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이루는 방편과 구원 자체를 구별

 

1986. 12. 26. 밤 (금)

 

본문:디모데후서 3장 15절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본문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한 데 대해서 벌써 해석을 여러 번 해 줬습니다. 또 “성경은 능히” 하는 말씀도 해석을 여러 번 했습니다. 또 “너로 하여금” “너로 하여금” ‘너희들’로도 그저 `너희'라고도 말하지 안하고 “너로” 하는 것은 단수 중에 단수입니다. 이 신앙은 개인적인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 이것은 이 믿음을 하나님이 조성하시기 시작하신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을 정하신 그때부터 시작하신 조성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까지 이 믿음은 완성이 됐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에서 믿는다는 말이 있지마는 그 믿음과 이 믿음이 아주 판이한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또 세상에 책이 많지마는 이 성경과 다른 책이 다른 것도 똑똑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이 믿음 창조 시작이 제일 일위로 하나님이 자존하셨고 둘째로 하나님의 목적이 존재했고 셋째로 믿음 조성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해 가지고 이 믿음이 언제 완성했는고 하니 주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서 완성된 이 믿음입니다. 세상에 많은 그런 믿음이 아닙니다.

이 믿음은 이 구원에만 써 먹지 딴데는 쓰지 못하는 믿음입니다. 또 이 믿음은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에게만 주시는 믿음이지 땅위에 모든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그런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또 이 믿음은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선물로 주시는 믿음이지 인간들이 이 믿음을 가지고자 한다고 해 가지고 가져지는 것도 아닙니다. 깊음을 알아야 됩니다.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그말은, 지혜라 말은 지능을 말합니다. 구원에 이르는 지혜와 능력이 있게 한다. 그러면 이 구원은 믿음으로만 받는 것인데 이 성경은 믿음으로 구원받는 이 능력을 가지도록 한다 한 말씀입니다.

지금 광고 잠깐 하고 말씀 이어서 증거하겠습니다.

하루 삼십 분 기도하는 이 기도를 여러분들이 어짜든지 꼭 놓지 말고 계속하기 부탁합니다. 이 기도를 한 사람들은 앞으로 모든 세상이 다 닥치는 어려움을 닥칠 때에 형통할 것이고 모든 시험을 이기고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삼십 분 기도를 안 한 사람들은 앞으로 환난 만났을 때에 자기 힘으로써 그렇게 발버둥치다가 다 넘어집니다. 우리가 하루 삼십 분 기도하는 이 일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 주셔서 미리 기도하는 것과 또 이 기도에 대해서 늘 하나님이 재촉해 주시는 이 재촉해 주심을 받는 것이 이것이 큰 축복입니다.

그런고로 이 기도록에 등록되지 아니한 분들은 다 지금이라도 등록하고 기도를 매일 삼십 분 어느 시간을 잡든지 자기와 자기에게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미래를 위해서 기도하는 이 일을 꼭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고, 새벽기도를 좀 계속해 나와야 될 터인대 이 새벽기도를 자기네들이 나오고 싶다고 손도 들어서 작정도 하고 뭐 밥도 굶고 이렇게 야단을 쳐도 새벽기도를 못 나옵니다. 그것은 분명이 그 자신들이 능력이 없고 약해서 그렇습니다. 힘이 없어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이 새벽기도는 언제부터 시작해야 되는고 하니 아예 그날 오전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고, 또 익숙한 사람들은 오후부터 시작해도 되고, 또 더 익숙한 사람은 저녁에 저녁 식사하고 한 일곱시부터 시작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능숙한 사람이라도 벌써 저녁에 열시를 이렇게 저렇게 분망해서 이 마귀 저 마귀에게 끌려서, 자기 속에 있는 욕심 마귀에게 끌려 가지고 헛일하든지, 또 그 남편 마귀에게 끌려서 헛일하든지, 아내 마귀에게 끌려서 헛일하든지, 친구 마귀에게 끌려서 헛일하든지, 돈 마귀에게 끌려서 헛일하든지, 이 모든 세상 욕심 마귀에게 끌려서 헛일하든지 그만 저녁에 늦게 누워자면 새벽기도 못 나옵니다.

