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5 14:06
교회의 단일성
1984. 1. 29. 주전
본문: 에베소서 1장 17절∼23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런는 모든 이를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많은 설교를 하지 아니할 것은 그는 암만 말해 봤자 자기 간절한 마음과 양심과 영감으로서 알아질 수 있는 것이고, 또 자기가 간절한 마음에서 실행하는 그, 실행에서 조금씩 체험과 경험에서 알아질 수 있는 인간의 방언으로 표시할 수 없는 그런 이유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그 성경에 있는 대로밖에는 말을 못합니다.
그러므로 본문을 읽을 때에 자세히 듣고 각자들이 깨닫도록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 타락한 이 세상에 있는 그런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고 또 그런 수준에 있는 것은 우리들이 잘 깨달을 수 있고 들을 수 있지마는 이것은 땅에 있는 것이 아닌 그런 것은 땅에 것 무엇으로 이와같은 것이다 그렇게 말해 봤자 그것은 이유도 딱 들어 맞는 비유는 되지 못하고 비슷한 그런 비유가 되기 때문에 그게에 대해서 알고자 하는 것은 자기의 간절한 신념과 양심을 써야 알아지지 그렇지 안하면 알지 못할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17절로부터 읽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이런 말도 어렵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천 인이면. 천 인 만 인이면 만 인, 그 아는 것이 깊이와 넓이와 높이와 길이가 각각 다릅니다. 아는 지식의 양이 다 각각 다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는데 대해서도 일생동안을 노력을 하고 무궁세계에 가서 영원히 노력을 해도 알아 갈 것이 남아 있고. 또 앎으로 얻을 혜택이 남아 있는 그것을 가리켜서 믿음과 사랑 소망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요런 말은 잘 알 수 있는 말입니다. 마음의 눈을 밝힌다 말은 마음이 밝아지면, 마음의 눈이 밝아지면 양심이된다 말이요. 마음이 어두워지면 그것은 다 타락한 어두운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부른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믿는 생활 출발케 하는 것을 가리켜서 부르심이라 그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중생된 것은, 그것은 우리가 부름받은 거 아니고 부름받기 전에 벌써 하나님께서 중생을 시켰고, 중생시킨 자가 이제는 자기 주관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이 구원을 알기 시작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부름을 받았다 그렇게 말합니다. '부름의 소망이 무엇이며' 우리가 예수님 믿도록 하신 이 믿는 자의 소망이 무엇이며,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우리 믿는 자들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지극히 큰 소망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이 소망도 사람들이 다른데 분주하고 이 소망에 대해서 연구하지 않기 때문에-자기에게 지극히 보배로운 소망이요 땅에 있는 소망은 그것만 가지면 다 멸망으로 다 화해지지 소망이 못되고. 땅에 있는 그 모든 소망들도 하늘의 소망에 연결을 시켜서 그 죽은 소망을 살려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렇게 귀중한 소망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소망해 봤자 또 죽음으로 바꾸어지고 하는 그런 썩고 죽은 그런 소망만 보배로 여겨서 사람들이 연구하고 있습니다. 참 세상 모든 걸 연구해서 뛰어난 그 두뇌와 명철과 정력을 가지고 이 부르심의 소망을 연구한다면 얼마나 자기도 복되고 다른 사람도 복되게 할 터인데 썩은 것을 소망하고 연구하는 그 주력과 영원한 것을 소망하고 연구하는 주력과는 천지 차이가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얼마나 거짓되 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 안에서' 성도 안이라 그 말은 교회 안이라 그말입니다. 성도 안이라 말은 교회 안이라 말이요,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업을 받는 것, 마치 자녀가 부모에게 기업을 받는 것처럼 자존하시고 완전하시고 전지전능자이시요 대 주재자이신 영계와 물질계의 주재가 되신 창조주가 되신 이분에게 받을 기업이 얼마나 영광스러우며.
세상에서는 영광스러운 기업이 하나도 없습니다. 왕이 왕, 그, 기업을 자손에게 물려 줘도 거기에 는 영광으로 칭찬하고 존대하는 사람도 있지마는 그 반면에 욕하고 미워하고 그것을 어떻게 힘만 있으면 깨뜨려 버릴려는 그런 적들이 많지 영광스러운 그런 기업은 없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자기가 수많은 재벌을 가지고 있어서 그 재벌을 가졌으니까 자손에게 주면은 그 업이 영광스러울 줄 알아도 거기에 대한 대적과 원수가 많고 욕하는 사람이 많지 영광된 기업이 없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지식을 가져서 그 지식은 전인류가 칭찬하는 노벨상을 받은 그런 지식이라도 그 지식은 다 영광을 돌리는 줄 알아도 그 지식을 깨뜨려서 박멸해 버리려는 그 지식의 대적들이 얼마든지 숨어 있습니다. 있다가 때가 되면 그 지식을 밟아서 쳐 넣고 자기가 올라서는 그런 것이 세상 지식입니다. 그래 세상에는 영광스러운 기업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시는 이 기업은 영광스러운 기업이요 또 영광이 말 할 수 없는 풍성한 기업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에게 얻은 바의 이 기업은 참, 사람이 생각할 때에는 그러츰 불쌍하고 가련할 수가 없는 그런 방편과 형태를 가졌지마는 그 실상인즉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땅아래 물속에 있는 것 모든 것이 다 영광을 돌린 그 결말을 이루고 말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이런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어떤 것인지 우리의 마음의 눈이 밝아져야 할 터인데 마음의 눈이 밝아진다는 것은 우리가 양심을 써서 이렇게 알아야 할 터인데-양심이라는 것은 아무 것에게도 매이지 안한 것이 양심입니다. 