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6 11:37
기도
본문 : 마가복음 11장 20절~25절 저희가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고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 나무가 말랐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 그 말하는 것이 이룰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
고린도전서 13장 1절 이하에 보면 거기에 아무리 말을 잘 해도 사랑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와같이 소용없다, 아무리 지식을 통달해도 사랑 없으면 아무 소용없다. 또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사랑 없으면 소용없다, 또 아무리 자기가 자기 전부를 다른 사람을 위해서 희생을 한다 할지라도 사랑 없으면 아무 소용없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자기 몸을 다른 사람을 위해서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도 없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거게 그 사랑이 무엇인가? 우리는 껍데기로 알고 그저 사람을 이렇게 이 죽은 사락, 뱀의 사랑을 여게 말한 것인 줄 알고 뱀의 사랑으로 사람을 사랑할려고 하고 마귀는 성경을 모르는 자에게는 이 뱀 사랑 가지고 이 성구에다 웅용을 해서 아무리 네가 어떻다 할지라도 사랑 없으면 소용없다 그렇게 해 가지고 뱀의 사랑을 가지도록 해 가지고 사람을 유혹시키고 그래서 사람을.
믿음의 사람을 그만 인정의 사람을 만들어 가지고 멸망을 시키는 그런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뱀의 사랑은 그것은 타락 후에 인간에게서 생겨져 나온 그 본능적 사랑이요 주관적 사랑인데. 그 사랑은 크게 말하면 세 가지 사랑입니다. 하나는 제 새끼 제가 사랑하는 거. 제 새끼를 제가 사랑하는 거, 그러면 그 걸 가리켜서 혈통 사랑이라.
그러면 제 피에 속했기 때문에 그 피로 인해서 사랑하는 그 사랑도 다 뱀의 사랑입니다. 그러면 그걸 사랑치 말아야 되느냐? 사랑하되 그것은 서로 사랑할 것은 자기가 의무와 책임에서 사랑할 일이지 의무와 책임에서 하나님이 사랑하라고 짐승에게도 준 거와 같이 이래 준 것을 그것을, 여기 왜? 아무리 말 잘해도 소용없다, 아무리 지식 많아도 소용없다. 능력 많아도 소용없다. 아무리 상대방을 위해서 생명까지 희생해 바친다 해도 사랑 없으면 소용없다 하는 이 사랑으로 이렇게 사람들에게 오인을 시키는 그런 일이 있어서 세상에 제일 귀한 거는 사랑인데 또 세상에 제일 악독하고 해독이 많은 것이 뭐이냐 하면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은 처음에 사랑으로 죽었습니다. 사랑, 뱀의 사랑 그놈 때문에 죽었습니다. 죽은 것을 이제 둘째 아담이 사랑을 가지고 우리를 살렸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첫째 아담의 사랑은 뱀의 사랑이요 둘째 아담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이 사랑은 그 혈통 사랑이 아니고, 또 하나는 뭐이냐 차면 암수, 암컷과 수컷이 있으면 자연히 이성 정욕이 있어서 그 정욕적인 사랑이 있으니 그 사랑도 아니고.
또 늘 같이 만나고 같이 있고 하면 차차 사귀어져서 사랑해지는 이 동류 사랑이 있으니 그런 것도 다 이 사랑은 아니고 뱀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거는 인본 사랑이요 인간의 본능적 사랑인 것입니다.
사랑이면 그러면 여게는 고린도전서 13장에 이제 말씀한 이 사랑운 무슨 사랑인가? 이 사랑은 하나님만 가지고 있는 사랑입니다. 다른 것은 가 지지 못한 사랑입니다. 왜 하나님만 가지고 있는 사랑인가? 하나님만 가지고 있는 사랑이라는 것은 이 사랑이 오늘 사랑하다가 내일 그만 사랑치 못해도 그까짓 거는 사람에게 공연히 고통만 주는 것이지. 이 세상에서 모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공동 묘지 가 가지고 그 수많은 무덤을 보고, 아 눈물 많이 흘렸겠다. 이 모두 다 눈물 무더기라. 눈물의 무더기라.' 그렇게 말을 하더라고. 제가 그때 서울 언제 가서 누구의 장례에 그때 거기 참여했는데 그거 묘지는 사람 인구가 많은가 굉장히 너르고 많습디다.
아 눈물 무더기 많이 있다 그래 말해. 그 좀 별스럽게 말하기 때문에, 눈물 무더기 많다니? 아, 이거 모두 다 이거 죽을 때는 얼마나 울어서 눈물 흘렸겠습니까? 나는 그걸 또 가만히 생각 할 때에 아, 이거 뱀의 사랑 가지고 속은 사람들이 다 여기 와 있구나. 그 뱀 사랑 가지고 그 모든 혈육 사랑이나 정욕 사랑이나 동류 사랑이나 그 사랑이 없었으면 그렇게 울지 안할 건데 그놈의 사랑이 계속하면 좋을 건데 그만 계속 못 하니까 사람을 잔뜩 사랑하도록 약을 올려 놓고 그만 딱 끊어져 버리니까 죽을 지경이라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사랑은 어떤 자만 가질 수 있느냐? 천년 가 도 그 사랑은 변치 않고 만 년 가도 변치 않고 죽음이 와도 변하지 안하고 어떤 능력이 와도 변하지 안하고 이럴 수 있는 전지, 전능, 완전 영원 불변하는 이런 실력을 가진 그 실력가가 사랑하는 그 사랑이 참사랑이지 그 사랑이 아닌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이래서 여게 말한 것은, 고린도전서 13장에 사랑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하는데 이 사랑은 무엇을 가리키는고 하니 요한 1서 4장 10절 이하에 보면, `사랑은 여기 있으니 사람들이 사랑하는 그 사랑이 아니고 하나님이 사람들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서 죄를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서 화목의 제물로 이렇게 역사하시게 한 것이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 사랑이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하나님만이 전지, 전능, 완전, 영원, 불변의 실력을 가지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이 사랑한 사랑이라야 영원히 변치 안하지 다른 것은 다 좋은 거 같다가 크게 속이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사랑은 어떤 게 참사랑인고 하니 이 모든 존재 가운데에는 지극히 큰 능력 셋이 있습니다. 완전, 영원, 불변하는 이 지극히 큰 능력이 셋이 있는데 그 셋은 무엇인고 하니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의 본체와 그 본체가 역사하는 영감과 또 영감이 우리에게 탁 부딪쳤을 때에 진리라 이랍니다. 없는 가운데 우주를 무엇이 만들었는가? 우주를 만든 것은 진리가 만들었습니다. 참된 이치가 만들었습니다. 이치는 인격은 없는 존재이나 독자적 완전 능력을 가진 것이 진리입니다. 진리. 만들었고 그러면 진리가 그것이 어디서 왔느냐? 하나님께서 나왔는데, 영감이 와 가지고 진리로 나타났다. 영감은 뭐인데? 영감은 하나님의 본체가 역사한 그것이, 움직이는 거 말이오. 역사, 사역이라는거. 노력이라는.