그걸 꼭 거석해서, 기도하고서 내가 이제 새벽기도 나가자면 저녁에, 지난번에 말했습니다. 열시에 누워자서 새벽기도 틀림없이 나오는 사람은 그때까지 일할 수 있고 그래 안 되는 사람은 아홉시에 자도록 해야 될 것입니다. 아홉시에 자도 새벽에 안 깨서 안 되는 사람은 여덟시에 자야 될 것이오. 여덟시에 자도 또 새벽기도 못 나오고 안 깨는 사람은 일곱시에 자야 될 것이오. 일곱시에 자도 새벽기도 안 나오는 사람은 저녁을 먹지 안하고 자야 될 것이오.

나중에 그라다가서 그래도 안 되는 사람은 일 안 하고 새벽기도를 준비해야 될 것이오. 그래도 안 되는 사람은 굶어서 새벽기도 준비해야 되겠소. 굶으면 안 죽는가? 녜, 새벽기도 하고 죽는 게 낫습니다. 새벽기도 안 하고 사는 것보다 새벽기도 하고 죽는 게 낫습니다. 우리가 공연히 먹는 것이 세상에 사는 것인 줄 압니까? 일하는 게 사는 것인 줄 압니까? 아니오. 우리 하는 일은 따로 있습니다.

그러고, 설교 후 십 분 기도 후에 지난 주 설교 오전 오후 재독이 있을 것입니다.

또 예배 후에 일층 예배당에서 결혼식이 있습니다. 이 밤으로 결혼식에는 많이 참석하셔 가지고 축하하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우리 한국 교계에 이 모든 신앙들을 위해서 헌신하는, 미국에 일류 대학에 그거 치워 버리고 신학에 가 가지고서 지금 공부하고 있는 ○○○선생이 오늘밤에 결혼합니다.

내가 가고 싶은 마음은 간절합니다. 그러나 내가 거기 참석을 못 합니다. 왜? 누구에게는 참석하고 누구는 주례해 주고 안 해 주고 내가 그럴 힘이 없기 때문에, 그때는 다 해 줬습니다. 이렇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할 수 없어서 오늘도 내가 몇 번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하지 결혼식에 참여 못 합니다.

이것은 거게 참여하면 딴데도 못 해 주기 때문에 그 후유증을 생각해서 참여를 못 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그리 아시고 모두 다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또 주일학교에 대해서 광고합니다. 요번 성탄에는 학생들이 만육천 명 빵을 준비했는데 모자라서 천이백 명 빵을 더 준비해 가지고서 그것이 다 나갔다 하니까 이중으로 나간 거 한 이천 잡아도 만오천 명은 나왔습니다. 저는 항상 금년 십이월 안으로 어짜든지 만오천 명 좀 이거 낙심한 사람 다 구원해 달라고 이랬는데 하도 그래 쌓았는데 그래서 그래 한번이라도 이거 어째 만오천 명을 하나님이 보내주실란가 했는데 만오천이 이 성탄 축하 예배에는 나온 것 같습니다.

이러니까 이번에 나온 학생들은 다 반사 선생님들이 알 터이니까 그 학생들은 어짜든지 뭐 시간을 내서 또 혹 어떤 사람은 공장에서 쫓겨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래 어쨌든지 기도하고, 못 가면 기도하고 또 가고, 밤새도록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불량자도 달라들지 못해요. 불량자도 인간 구원을 위해서 가는 데는 불량자가 달라들지 못합니다. 달라들면 그 손도 말라버리고 발도 말라버리요.

이러니까 못 달라들어요. 이 복음을 가지고 구원하러 가면서 다른 죄를 지어야 죄짓는 마음이 있어야 되지 주님 모시고가면은 그런 게 해하지 못합니다. 이래서 이번 다가오는 주일에는 만오천 명이 다 나와서 예배드릴 수 있도록 그렇게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이 부장 선생님들은 특별히 자기 슬하에 있는 모든 반사들을 그저 전화번호를 다 적어 놓으십시오. 연락 전화번호 자꾸 그래 가지고 자꾸 전화도 하고 심방도 하고 이래 해요. 그것도 부장 하는 것은 설교만 잘해 되는 거 아니고 모든 정치도 겸해야 되기 때문에 정치가는 자기에게 소속한 관련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렇게 자주 대화코자 하는 것이 제일 낫습니다. 그러기에 정치가 될라면 사람의 이름을 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는 정치가 될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 이름은 도무지 우리 교회 장로님도 잘 모르고 집사님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이거 그래도 장로님들 동원하고 권찰 동원해야 될 그런 거는 잘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운동할 때는 운동을 일으킵니다.

