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생활


선지자선교회 1989년 8월 10일 목후집회 

 

본문 : 계2:18-29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 많도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든 걸 감사해서 더워도 감사하고 시원해도  감사해야겠습니다. 그 정보가 정확한지는 모르나 부산에는 지금 삼십육도랍니다.

 삼십육도면 덥습니까? 여게는 지난밤에는 모두 추워서 그렇고 또 이 낮에도  아주 서늘합니다. 나는 생각하기를 여기서 저 내를 건너서, 건너가서 보면 거게는  몇 도나 되는고? 아마 저 햇볕 밑에는 더울 것입니다. 여게는 또 어째 그런지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를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공연히 끌어다 붙이는 말이 아니오.

 그러고 여러분들이 연보 낸 것은, 연보 낸 것은 현금은 사천팔백이  십육만팔천사백십 원이고 작정 헌금은 이천육백사십오만칠백칠십 원 이고  합계해서 칠천사백 칠십이만구천 또 백팔십 원, 나는 이 숫자도 잘 모르는데  하나님이 참 많이 주셨어요. 네, 이라면 뭐 지금 현재는 넉넉합니다. 모두 이런 게  마음에 들어 있으면 안 되니까 혹 작정한 분들은 빨리 가서 청산해요. 청산 안  하면 우리 머리 속에 들어 있는 거 그만큼 손해입니다. 무엇이든지 할 일은 즉시  하고 우리 머리를 비워야 또 좋은 것을 담을 수가 있습니다.

 버가모 교회에 책망한 것이 둘이 있었는데 하나는 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것과  또 니골라 교훈을 따르는 것입니다. 외부에 이름은 발람 니골라 이렇게 둘이지만  그 교훈의 내용은 하나입니다. 하나인데 그 교훈들의 내용이 무엇인고 하니,  외부에 발표하는 것이나 증거하는 것이나 그런 것은 흠이 없는 독실한 하나님의  신실한 사람으로 나타 냈습니다. 그러나 그를 주관하고 인도하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고 물질이었습니다.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겉은 하나님의 선지  하나님만을 위하는 사람이요 자기도 그렇게 말하고 그런 줄 아는데 자기도  모르는 자기 속에 창조주가 아닌 피조물이 그 속에 왕이 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역사한 모든 결과는 어떤 결과를 맺었는고 하니 하나님을 섬기는  자를 만들지 못하고 우상 섬기는 것을 환영하고 찬동하는 사람들을 만들었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행음하는 사람들을 만들었습니다. 세상하고 짝된 사람  만들었고 또 하나님을 주로 모시지 안하고 피조물을 주로 모시는 그런 신앙  행위를 부러워 따라가는 그런 사람들이 점점 되어서 속화되어졌었습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말을 하고 증거하고 하는 그 모든 것이 그것이  자신이 하나님께 쓰여지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을 자신이 이용해 가지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커지려고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거기에 듣는 그  사람들이 뭐 너나 할 것 없이 아주 그 말을 달콤하게 듣고 모두 좋아해서 버가모  교회가 다 그래 한꺼번에 물이 들어서 나아갔었습니다.

 이런 것은 자신이 하나님을 상대하는 것은 하나님께 쓰여지기 위해서, 이미  하나님의 사활의 대형 대행 대화친 대생하는 하나님이 자기를 대신 해서 이렇게  대속하셨기 때문에 벌써 하나님이 먼저 자기를 위해서 다 내놔서 하나님이  내놓으신 것을 자기가 다 차지한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제 순서는 하나님이 나  위해 모든 것 다 내놨으니까 나도 하나님께 다 내놔서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전적 다 쓰여졌으니까 이제는 이 대속을 받은 나는 하나님께 전적 쓰이기 위해서  시발하는 것이 기독자의 생활입니다.

 이런데 이것을 모르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지금도 주님의 대속의 공로면 족하지,  자기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커지고 자기가  높아질라고 예수님을 하나의 작지처럼 이용을 할라고 하는 그런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다 발람이요 니골라인데 그런 사람들이 교훈하는 것이 발람의 교훈이요  니골라의 교훈입니다.

 그러면 그 결과가 맺어지는 것은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이 무엇을 맺느냐 하면  우상 섬기는 사람이 먼저 되는 게 아니고 우상의 제물을 먹으면 우상의 제물에,  우상의 제사에, 우상 섬기는 그 제사에 참여하는 사람은 차차 우상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지고, 그래 가지고 나중에 가서는 행음하는 사람, 세상하고 짝이 돼  가지고 세상을 자기의 남편으로 삼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그런 사람들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걸 하나님께서 아주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책망한  것이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의 교훈을 따르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책망을  하셨습니다. 회개치 아니하면 하나님 말씀대로 처단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기는 그에게는 이기는 자에게는 감추었던 만나 주고 흰돌 주고 그  위에 새 이름 기록한 것을 주는데 받는 자 외에는 그 이름을 알 자가 없느니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이기는 자는 어떤 게 이기는 자인고 하니 발람의  교훈파 니골라의 교훈을 받지 않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입니다.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입니다.

 여기 그 밑에 내려보면 24절에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을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이러니까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의 교훈하는 그것을 제가 받아들이는  것을 이것을 하나님이 금했습니다.

 그러면 그 교훈하는 사람으로 더불어 싸우라는 이 말은 없으나 뒤에 이긴다고  말하면 암암한 그 투쟁이 있기는 있지만 우리는 그럴 때에는 자기는 받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그 교훈하는 것으로 더불어 싸우는  것보다도 받지 아니하는 것이 제일 좋은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정복해서 그  교훈으로 설복을 시켜 가지고 교훈화 시킬라고 하는데 내가 그 교훈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것이 그것이 전투하는 것이요 그것이 곧 이기는 것입니다.

 이래서 잘못된 사상을 가진 그들은 무엇인고 하니 그것이 교회 안에서는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그런 세력들을 가진 사람들이지 또 이 세상에서 온갖 그 권세를  뭐 재권 인권 또 모든 지식권 정권 오만 권세를 가진 그런 훌륭한 그런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와 대립해서 싸우는 것은 무익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교훈을 받지 않는 것이 그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이래서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는 사람들을 두아디라 교회에서 칭찬을  하셨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앞으로 당면도 하고 있고 어떤 사람은 당면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만날 사람들도 있고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만나고 있는  사람들은 거기 대해서 어떻게 하느냐? 그를 가지고 서로 시비해서 대적해 가지고  싸우나? 대적해 싸우면 상합니다. 왜? 그것이 다 유대인이요,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유대인들이요 또 그것이 사탄의 회요 또 그것이 마귀의 회기 때문에 그를  대항해서 싸우지 말고 그만 거기서 그 교훈을 받지 말아라 이랬어. 그 교훈을  받지 말아라. 그것이 이기는 사람입니다.

 이기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무슨 상을 주시느냐?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만나는 이스라엘들이 광야에서 먹은 양식인데 감추었던  만나를 준다 말은 감추었던 양식을 준다 그 말입니다. 감추었던 양식을 준다 말은  우리에게는 양식이 인격의 양식은 하나님의 뜻을 가리켜서 양식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내가 먹는 양식이 여기 있으니 하니까  사마리아 여인이 떡을 줬는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주님이 다시 그들에게  깨우쳐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내가 먹을 양식은 곧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이루는 것과 온전히 이루는 것이니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감추었던 양식이라 말은 감추었던 인격의 양식이라 말이니까 감추었던  인격의 양식이 뭐입니까? 감추었던 인격의 양식이라면 양식은 뭐라고, 뭘  양식이라고요? 자기를 보내신 자기를 구속하신 그 분의 뜻이 그것이 양식이요  뜻을 행하는 것이. 양식을 먹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항상 양식 하면 입으로 먹는 것만 양식으로 생각하고 또  먹는다 하면 입으로 먹는 것만 먹는 것으로 이렇게 생각하는데 인격의 양식은  자기의 행위가 인격의 양식이요 또 먹는 것은 사모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인격의 양식인 것입니다. 이걸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고 할 것이 아니라 잘못  해석하면 우리의 생명 기울인 것이 헛 기울이기 때문에 이걸 정확히 잘 알아야  됩니다. 아무나따나 성경을 해석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알아 되는 게 아니고 꼭  바로 깨달아야 됩니다.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감추었던 양식을 준다. 감추었던  네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준다. 먹게 한다. 감추었던 만나를 주어서 먹게 한다.

 네게 감추었던 하나님의 뜻을 너에게 알려 가지고 행하도록 한다. 맞아요 안  맞아요?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아무나따나 주 대는 게 아니야. 만나를 주고 이  만나는 무엇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인가? 감추었던 만나는 곧 문서 계시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밀 계시, 문서 계시 나타난 계시 말고 은밀 계시, 곧 하나님의  은밀 의지, 성령이 자기에게 가르쳐 주는 것, 성경이 가르쳐 주는 것이 정확해요  성령이 가르쳐 주시는 것이 정확해요? 어떤게 정확해요? 성령이 자기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그래서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속에 이 물질이라는 왕이 들어 가지고 교훈하는,  알맹이가 피조물이 돼 가지고 교훈하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그 사람들은  자기 속에 이 모든 피조물들이 주권을 잡아 있기 때문에 그들은 다 멸망하고  맙니다. 이런데 그것을 회개한 사람에게는 문서계시 속에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내주하셔 가지고 하신 그 상을 베풀어 주신다. 이러니까 요걸 가만히 이 성경을  보면 그뭐 하나도 거기서 뻐뚤어질 수가 없이 딱딱 맞춰서 그렇게 하나님이 해  주십니다.

 인제 발람과 니골라가 외식하는 종이라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외식하는  종이라. 표리가 다른, 껍데기만 하나님의 종이요 속은 마귀의 종이라, 돈의 종이라,  이렇게 외식하는 종인데 외식하는 종을 이기면, 외식하는 종의 교훈을 받지  안하고 이것을 반대하고, 외식하는 종의 교훈을 받아들이지 안하고 이것을 정  물리치고 승리하는 그것을, 교훈을 물리치고 자기가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사람은,  외식 교훈을. 받아들이지 안하니까 그 사람은 표리가 같은 진실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말이오. 속에 알맹이가 피조물된 그 교훈, 피조물이 되고, 알맹이는  피조물이 되고 껍데기는 창조주가 되고 이렇게 하는 껍데기 교훈 발람 니골라의  이 교훈을 이것을 이기고 나니까 정반대로, 정반대로 껍데기는 사람이요 알맹이는  하나님이라. 껍데기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이거 문서 계시고 알맹이는 볼 수  없는 내재하시는 성령의 지도 성령의 하나님의 계시라.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돌을 줄 터인데' 흰 두루마기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의 이 공로를 흰 두루마기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흰옷이라고도 했습니다.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고  하는 흰옷을 사라는 것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네가 사서 입어라 하는  그말인데 옷은 겉에 입고 몸은 속에 있는 것처럼 이제 흰돌이라고 하는 것은  사활의 대속 속에 들어 있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서 말합니다.

 흰돌을 줄 터이라, 흰돌을 줄 터이라, 외모에 사활로 대속의 흰옷을 만들었고  사활로 대속의 흰 두루마기를 만든 그 알맹이는 사활의 대속을 만든 그 실상은  무엇이겠습니까? 그 실상은 뭐겠소? 실상은 주님이시라. 그래서 내가 오전에  증거할 때에 흰돌을 뭐라고 말했지요?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형상.

 그러면 하나님의 항상이라면 하나님의 형상은 뭐이 하나님의 형상 인고 하니  하나님은 당신의 속성이 나타나서, 그분은 무형의 존재요. 무형의 존재기 때문에  그분의 형상은 곧 그분의 속성입니다. 그러니까 창조주는 아니지만 창조주와 꼭  같은 그 신격성과 꼭 같은 인격성이라 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형상이라. '그리스도는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인데 우리를 부르신 것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 함이라' 그말은 외부에 볼 때는  그리스도와 꼭 같다. 하나님과 꼭 같은 그런 모형적 그런 완전을 가리켜셔 여게  흰돌을 준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어때요? 억해라요 정당한 해석이라요? 이외에 딴 해석, 이 해석이 나오면 딴  해석이 못 들어와요. 이 해석이 나오면 딴거 요한계시록 해석이 암만 많아도 그거  여기 갖다 대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따져보고 따져보면 그것은 저 겉에 가  있습니다. 내가 이걸 그라고 흰돌, 감추었던 만나는 거의 같고 흰돌에 대해서 많은  주석들을 좀 보라고 해서 내가 물어들 봤어요. 흰돌을 줄 터인데 이제, 그리스도의  그 형상을 줄 터인데 그리스도와 꼭 같은 그런 신격성과 꼭 같은 인격성을 가진  그 인격성을 줄 것이다. 그러면 그리스도와 꼭 같은 인격을 준다.

