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5 14:17
교훈의 터
본문 : 히브리서 6장 1절∼2절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
도의 초보를 버리고 하는 말은 그저 예수 믿으면 구원 얻는다 하는 그런 전도를 받아 가지고 예배당이나 오고 예수 믿는다고 이름이나 가지고 그렇게 하면 그것이 예수 믿고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인 줄로. 이렇게 아는 그런 어린 신앙을 버리고, 어린 신앙을 버리고 이제는 장성한 신앙에 나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믿기 시작해서 이제 예수님 믿으니까 우리는 하늘나라 백성이요 또 우리는 영생을 얻은 구원을 받은 자라 이렇게 생각하고 예수 믿는 그런 "초보를 버리고" 이제 항상 거게 있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이제 구원을 실제로 이루어야 되는데 고 다음에 보면 `터를 다시 닦지 말아라, 새로 터를 닦지 말아라' 한번 터를 닦았으면 그 터 위에다가 죽는 날까지 자꾸 건축을 해야 되지 또 터를 닦아 가지고 건축 시작했다가 또 집어치우고 또 새고 터 닦고 또 얼마동안 그렇게 신앙 건설을 해 나가다가 다시 또 중단하고 또 새로 터를 닦고, 이런 집 짓는 사람들은 터를 닦아 놓고 집을 짓다가 일 년 뒤에도 또 지을 수가 있고 몇 달 뒤에도 지을 수가 있고 이렇지만 신앙 걸음이라는 것은 어제도 비유하기를 자전차 걸음이라고 말한 거와같이 신앙은 계속하면 계속이 되는 것이고 신앙을 중지했다가 그렇게 또 그대로 계속은 안 되는 것입니다. 또 새로 터를 닦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은, 하나 예를 든다고 하면 자기는 새벽 기도를 이제부터는 시작하겠다 했으면 새벽 기도를 시작했으면 새벽 기도를 계속해야 되지 이 새벽 기도를 시작하다가 또 새벽 기도를 치워 버리고 또 나오고 싶으면 얼마 나오고 하면 그런 사람은 새벽 기도의 그 터를 자꾸 또 새로 닦고 새로 닦고 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제가 형편에 새벽 기도 나을 수 있으면 나오고 없으면 안 나오고, 어떤 신앙생활이든지 자기가 신앙을 가지고 신앙으로 살다가 살 수 있을 때는 신앙으로 살고 신앙으로 살기 어려워서 살 수 없을 때는 또 그만 두고 그렇게 하는 그 신앙은 제 주관대로 사는 신앙이요 또 그 신앙은 성공이 없습니다.
언제든지 계속할라 할 때에 어려움이 닥치고 어려움 닥칠 그때에 자기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이제 그렇게 예수 믿는다는 이름만 가지면 되는 것으로 알고 하는 그런 어릴 때 신앙, 아주 초보라 말은 처음 초(初)자 걸음 보(步)자, 첫발자국 떼놓는 것이라 말이오. 그거는 처음에 예수를 처음 믿을 때에 떼놓는 걸음이라.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여게서 말합니다. 여섯 가지.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그러면 몇 가지입니까? 여섯 가지, 네.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 이 여섯 가지 교훈에 대해서 이 교훈을 버렸다가 또 시작했다가 버렸다가 시작했다가 이렇게 하면 안 되고 이 여섯 가지에 대한 교훈을 굳게 잡고 어디까지 나아갈 것이냐? 이 여섯 가지 교훈의 토대 위에서, 이 여섯 가지 교훈의 기초 위에서 완전한 데까지 성장하라. 완전한 데까지 네가 구원을 완성하라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첫째가 죽은 행실을 회개하는 것이 첫째입니다. 죽은 행실을 회개하는 것은 죽은 행실은 어떤 것이 죽은 행실인가? 그것은 예수님 믿지 안 할 때에 하는 행실은 다 죽은 행실이요 성경 말씀을 떠나서 성경 말씀대로 하지 안한 생활은 다 죽은 행실입니다.
그러면 과거에 우리가 예수 믿지 안할 때에는 전부가 다 죽은 행실이요 또 예수님 믿고 난 다음에도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것이 아 침에는 산 생활했다가 아침 먹고는 죽은 행실하기 쉽고 또 아침 먹고는 죽은 행실을 회개하고 산 행실 하다가 또 변할 수가 있고 자꾸 이래 변합니다.
