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6 12:21
기도의 법칙
1989. 7. 3. 월새벽.
본문: 야고보서 4장 3절.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우리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우리 주가 되신 하나님 한 분만 가지고 있지 다른 존재들은 가진 게 하나도 없습니다. 인간도 못 가지고 천군 천사도 못 가지고 하나님 한 분만 가지고 계십니다. 마귀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또 우리에게 주시는 것도 하나님 한 분만이 주시는 작용을 하시지 다른 것들은 하지를 못합니다. 권리를 맡기지 안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가지고 계신 분도 우리 하나님이시고 또 우리에게 나누어주시는 이도 우리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다른 이는 권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에게 구해도 얻지 못하는 그 이유를 여게 말했습니다.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그 이유는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우리가 구할 때에 하나님은 아시니까.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구하는 목적이, 우리가 하나님께 뭣을 구하는 목적이 어데 있는고 하니 구하는 목적이 정욕으로 쓰려고 구하기 때문에 그 일이 안 된다.
그러면 정욕으로 쓰는 것은 어떤 것이 정욕으로 쓰는 것인가? 어제 말했는데 정욕으로 쓴다 말은, 그 정욕으로 쓰는 것은 어떻게 쓰는 것이 정욕으로 쓰는 것입니까? 헤프게 쓰는 것와 말합니까 너무 인색하게 아껴 쓰는 걸 말합니까 정욕으로 쓰는 것은 어떤 것을 정욕으로 쓴다고 어제 배웠습니까? 어제 어떻게 배웠지요? 정욕으로 쓴다 말은 무슨 말인지? 우리가 그걸 알아야 거게 걸리지 안하고 그 범죄치 하지 안하지요. 정욕으로 쓰는 것은 어떻게 쓰는 게 정욕으로 쓰는지? 에, 정욕으로 쓰는 것은 사욕으로 쓰는 것을 말합니다.
사욕으로 쓴다 말은 무슨 말인가? 성령의 소욕으로 쓰지 아니하고 인간 욕심대로 쓴다 그말입니다. 성령의 소욕은 하나님의 욕심이요 하나님의 그 소원하시는 대로 그렇게 모든 걸 쓸라고 구하지 안하고 자기 사욕으로 인간 욕심으로 쓸라고 구하기 때문에 그런 일들이 '얻지를 못한다' 그 말씀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에게 무엇을,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구하는데 그 필요한 것을 우리가 받지 못하고 얻지 못하는 그 이유는 필요한 것을 몰라서 구하지 못하고 받지 못하는 일 많습니다. 필요한 것이 뭐이 필요한지 몰라서. 또 자기가 필요한 것이 뭐이 필요한지도 모를 뿐 아니라 또 구하는 것조차도 용도, 쓰는 그 용도가 그것이 또 잘못돼 가지고 이루어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느냐? 하나님의 예정대로 그게 하나 하나 순서적으로 자꾸 이루어져 나가는데 자기는 자기에게 유익한 것을 구하여 얻지 못한다. 그러면 자기에게 유익한 것을 구하여 얻지 못한다 이 말은 자기는 자기에게 와서 있어도, 자기에게 와서 자기 앞에 그것을 유익되게 활용하지를 못한라. 유익되게 쓰지 못하니까 결국은 자기에게 유익된 것으로서는 자기에게 활용되지 안하고 해당되지 안하고 그 유익된 그런 효력을 네가 얻지 못한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에게 필요하고 유익한 그런 것을 왜 사람들이 그것을 필요한 대로 가지고 유익할 대로 충족히 가져 가지고 그 효력을 누리지 못하느냐 하면은 자기가 거게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지지 못해서 자기에게 와서 있으나 그것의 효력을 자기가 누리지 못한다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거 좀 어려운 말인데 이제 여러분들이 강령적으로 원리적으로 하나라도 믿으면, 믿으면 그 다음에 자꾸 믿음으로 인해서 아이들 말로 참 실마리가 풀려 나가는 거와 같이 그렇게 모든 것이 해결돼 나가는데 안 믿으면 그 다음에 사람들아 이성 판단이나 또 무슨 사람의 지능을 가지고 그것을 추측하고 또 추론해 가지고 바로 맞춘다는 것은 못 맞춥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너무도 광대하시고 또 세밀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거기에 도달하지를 못하는고로 우리 생각은 항상 껍데기 생각이 되어지고 그 참에 실상에는 맞지 안하는 배치되는 그런 결과를 맺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영적이나 육적이라면은 하늘나라나 세상이나 그렇게도 말할 수 있고 영계 것이나 이 물질계의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많습니다. 또 우리 영에게 필요한 것도 많고 우리 이 육에게 심신에게 필요한 것도 많이 있습니다.
