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6 12:19
기도의 능력
1984. 10. 17. 수밤
본문 : 요한복음 14장 11절-14절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 이 삼위는 한 하나님이시요 본체가 하나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늘 섬겨 오는 그 신관은, 예수님이 도성인신하셔서 친히 하나님의 독생자라 이렇게 증거를 하시고 또 친히 하나님이신 것을 증거를 했지마는 그 사람들은 항상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 차이점을 두고서 생각을 하고 곧 성자가 성부와 성령과 성자시요 또 성령이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이 위는 셋이지마는 역사하는 위는 셋이지마는 그 본체는 하나이심을 그들이 항상 믿지 못하기 때문에 차이를 두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곧 성부가 성자요 성령이요, 성자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시요. 성령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시니 한 하나님이시요 본체가 하나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이런 역사를 하실 때에는 우리들로 하여금 구별하도록 하기 위해서 성부로 나타내셨고, 또 저런 일 할 때에는 성자로 나타내셨고, 또 이런 일 어떤 일을 할 때에는 성령으로 나타내셔서 성부의 하시는 일과 성자의 하시는 일과 성령님의 하시는 일이 속은 근본은 하나지마는 외부에서는 각각 그 세 위로 세 직책으로 구별돼 있기 때문에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연결하는 데에 더 잘 깨닫고 하기 쉽도록 이렇게 나타내신 것인데 그 차이를 둬서 생각하는 그것을 없애기 위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주님 하면 벌써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를 우리가 부르는 것이 되겠습니다. '아버지' 할 때도 '아버지' 했으면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내가 부른 것이 된 것입니다.
혹 어떤 사람은 아무래도 아버지라 불러 가지고는 성자님에게 대해서는 좀 성근 거 같고 또 성부와 성자님만 이렇게 불러서 고하고 의논할 때에는 그 성령님에게 대해서 좀 성근 거 같고 좀 차별 있게 이렇게 좀 성글고 박대하는 거 비슷하이 이렇게 생각을 해서 아버지. 또 주님, 또 성령님 이렇게 세 번 이렇게 부르는 그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님이 그 직책을 맡은 그 위가 다르지 한 하나님이시요 본체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한 말씀이요 또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은 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 이 사실을 믿도록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도성인신하셔 가지고서 사람으로 나타나신 주님은 외모는 사람이시지마는 내나 그 신성은 성부의 신성이요 성자의 신성이요 성령의 신성이요 삼위일체인 그 하나님의 신성이십니다. 그런고로, 이 사실을 믿어야 되지 믿지 안 하면 구원이 안 되어집니다.
왜? 우리가 주님이나 성령님이나 하나님이나 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상대할 때도 그 한 위를 상대하면 삼위를 다 상대함이 되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하고 또 한 위가 말씀한 것이라면은 삼위가 다 함께 말씀하신 것인 것을 알아야 되고 또 우리가 상대할 때에도 한 위에 상대하면 삼위를 다 상대하는 일이 되는 것을 알아야 되지 그걸 모르면 성부에게. 관계있는 것은 성자에게는 관계없는 줄 알면 그것이 모순돼서 다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안 되기 때문에 일이 안 됩니다.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러면 상호 내주인데 내나 외모로 사람 보기에 나타나실 때에는 이런 하나님으로 저런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은혜 베푸시는 그 모든 은혜의 종류에 따라서 그렇게 하시지마는 그때에 성자가 하는 일에도 성부가 그 안에서 같이 계셔서 하고, 또 그 성령이 하시는 일에도 성부와 성자가 성령님 안에서 같이 계시면서 삼위인 그 삼위일체인 한 하나님이 내나 혼자 하시는 것인데 나타날 때에 그렇게 나타낼 때에 구별되게 나타내는 것인데 '그것을 너희들이 믿지 못하겠거든 상호 내주하심을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이걸 믿어야 되는데, 삼위일체를 믿어야 그 하신 일도 삼위일체가 했고, 말씀하신 것도 삼위일체가 말씀을 했고. 또 우리가 상대 할 때에도 성부를 상대하든지 성령을 상대하든지 상대할 때에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상대하는 것인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고.
구하는 것도 그러하고. 또 우리가 무슨 잘못도 성령님에게 잘못했으면 삼위일체에게 잘못했고, 성부에게 잘못했으면 삼위일체께 잘못했고. 또 성령을 기쁘시게 했으면 삼위일체를 기쁘시게 했고. 삼위일체 하나님은 한 하나님이신데 외모로 나타난 역사는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할지라도 그 속에 역사하시는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사실을 믿으라 만일 그렇지 못하겠거든' 너희들이 믿어지지 안 하거들랑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 성부가 말씀하신 것이요 또 예수님이 행하신 일이 성부가 행하신 일이요 또 성부가 하신 그 일이 성자가 하신 것으로서 너희들은 그 물적이라야 알고 이렇게 신령한데 대해서는 어두우니까 모든 물질면에 나타난 그런 것을 보아서 믿으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 그 다음에 말씀합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자는' 도성 인신하셔 가지고서 신인 양성 일위로 하나님이 사람으로 나타나신 이 주님을 믿는 것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를 믿는 것이요 또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자가 말했으니까 성부는 거기에 대해서 책임이 좀 멀고 또 성령이 말했으니까 성부와 성자는 좀 책임이 멀고 당사자가 아닌 것같이 이렇게 우리가 생각하기 쉬운데. 위에 믿으라고 이래 말씀해 놓고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슨 말씀을 하실라고 하는고 하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하는 것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는 것은 내가 이 다음에 너거들에게 말을 하는데 내가 하는 이 말은 내가 단독이 말하는게 아니라 내가 이 하는 말은 성부가 말씀하는 것이요 성령이 말씀하는 것이요 성자가 말씀하는 것이요 삼위일체의 한분이신 하나님, 영원 자존자이신 이 하나님이 말씀하는 것이요 한분이신 하나님이 말씀하는 것이요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영원을 예정하시고 모든 것을 주권하시고 크고 작은 모드 것을 다 보존도 하시고 섭리도 하시는 이 하나님 이 하나님이 너희들에게 말씀하신 것을 믿으라 하기 위해서 위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다음에 할 말씀 이 있는데 내가 너거들에게 말하는데 이 말은 곧 이 말은 내 말이 아니라 이 말은 내 말만이 아니라 이 말은 성령의 말이요 성부의 말이요 이 말은 영원 자존자의 말이요 창조주의 말이요 대주재의 말이요 주권자의 말이요 또 전능자의 말이요 전지자의 말이요 이러기 때문에 이 말을 주님이 하시는 말씀을 그 성부가 한 말이라. 또 성령이 한 말이라, 삼위일체가 한 말이라, 한 위가 한 말이라 이렇게 해서 그렇게 차별을 두지 말고 삼위일체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이 함께 너희들에게 말씀하신 것인 것을 믿으라 하는 말씀입니다. 요걸 믿어야 됩니다.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자는 성부를 믿는 자요 성자를 믿는 자요 성령을 믿는 자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자요 자존자를 믿는 자요 창조주를 믿는 자요 전지전능자를 믿는 자요 모든 것의 다 주인이 되시는 대주재를 믿는 것이요 만왕의 왕을 믿는 것이요 만주의 주를 믿는 것이요 주권 모든 통치 섭리자 이 유일하시 한 분이신 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 하는 것을 말씀하시고 요 믿음을 요동치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하신 말씀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람을 입고 오셨지 사람되어 오셨다고 예수님의 신성이 조그만치라도 변해진 거 아닙니다.