양심이 화인 맞았다 말은 어떤 사람은 그 마음이 돈의 화인을 맞아서 그 마음은 전체가 돈 위주로 돈에게 속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돈으로 말미암아 돈만 알지 돈 위에 전체를 바로 정견 정평, 정가 할 수가 없게 된 그런 것을 가리켜서 양심이 화인 맞았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아무 데도 속하지 안하고 자기가 죽는 일이나 사는 일이나 망하는 일이나 흥하는 자이나 어짜든지 그것이 영원히 옳고 바르고 참된 것을 평가해서 그것을 비판해 낼 수 있는 그것이 양심인데 우리에게는 그런 양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양심이 다 화인을 맞아 가지고서 어두워져 있는데 그 마음의 눈을 밝히사 양심을 살려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하나님의 전능하신 그 힘의 강한 역사로 '역사하심을 따라' 하나님이 엿새동안에 우주를 만드신 그 능력이 전력을 가울여 가지고서 역사하심을 따라 우주를 만든 것은 엿새동안에 다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업을 주시고 이 기업을 가진 자가 되고 이 기업을 누릴 자가 되고 이 기업을 잘 운영할 수 있는 그런 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그 전능 전지의 하나님으로서도 이 일을 시작해서 오늘까지 하는 것이 약 육천 년이 됐지마는서도 아직까지도 미완성입니다. 미완성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주님이 재림하시지를 못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 이렇게 가치있는 역사하심을 따라 우리에게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인데 이것을 우리가 택함을 입어 가지고서 지극히 큰 소망으로 얻었는데 이것은 무시하고 엿새동안에 만든 것의 쪼가리중의 쪼가리 싶억억만 분의 일도 안 되는 것 그것을 바라보고 거기에 만 전심전력 기울입니다. 그래 가지고서 하나의 눈꼽재기만한 그 면적을 차지했으면 나는 중공에 제일 유권자 제일 정권자다 제일 유권자다. 또 무슨 소련에 그렇다 미국에 그렇다 하는 그런 것이 알고 보면 하나님이 지으신 우주 가운태에 그까짓 거야 뭐, 눈꼽재기만한 것이 아니라 그걸 뭘로 비유할까요? 한쪽 눈 그걸 가지고서 시비하는 것이 불쌍하고 가련하다 그말이요.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우리가 이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하나하나 인도하시는 그 인도를 따를 때에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이 모든 계약으로 선포해 놓으신 이 계약을 사실인 이 사실을 인정하고 이 사실을 실상으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에게 하나하나 인도 하실 때에 그 인도를 따르면 지극히 큰 능력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서 역사해서 인간이 상상도 못할 과연 잘난 사람이 죽자껏 해 봤자 온 지구 땅덩어리도 다 불과 한 몇십 년도 그것을 주권하지 못하고 이 지구 땅덩어리보다 큰 것이 이 우주 안에는 억억억 억억억만도 더 될 수 있는 그런 것이 많은 숫자가 이 우주 안에는 쌓여 있습니다. 이런 것을 다 자기의 기업으로 받아서 자기 것으로 영원히 통치할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이 지극히 큰 하나님이 주신 이 기업을 이룰 수 있는 이것이 지극히 큰 능력이. 인정하고 하나하나 순종하면 이 일이 달성될 수 있는 건데 이것을 우리가 모르기 때문에 이것을 알기 위해서 성령이 역사하시고 성령이 기도하고 계십니다.
'지극히 크심을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한다' 하는 것은 성경기자 바울이 알기를 구한다 하는 것인데 성경기자는 사람이 아는 대로는 이 성경을 기록한 것이 사도 바울이지마는서도 이 성경을 기록한 그 실상은 하나님의 성령님이 기록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록했습니다. 이러니까 이 바울이 구하는 것은 바울의 그 개인이 구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성령이 구하는 것을 바울을 하나님께서 당신의 신비한 그 지체로 삼으셔 가지고서 지금 말씀하는 것입니다.
20절에 이 큰 능력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서 인정하고 순종만 하면 이 큰 역사를 성허할 수 있는 이 능력인데 이 능력이 우리에게 오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는가, 우리에게 오기 전에는 이 능력이 어떤 일을 했는가? 20절에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우리에게 오기 전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 능력이 역사했습니다. 역사해 가지고서 그리스도로 완전 성공을 완성하게 하시고 난 다음에 완성한 그 성공을 인해서 우리가 구속을 받은 우리들에게 이제는 이 능력이 우리 속에 와서 역사합니다. 믿기만 하면 믿는 그 행위 속에서 역사하고 믿는 마음 속에서 역사하고 믿는 그 인격 속에서 믿는 그 속성 속에서 믿는 그의 모든 비판과 평가 속에서 이 지극히 큰 능력이 역사해 가지고서 일차적으로 역사해서 창조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완성이요, 완성한 그 공로를 통해서 우리가 살게 됐는데 그 공로를 입힌 그 이차적으로 입헌 자에게 와서 역사해 가지고서 온전함을 이루려는 것이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요 입장이요 위치입니다.
그러면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그러면 이 능력이 예수님에게 와 가지고서 무슨 일을 했는고 하니 저 하나님의 지극히 존영한 데서 가난해 지시고 낮아지시고 그래서 창조주가 사람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하는 데까지의 이 일을 누가 이렇게 했느냐? 지극히 큰 능력이 들어서 이 역사를 이루게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하나님이 사람되신 그 역사도 이 역사가 사람되게 했습니다. 이 능력이 사람되게 했습니다. 이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인데 전능한 능력이요 사랑의 능력입니다.
사랑의 능력이 들어서 이렇게 예수님을 지극히 부요하고 높으신 데에서 낮아지시고 가난해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의 그 과정을 완성하게 하는 것이 이 능력이 완성하게 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에게 와 가지고서도 무슨 일을 하는고 하니 그 첫 열매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 예수 그리스도만 못하지마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가난해 지시고 낮아지시고 죽어지시는 죽어지는 이런 모형적 완성을 우리에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 능력이 와서 있습니다.
