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도와 신약성도

 

1989. 7. 4. 새벽(화)

 

 본문: 사도행전 3장 1절-5절. 제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선전 문에 두는 자라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 나온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칭하는 행각에 모이거늘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저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안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부인하였으니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을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이 제자들이 성전에 기도하러 갈 때에 그때에 신약 교회는 완전히 조직되어서  있는 그런 때는 아닙니다. 그저 오순절에 성령 강림의 은혜를 인해서 비로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이 일어났고 또 세례받는 그런 일들도 있어서 신약  교회의 초창기라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신약 교회의 초창기로서 이 역사를 인해서 교회는 점점 형성됐고, 신약  교회가 형성됐고 또 형성됨에 따라서 구약 교회와 서로 다른 점이 있어서 마찰이  있었고 그러나 그 마찰 있는 가운데에서 구약 교회는 차차 쇠퇴해지고 신약  교회가 점점 흥왕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여기에 나타내고 있는 한 부분으로  이렇게 우리가 보아야겠습니다.

 그때의 그 교회의 형편이나 사정이나 오늘 교회의 형편이나 사정이나 다 같은  그런 면이 있고, 또 같은 그런 서로 분쟁도 있고, 또 같은 위험도 있고, 또 같은  그런 행위들이 있어서 교회가 점점 흥왕해서 신약 교회가 차차 견고해 서진 것을  우리가 여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때 이 제자들이 기도 시간을 정해 놓고 아홉시 기도 시간에 이 성전으로  기도하러 들어간 그런 일을 여게 기록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데 속했는가?  우리는 구약 교회에 속한 것이 아니고 구약 교회에서 새로 움돋아 나온 신약  교회에 속했고 신약 교회의 지금 성장 과정에 있는 우리들입니다.

 이 신약 교회가 시발된 것은 예수님이 승천 하실 때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허락하심을 기다리면 성령으로  세례받는 그런 은혜가 있으리라는 에약을 하심을 따라서 재자들은 예루살렘에서  성경의 권능 받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때에 이 신약 교회가 새싹과 같이 그렇게 돋아나오는 그때의 그 환경의  배경이라는 그 배경은 어떤 형편이었던가? 대단히 어려운 형편이었습니다. 구약  교회가 신약 교회로 새싹이 돋아나오는 그때에는 외부적으로는 전체가 죽음이요  유대교는 예수님을 그들이 다 인정하고 알았지마는 예수님을 반대해서 십자가에  못박은 바로 그때입니다.

 그러니까 그 시발이 아주 어려운 그런 고통으로서 참 구약 교회에 속해 가지고  구약 교회적인 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신약 교회로 움돋아 나오는 이 교회에  소속할라고 할 때에 그 시발이 곧 그들과 대립이 돼서 죽임을 당하는 것이  시발의 움싹이요, 예수님깨서 그들과 이렇게 이 신앙하는 것이 하나되지 안하고  신앙하는 것이 달라서 구약에 제사장 선지 바리새 교인들 서기관들 이들이 다  하나님을 향하여 소망하나 그 소망하는 것과 예수님이 소망하는 것이 달랐고 또  그 방편이 달랐습니다. 이럼으로 인해서 저희들과 예수님의 이 신약 교회의  움싹이 다르기 때문에 큰 마찰이 생겼습니다.

 마찰이 생겨서 어려움이 있으니까 사람 생각으로서는 자연히 생의 애착도 있고  또 사람이라 하는 것은 고통이라 하는 그런 괴로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 없고  그것을 다 할 수 있는 대로 자기를 안보할라고 하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에 이  도로 인해서 이런 대립되고 그 마찰이 되는 그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있었는데 이 신약 교회로 움터 나오는 움싹인 예수님이 제일 신약 교회의  움싹인데 움싹으로. 튀어 나오는 예수님의 모든 당하신 그 일이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면 그 죽음으로 신약 교회의 움싹이 발아돼 나온 이 움싹이,  그때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 나서 그때는 모든 구약 교회 유대교의  지대인데 유대교인들 유대인들 전부와, 또 그 당시 정권을 가진 모든 그 세력들과,  또 그때에 모든 사람들을 통치하고 있는 그 모든 전부는 다 구약 교회 곧 육체의  이스라엘 유대교와 이렇게 단합이 돼 가지고 있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이랬는데 그와 마찰이 되고 대립이 돼서, 대립되고 마찰된 것은 하나님을 향한  소망으로 인해서 대립과 마찰이 됐고 또 자신들의 신앙생활 하는 그 교리와  신조와 그 모든 행정의 면들이 다르기 때문에 그로 인해서 그때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못박혀 죽으셨고 다시 부활하셔 가지고 사십 일 동안  예수님이 부활하신 몸으로 제자들에게 가끔 가끔 나타나셔 가지고 교훈도 하시고  또 이렇게 은혜도 베풀어 주시고 이렇게 하시면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허락하심을 기다리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는 것은 그때 예루살렘은 얼마든지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곳이지마는 예수님을 자기 구주로 믿는다고 하면은 요 예수님 하나 때문에  그때에 죽임을 당하지 안하면 안 되고 세상과 대립이 되지 안하면 안 되는 그런  어려움을 당하는 곧 '네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아라' 하는 말은 네가 죽음을  피하지 말아라 하는 그 말씀 입니다. 그때 형편이 그랬습니다. '죽음을 피하지  말아라'  그랬을 때에 예수님을 생시에 따라다니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마는  그때에 다 예수님을 부인했든지 부인하지 안했으면 다른 사람이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라고 인정을 했으면, 부인을 했든지 그렇지 않으면 예루살렘을 피해서  어디로 도망을 쳤든지 했지 거게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도 그때에  분위가 어떻게 됐든지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까지 한 그런 어려운  분위기였습니다.

