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6 13:07
기도의 제도, 목적
본문 : 요14:13-15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13절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처음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 아버지에게 기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 14절에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두번째 말씀 하신 것은 예수님에게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는 한 하나님이신데 사람들이 아버지에게 기도하는 것은 예수님에게 기도하는 것과 다르고 예수님에게 기도하는 것은 아버지에게 기도하는 것과 달리 이렇게 생각하는 그 잘못된 생각을 하지 않도록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버지' 이래 부를 때에는 내가 아버지를 부르나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 됩니다. 또 '주님' 부르면 역연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 됩니다. 또 성령님을 부르는 것도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부르는 일이 됩니다.
어떤 사람은 아버지에게만 기도하려고 하니까 좀 마음에 허전한 기가 있어서 '아버지 하나님. 주님. 성령님.' 이래 한목 각각 불러 가지고 기도하는 그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주관에서 아무래도 아버지만 불러 가지고는, 또 주님만 불러 가지고는, 성령님만 불러 가지고는 마음에 흡족지 않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고 어느 한 곳으로 치우쳐서 중히 여기고 경히 여기는 것 같애서 '아버지 아들 성령님' 이렇게 불러 가지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 불러도 되지마는 주님 한 분 말하면 삼위일체 하나님을 다 부르는 것이고 또 '아버지' 해도 그러하고 '성령님' 해도 그러합니다. 이사야서에는 예수님을 영존하신 아버지라고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게 우리에게 하나님이 기도를 허락하신 것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기도하도록 허락하셨는가? 기도를 허락하신 것은 하나님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요, 하나님이 지으신 것들은 보이지마는 하나님은 보이지 아니하십니다. 보이지 아니하시는 그분이 지음을 받은 모든 것들의 생명이 되고 또 지능이 되고 평강과 부요가 됩니다.
그분에게서 오지 않은 부요도 평강도 생명도 능력도 전혀 없는 것입니다. 순전히 이 하나님 한 분으로 인해서 크고 작은, 모든 것이 다 지음을 받아 그분으로 인해서 있고 또 지음받은 것들이 사는 것도 능력도 평강도 행복도 그분으로서만 얻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악령이 에덴동산에서부터 사람을 꾀워 가지고 보이지 안한 하나님을 가루고-저는 영체가 있는 것이니까-제가 나서 가지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전부 제가 한다고, 하나님이 권리를 가지신 것을 제가 권리를 가졌다고, 하나님에게 대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제게 대해서 하도록 하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될 것을 저를 바라보고 소망하도록 이렇게 감쪽같이 유혹을 시켜가지고 사람들을 어둡게 만든 그것이 원죄입니다. 그 죄값으로 말미암아 인생은 다 죽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배암이 들어와 가지고 인류 시조를 꾀워서 하나님은 필요 없고 마귀가 필요 있는 줄로 이렇게 속여서 그만 사람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얻고 있지마는 하나님은 완전히 잊어버렸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사망 아래에 있는 것만 인생들에게 준 것 그것을 가지고 저주 아래에 있는 것을 받아 가지고 살지 생명과 신령에 속한 것은 하나도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고로 이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잊어버린 하나님을 찾도록 하기 위해서, 모르는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에 전부가 되시는 분인데 이분을 바로 알려 가지고 이분으로 자기 영과 육과 금생과 내세에 전부를 삼음으로 하나도 사망에 속한 것이 없는 완전한 구원을 영원히 누리도록 하기 위해 가지고 하나님이 친히 사람되어 오셨습니다.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하신 일은 그것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그 모든 은혜에 완전히 끊겨진 사람들을 하나님을 알게 하고 하나님을 소망하게 하고 하나님과 연결을 가져 가지고 하나님에게서 모든 은혜를 얻어 가지고 영과 육이 아울러 영원한 평강을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은 하시는 일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보여 주고 하나님을 알려 주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서 하나님에게 올바른 관계를 맺도록 하려는 것이 그것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일이요 또 부활하신 일이요 오늘까지 하시는 일이요 사람되어 오신 그 전부가 다 그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에게 기도하면 어떤 기도든지 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다 시행하시겠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시행하겠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 후에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을 다 상속받아서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하시는 그 모든 것을 인자됨을 인해서 신인양성일위 되신 예수님에게 다 맡겨졌습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법칙에 위반되지 안하는 것을 기도하면 다 들어 이루어 주십니다. 이렇게 하나님 법에 금하는 것, 죄되는 것은 구해도 하나님이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것은 가지지도 말고 버리라 회개하라' 하는 그런 것은 하나님께 구해도 그 죄되는 것은 주지 안하시지마는 죄되지 아니하는 것, 하나님께서 성경에 '이런 것은 너희들이 기도해서 얻어 가지라' 하는 것은 기도하면 다 주십니다.
기도하면 우리 기도대로 다 이루어 주시는 그 기도를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유가 뭐인가? 무엇 때문에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이 기도하는 법칙을 우리에게 주셨는가? 기도하는 법칙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다른 것 아닙니다.
기도함으로 하나님과 우리 인생이 원수되어 있는 것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화친하게 되었다 하는 그 증거를 보이기 위해서 기도하는 법칙을 내 주셨습니다.
그러면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와 화친하게 됐다 하는 것을 보이는 증거가 뭐이 되는가?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에게 기도하면 우리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 아버지가 그대로 이루어 주십니다. 예수님이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권세를 가지셨기 때문에 이제 예수님이 그 일을 해야 되시는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아버지에게 기도한 대로 다 이루어 주십니다.
