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5 14:24
구속에 대한 비중
1987. 5. 23. 새벽 (토)
본문:로마서 12장 1절∼2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초두에 “그러므로”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12장 1절 시작에, 그러므로 이다음에 말한 순서를 네가 믿고 지키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는 것은 그 안에 11장 36절에 보면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하는 이 말씀을 두고 그렇기 때문에 너희들이 요다음 순서에 계시해 주시는 요 말씀을 믿고 실행하라 하는 것입니다.
그 11장 36절은, 없는 가운데서 하나님 혼자 계시면서 없는 가운데서 당신이 모든 것을 예정하셨고 또 창조하셨고 주권적으로 개별 섭리를 하셔 가지고 당신의 뜻대로 모든 것을 이루시는 것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창조에도 털끝만치도 어떤 것이 거게 가담하지를 못했고, 또 할 자도 없고, 또 이미 창조되어 있는 그것들을 이렇게 저렇게 움직이는 것도 그분 한 분이 주권적 의지로 예정하시고 그대로 움직이십니다.
그 움직이는 것도 어떤 피조물이 털끝만한 것도 제 단독이 움직이는 것도 없고 또 어떤 것을 움직일 수도 없습니다.
또 그 모든 것이 주님의 뜻대로 결말을 짓지 그 결말 짓는 것이 주님의 뜻 외에 털끝만한 것도 거게 가하지를 못합니다.
그만 주님으로 말미암아 생겼고 또 주님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저렇게 움직입니다.
지옥 가는 것도 주님으로 말미암아 지옥 가고 천국 가는 것도 주님으로 말미암아 천국 가고, 절대 주권입니다.
이것을 다 통달하지 않고 총괄하지 않고 이리 치우치고 저리 치우치고 다 편벽된 지식을 가졌기 때문에 모순 투성이가 생겨 가지고서 신학에 난제들이 많이 생깁니다.
요 세 가지를 기억해야 됩니다. 모든 존재가 다 그분 한 분으로 인해서 존재했고, 모든 존재한 것들이 움직일 때에 그분 한 분으로 말미암아 움직이고, 또 모든 존재하고 움직인 것들이 그분 한 분의 결정대로 영원이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자는 악이라 하는 것을 회개치 안할 수 없습니다.
악이라는 것은 자기 중심을 가리켜서 악이라는데 이것도, 이 악의 정의가 이렇기 때문에 세계에 학자들은 이것에 대해서 다 반발할 것입니다. 그들은 많은 배암의 지식을 많이 가졌기 때문에 거게서 별별 것이 많이 있으니까 ‘이거는 무식한 사람이 단순히 말한 것이지ㅡ어떤 철학자의 그 악을, 악관, 악론, 악에 대해 논한 것 악론, 과학자의 악론, 도덕자의 악론, 모든 윤리자들의 악론, 모든 사회주의자들의 악론, 뭐 한없는 것이 있기 때문에ㅡ이거는 다 모르고 이거 무식한 사람이 요렇게 단순히 말했지.’ 하지마는 그것은 성경을 보면 알 수가 있고 저는 요것을 확신합니다. 요 확신하기 때문에 나는 요게서 힘을 얻습니다.
껍데기 사람은 늙어서 쇠하지마는 속사람은 점점 힘을 얻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모든 존재가 이렇게 돼 가지고 있는데 네가 거기에 존재 중에 하나로서 네가 하나님이 지어서 지음받았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움직인다. 네가 지옥 갈 행위하고 불행스러운 행동하는 것도 네가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으면 권리가 있지마는 하나님이 너를 지옥 가는 행동하도록 그 소원을 가지도록 해서 네가 지옥 가는 소원 가지고 행동한다. 모든 움직임이 좋은 움직임이나 나쁜 움직임이나 이분 한 분의 주권으로 움직인다.
그러면 이렇게 저렇게 복잡한 많은 움직임을 가졌는데 또 그것을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대로 심판해서 결론을 지워서 영원의 그의 처소로 작정을 하신다.
그런데 이 비밀을 모든 피조물들이 모르고 있는데 예수님의 피공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알려 주셨으니 이 비밀을 안 것, 모든 존재의 비밀을 아는 것, 모든 움직임의 비밀을 안 것, 존재와 움직임의 그 결말이 어찌 된다는 그 결말을 우리에게 안 것, 이것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이것을 안 자는 땅위에 인간들의 지식이 시시비비 말하는 것 그것 다 한 말로써 발 아래 밟아 버리고 맙니다.
왜? 그것들은 이런 것을 하나도 모릅니다. 무신론자들도 모르고 과학주의자들도 모릅니다. 다만 믿음으로 알게 돼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으로만 알게 돼 있다니? 하나님이 이렇다 하실 때 예 그렇습니까 함으로써만 알게 돼 있지 다른 길로는 아는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형제들이라 말은 예수님의 대속과 진리와 영감으로 구속함을 받은 자들을 가리켜서 형제들아 그렇게 말했습니다. 요 기본구원을 받은 자들은 꼭 동등입니다. 형제들이라 말은 기본구원 받아서 꼭 동질 동성 동등된 자를 말합니다. 기본구원 받은 자의 차이는 없습니다. 꼭 동등입니다. 본질 본성도 꼭 하나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께서, 피조물된 이 인간 중에도 택한 자들을 특별히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심으로 말한다, 자비하심으로 말한다 말은 모든 그 연약한 것과 부족한 것과 모든 못쓸 것 그것을 살리려고 온전케 하려는 이런 사랑의 욕망을 가지시고 대하시는 분이라 그 말입니다.