그러니까 그리 아시고 요번에 다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저녁에 이 말씀을 봉독하고 설교를 하는 것은 벌써 여러 시간 설교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5절 뭐 여러분들이 벌써 여러 시간 설교를 들었을 것입니다.

이러니까 또 뭐 설교하는데 딴 말이 나올까 생각지를 마십시오. 딴 말 나올 거 없습니다. 이미 다 했는데 딴 말 하면은 그거는 다 쓸데 없는 이단이 됩니다. 딴 말 안 합니다. 장 그말이오. 왜 그말이면 그만 말 터인데 자꾸 이 말씀을 또 증거하고 또 증거하고 하는가? 이것은 우리가 좀 실상을 이루자 하는 그런 데에 소원이 있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말씀을 들을 때에 내가 아는 말이다 모르는 말이다 그런 것은 지금 여게서 설교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것은 생각지 말고 내가 이대로의 실상을 이루어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 내가 이대로 행하느냐 안 행하느냐? 행하는 사람은 실상을 이루어 가지고 있나 없나 거게 대해서 따지고 또 행하지 못하는 사람은 나는 행하지 못했으니까 이제 내가 행해야 되겠다 그렇게 실상을 이루는 데에 주력합시다.

간단하게 설교합니다. 잘 들어야 돼요. 실상을 이루어요.

우리가 땅위에 사는 목적이 무엇인가? 사는 목적은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을 얻기 위해서 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땅위에 살려 두신 이유가 무엇인가? 예수님의 구원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입히고 먹이고 살게 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할 일이 심히 많습니다. 뭐 백 가지 천 가지도 아닙니다. 이거 하고 또 잊어버리고 또 저거 닥치면 하고 이래 그렇지 그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으며 우리 생각들이 움직이는 걸로 말하면 한 시간에도 몇십 종류를 움직입니다. 할 일이 아주 많고, 생각할 일도 많고, 또 들을 것도 많고, 볼 것도 많고, 움직일 것도 많고 심히 우리는 할 일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 우리가 할 일은 아닙니다.

우리 할 일은 꼭 하나가 아니면 둘입니다. 하나라 말이나 둘이라 말이나 같은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 할 일은 뭐인가? 자기 구원과 남의 구원, 자타의 구원 이것을 이루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이거 외에는 우리 할 일이 없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이것은 할래야 하지 못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는 택한 사람들과 택함을 입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택함을 입지 못한 사람들은 아무리 예수를 믿어서 목사 장로가 돼도 마지막에는 지옥입니다. 천국은 못 갑니다. 본인이 압니다. 택함을 입고 중생된 사람만 이 구원을 얻어 가지고 하늘나라에 갑니다.

그런고로 우리 택함을 입어 중생된 사람, 예수님을 참 자기 구주로 믿고 싶고 잘 믿고 싶고 그렇게 주님의 뜻대로 살고 싶고 하는 그것이 택함을 받은 증거요 중생된 증거요 속에 새사람이 내주해 있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고 싶은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녜, 이것이 다 택함을 받고 중생된 사람이라는 증거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할 일이 뭐 백도 천도 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택함받고 중생받은 사람들은 할 일은 꼭 하나뿐이라 그렇게 기억합시다. 하나 뭐? 자기 구원 남의 구원 이 구원 이루는 거 이거 하나만 우리의 할 일입니다. 요것을 확정지워야 합니다.

그러면 이 구원을 이루는 데에는 구원 이루는 방편이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이 구원을 이루는 데에 직접 관련된 것도 있고 간접으로 관련된 것도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성경 읽고 또 전도하고 또 믿고 회개하고 하는 이런 것은 자기 구원 이루는 데에 직접 관련된 구원 방편인 것입니다.