이루어 주심으로, 자기가 죄인인데 만유의 대주재 되신 하나님, 참 지극히 크신 하나님, 우리가 측량할 수 없고 가까이 가지도 못할 그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 이 하나님에게 우리가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그 기도대로 이루어 주시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될 때에 '하나님은 내 기도에 응답하시고 하나님은 나로 더불어 서로 대화를 하고 계시는 이 하나님이로구나. 하나님은 나로 더불어 서로 대화하는 이 하나님이로구나. 나 같은 것이 어떻게 하나님과 대화하게 되느냐?' 이래서 하나님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대화하게 된다는 것, 또 우리가 기도할 때에 인간이 할 수 없는 그 어려운 모든 일을 다 하나님이 들어서 이루어 주실 때에 '과연 하나님 계시는구나.' 또 자기가 온갖 답답하고 딱한 사정을 인간 누구로 더불어 의논해 봤자 협조해 줄 이도 없고 동정할 이도 없는 그런 답답함을 하나님 아버지에게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그 답답함을 다 들으시고 그것을 잘 우리에게 이해케 해 줘 가지고 어떨 때는 우리에게 가르쳐 줘서 그 답답하던 일이 아버지에게 기도하고 나니까 아버지가 우리의 총명을 열어 줘서 모든 것을 바로 깨닫고 보니까 답답할 것이 하나도 없이 우리 마음에 모든 해결이 되어져서 그 근심 걱정이 물러가는 그런 일을 만날 때에 '하나님 아버지는 나의 사소한 세밀한 모든 것에 대해서 친부모보다도 친밀히 나로 더불어 의논하시고 나의 모든 사정을 들어서 해결해 주시고 또 인도해 주시고 깨우쳐 주시는 하나님이로구나.' 이래서 하나님의 존재를 기도해서 기도의 응답을 자기가 받음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고, 또 하나님이 인간으로 할 수 없는 지극히 큰 어려운 그 어려움을 이루어 주시는 것을 봐서 '하나님은 과연 지극히 큰 능력을 가지신 분이로구나' 하나님 능력을 알게 되고 자기의 답답함을 구하여 해결해 주심을 받음으로 '하나님은 나를 동정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사랑으로 의논하는 사랑의 대상이 되시는 하나님이시며, 또 하나님은 계시지 안한 곳도 없다. 알지 못하시는 것이 없다.' 아무도 모르는 그 사정을 내가 하나님을 불러서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네가 왜 그런 일을 했느냐?' 해서 깨우쳐서 당신이 인간으로는 아무도 모르는 것을 그분이 알아 가지고서 내 마음에 깨우쳐서 그분이 아시는 그 흔적을 나에게 보여 줘서 '그분은 내게 대한 모든 것을 세밀히 조사하고 계시고 다 담보하고 계시는구나' 이렇게 해서, 우리가 기도함으로 이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세밀과, 하나님이 우리로 더불어 친밀히 교제하시는 이 하나님 아버지심을 우리에게 이 기도를 통해서 알리시려고 기도의 방편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면 내가 이것을 하나도 빠짐 없이 다 시행해 주리니' 이것은 뭐이냐? 아들을 인해서 너희들이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는 이러한 아버지로구나' 하여 아버지에게 영광 돌리도록 하기 위해서 이 기도의 법칙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정해 주셨다.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어 주시는 것은 당신이 사람되어 오신 목적이 그것이오.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도 그것이오. 유일로 보이지 않는 이분이 홀로 계셔 가지고 모든 것을 지어서 있게 했고, 하나님이 지어서 있게 된 그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한 분 이분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것뿐만 아니라 생겨진 것들이 또 이분으로 말미암아서만 행복을 누리고 다 생명을 가지고 살 수 있던 이 사실을 하나님이 지으신 이 피조물들에게 알려서 피조물들이 이 사실을 알아 가지고 하나님 한 분에게 매달림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모든 온전한 생명과 행복과 평강을 누리도록 이렇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도성인신도 하시고 십자가의 대속도 하시고 이런 모든 공로를 베풀어서 이 길을 열어 놓으시고 우리에게 기도의 권세를 주셔서 기도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무슨 우리의 가치가 있어서 기도하는 그 기도를 들으시는 것보다, 우리가 간절히 기도함으로서 우리 간절을 인해서 하나님이 이 기도를 들어 주시는 것보다, 또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함으로써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 주시는 것보다, 사정이 딱해서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 주시는 것보다 당신은 모든 존재의 전부 중에 전부인데 이 사실을 피조물들이 몰라서 멸망받는데 이 피조물들에게 당신은 어떠한 분이시라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 애타 하시는 그 하나님이 애타하시는 그 소원을 이루시기 위해서 이루어서 하나님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기 위해서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는 이것은 기도의 제도 목적이, 제도를 내신 그 목적이 하나님의 유일하신 소원, 모든 피조물들이 영원히 망하지 안하고 살 수 있는 구원의 길을 여시기 위해서 이 구원이 당신에게만 있다는 것을 알리시려는, 알려 주시려는 이 중대한 일을 위해서 우리에게 기도의 제도를 허락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는 뭐 인적 요소의 이런 것 저런 것 그것으로 말미암아 된다는 것보다도 그것은 참 뽀스래기 같은 것이고, 당신이 자존하시고 홀로 계시는 그분이 이 피조물을 사랑하시는 그 전부의 소원이 당신을 피조물들이 모르면 절단나 버리고 당신 외에 뭐 어디서 온다고 생각함으로 말미암아 절단나기 때문에 당신을 알려 주시고 당신이 피조물들에게 얼마나 요긴하고 그분 한 분이면 다라는 이 사실을 알려 주려는 이 지극히 큰 문제, 지극히 큰 문제를 우리에게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기도를 정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는 기도한 것이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기도만 하면 즉시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이용해 가지고 우리에게 기도로서 웅답함으로 우리가 하나님께서 구할 때에 하나님이 구하는 대로 우리에게 응답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에게 당신을 알리고자 하시는 그 안타깝고 마음에 갈급한 알리고자 하시는 그 알릴 수 있는 그런 기회가 그 기도로 들어왔기 때문에 안타까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즉시 하나님이 어떠한 하나님이라 하는 것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기도는, 뭐 이 세상에서 사람이 사람들에게 없는 무엇을 구하는 것, 자녀가 부모에게 구하는 것, 또 무엇이든지 간청하면 된다는 그런 약삭빠른 그런 사소한 껍데기에 속한 게 아닙니다. 속한 게 아니고 하나님의 존재를 피조물들에게 알려야 피조물이 사는데 하나님의 존재를 피조물들에게 우리들에게 알리기 위한 그 목적으로 기도의 제도를 세웠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듣지 안 하시면 하나님이 하나님을 피조물들에게 알려서 피조물들을 영원히 살게 하려는 그 일이 실패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는 하나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묵살시키는 일이 없습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구하라 무엇이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아들이 와 가지고, 너거와 이 하나님 사이에 내가 와서 대속하기 전에는 원수가 돼 가지고 너희들이 여러 수억만 명이 부르짖어 봤자 하나님은 눈도 꼼짝 안하지마는 내 공로로 말미암아 너희들이 급할 때 밤에든지 낮에든지 너희들은 허무한 일개의 존재 인간이지마는 너희들이 밤에나 낮에나 하나님을 부르면 하나님이 너거의 소리를 들으시고 와야 대답을 하시고 또 '이 어려움이 있으니까 어떻게 해 주십시오' 할 때에 즉시 들어서 이래 해 줌으로 말미암아 '정말 예수님으로 인해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맺어졌구나.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와 이 모든 의의 문제가 다 원수의 문제가 해결이 됐구나.' 이래서 아들을 인해서 하나님과 이렇게 친밀히 되어진 것과 또 친밀히 되어졌을 뿐만 아니라 이 아들의 이름으로 기도하니까 이것은 기도하는 것은 보이지 안하는 뭐, 보이지 안하는 분에게 기도한다는 것은 이거는 참 미치괭이 짓이요 허무한 중에 허무하지마는 보이지 안하는 그분에게 구하니까 그분이 척척 이루어 줌으로 말미암아 '과연 하나님 계시는구나' 하는 이것을 알려서, 아들이 너희들에게 기도하라 해서 주님이 기도하라 하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하니까 '과연 하나님이 이 기도를 들으시는구나' 이래서 아들의 대속으로 인해서, 아들이 교훈함을 인해서, 아들이 기도 이 모든 신앙 생활의 제도를 우리에게 주시는 이 일을 인해서 아버지를 찾게 됐고 아버지가 이렇다는 분이신 것을 깨달아서 이제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리는 그 일을 하도록 그렇게 하기 위해서 너희들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는 그 들으시는 것이 그 밑천이 얼마나 많으며 목적이 얼마나 크며, 그 기도를 들으실 이유가 얼마나 크다는 것을 여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다 그대로 이루어 주십니다. 그런데 기도하지 않는 자는 그러니까 하나님을 모르게 됩니다. 기도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모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기도를 모르고 아주 철없는 그 어린 때에는 기도하지 안해도 하나님께서 보호도 해 주시고 지켜도 주십니다. 이러니까 그때는 이게 좀 자라야 되고 이거 시대가, 하나님이 예정을 다 시간을 맞추어 가지고서 경륜을 딱 짜 가지고 예정하셨다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때가 되어야 이것을, 이것이 알게 될 터인데 그 전에 죽어버리면 안 되고 절단나 버리면 안 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모든 은혜를 베푸십니다.
베푸시니까 그때는 은혜를 받아 가지고 사람들이 뭐라고 느끼는고 하니 '자연이라' 하나님에게 은혜를 받아 가기고는 '이거는 자연이라' 또 '인간의 운이라' 이건 또 '순환지 이치라' '요행이라 다행이라' 다 이렇게 영광을 헛된 데다가 다 돌려버리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이렇게 주셨다 하는 것을 그것을 모를 때라 말이오.
