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5 14:35
구원
1980. 7. 6. 주전
본문 : 베드로후서 1장 4절 - 11절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서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마음이 시원하더라 하는 그것도 그것만을 위주로 삼으면 위험합니다. 또 자기에게 어떤 충격이나 자극이나 그것만을 위주로 삼으면 위험합니다. 또 자기에게 어떤 충격이나 자극이나 그런 것 있기를 원하는 그것만을 위주로 해도 위험합니다. 그런 것들은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다만 이 주일을 지키려고 예배당에 온 것이나 또 자기 집에서 이 주일을 맞이한 것이나 어쨌든지 오늘 이 주일은 자기가 하나님이 자기를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오늘 주일날 변화시켜 주시는 이 변화를 오늘 주일에 받아야 합니다. 오늘 주일에 받을 변화를 받지 못하면 영원히 그는 받지 못합니다. 또 다음 주일에는 다음 주일에 받을 또 변화가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우리가 영원히 살아갈 때에 우리는 무엇이 필요한지 모르지만 우리의 주님이신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어떤 복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인지를 우리는 모르나 주님은 아십니다. 각자를 다 아시고 각자에게 오늘에 주실 그 복이 각각 따로 있습니다.
그러면 그 복을 오늘 받아야 합니다. 이 두 가지가 주일을 지키는 소망이요 목적입니다. 일 않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여기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설교를 하고 듣고 하는 이것이 목적 아닙니다. 이런 것은 다 우리의 목적인 이 주일에 하나님이 변화시켜 주시는 그 변화를 하나님이 주시기 위해서 주일도 정했고, 또 영감의 도리의 설교도 하고, 또 우리가 이 말씀을 들어서 구원을 이룰려고 예배당도 짓고 또 우리가 모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이 두 가지를 이루지 못한다면 예배당도 헛일, 설교도 헛일, 듣는 것도 헛일, 주일지키는 것도 헛일, 일하지 않는 것도 헛일 다 헛일입니다. 이 두 가지가 이루어져야 됩니다.
하나는 이 날에 하나님과 같이 변화시키시는 그 변화의 부분이 있습니다. 이 날에 변화받을 변화를 자기가 받아야 됩니다. 이것은 자체입니다. 무궁세계 가서 살 자기요.
그 다음에는 금생과 내세에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 그것을 가리켜서 복이라 그렇게 한 말로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그런 것들을 하나님이 이 날에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이 날에 주시는 것이 있으니 이 날에 주시는 그것을 자기가 이 날에 받지 못하면 영원히 받지 못합니다. 또 그 다음에 주일을 우리가 지킨다 할지라도 그 다음 주일에는 그 다음 주일날 우리가 받아야 할 것을 받는 날이요. 전 주일에 받지 못한 것을 받는 주일은 아닙니다. 한번 지나가면 다시는 만나지도 못하는 이 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단번에 주시는 도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이날에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받는 이 일에 지장이 있고 손해가 가고 방해가 될까 해서 모든 일을 쉬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변화를 시키실 때에 성령의 감동과 진리의 말씀으로 변화를 시키지기 때문에 설교도 하는 것이고 설교를 듣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있는 모든 필요한 것을 주실 때에 그것을 한 말로 말하면 복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필요 있는 것을 주실 때에 말씀으로 주십니다. 이치로 주십니다. '네가 이렇게 이 이치대로 하라 저 이치대로 하라' 고 이치대로 하라고 이치를 주실 때에 고대로 하면 고기 복이 됩니다.이것이 주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이 성화를 받고 복을 받는 데는 그것이 성신의 감동과 이치로 나옵니다. 이치 진리 이치로 진리로 나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이치를 진리를 우리에게 말씀해 줄 때에 이 말씀을 자기 비유에 맞지 안해도 자기 의견에 맞지 안해도 자기 지식에 맞지 안해도 인간들이 말하는 그 전부에 맞지 안해도 나와 인간들의 모든 지식을 다 물리치고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이 말씀을 참되다 인정하여 고대로 제가 배워서 고대로 알아야 됩니다. 고대로 지식해댜 됩니다. 그대로 인정을 해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 말씀을 우리가 성경을 보기 때문에 저 말씀은 성경에 삐뚤어졌다 하면 아무리 유력한 설교자가 설교를 해도 그것은 틀린 것입니다. 그 인간의 말입니다.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대로의 말, 말씀을 증거할 때에는 사람이 증거하지만 하나님이 그 사람을 통해서 증거하는 말씀이기 때문에 이 말씀을 들으면서 자기가 참되다 인정하여 그대로 인정할 때에 그대로 자기가 믿을 때에 그대로 인정을 할 때에 그때에 자기가 변화가 됩니다.
또 내가 이제는 이대로 알고 이대로 살겠다 할 때에 또 자기가 변화가 됩니다.
또 이렇게 살 때에 또 자기가 변화가 됩니다. 이렇게 살 때에 자기에게 필요한 자기도 모르는 가지수의 복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도를 들을 때에 인정하는 것과 또 그대로의 사람과 생활을 하려고 하는 각오와 소원에서 변화를 받고, 엿새 동안 이대로 살 때에 변화받는 사람이 견고해집니다. 변화받은 사람이 튼튼해집니다.
변화는 주일날 받고 엿새 동안 자기 분야의 생활에서 변화받은 그 사람이 튼튼해집니다. 변화는 받았지만 엿새 동안에 그대로 살지 안하면 변화받은 사람이 마치 갓 낳아 놓은 아이가 약해서 생명도 사람도 사람이지만 그게 약해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렇게 되고, 엿새 동안에 자기가 주일날 거룩하게 변화받은 요 사람으로 살아보려고 월요일부터 힘을 써서 요대로 살다가 안 되면 또 넘어졌다가 또 일어서서 살고 또 일어서서 살고 요렇게 엿새 동안을 요대로 사는 가운데서 변화받은 그 사람이 장성해져서 튼튼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를 받는 날이요, 또 변화받은 이 사람이 금생과 내세에 자기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복받는 날입니다.