자비라는 것은 우리 자체에게 모든 불행스러운 거, 모든 불행한 거 그런 것, 좋지 못하는 그런 것을 다 책임지시고 좋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모든 필요하고 좋은 것을 다 주실려고 하는 그분이 말한다 하는 것을 여게 자비라고 말한 것입니다.
뭐 불교에서 대자대비라 하는 그런 자비 아닙니다. 인간의 한어사전, 나는 외국어를 모르지마는 제일 어학으로서는 발달된 말이 뭐 영어라고 하는데 영어사전, 어떤 사전에서 자비라는 말과 성경이 말하는 자비와는 다릅니다. 여기 “모든 자비하심으로” 그 말은 우리의 멸망을 책임지시고 영광의 구원까지를 책임지신 이 범위 전부를 가리켜서 자비하심이라 이렇게 표시했습니다.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구속받은 너희를 권하노니, 권한다 말은 이렇게 하나님이 자비하심 가지고 너희들을 책임지고 구원하시려고 하는 것이니, “너희들에게 권하노니” 너희들에게 주노니, 모든 자비하심을 너희에게 주노니, 모든 사망에 속한 데에서 헤어나오고 모든 좋은 것을 다 갖추어 주실 것을 책임지신 분이 너희에게 주노니, “권하노니” 이거 준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자비하심이다. 너희에게 금생 내생 영육의 모든 불행한 것을 다 벗어나는 것이요 모든 좋은 것을 네가 충만히 가지는 이것을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시는 것이다 그 말이오. 자비하심으로 권한다 말은, 권한다 말은 준다 말입니다. 권한다 말은 주노니 네가 받아라 그 말이오. 받으면 된다 그 말이오.
“권하노니 너희 몸을” “너희 몸을” 몸이라고 말하니까 이것은 고기덩이리인 줄로만 생각하고서 이래 해석하는 것이 온 세계에 신학자 중에 전부라고 할 만치 대부분이요, 또 여게 몸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사람을 이분설 하면은 영과 육이라고 하는데 육을 가리켜서 몸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육을 가리켜서 몸이라 말한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기 몸이라는 데는 마음과 고기덩어리가 다 합했습니다. 심신을 다 총합해서 몸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영만 빠졌습니다.
사람은 영육으로 되어 있는 사람인데 영은 여게 포함되지 안했고 육은 다 전부를 포함해 총칭해서 몸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뭐 원어에는 몸이라는 것은 쏘마로 되어 있고 또 육체라 하는 건 싹스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 싹스는 부패성이라 또 몸은 이거 고기덩어리 몸이라’ 이렇게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 해석은 완전히 뒤비지고야 말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금 온 세계에서 신학자들 가운데, 나는 신학을 안 한 사람이라서 모르지마는 싹스가 이것이 부패성이라고 이렇게 해석을 가진 그 신학자라면 그 신학자는 성경 해석이 전부가 다 이단이 되고야 맙니다. 다 틀리고야 맙니다. 제가 아무리 맞아도 결말로 종국으로 나가면은 틀리고야 맙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이라 말은 하나님이 원하신다는 껍데기를 가지고 있고, 그 속에 알맹이는 하나님이 만족하실 수 있는 너희의 모든 불행한 것을 다 벗고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모든 행복된 것을 충만히 가지는 그 길이라 그 말이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뻐하신다는 요 말은, 요 기뻐하신다는 말은 하나님이 좋아하신다 말이요, 하나님이 원하신다는 말이요, 하나님이 좋아하시고 원하시는 건 뭐이냐?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사망에 속한 것을 벗겨 주시기를 하나님이 원하십니다. 또 우리에게 모든 필요한 것을 하나님 가지신 것을 다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소원돼서 그 소원이 발동해 가지고서 도성인신했고 그 소원이 발동해 가지고서 십자가에 죽으셨고 또 죽은 가운데에 삼 일 만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부활을 시키신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뻐하시는”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하니까 이 산 제사로 드리라는 이것을 너희들이 못마땅히 여기고 이렇게 하지마는 이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것이다.
기뻐하시는 것인데 그분의 기뻐하심이 뭐이 기뻐하심인가 그것이 문제입니다.
