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5 14:29
구역부흥의 비결-성경공부
1987. 3. 27. 지권찰회
본문:요한복음 10장 4절∼5절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자기 양을 다 불러낸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따라온다” 그러면 우리가 이 복음 운동 하는 데에는 하나는 복음의 씨를 뿌려서 전도해 가지고 예수님 믿기 시작하게 만드는 것이고, 하나는 믿기 시작한 그 사람이 차차 예수 믿어 이 건설구원을 잘 이루어 가도록 하는 것이 복음 운동입니다.
믿도록 시작하는 일도 안 하면 안 되고 또 믿도록 시작하는 일은 해 놓고 뒤에 신앙이 결실하도록 하지 안해도 헛일입니다. 그래서 “복음의 씨를 뿌리는 자도 있고 잘 관리해서 기르는 사람들도 있다” 이랬습니다. 그러면 여러 권찰님들은 씨 뿌리는 사람이요 또 물 주고 가꾸어 자라게 하는 일꾼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여게는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 우리가 열심히 이렇게 전도를 해도, 하나님께서 너를 통해서 구원 얻도록 그렇게 작정되지 안한 사람은 암만 해 봐도 그 사람은 자기를 통해서는 전도를 받지 않습니다.
또 자기에게 속한 그 사람은 자기가 씨를 뿌려야 나지 씨를 뿌리지 안하면 나지 않습니다. 씨는 곧 자기가 받아 가지고 있는 이 복음인데 복음을 전해야 그 사람이 예수 믿기 시작하지 복음을 전하지 안하면 중생도 안 되고 또 부르심을 입어서 믿는 일을 시작하지도 안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예수 믿기로 작정해 놓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 사람을 하나도 없이 다 불러 냈으면 자기로서는 씨를 심으는 데에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전도하지 아니함으로 자기에게 속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지 못했으면 자기는 씨를 뿌리지 안한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큰 책임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여게 저게 다니면서 심방하고 전도하는 것은 내가 심방하고 전도함으로써 어떤 사람이든지 다 믿도록 만들라는 그런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게 분담시켜 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 사람을 빠짐없이 전도하기 위해서 다니는 것입니다.
우리는 간단하게 수고하고 이만했으면 내게 속한 사람들은 다 되지 않겠는가? 한 번 두 번으로 이렇게 말하지마는 자기가 심어서 예수 믿기 시작하는 데에는 하나님께서 뭐 몇천 번 기도하고 또 몇천 번 가서 권면하고 전도해 가지고 될란지 어떻게 돼 가지고 있는지 우리는 그걸 모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자기에게 소속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쉬지 않는 힘을 써야 됩니다.
이래서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하기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너는 힘써라.
하나님의 심판을 두고 내가 말하노니 항상 너는 하나님 앞에 심판 받을 것 생각하고 네게 속한 자를 만일 네가 힘쓰지 안해 가지고 그 사람이 생명을 받지 못했다고 하면은 그 사람의 책임은 네가 되는 것이고, 또 네가 일찍 썼으면은 삼십 년 믿을 사람이 게으르게 했으면 나중에 일 년 믿다 죽는 사람도 있고 또 그저 며칠 믿다 죽는 사람도 있으니까 건설구원이 이루어지지 못한 양도 네게 책임이 있고 늦게 믿는 것도 네게 책임이 있기 때문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부지런히 쉬지 말고 힘써 전해라.” 그랬습니다. “비가 오는 것과 바람 부는 것을 관계치 않고 열심히 뿌리면 뒤에 기쁨으로 단을 가져오리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전도하는 것은 내게 속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전도하는 것입니다. 아마 어떤 사람은 자기에게 속한 사람을 막 죽여버리고 그저 어째 오다 가다 다른 사람을 통해서 어떻게 해 가지고 그 사람이 겨우 예수 믿게 됐지 자기는 전도 안 하는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기 대개 전도 많이 한 사람들 보면은 그 사람이 무슨 뭐 구변이 있어서 교리를 잘 설명해 가지고 다른 사람을 설득시켜서 그래 전도하지 않습니다. 그만 그저 ‘예수 믿고 구원 얻읍시다’ 말도 그 소리도 잘 못하는 그런 사람을 통해서도 복음이 전해집니다. 그런고로 열심히 전해야 됩니다.