지금도 어떤 그 참 선지 사도들이나 또 선교사들, 모든 성자 성녀들, 그 분들이 자기의 얼마든지 가진 것과 가질 수 있는 그 부요와 영광과 존귀 그런 것을 이것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하나님을 위해서 모든 멸망 가운데에 있는 자를 구원하기 위해서 이 모든 것을 다 희생하고 낮아지고 죽어지고 예를 들면 자기가 어떤 지위 권세에서 그 권세를 백 가지를 쓸 수가 있는데 백 가지 쓸 수 있는 그 권세를 분명히 쓸 수 있는데 그 자리 있으며서 그 권세를 자기가 쓰지 안하고 그 권세를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완전히 그 권세를 다른 사람 구원하기 위해서 희생하고 자기는 권세를 한 번도 써보지 못하는 이것도 이 능력이 와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이 능력이 와 가지고서 또 자기가 자기의 선진국과 부강한 그 존영한 그 국민 그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 그 자리를 내버려 두고서 미개국에 가 가지고서 알아주지도 못하는데 일생동안을 천대와 박해와 멸시를 받으면서 알지 못하는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일생을 바쳐서 예수님의 그 모형대로 가난해 지는 거 낮아지는 거 그 원수를 위해서 죽어 구원하는 이 역사를 한 그 모든 것이 이 능력 받아 가지고서 이 능력이 와서 역사해 가지고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 안에서 이 능력이 역사했고 이차적으로 인정하고 믿는 자 속에서 이 능력이 역사해 가지고서 예수님의 모형과 같은 말하자면 알기 쉽게 말하면 새끼 예수를 만듭니다. 새끼 예수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그 새끼 예수를 만들아서 이래 가지고 예수님과 같은 그런 자를 만들어 죽는 일과 또 죽는 일 또 사는 일, 그러면 죽어서 거기에 서 구출하고 또 이 하나님이 사람으로 다시 부활하심으로서 이는 영원한 희생이요 영원한 봉사요 영원한 희생이라, 영원한 희생으로서 영원히 이것을 법적문제를 해결해 놓고 실상으로 이 구원을 받아서 누리면서 영광되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 또 희생하는 이 일을 예수님께서 하신 것이 부활하신 이 지극히 큰 희생, 예수님이 십자가 못박혀 죽으심까지의 그 과거 그 중량과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서의 영원한 그 희생의 사랑의 중량과 중량이 꼭 같습니다. 중량이 꼭 같고, 우리에게 오는 혜택이 꼭 같습니다. 이것을 다 누가 했나? 지극히 큰 능력이 하셨습니다. 하시고.
이라니까 평가적으로 모든 만물이 제일 투표합니다. 모든 존재들이 자 누구를 누구를 우리의 통치자로 세울 것이냐? 누구를 제일 주권자로 세워야 되겠느냐? 누구에게 너는 속하겠느냐? 누구의 다스림을 받겠느냐? 누구를 의지하고 누구를 바라 보겠느냐? 누구의 그 품에 안기겠느냐? 할 때에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 하는 자와' 이것은 영계도 정사가 있고 권세도 있고 또 능력도 있고 이 우주에도 있고,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그러면 이 모든 것을 이제 통치적으로 지위적으로 모든 것을 다 점령해서 그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이거는 능력을 말했기 때문에 권세를 말합니다. 만물이 다 발 아래 다 복종하게 하시고 복종이라는 이것은 강제적 복종이 아니고 자원하는 복종을 말을 합니다. 빌립보 2장 9절에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요것까지를 이제 여기에 말한 것입니다. 에베소 1장 21절 이하에는 요와같은 말입니다.
그 다음에 더 보면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고' 이것은 이제 강제성이 아니고 강제성이 아니고 평가성으로 평가성으로 과연 거기에 다가 머리 숙여야 되겠다 제일 존대하고 제일 높이 평가하고 거기에 다가 복종해야 되겠다 하는 그걸 말하고, 그 다음에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여' 이것은 강제도 아니고 거기에 평가적도 아니고 감화적으로 참 감동되어 가지고서 모두 감사해서 영광을 돌리고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나니라' 그와같이 된 그것이 참 감사해서 견딜 수 없는 그 감격적으로 이 지위와 영광을 점령한 것을 가리켜서 여기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하는 여기에 까지는 요 성구만 보면 이것도 강제적으로 그 억압하고 권세 있는 것이 권세 없는 것을 누르는 것같이 그렇게만 보여지기 쉽습니다. 이 세상 법칙과 비슷하게 그렇게 보기 쉽습니다. 그러나 빌립보 이제 2장 9절 이하에 보면 그게 아니라 그거요. '그를 만물위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이러니까 교회는 만물위에 있고 또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안에서' 만물안에서 말은 만물보다 더 으뜸되고. 여기 '안'이라는 말은 마치 몸 안에 우리 마음이 있고 마음 안에 생명이 있는 것처럼 만물 안에서 만물 안에서, 마치 마음이 몸 안에 있는 거와같이 만물 안에서 마음 안에 그 속에 생명이 든 거와같이 들어 있는 거와같이 그렇게 우리 교회라 하는 것은 만물과 그 위치가 만물은 그 외부에 있고 만물보다 더 온전하매 가치적으로 그 안에 있고 권위적으로 그 안에 있고 모든 평가적으로 그 안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그 안에는 누가 계시는가? 그 안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또 이래서 위에 있다 하는 그것도 우리가 알아듣기 위해서 위에 있다 아래에 있다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만물 안에서' '교회는 그의 몸이니' 교회는 그의 몸이니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우리가 어디에 있느냐 만물 안에 있고 하나님은 우리 안에 계십니다. 이래서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셔 가지고서 모든 하나님의 온갖 충만에 온전함이 교회에 이렇게 퍼져 나오고 발휘해 나오는 것처럼 이제는 교회는 또 만물 안에 있어 가지고서 하나님의 그 온갖 온전하고 충만하고 그 생명의 모든 것에 풍성함을 하나님은 교회에다가 교회 안에서 교회에게 충만케 하시고 교회는 그 충만을 받아 가지고서 만물들에게 충만케 하는데 뭘로 충만케 하느냐 하나님이 그 만물에게 충만하신 그 모든 거와같이 만물에게 충만케 하신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만물을 충만케 해서 없는 가운데는 하나님이 만드셨지마는서도 만들어 놓은 그것을 이제는 하나님의 것으로 보존하고 영원히 충만하고 점점 무한한 그 소망을 향하여 향상하고 성장돼 나가는 것. 그러기 때문에 소망은 영원히 있다 그랬습니다. 소망은 끝이 나지 않습니다. 그 역사를 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 말을 기억하십시오. 22절에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위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두셨나니, 요걸 기억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 입니다. 또 '교회는 그의 몸이니' 교회는 그의 몸입니다.
