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물질관


선지자선교회 1983년 11월 20일 주일오후

 

본문 : 딤전 6:17-21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디모데야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고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 이것을 좇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우리 기독자의 신앙생활은 어렵지 않고 또 평안하고 기쁘고, 전부가 수입이요  성공인 것뿐인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그 원죄의 부패성이 우리 속에 있고,  또 우리 밖에는 죄악으로 되어 있는 세상이 있고, 또 그 가운데에는 인간의  자율이라는 인간 생각대로 만들어 놓은 모든 지식들이 다 얽혀 있는 이 가운데  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번민도 고민도 복잡도 고통도 있는 것들인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권적으로 예정하신 그 예정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예정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을 돕는 일만 하지 손해보이는 일이  없습니다. 또 주권적으로 예정하신 그대로 창조하시고 섭리하시고 보존하시고  하는 그 모든 일이 우리 구원을 위해서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구원에  대해서는 털끝 만치도 손해 보이는 일들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너희가 시험을 당하는 것은' 다시 말하면 너희 기독자들이  여러면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라' 자기에게  하나님이 금하는 것을 하고저 하고 또 가고저 하고 가지고저 하고, 하나님이  금하시는 것을 너희들이 가질려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전적 구원 역사에  마찰도 되고 또 대립도 되고 또 그로 인해서, 네가 근심 걱정 고통도 하는  것이지, 그것이 다 네게서 난 고장이요, 하나님은 일관적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정하신 그대로 창조하신 그 모든 것들을 운영하고 계시는 것은 변동이  없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동하는 것이나 이리 저리 회전하는 그런 그림자도  없다 그런 흔적도 없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이 혹 처음 들으면 무슨  말인지 잘 모를런지 몰라도, 성경에 사람들이 다 놀란 일 마다, 놀란 일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그것이 들어서 놀라게 했고, 또 하나님을 바라보지 안한  데에서 고통하게 했고, 하나님의 그 지식과 다른 지식이 내게 있어 가지고 나를  고통스럽게 했지 하나님이 변동하신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을 따라가는 걸음은 주님이 인도하시는 그 걸음이 자기의 선입적  관념이나 기존 지식이나 자기의 경험이나 체험이나 세상들이 말하고 있는 통계나  어떤 것에 배치가 되고 거기에 모순이 되고 아는 대로의 이치에 맞지 않는 그  비합리적인 것이라도, 하나님은 와고 바르게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이니까  의심하지 않고 뿍뿍 따라가면 그 결과는 다 생명과 평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해야 나를 따라온다 그 말은 세상을 부인해야 내  법칙을 따를 수가 있다, 인간의 모든 지식을 부인해야 내 지식이 인정될 수  있다, 세상은 전체가 죽고 망하는 것뿐이기 때문에 죽고 망하는 세상살이에  반대가 되는 그것이 흥하고 사는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을 버리라는 것도 아니요 모든 만물을 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대해서 창조주의 뚜렷한 뜻이 계시니까 그 뜻에 맞추어서 그 뜻대로 하면  하나님도 축복하시고 지음받은 모든 무생물이나 식물이나 동물이나 생물들도 다  좋아해서 복종하고, 심지어 일월성신이니 이 모든 자연의 것들도 다 협조하게  되는데, 사람이 자기 욕심 자기주장 자기 뜻대로의 모든 것을 밀고 나가려고  하니까 자연에도 마찰 모든 존재들에게도 마찰 또 하나님의 인도에도 마찰 전부  이래 가지고 절단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무조건 내게 있는  것은, 하나님의 것과 반대되어 있는 것은, 내게 있는 것은 죽은 것뿐이요 죽이는  것뿐이요 죽으려고 하는 것뿐이요 죽는 것뿐이요, 하나님에게는 산 것과, 산  것과 살리는 것 옳은 것, 이것뿐이기 때문에 세상하고는 마찰이 되는 것입니다.

이 마찰에서 고통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다를 건너가라 했으면 책임지신 분이, 전능자가 전지자가  주권자가 건너가라 했으니까 건너가면 됩니다. 건너갈 때에 어떻게 물에 침몰  되어서 죽는 지경이 되어도 그분이, 책임진 그분을 든든히 믿으면 죽어도 그분이  책임질 것이고 살아도 책임질 것, 당신이 책임질 터이니까 그분의 절대적인  신실하심과 그 크심을 믿을 때에 모든 세상 것을 가지고 우리를 유혹 시켜서  이라면 낭파된다 큰일난다 하는 그런 모든 미혹들은 우리 발 아래 밟힐 것이고,  마귀는 아무런 우리에게 대해서 할 수단과 방법이 없게 될 것이고, 우리는  세상이 볼 때에 '야 저 믿는 사람 저 사람의 걸음은 이제 망한다.' 했는데  그들에게 과연 거기에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주권의 그 살리는 길이 있구나, 과연  그분이 모든 것을 주권하고 계시는구나 그분에게 능치 못하시는 것이 없구나,  그분 시키시는 대로 하는 것은 다 생명과 평강뿐이로구나, 이것을 세상에 보여  줄 터인데 우리가 믿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여 줄 수가 없고 또 세상은  증거를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인도하신 것은 무엇이든지 바로 인도  하십니다. 또 책임지고 인도하십니다. 모든 것을 전지한 지혜로 다 알고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안다 해도 부분적으로 알고 또 단편적으로 알기 때문에  우리가 아는 그것이 그 범위 내에서는 맞다 할지라도 그 범위가 다가 아니기  때문에 그 범위보다 더 큰 범위에 가면은 모순이 돼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지으신 분이요 전지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 인도는 조브라운 우리, 어린 지식을 가진 우리, 일방적인  지식을 가진 우리, 일시적인 그것을 가진 우리, 이러기 때문에 영원을 두고서  유익된 길로 인도하실 때에 우리는 일시만 그 시간을 계산하니까 우리에게는  모순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분은 참되고 옳고 바르고, 우리는 거짓되고  삐뚤어지고, 또 그분은 전체를 다 알고 계시고 우리는 부분만 알고 있고, 그분은  완전을 도모하고 또 우리는 내가 모르나 실패, 망하는 것, 죽는 것 그것만 인생  생활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기에서 우리가 신앙 걸음 걷는 것이 놀랠 일도 생기고,  낙망하는 일도 생기고 답답한 일도 생기고, 이해 못할 일도 있어서 우리가  경거망동도 하고 또 고생을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믿지 않는 데에서 우리 주관  이 들어서, 우리 주관이 들어서 우리에게 고생을 주는 것이고, 선입적 관념이  들어서 고생을 주는 것이고, 우리의 생각이 들어서 고생을 주는 것이고, 우리  욕심이 들어서 고생을 주는 것이고, 우리의 경험대로 해보니까 고생 이고,  우리의 경험대로 하면 틀렸다 싶어서 놀래는 것이지 신앙 걸음으로 걸어서 그  결과를 보고서 놀랜 사람이나 실패라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베드로전서 1장에 말씀하시기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그러므로 너희들이 이제 여러가지 어려움을 당해서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아니할 수 없었으나' 지나가고 보니까 모두 다 '아이구' 참  놀래면서 '과연, 과연 하나님의 하시는 것은 전지하신 계획이다. 전능하신  능력이 이렇게 하셨구나.' 이러니까 지나가서 신앙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아,  그분이 우리에게 이래 시킨 것은 우리 보기에는 안 됐는데 그분이 전능하신  능력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시켰는가보다. 아무리 봐도 이거는  도무지 안 되는 일인데 그분이 전능하신 능력이니까 휘덕 디비트리니 다 돼  버렸구나.' 이러니까 '오, 그분은 전능자기 때문에 우리를 이렇게 지도하신 다  전지하신 분이기 때문에 이해 못할 전체면을 보시고 거기에 맞도록 우리에게  인도하신다.' 이래서, 믿음으로 점점 믿음에 나아가게 됩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을 인정하고 따르는 사람은 점점 인정하게 되고 점점 따르게 되고,  하나님을 부인하고 자기 주관과 인간을 인정하고 따르는 사람들은 점점 하나님은  부인하게 되고 인간은 점점 인정하게 되는데 인정하게 되고 따르면 뭐 할건가?  마지막에는 죽고 망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오전에도 말씀했지마는 '네가 이 세대에' 이 말은 이 세상적으로  말이요, '이 세대에'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그러면, 세대도  달라집니다. 어떨 때에는 부를 귀하게 여기는 세대도 있고, 부를 귀하게 여기는  세대도 있고, 또 지식을 귀하게 여기는 세대도 있고, 권세를 귀하게 여기는  세대도 있고, 예술을 귀하게 여기는 세대도 있고, 행락을 귀하게 여기는 세대도  있고, 도덕을 귀하게 척기는 세대도 있고, 절제를 귀하게 여기는 세대도  있습니다. 고행을, 고행주의를 귀하게 여기는 세대도 있습니다. 어떤 세대는  자기의 그 고생을, 참 다른 사람이 견디기 어려운 고생을 하나 턱 견디고 나면은  고만 세월이 납니다. 그 사람은 어떤 고생을 견딘 사람이다. 그 사람은 기둥 한  개 세워 놓고 그 위에서 삼 년 동안을 꼼짝 안 하고 기둥 위에 거기에서 살았다.

그 사람은 그렇게 위대한 사람이다. 이 뭐 별별 세대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네가 이 세대' 지금은 이 세대 그때는 그 세대, 그 세대에서  부한 자들, 그 세대는 무엇을 귀하게 여기든지, 요새는 또 이상합니다.

시설지기는 것도, 사람 웃기는 그것, 시설지기는 것 그거 귀합니다. 뭐 시설 잘  지기면 막 돈 뭉텅이가 들어옵니다. 사람 잘 웃기고 아주 그렇게 뭐, 유모  아라고 하는 것보다도 그만 어떻게 하면 사람을 웃기고 어떻게 하면 사람 보기에  우습게 할까, 그 짐승 노릇도 무슨 짐승을 우습게 할까 그게 또 세월이 나서  그거 한다 하면은 사람들이 뭐 장소가 비좁아서 들어갈 틈이 없이 그렇게  모입니다.

 그래서,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시대마다 부는 다릅니다. 어떤  시대는 벼슬을 부하게, 어떤 시대는 부자라 돈을 부하게, 어떤 시대는 도덕을  부하게 여러 가지 하는데 어떤 시대든지 그 시대에 자기는 그 시대에서 가치로  알아 주는 그런 것이 있는 자들에게 말해라. 이거 있으면 나는 아무데 가도  산다. 이만하면 넉넉하다. 이거면 족하다. 그걸 가지고서 자기는 의지하고  바라고 힘을 삼고 들을 대고 이라면서 나는 이거 있으니까 나는 높은 사람이다.

나는 부강한 사람이다. 나는 실력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어느 시대에 어떤  것이든지 그 세대에 제일 좋고 보배롭고 하는 그런 그것을 가지고 마음을 높이지  말라고 명령해라. 그것이 잠깐 지나가기도 지나갈 뿐 아니라 다른 세대는 가면은  그거 아무것도 귀하게 여기지를 아니합니다.

 옛날 역사 세계도, 역사도 보면 어느 시대는 아주 도덕을 귀하게 여겨서 소부  허유하는 그 시대는 도덕을 귀하게 여겨서, 송아지를 먹이고 오는데 어떤  사람이, 그 친구가 물에다가 귀를 씻고 있으니까 '이 사람아 귀를 와 씻는고?'  '아 나를 오늘 정승하라네. 나를 벼슬하라네. 내가 얼마나 천하게 굴기 때문에  날 벼슬하라 할꼬.' 하도 더러운 소리를 들어서 지금 내가 귀를 씻는다고 귀를  씻고 이러니까 이 사람이 있다가 '아 그래? 아 자네를 벼슬 하라 정승하라 해?  더러운 소리 들은 귀 씻은 그런 물도 우리 송아지 먹이면 안 되네 나는 저쪽  가서 먹일려네.' 그래 또 말해. 그렇게 벼슬을 천하게 여기는 시대도  있었습니다.

 또 어떤 시대는 돈을 귀하게 여겨서 사람이 늙어서 돈 벌이는 하지 안하고 자꾸  앉아서 먹기만 하거들랑 부모라도 고만 저 잡아다가서 땅굴 파고 그 안에다 넣어  놓고, 돈벌이도 하지 안하고 먹을라 하면 재산에 소모되니까 저 땅 구더기 파고  그래 놓고서 구멍 뚫어 놓고서 -뭐 고기 달라고 암만 해봤자 안 주면 되니까 -딱  뚫어 놓고서 구멍에서 밥이나 조그매씩 한 뭉터기 며칠 만에 넣어주고 그래서  그래 살다가 죽구로 해라. 그게 고려장입니다. 고려장. 그때는 너무 나라가  가난하게 되니까 이제 돈이면 제일이라고 하는 그 시대입니다.

 왜정 말년에도 아주 신문에 크게 났었습니다. 아 일본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자기가 밭에 나와 가지고서 하루 종일 그 밭에 있는 지심을 뜯느라고 해서 한  평을 뜯었다고, 몇 살 되는 할머니가 밭에 나와 가지고서 밭을 매어서 한 평의  잡초를 제했다고 아주 신문에 크게 났었습니다. 이렇게까지 하니 젊은 사람들이  열심히 일해야 된다 하는 그것이 이차 대전 말기에 일본서 경제에 어려움을  느끼면서 그때는 돈이라야 된다. 물질이라야 된다 하는 그 아주 귀부, 아주 부를  귀하게 여겨서 그때는 그 노인이 밭에 가서 다만 자기 앉을 자리라도 풀을  매어서 이 농사짓는 데에 돕는 일을 해야 유명해지고 귀하지 놀고먹는 그런 것은  못 쓸 것으로 그래 했고 우리나라는 고려장까지 했고.