하나님의 본체가 움직이는 것이 그것이 영감입니다. 이래서 `사랑은 여기 있으니'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본체와 영감과 진리와 인간들이 끊어져서 끊어짐으로 말미암아 비참한 영원한 사망을 당하게 됐는데 끊어진 그것을 다시 연결시키기 위해서 온 것이, 하나님의 독생자 보냈는데 연결 시키기 위해서 와 가지고 연결시킨 그것이 사랑이라.
또 연결시키러 온 것이, 연결시키려고 독생자를 보낸 그게 사랑이다. 그러면,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은 어떤 게 받는 것인고 하니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연결하도록 이렇게 모든 것을 희생하셔 가지고 연결시키는 그 연결을, 연결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가지고 사랑으로 사는 것은 뭐이 사랑으로 사는 것이냐? 사랑으로 사는 것은 연결로 사는 것이 사랑으로 사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어떤 것이 사랑하는 것이냐? 정욕, 혈육 또 동류 이런 사랑하면 다른 사람을 이제 눈물 박지기를 흘리게 하고 나중에 가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준 그 사랑 가지고 다른 사람 사랑하는 것이 그게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랑이 뭐인데? 하나님이 나에게 이 셋 지극히 큰 능력과 결합이 되도록 연결이 되도록 한 그 연결을 주셨습니다.
연결 주신 그것이 하나님이 날 사랑한 사랑이요. 내가 연결을 받은 것이 하나님이 날 사랑한 사랑을 받은 것이요, 또 내가 다른 사람에게 사랑하는 섯이 어떤 거냐? 연결된 행위를 하는 것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요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뭐이냐? 하나님과 연결을 시킬라고 애를 쓰는 것이 그것이 사랑하는 것이라.
그래 가지고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 한 것은 그를 하나님과, 이 지극히 큰 능력과 연결시킨 것이 그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이 세 능력과 연결된 언행 심사를 하고, 연결된 회로 애락을 가지고, 연결된 그 모든 내 지그1가 되어 지면 다른 사람이 나를 보고 살아나게 되고, 내가 언행 심사한 그 언행 심사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이 살아나게 되고 이라기 때문에 이것은 다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으니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이 독생자를 보낸 것이 아버지의 사랑이요, 독생자가 와 가지고 지극히 큰 능력 셋과 우리와의 절단된 것을 이것을 결합시키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 이렇게 결합을 시켰으니 십자가의 죽으심이 사랑 뭉텅이라.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사랑이시라. 그 연결시킨 그 연결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인은 살리라'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과 연결을 가리켜서 의라고 또 말했고 하나님이 연결시켜 놓은 걸 가리켜서 하나님의 의라고 말했고, 하나님이 연결시켜 놓은 그 연결을 내가 은혜로 공짜배기로 받아 가지고 믿음으로 내가 그 연결을 가지게 된 것이 그것이 인간의 의라. 이래서 의는 온 천하가 불타도 타지 않고 영생한다. 그뭐 뭐 의가 뭐하기 때문에? 의는 이 지극히 큰 세 능력과 결합이 돼 가지고 진리와 결합이 됐기 때문에 그 사람하는 것이 진리에 딱 들어맞지, 진리와 삐뚤어진 게 없기 때문에 죄가 없으니까 영생하게 되고, 또 영감과 들어맞았으니까 더욱 더 그러하고 또 하나님 본체와 결합이 됐기 때문에 더욱 더 그러하다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랑 없으면 소용없다. 네가 어떤 아주 청산 유수의 말을 하고 세계에 웅변을 가지고 말만 하면 온 세상을 점령합니다. 요새도 사람들 말하기를 뭐 과학 가지고 어떻게 된다 해도 아니오. 과학 그까짓 거는 그거는 종이오.
과학은 종이오. 사람들은 그와 같이 하지만 과학은 종이오. 과학은 사람들의 언변에 따라서 오고 가고 합니다.
그러므로 온 세계에 제일 말 잘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이 원자 그까짓 거야 오고 가고 뭐 마음대로 자유로 합니다. 그래서 이 국교라 하는 것도 그게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지금 소련이 뭐라 해도 소련을 말을 해서 말로 가지고 그 사람을 설득을 시키고 이해를 시켜 가지고 그 사람이 내가 말한 대로 졸졸 따라 온다고 하면 소련 나라는 내 나라라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말을 아무리 잘해서 다른 사랗에게 설득력이 있고 감화력이 있고 정복력이 있고 그 사람을 잡아 취하는 취득력이 있다 할지라도 사랑 없으면 너는 다 허풍선이를 했다. 하나님과 결합시키는 일이 없었으면 소용없다. 네가 아무리 지식을 가지고 세계에 최신의 발명하는, 이 세상에 나오지 안한 모든 처음으로 모든 것을 발명을 하는 지식 말합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비밀이라 말했습니다. 어떤. 세상에 제일 발단적인 그런 선견자의 그런 선각자의 지식을 가지고 네가 세계를 움직인다고 할지라도 사랑 없으면 소용없다. 연결 없으면 소용없다.