그러면 변화와 복을 받을 때에 하나님은 어떻게 주시는가? 하나님은 진리와 영감으로 주십니다. 우리가 받는 것은 그 진리를 받으면서 참되다 인정할 때에 영감이 자기에게 함께 합니다. 또 그대로 소원을 하고 그대로 로 살기를 결심할 때에 우리는 변화를 받습니다. 우리는 복을 벌써 받았습니다. 엿새 동안에 이대로 살면 변화받은 사람이 견고해지고 받은 복이 실제로 내가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억합시다.
그러기에 주일날 이 두 가지 구원을 받으려고 모든 일을 다 제해 놓고 우리가 마음과 뜻과 힘과 모든 것을 다 합해 가지고 이 주일을 왔는데 지금은 이렇지만 어떤 때에는 이 주일을 지키려고 하면 생명을 안 내놓으면 못 지킵니다.
왜정 말년에 제가 농산 교회라는 그 예배당에 가 가지고 주일을 지키는데 그 때에 경관들과 모든 면 직원들이 그날 솔가지 솔괭이 따다가 송진 내 가지고 저거 전쟁한다고 솔괭이 따러 안 간다고 몽둥이를 가지고 내리 칠 때에 그때에 주일을 지키지 아니하고 쫓겨 나간 사람이 거의 다입니다. 그래도 꼼작 않고 때리든지 말든지 주일을 그대로 지켜서 거룩하게 지킨 사람은 몇 사람 없었습니다. 제가 본 대로 그때 남아 있는 사람을 보니까 몇 사람 없어.
모르겠어요. 한 칠 팔인 있었던가? 모르겠습니다. 다 쫓겨 나가 버렸습니다.
이 주일날 자기 목숨보다 귀한 것을 받는 이 큰 유익이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생명을 걸어 놓고 주일을 지킬 리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은 주일 지켰다는 것이 그렇게 힘들지 아니하는 것 같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요게 오기는 그때보다 힘이 덜 들고 앉아 있기는 힘이 덜 들고 말씀 듣기는 힘이 덜 들지만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자기가 변화되는 것이나 또 참으로 이 말씀이 실지로 자기에게 복이 되어지게 하는 이것이 되어지기 까지의 하는 데는 오히려 그때는 쉽고 지금은 어렵습니다. 지금은 된 줄 아는데 안 되니 어렵고, 그때는 죽인다 하는데 생명만 내놓고 주일을 지키니까 한 말씀 한 말씀 설교하는 것도 생명 내 놓고 설교하고 그 설교를 들을 때에도 생명을 능가하는 그 은혜로 자기에게 와 가지고 변화가 되는 것을 우리가 체험을 했습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이고 아무리 청산유수의 언변의 어떤 말을 한다 할지라도 성경 대로의 말씀이 아니면 소용 없습니다. 성경 대로의 말씀이어야 하고 또 셩경대로의 말씀만 가지고 안 됩니다. 성신의 감화 감동이 함께 해야 됩니다.
그런고로 이 주일 지키는 것을 똑똑히 알고 오늘은 또 성화 받을 이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자기 구주로 믿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이 자리에 나와 가지고 예배를 드립니다. 물론 믿는 그 양은 질은 차이가 심히 많지만 그래도 예수를 믿는다고 와서 앉았습니다.
그러면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일곱 가지 기본구원은 이미 받아 가지고 있는 것을 이 시간에 인정해야 됩니다. 일곱 가지 기본구원은 우리가 이미 받아 가지고 있습니다. 악령은 받아 가지고 있는 일곱 가지 이 기본구원을 받지 아니한 것으로 의심하게 하려고 애를 씁니다. 의심하면 집니다. 의심을 했다고 이 기본구원이 없어지느냐? 없어지지 않습니다. 의심했다고 기본구원이 변해지느냐? 아닙니다. 부인한다고 변해집니까? 택한 자에게는 이 기본구원은 요동이 없습니다.
그러면 기본구원 일곱 가지는 자기가 이미 받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일시적이라도 예수를 믿을 마음이 생겼고,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그런 이름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제일 중요한 것이 뭐이냐? 일곱 가지 기본구원을 자기가 받은 자인 것을 알고 있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는 일은 뭐이냐? 일곱 가지 기본구원은 순전히 하나님이 혼자 만드셨지 우리는 손도 안 댔습니다. 또 일곱 가지 기본구원은 우리가 알고 온 것도 아니고 우리가 원해 온 것도 아닙니다. 혼자 하나님이 만드신 일곱 가지 기본구원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어 우리에게 있게 했기 때문에 있고 난 후에 우리가 알았지 있을 때에 우리가 알고 있어진 것 아닙니다.
그러면 일곱 가지 기본구원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하는 그 증거가 무엇이냐?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하는 그 증거는 자기가 어쨌든지 옆에 사람의 권면하는 그 말을 듣고 예수를 믿을 마음이 조그만이라도 생겼습니다. 일시적이라도 믿음 마음이 생겨졌습니다.
이것은 천하 인간을 다 사로잡고 있는 악령이 예수 믿는 이 일을 못하게 방해를 하려고 하는 것이 저희들의 목적인데 이렇게 강한 악령이 모든 불택자들의 그 머리에 다 머리를 통해 가지고 인간을 통해서 예수 믿는 것을 부인하게 하려고 책도 수억억만 권도 더 나왔고, 억억만 번의 방편을 말을 더 하고 이런데 이런 것을 하나님께서 다 그 사람에게 제거해서 싹이라도 예수님을 자기 구주로 믿는 것, 예수님을 믿고 싶은 것,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고 싶은 것, 지옥 가기 싫고 하늘나라 가고 싶은 것 이런 것이 순간이라도 자기 마음에 생겨졌다고 하면 이것은 기본구원을 얻었다는 증거가 확실한 것입니다.