혹 생각하기를 예수님께서 신성은 하나님이시요 인성은 사람이신데 이제 신인 양성 일위가 됐기 때문에 신성만도 아니요 인성만도 아니요, 이러기 때문에 신인 양성으로서 이렇게 종합된 종합된 그 신성과 인성이 종합됐기 때문에 이는 사람도 아니요 하나님도 아니요, 이러니까 둘 섞여서 혼합이 되어 있는 그 존재다. 그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다. 사람하고 이제 섞여서 한테 고만 이래 탔기 때문에 사람도 아니고 하나님도 아닌 그런 하나의 존재가 됐다, 이렇게 마귀들이 꾸며 가지고서 이단을 꾸몄던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것을 정죄를해서 다 시정을 했습니다. 그라고 나니까 '아, 예수님은 그 하나님이시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신 그 신성은 신성대로 따로 있고 인성은 인성대로 따로 있으니 신성으로 말하면 사람의 영 같고 인성으로 말하면 심신의 육체와 같다.' 또 그렇게 또 말을 해서 또 이단을 만들어 냈던 것입니다.
이래서, 그 예수님은 하나님은 하나님이신데 사람은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 같이만 나타났지 사람은 그거는 참 실상의 사람이 아니다. 이래서 신성을 부인했다가 인성을 부인했다가 또 신인 양성 혼합설을 말을 했다가 또 산성 인성의 안팎이 되어 가지고서 신성은 주격이요 인성은 또 소유격으로 이렇게 말을 하는 온갖 그 잡탱이 이단을 말했다가 마지막에는 시정돼서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요 조그만치도 하나님의 뭐 깨졌거나 갈라졌거나 뭐 감해졌거나 변하지 안하는 참 온전한 그 하나님이신데. 신성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요, 그런데 인성은 또 온전한 사람이라. 사람인데 삼위일체라 말은 신성과 인성이 신성은 신성대로 온전한 그 신성이요 인성은 인성대로 섞임 없는 사람이라, 섞임 없는 사람 섞임 없는 하나님인데, 신성과 인성이 한 격위가 돼 가지고서 역사하게 되었다. 신성과 인성 이 일을 맡은 데에 하나가 되어 가지고서 모든 책임을 지고서 일을 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신 것은 곧 하나님이 하신 것이요 곧 사람이 한 것이다. 하나님이 한 거라. 하나님이 했다면 하나님이 한 것이요 사람이 했다면 사람이 했다. 그러나 그 속에 신성과 인성이 그 뭐 혼합되거나 이렇게 변해졌거나 그런 것 아니고 사람은 언제든지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그 인성은 언제나 피조물입니다.
이래서, 제가 애양원 교회에 가 가지고 '예수님의 신성은 창조주시요 인성은 피조물이라. 이러나 신성과 인성이 한 격위를 이린 가지고서 역사 하게 됐다.
그래서 양성 일위다.' 이랬더니마는 그만 장로 한 분이 그 예수님의 인성을 피조물이라 한다고 마구 떠들어 가지고서 그만 그 자리에 퇴장을 하고 뿔둑 성을 일으켰습니다. 이랬는데 이라다가 나중에 이틀이 지나고 나니까 와서 자복을 하면서 잘못했다고 그래 와서 회개를 하고 참석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이 여기에 ○○교파에 와 가지고서 ○○교파에 와 가지고서 예수님의 인성을 피조물이라 한다고 이래 가지고서 그때 바짝 이단이라고 이제 이거는 참으로 정죄받았다. 이제는 이단이다 하고서 아주 강하게 여기 ○○교파에서 주장을 했었습니다. 주장을 하는데 제일 거기에 대해서 먼저 주장한 사람이 누군고 하니 ○○○ 목사님이 그 일을 주장을 했었습니다.
이라다가 차차 차차 나는 그래도 아무말도 안 하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서서히 다 깨닫게 하시니까 그 분들이 처음에 왈칵 처음 들을 때는 그랬지마는 나중에 차차 깨달아지니까 과연 그게 옳다 이래 가지고 그 다음에는 이제 예수님의 인성에 대해서 피조물이란 말에 대해서 정죄하는 그런 일이 지금은 없습니다.