또 자기가 직장에 가서 일을 합니다. 일을 하면서 어떤 사람은 그 직장에 일하는 목적이 각각 다릅니다. ‘내가 이 직장에서 이 일을 하고 기술을 배워 가지고 아주 유력한 직공이 돼 가지고 월급 많이 받아 가지고 온 가족들이 잘 먹고 잘 살겠다’ 하는 그런 목적을 가진 사람도 있겠고, 또 ‘나는 이 직장에 일하면서 이 일하는 가운데에서 내 구원을 이루겠다.’ 일하면서 구원 이루기 위해서 그 일을 하고,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기 위해서 일하고, 영감대로 하기 위해서 일하고, 거게서 참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일곱 가지 이 대속의 구원을 가지고 사는 생활을 연습하는 것으로 일하는 사람 있습니다. 그 사람은 이 직장 생활하는 거게서 직접 이 구원 이루는 방편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살지는 못해도 ‘내가 직장에서 월급을 받아야 우리 가족들이 밥을 먹고, 주일도 지키고, 새벽기도도 가고, 성경도 보고 이렇게 해서 구원을 이룰 수 있겠다’ 이것 가지고 구원 이룰 수 있는 의식주를 만들기 때문에 구원 이루는 데 필요한 의식주를 만들기 위해서 일한다 하는 그 사람은 그 일하는 것이 구원 이루는 데에 직접은 못 돼도 간접적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또 그런 생각 없이 장사를 하든지 공부를 하든지 이래 할 때에 모든 노력한 것이 자기가 모르고 하든지 알고 했든지 결과적으로 그것이 자기 구원 이루는 데에 도움이 됐으면 그것도 구원을 간접이 아니고 간간접, 간간접 간간접으로 그렇게 구원을 이룬 일이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주님이 구름타고 오실 때에 한 자리에서 둘이 누워 자는데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하고 또 밭에서 두 사람이 같이 일하는데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한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껍데기 사람 보기에는 꼭 같은 장소에서 꼭 같은 일을 하고 꼭 같은 침대에서 같이 누워 자고 있으나 그 자는 목적이 다른 것을 말합니다. 또 자는 데에 그 소원이 다른 것을 말을 합니다. 또 그 자고 일 한 것이 그것이 결과적으로 이용을 어데 당하느냐? 그 모든 자고 일하고 한 그것이 결과적으로 어데에 이용되고 어데에 사용 되었느냐? 구원에 사용된 사람도 있고 멸망에 사용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것을 가리켜서 꼭 외모는 같지마는 속에 알맹이는 다르다 하는 것을 말씀한 말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공부하는 것도 다 같은 한 교실에서 공부하지마는 한 학생은 하루 종일 공부하면서 구원 이루는 일만 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또 한 학생은 구원 이루는 일은 하나도 하지 안하고 ‘이 공부 내가 해 가지고서 뒤에 잘 살아서 공부 있어 실력 있어 그라면은 생활에 어려움 없이 잘 살고 그래 가지고’ 뭐 할라고 잘 사느냐? ‘잘 살아가는 것은 잘 그래 살아 가지고 예수 잘 믿고 구원 얻을란다’ 그런 사람은 그 공부하는 것이 직접 이 구원을 이루는 것은 못 되고 간접 구원 이루는 일이 됩니다.

또 자기는 그것을 멋도 모르고 일은 하기는 했는데 그때는 그래 했는데 얼마 지나고 난 다음에 돈을 모으고 직장 생활하면서 이제까지 배운 기술과 이제까지 모아 놓은 돈이 가족들이 예수 믿는 데에 도움이 됐습니다. 그 사람은 그게 간접 간간접의 이 구원을 위해서 사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 기독자들은 땅위에서 이런 분야에서 살든지 저런 분야에 살든지, 공부를 하든지, 장사를 하든지, 어떤 정치를 하든지, 교육을 하든지, 문화 운동을 하든지, 예술 운동을 하든지 뭘 하든지간에 오만 것을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 내비두고 그것이 자기 일이라고 알고 했으면 그 사람은 속았습니다. 잘못 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할 일은 구원 이루는 요것 하나만 우리 할 일이지 딴거는 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요 구원 이루는 일 요거 하나만 자기 일인 것을 알고 요 일을 어데서 하겠느냐? 가만히 방안에서 구원 이루는 일 가만히 앉아서 앉아서 할 수 있느냐? 앉아서 할 수 없습니다. 굴에 들어가 앉아서 할 수 있느냐? 굴에 들어가 앉아서 할 수 없습니다. 예배당에 와서 앉아 가지고 할 수 있느냐? 예배당에 와 앉아 가지고도 할 수 없습니다.