오늘 세상 사람들의 기쁨을 요것 가지고 해석을 하면은 세상 사람들의 기쁨은 상대방은 나를 위해서 있어야 기뻐하는 것이 그것이 이 세상들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뻐하는 거는 다른 것이 다 희생되어서 자기 밥이 돼야 좋아하고 기뻐하는 것이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것은 당신이 밥이 되고 다 어떻게 될지라도 우리들의 영육에 영원 무궁 완전에 행복되는 것을 당신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의 기쁨도 요걸 바로 정의를 깨닫지 못하면 헛일이라 그 말이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 하나니” 하는 말은 믿음 없으면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행복자가 우리가 되지 못한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하나님을 이기주의자로 당신 좋게만 한다고 그렇게 인간의 지식대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건 하나님 좋게 하는 것이오. 하나님 원하시는 것이오. 하나님 좋게 하는 것은 뭐인가? 없는 가운데서 우리를 있게 하신 것이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이요, 없는 것을 있게 한 이것이 하나님이 만족하실 수 있도록 가장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가 되어서 이렇게 행복되고 온전한 자가 되어지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이분의 기뻐하심은 그것이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거룩한” 이 거룩이라 말은 뭣과 구별하라 말인데, 완전히 피조물의 이 지걸거리는, 피조물들이 지걸거리는 피조물의 지식과 다른 하나님의 지식으로 하는 지식 구별을 먼저 말합니다. 거룩한이라 말은, 거룩이라 말은 피조물의 뜻 아니고 하나님의 뜻대로, 피조물의 뜻 아니고 하나님의 뜻대로, 피조물이 평가하는 대로가 아니고 하나님이 평가하시는 대로, 피조물들이 만족하고 좋아하는 대로가 아니라 완전자가 만족하고 좋아하시는 그대로 그것을 선택해서 가지게 하는 것이 이것이 거룩입니다. “거룩한” 거룩이라면 뭐 인간 논리에서 죄나 없고 깨끗하기만 하면 뭐 좋은 줄 알아도 이 거룩이라 하는 것은 구별해서 온전함에 도달한다는 요것을 요 정의한 것도 저는 듣지도 보지도 읽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가르쳐 주셔서 안 것뿐입니다.
그러나 알고 나서 보니 자꾸 맞고 맞고 그라기 때문에 천인 만인이 말해도 요동치도 않습니다.
“거룩한” “거룩한” 거룩한 이것은 피조물의 뜻대로, 피조물의 지식대로, 피조물의 성질대로, 피조물의 소원대로, 피조물의 좋아하는 대로가 아니고 자존자 완전자 영원 불변자 사랑의 이 구속의 하나님 이분이 원하시는 대로 이분이 만족하시는 그 만족을 이루는 그것이 거룩입니다. 이게 우리에게 권하는 것은 거룩이오.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산 제사로 드리라 그 말은 완전히 너를 주님에게 맡겨버리라 그 말이오. 산 제사로 드리라 말은 네가 과거에는 네가 너를 붙들고, 네가 너를 책임지고, 네가 너를 주장하고, 네가 너를 인도하고, 네가 너를 행복스럽게, 너를 살리게, 너밖에는 너에게 유익하게 한 자가 없으니까 네게 대해서는 네가 제일 잘 유익하게 하는 줄로 알고 네가 주장했지마는 이제는 그자는 죽어버리고 너를 완전히 하나님께 맡겨라. 맡겨라. 네 행복도 맡기고, 생사도 맡기고, 모든 움직임도 맡기고, 너의 행복도 맡기고 완전히 너를 하나님에게 맡겨버리라 그 말입니다.
“산 제사를 드리라” 그 말은, 너는 존재하기는 존재하지마는 네라는 존재를 네가 하나도 주관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관하셔서 하나님이 네게 대해서 크고 작은 것 뭐 할것 없이 모든 것 나타난 것 나타나지 않은 것, 현재 영원 장래 무궁 전부 네게 대한 것은 하나님에게 다 전임을 시키라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산 제사로 드리라” 이러니까 자기에게 대해서, 자기 영에게 대해서는 하나님에게 산 제사로 드렸습니다. 영은 존재하기는 존재하지마는 하나님이 주관하시지 털끝만치도 영 제가 저를 주관하지 않기 때문에 그에게는 영원히 사망이 없고 완전 영생을 하게 된 것인 것입니다.
껍데기로 말하면은 제물이라 하는 것은 짐승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는 것인데, 이 짐승이 돌아다니면 제맘대로 먹고 싶은 것 먹고, 보고 싶은 것 보고, 가고 싶은 것 가고, 뛰고 싶은 대로 뛰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이렇게 하는 그거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번제로 드리는 것은 터래기 하나도 뽑지 안하고 똥도 하나 뽑지 안하고 그대로입니다. 그대로인데 주관하는 생명만 끊었습니다. 잡았기 때문에 그것은 그 제물이 제물되기 전에 그 몸뚱이를 주관하던 세력은 완전히 끊어져 버려. 그것만 끊어졌어. 제물된 그 전체를 주관하던 것은 완전히 죽여버려서 없애버렸고 그거는 완전히 하나님께 바쳤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관해서 하나님에게만, 하나님만 쓰시고 하나님 당신 뜻대로만 하시는 그것이 제물입니다.
제물되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이 선포해 놓으신, 당신의 소원을 선포해 놓으신 당신의 법도대로만 그것이 뭐 타든지 뭐 죽든지 어짜든지, 타든지 없어지든지 하는 것이 그 법도 어기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요것이 제물입니다.