모르니까 그럴 때는 그래 주시지마는 이제는 예수님의 피공로로 인해서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우리가 알았고 또 영감을 우리가 받았고 또 영감으로 우리가 지혜와 총명을 받아서 우리의 심령이 밝아졌습니다. 밝아진 이후에는 우리가 하나님에게 당신이 주시는 것, 우리에게 주시는 것 주시는 그것이 아무리 크지마는 주시는 그게 큰 것 아닙니다. 주시는 그것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슬슬 알려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는 길을 들이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길을 들이고, 하나님이 우리의 유일한 의논의 상대가 되는 것을 살살 길을 들이고, 하나님에게 어려운 것 큰 것 작은 것 구하니까 하나님이 주시니 이제는 '이거는 하나님이 주신다' 하는 것을 길을 들여 가지고 '하나님이 주시니 나에게 주셨다. 이제 하나님이 주시는 것만 해도 된다. 다른 것들이 안 줘도 된다.' 이래서 전폭적으로 전체가 하나님만 소망하고 의지하고 바라보는 자들이 되도록 하려는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아무리 필요한 것이라도 당신에게 구하지 안할 때는 하나님이 주시지 안합니다. 안 주십니다.
왜? 우리에게 필요한 그것이 필요한 것보다 당신을 아는 것이 더 필요한데 필요한 것이 없으면 하나님께 구하지도 안 합니다. 필요한 것이 없으면 구하지도 안하는데 필요한 것이 있도록 하나님이 현실을 조절해 가지고 필요한 것이 있도록 딱 조문을 이래 만들어 놨는데 필요한 것이 있을 그때에 이제 하나님께 구하지 그것이 없으면 하나님께 구하지도 안할 터인데 필요한 그것을 하나님께 구하지 안해도 척 주시면 '하나님에게 안 구해도 우연으로도 온다, 자연으로도 온다 순환지 이치로도 온다, 요행으로 다행으로도 온다' 이래 버리니까 도리어 그이에게 필요한 그것이 이루어짐으로써 하나님과 멀어지고 엉뚱한 것들만 자꾸 믿고 우리의 그 시야가 다른 데로 기울어지고 우리의 향방이 다른 데로 기울어질 것이기 때문에 안 주십니다.
이러니까 그럴 때에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께서 얼른 들으시고 '네가 나한테 구하느냐? 그러면 내가 주지. 내가 주는 데에는 네가 지금 이걸 주는 데에는 거기에 거리끼는 것이 뭐 하나 있으니까 요걸 회개하라. 요거 회개하면 준다.' 이래 가지고 달라 하는 그것을 가지고 우리에게 거리끼는 것을 회개도 시키고, 우리가 또 하나님을 알게도 하시고, 또 하나님과 우리와 밀접하게도 만들고, 하나님께 정도 들게 만들고, 하나님께 소망도 가지게 만들고 이렇게 하나님께서 여러가지 공작을 해서 이제 기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면 다다'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이렇게 하려는 것이 우리의 기도의 목적이기 때문에 기도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주실 것을, 주면 엉뚱한 일을 하고 도리어 탈선되어서 그 사람에게 불행이 되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닌 공연히 다른 걸로 왔다 해 가지고 우상만 만드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지를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원하시고, 기도를 원하시는 것은 '네가 나한테 한번 구해 봐라. 구해 봐라. 구해 봐라.' 이래 하는 것은 이제 구하면 구하는 그대로 그것을 이행을 해서 '과연 믿을 수 있는 분이로구나. 참 신실한 분이로구나. 참말로 계시는구나. 능력이 참말 있구나.' 이렇게 하나님이 이것을 소원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를 고대하고, 있다 말이오. 그런고로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서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필요한 줄 당신이 아시지요. 다급한 줄 아시지요. 다급한 줄 알아도 하나님께서 주시지 안하고 기도하기를 구합니다 기도하기를 구하는데 이게 미련단지 같애서 기도하기를 구하는데 기도 안 하고 그 일로 가지고 바짝 깨져서 절단이 나 버리면 그만 끝장나 버리니까. 절단이 나 버리면 끝장 나니까 이게 미련해서 구하지 안하고 절단날 때에는 할 수 없어서 당신이 기도하지 안해도 그것을 면해서 우선 살려 놓습니다.
살려 놓으나 그것은 하나님에게 답답함으로 얻은 것이요 자기에게 참 그 답답함을 인해서, 어려움을 인해서, 필요있는 걸 인해서, 자기의 소원을 인해서 그 모든 것이 우리에게 소원이 있는 것, 또 답답한 일이 있는 것 어려운 일이 있는 것 어쨌든지 기도의 제목이 있는 기도의 제목 기도해야 될 기도의 제목이 생긴 것은 그것은 그 가치가 있는 것이니 뭐이냐? 기도의 제목 그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친밀해지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우리가 밀접해져서 하나님 한 분으로 소망해서 다 이룰 수 있는, 전부의 전부가 되신 이분과 우리와의 연결을 가질 수 있는 그 귀중한 일이 우리에게 이루어질 그 재료가 생긴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그럴 때에 지체하지 말고, 기도할 만한 그런 제목이 큰 일이 생겼습니다. 눈앞에서 벼락같은 일이 떨어졌으면 그 떨어진 그 일은 무엇 하려고 그 일을 하나님께서 그 현실을 만드셨느냐? 그것은 당신이 우리와 밀접해지기를 원해서 그로 인해서 내가 당신과 가까와져서 당신만을 바라보고 '당신은 이런 어려운 일도 해결되고 쉬운 일도 해결되고 당신 한 분이면 다다.
주님 한 분이면 내 전부 중에 전부다, 다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실수 없어 당신의 충만으로 우리가 행복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기도의 제목을 주시는 것입니다. 형편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할 문제가 있을 때에는 그것이 하나님이 벌써 당신에게 기도하는 것을 원해서 그 형편을 만들었습니다. 현실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우리의 현실을 누가 만들었지요? 우리 현실을 사람들이 만들어 줬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우리의 죄가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하나님 한 분이 우리 현실을 만들었다고 아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네, 한 분이 만들었습니다. 내가 죄지어서 만들어진 것도 나를 죄짓게 만들어 가지고 그 현실을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어떤 어려움의 일이든지 우리가 혼자 해결할 수 없고 '이게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소욕과 소원과 하는 그런 어려움이 생겨지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놨는데 그 만드신 것은 당신에게 구하면 얼른 줘 가지고 그걸로 인해서 당신이 알려 주고 당신과 우리와의 밀접해지도록 하시기 위해서 하시는 이 하나님의 사랑의 비밀을 우리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이래서 '아들로 인해서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해서 너희들의 구하는 것은 다 시행한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며칠 전에, 마음이 자꾸 고민스럽고 번민스러워서 어데서 무슨 일이 났는지 불안해서 견디지 못하고 뭐 불안할 만한 그런 사건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이상하게 그래서, 내가 옆에 사람들 볼 때에도 아마 얼굴에 나타났을 것이오. 내가 어쩐지 마음에 불안하다 불안하다 자꾸 그렇게 말했어.
이랬는데 그래 지내는 가운데에 우리 교회 권사님 중에 한 분이 와 가지고 나한테 말하기를 '우리가 아무래도 철야기도를 좀 하면 싶은데 해도 좋겠습니까?' 그렇게 저한테 말을 했습니다. 해서, '철야기도는 자기네들 몸이 지금 벌써 노쇠해 가지고서 노약해 가지고 있으니까 철야기도 그래 한다고 하면 지금 자기네들이 당한 그 일을 감당을 못 할 것이다. 기도만 하려 하면 할 수가 있지마는 양가지 일은 하지 못할 터이니까 기도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대로 길을 가면서도 기도하고 누워 자면서도 기도하고 누워서도 기도하고 앉아서도 기도하고 그래 기도하라.' 저도 대개는 누워서 이래 기도하는 기도가 제일 많습니다. 그전에는 앉아 기도했지마는 뭐 무릎 끊고 하는 기도는 잠깐 하면 더 그만 발이 저려 못 하게 되고 이제 앉아서 기도하다가 누워서 대개는 기도합니다. 누워서 기도하는 것 많습니다. 힘이 없으니까.