또, 네가 세상을 어떤 능력. 뭐 원자 능력이 아니라. 믿음의 힘이라 하는 것은 더군다나 하나님과 결합된 그 능력 말합니다. 그것이 믿음의 힘인데, 하나님께 능력받은 것이 그 믿음의 힘인데 네가 믿음의 힘을 가지고 산을 옮길만한 일이 있어도 결합 없으면 소용없다. 그러면 자기가 하나님께 능력받은 것이 하나님과 결합이 되기 위해서 받았고 결합함으로 말미암아 받아 가지고 다른 사람을 하나님으로 더불어 결합을 시키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면 네가 뭐 어떤 역사를 해도 소용없다. 역사도 소용없다. 희생도 소용없다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언변도 결합 없으면 소용없다. 또 지식도 결합 없으면 소용없다.
또 능력도 결합 없으면 소용없다. 희생도 결합 없으면 소용없다. 네가 일생 동안 네 자녀를 아무리 사랑해서 어떻게 한다고 뭐 네 몸 까지 다 주어서 그렇게 부모 노릇을 잘한다 할지라도 네 자식과 이 세 능력과 결합시키는 이 일을 하지 못했으면 너 한 일은 아무 소용없다. 네 한 일도 헛일이고 또 네 모든 희생을 받는 그 자도 다 헛일이다. 그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땅 위에 어떤 생활을 한다 할지라도 그 생활이 이 세 능력과 결합을 일으키는 생활이 아니면 아무 가치 없고 다 죽이는 것뿐입니다. 그러기에 이 결합을 시키는 생활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고 결합된 것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결합이 돼 가지고 말도 잘하고 결합이 돼 가지고 지식도 가지고 있고 결합된 그것으로써 능력도 가지고 있고 결합된 그것으로써 희생을 하면 그것이야 가치가 있지만 결합 이거 빼버리면 아무 가치 없다. 그걸 가리켜서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난 밤에도 무화과 나무가 말랐나이다. 이러니까 예수님께 서 하나님을 믿으라 이말 무슨 소리입니까? 하나님을 믿으라. 믿으면 이 산을 바다 위에 던지우라 해도 네 말한대로 그대로 다 이루어진다. 내가 말한 대로 이루어진 거 보고 너희들이 깜짝 놀라지만 하나님을 믿으라. 그라면 이 산도 네가 말하는 대로 다 옮겨질 것이고, 뭐 온 천하가 만일 살라면 살 것이고, 죽으라면 죽을 것이고, 그와같이 됫 것이다. 하나님을 믿으라 믿으면 이와같이 네가 행동하는 것은 다 그대로 되어진다. 믿으면 네가 언행 심사로 행동한 것은 하나도 가감 없이 그대로 되어진다 믿으라. 이랬는데, 믿으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은 이와 같이 할 수 있다 하는 인정하는 믿음입니까? 이 세 능력과 결합해서 그분에게 피동되라는 그 믿음입니까? 여게 말한 하나님을 믿으라는 믿음은 무슨 믿음입니까? 믿음의 골자가 뭐요? 뭐입니까? 네, 피동되라는 말이니 믿으라 말은 이 세 능력과 결합하라 그말입니다. 결합하라는 말을 다른 말로 말하면 뭐라고 말합니까? 네가 의인이 돼라. 의인이 돼라 하는 말을 또 다른 말로 말하면 뭐라고 말합니까? 사랑의 사람이 돼라. 그말 아닙니까? 내나 이 오늘 아침에 지금 또 새로 또 가르치지 안했어요? 이러니까 참사랑의 사람이 되는 것이 참의인이 되는 것이요, 참의인이 되는 것이 세 능력과 결합된 사람이 된 것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자기가 사업을 하든지 또 가정의 무슨 일을 하든지 목회를 하든지 설교를 하든지 할 때에 이것을 깨닫고 나는 말을 말해 가지고 이 교인들을 설복을 시켜서 감동을 시켜서 찔찔 울도록 하면 되겠다 하는 그런 생각 가지면 잘못입니다. 내가 이 설교하는 것이 지극히 큰 능력과 결합이 돼 가지고 내가 이 설교하는 것이 지극히 큰 능력과 결합이 돼 가지고 지극히 큰 능력이 나를 통해서 이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해야 되고, 또 전한 이 말씀이 이 듣는 자와 지극히 큰 능력과 결합을 이루는 이 설교라야 되지 그것이 아니면 아무 소용이 없다 하는 이것을 우리가 가져야 되겠습니다.
이래서 말 잘해도 이 결합 없으면 소용없고. 아무리 유식한 말을 해도 결합 없으면 소용없고, 아무리 능력 있는 일을 해도 결합 없으면 소용없고. 아무리 희생해도 결합 없으면 소 용없다. "무화나 나무가 말랐나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을 믿으라" 하나님과 네가 결합이 돼 가지고 하나님으로 인하여서 동하고 정해라.