제물인데 “산 제물로 드리라” 너는 살아 있고 너는 움직이고 있으나, 움직이고 있으나 네가 너를 움직이는 것을, 이 제물을 짐승을 잡아서 제단 위에 얹는 거와 마찬가지로 네가 완전히 네 주관이라는 네 자유라는 그것을 완전히 죽여서 다시는 네 언행심사를 네가 하나도 주관하지 안하고 하나님 혼자 주관하시도록 너를 네가 주관하던 것을 완전히 죽여버리는 것이 그게 산 제사로 드리는 것입니다.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은 살아 있으면서 자기의 주관을 완전히 죽여서 하나님만이 주관하시도록 하는 그것이 산 제물이니 거게서 죽은 것이 영원한 생명으로 바꾸어 옮겨져 갈 수 있는 자격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영적 예배니라” 그전에는 “합리적 예배니라” 합리적 예배니라 말은 외부를 말했고, 합리적 예배라 말은 이것은 하나님께서 선포해 놓으신 하나님의 진리, 합리라는 것은, 합리라는 것은 하나님이 선포해 놓은 문서계시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
문서계시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 하는 것을 표시해서 합리적 예배라고 그때는 그래 번역을 했는데, 보다 ‘영적 예배니라” 하는 이 영적 예배니라 하는 이것은 신령한 예배니라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드릴 영적 예배니라” 이것부터 돼야, 이게 돼야 됩니다. 이게 “영적 예배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것이니라, 신령한 예배니라,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너희는” 이렇게 하고 난 다음에, 산 제사로 드리고 난 다음에 필요해.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기 전에는 아예 여게는 도달하지 못해.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알아야 하고, 또 자비하심의 권면하는 것을 알아야 하고, 또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이것이 영적 예배니라, 이것이 우리를 구원하실라고 책임지시고 역사하시는 그 영적 예배다.
예배니라 그러므로” 그라고 난 다음에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또 다집니다. 산 제사로 드리라 했으니까 자기 주관은 완전히 죽어버렸고 순전히 주님에게 피동으로만 살게 했는데 뭐 자기 주관이 뭐 있을 게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또 두번째 또 다집니다.
산 제사로 드리라” 그라고 산 제사로 드려 놓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또 드렸지마는 또 눈에 보이는 게 전부 세상뿐이기 때문에 또 이 세상 소망 가지고 살기 쉽다 그 말이오.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말은, 세대를 본받지 말라 말은 땅에 소망을 가지지 말라 그 말이요, 땅에 소망을 가지지 말아라. 땅에 소망을 가지지 말아라. 또 하나는 뭐이냐? 이제 네가 너를 주관하는 일을 하지 말아라 그 둘을 다져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하는 것입니다.
이 세대는 온 세상을 말함인데 온 세상은 뭣 하고 있는고 하니 땅에 소망 가지고 분발하고 있는 것이 온 세상입니다. 너희는 땅에 소망 가지지 말고 하늘에 소망을 가지라 그 말이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이 세상 소망 가지고 움직이고 있지만 너는 세상 소망 가지지 말고 하늘에 소망을 가지고 움직이라 그 말입니다.
우리들도 설교하는 데에 땅에 소망 말하면 기쁘고 즐겁습니다. 저희들이 감사하고 축복받았다 하는 것은 전부 땅에 소망 이루어지는 것밖에는 저들은 모르기 때문에 그것받아 가지고 감사하지 하늘에 소망 영원 무궁에 필요한 것은 알지도 못하고 그것 받는 것은 징그럽게 여기지 좋아하지를 않습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땅에 소망 가지지 말고 하늘에 소망 가지고, 네가 너를 주관하지 말고, 피조물이 너를 주관하지 못하게 하고 너를 구속하신 주님만이 너를 주관하도록 해라 하는 것이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또 독촉입니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받아라. 새롭게 한다 말은 마음을 자꾸 씻고 닦고 씻고 닦아서 자꾸 이렇게 점점, 새롭게 하라 말은 때묻었고, 때묻었다는 것을 여게다가 전제로 하고 말하고 있는 것이고 아직까지 네가 온전함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이미 또 때가 묻었으니 그것 닦고 또 때묻은 거 다 닦았다 할지라도 너는 온전함에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에 자꾸 파고 들어가고 자꾸 들어가거라 그것을 가리켜서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그러면 변화된다.
그러면 네가 너를 책임지신 성령이 너를 붙들어서 영감된다, 변화된다 말은 영감된다 말이오. 변화된다 말은 영감된다. 영감이 된다. 성신의 감화의 네가 된다.
그러면 “하나님의 선하시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하나님 하시는 모든 일은 당신 중심 당신 위주로 하고 계신다. 당신 중심 당신 위주가 뭐이냐? 하나님은 완전이시기 때문에 완전 중심 완전 위주로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선의 정의를 바로 내리지 못한 것은 모든 성경이 다 뒤비지고야 맙니다. 선에 대한 정의를 바로 모르는 자는 악에 대한 정의도 바로 모르고 악에 대한 정의를 모르는 것은 전부 인본 해석 전부 인본 생활이라.