 이러니까, 세대마다 다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 이 세대는 무엇이 귀하다고  그것만 갖추어서 구비하게 남보다 탁월하게 뛰어났으면 이만하면 됐다 그렇게  생각지 맙시다. 이것도 한 세대가 지나가면 그까짓 거 아무짝도 못 쓸 천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저도 몇 해 안 살았지마는 제가 사는 동안에도 벌써 나라에서나 개인으로서나  이것이 귀하다 저것이 보배다 하는 것이 얼마나 변동됐는지 모릅니다. 사람들  유행을 따라서 의복이 변화되는 것 모양으로 그렇게는 많이 변하지 안하지마는  그 세대에 평가라 하는 것은 얼마나 변하는지 모릅니다. 이런데, 자기는 그  세대에서 인정하는 것 이것만 있으면 나는 됐다, 언제는 금이면 제일이라, 어떨  때는 보니까 금을 뭉텅이를 줘도 쌀 한 되를 안 줍디다. 금반지를 빼 주면서 '쌀  한 되 주십시요' '그 금반지가 무슨 소용 있습니까? 지금 굶어 죽을 판인데 쌀이  제일이지.' 쌀 가지고는 금반지를 바꾸어도 금반지 가지고는 쌀 바꾸기가  어려워.

 그러기 때문에, 인간들이 보배다 귀하다 하는 그런 것은 세대를 따라서 달라질  뿐만 아니라 또 그것을 깊이 궁구해 보라 그것이 어느 정도의 보배성을 지니며  그것이 어느 정도의 너희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느냐? 또 그것이 얼마 동안이나 그  기간동안 너희에게 보배로 필요가 있겠느냐? 이것을 좀 인간이 시대를 초월해서  생각하고, 그 모든 것의 결말을 생각해 보고, 죽음도 생각하고 죽음의 너머도  생각하고 하면은 땅 위에 하나님 버리고 의지하고 바라 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도 없어. 모두 마귀가 눈을 어둡게 소경을 만들어서 인간들이  공연히, 울지 안한 일도 그거 없다고 울고 또 그거 있다고 그 마음을 높이고  이래 하고 있지. 그러니까, 영원히 일관되는 성경의 인생관을 가지고 만물관을  가지고 보면 모두가 다 미친 사람이요. 모두가 다 정신없는 미친 사람이라  말이요. 네가 아무리 그렇게 하면 그것이 얼마 될지 그 장래도 모르고 그 수명도  모르고 그 기간도 보르고 그것이 뭘로 될지 그것도 모르고 이라기 때문에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그런 것들 가지고 마음을  높이지 말아라, 그것 가지고 네가 무슨 재앙이나 환난을 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그렇게 생각지 말아라, 네게 필요하고 요긴한 그런 행복을 가져 올 수 있다고  생각지 말아라, 너 하나님의 사람아 그것 가지고서 하나님의 은혜가 열 개가  있어야 되는데 그것 있으니까 다섯 개만 있어도 이것 가지고서 하나님 은혜에  대신으로서 대용을 할 수가 있다 대신 보충을 할 수 있다 그렇게 하지 말아라.

그것이 녜게 하나님의 모든 요소, 네게 있어야 할 하나님의 요소는 하나님의  요소가 네게 있어야 되지 하나님의 요소를 세상 그것 있으니까 하나님의 요소가  내게 좀 적어도 세상 것 없는 저 사람 비하면은 나는 이만하면 그래도 그 대신이  되지 않겠느냐, 네게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를 네가 보배로 여기는 그것  가지고서 대용되리라 그렇게 생각지 말아라. 또 하나님이 네게 대해서  요구하시는 그 요구에 있어서 나는 이 세상 것 이거 있으니까 없는 사람은  하나님에게 저렇게 비쳐야 되지마는 나는 이거 있으니까 하나님께 바치는데 저  사람은 다 바치지마는 나는 반만 바쳐도 내게 있는 이것이 있기 때문에 이거  바치면 되지 않겠느냐 그렇게 해서 그것을 하나님 대용으로 너 대용으로-요즘  어려운 말이요-하나님 대용으로 하나님 대신으로 너 대신으로 삼지 말아라. 그런  것들이 암만 많아도 그것을 너 대신으로 삼아 가지고 나는 이거 있으니까 나는  갈 것 없이 이것만 가면 안 됩니까 이거만 보내면 안 됩니까, 하나님은 안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들을 원합니다. 아무리 세상에 지식을 제일 많이  통달해도 그 사람이 새벽기도 나오는 걸 원하지, 내야 뭐 새벽기도 다른 사람 열  번 나가는데 내가 이렇게 세상 박사를 다 가졌으니까 나는 열흘 만에 한 번만  나가도 아홉 번은 내가 이 지식이 대용할 수 있지 않는가, 그렇게 안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세대에 이 부한 것,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그 은혜로 할 일을, 하나님 은혜로 할 일을 그것 가지고서  대용이 되리라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 사람 무식한 사람이니까 설교  준비하느라고 열 시간을 준비를 하는데 나는 유식하기 때문에 차는 십 분만  준비해도 된다 그렇게 하는 데에서 인간이 다 망합니다. 그 설교하는 것 사람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것. 또 하나님을  힘입는 것, 하나님 힘입는 데도 하나님이라야 되지, 하나님 은혜라야 되지  그까짓 가지고는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은혜를 대용할 수가 없다. 또 네가  바치는데 대해서도 그런 것 가지고는 대용할 수가 없다. 대신할 수가 없다  그것을 가리켜서 여기에 말씀합니다. 우리가 그런 것을 회개합시다.

 이래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이와 정반대로 이 세대의  것이 가난하다고 해서, 이 세대에 가난하다고 해서 마음이 쿡 쭈구러져 가지고서  네가 쳐박혀서 낮아지지 말아라, 아 이 세대 것이 있다고 그 사람은 있으니까 턱  자기는 마음을 높여서 높은 줄 알고 그거 없으니까 나 같은 인간이야 천한  인간이라 하면서 낮아지는 그런 인간되지 말아라, 그것이 없어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느냐 그것이 암만 있어도 하나님 안 계시면 안 된다. 이래서 야고보서  1장 9절에 '부한 자는 낮아진 것으로 자랑하고 낮은 자는 부한 것으로  자랑하라.' 예수 믿고 보니까 이 세대에 귀하게 여기는 그것은 그 가치가  아무것도 아니고 하나님만이 가치라. 하나님의 은혜 만이 가치라.

 이러기 때문에, 그거 없어도 하나님의 은혜 있으면 되고, 그거 암만 있어도  하나님 은혜 없으면 안 되고 이러니까 가치를 순전히 하나님에게만 두고, 능력을  하나님에게만 두고, 자기의 행복을 하나님에게만 두고, 하나님에게만 두고  이렇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 될 터인데, 없어서 마음이 가라앉는 사람, 있어서  마음이 높아지는 사람 이것을 다 성경에 명령적으로 다 버리라고 했습니다.

요것도, 요것을 버릴라고 하면은 그 사람의 정신이 까랑까랑해집니다. 요걸  정말로 알고 척 버리면, 버린다고 누가 집을 내버립니까?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이 주신 보관으로 가지고 있지 그것 가지고 뭐 되리라고 하지 않습니다.

억만금이 있어도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를 줘야 억만금이 보배가 되지  억만금이라도 하나님이 백 원짜리 보배만, 보배만 되구로 하면 백 원어치만  보배되지 나머지기는 다 헛일 합니다. 내게 단 십 원이 있어도 그 십원이 억 만  금보다도 내게 더 보배가 되도록 하시면 그것이 보배가 됩니다. 이걸 우리 가  믿어야 됩니다.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정함이 없는 이 세대에 보배라고 하는 거기다 소망두지 말아라, 그거 있으면  된다 그렇게 두지 말아라, 그 언제 어찌 될지 모른다. 그러기에, 참 하나님  바라보고 의지하지 안하고 세상에 인간 의지하는 사람, 또 자기를 의지하는  사람, 뭐 물질이나 형편이나 사정이나 그런 것 의지하는 사람, 기술 의지하는  사람 얼마나 불쌍한지 모릅니다.

 어떤 내가 보니까 침쟁이 하나 있는데 그 침쟁이가 참 유명한 침쟁이입니다.

유명한 침쟁이인데 하나님께서 그만 빽 틀어 버리니까 침을 못 놔. 침을 못 놔서  이 침을 들 수가 있어야 놓지. 제가 병이 들었는데 뭐. 그래 가지고 면허  빼앗기기는 싫으니까 다른 사람을 시켜서 입으로 이래 가지고서 요래 놓으면  된다 저래 놓으면 된다, 손으로 놓을 수가 있어야지. 그런 사람이요 이웃에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정함이 없는 재물 그것을 하나님이 어떻게 변동시킬지 모르고, 또  하나님이 변동 안 시키고 제대로라도 그거는 벌써 정죄받았고 사망 아래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 어찌 될지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것에 소망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이러니까, 우리가 요것이 변동되면  안 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뭐이든지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무엇이든지,  좋은 거나 나쁜 거나 가지고 있는 것 그것을 좋은 거라 나쁜 거라 그렇게 생각지  말고 내가 가지는 있는 것 좋은 것이든지 나쁜 것이든지 하나님이 좋게 하시면  그것이 좋아집니다. 지극히 좋아집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나쁘게 하시면 지극히  나빠집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 떼 놓고 뭐 좋은 것이 없고 보배로운 것이 없고 가치  있는 것이 없고 필요있는 것이 없고 중요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천하에 제일  보배라도 하나님이 당장에 천하에 제일 천하게 만들면 천해져 버립니다.

인간들이 천하에 제일 천한 것이라도 천한 것을 하나님께서 당장에 보배 만들면  그것이 천하에 제일 보배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분이 주권을 가지시고 또 전능을 가지시고 전지를 가지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만을 바라보고 그분만을 의지하고 그분에게 구하고 그분으로  더불어 모든 일을 의논하고 해결하고 작정하고 그분만을 상대해서, 그분이 모든  피조물을 이래라면 이라고 저래라면 저라고 가지라면, 주면 가지고 버리라면  버리고, 그분만 우리는 상대하는 이런 사람이 되어 그분에게만 받아라. 모든  것을 후히 준다 그 말은 우리는 또 무엇이 필요할 줄 모릅니다. 우리는 필요한  것도 모릅니다. 필요한 것도 모르요. 필요없는 것도 받아라. 우리는 필요한 것도  모릅니다. 필요한 것도 모르요. 필요없는 것도 모르요. 해로운 것도 모릅니다.

유익될 것도 모릅니다. 참 목석같은 우리들이요. 옳은 일에 대해서는 목석같은  우리들이요 우리에게 있다면 죽고 망하는 그것밖에 모릅니다. 죽는 것만 알고  망하는 것만 알고 천해지는 것만 알고 이 사망에 대한 사망할 줄 아는 지식  사망을 욕망하는 것 사망을 좋아하는 것 사망을 일으키는 것 죽는 법칙 그것만  알아. 사망에 속한 것만 알지 딴 거는 하나도 없어. 이것이 믿어집니까?  사망에 속한 것, 사망하게 하는 것, 사망된 것 그것만 우리에게 있지 옳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모든 것을 버리 라 말은  모든 것을 자기가 하나님 상대하는 그 상대를 그것에게 상대하지 말 라 그  말이요. 버리라 말은 당장 집을 내 던지라 말이 아니요. 자기 직장을 집어  던지라 말이 아니요. 이제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대해서 소망하는 이 소망을  옮겨서 그것들에게 소망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의지를 거기에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거기에 믿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바라보는  것을 거기다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에게 관계하는 그것을 하나님 내비두고 어떤  것에게도 그 관계를 가지지 말아라, 그거는 하나님 하나님의 뭐 부스러기만치도,  부스러기, 하나님에게 대한 부스러기만치도 그것은 상대가 될 수가 없고 책임을  질 수가 없는 그런 것들이기, 때문에 아예 네가 하나님에게 대한, 하나님에게만  상대해야 되지 하나님에게 상대할 것을 이 피조물이 크다 많다 좋다 모든 사람이  보배라 이라니까 하나님에게 상대할 것을 아 이것도 상대하면 하나님만은  못하지마는 그래도 많이 상대하면, 이것이 많으면 그래도 뭐 하나님의 백분지 일  이나 천분지 일이나 부스러기 만치라도 그만치라도 좀 대용이 될 것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지 말아라.

 그런고로,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인정하고 그만  따르고, 이래서 그분에게만 얻어라. 이렇게 하면 그분이 '모든 것을' 너는 네게  무엇이 필요한지 불필요한지 해로운지 그것도 모른다. 그라나 그분은 아신다  그분은 아시니까 네가 그분만 바라보고 그분만 의지하고 그분만 따라서 그분  시키시는 대로 이와 같이 하면 그분이 너를 사랑하셔서 네게 필요한 것은 조  금도 부족함이 없이 모든 것을 구비하게 너희에게 구비해 주신다. 구비해 주실  때에도 너는 이해가 못 되어도 네가 그분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순종하면 그분이  구비하게 주신다는 이 사설을 인정하고 믿어라. 그러면, 네가 이해를 하든지  못하든지 네가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해서 온 것이면 너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보배인 것이 네게 왔으니까, 네가 그를 믿고 의지하고 바라봄으로 온 것이면  주님이 너희에게 필요한 것으로 주신 것인 줄 알고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모든  것을 구비하게 다 주시고 후히 주신 다, 네게 필요한 것은 털끝 만치라도  모자람이 없이 충족하도록 주신다 충족하도록 주신다.

