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6 13:11
기도의 중요성
본문 : 요14:13-17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 양성 일위이신 예수님이십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되어 오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실 그 이유는 한 말로 말하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 홀로 계시는 하나님,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 이 하나님을 사람들이 아는 것이 제일 큰 지식이고 또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제일 복이고 또 하나님에게 소망하는 것이 제일 든든한 일인데, 제일 중요하고 요긴하기를 생명이 되고 지능이 되고 행복이 되는, 이 하나님이면 참, 하나님에게 지음받은 인생으로서는 전부가 되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한 분이시면 사람에게 전부가 되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분이신고 하니 먼저 우리의 생명이 되시는 하나님이시오, 또 다음에는 우리의 모든 기능이 되는 하나님이시오, 또 셋째는 우리의 모든 평강과 행복이 되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전부라, 하나님 한 분만 우리가 모신다면 다 있습니다. 생명도 있고, 능력도 있고, 평강과 행복도 있으니까 그 만하면 다 아닙니까? 이런데 이분을 사람들이 마귀의 꾀임에 빠져 가지고서 그만 잊어버렸다 그말이오. 이분을 잊어버린 그것이 원죄입니다.
인간이 망하고 죽는 것은 뭣 때문에 망하고 죽느냐? 이분을 잊어 버렸기 때문에 망하고 죽는 것입니다. 이분에서 만 인생의 생명이 나오고 인생의 지혜와 능력이 총명이 나오고 이분에게서만 평강과 기쁨이 나오고 이분에게서만 모든 행복이 나오는 것인데 이분을 잊어버리고 나니까 생명이 없어 죽었습니다. 지금 영은 죽었고 육은 살아 있다 하지만 차차 차차 죽어서 인제 죽기 시작해 가지고서 세상을 떠날 때 죽는 그것이 완전히 다 죽는 것입니다. 또 아무런 물 한방울도 움직일 만한 기능이 없는 아주 무지 무능한 자가 영원히 됩니다. 또 아무런 평강이 없는 불 가운데와 갚은 곳으로 가게 됩니다, 하나님 평강이 없으니까.
거게는 아무런 조그만한 소유도 없습니다. 이런 결과를 맺게 됐습니다.
이러니까 예수님이 오신 이유가 뭐이냐? 하나님이 특별히 택한 자들과 모든 만물들에게 얼마나 필요하고 전부가 되는 이 하나님이신데 이 하나님을 마귀에게 꾀여 가지고서 하나님이 필요 없는 줄로,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도리어 자세를 부리고 홀로의 욕심을 부린 줄 알고 '하나님이 하나님 됐는데 우리도 하나님 못 될 것 뭐 있느냐?' 우리가 하나님 되는 길이 있다고 배암이 말하니까 널름 하나님이 되고 싶어서 그렇게 선악과 먹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오신 것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출하기 위해서 오셨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예수님이 오신 것은 자기 백성이 모든 것이 삐뚤어져 가지고 있으니 삐뚤어진 데서 구원하기 위해서 왔다 그말입니다. 죄는 삐뚤어진 걸 말하는데. 죄는 무엇이든지 삐뚤어진 것.
삐뚤어진 건 다 죄입니다. 삐뚤어진 데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하나님이라, 예수님이라는 뜻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모든 삐뚤어진 데에서 구출하기 위해서 오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에 예수님께서 다 시행하시는 것은, 여기 13절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을 하리니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 우리는 아무 공로가 없지만 예수님의 이름을 붙여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는 기도를 하면 예수님께서 다 그 시행을 하십니다.
이렇게 뭐라고 썼든지 그 글을 계약을 써 놓고 난 다음에 그 계약에다가 누구의 도장을 찍든지 도장을 딱 찍으면 그 계약은 도장 찍은 임자가 책임을 집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게서 뭐 관청에서도 다 무슨 서류를 하면 그 서류에다가 혹은 본인 도장, 또 거게 대해서 책임자 도장, 무슨 동회라면 동회장 도장을 꼭 찍으면 이건 동회장이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누가 그것을 말하든지 동회장이 책임을 지고서 그 서류를 올린 것이기 때문에 구청에서는 허락을 해 줍니다.
또 시청에서는 구청에 구청장이 도장을 딱 찍어버리면 어떤 사건이라도 그 사건을 구청장이 책임지고 구청장이 청구하는 것인 줄 알기 때문에 거기게서 또 허락을 해 줍니다.