그러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전부 인본 생활이 돼 나가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번에 대구집회에 아마 이 설교록이 나가면 이단이라고 굉장한 정죄가 많이 들어올 것입니다. 왜? 그들이 생각하는 거와 반대된 것 말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바로 깨닫는 것이 우리에게는 제일 중요하고 그 다음에는 바로 행하는 것이 두번째로 중요합니다. 바로 깨달으면 바로 깨달음과 믿음이라는 건 하나입니다. 바로 깨달으면 믿지 안할 수 없습니다. 바로 깨달으면 믿지 안할 수 없어. 또 믿으면 행하지 안할 수 없어. 그러기에 기독교는 전부 필연성이오.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고 필연적으로 되어지는 것이지 억지로 자기 주관으로 뭐 해 가지고 되어지는 거는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모든 것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니라” 요 광대하고 세밀하고, 좁기로는 머리털은 그 근방에 들어가지도 못할 만치 좁고 넓기로 말하면 우주와 영계 이것이 그 한쪽 구석도 차지 못 하는 그렇게 한없이 광대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우리가 우리 현실, 이 말을 왜 하느냐 하면은 우리가 겨자씨 믿음, 우리 현실에서 하나님이 현실도 당신이 만들어 주시고 현실에 대해서 당신의 영감과 진리를 우리에게 주시는데 그대로 믿고 행하면 만사 성공이라. 믿고 행하면 다라. 이 외에는 다른 것 아무것도 없어. 이 외에는 그까짓 거 우주고 영계고 아무것도 없어. 이것만이 우주와 영계의 주인공입니다. 이걸 가진 사람은 하나님 다음 위치라.
교회라 하는 본 위치는 하나님은 머리요 교회는 몸이기 때문에 하나님 다음의 위치요, 영계와 물질계의 모든 피조물들은 발등상이기 때문에 그 다음 위치 가진 것이 이것이지마는 교회의 위치라는 이것을 바로 가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모두 다 곤고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신다 말 이 뜻이 뭐입니까? 기뻐하신다는 뜻이 뭐이지요? 요거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금방 가르쳐 주지 안했소? “기뻐하시고” ○○○조사님?기뻐하시고 하는 그 말이 무슨 말이요? 여게 뭐꼬? 아따 거기가 뭐더라? ○○교회? “기뻐하시고” “기뻐하시고” 하는 말은 우리에게 모든 더러운 것은 다 치료돼서 제거되고 우리에게 필요한 좋은 것은 모든 것을 충만케 하시려고 하는 그분이 만족하실 수 있는 그 뜻이라 그 말입니다. 우리에게 당신의 뜻 주시는 거 그거는 시시한 뜻이 아니라 그 뜻은 하나님이 만족하시는 뜻인데 만족하시는 뜻은 무슨 뜻이냐? 우리에게 모든 사망에 속한 것은 완전히 치료되고 영생에 속한 것, 평강에 속한 것, 영광에 속한 것, 존귀에 속한 것 이것만으로 우리에게 충만케 하시는, 이것을 충만케 하시는 이 충만을 우리에게 주시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그 말이오.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가 분별하도록 하라” 온전하다 말은 금생만 온전한 게 아니라 이거는 비판적으로 온전하고 평가적으로 온전해서 영원 무궁토록 완전이라 말입니다.
완전자가 하나님만이 완전하신데, 하나님만이 완전하고 완전한 것이 피조물에게 하나도 없는데, 하나님만이 완전하신데 완전하신 그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완전한 것을 받아서 완전이 되어지는 것이니 그분은 마지막에는 원형적 완전이요, 완전의 원형이요 우리는 완전의 모형이라. 우리가 원형 아니지만 그분으로 말미암아 완전했어. 그분과 우리와 떨어지면, 완전이지마는 떨어지는 그 찰나에 우리는 아무것도 없고 완전히 박살되고 말고 그분과 연결돼 가지고만 영원히 완전한 것이 우리의 구원인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자가 하나님과 자기와의 나뉘어지지를 않습니다.
그러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러면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바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첫째는 우리 현실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그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으려고 하면, 우리에게 현실에 하나님의 뜻을 주시는 것은 사자구덩이에 들어가라는 뜻이라든지 불속에 들어가라는 뜻이라든지 그 뜻은 전부 하나님의 자비하심입니다. 자비하심이오. 또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요, 그것은 거룩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것 주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좋은 것 주신다 하는 그걸 우리가 첫째는 믿어야 합니다. 좋은 걸 주신다.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하나님이 더러운 것 다 치료해 주시고 좋은 것 주심을 받을 수 있는, 받을 수 있는 “산 제사를 드리라” 받을 수 있는 네 자체로 드리라.
자체로 드리지마는 주먹덩이만한 것은 주실 때는 받을 수 있는 몸으로 드렸다가 우주보다 큰 거는 주시면 배반할 수 있는 그런 게 아니고 크고 작은 모든 것을 다 주실 때에 그것을 다 받을 수 있는 몸으로 드리라 하는 것을 가리켜서 여게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를 완전히 바쳐 놓고, 괴롭든지 즐겁든지 죽든지 살든지 상관없이 ‘당신의 뜻만 명하십시오. 뭐 죽는 것이나 사는 것이나 문제 없습니다.