그러면 하나님으로 인하여서 동하고 정한 것은 이 무화과 나무뿐 아니라 우주가 불타라 해도 하나님과 너와 결합이 되고 하나님이 너를 통해서 우주야 불타라 했으면 불이 타질 것이고, 또 이 우주가 망하는 그런 햐나님이 너와 결합이 돼 가지고 하나님이 네게 이 우주를 구출하라 했으면 구출 된다. 하나님이 너에게 말한 것은 언제든지 하나님이 책임을 지신다. 하나님께 네가 피동된 것은 하나님이 책임지신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만일 여러분들, 하나님께서 어떤 하나님의 사람에게 `너 지금 영도하고 여기하고 그 사이에 바다가 있어 가지고 불편하니까 그만 바다를 이 육지로 메워져라' 그렇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에게 명령을 했고 그 사람이 제 맘대로 말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 명령하신 그 명령을 따라서 `영도의 이 앞 바다가 메워져라. 육지가 되어져라.' 이렇게 말했다면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예? 됩니까 안 됩니까? 됩니까? 네 틀림없이 됩니까 틀림없이 된다. 안 그런데요? 만일 그렇게 말해 놓고 말은 했지만 이와같이 되겠나 이렇게 의심을 가지면 되겠소 안 되겠소? 의심가지면 안 되지. 그러니까 그렇게 말하면 말한 대로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면 그 다음에 덧붙여 답하기를 말한 그대로 주님이 다 이루어 주실 것을 믿고 의심치 아니하면 된다 이래 대답해야 그 백 점 대답이 되지요.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신구약 성경에 우리에게 말씀하신 말씀은 간단하게 다 간추려 말하면 하라는 것과 하지 말라는 것 둘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라는 건 하나님이 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하라 하신 것을 내가 하면서 내 힘으로는 안 되지만 하나님이 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라 하신 것은 내가 이와 같이 하면 하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이 다 이루어 주실 것을 의심치 안하고 믿기만 하면 하나님이 말씀해 놓은 대로 하라는 것을 다 자기가 하면서 하나님이 하라 하셨기 때문에 나는 무능해서 안 되지만 하나님이 해 주실 것을 의심하지 안하고 믿기만 하면 하나님이 하라는 것을 본인이 할라고 달라들면 그 일이 다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이거 또 꽉 막혀 버리네. 아, 성경에 하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거는 네가 해라' 하라는 말씀과 하지 말라는 말씀 둘뿐입니다.
그런데 하라는 말씀이 있는데, 하라는 것을 자기가 하나님이 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내가 이걸 해야 되겠다 하고 말하라는 거는 말로 하고. 손으로 하라는 거는 손으로 하고, 마음으로 하라는 거는 마음으로 하고, 자신이 변화되는 거는 자신 이 변화될라고 애를 쓰고 이래 변화될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내 힘으로서는 내가 완전자가 될 수 없지만 하나님이 완전자가 되라고 하셨으니 나는 완전자가 될란다 하고 완전자 될라고 하면서 하나님이 해 주실 것을 의심 없이 믿고 있으면, 믿고 자기가 완전자 될라고 애를 쓰면 완전자가 됩니까 안 됩니까? (됩니다.) 그런데, 자기가 그렇게 될라고 애를 쓰면서 하기는 하는데 무엇이 있으면 안 됩니까? 의심이 있으면 안 됩니다. 베드로가 바다 물 위로 걸어갈 때에 하나님이 물 위로 걸어오라 하셨으니까 그 말씀 듣고 떠벅떠벅 걸어 갑니다. 걸어가는데 그다음에 그만 가다가 물 속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빠져 들어가는 것은 베드로가 물 위로 걸어오라는 말씀에 순종이 없었습니까? 순종이 없어서 물에 빠졌습니까, 물 위로 걸어오라 하는데 걸어가는 순종 걸어갈라 하는 그게 순종인데 걸어가는 순종이 없어서 빠졌습니까 뭣이 없어 빠졌습니까? 의심, 믿음이 끊어져서 빠졌다 말이오. 믿음이 끊어져서 빠졌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 없는 행동 암만 해 봤자 소용없습니다. 믿음 없는 행동 암만 해야 소용없어.
믿음 있는 행동해야 되지.
그러기 때문에 인간 꾀는 하나님과 결합되는 데에 도움이 됩니까 방해가 됩니까? 예? 방해돼. 원수가 돼. 그러기 때문에 인간 꾀 조작배기 꾀를 써 가지고 어짜든지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자기 소원, 자기 뜻대로의, 그러면 인간의 자기 주관이라는 그것이 들어서 하나님과 결합하는 이 결합을 하게 돕습니까 방해를 합니까? 방해합니다 사람들이 온갖 온갖 노력을 하는 것이 뭐이냐 하면 말하는 노력하고, 또 지식 노력하고, 또 이런 능력 노력하고, 또 자기가 막 열심히 밤새 철야 기도했기 때문에 나는 뭐이 될 거다 희생 노력하고 해서 아무리 교인들이 감동 받고 이렇게 어떻게 했다 할지라도 그 알맹이는 지극히 큰 능력과 결합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결합 없으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아무 소용없어. 그거 다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뿐이지, 그런 역사하면 나중에 가서 암만 믿어 봐야 일이 안 되니까 뒤에 낙망하고 예수 믿다가 그 만 잘 이루어지지 안하니까 어깨가 축 처져 가지고 다 죽어가는 예수 믿는 사람 있고, 예수 잘 믿는 사람은 보면 그만 어깨가 축 처져 가지고 그만 절망 낙망, `아,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젊을 때부터 돈이나 벌 걸. 내가 또 뭐 할 걸.' 그때 주일 범해서 시험치는데. (저 학생, 그 학생아니가? 