 그러면 충족함을 주시는 것은 우리는 꼭, 아 주시면 돈은 자꾸 많아져야  되겠다, 돈이 있어야 내게 필요할 때도 있고 그 돈은 그때에 없어져야 그 돈이  내게 필요한 때도 있고 이런 것이니까 나는 뭐이 필요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분은 아시기 때문에 모든 것이 네 구원에 충족하도록 다소 양도 조절하고  종류도 조절하고 모든 시기도 조절하고 공간도 조절해서 딱딱 들어맞춰 가지고  그와 같이 해 주시니 네가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에게 얻어라. 모든 것을 후히  주시고 누리게 하신다. 누리게 한다 말은 자기가 그것을 미래적으로 이  세상에서도 그것의 효력을 자기가 보고, 유익을 누리고, 유익을 자기가 복되게  받고 효력을 얻는 그것을 가리켜서 누린다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도 그 모든 것이 너희에게 누리지게 하고 또 그걸 이  세상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자꾸 번지고 번져서 영원무궁까지 너로  하여금 영원히 그것을 누리도록, 가지고 누리도록, 가지고 사용하도록, 그걸  필요있게 이용하도록, 그것에 대한 효력을 네가 보도록, 효력의 유익을 봐서  네가 행복되도록 이렇게 하시는 이를 바라봐라. 이 성경에 이렇게 말씀한 것을  달리 해석할 수 있습니까? 이런 말은 안 믿는 사람이라도 요렇게 밖에는 해석할  수가 없습니다. 요걸 안 믿는 사람, 요건 쉬운 것이요 맛배기로 해 놨기 때문에.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그 다음에 18절에, 이제 얻기는 하나님 한 분에게 얻어라, 얻기는 하나님 한  분에게 얻어라. 없는 자는 없다고 네가 걱정하는 자냐. 없다고 네가 이 세상과  세상의 것이 없다고 걱정하는 자 그자도 미친자, 세상 것이 많다고 그것  가지고서 마음을 높이는 자도 비친자, 다 정신 빠진 자라. 왜? 없어도 없는  가운데 모든 걸 있게 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데, 하나님이 계시는데 이제 그 눈에  보이는 그것 없다고 낙심하고 탄식하는 자도 그자도 정신없는 자, 세상 것이  있다고 하나님이 그걸 당장에,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인데 그거 있다고 배짱을  부리고 높아 하는 그자도 정신 빠진 자. 왜? 있는 걸 없게도 하시고 없는 걸  있게도 하시고, 많고 큰 것을 작고 적게도 하시고 적고 작은 것을 많고 크게도  하시는 그분이 주권을 가지고 이래 하시는 그분이 계시는데 그분은 상대하지  안하고 그분 떼 놓고 이거 가지고 우는 자도 미친 자, 배짱부리고 큰 소리 하는  자도 미친자다 이걸 명령해서 이런 마귀의 미혹을 들지 빨라 해라 말씀한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면 그분이 네가 모르는 면까지 모든  것을 구비하게 해서 네 구원 이루기에 가장 적절하게 후하게 적절하게 해 주시는  그분에게 소망을 두고, 그러면, 그분에게 얻어라.

 그러면, 그분에게 얻으면 얻은 걸 가지고 어떻게 할건가? 얻기는 그분에게만  얻고 얻은 그것을 어떻게 소모할까? 어떻게 관리할까 어떻게 저축을 할까?  어떻게 사용을 할까? 거기에 대해서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18절에는.

하나님에게만 얻고, 18절에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일을 행하고' 네가 장사를  하든지 취직을 하든지 출세를 하든지 뭐 결혼을 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네가  선한 일을 해라, 하나님 중심으로 해라, 하나님 중심으로 해라 이것이, 이것이  만 가지 건설에, 만 가지 건설에 터전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만 가지 건설에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요. 지혜있는 자는 집을 반석 위에 지었다 반석으로 터전  삼았다 그 말은 절대자이신 그분을 근거하고 그분을 기조로 삼고 그분 위에,  그거 뭐입니까? 선입니다. 하나님을 중심하는 이것은 자기의 생애에 반석같은  기초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어디든지 하나님 중심이면 깨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중심이면 넘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중심이면 헐어지지 않습니다. 모든 세상에  파동이 오면 올수록 하나님 중심이면 점점 튼튼해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선한  일을 행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네가 해라.

 '선한 사업에 부하고' 네가 하나님 중심에 하는 일에도 한 가지에서 할 수 있는  대로는 한 가지에다가 둘 할 수 있으면 둘 하고 둘 할 때에 셋 할 수 있으면 셋  하고 넷 할 수 있으면 넷하고 다섯 할 수 있으면 다섯하고 네 힘 있는 대로는,  네 힘 있는 대로는 하나님 중심이 일을 하나님에게 받은 건강, 하나님에게 받은  재물, 하나님에게 받은 지혜, 총명 하나님에게 받은 기능, 하나님에게 받은  기술, 하나님에게 받은 예술,-요전에 어떤 사람이 이거 하나님이 내게 특별히  주신 것인데 이 성대를 좀 어디 녹음을 하든지 어디 그 레코드를 만들까 이러기  때문에 나도 찬성해. 내가 찬성해서 나도 거기에 도울 수 있는 것 나한테 말하면  내가 도울 수 있는 데까지는 도울 터이니까 한 번 해봐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그렇게 헛되면 안된다 그렇게 말했는데 모르겠습니다. 지금 어떻게  하는지.

 '선한 사업에 부하고' 하나님 중심인 그 일, 사업은 이런 것 저런 것 뭐 자선  사업도 있고 또 그 제조 사업도 있고 무슨 별별, 상업도 있고 뭐 생산업도 있을  것이고 운반업도 있을 것이고 소비업도 있을 것이고 여러 가지, 업으로 말하면  한 서너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무슨 업을 하든지 네가 하나님 중심의 업을 하되  열심히 해서 차차 차차 네가 범위를 넓혀 가지고서 더 많이 해라. 네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받은 은혜 가지고서 할 수 있는 범위까지 아주 힘 가지고 자꾸  범위를 넓혀서 많이 해라.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또, 이제는 너만 이 선한 사업을 할 것이 아니라 선한  사업 하는 그것을 네가 다른, 네가 네 힘 있는대로는 하나 하다가 둘 셋 넷 자꾸  범위를 넓혀서 이래 할 뿐만 아니라 너 혼자 하던 것을 한 사람 더 보내  가지고서 두 사람이 하고 세 사람이 하고 네 사람이 하고 이것을 가리켜서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네가 하나님에게 받은 것을 자꾸 나눠 가지고서 너와 같은  사람이 하나가 둘 되고 둘이 셋 되고 자꾸 이래 가지고서 모든 사람으로서 이래  해라. 이 말씀은, 부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라 그 말은 이제 이 네가  국부적으로, 부분적으로, 그렇게 지역적으로, 소규모적으로 그렇게만 하지 말고  네가 전체를 봐라 전체를 목표해서 나는 나 하나만 선한 사업 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인류 전체가 선한 사업을 하도록, 전부 알게 되도록 네가 넓혀서 인류의  전체, 인류 전체에서 하나님이 지으신 영계와 물질계 나 이 전부 것이 차차차 네  힘있는 대로는 자꾸 네 자체로 전부 넓히고, 또 이제는 모든 사람으로 넓히고  만물로 넓혀서 모든 피조물이 전부가 다 하나님의 것으로 충만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이렇게 이 전체로 전부 확대해 나가라. 네가 대국적으로 살  것이 아니고, 너는 대국적으로 살 자가 아니기 때문에 너는 전체적으로 살  자이다. 전국적으로 살 자이다. 너는 전체를 보고서 살 자이기 때문에 이렇게  마음을 넓혀서 얼마나 하다가 갈런지 몰라도 네가 목표하기는 이 전체가,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 도 이루어지이다.' 전체를 네가 상대해서 하고  하나님에게 얻어 가지고서 네가 네 개적으로 힘있는 데까지 자꾸 넓히고, 또 그  다음에는 너만이 아니고 자꾸 너와 같은 사람을 만들어서 자꾸 이와 같이 넓히고  넓혀서 이 전체를,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없는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지으신 이 모든 피조물이 없는 가운데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지음 받은 거와 같이, 지음 받은 것이 이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서만  살 수 있다. 하는 인식을 가지고 모든 만물이 다 하나님 한 분을 상대해서  중심해서 사는 이런 존재들이 되어지도록 네가 목표를 정해 놓고 하라. 네가  하다가, 이 목표만 바로 정해 놓고 바른 방편으로 네가 하다가 다하고 가지  못한다, 네가 시작만 해 놓고 가면은 네 시작이 바로 되고 네 방편이 바로  됐으며 바로 된 목표, 바로 된 시발, 바로 된 방편은 하나님이 그 일을  책임지시고 다 이루신다, 이루신다.

 이러기 때문에, 성도들이 옳은 일을 하다가서 자기 세상에 있는 동안에 자기 눈  앞에서 그거 성공을 볼라고 하지를 않습니다. 옳은 것만 해서 하나님 이  원하시는 고것만 잡았고,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그 방법에 피동돼 가지고서  그것을 시작해서 했으면 그 일을 마지막에는 '주님이여, 나를 통해서 하시던 것  내가 이제 다 못하고 이것을 주님에게 맡기고 갑니다.' 주님은 그것을 맡아  가지고서 다 이루십니다. 주님이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셨다는 것이 당신은  했지마는 남은 것은 하나님이 다 맡아 가지고서 그 일을 이루시는 것이 주님의  대속의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이제는 점점 이것은 확대하라 말입니다.

확대하고 자꾸 넓혀서…,  요 사람이 말이지요, 사람이 우리가 우리가 내가 되면 죽습니다. 우리가 내가  되면, 우리에서, 우리에서 탈선돼 가지고 죽는 것은 나 되면 죽습니다. 우리가  내가 되면 작아지고 나 되면 죽습니다. 내가 죽는 것은 나 속에도 어떤 요소,  욕심이라든지 무슨 무슨 감정이라든지 무슨 그 정서라든지 우리 전체 이  움직여서 통합해 가지고서 하지 안하고서 어떤 그 사람의 한 요소로 치우쳐서  갔으면은 그 사람은 벌써 못 쓸 사람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하지 말고 점점 키워서 넓혀서 너로 하여금 무한하신  분이 계시고, 네가 암만 무식해도 그 유식한 하나님이 계시고, 무능해도  유능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고, 네가 거지라도 부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낙망하지 말고 너만 바쳐서 일해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 가지고서 오천 명이 먹고 남았으니까, 그 오천 명  아니라 오만 명이면 더 많이 남지요. 오억 명이면 더 많이 남지요. 이것이  하나님의 도요 하나님과 인간과의 연결된 그 결과입니다. 믿지 않기 때문에,  이렇지마는 '내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너희들이 모든 것을 원한적으로  구하면 다 이룰 터인테,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다 성취하겠다 했는데 내가 올  때에 정말로 이 사실을 믿고서 이 믿음의 생활 하는 자를 보겠느냐 말씀했으며  탄식을 했습니다. 이런고로 넓히라. '나눠 주기를 좋아 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네가 이제는 다른  사람이 돼 봐라. 네가 그 사람을 그 사람에게 감염돼 가지고, 그 사람에게  감염돼 가지고서 그 사람이 못 쓸 사람 모양으로 거기에 물이 들어서 네가 죽는  것이 아니고 네가 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구원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이 어떻다 해서 건너다 보고 하지 말고, 건너다 보고 하지 말고 그 사람을  깊이 네가 실감하기를 네 그 본인이 실감하듯이, 본인이 실감하듯이 네가 그  사람을 실감해 봐라, 네가 그 사람과 바꾸어져 가지고서 그 사람의 사실을 그  사실대로 네가 실감하기를 애를 써라, 애를 써서 모든 사람을, 그 본인이 잘못된  감정이라도 잘못된 감정이 어떻게 돼 가지고 그런가, 그 잘못 된 감정의 그  사람이 네가 되어 가지고 그 사람이 되어 보고, 그 사람의 그 사실을 네가  실감해 가지고 거기에서 그 사람을 구출하도록 해서, 모든 사람을 너를 삼아  가지고 네가 거기에서 구출하려는 이, 속에 네 자체적인 그 변화를 네가 받도록  해라 '동정하는 사람이 되게 하라'  그러기에, 네가 모든 사람 속에 녹아지는 소금처럼 네가 들어가서, 네 한  성품이 들어가고, 네 한 뜻이 들어가고, 네 한 정이 들어가고, 네가 모든 사람  속에 소금이 녹아지고 간이 빼어 들어가는 것처럼 이렇게 네가 모든 사람 이 돼  가지고 모든 사람을 너로 삼아서 그 사람을 네가, 그 사람이 당하고 있는 그  감정 그 사정 그 느낌, 그 느낌을 네가 가져 봐라. 느낌을 가져 보고, '아!'  그러면 비로소 그 사람의 눈에 티를 알 것이다 그 사람을 그렇게 느끼고 보면 그  사람의 문제가 어떻게 되어 있으며 얼마나 어려우며 그 사람에게 대해서는 과연  그럴 수 있다, 과연 그럴 수 있다, 과연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된다.! 과연 그럴 수 있다, 아 그 사람이 과연 그럴 만하다,  분개할 만하다, 낙망할 만하다, 슬퍼할 만하다, 기절할 만하다, 자살할라고  도모할 만하다. 그 사람이 네가 되어 봐라. 그래 돼 가지고 거기에서 사망에서  구출하시는 주님이 계시니까 주님으로 인해서 구원하는 네가 되어져 봐라. 네가  모든 사람이 되어지고 모든 사람이 네가 되어지도록 이렇게 네 자체가  변화되어서 참으로 모든 사람에게 필요 있는 사람이 네가 되어 보라. '동정하는  사람이 되게 하라'.