그러면 죽은 행실은 어떤 게 죽은 행실인가? 죽은 행실은, 산 거는 무엇을 살았다고 했습니까? 산 것은 하나님과 연결된 것이 산 것입니다.그러면 죽은 행실은 어떤 게 죽은 행실인가? 신구약 성경 말씀을 떠난 행실이니 곧 하나님과 연결이 없는 행실입니다. 하나님과 연결 없는 행실이 죽은 행실입니다.
그러면 죽은 행실을 이걸 고칠려고 애쓰는 이것은 평생 죽을 때까지 힘써 가지고 자기에게는 죽은 행실이 하루 열 번 있다가 아홉 번 그 다음에는 여덟 번 이래 가지고 마지막에는 죽은 행실이 하나도 없고 산 행실로 계속하도록 이 일을 자꾸 힘을 써서 완전한 데까지 나아가도록 힘을 써라.
그라면 우리가 이 성경 가운데는 많은 말씀이 있는데 잘못하면 이 말씀 잡고 살라고 저 말씀 잡고 살라고 어째 이라다가 보면 잘못하면 한 지엽 곁가지, 외나 원둥치가 아닌 그 곁가지를 붙들고 거게만 치우쳐 가지고 실수하기 쉽다 그거요.
하나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은 `신앙생활하는 데에는 철야 기도가 제일이다' 철야 기도하는 그 철야 기도도 하나의 곁가지입니다. 하나의 조그만한 가지요. 또 어떤 사람은, 산기도 하는, 산기도 하는 그것도 외나 줄기는 아니고 곁가지입니다.
그런 거 하나를 거머쥐고 자기는 일생 동안 그만 거게 바쳐서 그것만을 전공으로 이래 하는 사람이 되기 쉽다 그저요, 그러기 때문에 물론, 고기 잡는 그물은 그 그물은 이 조그만씩하게 이렇게 맺어 놓은 고, 그걸 그물 고라 이라는 건데 고 그것도 그물은 그물입니다. 그러나 그놈만 거머쥐어 가지고는 고기를 잡지 못하고 일을 추지 못합니다. 고는 천 고고 만 고고 될지라도 거게 벼릿줄은 하나입니다. 그 벼릿줄 하나에 모든 그물이 달렸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성경에서 신앙생활하는 데도 벼릿줄 되는, 벼릿줄이 되는 교훈이 있고 곁가지 되는 교훈이 있기 때문에 벼릿줄되는 그 교훈을 거머쥐고 언제든지 거기서 자꾸 힘을 써 가지고 완전한 데까지 나아가야 됩니다.
그러면, 벼릿줄만 거머쥐고 댕겨 올리면 뭐 그물이 천 고라도 다 벼릿줄에 다 끌려 올라 옵니다. 그러면 요 원줄기, 이것을 가리켜서 기독교의 강령이라 이랍니다. 기독교의 강령이라. 강령이라 말은 벼릿줄이라 그말이오. 그물의 벼릿줄과같이 이 강령적인 것을 가리켜서 터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 터는 다시 닦지 말고 이 터 한번 닦았으면 이 터를 가지고 계속해라' 그랬는데 그 터 중에 어떤 것이 첫째 터인고 하니 죽은 행실을 고치는 거 그것이 이제 첫째입니다.
죽은 행실 고친다는 말은 하나님과 나하고 연결되지 안하고 하나님 잊어버리고 저 혼자 생각하고, 저 혼자 말하고 저 혼자 또 보고 저 혼자 움직이고, 저 혼자 기뻐하고, 저 혼자 욕심내고, 저 혼자 하는 그것이 전부 죽은 행실입니다. 죽은 행실입니다.
그러면, 사람하고 나하고, 저 혼자 아니라도 사람하고 나하고 단체가 돼 가지고, 우리 한국 민족하고 한 덩어리가 돼 가지고, 세계 인류와 한 덩어리가 됐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 있지 안하면 그저는 다 전부 죽은 행동입니다.
죽은 행동.