그 필요한 것이 많이 있는데 그 필요한 것을 우리가 구하지 안해서 못 얻는다.
구하지 안해서 못 얻는다. 또 구해도 얻지 못하는 것은 정욕으로 잘못 쓰려고, 요새 용도라 말을 많이 쓰는데 용도라 말은 쓸 용(用) 길 도(途)자, 쓰는 면을, 사용할라고 하는 그 사용면이 잘못돼 가지고 안 되는 것 많다.
그러면, 우리가 필요한 것을 몰라서 안 되는 것은 우리 앞에 그 현물이나 실상이 필요한 것이 와서 있어도 그걸 내가 필요한 줄 몰라서, 필요한 대로 접촉하면 필요하게 되는데 필요하게, 필요한 새로 접촉을 하면 필요한 그 효력을 자기가 누리게 되는터 필요한 대로 접촉하지 안하고 그 잘못 접촉하기 때문에 안 된다.
또 하나는 자기가 그것을 접촉을 바로 한다 해지라도 접촉해 가지고 그것을 사용할라고 할 때에 그 용도를 잘못해 가지고 일이 안 된다. 그런 것을 여게서 말씀합니다.
그러면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영계 것이나 이 물질계의 것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하나님이 구비해 놓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구비해 놓고 계시는데 그 필요한 것을 다 우리가 활용을 한다면 못 모자랄 것이 없고 모든 면에 충족하고 넉넉하겠는데 그 필요한 것이 우리에게 왜 그렇게 필요 있게 와서 적용을 당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필요한 것의 그 효력을, 필요한 것을 필요하게 그렇게 사용하지 못하는, 그런 효력을 누리직 못하는 그 이유가 어데 있느냐? 그 이유는 두 가지에 있다.
뮈 두 가지에 있느냐? 그것은 구하지 아니하는 그 이유와 잘못 쓸라고 하는 그 이유와 그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구하지 안해서 못 얻고 정욕으로 쓸라고 함으로써 그것을 얻지 못한다.
구하지 않는다는 그많은 무슨 말인고 하니 자기에게 그것이 어떻게 필요한지.
그것이 어런 면으로 필요하고 어떻게 해서 그거 필요한지 그 필요한 면으로 접하면 필요가 되는데 도리어 해독이 되는 면으로 접하면 해독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방적 지식은 대단히 위험하다 하는 그런 것, 요새 모두 다 뭐 위생을 많이 말하는데 어떤 물건이라도 디모데전서 4장에 보면은, 4장 4절에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다 잘돼 있다 말입니다. 잘돼 있고 뭐 구비하고 뭐 부족함이 없이 잘돼 있으나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감사함으로 받으면 하는 이 말은 뭣이든지 감사만 들여 불이면 그것이 자기에게 아주 백프로 효력을 준다 그전 말이 아닙니다.
'감사함으로 받으면' 하는 이 말은 그것이 네가 처음에는 뭐 접할 때에 '이해 못 하겠다. 왜 이런 것이 닥쳤는가?' 이래 가지고 닥쳤으면 너는 어떤 거는 좋아서 아주 벙긋거리고 입을 웃고 벙긋거리고 좋아하고 어신 거는 또 찡그리고 이래 하는 것은 그것이 네게 대해서 어떤 면으로, 정면으로 측면으로 또 뭐 간접면으로 어떤 면으로 네게 어떤 그 효력을 있을 수 있는 그것인지 네가 그걸 몰라서 그렇게 네가 그 효력을 네가 얻지를 못한다.