 이래서, 받기는 하나님에게만 받고, 하나님에게 받은 것 가지고서 점점  확대해서 하나님 중심으로 움직이고, 하나님에게만 받고 하나님에게 받은 것을  하나님 중심으로 모든 것을 다 나눠서, 이렇게 뿌려서 하나님 중심이 점점  펴져서. 이것이 땅끝까지 펴져서 모든 존재 전체가 다 하나님 중심이  되어지도록, 주님은 이 일을 성공을 했습니다. 이래서,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이나,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이 다  주님을 주라고 시인했습니다. 주라고 시인했습니다. 이래서, 주님은 인간만  구원한 것 아닙니다. 만물을 회복했습니다. 만물을 다,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모든 것은 하나님 중심으로라 산다는 것을, 당신이  십자가에서 우리만 대속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대속하셔 가지고서 지옥에  있는 것들도 하나님 중심이 되어야 산다 하는 그것을 그들이 알았기 때문에 주를  시인한다. 지옥에도 그들이 하나님 중심인 것을 알았으면 그들도 지옥에 있어도  태평일 것이고 기쁘고 즐거울 것이고 만족할 것입니다. '아,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나를 지어서 당신 중심으로 당신 위주로 당신의 지극하신 뜻이  이루어지는데 내가 이렇게 이용됐든지 내가 저렇게 있든지 어쨌든지 지존자  그분에게 이용된 내가 됐다고 하면은 만족하는 것. 그러기 때문에, 모든 것이  주를 주라 시인하면서 영광을 아버지에게 돌린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이렇게 해서 하나님에게만 받고 하나님 중심의 생활을 네게서 부터  점점 확대해 나가라. 확대해 나가서 너는 하나님에게 받는 이것과 하나님에게  받은 그 모든 것을 가지고서 하나님 중심의 존재들이 되어지도록 이 일에 네가  열심히 해라, 이 일을 네가 점점 확대시키라. 이 일에 부요하게 해라. 그라고  모든 사람을 너와같이 생각해서 모든 사람이 네이고 네가 모든 사람이 될 수  있는 이런 것을 연습을 해라 연습을 해서, '저 사람은 왜 울까? 우는 사람의 저  사람의 심정이 어째 울까?' 그 사람의 심정을 네가 알 수 있어 그 사람의 우는  그 울음을 네가 알 수 있고 네가 울 수 있는 그 사람이 되어져 봐라. 그 사람이  놀래서 공포에 떨리고 견디지 못하면 견디지 못하는 그 사람이 네가 되어 봐라.

그 사람이 되어 가지고 바꾸어 가지고 거기에서 너는 구주를 아니까 구주를 전해  가지고서 구주로 살아나게 하라. 살리지 못할 때가 없으니까 네가 점점 모든  인간에게 너라는 그 참 사람이 소금같이 되어서 참사람 소금같이 된 네가 이제는  소금같이 녹아져, 녹아져 가지고서 수많은 사람 속에 스며들어 가지고서 수많은  사람이 네 요 네가 수많은 사람이요 그리하여서 이제 동정하는 사람이 되게  하라. 자체의 이 변화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했습니다. 그리하라.

 '이것이 장래에' 미래적으로 말입니다. 미래적으로, 이것이 미래적으로 '자기를  위하여' 이것이 미래적으로 자기 위하는 것이 된다. 이라면은, 이 사람이 되면  이 세상에도 오늘보다 내일이 행복스러울 것이요 금년보다 명년이 행복스러울  것이요 또 젊어서 보다 늙어서가 행복스러울 것이요, 이 사람의 행복은 인간이  조브랍게 생각하는 대로 돈이 있어 행복이고 잘 먹어 행복이 아니고 잘 입어  행복이 아니라, 이 사람은 고차원에서, 인간들이 이해 못 하는 행복, 인간들이  측량 못 하는 행복, 만족하고 더 이상이 없고 기쁘고 즐겁고 평안하고 만족하고  없어지지 안할 그런 고차원의 것으로 자기 위함이 된다 또 따라서 이 물질계  그것도 무슨 별개 거석같이 초절적인 것이 아니고 그러므로서 세상에서도 세상  것으로 행복하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이 초절이 있다고 생각지  마십시요. 이 세상에 행복되어야 심령도 행복되고 영계도 행복됩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만일 지금이라도 이렇게 사는 사람이 하나 있다고 하면, 우리가  이곳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가고 있으나, 이렇게 다 된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을 태평양 가운데다가 갖다 앉혀 놓으면 태평양, 그 태평양이 배로  빡빡할 것입니다. 그 사람 찾아서 배 타고 그리 뭐 태평양 가운데로 모아 들  것이요, 그 사람을 산 만당에 잡아다 묶어 놓으면 그 사람이 있는 산만당에는  마구 사람 산더미가 될 것입니다. 사람 산더미. 인간은 이것을 원합니다. 인간은  이것을 찾고 있습니다. 진정 사모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이것이 참 자기를 위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좋은 터를 쌓아' 좋은 기초 좋은 터는, 세상은 무궁의  터입니다. 무궁을, 이 세상은 무궁의 터입니다. 세상에서 어떻게 한 이것이  무궁의 터전이지 세상에 해 놓지 아니한 것이면 무궁에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영원에 내세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자 얻는 것을, 얻는 것을 하나님 한 분에게만, 얻은 것을 하나님 한  분을 중심해서, 그 가운데서 자기는 모든 사람의 분자가 되고 모든 사람은  자기의 분자가 되고 이래서, 모든 사람의 분자가 되어 모든 사람 속에 들어가서  모든 사람을 다 내가 되어 보고, 모든 사람을 내가 되어져 보고, 모든 사람의 그  울음을 내가 울어 보고, 모든 사람의 슬픔을 내가 슬퍼 보고, 모든 사람의  두려움을 내가 두려워 보고 거기에서, 내가 모든 사람이 내가 되고 그 사람을  내가 실상으로 실감적으로 내가 느끼고 바꾸어 되어져 가지고 거기에서 인간을  구출하는 이 사람이 비로소 인간과 인간의 경계가 없어집니다.

 인간이 제일 좋은 곳이, 제일 좋은 곳이 하나님. 인간이 하나님 안에  돌아다니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하나님 안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그  속성 안에 들어가면 참 좋습니다. 하나님의 지식 안에 들어가면 참 좋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들어가도 좋습니다. 하나님의 감동 안에 들어가도 좋습니다.

제일 좋습니다.

 또, 우리가 사람 안에도, 내가 그 사람을 만나 가지고 그 사람과 나와 원수가  돼 가지고 이래 찜찜하게 이래 있는데 그 사람과 나와 화목이 돼 가지고서 내가  그 사람 마음에 들어가면 참 좋습니다. 이래서, 모든 사람에게 거리낌이 없이  들어가면 행복이 됐는데 자기에게 가까운 사람이, 사람이 막혀 가지고서  들어가지 못하고 있으면 그 사람은 항상 그 얼굴에 쾌락은, 쾌락이라는 그  피부는 나타나지를 못할 것입니다. 항상 근심과 고통만 있을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렇게 이 모든 사람에게 자유로 활동하는 것, 이 사람 속에도 내가  들어갈 수 있고 저 사람 속에도 자유 할 수 있고, 남의 마음속에 제 마음대로  출입하는 거라 제 마음대로 들어가서 다닐 수도 있고, 제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어. 제 자유로 들어갈 수 있어. 들어가면 다 거기 가도 환영 저기 가도 환영  막힐 사람이 아무도 없고 어디든지 자유로 문 열고 들어가고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지마는 다른 사람 속에 내가 들어가는 것은 그 사람이 날 못 들어오게 해서 못  들어가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걸 못 들어오게 하는 것 없어. 그 못  들어오는 것은 자기 양심의 가책이 들어서, 자기에서 거리껴서 못 들어갑니다.

그 사람 속에 암만 들어갈라고 해도 자기에게 거리끼어 못 들어갑니다. 자기에게  거리껴서. 이러니까, 동정하는 자가 되는 이것은, 네가 하나님이 좋은데 하나님  안에 얼마든지 자유로 돌아다니면서 네가 살 수 있는 하나님 안에서 자유하고,  네가 인류 안에서 자유하고, 인류 안에서 자유하는 것은 동정하는 자가 되는  이것으로 네가 성화되는 데에서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인류 안에 자유하고, 그  다음에는 만물 안에 자유하고 이렇게 해서 자유케 하기 위해서 너희들을 불렀다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주님은 어느 인간 안에 자유로 들어가도 누가 막을 이 없고 당신은  얼마든지 자유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다 환영할 것입니다. 이것이 좋은 터,  좋은 기초를 마련하는 것이다. 좋은 터라 말은 좋은 기초를 마련한다. 좋은  종자를 마련한다. 좋은 모종을 마련한다. 모종이 있어야 크지요. 종자가 있어야  나지요. 터가 있어야 집이 서지요. 건물로 말한다면 이것이 터고, 농장으로  말하면 이것이 모종이고, 종묘로 말하면 이것이 종자고, 이것이 시발이라. 이  세상세서 이것이 시발이라. 여기에서 무슨 시발? 세 가지. 하나님에게만  바라봐서 하나님에게만 얻는 것. 얻는 모든 것을 하나님 중심으로 점점 넓혀갈  것. 네가, 모든 사람이 네가 되고 네가 모든 사람이 되어서 모든 사람의, 그  모든 사람과 너와 이색되지 말고, 이색되지 말고 우는 자와 너와 하나 되어  가지고서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이 사람이 지금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될 수 있으니, 이것을 우리가 해야 될 줄 알면서도, 혹 우리가 하는  방편에 있어서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을 방편을 서투르게 하면, 의사가 수술할  때에 서투르게 하면 그 사람 죽습니다. 그 수술할 때에 그것을 아프지 안하도록  날카롭게 잘 수술하는 방편이 있는 것처럼 그 사람에게 대해서 내가 동정하는  사람이고 그 사람 심리를 분명히 그 사람 울음을, 그 사람 분함을, 그 사람의  기쁨을, 그 사람의 탄식을, 그 사람의 근심을, 그 사람이 미혹에 빠져 있는 그  미혹을 분명히 체험하고 체험하고 동정하고도 남음이 충분히 알지마는, 그  사람이 되어 가지고 그 사람을 구원하는 그 일을 잘못하면 도로 역효과가 나  가지고서 거기에서 폭발되어지기 때문에 역 효과가 나니 이 유일한 방법은  조물주에게, 알고서 '이러니 이면을 당신이 해결해 주옵소서.' 구하는 이거  외에는 좋은 방편이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기도를 주신 것입니다. 내가 말로  해서 그 수술이 잘못될 것은 기도로 할 수 있고, 내가 그 사람에게 행동하므로서  큰 스파크가 나타날 수 있는, 폭발이 나타날 수 있는 그것을 기도로서 할 수  있고, 기도로 하는 것은 이것은 아무런 사고 나지 안하고 아무런 휴유증도 있지  안하고 이것이 잘 되어지는 이 방편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것이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참된 생명을 허 하는  것이니라' 좋은 그 근본을 마련해 가지고서 참된, 참된 생명, 이것이 참 사는  것이요 이것이,-생명이라 말은, 생명이라 말은 산단 말이요 힘이라 말입니다.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이것이 참된 힘을 취하는 것이요, 삶을 힘을  취하는 것이요, 참된 행복을 취하는 것이요, 참된 영광을 취하는 것이라. 이  모든 이 참된 이것이 참된 생명을 취하는-생명이라 말은, 요 생명이라 말은 참  묘합니다. 요 생명이라 말은 아주 묘한 말인데 요 알기 어렵습니다. 생명은  힘이라 말입니다. 생명이 있으면 내 손을 이래 움직였습니다. 생명이 떠나  버리면 이거 움직이지 못합니다. 생명이 있으면 내가 소생이 되지마는 생명  없으면 썩어 버립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에 이것이 아니면, 이것이 아니면 암만 좋아도  썩습니다. 이것이 아니면 아무리 강해도 썩습니다. 이것이 아니면 암만 높아도  다 떨어지고 맙니다. '이것이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뭐 얼마나 보배로운 말씀인지 모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한 번 들어 잘 모르는 사람은 오늘 밤에 재독할 때에 또 와 가지고서 들으면 더  알 것이고 어짜든지 알아야 됩니다. 알고 우리가 기억하고 요대로 완전히 변화가  됩시다. 여기에만 근심 없습니다. 이 세계에는 근심이 없습니다. 걱정이  없습니다. 두려움이 없습니다. 실패가 없습니다. 만 가지, 추호도 실패가  없습니다. 늙는 것도 없고 쇠하는 것도 없고 낡아지는 것도 더러워지는 것도  없고 망하는 것도 없고 죽는 것도 없습니다. 여기만은 생명과 평강뿐입니다.