이러니까, 우리가 주님을 잊어버린지 안할라고 그저 주님을 자기가 생각하면서 주님하고 함께 동하고 정할라고, 그러면 주님 없이 자기 혼자 움직이고 또 주님 정하지 안하는데 저 혼자 또 정하고, 이렇게 하지 안하고 주님과 함께 움직이고 함께 정지하고, 주님과 함께 말하고 함께 듣고 함께 보고, 우리가 무엇을 볼 때에도 잘못하면 우리는 그런 실수를 많이 합니다. 이 뭣이 주님을 생각하고 내나 기도하고 있는 때도, 기도하고 있는데 무슨 소리가 꽝 나면 그만 주님 다 잊어 버려 버리요. 주님 다 잊어버리고 이제 꽝 하는 소리나면 그 소리에만 가 가지고 그 소리 뭐인가 그 소리를 향하고 주님 향하던 걸 잊어버린다 그말이오.
또, 우리가 이래 신앙생활을 고요히 이래 하다가서 어떤 사람이 옵니다. 어떤 사람이 오면 그만 주님도 잊어버리고 뭐 다 잊어버리고, 주님도 잊어버리고 대속도 잊어버리고 구원도 잊어버리고 심판도 잊어버리고 부활도 잊어버리고 전부 다 잊어 버려. 다 잊어버리고 그만 그 사람하고만 이래 얘기하다가, 그 사람하고 떡 얘기하다가 어째 하면 `아, 내가 주님 잊어버리고 이 사람하고 단 둘이만 지금 이래 하고 있는 이 죽은 생활하고 있다' 또, 그래 한 사람은 조금 정신 차린 사람이고 이제는 그 사람이 가 버리고 난 다음에, 가고 난 다음에, 그 사람하고 무슨 얘기했으면 얘기한 그 일 지금 하느라고 야단이고 주님 완전히 잊어 버렸다 말이오. 하루 종일도 잊어버리고 있어, 이라다가 인제 그거 다 할일 없고 다 마쳐지고 난 다음에 `이제 좀 기도 좀 해야 되겠다' 하면 그때사 이제 주님 생각합니다. `아이구' 주님 생각합니다. 또 주님 생각하면 `의례히 이게 신앙생활이다' 이것이 신앙생활이라 생각하고저 하는 사람 있고 `아, 이거 내가 오늘 종일 그만 주님 잊어버리고 이 죽은 생활했구나' 이것을 깨닫는 사람은 좀 깨닫고 아는 사람이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죽은 행실을 회개하는 것. 주님과 나와 끊어진 행실 한 그것을 내가 고쳐서 이제는 주님과 나와의 끊어지지 않고 연결된 생활을 계속하도록 하겠다 하는 요것을 우리가 힘을 써야 됩니다. 죽은 행실을 회개하는 요것이 우리의 구원 이루는 데에 벼리줄과 같은 강령적인 이 교훈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교훈을 놓지 말고 힘을 써야 됩니다.
제가 OO교회 거기서 일 년을 시무를 했는데, 일 년 시무하기 전에는 그렇게 했었습니다. 그 OO교회가 큰 교회고 또 그 지역이 넓은 지역이고 또 부강한 지역입니다. 이런 지역인데 교회가 아주 독교역자라도 훌륭한 교역자들을 보고 이랬는데 그만 그 다음에 교역자들이 시시하이 들어가 가지고 교회가 쇠퇴해서 교역자를 못 봐요. 그만 교역자를 안 볼라 해요. 교역자를 안 보고 저 딴 교역자 데려다가서 한 달에 한 번씩이나 와 달라든지 이래 가지고 그렇게 하고, 그런 교회가 됐다 말이오. 그런 교회가 됐는데, 내가 그때에 거창 있을 때에 보니까 그 교회가 마음에 안타까와서 이 교회를 내가 가서 할 수 있는 대로는 좀 도와야 되겠다 해서 도울라고 갔습니다.
가면 점심 먹고 나서면 도시락을 싸 가지고 가 가지고 거기 녹음지재를 넘어서 저 개울가에 가 가지고 저녁을 먹고, 저녁을 먹고 그래 인제 들어갑니다. 저녁 먹고 딱 들어가서 예배드릴 때 되면, 수요일이나 금요일이면 예배드릴 때 되면 거기 딱 들어가서, 이제 가면 아무 설교할 사람이 없으니까. 가면 설교를 해 달라 해서 내가 설교를 합니다.
