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구비 요소

 

1986. 10. 8. 수밤

 

본문:누가복음 18장 1절∼8절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니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이 비유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와 또 과부와 불의한 재판관과의 관계를 비교해서 우리에게 기도에 대한 것을 가르쳐 주신 말씀입니다.

그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와의 관계가 어떠하였는데 무엇을 가지고 과부의 소원이 달성됐는가 하는 것을 비유하셔 가지고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어떤가, 그러면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와의 그 관계에서 그 소원이 달성되었으니 하물며 독생자도 아끼지 안하고 주시고 또 생명까지 바쳐 주신 그 사랑의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그와 어떤 차질이 있는, 차이가 있는 관계인가? 그러니 그러한 관계에서도 부절히 계속해서 열심히 간구하는 그 간구가 마침내 소원을 달성하였거든 하물며 하나님과 우리와의 그 관계에서 열심히 기도하는 그 기도가 얼마나 힘있게 정확하게 이루어지겠느냐 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비유입니다. 그외에도 여러가지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이 과부가 누구에게나따나 그렇게 구하지 안하고 자기를 맡은, 자기를 책임진 법관에게 고했습니다. 불의한 법관이지마는 그 법관은 자기 관내에 있는 그 백성들의 그 모든 불공평하고 잘못된 그런 일을 책임지고 그것을 바로잡아야 되는 의무와 책임을 가진 것이 그 법관입니다.

여게서 기도라는 것은 자기가 할 수 없는 것을 대신 해 줄 수 있는 그런 실력 있는 자에게 구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자기가 힘이 없어 못 할, 자기 힘으로 할 수 없는 자기 힘에 넘은 벅찬 그런 것을 능히 해 줄 수 있는 그에게 구하는 것이 기도라 하는 것을 여게 하나 가르칩니다.

또 이 과부의 그 모든 자기 힘으로 할 수 없는 그 어려움, 또 억울함이든지 뭐 힘이 들어 못할 일이든지 어떤 일이든지 그것을 법관에게 구했는데 법관은 자기가 아무리 불의한 법관이라 할지라도 자기 관할내에 있는 그 백성들이라면 그것을 이 법관이 책임 맡고 있기 때문에 해 줘야만 되는 그런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는 언제든지 자기 힘으로 할 수 없는 그런 것을 하나님에게 구합니다. 그러면 어느 정도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고 할 수 없는 일인가? 어떤 사람은 크고 작은 모든 일에 대해서 지극히 작은 일도 자기는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크고 작은 것을 다 주님에게 구합니다. 구하는 것을 이 법관이 해 줘야 할 의무가 있는 거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가 계약을 하고 우리의 계약의 상대자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힘이 모자라서 못 하는 것을 구할 때에 하나님은 해 주실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법적 의무와 책임이 있고 계약적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과부가 법관에게 할 때는 그 법관이 이 과부에 대해서 무슨 인격 상대가 돼서 상대방의 그 권위를 인정하는 그런 것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또 이 과부에 대해서 사정이 그러니까 어렵겠다 하는 그런 동정심도 하나도 없었습니다.

또 자기가 책임진 법관이기 때문에 자기 의무와 책임이 있는데 뭐 의무감도 책임감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또 무슨 불쌍한 사람이 와서 말하니까 동정하는 마음이나 그런 것도 하나도 없었습니다.

동정도 없었고, 의무와 책임감도 없었고, 또 뭐 거게 대해서 좀 자기가 후대를 하고 뭣을 이렇게 해 줄 그런 아무 생각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다만 괴롭게 하는 그것만 귀찮은 것뿐이었습니다.

이랬지마는 늘 계속해서 와서 간청을 하니까 이 불의한 법관이 들어 주는 것은 의무감에서, 책임감에서, 상대방을 동정하는 감에서, 자기 무슨 정의감에서, 공의감에서, 또 자기의 무슨 인자심에서 그런 것도 아무것도 없고 다만 계속 와서 간구하니까 괴로워서 들어 줬습니다, 괴로워서.

