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5 14:01
교회부흥의 비결은 성경 읽는 것
1987. 3. 29. 주일오전
본문:요한계시록 1장 2절∼3절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여게 2절에,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하는 이 말씀은 이 요한계시록만을 말하는 게 아니고, 요한계시록은 신구약 육십오 권에 기록되어 있는 모든 도리를 간추려서 결론적으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모든 말씀이 다 말씀이 말씀을 다 해석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지마는 계시록은 더욱 더 그러합니다. 계시록은 모든 성경의 결론이요 종말이라 할 수 있습니 다.
혹 어떤 사람들은 ‘이 신구약 성경도 하나님이 영감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하여 기록해 주셨으니 오늘도 성령에 충만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 이 성경을 더 기록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을 가지는 데에서 천주교에서는 ‘교황이 말한 것이라면 성경과 같다’ 이래 가지고 교황이 말한 그 교리를 성경같이 여겨서 큰 과오를 범하고 있습니 다.
천주교의 흠점이라면 교황 무오설을 말하는 것이 제일 흠점이요, 둘째 흠점은 이계명을 무시하고 범하는 일입니다.
3절에, “이 예언의 말씀을” 한 이 예언의 말씀이라고 하는 이 표시를 한문 글자로 미리 예자 말씀 언자, 이래서 미리 말하는 것을 다 예언이라 이렇게들 모두 다 일반이 알고 있습니 다.
그러기에 이 예언의 말씀은 미래사를 말하는 것이라 그렇게 사람들이 이 세상 단어의 뜻을 갖다가 인용해 가지고 이 예언의 말씀은 미래사를 말한 말씀이라 모두 그렇게들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 다. 이 성경에는 미래사만 말한 게 아니라 과거사도 말을 했습니 다.
그러기에 이 예언의 말씀이라 하는 이 예언의 말씀이라는 뜻은 피조물들이 모르는 하나님의 뜻을 피조물들에게 알리는 말씀이라, 사람들이 모르는 하나님의 그 은밀하고 높은 뜻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말씀이라 하는 그런 뜻으로 예언이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이라 하는 이 뜻은 창조주시요 대주재시요 주권자시요 모든 생사 화복을 주관하시고 심판권을 가지시고 영원히, 당신이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만드셨고 또 만드신 그 모든 것을 당신의 뜻대로 통치하시고 또 모든 존재들이 잘했든지 못했든지 그 행동한 것을 낱낱이 당신의 법칙을 가지고 심판해서 영원한 보응으로 갚으시는 하나님의 넓고 깊고 높은, 심히 광대한 하나님의 그 뜻을 인간들은 그 종적이라도 짐작할 수 없습니 다.
그런데, 그 모든 인간에게서 알지 못하는 비밀, 하나님의 영영하시고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뜻 곧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대해서 현재, 미래, 영원 무궁토록 이렇게 하시겠다 하는 당신의 그 뜻을 기록해 가지고 인간들에게 주신 것을 가리켜서 ‘예언의 말씀이라’ 그렇게 여게 표시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독교의 이 성경인 신구약 육십육 권은 다른 이종교와 같이 사람들이 연구하고 또 경험하고 체험한 가운데서 깨달아진 것을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순전히 하나님께서 당신만이 알고 계시고, 당신만이 여게 대해서 주권을 가지시고 처리하시는 그분의 그 은밀하시고 절대적인 그 뜻을 사람들에게 계시해서, 사람들에게 열어 보여서 사람들이 받아서 알게 된 것이 신구약 성경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이 말씀은 자존하신 하나님에게서부터 우리 사람들에게 전하여 내려온 말씀이 이 예언의 말씀이요 그외에 있는 모든 인간들의 하는 말은 인간들끼리 이렇게 저렇게 연구해 가지고 만들어 놓은 것이 모든 인간 지식이요 인간들의 말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신구약 성경 말씀은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 보내서 알려 주신 그 외에는 한 마디도 없습니 다. 인간에게 들어서 이렇게 저렇게 주 모아 가지고 된 말은 하나도 없습니 다. 다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신 말씀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또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여기 읽는 자, 또 듣는 자들, 지켜 행하는 자들이라 이랬는데 여게 대한 해석은 동일하지를 않습니다. 다른 주석에 여러분들이 가서 보면은 동일하지 안해서 여게 읽고 듣고 하는 것은 옛날 이스라엘들이 하나님 앞에서, 한 사람이 그 회당에서 성경 말씀을 읽으면 많은 사람들이 듣고 하는 그것을 여게 기록했다 이렇게 말씀을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 다.