주일 안 범할라고 시험 안 친 학생 아니야? 저 학생.) 그래 주일 안 범할라고 시험을 안 치고, 시험을 쳤으면 벌써 그 사람이 뭐 은행장이 됐을라지 또 그 사람이 어떤 지금 고관 대작이 됐을란지 모를 건데, 자꾸 이 주일날 시험 치기 때문에 주일 안 범할라고 시험 안 쳤다가서 나중에 그만 나이는 늙어져 버렸고 다 때를 다 놓쳐 버려서 `일찍 시험이나 칠 걸. 예수 믿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하는 그 사람이 하나님과 연결된 사람이요 연결 안 될 사람이요? 주일을 지키기는 지켰지만 연결을 못 했다 그말이오 연결 못 한 건 자기를 부인하지 안했어. 자기를 부인하고 전적 그분이 연결 시키는 연결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연결하는 법은 뭐이 연결하는 법인고 하니, 내가 현실에서 진리와 삐뚤어지지 안할라고 애를 써서 진리와 결합되고 영감과 결합되고 하나님 본체와 결합이 듸는 그것이 연결되는 것이라 그말이오. 내가 실행을 하는 것은, 실행을 하는 것은 자기가 이 모든 마음과 고기덩어리로 이와 같이 합작해 가지고 실랭하는 것이 나 순종하는 것인데. 그 순종해도 뭣이 없으면 안 됩니까? 순종해도 뭐이 없으면 안 됩니까? 하나님이 해 주실 것이라는 이 믿는 믿음이 없으면 다 헛일이라 그말이오. 믿음을 가져야 되지. 베드로가 물 위로 쩌뻑쩌뻑 걸어가면서 이제 가다가 왜 물에 빠져 버립니까? 걸어가는 발을 놀리지 안했소 뭐 손을 놀리지 안 했소? 놀리기는 배나 더 놀렸지만 의심하고 믿음이 없기 때문에 헛 일이라 그말이오. `적게 믿는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그렇게 주님이 밝혔다 그말이오. 그러므로, 하나님과 결합되는 이것이 중한 문제입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이미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했는데,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하면 기도하고 구하는 건 다 된다 이랬으니까 이 기도는 하나님께서 뭐이든지 제 욕심대로 해 주십시요. 해 주십시요. 하는 그런 것을 표시하는 기도입니까? 기도는 나와 하나님과 거리 먼 것을 차차차차 가깝게 하는 것이 기도라 또 나와 하나님과 삐뚤어진 것을 하나님과 나와 딱 들어맞게 하는 것이 기도라. 그러면 기도는 어떤 것이 기도냐? 기도는 나와 하나님과 먼 거리를 차차 가깝게 하는 것이 기도요, 또 기도는 하나님과 나와 삐뚤어진 것이 차차차차 수정돼 가지고 하나님과 바로 들어맞게 하는 것이 그것이 기도라 말이오. 왜? 기도는 뭐하는 것인데? 기도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성경 말씀대로 구해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성경 말씀대로 하나님 바라보지 성경 말씀대로 내가 기도할라고 애를 쓰다 보니까 자기도 모르게 그만 하나님화 돼 버리고 말았다 그말이오.
여러분들 아무리 무식쟁이라도 아무리 무식한 사람이라도 일등 교수하고 한집에서 한 달을 살면 일반 보통 상식이라 하는 것은 교수와 같은 사람이 돼 버리고 맙니다. 이러기 때문에 함께 생활을 하게 되면 생활 하게 되면 함께 생활하는 사람 가운데 제일 높은 그 기능의 사람, 하나님과 결합된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 사람하고 차차차차 이래 하게 되면 자꾸 결합이 그 옆의 사람이 돼지고 만다 말이오. 그러기에 남의 집에 무식꾼이 남의 유식한 사람 집에 식모살이 석 달만 살면 주인하고 거의 같게 돼 버립니다. 모든 견해나 사리 판단이나 가치 평가가 취사 선택이 같게 된다 말이오. 같게 되니까 잘못 하면 이것의 지식만 배우고 사람은 변화되지 안하고 가속도로 됐기 때문에 그 사람이 교만한 사람이 돼 버리고 말고 못 쓸 사람이 돼 버리고 맙니다. 이러니까 아주 어떤 의인의 집에 가 가지고 식모살이를 얼마동안 하면 그 모든 지능만 배우고 사람은 변화되지 안하고 이래 되니까 그 사람이 교만해서 아무작도 못 쓸 건방 진 사람이 되고 만다 그거요. 그러기에 여러분들, 사람을 따라가는데. 사람을 닮아가는 일에 있어서 사람하고 직접 만나는 것이 닮아가는 데에 제일 유력합니까, 그 사람이 써 놓은 그 저서를 글을 읽는 것이 속 빠릅니까, 그 사람하고 같이 생활하는 게 속 빠르요 그 사람이 말한 글을 읽는 것이 속 빠르요? 뭐이 속 빨라? 저기 노란 옷 입은 사람, 뭐이 속 빨라? 저 뒤에 묻는데, 왜 자기 노랑 옷 입었어? 잘 듣고 하더니만 그만 오늘 아침에는 그만 자꾸 졸아 쌓아 놓으니까 헛일이라. 졸면 못 듣지, 뭐 내가 뭐 물었지? 예? 내가 뭣을 물었어? 예? 닮아가는 데 말했지. 닮아가는 데 배워 가는 데 닮아가는 데 배워가는 데 그 사람이 저서해 놓은 것을 글을 읽는 것이 빨라요, 그 사람 하고 같이 대면해서 사는 것이 빨라요? 예? 예? 이 모두 엉벙어리같이 소리도. 자신이 없는 모양이라. 큰 소리로 하지. 이제 ○○○집사님이 옳게 말했어. 같이 사는 것이 제일 빠릅니다.
인제 사람도 그런데 그 사람이 예를 들어서 성자하고 가서 만나서 얼마 살게 되면 성자의 사람이 되고, 진리의 사람하고 만나서 얼마 살게 되면 진리의 사람이 되고, 도둑놈하고 만나면 얼마 안 가서 도독놈이 돼 버리고, 이 모든 창기들하고 같이 접촉하면 얼마 안 가서 창기가 되어집니다 장사꾼들 하고 같이 살면 그 며칠 안 살면 장사꾼이 돼 버리고 맙니다. 이 깡패 불량자들하고 같이 살면 얼마 안 가서 불량자 되고 맙니다. 이러기에 제일 빠른 것이 인격과 인격이 서로 상대해 가지고 사는 데에 물들고 본받고 닮아가는 것이 빠르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은 누구하고 서로 대면하는 것입니까? 하나님하고 대면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도는 이렇게 하나님과 대면하니까 하나님과 의사가 일치가 되어지고 지정의가 일치가 되어지고 희로 애락이 일 치가 되어지고 모든 가치 평가가 같이 일치가 되어지고 소원이 일치가 되고 성품이 일치가 되어지기 때문에 기도하고 구하면 어디까지 되어지느냐? 하나님의 의사와 꼭 일치가 되어진다. 일치가 되어져서 무엇이든지 그대로 행동한 것은 다 되어진다.