이 비유 아닙니다. 이 비유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요새 여러날 동안을 계속하고 있는데 오늘 주일 공과를 가르칠 때에 2층에서 통반 공부를 할 때에 부장이 말하는 말을 그렇게 발표합디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머리가 되시고 우리는 그의 몸이 되신 것을 그 비유하시기 위해서 모든 생물들의 머리와 몸을 만드셨으니 이것이 곧 자연계시라 그 말은 안붙였지마는서도 그런 뜻을 깨닫고 그것을 가르치기 때문에 제 마음에 마음에 좋았습니다. 이래도 뭐 안될 것 같은데도 그래도 뭘 알아 들어서 깨달아 가지고서 그걸 발표하는 것 보니까 이 생물들의 머리와 몸의 그 밀접하고 머리의 작용이 그 몸에 퍼져가고 몸이라 하는 것은 머리에서 발원된 그 모든 작용으로 말미암아 이것들이 움직이고 살고 있다는 요 조직 요것을 한 것은 요것을 해서 하나님과 우리와의 그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맺어진 그 밀접한 관계가 어떠한 것을 이것을 알리기 위해서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이 생물이라 하는 것을 창조해서 머리와 몸와 그 오묘한 그 이치를 해 가지고서 그 이런 것의 이치로 비교할 수 없는 무한의 그 머리와 몸됨의 그 무한함을 알려주는 하나의 그 계시 이용물로 이렇게 만드셨다 하는 그것을 못 알아 들었는 줄 아는데 알아 들어서 그걸 가르쳤습니다. 다른데서는 그걸 들어 보지는 못했습니다. 여기에 지하에서도 1층에서도 4층에서도 들어 보지를 못했는데 거기에 서 그것을 가르쳐서 가르치는 걸 볼 때에 그거 대단히 좋았습니다.
그런고로, 요게서 여러분들이 요래 알고 자꾸 기도하고 생각하면 영감이 와서 가르쳐야 되지, 인간의 말이라 하는 것은 이거 둔한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어짜든지 교만해서, 신약 성경은 그 원어가 헬라어로 돼 가지고 있고 구약 성경은 원어가 히브리어로 돼 가지고 있는데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공부한 사람들은 원어를 공부하는 것이 제일이지 원어만 하면 다 되지-원어 아닌 딴-원어 모르는 사람은 그거 목사도 아니고 뭐도 아니지 아무 것도 아니다. 이래 가지고서 그게 벌써 교만이 됐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성령이 역사할 리는 없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서 원어를 짝 한마디 내놔야 권위있는 줄 알고 또 그것도 자랑할 줄 알고 이래 가지고서 원어 박사는 원어 박사는 불신자라도 원어 모르는 독실한 목사보담 훨씬 성경을 잘 안다 이런 말까지 크게 과오를 범하는 발언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어는 옛날, 지금으로부터 벌써 수천 년 전 옛날 미개할 때의 미개의 고전어입니다. 미개의 방언이요, 지금 말은 그때 요량하면 몇십 배 발달된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로 가지고서 표시할 수 없는 그것을 이제 영감으로 알려주기 위해서, 그거는 마음의 눈을 밝혀서 양심을 쓰면 성신의 감화가 와 가지고서 알려 줘서 알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문자로된 이것을 아무리 제가 통달한다 할지라도 양심을 써서 영감으로써 영감계시. 영감이 보여 주는 거, 은밀계시 그것을 모르면 헛일입니다. 만물박사가 됐다 할지라도 만물로 알게 하는 그 앎에 알맹이 되어 있는 이 특별 계시 문서 계시를 모르면은 그 사람이 아는 것이 그게 다 거짓노름 하고 있지 바로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문서계시를 안 다 할지라도 그 속에 영감계시를 받지 못하면 그것도 또 껍데기요 또 바로 아는 거 되지 않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성경이 말하기를 성경을 배우는 것을 배워야 되지마는서도 네가 지금 어떻게 해야 되나 네가 행할 진리는 다른 사람에게 배우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이 가르쳐 주지도 못한다 네 속의 기름부은 성령이라야 너희에게 가르쳐 주신다 이렇게 성경이 말씀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말씀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머리시라 또 우리는 그의 몸이라 만물은 우리를 싸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계셔서 전능 전지자 완전자, 무한자 그분이 우리 안에 계셔 가지고서 형체가 없는 무형으로 그 속성과 사랑과 지혜와 능력으로만 우리 안에 계셔 가지고서 작용하는 그것이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는데.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서 어디로 가느냐 하면 만물에게 가니 그것이 만물의 생명이요 만물의 평강이요 만물의 영광이요 만물의 존귀요 만물의 행복이라 이렇게 이 우주와 모든 존재가 요렇게 조직적으로 요렇게 딱 돼 가지고서 있습니다.
또 한번 봅시다. 로마서 12장 3절로 5절로마서 12장 3절로 5절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는다' 그말은 이 성경을 기록한 영감으로 말미암아 그말입니다. 영감은 곧 하나님의 마음이요 하나님의 감동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은혜로 말미암아 하는 그말은 영감으로 말미암아 말한다' 그말입니다. 영감으로 말한다 말은 성령이 말한다는 말입니다. 영감으로 말한다는, 성령이 말한다는 말입니다. 요런데 사람들이 성령과 사람과 그 사이에 경계를 둬 가지고서 이제 성령의 감화 받은 사람들이 말한다 또 그 원리 원칙적으로 대충적으로는 성신의 감화로 된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전체는 그렇지 않다 이래 가지고서 논단이 많이 있습니다.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을 품지 말고'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을 품지 말라 그말은 하나님께서 이 영감과 진리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요대로 해야 되지 그 이상 제 자율 자기 주장대로 이래 가지고 주관대로 이래 가지고서 이렇게 저렇게 그렇게 지식하거나 개혁하거나 판단하거나 평가하거나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이 사람을 이렇게 인도하시고 저 사람은 저렇게 인도하시고 이 사람은 이것을 가르쳐 주시고 저 사람은 저것을 가르쳐 주시니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것은 네게 필요해서 가르쳐 주시고 또 저 사람에게는 가르쳐 주시지마는 네게 가르쳐 주시지 안한 것은 네게 필요 없기 때문에 가르쳐 주지 안하고, 또 저 사람에게는 저리 인도하시고 너는 이리 인도하는데 왜 그리 인도하는가 그 사람에게는 그리 인도해야 그 사람의 구원이 이루어지고 너는 이렇게 인도해야 네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니까 하나님이 너에게 알려 주는 그것으로서 감사하고 만족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만족해서 뿍뿍 알려 주는 거 확신하고 그 다음에는 네가 그대로 순종하고 실행하는 그것만 네가 해야 되지 그 이상 네가 월권적으로 그렇게 네 주관대로 그렇게 하지 말아라 하는 말씀입니다. '지혜롭게 생각하라' 그말은 이 지혜는 성령의 지혜를 말하는데 성령이 너희에게 가르쳐 주시는 그대로 하라.