이러니까, 이 법관은 순전히 아무걸로써도 그 과부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안했고 과부의 부절히 와서 그 법관에게 간구하는 그 간구가 무슨 마음을 일으켜 그런 것도 아니고 귀찮아서, 아주 귀찮아서 ‘이거 내 안 들어주면 이거 늘 와서 하기 때문에 귀찮아 안 되겠다’ 그렇게, 그 무슨 인간적인 그런 면에 조그만치라도 좋은 요소로 가지고 된 것 아니고 순전히 과부가 법관에게 와 가지고 계속적으로 간청하는 그 간청을 못 이겨서 못 견뎌서, 간청에 못 견뎌서 계속 간청하는 꼭 그것 때문에만 들어줬습니다. 계속 간청하는 그것 때문에만 들어줬다 하는 것을 여게서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1절에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가라사대” 했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신 것이니까 우리는 그 과부와 불의한 법관과의 그 관계에 비하면은 우리는 정반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동정하시고, 또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주시겠다고 약속도 하시고, 우리의 모든 불행을 벗기고 행복을 주실라고 하시는 그런 마음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러니까, 불의한 법관과 이 과부 사이에도 아무것도 그 원한 들어 준 데에 힘이 되지를 안했고 무슨 이유가 되지 안했고 다만 쉬지 안하고 계속 간청하는 고거 하나만 힘이 되고 고거 하나만 이유가 돼 가지고 그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그것을 우리에게 여게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그런 것을 하나님 앞에 구하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진리에 당연한 일입니다. 자기 깨달음에 따라서 지극히 작은 것도 하나님이 안 해 주시면 안 된다는 건, 머리털 하나 흔드는 것도 하나님이 해 주시지 안하면 안 된다는 것으로 깨달은 사람들은 그런 것까지 다 간구하겠습니다. 실은 바로 깨달은 신앙은 그게 바로 깨달은 신앙입니다.

어쨌든지 여게서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 앞에 구해야 된다 하는 그것을 여게 보여 주는 것이 뚜렷합니다. 이 과부는 제게 힘 하나도 없습니다.

없는데 자기에게 그 어려운 난제 있는 것을 제 힘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법관에게 가서 말해 가지고 계속적으로, 뭐 동정이나 그런 이유 아무것도 없고 그저 열심히 계속으로 간청하는 그 하나 가지고 이 일을 달성해 냈습니다.

이러니까, 이 비유에서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에게 구하는 것이 그게 정칙이고, 또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과부와 불의의 법관과의 관계보다 그걸 뭐 천배 만배 낫다고 그래 말할 게 아니라 그만 정반대입니다.

그 관계는 아주 동정해 주는 게 아니라 아주 파괴하는 정반대인 그런 관계를 가졌고, 우리는 하나님이 해 주실라 하는 그런 관계를 가졌고, 그러면 우리 관계는 아주 좋은 관계고 거게는 아주 악조건의 나쁜 관계입니다. 악조건의 나쁜 관계도 열심은 뚫어냈다. 하물며 우리와 같은 좋은 관계에서 열심은 얼마나 쉽게 뚫어낼 수가 있겠느냐 하는 그것을 우리에게 여게 말씀해 주십니다.

그런데, 기도라 하는 것은 마치 저울을 다는 거와 마찬가지로 그 중량이 비교되는 비중적인 것이 기도입니다. 요새 뭐 앉은뱅이 저울인가 이거는 잘 봐야 여러분들도 잘 모르고 우리도 잘 모르지마는 이거 기단하이 저울대 대 가지고 추 달아서 하는 그거는 그만 이 가운데 이래 놓고 양쪽에 놓고 이쪽이 무거우면 이게 들리고 이게 무거우면 이게 들리고 이렇습니다. 중량에 따라서 이런 건데.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기도는 그러합니다. 우리 기도가 자기가 간구하는 그 문제, 간구하는 그 문제의 뭉텅이와 자기라는 그 간구하는, 자기가 간구하는 자기를 바쳐서 간구하는 것과 이 중량이 비교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자기 간구하는 그 문제가 크면, 중요하면 중요한 것만치 자기는 중요해야 그게 들려 올라오지 하나님 앞에 간구할 그 문제의 그 어려운 문제는 백 근쯤 되는데 자기는 하나님에게 바쳐 기도하는 것을 한 구십아홉 근쯤 들여 가지고 기도합니다. 기도하면은 백 근이 들려올라옵니까 안 올라옵니까? 올라오겠습니까 안 올라오겠습니까? 안 올라옵니다.