이 기본구원을 얻은 것은 이것은 영원 전 하나님께서 택해서 되는 것인데 악령이 이것을 부인케 하려고 있는 사람 있는 방편을 다 동원해 가지고 순간도 믿어지지 못하도록 이렇게 악령이 방해를 하는데 자기에게는 순간이라도 믿어진 것은 악령의 세력을 다 물리치고 거기에 승리의 싹이 조그만치라도 나온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가 병 때문에 믿고 싶었든지, 사업 때문에 믿고 싶었든지, 자기가 사람이 되고 싶어 믿고 싶었든지, 친구를 따라서 믿고 싶었든지 어쨌든지 다른 이는 그 악령이 악령 편에 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많이 있습니다. 친구 따라서 가기 싫은 것도 가는 수도 있고, 이런 것 저런 것 많이 있지만 예수님 믿는 요 생각이나 요 마음 요것만은 그것은 그 천하 인간이 다 달라 들어서 믿도록 하려고 해도 택함을 받지 아니한 사람에게는 믿는 마음이 순간이라도 찰라라도 추호라도 생겨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왜? 이거는 악령의 그 감화의 방해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친구를 따라서나, 무슨 병으로서나, 돈으로서나 어쨌든지 예수님을 믿고 싶은 그 마음이 순간이라도 들었다든지, 또 생각이 났다든지, 고 행동이 추호라도 있었다든지 하면 고것은 기본구원을 얻은 증표입니다.
요것을 들을 때에 택한 자는 어떻게 되느냐? 택한 자는 '아 그러면 나도 그런 증거가 있다.' 요렇게 들려지고 택한 자가 아닌 사람은 고렇게 들리지 않습니다.
'사람이 많이 꼬우고 있다. 거짓말 많이 하고 있다.' 그 속에서 반대 역사가 더 일어납니다. 반대 역사가 더 일어나요.
반대 역사가 일어나는 사람 가운데에 택자와 불택자가 있습니다. 택자는 반대 역사가 자기 마음 가운데에 일어나는 데에 '어데 하나님이 있어. 지옥이 어데 있어. 천국이 어데 있어. 예수가 뭐이라.' 요걸 자꾸 이래 하고 반대합니다.
반대를 하는데 자기 속에서 반대를 할수록 자기 속에 더 강하게 부인을 할라 해야 부인할 수 없는 게 그 속에 생겨집니다. 그 속에 나타납니다. 그것이 자기가 벌써 기본구원을 얻었기 때문에 자기에게 옛사람은 반대하고 기본구원을 얻었기 때문에 새사람이 생겨져. 새사람은 속에서 자꾸 용솟음쳐 올라오고 옛사람은 깔아 뭉게고 덮고.
이래서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을 하면 부정을 할수록 자기 속에는 부정을 할 수 없는 긍정이 자기 속에서 나오게 됩니다. '뭐 구원은 무슨 구원이 있어. 다 거짓 말이야. 사람 속이고 꾸우는 말이라.' 강하게 역설을 할수록 자기 속에는 그게 부정이 안 되고 없다고 입으로는 역설을 할수록 자기 속에는 깨끗한 부정이 안 되고 그 속에는 그게 긍정이 되어지고 '그게 있으면 어쩌노? 없다고 네가 입으로 그래 증거했는데. 뭐 있기는 뭐 있어 없지. 없지. 없다. 없다.' 백 번 천 번 말해도 그 속에 없다고 말할 수록이 그 속에는 '없을까? 있으면 어찌 되느냐? 만일 있으면 어찌 되느냐?' 그 부정이 자기 속속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전체가 부정이 되어지지 않고 부정하는 그 속에 긍정이 근정의 흔적과 긍적의 싹이 터 나옵니다.
그런고로 예수 믿는 것은 자기 주관이 예수를 믿는 것 아닙니다. 자기 속에서 자가는 반대하면서 예수를 믿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전도를 할 때에 그 사람이 예수 믿는 걸 반대하고 하 고 아주 욕설을 하고 부정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예수를 안 믿을 사람이라고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왜? 그 사람이 택한 사람 같으면 부정을 하고 강하게 핍박을 했는데 자기 속에는 벌써 생명의 씨가 심어져 가지고 부정을 할수록 자기 속에는 부정할 수가 없고 의심할 수가 없고 반대할 수록이 자기 속에는 자꾸 생겨 올라옵니다.
이러니까 예수 믿는 것은 자기 속에 한 사람은 예수 믿는 걸 반대하는데 그 속에는 믿어지는 것이 생겨지고, 믿는 것이 생겨져서 어찌할 수 없어서 예수 믿는 것으로서 자기 속에 한 세력과 자기 밖에 세력과 두 세력이 이래 하다가 결국은 밖에 세력이 질 때에 속에 세력이 예수 믿는 사람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일곱 가지 기본구원 얻는 것을 언제든지 기억하고 일곱 가지 기본구원을 얻는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첫째는 뭐이냐? 우리가 하나님의 선택 가운데에서 낳습니다. 하나님의택한 자로 어머니 뱃속에 잉태 됐고 출생했습니다. 선택 받은 자로 출생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우리가 벌써 난 것입니다. 이것이 기본구원의 첫째입니다.
우리가 나기 전, 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기 전 하나님 혼자 계실 때에 당신의 생각 가운데에서, 당신의 뜻 가운데에서, 당신의 마음 가운데에서 이런 이런 자를 구원해서 만드시겠다 할 그 때에 우리는 없었는데 당신이 목적하신 목적, 그대로의 우리가 생겨진 것입니다.
우리가 생겨진 것은 언제 생겨졌느냐? 우리가 아담 하와가 지음을 받을 때 그때에 내가 될 요소는 그때 생겨졌고, 내라는 사람이 생겨지기에는 부정 모혈로 어머니 뱃속에 잉태될 때에 생겨졌고, 그 다음에 어머니에게서 출생됐고 내 구원이 시작된 것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기 전 하나님 혼자 계시던 당신의 마음 속에서 그때부터 우리 구원은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이런 것입니다.
그러기에 영원 전 우리 구원은 있었던 구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그 구원이 있어 그 구원으로 우리를 만들었고 우리가 낳고 우리가 자랐고 그 위에 우리가 예수 믿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기본구원의 일호입니다.