되어지는 것은 그 사람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그사람이 소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지는 것 구하는 것이 다 그대로 되는 것은. 구하는 것이 구하는 대로 다 되어지는 것은 그 사람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소원이 이루어집니까? 하나님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거야. 하나님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거. 그러니까 하나님의 소원이 이루어지다니? 왜 제 소원 어째 버리고? 제 소원은 그만 더러워서 내 버려 버렸고 하나님의 소원이 제 소원이 됐다 그말이오. 기도는 하나님과 자기와 일치가 되는 그런 사람으로 성화될 수 있다는 것이 기도라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 다음에 덧불여 말하기를, 25절에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의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 이랬습니다. 기도할 때 혐의라 말은 사람하고 나하고 딱 들어 붙지 못하고 사람하고 나하고 성근 거. 사람 하코 나하고 성근 거, 사람하고, 나하고 무엇인가 깨끗치 못한 거 사람과 나와의 관계가 깨끗치 못한 거.
명랑하지 못한 거, 참 정확하지 못한 거 또 다른 사람이 다 봐도 좋아하고 기뻐하고 참 찬성할 만한 그렇게 아주 다른 사람과 나와의 그 관계가 께꾸름하게 돼 가지고 있는 거 그런 것이 있거들랑 빨리. 기도하다 그것부터 해결을 해라.
해결해서, 그 사람이 나에게 잘못한 것 같으면 내가 그 사람의 잘못을 용서를 하고. 용서하는 것이 어떤 것이 용서하는 것이냐? 용서하고. 내가 잘못한 게 있으면 그 사람한테 가 가지고 잘못했다고 사과를 하고 내가 잘못한 것을 그 사람한테 가 가지고 잘못했다고 이렇게 말하면 그 사람 이 나쁜 사람은 용서하라니까 `이놈 이제 빌러 왔구나. 왜 진작 와 그렇게 하지. 뭣 때문에 그랬나? 빌러 왔구나.' 이렇게 해 가지고 욕을 하면서 `용서를 안 해준다' 이렇게 해도 내가 죽자고 가 가지고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곳 이라면 그 사람이 `용서 못 해' 이렇게 했다 할지라도 내가 그 사람에게 용서를 빌었으면 내 마음은 평안합니까 안 합니까? 평안하요 안 하요? 내가 무슨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보였으면 손해 보인 그걸 이래 갖다 주는데 자기 힘껏, 손해 보인 것을, 손해 보인 거 손해 이자도 다 첨부해 가지고 갖다 줍니다. 갖다 주니까 그 사람에게 내가 볼 때 이제 그 사람에게 내가 손해를 보이고 훔쳤지만 이제는 그 사람에게 손해 보인 거 하나도 없이 다 오히려 유익이 됐다. 이렇게 되기까지 했으면 그 사람이 무슨 짓을 하고 있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평안합니까 평안 안 합니까? 예? 평안하요 안 평안하요? 평안합니다. 그러면, 내가 다른 사람에게 잘못했을 때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그것이 평안을 마련하는 것이고. 또 다른 사람이 나에게 잘못했을 때에는 내가 용서하라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용서하라 말은 해방하라는 그런 뜻이 있습니다. 해방시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용서하라 말은 그 사람을 잘못한 것을, 잘못해도 내가 뭐 묵인해 주지 그게 아니오. 잘못한 그것을 나와의 이 잘못돼 가지고 있으니까 이것이 하나님과 결합하는 데에 이 지장이 있고 고장이 되겠으니 그 사람이 나와의 잘못돼 있는 그런 것이 하나님과 결합되는 데에 방해가 되지 안하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나한테 잘못했지만 그 사람한테 가 가지고 이제 그런 것을 타이르면서 나와 잘못된 것이 없어지도록 할라고 애를 쓰고 그 사람이 나와 잘못된 그런 것이 하나님과 결합하는 데에 방해가 되지 안하도록 지장이 되지 안하도록 할라고 그 사람이 잘못된 그런 것을 이제 다 벗어나서, 그 잘못된 그런 것을 벗어나 가지고 그 사람이 나와도 막힌 것이 없고 하나님과 막힌 게 없도록 그렇게 되도록 할라고 진정한 마음으로 애를 쓰면 그 사람이 나중에, 잘못해 놓고 따글따글 하게 강퍅해 가지고 아무리 그 마음을 강퍅하게 해 가지고 그 화해를 안 할라고 애를 써도 내가 그 중심을 가지게 되면 내 마음이 그 사람에게 대해서 평안합니까 안 합니까? 평안하겠소 안 하겠소? 평안합니다. 또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사람에게 대해서 그렇게 할 때에 하나님이 내가 하나님께 대해서 잘못된 그런 것을 하나님께서 또 자꾸 틔워 줄라고 애를 쓴다 그말입니다.
`너희들이 사람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용서 해 주실 것이요 너희가 용서치 안하면 용서해 주지 아니한다' 그말은 하나님과 너와의 거리끼는 그것을 네가 사람과 너와의 거리낀 거, 사람이 하나님과 결합하는 데에 거리낌이 되는 그것을 어짜든지 없앨라고 애를 쓰는 그 마음을 가지면 그 마음을 보시고 하나님과 너와의 거리낀 그것을 하나님이 없앨라고 애를 쓰신다 그말이오.
그라면 수입이 크요 적소? 사람과 서로 이렇게 화합할라고 애를 쓰다 보니까 하나님과 이와같이 절단되어 있는 그런 것이 화합되는 그 결과를 맺으니까 자기는 쪼그만한 사람과 화합되는 그 일을 가지고 이제 큰 걸 얻었소 적은 걸 얻었소? 예, 제가 쪼그만한 거 해 가지고 큰 것 얻었다 그말이오. 그것을 덧붙여서 말했습니다.