그러면, 만일 백 근 어려운 중요한 문제를 내가 백 근 간곡한 내 심신의 간절을 기울여 가지고 백 근을 기울여 가지고 달면 기도하는 그 간곡한 문제가 들려올라오겠습니까 안 올라오겠습니까? 자, 백 근을 백 근으로 들면 들려올라옵니까 안 올라옵니까? 들려온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들려올라와요? 여게 백 근이면 백 근 달면 들려올라와요? 들려올라옵니까? 안 들려올라옵니다.

구십아홉 근을 갖다 대면 어떻겠소? 구십아홉 근을 달면 휙 올라가버립니다. 이거 안 들려올라옵니다. 만일 백 한 근을 놓으면은 이게 들려올라옵니까 안 올라옵니까? 들려올라옵니다. 이게 들려올라와요. 꼭 이와같이 자기가 기도하는 문제의 중량에 따라서 자기가 바치는 그 간절함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구하는 그 사실이 얼마나 귀중하냐, 얼마나 자기에게 문제가 되는 것이냐, 중요한 문제냐 하는 그것을 똑똑히 모르는 사람은 거게 대해서 바칠 만한 그 심신의 정력을 성의를 기울여 가지고 기도할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도하는 데는 먼저 자기가 기도하는 그 제목에 대한 귀중성, 중요성, 중량성부터 먼저 느껴야 기도가 되지 그거 느끼지 안하면 기도가 안 됩니다. 원한이라 하는 것은 그것은 그만 자기가 그것을 하지 안하면 자기가 절단나고 자기와 그 문제와 이 중량이 비교될 때에, 만일 이게 이루어지지 안하면 자기는 절단난다 하는 것이니까 자기 있는 대로를 다 바쳐 쓰고 자기 있는 대로를 다 바쳐서 간절한 호소를 했습니다. 이라니까 이 문제가 뻐뜩 들려올라와 가지고 해결이 됐습니다.

예수님도 갯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한번 가 기도해도 응답이 안 와, 두 번 가 기도해도 응답이 안 와, 그 세번째 갈 때에는 육체가 약하다고 이래 기도해서 천사를 보내 가지고 천사의 도우심으로써, 이제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그 중대한 과제를 두고서 기도할 때에 자기 중량을 다 보태도 안 되니까 천사의 도움을 받아 가지고 보태서 그래 가지고 간구할 때에 비로소 그 문제가 들려올라왔습니다.

그래서, 자기 육체의 힘만 가지고 안 되고 아버지가 천사를 보내 가지고 예수님의 그 육체의 힘을 도와 가지고 좀 보충해 보강해 가지고 간구하니까 그 문제가 들려올라왔습니다. 그래서, 세번째는 가 가지고 문제가 들려올라와서 해결이 됐기 때문에 다시 와 가지고 “이제는 자고 쉬라. 됐다. 이제는 이 문제가 들려올라왔다. 이 문제가 해결됐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뭣이든지 기도하는 것은 기도하는 그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중요성의 정확성을 자기가 알고 그 중량보다 무거운, 자기를 더, 그 중량보다 더 무겁게, 자기를 더 무겁게 바치면 그 기도는 속히 이루어집니다. 또 그 중량보다 자기는, 중량은 백 근쯤, 문제는 백 근쯤 되는데 자기는 한 근쯤 바쳐서 기도하면은 그 기도가 이루어집니까 안 이루어집니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 모두 다 실패합니다.

그 어떤 사람은 왜 기도하면 기도가 달칵달칵 다 이루어지는가 하면은 그 사람은 그만 아예 한 근에도, 한 근쯤 되는 일도 이렇게 기도할 때에는 자기 전부를 다합니다. 한 근에도 다, 한 근에다, 자기가 만일 천 근쯤 되는데 한 근 기도 문제에다가 자기를 다하니까 이게 들려올라옵니까 어떻습니까? 들려올라옵니까 안 들려올라옵니까? 예? ○○○씨? 어떻게 들려올라오지? 풀떡 들리지. 툭 뛰어버. 뭐 턱 갖다 놓으니까 이거 그만 툭 튀어서 공중으로 뛰어올라가 버립니다.