우리가 삼위일체인 이 하나님에 대한 삼위일체의 그 신관이 바로 못 되면 우리의 신앙은 바른 길을 걸어가지를 못합니다. 또 신인 양성 일위에 대해서 바른 관을 가지지 못하면 신앙의 길을 힘 있게 걸어가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관, 조직 신앙의 신관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을 어떻게 보느냐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 어떻게 아느냐 하는 것이 신관이요. 또 그리스도관 예수관, 예수 그리스도관 이게 또 바로 돼야 됩니다. 또 그러면 모든 이 존재에 대해서 이 존재가 어떻게 생겨졌느냐 하는 것을 또 바로 이 모든 존재관이 바로 돼야 됩니다.
이런데, 뭐 하나님이 이 모든 걸 창조하신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안다는 것이 전부 삐뚤어진 것이고 하나도 바로 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니까 그 사람은 안다는 것이 사람 죽이는 것뿐이지 제 지식으로 서는 사람에게 유익 주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들을 어린 아이들 달콤한 쥐약을 먹으니까 아, 달콤하니까 좋다고 꿀떡꿀떡 마시지만 뒤에 그만 죽어 버리는 거와 마찬가지로 그들이 인간에게 유익 준 것 같으나 다 쥐약을 어린 아이에게 먹여서 죽임과 같은 그런 결과적인 해독의 독약을 먹이는 것이지 유익은 하나도 못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관, 또 예수님이 우리를 대속하신 그 속죄관, 또 우리의 구원이 어떻게 됐느냐? 구원관, 이제 구원관도 지금 우리가 기본구원이니 건설구원이니 하는데 구원관도 구원 하나 뿐이라 한 사람들은 진실한 사람은 해결이 안 됩니다. 해결이 안 돼서 제가 김천 가서 집회하니까 그 사람이 똑똑해요. 아주 버틀도 크고 아주 잘 생기고 또 좀 돈도 있던 모양인데 가니까 양반질 딱 해 가지고서 설교를 하니까 내 안면을 보니까 '저 또 그 기만쟁이 사람을 꼬와서 넘어트리는 그 기만쟁이가 또 하나 와 가지고서 또 열변을 토하고 있네.' 이래서 그저 눈초리로 보니까 비웃고 가증스럽게 보면서 발가이 쪼그리고 이래 앉았어요. 이래 앉아서 '저 어떤 사람이 저러나 참 거슬린다. 저거 뭐 공산주의 아닌가?' 이랬는데 나중에 그라다가 몇 시간 지나고 난 다음에 예수님의 대속에 대해서 속죄론을 말하니까 아. 그 사람이 그만 무릎을 딱 꿇고 앉더니마는 앉아 가지고 동그라이 해 가지고 이라디마는 마치니까 고만 와 가지고서 울며 자복을 합니다. 나는 이제 까지 회개해야 구원된다 하는데 그 회개 할 거 다 하고 간증 다 하고 나는 이제 속에 회개할 거 다 했으니까 참 기쁘다며 간증 다해서 뭐 오반 거 다 회개하고 수치고 뭐이고 다 간증 다 했는데 그 다음에 부흥 집회 할 때 보니까 또 내가 모르는 죄가 또 나오니 이거 평생 나올 터이니까 회개해야 천국 간다고 하니까 도무지 이거는 거짓말이지 모순된 말 한다해서 이랬었는데 기본 구원과 건설 구원을 구별하니까 그러면 그렇지 이제 해결 됐다고서 성경을 가르쳐 주니까 좋아서 대번에 '이제 내가 가 가지고서 교회를 다시 세우겠습니다. 이제까지 제가 그때 ○○교파에 있을 때인데 ○○교파를 반대하고 이랬었는데 이제 내가 가 가지고서 혼자 돈 들여서 그 교회서 이 ○○교파에 속한 교회를 세우겠습니다.' 하고서 그 뒤에 들으니까 그때 가 가지고 바로 자기 돈을 내 가지고 교회를 지어서 교회 세웠다는 말 들었습니다.
이러니까, 그 말세관, 이 말세를 어떻게 보느냐? 성경에서 말세관을 잘 봐야 되고, 또 내세관을 잘 봐야 되고,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재림관을 잘 봐야 되고, 심판을 보면 심판관에 대한 것을 잘 봐야 되고, 또 부활관, 사람이 부활이 뭐 어떤 부활이냐? 부활관을 잘 봐야 되고. 또 불신자 심판관도 잘보고 이거 뭐 모든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뭐이 돼지지 바로 알지 안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데.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 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예수님께서 하시는 모든 것이 다 아버지가 하시는 일이요, 또 아버지가 하시는 일 내나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요 하는 그런 것을 다 성경에 나타냈습니다. 이래서 내가 말하는 내 말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있어서 말한다, 또 나는 영존 하신 아버지다, 또 그렇게 말씀도 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이렇게 '나를믿는 자는' 도성 인신하셔서 우리 위해서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설정하시고 다시 삼일만에 부활하시고 지금 영으로 우리와 항상 같이 계시면서 세상 끝날까지 구속 운동을 같이 하시고 또 재림하셔 가지고 우리를 데리고 영원한 나라로 영접하실 이 예수님, 이 예수님은 삼 위 일체의 하나님과 인성이 한 격위를 이루신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은 곧 자존자시요 창조주시요 주권자시요 모든 예정자시요 전지전능자시요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시요, 또 모든 주권 개별 섭리자이신 주권 개별 섭리자 이분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으라.' 곧 내가 이분이다. 내가 곧 이분이다. 내가 곧 이분이다. 우리가 요걸 믿어야 됩니다. 주님이 주님이 성부요 성자요 성령입니다. 주님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요. 주님의 인성이 그렇다는 거 아니요 주님의 신성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요, 주님이 짓지 안한게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이 주권자시요 주재자시요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시요 전지전능자십니다.
이런데. '나를 믿는 자는' 주님을 이렇게 알고 인정하는 자는, 믿는 자라 말은 믿는 자라 말은 그 믿음의 지식을 가진 것이 믿는 것이요, 믿음의 지식을, 또 그 지식을 영감으로서 확실히 인정하는 것이 그것이 믿는 것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자는' 주님이 이런 분이신 것을 자기가 알고. 아는 것은 아는 것은, 그러면 공자에게 배워 가지고 아는가. 석가모니에게 배워 가지고 아는가.