둘째는 뭐이냐? 둘째는 예수님이 대속으로 이 세 가지 사죄 칭의 대속을 우리가 입었습니다. 우리가 나고 난 다음에 이룬 것 아닙니다. 우리가 나기 전에 벌써 근 이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에 는 우리가 선조로 말미암아 상속받은 그 원죄, 우리가 나 가지고 온갖 지을 죄, 영원히 지을 죄 이 죄를 예수님이 낱낱이 담당하셔 가지고 우리가 나기 전에 우리의 지은 죄도 짓기 전에 어떻게 아노? 하나님은 전지자시요 시간을 제한을 받지 않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나기 전 우리가 나 가지고 어떠한 죄 지을 것을 낱낱이 당신은 아시고 정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해서 죄값의 형벌을 대신 담당하셔 가지고 이 죄를 담당함으로 우리에게 사죄를 줬습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무와 책임이 있는데 이것을 우리가 하지 못하는 것을 예수님이 영원한 책임을 대신 담당해 가지고 대신 행해서 우리를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로 세웠습니다. 이거는 순전히 예수님의 공로로 우리가 된 것이지 우리로 된 것 아닙니다. 우리가 있기 전에 벌써 이 세 가지는 됐습니다. 한 가지는 하나님과 원죄와 본죄로 원수 되었고, 영원히 원수될 것을 이것을 예수님께서 이 값을 내시고 불목의 값을 내시고 화목을 이루어 하나님과 화목의 이 결합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 세 가지 대속을 우리가 입은 것이 기본구원의 둘째입니다.
그러면 우리 예수 믿는 우리는 이 자리 있는 우리들은 이 두 가지 기본구원을 입은 것은 알아야 됩니다. 나는 억만 죄악이 있지만 하나님의 심판 공심판에서는 나는 이 시간에라도 죄없는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고, 이 시간에라도 의로운 자로 설 수 있고, 이 시간에도 하나님고 화평을 가진 이 결합에 친밀한 자로 우리는 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이미 받았습니다.
셋째는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딸도 아들이요 아들도 아들입니다.
그때는 전부가 아들이요 지금 여자들도 다 아들입니다.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은 양자인데 예수님은 그 직속 아들이요 우리는 양자입니다. 예수님과 우리와 다릅니다.예수님은 신의 요소로 난 자이기 때문에 그는 바로 신의 요소로 난 그 직계 아들이지만 우리를 가리켜서 양자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양자라 말은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됐지만 이 여반도 다 아들들이요. 아들인 줄 아십시오.
아들된 것은 하나님의 요소를 타고 우리가 나 가지고 아들된 것 아닌데 요소는 순전 인간 요소를 타고 난 인간인데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서 예수님이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상속받고 대우받고 모든 피조물들에게 이런 존귀한 대우를 받게 되는 이것이 예수님과 꼭 같이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받기는 같이 받는데 실상 요소로 말하면 인적 요소뿐이고 신적 요소가 없기 때문에 양자라 그렇게 성경에 표현을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상속받을 수 있는 이런 권세를 가졌고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뭐이냐? 자 그러면 첫째가 뭐이지요? 첫째가 선택, 택함받고, 둘째 그리스도의 구속, 또 셋째 하나님의 아들, 또 넷째 그 전에 가르쳤는데 영생 영원한 생명을 가졌습니다. 영생, 또 하나는 뭐입니까? 하는 뭐이지요? 예, 하나는 뭐입니까? 중생, 또 그 다음에는 신령한 부활, 또 그 다음에는 하늘나라의 시민으로 영생하는 것, 요 일곱 가지 기본구원은 우리가 이미 받은 것인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영생을 가졌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 영생을 가졌는데 이 영생을 가지게 된 그 시작이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그 중생은 영생하는 생명으로 우리가 중생된 것입니다.중생은 영만 중생했지 몸은 아직까지 중생을 다 입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면 중생한 영은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이 육도 마음과 몸도 이것이 자기 현실 현실에서 중생이 됩니다. 중생이 된다 말은 거룩함으로 변화를 받습니다. 이것이 하나씩 둘씩 자꾸 건설돼 나갑니다. 이것은 행위로 말미암아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그 현실에서 자기의 심신이라는 이 육이 영이 받아 가지고 있는 그 기본구원을 이 심신이 받았을 때에는 그 받은 심신의 그 부분은 영이 받아 가지고 있는 기본구원을 이 심신이 받은 그 심신의 요소는 받은 심신의 부분은 이 기본구원을 받은 심신의 기능은 그것은 살아났습니다. 그것은 영생을 가졌습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거룩하게 변화된다. 그것이 건설된다. 그것이 행위로 이루어진다. 이것을 가리켜서 행위구원이라 건설구원이라 성화구원이라 말씀합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영이 일곱 가지 기본구원을 얻어 가지고 있는 이 기본구원을 마음과 몸이 이 구원을 자기도 받으려 하는 것이 우리가 세상의 노력입니다.
우리의 심신이 마음과 몸을 가리켜서 육이라 말하는데 이 육이 중생된 영하고 한덩어리가 될 때에는 영이 받은 기본구원을 이 심신도 같이 받아서 이 영육이 다 이 기본구원을 가진 자로 기본구원이 있는 기본구원의 자로서 이렇게 있지만 이 마음과 고기덩어리는 이것이 다 받을 것이 아니고 거기에 얼마 요소 얼마 부분 그 기능 중에 얼마 그것만 받았지 다른 것은 받지 안했기 때문에 받지 아니하는 거는 안 받으려고 반대를 하고 받은 것은 변동없습니다.
받은 것은 변동없지만 받지 안한 것은 안 받으려고 반대를 할 때에는 이것은 이 심신이 중생된 영과도 한덩어리가 아니고 대립니다. 자기 심신의 요소와도 성화된 요소와 성화되지 안한 요소는 반대가 됩니다. 이럴 때는 이 기본구원이 자기의 구원이 되지를 못합니다. 곧 심신의 구원이 되지 못한다 말입니다.