'우리가 한몸의' 이거는 비유입니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것 비유로 이제 실상을 이 생물의 머리와 몸의 이 조직체 이걸 인용해 가지고서 비유해서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비유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머리시요 우리는 그의 몸이시니' 이것은 비유가 아니고 실상이고 이 실상을 알리기 위해서 하나의 계시 기관으로 이걸 만들어 가지고 인용해 가지고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요것이 문제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분명히 말해 놨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자꾸 부정하고서 이 생물의 머리와 몸과 이것은 실상이고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머리요 몸이라 하지마는 그와 비슷한 것으로 된 것으로 자꾸 이렇게 생각한다 그말이요 그거는 진리를 깨닫지 못해 그렇습니다. 진리를 깨달으면 생물의 머리와 몸은 다른 것으로 조화해 가지고 변동할 수 있지마는서도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고 우리가 몸된 것은 변동할 수가 없는 절대성을 가진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절대성을 가진 걸, 이것은 변동할 수 없는 거고, 절대성을 가진 머리와 몸입니다.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라' 이러니까 한 몸에 여러 지체가 있어 가지고 이 지체는 이 일하고 보는 일하고 듣는 일하고 먹는 일 하고 또 뭐 좀 만지는 일하고 걸어가는 일 하고 이렇게 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이 어떤 사람은 이런 은혜받고 어떤 사람은 저런 은혜 받았고 어떤 사람은 이런 면으로 활동하고 어떤 사람은 저런 면으로 활동하고 하는데 그것이 한 몸에 여러 지체가 있어서 있는 것처럼 그렇게 그 모든 것이 합해 가지고서 한 몸을 보존하고 한 몸의 직분을 감당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된 것이지 그것이 이런 사람은 이렇다고 해 가지고서 이 그리스도의 몸이 여럿이 아니고, 한 몸에 여러 지체가 있어서 직분이 달라서 하는 직분이 다르지 그 생명도 같고 한 몸에 여러 지체가 있지마는서도 생명은 같습니다. 생명은 하나이요 힘도 하나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육체에 고깃덩어리가 있고 기능이 있고 생명이 있고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이 자꾸 분류하는 것을 요것을 알아서 요 비유를 가지고서 알기 어려운 그 실상을 파고 들어가서 알아 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생명과 이 몸과 기능이 세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제일 귀한 것은 생명이라 생명이 끊어지면 기능과 몸은 송장이 돼 버리고 맙니다. 송장이 되고 맙니다. 이러니까 몸이나 기능이나 다 같지, 뭐 기능과 몸을 둘로 분리하느냐 또 요새는 분리를 원수로 삼습니다. 어짜든가 분리만 하면 원수시 하고서 이단시 하고 대적을 합니다. 그거는 뭐이냐 그 마귀역사입니다. 요것도 몸과 기능과 생명이 다르다는 것을 뭘로 증거할 수 있느냐 하면은 그 사람이 생명이 떠나면 생명이 떠나면은 남아있는 몸이라는 것은 시체가 됩니다. 시체가 돼서 그 시체는 꼭 같습니다. 시체는 꼭 같은데 그 시체에게 생명이 회복돼서 나오면은 똑 같은 시체지마는서도 회복돼서 나오면은 회복되고 난 다음에 과거에 그이에게 그 손에 기능이 있어 글씨 잘 쓰던 그 기능을 가진 그 시체는 살아나면은 여전히 글씨를 잘 씁니다. 그러면 시체가 또 살아나지마는서도 그 기능이 없는 그 시체는 살아나도 그 손으로 글씨를 쓰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능의 존재와 이 몸의 존재와 생명의 존재라 하는 것이 다르다는 거 요것을 비유로 말씀했기 때문에 요 비유를 똑똑히 배워 가지고서 실상인 그 머리와 몸인 그리스도는 머리이요 우리는 몸인 그 사실을 우리가 알 수 있는 알 수 있는 자연지식 자연지식, 이 자연물 자연물 이것을 알아 가지고 이걸로 비유했기 때문에 자연물과 자연지식 이것을 가지고서 알 수 없는 이 특수 지식 초자연의 것을 우리가 알아서 연구해 가지고 찾아볼 수 있도록 그래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이와같이 다르다고 천국에도 이런 사람 저런 사람, 각각 모두 이런 기능 저런 기능 이런 본성 저런 본성 그렇게 가지고 산다 이렇게 생각하지마는서도 한 몸입니다. 한 몸에는 생명은 하나지 둘이 아닙니다.
만일 세포가 그런 것이 생명을 따로 가지고 있다고 해도 물론 생명이 끊어져도 세포가 살아 있지마는서도 그 생명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생명 끊어진지 얼마 몇 분이든지 그 몇 분이라는 하는 그게 끊어지면은 그 생명은 끊어 지고야마는 것이지 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거석 해도.
그러기에,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는 사람의 속성은 하나입니다. 속성은 하나이요 힘도 하나이요 생명도 하나요 지혜도 하나입니다. 만 명이 가지고 있는 지혜이지마는서도 그 지혜는 하나입니다. 한 지혜가 만 명에게 퍼져 나갑니다.
그 비유가 잘 안 되지마는서도 뭐이 세상은 그걸 비유할 것이 없으니까 예를 들면은 한 태양이 있으면 한 태양의 혜택을 많은 생물들이 다 이와같이 입고 있고 또 이 태양으로 작용으로 말미암아 춘하추동 사시가 되니까 그 안에 있는 많은 모든 존재들이 겨울을 각각 다 그 겨울을 겪으게 되고 여름을 겪으게 되고 가을을 겪으게 되고 봄을 겪으게 되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하나님의 진리는 하나입니다. 한 영감, 한 진리, 한 그리스도, 한 대속 이것 가지고서 모든 존재들이 살고 있는데 다만 이 첫째 아담에게 배운 영 육 요거는 하늘나라도 각각 따로 있습니다. 영육은 각각 있으나 영육은 각각 있으니 사람은 각각 있지마는서도 그가 가진 지혜는 하나입니다. 사상도 하나입니다. 소원도 하나입니다.