무슨 요새 20세기의 그 아주 고등 지식도 있으니까 그 지식에 배워 가지고 아는가, 누구에게 배워 가지고 아는가? 하나님에게 배워 알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배워 알기 때문에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그대로 내가 딿는다 말이오. 하나님을 딿는 지식으로 아는 것입니다. 믿음이라, 하나님을 딿는 지식으로 아는 거.
그러기에 믿음의 지식이라 말이오. 믿음의 지식, 믿음이라 말은 믿음의 지식을 가지고, 또 그 분을 참됨을 인정하는 인정 믿음을 가지고 알고 인정하고 그대로 상대하는 빌음을 가지고 그대로 상대하는 믿음을 가지고 그대로 그분에게 따라서 피동되는 그, 믿음을 가지라 그 말입니다. 믿는 자 되어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이제 요런 믿음을 가지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그러면 주님의 하시는 일이 뭐이냐? 요것은 신성만이 하시는 일을 말한 것 아닙니다.
신성만이 하시는 일 말한 거 아니고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신인 양성 일위가 돼 가지고 하실 일은 다 할 수 있습니다. 신인 양성 일위가 돼 가지고 하는 일은 다 할 수 있습니다. 왜? 예수님의 신성도 예수님의 신성도 하나님하고 둘이 일위 되니까 일위 되니까 그 일 했는데 우리도 사람이지마는 하나님하고 일위는 안 되지마는 일행합니다. 일행하요. 일행하고서 일치됩니다. 본성는 아니지마는 이제 이 하나님과 우리와 한 몸이 됩니다. 그는 머리시요 우리는 몸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구별해서 그분은 창조주시요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주와 혼란되고 이거 바뀔 수는 없지마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하나가 됩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할 것이요' 이것은 첫째는 하나님이 만족할 수 있는 하나님이 만족하실 수 있는 하나님과 결합이 돼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힘입어 가지고서 하나님의 원하시는 이 지공과 지성법을 다 완성할 수가 있고, 하나님을 힘 입어서 또 그를 힘입어서 전지전능의 역사를 할 수가 있고, 그분을 힘입어서 모든 사망에 있는 사람을 구출 할 수 있고 사망을 깨트릴 수 있고. 그 칭의를 줄 수가 있고 우리가 하늘나라의 주님의 칭의를 그들에게 줄 수 있고 사죄도 줄 수 있고 화친도 줄 수가 있고 이런데 이 일을 다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더 큰 것도 하리니 큰 것도 하리니 더 큰 거 한다. 이 큰 걸 한다 말은 질적으로 큰 걸 한다는 말이 아니고 양적으로 큰 거 하는 걸 말합니다. 양적으로,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아직까지 아버지의 기뻐하는 자가 됐지마는 우리의 그 모든 것을 대신하셔 가지고서 이 문제를 해결 짓지 못했습니다. 아직까지 예수님은 당신은 승리자지마는 우리가 붙어 있기 때문에 우리까지 다 승리하지를 못한 자입니다.
미승입니다. 미승이기 때문에 마태복음 4장에 마귀가 마귀가 이리 가자 하며 끌고 가니까 끌려가고 저리 가자 하면 끌려가니까, 왜? 그 권세 아래 있기 때문에. 그 권세 아래 우리 때문에 권세 아래 있어. 권세 아래 있기 때문에 지금 그와 이와 같이 하는 대로는 피동 안 될 수 없고 그는 이래 이래 하면서 하나님의 법만 어기지 안했지요. 이래 가지고서 대결을 하다가 신인 양성 일위가 신성은 의례히 그를 이기지마는 서도 인성과 일위 돼 가지고서 인성을 붙들고 사탄으로 더불어 싸워서 이긴 것이 이것이 첫째 아담에게 패전된 것을 둘째 아담이 도전해 가지고서 사람으로서 이제 사탄을 완전히 승리한 이 승리를 완성했던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완성하고, '아버지께로 감이라' 완전히 승리하고 하늘의 문제까지 다 해결 다 짓고, 이제는 사탄으로 더불어 싸워서 완전히 승리를 했고 하나님의 지성법과 지공법에 율법의 온전함을 이루었고, 또 하나님 아버지와 이제 마지막 최종적인 관계도 다 인성을 가지고 가서 다 이루었고 신성과 인성이 가지고 가 가지고서 완전히 이루었기 때문에 이제는 예수님이 아버지에게 가신 것은 그 삼위일체의 하나님과 인성과의 이 관계로서 인성이 완성한 것을 이제 결정 지운 것이 예수님이 가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감이니라' 그런고로, 그 다음에는 우리는 예수님의 하신 일을 다 그 일을 힘입어서 고와 같은 일을 다 하고 하는데 그때는 불과 조그만한 그 팔레스틴 유대 지역에서 이 일을 시작했지마는 땅 끝까지 이르러서 이 복음의 역사가 이루어지게 된다 하는 말입니다.
'감이니라' 그러면서 13절에 말씀했습니다. 요 말씀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요 말씀 하려고 하시는 것이요. 13절에, '너희가' 이러기 때문에 이 걸 다 믿으라 믿고,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너희들이 내 이름으로만 구하면 내가 시행한다.
그러면.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시행한다 그 말은 주님의 이름이라는 것은 주님이 모든 죄에 대해서 피조물들이 자기 주관대로 하는 이 불의에 대해서 또 삼위일체의 하나님과 대립된 거기에 대해서 이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에 내 이름이라 말은 내 공로를 힘입고 말입니다. 내공로를 힘입고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다 내가 시행하리니' '내가 시행 하리니' 하는 이 내가 시행한다는 말은 이 공로를 다 베풀었기 때문에 이 공로를 입고 이 공로를 입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하면 내가 시행한다. 이는 시행은 시행하는 능력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시행을 삼위일체 하나님이 시행을 하지마는 인제 신인 양성 일위기 때문에 인성도 함께 해 가지고서 시행해서 하나님이 하신 일이 곧 사람 한 일이 된다. 하나님의 하신 일이 곧 사람 한 일 된다. 그러면 예수님이 하신 일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면서 사람이 했기 때문에 우리 인류가 했다 말이요. 사람이 했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신성은 삼위일체 편에 섰고 인성은 우리 사람 편에서 가지고서 우리는 사람 편에 선 인성에 우리 인간은 인성에 꽉 매달리면 인성에 꽉 매달리면 전 인성의 예수님의 인성에 매달린 자는 모든 자가 신인, 신인 양성의 일위의 역사를 하게 된다. 그러면 일위의 그 결과의 역사를 하게 된다.