 


 


1983년 11월 20일 주일오후

 

본문 : 딤전 6:17-21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디모데야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고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 이것을 좇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우리 기독자의 신앙생활은 어렵지 않고 또 평안하고 기쁘고, 전부가 수입이요  성공인 것뿐인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그 원죄의 부패성이 우리 속에 있고,  또 우리 밖에는 죄악으로 되어 있는 세상이 있고, 또 그 가운데에는 인간의  자율이라는 인간 생각대로 만들어 놓은 모든 지식들이 다 얽혀 있는 이 가운데  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번민도 고민도 복잡도 고통도 있는 것들인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권적으로 예정하신 그 예정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예정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을 돕는 일만 하지 손해보이는 일이  없습니다. 또 주권적으로 예정하신 그대로 창조하시고 섭리하시고 보존하시고  하는 그 모든 일이 우리 구원을 위해서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구원에  대해서는 털끝 만치도 손해 보이는 일들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너희가 시험을 당하는 것은' 다시 말하면 너희 기독자들이  여러면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라' 자기에게  하나님이 금하는 것을 하고저 하고 또 가고저 하고 가지고저 하고, 하나님이  금하시는 것을 너희들이 가질려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전적 구원 역사에  마찰도 되고 또 대립도 되고 또 그로 인해서, 네가 근심 걱정 고통도 하는  것이지, 그것이 다 네게서 난 고장이요, 하나님은 일관적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정하신 그대로 창조하신 그 모든 것들을 운영하고 계시는 것은 변동이  없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동하는 것이나 이리 저리 회전하는 그런 그림자도  없다 그런 흔적도 없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이 혹 처음 들으면 무슨  말인지 잘 모를런지 몰라도, 성경에 사람들이 다 놀란 일 마다, 놀란 일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그것이 들어서 놀라게 했고, 또 하나님을 바라보지 안한  데에서 고통하게 했고, 하나님의 그 지식과 다른 지식이 내게 있어 가지고 나를  고통스럽게 했지 하나님이 변동하신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을 따라가는 걸음은 주님이 인도하시는 그 걸음이 자기의 선입적  관념이나 기존 지식이나 자기의 경험이나 체험이나 세상들이 말하고 있는 통계나  어떤 것에 배치가 되고 거기에 모순이 되고 아는 대로의 이치에 맞지 않는 그  비합리적인 것이라도, 하나님은 와고 바르게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이니까  의심하지 않고 뿍뿍 따라가면 그 결과는 다 생명과 평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해야 나를 따라온다 그 말은 세상을 부인해야 내  법칙을 따를 수가 있다, 인간의 모든 지식을 부인해야 내 지식이 인정될 수  있다, 세상은 전체가 죽고 망하는 것뿐이기 때문에 죽고 망하는 세상살이에  반대가 되는 그것이 흥하고 사는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을 버리라는 것도 아니요 모든 만물을 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대해서 창조주의 뚜렷한 뜻이 계시니까 그 뜻에 맞추어서 그 뜻대로 하면  하나님도 축복하시고 지음받은 모든 무생물이나 식물이나 동물이나 생물들도 다  좋아해서 복종하고, 심지어 일월성신이니 이 모든 자연의 것들도 다 협조하게  되는데, 사람이 자기 욕심 자기주장 자기 뜻대로의 모든 것을 밀고 나가려고  하니까 자연에도 마찰 모든 존재들에게도 마찰 또 하나님의 인도에도 마찰 전부  이래 가지고 절단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무조건 내게 있는  것은, 하나님의 것과 반대되어 있는 것은, 내게 있는 것은 죽은 것뿐이요 죽이는  것뿐이요 죽으려고 하는 것뿐이요 죽는 것뿐이요, 하나님에게는 산 것과, 산  것과 살리는 것 옳은 것, 이것뿐이기 때문에 세상하고는 마찰이 되는 것입니다.

이 마찰에서 고통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다를 건너가라 했으면 책임지신 분이, 전능자가 전지자가  주권자가 건너가라 했으니까 건너가면 됩니다. 건너갈 때에 어떻게 물에 침몰  되어서 죽는 지경이 되어도 그분이, 책임진 그분을 든든히 믿으면 죽어도 그분이  책임질 것이고 살아도 책임질 것, 당신이 책임질 터이니까 그분의 절대적인  신실하심과 그 크심을 믿을 때에 모든 세상 것을 가지고 우리를 유혹 시켜서  이라면 낭파된다 큰일난다 하는 그런 모든 미혹들은 우리 발 아래 밟힐 것이고,  마귀는 아무런 우리에게 대해서 할 수단과 방법이 없게 될 것이고, 우리는  세상이 볼 때에 '야 저 믿는 사람 저 사람의 걸음은 이제 망한다.' 했는데  그들에게 과연 거기에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주권의 그 살리는 길이 있구나, 과연  그분이 모든 것을 주권하고 계시는구나 그분에게 능치 못하시는 것이 없구나,  그분 시키시는 대로 하는 것은 다 생명과 평강뿐이로구나, 이것을 세상에 보여  줄 터인데 우리가 믿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여 줄 수가 없고 또 세상은  증거를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인도하신 것은 무엇이든지 바로 인도  하십니다. 또 책임지고 인도하십니다. 모든 것을 전지한 지혜로 다 알고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안다 해도 부분적으로 알고 또 단편적으로 알기 때문에  우리가 아는 그것이 그 범위 내에서는 맞다 할지라도 그 범위가 다가 아니기  때문에 그 범위보다 더 큰 범위에 가면은 모순이 돼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지으신 분이요 전지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 인도는 조브라운 우리, 어린 지식을 가진 우리, 일방적인  지식을 가진 우리, 일시적인 그것을 가진 우리, 이러기 때문에 영원을 두고서  유익된 길로 인도하실 때에 우리는 일시만 그 시간을 계산하니까 우리에게는  모순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분은 참되고 옳고 바르고, 우리는 거짓되고  삐뚤어지고, 또 그분은 전체를 다 알고 계시고 우리는 부분만 알고 있고, 그분은  완전을 도모하고 또 우리는 내가 모르나 실패, 망하는 것, 죽는 것 그것만 인생  생활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기에서 우리가 신앙 걸음 걷는 것이 놀랠 일도 생기고,  낙망하는 일도 생기고 답답한 일도 생기고, 이해 못할 일도 있어서 우리가  경거망동도 하고 또 고생을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믿지 않는 데에서 우리 주관  이 들어서, 우리 주관이 들어서 우리에게 고생을 주는 것이고, 선입적 관념이  들어서 고생을 주는 것이고, 우리의 생각이 들어서 고생을 주는 것이고, 우리  욕심이 들어서 고생을 주는 것이고, 우리의 경험대로 해보니까 고생 이고,  우리의 경험대로 하면 틀렸다 싶어서 놀래는 것이지 신앙 걸음으로 걸어서 그  결과를 보고서 놀랜 사람이나 실패라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베드로전서 1장에 말씀하시기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그러므로 너희들이 이제 여러가지 어려움을 당해서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아니할 수 없었으나' 지나가고 보니까 모두 다 '아이구' 참  놀래면서 '과연, 과연 하나님의 하시는 것은 전지하신 계획이다. 전능하신  능력이 이렇게 하셨구나.' 이러니까 지나가서 신앙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아,  그분이 우리에게 이래 시킨 것은 우리 보기에는 안 됐는데 그분이 전능하신  능력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시켰는가보다. 아무리 봐도 이거는  도무지 안 되는 일인데 그분이 전능하신 능력이니까 휘덕 디비트리니 다 돼  버렸구나.' 이러니까 '오, 그분은 전능자기 때문에 우리를 이렇게 지도하신 다  전지하신 분이기 때문에 이해 못할 전체면을 보시고 거기에 맞도록 우리에게  인도하신다.' 이래서, 믿음으로 점점 믿음에 나아가게 됩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을 인정하고 따르는 사람은 점점 인정하게 되고 점점 따르게 되고,  하나님을 부인하고 자기 주관과 인간을 인정하고 따르는 사람들은 점점 하나님은  부인하게 되고 인간은 점점 인정하게 되는데 인정하게 되고 따르면 뭐 할건가?  마지막에는 죽고 망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오전에도 말씀했지마는 '네가 이 세대에' 이 말은 이 세상적으로  말이요, '이 세대에'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그러면, 세대도  달라집니다. 어떨 때에는 부를 귀하게 여기는 세대도 있고, 부를 귀하게 여기는  세대도 있고, 또 지식을 귀하게 여기는 세대도 있고, 권세를 귀하게 여기는  세대도 있고, 예술을 귀하게 여기는 세대도 있고, 행락을 귀하게 여기는 세대도  있고, 도덕을 귀하게 척기는 세대도 있고, 절제를 귀하게 여기는 세대도  있습니다. 고행을, 고행주의를 귀하게 여기는 세대도 있습니다. 어떤 세대는  자기의 그 고생을, 참 다른 사람이 견디기 어려운 고생을 하나 턱 견디고 나면은  고만 세월이 납니다. 그 사람은 어떤 고생을 견딘 사람이다. 그 사람은 기둥 한  개 세워 놓고 그 위에서 삼 년 동안을 꼼짝 안 하고 기둥 위에 거기에서 살았다.

그 사람은 그렇게 위대한 사람이다. 이 뭐 별별 세대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네가 이 세대' 지금은 이 세대 그때는 그 세대, 그 세대에서  부한 자들, 그 세대는 무엇을 귀하게 여기든지, 요새는 또 이상합니다.

시설지기는 것도, 사람 웃기는 그것, 시설지기는 것 그거 귀합니다. 뭐 시설 잘  지기면 막 돈 뭉텅이가 들어옵니다. 사람 잘 웃기고 아주 그렇게 뭐, 유모  아라고 하는 것보다도 그만 어떻게 하면 사람을 웃기고 어떻게 하면 사람 보기에  우습게 할까, 그 짐승 노릇도 무슨 짐승을 우습게 할까 그게 또 세월이 나서  그거 한다 하면은 사람들이 뭐 장소가 비좁아서 들어갈 틈이 없이 그렇게  모입니다.

 그래서,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시대마다 부는 다릅니다. 어떤  시대는 벼슬을 부하게, 어떤 시대는 부자라 돈을 부하게, 어떤 시대는 도덕을  부하게 여러 가지 하는데 어떤 시대든지 그 시대에 자기는 그 시대에서 가치로  알아 주는 그런 것이 있는 자들에게 말해라. 이거 있으면 나는 아무데 가도  산다. 이만하면 넉넉하다. 이거면 족하다. 그걸 가지고서 자기는 의지하고  바라고 힘을 삼고 들을 대고 이라면서 나는 이거 있으니까 나는 높은 사람이다.

나는 부강한 사람이다. 나는 실력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어느 시대에 어떤  것이든지 그 세대에 제일 좋고 보배롭고 하는 그런 그것을 가지고 마음을 높이지  말라고 명령해라. 그것이 잠깐 지나가기도 지나갈 뿐 아니라 다른 세대는 가면은  그거 아무것도 귀하게 여기지를 아니합니다.

 옛날 역사 세계도, 역사도 보면 어느 시대는 아주 도덕을 귀하게 여겨서 소부  허유하는 그 시대는 도덕을 귀하게 여겨서, 송아지를 먹이고 오는데 어떤  사람이, 그 친구가 물에다가 귀를 씻고 있으니까 '이 사람아 귀를 와 씻는고?'  '아 나를 오늘 정승하라네. 나를 벼슬하라네. 내가 얼마나 천하게 굴기 때문에  날 벼슬하라 할꼬.' 하도 더러운 소리를 들어서 지금 내가 귀를 씻는다고 귀를  씻고 이러니까 이 사람이 있다가 '아 그래? 아 자네를 벼슬 하라 정승하라 해?  더러운 소리 들은 귀 씻은 그런 물도 우리 송아지 먹이면 안 되네 나는 저쪽  가서 먹일려네.' 그래 또 말해. 그렇게 벼슬을 천하게 여기는 시대도  있었습니다.

 또 어떤 시대는 돈을 귀하게 여겨서 사람이 늙어서 돈 벌이는 하지 안하고 자꾸  앉아서 먹기만 하거들랑 부모라도 고만 저 잡아다가서 땅굴 파고 그 안에다 넣어  놓고, 돈벌이도 하지 안하고 먹을라 하면 재산에 소모되니까 저 땅 구더기 파고  그래 놓고서 구멍 뚫어 놓고서 -뭐 고기 달라고 암만 해봤자 안 주면 되니까 -딱  뚫어 놓고서 구멍에서 밥이나 조그매씩 한 뭉터기 며칠 만에 넣어주고 그래서  그래 살다가 죽구로 해라. 그게 고려장입니다. 고려장. 그때는 너무 나라가  가난하게 되니까 이제 돈이면 제일이라고 하는 그 시대입니다.

 왜정 말년에도 아주 신문에 크게 났었습니다. 아 일본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자기가 밭에 나와 가지고서 하루 종일 그 밭에 있는 지심을 뜯느라고 해서 한  평을 뜯었다고, 몇 살 되는 할머니가 밭에 나와 가지고서 밭을 매어서 한 평의  잡초를 제했다고 아주 신문에 크게 났었습니다. 이렇게까지 하니 젊은 사람들이  열심히 일해야 된다 하는 그것이 이차 대전 말기에 일본서 경제에 어려움을  느끼면서 그때는 돈이라야 된다. 물질이라야 된다 하는 그 아주 귀부, 아주 부를  귀하게 여겨서 그때는 그 노인이 밭에 가서 다만 자기 앉을 자리라도 풀을  매어서 이 농사짓는 데에 돕는 일을 해야 유명해지고 귀하지 놀고먹는 그런 것은  못 쓸 것으로 그래 했고 우리나라는 고려장까지 했고.