이래서, 하나님과 결합되는 그 결합이 잘못되는 거, 안 되는 것은 모두 사람과 이와 같이 지금 잘못돼 가지고 안 돼 가지고 있다. 네가 사람에게 대해서 모두 다 참 온전한 사람이 되지 못하고 사람에게 대해서 하나님이 보실 때에 네가 부당한 마음을 가졌다 하는 그것을 없애고, 부당한 마음을 가졌다. 부당한 행위를 가졌다.
부당한 욕심을 가졌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에게 대해서 자기 유익을 취해 자기 사욕을 취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손해 보이고 자기 유익을 취하려는 그런 사람에게 대해서 하나님과 결합이 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예? 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좀 큰 소리로 해 봐요. 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안 돼.
그러기 때문에, 사람에게 대해서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일이 됩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다 그말은 무슨 말이요? 뭐 암수가 사랑하는 그 사랑 가지라 말아요.
혈통의 사랑 가지라 말이요, 같이 자주 친교를 하니까 이와 같이 사랑 하는 동류의 사랑 가지라 말이오? 무슨 사랑 가지라 말이요. 내가 지금? 하나님과 결합. 내가 하나님과 결합하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내가 하나님과 결합된 행동을 해 가지고 다른 사람을 하나님과 결합되도록 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주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본을 보이고 감화를 주기 위해서, 내가 하나님과 결합된 행동 아니면 안 합니다. 하나님과 결합된 행동을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일시에는 오해를 한다 할지라도 마지막에는 감동을 받을 수가 있다 그말이오. 마지막에 그 사람이 깨달을 때에는 `아, 그 사람에게 내가 오해를 핸지만 그게 아니로구나.' 이래서, 그러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하나님과 결합하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하나님과 결합되어 하나님과 피동된 행동이 아니면 하지를 아니하고 내 마음대로 내 주관대로 내 욕심대로 하는 그런 능동 행동을 하지 안 할라고 애를 쓰는 것이오.
하나님에 피동된 그런 행동을 할라고 애를 쓰면서 그 사람과 하나님과 결합이 됐으면 좋겠다 이것을 소원하는 그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대해서 그건 쓸모있는 사람이라. `이 사람이 나하고 결합되면 꽤 쓸모가 있겠다.' 이래 가지고 하나님이 자꾸 당신과 결합을 할라고 결합에 방해되는 것을 다 제거해 주시는 역사를 해 주신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과 결합되는 데에 참고할 것은 사람과 나와의 관계되는 그 점을 살펴 보면 그 점에서 잘못된 것을 발견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전서 4장에 보면 첫째는 말하기를 다 른 사람이 내게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하는 그것을 첫째로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것을 첫째로 중요하게 여겨서, 중요하게 여기면서. 중요하게 여기지만 그것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전지한 지혜가 내게 대해서 잘못됐다 하는 그 하나님의 밝은 눈으로 발견하는 그 발견에다 비해서는 다른 사람이 내게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폄론하는 그 폄론이 대단히 그래도 좀 정확하다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이 날 보고 폄론하는 것만은 어림도 없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 다음에 또 뭐라 했느냐? 자기 마음을 말했습니다. 자기 양심에 자기에게 삐뚤어진 게 있는가 조사를 하고 이러니까 삐뚤어진 게 있는가 조사해서 삐뚤어진 게 없다 싶어도 그까짓 것도 아무것도 아니다. 자기가 무엇을 하나님과 잘못됐는가 해서 그것을 조사 할 때에 다른 사람이 내게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것을 살펴 가지고 그것을 바로 찾을라 하니까 대단히 찾는데 크게 도움이 됐지만 그거 가지고도 또 아무것도 아니라 말이오. 왜? 다른 사람이 날 보는 것? 그거는 껍데기만 보고 있지 전지자가 나를 보는 그 심판 앞에 갈 터이니까 그거는 가지고는 회계가 닿지 않는다 그말이오. 또 자기 양심으로써 잘못된 게 있는가 싶어서 조사를 하고 이렇지만 자기 양심에 자책될 것이 없이 이와 같이 깨끗하게 했다 할지라도 그것도 그거 가지고 온저 한 것은 아니라 그말이오. 하나님은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그분 앞에 가서 심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그분이 보시는 데는 어떤가, 이래서 항상 하나님께 잘못된 게 있는가 구할라고 알아볼라고 애를 쓰고 잘못됐는가 하는 걸 구할라고 애를 쓴다 그말이오.
그래서, 우리가 인사하는 그것에다가 말하기를 회개의 눈물이, 밤마다 회개의 눈물이 강처럼 흐르는 자가 되게 해 달라고. 요새는 그거 잘 아 하는데 그거 안 할 때는 우리의 심령이 가난해져. 우리 심령이 그만 거지가 돼 버려. 아. 눈물이 강처럼, 눈물이 우리에게 없어. 눈물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참 은혜 베풀어 주시기 때문에 이 감사의 눈물이 우리에게 끊침 없이 흘러야 될텐데 도무지 감사의 눈물이 없지, 또 하나님께 섭섭하게 하나님을 노엽게 한 것을 이런 잘못이 있으니까 눈물을 흘려야 될 텐데 이 눈물도 없지 우리 마음이 강퍅해서 눈물이 말랐으니까. ○○○목사님이, 나는 읽지 못했는데 그 주석에 쓰기를 그렇게 썼대요 `눈물은 천국가는 노자라' 이랬어. `눈물은 천국을 가는 데 노자라' 노자가 떨어지면 가다가 배 고파 가다가 죽을 거고 못 갈 거 아닙니까? 이와같이 눈물이 없으면 하늘나라 못 간다. 눈물 나는 것은 하늘나라 가는 데에 아주 노자와 같이 그게 필요하다. 배부르게 갈 수 있다 그말이오. 강건하게 갈 수 있다 그랬어.