설교를 하고 나서는 뭐 설교하고 가든지 말든지 그런데 한 두서너 번 설교하고 나니까 그 사람들이 아침 대접을 할라고 이렇게 인제 아침 대접을 한다고 식사하는 걸 내가 압니다. 그런데 나는 설교 딱 마치고 통성으로 기도하라 하고 난 다음에는 나는 빠져나와 버립니다. 이래 가지고 한 반년 동안인가 내가 거게 다니면서 그렇게, 밥 한 숟가락도 안 떠먹고 그래 다니면서 거기서 설교를 했습니다.
그라고 나니까 그들이, 인제 나를 거게 좀 교역자로 청할라고 하면서 이제 그 O장로님이라는 그 장로님이 그때 장로님인데 그 장로님이 와 가지고 떡 말하기를 `우리 교회서 지금 교역자를 모실라고 하는데 집사님이 좀 교역자로 왔으면 좋겠습니다.' 아라면서 이거 뭐 `데릴려면 머슴'은 많습니다.' 그래요. `머슴은 많습니다. 이 사람도 머슴살이로 올라하고 저 사람도 머슴살이 올라하고' 그 교회 인제 장로 집사들은 주인이고 이 교역자는 머슴이라 말이요. 머슴이라. 내가 있다가 말하기를 `그저 그 집은 인심이 좋고 재산이 있고 이러니까 머슴살이 올 사람이 많구먼요. 그러면 머슴을 어디든지 일 잘하는 머슴을 데리십시오. 나는 머슴으로는 가지 않습니다. 머슴으로는 가지 안하고 그 교회에 하나님의 사자로 그 교회를 맡아서 책임지고, 죽이고 살리는 그런 책임을 지는 주인으로서, 하나님의 대리 주인으로 모시면 내가 갈까 내가 머슴살이로는 안 가겠습니다.' 내가 이래 놨다 말이오. 그라고 나는 그만 거부해 버렸습니다.
거부하니까 그 뒤에 자꾸 연속적으로, 이제는 그걸 회개하고 이제 `우리 교회를 좀 책임 맡아 주십시오' 하도 그래 쌓아서 그때 내가 가 가지고 일 년 동안은 고게 있으며 일 년만 거기 있는 게 아니고. 일 년 동안 있으면서 네 교회를 보는데 한 달에 그 교회 가서 한 주간만 있습니다. 이 교회 가서 한 주간 저 교회 한 주간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네 교회를 그라는데 고 교회는 그때, 그때가 이만 원인가, 이만 원인가 얼마 보수를 받고, 이만 원인가 보수를 받고 다른 데는 무보수로 이래 네 교회를 내가 그때 시무했는데, 이만 원 받으면, 이만 원 그 봉투 받으면 고 봉투채로 내가 연보하고 했습니다. 한 푼도 내가 뭐 여비고 뭐이고 그 교회 돈은 내가, 일 년 시무해야 한 푼도 내가 쓰지를 안 했습니다. 그 뒤에 그 일 주간 있는 동안에는 밥은 거기서 얻어먹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일 년 지나고 난 다음에는 그 교회가 자립을 해서 그때부터는 교역자를 계속해 보게 됐습니다.
그때 넷 교회를 봤는데 넷 교회가 다 전부 자립해 가지고 교역자 보도록 그렇게 됐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그 O장로라 하는 그 부인도 은혜를 받았었는데, 받아 가지고셔, 자기가 이렇게 길을 가면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과 연결 안 끊을라고, 연결 안 끊을라고 `주님 주님' 이렇게 말하면서 자꾸 주님을 부르고 생각하면서 연결 안 끊을라고 이래 가다가서 그만, 가면 조그만한 개울이 있어 가지고 노디가 있습니다. 노디를 건너가야 되는데 노디를 건너가다가서 그만 주님을 잊어 버렸다 말이오. 노디 건너다 보니까 노디만 생각하고 주님 잊어 버렸으면 도로 돌아 와 가지고 여기서 주님을 찾아 가지고 노디를 건너가고 이랬을 때에는 그 가정이 부자가 되고 자꾸 잘됐다 말이오.
잘됐었는데, 그만 암병이 걸렸어. 암병이 걸려 가지고 인제, 그 교회가 합동측 교회로 넘어가 버렸어요. 이래 가지고 그만 신앙생활 못하고 하니까 암병이 들렸는데 나는 무슨 암병이라 말만 들었지 뭐 무슨 암병인지 내가 그거 물어 보지는 안했기 때문에 그 암병 무슨 암병인지 모릅니다.