그러면 그 마음의 전부의 구원이 안되는 것이 아니고 그 마음의 어떤 부분의 구원은 안되고 어떤 부분의 구원은 됩니다.
이러기에 우리 마음은 하나가 아닙니다. 마음은 수많은 쪼가리로 되 가지고 있는 것이 마음입니다. 영은 하나입니다. 우리의 몸도 하나가 아닙니다. 우리의 몸도 여러 수억억만 쪼가리도 넘습니다. 기능도 그러합니다. 마음도 그러합니다.
이러기에 예수를 믿으면 처음에는 이 기본구원을 반대하는 심신이 강하다가 차차 예수님을 믿으면 이 심신 중에 기본구원을 인정하고 기본구원을 좋아하고 기본구원을 받아 가지고 있는 심신의 요소가 있기 때문에 고게서 전체 마음이 하나님이나 진리를 반대하지 않고 반대하는데 그 속에 일부분은 반대하지 아니하고 그 하나님과 진리를 긍정하지만 많은 무더기가 반대하니까 어쩔 수 없어서 끌리 가기는 끌리 가지만 그 마음에 끌려 가서 죄를 지으면서도 그 속에 마음에 안됐다 깨그름하게 불쾌하게 여기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는 또 끌려 가기는 끌려 가지만 이 신경이 그 재미가 없고, 이 신경이 불쾌하고, 이 신경이 둔해지고, 이 신경이 벌벌 떨려지고, 또 이 신경이 소름이 끼치지고, 이 신경이 다 듣지를 안합니다. 차차 차차 믿어 가며 이것이 이루어져 갑니다.
이래서 이미 영이 얻어 가지고 있는 일곱 가지 기본구원을 이것을 이 심신의 육도 다 가지고 있기는 있는 건데 받기는 받은 것인데 받기는 받은 것인데 제 것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이 이 심신이기 때문에 그 영이 기본구원을 받은 후 이 심신이 이차적으로 이 기본구원을 제 구원으로 받아 가지게 되는 이것을 가리켜서 이것을 가리켜서 성화 구원이라 건설구원이라 행위구원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구원이 두 종류인데 하나는 기본구원이요 하나는 건설구원이요.
기본구원이 먼저요 건설구원이 그 다음이라. 기본구원은 영만 받았고 심신은 제것이 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제가 가지지를 못했다 말이오. 가지지를 못했으니까 영은 받아 가졌고 이 심신은 받기는 받았는데 가지지 못하는 이 심신이 지금 가지도록 노력하는 이 구원이 있으니 요것은 심신의 구원이라.
요것을 가리켜서 건설구원이라 성화구원이라 행위구원이라 그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면 영이 받은 구원은 단번에 받았고 요 심신이 영이 받은 고 구원을 심신이 받아 가질려고 할 때에는 우리 마음은 억만 쪼가리도 넘기 때문에 이 억만 쪼가리라고 말하면 억만 분을 받아아야 되겠고 몸도 억만 쪼가리도 넘는다고 하면 억만 분을 받아야 이 몸이 다 받는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심신의 이 구원은 건설구원은 성화구원은 행위구원은 이것은 중복적입니다. 여러 차례로 받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현실 현실을 많은 현실을 줬습니다. 앞으로 만일 십 년을 산다고 하면 그 현재라는 현재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하루치도 많은데 고 일시 일시, 현재 현재, 현실 현실 그것이 많은 것은 그때 그때 이 심신이 요 요소가 요 부분이 구원을 얻고 조 부분이 구원을 얻을 고 많은 종류의 구원이 있고 부분의 구원이 있기 때문에 고것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 요 현실을 주시고 또 고게서 얻었으면 됐고 안 얻었으면 다시 못 얻습니다. 고 다음에 또 현실 주고 현실 줘서 요 현실을 하나도 허비하지 아니하고, 요 구원을 다 이룬 사람은 요 사람은 이 심신이 기본구원을 다 받은 것을 제가 가지고 있고 기본구원을 얻어 가진 자가 되고 요것을 이루지 못한 고 심신은 요 기본구원이 없기 때문에 고거는 멸망합니다.
그러기에 중생된 택한 사람이 비유컨데 자기 심신의 부분이 고것이 백이라 하면 고 백이 요소적으로는 기능적으로는 다 죽어버리고 뭉텅이만 부활해 가지고 하늘나라 간 자 있고, 어떤 자는 반을 살리 가지고 가는 자 있고, 어떤 자는 백분지 일만 살리 가는 자 있고, 어떤 자는 백의 백을 다 살리 가지고 가는 자가 있으니 고것이 부활한 자의 권능입니다. 부활한 자의 실력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일곱 가지 기본구원을 우리가 이미 얻어 가지고 있는 자입니다.