그런데 이것이, 이것이 네게 뭣 때문에 필요하며 이것이 어떤 면으로 필요한가 그걸 네가 바로 깨달으면 '참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깊이 세밀히 넓게 사랑하시고 간섭하셔서 아주 철두철미하게 이렇게 조직적으로 모든 것이 합리적으로 요렇게 써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거게 대한 하나님의 목적과 또 거게 대해서 네게 대해서 효력 있을 그걸 네가 바로 깨달으면 '감사합니다.' 이렇게 된다 그말입니다.
'감사함으로 받으면' 하는 것은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또 내가 거게 대해서 어떻게 그게 나에게 복이 되겠느냐? 어떻게 크게 나에게 유익이 되겠느냐? 그것을 깨달으면 네가 참 감사하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접해 가지고 감사하는 것들도 있고, 감사하는 것들도 있고 또 마음에 불만 불평하는 그런 것들도 우리에게 닥칩니다. 그러면 감사함으로 우리가 접할 때는, 접하는 것은 그것은 나와 거리가 멀지 안하기 때문에 그면에 대해서는 하나님과 나와 비슷하니까 그것을 깨달아서 이렇게 감사하나 불만 불평을 품는 그런 거는 우리와 거리가 멀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면 거리 먼, 내가 온전자가 아니기 때문에, 완전자가 아니기 때문에 내 불완전한 이것과 거리가 먼데 하나님은 내게 좋다 하는데, 하나님은 내게 좋다고 필요해서 내게 주시는데 주시는 그것이 내 이성 비판이나 모든 지혜 지식의 그 비판으로 보면 이거는 아주 자기에게 불리한 것으로 그렇게 보여지면 자기와 거리가 멀다 말이오.
하나님이 해 놓으신 일이 자기와 거리가, 이해 거리가 멀면, 또 이해 거리가 가까우면, 또 이해가 일치가 되면 내게 유익은, 하나님과 나와의 그 사리 판단에 대해서 이치가 같은 것과, 또 이치에 맞지 안해서 조그매 맞지 않는 거와, 많이 맞지 않는 거와 이렇게 그 세 종류로 말한다고 하면 그것이 내게 유익된 그 중량이, 유익된 중량이 어느 것이 제일 유익된 중량이 크겠습니다. 요 안경쟁이 대답해 봐, 자기. 한번 대답해 봐. 어? 뭐라 하노? 불만이 많은 것이? 그러면 자기와 거리가 많은 것이 그게 유익이 더 많다 그말이야? 그말 맞아요? 그말 맞아요? 엉뚱한 말 아니요? 그말이 맞아.
자기와 가장 가깝고 일치되는 것은 현재 불완전한 자기와 많이 틀리지 안하니까 그것이 불완전한 자기에게 배치되는 것 반대되는 것 이질적의 것이 적으니까, 이질적의 것은 하나님의 것이 자기에게 이질이 되고 배치가 되어지는 것인데, 그러면 자기에 배치되는 것이 적으면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옳은 것이 적은 것이고 또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것이 내 불완전한 것과 삐뚤어진 것이 많은 것이면 하나님이 내게 하시는 건 삐뚤어짐이 없기 때문에 그분이 내게 줄 것이 많고 내가 고칠 것이 많고 내가 받을 것이 많기 때문에 내게 유익이 많다 그말이지요? 이러니까 이 대답이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이 학생 대답한 대답이 맞아요 안 맞아요? 맞아 안 맞아? 너는 모르지? 뭐이냐? 맞아 안 맞아? 잘 모르겠지? 이게 요새 그 전문으로 하는 그거는 잘하지마는 이건 또 모르거든. 그러기 때문에 인제 일방적 다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꾸 전체의 원만한 지식을 가질라고 하는 거라. 그게 맞아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법도를 지켜 나갈라고 할 때에 우리 의사에 우리 견해에 '참 요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셔서 감사하다. 요거는 참, 요거는 참 나에게 아주 복된 은혜를 주셨다. 복을 주셨다.' 요렇게 보여지는 그것은 내 지식을 그렇게 초월한 게 아니고 내 지식 수준에 있는 것입니다.