이랬는데 먼저 대구 집회에 와 가지고 병이 나았다 말이오. 병이 나아서 암병이 완전히 나았는데 가 가지고, 가니까 아들이 있다가서 `지금 백파 이단파에 가 가지고' 그전에는 내게 은혜를 받았으니까 거기 왔다 말이오. 이단파에 갔다 왔다고 막 야단을 치고 조져대니까 이 사람이 `내가 야야 암병 들어 가지고' 그 아들은 뭐 대학을 시켜서 인제, 국민학교만 졸업했으면 그게 안 그런데 대학했기 때문에 그놈이 마귀 노릇할 줄 안다 말이오. 제법 할줄 안다 말이오.
이래 가지고 야단을 지기니까 `그러면, 내가 뭐 앞으로 거기 안 나가면 되지 않나? 내가 어디 거기 나가나, 집회 가서 참석하는 게 어떠노? 이래 가지고 이라고 난 다음에 암병이 다시 도져 버렸다 말이오. 암병이 나아 가지고 명달 동안 참 평안하고 아프치 안하고 암병 나으니 그만 몸도 건강해 좋아졌는데 고래 가지고 아들이 백파 가서 참여했다고 자꾸 이래 훼방하는 바람에 그만 '그러면 내가 인제 앞으로 거기 안 가면 될 거 아니가?' 요라고 난 다음에 암병이 들렸다.
말이오. 다시 재발이 됐다 그거요. 재발돼야 될 거 아닙니까? 재발이 됐는데,'그 뒤에 재발되고 난 다음에 그 부인이 왔어요. 부인이 왔는데 그 부인이 왔다고 나더러 역부러 왔으니까 기도한번 해 달라고 우리 교회서 누가 자꾸 소개하고 한 사람 있었는데 그게 누구요J 손들어봐? 옳지 O집사님이로구먼.
자꾸 이까지 역부러 왔으니까 기도해 달라고. `내가 기도 못 해 준다. 내가 무슨 힘이 있나? `내게는 눈에 눈물나는 것도 내가 고치지 못했는데 내가 무슨 힘이 있나? 하나님이 고쳐 주시는데 하나님이 고쳐 주시는데 내가 무슨 권리 있어서 내가 기도한다고 낫나?' 그거 월권이고 건방진 짓이야. 내가 못 해. 안 해 줬습니다.
안 해 줬더니만 그 다음에 장로님이 왔어요. 이제 기도 안해 줄 줄은 알고 `이번 집회, 대구 집회에 가서 참석을 지금 하겠는데 이번에 가 가지고 나으면. 뭐 그만 우리도 그만 그런 신앙 생활을 하고 이럴 터이고 나도 거기 참여하겠다' 자기네들은 그런데 뭐, 그들은 이 참여하면 대단한 사람이 참여하는 것으로 이래 보고 있습니다. 그라면서 `갈라고 하는데 어떻게 뭘로 갈랍니까? 이거 택시를 태여 줄랍니까 버스를 태여 줄랄니까?'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 말해요. 그래 내가 있다가,`그거는 요량해서 하시이소. 여게는 혹 좌석이 있으면 타고 갈 것이고 좌석이 없으면 못 타고 갈 겁니다.' 그라며 내가 `뭐 그라면 올라면 택시를 타고 모든지 뭘 하든지 오십시오.' `택시는?' `모르겠습니다. 택시는 아마 탈라하면 한 오만 원 주면 탈 겁니다.' 오만 원이면 돈이 많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 오기는 왔어오. `저도 가서 참여하겠습니다.' 장로님도 왔어요.
왔는데 내가 그 병난 그걸 물어 볼라고 말이지 그 사모님에게, 장로님 사모님에게 묻기를 `그때 주여 주여 하면서 돌다리 건너가다가 주님 잊어버리면 도로 되 와 가지고 주님 찾아 가지고 건너간 거 그짓한 것 압니까?' 깜깜하게 몰라. 그 부인이 모른다 말이오. 그때 신앙 생활한 걸 전연이 그 것을 모르기까지 잊어 버렸기 때문에 세상에 푹 빠져 가지고 세상만 생각하지 그걸 전연이 잊어 버렸어. 그러니 병이 들어야 될 거 아니야.
모르기 때문에, 내가 장로님도 이걸 모르는 가. 뭐 온 교인들이 다 알았으니까.