이렇게 기도의 생활에서 자기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자기를 다해 가지고 기도하는 사람은 뭐 뭣이든지 자기에게 해당된 거는 다 올라오되 빨리빨리 대깍대깍 놀랄 만치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또 이제는 자기와 하나님과의 이제는 또 비중이 됩니다. 그래 기도하면 자기와 하나님과의 비중이 되는데 하나님은 크신 하나님 아니요? 우리는 아주 그거는 뭐 우리로 말하면은 이 먼지같은 존재 아닙니까? 이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꼭 일대일로 상대해 주십니다.

이래서, 내가 백분지 일을 들여서 그 일을 하면 하나님께서도 당신의 백분지 일을 들여서 그 일에 역사하십니다. 내가 백의 오십을 들여서 기도든지 무슨 일이든지 들여 가지고 그 일 하면은 하나님께서도 당신의 전부의 오십을 기울여 주십니다.

내가 백의 백을 다 기울이면 하나님도 내게 대해서 그 백의 백을 다 기울여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약해 놓으신 계약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기도하다가 안 되거든 이것은 기도에 대한 기도 제목의 그 중요성을 내가 느끼지 못하는 데에서 이게 안 된다. 또 중요성을 느낀다 할지라도 중요성을 느끼면 느끼는 것만치 나를 바쳐 기도해야 될 터인데 나를 바치지 않기 때문에 안 된다. 고장이 거게 있습니다. 그러면 그 비중을 답니다.

또 내가 하나님에게 대해서 이 일을 해 달라고 지금 하나님에게 간구하는데 내가 백분지 일을 기울이면은 하나님도 백분지 일을 기울여서 협동해 주시고, 백분지 오십을 기울이면 백분지 오십을 기울여서 일을 해 주시고, 백의 백을 기울이면 당신이 백의 백을 다 기울여서 일해 주시는데 내가 하나님에게 바치지 안하면 하나님께서도 바치지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신앙 생활 할 때에 내것을 남겨 놓고 신앙 생활 하면 하나님도 남겨 놓고 하십니다.또 내것을 다하면 하나님도 다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이건 다 비중이라. 이러기 때문에 나 다하면 하나님 다하고, 하나님 다하면 나 다하고, 또 우리가 모든 어떤 문제든지, 문제든지 거게 대해서 그 비중성, 중요성, 가치성을 정확히 알고 거게 대해서 정당한 자기의 바침이 있어야 그게 이루어지지 그 바침이 없으면 안 이루어집니다.

이러기 때문에, 모든 우리 신앙 생활에서는 오판에서 실패하고, 오산에서 실패하고, 미달에서 실패하고, 또 치우쳐서 실패하고 그렇게 실패합니다.

오늘 제가 산에서는 늘 이 설교를 할라고 하지를 안했었습니다. 안 하고 어떻게 좀 주님을 경외하고 싶은 그 마음이 많아서 주님을 좀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서 주님을 좀 사랑했으면 좋겠다 이래서 주님을 사랑하는 데 대해서 설교를 할라고 산에서 아가서를 읽다가 내려왔습니다.

내려왔는데 중간에 오다가 하나 생각이 나기를, 우리가 지금, 오늘 아침에 ‘기도합시다’ 하는 그걸 광고할라 했는데 그만 광고를 안 했습니다. 안 해서 ‘오늘 저녁에는 부득이 여기 대해서 설교도 하고 또 광고를 해야 되겠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구하는 데는 우리가 꾸준히 열심히 구해야 되지 과부의 기도와 불의한 법관 사이의 이 기도는 보니까 이것도 저것도 된 것이 조건은 아무것도 없고, 아무 조건 없고 전부 다 불리 조건뿐이고 다 아닌데 그저 열심 고거 하나 가지고 통과했다, 열심 고거 가지고 통과했다, 이러니까 우리가, 우리가 할 수 없는 이 문제가 있으니까 이 문제에 대해서 기도해야 되겠는데 이 기도에 대해서는 우리가 열심히 하는 이거 하나 가지고 통과하지 이거 아니면 안 되겠다 그것을 나에게 알려 줘서 아마 증거할 만한 가치가 있고 증거를 해야 되겠다 해서 오늘 저녁에 이 말씀을 증거를 합니다.