 이러니까, 세대마다 다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 이 세대는 무엇이 귀하다고  그것만 갖추어서 구비하게 남보다 탁월하게 뛰어났으면 이만하면 됐다 그렇게  생각지 맙시다. 이것도 한 세대가 지나가면 그까짓 거 아무짝도 못 쓸 천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저도 몇 해 안 살았지마는 제가 사는 동안에도 벌써 나라에서나 개인으로서나  이것이 귀하다 저것이 보배다 하는 것이 얼마나 변동됐는지 모릅니다. 사람들  유행을 따라서 의복이 변화되는 것 모양으로 그렇게는 많이 변하지 안하지마는  그 세대에 평가라 하는 것은 얼마나 변하는지 모릅니다. 이런데, 자기는 그  세대에서 인정하는 것 이것만 있으면 나는 됐다, 언제는 금이면 제일이라, 어떨  때는 보니까 금을 뭉텅이를 줘도 쌀 한 되를 안 줍디다. 금반지를 빼 주면서 '쌀  한 되 주십시요' '그 금반지가 무슨 소용 있습니까? 지금 굶어 죽을 판인데 쌀이  제일이지.' 쌀 가지고는 금반지를 바꾸어도 금반지 가지고는 쌀 바꾸기가  어려워.

 그러기 때문에, 인간들이 보배다 귀하다 하는 그런 것은 세대를 따라서 달라질  뿐만 아니라 또 그것을 깊이 궁구해 보라 그것이 어느 정도의 보배성을 지니며  그것이 어느 정도의 너희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느냐? 또 그것이 얼마 동안이나 그  기간동안 너희에게 보배로 필요가 있겠느냐? 이것을 좀 인간이 시대를 초월해서  생각하고, 그 모든 것의 결말을 생각해 보고, 죽음도 생각하고 죽음의 너머도  생각하고 하면은 땅 위에 하나님 버리고 의지하고 바라 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도 없어. 모두 마귀가 눈을 어둡게 소경을 만들어서 인간들이  공연히, 울지 안한 일도 그거 없다고 울고 또 그거 있다고 그 마음을 높이고  이래 하고 있지. 그러니까, 영원히 일관되는 성경의 인생관을 가지고 만물관을  가지고 보면 모두가 다 미친 사람이요. 모두가 다 정신없는 미친 사람이라  말이요. 네가 아무리 그렇게 하면 그것이 얼마 될지 그 장래도 모르고 그 수명도  모르고 그 기간도 보르고 그것이 뭘로 될지 그것도 모르고 이라기 때문에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그런 것들 가지고 마음을  높이지 말아라, 그것 가지고 네가 무슨 재앙이나 환난을 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그렇게 생각지 말아라, 네게 필요하고 요긴한 그런 행복을 가져 올 수 있다고  생각지 말아라, 너 하나님의 사람아 그것 가지고서 하나님의 은혜가 열 개가  있어야 되는데 그것 있으니까 다섯 개만 있어도 이것 가지고서 하나님 은혜에  대신으로서 대용을 할 수가 있다 대신 보충을 할 수 있다 그렇게 하지 말아라.

그것이 녜게 하나님의 모든 요소, 네게 있어야 할 하나님의 요소는 하나님의  요소가 네게 있어야 되지 하나님의 요소를 세상 그것 있으니까 하나님의 요소가  내게 좀 적어도 세상 것 없는 저 사람 비하면은 나는 이만하면 그래도 그 대신이  되지 않겠느냐, 네게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를 네가 보배로 여기는 그것  가지고서 대용되리라 그렇게 생각지 말아라. 또 하나님이 네게 대해서  요구하시는 그 요구에 있어서 나는 이 세상 것 이거 있으니까 없는 사람은  하나님에게 저렇게 비쳐야 되지마는 나는 이거 있으니까 하나님께 바치는데 저  사람은 다 바치지마는 나는 반만 바쳐도 내게 있는 이것이 있기 때문에 이거  바치면 되지 않겠느냐 그렇게 해서 그것을 하나님 대용으로 너 대용으로-요즘  어려운 말이요-하나님 대용으로 하나님 대신으로 너 대신으로 삼지 말아라. 그런  것들이 암만 많아도 그것을 너 대신으로 삼아 가지고 나는 이거 있으니까 나는  갈 것 없이 이것만 가면 안 됩니까 이거만 보내면 안 됩니까, 하나님은 안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들을 원합니다. 아무리 세상에 지식을 제일 많이  통달해도 그 사람이 새벽기도 나오는 걸 원하지, 내야 뭐 새벽기도 다른 사람 열  번 나가는데 내가 이렇게 세상 박사를 다 가졌으니까 나는 열흘 만에 한 번만  나가도 아홉 번은 내가 이 지식이 대용할 수 있지 않는가, 그렇게 안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세대에 이 부한 것,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그 은혜로 할 일을, 하나님 은혜로 할 일을 그것 가지고서  대용이 되리라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 사람 무식한 사람이니까 설교  준비하느라고 열 시간을 준비를 하는데 나는 유식하기 때문에 차는 십 분만  준비해도 된다 그렇게 하는 데에서 인간이 다 망합니다. 그 설교하는 것 사람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것. 또 하나님을  힘입는 것, 하나님 힘입는 데도 하나님이라야 되지, 하나님 은혜라야 되지  그까짓 가지고는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은혜를 대용할 수가 없다. 또 네가  바치는데 대해서도 그런 것 가지고는 대용할 수가 없다. 대신할 수가 없다  그것을 가리켜서 여기에 말씀합니다. 우리가 그런 것을 회개합시다.

 이래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이와 정반대로 이 세대의  것이 가난하다고 해서, 이 세대에 가난하다고 해서 마음이 쿡 쭈구러져 가지고서  네가 쳐박혀서 낮아지지 말아라, 아 이 세대 것이 있다고 그 사람은 있으니까 턱  자기는 마음을 높여서 높은 줄 알고 그거 없으니까 나 같은 인간이야 천한  인간이라 하면서 낮아지는 그런 인간되지 말아라, 그것이 없어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느냐 그것이 암만 있어도 하나님 안 계시면 안 된다. 이래서 야고보서  1장 9절에 '부한 자는 낮아진 것으로 자랑하고 낮은 자는 부한 것으로  자랑하라.' 예수 믿고 보니까 이 세대에 귀하게 여기는 그것은 그 가치가  아무것도 아니고 하나님만이 가치라. 하나님의 은혜 만이 가치라.

 이러기 때문에, 그거 없어도 하나님의 은혜 있으면 되고, 그거 암만 있어도  하나님 은혜 없으면 안 되고 이러니까 가치를 순전히 하나님에게만 두고, 능력을  하나님에게만 두고, 자기의 행복을 하나님에게만 두고, 하나님에게만 두고  이렇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 될 터인데, 없어서 마음이 가라앉는 사람, 있어서  마음이 높아지는 사람 이것을 다 성경에 명령적으로 다 버리라고 했습니다.

요것도, 요것을 버릴라고 하면은 그 사람의 정신이 까랑까랑해집니다. 요걸  정말로 알고 척 버리면, 버린다고 누가 집을 내버립니까?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이 주신 보관으로 가지고 있지 그것 가지고 뭐 되리라고 하지 않습니다.

억만금이 있어도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를 줘야 억만금이 보배가 되지  억만금이라도 하나님이 백 원짜리 보배만, 보배만 되구로 하면 백 원어치만  보배되지 나머지기는 다 헛일 합니다. 내게 단 십 원이 있어도 그 십원이 억 만  금보다도 내게 더 보배가 되도록 하시면 그것이 보배가 됩니다. 이걸 우리 가  믿어야 됩니다.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정함이 없는 이 세대에 보배라고 하는 거기다 소망두지 말아라, 그거 있으면  된다 그렇게 두지 말아라, 그 언제 어찌 될지 모른다. 그러기에, 참 하나님  바라보고 의지하지 안하고 세상에 인간 의지하는 사람, 또 자기를 의지하는  사람, 뭐 물질이나 형편이나 사정이나 그런 것 의지하는 사람, 기술 의지하는  사람 얼마나 불쌍한지 모릅니다.

 어떤 내가 보니까 침쟁이 하나 있는데 그 침쟁이가 참 유명한 침쟁이입니다.

유명한 침쟁이인데 하나님께서 그만 빽 틀어 버리니까 침을 못 놔. 침을 못 놔서  이 침을 들 수가 있어야 놓지. 제가 병이 들었는데 뭐. 그래 가지고 면허  빼앗기기는 싫으니까 다른 사람을 시켜서 입으로 이래 가지고서 요래 놓으면  된다 저래 놓으면 된다, 손으로 놓을 수가 있어야지. 그런 사람이요 이웃에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정함이 없는 재물 그것을 하나님이 어떻게 변동시킬지 모르고, 또  하나님이 변동 안 시키고 제대로라도 그거는 벌써 정죄받았고 사망 아래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 어찌 될지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것에 소망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이러니까, 우리가 요것이 변동되면  안 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뭐이든지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무엇이든지,  좋은 거나 나쁜 거나 가지고 있는 것 그것을 좋은 거라 나쁜 거라 그렇게 생각지  말고 내가 가지는 있는 것 좋은 것이든지 나쁜 것이든지 하나님이 좋게 하시면  그것이 좋아집니다. 지극히 좋아집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나쁘게 하시면 지극히  나빠집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 떼 놓고 뭐 좋은 것이 없고 보배로운 것이 없고 가치  있는 것이 없고 필요있는 것이 없고 중요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천하에 제일  보배라도 하나님이 당장에 천하에 제일 천하게 만들면 천해져 버립니다.

인간들이 천하에 제일 천한 것이라도 천한 것을 하나님께서 당장에 보배 만들면  그것이 천하에 제일 보배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분이 주권을 가지시고 또 전능을 가지시고 전지를 가지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만을 바라보고 그분만을 의지하고 그분에게 구하고 그분으로  더불어 모든 일을 의논하고 해결하고 작정하고 그분만을 상대해서, 그분이 모든  피조물을 이래라면 이라고 저래라면 저라고 가지라면, 주면 가지고 버리라면  버리고, 그분만 우리는 상대하는 이런 사람이 되어 그분에게만 받아라. 모든  것을 후히 준다 그 말은 우리는 또 무엇이 필요할 줄 모릅니다. 우리는 필요한  것도 모릅니다. 필요한 것도 모르요. 필요없는 것도 받아라. 우리는 필요한 것도  모릅니다. 필요한 것도 모르요. 필요없는 것도 모르요. 해로운 것도 모릅니다.

유익될 것도 모릅니다. 참 목석같은 우리들이요. 옳은 일에 대해서는 목석같은  우리들이요 우리에게 있다면 죽고 망하는 그것밖에 모릅니다. 죽는 것만 알고  망하는 것만 알고 천해지는 것만 알고 이 사망에 대한 사망할 줄 아는 지식  사망을 욕망하는 것 사망을 좋아하는 것 사망을 일으키는 것 죽는 법칙 그것만  알아. 사망에 속한 것만 알지 딴 거는 하나도 없어. 이것이 믿어집니까?  사망에 속한 것, 사망하게 하는 것, 사망된 것 그것만 우리에게 있지 옳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모든 것을 버리 라 말은  모든 것을 자기가 하나님 상대하는 그 상대를 그것에게 상대하지 말 라 그  말이요. 버리라 말은 당장 집을 내 던지라 말이 아니요. 자기 직장을 집어  던지라 말이 아니요. 이제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대해서 소망하는 이 소망을  옮겨서 그것들에게 소망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의지를 거기에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거기에 믿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바라보는  것을 거기다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에게 관계하는 그것을 하나님 내비두고 어떤  것에게도 그 관계를 가지지 말아라, 그거는 하나님 하나님의 뭐 부스러기만치도,  부스러기, 하나님에게 대한 부스러기만치도 그것은 상대가 될 수가 없고 책임을  질 수가 없는 그런 것들이기, 때문에 아예 네가 하나님에게 대한, 하나님에게만  상대해야 되지 하나님에게 상대할 것을 이 피조물이 크다 많다 좋다 모든 사람이  보배라 이라니까 하나님에게 상대할 것을 아 이것도 상대하면 하나님만은  못하지마는 그래도 많이 상대하면, 이것이 많으면 그래도 뭐 하나님의 백분지 일  이나 천분지 일이나 부스러기 만치라도 그만치라도 좀 대용이 될 것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지 말아라.

 그런고로,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인정하고 그만  따르고, 이래서 그분에게만 얻어라. 이렇게 하면 그분이 '모든 것을' 너는 네게  무엇이 필요한지 불필요한지 해로운지 그것도 모른다. 그라나 그분은 아신다  그분은 아시니까 네가 그분만 바라보고 그분만 의지하고 그분만 따라서 그분  시키시는 대로 이와 같이 하면 그분이 너를 사랑하셔서 네게 필요한 것은 조  금도 부족함이 없이 모든 것을 구비하게 너희에게 구비해 주신다. 구비해 주실  때에도 너는 이해가 못 되어도 네가 그분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순종하면 그분이  구비하게 주신다는 이 사설을 인정하고 믿어라. 그러면, 네가 이해를 하든지  못하든지 네가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해서 온 것이면 너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보배인 것이 네게 왔으니까, 네가 그를 믿고 의지하고 바라봄으로 온 것이면  주님이 너희에게 필요한 것으로 주신 것인 줄 알고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모든  것을 구비하게 다 주시고 후히 주신 다, 네게 필요한 것은 털끝 만치라도  모자람이 없이 충족하도록 주신다 충족하도록 주신다.