 그런데 그 흰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다. 흰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다. 새 이름은 새 운동이라 말이요 새 행동이라는 말입니다. 새 행동이라  말은 전에 있었던 행동이 있고 또 그 행동 후에 있는 행동을, 그전에 있던 행동을  전제로 하고 이제 그 행동이 아닌 새 행동을 가리켜서 새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해  놨다, 새 이름이라. 새 이름은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 해서 대형, 대행, 대화목,  대부활로 대생 이렇게 사활의 대속을 주님이 하셨는데, 주님이 사활의 대속은  한번 하셨습니다. 사활의 대속을 하셨는데 또 새로 사활의 대속 한다 말입니다.

 새로 사활의 대속 해요. 주님이 사활의 대속 하는 게 아니라 이제는 흰돌을 줄  터인데 그 흰돌 위에 새 이름이 기록해 있으니 그 흰돌 그것이 뭐하고 있느냐  하면 새 이름 이거는 새 이름의 일을 하고 있다 그 말이오. 새 이름의 일을 하고  있다. 새 이름의 일을 하고 있다. 새 이름이라니? 새로 대형 대행 대화목 대생의  이 대속의 일을 하고 았다.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다. 이거 새 행동을 하는  것을 기록한 게 있다. 새 행동 하는 것이 거기에 있다.

 그러면 거게 있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단번에 대형 대행 대화친과 대생을 하셔서  대속을 하셨는데 이 대속 받은 자가 하나님이 책망하는 발람과 니골라의 교훈을  이것을 받아들이지 안하고. 받아들이지 안하고 하나님의 교훈만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것을 반대하면, 그러면 이것 반대하면 뭐입니까? 발람의 교훈은  속에 왕은 뭐입니까? 왕은 피조물입니다. 피조물 물질이든지 사람이든지 그  자신이든지 그거는 속에 피조물이 왕이고 하나님은 껍데기입니다. 하나님이  껍데기 붙어 있습니까? 제가 껍데기를 만들었지. 이런데 그와 정반대가 되면  알맹이는 하나님이요 껍데기는 사람이 되는 이것이 이제 이긴 자요 그와  반대되는 자입니다. 이거 무슨 말인지 뭐 알아듣겠습니까? 자꾸 조작배기 말  같지요? 그렇지 안해요? 그렇지만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안해요.

 그러니까 이제 이 적기독의 복음을 반대하고 진실한 복음으로 벌써, 그것을  발람과 니골라의 교훈을 받아들이지 안하고 발람과 니골라의 교훈을 반대하는  사람은 어떤 혜택을 입느냐? 감추었던 만나 먹고, 또 흰돌 받고 그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함이 있다. 그러면 새 이름을 줬다 말이오, 새 이름을 줬으니까 새  이름이 거기 기록돼 있다 그 말이오.

 그런데 이거는 받는 자밖에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면 새 이름이라는 이거,  여러분들이 뭐 자꾸 이것을 새겨야 알지 말로 해 가지고는 잘 안 되는데. 새  이름은 새 행동이라 새 운동이라, 새 운동이라니? 새 대속 운동이라 그 말이오.

새 사활의 대속 운동이라.

 대속 받은 그 사람이 이제는 그 사람이 이 발람 니골라의 교훈을 물리치고  참으로 자기 속에 하나님이 내주해 계셔 가지고 자기를 통해서 말하고, 또 그  사람이 속에 하나님이 내주하셔 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하는지 내주하지 안하고  말씀을 하는지, 하나님이 내주하여 가지고 그 사람의 전부를 통치하고 주권하기를  하나님이 주권하는 사람이 세 가지고 전하는지 자기가 피조물이 주권하고  있으면서 하나님을 이용 하는 증거를 하고 있는지 요것을 구별해 가지고 바로  잡았을 때에 거게는 무슨 결과가 맺어지느냐? 감추었던 만나를 필연적으로 안  먹을 수 없어. 그래야 감추었던 만나를 먹게 되고 그라면 이제 그 사람은  흰돌이라, 그리스도의 형상을 가지게 돼요. 그리스도의 형상을 가지게 돼.

 그리스도의 형상을 가졌는데 또 새 이름은 뭐라요? 그것만 지금 누가, 알란가  몰라. 새 이름. 새 이름은 뭐라요, 새 이름? 예, 새 이름은 예수의 새 행위라 그  말이오. 예수의 새 행위라. 예수님의 행위가 몇 가지입니까? 예수님의 행위가 몇  가지요? 네 가지인데 예수님의 새 행위 한다 말이요, 새 행위 해. 그러면 예수가  둘 됩니다. 예수가 둘 돼. 예수의 대속을 입어 가지고 이제 예수와 꼭 같은 자가  돼서 그자는 무슨 생활 하고 있느냐? 대형으로 인간을 사죄시키고, 대행으로  인간을 칭의시키고, 대화목으로 화친을 시키고, 대생으로서 그들로 하여금 영생을  시키도록 이렇게 하는 역사를 한다 그 말이오. 요것이 정말 예수님의 증인입니다.

요거, 요것이 주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그 모든 성자들은 다 그렇게  했어요. 뭐 프란시스라든지 사도 바울이라든지 이런 사람들은 다 그 행위 했어.

사도 바울 그런 사람들 뭐 이 모든 사도들은 무슨 일 했느냐? 그분들이 뭐 예수  믿으면서 이런 거 저런 거 하지 안했고 전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되풀이  하는 일 했어요.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자기네들이 다 그 생활 했어. 이것이 새  이름을 기록한 건데 그거는 받는 자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러면 예수님의 모형의 이 네 가지 사활의 대속 행위 하는 이것은 사람들이  껍데기 봐서는 모르고 자기 본인만 알고 본인만 은혜받고 본인만 이것을 느껴서  못견뎌서 그와 같이 하게 된다 말이오. 받는 자밖에는 모른다는 것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그리스도의 대형의 행위를 제가 해 볼 때에 비로소 예수님의 대형의  행위를 알게 됩니다. 제가 대형의 행위를 해 보기 전에는 예수님의 대형에 대해서  모릅니다. 제가 형제를 위해서 대행의 행위를 할 때에 비로소 예수님이 나를  대행한 것을 알게 됩니다. 자기가 해 보면 주님이 더 믿어지게 됩니다.

 자기가 양떼를 주일학교 학생 하나라도 두고 그와 같이 하면 그를 놓치지 않고  자기 속에 제일 사랑하는 것이 소원하는 것이 그를 위해서 죽어도 나는 죽고  그에게 유익되게 하려는, 그를 자기 위해서 이용하지 안하고 자기는 그를 위해서  완전히 이용돼서 어떻게 하든지 내가 죽어도 그는 살리고자 하는 그것이 속에  있는 그것을 체험하는 것이니까 그거 체험하지 안한 사람은 모른다 그탈이오. 그  이름을 받는 자밖에는 알지 못한다 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알 사람이  없느니라'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그러면 여게는 그 뒤에 두아디라  교회에 어떤 일이 생기겠나 하는 것을 이것만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눈이 불꽃  같고' 하는 것 보니까 두아디라 교회가 하나님은 봉사같이 소경인 줄 알고  하나님을 무시하는 그런 행위를 하는 교회라 그 말이오. 볼꽃같다 말은 하나님은  환하게 알지 못하심이 없는 전지의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을 그렇게 모르는 줄로  무시하고 이란다. 또 '빛난 주석이라' 하는 것은 연단한 주석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주석을 불에 넣어 가지고 또 연단하면 또 깨끗해지고 연단하면  깨끗해지는 거와 같이 주님은 땅위에 인성 입고 와 가지고 모든 것을 경험 체험  다 했고 인간들의 그 전체를 다 대행, 하나님의 공법에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인정할 수 있는 대행을 했고 대형을 했고 하니까 그뭐 모르는 것 없이 전부 다  경험하고 체험하고 다 아셨는데, 다 하셨는데 이 하나님을 모든 데에 무식한 줄로,  보지 못하는 줄로, 하나님이 아무것도 행하지 못하고 무식한 줄로 하나님은 보지  못하는 줄로 이렇게 인정하는 교회라, '빛난 주석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이제 예수님은 영원 자존자,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하나님의 독생자인데 이거 무시하고 멸시한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이거 두아디라 교회는 아주 주님을 모르는 것으로서 무지로 이렇게  무지자로 멸시를 하고, 또 주님은 아무 이 세상 경험이나 체험이나 그런 것에  대해서 전연히 모르는 분으로 이렇게 무시하고, 또 아주 이거 저것만도 못한 이런  천한 존재인 줄 알고 무시하고 이라기 때문에 여게는 주님이 나타나시기를  요렇게 세 가지로 나타나. 눈이 불꽃 같고 발은 빛난 주석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 보면 알아요. 내가 네 사업과 네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행위보다 많도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그러면 여게 내가 네 사업을 알고, 또 사랑을 알고, 믿음을 알고, 섬기는 것을  알고, 인내를 안다. 나중 행위가 처음보다 더 낫다. 이랬는데 가만히 이래 생각해  보면 어떻습니까? 내가 네 사업도 알고 사랑도 알고 그 사업이 제일 첫째가는  두아디라 교회입니다. 사업 위주, 또 사랑 위주, 그 다음에 믿음 위주, 섬기는 거,  인내하는 거, 열심히 또 이래 하는 거, 그러면 이렇게 하는 이 교회가 그것이  어떻습니까? 사업, 이 사업과 이 사랑과 또 믿음과 섬김 인내 이런 것을 이렇게  아주 열심히 하고 또 이걸 잘하고 있는데 이런 것은 보기에 이게 어떤 것입니까,  이렇게 하는 거 볼 때에? 그러면 이 교회는 어떤 교회라고 생각이 돼집니까?  이걸 여러분들이 잘 공부해 가지고 이 교회를 볼 때에 이 교회는 예수교가  아닙니다. 이건 예수교가 아니오. 이는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의 그거는 없고  사업부터 먼저 주장합니다.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에 대해서 감격하지 안하고,  '주님이 나에게 사죄 주셨다, 칭의해 주셨다, 또 하나님과 이와 같이 화친이 됐다,  하늘나라의 영원한 소망을 가졌다.' 이런 것은 무시하고, 이런 것은 무시하고  사업만 위주로 하는 그것은 예수교가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교가 아닙니다.

 그뒤에 '내가 책망한다' 하는, 책망한다 이랬는데 그러면 책망했으면 그 몇 가지  그거는 칭찬할 것이냐 하면 칭찬할 것이 안 됩니다. 그거는 칭찬할 수 없고  그거는 예수교인들이 하는 것 아닙니다.

 이래서 교회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에 대한 예수님의 피를 찬양하는 것,  하늘나라에 소망을 이와 같이 찬양하는 것 그런 것 없이 예수교가 이 사업만, 뭐  복음 사업이라, 또 무슨 또 구제 사업이라, 자선 사업이라 해서, 신학교가,  신학교라 하는 신학교가 처음에 복음만 거석하면 하나님이 은혜를 줘서 그  신학교에 축복을 해 주시니까 신학교가 진리로 나가고 하나님의 사람들이 많이  양성이 됩니다. 양성이 되고 나면 그 다음에 그게 어떤 걸로 삐끄러지느냐 하면  나중에 가서 학교 학교 병원 이제 이런 것을, 이게 있으면 구비해서 좋을 줄 알고  학교 병원 이런 것을 다시 시작하게 됩니다. 그런 것이 다 사업이요, 하나 구제요,  뭐 사랑이요 이런 것입니다. 그라는데 벌써. 그것이 시작되면 그 신학교는 그만  헛일입니다. 그 신학교는 그만 헛일이오.