그러기에 이 온 몸의 직분이 다른 것처럼 그 한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이 사람은 이 직분하고 저 사람은 저 직분한다 할지라 그 한 분 예수님에게서 그분 원하시는 그분의, 분의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것이 마치 이 두뇌에 뭐 두뇌 속에는 뭐 콤퓨터가 십억 만이나 된다 하는데 그거는 모르지마는 이 두뇌 이 하나에 모든 것이 거기에 연관성이 있고 매여 가지고서 이 두뇌 하나의 작용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살고 죽고 움직이고 있는 거와 같이 그렇게, 이것은 비유요 그리스도와 우리와는 실상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것도 거기에 서 끊어지면 죽고 부분적으로 어떤 세포든지 거기에 서 끊어지면 그 세포 그것은 죽었습니다. 어떤 손가락 하나라도 만일 그 머리에 연관성이 없고서 거기에 오는 신경 거기에 있는 모든 도움이나 보호나 지조나 지개나 이 모든 통치나 그것을 받지 않는 손가락이 하나 있다면은 이것은 벌써 마비됐기 때문에 내비 두면 안 되니까 이거는 반드시 의사가 끊어야 할 것입니다. 단결을 해야 될 것입니다. 연결을 시키다 안 되면 단절하는 것입니다.
이것보다도 우리와의 관계는 더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지혜로나 능력으로나 그 또 생명으로나 우리에게 사랑이나 선이나 진실이나 지식이나 지혜나 의나 주권이나 거룩이나 이 모든 것은 하나입니다. 하나인데 그 하나가 우리에게 각각 다 비추어 가지고서 마치 생명은 하나, 그 생명이 세포 하나에게까지 다 가 가지고서 뻗쳐서 그러면 세포 저는 제가 생명 가지고 있으니까 딴 생명을 따로 개별적인 생명을 가진게 아니라 이한 생명으로 그 모든 세포들이 살고 있고 지체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와 우리와는 이렇게 돼서 교회는 많은 교인들이 있지마는 이것이 하나된 것이 영육이라는 요것은 하나된 것 아닙니다.
영육이라는 요거는 하나되지 안하고 영육은 또록또록 따로 뭐 만 명이면 만 개로 따로 있습니다. 그러나 영육이 움직이는 그 기능으로서는 다 하나 돼 있습니다.
그것을 말할려고 하면은 좀 아주 힘이 듭니다. 그러니까 이제 며칠이 되든지 여러분들에게 이것을 제가 아는 대로는 가르쳐 볼 것입니다.
5절에 '이와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됐다 말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됐다 말은-요걸 잘 알아야 돼-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됐다 하는 그 말은 이 세 가지를 말합니다. 이 그리스도는 직분의 하나님의 이름인데 하나님이 직분을 행하시는 그 직분의 이름을 가르쳐서 그리스도라고 말했습니다. 무슨 직분인가 이 하나는 제사장 직분이니 제사장이라 하는 것은 자존주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과 그 사이를 조화 붙이는 그 직책을 가르쳐서 제사장 직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또 선지직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그 무한하심을 피조물들에게 갖다옮겨 주는 직책을 가르쳐서 선지직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또 왕직은 하나님 한 분의 통치를 가지고서 모든 하나님이 자기에게 맡겨 준 그것들을 통치하는 것을 가르쳐서 왕직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됐다 말은 우리는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과의 그 사이에 중보되는 이 중보는 하나뿐인데 이 중보는 하나뿐인데, 예수 그리스도가 중보시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전체가 합해 가지고서 이 한 중보를 하고 있습니다. 전체가 합해 가지고서 한 중보 역할을 하고 한 중보의 이 직책을 하고 한 중보의 이 활동을 영원히 하는 것이 우리의 사는 것입니다.
또 그 선지자 안에서 처음 머리되는 선지는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된 선지요 그 선지에게 속해 가지고 선지의 지체가 되고 선지의 세포가 되고 선지의 이런 저런 모든 기관이 돼 가지고서 이 선지 역할을 하는데 선지 역할은 하나뿐인데 이 선지 역할을 모든 성도들 전체가 다 이런 지체 저런 지체 이런 면에서 선지 역할 저런 면에서 선지 역할, 또 이런 성질적인 선지역할 저런 성질적 선지역할 이 수많은 형언할 수 없는 그 수많은 것에 선지 그 위치와 역할을 하는 그것으로써 우리는 하나되어 있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머리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또 통치적으로 통치, 하나님 한 분이 통치하는데 그 하나님 한 분의 통치가 영계와 물질계에 있는 천군천사 이 모든 만물 무생물 생물 식물 수없이 많은 그것들을 하나님 한 분이 통치 하는데 한 분 통치가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와서 그러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기를 마태복음 28장 17절 이하에 '하늘에 있는 권세와 땅에 있는 권세를 다 내게 주셨다' 그 말은 하나님 한 분이 모든 것을 통치하는 그 통치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정권을 맡겼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또 맡겨서 하나님의 그 정권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왔고 예수 그리스도의 정권이 우리에게 와서 분권 돼 가지고서 우리가 와 가지고서 하나님의 한 분의 통치를 모든 피조물들에게 통치하는 그 통치, 그 통치의 기관.
통치의 그 연결자들이 우리들입니다. 예를 들연 어떤 이런 정권을 가진 이런 정권이 되면 그 정권은 중앙에 제일 머리되는 한 분이 그 모든 것을 주장하는 그이의 그 통치를 그 다음에 순서적으로 다 지위적으로 받아 가지고서 이럴 때 그것을 말해서 한 정권이라 한 정치라 한 나라라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이렇게 이런게 이게 다 뭐이냐 하면은 이것이 이 실상을 가르치기 위해서 이런 것들을 모두 다 형식 계시로 자연 계시로 만들어 가지고 이런 것들을 해서 우리로 하여금 알기 위함이라 그말이요.