그러나 이것은, 이 예언의 말씀이라는 것은 이제 말한 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신 신구약 성경 말씀이요, 예언이라는 말은 인간이 모르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이 은밀한 이 비밀의 말씀, 피조물들이 모르는 것을 하나님이 말씀해서 알려 주신 말씀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곧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을 다 총합해서 이 예언의 말씀이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고 “읽는 자” “듣는 자들” 읽는 것은 이 성경 말씀을 개인 개인이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여게는 복수를 쓰지 안하고 단수로 ‘읽는 자’ 이렇게 말했습니 다. 읽는 자.
개인 개인이 읽을 수 있고, 또 듣는 것은, 오늘 제가 이 계시 1장 2절로부터 3절까지를 저 혼자 읽고 여러분들은 다 들었습니 다. 그러니까, 듣는 사람들은 많은 사람이 같이 들을 수 있고 읽는 것은 개인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을 가리켜서 여게 읽는 자와 듣는 자들이라고 그렇게 말씀하셨고 이 말씀을 지키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다 이 말씀대로 지켜 행할 수 있는 것을 가리켜서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 이렇게 말씀했습니 다.
또 “때가 가까움이라” 때가 가깝다는 것은 혹 예수님의 재림의 때가 가까왔다 하는 그런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때가 가깝다는 말은, 이 뜻은 아주 시간이 단촉하고 급박하다 하는 그런 뜻을 말씀했는데 여게 때가 가깝다 말은 때가 신속히 지나간다. 때가 신속히 지나간다. 그러기에 이 때는 머물지 안하고 빨리빨리 지나간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은 다 우리 구원을 위해서 주신 말씀인데, 우리 구원을 위해서 주신 말씀인데 이 말씀과 우리와의 관계에서 구원과 멸망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말씀과 나와의 관계하는 거게서 구원도 이루어지고 또 이 말씀과 나와 하나되지 안하고 서로 대립이 될 때에 멸망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어떤 사람이든지 자기에게 행복이라는, 말하자면 생명과 평강 이런 것을 가리켜서 복이라고 하고 사망과 모든 멸해지는 것을 가리켜서 사망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복된 그 모든 복도 이 말씀과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 이 말씀과 사람과의 그 관계를 현실에서 어떻게 맺느냐 하는 거기에서 복도 되고 멸망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자기가 복되고 화되는 것이 이 말씀을 상대하는 데에 이렇게 저렇게 이 말씀을 상대하고 관계 가졌다 하는 여기에서만 사람의 생사 화복과 흥망 성쇠가 성패가 다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 외에 딴데는 없습니 다.
이런데 제일계명에 “너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내게 있게 하지 말지니라” 하는 말씀은, 다른 신들이라 말은 다른 하나님을 네게 있게 하지 말지니라 하는 말입니다.
다른 하나님이라 말은, 예를 들면은 네 생사 화복, 흥망 성쇠, 존비 귀천, 성패 이것은 하나님 한 분에게만 주권이 되어 있는 것인데 네가 하나님 한 분 외에 다른 무엇에게 주권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그 사람은 그것을 그 면에 대해서는 하나님으로 삼은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악령은 너희들을,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라 하는 것을 성경에 말씀해 놨는데, 전능자는 하나님밖에 없는데 마귀란 놈이 와 가지고 ‘이 사건에 대해서는 이 사람이 전능자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 권세가 전능자다.’ 하나님만이 모든 좋은 거 나쁜 것을 홀로 주권하실 수 있는데 하나님 외에 무엇이 주권할 수 있다고 자꾸 미혹을 시켜 가지고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 외에 딴것이 주권하고 있다고 생각을 해서 딴것으로 주권자를 삼으면은 다른 하나님을 용납한 것이기 때문에 멸망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뿐이시지 두 분 없습니 다. 