'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니라' 이와 같이 하는 것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으로 하여금 삼위일체의 하나님으로 하여금 모든 피조물들이 모르고 있는데 과연 예수님께서 이와 같이 하신 것은, 하신 것은 삼위일체가 다 함께 하신 것이요 예수님이 하시는 이 일은 삼위일체와 내통이 돼 가지고서 내나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다 하시는 것이요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일위로구나. 삼위일체 하나님이 따로 있지 안하고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 친히 당신이 하시는 것이로구나 하는 것을 이제 나타내려 함이라 하는 것입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그러기에. 오늘 저녁에 말씀하시는 것은 그것입니다. 우리가 요걸 믿읍시다.
주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주님이 만반의 준비를 다 했습니다. 주님의 이름이라 말은 주님의 십자가의 대형 대행 대화친의 이 대속의 공로를 말합니다.
이 대속의 공로는 우리가 다 모르나 전지자가 전지자가 계획한 것은 전능자가 만들었으니까 그 종류의 숫자가 천인지 만인지 억만인지 억억만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하나님만이 무한하지 무한은 아니고 유한은 유한이지마는 억억억억 몇해나 억억억억억억 해야 그 숫자가 될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많은 것을 창조하시고 그 모든 것에 대해서 세밀한 세밀한 법칙을 다 냈고, 이거 이 잔디풀 한 포기가 아주 가치 없는 거 같고 하지마는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그 창조에 대해서는 만일 뭐 세포로 말하면 굉장한 숫자일 것이요 이십 세기의 과학이 저거가 암만 떠들어 쌓아도 만들지 못한 그 생명이 다 그 속에도 그런 존귀한 생명이 그 속에 들었습니다. 이렇게 이 수많은 그만든 그 분이 만들어 가지고서 모든 것에게 다 거처하는 법칙도 줬고 사는 법칙도 줬고 생명도 기한도 전부 다줬는데 그것이 뭐이냐? 지성 지공법입니다. 네, 그것이 지성 지공법이요 그것을 가리켜서 완전법이라 말이라. 완전법.
억억억억만도 그 모든 것들에게 대한 그 법칙이 있으니 그 수많은 법칙에 대해서 주님이 대형 대행 대 화친은 이 모든 법칙에 율법의 요구에 완전함을 이루었다.
로마 8장에 말하기를 완전을 이루었다. 예수님의 대속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제가 깨달은 대로는 언제 한번 그렇게 말한 것을 제가 생각이 납니다. 우리가 천국 가 가지고 천국 가 가지고서 억억억억 만 년을 가는 만 년을 지나서 여기에도 가보고 억만 년 후에는 여기 가보고 억억억만 년 후에는 저게 가보고 이래 갔는데 나중에 억억억억 만 년 그 후에 그 자리가 순서가 닥쳐 떡 가니까 그 있는 모든 존재들이 다 나온나고 모두 뭐 환영 잔치를 베풀어 놓고 야단을 지깁니다. 환영 잔치를 베풀고, 나는 생전 처음 보는 건데 환영 잔치를 보고 이래, 그런데 가니까 아, 오냐고 인사를 하면서 환영을 하고 이라는데 '내가 내가 뭐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데' 이라니까 말하기를 '아. 우리가 지금 이렇고 이렇게 해서 구원을 얻지 안했습니까? 이렇게 우리한테 이런 선량한 일 하지만' 뭐 선량한 일 했다고 저거를 구원했다고 이래 쌓면서 해 쌓는데 어떨떨하게 내 한 일 없을 건데 한 일 없다 말이오. 한 일 없는데, 그라니까 성령님이 있다가서 '그것이 주님이 네 대신 행한 것이야. 네 대신 행한 것이라.
네 대신 행한 거. 네 대신 모든 거 삐뚤어진 것을 네 대신 그런 걸 다 수정 다 했어 그렇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 수정 다 했지 창조주 수정이든지 전부 그거 다 했어' 이러니까 주님이 나를 대속하신 억억억억 만 년 후에 거기에 가서 나를 환영한다고 화영 잔치를 열고 있는데 거기에 가 가지고 주님의 대속이 여기에까지 와서 역사했구나 하는 것을 그때 비로소 알게 된다 하는 것을 제가 언제 말한 일이 있습니다.
이렇게 주님이 모든 것을 이렇게 베풀어 놓으신 이 주님의 이름, 이렇게 내 이름으로 구해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하는 우리는 간단하게 예수님 이름이라 말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힘입어서 대속의 공로로 이제 구한다 그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주님의 십자가의 보배피 공로를 의지하옵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이거 좀 마음에 좀 마음에 안심이 안 돼 미심스러워 그래 기도합니다. 그래 안 해도 좋아요, 그만 예수님의 이름, 피면 벌써, 이름이라도 어떤 사람은 그만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는 생각지 안하고 그저 예수 하는 그 이름으로만 안다면 좀 안 됩니다. 예수님의 이름이라 말은.
이름이라 말은 그 사람 그 사람 이름이 유명하다. 이름이 유명하다 말은 그 사람의 이력이 유명하다 그말이오. 아, 아무것이 그 이름 그놈. 그 이름을 보고 그 아주 그 이름 나쁜 놈이다 이라는 것은 그 이름이 나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행위가 나빳더라 그거요.
그런고로, 내 이름으로 말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그 안에 내포해 가지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큰 공로가 이와 같이 설정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거부할 법이 없오. 거부할 법이 없고 거부할 권세가 없어. 거부할 조건이 없어.