그분이 돌다리 건너가다가 그랬다 하는 그걸 다 뭐 맡아 나서 온, 교인들이 안다 그거야. 내가 장로님한테 물었어. 장로님 그때 그렇게 한 거 아닙니까? 안다고.
장로님은 알고 있는데, 이 사람은 그걸 모르기까지 빠져 버렸어. 그렇게 예수 믿는 도를 잊어` 버렸다 말이오. 그러니까 암병이 들어야 될 거 아닙니까? 죽어야 될 거 아닙니까? 하나님이 죽이지 안하고 그래도 냅뒀는데 이번에 대구에서 나았는지 안 나았는지 그거는 모르겠습니다. 그 뒤 지금 소식은 내가 못 들었어.
못 들었는데.
죽은 행실을 회개하는 요것도 하나 교훈의 터입니다. 교훈의 터가 몇 가지라 했어요? 여섯 가지인데 이 터 중에 하나라 말이오. 하나인데 죽은 행실을 회개한다는 것은 죽은 것은 하나님과 끊어진 것이 죽은 것이요 산 것은 하나님과 연결된 것이 산 것 아닙니까! 우리가 얼마나 많이 배웠습니까? `생명과 경건에 속한' 생명에 속한 복이 뭐인가? 하나님과 연결된 복이라고, 하나님과 연결되면 삽니다. 피조물이 조물주와 딱 연결돼 가지고 있으면 그거는 없는 가운데서 만들기도 했는데 만들어진 것을 살리는 것이야 문제가 뭐 있겠습니까? 이러니까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지는 요 행실을 안 할라고 자꾸 애를 쓰는 거라.
그러면, 우리가 이 신앙생활 하는데 신앙생활은 아무나따나 되는 게 아니고,신앙생활은 뭘로 하느냐 하면 신앙생활은 우리 영은 벌써 하고 있고 우리 심신이 신앙생활하는 것인데 우리 신앙생활 하는 것은 뭣을 행동으로 신앙생활합니까 마음으로 신앙생활합니까? 마음으로 신앙생활해요. 마음으로 신앙생활하면, 마음으로 신앙생활 하면 이 마음이 들어서 고기덩어리로 또 신앙생활 하도록 만들어요.
이러니까.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할 때에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그 사람이 대답 하기를 뭐라고 했습니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였습니다.' `이라니까 주님이 그 대답을, 영생 얻는 방법을 바로 대답했다고 했소 잘못 대답했다고 했소? `네 말이 옳도다' 이렇게 말씀했다 말이오. 그러면, 목숨 바치는 것보다도 뭣이 먼저입니까? 마음이 먼저라 말이오.
마음.
이러니까 `죽은 행실을 회개하는 것' 내 마음으로. 내가 마음을 가지고 주님과 연결된 내가 행실을 하나? 주님과 연결된 행실인지 주님과 연결이 끊어진 행실인지, 주님 잊어버리고 내가 행동한 것이냐? '내가 이 시간 지금 내가 아무것이와 얘기했는데' 주님 잊어버리고 이 사람하고만 얘기했다 말이오. 그러면 그 사람이 저를 죽 이든지 말든지 그 사람하고 상대했지 주님하고는 상대 없다 말이오. 주님하고 나하고 들어붙어야 이게 사는 건데, 주님하고 나하고 들어붙어야 영생이 되는 건데 주님 잊어버리고 그 사람하고 나하고 둘이 들어붙었으니까 죽든지 말든지 그 사람하고 둘이 관계지 주님이 무슨 관계 있소! 그러면 주님 잊어버린 생각이 살 수 있으며 주님 잊어버린 말이 살 수 있으며 주님 잊어버린 행동이 살 수 있으며 주님 잊어버린 계획이 살 수 있으며 주님 잊어버린 기쁨이 살 수 있으며 주님 잊어버린 욕심이 살 수 있으며 주님을 잊어버린 소원이 살수가 있겠는가? 없습니다. 이러니까, `죽은 행실' 주님 잊어버린 언행심사의 이 행동, 요놈을 고칠라고 애를 쓰는 요것이 죽은 행실을 회개하는 것이라 그거요. 요것을 첫째로 해야 돼요.