자존자도 한 분뿐이시요, 전지 전능자도 한 분뿐이시요, 창조주도 하나님 한 분뿐이시요,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것도 한 분뿐이시요, 모든 것 다 하나님 한 분만이 이 모든 권세를 가지고 역사하는데 하나님 외에 딴것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것이 다 우상 섬기는 것이며 또 다른 조짜배기 가짜배기 하나님을 용납하는 큰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때가 가까움이라”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에서 생사 화복, 흥망 성쇠는 다 되는 것인데, 우리의 영과 육, 금생과 내세 이 전부의 생사 화복, 흥망 성쇠는 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에서 그것이 다 이루어지는 것인데 그 관계가 잘못되면 그분이 멸망시키고 그 관계가 잘되면 그분이 축복하시는고 이런데 이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되는 이 모든 관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우리가 어떻게 관계할 것인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우리는 관계할 수가 없는데 곧 우리에게 나타나신 이 예언의 말씀,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이 예언의 말씀, 이 예언의 말씀 이 말씀은 곧 우리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이시라 그렇게 우리가 생각해도 좋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과거 모든 선지자들이나 사도들이나 모든 그 신앙의 의인들 위인들이 하나님을 상대할 때에 어떻게 상대했는가? 이 말씀과 상대할 때 하나님과 상대가 다 됐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말씀과 동행하는 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요, 또 말씀을 버리는 것이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요, 말씀을 잊어버린 것이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이요, 말씀을 도로 되찾는 것이 하나님을 되찾는 것이요, 말씀과 동거 동행하는 것이 하나님과 동거 동행하는 것이요, 말씀을 어기는 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 신구약 성경에 하나님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셔 가지고 여러 모양으로 역사하신 일이 많이 있는데 그 모든 사람들과 하나님이 이렇게 접해서 관계를 가질 때에는 전부 말씀 가지고 관계를 가졌습니 다, 말씀 가지고.
그래서, 신구약 성경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다” 또 “네가 하나님 말씀을 어겼다” “하나님 말씀을 순종했다” “하나님이 너에게 이렇게 이렇게 말씀했다” 하는 말씀했다는 그 말씀의 숫자를 대개 헤아려 보면 신구약 성경에 한 천사오백 번 됩니다. 천사오백 차례 하나님이 말씀했습니 다. 천사오백 차례를 다 이 말씀을 가지고 말씀했습니 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상고 때부터 태초 때부터,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사람을 지으시고 에덴동산에 우리 시조를 그리 인도해서 거처하고 있을 그때부터 비로소 사람이 생겼는데, 아담 하와가 있을 때 그때부터 사람이 생겼는데 하나님이 이 사람으로도 접할 때에는 전부 말씀 가지고 접했습니 다. 다른 거 가지고 접하지 안했습니 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대해서 말씀하시고, 또 사람들이 그 말씀을 순종할 때에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또 그 말씀을 하실 때에 듣지 안하면 또 말씀하시고, 그래도 그 말씀을 듣지 안하면 듣지 안한 것으로써 멸망을 받고, 그러면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은 하나님은 우리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지고 나타나셨다 하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 다.
하나님이 우리 사람에게 나타나서 역사하신 일이 근 이천 번, 근 이천 번 나타나서 역사하셨는데 역사하실 때마다 언제든지 말씀으로 나타나 역사했습니 다. “하나님이 이 말씀을 하여 가라사대” 또 “하나님이 말씀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내 말을 들으라” “네가 내 명령의 말씀을 들으라” 이렇게 전부 하나님이 말씀을 가지고 사람에게 나타나셨고 모든 선지 사도 모든 성인들 전부는 다 이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을 상대했던 것입니다.
이래서, 이 말씀을 버리지 안한 사람들은 다 하나님을 버리지 안한 사람이었고, 또 이 말씀을 잊어버린 사람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린 사람이었고, 또 그 사람을 마귀가 와서 죽일 때는 이 말씀을 그 사람에게서 빼내서 말씀이 그 사람에게 없도록 해 가지고 죽였고 그저 전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때도 이 말씀 가지고 구원했습니 다. 딴거 가지고 구원하지 않고 이 말씀 가지고 구원했어.
또 마귀란 놈이 우리를 미혹을 시킬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은 물리치고 마귀 제 말을 가지고 우리에게 말해서 죽였습니 다. 마귀가 말로 가지고 우리를 다 죽였고 하나님은 말씀을 가지고서 우리를 다 살렸습니 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온갖 축복을 주시고 영생하는 생명을 주시는데 그러면 생명 주신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 주신 그 말씀이 생명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온갖 축복 주신 그 축복이 뭐인가? 말씀 주신 그 말씀이 축복입니다. 영생은 영원 무궁토록 죽지 안하고 우리를 영생하게 하는 그 영생은 뭐인가? 영생은 곧 말씀입니다. 말씀 주실 때에 그 말씀대로 살면 영생합니다.