이 구원 이루는 것은 자기가 일곱 가지 이 대속의 구원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죄를 이겨서 자유하는 것도, 마귀를 이겨 자유하는 것도, 사망을 이겨 자유하는 것도 자기 현실 생활에서라야 그 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이 율법을 범하지 안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꼭 주님이 대속해 줬기 때문에, 대행해 줬기 때문에 이 율법을 대행해 주신 것을 자기가 벗지 안하고 하나님의 지성 지공의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의 의를 입혀주신 이 의를 벗지 안하고 이 의를 입고 사는 것도 자기 활동하는 모든 활동 속에서 벗지 안해야 빛이 나고 이제 다른 사람에게 전달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된 이 생명도 하나님과 화친돼서 하나님과 연결돼서 끊어지지 안하는 하나님과 완전 화친 연결, 화친 연결도 굴 안에서만 가지고 되는 것 아닙니다. 굴 안에서만 되는 게 아나라. 굴 안에서도 되지마는 시장에서도 되고, 원수 앞에서도 되고, 또 죽음 앞에서도 되고, 온 세상이 다 달라들어도 하나님과 친밀한 이 화친을 양보하지 안하고 이것이 끊치지 안하고 연결 생활을 그대로 하는 것이 우리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향하여 영감대로 사는 영생, 하나님을 향하여 진리대로 사는 영생, 이 두 가지 구원도 자기 현실 생활에서 이렇게 해야 그것이 행하는 것이고 빛이 되어지고 영감대로 사는 것이지 자기 혼자 방 안에서 해 가지고는 영감대로 사는 것이 그것이 될 때도 있지만 안 될 때도 있습니다. 이러니까 영감이, 성신의 감화가 ‘너는 이 싸움통에 와 가지고 영감대로 살아라. 너는 이 절에 가 가지고 영감대로 살아라.’ 오늘도 가다가 그런 말 했습니다. 제가 집사로 있을 때 저 삼봉산에 거게 큰 절이 있습니다. 그 절에, 산에 가서 기도하고 있다가 보니까 눈이 오고 비가 오고 막 진새가 와 가지고 같이 기도하러 갔던 사람이 도무지 거기서, 지금 비니루 있지 그때는 비니루가 없어요, 아무것도 없어요. 없으니까 할 수 없어 그 내려오다가 아주 산중이니까 절로 들어갔습니다.