내 지식과 동등 수준에 있는 것이지마는 아주 이거는 뭐 불만 불평을 할 뿐 아니라 '이거는 나 죽으라고 지금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하는 것은 자기 현재의 기존 지식 판단에 거리가 멉니다.
거리가 머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나쁜 것을 줘서 거리가 멉니까, 나에게 나와 틀린 것. 이 많아 거리가 멉니까? 틀린 것이 많아서 거리가 먼 것이니 그것은 하나님과 나와 둘이 대조가 될 때에 하나님이 내게 하시는 일이 내 현재에 있는, 이 현재 있는 어 현존과 같은 것이 아닌 내게 없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것이 나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것이 내게 있는 것 주시는 게 좋아요 내게 없는 것 주는 게 좋아요? 없는 것 주는 건 뭐이라, 여기 여기? 그래. 가지고 있는 거야 뭐 줘 봤자 장 그것인데 가지지 못하는 것 주는 것이 좋지. 가지지 못하는 것이니까 그것 없으면 안 될 터인데 그거 새로 구비해 주니까 좋지 안해요? 가지지 못한 걸 주는데, 가지지 못한 걸 주는데 가지지 못한 것을 많이 주는 것이 좋아요 적게 주는 것이 좋아요? 저 대답해 봐. 많이 주는 게 좋아? 욕심은 있구만. 많이 주는 게 좋지. 많이 주는 게 좋은데 많이 주는 것은 그라면 내 그 현존한 그 견해와 많이 맞은 것이요 많이 틀린 것이요? 많이 틀린 거라, 많이 틀린 것.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것은 자기의 주관에 맞은 대로만 자꾸 하고 자기 주관과 틀린 거는 안 합니다. 자기 주관과 맞은 것만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맞은 게 아니면 다 물리쳐요. 자기 주관과 꼭 맞아야 되지.
맞은 것만 자꾸 하는 사람은 조 사람은 새것을 얻는 사람이요 새것을 물리치는 사람이요? 저 대답해 봐. 저 조는, 내가 보니까 아침에 O집사님은 눈에 잠이 꽉 찼구만. 그거는 어째요? 새것을 물리치는 사람이요 새것 주는데 그것을 환영하는 사람이요? 어떤 사람이요? 모두 대답해 봐요? 저 뒤에는, 저 뭐 백지 그럴 게 아니라, 새것 물리치는 사람이요 새것을 지금 '아, 새것 주십니까? 감사합니다.' 받는 사람입니까? 자, 물리치는 사람이라고, 새걸 물리치는 사람이라고 깨달아지는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봐요. 아, 저거 뭐 알기는 아는 모양이다, 손 드는 것 보니까. 새것을 물리치는 사람이라. 요건 걸 꼭 잡아요.
뭐이든지 하나님이 자기에게 하시는 것은 좋은 것만 하고 옳은 것만 하지 해로운 거는 하지 않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과 나와의 안 틀리고 딱 맞은 것은 뭐 하나님께 안 받아도 내게 이미 있는 것이오. 하나님과 나와 같은 것이오.
나와 하나님과의 틀리는 그것은 틀리니까, 하나님과 나와 틀리니까 내 게, 하나님은 내게 좋은 것만 하지 나쁜 것 안 주시기 때문에 틀릴 것은 내게 없는 것을 많이 주는 그것이니까 큰 것 주는 것이니까 우리는, 그러면 나와 하나님과의, 하나님의 의사와 나와의 다를 때에, 같은 것을 해하는 것이 수입을 많아요 하나님과 내 의사와 틀릴 것이 많은 것을 '이거는 도무지 안 될 일이다' 내 의사와 영 아주, 아주 그 비판과 평가에 아주 틀리는 것 그것을 하는 것이 많이 받는 것입니까 어떤 걸 하는 것이 많이 받는 것입니까? 틀린 걸 하는 것이 많이 받는 것인지 맞은 것만, 자기 의사에 딱 들어맞은 것만 항상 순종하는 것이 많이 받는 것인지 저 OOO집사님? 어찌 돼? 하나님이 나에게 시키실 때에 내 의사에 '요거는 됐다' 내 의사와 일치되는 그것을 행할 때에 수입이 많은지 하나님이 나에게 시킬 때에 내 의사와는 천부당 만부당한, '이거는 나 망하라고 하는 것이다' 하는 그렇게 거리 먼 그런 것을 순종할 때에 수입이 많습니까 어떤 게 수입이 많아요? 예? 거리 먼 것이 수입이 많아요.