 꼭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그렇게 병원해 가지고 자선 사업, 구제 사업 하고 또  학교를 해 가지고 믿는 사람들만, 너무 세상이 험하니까 믿는 사람들 따로  구별해서 교육시키고 이라면 대단히 잘 믿는 것 같고 교회가 잘될 것 같지만 그  교회는 벌써 촛대를 뺏기고 있는 것입니다. 안 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뭐 한국에도 아는 대로 그런 교회를 보십시오. 그게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이게 뭐 안 믿는 아이들하고 그라고 하니까 계명 지키기도 안  됐고 또 다른 안된 그런 교훈들도 자꾸 듣고 자유도 없고 이라니까 믿는  사람들은 믿는 사람들끼리 학교를 만들어 가지고 교육을 해서 이래 가르쳐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을 해 가지고 미국 같은 나라는 아마 거의 다 그런 것이 다  벌써 조립이 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만 따로 공부하는 그런 학교  다 돼 가지고 있습니까, 저 O장로? 미국에? 거의 다 돼 가지고 있지요? 그것이  틀렸습니다. 꼭 좋은 것 같은 게 틀렸습니다.

 그것을 따로 놓고 가르칠 게 아니고 일반 이 일반인들과 같이 있는 그 속에  섞여 있으면서 거기서 복음 생활하고 복음대로 거석해야 되지 그거 따로 나가  가지고 가르친다고 복음이 돼지는 게 아니고 그거 나중에 그라다 보면 그렇게  하는 그런 교회든지 그런 나라마다 결국은 예수님의 사죄와 칭의의 사활의  피노래는 안 부릅니다. 피는 없어지고 나중에 가 그때 사업주의로 나가고  자선주의로 나가고 됩니다. 이래 천주교는 자선주의는 참 아주 잘합니다. 그러나  거게 예수님외 사활의 대속이라는 것은 알지도 못합니다. 말해야 뭐인지 몰라요.

 이러니까 마귀란 놈이 이렇게 바꿔서 바뀌게 되고 만다 그 말이오. 사업이 제일  먼저 있는데 사업이 먼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이 먼저 있고 거게 감격해 가지고  자기 힘 있는 대로 한 사람 두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이래 가지고 할 일이지  사업부터 먼저 하는 이것이 복음이 아닙니다. 이것도 아주 중대한 문제요. 우리  진영에도, 우리 진영에도 내가 죽고 나면 그 뒤에 어떤 사람이 바로 보수할  사람이 있을란지 모릅니다. 이라면 좀 있다 보면 '아무래도 우리도 우리끼리  공부하는, 사회학을 공부하는 이 학교도, 이거 설립을 해야 되겠다. 또 이러면  환자들도 있고 하고 이러니까 이걸 뭐 얼마 좀 자선 사업으로 해 가지고 병원을  해 가지고 이렇게 해야 되겠다.' 자꾸 이래 가지고 나가는 그것이 다 교회가  틀린다 그 말이오.

 서울에 있는 O대하고 또 O대하고 그거는 O대 O대는 어디서 했습니까? O대  O대는 어디서 했소, 무슨 교파에서 했소? OO교파에서 했지? OO교파에서 했으면  OO교파에서는 총회가 모이면 하는 일이 그 두, 학교와 병원에 대해서 그 일이  그들의 모이는 일일 것이요 다만 그들의 그것은 복음 운동이 아니고 그저 학교  운동 또 병원 운동 이것이 큰 일인 줄 알고 돈도 거기 많고 거게 감투도 큰 감투  더러 있고 하니까 그거 가지고 시비하고 그거 가지고 만날 경영하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의 복음 사업이라 하는 거는 벌써 가라앉아 버리고 맙니다.

 거게뿐 아니고 이 부근에도 그러합니다. 여기 OO신학교에서도 OO신학교 되고  난 다음에 OO신학교서 자꾸, 그거 그만 그때는 아주 왕성했고 진리를 가르쳐서  한국에서 신학교 중에는 제일 으뜸이 가는 신학교였었습니다. 이랬는데 아주 그  필요한 것으로 부속으로서 OO병원을 차렸는데 OO병원 차리고 난 다음에는 그  다음에 '이제 대학을 만들어야 되겠다, 종합대학 만들어야 되겠다, 그것은 또  의과를 또 만들어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 이제 그 OO신학교라 하는 그 신학교는  학생들도 보면 머리 좋은 아이들 똑똑한 아이들은 의과니 법과니 그리 다 가고  이 신학 가는 거는 이거 찌끄러기 이거 못쓸 그런 것만 있는 쪽으로 이렇게 돼  버리고 이래서 이제 신학교는 쫓겨서 쫓겨서 어디로 갔는지, 저 OO신학교 학생  저기 와서 하나 있네. 보자 너, OO신학교는 어디 가 있노? 영도라? 영도로  쫓겨갔나? 어? 뭐라 하노? 부천? 부천이라니? 서울? 서울 부천으로 날아갔어?  완전히 쫓겨나갔습니다.

 그 OO신학교가 가치 있지 OO병원이니 뭐 종합대학이니 그거, 그들은 가치로  보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거 가치로 보지 않습니다. 그런 거 천개 만개 해도  OO신학교에 똑똑한 인제를 양성하는 그 신학교가 가치 있었는데 완전히 그거는  변질돼서 달라지고 말았어. 이런 거는, 이런 거는 시야가 좁기 때문에 모릅니다.

 이런 거 비판하고 거기 가서 생각해 보지도 못합니다. 논리해 보지도 못해요.

 이제는 학교 자체에서 이거 세상 학문이 머리지 신학교라 하는 건 저거  찌글찌글 저것들은 저거 사람 같지 않고 바보 팔푼이 저런 것 들이나 저기 있지  하고 아주 업수이 보고 또 그 자체들이 업수이 여깁니다. 그러면 지금 거기서는  뭘 제일 위대하게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까? 뭘? 거기서는 돈을 제일 높이  평가하고 그 다음에는 둘째로는 과학을 둘째로 높이 평가하고 셋째로서는 이  사업주의로 무대니 사업이니 그런 것을 높이 평가하고 신학교라 하는 것은 그  꿈에, '우리 선조들은 뭐한다고 그런 거 했을꼬?' 하면서 아주 시시하게 그렇게  여기도록 그렇게 완전히 매몰이 되고 말았습니다.

 제가 OO신학교 있을 때에 이 문제 때문에, OO교파에 있을 때에 이 문제 때문에  많이 싸웠습니다. 많이 투쟁을 했습니다. 이래 가지고 그것을 대학으로 만들라고  할 때에 시비도 했었고 신강도 했었고, OO병원을 만든, 처음에 시발하기를 한부선  목사님이 시발했는데 언제 몇해 되고 난 다음에 내가 한부선 목사님에게 '한부선  목사님, 복음 병원을 누가 세웠습니까?' '하나님이시지' '목사님이 시작해 가지고  세운 것 아닙니까? 거기 지금 목사님이 거기 얼마나 주관을 하고 지도를 하고  있습니까 목사님 뜻대로 합니까, 하는 게 있습니까 없습니까?' 말은 안 하고,  자존심에 말은 안 해도 주관하는 거 한 내끼도 없습니다. 전부 돈벌이지 복음  위해서 하는 것 아니오. 복음 위해 하는 게 아니고 돈벌이 때문에 하는 거라.

 이러니까 이 교회라 하는 것이 벌써 예수님의 피를 떠나면 다 망합니다.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떠나면 다 망하요. 그 망할 때에 어떻게 망하느냐?  망하는 것이 다 모두 에베소 교회와 같이, 에베소 교회는 보니까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첫째가 행위야. 그러면 행위로 삐끄러져. 행위는 예수님의 피 결과로  맺어지는 거라야 되지 예수님의 피 보다 행위가 앞서가면 안 됩니다. 예수님의  피보다 이 사업이 앞서가면 안 됩니다. 예수님의 피보다 사랑이 앞서가면 뱀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은 사랑이 아니면 뱀 사랑이라 그 말이오.

 그래 이 두아디라 교회는 '네 사업과' 예수님의 피는 없이 첫째가 일호가  사업이오. 제일이 사업이오. 사업주의요 사업주의. 사업주의 이것 때문에, 내가  강도사 인허 시취 설교를 할 때에 그때에 그 총노회 앞에서 시취 설교 했는데  시취 설교할 때에 내가 설교하기를 이런 설교를 했어. '우리 OO교파에는 가진  보화라 하는 것은 하나님과 진리 외에 딴거는 없다. 학문도 다른 진영에 비해서  근방에 따라가지도 못 한다. 재정도 못 따라간다. 인품도 못 따라간다.

 찌끄러기들만 주 모았다. 다만 있는 것은 하나님과 진리밖에는 없는데 이제는  하나님과 진리를 내놓고 이 사업주의로 이래 나가 가지고 이와같이 사업주의로  변해졌다. 하나님과 진리를 내놓은 게 무슨 증거냐? 하나님과 진리를 증거하는  것은 파수군밖에는 없는데,' 그때 교계에 내보내는 것은 파수군에 거게 올바른  교리와 신조를 담아 가지고 내보내서 저 다른 교파에서는 그걸 참 아주 생명같이  삼고 이래, 요새는 뭐 잡지들이 많지만 그때는 그거 많지를 안했습니다.

 이랬는데 그만 파수군 그거 돈들고 한다고 그만 폐간을 시켜 버렸어 그거는  누가 했느냐 하면 박윤선 목사님 주필이고 또 거기서 목사님이 약간 끼웠고,  오종덕 목사님이 약간 끼웠고, 주필은 박윤선 목사님의 주필로서 그거 파수군을  늘, 월간지던가 주간지던가? 어? 월간지라? 그때는 돈이 없으니까 뭐 그 주간으로  못 내요. 요새는 막 마구 써내니까 뭐 그렇지만. 월간으로 해도 한 달 동안 그거  참 가치 있는 걸 쓸라 하면 기름이 녹습니다. 얼마나 힘드는 것이라. 이거 폐간해  버렸어.

 폐간해서 신강하다가 정 그러면 우리가 하겠다고 우리 서부교회서 단독 그  파수군을 그때에 얼마 했던가 일 년 했던가 얼마 했습니다. 하니까 나중에 가서  다른 사람들, 그거 내가 설교 그거 하고 난 다음에는 그래 이거 안 됐다 싶어  그런가 그걸 도로 돌려 줄 수 있느냐? 하기 때문에, '돌려 갈 수 있느냐?' 그것도  또 하면 좋지만 그 소리 안 해요. 안 하고 자기네들이 그래 한다고, 그래 파수군을  한다 해. 그라면 하라고. 고맙다고. 그래 내가 양보하고 말았어요.

 그때 이제, 하나님과 진리는 뒤로 돌려버려 버리고 이 사업주의로 국제 무대에  나타나는 이거 명예주의로 이래 가지고 한다고 이래 놓으니까 그 소리 할 때는  다 들었는데 그 나중에 하고 나니까 점심 먹고 나니까 OOO목사님이 있다가  야단을 치면서 '백 조사.' 고함을 지르면서, 무슨 뜻으로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두  번 고함을 질러. 내가 하도 그만 보기에 그만 같잖아서 내가 뒤에 발을 딱  탱글트리고 뒤에 딱 해 가지고 동글라 가지고 이래 보니까 그만 거기서  말았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그번에 내가 강도사 시취 합격이 안 됩니다. 안 된다고, 안  된다고 이랬는데 그래서 거기서 왜 그분을 강도사 시취 합격을 안 시킬까보냐고  하도 총노회서 시비가 나서, 그때 OO교파가 하나 노회 하나뿐이기 때문에  총노회라. 총회 겸 노회라. 이랬었는데 그래 가지고 '그라면 우리가 투표를 해  가지고 하자' 투표를 하니까 나 하는 숫자가 많아서 할 수 없어서 강도사 인허를  그때 허락했습니다.

 인허 했는데, 시취를 했는데 순서는 내가 일등이라고 시취관이 시험관이 그렇게  말했는데 떡 나를 앉히기는 셋째로 앉힙디다, 셋째로. 어쨌든지 그때 가서 자격  시취는 빨리 따야 되지 여기 안 따면 뒤에 가서 무슨 소리 들을지 모른다 해  가지고, 그때 뭐 나는 부흥회 하고 돌아다닌다고 그런 것 생각도 안 했어요.