절에 들어가 가지고서 그 절 중한테 이야기를 했습니다. 주지한테 이야기를 해 가지고서 그 너른 방을 치우고 인제 거기서 밥도 해 먹고 밤에 찬송 기도하고 그래 가지고 실컷 또 거기서 예배 보고 아주 그래 가지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받고 그래 인제 그 중한테도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이렇게 뭐 어데서든지, 우리가 그런 데에서도 구원 이루는 거, 거게 가 가지고 ‘아이구 여기 오니까 여기서는 절이니까 여기서는 그만 주님의 일곱 가지 대속 구원 다 내놓고 그만 여기서는 중이 돼야 되겠다.’ 그러면 안 되는데 거게서 절에 가 가지고도 내나 일곱 가지 구원, 어데서든지 일곱 가지 대속의 구원을 이루는 데에는 어떨 때는 급할 때 급한 데도 그걸 이루어 가지고 있어야 되고, 수월한 데도 가지고 있어야 되고, 핍박 중에도 가지고 있어야 되고, 위험한 데도 가지고 있어야 되고, 공산주의 독침 앞에서도 가지고 있어야 되고 어데서든지 이 구원은 내놓지 안하고 이 구원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구원이기 때문에 이 구원을 이룰라 하면은 세상 온갖 그 분야에서 다 우리가 이 구원을 뺏기지 안하고 이 구원을 보존하고 이 구원 얻은 생활을 계속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은 꼭 한 가지 일뿐입니다. 자기 구원 이루는 요거 하나만이 자기 할 일입니다. 자기 할 일인데 구원 얻는 이 일을 세계 어데서든지 이 구원 이루는 일을 하나님께서 요 자리에서 하라 하면 요 자리에서 해야 되고 조 자리에서 하라 하면 조 자리에서 해야 되고 하나님이 하라 하는 자리 가 가지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라는 그 자리에 가서 하지 안하면은 제 마음대로 하기 때문에 그것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 성경에 하지 말아라 하는 금하는 일 외에는, “도덕질하지 말아라, 또 살인하지 말아라, 거짓말하지 말아라, 남의 것 탐내지 말아라, 우상 섬기지 말아라, 주일 범하지 말아라, 간음하지 말아라, 또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 되이 일컫지 말아라.” 이렇게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는 거 그 외에는 믿는 사람은 전부 다 할 수 있습니다.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금하는 거 외에는 다 할 수 있습니다.

다 할 수 있으면 ‘믿는 사람도 뭐 천 가지 만 가지 다 해야 되러구만.’ 그런데 믿는 사람은 또 구원 이루는 그 일 하나만 하지 딴 일은 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금방 또 목사님이 말하기를 세상에 천 가지 만 가지 되는 그런 일을 예수 믿는 사람이 다 할 수 있다고 이라더니마는 또 한 가지밖에 못 한다는 말이 그 무슨 말인가?’ 여러분들이 이해가 안 될란지 모르겠습니다.

천 가지 만 가지 일이 있는데 예수 믿는 사람은 똑 자기 구원 이루는 거 요 한 가지만 하지 딴것은 못 합니다. 그러면 천 가지 만 가지 그 일은 어짜라 말입니까? 녜, 천 가지 만 가지 일 하는 거게서 자기 구원 이루는 것 하라 그말입니다.

자기 일 하는 것은 천 가지 만 가지 일이라는 그 장소에, 그 현실에서, 그 형편 사정에서, 자기 주위 환경에서 구원 이루는 거 하나만을 거게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에서 구원 이루라 하면 그 일에서 구원 이루고, 저 일에서 구원 이루라 하면 저 일에서 구원 이루고, 이 현실에 구원 이루라 하면 이 현실에 구원 이루고, 저 모든 환경에서 구원 이루라 하면 저 환경에서 구원 이루고, 이러니까 이런 거 저런 거 모든 구원 이루는 데 장소로 다 쓸 수 있고, 구원 이루는 장소로 다 쓸 수 있고, 구원 이루는 현실로 다 쓸 수 있고, 구원 이루는 사건으로 다 쓸 수 있으나 우리 할 일은 구원 이루는 일 요거 하나만이 우리 할 일이라는 거 요거 굳게 잡아야 합니다.

이런데 사람들은 요걸 착각합니다. 착각해서, 구원 이루는 이 일을 위해서 이런 일 저런 일, 구원 이루는 이 일을 위해서 있는 그런 많은 일들이 있는데, 구원 이루는 이 구원을 위해서 많은 일들이 있는데 사람들은 구원을 이루는 일 그것이 구원인 줄 압니다. 오늘밤에는 구원과 구원을 이루는 일과 다르다는 것을 꼭 가지십시오.

요것을 구별해야 됩니다.