그러기 때문에 만물을 보아서 안다 이랬습니다. 그런데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안에서 통일이 되고 나면은 이제 이 알려 주기 위해서 형식 계시 자연 계시 이 모두 다 비유로 쓰기 위해 가지고 이래 했던 것 이런 것은 다 없어지고 맙니다. 이러기 때문에 세상 모든 조직이나 모든 존재는 다 없어지고 맙니다.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요것을 또 기억합시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머리요 우리는 그의 몸이요 우리 모든 성도는 한 지체라, 이거 뭐, 이 지체가 이 세상에서 비유하는 것은 정권으로 비유해도 이 도에 있는 지사가 저 도에 있는 지사와 서로 의견이 달라도 유지할 수 있고 또 위에 접근해서 말해도 그걸 받는 척하고서 좀 덜 받아도 되고 이렇지마는 그게 하나로 되지 안하면 그 나라는 흠이기 때문에 그만치 약하고 그만치 일찍 망한다는 것은 필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조직 되어 있는 것이 조직 되어 있는 것이 무슨 돌무더기를 모은 거 마찬가지로 돌무더기를 모은 것처럼 기계를 조립한 것처럼 이 국가의 조직 이런 것처럼 이런 그와같이 되어 있지 아니하고 우리는 바로 한 몸과 지체와 세포로 되어 있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은 그렇게 성글고 뭐 흠점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고린도전서 15장 45절 '기록된 바 첫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이제 여기에 아담이 둘이라 하는 걸 나타났습니다. 아담이 둘이라 하는 것을 나타냈습니다. 아담이 둘이지요 첫 아담과 마지막 아담 아담이 둘 아닙니까? 둘인데, 46절에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둘째 아담은 신령한 자고 첫째 아담은 육으로만 되어 있는 자입니다.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첫 사람은 땅에 났다 그 말은 첫 아담은 땅에 속했다 그 말입니다.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둘째 사람은 마지막 아담 예수님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나셨습니다.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흙에 속한 자 흙에 속한 자와 같고. 우리가 첫 아담에게 속한 자는 첫 아담에게 속한 거와 같고 우리는 첫 아담에게 속한 자와 같은 우리들이지요. 또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것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마지막 아담에게 또 속했지요, 그러면 하늘에 속한 자에게 속했고 땅에 속한 자에게 속했고 우리가 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체를 입은 것같이'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체를 입은 것같이, 우리가 흙에 속한 아담의 형체를 입은 거와같이. 아담이 눈 둘, 코 둘, 귀 둘, 입 하나, 머리, 목, 몸뚱이, 팔 둘, 다리 둘 이 모두 있는, 아담의 땅에 속한 자의 그 형체와 꼭 같은 우리가 형체를 가졌습니다. 꼭 같은 형체를 가졌는데 요걸 똑똑히 아십시오.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체를 입은 것같이' 우리가 입고 있습니다.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형상을 입으리라. '이 하늘에 속한 자 형상을 입으리라' 요게서 땅에 속한 자의 형상이 있고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이 있는 것을 요게서 구별하면 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우리의 머리됨이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 요것이 머리지, 땅에 속한 자의 머리 되는 거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 육체의 머리 아닙니다.
우리 육체의 머리 아니고 우리 영의 머리가 아닙니다. 우리 영의 머리도 아니요 우리 육체의 머리도 아닙니다. 다만 하늘에 속한 자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중생된 새사람의 그 새사람. 요 기능으로 되어 있고 생명으로 되어 있고 속성으로 되어 있는 이 물체라는 그 물질 속에 이 제한받는 물질 속에 구속을 받지 안하고 제재를 받지 안하고 이것을 통과해서 그 물질에 제한 받지 않는 그 무쇠 속에도 들어갈려면 들어갈 수가 있고, 공중에 우주가 넓다 하지마는서도 일체 수억천 만 번이라도 돌 수 있고 있는 이런 공간과 시간에 제한을 받지 아니하는 요런 것으로써 예수님이 나신 거와같이 우리는 그런 사람으로 난 요 사람의 머리가 예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머리는 하나요 육체의 머리는 수백도 넘습니다. 수천도 넘어. 열 머리면 열 마리가 있습니다.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흙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을 수 없고' 그러면 혈육이라는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얻지 못합니다. 왜, 이거는 가장 유일한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처음에는 뭐 9백 살까지 살았다 하지마는서도 9백 살 살아 봤자 그 다음에 또 죽으니까 천 살 산사람이 없습니다. 천 살 산 사람이 없는데 천 살을 살아도 그 다음은 죽습니다. 그 다음을 죽으니까 죽을 자가 영원한 기업을 가질 수가 있으며 영원한 직분을 어떻게 맡을 수 있습니까? 천 년되면 죽을 자가 천 년 넘어서 2천 년된 직분은 맡을 수가 없습니다. 이는 영원한 직분이요 영원한 생애요 영원한 그 지위요 영원한 나라의 시민권이요 영원한 영광인데 모두 영원과 완전성에 속한 것인데 이런 것들은 다 제한됐기 때문에 못 맡는다 그 말이오.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을 것은 썩지 아니할 것을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니느라'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신비한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잠잔다는 말은 세상을 떠나는 걸 말합니다. 왜 세상 떠난 사람을 잠잔다고 말하느냐? 잠자는 사람은 깨어날 수가 있고 죽은 것은 살아나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 다시 살아난 이 사람은 부득이 혈육의 몸 이것을 벗어 가지고 개조를 받아야 되지 개조를 받아서 옷을 갈아 입어야 되고 이 기후로 다시 개조로 새로 바꾸어 받아야 되지 이것 가지고 안 되기 때문에 이 벗는 것은 신령한 몸으로 변화를 받기 위해서 부활을 받기 위해서 이것을 벗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 믿는 사람들은 이 변화 받기 위해서 부활하는 것이 아니고 이것을 영원한 사망 막기 위해서 부활하기 때문에 사망의 부활이요 생명의 부활이라고 그렇게 성경에 둘로 구분했습니다.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 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이제 이 몸을 말합니다. 이 몸은 그때 살아 납니다. 