여기 저 OO교회인가 어데서 온 이분도 그래요? 맞아요? 예수 믿는 이치를 똑똑히 배워 가지고 믿어야 뒈. 그라면 안 나가요. 요 진리를 깨달으면 절대로 목사들도 여기 안 나갑니다. 이 교훈과 신조와 행정을 떠나지 안해요. 몰라 그렇지 알고는 떠나지 안해요, 바로 알면. 자기에게 복되고 좋은 길인데 뭐 그럴 리가 있어야지요? 이러니까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그러면 우리에게 오는 것은 어떤 것이 오든지 하나님이 내게 만들어서 주시는 것이지 아무도, 마귀도, 내 앞에 닥친 것은 마귀도 만들지 못하고 천군 천사도 만들지 못하고 이거는 하나님이 독권이오. 안 맡겨 줘요. 내게 오는 것은 전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현실은 누가 그 우리 현실을 만들어 줘요?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요.
그러면 만들어 주시는데 이 현실이 내 생각에 내 주관에 좋은 현실 되면, 자기 마음에 '참 이거는 감사하다 행복된 현실이다' 좋은 현질 되면은 그 현실이 좋아요? '이거는 나 망하라고 하는 것이다' 이거는 이게 아주 내게 대해서 '하나님이 왜 나를 이렇게 하시는고?' 그렇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런 현실을 주시는 것이 자기에게 좋아요, 어떤 것이 더 좋습니까? 다 좋지마는 어느 것이 많이 좋습니까? 저 O집사님? 집사님 한번 대답해 봐요. 세상에서야 둘째 안 하지. 어떤 현실 주는 것이 좋습니까? 자기 마음에 딱 들어맞아서, 자기 마음에 딱 들어맞고, 자기 의견에 맞고, 자기 기분에 맞고, 자기 욕심에 맞고, '참 하나님이 이렇게 해 주신다' 자기에게 다 들어맞는 그 현실을 주시는 그것이 유익이 많은지 자기 의견에 들어맞지 않는 그런 자기에게는 아주 천리 만리 거리 먼 천부당 만부당 '이거는 나 망하라 하는 것이다' 하는 그런 현실 주는 것이 유익이 많은지 한번 대답해 봐요. 어느 것이라요? 첫째 것이요 둘째 것이요? 둘째 것, 대답은 바로 하는데 인제 핑계를 못 해요, 모두. 뒤에 망해도 제가 알고 망하는 것이지 핑계 못 해, 뭐. 이래도 다 핑게 못 할 만치 알기는 다 알아 있다 그거요.
그래서 여게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모든 것이 여게 선하다 말은 잘됐다 그 말이오. 잘됐다, 흠없이 바로 됐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이거 모든 게 다 잘됐다 이러니까 잘됐는데 어떤 게 잘되는 것이냐? 선한 게 잘된 것이라.