'그렇게 기도해야 되지 철야한다고 그렇게 그 시험에 듭니다. 왜? 권사님이 철야하러 왔으니까 저 권사님 아마 철야기도 하면은 밤새껏 졸지도 안하고 꼬빡 앉아서 저래 자지도 안하고 기도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고래 무식하게, 암만 신앙은 신앙이지마는 노쇠해졌으니까 힘이 없으니까 조금만 저래 해도 한 젊은 사람은 두 시간 하는데 한 십 분만 기도해도 얼마나 피곤할까 이래 여기는 그런 것을 무지한 지금 양떼들이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권사님도 오더니만 그만 좀 기도하 더니만 누워자 버리더라 이래 할 터이니까 그걸 자기네들이 먼저 아니 자지도 못하겠고 그래 가지고 공연한 그렇게 지나친 일을 하다 보면 나중에 병이 나 가지고 끄트머리에 가 가지고는, 서부교회 권사들은 다 병들어 누웠다, 잘 믿는 사람들은 전부 병이 든다 해 가지고서 욕을 돌리고 할 터이니까 그저 무지한 일이다. 하지 말아라.' 내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하고, 내 속에는 그것을, 속에는 기억은 하고 있습니다. 담아 놓고는 있습니다.
'내가 여러날 동안 자꾸 이렇게 번민 고통이 나오더니마는 이거 아마 기도를 안 하니까' 기도를 뭐 하지마는 보통 기도하는 것이지 좀 기도가 요새 쉬었다 말이오. '아마 기도 때문에 그런가?' 그런 생각을 또 가졌습니다.
또 그러고 난 다음에 또 어떤 아주 젊은 사람인데 이 기도에 대해서 '기도를 좀 해야겠는데 어떻게 기도해야 좋습니까?' 이래 물어서 그것도 내 속에는 새겼습니다. '자꾸 이런 말 들은 이것이 자꾸 이런 말인가?' 이랬는데, 저아레, 그러니까 오늘이 금요일이니까 어제가 목요일, 그러니 수요일날 밤인 것 같습니다. 수요일 밤인데 제가 혼자 잠은 안 오고 이래 가지고 꾸불거리고 있으니까 저에게 이상하게도 이제 깨달음이 왔습니다. 깨달음이 와서 여러날 동안 그 고민하던 고민이 물러가고 마음에 깨달음의 기쁨이 왔습니다.
온 기쁨은 뭐냐 하면은 제가 과거에 말은 해도 그런 느낌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과거가 쭉 그 연상해 오는데 왜정 말년에 그때에 신사참배가 났을 때에, 지금 사람들은 뭐 아주 옛날과 다릅니다. 그때에 벌써 삼십여 년을 일본 사람들의 식민 정치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그때는 뭐 우리 조선 사람은 일본 사람이라 하면 그만 괭이 앞에 쥐입니다. 벌벌벌벌벌 떨고 그만 그랬었습니다. 지금은 그 말을 말을 해도 상상도 못 할 것이요. 지금은 세계에 암만 공산주의를 대해도 그렇게 떠는 일 없습니다. 그때는 그랬습니다.
그랬는데 신사참배 때문에 이래 가지고 그때 뭐 죽이기도 많이 죽였고 뭐 다 옥에 가두고 이렇게 해서 제가 아는 대로는 거창서는 신사참배를 내가 알게 드러난 사람으로서 안 한 사람은 주남선 목사님이 신사참배 안 하고 감옥에 가서 갇혀버렸고 또 유기도 장로님이라는 그 장로님이 나이가 그때에 칠십여 세인데 그분이 신사참배를 안 했습니다.
잡아 가지고 가 가지고 신사참배 안 한다고 이렇게 노인이 돼 놓으니까 그렇게 하지도 못하고 좀 거석하니까 울면서? 주님은 나를 이제까지 한번도 버리지 안하셨는데 내가 어떻게 주님을 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신사참배 하는 것은 주님을 버리는 일이니까 내가 주님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하면서 엉파잡고 엉엉 우니까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을 시켜서 나가라고 해 가지고서 그 장로님이 갇히지도 안하고 신사참배 하지 안하고 있었는데 그이 이름이 기도입니다. 유기도 장로님이라고 기도요. 그저 항상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유기도 장로님이라 하면 지금 아마 거창서 좀 장성한 사람들은 다 알 것입니다.
그랬고 그 외에는 신사참배 드러난 사람으로 안 한 사람은 저 하나뿐입니다.
저뿐이었소. 유기도 장로님하고 저하고 옥에 갇히지 안한 사람으로서는 둘뿐이라고 제가 알고 뭐 숨어서 그때 숨어서 신사참배 요리 조리 숨어 가지고 안 한 사람들은 몇이 될지 모르고 또 제가 있는 교회는 하나도 신사참배 안 했지마는 내게 대해서 있으니까 나하고 지금 싸우고 있으니까 그 뒤에 사람은 끌어 댕길 수가 없으니까 지금 그랬었는데, 그때에 그들이 그렇츰 그랬지마는, 나는 본야 간이 작은 사람입니다. 간이 작은 사람인데 일본 사람들이 신사참배 때문에 그렇게 강요를 하고 뭐 우리 집에 찾아와 가지고 날마다 강요를 하고 다른 사람들 모두 그 면내에서 교회가 너이인데 셋 교회는 교인 하나 하나 하나 전부 개인 개인을 전부 교적부를 가지고 가 가지고 전부 호출을 해다가 다 예수를 안 믿겠다고 항복을 받고, 뭐 신사참배 한 사람들은, 물론 다 했지마는 안 믿겠다고 하기까지 혹독했습니다.
그랬는데 그들이 나한테 말할 때 나는 하나도 두렵지도 안하고, 성경을 마루에서 하면 저 밖에 와 가지고 창문 열고 '곤니찌와' 이렇게 제가 인사하면 나는 거기 따라서 '곤니찌와' 이렇게 하면 '신사참배에 대해서 어쩌냐?' 할 때에 나는 아직까지 이해가 안 된다고, 성경이 하지 말라고, 당신들이 종교를 허락해 놓고 그래 놨는데 어떻게 그걸 할 수가 있겠는가? 좀 자기네들 좀 의논 좀 해 보라고, 합병할 때에 벌써 종교 자유를 허락해 놓고 성경이 이래 놨는데, 성경이 이래 놨는데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이러면 그 사람이 혀를 차고 이러며 '왜 그랬을까?' 이말 하고만 가 버렸지 그 두려운 줄도 모르고 그렇게 뭐, 참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그 사람들이 뭐인지 두려운 줄도 모르고 뭐 그래 뻔뻔스리 그래서,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다 듣지 안했습니다.
그때가 얼마나 아주 압박이 심했고 아주 박해가 심했든지 그때 목사님들 전부 머리 빡빡 다 깎았습니다. 머리 깎고 다 작업복 딱딱 입고 이 또 단추 잠그는 이거 한쓰봉이라 하는 이거 딱 입고 그래 가지고 예배당에 들어오면, 그들의 명령이기 때문에 명령 안 지키고 못 견딘다 말이오. 예배당에 딱 들어오면 저게서 딱 절 딱 하고 예배당에 딱 들어옵니다. 그리 안 하면 예배당에 못 들어읍니다. 그들이 가르치기를 그래 가르칩니다.
여기에는 천조대신 그 우상을 딱 벽에다 딱 걸어 놓고 글로 딱 써 가지고 천조대신을 써 가지고 딱 걸어놓고 저 들어오면 딱 절하고, 또 예배드리려 하면 예배드리기 전에 딱 일어나서 저 동경을 향해 가지고 '황거요배' 명령하면 절하고 그러고 난 다음에 예배를 드렸지 그냥 못 드렸습니다.