그러면 사람이 금식기도 하면은 그게 구원입니까 구원 이루는 일입니까? 구원인 줄 아는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녜, 구원이 아닙니다. 또 자기가 지금 열심히 전도를 했습니다. 열심히 지금 전도를 했습니다. 열심히 전도를 하고 하루 종일 전도했습니다. 어제도 아마 몇백 장 전한 사람 전했을 것입니다. 하루 종일 전도를 했으면 전도한 그것이 자기 구원입니까 구원이 아닙니까? 구원으로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구원이 아닙니다. 알겠습니까? 구원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것도 구원이 아니라, 전도하는 것도 구원이 아니라, 성경 보는 것도 구원이 아니라, 구원은 뭐인데, 대체? 구원은 예수님이 사활로 우리에게 주신 거 일곱 가지입니다. 우리 형을 대신 함으로써 죄와 마귀와 사망에서 세 가지 해방을 시켜서 세 가지 자유 준 그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또 우리 대신 하나님의 율법을 다 대신 행함으로써 하나님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해 주신 것이 구원입니다.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해서 그 화친의 완전 화친의 결합 생명 그것을 우리에게 주신 그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부활하심으로서 우리 대신 영감과 진리대로 하나님을 향해서 영생하는 그 영생을 해 가지고 우리에게 주신 그 영생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이 일곱 가지가 우리의 구원입니다.

이 일곱 가지 구원을 우리가 벗지 않기 위해서 이런 것 저런 것, 이 일곱 가지 구원을 우리가 단단히 가지기 위해서 이런 것 저런 것 하는 일, 또 이 일곱 가지 구원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 주기 위해서 이런 것 저런 것 하는 거, 이러니까 그거는 방편이지 구원은 아닙니다. 알겠습니까? 어머니가 박지기에다가 밥을 떠 주면은 박지기에다 밥을 떠 주니까 박지기가 밥입니까 밥이 박지기입니까? 박지기와 밥이 하나입니까 따로 있습니까? 박지기와 따로 있습니다. 박지기는 암만 먹어도 먹지 못합니다, 밥반 먹어야 되지.

이거 모양으로 이런 일 저런 일 하는 그 속에 우리 구원 일곱 가지는 따로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이번에 성탄 축하 한다고 모두 야단을 지기고 하는데 이것이 자, 성탄 축하에 우리가 떡국도 많이 없애고 돈도 많이 들였습니다. 많이 들여서 했는데 이렇게 모두 떡 주고 뭐 또 떡국 주고 또 과자 주고 뭐 빵 주고 뭐 이렇게 상품 주고 한 이것이 이렇게 많은 운동을 했는데 많은 운동 한 이것이 구원입니까,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역사하는 구원 이루는 방편입니까, 구원입니까? 구원 이루는 방편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구원 이루는 방편입니다. 구원은 아닙니다.

이랬는데 우리가 이것을 착각하기 때문에, 구원 이루는 방편은 하면 끝나는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구원 이루는 방편은 하다가 끝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탄 축하 한다고 이 모두 분주하게 이라다가서 이 일은 끝났습니다. 이 끝났으니까 구원이 끝났습니까, 구원은 지금 끝나지 안하고 계속해야 됩니까? 구원은 끝나지 안해. 계속해야 됩니다.

그러면 이 구원 이루는 방편이, 구원 이루는 방편이 주먹덩이만하면는 그 속에 구원 이루는 것은 주먹덩이만 해야 될 것입니다. 구원 이루는 방편이 이 집채만치 커단하게 크게 했으면 그 속에는 구원 이루는 그 알맹이 구원이 그만치 커야 할 것입니다.

이런데 사람들이 구원 이루는 방편을 크게 하다 보면 크게 하는 그 움직임 그것이 구원인 줄 알기 때문에 그것만 하고서 속에 구원은 깜빡 잊어버려 버렸습니다.

이러니까 이거 구원 이루는 방편 이런 일 저런 일 하다가서 이 구원은 깜빡 잊어버려서 으례히 요번에 그라고 난 다음에 그만 ‘예수님의 사활의 일곱 가지 대속’ 하는 것은 한번도 생각지 못하고 분주하게 빵 주고 과자 주고 뭐 찬송 인도 하고 노래 부르고 뭐 심방하고 야단지기는 여게만 능숙하고 이것만 커단하게 벌어졌지 속에 알맹이 없는 텅 빌 수가 많이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그것을 성경에다가 예수님, 요셉과 마리아가 예루살렘에 절기 지키러 올라갔다가 분주한 가운데서 예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이, 와 보니까 예수님이 없습니다. 예수님 저희 메시야 잊어버렸으니까 무슨 소용 있습니까? 이래 가지고 분주하게 찾다가 가니까 나중에 성전 안에 계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렇츰 찾고 애를 먹는 줄 몰랐느냐고 이래 물으니까 ‘내가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모릅니까?’ 이래 버렸습니다.