당신 명령만 하면 예예로만 순종하겠습니다.’ 이래서 그 찬송 몇 장이더라? 73장이던가 뭐 ‘내가 드릴 것은 아멘뿐이로소이다’ 그저 ‘하라' 하면 예예 예예뿐이라. 예뿐이라. 예뿐이라. 그거 다 믿음 있는 사람들이 지어놓은 찬송이라.
이러니까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구별하는 데, 분별하는 데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내게 어데까지나 좋게 해 주신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어야 되지 믿지 않으면 헛일이라. 하나님의 사랑을 믿어야 됩니다.
그 다음에 내 사욕 주관을 완전히 버려야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서 주는 것이니까 내 지식과 지혜와 이성 비판과 모든 통계와 온 세상 모든 비판 평가에는 맞든지 안 맞든지 그까짓 거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이게 돼야 돼.
하나님의 사랑 믿고, 하나님이 명하시는 그것은 내 이치나 세상 이치 대조해 가지고 상고할라 하는 그자는 세상에 속했기 때문에 망해야 돼. 당신의 뜻을 나에게 나타내 주실 때 하나님의 사랑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함으로 주신 것을 믿습니다.
이 뜻은 사망으로 가득찬 세상 이치와는 정반대이기 때문에 아예 세상 이치와 맞출라고도 하지 안하고 무조건 당신의 뜻이면 나는 내 모든 것을 당신에게 바쳐서 죽는 것이나 사는 것이나 망하는 것이나 흥하는 것이나 굶는 것이나 그 모든 것이 전지 전능의 사랑의 주님이 나에게 좋은 것을 나에게 주시는 것인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무조건 받아서 예예로 순종하겠습니다.
요게 돼야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을 수 있는데 그뜻 그것도 또 뭐이냐 하면은 이 세대와 달라. 땅에 소망이 아니고 하늘의 소망을 이루게 하는 그 뜻이라. 이 세대와 달라.
또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의 뜻이라.
또 그것이 뭐이냐 하면은 하나님 당신의 것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말미암아, 당신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모든 더러운 것 다 치료되고 좋은 것을 우리에게 담뿍 충만케 해 주시는 그 방편이라.
그런데 그 방편은 뭐이냐? 그 방편은 온전한 것이라.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것이라. 이러기 때문에 순종해라. 성경을 아는 자는 순종 안 할 수가 없고 믿지 안할 수가 없어.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지난밤에 말했는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 몇 가지 주시요? 우리의 모든 소원하는 것 좋은 것 다 주시고 치료하는, 우리에게 나쁜 것 치료하시고 우리에게 좋은 것을 다 주시는데, 당신이 주시는데, 좋은 것을 주시고 나쁜 것 치료하는 것으로 주시는데 우리에게 당신이 섭리해서 주실 때에 몇 가지를 주십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십시오. 몇 가지를 주십니까? 손가락으로? ○○○조사님, 손가락으로? 손가락으로? 틀렸어. 교회 부흥 안 돼요. 지금 쓴뿌리가 거기서 말이요, 쑥물이 들어가 가지고서 귀신의 가르침에 유혹을 받고 있어. 그러기 때문에 이거 신학 잘못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세상 지식 잘못 배운 것이. 그것 배운 사람은 이거 이해가 안 돼요. 이해가 돼지지를 안해요. 돼지지를 안하기 때문에 항상 들어도, 한 자리에 받아들여도 네가 아는 주관 지식으로 말하면 요렇고 요렇고 하니까 무조건 받아들이지를 안해요.
옳은 것은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좋고 또 비판해 받아들이는 것은 더디고 지체되고, 이러니까 받아들일 때는 무조건 받아들여 가지고 딱 받아들여 가지고 그것을 심사숙고 비판하는 것은 얼마든지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실 때에 몇 가지 주시요? 손가락으로? 세 가지 주시요, 세 가지. 뭐? 현실, 또? 영감, 또? 진리. 이 세 가지 줘요, 세 가지. 세 가지 외에 아무것도 안 줍니다. 이 세 가지 속에 다 들었어.
우리에게는 이게 필요할란지 저게 필요할란지, 이게 앞에 있어야 될란지 저게 뒤에 있어야 될란지 선후도 모르고 또 종별도 모릅니다. 선후와 종별을 뭘로, 하나님께서 전지하신 지혜로서 선후와 종류 ‘이거는 좀 뒤에 있어야 된다 이거는 앞에 있어야 된다, 이거는 있어야 된다 없어야 된다.’ 하는 그것을 선후와 종류의 종별을 하실 때에, 선후와 종별을 하실 때에 그때에 하나님께서 종류를 구별하는 종별과 또 순서, 순서는 시간에 관한 것인데. 순서를 당신이 전지의 지혜로 이렇게 구별해 가지고 우리에게 주시는데 그것은 뭘로 구별해요? 종류와 순서는 뭘로 구별해요? 뭘로 우리에게 구별해? 전지한 지혜로 우리에게 구별해 주시는데 뭘로 구별해 주시요? 뭘로 구별해 주시요? ○○○목사님? 뭘로 구별해 주시요? 깜깜해. 수건이 가리워졌기 때문에 깜깜해.