그때에 그 지방 당회장이라고 어떤 목사님이 한 분 왔는데 아주 버틀도 좋고 아주 유명한 목사님입니다. 왔는데 머리를 빡빡 깎았소. '목사님 왜 깎았습니까?' 시국이 그런데 안 깎을 수 가 있느냐고 그래 가지고서 이 한쓰봉 단추 딱딱 잠구는 것입고 아주 옷도 이 위에 단추까지 잠그는 이 작업복 딱 입고 그래 와 가지고 오더니마는 그래 합디다. 그러니 그 교회는 다 그리 됐었어.
그때 저 하나만 안 했지 그 농산교회에 왔는데 다 그랬어.
그래도 그들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니까 하나도 두려워하지 안 하고 도리어 어긋나게 한다고 나는 그때 넥타이 하고 양복 입고 돌아다니고 그때 머리를 길렀습니다. 그전에는 내가 머리를 깎았었는데 그때 또 머리를 길러 가지고 하이칼라 하고 다녔어. 그때 하이칼라 한 사람이 안 보였었어.
그래 내가 그걸 가만히 생각할 때에 '어떻게 해서' 그때는 예사로 지나가고 그때는 뭐 제가 뭐 어째서 그런가 이런 것도 생각 안 하고 이랬는데 며칠 전에 밤에 그래 생각할 때에 내가 그것이 연상되어 나오는데 '그것이 네가 기도의 그 응답이다. 기도의 웅답이다.' 그것이 내게 느껴졌습니다.
그때 제가 멀리는 모르지마는 거창 협천 함양 이 삼군에 예수 믿는 사람들은 아는데 삼군에 예수 믿는 사람들은 금식기도니 산기도니 하는 소리는 그때에 듣지도 못한 때입니다. 금식기도가 없을 때이고 산기도가 없을 때입니다. 없을 때인데 저는 그때에 밤이면 대개는 그 앞에 산이 가까우니까 산에 가 가지고 곰보된, 아주 곰보가 돼 다닥다닥한 그 바위에 역부로 가 가지고 무릎을 끓고 기도하고 나면은 이 무릎 밑이 똑 도장처럼 요리 바칵바칵바칵하이 이렇게 옴폭옴폭하이 요래 가지고서 이래 거기서 기도하고 또 그렇지 않으면 냇가 가서 기도하고, 하나님이 그렇게 뭐 기도해야 된다는 그런 필요성도 뭐도 그런 것 느끼지도 안하고 그래 기도했어요, 어쩌든지. 기도하고 싶고 이래서 기도를 했어.
기도하고 팔월 십오일 해방도 제가 덕유산이라는 그 산만당에 가 가지고 금식기도 하다가 거게서 해방됐다고 우리 집 아이가 찾아서 거기까지 올라와 가지고 그래 인제, 중간에 와서 고함지르는 소리를 듣고 그래 내려와서 해방을 맞이했습니다.
어쨌든지 개울이 아니면 산, 산이 아니면. 또 집에서라도, 집에 마루가 있는데 마루에, 어쨌든지 내가 가만히 과거를 추상해 보니 추억해 보니까 그때는 전혀 기도했어요. 그때 기도한 것이 거창 군내에서, 그렇기 때문에 제 소문이 나기를 여기 부산까지도 '산기도 많이 한 사람이라' 이렇게, 내가 오니까 백 집사냐고, 그러면서 산기도 많이 하는 백집사냐고, 어째 소문이 났는지 그게 다 나왔어요.
다 나와서 산기도 많이 하는 사람이라 이랬고, 또 거게서도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안하는 그때에 뭐 금식기도니 산기도니 이렇게 냇가에 가서 기도하는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또 교인들을 위해서도 참 눈물 흘리는 그런 기도를 많이 하고 이랬는데 그 아레 생각하니까 '네가 왜정 말년에 그렇게 했던 그것이 네가 기도한 그 기도의 응답이다.' 하는 그것이 내게 그때 느껴져요. 그전에는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그랬다는 그것을 나는 몰랐습니다.
며칠 전에 기도함으로 그렇다는 것을 느껴지고, 그러고 나니까 쭉 연상이 되어서 나오는데 6·25 때도, 6·25 때에 뭐 거창서 모두 다 교회들 다 비워놓고 다 가 버렸고 또 교회마다 그들이 와 가지고 저거 마음대로 자유하고 전부 그들에게 인민공화국을 인정하고 예수 믿겠다는 그런 것으로 했고, 저거 호남지방으로 내려오는 데는 그들이 와서 말하기를 예배당 점령 다 했다 합디다.
예배당을 전부 그들의 숙소로 다 그들의 기관청으로 이렇게 사용했다고 이렇게 했는데, 6·25 때도 저는 그때에 그 사람들 오는 데에 하나도 하나님이 두려움을 주지 안했어요. 하나도 두려움을 주지 안해서 참 뭐 모두 다 피난 다 가 버리고 지금 뭐 모두 다 뭐 좀 뭣한 사람들은 가 버리고 숨어서 이래 가지고 이랬는데 저는 예사로 이래 가지고 있으면서 오히려 집회했습니다. 두 달 동안은 하루 세 번씩 종을 치고 집회를 했어요. 집회를 했는데 그 산골짝에 사백이 모였어.
이 얘기를 했는데 또 합니다. 왜? 다른 사람들 여러분들에게 유익이 될 것이라서 내가 말해. 내 말을 하는 게 아니라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내가 알리가 위해서 지금 내가, 다른 사람 이야기는 내가 모르기 때문에 그것 못 하고 제가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사실대로 말하기 때문에 내가 지금 간증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도 두렵지 안하고 이래서 뭐 그들 만나 가지고 '이 풍금 좀 칩시다.' 풍금 좀 치자 하기 때문에 안 된다고, 성구인데 거룩한 기구인데 자기네들이 그 풍금을 치면 되느냐고, 안 된다고 이래 놨다 말이오. 이것도 뭐 그러면 대번 푹 찔러버리면 그만이고 탕 놓으면 그만인데 뭐 하나도 두려운 것이 없어. 안 된다고.
이래 놓고, 그래 그만 그 사람들 가고 난 다음에 '이 풍금 부숴버려라.' 풍금을 부숴서 재버렸습니다. 있으면 칠 터이니까 풍금을 부셔서 재 버렸습니다.
재버리고 그들이 예배당에 와도 기도하면 할까 그리 아니면 달라고 그렇게 시비해도 안 주고 이래 말고, 또 집회하다가 마지막에 이제 그날 마치는 아침인데 예배당 문이 저 출입구가 둘이고 또 여기 기도실로 들어오는 문이 있고 이랬는데 뭐이 쿠당탕 그러면서 예배보며 들으니까 쿠당탕 하면서 하는데 보니까 군인들이 총을 들고 여기 다 문을 딱 지켜 서 가지고서 지금 나를 잡으러 왔다 그거요. 지금 인제 사형시키겠다고 잡으러 왔는데 그래도 뭐 두려운 마음도 하나도 없고.
그래 가지고 하도 와서 그 쌓기 때문에 고함을 질렀어. 앉으라고 고함을 지르니까 떡 앉으면서 뭐라 하는 게 아니라 '우리도 예수 믿으러 왔습니다.' 이러며 군인들이, 잡으러 온 군인들이 그래 앉아요. 이래 가지고 또,-여기 이만기 목사님 저기 앉았습니다.-이만기 목사님에게 자꾸 독촉을 해서 가서 나오라 하라고, 하도 뭐, 그때 사람들이 뭐 사람 암만 죽여도 그만 그만입니다.
사람 죽이는 것은 아무 벌이나 뭐 그런 문제되는 게 하나도 아닐 때입니다. 뭐 오십 명씩 백명 씩 엮어 가지고 가 가지고 저거더러 구덩이 파라 해 가지고 죽이고 하는 그때인데. 말로 그렇지 그새가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때인지 모르는 때입니다.