경찰서에서도 그 한 것을 그 시경에 올리면 거게서 서장의 도장이 찍혔으면 시경에서는 그것을 보고서 '이것은 아무것이가 지금 그 서장이 올린 것이구나' 하고서 해 준다 그말이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무슨 기도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위반되지 안하는 기도, 하나님에게 위반되는 기도는 그것 안 되지마는 하나님께 위반이 되지 안하는 그 기도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하면 그 도장 쩍은 것과 같이, 예수님의 도장을 찍은 것과 같이 그만 그것을 예수님이 하나님에게 기도한 기도가 되기 때문에 그 기도를 예수님이 다 이행을 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고 하니 전지 전능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사람되어서 사람 보기에는 겉은 사람 갈지만 전지 전능의 하나님이라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너희들이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기도하면 내가 다 그대로 시행을 하겠다' 시행하는 이유는 뭣이냐? 시행하는 이유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그말에는 아버지나 내나 예수님의 신성이나 같은 한 하나님이신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에 들어 주시는 것은, 사람들이 보이는 것만 인정을 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인정을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사람으로 나타난 것이 예수님이십니다. 이러니까 보이는 사람으로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모든 백성들이 당신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면 기도하는 대로 다 시행하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에게 기도하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에게 기도하니까 다 이대로 시행을 해 주시는구나.' 하는 것은, 예수님은 사람들이 알기를, 내나 하나님이시지 만 보이는 분이 되어 놓으니까 보이는 분으로 와 놓으니까 사람인가 이렇게 생각하고 보이지 않는 볼 수 없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사람이 모르기 때문에 볼 수 없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뭣이든지 기도를 하면 다 예수님이 시행해서 '이렇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이 기도를 다 하나님이 들어 주시는구나. 과연 하나님이 계시는구나, 하나님은 우리의 구하는 것을 들어서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이시로구나.' 이렇게 해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하나님에게 속해서 살도록 하는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기도의 법칙을 내 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기도법을 주신 것은 우리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기도법을 내어 주신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계신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게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면 들어 주신다.' 한 가지 두 가지 기도해서 들어 주시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이거면 다로구나, 무엇이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에게 기도하니까 아버지가 들어서 다 이루어 주시니 이것 저것 뭐 찾을 것도 없고, 구할 것도 없고, 애쓸 것도 없이 보이지 않는 그분이 계시는데 그분이 뭐 능치 못할 것이 없고 없는 것이 없고 모든 걸 다 할 수 있으니 보이지 않는 그분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만 하면 그분이 들어서 다 이루어 주시는구나.' 이래서, 사람들의 전 소망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게 소망이 있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게 모든 사정을 고해서 서로 도움을 입고 의논의 가장 대상이 되는 것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라, 보이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서, 보이는 하나님은 누구입니까? 보이는 하나님은 예수님은 보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보이는 하나님으로 나타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보이는 하나님으로 그렇게 계실 수는 없기 때문에 보이는 하나님으로 오신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알려 주기 위해서 왔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게 보이는 이 하나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다 이루어지니까 이제 사람들을 차차 차차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그분만 믿고 이렇게 되어야 이 본격적으로 바로 되는 것이라 그거요.
하늘나라도 가면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볼 수가 없습니다.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모세는 예수님의 모형이라 할 수 있는데 하나님을 보여 준다고 하시고 하나님의 안면을 보이면 죽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등을 봤다 이랬습니다. '하나님의 등을 봤다' 하나님의 등을 봤다 이 말은 하나님의 앞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뒤를 봤다 그말인데, 이제 그것은 하나님을 직접 대면해서 보면 죽습니다. 왜? 그분은 완전이기 때문에.