그것은 과거에 여게 지하철 한다 할 때에 그뭐 쇠기둥 박는 거게 대해서 우리가 걱정을 하고 참 얼마 동안 잠을 못 자고 또 우리가 ○○○집사님을 좀 세워서 ‘우리가 다 여기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으니까 기다리고 있으면서 좀 할 수 있는 데까지 좀 해서 서로 잘 의논해 가지고 아무 피해가 없도록 그리 해라’ 이래서 참 맡아 가지고 하면서 뭐 시에서도 나오고 또 그 사람들이 나중에 여기 대학의 공과 뭐 교수인가 어떤 그런 교수들을, 그 교수들이 말하면 다 와서 잘 알 수 있고 판단하면 권위가 있기 때문에 와 가지고, 여게 와 가지고 그런 시비까지 나고 이래 가지고 여기 보고서, 이 건물을 보고서 그 사람들이 말하기를 ‘어떤 놈이 이런 건축 허가를 내 줬노?’ 이라면서 욕 그래 하고, 이런 놈을 그냥 냅두면 안 된다고 이 말까지 하고, 그때는 우리가 좀 거게 대해서 참 간구하는 간구가 과부의 간구처럼 그 중요성을 느껴서 그렇게 했었습니다.

했는데, 요새는 그만 시시합니다. 시시한데, 그때는 울리면 이 장보가 사그릇 한가지기 때문에, 사그릇은 말이요, 꿀밤만한 돌 요거 가지고서 독을 깹니다. 자꾸 이래 울리면, 생생한 독도 자꾸 울리면 조그매 틈이 고게 차차 틈이 나 가지고 마지막에는 갈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똑 옹기 그릇 한가지니까 이 울리면 이거 절단난다 이래 그걸 두려워했지마는, 그때 우리가 말한 대로 지금은 그게 아니고 저 파기를 우리 저 별관, 우리 별관에서 말하면 거게가 아마 한 두 발 되는가 세 발 되는가? 한 두서너 발 됩니까? 사 메타면 한 두 발 너머 될세. 여섯 자짜리 키를 말하면 한 두 발 되는구만. 그만밖에 안 돼요. 그 아주 그래 가깝습니다.

가까운데, 얼마나 파느냐 하면은 저 별관만치 파들어 갑니다, 땅에서. 꼭 별관 높이 거게서 두부모 자르듯이 팍 잘라 가지고 내려갑니다. 팍 잘라 가지고 내려가는데 그것 때문에 물 날 때는 안 하도록 하자 이래 가지고 장마철은 지나서 지금은 뭐 다 땅에 물이 거의 없는데 파는 데서 그렇게 물이 많이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두부모 자르듯이 저 오층만치 잘라서 지금 딱 내려갑니다.

내려가는데, 여기 쇠기둥을 탁 박아서 이래 박아 놓으니까 박을 때에는 울리는 것뿐이지 박아놓은 그거는 더 쐐기를 쳤으니까 땅이 야물어졌지 염려는 없습니다.

이라면서 위에서 파면서 이 쇠기둥과 쇠기둥 사이에 나무를 끼워내리는데 총총 자꾸 그걸 자꾸 그것을 조금 파고 또 끼우고 끼우고 하면은 그 있는 흙이 밀려내려올 리가 없다 말입니다. 그러면 안전 공사가 됩니다.

이런데, 그걸 그래 하는 데에서 안전 공사가 돼지고 그 나무를 저거 파는 대로 실컷 파고 난 다음에 거석하면 그 한 뭉텅이 떨어져 나가면 그 다음에 그거 비어 가지고 있으니까 그 다음에 또 한 뭉텅이 떨어지고 자꾸 이래 떨어지는데 그걸 더디 끼우는 그것이 문제고, 이런 것이 있는데, 이제 저 박아놓고 난 다음에 밖에다 공굴로 철근을 이래 대 가지고 똑 이 지하실 하듯이 옹벽을 이래 하고 옹벽하고 난 다음에는 그 쇠를 뽑아 올리고 거게다가 뭐 흙을 채우든지 모래를 채우든지 이래 채워서 이래 가지고 하니까 이게 지금 거게 채우지 안하니까 이 사람들이 지금은 이래도 얼마 가면 길가집 다 이거 다 기울어지고 허물어지고 이리 됩니다, 되기를.