이거 줘야 될 때 저거 주면 헛일이라. 필요한 것이라도 먼저 줄 것 먼저 주고 뒤에 줄 것 뒤에 줘야 되지 선후가 달라져도 안 돼. 또 많은 종별이 있는데 그거 지금 주면 안 될 것 있어. 많은 종별이 있는 거 다 가지면 좋은 줄 알아도 안 가져야 될 것은 안 가져야 돼.
그것을 우리에게 시간 조절과 종류 종별 그 모든 것을 다 조절하시는데 그 조절은 뭘로 해 주십니까? 저 ○집사님? 현실? 현실로 그러면 하나님께서 종류를 조절하시고 시간을 조절하시고 그렇게 조절해서 주시는 것은 현실 가지고서 조절해 주십니까? 그래요? 맞아요? 맞는 사람 손들어 봐. 없어, 봐. 다 빵점이라.
다 영점이라. 내가 그 말 하는 것 보니까 아마 답이 틀렸는갑다 싶어서 이래 놓고 내가 물으니까 손 드는 사람 몇 사람 없네. 여러분들이 참 귀가 어두워서 복이 없습니다. 눈 앞에 암만 말해도 안 들으니 멸망이오.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신구약 육십육 권을 딱 간추려 가지고서 알맹이로 지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조절은 현실 가지고 조절하시오. 이게 필요할 때는 이 현실 주시고 저거 필요할 때는 저 현실 주시고, 현실을 주시고 현실을 조절해 가지고서 그 다음에 당신이 이 영감 주시고 저 영감 주시는데 현실과 영감이 맞아 떨어져야 되지 맞아 떨어지지 안하면 안 돼. 현실에 맞지 않는 영감 현실에 맞지 않는 진리는 행하면은 죄가 돼요. 알겠습니까? 현실로 조절해 줘. 현실로 종별을 구별해서 조절하시고 주는 거는 뭘로 줘요? 주는 거는 뭘로 줘요? 주는 거는 뭘로 줘? ○목사님은 뭘로 줘? 뭐? 그래, 진리 영감. 진리 영감으로 주는데, 진리 영감으로 줘요. 실은 영감 진리로 줘요.
성경을 읽게 되는 것을,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는 데에 몇 가지가 알게 한다고서 대구서 공부했습니까? 그래, 일곱 가지가 알게 한다고 가르치지 안했소? 제가 성경 보고 싶으면, 읽고 싶으면 읽는 줄 알아도, 아니야, 그거 인본의 말이야.
성경 보면, 똑똑히 보면 그렇지 안해.
자, 누가 알게 해요, 그러면? 일곱 가지 한번 쳐 봐요. 첫째? (성부) 또? (성자) 또? (성령) 또? (진리) 또? (중생된 영) 또? 모든 선지 사도의 선배들의 그분들의 모든 성경 기자까지, 우리 위해서 기도하는 것까지 전부 우리 선배의 노력이 다, 노력, 또? 만물. 녜, 만물이 다 협조해요. 이래 가지고 일곱 가지가 주는데 그래야 비로소 내 이 심신이 움직여 봅니다.
성경을 제가 보고 싶어 볼 때에 ‘이거 보기 싫다. 보기 싫다.’ 그게 자기에게는, 성경 보기 싫다 하는 그게 그만치 하나님에게 저주로 예정돼 있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같은 사람으로서 성경 보기 싫다 성경 보고 싶다, 그것도 예정이오.
다 같이 보는데 한 사람은 깨닫지 못하고 한 사람은 깨달았으면 그것도 예정입니다 . 또 성경 보는데 하나는 부인하고 하나는 믿습니다. 그것도 예정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멸망이 하나님의 예정 주권, 그분의 주권대로 멸망받는다 하는 요것을 믿는 것이, 내가 고려신학교 다닐 때에 이것을 논문에 썼는데 ‘모든 멸망도 하나님의 주권이다. 구원도 하나님의 주권이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기록을 하면서 처음에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논문 발표를 할 때에 하나님의 모든 축복 주권이라 하니까 그때 그 교수가 듣고 좋아서 이라더니마는 그라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멸망도 하나님의 주권이라. 하나님의 주권 예정이요 예정대로 예정된 것이요 주권의 능력으로 다 성취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니까 그만 막 그 사람들이 아이구 큰일났다고 하지 말라고 그만 중단시켜 가지고 발표를 하다가서 거기 가서 발표를 못 하고 중단했습니다. 마는 틀림 없습니다.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모든”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아 주에게로 돌아감이니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을지어다” 요 말씀도 그 말씀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예정을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신앙의 뿌리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제가 암만 떠들어 쌓아도 가다가는 처박혀서 파묻혀서 죽을 그런 고비가 꽉 있습니다. 하나님의 예정이 믿어지지 않는 그것은 그 사람에게 앞으로 구원 이루는 것에 박살될 그런 구덩이가 많이 있다는 그 증거요.