보면 어떤 사람은 그저 쉬지 않고 열심히 전하는 그 사람으로서 교인들이 많이 나와서 예수 믿기 작정하고 그러나 그 사람은 또 잘 가꾸어 기르는 데는 실력이 없어 가지고 기르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 많습니다. 그러면 심으지 못하는 그런 일꾼이 있고 또 심으기는 잘 심어 놓지마는 뒤에 챙겨서 기르지 못하는 그런 일꾼들이 있으니까 그 둘다 반 일꾼이지 그거는 일꾼이라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열심히 전해야 됩니다.
우리 이 총공회 산하에 속한 사람들은 주일학교는 복음 전하는 그 실력을 가졌으나 장년반 전하는 것은 영 아주 서투릅습니다. 이래서 아이들은 누구든지 보면 그만 ‘너 야 교회 나가자’ 이렇게 저렇게 말해 가지고 교회로 잘 인도하지마는 그만 어른들한테는 아예 전도하는 것을 서먹서먹하게 여기고 겁이 나 그런지 전도를 못합니다.
또 어떤 데는 어린아이는 보고서 ‘야 예수 믿자’ 하는 그 소리가 입이 잘 안 떨어져서 못 해도 어른들한테는 만나면 어른들은 누구든지 만나면 하나도 빠지지 안하고 ‘예수 믿고 구원 얻읍시다’ 하는 그 전도를 열심히 합니다.
그래서 우리 진영 교회는 어른들에게 전도하는 이것이 서투릅기 때문에 이것을 어데 가 좀 견학을 해야 되지 않겠나? 견학을 해야 될까 이래서 견학을 안 하면 달리 오늘은, 그전에 성탄이 닥치든지 또 부활주일이 닥치든지 그럴 때에는 우리는 팔십만 장까지 전했습니다. 백만 장 박아 가지고 이십만 장 남고 팔십만 장 우리가 전했습니다. 그러면 그런 일을 좀 계속하면은 이 일은 숙달이 되겠다 이래서 그걸 좀 한번 할라 하는데 어짠지 좀 시간 없어 자꾸 못합니다.
이래서, 자주 총출동해 가지고 이제 안 되면 구역별로도 오늘은 저 기도하러 가는 것 모양으로 아무 날은 우리 구역은 다 모이자. 그래 가지고 전도지 가지고 그만 각단지게 그날은 하루 종일, 하루 종일 전하고 나면은 그만 어북 익숙해집니다. 그 다음에는 누구든지 보면은 전도지 주며 ‘예수 믿읍시다’ 그만 이렇게 돼지고 하니까 이걸 좀 연습을 해야 되지 우리 장년반들 전도하는 씨 뿌려, 장년반들에게 씨를 뿌리는 이 일이 아주 좀 서투릅게 돼 있다 그 생각을 가집니다.
그것을 해야 되고, 또 가꾸는 데에는 4절에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 음성을 아는고로 따라오되” “앞서 가면” 양을 기르는 데에는 기르는 방식은 “앞서 가면” 요렇게 해 놨습니다. 양을 기르는 방법은 ‘앞서 가면’ 이러니까 꼭 양은 자기 행한 대로 따라갑니다.
처음에 나온 사람은 ‘보자, 예배 보는 데도 우리 구역장은 어찌 보는가? 또 기도할 때는 어째 하는가? 생활은 어째 하는가?’ 그걸 봐서, 말로 가르치는 것도 배우고 행동으로 가르치는 것도 배우고 또 ‘우리 구역장은 그 사람의 성품은 어떠며 사람은 어떠냐?’ 그래 또 사람도 이렇게 배웁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가 범사에 양무리를 가르치는 것은 필연한 일이요 자기 닮는 것은 필연한 일이요 자기를 배우는 것은 필연한 일인데, 자기가 먼저 온전한 신앙 생활을 할 때에 그들은 따라오는 것이지, 그것으로써 양을 기를 수 있는 것이지 자기 행동은 아무나따나 하면서 그 다른 사람을 예수 잘 믿으라 하는 그런 것 가지고 안 됩니다.