그걸 그래 가지고 고 대충을 꼭꼭 고 뒤를 꼭꼭 채워 주면 이 문제가 없는데 잘 채우지 안하고 그만, 이 공사는 자기네들 하고 얼마 기한 하지마는 그만 회계 대고 난 다음에 얼마 보증은 있다 해도 그동안에 죽을란지 뭐인지, 뒤를 사람들이 안 봅니다. 우리 나라 사람은 뒤를 보지 안하고 자꾸 막살이 하기 때문에 이 공사가 자꾸 뒤에 흠점이 나지 않습니까? 이러니까, 이걸 그 사람들한테 암만 해 봐도 그렇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해서, 그저 나는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홍해 바다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서 역사하실 때에는 그 바다물은 이 흙보다 더 물렁물렁 안 합니까? 이런데 그것을 이거 뭐 아마 그거는 오십 척도 더 쌓아 올릴 거야. 오십 척도 더 이래 벽같이 이래 쌓아 올리도록 이라고 그 사이 사람이 건너갔으니까 흙 이거야 무너지지 안하도록 당신이 그때와 같이 해 주시면 이거는 문제가 없지마는 그리 안 하면 할 도리가 없어. 이래서 ‘아무래도 이거는 기도할 수밖에 없겠다’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느냐 하면은 저게서 쭉 금이 갔습니다. 금 간 그거는 처음에 우리가 이건가 저건가 했는데 그게 지하철 때문에 간 것이고 딴것 때문에 가지 안했어요. 지하철 때문에 갔습니다. 그건 틀림없이 뭐, 백의 백을, 백 프로 틀림 없습니다. 지하철 때문에 갔는데, 또 인제 이쪽에 거석하니까 물탱크가 있는데 물탱크 저쪽으로 새로 또 금이 갔습니다. 마당에 이 물탱크 저쪽으로 또 금이 가서 이러니까, 물탱크 앉아 있으니까 부득이 저쪽만 무너지니까 금이 가고 이쪽에는 금이 안 갔는데 이쪽에 또 금이 또 좀 갔습니다.

이러니까, 이거 이래 가지고, 그게 뭐 거기 좀 파는 게 아니라 오십여 척 저만치 탁 끊어내루니까 이게 무너지면 뭐, 무너지면 저리 넘어가지 안하고 자꾸 넘어가는 것만 우리는 생각하는데 실실 자꾸 이래 거석하면은 푹 주저앉아버릴 거라 말이오. 이래서 그 금이 자꾸 쪽쪽쪽하이 이래 가지고 금이 나가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여게 대해서 우리가 기도를 해서 하나님이 도와 주셔야 되고 건져 주셔야 되지 하나님이 뭐 해 주지 안하면 저거가 잘할라 하면은 잘하는 그런 뭐 하는 데에 차이는 있겠고, 또 우리는 노력할 대로 노력하지마는 우리가 그뭐 잘 압니까? 공사하는 걸 잘 모르지, 또 늘 기다리고 있을 수 없지, 또 ○○○집사님이 그걸 한다고 해도 그저 말로만 그래 하지 꼭 밤낮으로 지켜 있지 안하니까 말로 가지고 해 준다 하고 그 다음에 뭐 무슨 일 할지 모른다 그거요. 이러니까 이것은 우리가 기도밖에는 길이 없습니다.

이러니까 우리 힘이 없으니,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는데 우리는 할 수 없어.

그러니까 하나님에게 이 문제를 두고서 지하철 여기 다 이 앞에 공사가 다 끝나기까지 우리가 계속해서 기도를 해서 그때까지 저게 안 무너지면 다행이고.

오늘은 가 가지고 ‘이라면 사람을 지금 어디로 대피를 시켜야 되겠느냐 어째야 되겠느냐?’ 이라니까 아직까지 그럴 것은 뭐, 그럴까지는 염려가 없다고 그렇게 생각한다고. 자기들의 언제 그걸 어디든지 대피를 시킬라고 하면 거게 대해서 집도 얻어야 되지 이래 거석하니 당장 돈이 드니까 뭐 그 사람들 하는 말이지마는 그말은 그저 하기 좋은 말로 하는 것이고 쉬운 말로 하는 것이지 책임지고 하는 말이라고 볼 수 없거든. 이러니까, 그것도 책임을 지워봐야 저거가 책임질 힘이 없어요. 이러니까 부득이 이거는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밖에 없어서 어짜든지 오늘 또 이 설교를 하면서 우리가 기도하자 하는 것입니다.