 이랬는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 난 다음이니까 이제 그들이 다  승리했다 하는 그런 외모를 가지고 있는 그런 때니까 아주 예수님을 그때  예수교가 시작됐는데, 신약 교회가 시작됐는데 신약 교회는 전 사망 속에 들어  있는 교회라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 배반하든지 그리 아니면 어디로 도망을 치든지 그렇게 해야 될  그런 광경이기 때문에 주님이 부탁하시기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허락하심을 기다리라 그러면 정령이 너희들에게 오면 권능을 얻어 가지고 이  권능으로 이제 성령 세례를 받아서 이 성령으로 세례받아 성령 세례를 받아  가지고 그 권능을 얻어서 이 신약 교회 곧 신약 교회 생명이요 중심이요 또  전부가 되어지는 이 예수님의 도를 땅끝까지 전하게 되리라 그렇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말씀을 듣고 도망하는 사람은 도망을 했고 부인하는 사람은  부인했고 남아서 예루살렘 그 다락방에서 모여 가지고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성령의 권능 받기를 기다리고 기도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를 못했습니다.

 그저 예수님의 제자들과 거게 따라다니던 문도들로 해서 한 백여 명 되는 그런  사람들이 그 죽음 속에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그 약속의 소망을 가지고 거게서  어려움 속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열흘이 되는 그때에 그 오순절인데 오순절 성령  강림하셨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 성령 강림으로부터 비로소 신약 교회가 활발하게  이렇게 전파돼 나가고 이렇게 성장돼 나가는 그런 은혜를 받았습니다.

 구약 교회는 그러면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그런 교회가 아닌가? 내나 구약  교회도 그 교회 안에 생명이 곧 주님이 생명이었고, 또 지혜와 능력도 주님이었고,  또 그들이 모든 그 무서운 사망을 피하는 것도 다 예수님의 의를 그들이  바라보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피해 왔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약 교회의 알맹이와 신약 교회의 알맹이는 하나입니다. 같습니다.

구약 교회의 생명이 신약 교회의 생명이요, 구약 교회의 그 능력이 신약 교회의  능력과 하나요, 또 구약 교회의 그 피난이 되는 의가 신약 교회의 의와  하나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바라보기도 다 그래 바라봤자마는 모순되게 겉과 속의 안은  일치가 되지 안하고 모순돼 가지고 서로 죽이는 박해인 그런 어려운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라고 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나 다 못박는 것이  아니고 거게서 또 예수님을 지금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그런 성도들도  있었습니다.

 여게서 우리가 이 교회의 알맹이와 껍데기를 우리가 좀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때 교회도 알맹이와 껍데기가 있고 오늘도 그와 같습니다. 그때도  시므온이니 안나니 하는 이런 사람들은, 또 목자들 이니 또 사가랴니,  앨리사벳이니, 또 마리아니 하는 이런 분들은 구약 교회에 속한 사람들인데 신약  교회와 하나가 되어 있는 그런 관계를 가졌고 거게서 움돋아 나와서 신약 교회가  이렇게 뚜렷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라다가 며칠이 안 돼서 이 베드로와 요한이 자기네들이 하나님 앞에서 작정한  그런 모든 자기 생활 작정에서 성전에 기도하러 아홉시에 올라갔던 것입니다.