이건 뭐이냐? 속에 깊이 생각해 보면은 ‘돌아다니다가 나일랑 잊어버려 두고 분주한 가운데에서 할아버지 왔소, 아버지 왔소, 삼촌 왔소, 방백 왔습니까, 또 무슨 뭐 왔습니까?’ 저거끼리 자꾸 이리 뭐 인사하고 어짜고 이 들씬거리기만 들씬거렸지 예수님을 잊어버렸다 말이오. 예수님 잊어버렸으니까 그게 뭣 때문에 그리 됐느냐? 오늘 우리가 분주한 가운데에서 이 실상 우리의 구원이 되는 구주는 잊어버리고 우리 구원은 잊어버리고 분주하게 날뛰는 이 껍데기 형체만 가지고 날뛰기 쉽다 그거요.

이러니까, 오늘 새벽에 보니 텅 비었어. 여게 어데 갔노? 우리 ○장로님 어데 갔노? ○장로님 어데 갔소? ○장로님 말이요 오늘 아침 새벽에 보니, 어제 보니까 나한테 보고 했어. 분교 예배도 다 드렸는데 뭐 잘 드렸습니다. 오늘도 전도도 어떻게 하고 뭐 빵도 어떻게 주고 어짜고 한참 재미 있는 보고를 합디다. 그래 ‘수고 했습니다’ 이랬는데 `오늘 아침에 보자' 하고 내가 봤다 말이오. 보니까 ‘이제 이 구원 많이 이뤘으니까, 이거 뭐 빵 주고 뭣 주고 구원 많이 이루었으니까 이제 새벽기도는 오늘 좀 하루 안 나가도 괜찮지.’ 싶어서 쭉 발 쭉 뻗고 누웠다 말이오, 구원 잊어버렸기 때문에.

일곱 가지 구원 잊어버리지 안했으면 새벽기도 그러니까 더 나와야 되지. 껍데기 외형이 크면 속에 알맹이도 커야 되지. 속에, 땅콩 까보면 말이요. 껍데기는 이만한 것이 속에 텅 비었습니다. 텅 비었어. 이러니까 어떤 사람은 껍데기 큰 것 하지마는 어떤 사람은 작은 거 야문 거 그놈 가지요. 껍데기만 크고 속에 알맹이 없으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이래서 오늘 ○장로님 참 야단 만났었습니다. ○장로님 손을 들라고 고함을 질러도 들어야지 뭐, 못 나왔는데. 또 그 사모님이 부인이 ○집사님이라.

○○○집사님 왔느냐고 손 들라 하니까 안 왔어. 둘이 다 통통 구워먹어 버렸다 말이오. 이러니까 뭐이냐 하면은 이 껍데기 이 형체 이게 구원인 줄 알고 속에 알맹이 구원은 그만 뺏겻다 그말이오. 요것을 오늘 내가 지금 증거합니다.

요거 각처에서 온 교역자들 있는데, 우리 할 일은 꼭 구원 이루는 거 구원 요거 하나만 우리 할 일인데 구원 이루는 방편 그것은 구원이 아닙니다. 구원 이루는 방편과 구원 자체와를 똑똑히 구별해 가지고서 구원 이루는 방편이 크면 구원이 커야 되고 방편이 적으면 구원이 작아도 되는 것이고 이런데 방편에 힘쓰고 알맹이 구원은 잊어버린 쭉덩이되기 쉽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광고는 이제 했기 때문에 더 안 합니다. 일층에서는 결혼식이 있습니다. 가서 참석하셔 가지고 많이 축하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어떤 일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으나 알맹이 구원이 없는, 알맹이의 구원이 없는 일은 하나도 할 수 없습니다. 구원만이 우리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아무리 분주하고 큰 일이라도 알맹이가 없으면 우리 할 일이 아닌 줄 아십시오.

어떤 큰일이라도 알맹이 구원을 위한 일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 일을 할 필요가 없고 가치 없는 일이요 다 죽는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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