선한 것이라니? 하나님 중심 조물주 위주 조물주 중심으로 돼서 이거는 흠이 없는 거라. 하나님이 완전자인데 완전자의 완전대로 된 것이라 그 말이오. 이 선악에 대한 정의도 여기 대학 졸업말은 사람들은 잘 안 듣고 또 박사들은 잘 안 들어요, 이거 뭐 어떻게 무식한 그렇게 막 도매금으로 들이 넘겨서 그렇게 해석을 한다고. 이 선악의 내가 정의 말하는 것을 저희들이 인정을 안 해요. 안 하는데 그거는 많이 썩어서 안 합니다. 많이 썩어 안 하지 틀걸 게 아니라. 바로 맞았어.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이게 다 잘돼 있다 말이오. 잘돼 있다 말이오. 잘돼 있다 말이 그게 뭐이요? 잘돼 있는 게 뭐이요? 완전자와 같이 돼 가지고 있다 그 말이오. 하나님 중심으로 돼 가지고 있다 말이오 저 OOO조사, 맞아요? 이 말이 맞아요? 몰라, 맞을란가? 미국 가서 자꾸 잡탱이 자꾸 많이 먹어 놔서 맞을란가 모르지. 그라기 때문에 여기 석 달 동안 좀 인제 전도사로 우리 교회 조사로 모셔 놓고서 한달에 사십만 원 줘요. 좀 아주 박봉 같지마는 딴데 가서 또 교역자 나가 가지고 사십만 원 이하 받으면 낭파될 것이기 때문에. 그래 좀, 더 받는 것 좋지마는 그래서 그래요. 이래 가지고 꼭 세 번 설교시켜. 한 달에 한 번씩 세 번 설교 시켜서, 아마 세 번 설교시키는 그게 기름을 바짝 째여서 좀 고생을 당할 거라.
'선하매' 이 '선하매' 하는 선에 대해서 선이라는 것은 그거 다 잘,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 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하더라' 그 선하더라 말 그걸 하나님 중심이라는 말로 해석을 하면 틀려요 맞아요? 맞아요? 그게 맞아요. 맞은데 저거는 일방적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안 된다, 이라고 찌글찌글 웃고 조롱을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닥쳐서 자꾸 감론을박으로 이래 자꾸 연구해 살펴 나가면은 다 굴복을 할 터인데 그만 들짱 이단이라 하고 나한테 오지도 안하고 이단이라 하고 반대만 해요. 또 '그거는' 그전에 백 조사 때인데 '백 조사는 그거는 그 강단에 다른 사람은 세우지 안하고 저만 서고' 그란다고.
그래 가지고 여기 우리 O집사님이 열심이 있는데 O집사님이 '이 좀 교훈도 교류해야 되니까 좀 그렇게 다른 이도 좀 청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래. '그거 좋다 교훈이 교류돼야-교류는 저로 이래 바꾸 된다 그 말이오.-청해야지. 그거 다른 사람을 우리 강단에 두 번 청하고 나는 한 번 가고, 그래도 품앗이로 해야 될 것 아니가? 두 번 청하고 한 번 가기로 어느 목사든지 한번 좀 교섭을 해라.' 그래 이쪽에는 와 가지고는 아무 말이라도 자꾸 말들을 할라고 올라 했는데 '그러면 두 번 우리 청해 줄 터이니까 우리 그 조사님 한 번만 청하도록 그래,' 그래야 교류지 서로 사귈 교(交) 자 말이오. '교류니까 그래 하도록 해라'. 그말 나고 난 다음에는 강단에 다른 사람 안 세운다 그말은 딱 끊어져 버렸어. 딱 끊어져, 그만.
그러면 그리 하자 하는 날이면 자기 강단에 한번 가 세워 놓을 터이니까 자기는 여기 와서 뭐 두 번 서 봤자 뭐 별 것이 없지마는 한 번만 세워 놓으면은 혹 어짜면 획 뒤벼져 버릴란지, 교회가 뒤벼져 버릴란지 모르니까 '이거 큰일 났다, 건드렸다가는 이거 큰일나겠다.' 하니까 다시는 그 다음에 그런 소리 없어. 자꾸 강사를 청을 해,' 이래 청해 오너라 누구든지 좀 청해 오너라' 그런 조건으로 청하라 하니 그 뒤에는 강사로 올 사람이 없어. 이만해도 알 건데. 그래.