 그라다가 이 눈치를 보니 안됐어서 그래 그만 시취를 해 가지고 그래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 요거 또 똑똑히 알아요. 예수님의 피와 사랑에 감격해서! 예수님의 피와  사랑에 감격해서 일어나는 사업도 좋고 모든 거 하는 것이지 예수님의 피와 살  이 대속을 다 무시하고 이제 예수교니까 사업에 취미를 붙이고, 또 돈벌이에 취미  붙이고, 명예 취미 붙이고, 사람 구제, 사람 구제가 암만 좋지만 예수님의 피가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자, '사업과 사랑을 안다' 사업과 사랑 이 사랑이 무슨  사랑이요? 하나님의 사랑이요 뱀의 사랑이요? 뱀의 사랑. 그러면 '믿음을 안다'  믿음은 이거 무슨 믿음이요? 하나님 믿는 믿음이요 세상 것 믿는 믿음이요?  하나님을 이용해 먹는 믿음이라. '섬김과 인내를 아노라 나중 행위가 처음  행위보다 많도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것이 있노니' 이제 이러니까 이렇게 모두  하는 것이 하나님 무시해. '하나님은 소경이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모른다. 뭐  그는 한 목수의 아들 아닌가?' 하나님을 이렇게 무시해 보기 때문에 주님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내가 걸어온 걸음은 연단받은 주석같다 수많은 모든 것을  세상에서 경험하고 체험하고 다 한 내다.' 또 '눈이 불꽃 같아서 알지 못하는  것이 없다.' 이 주님으로 두아디라 교회에 나타나셨습니다. 사람들이 제가 아무리  뭐 못나고 훌륭하지 못하다 해도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자꾸 노래부르면  못나도 자꾸 잘나지고, 약해도 강해지고, 어리석어도 지혜로워지고 그렇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잊어버리고 어떤 좋은 걸 꿈을 꾼다  할지라도 그는 그때부터 자꾸 죽어가는 것이지 사는 것은 없습니다. 이 설교하는  것을 주님이 지금 어디 귀하고 이런데 이 설교하는 걸 주님이 기뻐하실 것이야.

 기뻐하시니 지금 여기 시원하게 해 줘요, 시원하게.

 부산은 삼십육도래요. 삼십육도인데 아마 저 건너 저 내 건너 가서 보면 거게도  아마 삼십 한 이삼도 될란지 몰라요. 여게는 왜 이리 시원한지. 당신이 기뻐하고  좋아해요. 아무도 안 하고 무시하는데 이거 이 말씀을 하니까 당신이 좋아해요.

 당신이 이 집회를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좋아하는 걸 확신해요, 내가. 확실히  믿어요. 확실히 알아요. 여게 반하는 것은 하나님이, 반대하는 것은 하나님이  섭섭해 하시요.

 이래서 책망할 것이 뭐이냐? '네게 책망할 것이 있노라' 뭐 책망해?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이세벨은 어떤 사람입니까?  이세벨은, 이세벨은 불택자입니다. 이세벨은, 그때에는 이방에는 구원이 없었고  이스라엘 본 족속에게 있는데 이 이세벨은 이방 여인이오. 몇 장에 있지?  열왕기상 16장 아마 1절 이하에 있을 것이라. 있는데 이방 여인입니다. 이방  여인이니까, 그때는 하나님의 구원이 이방에는 없었습니다.

 이러니까 지금으로 말하면 불택자라 그 말이오 불택자. 불택자가 선지자  노릇합니다. 불택자가 선지자 노릇. 그런데 그는 그가 선지자 노릇 하기로 들어온  때가 어찌 됐느냐? 왕의 딸인데 인물이 잘났어요. 아주 인물이 잘났고 아주 말  잘하고 민첩하고 지혜 있고 이라니까 그만 아합 왕이 녹아 버렸다 말이오. 아합  왕이 녹아서 아내를 삼아 버렸어. 아내를 삼으니까 이게 들어와 가지고는 아주 뭐  선지자, 하나님의 도에 대해서는 가장 위대한 선지자로, 말 잘하지 지혜 있지 뭐  이라니까 모든 하나님의 종들이 거게 솔빡 다 넘어가 버렸어. 그때 안 넘어간  사람이, 안 넘어간 사람이 '나만 남았나이다' 이라니까 하나님께서 몇 명이나  살았다 했습니까, 바알에 머리를 구부리지 안한 사람? 칠천이 남았다고 했습니다.

 다 넘어갔어. 거의 다 넘어가 버렸어. 이런데 그게 소속도 이방이라 불택자지 또  그것은 아세라 목상 또 뭐 아따 무슨 우상이고? 바알 우상. 이런 거 그게 저거  신입니다. 그게 저거 신인데 이래 가지고 차차 차차 이제 저거 신을 자꾸 이렇게  사람들에게 저거 신을 섬기라고 이렇게 말하고 하나님 신을 배척하고 하는  이라면서 말을 잘하지 또 그때 왕이 아합 왕이니까 뭐 권리 있지 않습니까? 아합  왕 이것을 꼬와 가지고 이래 놓으니까 아합 왕 이게 세력을 가지고 억압도 하고  이라니까 그때에 하나님의 종들이 그만 그 아주 예쁜 이세벨의 웅변에 넘어가지  교제술에 넘어가지 그때 선지자라 하는 것들도 이세벨이 와서 청해 가지고 뭐 좀  대접이나 해 주고 등어리나 살살 쓰다듬어 주고 이렇게 해 놓으면 그만 거기  반해서 넘어가서 전부 음행 다 해 버렸어. '여인으로 더불어 음행했다' 그래 놨어.

 뭐 이게 뭐 수단 방법 가리지 안하고 이래 놓으니까 솔빡 넘어가 가지고 이래  가지고 그만 이스라엘 백성들을 완전히 멸망을 시키는 그런 일을 한 것입니다.

 그래,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워 행음하게 하고 또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우상의 제물은 해석했으니까 잘 알 것, 그거는 하나님 외에  딴것을 이제 하다님보다 더 높이 섬겨서 하는 그것이 우상을 섬기는 것이요, 거게  동참해서 그것을 부러워하고 따라가는 것이 우상의 제물 먹는 것이요, 행음하는  것은 세상하고 짝되게 하는 것이라, 세상하고 짝되게 하는 것.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되 그 음행을 회개코자 아니하는도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이 침상에 던져. 그러면 지금 오늘로 말하면 이  이세벨이 어떤 것입니까? 이세벨은, 아주 이 세벨은 특이성이, 이세벨의 아주  특수성이 뭐이냐 하면 예쁘고 잘났고 말 잘하고 또 민첩하고 수단 좋고 아주 또  배짱 있고 그런 여자입니다. 그뭐 배짱이, 배짱이 얼마나 있었는지 모르요, 성경에  보면. 아주 수단 좋은 자라. 그런데 그거는 이방 여인이라.

 오늘로 말하면 교회 안에, 교회 안에 남자든지 여자든지 이 세상에 민첩하고 또  수단 좋고 또 정치성 있고 활동성 있고 모든 면이 민첩해. 민첩해 가지고 이  어리석은 교권자들을 다 사로잡아요. 교세에 교권들. 아합 왕은 누가 아합  왕입니까? 아합 왕은 그때에 이스라셀 백성의 왕이라. 오늘은 우리 총공회 왕은  누가 제일 왕이 되겠어? 내가 왕이 될 거라 말이야. 내가 왕 안 되겠소? 내가 왕  안 되겠소? 내가 왕 안 되겠어? 이런데 아주 말 잘 하고 인물 좋고 수단 좋고  지혜 있고 이래 가지고 살살 나를 꼬와 넘겨서 내가 거게 꼬여 넘어가게 되면  두말 할 것 없이 이거 총공회는 다 무너지고 만다 그거요.

 이제 총공회는 그렇지만 교회도 교회 왕은 누구라요? 교회 왕은 누굽니까? 교회  왕은 교회 목사든지 장로든지 그들이 다 왕이라 그 말이오. 왕인데 이 왕이, 왕이  좋아하는 거. 이세벨은 여자지만 여자도 있고 남자도 있고 집사도 있습니다. 실은  그게, 그게 택한 자도 아니요.

 이래 가지고 그것에게 주권을 줘서 그거 시키는 대로 이렇게 하나님 말씀에  위반된 것을 이리 저리 해 가지고 전부, 자꾸 그게, 하고 나니까 하고 나면 그  결과가 보일 때에, 이세벨이 와 가지고 그렇게 자칭 선지라 하고 했는데 그  결과를 보아서 알라 했어. 우리가 뭘 잘 모르거든, 나무를 모르거든 열매를 봐라.

 나무를 모르거든, 나무를 모르거든 열매를 봐라. 나무를 모르거든 열매를 봐라.

 이러니까 그 행동하는 것이 뭐인지 잘 모르거든 그 결과를 봐라 했어. 그 결과가  어찌 됐어? 결과가 뭐 했습니까? 결과가 뭐 했어? 자, 우상의 제물 먹게 했고. 또  하나 또? 행음하게 했고. 이 두 가지 했어 두 가지 했어. 이제 교회에 목사든지  그리 아니면 거게 뭐 제일 권리 있는 장로든지 어짜든지 교회를 주권하고 있는,  제일 주권하고 있는 그 사람이. 그 사람이 벌써 예수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의  하나님의 사대 이 대속에 붙들리지 아니하고 권리는 잡고 있으면서, 권리는 잡고  있으면서 저 좋게 하는 이세벨 같은 거 이런 여자를 용납하고, 이세벨 같은 이런  집사를 용납하고 이래 가지고 그게 그만 교회에 판을 치고. 뭐 얼마나 수단이  좋소? 저 언제 OOO교회 가 가지고 내가 전부 주일학교 반사들 총 사면을 싹 다  시켰어. 한 사람도 없고 사면을 싹 다 시켰어 내가 여기 부산 있으며 가 가지고.

 왜? 보니까 그 안에 이세벨이 들어앉았다 말이오. 여러분 이거 모르면 목회 잘  못 해요. 이세벨이 들어앉았는네 이세벨 이것만 쫓아내면 그게 들어 가지고 전부  반대 운동을 도모할 것이고 이러니까 이걸 이래서 안 되겠고 지혜롭게 해야  되겠다 해서 전부 하나도 없이 전면 사면을 시켰어. 우리 O목사님? OOO목사님  계셔요? 어디 있어요? 어디로 저 아마 구석으로 들어갔는가보다 하나도 없이 싹  사면시켰어. 사면을 시키고 이제 앞으로 봐서, 너거는 주일학교 반사 할 수가  없으니까, 다 안 된다 하니까 뭐 그것도, 다 안 된다 하니까 저도 거석하지 다 안  된나 하고 이제 앞으로 반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중생도 안 한 자요. 그런데  그자가 어떻게 민첩하고 재치 있고 수단 있고 이렇게 잘 하는지 그만 여기  목사가 홀빡 녹았다 말이오. 흘빡 반해 버렸어. 봐서 반사 될 만하면 하나씩 둘씩  될만한 사람만 등용을 하겠다 그래 가지고 그때 한번 아주 정선을 한번 한적이  있었습니다.

 그게 꼭 불택자가 그런 것이냐? 불택자도 그렇지만 택자도 이세벨 노릇하는 게  있다 말이오. 이래서 박윤선 목사님은 이세벨을 목사들 사모라고 딱 이래 놔  버렸어, 해석을 하기를. 내가 OO교파에서 핍박을 받고 뭐 이랄 때에 왜 그렇게  환난을 그렇게 심하게 당한 줄 압니까? 심하게 당한 줄 아는 것은 내가 신학교  졸업할 때에 모두 신학교 졸업이라고 모두 다 우 오는데 내가 딱 함부래 오는  분들, 차타고 오는 분들 거게 딱 섰다 말이오. 밉상은 밉상이지. 딱 이래 섰으니까  OO교파에 제일 왕되는 목사님들 네 분의 사모님들이 떡 타고 와요. 타고 와  내리요. 그래 내가 인사를 하면서 '여왕님들 오십니까?' 내가 이래 놨다 말이오.

 '여왕님들 오십니까?' 왜? 이거 사모님들이 목사들을 딱 코군더리를 꽉 거머쥐고  사모들이 요리 조리 하면 거기 따라서 전부 움직이고 아무리 좋아도 안 돼. 거기  따라 움직인다 말이오. 그게 미워서 내가 이름을 여왕이라 이름을 지어 버렸어.