가지고 있는 자인데 영은 가져서 영은 언제든지 일곱 가지 기본구원을 얻은 그 영으로 삽니다. 이 기본 구원을 벗어 놓는 일이 영원히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생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육이라고 하는 이 심신은 영과 하나가 될 때에는 영이 받아 가지고 있는 이 기본구원을 육도 제 것이 되고 가지게 되는데 이 육이 영과 대립이 됐을 때에는 그때는 이 기본구원은 저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심신이 중생된 영과 이 심신이 전부가 다 반대되는 그런 사람도 있고, 불택자는 전부 다 반대 돼 있고 그 사람들은 중생된 영도 없고 중생된 사람이라도 이 심신이란 육이 영과 백분지 일은 하나가 되어서 통하고 백의 구십구는 반대되고 이러다가 얼마동안 예수 믿는 일을 힘을 쓰면 이 심신이 백의 오십은 중생된 영과 한덩어리가 돼 가 있고 백의 오십은 반대 돼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의로운 길 곧 기본구원을 얻은 마음으로 몸으로 행동하라고 할 때에 반대하는 것이 그 심신의 반대하는 것이 반이고 환영해서 하자 하는 것이 반이고 이러니까 그 사람은 두 가지로 실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반은 믿음의 생활을 하고 받은 믿음의 생활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힘을 써서 백분지 구십이 성화가 돼 가지고 기본구원을 얻은 이 심신이 되고 백분지 열이 반대해서 기본구원을 얻지 못한 요런 요소가 돼 가지고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고 할 때에 뜻대로 살려고 할 때에 뜻대로 사는 것을 좋아하고 환영하는 심신은 강하고 뜻대로 사는 것을 반대하는 고 심신은 조금밖에 없습니다. 백분지 열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일시적으로 '아, 그래 살라 하니까 괴롭다. 그러면 저런 손해가 가는데' 요런 마음이 잠깐 들어도 탁 꺽어집니다. 꺽어져 가지고 그걸 이기지 못하고 이제 성화된 세력 이겨서 그 시간에 믿음을 지킵니다. 고 시간에 믿음을 지키면 반대되는 백분지 열이 있었는데 백분지 열 그것 중에서 이제 성화된 것이 그 중에 또 백분의 십이 반대하고 있었는데 백분의 십의 일이 성화가 돼 버렸으면 반대하는 것 백분의 구 밖에 안 되겠습니다. 백분의 구 밖에 안 남았소.
이래 가지고 하나씩 둘씩 점령해서 우리 마음이 전부 우리 몸 전부가 하나님이 주신 이 기본구원을 이미 가진 자이니 이 기본구원을 받아 가진 자로, 기본구원을 받은 자로, 기본구원을 받아 있는 자기로, 기본구원의 자기로 이렇게 살 때에 마음의 반대가 하나도 없고, 몸의 반대가 하나도 없고 마음과 몸이 다 환영하고 찬성을 한다고 하면 이 사람은 성화를 다 이룬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심신이 영을 반대하는 심신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나도 없었소.
또 예수님의 영은 하나님에게 반대하는 그 영은 순간도 없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원죄와 본죄가 없으시고 완전히 하나님과 일위가 돼 가지고 완전히 승리하고 아버지 우편에 앉게 된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 영은 기본구원 일곱 가지 기본구원을 얻었습니다. 얻은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영은 얻었는데 우리의 육은 우리 목아치로 되어 있기는 있습니다. 일곱 가지 기본구원이 우리 목아치가 되어 있는데 이 심신이 제가 받아 가지고 제 것을 삼지를 못한다 그말이오. 누리지를 못해. 이 심신이 기본구원의 심신이 되지를 못한다 그말이오. 기본구원의 심신이 되지를 못하기 때문에 아무리 비유컨데 어떤 거지가 아주 백만 그 부자의 양자가 됐습니다. 백만 부자의 양자가 됐어. 양자가 됐으니까 양자가 확실히 됐습니다. 호적상으로 되고 확실히 양자가 됐는데, 이제 이 거지가 양자된 양자는 그 수많은 그 부자의 양자 아들이고 아들이니까 아버지의 것이 다 제 것이니까 이 양자된 아들로서 아들의 권세를 가지고 아들로서 이 부자의 아들의 아들이 됐으니까 아들로서 살고 아들의 이 권세와 아들의 이 부요와 아들의 복락을 누리야 될 터인데 이게 되기는 됐는데 인정도 않지, 누리지도 않지, 쓰지도 않지 가지지도 못했기 때문에 법적으로만 호적상으로만 양자가 됐지 하나도 그에게는 효력은 없다 그말이오.
제가 안 가지기 때문에 됐지만 가지지 않기 때문에 효력이 없어. '아이구 아이구 굶어 죽을라 야 네가 이 제일 부자의 아들인데 이게 다 네 것인데 굶어 죽어.' '아니라.' 하, 이 양자인데 아니랍니다. '이거 다 네거니까 배고프거든 이거 다 먹어라' 하는데 안 먹습니다. 왜? 제 것 아니라고. 그런 바보가 어디 있겠소.
오늘 우리의 심신이 그런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미 영은 심신이 육이요 영이 주격인데 주격이 기본구원 일곱 가지를 받았기 때문에 주격이 받았으니까 그에게 속한 심신의 것이 돼 있습니다. 되어 있는데 이 심신이 영이 가진 일곱 가지 기본구원을 이 심신이 인정치 아니하고, 그 부자 양자 아들 모양으로 인정치 아니하고, 받아 가지지 아니하고, 누리지 않고, 쓰지 아니하고, 그 자로 행동하지 아니 하는 이것으로서 그에게 와 있는 기본구원이 허사입니다. 이것을 하나씩 둘씩 순서적으로 받아 가지도록 하기 때문에 이것을 표현해서 건설이라 건설구원이라 그렇게 말했고, 하나씩 둘씩 이 심신이 받아 가지고 그것을 받아 가지니까 이것이 마귀의 자식이 하나님의 자녀로, 이 죽는 이 생명만 가지고 있는 자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이 생명을 가진 자로 이것이 죄인이 의인으로, 죄인이 무죄자로, 하나님과 결합된 자로 하나님의 목적 안에 있으니까 모든 존재가 내 구원을 위해서 있다는 이 지극히 큰 영화로운 자체로 인정을 하고 살지 못하고 그에게 종 노릇을 그대로 하고 있다 그말이오.
신령한 몸으로 변화받아 가지고 부활할 이 부활을 이미 계약으로 약속으로 받았으니까 받았으니 자기 것인데 이 자기 것이라는 것을 인정치 안해. 하늘나라 시민으로 하는 나라의 영생할 것을 인정치 안해. 이것을 인정하고 받아 가지고 누리고 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기간을 주시고 이루는 데에 모든 필요한 요소를 구비해 가지고 갖추어 가지고 주시는 것이 우리에게 주신 현실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기본구원 요것을 받아 가진 것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자, 또 한번 헤아려 봅시다. 순위를 바로 셉시다. 첫째, 같이 모두 소리해 내요? 첫째, 선택. 하나님의 목적 안에 난 것입니다. 목적 안에 났다 말은 내가 선택 안에서 창조됐소. 그러니까 우주와 영계는 나 위해서 지었습니다. 나 위해서 있습니다.