그러면, 오늘 아침에는 많이 배우지 말고, 그 다음에 여섯 가지니까 여러분들이 가서 읽어보면 돼.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이걸 자꾸 `하나님께 대한 믿음' 내가 하나님의 전능을 믿나. 전능을 믿나? 전능을 믿으면. 하나님의 전능을 믿으면 하나님의 시키시는 대로하는 그 일은 천하가 반대해도 전능을 믿는 다면 전능자가 시키는 대로 하니까 당신이 책임지고 해 주실 것 아닌가? 그러면. 자기 모든 전 생활에서. 하나님의 전능을 내가 믿나? 아이고 내가 안 믿었다. 또 안 믿었으니까 또 회개하고.
하나님의 전지를 믿나? 내가 전지를 믿는데 하나님이 보는데 이따위 짓을 하는 것이니까 하나님의 전지를 안 믿고 `하나님은 봉사라 소경이라. 하나님이 보겠나? 우리 둘이 속닥속닥하는 것이야 하나님이 보겠느냐?' 이렇게 하나님이 보지 못하는 줄로 이렇게 알고 있지. 또 자기가 무슨 말을 둘이 속닥속닥 이래 하면서 하나님의 종들을 훼방하든지 하나님의 도를 훼방하든지 저거끼리 뭐 좋아서 주고받고 이렇게 높입니다. 이놈은 저놈 높이고 저놈은 이놈 높이고 이놈은 저놈 헐고 이놈은 또 다른 사람 헐고 `저놈은 어떻고' 헐면, 이 사람이 `보자. 이 사람이 아무것이를 칭찬하면 좋아하겠나 헐면 좋아하겠나' 안다 그거야. 이러면 둘이 만나 가지고 그 사람이 헐면 좋아하는 사람만 자꾸 헐어 재낍니다. 헐어 재끼면 좋아서 그래 그래 옳지, 옳지, 그래, 그래, 맞았어, 맞았어. 또, `이 사람이 누구를 칭찬하면 좋아하겠느냐' 인간 기쁘게 하는 게 그게 순 간교한. 간교한, 간사한 간신이라 말이오. '누를 칭찬하면 좋아하겠느냐' 누를 칭찬하면 `그 사람 참 그래' `그 사람 또 아무것이 그 사람도 참 좋아요.' `그래.' 저거끼리 이와같이 논인 장단을 하는데 모든 것을 심사해 가지고 말 한 마디도 빠짐 없이 요것을 다 심사해 가지고 영원한 형벌로, 또 말 한마디도 검사해 가지고 복을 확 깎아 버리고 말 한 마디에 복을 푹 주고 이렇게 심사해서 딱 보고 있는 이분을 귀가 없는 줄 안다 말이오. 귀가 없는 줄 알아. 이분의 귀가 없는 줄 아니까 이거 안 믿는 거라 그거요.
그러니까 주님을 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거, 믿지 않는 요 행동을, 요것도 안 믿는 행동이다. 요것도 안 믿는다. 안 믿는 행동 이걸 자꾸 고칠라고 애를 씁니다.
이것도 강령 중에 이 벼릿줄, 강령 중에 몇째 것이라요? 둘째 것이라 말이오.
그러면 이제, 첫째 것만 기억하고 둘째 것은 조그매만 내가 가르쳤고, 이러니까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요것을 잡고 어디까지 잡고 나아가기를 "완전한 데 나아같지니라" 완전하기까기 자꾸 힘쓰고 힘쓰고 이라면 됩니다. 요다음에 계속해서 고 여섯 가지를 증거해 주겠습니다.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오늘 아침에는 `죽은 행실 회개하는 거' 이제 그것을 자꾸 연습해요. 그만 설교 들어도 주님 잊어버리고 설교 듣습니다. 설교할 때도 주님 잊어버리고 설교하기 쉬워. 설교도 주님 잊어버리고 설교하기 쉬운데 다른 거야 의례히 그럴 거 아닙니까? 전도해도 주님 잊어버리고 전도하기 쉽고 또 사람 모든 대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듣는 것도, 사람 오면 그만, 사람 오면 그만 주님 집어던져 버리고 그만 그 사람하고 둘이 단짝이 돼 가지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뭐 중얼중얼합니다. 주님을 몇 버리지 말아요. 주님 버리면 죽습니다. 주님이 우리 생명이라. 생명 떠나면 죽지 않습니까?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주님 떠나면 죽어요. 떠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