 이래 가지고 택시를 한 군데 택시 너이 타 가지고 내려 그래 내리기 때문에  '여왕님들 오십니까?' 내가 이래 놓으니까 부애가 나지만 어짤 거라? 그래 '왜  우리가 왜 여왕이라요?' 이라더구만. 이라고 나서 들어가. 뒤에 가 말 들으니까  '시골 산골 그 조사인가 뭣인가 하나 왔는데 그게 모두 기념품 한 것은 그  기념품이 통시집만 하네. 이 학생들 전부 기념품 다 모아도 백 조사 그거 기념품  혼자만 못하구만' 그말대로 많았어요, 그때. 아주 많았어. 많아서 전부 주고 내가  팔았습니다. 그거 뭐 달리 할 수 없고.

 이래 보면 벌써 저거는 여왕이라. 제까짓 게 암만 떠들어 쌓아도 그 여왕을 처리  못 하면 헛일입니다. 이세벨 들어서 그걸 봐서 보니까 '그분이 저 사람을 붙들고  일하는데, 저 사람을 붙들고 일을 하고 그 사람의 사람이 됐는데 열매를 보자.'  열매를 보는데 열매가 몇 가지 라요? 두 가지. 우상의 제물 먹게 하고 행음하게  하는 거라 그 사람하고 일하는데 설설 자꾸 세상하고 짝이 돼서 세상은 자꾸  짝이 돼 세상과 가까와지도록 이렇게 만들고 또 뭐 이거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게 아니고 뭐 딴거 이런 거 저런 거 뺄쭉난 그런 걸 무엇이든지 사업이든지  돈이라든지 무슨 어떤 인물이라든지 그런 것을 자꾸 이래 가지고 보니까 예수  그리스도에서 이탈돼 가지고 딴데로 어마는 것이 돼지는 그것을 볼 수가 있다 그  말이오.

 아무리 주관해도 그 결과가 보니까 더 교회를 더 깨끗게 하고 더 예수를 바로  믿게 하고 아닌 것을 자꾸 이래 거석하고 이렇게 자꾸 예수 그리스도에게  접근시키고 사활의 공로로만 충만해지게 하는 것은 그런 이세벨이 아니라. 그거는  이세벨이 아니고 곧 선지자로 대우해, 선지자.

 이래서, 보면 벌써 목사가 사모의 주권하에 있으면 헛일입니다. 이 사모님들도  자기의 목사를 주권해 가지고 목사에게 대해서 이리 저리 하면 목사가 제 말  듣고 이라니까 좋은 줄로 알지만 저는 이세벨 되고 그 목사는 아합 왕 돼 가지고  마지막에 어쨌지? 박살이 어째 나 버렸노? 어? 산산히 조각이 났어. 팍삭 박살이  됐구만. 뚝 떨어져 박살이 됐어. 영 바짝 깨져 버렸어. 그 아합 왕은 어찌 됐노?  전쟁에 죽었고. 그 아들은 칠십인인데 어찌 됐지? 아들은 칠십 명인데 칠십 명  모가지를 한목 끊어 가지고 한 광주리에 칠십 명을 담아 가지고 그래 절단이 나  버렸어. 여러분들, 하나님은 무서운 하나님이요. 소멸하는 불이니라.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니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이제 하나님의 종 노릇을 할라 하면 어짜든지 자기가 밤낮으로 주님의  사활의 대속을 노래를 부르고 자꾸 이래 해도 어만 게 틈이 타 나가는데 그만  잠깐 잊어버리고 그뭐, 이렇거든. 내가 어떤 목사한테 말 들어 보니까 영 그  부인이 여기 와 가지고 이거 마귀 노릇 하고 이라는데, 이래 놓으니까 교인들은  있지 또 밑에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지 이라니까 이걸 소리 안 나구로 할라  하니까 종의 종이 되고 죽어야 되고 이래.

 그래도 그분이 다른 것은 종의 종이 되고 무슨 일 해도 하나님은 양보하지 안해.

 그러니까 최후의 승리를 했다 해요. 나는 그런 말 처음으로 들었어.

 OOO목사님한테 들었어. 누가 있다가 '이 사람들아, 마누라 말 안 듣는 사람이  있나?' 이라니까, '마누라 말 듣는 사람은 다 이리 나서거라' 하니까 다 이리  나서고 하나만 있더래요. '너는 마누라 말 안 듣느냐?' 이라니까 말하기를 '우리  마누라가 여러 사람 가는 데로 가지 말라 하더라.' 그라며 그거는 안 나오더래요.

 그말 나는 처음으로 듣고 세상이 이런 바람으로 돌아가는데 나는 이 세상을  모르고 정반대 생활 했으니까 이거 가정 파란이 있을 수밖에 더 있겠느냐? 양보  없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또 말하기를 백 목사는 뭐 딸들이 옆에 있으니 딸들 말만  듣는다고. 딸들 다 가 버리고 하나도 없고 하나 있는 것도 다 가 버렸는데 그라면  정치를 내가 누가 하지? 정치는 누구 말 듣고 했지? 그라니 또 말하기를 집사들  몇 분이 그런데 그이를 만난다고. 어리석어. 어리석어. 그라면 이 열매를 보아  알지. 그라면 이 서부교회가 이래 유지가 돼져요? 만나면 뭐이라도 그 사람 말 다  듣는 줄 알아.

 그래 가지고, '그거 됐다.' 그래 가지고 내가 될 수 있으면 내가 주장해서 하지  안할라고 들어요. 뭐이든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옆에 아무도 없으면, 그 옆에  어린 아이가 있으면 어린 아이로 하여금 그 말 하도록 만들어요, 내가. '이렇고  이러니까 야 이래야 되나 저래야 되나? 네가 이거 해 봐라. 니렇고 이래 가지고  있으니까.' 어린 아이라도 나중에 그라면 '이래야 됩니다.' 그걸 알고 '이래야  됩니다. 할 수가 있어 그라면 '햐, 야. 네 말이 맞다. 그라면 네 말대로 해야  되겠다.' 나 이라는 사람이야.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어디든지 순종 생활로 하지  내가 왕 노릇 할라고 하지를 안해요. 내가 아는 것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백지  자꾸 이리 저리 해 가지고 알도록 이래 가지고 주장을 하도록 하면 거기  따라가도록 이렇게 하기는 해도 단쇠 한가지라, 단쇠. 이거 여기 시골에 지금은  없는지 몰라도 솥장수들 솥 때우러 오지 안해요? 솥 때우러 오면 이거 무쇠를  녹혀 가지고 이거 뭐 딩겨든가 뭐이 요래 얹어 놓고 도글도글하면 뺄가이 아주  몰씬몰씬하게 참 좋습니다. 훅 둘러마시면 싶어요. 이렇지만 대이면 타 버려.

단쇠같애.

 하나님의 사람들은 요렇게 몰캉몰캉해서 그거야 집어먹었으면 좋겠다, 그거 아주  순하고 부드럽고 그거야 그만 당장 먹고 삼켜도 되겠다 하지만 삼키면 타 죽어.

 이게 하나님의 사람들이라, 그렇게 곱고 아주 새악시 모양으로 순하고 이렇지만  속에는 세계도 태울 수 있는 그 능력을 가지고 온 세셰가 달라들어도 꼼짝도  안하는 그런 사람도 있어. 그게 예수 믿는 사람이라, 이래서 오늘은 이세벨 이걸  좀 고쳐야 되겠는데. 이세벨 고쳐야 돼. 어짜든지 나를 대신해서 사활의 대속을  주신 그분만이 나를 주관하지 그분 외에 다른 것들에게 주관을 주면 안 됩니다.

그라면 그것은 이세벨 돼 망하고 나는 아합 왕 돼서 망해요. OOO목사, 이세벨 안  만드나. 마누라? 안 만드나? 만들면 마누라 이세벨로 망하고 너는 아합 왕이 돼  가지고 망한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재미 있다!! 이라면 부인들 섭섭해요 안  섭섭해요? 섭섭합니까? 이세벨 마누라 말 듣지 말라 하니까 부인들 섭섭해요 안  섭섭해요? 섭섭한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섭섭하면 망해. 안 섭섭해야 되지.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이런 교훈을 들어  보지를 못했어요.

 이라기 때문에 어디든지 가 보면 남편하고 남편하고 한덩어리가 돼 가지고 이래  있어도 그 속에 여자가 들어서 요래딱 조래딱 해 가지고 그만 그래 됩니다. 그래  가지고 다 깨져요. 이 교파들이 깨진 것도 그렇고 그거 유력한 인물들아 절단나는  것도 다 그렇고, 합하면 강하고 나뉘면 약해져요. 나눠지는데 이거 합하면 강해질  터인데 합한 것을 나뉘게 만든 것이 누구냐 하면 여자라 그 말이오! 이세벨 말  들으면 그래요. 그거는 본래 생기기를 단둘이만 붙어 살지 옆에 붙여 살면 못써  여자는 그래 안 돼. 그래 만들어 놨거든. 그런데 그 사람을 자기하고 단둘이고  자기에 수종들게 하면 보배 중에 보배야. 마누라가 보배 중에 보배라. 그러기  때문에 '좋은 아내를 얻는 것은' 하나님의 뭐라 했지? '여호와의 선물이라' 했어.

 이런데 이것을 그리 하지 안하고 이것을 정치를 만들어서 이것이 뭐 모든 것  판단을 하고 주장을 하고 해 버리는 날이면 다 갈라져 버리고 다 헛일이라.

 이렇게 저렇게 다 갈라지고 다 헛일이라. 그래서 성경에 뭐라고 말했어?  '잠잠하고 머리를 들지 말라' 했어. 잠잠하고.

 그러니까 이 말 가지고 '여자들은 설교도 못 한다.' 그거 여전도회 설교 내가  여자들 시킵니다. 또 여자들 설교 시켜. 여자들 설교 시키면 여자들은 교회서  잠잠하고 그렇게 주장 노릇 못 하게 하라 했는데 그 설교 시키면 안 돼요 돼요?  안 돼요 돼요? 어? 내가 주장이 있거든. 내가 대가리거든, 그래 놓으니까 그  여자들 시킬 수가 있어요. 어디든지 그럴 수가 있어. 꼭 성경 법대로 나가야  됩니다.

 회개치 아니하는도다 뭣을 회개치 안해? 그걸 회개치 안해. 이세벨에게 미혹받는  거, 이래 가지고 모두, 교훈이 아무리 좋아도, 아무리 내게 좋게 해도 또 아무리  행위가 좋아도 벌써 교리와 신조가 틀렸거든 귀신인 줄 알고 다 물리쳐야 됩니다.

 꼭 교리 신조 가지고 그것을 다스려야 되지. 자기 남편이 예를 들면 이 교훈을  백 목사 교훈을 똑 들어서 '그 교훈이 좋다.' 이 교훈을 받아 실컷 은혜를 받고  가니까 속에 이세벨이 앉았다가 떡 말하기를, 당신은 똑 백 목사 설교만 자꾸  따라가고 그라느냐고, 그래 가지고 좀 섭섭하게 여기고 시시하게 여기니까 그거  아내에게 좀 높이 보이기 위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백 목사 설교를 못 합니다. 백  목사 설교 하면 또 마누라가 또 하기를 '저 또 백 목사 또 내나 설교를 따다 지금  그래 하고 있다.' 이래서 아내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백 목사 설교를 사용도 못  하고 증거하지도 못해요. 증거하면 섭섭해 하거든. 그거 증거 안 하면 '우리  목사님은 항상 백 목사 뒤에 따라다녀도 설교할 때 백 목사 설교는 하나도 안  한다'고 둘이 있으면 하지만 옳은 거는 하나뿐인데 옳은 거 하나 안 하면 그게  결국은 삐뚤어지고 말지 딴거 뭐 있소? 옳은 거 하나 안 하면 뻐뚤어지고 말지  뭘 어떻게? 삐뚤어지면 결국 목회도 실패하고 다 실패하지 어디로 갈 거냐 그  말이오. 이래도 이세벨인 줄 모른다 그 말이오.

 아내 이세벨을 이거 살리는 법은 내가 거게 따라가지 않는 게 살리는 법이라.

 따라가지 안하면 무조건 나는 남자기 때문에 안 따라간다 이래야 됩니까? 안  따라가는 법을 말해 봐. OOO목사, 안 따라간다 하니까 안 따라가는가 따라가는가  보자. 안 따라가는 법을 말해 봐. (예수님의 대속을 입고 벗지 않는 거) 그 사람은  뭐 대속을 벗지 안하고 살지 안하는가? 그거라. 대속을 입어도 내가 더 입었고 또  대속을 입은 행동 해도 그 사람 하나 하면 나는 둘 하고 주먹덩이만한 것 하면  나는 메주덩어리만한 것 하고. 앞서야 돼. 그게 이기는 거라.