또 주님의 징계를, 주님의 진노와 징계를 보는 그런 눈동자가 있게 해 주옵소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주님이 나에게 뭘 진노하고 계시는가. 뭘 나에게 징계를 하고 계시는가, 그것을 보지 못하면 우리가 망하니까 그것 보는 눈을 달라고 그렇게 우리가 매일, 전도지에 전도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거 요새는 안 해요. 그것을 가지고 하되 이제 한번 많이 돌렸으니까 이제는 가지고 똑 요긴하게 그것을 한 장씩 주고, 제가 아침에 거석하면 저 ○○○집사님이 오면서 인제 그 전도지를 나에게 줍니다. 나에게 주면 또 나도 그 전도지를 주고, 이라면 이거 부엌에서 한참 좀 기도를 하고, 기도하고 나면 좀 깨끗해진다 그말이오. 또 ○○○집사님이 또 그걸주면 그걸 주면 또 내가 가지고 또 나도 주고 또 이제 거머쥐고 기도하면 아주 좀 더 깨끗해집니다. 또 ○○○집사님이 또 줄 때 또 그렇게 하면 또 깨끗해집니다. 또 ○○○집사가 오면 그것을 주고 서로 받으면서 가지고 또 이제 눈물 없는 거를 탄식을 한다 그말이오. 감사의 눈물 없는 그것도 탈 또 회개의 눈물 없는 것도 그것도 탈 우리 눈이 심령이 어두워져 서 하나님이 지금 내게 진노하고 있는데 그 진노하는 그것을 보는 눈이 없는 그것도 탈 또 하나님이 나에게 지금 곧 벌을 주고 있는데, 징계를 받고 있는데 징계를 받고 있으면서도 그 징계를 보지 못하는 눈이 어두운 것도 탈 이것을 깨우치는 것이 그 전도지를 박은 것이라 그말이오.
그래서 그 전도지를 그때 박을라고 연보하니까 백 몇십만 원이 나왔는 데 지금도 계속해서 꼭 있습니다. 돈은 계속해서 들어오는데 지금 얼마가 남았느냐 하면 십삼만 삼천 얼마가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지가 아마 떨어진 것 같은데.
○○집사님이 `전도지를 박아야 될 것인데요' 해서 다른 사람이 전도지 집에 재어 놓고 욕심. 그것도 욕심이라 말이오. 다른 사람 전도지 없을 때 나는 이래 가져야 되겠다 하는 많이 갖다 재어 놓고 전하지는 안하고 많이 갖다 놓은 그런 사람들 가져 와요. 자기 당일 전할 거 당일 전할 거 그거 이상 있는 거는 갖다 가 내 놔요 내 놓으라도 안 내놔. 그것도 욕심이라. 내 놔야지 그거 내놓지 안하고 그래 놓고 있으니까 자꾸 그 전도지는 묵어지니까 나중에 그 책임을 어떻게 제가 질라고? 그걸 전해 줘야 뭐이 될 터인데, 효력이 날 터인데 안 전해 주고 집에다 재어 놓으면 어짤 것입니까? 전도지 집에 지금 하루 전할 거 이상 가지고 있는 사람 여기서 손 들어 봐요. 정직하게 손 들어. 거짓말하지 마. 하나님 앞에 거짓말하면 하나님과 멀어져요. 자 그렇게 하루 전할 거 이상 가지고 있는 사람 손 들어 봐. 지금. 요거뿐이라? 뻐뜩 들어 봐요. 아하, 저 뒤에 많이 있다. 다 정직해. 이제 그라면 그 죄는 없어졌어. 이제 자복하니까 회개하니까 그렇지. 오늘 못 가져 왔거든 내일이라도 다 가져와요 갖다가 여기 갖다 놓고 하루 전할 거 또 여기서 가지고 가야 돼요. 하루 전할 거 가지고 가 가지고 또 기도하며 이래 전해야 새로와지지 갖다 놓으면 잊어 버려져 우리 마음은 그만 자꾸 묵어져 버린다 말이오. 우리 마음은 묵밭이 돼 버리요. 오늘 가지고 매일 가져 가는 것과 갖다 놓고 전하는 것과 영 다릅니다.
말씀을 우리가 깨닫고 기도 하러 가면 뭐를 기도하러 갑니까? 기도하는 건 그게 기도라. 하나님과 나와의 멀어진 게 가까워지게 하는 것이 기도요 하나님과 나와 삐뚤어진 거, 하나님은 이리가고 있는데 나는 이리 갑니다 이러니까 삐뚤어져.
생전 가야 못 만날 거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과 삐뚤어진 것을 고치는 것이 기도라. 이러니까 삐뚤어진 거 고칠라면 뭘로 가지고 고쳐야 됩니까? 인간의 그 사람의 행위를 고치는 데에는 젊은 사람의 행위를 고치는 데에는 뭘로 고쳐야 된다고 했습니까 성경에? 예? 하나님의 말씀으로. 청년들이 무엇으로 그 언행 심사의 행실을 고칠 수 있겠느냐? 여호와의 말씀으로만 고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함으로 깨끗해진다 했습니다.
이러니까 기도할 때에 하나님 말씀만 가서 새김질합니다. 뭐 가져가서 뭐 다른 거 하지마 하나님 말씀에 이럴게 했다. 그러니 이 말씀과 나와 대조를 해 봅시다 하나님 말씀은 이렇게 했는데 내가 요와 같이 됐나 안 됐나? 그걸 안 된 것을 자꾸 찾아 가지고 이와 같이 고치다 보면 나중에 가 자기도 모르게 처음에 기도할 때에 시작할 때 하기도 나중에 마칠 때는 사람이 딴 사람 돼 버렸다 말이오. 이러니까 그 사람의 소원하는 게 하나님의 소원과 일치가 되기 때문에 그 사람의 하는 일이 다 이루어진다 말이 그 하나님과 정반대 되는 일을 하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까 저주하십니까? 저주한다 그말이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