허락을 안해 줄 수가 없어. 전부 완비인데 완비이고 구비인데 어떻게 거부를 하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다 이래 놨는고로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또 시행하는 그 분이 구하는 것을 구하는 것을 구할 만한 권세가 있고 구할 만한 조건이 있고 구할 만한 자격이 있고 구할 만한 무슨 구비가 있어야 되는데 뭘 가지고 구해? 주님의 이름으로 구하기 때문에 그게 다 됐습니다. 구할 때는 이제 당신 혼자 하요. 우리가 못한 거 당신이 대신해서 다 구비 해 놓으시고 이제 그 공로를 힘입어서 구할 때에는 이거 완전 구함이거든, 완전 구함이기 때문에 이 구함에 대해서는 불웅할 수가 없어. 이 구함에 대해서는 거부 할 수가 없어.
완전 구함인데 어떻게 거부하겠습니까? 마땅히 해야 될 터인데.
어떤 사람이 파는 상점에 가 가지고서 돈 가지고서 백 원짜리를 돈 백 원을 주면서 달라 하면 그 사람에게 안 팔 권리가 있어? 안 팔 권리가 있습니까? 혹 원수의 나라에서 오면 몰라도 그 국민이면 다 살 수가 있다 그 말이오.
피조물이면 예수님의 공로를 가지시면 다 얻을 수 있는데 이렇게 하나님 앞에 우리가 구할 수 있는 자격과 모든 그 자본 모든 구비를 다 베풀어 놓으신 이 구비를 이용해 가지고 이 구비를 힘입어서 구해라. 구하면 내나 당신이 이 구비를 다 해놓으시고 구하라고 하시고 구하라고 하실 때에 당신이 또 이루십니다. 당신이 이루시오.
이러니까, 뭐 입니까? 우리에게 당신의 이 사랑과 공로를 인식시키는 것과 그 공로를 힘입게 하는 것과 그 공로를 힘입을 때 당신의 모든 것을 주고저 하시는 이 주고짐에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시기 때문에 못 믿을게 뭐입니까? 이 사실을 알고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못 믿겠거든 모든 되어지는 일을 보아서 믿으라' 누가 창조주가 아니면 어떻게 죽은 자를 살리며 또 모든 것을 할 건가? 하는 일이 초자연의 능력으로 하는 그것을 보면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지 않느냐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와도 이 하나님 이 우리와 같이 하셔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을 우리가 보지마는 그저 완패해서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보고는 그만 집어던져 버리고 보고는 잊어버리고 그라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내가 오늘 좀 봤는데 지난번에는 대구에서 백 칠십 몇 종류의 병이 나았는데 요번에는 여기 보니까 백 구십 삼 명이 병이 나아 백 구십 삼 명이면 뭐 변의 종류는 몇 가지나 되는지 모릅니다. 요 이름이 다 기록 돼 있습니다. 마지막에 서부 교회 교인이 맨 마지막의 사람이네요.
그런데. 내가 이름은 뒤에 말하든지 하고 지금 말하지 않습니다. 그 자궁암을 복음 병원에 가서 수술을 했습니다. 복음 병원에서 수술을 했는데 뭐 수술하니 됩니까? 수술 처음에 하자 나중에 가서 도졌다 말이오. 도져 가지고서 내가 마침 그때 올라갔어. 올라가니까 이제는 뭐 다시 재수술을 해야 되는데 재수술을 하면 살란가 말란가 모르고 또 돈도 이 자식들에게 거둬 가지고 이거 다 들고 이라니까 '이거 뭐 어째야 됩니까?' 이제 이라면서 그 모두가 '아. 그래도 수술을 해야지' 이라는데, 내가 그때 거석해 보고서 '그 본인은 어때?' 이라니까 '어짜면 좋을지 저도 뭐 이 수술하면 뭐하노? 처음에도 또 안 됐는데 또 이제 악화된 거 하면 뭐 하겠느냐?' 이래서 '그저 앞으로 거창 집회가 있으니까 회개하고 병은 전부 병은 죄때문에 나왔고 또 그 죄 회개하고 주님이 기뻐하시면 다 낫아. 그러니까 주님에게 구하고 아야 그거 하지 말고 그래라.' 하니까 내가 그래 말해 놓고 말하며 슬슬 이래 말해 보니까 이게 믿음이 있나 없나 내가 이래 보니까 확신을 딱 가져요. 딱 가집니다. '에, 이제 작정했습니다. 이제는 내가 하나님이 낮아 주시는지 안 낮아 주시는지 그건 당신에게 맡겨 버리고 이제 수술 안 합니다. 안 하고 단정했습니다.' 이라면서 떡 내가 서서 있는데 길 가인데 '기도 좀 해 주십시오' 그래 기도하자고, 기도할 용기가 난다 말이요. 기도를 했다 말입니다. 했는데 여기 보니까 거창 집회 가서가 아니고 거창 집회 갈 준비 하는데 그만 확 낮았어. 내가 저 먼저 보니까 얼굴이 좋아요.
그런데. 고것도 하나 생각해야 됩니다. '아, 병 나았다가 그만 또 도진다.' 그런 소리 하면 안 돼요. 삼십 팔 년된 병자가 나았을 때에 요한복음 5장 14절에.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삼십 팔 년 된 병자가 나은 그 사람입니다.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 암만 낮아도 성한 사람도 죄 지으니까 병들었는데 병든 그게 또 회개하니까 하나님이 또 낮아 주시고 이랬는데 또 죄 지으면 의례히 더 큰 병 들 것 아니겠습니까? 이래 가지고 다 그런 것입니다.