 그러면 충족함을 주시는 것은 우리는 꼭, 아 주시면 돈은 자꾸 많아져야  되겠다, 돈이 있어야 내게 필요할 때도 있고 그 돈은 그때에 없어져야 그 돈이  내게 필요한 때도 있고 이런 것이니까 나는 뭐이 필요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분은 아시기 때문에 모든 것이 네 구원에 충족하도록 다소 양도 조절하고  종류도 조절하고 모든 시기도 조절하고 공간도 조절해서 딱딱 들어맞춰 가지고  그와 같이 해 주시니 네가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에게 얻어라. 모든 것을 후히  주시고 누리게 하신다. 누리게 한다 말은 자기가 그것을 미래적으로 이  세상에서도 그것의 효력을 자기가 보고, 유익을 누리고, 유익을 자기가 복되게  받고 효력을 얻는 그것을 가리켜서 누린다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도 그 모든 것이 너희에게 누리지게 하고 또 그걸 이  세상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자꾸 번지고 번져서 영원무궁까지 너로  하여금 영원히 그것을 누리도록, 가지고 누리도록, 가지고 사용하도록, 그걸  필요있게 이용하도록, 그것에 대한 효력을 네가 보도록, 효력의 유익을 봐서  네가 행복되도록 이렇게 하시는 이를 바라봐라. 이 성경에 이렇게 말씀한 것을  달리 해석할 수 있습니까? 이런 말은 안 믿는 사람이라도 요렇게 밖에는 해석할  수가 없습니다. 요걸 안 믿는 사람, 요건 쉬운 것이요 맛배기로 해 놨기 때문에.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그 다음에 18절에, 이제 얻기는 하나님 한 분에게 얻어라, 얻기는 하나님 한  분에게 얻어라. 없는 자는 없다고 네가 걱정하는 자냐. 없다고 네가 이 세상과  세상의 것이 없다고 걱정하는 자 그자도 미친자, 세상 것이 많다고 그것  가지고서 마음을 높이는 자도 비친자, 다 정신 빠진 자라. 왜? 없어도 없는  가운데 모든 걸 있게 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데, 하나님이 계시는데 이제 그 눈에  보이는 그것 없다고 낙심하고 탄식하는 자도 그자도 정신없는 자, 세상 것이  있다고 하나님이 그걸 당장에,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인데 그거 있다고 배짱을  부리고 높아 하는 그자도 정신 빠진 자. 왜? 있는 걸 없게도 하시고 없는 걸  있게도 하시고, 많고 큰 것을 작고 적게도 하시고 적고 작은 것을 많고 크게도  하시는 그분이 주권을 가지고 이래 하시는 그분이 계시는데 그분은 상대하지  안하고 그분 떼 놓고 이거 가지고 우는 자도 미친 자, 배짱부리고 큰 소리 하는  자도 미친자다 이걸 명령해서 이런 마귀의 미혹을 들지 빨라 해라 말씀한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면 그분이 네가 모르는 면까지 모든  것을 구비하게 해서 네 구원 이루기에 가장 적절하게 후하게 적절하게 해 주시는  그분에게 소망을 두고, 그러면, 그분에게 얻어라.

 그러면, 그분에게 얻으면 얻은 걸 가지고 어떻게 할건가? 얻기는 그분에게만  얻고 얻은 그것을 어떻게 소모할까? 어떻게 관리할까 어떻게 저축을 할까?  어떻게 사용을 할까? 거기에 대해서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18절에는.

하나님에게만 얻고, 18절에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일을 행하고' 네가 장사를  하든지 취직을 하든지 출세를 하든지 뭐 결혼을 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네가  선한 일을 해라, 하나님 중심으로 해라, 하나님 중심으로 해라 이것이, 이것이  만 가지 건설에, 만 가지 건설에 터전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만 가지 건설에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요. 지혜있는 자는 집을 반석 위에 지었다 반석으로 터전  삼았다 그 말은 절대자이신 그분을 근거하고 그분을 기조로 삼고 그분 위에,  그거 뭐입니까? 선입니다. 하나님을 중심하는 이것은 자기의 생애에 반석같은  기초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어디든지 하나님 중심이면 깨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중심이면 넘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중심이면 헐어지지 않습니다. 모든 세상에  파동이 오면 올수록 하나님 중심이면 점점 튼튼해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선한  일을 행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네가 해라.

 '선한 사업에 부하고' 네가 하나님 중심에 하는 일에도 한 가지에서 할 수 있는  대로는 한 가지에다가 둘 할 수 있으면 둘 하고 둘 할 때에 셋 할 수 있으면 셋  하고 넷 할 수 있으면 넷하고 다섯 할 수 있으면 다섯하고 네 힘 있는 대로는,  네 힘 있는 대로는 하나님 중심이 일을 하나님에게 받은 건강, 하나님에게 받은  재물, 하나님에게 받은 지혜, 총명 하나님에게 받은 기능, 하나님에게 받은  기술, 하나님에게 받은 예술,-요전에 어떤 사람이 이거 하나님이 내게 특별히  주신 것인데 이 성대를 좀 어디 녹음을 하든지 어디 그 레코드를 만들까 이러기  때문에 나도 찬성해. 내가 찬성해서 나도 거기에 도울 수 있는 것 나한테 말하면  내가 도울 수 있는 데까지는 도울 터이니까 한 번 해봐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그렇게 헛되면 안된다 그렇게 말했는데 모르겠습니다. 지금 어떻게  하는지.

 '선한 사업에 부하고' 하나님 중심인 그 일, 사업은 이런 것 저런 것 뭐 자선  사업도 있고 또 그 제조 사업도 있고 무슨 별별, 상업도 있고 뭐 생산업도 있을  것이고 운반업도 있을 것이고 소비업도 있을 것이고 여러 가지, 업으로 말하면  한 서너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무슨 업을 하든지 네가 하나님 중심의 업을 하되  열심히 해서 차차 차차 네가 범위를 넓혀 가지고서 더 많이 해라. 네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받은 은혜 가지고서 할 수 있는 범위까지 아주 힘 가지고 자꾸  범위를 넓혀서 많이 해라.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또, 이제는 너만 이 선한 사업을 할 것이 아니라 선한  사업 하는 그것을 네가 다른, 네가 네 힘 있는대로는 하나 하다가 둘 셋 넷 자꾸  범위를 넓혀서 이래 할 뿐만 아니라 너 혼자 하던 것을 한 사람 더 보내  가지고서 두 사람이 하고 세 사람이 하고 네 사람이 하고 이것을 가리켜서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네가 하나님에게 받은 것을 자꾸 나눠 가지고서 너와 같은  사람이 하나가 둘 되고 둘이 셋 되고 자꾸 이래 가지고서 모든 사람으로서 이래  해라. 이 말씀은, 부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라 그 말은 이제 이 네가  국부적으로, 부분적으로, 그렇게 지역적으로, 소규모적으로 그렇게만 하지 말고  네가 전체를 봐라 전체를 목표해서 나는 나 하나만 선한 사업 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인류 전체가 선한 사업을 하도록, 전부 알게 되도록 네가 넓혀서 인류의  전체, 인류 전체에서 하나님이 지으신 영계와 물질계 나 이 전부 것이 차차차 네  힘있는 대로는 자꾸 네 자체로 전부 넓히고, 또 이제는 모든 사람으로 넓히고  만물로 넓혀서 모든 피조물이 전부가 다 하나님의 것으로 충만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이렇게 이 전체로 전부 확대해 나가라. 네가 대국적으로 살  것이 아니고, 너는 대국적으로 살 자가 아니기 때문에 너는 전체적으로 살  자이다. 전국적으로 살 자이다. 너는 전체를 보고서 살 자이기 때문에 이렇게  마음을 넓혀서 얼마나 하다가 갈런지 몰라도 네가 목표하기는 이 전체가,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 도 이루어지이다.' 전체를 네가 상대해서 하고  하나님에게 얻어 가지고서 네가 네 개적으로 힘있는 데까지 자꾸 넓히고, 또 그  다음에는 너만이 아니고 자꾸 너와 같은 사람을 만들어서 자꾸 이와 같이 넓히고  넓혀서 이 전체를,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없는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지으신 이 모든 피조물이 없는 가운데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지음 받은 거와 같이, 지음 받은 것이 이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서만  살 수 있다. 하는 인식을 가지고 모든 만물이 다 하나님 한 분을 상대해서  중심해서 사는 이런 존재들이 되어지도록 네가 목표를 정해 놓고 하라. 네가  하다가, 이 목표만 바로 정해 놓고 바른 방편으로 네가 하다가 다하고 가지  못한다, 네가 시작만 해 놓고 가면은 네 시작이 바로 되고 네 방편이 바로  됐으며 바로 된 목표, 바로 된 시발, 바로 된 방편은 하나님이 그 일을  책임지시고 다 이루신다, 이루신다.

 이러기 때문에, 성도들이 옳은 일을 하다가서 자기 세상에 있는 동안에 자기 눈  앞에서 그거 성공을 볼라고 하지를 않습니다. 옳은 것만 해서 하나님 이  원하시는 고것만 잡았고,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그 방법에 피동돼 가지고서  그것을 시작해서 했으면 그 일을 마지막에는 '주님이여, 나를 통해서 하시던 것  내가 이제 다 못하고 이것을 주님에게 맡기고 갑니다.' 주님은 그것을 맡아  가지고서 다 이루십니다. 주님이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셨다는 것이 당신은  했지마는 남은 것은 하나님이 다 맡아 가지고서 그 일을 이루시는 것이 주님의  대속의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이제는 점점 이것은 확대하라 말입니다.

확대하고 자꾸 넓혀서…,  요 사람이 말이지요, 사람이 우리가 우리가 내가 되면 죽습니다. 우리가 내가  되면, 우리에서, 우리에서 탈선돼 가지고 죽는 것은 나 되면 죽습니다. 우리가  내가 되면 작아지고 나 되면 죽습니다. 내가 죽는 것은 나 속에도 어떤 요소,  욕심이라든지 무슨 무슨 감정이라든지 무슨 그 정서라든지 우리 전체 이  움직여서 통합해 가지고서 하지 안하고서 어떤 그 사람의 한 요소로 치우쳐서  갔으면은 그 사람은 벌써 못 쓸 사람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하지 말고 점점 키워서 넓혀서 너로 하여금 무한하신  분이 계시고, 네가 암만 무식해도 그 유식한 하나님이 계시고, 무능해도  유능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고, 네가 거지라도 부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낙망하지 말고 너만 바쳐서 일해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 가지고서 오천 명이 먹고 남았으니까, 그 오천 명  아니라 오만 명이면 더 많이 남지요. 오억 명이면 더 많이 남지요. 이것이  하나님의 도요 하나님과 인간과의 연결된 그 결과입니다. 믿지 않기 때문에,  이렇지마는 '내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너희들이 모든 것을 원한적으로  구하면 다 이룰 터인테,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다 성취하겠다 했는데 내가 올  때에 정말로 이 사실을 믿고서 이 믿음의 생활 하는 자를 보겠느냐 말씀했으며  탄식을 했습니다. 이런고로 넓히라. '나눠 주기를 좋아 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네가 이제는 다른  사람이 돼 봐라. 네가 그 사람을 그 사람에게 감염돼 가지고, 그 사람에게  감염돼 가지고서 그 사람이 못 쓸 사람 모양으로 거기에 물이 들어서 네가 죽는  것이 아니고 네가 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구원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이 어떻다 해서 건너다 보고 하지 말고, 건너다 보고 하지 말고 그 사람을  깊이 네가 실감하기를 네 그 본인이 실감하듯이, 본인이 실감하듯이 네가 그  사람을 실감해 봐라, 네가 그 사람과 바꾸어져 가지고서 그 사람의 사실을 그  사실대로 네가 실감하기를 애를 써라, 애를 써서 모든 사람을, 그 본인이 잘못된  감정이라도 잘못된 감정이 어떻게 돼 가지고 그런가, 그 잘못 된 감정의 그  사람이 네가 되어 가지고 그 사람이 되어 보고, 그 사람의 그 사실을 네가  실감해 가지고 거기에서 그 사람을 구출하도록 해서, 모든 사람을 너를 삼아  가지고 네가 거기에서 구출하려는 이, 속에 네 자체적인 그 변화를 네가 받도록  해라 '동정하는 사람이 되게 하라'  그러기에, 네가 모든 사람 속에 녹아지는 소금처럼 네가 들어가서, 네 한  성품이 들어가고, 네 한 뜻이 들어가고, 네 한 정이 들어가고, 네가 모든 사람  속에 소금이 녹아지고 간이 빼어 들어가는 것처럼 이렇게 네가 모든 사람 이 돼  가지고 모든 사람을 너로 삼아서 그 사람을 네가, 그 사람이 당하고 있는 그  감정 그 사정 그 느낌, 그 느낌을 네가 가져 봐라. 느낌을 가져 보고, '아!'  그러면 비로소 그 사람의 눈에 티를 알 것이다 그 사람을 그렇게 느끼고 보면 그  사람의 문제가 어떻게 되어 있으며 얼마나 어려우며 그 사람에게 대해서는 과연  그럴 수 있다, 과연 그럴 수 있다, 과연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된다.! 과연 그럴 수 있다, 아 그 사람이 과연 그럴 만하다,  분개할 만하다, 낙망할 만하다, 슬퍼할 만하다, 기절할 만하다, 자살할라고  도모할 만하다. 그 사람이 네가 되어 봐라. 그래 돼 가지고 거기에서 사망에서  구출하시는 주님이 계시니까 주님으로 인해서 구원하는 네가 되어져 봐라. 네가  모든 사람이 되어지고 모든 사람이 네가 되어지도록 이렇게 네 자체가  변화되어서 참으로 모든 사람에게 필요 있는 사람이 네가 되어 보라. '동정하는  사람이 되게 하라'.