 그라면 되지만 이제 그렇다고 낑낑 하고 이거 남자를 주장한다, 내 주장을 할라  한다. 이라면 망해요. 옳으면 따라가야지 어짤 거라. 그러면 옳으면 따라가, 옳은  아내에게는 따라가야 되는데 따라가면 여자를 남자를 여자가 주관하게 되고  보니까 그래도 안 되겠고, 옳으면 따라가야 되는데 따라가도 안 되고 또 안  따라가도 옳은 것 안 따라가면 또 틀렸고 안 따라갈라면 어째? OOO목사님  어떻게 해야 해요? 그래. 안 따라가는, 옳아도 안 따라가는 거는 그보다 더 옳은  거 해, 내가 그때 떡 이래 가지고 이러면 그 알지도 못하니 아내가 그라니까 그  말하는 것 보니까 좀 나보다 낫거든. 이러면 가만히 있으면서 이 연구를 하면서  '뭐 큰소리 해 쌓고 있어? 안 됐어. 그래 가지고 안 돼.' '그러면 어째 해야  됩니까?' 모른다 말이오. 없다 말이오. 없으면 떡 거석해 놓고, '그라면 안 돼'  이래 놓고는 막 기도하고 막 하나님 앞에 졸라댄다 말이오.

 졸라대다 보니까 그 아내는 팔십점짜리를 했는데 팔십 한 일점쯤 했다 말이오.

 일점이라도 됐거든, 이제. 그래, '그래 해야 돼 이래 해야 돼? 말해 봐. 그거는 몇  점이라?' '이런 팔십점입니다.' '그라면 내가 한 거는?' '팔십일점입니다.' '그라면  어짤 거라?' '아이고, 남편 당신 하는 대로, 목사님 당신 하는 대로 해야  되겠습니다.' 이래 이제 해져야 된다 말이오.

 자, 그런 남편만 되면 좋아요 안 좋아요? 좋은 사람 손 들어 봐요. 그런 남편만  되면. 그런 남편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손 들어 봐. 다 돼요 다. 그게 좋은  거라. 이래서 이것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참 피와 성령이 나를 주관하도록, 진리가  주관하도록 하고 인간에게 팔리지 안하는 것은 이거는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지켜 주시지 안하면 안 돼요.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침상에 던진다 말은 죽인다 말입니다.

 이거 회개 안 하면 죽인다 말이오. 죽이면 땅 속에 파묻는다 말이요? 죽이는  것은 여러가지 죽이는 것이 있습니다. 육체의 생명에 기한이 있으면 기한 안에  죽이지는 못해요. 이거는 신앙을 죽이요. 그만 신앙이 없어버려. 그만 신앙이  죽어버려. 신앙이 죽어지고, 모든 행위가 죽어지고. 인격이 죽어지고, 기쁨도  죽어지고, 용기도 죽어지고, 모든 것이 다, 정력도 정기도 죽어지고 다 죽어버려.

 침상에 던진다 말은 이거 그만 죽인다 그말입니다.

 이 이세벨 따라가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회개할 기회를 주고 줘도 회개하지  안하면 침상에 던져 버려. 침상에 던진 사람들 여러분들이 자세히 눈을 뜨고 보면  알 것이라. 그라고 난 다음에 그 사람이 신앙을 잊어 버렸어. 신앙을 버려서 그만  장승이 돼 버렸어. 교회에서는 목회 하는 것이 배척을 당하지 또 평신도로 지내는  건 아무런 용기가 없고 뭣이 지혜와 총명과 명철이 없으니까 그저 흐리멍텅하게  풀대죽같은 사람이 돼져 버리고 그만 바보가 돼 버리고 만다 그 말이오. 무능한  사람이 돼 버리고 말아.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그로 더불어 간음한다 말은 그로 더불어 한짝  된다 말이오. 이세벨로 가지고 한짝 돼. 교회 저거는 분명히 마귀 운동하는  사람이요 하나님 운동하는 사람이 아닌데, 환하게 나타나는데 그걸 원청 달콤하게  거석하니까 그 사람하고 한짝이 돼 가지고 한다 그거요. 이라니까 여러분 그 좀  보여집니까, 이래 하니까? 뭐 아무 감각이 없으니. 교회에 이세벨은 분명히 저는  이세벨인데, 그 결과를 봐도 이세벨이고, 저거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여참 우상  섬기게 하고 간음하게 하고 이방신 섬기게 하고 저거는 꼭 중심이 하나님이  중심이 아니고 딴것이 중심이 돼 있다. 딴것이 중심이 돼 가지고 있다. 이런데도  민첩하고 권세 있고 매력 있고 이라니까 그거하고 손을 잡아 가지고 한덩어리가  된다 말이오. 교회마다 그런 단체들 뭉텅이가 있어요. 없는 게 아니라. 그걸 잘  봐야 돼.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라 그말은 그로 더불어 짝짝꿍이가 되는 것을 말해.

 그로 더불어 짝짝꿍이가 되는 것. 뭐 그것을 참 산 교회가 되고 그로 더불어  하나가 되지 안하고 그런 것을 딱 속으로 기도하고 그것을 구출할라고 대항해서  거게 따라가지 안하고 그 교훈에 물들지 안하고 이래 나가면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큰 역사를 해 주시지만 거게 그만 대개는 따라가요. 그게 또 울도  좋거든. 사회에 무슨 일 있으면 척척 척척 일을 잘 해 주지. 덕이 있다 말이오.

 덕이 있어. 덕이 있으면 그 게 의로운 덕입니까 불의의 덕입니까? 불의의  덕이니까 그거는 덕 보는 것 같지만 사약 집어먹는 것 한가지라. 사약을 먹는 것  한가지라. 요렇게 잘 구별해 가지고 살지 안하면 헛일입니다.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이래 가지고 환난받는 사람들 많다 말이오. 환난받는 사랑하는 사람들은 조그매만  이런 게 있어도 환난을 줍니다. 징계가 없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자요.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자는 다 징계를 줍니다. 환난이나 징계 준다 말이오.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인다 말은  그의 육체의 자녀보다도 믿음의 자손들이 다 죽어 버려. 믿음이 다 없어져 버려.

 믿음이 없는 것은 다 그 위의 사람들 때문에 믿음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사망으로 자녀 죽인다 말은 사망으로 믿음이 다 없게 만들어 버려. 그 믿음이  없어버려, 그만.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니라' 우리 사람은, 사람은 사귀기를 그래 사귀어. 대개 어리석은 사람은  사귀기를 말, 또 뭐이요? 행동. 또, 말 보고 사귑니다. 그 사람의 행동 보고  사귑니다. 또 그 다음에는 그 사람의 일을 보고 사귑니다. 이거는 얼마든지  외식할 수 있습니다. 말도 속에는 봐, 아까 그 발람은 보니까 그놈이 또 말은  얼마나 청산유수로 잘해? 말만 보고 말만 따라가는 그 인간은 외식하는 인간이라.

그 인간은 얼마든지 죽고 망해요. 암만 그 사람이 말을 잘하고 어떻게 한다 해도  짐작은 하지 '말 저래 잘하니까 보자. 그럴 듯 하기는 한데 자세히 좀 살펴 보자.'  또 그 사람이 행동을 미꿈하게 합니다. '아이고 행동 미꿈하게 하니까 다 됐다,  이제 행동을 잘하니가, 말 잘하지 행동 잘하니까 다다.' 아니야. 그것도 둔갑을 할  수가 있어. 그거는 야바위 노릇을 할 수가 있어. 행동은 그렇지만 말보다는  행동하면 조금 행동으로 다른 사람 속이기는 어렵습니다. 그 행동에는 참 그걸  아주 외식으로 캄프랏치 하기가 어려워. 이 말 그거야 뭐 말 그거는 공산주의  이북 사람들 봐. 그거 말하는 것은 얼마든지 거짓말을 이래 잘할 수 있지 않는가?  여기서도 그래요. 이래서 말이면 그 사람의 다라고 생각하고 따라가다가는  망합니다. 그보다 그 안에 행동을 살펴봐요. 그 행동이 옳은가? 그러면 행동이  옳다고, 이제는 말 옳지 행동 옳으니까 안심하고 그만 나를 맡겨 놓고 따라가도  되겠다. 안 돼. 그 다음에는 뭘 봐야 돼? 일을 봐야 돼. 일을 보는 거는 겪어 봐야  된다 그 말이오. 일은 당장에 하는 게 아니라 일은 세월이 많이 지나가 이러니까  연애 결혼이 다 헛일이야, 처녀들 조심해요. 연애 결혼이 다 실패라. 연애  결혼하는데 연애 결혼할 때 처음에 막 목을 매달고 그 처녀 보고 막 죽을듯이 이  여자하고는 결혼하면, 이 남자하고 결혼하면 이제 죽자껏 나 하자 하는 대로  하겠고 이제 내 주머니 안에 있는 백원짜리 모양으로 마음대로 주물고 쓰겠다  이래 다 싶어요. 얼마나 말을 잘하고 한다고. 그러니까 연애 결혼은 다 헛일이라.

 속은 안 그러면서 겉어머리, 겉어머리 말은 얼마나 잘하는지? 말만 보고 그런  사람, 교인들도 그래. 다 그때. 뭐이든지 이거 사람을 말로 다라고 생각지 말아라.

말을 듣고 난 다음에 말은 아주, 아주 표리 부동으로 거짓말 할지도 모르니까  '말은 그래 하는데' 하고 그걸 딱 기억해 두고 그 사람 뒤에 행동하는 걸 볼 때에  행동은 어떤가 보니까 행동하고 말하고 둘이 일치가 됩니다. 그라면 인제 다  됐습니까? 그거야 말 하고 행동 당장에 하는 거야 그만 그날 말하고 그날  행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거야 잘 꾸며대 할 수가 있지. 그라고 난 다음에는 그  사람이 사건 처리하는 일을 만난 거 봐. 일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이 어떻게 하는가  그 일을 하는 것을 살펴 봅니다. 이래 놓으니까 거의 다 나옵니다. 이라고 난  다음에 이라는 가운데서 그 다음에 살필 게 뭐이요? 그 다음에는 그 사람의  마음을 살펴야 돼. 말도 합격, 행동도 합격, 사건 처리도 합격, 합격인데 그 마음은  어떤가 보자. 그 마음을 살펴 볼라고 요래 보면 그 마음이 요게 쏙 나왔다 조게  쏙 나왔다, 마음 그게 잘 나옵니까? 안 나오는네 그 마음을 요 구석에서 조  구석에서 그 마음을 지금 살펴본다 말이오. 마음을 그 잠깐 봐요. 뭐 여러분들.

 관심만 가지고 보면 잠깐 보입니다. 그 마음을 살펴봐요. 마음을 살피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는 뭘 봐요? 그 다음에는 뜻을 봐요. 그라면 마음은 저래 쓰는데  저 사람의 의지는 어떠한 사람이며 어떤 의지를 가지고 어떻게 해 나가는가  의지를 이래 살펴봐. 그라면 다 봤소? 그 다음에는 뭘 봐야 돼요? 어? 그래.

그라고 난 다음에는 그 사람의 소망을 봐야 돼요. 저게 소망을 땅의 것을  소망하나 하늘의 것을 소망하나? 암만 잘해도 땅의 것 소망하는 거는 그거는  언제든지 마귀 새끼입니다. 땅의 걸 하늘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땅의 것 소망하는  것 좋지만 하늘나라의 스망보다 땅의 소망이 크면 그거는 언제든지 땅에 속한  자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돼. 그거는 가다가 안 되면 대마귀 노릇 해 버려. 소망을  살펴 봐요. 소망을 살펴보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는 '보자, 이건 알기 어려운데  그거 무슨 신이 저를 주관하고 있노?' 제가 바라보기는 무슨 신을 바라보고  있으며 저 사람을 주관하는 것은 무슨 신이 주관하노? 하나님이 그 사람을  주관하시는 것을 자기도 모르고 옆에 사람 보면 알 수가 있어. 저거 보니까 제  마음대로가 아니고 하나님이 주관하신다. 그거 하나님이 주관하셔서 공연히 고민  안 할 걸 고민도 하게 되지 이제 보니까 고민하는 것 보니까 하나님이 주관하는  것 알 수 있고 뭐 좋지도 않은데 백지 벙긋벙긋하는 그것도 희로애락을, 그  사람의 희로애락을 보고 하나님이 주관하는지 자기가 주관했는지 마귀가  주관하는지 그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래서 사람 살피기는 심히 힘이 든다  말이오.