여게 “음성을 아는고로” 했으니까 잘못하면 말로만 자꾸 이래 전도하고 심방하고 권면하고 하는 것이 이게 되는 줄로 이래 알지만 여게 “자기 음성을 아는고로” 음성을 안다는 그 말은 목자의 음성을 아는 것, 목자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안다 그 말은 뭐이냐? 자기를 인도한 지권찰이든지 원권찰이든지 자기에게 이 생명의 도를 전해 준 그 사람의 음성을 안다 하는, 그 음성을 안다 하는 말은 무슨 말인가? 자기 양이라 말은 자기에게 속한 양인데 요거 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말합니다. 택한 백성들은 음성 안다. 목자의 음성 안다, 하는 예수님의 음성 안다.
예수님의 음성 안다 그 말은 예수님의 이 생명의 도에 속한 것을 그들이 알게 됩니다. 알게 돼서 암만 성경을 몰라도 자기 신앙 지도자가 하는 것을 볼 때에 ‘저것은 옳다’ 해서 감동받고 따라가게 되고 `저것은 아무래도 좀 의문인데?’ 하고서 잘 따라오지 않습니다.
그거는 누가 그라는고 하니 중생시킨 그 성령이 그 사람 속에 있어 가지고 그 사람이 예수님의 꼭 모형같이 해 가지고 예수님을 그들에게 말로 전해 주고 행동으로 전해 주고 사람으로 보여 주고 그라면 그 음성을 아는고로, 예수님의 구원 역사는 아는고로 따라가지마는 그게 아니면 안 따라갑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꼭 올바로 예수 믿는 사람이 되면 그거 그만 자기가 전도해 놓은 사람은 따라서 예수 믿는 사람 되지마는 자기가 말로는 아무리 말해도 예수 믿는 사람의 행동 하지 안하면은 그 전도해 놓은 사람이 안 따라갑니다. 이러니까 자꾸 전도를 해도 양은 인도자 자기와 하나가 되지 안하고 인도자 자기는 지금 이리 가자 하면 양은 꺼꾸로 저 반대로 갑니다.
그거는 뭐이냐? 자기 하는 모든 언행심사, 자기 말이나 행동이나 자기라는 사람이 그 양이 이해되고 납득돼서 감동돼서 ‘과연 옳다’ 그렇게 감화를 받을 수 있는 그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면 감화받는 거는 제 중심으로 감화받는 게 아니고 중생시킨 성령이 그 속에 계시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로 감화를 받게도 되고 성령의 역사로 감화를 못 받게 됩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감화를 받을 수 있는 그런 옳은 일에 감화를 받도록 역사해 주시지 감화받을 수 없는 그런 행동은 암만 말해 봤자 감화를 안 받는다 말이오.
그러니까 눈 앞에서는 ‘이래라’ 하면 ‘예예’ 해도 속으로는 반대요. 그러니까 껍데기 말만 그라지 속으로는 그 말을 할수록이 정반대로 더 반항적으로 역항적으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믿는 사람 속에는 있습니다.
그리고 “앞서 간다” 그라면 자기 따라온다. 그 따라오는 데에는 여기 뭐라고, 식사를 짓는다, 밥을 짓는다 하면은 밥 앉혀 가지고 불때서 밥 만드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 아니요? 중요한 일이고 그 다음에는 또 모든 찬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일 아니겠습니까? 이런데 밥 만드는 그거야 뭐 쌀 넣고 물 넣고 불 때면 밥된다 하는 그거는 다 압니다. 그거는 다 알아요. 그거는 다 아는데 그것만 가지고 요리가 안 되는 겁니다. 하는 데도 밥도 잘했다 못했다, 그 안에 있는 모든 잔주가 있고, 또 그래 놓고 난 다음에 이런 음식 저런 음식 다 그런, 사소한 것 같으나 그 음식 거게서 일이 된다 그거요.