여러분들 위해서 있습니다.
둘째? 둘째? 그리스도의 대속,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또 셋째? 응 셋째 뭐요? 뭘라 하노? 셋째 중생. 요 셋째 중생 요 실지 구원이 돼 놓으니까 이미 아버지의 아들이 돼 가지고 있는 건데 아버지의 아들이기 때문에 이제 중생입니다. 사죄 칭의 새생명 받았으면 아버지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아들이 되는 것이요 자 하나님 아버지 아들, 셋째 하나님 아버지 아들 또 넷째? 넷째? 그러니까 중생이 됩니다. 우리가 중생되기 전에 벌써 하나님 아버지 아들이 됐소. 사죄 칭의 새생명 받아서 벌써 아들이 된 것입니다. 넷째 또 중생.
또 그 다음에는 이제 영원한 생명을 가졌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가졌습니다.
이제 이 다섯 가지는 우리가 계약으로 받은 게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영은 가지고 이 영으로 행사합니다. 영은 가지고 이 영으로 행사합니다. 우리 육은 영에게 있지만 이 육이 제 것이 되어 있지만 이 육이 '이 다섯 가지를 가진 자로 살아 봐라.' 이 현실에서 가진 것으로 살면 그 때에 산 자는 영생입니다.
그런데 고 현실에서 자기가 이 다섯 가지 기본구원을 받아 가진 그 심신으로 행동하고 두 가지 이 구원을 소망하는 심신으로 행동할 때에 고 행동은 그것은 이제 영생을 가진 행동입니다. 영생을 가진 심신입니다. 그런 구원을 받은 심신입니다.
그러나 고 현실에 아무리 영이 말해도 영의 말을 안 듣고 마귀 말을 듣고 이 인간들 말을 듣고 요 심신이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긍정을 하지 아니함으로서 기본구원을 고 시간에 활용하는 고 시간에 역사하는 고 심신의 요소는 거부했기 때문에 고거는 영원히 죽어 버렸습니다.
중생이 먼저냐,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먼저냐? 요걸 순위가 고것이 요렇게도 하고 조렇게도 하는데 고 순위를 우리가 바로 잡으려고 하면 하나님의 아버지의 아들 사죄 칭의 예수님의 대속을 입었을 때에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됐고 고 다음에 이제 우리가 아버지 아들된 이것이 영생 가져야 될 것이기 때문에 영이 진리와 성령으로 영생하는 생명으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중생되면 다섯째로의 영생을 가진 것입니다. 영생을우리는 가졌습니다. 영은 영생을 가졌습니다.
이런데 이 심신이 자연의 생명으로 살고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지 안하는데 고 현실에 사 ㄹ때에 이 자연에 육체의 생명 이 생명으로 현실을 고 생명으로만 사는 사람 있고 이 육체의 생명으로 사는 그 속에 영생하는 생명으로 심신이 사는 요 심신이 잇습니다.
그러기에 한 자리에서 육체의 생명은 같이 살고 있지만 고 생활한 고것이 하나는 영생하는 심신으로 살았기 때문에 고것은 예수님 오실 때에 들리 올라가고 하나는 버리움을 당한다. 같은 생활을 했지만 하나는 구원에 이르고 하나는 구원에 이르지 못했다 말입니다. 같이 육의 생명은 살고 있지만 육의 생명을 살고 있는 요 심신이 육의 생명으로 살지 아니하고 영으로 말미암아 살아난 영생하는 생명 사죄 칭의 새생명 받아 영생하는 요 생명으로 제가 살 수도 있고 육의 생명으로만 살 수도 있고, 영생하는 생명이니 육의 생명 속에서 영생하는 생명으로 사는 고 생명이 육의 생명 속에서 사는 요 생명도 요 생활도 있습니다.
그것이 같은 생활 속에서 하나는 버려둠을 당하고 하나는 데려감을 당한다는 구별이 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다섯 가지 기본구원은 이미 우리가 받아 가지고 있고 두 가지 구원은 약속으로 받았는데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하나 받고 천 년 왕국의 연습을 훈련을 거쳐서 무궁세계 가 가지고 천국 시민으로 영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두 가지는 받고 다섯 가지는 지금 받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또 한번 해 봅시다. 첫째? 한목 큰 소리로 한번 해. 첫째? 선택. 마 선택 하면 됩니다. 첫째 선택. 또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셋째?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 넷째? 중생. 다섯째? 영생. 앞으로 두 가지 있는데 재림 때 받을 것, 영화 부활, 영화 부활 신령한 몸으로 그 부활을 받았습니다. 이 부활 받은 몸은 음식을 먹으려면 얼마든지 먹습니다.
왜? 뭘 보고. 성경이 말하기를 예수님의 영화로우신 그 부활의 몸과같이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부활시켜 주시겠다고 예수님의 신령한 부활과 같은 부활을 우리가 받을 것이라고 성경에 말씀했소. 성경에 그렇게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래 배워서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은 고기도 자시고 떡도 자시고 이랬지만 부활한 몸은 근 이천 년이 돼 가지마는 그 뒤에는 하나도 자시지를 안했습니다. 방문을 꼭꼭 닫고 있어도 문 열지 아니하고 예수님은 그 안에 들어와 가지고 제자들에게 설교를 했습니다. 뽈끈 붙잡고 있는데 어디로 가셨는지 안 보입니다. 여기에 이 제자들 하고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동시에 저 제자들 하고 또 저기서 이야기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몸으로 우리가 부활합니다. 이런 몸으로 무궁세계에 끝이 없는 무한한 무궁세계 거기에는 하나님 계시고 그 나라에 정치법은 진리고, 그 나라의 성질은 사랑이고, 그 나라의 생활은 서로 봉사하는 서로 봉사하는 서로 희생하려 하는 그 나라의 실력은 자기로 말미암아 유익을 보는 존재들이 얼마나 되는지 모든 존재에게 유익이 요만큼 있는지 요만큼 있는지 이만큼 있는지 그것 크고 작은 그것이 실력의 대소라 이런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에 가서 우리가 영생합니다.