자, 죄와 사람이, 세워 놓은 밝은 법과 둘이 만나면 죄는 어찌됩니까? 죄는 자랍니까? 묶여 들어가야 됩니까? 죄는 사형을 받아야 됩니까 그대로 유지됩니까? 죄를 멸하는 것은 하나님이 법이 오면 죄를 멸하게 됩니다. 죄는 그만 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기도하는 이 기도의 법칙을 주신 것은 무엇 때문에 주셨느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계신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그분이 전부의 전부다 이분이 전부의 전부인데 사람들이 마귀의 미혹에 따라서 하나님이 보이지 안하니까 그만 다 실패요. 하나님이 안 보이니까 실패 아닌 것이 하나도 없어, 하나님 모르니까 실패 아닌 것이 하나도 없고, 하나님 바라보지 안 하니까 실패 아닌 것이 하나도 없고, 하나님 의지하지 안하니까 실패 아닌 것이 하나도 없고, 하나님에게 순종하지 안하니까 실패 아닌 것이 하나도 없어. 하나님 떼내 버리고 나니까 전체가 사망뿐이라. 떼내 버리니까 전체가 사망뿐인데 하나님과 연결이 되면 전체가 생명과 평강뿐이라.
이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기도법을 주신 것은 하나님에게, 하나님이 이렇게 계신다, 이분에게 속하면 다 된다, 이분 바라보면 다 된다, 이분 의지하면 다 된다, 이분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다 된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기 위해서 이것 위해서 하나님이 이 사람되시기까지 천해져서 오셨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이 하나님이 우리가 기도하기를 원하시고 기도만 하면 기도하는 대로 다 이루어 주셔서 '과연 하나님이 계시는구나'하는 것을 알려 주시기를 하나님이 이렇게 소원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뭐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어 주시겠나 안 들어 주시겠나 그런 망령된 생각은 가질 필요가 없다 말이오. 하나님이 이것이 소원되어서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십자가에 못박히기까지 하셨다 그말이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을 이 피조물들이 알아서 볼 수 없는 하나님과 관계를 바로 가지면 이제 피조물이 영 생하고 다 행복을 누리게 되는데, 볼 수 없는 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하는 마귀란 놈이 인간을 전체를 망하게 했는데 둘째 아담이 와 가지고서 볼 수 없는 하나님을 찾아 알아 바라보고 의지하도록 하기 위해서 오셨다 그거요.
그런고로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이런 뿌리가, 근원이 중대한 문제 중대한 문제에 걸린 그런 기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는 뭐 안 들어 주실런가 하나님이 어떻게 할런가 그런 망령을 부리는 게 다 망령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기도하는 걸 이렇게 원하시고 또 기도하면 다 시행하십니다.
주님이 다 시행하셔.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우리가 하는 것 아니라 하나님이 다 그대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다 시행을 해 주신다 그말이오.
그런고로 '너희가 내 이름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하는 것이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라 그말이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무엇을 구하든지, 그러면 구하는 것은 다 주신다 그말이오, 무엇을 구하든지.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이게 큰 원인이라 말이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해서' 예수님을 인해서, 예수님을 인해서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라 하는 것을 이 피조물들이 알아서 피조물들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에게 속함으로 모든 소원 성취가 다 이루어지는 생명과 평강만이 이루어지는 이 일을 인간들이 받고 난 다음에야 그러고 난 다음에는 영광을 딴 데 돌리겠습니까? 다 하나님에게 영광 돌리고, 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다 하나님만 좋아하게 된다 그거요.
그런고로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 무슨 사람들이 자식이 부모에게 구하는 것처럼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런 껍데기 붙은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되신 것도 무엇 때문에 사람되셨느냐?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도 뭣 때문에 죽으셨느냐? 또 죽은 가운데 또 다시 이 피조물 입고서 부활하신 것이 뭣 때문에 부활하셨느냐? 이 전부는 한 말로 말하면 볼 수 없는 하나님, 참 우리 인생에게 그분이면 다인데 그분 한 분이면 다인데 이렇게 요긴하고 전부가 된 중요한 이 하나님을 그만 보지 못하도록 딱 가려버리고 잊어버리게 했다 말이오.
그러니까 하나님을 도로 찾아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함으로써 생명과 평강과 능력과 모든 부요가 이루어지도록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을 찾아 주기 위해서, 하나님을 알려 주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알아서 하나님 한 분이면 다 돼.
이러기 때문에 이걸 모르는 사람은 계명을 못 지킵니다. 이걸 모르는 사람은 '이것 아무래도 하나님의 계명 지키면 안 될 것 같은데'하고서 엉뚱한 짓 한다 그말이오.
하나님 외에 너에게 필요한 것을 주는 존재가 있는 줄 아느냐? 하나도 없습니다. 털끝만한 것도 없어. 하나님 외에 너를 살릴 자가 있느냐? 살릴 자가 아무도 없어. 하나님 외에 너를 능력 있게 만들 자가 있느냐? 없어. 하나님 외에 너를 부강하게 만들 자가 있느냐? 부강하게 만들 자가 하나도 없어. 알면 이분에게 구하지 안할 수 없고 구하면 다 들어 주십니다.