이거 우리는 하나님이 이렇게 자기에게, 아, 내게 와 가지고서 여기 무슨 가시가 하나 여기 들었는데 가시가 하나 들었는데 이 가시가 들어서 지금 앓고 있는데 그 서울에 있는 ○ 대통령이 백 목사 손에 가시 들었다 소리 듣고서 당장에 비행기를 타고 내려와 가지고서 그 쪽집게를 가지고 가시를 요래 쏙 잡아 빼줬으면은 자, 가시 뺀게 큽니까, 그 아픈 거 나은게 큽니까, 그 대통령이 백 목사 손에 가시 들었다고 비행기 타고 내려와 가지고서 역부러 가시 빼 주고 간 그게 큰 겁니까? 어느 게 가시 뺀게 큽니까? 그 크신 분이 와 가지고서 이렇게 가시 빼 주고 이랬으니까 그게 큽니까? 자, 어느 게 큽니까? 가시 든 게 크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보십시오. 하나도 없지. 그분이 와서 빼 줬다면 얼마나 큽니까? 이렇게 크신 분이 우리가 측량 못할 이 크신 분이 이렇게 크신 분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서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이렇게 하나의 표적이라 믿지 않기 때문에 '이렇다, 내가 너와 함께 간다. 너거 집회에 너거 거창 집회에 하나님 내가 같이 있다, 대구 집회에 같이 있다. 또 이 서부 교회에도 같이 있다, 네가 기도하는 네 기도 소리를 내가 듣고 이제 이 네 기도를 들었다 또 네가 모시고 있는 그 너거 목사가 또 기도할 때 그 목사의 기도를 들었다. 이 증거 아닙니까? 이만하면 벌써 작년에도 백 칠십 몇 가지라. 올해는 보니까 사람 수로 백 구십 삼 명이라. 거창에서 백 구십 삼 명.
이런데, 그 교역자에게 따라서 교역자가 하나님의 표적을 바라지도 안하고 '뭐 표적이 지금도 있을까니' 하는 그 교회는 나음이 없거든. 별로 없다 그거요.
믿는 대로 되리라. 조그만한 교회 어떤 교회 있어요. 조그만 한 교회 있는데, 그 교회는 어찌 그리 병자도 많았는지 병든 사람이 가 가지고서 한 사람도 안 남고 쏵 다 낮아 버렸어. 다 낫았다고 좋아서 전부 한 무더기 왔어. 여기 서부 교회까지 왔어. 와 가지고서 금요일날 왔던가 와 가지고서 가도 안 하고 그래 토요일날 또 심방하는 거 모두 다 이거 보고 주일 새고 또 월요일날 갔는데.
왔는데 보니까 막 기쁨이 충만해. 이 크신 분이 내게 착수했다, 이 크신 분이 우리 주님이시다. 이 크신 분이 주님이신 것을 믿으니까 그 기쁨이 충만할 것 아닙니까? 온 천하가 그분 것이니까 문제가 뭐이겠습니까? 믿는 데서 일이 됩니다. 주님은 믿음을 원 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이 이렇게 큰 내용이 있기 때문에 이는 참 측량 못 할 든든한 그 구비요 배경이 든든합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하나님에게 욕이 될 것은 구하지 못하지마는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영광 될 것은 뭐이든지 다 구할 수는 있습니다. 구하면 다 주십니다. 하나님이 욕 될 거는 구하면 안 됩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이 이루어 줘서 하나님이 욕 얻어 먹고 모든 사람에게 욕을 들리고 또 우리 구원에 해될 거는 아니지만 가치적으로 옳고 바르고 참되고 복될 거는 구하면 다 주십니다. 이러니까 이 믿음을 가지고 우리가 구합시다. 그저 믿고 구해요.
우리가 첫째는 이 신구약 성경 도리를 바로 깨닫도록 해달라 해야 되겠습니다.
바로 깨달아. 왜? 바로 깨달아야 성경을 바로 깨달으면 주님의 대속을 바로 깨닫고 하나님을 바로 깨닫고 모든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서 다 가르쳐 줬기 때문세 바로 깨닫고, 또 그래서 또 영감을 우리가 받도록 영감의 충만 달라고 또 기도하고, 또 영감에 대해서 순종하고 소멸하지 일도록 기도하고 진리와 영감이 하나님의 대속을 똑똑히 알려 달라고 기도하고, 성령의 역사가 뭐하러 왔습니까? 성령의 역사는 성령은 예수님의 대속을 우리에게 알려 줄라고 성령이 오셨습니다. 신구약 성경이 뭐 하려고 우리에게 왔습니까? 예수님의 대속을 우리에게 알려 줄라고 그래 신구약 성경이 왔습니다. 그래서 성령님과 이 신구약 육십 육 권은 예수님의 대속을 위해서 그거 위해서 수종들라고 왔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보혜사 성신이 오시면 내것을 가지고 너희들이 증거하리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첫째는 성경을 알아야 되겠고 영감을 받아야 되겠고 그래야 주님의 대속을 알아야 알겠고 대속을 알고 난 다음에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순종하고 그분을 높이 섬기고 이라면 다 됩니다.
그래 가지고 오만 걸 다 기도해요 미리. 다른 사람은 지금 춤추고 놀고 있지마는 앞으로 우리가 이 큰 구원을 시험하실 때 '구원을 내 놓을래 세상을 내 놓을래. 구원을 내놓을래 네 생명을 내놓을래.' 할 때는 우리가 준비를 안 해 놓으면 그만 죽기가 두려워서 구원 내 주기 쉽습니다. 예수님 내 주기 쉬워요.
왜정 때에도 그런 사람 많았습니다. 그때에 천 명 가운데에 한 명도 안 되었어.
천 명 가운데에 이긴 사람이 한 명꼴도 안 돼요. 천부지 일도 안 됐어요. 다 내줬어요. 이러니까 이걸 미리 다 기도해야지.
주님이여, 장기간의 고문과 고형 뭐 이런 거 생각하면 이런 고문 저런 고형 또 코에다가 잿물 들이는 거. 또 꺼풀 벗기는 거. 또 눈 빼는 거, 또 그 독약을 먹이는 거. 주사를 놓는 거, 뭣이든지 어떤 거 하면은 아, 그걸 생각할 때에 참 떨리요, '그 어떻게 인간이 견뎌낼 수 있나?' 이런데 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 말이오. 왜? 뭐 있습니까? 자. 그렇츰 눈을 빼고 가죽을 벗기고 그게 뭐이냐? 이미 죽는 몸뚱이 가지고서 주님을 사랑 하되 고렇게 사랑하고 주를 위해서 그랬으니까 영원 무궁세계의 상급이 크거든. 이러니까 우리에게 좋게 하는 거지 나쁘게 하는 거 아니라 말이오.