끝나기까지 기도를 해서, 하나님의 능력이면 돼요. 두부모타리같이 이래 끊어내려 간더란대도 하나님은 그만 거기서 중단을 딱 시키면, 바다물을 보면은 이래 가지고 있습니다. 이 구부정하이 이래 가지고 있는데 이 물이 쭉 펴인다면 우리 부산이 물 속에 뭐 수십 길 속에 들어가 버립니다. 하나님이 거게 더 못 나오게 하니까 못 나오고 있는 것인데 그 모양으로 하나님이 이거 뭐 안전하게 이렇게 안보해 주신다면 문제가 없으니까 그분에게 기도할 수밖에 없어요.

또 우리가 할 수 없으니까 기도하면 당신이 또 좋아하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간구하면 당신은 간구할수록이 좋아하거든. 우리가 어려운 급한 일 가지고 호득거릴수록이 뭐 당신에게 또 와서 간구하겠다 해서 간구하면 또 좋아하신다 말이오. 그래서, 이 점을 어짜든지 기도하도록 그렇게 합시다.

그러고, 예배 마친 후에 요 삼층에서 잠깐 회의를 가지겠습니다. 여기 장로님들, 권사님들, 또 목사님들, 또 집사님들도 거게 대해서 좀 상식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은 우리가 다 뜻을 모아 가지고 그분들에게도 또 지혜적인 그런 협조를 해 가지고 이 일이 잘 되도록 이래야 되겠으니까 어데 가도 소문을 들어도 ‘아무데 공사는 무너졌단다, 거게는 이리 해서 됐단다.’ 그뭐 여러 사람이 들어 가지고 주 모아 놓으면 아마 좋은 길이 있으리라 그래서 저녁 못 자신 분들도 있지마는 예배 끝난 뒤에 저 삼층에서 거게 대해서 좀 뜻을 가지고 관심을 가지고 ‘내가 부족하지마는 가서 조금 참가해 가지고 어떻게 있다가 듣고 말하는 가운데에서 다문 얼마라도 마음이라도 다 협조하겠다’ 싶은 그런 마음 있는 분들은 뭐 누구든지 참석할 수 있습니다. 제직으로서는 다 참석할 수 있고 제직 아니라도 또 어떤 사람이라도 거게 대해서 거기 대한 좀 상식을 가진 분이 있으면 참석을 해 가지고 그렇게 이 안전도에 대해서 좀 도움이 되도록 그렇게 모두 협력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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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에 빠지지 말고 나오도록 합시다. 새벽기도 저아래 월요일날 아침에는 천 명이 조금 너머 나왔는데 어제 화요일날 아침에는 그래 나오지를 못하고 한 구백 좀 넘을까 이랬고, 오늘 아침에는 있는 사람이 한 천 명 넘어 되니까 양성원 학생들과 교역자들이 약 백 명 되니까 한 구백 명밖에 안 나왔습니다.

그러면, 주일날 우리가 작정하고 나서 월요일날 그만 낡아지고 화요일날 낡아지고 이랬으니까 또 오늘 저녁에 또 작정합시다. 작정하면 내일 아침에는 또 좀 많아 나올지 몰라요. 자꾸 이러구로 해 가지고 우리가 자꾸 뭘 해 나가고 또 구원을 이루어 나가고 성화돼 나갑니다.

이러니까, ‘뭐 그 작정 해 봤자 거. 그런 것, 또,’ 하고 그렇게 생각지 말고, 또 `작정해 놓고 못 나오면 도로 죄짓게 만든다’ 그런 그 망령된 소리일랑 하지 말고, 우리가 작정하고 못 하면 회개라도 하고 그리 안 하면 밥이라도 굶고 자꾸 이라면 고쳐져 나가지 않겠습니까? 자, 오늘 밤에 우리가 저 지하철 때문에 기도해야 된다 하는 그것은 여러분들이 다 알고 있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이 본관까지는 뭐 거게 대해서는 염려가 많이 되지는 않지 않느냐 이래도 뭐이 두드리는 것은 이거 뭐 무너지면 그만입니다.