 하나님은 여게 사람들은 이거 뭐 행동이면 다인 줄 알고 말이면 다인 줄 알지만  하나님은 '나는 사람의 마음과 그 뜻을 살피는 자이라' 그것을 행한 대로, 그걸  행위라 해. 행한 대로 갚는다 하시고, 행함 뭐? 마음 뜻 그걸 행함이라 하고  그대로 갚는다 이렇게 말씀했어. 이러니까 여러분들 이해가 됩니까? 이 등신 같은  것은 말 보고 사기니다. 말 보고 사귀어. 말 보고 사귀는 자는 거짓말 하면, 자, 말  보고 사귈 때에 거짓말 하는 말이, 자기에게 위하고 좋게 하는 말은 거짓말쟁이가  잘합니까 이제 진실한 사람이 잘합니까? 어떻게 해 거짓말 하는 사람이 잘해?  거짓말 하는 사람이야 그까짓 거야 말로 얼마든지 다 할 수 있지만 진실한  사람은 그 말을 못 한다 말이오. 이래 말해 놓고 또 이대로 안 하면 안  되겠으니까 그뭐 '그러면 어떻게 이래 해 줄랍니까?' 이라니까 입을 쭉쭉  거석하면서 '글쎄요?' 이라면 해 줘야. 될 모양이니까 이걸 말을 못 하고 하는데  이 거짓말 잘하는 거는 '하, 해 주고 말고요. 그러면 얼마나? 삼 배나 사 배나  많이 해 주지요.' 얼마나 해 줄 수 있다 말이오. 이렇지만 진실한 사람은 그렇게  할 수가 없어.

 이러니까 저거는 보면 제일 말만 보고 사람을 사귀고 말로 사람을 다인 줄 아는  그 사람보다 더 불쌍한 사람 없어요. 자식도 낳아 가지고 그런 자식이 돼 놓으면  그거 참 기가 차는 거라. 부모는 옳게 돼라고 이렇게 말하는데 다른 거는  꾀우든지 말든지 우선 그 아이 좋도록 말하면 그리 쭉 따라가는 거 그거 큰 문제  아니요? 너 안 그라나? 안 그래? 안 그래? 너 뭐 어느 교회 다녀? 어? 뭐라  하노? OOO교회 다녀? 그래. 어짜든지 저 사람은 말만 보고 사귀는 사람이라.

 그러니까 전부 그에게는 거짓말쟁이만 갑니다. 자, 말만 가지고 전부로 알고  사귀는 사람에게는 진실한 사람이 가겠소 거짓말하는 사람이 가겠소? 이치를  말해 봐요. 거짓말 하는 사람이 가겠소 진실한 사람이 그 사람에게 가겠소? 그  사람에게 가 가지고 합격하는 사람은 거짓말하는 사람이 합격되겠소 진실한  사람이 합격되겠소? 어떤 사람이 합격돼요? 자꾸 거짓말 주 대는 사람이라야 그  사람에게 가서 만족을 주고 됐다 이라지. 어리석어. 연애 결혼이 그래서 헛일이오.

 연애 결혼은 대개 말만 보고 아는 인간들이기 때문에 속을 수밖에 없어. 자 선을  볼 때 이거는 말도 못하고 뭐 어떻게 해 줄라냐 하면 이렇고 이렇게 막 쭉쭉  말하면 '이거 야 말을 막 하니까 이거 말쟁이로구나' 또 이라니까 그 실지로  할라고 생각하니까 힘이 드니 입을 쭉쪽 다시면서 '힘대로 한번 힘써서 한번 해  보기는 해 보지만 나는 무능해서 어째' '이거 틀렸다. 아무 총각은 만나니까 그만  당장 이리 저리 해 준다 이래 했는데 이거는 무능하다.' 그런 거는 생전 속고만  돌아다녀. 너는 어떻게 할래? 너 시집 안 갔지? 그래. 그래 너? 어느 남자  따라다닐 거라. 너 요새 새벽기도 안 나오데. 인제 안 나오면 안 돼. 돈이  우상되면 못 써. 직장 그까짓 거 뭐인데? 그래. 자 그라면 처음에 뭘 보고 사람을  사귀어요? 말 보고 인제, 대뜸 말을 보고 대충 짐작을 묻습니다. 또 그 다음에는  또 뭘 살펴봐야 돼요? 행위를 살펴봐야 돼. 그 다음에 또 뭘 살펴봐야 돼? 어?  일을 처리하는 일을 살펴봐야 돼.

 그 다음에는 또 뭘 살펴봐. 마음을 살펴봐야 돼. 그 다음에는 또? 뜻을 살펴  봐야 돼. 그 다음에는 또 뭘 살펴봐야 돼? 소망을 살펴봐야 돼. 또 그 다음에는  뭘 살펴봐야 돼? 어? 그 사람을 주관하는 신이 뭐인가 그걸 살펴봐야 돼. 다  좋아도 저 사람은 최고의 왕은 돈이다. 이 발람이 최고의 왕이 돈이라. 최고의  왕은 돈이다. 최고의 왕은 뭐라고 쌓아도 제다. 최고의 왕이 제가 되면 좋아요  나빠요? 최고의 장이 자기가 되면 좋아요 나빠요? 안 돼. 안 돼. 막 제가 왕 될라  할라다가도 보니까 최고의 왕 하나님이 떡 오니까 꼼짝도 못하게 모든 것 다  꼼짝도 못하고 굴복하고 이 최고의 왕이 하나님이 돼야 되지 제가 되면 안 돼요.

 최고의 왕이 뭐인고 이걸 살펴요? 그래 가지고 마지막에 일곱째로는 그저 사나  죽으나 하나님으로 제일 삼는 그러면 하나님의 주권을 하나님의 대주재성을,  완전성을, 자주성을 이거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으로 바로 알면 행동이 나빠도  결국은 따라서 그대로 가고 맙니다.

 결국은 행동은 그대로 가고 말아요. 하나님을 잘못 아는 사람은 암만 행동  좋아도 결국은 다 틀리고, 인간의 행동 좋은 게 가치가 있소 없소? 몇닢푼치 안  돼, 그거.

 24절에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두아디라에 이거 이세벨의 교훈을 따라가지  안하고 눈을 깜작깜작 하면서 근심을 하고 따라가지 안하고 있는 그런 사람이  있어. 두아디라 교회에 이 이세셀의 교훈을 따라가지 안하고 남아 있는 사람, 남아  있는 사람은 주님이 어떻게 여기는고 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이  교훈을 받지 안하고 그러면 이세벨 교훈을 받지 안하고, 암만 이세벨이 뭐 세도를  부려도 받지 안하면 핍박이 있어요 없어요? 핍박이 있어요. 또 살기가 힘이  들어요.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을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이거는 지금 현재로는 지울 것 없다 하니까 현재로  족하다 말이오. 됐다 그 말이오. 사탄의 깊은 것이 뭐일까? 사탄의 깊은 것이  뭐이요? 이거 어려운 거 나왔는데 사탄의 깊은 것이 뭐이야? 어? 사탄의 깊은  것은 세상의 고등 지식들입니다. 아주 고등 지식. 아주 세상에 모든 사람이 잘  따라가지 못하는 아주 고급 지식, 고등 지식. 뭐 깊은 철학. 또 이거 공산주의에도  그 무슨 사회주의학. 이 모든 주의 사상들의, 주의 사상들의 그 모든 것을  가리켜서 사탄의 깊은 것이라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외에 모든 주의 사상, 언제 내가 책에 보니까 오십인 사상 집이니 뭐  칠십인 사상집이니 뭐이니 뭐이니 하는데 그런 게 다 사탄의 깊은 것이라. 그런  걸 알 필요가 없어. 그거 알면 무저갱이라. 끝이 없어. 그거 알 필요가 있어?  신구약 성경도, 이 생명인 신구약 성경도 다 알라 하면 모자라는데 언제 그런 걸  다 알고, 자, 여러분들 우리가 어짜든지 옳은 것을 알아야 되는데 옳은 것을  알아야 되는데 틀린 것이 억만이 되고 옳은 것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라면 이  옳은 것을 알라면 어찌 돼요? 틀린 것 억만을 다 공부를 해 가지고 '이건 틀렸다,  틀렸다,' 틀린 것 억만을 알고 나중에 보니까 이거 다 틀렸는데 억만을 알고 난  다음에 '아이고, 하나만 옳구나.' 그거 옳은 걸 뒤에 아는 것이 그게 지식이,  지식을 속성할 수 있소? 이제 누가 가르치기를 '야, 이 세상에는 틀린 것이  억만도 많고 옳은 거는 하나밖에 없는데 옳고 틀린 걸 다 알아야 될 터인데 이거  어째야 됩니까?' 그라니까 어떤 선생님이 하나 '잠깐 공부하면 되지.' 옳고 틀린  것, 틀린 것이 억만도 넘고 옳은 거는 하나밖에 없는데 그걸 다 아는 공부하는  방법이 뭐이요? 그걸 아는 속수과, 속수과로 공부하는 그 방법이 뭐이요? 그거  한번 말해 봐. 그걸 여기 한번 말해 봐, 여기. 어? 어떻게 해요? 밤낮으로 열심히  머리 싸짜매고 자꾸 틀린 것을 자꾸 읽어대고 자꾸 이렇게 살펴봐야 되지.

그래요? 어떻게 해, 그러면? 옳은 것 하나만 알면 틀린 것 다 알아요? 어찌 그래?  하, 참.

 세상에 요떡게 보배로 첩경이 어디 있어? 옳은 것 하나니까 옳은 것 하나만  알고 난 다음에는 틀린 것 다 압니다. 옳은 것 아니까. 왜? 옳은 것 하나 알고 난  다음에 뭐이든지 옳은 것 하나 그거와 다른 거는 '이거와 틀린 거는 틀렸다.' 또  열 개 가지고. 오면 '또 틀렸다.' 백 개 가져오니까 '또 틀렸다.' 만 개 가져오니까  '또 틀렸다.' '뭐 틀린 거 어째 아노?' 옳은 것 하나 내가 딱 알고 있기 때문에  요거와 같지 않은 건 다 틀렸다. 요거와 맞지 않은 건 다 틀렸다. 억만을 가져와  억만이라도 '다 틀렸다.' 하니까 '너 언제 그렇게 공부를 했노?' 그거 그 수단이  있지. 그러니까 그렇게 그것을 다 알아요.

 다 통달을 해요. 통달하는 법이 뭐이냐 하면 옳은 것만 알아, 옳은 걸 알아  놓으면 나중에 옳은 거 아니면 다 틀렸다 하면 다 돼 버려. 이게 쉬운 말 같 지만  참 도통이 돼야 알지 썩 알기 어렵습니다. 우리 O박사 맞아요? 옳은 것  하나뿐이고 틀린 것 억만이 돼도 옳은 그것 하나만 알고 그와 같지 않은 거 다  틀렸다 하면 다 돼 버리고 말아. 이거 나도 배웠어. 고신에 다닐 때 이거 한 마디  배웠어요. 그거 누구한테 배웠느냐 하면 성경 박사 내나 오종덕 목사님께 배웠어.

제가 고신에 다닐 때에 성경을 제일 잘 아는 이가 오종덕 목사님이야. 그분에게  들을 것이 있고 얘기하면 좀 재미가 있고 이러고 다른 분들에게는 성경 말해야  재미가 없고 아무것도 없어. 그분이 이 말을 해요.

 '여러분들이 공부하는 데는 옳은 거는 숫자가 적기 때문에 옳은 것만 알고 난  다음에 틀린 거는 그 공부할 것 없이 옳은 거와 같지 앉은 거는 다 틀린 줄만  알면 됩니다.' 그 말이 얼마나 큰 말인지. 그말 듣고 난 다음에 참 내가 놀랬어.

 '참 저 어른이,' 고신에서 제일 성경 잘 아는 분이 그분이라.