이제 그렇츰 좋은 줄 알지마는 그게 항상 걱정이 안 됩니까? 걱정이 되는데 우리가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니' 했으니까 '주님이여 독약을 먹이고 주사를 맞치고 뭐 어떻게 고문과 고형을 한다 할지라도 고문과 고형한다 할지라도 견디고 남음이 있는 능력을 주옵소서. 견디고 남음이 있는 능력을 주옵소서. 또 그때에 기쁘고 즐거움의 능력을 주옵소서. 그때에 주님만 사랑하고 주님만 높이고 주님에게 복종하고 하늘나라의 구원을 인해서 감사와 기쁨이 넘쳐서 스데반 얼굴과 같이 내 얼굴에 기쁨과 광채가 나도록 해주옵소서. 그들이 내 얼굴에 광채가 나니까 이놈 낯반데기 좀 찡그리도록 하려고서 오만 고문과 고형에도 숨이 끊어질 때까지도 기쁨이 충만하고 강하고 담대해서 조금도 요동치 않는 인내를 주옵소서.' 이래 기도하면 된다 말이오. 기도하면 들어 준다고 안 했습니까?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다 시행한다는 것은 당신에게 내가 기도했으니 내가 있으니 시험하는 첫 당신이 알 터이니까 이제 그때에 이길 수 있는 그 인내와 능력은 당신 모가치라. 당신 할 일이라, 당신이 실수 안 해요.
또. '너희들이 악한 자의 얼굴을 보고 두려워하지 말아라. 악한 자의 그 말을 듣고 두려워하지 말아라.' 기록돼 있습니다. 또 악한 자들이 이렇게 고문한다 저렇게 고문한다 하면서 이렇게 고문 고형 하려고 벌써 설비를 떡 할 때 보고 그만 기압하기 쉽다 말이오. 설비야 뭐 어떤 설비를 하든지 뭘 하든지 그때에 '주님이여 내가 주를 믿는 믿음이 강하게 해 주소서. 강하고 담대하고 기쁘고 즐겁고 평안하게 해 주옵소서. 그때에 내 기쁨의 안면이 넘치기를 스데반처럼 넘쳐서 모두 듣고 보고 접촉하는 사람에게 그 빛이 되고서 아주 덕이 되고 그 광채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때에 두려워하지 안하고 강하고 담대한 평강의 충만을 주시고 기쁨과 희망의 안면을 주시옵소서.' 이것도 기도하면 된다 말이오. '주여 이거 주시옵소서.' 이러니까, 아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요 성구 하나 가지고 해결 다 돼 버렸어. 해결 다 됐어. 믿어요! 믿으면 돼요. 이러니까, 이제 '아, 주님의 뜻대로 하기는 하지마는 세상에서 역사에 제일 견디기 어려운 제일 견디기 어려운 시험 오고 견디기 어려운 시험도 주님이 이기고 남을 수 있는 그런 은혜를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그라면 돼요.
이러니까 그런 기도 할 때에는 자꾸 많이 기도하고는 힘이 드니까 한 마디 하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자꾸만 딱딱 그만 단냥 단냥 간단하게 조지돼 버려요. 간단하게 딱딱 그만 이 결말을 지우라 말이오. 지워 버려요.
그래서, 우리는 참 이렇게 큰 언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큰 언권을 가지고 있고 최고 회담은 이게 최고 회담이요. 뭐 무슨 소련이니 뭐 미국이니 하는데 그 사람들이 한 거는 최고가 아니요, 최고는 자존자가 최고야. 자존자하고 그 아들하고 이렇게 만나서 회담하면 최고 회담이라. 이게 정상 회담이라. 이 정상 회담에서 요한 계시 8장에 정상 회담에서 금생에 있는 모든 이 우주에 되는 일, 최고 회담 그 정상 회담에서 이게 다 건정 되어지고 또 무궁한 하늘나라에서 무궁한 하늘나라에서 모든 존재들이 다 행복되게 살 수 있는 그것이 정상 회담에서 밝혀질텐데.
이러니까, 가니까 '하이구 우리에게 이렇게 이 평강과 행복을 주셔서' '내가 언제 줬습니까?' 우리는 그랄 거라. '언제 했습니까?' 이러면 성령이 있다가서 '아' 네가 주의 이름으로 이렇게 내세의 모든 만물들의 충만을 기도하지 안했나? 그 기도대로 다 시행된 거 아니가? 기도대오 시행 된 거 아니가?' 또, 그때에 우리가 금단의 금단의 좌우가 우리에게 있어. 금단은 제단을 말하는 건데 제단이라 하는 것은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문제들이 다 완화되고 문제 해결이 돼서 창조와 피조물이 원수된 그 원수도 그 피조물이 제단을 통해서 다 화목이 돼서 친목이 된 이것이 제단입니다. 이게 제단이오. 이러니까 그 무궁세계의 제단의 모든 역사를 오늘 성도들이 기도하는 이 기도로 다 돼요.
기도가 뭐 입니까? 이것이 정상 회담이지. 이런 권세를 우리가 가졌습니다.
참 깨달으면 그저 좋아서 좀 조절 안 한 사람은 미쳤다 한 만치 뛰고 굴리고 한 수가 있지. 뛰고 굴리고 하나 다른 사람은 모르니까 미쳤다 한 터이니까 안 그라고 이거, 억제하기는 억제하지만 참말로 생각해 보면 기쁩니다. 생각해 보면 기쁘고 즐겁고 참 평안하고 이보다 더 이상 뭐 더 요구할 것이 뭐이냐? 더 구할 것이 아무것도 없어. 이 이상 구할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내가 시행하리라' 믿읍시다. 믿어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