그런고로 이 기도는 뭐 사소한 문제로 우리 소원을 들어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기도의 법을 정했습니까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기도하는 기도의 법칙을 정했습니까? 요 애기 엄마? 뭣이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도하는 이 기도의 법칙을 주신 것은 우리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기도 법칙을 주셨소 당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기도 법칙을 주셨소? 당신의 소원을 이루시기 위해서 기도 법칙을 주셨다 그말이오.
당신의 소원은 뭣인데? 당신의 소원을 뭐요? ○○O선생? 당신의 소원은 뭣이냐? 당신 한 분이면 우리에게는 전부가 되는데 당신 한 분이면 우리에게는 전부가 되는데 이 사실을 모르고 지금, 우리의 전부, 모든 생명과 평강의 전부가 되는 이분을 딱 잊어버려놨으니 이것 기가 찬다 말이오.
그러니까 하나님의 소원은 뭣이냐? 우리가 우리의 전부가 되는 당신을 찾게 해 가지고서 우리를 행복되게 하려는,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자가 되는 그것은 하나님 한 분이면 이와같이 되어서 뭐 그 외에 하나님같이 되어지는데 딴것 소원할 것 뭐 있습니까? 그런고로 첫째 소원은 당신을 누구인지 인생에게 알리기 위해서 오셨고, 그랬는데 이 기도법을 주신 것은 당신이 계시는 것과 당신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알도록 하기 위해서 이 기도의 법칙을 냈기 때문에, 기도했는데 안 들어 주시면 그것은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모르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 모르게 하는 것이라 말이오.
또 사람이 기도할 때 에, 죄를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들어주시면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이요 모르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모르게 하는 것이라. 그렇지 않소? 하나님은 빛이신 하나님이신데 '죄도 구하니까 하나님이 들어 주시는구나' 이리 되니까 하나님은 죄를 지어야 될 것이고 또 하나님도 죄의 하나님으로 인생이 잘못 알게 될 것이라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삐뚤어진, 죄가 되는 기도는 하나님이 들어 주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들어 줄 수가 없습니다. 또 하나님 법칙에 맞는 기도는 하나님이 안 들어 주실 수가 없습니다. 왜? 당신의 소원이 벌써 인간되어 오시기까지 큰 자본을 들였고 큰 소원을 가지고 했기 때문에 안 들어 주실 수가 없어.
그런고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도 법칙 주신 것은 당신의 소원을 이루시기 위해서 기도의 법칙을 내 주신 것입니다. 당신의 소원은 뭣 인데? 우리가 정말 몰라 그렇지 우리의 소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도는 이렇게 뿌럭지가 크다 그말이오. 뿌럭지가 지금 벌써 하나님이 존재하시고 목적을 정할 때에 그때 이 뿌럭지가 기도의 뿌럭지가 생겨졌다 그거요. 이런데 무슨 기도는 그저 우리가 인간끼리 의논한 것처럼 그렇게 껍데기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함이라 내 이름으로' 그 다음에 14절에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이것이 주의 계명이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 하는 것이 이것이 명령인데 이 명령대로 기도하는 것이 주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 이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라.
주의 계명이 뭣인고 하니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하나님께 구하라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의 전부입니다. 십계명도 다 이것이오.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에게 구하라 하는 것이 계명 전부라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요,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요, 또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을 어떻게 하는 것이라고요? 저 ○O교회 ○조사님 사모님 대답해 봐요. 기도하는 것이 뭣이라 했지? 기도하는 것이 뭣하는 것이라고요? 첫째,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 기도면 다입니다. 모든 신앙 생활 할 때에 기도로 해야 됩니다. 기도로 해야 된다 그말은 자기가 이 심방을 가는 것도, 심방을 가는 것도 '내가 심방 가는 이것은 하나님 기뻐하셔서 내 소원을 들어 주시지' 자기 소원을 하나님이 들어 주시기를 바라는 소망 가지고, 소망 가지고 심방해야 됩니다, 소망 가지고 설교해야 돼요.