어떤 음식집에서 ‘그거 이래 하더라’ `그러면 네가 봤으면 그대로 할래?' 합니다. 하면 그거 뭣 하느냐? 맛이 있고 없는 것이 표가 난다 말이오. 그러면 ‘맛이야, 꼭 요대로 하던데? 요대로 하던데?’ 그대로 하는데 맛이 있고 없습니다. 그거는 네가 눈으로 봐도 볼 수 없는 그 속에 기술이 있기 때문에, 우리 여기 화원에 ○○○집사님이 그 화원을 맡아 하는데 ‘그뭐 요라면 되지’ 꼭 보고 물 줄 때 물 주고 비료 줄 때 비료 주고 하는 것 같지마는 안 됩니다. 그 속에 눈으로 볼 수 없는 속에 세미한 그런 기술이 있기 때문에 그게 아니면 안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앞집 사람 저 사람 돈 잘 버니까, 잘 버니까 나도 그 사람 꼭 하는 대로만 하면 잘 벌지.’ 싶어서 일어나기도 같이 일어나고 자기도 같이 자고 손님 오면 말도 똑 같이 말하고 친절도 가지고 이래도 하나는 빌어먹고 하나는 돈 법니다. 그 볼 수 없는 게 속에 있다 그 말이오. 사소한 거게서 문제라.
나무도 굵닥한 나무 뿌리, 이런 나무 뿌리 그거는 그까짓 거 소용도 없는 거라.
속에 자잔한 가는 뿌리 거기서 양분을 취해 가지고 다 나무가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지극히 작은 것이 중요하다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는데, 그러면 그 밥 하는 그런 걸로 말하면 뭐 ‘주일 잘 지켜라. 성경 봐라.
기도해라.’ 이런 것은 양떼들에게 하라 하고 또 자기도 그래 하고 하면은 이거는 원뿌리 굵은 뿌리밖에 안 되는 거라. 그것보다도 자기가 자기 생활에서 부인이라면은 가정 생활에 대한 이런 면 저런 면 아주 사소한 그런 면을 참 잘해서 모본이 되고 또 이런 뭐 여수 거래 또 인인 관계 그런 사소한 거 그런 것을 잘 해야, 나무 잔뿌리가 있는 것처럼, 그러니까 그저 교인들을 가르쳐도 ‘교회 나오너라. 성경 봐라. 기도해라.’ 그 굵닥한 거 굵은 뿌리 같은 거 이런 것만 가르치고 이런 것만 본을 보이고 사소한, 자기의 평소의 모든 사소한 생활 그런 면으로 본보이는 게 없으면은 그 교인은 굵닥굵닥해 가지고 아무짝도 쓰지 못할 맛없는 교인이 됩니다. 이 모든 전생활에 세미한 그런데에서 잘 본을 보여 가지고 양떼들이 본받아 가지고 자라야 자라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양무리의 본이 돼야 되는데 본이 되는 데에는 그저 주일 지키고 뭐 성경 보고 기도하고 양산동 기도산에 가고 그런 것만 본보여 가지고 안 됩니다. 그거는 밥 하는 거 한가지기 때문에 밥 그거야 대략 뭐 이래 다 하면 되는 것이지마는 그거 그래 가지고 기도하러 가도, 기도하러 가도 기도하러 가면 그만 ‘기도하러 왔으니 됐다’ 이라지마는 기도하러 가 가지고 사람만 데리고 가면 다 되는 게 아니오.
기도하러 가 가지고 자기가 ‘보자, 우리 구역장 기도 어짜는고 보자.’ 요것도 보지 또 구역장 어떻게 기도하는가 보지 이래 가지고 가면은, 갔다 오면은 혼이, 참 그만 몸치가 날 만치 그 양떼들이 하나 하나 세밀한 걸 그런 것을, 사소한 것을 다 관리해 가지고 ‘요 사람은 아무것이가 그 말 한 마디 가지고 요게 시험이 들었다.’ 그걸 조사해 가지고 그런 시험에 들지 안하도록, 요거는 좀 있으면 마귀가 아마 시험을 주겠다 그런 것도, 또 거기 가 가지고 사람들에게 대인 관계하는 게 진실되게 하는 것이나, 정직하게 하는 것이나, 또 의롭게 하는 것이나, 봉사적으로 하는 것이나, 화평으로 하는 것이나, 모든 인내로 하는 것이나, 사랑으로 하는 것이나 모든 사소한 그 전신앙 생활에 본이 돼야 되지 그게 본이 되지 안하고 그저 굵닥한 거 몇 가지만 본되면 아무 소용 없어.