올라가다 보니까 성전 미문이라는 그 성전 문에 들어가니까 거게 솔로몬의  행각이라는 그 행각이 있는데, 솔로몬의 행각이라는 그 별관이 있었습니다. 성전이  아니고 성전 울타리 안에 별관이 있었는데 그 별관을 통과할라고 보니까 거게는  많은 환자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많은 환자들이 거게서 모여서 있는데 그 환자들이 구약에서 나오던 하나님의  역사를 내나 소망하고 거게 모두 물이 동할 때는 낫는 그런 소망을 히고  기다리고 있었었는데 그라다가 차차 차차 거게 모인 사람들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병낫는 그런 소망도 있지마는 그런 소망보다도 출입하는 성도들에게  구걸할라 하는 그런 구걸 소망을 가지고 거게 모여서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면 모든 사람들은 그래도 성전 울타리 안이니까, 안이니까 그거 다  성전으로 이렇게 보고 있지마는 밖에 있는 사람들은 성전으로 보고 있고, 성전  안에 있는 사람들로 이렇게 보고 인정하고 있었지마는 실은 그들은 성전에는  들어가지 못하는 환자들입니다. 부정한 자들은 성전 안에는 들어가지를 못합니다.

 이러니까 그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자기네들이 나음을 받으려는 하나님에게  대한 소망은 가지고 있기는 있었지마는 세월이 지나가는 가운데에 이 소망은  희박하고 그저 인간에게 무슨 소득을 얻으려는 구걸하는 그런 일로 차차  기울어져 가지고 있는 때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이가 그 성전에 들어가니까 그들이 이제 한 손님이  들어오니까 또 자기네들에게 소득이 있겠다 해서 제자들을 보면서 이렇게 뭘  줄까 해서 바라고 있는 그런 형편이었다 이랬습니다. 무엇을 얻을까 하여서.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구걸하거늘'  그러니까 이 베드로와 요한에게 무엇을 그 좀 얻을까, 좀 무슨 좀 물질을 얻을까  이래서 이렇게 구걸을 했습니다.

 했는데 그때에 성전에 출입하는 사람들이 사도들만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출입을 하고 있었겠는데 그 많은 사람들이 출입하고 있으면서 이 앉은뱅이에게  그저 도와 주는 것은 뭐 무슨 돈푼이나 그런 무슨 물질이나 그런 것을 어쨌든지  물질 그런 것을 도와 줬지 그 사람에게 그렇게 구걸하게 되는 비참한 원인인  그것은 그들이 생각지도 안했고 또 할 능력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랬는데 이 베드로와 요한은,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까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 보거늘' 뭘 얻을까  해서 지금 바라봅니다. 이것이 이제까지의 생활입니다.

 출입하는 모든 사람들이 많이 출입했지마는 이 사람들에게는 그저 주는 것이  무엇을 그런 것 뭐 별별 무슨 물질을 줬겠지요. 구걸을 이렇게 줬는데 그것만  주고 받았지 다른 아무런 그들의 이렇게 비참한 원인을 해결하는 그런 문제에  있어서는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랬는데 '저희가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6절에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다 물질만 줬지 그들이 그렇게 외부의 사람들이 알 때는  성전 안에 있는 사람으로 봤지마는 그들은 성전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성전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전 안에 있는 줄 알지마는 성전 안에는 못 들어가는  사람들입니다. 못 들어가는 것은 그런 환자 부정 자들은 성전 안에 들어가지를  못하도록 돼 있는 것이 하나님의 법규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다 성전 안에 있는 사람으로 그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나 내용 실상은 성전 안에는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요 성전 안에 들어갈  수 없는 그런 원인을 가진 사람들이요 이러니까 성전 안에 있으나 그들의 소망은  하나님이 천사 보내서 물 동하면 어떻게 된다는 그런 하나님께 대한 소망도 없는  거는 아니고 있기는 있지마는 그들의 생활 전부는 출입하는 그 사람들에게  무엇을 얻을라고 하는 그런 소망을 가지고 지냈던 것입니다.

 그랬는데 베드로가 그들에게 기대하고 있는 그런 물질을 주지 안하고 그들이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하고서 자기들이 가진 것을 그들에게 주니까 곧 그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신데 그 이름으로 걸으라 하니까 걸어서 그 병이 나았습니다.

 나았으니까 이제부터는 성전에도 들어가지 못하던 원인은 다 없어져 버렸고  성전에 자유로 출입할 수가 있게 됐고 또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바로 가지게  되었고 또 바로 주는 사람이 됐습니다.