그러니까 설교도 기도요, 전도도 기도요, 자기가 죄를 짓지 안하려고서 죄로 더불어 싸우는 것도 기도요 전부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라 그말이오.
그러면 또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고 또 그다음에는 기도하는 것이 뭣이라고요? O○O씨? 봐, 앉았어야 아무 소용 없어. 또 그 뒤에? 또 몰라? 기도하는 것이, 그러면 기도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요, 또 기도하는 것이 뭐야? OOO조사님? 꼭 하나로구만, 보니까.
여게 있는데, 15절에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여기 계명을 지키리라 하는 것은 뭐 하리라 말입니까? 거기 있지 않아? 계명 지키는 것이 기도하는 것이라 그말이요, 계명 지키는 것이. 계명 지키는 것이 기도하는 것이라. 위에 있지 안해요?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니 이렇게 기도하라는 말을 해 놓고 그다음에 '시행하리라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여기 무슨 계명이야? 이것이 하나님이 기도하라는 것, 기도하면 하나님에게 예수님으로 인해서 영광 얻으시기 위해서, 영광이라 말은 '하나님이 이런 하나님이로구나.
하나님 한 분이면 다로구나.' 이것이 영광이라 그말이오.
그러면 계명 지키는 이 계명은 기도하라 그말입니다, 기도하는 것이 계명 지키는 것이라. 또 기도하는 것이 뭣하는 것이라고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 거게 있는데 그것도 연결을 못 하면 어찌 됩니까? 이러니까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 계명 지키는 것이요 또 기도하는 것이 막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 그말이오.
그런데 기도라는 이 기도는 근본 하나님의 허락하신 목적이 지극히 큰 데 있다 그말이오.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신 그 목적 속에 들었어, 이 기도가. 그러기 때문에 기도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인생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기도를 허락하셨어. 이것 기도해서 들으면 하나님이 들어 주실 때에 자기가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제가 그래서 위천교회 시무할 때에 부엌에서, 그 사소한 거라. 부엌에 개미가 어떻게 많은지 자꾸 뭐 음식에 다 들어가서 개미가 바글바글해. 그래 아이에게, 일하는 아이에게 말하기를 '야야, 너 하나님께 기도해라 이거는 네게 당면된 일이기 때문에 네가 개미를 건질라 하고 뭐 따라 못 들어오도록 간수할라 하니 힘이 많이 들지 않나? 하나님께 구하면 뭐 들어 주실라고 하지 안 했느냐? 네가 하나님에게 개미를 없애 달라고 기도를 해라. 그러면 하나님이 없애 주실 것이다.' 며칠 있다가서 말하기를 '개미 있나?' 그렇게 기도하라 해 놓고 개미가 있나 하니까 '아, 개미가 하나도 없습니다, 요새는.' 기도해 놓고 뒤에 개미가 없어졌지마는 그것도 또 모르는 거라, 저는.
기도해 놓고 뒤에 그대로 되어지면 그 본인이 되어지고 난 다음에는 몰라.
사람들에게 뭘 구하고 나면 구해서 이루어지고 나면 그다음에 그만 기도한 것도 모르고 어째서 그래 됐는지도 모르고 이러기 때문에 기도해서 뒤에 이루어지나 안 이루어지나 하는 것을 챙기지 안하는 데에서 믿음이 생겨지지 안하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역부러 밀접하게 하려고 애를 써 놨는데 마귀라는 놈이 챙기지 못하게 해 가지고서 그만 하는 일을 헛일 만듭니다.
마귀 그놈은 그 일만 하요. 그 일만 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 일만 하도록 만들어 놨소. 왜? 안 챙기는 그따위 마음 가지고는 안 된다 그말이오. 앞으로 작은 것을 챙기지 안해 가지고서 실패하는 거게서 가르치지 안하면 뒤에 큰 것을 챙기지 안하고 실패할 것이기 때문에 자꾸 거듭 거듭 깨우쳐서 이와같이 챙기도록 그렇게 해 놓은 것입니다.
그래, 그 아이가 피부에 문둥병이 들었는데 그래 '이것도 네가 기도해라' 이랬더니만 기도해도 안 나으니 '이것은 내가 기도해야 안 되니까 조사님이 좀 기도 좀 해 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기도해 주마' 그래 기도하니까 싹 나았다 그말이오. '네가 이 하나님이 누구신 줄을 알지?' '예, 알았습니다.' 그랬는데 그 뒤에 내가 여기 오고 난 다음에 그 사람이 그만 그 교회 있으니까 위산교회 있으니 그 붙들린 데가 있어 가지고서 그만 오지도 못 하고 그만 거게 있어.