하나님의 이 주권을 믿는 신앙, 주권을 믿는 신앙, 주권 의지의 예정을 믿는 신앙, 주권 능력의 성취를 믿는 신앙 이 신앙이라야 요동치 않습니다. 이러니까 그런 데는 천리 만리 거리가 머니까 여러분들이 새벽으로 안 나오고 안 듣는데 어데서 알 것이요? 나는 성경 배운 것 사람에게 배우지 안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성경만 줬고 성경 가지고 읽을 때 하나님이 나에게 가르쳐 주셔서 깨닫게 했지 사람에게 들어서 깨달은 것 내가 별로이 없습니다. 김현봉 목사님한테 내가 배운 것은 어쨌든지 자기를 만들어야 된다, 자기를 참사람 만들어야 된다, 사람을 만들어야 된다, 자기를 만들어야 된다 하는 고거 하나 보배를 내가 배웠기 때문에 그분은 평생 내가 선생으로 모십니다.
신학교 가 가지고서 한 것은 내가 신학교 오기 전부터도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하나님의 예정에 대해서는 굉장히 내가 믿었습니다. 그대로 믿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박윤선 목사님이 하나님의 예정에 대해서 말해 놨는데 책을 내가 요만한 걸 한번 봤는데 그 책을 볼 때에 나는 맞지 안해서 내가 그 책을 보다가 말았습니다. 왜? 제한적 예정을 말하는데 제한적 예정이 아니라 모두 무제한의 완전 예정이라요, 완전 예정. ‘모든 이 영계나 물질계에 영원히 움직이는 것은 그분 단번 예정 그대로지 예정되지 안한 것이 돌발되거나 돌출되거나 그런 일은 없다’ 하나님의 완전 예정을 저는 그래 믿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지금도 그 예정에 대해서 늘 상고합니다.
‘하나님의 예정은 제한적이라, 이런 것은 예정했지만 이런 건 예정하지 안했다.’ 나는 따져보니까 그 예정하지 안하면은 이원론이 되고 말지 일원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일원을 믿는다면 그런 것은 믿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범위를 똑똑히 알고 전체를 바로 알아서 이래 깨달아야 되지 그렇지 못하면 착각됩니다.
그런데 이번에 대구에 가 가지고서, 가라지가 지옥 가느냐, 가라지가 기본구원 그 영은, 가라지가, 가라지도 택했으면, 택했으면, 그 심신의 기능은 지옥 가지마는 택한 자라면 그는 천국 간다. 지옥과 천국은 택하고 불택, 택자 불택자에서 근거되고 거기 결정된다. 택자는 예수님이 대속을 했고 불택자는 예수님이 대속하지 안했기 때문에 거게서 구원 근거된다. 그러기 때문에 지옥 가고 천국 가는 것은 그것은 택불택에 있는 것이고, 택자라면 그는 건설구원만 지옥 가 버렸지 기본구원 영구원, 기본구원은 천국 간다 하는 요것을 이번에 좀 강하게 말했는데, 이제 슬기 없는 미련한 다섯 처녀에 대한 것은 벌써 설교록에 나가서 세계에서 지금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정죄받을 대로 받았고 또 연구할 대로 연구하고 이라는데, 이제 이것이 또 나갔으니까 이제는 됐다 하고 그렇겠는데 이것을 여러분들이, 지금 내가 꼭 옳다는 말 아닙니다. 나는 이렇게 깨닫고 나는 이래 믿습니다.
이래 믿으니까 만일 그것이 잘못됐다 싶으면은 그런 걸 ‘요런 면이 보면은 요런 면에 대해서 어쩌냐?’ 그런 것을 나에게 말해 줘서 내가 잘못된 걸 고치면 그 사람은 내가 평생 내 스승으로 모실 것이고 신앙의 지도자로 모실 것이고, 만일 또 그것을 그라면 내 연구 과제로 주니까 거기 대해서 또 나도 연구해 가지고서 틀렸나 옳으나 하는 걸 알게 될 터이니까 그런 것을 여러분들이 말해 주시면 대단히 고맙습니다.
그래서 둘째 사망의 해라는 것은 요한계시 21장과 20장에 있는데, 택자와 불택자를 망라해서 둘째 사망이라고 말한 것도 있고 불택자에게만 대해서 둘째 사망이라고 말하는 것도 있고 그렇게 요 구별돼 가지고 있는데, 그것만 알면 됩니다. 택자의 둘째 사망은 이 세상에 있을 때에 시작해 가지고서 영원 무궁토록 계속 됩니다. 불택자의 둘째 사망은 죽어 부활해 가지고 심판 너머 둘째 사망이 있는 것입니다. 지금 그들은 사망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 사망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원죄의 정죄에서 첫째 사망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첫째 사망을 예수님이 대신 받았기 때문에 그 첫째 사망은 끝나버렸습니다. 끝났기 때문에 우리는 새생명을 받아 가지고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속을 벗어버리면은 둘째 사망으로 돌아갑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주일학교 반사 선생님들께서는 공과를 다 외우도록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주일학교 반사 선생님들은 공과 꼭 외워야 됩니다. 못 외운 사람은 오늘 어떻게 하든지 외워 가지고서, 외워 가지고 내일 가르칠라고 이래 해야 여러분들이 은혜도 받고 요 깨달아서 능력도 받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