그때 살아나지마는서도 지금 우리가 지금 살아나는 것이 있고 지금 살아나는 것이 있고 지금 또 살아난 것이 있고 지금 자라가는 것이 있고 또 없는 것이 새로 생겨지는 것이 있고 그러면 지금은 세 가지 그 구원 역사가 이루어진다고 말했는데 뭐 뭐 세 가지라고 했습니까? 하나는 죽은 것이 현실에서 살아나고 또 하나는 있는 것이 자라가고 또 하나는 없는 것이 하늘에서 새로 와서 얻어 가지게 되고 이 세 가지로 구원을 이루어 갑니다. 이러기에 세상 일에 복잡해서 자꾸 그래 버리면 이거 알아지지를 못해요.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 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 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 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이랬는데 예수님이 율법 문제를 다 해결했다 율법 문제를 다 해결했기 때문에 이 사망이라 하는 것이 그것이 무엇을 배경을 삼고 지금 사망 그 권세를 아느냐 하면은 죄를 배경으로 삼아 가지고 하는 것인데 죄만 없으면 사망 그 놈은 죽어 버립니다. 이런데 그만 죄 그놈은 또 무슨 배경을 가지나 죄 그놈은 또 하나님의 율법을 배경으로 삼아 가지고 법에 어기기 때문에 이렇지 않느냐 배경을 삼아 하는데 예수님께서 이 율법의 완성을 해 버려서 율법에 와서 율법 죄를 해결했기 때문에 다시는 사망이 해할 수가 없는 문제로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57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이 사망이 죽어 버리고 사망이 사망으로 죽어 버리고 죄가 절단나 버리고 율법에 해결이 됐기 때문에 율법이 다시는 정죄 할 수 없도록 이렇게 된 이것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기게 되었으니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 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이 사실을 너희들이 지금 받아 가지고 너거들이 이 자가 되어 있으니까 너거 자체가 이 자가 됐으니까 너거 자체가 이 자가 되었으니까 이 자된 너희가 흔들리지 말고 이 자 된 네가 이 자된 너로 살아라 이 자가 되었으니 예수 그리스도는 머리요 너희는 몸이 되어 있는 이 자가 되었으니 이 자된 그 자가 첫째 아담에게 속한 그것을 변화시켜서 그것을 옷과 같이 입고서 자유하고 사는 것이니까 이 자로 살아라.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주의 일이라 하는 것은 예수님의 일은 뭐이냐 하면은 예수님의 일은 어떤게 예수님의 알이냐 하늘에서 가난해진게 예수님의 일이요 낮아지심이 예수님의 일이요 구속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것이 예수님의 일이요 또 십자가에 못박혀서 인간을 구원한 것이 예수님의 일이십니다. 예수님이 하늘에서부터 십자가에 낮아지시고 죽어지시고 그 다음에 부활하신 이것이 예수님의 일이요, 한말로 말하면 구원의 일이요, 한말로 말하면 당신 희생으로써 사랑의 완성을, 사랑으로 만족하고 사랑의 소원 성취를 이룰수 있는 이것이 예수님의 일이니 이 일을 '주의 일을 더우기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이 일 한 것은 털끝 만한 것보 없어지지 않는다. 네가 민족을 위해서 뭐 하고 국가를 위해서 뭐하고 세상의 문화를 위해서 아무리 해봤자 그것은 다 끝이나고 다 없어지고 멸망하고마는 것이지마는서도 이 주의 일, 주님이 하신 이 일을 주님의 공로를 힘 입어서, 그분의 인도를 따라서, 요거 해라 저거 해라 주님이 지체가 돼가지고 이거는 그렇지마는 주님이 요 일 해라 할 때에 그 일에 따라서 그 일하고 저것 하라고 할 때에 저것 하고서 이렇게 분수대로 해서 이래 하는 것이 주의 일이니까 '그것은 하나도 헛되지 않는 줄을 앎이니라'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고로 50절로 53절에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 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러니까 우리가 여기서 자꾸 구별해야 돼요. 이 지금 구별성을 없애는 마귀란 놈이 우리를 막 죽일려고 하는 것입니다. 구별을 못하게 하는 것은 마귀가 우리를 죽일려고 하는 것이오. 어짜든지 기본구원과 건설 구원 이것도 구별 못하게 하지, 영과 몸, 마음, 영, 혼, 몸 이것도 구별 못하게 하지. 구별하면 막 두리뭉실이라 하는 걸로 뭉쳐.
그렇기 때문에 말세에 마귀 역사는 전부 종교가 통합 되고서 민족이 통합되고 사상이 통합되고 모든 신이 통합되고서 그것을 카르쳐서 말하기를 '열 뿔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열 뿔이라 하는 것은 인간의 만수로 전부를 가르쳐서 말하는 것인데 뿔은, 힘이라는 것입니다. 세계힘은 다 하나되고 어린 양의 힘만 따로 됩니다. 어린 양의 힘과 모든 힘이 다 대적이 돼 가지고서 어린 양의 속한 자 그 자도 진실한 자만 이깁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성도라는 이름은 뭐이냐. 하면은 따라 하십시오. 성도! 성도! 구별하는 무리! 요게 우리 이름입니다. 뭐이든지 자꾸 성경 말씀과 구별해 쪼개야 돼. 자꾸 구별해서 알아야지 그렇지 안하면은 마귀에게 다 홀랑가지에다 홀키들어가고 만다 그말이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오전에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요 예수 그리스도는 머리라, 머리도 하나요 몸도 하나라. 이러기 때문에 역사에 있는 교회와 이 세계에 있는 모든 교회 그 전체는 그 수가 한없지마는서도 다 그거는 한 교회라, 한 교회인데 이 한 교회 그거는 한 교회 이 교회는 생명도 하나요 기능도 하나요 또 그의 목적도 하나요 소망도 하나요 전부 영광도 하나요 존귀도 하나인데 이 하나인 이 하나 속에 들어간 것이라 백 가지로 나누어 놔도 내나 그 하나가 하나 그것이 이렇게 퍼져 나 가지고 있는 거라, 이게 되지 안하면 안 된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이라 하는 것은 단일성을 알아야겠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단일성의 구원이기 때문에 구원의 적은 뭐이냐 나 나 너 너, 너 나, 너 나 요것이 예수 그리스도 한분 요 외에 딴 것이 자기라고 있는 것은 그게다 멸망할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왜 교파와 교파가 왜 싸우느냐 싸우는 그것은 그것이 물론 단일체인 단일성인 단일성인 요거와 삐뚤어진 그것을 여기서 치료해서 갈라 내는 것도 있지마는서도 이것이 자기중심이라 이질이 되어가지고서 그런 것도 많이 있을 수 있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그거는 자기가 내가 이렇게 대립되는 것이 하나님 한 분의 중심 그분과 달라서 대립이냐 나와 달라서 대립이냐 저와 달라서 대립이냐 그게 죽는 것이기 때문에 그걸 알면 이 세계의 교회라 하는 것은 심히 정화가 될 것이고, 다 그렇게 모두 출출 장군으로 그렇게 망령과 패역으로써 그 가속도로 이 교회를 속화시키는 일이 없게 될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 합시다.
할 수 있으면 오후에 좀 더 여기에 대한 것을 더 증거를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것은 고요히 생각하면서 우리가 자꾸 회개를 하고 깨달아야 됩니다. 뭐 도덕 그런 거야 불신자 도덕이나 꼭 같소. '죄 짓지 말아라 살인 하지 말아라 간음질 하지 말아라 도적질 하지 말아라 다른 사람을 사랑해라 봉사해라 친절해라 겸손해라' 그런 거는 다 알지마는서도 그것은 끝에 한 자동차가 지나갈 때에 먼지가 나고 바람이 나는 거와같이 그게 한 여풍이지 그거는 실상 본체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