우리가 기도하면 주님이 시행을 하십니다. 그러기에 무슨 일이든지 자기가 미래사를 기도하는 것, 미래사를 기도하면 그 기도로서 앞에 일이 다 열려지고 과거에 잘못된 것을 위해서 기도하면 과거 그것을 하나도 자기에게 잘못된 것이 자기에게 해가 되는, 과거에 잘못된 것을 그대로 두면 해가 될 것 아니요? 해가 될 것인데 그 해가 될 것이 해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해가 될 그것을 가지고 현재세 기도하면 해된 그것을 이제 현재에 이용물로 삼아 가지고서, 과거 그것을 손해만 막을 뿐만 아니라 과거에 해를 만들어 놓은 그 해가 현재를 통해서 유익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기도라는 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보니까 다니엘도 보니 그 기도를 하다가 중단하지 안했어. 어디까지 기도했습니까? 기도하는 것 어디까지 기도했지요, O○O선생? 어디까지 기도했어? 그래 사자구덩이에 들어가기까지 기도했어. 또 들어갔으면 들어가서 거기서는 기도 안 하는 게 아니라 들어가서 또 살아 나올 때도 기도하고 나와 가지고 기도하고, 기도는 죽는 날까지 쉬지 안했어. 우리의 기도는 이렇게 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도하다가 그만 얼마 전에 중단을 해 버렸습니다. 그래 새로 시작했는데 엊저녁에 기도한 사람의 숫자가 얼마라고요? 이 백칠십오 명이, 남녀반에 이백칠십오 명이 나와서 기도를 하고 갔답니다. 이런데, 자, 엊저녁에 여기 기도하러, 다섯시 이후로 기도하러 온 사람 정직하게 손들어. 부끄러우면 부끄러운 그놈을 죽여 위사를 시켜 죽여야 될 건데 부끄러워하고만 말 건가? 기도하러 못 오게 하는 그놈을 죽여야 될 터인데 뭘 위사당할까 싶어서 그래? 자, 엊저녁에 기도하러 못 온 사람 손 한번 들어 봐. 정직하게 들어 봐. 남반이 많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이 하나님을 찾지 안하고 하나님께 구하지 안하고 여러분들이 무슨 능력이 있어서 하겠습니까? 사도행전 12장에 보니까 베드로가 옥에 들어갔을 때에 모든 교인들은 전력을 기울여서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기도하다가 베드로가 나와 놓으니까 기도하는 사람이 믿어야 될 터인데 믿지도 못하고 이래서 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기도의 소리를 듣고 내 주셨는데 기적적으로 나왔는데 나온 걸 보고서 '야, 너 네가 미쳤다. 베드로가 나올 리가 있나?' 또 '그의 무슨 천사가 왔는가보다.' 기도하고도 믿지 못하고 기도하는 일 있습니다. 믿지 못 하고 기도해도 진정 소원하는 그것이 기도의 알맹이오. 진정 소원하는 것이 기도의 알맹이입니다.
두 마음을 품으면 기도하지 말아라 그말은 소원하지마는 소원 안 하는 것, 나도 그것을 다른 것보다도 그것 느껴요. '주를 위해서 순교하고 싶습니다. 주를 위해서 순교하고 싶습니다. 어쨌든지 주를 위해서 생명을 바치게 해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를 해도 겉어머리는 기도하지만 깊은 속에는 주를 위해서 죽고 싶어하는 마음이 없으며 기도한다 그거요.
그것을 얼마나 했느냐 하면 여게 부산에 오기 얼마 전까지도 내가 그걸 느꼈어.
그저 늘 기도하기를 '주여, 어짜든지 순교하게 해 주옵소서. 주여, 나도 주님을, 나 위해서 생명 바쳐 다해서 사랑하시니까 나도 생명 다 기울여 주님을 사랑하게 해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를 하면서 내가 가만히 나를 살펴보면 내 속에 참으로 주를 위해서 죽기를 원하느냐 하는 그것을 내가 이래 살펴보면은 그 속에 아닌 것 있다 그거요.