'선하매 감사함을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버릴 것이 없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 이 말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네게 어떻게 해당되는지 그것을 바로 알면 뭐 감사해서, 네 의사에 아주 많이 틀릴수록이 더 많이 감사하고 '이거는 나 죽고 망하라 하는 것이다' 하는 그거는 알고 보니까 그렇게 큰 사랑이 뜨거운 사랑이 없고 내게 아주 큰 사랑을 주시는 것이더라, 큰 은혜를 주시는 것이더라 그 말이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그 다음에 5절에 또 오묘한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하나님과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짐이니라' 똥도 갖다 놓고 자꾸 하나님께 기도하니까 거룩해지고 또 하나님 말씀을 붙이니까 거룩해지고 한다는 말이 아니고 그걸 감사함으로 받아도 참 좋고 그걸 받아 놓고 깨닫지 못해도, 감사함으로 받지 못하고 깨닫지 못해도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자꾸 돋파보고 하나님 말씀 가지고 자꾸 이거 심사해 보고 심사해 보고 하니까 깨달아진다 말이오. 하나님 말씀 가지고.
또 그라고 나서, 기도는 뮈이냐? '나 이거 모르겠습니다. 좀 가르쳐 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지고 한번 검사해 보고 또 하나님에게 와서 가르쳐 달라고 해 가지고 하나님 말씀이 가르쳐 주고 하니까 거게 대한 진가를 알고 진상을 알고 거게 대해서 내게 어떻게 어떤 모로 어느 각도로 해당이, 되는고 그것을 바로 알고 보니까 그 모든 게 자기에게 유익이 된다 그거요.
하나님 말씀은 이러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 여러분들이 뭐이해 못 할 것인지 그래도 뭐 다 손 드는 것 보니까 이해를 하는 것 같은데, 우리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우리가 왜 얻지 못하느냐? 그 필요한 것을 우리가 몰라서, 어떤 면으로 필요한지 교요한 것을 몰라서 그것을 내게 닥치는 것을 내 욕심대로 쓰기 때문에 결국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내가 모든 것을 내게 뭐이 필요한가 그것을 바로 알아야 되겠고 또, 바로 알아야 되겠고 또 그 다음에는 둘째번에는 중요한 게 뭐입니까? 바로 알아야 되고 또 하나, 중요한 것 두 가지인데 하나 중요한 거는 뭐입니까, 하나 중요한 것? 하나 중요한 것? 내게 건강을 주셨다, 또 내게 돈을 주셨다, 내게 권세를 주셨다, 형통을 주셨다, 평안을 주셨다, 또 내게 막 눈물 쭐쭐 흘리고 죽을 지경을 주셨다. 그런 것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여러가지를 줍니다. 주는데 하나는 내게 어떤 면으로 필요한가 내게 필요한 것을 필요한 그 면을 몰라서 낭파를 당하고 또 하나는 뭣 때문에 낭파당합니까? 우리 O장로님? 쓰기를? 그래. 인제 그거라.
필요한, 어떤 면으로 필요한 거 그거 알고 또 쓰기를 잘 쓰면 다 돼버려. 그라면 뭐이 우주에 가득 찬 것이 전부 우리 것이요 하늘과 땅의 것이 다 우리 것인데 요 두 가지에서 고장이 생겨 있는데 이거는 고칠라고 하지 안하고 자꾸 싸우고 시기하고 죽이고 피흘리고 욕심내고 이거 싸우고 다투고 야단인데 이거는 할 일이 아니라 그말이요. 알겠습니까? 그러기에 이 진리를 깨달아서 이 선에, 이 궤도에 딱 올라선 것은 자꾸 달리기만 하지 아무 데 근심이나 걱정이나 고통이 없습니다. 이거 좀 잘 알아야 돼요. 또 자꾸 가서 기도를 많이, 기도하고 명상하면 나와요.
지금 교회 주변을 청소할 것이고, 지금 바로 권찰회 모입니다.
다섯시 또 넘었내. 십오분이나 늦었네. 이거 아주 안됐습니다. 빨리 가서 연락해 가지고 새벽기도 참석하도록 그렇게 학생들을 보내십시오.
기도를 자꾸 많이 하고 깨닫도록 해야 되지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암만 뭐 목사 장로라도 자꾸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행복의 길을 걷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