여러분들, 고기 잡을 때에, 고기 잡을 때 그물에 벼릿줄은 뭐, 벼릿줄은 그물에 벼릿줄은 아마 바다에 벼릿줄은 아마 이만할 겁니다. 이보다 굵어요, 바다에 벼릿줄은. 이런 거 벼릿줄 원 줄기 벼릿줄이 있고 거게는 자잔한 실로 가지고 요렇게 뭐 고를 딱 딱 맺어 가지고 이래 가지고 있는 것에, 그라면 고기 잡으면 이 벼릿줄로 가지고 잡소, 이 자잔한 그물 고 그거 가지고 잡소? 뭘로 잡습니까? 알아 봐. 산골 처녀라 잘 모르지? 뭘로 잡아? 그물 고로 잡아.
이런데 그 벼릿줄만 가지고 이 기단한 거 가지고 막 고기 잡는다고 암만 떠야 한 마리도 안 잡혀. 또 그물 고만 가지고 잡을라 하면 고 다 떠내려 가 버리고 뭐 나중에는 건질 수가 있어야지? 헛일이라. 이러니까 원 줄기되는 그일도 하기는 해야 되지마는 자잔한 세밀한 그런 일에 본이 돼야 됩니다.
이래 가지고 ‘이 일은 이거 어째야 되노?’ `너거 구역장을 봐라. 너거 구역장이 어짜는고 봐라.’ ‘우리 구역장 이렇다. 그렇지만 구역장같이 할 수가 있어야지?’ ‘구역장같이 할 수 있어야지' 하면은 됐습니다. 그러나 `뭐 구역장도 이래밖에 안 하던데.’ 이래서 사소한 일에 본이 되지 안하고 굵닥한 일만 본되는 그런 것은 다 그것은 외식이요 껍데기기 때문에 아무 실효는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나무 뿌리도 잔뿌리에 거게서 일이 있는, 성공이 있는 것이고, 또 그물도 자잔한 고 거기 성공이 있는 것이고, 우리 사람들도 “지극히 작은 이 일에 네가 충성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본을 보이도록 하고, ‘내가 아무래도 내 식구에 본을 보여야 되겠는데. 내 일을 이 식구가 볼 터인데 이걸 보면 어짜노?’ 그걸 두려워서 나쁜 게 보일까 겁을 내고 또 ‘이 보고 있을 터이니까 이거 나 혼자 같으면 그만 아무 일 없는데 이것들이 많이 보고 있으니 이거 참 이거 문제다 이거 잘해야 되겠다.’ 이렇게 그 양무리의 본이 된다는 이 면에 대해서 그 책임성과 중요성을 가지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갈수록 자꾸 목회가 돼 갑니다.
이라고 설교도 보면 목회자도 보면 이거 벼릿줄만 가지고 날뛰는 그 설교, 그거는 큰 소리만 해서 어데든지 일주일 동안 가 가지고 부흥회 하라 하면 잘 합니다. 막 큰 소리 뻥뻥 하지만 목회는 소용 없어. 그 사람에게 삼 년만 설교 들으면 아무도 안 들을라 해요, 그 다음에는. 이러니까그것을 생각해서 그래 하고.
아무래도 제가 가만히 보니까 구역들이, 구역들이 어떻게 하면 부흥이 되나? 구역이 부흥이 돼야 교회가 부흥이 되고 하는데 이 주일학교 반사들은 어떻게 해 부흥이 되노? 제가 보고 깨달은 대로는 어짜든지 성경 공부 하는 겁니다. 저 산에 기도하는 그것보다도 성경 공부 해요. 어짜든지 그만 성경 공부를 열심히 해 가지고 우리 반사들이 전부 성경 공부를 착수해 가지고 성경 공부를 한다 하면 주일학교가 뻐뜩 올라갈 것이오.
또 그 구역에서 지권찰들까지 전부 성경 공부를 다 시켜 가지고 그 다음에 지권찰의 그 식구들에, 식구들 전체를 성경 공부 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성경 공부를 시키고 자꾸 독촉을 해서 재독을 들리고, 재독 들리는 그거, 요새 돈 쌨어요, 돈 없다 해도. 저거 돈 쓰는 것 보면 막 돈이 막 지걱지걱해서 너무 돈 많이 써서 저주받겠다 싶을 만치 돈 써 재낍니다. 돈 없는 거 아니야. 저주받겠다 싶을 만치 돈을 써요. 벌대로 마구 그래 써. 돈 없는 사람 없어.