이랬는데 이만기 목사님에게, 집사인데 가서 나오라 하라고 이러니 독촉을 하니까 안 할 수도 없어 이래 걸어 들어오기 때문에 내가 설교하며 들으니까 아마 그래 오는 것 같애. 저기 오기 때문에 고함을 쳤습니다. 어디라고 들어오노, 들어오기를! 안 물러가나!' 고함을 지르니까 그래 그만 도로 돌아갔습니다.
이러니까 그 사람들이 또 그러면 또 야단이 났을 건데 그거 그래 가지고 '우리도 예배보러 왔습니다.' 이러며 또 앉아 가지고서 예배보면서 앉았다 섰다 뒤에서 상관이 명령한 것이 되어 놓으니까 앉았다 섰다 앉았다 섰다 이랬는테도 예배 마치고 주기도문으로 다 폐회 다 하고 그래 갔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평강을 주셨습니다.
평안을 주시고 담력을 주시고 이러니까 뭐이 이기는 줄, 이기려고 해서 이긴 것도 아니고 무슨 시비를 해 이긴 것도 아니고 그렇게 평안하게 이겼는데 그 뒤에 내가 믿음을 버린 죄를 짓고 난 한 달 동안은 참 그들에게 굴하지도 안했고 강단을 한번도, 사형 선고를 받고 난 그 자리에서도 계속해서 한번도 예배 뺀 일 없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권능이라. 두려워서 떨며 지내기는 지냈지마는 참 무사히 그런 것도 하나님의 권능인데 그것도 연상이 되면서 '그게 기도다.' 네가 위천교회에 부임하고 난 다음에, 위천교회 부임하고 나서 교인들은 그거 모르는데 부임하고 나서 그저 예배당에 철야, 철야 아니면 산 예배당 아니면 산, 산 아니면 예배당 그래 가지고서, 거게 잠실골인가 모르겠소. 거기 가서 거기는 빨갱이들이 언제든지 숨어서 저거 나라라 하고 이렇게 하는데 거기 가서 바위에 가 가지고 밤새껏 고함지르면서 교인들이 기도하고 또 새벽에 내려와 또 예배드리고 또 거기 가서 밤이면 또 기도하고 낮이면 각각 자기 일하고 또 예배당에서 철야하고, 예배당에 철야 아니면, 그걸 가만히 연상을 그때 내게 알려 줘서 그 연상이 됐습니다.
며칠 전에 연상해 보니까 '그때 내가 6·25를 그렇게 무난히 평안 하도록 즐거움으로 지낸 것도 그것이 기도한 그 기도의 결과로구나. 기도의 응답이로구나.' 그랬는데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안하고 떡 받아들고 사람 환영했다가 그 큰 환난당한 거와 마찬가지로 내가 그때 교인들이 '예배당을 처어치라고 씁시다.' 하는 그말을 할 때에 기도하지 안하고 그만 '뭐 그러려면 그래라.' 이렇게 기도하지 안하니, 기도만 했으면 그런 걸 쓰지 안했을 것이고, 기도만 했으면 그런 걸 쓰지 안했을 것이고 그거 안 썼으면 뭐 석 달 동안 아주 참 영광스럽게 기쁘게 이겨 넘겼을 것입니다.
이래서 '네가 기도로 그렇다는 것을 네가 아느냐?' 하는 그것이 연상이 됐고, 또 그러고 난 다음에 또 생각해지기를 연상이 됩니다. '네가 서부교회 와 가지고 고려신학교와 고려성경학교에서 네게 대해서 박해가 얼마나 했으며 네게 대해서 얼마나 대적이 심했으며 박해가 심했느냐? 그런데 네가 그래도 그렇게 욕을 하고 대적을 해도 하나도 마음이 불안하지 안하고 그말 듣기 싫지도 안하고 대적되고 밉게도 보이지 안하고' 하든지 말든지 그뭐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가는 그 뿐이지 그런 게 하나도 내게 자극이 되지 안하고 내게 부담이 되지 안해서 평안히 지냈습니다.
평안히 지내고, 그렇게 뭐 이단이니 뭐이니 이래 말해도 하나님께서, 나는 이 서부교회를 교인이 뭐 몇천 명 되리라 하는 그걸 내가 바라지도 안 했고, 생각하지도 안했고, 기도도 안 했고, 원하지도 안했고, 또 주일학생이 이렇게 되리라는 그것도 그저, 그저 이렇게 목회하는 것뿐 이었지 그걸 내가 얼마라고 계수해서 생각 가져본 일이 없었습니다. 구하지 안했습니다.
그러나 여게 와서도 제가 오고 난 다음에 제가 꼬빡 알기를 삼 년 동안은-한복 입고 있었는데-대님을 한번도 끌러보지 안했습니다. 안 끌러보고 그저 요 위에 누워보지 안했고 언제든지 잘하든지 못하든지 예배당에 가 가지고 기도하다가 엎드려 가지고 그냥 지냈고 또 예배 당에서 안 지낼 때에는 산에 가 가지고 여기 기도하려고, 여기 아마 그때 있는 사람들 나이 많은 사람들은 다 있을 건데 나이 많은 사람들 거의 뭐 매일밤 가다시피 별로 안 빠지고 산에 갔었습니다.
산에 그만 담요하다 두터 이고 또 우리는 담요 하나 옆에 끼면 그래 가지고 그만 산에 가 가지고 쫙 퍼져 가지고 그래 거게서 밤새껏 그저 잘하든지 못하든지 기도하고 또 새벽에 새벽기도 때 되면 내려와서 그래 하고, 그 기도로 말미암아 네 기도의 웅답을 들어서-하나님께서-내가 이렇게 이 교회에 부홍을 시키지 안했느냐? 그렇게 핍박하 지만 핍박한 그 교회들의 큰 교회 삼 배나 될 만치 이렇게 된 것을 네가 하려고 애를 썼나 네가 그렇게 되리라 생각했나? 이게 다 기도의 응답이다. 하는 이것을 내게 자꾸 요번에 느끼지는데 그만 견디지 못해서, '아무래도 이거 기도해야 되겠다. 앞으로 환난 오는 데에 그 환난을 읏음으로 기쁨으로 평안하게 승리하려면 기도해야 되겠다. 또 하나님 께서 우리 교회에 개인의 사정이나 모든 사건 그런 것들을 다 평안으로 바꾸려 하면 기도해야 되겠다. 또 우리 교회가 앞으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부흥이 되려고 하면은 기도해야 되겠다. 기도 외에는 없겠다.' 이러면서 기도에 대해서 생각하는데 오늘 밤에 주님이 이 성구를 저에게 줘서 이 성구를 오늘 아침에도 이 성구를 말씀을 했습니다. 이 성구를 나는 예사로 봤는데 보니까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기 위해서 기도의 법칙이라 하는 걸 하나님이 세웠다는 것을 비로소 이번에 이 보고서 깨달았습니다, 제가, 깨달은 것은.
그전에는 이 성구 가지고 그저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어 주신다' 그것만 말했지 기도하는 이 기도가 이것이 하나님이 유일한 소원 중에 소원인 당신을 피조물들에게 알리려는 것, 피조물들이 당신을 알면 그게 영생입니다. 그러면 다 모든 것이 다 해결되고 행복이 되어집니다.
이래서 그래 갑자기 어제 아침에 제가 새벽기도에 나와 가지고 얘기를 했는데 요번에 또 재독한 얘기입니다. 어제 새벽에도 나와서 이와 같은 비슷한 간증을 제가 했습니다.