그래서 '이것 참 거짓부리 내가 기도를 하고 있구나. 두 마음을 품고 기도하고 있구나.' 다른 것은 그런 것을 모르겠는데 생명에 대한 것은 그런 것을 여기 부산 오기 얼마 전까지도 그러면서 몇 십 번 말해서 또 겉어머리 기도하면 또 '이 외식하는 기도야, 두 마음을 품은 자야, 겉은 원하고 속은 원치 안하는 자야.' 이래 가지고서 그것을 참 저버리는데 아주 힘들여서 저버렸습니다.
지금은 내가 기도를 그런 기도를 하면서 이래 봐도 속속들이 원하는 것이 겉으로는 원하는데 속에 원치 안하는 그런 것은 없다 그거요. 원치 안하는 것은 없어요. 이래도 또 죽음이 오면 또 어찌 될런지 모르겠어. 그것 나을런지 모르지만 우리가 두 마음을 품은 자는 얻기를 바라지 말아라 하는 그것은 진정 소원 가지고 기도하지 안하고 겉에만 소원하면서 속은 소원하지 안하는 그런 기도하면 안 된다 그말이오. 그저 믿고 기도하든지 안 믿고 기도하든지 진정 소원을 하나님에게 아뢰기만 아뢰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뢰면 들어 주십니다.
보십시요, 베드로가 갇혔을 때에 그 교회들이 어데 믿고 기도했습니까? 믿고 기도했으면 나왔으니까 '그래? 참 반갑다. 우리가 기도했으니까 하나님이 기도의 소리를 들으시고 내 보내 주시지 안하셨느냐?' 그 나왔다 하니까 '그래, 하나님이 우리 기도의 소리를 이래 기도를 이루어 주셨다.' 이럴 건데 '네가 미쳤다. 베드로가 나올리가 있느냐?' 하니까 그러니까 그게 바라지는 안했다는 그게, 소원은 했지만 이루어 주시리라는 것을 바라는 그 믿음은 모자랐다 그말이요, 없었다 그말이오. 그래도 하나님이 들어 주십니다. 이러니까 어짜든지 우리가 기도합시다.
저도 그런 사람 같애. 제가 이 서부교회가 이렇게 되어진 것. 이것 뭐 부산은 지금은 총신 합동이 좀 있습니다. 그때는 부산에는 총신이니 합동이니 다른 교파가 거의 없다시피 없었습니다. 어떻게 그만 고신 뿐인지, 고신뿐이였는데 고신으로 말하면 모든 사람들이 알기를 천사로 알고 굉장히 알고 있었는데 그 고신이 제게 대해서. 핍박을 그렇게 했는데, 욕을 하고 핍박을 했는데 내가 거게 대해서 대항을 하지 안한 그것이 참 지금 생각하니까 대항하지 안한 그것이 기적이라. 어떻게 내가 대항하지 안하고 거게서 그렇게 지냈던가 하는 그것도 새삼스레 요새 와 가지고서 그것 내가 대항하지 안할 수 있는, 악을 악으로 갚지 안하는, 그 대항하지 안하는 그런 것이 참 순전히 기도의 힘이었다 그걸, 기도의 응답이었다 그게 느껴지고, 또 그렇츰 그래 쌓는데 하나도 대항하지 안하고 그저 설교하고 전도하고 뭐 심방하고 기도하고 이랬는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그래도, 속에 알맹이는 얼마 있는지 몰라도 제일 큰 교회를 일으켜 세워 주셨으니 이것이 기도의 것이다 하는 것이 새삼스레 느껴져요. 얼마 전에 말로는 해도 그렇게 꼭 그렇다는 그것을 느껴진 것은 요번에 기도 시작할 때에 느껴졌습니다.
요번에 기도 시작할 때에 '내가 그렇게 이긴 것도 그것이 기도의 힘이로구나.
또 이렇게 교회를 부흥시켜 준 것도 기도의 힘이로구나 과거에 왜정 말년 때에 신사참배 문제를 그렇게 이긴 것도 기도의 힘이로구나, 6·25 때 그 이긴 것도 기도의 힘이로구나.' 우리가 지금 모르지만 우리 예배당이 그때 있을 때 불타버렸으면 다 타 버렸다 그말이오. '그 모든 것이 기도의 힘이로구나.' 모두가 다 이것 환난을 막는 것이 기도의 힘이요. 성공된 것이 기도의 힘이로구나 하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껴져서 요번에 기도를 시작한 것입니다.