 이래서, 받기는 하나님에게만 받고, 하나님에게 받은 것 가지고서 점점  확대해서 하나님 중심으로 움직이고, 하나님에게만 받고 하나님에게 받은 것을  하나님 중심으로 모든 것을 다 나눠서, 이렇게 뿌려서 하나님 중심이 점점  펴져서. 이것이 땅끝까지 펴져서 모든 존재 전체가 다 하나님 중심이  되어지도록, 주님은 이 일을 성공을 했습니다. 이래서,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이나,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이 다  주님을 주라고 시인했습니다. 주라고 시인했습니다. 이래서, 주님은 인간만  구원한 것 아닙니다. 만물을 회복했습니다. 만물을 다,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모든 것은 하나님 중심으로라 산다는 것을, 당신이  십자가에서 우리만 대속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대속하셔 가지고서 지옥에  있는 것들도 하나님 중심이 되어야 산다 하는 그것을 그들이 알았기 때문에 주를  시인한다. 지옥에도 그들이 하나님 중심인 것을 알았으면 그들도 지옥에 있어도  태평일 것이고 기쁘고 즐거울 것이고 만족할 것입니다. '아,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나를 지어서 당신 중심으로 당신 위주로 당신의 지극하신 뜻이  이루어지는데 내가 이렇게 이용됐든지 내가 저렇게 있든지 어쨌든지 지존자  그분에게 이용된 내가 됐다고 하면은 만족하는 것. 그러기 때문에, 모든 것이  주를 주라 시인하면서 영광을 아버지에게 돌린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이렇게 해서 하나님에게만 받고 하나님 중심의 생활을 네게서 부터  점점 확대해 나가라. 확대해 나가서 너는 하나님에게 받는 이것과 하나님에게  받은 그 모든 것을 가지고서 하나님 중심의 존재들이 되어지도록 이 일에 네가  열심히 해라, 이 일을 네가 점점 확대시키라. 이 일에 부요하게 해라. 그라고  모든 사람을 너와같이 생각해서 모든 사람이 네이고 네가 모든 사람이 될 수  있는 이런 것을 연습을 해라 연습을 해서, '저 사람은 왜 울까? 우는 사람의 저  사람의 심정이 어째 울까?' 그 사람의 심정을 네가 알 수 있어 그 사람의 우는  그 울음을 네가 알 수 있고 네가 울 수 있는 그 사람이 되어져 봐라. 그 사람이  놀래서 공포에 떨리고 견디지 못하면 견디지 못하는 그 사람이 네가 되어 봐라.

그 사람이 되어 가지고 바꾸어 가지고 거기에서 너는 구주를 아니까 구주를 전해  가지고서 구주로 살아나게 하라. 살리지 못할 때가 없으니까 네가 점점 모든  인간에게 너라는 그 참 사람이 소금같이 되어서 참사람 소금같이 된 네가 이제는  소금같이 녹아져, 녹아져 가지고서 수많은 사람 속에 스며들어 가지고서 수많은  사람이 네 요 네가 수많은 사람이요 그리하여서 이제 동정하는 사람이 되게  하라. 자체의 이 변화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했습니다. 그리하라.

 '이것이 장래에' 미래적으로 말입니다. 미래적으로, 이것이 미래적으로 '자기를  위하여' 이것이 미래적으로 자기 위하는 것이 된다. 이라면은, 이 사람이 되면  이 세상에도 오늘보다 내일이 행복스러울 것이요 금년보다 명년이 행복스러울  것이요 또 젊어서 보다 늙어서가 행복스러울 것이요, 이 사람의 행복은 인간이  조브랍게 생각하는 대로 돈이 있어 행복이고 잘 먹어 행복이 아니고 잘 입어  행복이 아니라, 이 사람은 고차원에서, 인간들이 이해 못 하는 행복, 인간들이  측량 못 하는 행복, 만족하고 더 이상이 없고 기쁘고 즐겁고 평안하고 만족하고  없어지지 안할 그런 고차원의 것으로 자기 위함이 된다 또 따라서 이 물질계  그것도 무슨 별개 거석같이 초절적인 것이 아니고 그러므로서 세상에서도 세상  것으로 행복하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이 초절이 있다고 생각지  마십시요. 이 세상에 행복되어야 심령도 행복되고 영계도 행복됩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만일 지금이라도 이렇게 사는 사람이 하나 있다고 하면, 우리가  이곳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가고 있으나, 이렇게 다 된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을 태평양 가운데다가 갖다 앉혀 놓으면 태평양, 그 태평양이 배로  빡빡할 것입니다. 그 사람 찾아서 배 타고 그리 뭐 태평양 가운데로 모아 들  것이요, 그 사람을 산 만당에 잡아다 묶어 놓으면 그 사람이 있는 산만당에는  마구 사람 산더미가 될 것입니다. 사람 산더미. 인간은 이것을 원합니다. 인간은  이것을 찾고 있습니다. 진정 사모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이것이 참 자기를 위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좋은 터를 쌓아' 좋은 기초 좋은 터는, 세상은 무궁의  터입니다. 무궁을, 이 세상은 무궁의 터입니다. 세상에서 어떻게 한 이것이  무궁의 터전이지 세상에 해 놓지 아니한 것이면 무궁에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영원에 내세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자 얻는 것을, 얻는 것을 하나님 한 분에게만, 얻은 것을 하나님 한  분을 중심해서, 그 가운데서 자기는 모든 사람의 분자가 되고 모든 사람은  자기의 분자가 되고 이래서, 모든 사람의 분자가 되어 모든 사람 속에 들어가서  모든 사람을 다 내가 되어 보고, 모든 사람을 내가 되어져 보고, 모든 사람의 그  울음을 내가 울어 보고, 모든 사람의 슬픔을 내가 슬퍼 보고, 모든 사람의  두려움을 내가 두려워 보고 거기에서, 내가 모든 사람이 내가 되고 그 사람을  내가 실상으로 실감적으로 내가 느끼고 바꾸어 되어져 가지고 거기에서 인간을  구출하는 이 사람이 비로소 인간과 인간의 경계가 없어집니다.

 인간이 제일 좋은 곳이, 제일 좋은 곳이 하나님. 인간이 하나님 안에  돌아다니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하나님 안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그  속성 안에 들어가면 참 좋습니다. 하나님의 지식 안에 들어가면 참 좋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들어가도 좋습니다. 하나님의 감동 안에 들어가도 좋습니다.

제일 좋습니다.

 또, 우리가 사람 안에도, 내가 그 사람을 만나 가지고 그 사람과 나와 원수가  돼 가지고 이래 찜찜하게 이래 있는데 그 사람과 나와 화목이 돼 가지고서 내가  그 사람 마음에 들어가면 참 좋습니다. 이래서, 모든 사람에게 거리낌이 없이  들어가면 행복이 됐는데 자기에게 가까운 사람이, 사람이 막혀 가지고서  들어가지 못하고 있으면 그 사람은 항상 그 얼굴에 쾌락은, 쾌락이라는 그  피부는 나타나지를 못할 것입니다. 항상 근심과 고통만 있을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렇게 이 모든 사람에게 자유로 활동하는 것, 이 사람 속에도 내가  들어갈 수 있고 저 사람 속에도 자유 할 수 있고, 남의 마음속에 제 마음대로  출입하는 거라 제 마음대로 들어가서 다닐 수도 있고, 제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어. 제 자유로 들어갈 수 있어. 들어가면 다 거기 가도 환영 저기 가도 환영  막힐 사람이 아무도 없고 어디든지 자유로 문 열고 들어가고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지마는 다른 사람 속에 내가 들어가는 것은 그 사람이 날 못 들어오게 해서 못  들어가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걸 못 들어오게 하는 것 없어. 그 못  들어오는 것은 자기 양심의 가책이 들어서, 자기에서 거리껴서 못 들어갑니다.

그 사람 속에 암만 들어갈라고 해도 자기에게 거리끼어 못 들어갑니다. 자기에게  거리껴서. 이러니까, 동정하는 자가 되는 이것은, 네가 하나님이 좋은데 하나님  안에 얼마든지 자유로 돌아다니면서 네가 살 수 있는 하나님 안에서 자유하고,  네가 인류 안에서 자유하고, 인류 안에서 자유하는 것은 동정하는 자가 되는  이것으로 네가 성화되는 데에서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인류 안에 자유하고, 그  다음에는 만물 안에 자유하고 이렇게 해서 자유케 하기 위해서 너희들을 불렀다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주님은 어느 인간 안에 자유로 들어가도 누가 막을 이 없고 당신은  얼마든지 자유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다 환영할 것입니다. 이것이 좋은 터,  좋은 기초를 마련하는 것이다. 좋은 터라 말은 좋은 기초를 마련한다. 좋은  종자를 마련한다. 좋은 모종을 마련한다. 모종이 있어야 크지요. 종자가 있어야  나지요. 터가 있어야 집이 서지요. 건물로 말한다면 이것이 터고, 농장으로  말하면 이것이 모종이고, 종묘로 말하면 이것이 종자고, 이것이 시발이라. 이  세상세서 이것이 시발이라. 여기에서 무슨 시발? 세 가지. 하나님에게만  바라봐서 하나님에게만 얻는 것. 얻는 모든 것을 하나님 중심으로 점점 넓혀갈  것. 네가, 모든 사람이 네가 되고 네가 모든 사람이 되어서 모든 사람의, 그  모든 사람과 너와 이색되지 말고, 이색되지 말고 우는 자와 너와 하나 되어  가지고서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이 사람이 지금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될 수 있으니, 이것을 우리가 해야 될 줄 알면서도, 혹 우리가 하는  방편에 있어서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을 방편을 서투르게 하면, 의사가 수술할  때에 서투르게 하면 그 사람 죽습니다. 그 수술할 때에 그것을 아프지 안하도록  날카롭게 잘 수술하는 방편이 있는 것처럼 그 사람에게 대해서 내가 동정하는  사람이고 그 사람 심리를 분명히 그 사람 울음을, 그 사람 분함을, 그 사람의  기쁨을, 그 사람의 탄식을, 그 사람의 근심을, 그 사람이 미혹에 빠져 있는 그  미혹을 분명히 체험하고 체험하고 동정하고도 남음이 충분히 알지마는, 그  사람이 되어 가지고 그 사람을 구원하는 그 일을 잘못하면 도로 역효과가 나  가지고서 거기에서 폭발되어지기 때문에 역 효과가 나니 이 유일한 방법은  조물주에게, 알고서 '이러니 이면을 당신이 해결해 주옵소서.' 구하는 이거  외에는 좋은 방편이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기도를 주신 것입니다. 내가 말로  해서 그 수술이 잘못될 것은 기도로 할 수 있고, 내가 그 사람에게 행동하므로서  큰 스파크가 나타날 수 있는, 폭발이 나타날 수 있는 그것을 기도로서 할 수  있고, 기도로 하는 것은 이것은 아무런 사고 나지 안하고 아무런 휴유증도 있지  안하고 이것이 잘 되어지는 이 방편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것이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참된 생명을 허 하는  것이니라' 좋은 그 근본을 마련해 가지고서 참된, 참된 생명, 이것이 참 사는  것이요 이것이,-생명이라 말은, 생명이라 말은 산단 말이요 힘이라 말입니다.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이것이 참된 힘을 취하는 것이요, 삶을 힘을  취하는 것이요, 참된 행복을 취하는 것이요, 참된 영광을 취하는 것이라. 이  모든 이 참된 이것이 참된 생명을 취하는-생명이라 말은, 요 생명이라 말은 참  묘합니다. 요 생명이라 말은 아주 묘한 말인데 요 알기 어렵습니다. 생명은  힘이라 말입니다. 생명이 있으면 내 손을 이래 움직였습니다. 생명이 떠나  버리면 이거 움직이지 못합니다. 생명이 있으면 내가 소생이 되지마는 생명  없으면 썩어 버립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에 이것이 아니면, 이것이 아니면 암만 좋아도  썩습니다. 이것이 아니면 아무리 강해도 썩습니다. 이것이 아니면 암만 높아도  다 떨어지고 맙니다. '이것이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뭐 얼마나 보배로운 말씀인지 모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한 번 들어 잘 모르는 사람은 오늘 밤에 재독할 때에 또 와 가지고서 들으면 더  알 것이고 어짜든지 알아야 됩니다. 알고 우리가 기억하고 요대로 완전히 변화가  됩시다. 여기에만 근심 없습니다. 이 세계에는 근심이 없습니다. 걱정이  없습니다. 두려움이 없습니다. 실패가 없습니다. 만 가지, 추호도 실패가  없습니다. 늙는 것도 없고 쇠하는 것도 없고 낡아지는 것도 더러워지는 것도  없고 망하는 것도 없고 죽는 것도 없습니다. 여기만은 생명과 평강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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