왜? 제가 느끼기를 그전에는 그렇게 기도로 말미암아 됐다는 그것을 그렇게 느끼지 못했는데 저아레 밤에 내 마음 속에 기도하는 가운데에서 제가, 내가 누워서 이래 생각하는데 그게 자꾸 연상되어 가지고 그렇다는 걸 느껴져서 내가 일어나 가지고 하나님께 엎드려서 기도를 하면서 감사를 하고 그래 '이제 기도하다가 그 이것을 중단한 것을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제가 생각을 하고 어제 아침에 선포를 했습니다.
선포를 하고 또 가서 가만히 이래 생각을 해 보니까 '우리 이 주일 학교가, 서부교회 주일학교가 언제 부흥이 됐노?' 그것이 나에게 또 연상이 돼 오는데 우리 교회서 밤 일곱시부터인가, 처음에 일곱시에 하다가 나중에 여덟시에 하고 열시까지 자유로 와서 기도하자 하는 그 기도를 시작하고 난 다음에 그때에 우리 주일학교가 발칵 부흥이 됐었습니다. 부흥이 되고 난 다음에 그러고 나다가 그러다가 그만 내가 그때 병들어서 드러눕고 난 다음에 주일학교가 팍 내려가 버렸습니다.
이랬는데 그 모든 것이 다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고, 기도함으로써 우리의 구원은 이루어지고, 기도함으로써 모든 승리는 이루어지고, 기도함으로써 우리에게 그 평강과 모든 그 생명 역사는 이루어진다는 것을 나에게 깊이깊이 느껴져서 어제 아침에 새벽기도에 광고를 하고 엊저녁부터 시작을 했습니다.
엊저녁부터 저 밖에다가 기도하러 오는 사람은 등록을 해서 이름을 기록해서 자기의 등록 그 번호를 알아 가지고 이 다음에는 책을 저기다 갖다 놓을 터이니까 한 사람들은 자기 이름에다 그날 기도한 것을 도장을 찍고 요렇게, 인제 누가 지키는 사람은 없고 도장을 찍고 가도록, 또 옆에 하나 있어 가지고 모르면 알선해서 가르쳐 줍니다.
가르쳐 주도록 그렇게 하고 해서 엊저녁부터 광고를 하고 시작했는데 엊저녁에 기도하러 온 사람이 이백칠십오 명이었습니다. 그것도 어제 그 광고를 함으로 인해서, 새벽기도회 때 말했으니까 이백칠십오 명인데 한 삼백 명, 새벽기도 삼백 명밖에 안 되니까 한 사오십 명 안 나오고는 다 기도하러 다 나왔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엊저녁에 기도하러 안 나온 사람 손 들라 하니까 한 사십여 명 한 사오십 명 됐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시작을 했는데 오늘 저녁에도 여기서 삼십 분 기도하고 나가시면서 자기의 이름을 거게서 기도하는 그 명부에 등록을 하려면 자기 이름을 불러서 등록을 하면은 자기 번호가 몇 번호라 하는 것을 가르쳐 줘서 알 것입니다, 오는 순서대로 번호를 정하니까.
그래 가지고 일권 몇 번이라 또 이권 몇 번이라 그래 가지고 권수하 번만 알면 되는데 그래 가지고 앞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자기가 기도한 사람은 거기다 도장을, 거기 도장 있으니까 도장을 꼭 찍고 그렇게 가도록 그렇게 하도록 했습니다. 지난번에는 옆에서 누가 지키는 사람이 있었지마는 지금은 그때보다 장성하니까 지키지는 안하고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데 있어서 혹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별스러운 일 하네. 기도하면 저 혼자 은밀히 기도하라 했는데 뭐 기도하는 것을 조사를 해 가지고서 도장을 찍고 명부에 어쩌고' 하는 그 사람은 어떤 성자인지 성녀인지 모르나 그 사람은 위대하기 때문에 그렇든지 마귀가 들어서 그래 하든지 내비두고, 우리가 자기가 자기 혼자 하루 일과표 시간표를 정해 놓고라도 그걸 정해 놓고 할 때에는 해 보면 '아이구, 내가 아침에 생각보다는 이렇게 저녁에 보면 허무하구나' 하는 것을 저녁에 가면 반성을 해서 '내가 이렇게 참 생각과 실행이 허무하다' 하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는 걸 우리가 경험합니다.
그러기에 그 기도록을 정해 놓고서 거기다가 기도하고 도장을 꼭꼭 찍도록 하면 그걸 보고서 '나는 이번 달에 보니까 조로록 삼십 일 동안 계속해서 기도했구나.
또 나는 여기 보니까 기도한 날이 며칠뿐이다. 항상 나는 잠도 못 자고 기도한 줄 알았더니마는 여기 찍힌 것 보니까 기도한 날이 며칠이구나. 내가 이렇게 허무하구나.' 자기의 허무를 알아서 반성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니까 그런 일을 하는 것을 훼방하는 분들이 있으면 그런 교만한 소리 하지 말고 자기나 그리하고, 그리 유익된 일이니까 시키는 것이니까 그렇게 비웃지를 말아야 됩니다. 비웃지를 말고 거게 응해서 그렇게 해야 될 것이오.
그런데 기도할 제목을 제가 어제 아침에 여게서 기도하면서 생각 하면서 기도 제목을 일곱 가지를 정했습니다. 그것을 표지에다가 써 놨습니다. 표지에 써 놨으니까 그걸 베껴 가지고 가고 싶은 사람은 가지고 가 가지고 새기고 새겨서 뜻을 알고 기도를 하면 모든 기도가 다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밤에 기도의 이 제목에 대해서 좀 해설을 하려고 했는데 그만 시간이 많이 가서 하지는 못하나 뒤에 하겠습니다. 제가 읽기만 한 번 읽어봅니다.
기도 제목 첫째 기본구원 입은 자로 살기를 위해서 기도합시다. 기본구원을 우리가 입었지마는 기본구원을 벗을 때에, 벗을 때에 우리는 세상의 종이 되고 맙니다. 죄인이 되고 맙니다. 기본구원을 입은 자로 살기를.
둘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하기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하기를.
셋째는 기적과 옮길 때까지 믿음을, 기적이라 말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불미 가운데 들어가서 그 박해가 왔지마는 하나님의, 기적으로서 그만 그 박해가 중단된 것 그것을 가리켜서 기적이라 하고, 옮기는 것은 야고보나 모든 사도들이 하나님 말씀대로 살다가 순교로서 이제 사망에서 생명으로, 세상에서 천국으로 옮기는 그것이 완전 승리 그것을 가리켜서 옮김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기적을 만날 때까지든지 그리 안 하면 끝을 맺어서 옮길 때까지든지 믿음을 지켜 나가자는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자는 것입니다.
넷째는 회개를 위해서 기도합시다.
다섯째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징계하시는, 경제적으로 징계나, 신체적으로 징계나, 자기 사업적으로 징계, 직장적으로 징계, 자기 명예적으로 징계, 모든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그 징계를 그것을 우리가 기도로써 징계를 평강과 축복으로 바꾸기를 기도합시다. 바꾸어지게 말이지요. 징계 오는 것이 평강과 축복으로 바꾸어질 때까지 우리가 기도합시다. 바꾸어질 때까지.
여섯째는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전도의 힘을 하나님이 주셔서 전도의 권능을 주셔서 전도가 되도록. 내가 어떤 책 자에 보니까 어떤 성자가 공장 앞을 지나가면서 전도를 하니까, 공장 앞에 지나가며 전도하니까 그만 그 큰 공장이 모든 공장을 다 휴업을 하고 딱 휴업을 하고 직공들이 전부 다 나와 가지고서 듣는데 그러고 지나갔더니마는 그 공장에 교회가 섰다고 그런 것을 제가 책자에서 본 적이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전도하는 전도의 능력을 우리가 얻도록 기도를 해야 되겠습니다.