이래도 저게 가만히 높이를 이래 보면은 그 경사를 이렇게 학리적으로 이래 따져보면은 저기 그라면 우리 저게 층층대 밑에까지 무너집니다. 층층대 무너지면, 저거 층층대 밑에까지 무너져야 저 밑에 더 안 무너지도록 그래 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이게 한 덩어리니까 뭐 이 집은 문제가 없지마는 이제 별관이 거석하든지 또 이러든지 하면은 그뭐 어찌되겠습니까? 그러니까 모두 다 끝날 때까지 기도를 열심히 하도록 하고.

자, 내일 아침에 우리가, 이 보십시오. 이 평생 처음 만나는 날인데 평생 처음 만나는 날, 이 참 인정 없는 세상 악한 세상입니다. 아주 뭐 이거는 말할 수 없는, 바다 위에 살얼음 난 이걸 우리가 걸어가는 거와 마찬가지 이 세상입니다. 빠지면 죽습니다. 이런 세상에 우리가 나가는데 무슨 담력을 가지고 그만 자고 일어나 가지고 눈 쓱쓱 비비고 밥먹으면 일하러 가고 돈만 받고 밥먹고 일하고 그래 가지고 돈이 우리를 살립니까? 우리를 위험에서 구출합니까? 못 합니다.

이러니까, 처음 만나는 이날 첫시간에 우리를 사랑하셔서 생명까지 바쳐 주신 전능하신 전지하신 하나님이 계시니까 이분에게 좀 교제를 해서 이분의 은혜도 생각해서 감사도 하고, 또 우리에게 어려운 문제 모르는 것은 묻기도 하고, 또 ‘이 일은 어째야 됩니까?’ 또 맡기기도 하고, 의지하기도 하고, 또 잘못된 것은 자복하기도 하고 이래 가지고 이분하고 든든한 이 관계를 맺어 놓고 그래 하루해를 나서야 될 것 아니겠습니까? 이러니까, 참 날마다 우리가 처음 만나는 날이오. 첫날 첫시간 인데 이 첫시간을 여게 못 나와도 산에 가든지 어데 가든지 그 시간 하나님 만나 가지고 자기, 더러워질 대로 더러워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 만나서 자기를 깨끗하게 이 심신을 목욕하고, 또 자기 모든 일에 대해서 하나님하고 의논해서 다 정비 정돈을 하고, 또 우리가 힘 없으니까 그분에게 다 부탁하고 그분의 지도를 받아 가지고 만반의 준비를 해 가지고 자기 늘 다니는 직장이라도, 늘 하고 있는 살림살이라도 그날 일과를 출발하는 것이 그것이 지혜 있는 일입니다.

이러니까, 안 믿는 사람은 뭐 그럴 데가 없으니 할 수 없지마는 믿는 사람이 어짜든지 첫날 처음으로 맞이하는 날 첫시간을 하나님 앞에 꼭 요 관계를 맺어서 모든 걸 든든히 다 정비 정돈해 놓고 그날 생활을 출발하도록 이렇게 하는 요 꼭 습관을 들여야 될 것입니다. 요거는 하다 마다 할 게 아니라 요거는 그렇게 하지 안하면은 그 사람 뭐 움푹줌푹 가다가서 언제 절단날지 모릅니다.

그러면, 내일 새벽에 새벽기도 나오기로 또 그래 또 작정합시다. 자꾸 뭐 작정하니까 그래도 삼백 명이 천 명까지 나왔으니까 성공 아니요? 이래 자꾸 작정해 가지고 우리 삼천 한 사오백 명 오륙백 명 되는 이 교인이니까 이 교인이 다 새벽기도 나와서 하나님의 은총을 입는다고 하면은 그만 일은 해결 다 됩니다.

내일 새벽에 새벽기도 나오기를 작정하고 또 안 나오면 또 밥 굶어요. 이래 그렇게 힘 안 써 가지고 뭐이 되는 줄 압니까? 자, 내일 새벽에 새벽기도 나오기로 작정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이제 다 들었으니까, 내일 아침에 이것만 다 나오면 백 목사 권위 있는데 암만 말해야 백 목사 기도 뭐 없기 때문에 권위가 없어. 이러니까, 이렇게 했는데 내일 아침에 나오면 이거, 반만 나와도 한 천 한 이삼백 명 되겠는데, 이삼백 명, 한 이삼백 명은 되겠는데 다 나오면 이천 한 육칠백 명이 되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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