 자, 그라면 사탄의 깊은 것, 사탄의 깊은 것은, 사탄의 깊은 것은 이 세상  사람들이 귀하다 낮다 보배다 하는 그런 것을 다 말해서 많은 사람이 팔려  들어가는 그런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그러면 세상에 사상집 모두 세상의 이런  주의 저런 주의집 또 세상 사람들이 많이 끌리고 따라가는 그 모든 과학, 뭐  과학도 끝이 없어요. 이런 학 저런 학, 그런 학 그런 깊은 학들을 가리켜서 사탄의  깊은 것이라.

 암만 들어가도 사탄에게 끌려 들어가는 것이고 거기는 가야 생명이 없습니다.

 신구약 성경을 따라가야 생명이 있지 신구약 성경을 떠나서 이 세상에 천하에  제일 높고 깊으고 어떤 데 갔다 할지라도 거게는 사망뿐이지 들어가면 더  헤어나오기 어려워. 들어가면 더 헤어나오기 어려워. 그것 따라 들어가면  헤어나오기가 어려뭐. 세상 이 지식 다 통달해 들어가고 난 다음에는 돌아오지  못해요. 그만 거기서 죽어요.

 그러니까 불경의 끄트머리를 봐서 그것이 틀렸다 하는 걸 제가 알면 돌아올  기회가 있지만 틀렸다는 것을 몰라. 왜 그걸 보면 사람이 이래딱 저래딱 자꾸  여러가지 말하니까 사람이 무책임하게 자꾸 입으로 주 지껄여대는 걸 입으로 주  지껄여, 거짓말로 주 지껄여 놓은 거 이거는, 이거는 실천을 할라 하지 그걸  알아볼라 하지 하니까 그 당해 내겠소?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자기가 일생  동안 전력 기울여서 파고 들어가도 다 끝을 보지 못하는 그런 구멍이 여러  억만도 더 됩니다.

 이러니까 그런데 들어갈 필요가 없어. 암만 들어가 봤자 거기 생명 없고  사망뿐이라. 그러니까 갈 길을 바로 찾아간다는 게 얼마나 행복인지 모릅니다. 이  세상에는 지식이 몇 가지라요? 두 가지. 두 가지인데 이제 하나님의 지식,  하나님의 지식 아닌 것. 산 지식은 몇 가지입니까? 하나, 하나님의 지식뿐이라.

 하나님의 지식만 살았고 또 우리를 살리고 또 산 지식이고 이렇지 하나님의  지식 외에는 우리는 살리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밥도 먹이고 옷도 입히는데  우리를 살리는 거 아니라? 세상 지식이 밥도 잘 먹이고 옷도 잘 입히는데 살리는  것 아니라? 살리지요. 세상 지식이 돈벌이를 잘해 가지고 밥도 잘 먹이고 옷도 잘  입히고 살리는 것 아니라? 그런데 왜 세상 지식이 살리지를 못한다 해? 저  안경쟁이 대답해 봐. 뱀의 지식이라고 살리지 못해? 죽이는 것이라? 뭘 보고  죽이는 것이라 해? 언제 보니까? 아담 하와 죽였으니까. 그것 보고, 그건  죽였지만 지금 안 죽이면 되지 뭐. 마지막에 결론을 보니 다 죽었더라 그 말이오.

 고기 먹고 떡 먹고 살이 뚱뚱 쪘고 살이 찌고 이랬는데 마지막에 결말이 어떤고  보자. 마지막에 결산을 보니까 사망이라 그랬다 말이오. 그러니까 찍해야 고기 밥  암만 먹어 봐야 죽이는 것 만들었지 산 것 만들지는 못해요. 이러니까 이  시간관이 바로 돼져야 된다 그거요.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을 지울 것이 없노라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뭐 굳게 잡아요? 이세벨 교훈을 받지  않는 사람은, 이세벨 교훈을 받지 않는, 이세벨 교훈 가득 찬 속에서도 이세벨  교훈을 받지 아니하니까 하나님 교훈 받는 사람이라, 그렇지 안해요? 이세벨  교훈을 받지 안하니까 하나님 교훈 받는다 소리는 안 들었지만 이세벨 교훈을  받지 안한 것은 하나님의 교훈 안 받으면 이세벨 교훈 안 받을 수가 없는 거라.

 이러니까 하나님 교훈받고 이세벨 교훈받지 않는 요것을 네가 굳게 잡으라. 그게  이기는 것이라. 굳게 잡는 거.

 이러니까 이 세상이, 여러분들 암만 서적이고 뭐 잡지고 뭐 이 세상에 어떤  부흥회고 사경회고 다 이렇게 한다고 해도 거게 가 가지고 하나님의 교훈과 세상  교훈 이 사이비한 그런 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잘 구별해 가지고  하나님의 교훈만 받고 하나님의 교훈에 반대되는 결과에 사망을 만드는 그런  교훈만 안 받는 그 두 가지만 하면, 하나님의 교훈만 받고 자기 신앙에  손해보이는, 믿음에 손해보이는 그런 교훈받지 안하고 요 두 가지만 하면  완전자야. 간단해. 공연히 거기다가 주를 달아 그렇지. 하나님의 교훈만 받고  자기의 신앙에 손해갈 그런 모든 잘못된 교훈을 받지 안하고 그 두 가지만 하면  완전자라.

 이래서 여기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굳게 잡으라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는' 이기는 자는 이것을 이 교훈을 받지 않는 것이 이기는  자요, 또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자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내 일을 지키는 자가 어떤 게 내 일을 지키는 것이라? 주님의 일이  뭐이요? 주님의 일이 뭐이지요? 어? 사죄뿐이라? 항상 그거라. 주님의 일은 네  가지뿐이라. 네 가지 하러 오셨고, 네 가지 했고, 지금도 네 가지를 지금 하고  계시고 모든 네 가지로 사고 네 가지로 또 구원해 놓은 자에게 또 이 네 가지  하라 하고 전부 주님이 하시는 일은 네 가지뿐이라, 네 가지. 이해가 돼요, 네  가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굳게 잡아라' 굳게 잡고,  굳게 잡는 것은 이제 교훈을 받아들이지 안한 그것을 굳게 잡고 내 일을 지키는  자 주님의 사활의 이 대속 그것을 지키는 것' 이 주님의 일을 지키는 것이라.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준다' 요라면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준다. 요렇게 하면 권위를 주십니다. 요라면 어디서든지, 만일 어느 파든지  그 파에 가 가지고 그 파에 들어 있어서 요렇게 하는 사람이 결국은 그 사람이  권위 잡습니다. 그 사람이 권위 잡고 그 사람이 거기뿐 아니라 세계에 권위를  잡아요. 권위 잡는 것이 눈에 보일 때 이 권위를 안 잡아도 요렇게 해 놨으면  마지막에 심판할 때는 다 그 권위 밑에 다 굴복을 다 시키는 것입니다. 지금  권위를 뭐 잡는 게 아니라 안 잡아도, 옳았으니까 옳은 것 밑에는 다 그른 건 다  거기 복종할 것 아닙니까? '잡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다 그 앞에서는 버썩버썩 달아나. 버썩버썩 절단나.

뭣을? 굳게 잡은 자, 일을 지키는 자, 굳게 잡은 것은 다른 교훈 받아들이지  안하고 어짜든지 다른 방편을 받아들이지 안하고 이제 사활의 대속 이 일만 자꾸  하는 자는 결국은 승리합니다.

 승리해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아버지께 받은 게 그러  하다니? 예수님이 뭣 받았다 말이요? 예수님이 뭣 받아서 그래 했어? 질그릇으로  깨뜨려서 막, 질그릇을 깨뜨리듯이 버썩버썩 깨뜨려서 전부 다 정복하고 다 완전  승리를 했는데 '나도 아버지께 받은 게 그렇다' 아버지께 주님이 뭣 받아서  어떻게 했어? 주님이 뭣 받아 가지고 뭣 했어요? 저 OOO조사님? 주님이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았는데, 권세 받았는데, 나도 아버지께 받은 게 이거다. 나도  너희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마. 주님이 뭣 받아 가지고 뭣 했는데? 만국  다스리는 권세 준다 하니까 권세면 좋은 줄 알고 권세 받아, 권세가 뭐인지  알지도 못하며, 잡을 줄도 모르고 권세를 알지 못하는데 뭘 해? 권세가 길게  생겼어요 동글동글 생겼어요? 권세가 폭탄입니까 뭐입니까? 권세가 폭탄이요  철장이라 하니 철장이요 뭐이요? 권세가 뭐이지 여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버지께 받았다 하는데 그거 뭐이야? 어? 네 가지라, 네 가지. 어짜든지 네  가지만 자꾸 들이대요. 아버지께 받은 것이 '네가 가서 사죄 칭의 화친 이 사활의  대속으로 네가 모든 천상 천하에 있는 모든 걸 정복해라.' 예수님은 사활의 대속  이거 가지고 모든 하나님 밑에 있는 거 모든 거 정복 다 했고 또 하나님은 어째?  하나님은 정복 아니지만 하나님 차지 다 해 버렸어. 이 네 가지 가지고 모든  피조물 다 정복 다 했고 하나님도 당신의 하나님으로 다 차지해 버렸어. 혼자  독차지해 버렸어. 맞아요 안 맞아요? OOO조사, 맞아요 안 맞아요? 정말로 맞아?  '나도 아버지에게 받은 게 이러하다. 내가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내가 주겠다.

 나도 아버지에게 받은 게 그렇다. 나도 아버지에게 받은 것이 이 사활의 대속 네  가지 가지고 온 세계를 정복하고 다 완전 승리를 했는데 너도 이것 지키고 내 일  하면 그리 된다,' 그 일이 무슨 일인데? 내나 사활의 대속의 입는 일 안 벗는 일  다른 사람에게 입혀 주는 일 그 일뿐이라. 참 간단하고 명료합니다. 쉬워. '나도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내가 또 그에게 새벽별을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새벽별을 주리라 '그에게 새벽별을  주리라' 새벽별이 뭐이지요? 새벽별이 내나 성령의 감화입니다. '너희들이 이  말씀을 너희 속에 마음 속에 샛별이 떠오르기까지 사모하는 것이 가하니라' 이  새벽별은 무슨 앞잡이요? 해의 앞잡이라, 새벽별은 해의 앞잡이.

 이러니까 해는 누구요? 해는 주님이시라. 해는 주님이시라. 그러면 새벽별 준다  말은 주님의 앞 잡이 준다 말은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주님 영접하는, 주님의  앞잡이를 영접했으니까 주님 그 다음에 따라오실 것 아니겠소? 성령 차지하면  하나님 다 차지해.

 이래서 이번에 이 공부한 데서 잘 기억해서 여러분들이 이제 자기를 먼저  살펴요. 자기가 그러면 여게 이 말씀을 살펴보니까 '나는 어떤자이다' 환하게 알  것이고, 교파도 알 것이고, 교인도 알 것이고 제직회 하면 제직회를 이래 할 때 떡  이래 보면 제직회 할 때, '조거는 누구다 조거는 누구다.' 다 봐요. 노회 총회를  할 때도, 노회 총회 할 때도 우리 총공회 할 때도 딱 요걸 공부한 사람은 저 봐,  '저거는 누구다 조거는 누구다. 조거는 무엇이다. 조거는 이세벨이다, 조거는  발람이다 조거는 니골라다. 뭐이다.' 조거 다 봐요. 그걸 다 볼 수 있다 말이오.

 이러니까 우리가 이 교회를 공부를 다 해 가지고 이 신약 시대 교회를 알아야  내가 바로 구원도 이루고 또 사람을 구원할 수도 있고 내가 빠지지 안하지요.

이러니까 얼마나 그 사이비한 것들이 가득 찼습니까? 이래도 여러분들이 공부를  해도 지금 그냥 이것만 보면 안 돼요. 공부하며 자꾸 거석해요. 공부하며 안경을  가지고 '보자 보자 우리 지금 교회 목사는 어떻고. 우리 교회 전도사는 어떻고,  우리 교계는 어떠노?' '이 공회 할 때는 어떠노?' 자꾸 이래 보면 '우리 집사는  어떻고 권사는 어떻고?' 보면 환하게 다 보여. 환하게 다 보인다 그 말이오.

 그러고 이번에 받은 말씀을 가서 자세히 새김질해요. 여기서 오후 새김질하는 거  언제 합니까? 일곱시 이 자리에서 재독이 있답니다. 재독 있는 것은 어느  시간이든지 재독 있을 터이니까 와서 참석을 하도록 하십시오. 이제  폐회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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