산다씽은 이렇게 모심을 때에 지나가면서 모심으는 농부에게 전도하면 그 농부들이 바쁜데 듣기 싫다 할 것이기 때문테 가 가지고서 모를 심어 주고, 모를 심어 주고 얼마 동안 심어 주고 그래 예수 믿는 도를 전하고 떠났는데 그 해에 그 논에 추수 난 것이 평년의 사 배인가 얼마가 났기 때문에 '이거는, 도무지 이거는 그럴 수 없는데 아마 그분이 신인가보다. 우리에게 와 가지고 말하던 그분이 신인가보다. 그분이 우리에게 도를 전하니 이랬지 않느냐?' 그래 가지고 그 농사짓던 그 마을에 교회가 섰다 말을 들었습니다.
이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권능을 준 것인데, 우리가 권능 얻으면 이리 되는 것인데, 최권능 목사님이 전도하는 권능을 얻어서 생시에 평생에 교회를 일흔두 교회인가 혼자 세웠답니다. 그거 전도의 권능인데 우리가 전도의 권능을 얻기 위해서 기도합시다.
일곱째 마지막으로는 재림, 재림 준비를 잘해서 재림의 주를 담대히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그 일을 위해서 우리가 기도합시다. 기도의 제목 이 일곱 가지를 여러번 새기고 새겨서 여러분들이 잘 알고 이대로 기도하면 모든 기도는 이 안에 다 들었습니다. 이 안에 이것만 하면 전부가 다 들었습니다.
그러고 처음에 기본구원을 입은 자로 살기 위해서 기도하라 했는데 기본구원에 대해서는 저 먼저도 열 가지를 말해 줬지요? 하나님의 목적 안에 있는 택정의 구원,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우리가 택정한 그 구원을 받은 것이 첫째, 두번째는 예정 속에서 구원받은 것이 둘째, 셋째로는 하나님이 창조할 때에 우리가 창조 안에서 우리가 구원 받아서 창조적으로 구원받은 것.
넷째로는 구속적으로 구원받은 것, 다섯째는 중생 구원 받은 것, 여섯째로는 하나님 양자 구원 받은 것, 일곱째는 천국 시민 구원 받은 것, 여덟째는 삼대 보증, 성령 물 피 그 보증 구원 받은 것, 또 아홉째는 건설구원인데 곧 예정과 모든 존재들을 다 우리가 구원 위해서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도록 우리가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건설구원의 권을 건설구원권을 우리가 받았습니다.
열째로는 생명의 부활권을 우리가 받았습니다. 이거는 기본구원이니까 이 기본구원만 벗지 안하고 기본구원을 확실히 깨닫고 가본구원을 가진 자면 모든 것 다 됩니다.
그러기에 건설구원이라 하는 것은 기본구원을 네가 인정하느나 안 하느냐, 기본구원을 네가 받아 가지고 있느냐 버렸느냐, 기본구원을 얻은 자로 사느냐 안 사느냐? 기본구원에 대해서 어떠함이 그의 건설구원으로 나타납니다.
건설구원이라 하는 것은 기본구원에. 대해서 그 사람이 어떠함이라는, 것이 그것이 나타나는 것이 그것이 건설구원입니다.
그러기에 다니엘이 사자구덩이 앞에 했지마는 전능하신 아버지를 그가 아버지의 아들인 것과 또 주권적 능력을 가지고 보호하는 이 몇 가지를 믿을 때에 그 다니엘에게는 기쁘고 즐겁지 두려움이 있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기본구원을 말로는 입었다 하지마는 실은 기본구원을 인정치 않는 데에서 다 세상의 종이 되는 것이고 기본구원을 버릴 때에 실수가 있는 것이지 기본구원을 입고 있으면 무엇 때문에 우리가 뭐 세상에서 그리 천대될 리가 있으며 뭣 때문에 세상에게 굴할 리 있으며 세상을 이기지 못할 리가 있겠습니까? 그런고로 어쩌든지 오늘 저녁에 나가면서도 여러분들이 이름을 거게 적고 싶은 사람은 적으십시오. 자기가 이름을 지어 놓고 또 나오려고 이렇게 함으로써 자꾸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지지 '뭐 나는 적지 안하고 한다' 그게 교만이지, 그것 벌써 그게 교만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이게 내 말이 아니고 하나님이 원해서 시키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이 기도를 벌써 시작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기뻐서 우리에게 그 축복 주는 것이 보는 사람은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런고로 이름을 기록하는 그것을 기록하고 또 자기가 또 거게다가 인을 찍고 또 상고해 보고 빠지면 '빠졌다' 요걸 지키려고 자꾸 요렇게 함으로써 우리 게을한 우리들을 단속해 가지고 기도하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되어지는 것이니까 이 일을 누가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주님이 기뻐하지 많으실 것입니다.
또 '이 일을 뭐 나는 그것 없이 나는 그냥 기도한다' 하는 그 사람도 자기는 교만한 사람이라 주님이 기뻐하지를 않을 것입니다. 왜? 저는 그래 한다 할지라도 모든 사람들이 그래 하니까 자기는 그것 안 하고라도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모든 사람 약한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 함으로써 '아무것이도 여기 이래 한다.' '그래, 나도 그래 적어 놓고 이래 한다.' 이러면 다른 약한 사람의 믿음을 강하게 돕는 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다 이름을 등록하고 그래 가지고 그래 가도록 하고 이제 내일 저녁 다섯시부터는 여기 이미 기록한 사람들은 여기 책이 매여 있으니까 자기 이름 밑에 기도하고는 도장을 찍고 가도록 하고 또 처음으로 오는 사람은 그때에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있어 가지고 기록할 터이니까 그래 하도록 하고.
지금은 나가면 기도하고 나가면 왁 한목 나가기 때문에 거게 기록하는 사람이 아마 여덟 사람쯤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생각하니까 가 가지고 나는 지금 몇 호를 적어 놓고 받아 가지고 가 가지고 내일 저녁부터 총총 기도해서, 제가 이번에 이 감동을 받을 때는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우리 서부교회 교인 전부를 기도하는 사람을 만들어 주시겠다' 하는 그게 내게 믿어졌고, 또 '이번에 기도 시작하는 것은 이제 몇 해 갈지 몰라도 내가 있는 동안에는 이거는 계속되겠다'하는 그런 것을 내가 느꼈습니다.
그러니까 그래 하도록 합시다.
광고에, 지금은 이제 기도하는 문을 열어서 남반은 일층 신관, 이층 신관, 삼층 여기 수원지쪽에 있는 이편, 또 여반은 일층 구관과 신축, 또 이층 이 구관과 신축 또 삼층은 저쪽 남쪽으로 이쪽 남쪽에 있는 삼층에 거게서 기도할 수 있으니까 일이삼층에 다 자유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할 수도 있고 철야할 수도 있고, 그러나 거게서 믿지 않는 사람들 그 불량자들이 혹 와 끼이기 때문에 이제는 수위를 탄탄한 사람을 세웠습니다. 아마 힘도, 하나 세운 사람은 우리 교회에서는 힘이 아마 제일 셀 것이고 또 유도도 잘 합니다. 또 한 사람 그 사람은 나는 오늘 처음으로 들었는데, 말을 했는데 말하기를 '그 사람은 보통 사람 힘의 삼 배는 됩니다.' 그래 나는 그 사람 힘 센 줄 몰랐는데 삼 배는 됩니다 그래요. 자기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말하기를 철근이나 이런 것을 메는 것 보면 보통 사람 삼 배는 맵니다 이래요.
그래 가지고 저녁으로 수위를 해서 불량한 사람들이 꼼짝도 못하도록 그렇게 할 터이니까 안심하고 일층 이층 삼층에서 얼마든지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열어 주셔서 이게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것인 것을 여러분들이 인정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예배 후 삼십 분 기도하고 난 다음에 장로님들과 권사님들은 별관 그 응접실로 모여 가지고 좀 회의가 있습니다 긴급 회의가 있으니까 그리 다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 기도하고 나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