영은 이 일곱 가지를 한목 다 받았고 영은 다 받았는데 우리의 심신은 지금 이것을 받는 중에 있습니다. 영은 부활이 없어. 영은 부활이 없어. 중생 그것이 부활이요. 우리 육만 이제 이두 가지가 앞으로 남아 가지고 있지 또 무궁세계에 하나님하고 함께 사는 그 나라만 그때 받지 지금 하나님하고 무궁세계에서 같이 살고 있는 것이 우리의 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심신이 이 일곱 가지 기본구원을 받는 데에 다섯 가지는 이미 받아서 가지고 있고 두 가지는 앞으로 받을 것인데 이 다섯 가지를 한목 다 받은 것이 아니라 이 조금씩 조끔씩 지금 받아 가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집을 건설하는 것이 하나 둘 자꾸 건설하는 것처럼 이기본구원이 조금씩 조금씩 자꾸 이루어가기 때문에 이것을 묘사해서 집을 건축하는 거와 같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또 "행한 대로 갚으리라." 그 나그네로 지낼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고 부른즉 두려움으로 세상을 지내라" 행한 대로 갚으신다는 이것이 한 행위 한 행위에서 기본구원은 꼭 같은데 기본구원을 받아 가지고 있는 심신이 받은 요거는 차이가 있어. 영이 기본구원 받은 거는 꼭 같은데 요 심신이 기본구원 받는 요것은 차이가 있으니 요 차이가 무궁세계의 구원 얻은 자와 구원얻는 자의 차이인 것입니다.
요것은 행함으로 말미암아 되어져 자기가 현실에서 영이 가지고 있는 기본구원을 받아서 기본구원을 가진 심신으로 고 현실을 행동했으면 가진 자가 되고 이 기본 구원을 벗어 버리고 육덩어리로 세상으로 인간으로그 현실을 살았으면 고 현실 산 고 요소는 고 심신의 기능은 다 영원히 죽어버렸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닥친 이 현실을 자기의 심신이라는 것이 심신의 요소가 영원히 영생을 얻는 현실이요. 영원히 멸망하는 영멸을 얻는 현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현실은 영멸이 되든지 영생이 되든지 둘 중에 하나가 되는 현실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바울은 이 사실을 알았는고로 이 현실을 천하를 다 준다 해도 그것 얻고 이 현실에 영생얻을 영생을 이제 영멸로 바꾸지를 않했습니다.
이러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현실에 자기 될 그 자기의 심신의 요소가 자기 것이 되고 자기가 될 그것을 빼앗기면 뭐라고 말했습니까? 빼앗기면 무엇을 얻어도 소용 없다고 했습니까. 천하를 얻어도 너는 소용 없다 했소. 손해 갔다 했소.
우리가 우리 현실에서 이 구원을 자기가 자기 것 삼을 수 있는 심신의 것을 삼을 수 있는 이 심신이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하나님의 그 완전성 영원성 불변성과 같은 그 모형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산다 말이오. 이것을 살 수 있는 이 심신의 기능이 될 수 있는 것인데 이것을 왜 못 받느냐? 돈 때문에 돈 얻으려고, 지위 얻으려고, 권세 얻으려고, 명예 얻으려고, 제 욕심대로 소원 성취하려고, 인간 비유 맞출려고, 자기 비유 맞출려고, 땅에 이런 것 저런 것 그것 취하려고 하다가 요 현실에서 심신이 이렇게 지극히 귀하고 보배로운 영광스러운 이 일곱 가지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인데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요걸 요 시간에 얻지 못하고 천하를 네 것 삼았어도 너는 손해. 천하보다 요 현실에서 요 구원을 네 구원으로 삼는 것이 유익되다' 그것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는 이 일곱 가지 기본구원을 영은 얻었습니다. 영은 얻어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주격은 얻어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얻어 가지고 있습니다. 내 마음과 고기덩어리 이것이 말을 안 듣고 마음과 고기덩어리 이것이 말을 안 듣고 죽이려고 하지요.
이러니까 내 마음과 고기덩어리는 여러 수천 번, 수만 번에 죽습니다. 단번에 죽지 않아요. 그 노쇠가 그것입니다. 노쇠가 그것이요. 여러 천 번, 만 번에 마음과 고기덩어리는 죽고 영생으로 살아나는 것도 이 마음과 고기덩어리는 여러 수백 번, 수천 번, 수만 번에 살아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수만 번에 수만 가지 살린 이 마음과 몸의 기능을 가지고 이 영이 영화로운 세계에서 사는 사람도 있고 이 세상 것 두고 갈 것 빼앗기고 갈 것 소용 없는 것 이것 탐하다가 이 심신의 기능이 전부이 다 죽어 버리고 이 영원한 구원을 얻지 못했으니까 부활 영생하여 갔지만 하늘나라 갔지마는 심신의 기능은 하나도 없소. 마음과 고기덩어리만 부활했지 기능이 있어야지 이러니까 죽지는 않고 살아 있지만 그거 뭐 지각이 있소, 지혜가 있소, 감각이 있소, 비판이 있소, 평가가 있소, 경영이 있소, 활동이 있소 기능적으로는 죽는 거와 같은 그런 자로 영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지극히 큰 은혜를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기본구원을 받은 자로 아는 이 축복을 여기 있는 성도들과 천하에 흩어져 있는 성도들에게 주시고, 알 뿐만 아니라 이 기본구원에 사람이 되어지는 이 큰 영화로운 은혜를 이 자리에 있는 성도들과 천하에 흩어져 있는 성도들에게 이 시간에 주시고, 사람만 될 뿐만 아니라 이 기본구원의 생활을 행위를 하여 세상을 놀래게 하며 세상을 살아가게 하며 세상에 악령과 사망과 죄와 모든 어려움을 물리치고 정복하고 주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피공로로 인한 영감으로 이 은혜를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