이번에 기도 시작한 이것은 이제 끝이 없을 것입니다. 제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계속할 것입니다.
그런데 엊저녁에 보니까 이백 일흔 다섯 명이 왔으니까 여기에서 새벽기도에 광고하고 다 광고하지 안했으니까 물론 적으리라 생각하는데, 오늘 아침에 광고를 새벽기도 나온 사람은 어제 아침에도 나왔을 것인데 광고를 듣고 엊저녁에 기도하러 안 나온 사람의 수를 헤아려 보니까 다는 못 헤아려도 아마 몇 십 명 되는 것 같습니다. 한 사십 명 될런가 그런 정도니까 그 사람들은 여기서 기도하지 안해도 다른 데서도 할 수 있습니다 꼭 여기 와서 기도할 것 아니라. 여기 와서 하면 좋고.
어떤 사람은 엊저녁에 기도했는데 O집사라는 분인데 OOO씨 구역인데 뭐꼬? 그 쌀장사하는 사람 어디 있습니까? 마을이, 어디요? O가라고 왜 자기 조카인가 뭐 되는 사람. 개금. 개금이 여기 가깝습니까? 개금서 보니까, 내가 멀리 있는 줄 아는데 '어디서 옵니까?' '개금서 옵니다.' 개금서 여기까지 기도하러 왔어.
그 말을 듣고 어짜든지 개금서 여기까지 기도하러 왔어.
이러니까 그 사람은 기도에 힘쓰니까 그 사람 하는 일이 지금 아마 교인으로는 모든 사람이 다 그 사람 하는 일은 빛이 되지 뭐 경제적도 빛이 될 것이고 신앙 행위도 형통하고 빛이 될 거라 그거요.
우리가 참 이 기도 없으면 안 됩니다. 기도 없이는, 하나님 없어도 제가 단독이 하겠다는 그말이고, '바빠서 기도 못 했다' 바빠서 기도 안 하는 것은 기도 안 해도 하나님 안 도와도 제가 바쁘기만 하면 된다는 그것이 이름이 뭐이지요? 그거 이름이 뭐이지요 ! 이스라엘 전에 뭐이요? 야곱, 야곱. 야곱을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다 같습니다. 성경 주석에 말 들어보니까 야곱의 해석은 전부 다 제 힘으로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전부 야곱이라 하는 것은 공통돼 있어, 그 해석이. 이러니까 우리가 기도 안 하면 안 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의 지극히 큰 능력이 와 가지고서 나를 도와서 모두 해 주는데, 이렇게 안 도와 주려 해도 간청을 할 것인데 이분이 지금 도와 주시기를 원하고 있는데 왜 우리가 기도 안 합니까? 오늘 저녁에는 한 분도 빠지지 말고, 오늘 저녁에는 금요일이지? 한 분도 빠지지 말고 다 삼십 분 기도하면 내나 그게 기도니까 기도할 때에 기도의 제목을 어제 말해 놨는데 이 다음에는 오늘 저녁에 혹 말할지 내일 아침에 말할지 기도의 제목을 이제 알려 드리겠습니다.
기도의 제목은 제가 어제 아침에 새벽기도 하고 여게서 앉아서 기도하다가 기도의 제목을 하나님이 주셔서 제가 노트에 기록해 가지고 있다가 그래, 기도의 제목을 기도의 명단 기도록 그 표지에 거게 기록해 놓을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라도 가서 이래 보면 될 것입니다.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기도 없이 하려 하는 것은 아주 미련한 것이요 우리가 기도로 무슨 일 하려 하는 것은 아주 슬기로운 일입니다. 모든 걸 기도로 합시다. 교회 부흥도 자가의 가정의 모든 것도, 우리가 기도를 해도 안 들어 주시는 것은 그것은 반드시 그 뒤에는 크게 들어 주셔서 큰 그 응답이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모니카가 자기 아들이 개망나니라서 위해서 기도했는데 죽는 날까지 기도해도 안 들었습니다. 모니카 죽고 난 다음에 그때에 하나님이 그 모니카의 기도를 들으신 걸 이루어 주셔서 그 개망나니가 세계가 아는 어거스틴이라는 그 성자가 되어졌습니다.
그런고로 우리의 기도는 더디 이루어지면 더 크게 이루어집니다. 이루어지지 않는 일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