계산은 어떻게 빠른지? 잘 때에 잠결에 그 계산 대는 것과 같이 안 일어날라고 하는 그 계산과 꼭 같애. 마귀 그놈이 그렇게 감쪽같이 우리를 미혹시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