이런데 요새 그 녹음기 하나 살라 하면 얼마 갑니까? 저 남반에서 ○○○? 삼만오천 원? 삼만오천 원이면 녹음기 하나 사요. 삼만오천 원 주고 녹음기 하나 사 가지고 그래 사 가지고 테이프를 하나 가지고 또 거석하면 또 새로 그거 하나 테이프 그거 가지고 다 들어서 익숙해 놓고 난 다음에 또 가서 그거 가지고 지워 가지고 또 복사해 달라면 복사해 주니까 또 가지고, 하나만 하면은 한 열댓 번 하나? 테이프 하나 가지고 한 열댓 번 복사할 수 있어? 지워 가지고 복사하는데 몇 번 복사할 수 있어 ○○○? 열 번 할 수 있어? 열 번 할 수 있대요.
그라고 또 실컷 익히고 난 다음에 또 그 한 장 가지고 ‘요거 지우고 좀 딴거 복사 해 주십시오’ 이래 가지고 그래 인제 부엌에 일하면서도, 부엌에 일하면서도 딱 뭐라 할라면 레시바 여기 딱 끼워 가지고 끄내끼 기단하게 이라든지 이래 가지고 일하면서 자꾸 끼고 돌아다니며 자꾸 이래 가지고 자꾸 들으라 말이오. 들으면 자기도 변화되고 사람이 변화돼 버려. 사람이 변화되면 자기에게 책임지워 준 양떼를 다 구원할 수가 있어.
내가 어떤 사람 보니까 요 보겟트에 뭘 끼워 가지고 끼고 있어. ‘뭐 듣는다고 끼고 이러노?’ 얘기하면서 장 거기 끼워 가지고 있어. 그래 무슨 얘기를 할라 하니까 뭘 요래 가슴에 요래 가지고 딴데 스위치를 아마 껐는 모양이라. ‘그 뭐꼬?’ 이라니까 `재독 듣습니다.' 이래. `재독을 어찌 듣는데?' 이라니 여기 저 녹음기가 요 조그만한 보켓트에 들어간대요. 여기 딱 넣어 가지고, 그래 인제 좀 큰 거는 여기 넣고. 그래 가지고 요래 가지고 여기 귀에다 딱 끼워 가지고 듣고 있다고. 이렇게 애를 써야 되지 그렇게 애 안 써 가지고 되는 일이 없습니다.
수고하지 안하고 준비가 어찌 되며 수고의 준비가 없이 뒤에 영광스러운 일이 어찌 됩니까? 이 사소한 여기 동회 동장도 말이요, 동장도 될라 하면은 그만치 애쓰는 공부가 있어 가지고 그런 결과를 맺게 되고 벌써 구청장 될라 하면 그래도 아마 행정고시나 합격이 돼야, 행정고시 할라 하면은 한 암만 재주 있는 사람이라도 몇 달 동안 바짝 조아서 지금 해야 되지 그리 안 하면 안 돼. 뭐이든지 수고의 노력의 그 준비가 있어야 되지 준비 없이 뭐 되는 일이 있습니까? 이러니까 어짜든지 요 말을 듣고 구역장이 우리 구역을 부흥시키겠다 싶으거들랑 그 구역 식구의 교인 하나도 없이 자꾸 성경 공부 하게 해 줘. 성경 공부 하면 사람의 마음이 성령으로 감동시켜 변화되고 변화되면은 망할 일은 안 하고 자꾸 복된 일만 자꾸 하게 됩니다.
다 같이 기도합시다.
이렇게 저들을 생명 역사에 이바지하는 이 직책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주님은 세상에 오신 것이 마귀의 일과 죄와 사망을 멸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죄를 지으면서 주님 앞에 은혜를 구하는 자는 그 망령된 자로 하나님 앞에 조만간에 소멸의 불로 도말을 당할 것을 믿습니다.
우리 서부교회를 깨끗게 하사 조그만치라도 더러운 게 없도록 하여 주시고 깨끗게 하여 주사 더러운 음신의 역사를 완전히 박멸시켜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죽도록 주 앞에 모든 소망을 두고서 충성함으로 날마다 주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저희들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경 공부 하는 데에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