 이래서 오늘도 내나 구약 교회적인 그런 교회가 있고 또 신약 교회적인 그런  교회가 있는데 구약 교회와 신약 교회의 그 형편을 우리가 잘 살펴서 지금도  그때와 같은 때이니 나는 지금 어떤 데 속해는가 하는 것을 우리가 여게서 또  찾는 것이 이 복음을 자기 복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구약에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 교인 뭐 다 유명한 외모를 다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요 구비함을 가지고 있었으나 실은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그 결과를 맺게 된 그거이 구약 교회의 껍데기요 구약 교회도 속에  알맹이는 그렇지 안했습니다. 알맹이는 신약 교회의 알맹이로 나타난 그 알맹이가  구약 구회의 껍데기에서 나온 게 아니고 껍데기를 가진 그 알맹이에서 움이 돋아  가지고 신약 교회가 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구약 교회도 주님이 중심이었고 생명이었고 신약 교회도 주님이  중심이었고 생명이었었는데, 이렇게 구약 교회가 이런 모든 조직 저런 조직, 제도,  또 생명, 운동, 이렇게 나타났는데 거게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지 안하면 안  되는 그런 외모를 가지고 있고, 그런 조직들을 가지고 있었고, 또 그런 모든  행정들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우리가 이것을 그저 지나가는 것으로 이렇게 무심히  볼 것이 아니라,  그러면 그때에 있던, 그때에 그랬는데 지금은 구약과 같은 참 교회의. 껍데기가  없나? 또 참 교회의 알맹이가 없나? 지금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그런  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 교인들은 없나? 또 지금은 그라면 그때에 구약  교회의 알맹이와 같이 지금 신약 교회의 알맹이는 없나?  그러면 또 구약 교회가 신약 교회로 되어질 때에 모두 다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고 성전 안으로 모여들었고 성전 안으로 모여들어서 그렇게 다른 사람들도 다  성전 안에 있는 사람들로 봤지마는 실은 성전으로서는 성전과는 절대적인 거게  경계가 있어 가지고 들어갈 수 없는 그런 내용을 가진 사람들이 있지 안했느냐?  그러면 그들과 나와는 어떠냐?  그랬는데 많은 사람들이 출입했으나 그에게 참 성전에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은혜를 주는 데는 아무 상관 없는 그런 구걸이나 허고 또 그들도 들여가서  하나님께 소망두고 가기는 갔지마는 이제는 차차 차차 속화돼 가지고 사람에게  순전히 소망됐지 딴데는 소망하지 안하고 그저 인인 관계, 인인 관계에서,  보니까 앉은뱅이를 메어다가 거기 성전 울 안에 미문이라는 행각의 별관에 거기  갖다 놓는 그것은 다 거게서 사람들에게 무엇을 얻어 가지고 자기 소원을 이루려  하는 그런 데에 있는 그런 사람들이 있은 것을, 다 기록할라 하면 온 세상에 둬도  다 둘 수가 없는 그런 많은 양 가운데에서 이 사실을 우리에게 기록새 주셨으니  이것이 하나 역사적인 그런 것을 하나 소개하는 그런 것으로 그렇게 알맹이 없는  중량 없는 일로 이렇게 우리는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그때에 성전은 무엇이며, 그때에 미문이라는 그 미문은 무엇이며, 그 안에  모인 그 환자들은 어떤 환자들이며, 또 거게서 출입하면서, 성전에 출입하면서 그  사람들이 소원할 때에 물질로 구걸해 주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며, 그런  교파는 어떤 교파들이며, 그런 또 성직자들은 어떤 성직자들이며,  또 그들이 그럴 때에 이제까지 그런 비참한 그런 형편을 벗겨 주지를 못하고  하나님의 성전에는 출입하지도 못하는, 속에 알맹이의 실상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끊어져 가지고 거게는 그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그런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그러면 또 거기 또 출입하면서 돈푼이나 주고, 또 그 사람들도 또 소망하기를  그저 사람들을 향해서 소망하는, 전부 사람들만 향해서 소망하고 하나님을 향하는  소망이라 하는 것은 그 속에 그저 비추어 있기는 있었지마는 그 소망은  저희들과는 상관 없는 그런 소망을 가졌고, 또 그들에게 준다는 것도 아무런  해결짓지 못한 그런 것을 주고 있는 그 구걸을 준 사람들은 누군가? 거게 들어  가지고서 구걸하고 있는 사람들은 누군가? 또 성전 미문에다 자꾸 메어다가 놓는  사람들은 누군가?  거게 보니까 메어다 놓는 사람들은 구걸하면은 서로 구걸하는 것을 갈라먹기  위해서 그렇게 메어다 놓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면 오늘 이 사람 저 사람 모두  자꾸 이렇게 성전 안으로 끌어들여 가지고 이렇게 오면 교회에 무슨 연보나  어떻게 나 가지고 그렇게 하면은 그저 자기의 그 나오는 수입을 물질 수입  그것을 저거들의 소망으로 삼고 분깃으로 삼고 그런 것이나 서로 갈라먹기  위해서 하는 그런 사람들은 누구일까?  메어다 놓는 사람들은 누구며 구걸하는, 구걸을 다른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그런  병신은 누군가? 그것은 메어다 놓는 사람들은 구걸을 못 합니다. 그 병신이  구걸하지. 그 병신은 어떤 사람이며 그 병은 무슨 병인가? 그거는 곧 그 사람이  병들어서 하나님에게 들어갈 수 없는 원인이 되는 병이요 일생 동안 비참하게  자기가 되어지는, 비참한 신세가 되는 그런 병이니까 그 병은 무슨 병일까?  그러면 그 병과 오늘에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새사람으로 이 강건함을  얻지 못하고 새사람되지 못하고 항상 옛사람,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자기  중심으로 사는 이 옛사람 이 사람병이 든 사람 아닌가?  그런데 그것을 메어다 놓는 사람들도 병신 놀음 할 때에 그 사람이 악령 악성  악습의 언행심사를 함으로 모은 돈, 악령 악성 악습으로 자기 중심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루지 아니하고, 국제시장에 가면은 장로들이 다 부자인데 그 장로들은  접하는 사람들마다 다 그 사람들은 유대인들 종교 말년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뭐  가장 수단 방법을 가루지 안하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라고 가 가지고 거게서 뭐  참사람은 볼 수 없는 그저 어짜든지 사람이 아닌, 참사람이 아닌 그 행위, 세상에  속한 사람의 행위를 가지고 이런 수입 저런 수입 주 수입해 가지고 하면은 그것  가지고 서로 갈라먹기 하는 이런 거와 같은, 구걸하면 갈라먹기 위해서  앉은뱅이를 메어다가 놓는,  뭐 땀을 뻑뻑 흘리면서 그거 또 애를 쓰면서 전도해 가지고 자꾸 하나 둘  모아들이는, 만일 그것이 우리가 하는 것이 앉은뱅이 메어다 놓는 거와 같은 그런  비참한 일을 하고 있다면은, 물론 하나님이 나중에 역사해서 그것이 구원 얻은  사람이 되기는 됐지마는 그렇게 한다면 어찌 되는가?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잠깐 좀 생각할 것은 이렇게 교회는 알맹이와 껍데기가  있다. 껍데기가 전달되는 속에 알맹이가 전달돼 가지고 참 교회가 생겨지니까  그맺에 구약 교회의 그 말기에 있었던 그 모든 형편과 사람과 또 운동들과  역사들과 사람들이 가치로 알고 있는 그 가치들과 그 사람들의 비판과 평가가  어찌 됐으며 오늘은 어찌 되나?  또, 내나 구약 교회의 마지막이요 신약 교회의 시발이 되어 있는 이 앉은뱅이를  메어다가 놓고서 구걸하는 그 형편은 어떠하며 거게서 아무런 해결도 지워 주지  못하고 그저 돈푼이나 주고 마는 그 광경은 어떠한가 요런 것을 한번 좀  생각해서 외식에서 벗어나는 우리들이 되도록 이 복음을 삼아야 하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 자유로 돌아가십시오. 다음 시간에 계속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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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87 구역식구 지도법/ 사도행전 3장 1절-13절/ 840330 지권찰회 선지자 2015.10.25
5086 구역식구의 귀를 뚫어주라/ 요한계시록 2장 7절 상반절/ 841019 지권찰회 선지자 2015.10.25
5085 구역제도-분구 재촉/ 마태복음 7장 7절-12절/ 861224수새 선지자 2015.10.25
5084 구원/ 베드로후서 1장 4절-11절/ 800706주전 선지자 2015.10.25
5083 구원/ 마가복음 10장 23절-31절/ 840508화새집회 선지자 2015.10.25
5082 구원/ 베드로후서 1장 4절-9절/ 800706주후 선지자 2015.10.25
5081 구원/ 베드로전서 3장 19절-22절/ 820123토새 선지자 2015.10.25
5080 구원/ 마가복음 10장 23절-31절/ 810415수야 선지자 2015.10.25
5079 구원/ 베드로전서 3장 20절 -22절/ 801110월새 선지자 2015.10.25
5078 구원/ 베드로전서 3장 19절-22절/ 820122금야 선지자 2015.10.25
5077 구원/ 베드로전서 1장 5절-7절/ 1980년 37 공과 선지자 2015.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