그러면 말씀은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이요,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이요,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평강이요,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부요요, 모든 성공이요,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때에 모든 승리를 주실 때 말씀 주실 때 그 말씀이 승리입니다.
승리인 줄 알고 그 말씀을 행할 때에 승리했고 그 승리하는 말씀을 주실 때에 그 말씀대로 행하지 안하고 “네가 이렇게 하면 패전하리라” 할 때에 그 말씀대로 패전하는 대로 할 때에 망했습니 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없는 가운데서 영계와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실 때도 다 말씀이 말씀에게 명령 해 가지고 지었습니 다. 말씀이 말씀으로 지었습니 다.
말씀이 말씀으로 지었다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말씀은 제이위 성자 하나님인, 말씀인 하나님이 말씀으로 지었다. 말씀으로 지었다 말은 그 말씀은 진리를 말합니다. 이 신구약 성경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참 하나님이 없는 가운데서 그 모든 것을 지으실 때에는 하나님이 지으셨는데 하나님이 지으시면서 뭘로 지었느냐? 짓기는 말씀 가지고 지었습니 다. 진리 가지고 지었습니 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께서 무한하시고 지극히 크신 하나님을 우리가 사귀는 것도 바로 이 말씀 사귀는 것이 그분하고 사귀는 것이고, 또 이 말씀을 깨닫는 것이 그분을 영접한 것이고, 이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그분과 동거하는 것이고 동행하는 것이고 이 말씀을 저버리는 것이 그분을 저버리는 것이라.
모든 과거 위인들이, 선지자나 사도들이나 그 위인들이 어떻게 할 때에 그런 모든 기적이 나타났으며 능력이 나타났던가? 나타난 것은 이 말씀대로 행할 때에 기적이 나타났고 이적이 나타났고, 말씀대로 행할 때에 모든 승리가 나타났고, 말씀을 어길 때에 다 사망이 나타나고 그랬습니 다.
그러기 때문에 이 말씀은 우리의 전부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오는 패망이 이 말씀이 네가 이라면 패망하리라 하는 그 말씀을 행하지 안하는 데에 절대 패망이 올 수 없습니 다. 이 우주가 다 달라들어도 패망 못 시킵니다.
하나님이 네가 이렇게 하면 패망하리라 하는, 패망되리라는 그 말씀을 그대로 행할 때 패망이 됐고 또 하나님이 네가 이렇게 하면 네가 승리하고 영광을 받고 네가 또 장수하고 네가 잘 되리라 하는 그 말씀대로 행하는 것 외에는 잘 되는 길이 없습니 다.
이러기 때문에 이 말씀은 우리의 생명이시요 존비 귀천 생사 흥망이시요, 또 우리의 생명과 평강이시요,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말씀 외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도리가 없어. 이 말씀 받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해 주실 때에 딴거 안 줬습니 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을 주실 때 말씀 줬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말씀 줄 때에 그 말씀대로 행하면 곧 됐습니 다.
그러기 때문에 이 말씀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 가지고 다 하셨는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몇 차례나 말씀하셨고 또 말씀으로 역사한 것이 몇 번이나 역사했는고 제가 대략 이래 주 헤아려 보니까 신구약에 한 천사오백 차 있고 인간의 말이라 하는 그런 것은 한 백여 차 한 이백 여 차 있고 전부가 다 하나님이 말씀 가지고 우리에게 역사했습니 다.
이러기 때문에,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가 복이 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가 복이 있다.
제가 그것을 며칠 전에 느껴서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주일학교에 대해서 주일학교가 언제 제일 주일학교가 좀 부흥이 됐느냐? 한창 그때 만 명이 된다 하고 만 명을 거기다 몇을 못 채우고 이랬는데, 그러면 주일학교 오십칠명이 모자란 만 명이 모았었는데 그때에 제일 많이 모을 때에 이 어떻게 해서 이때는 이 주일학교가 좀 부흥이 되는가 이렇게 해서 내가 여게 저게 물어 봤습니 다.
물어 봤는데 ‘그 주간이 뭐하는 주간이고?’ 그 주간이 곧 성경 공부하라고 광고하고 모든 사람들이 성경공부 광고에 착안을 하고서 모두 성경 공부 시작하기를 제일 많이 한 시간이라. 그래 가지고 제가 연경실에다가 전화 해 가지고 언제 어떻게 돼서 언제가 제일 성경 공부를 많이 입학을 했으며 언제 성적이 좋았나 그걸 물으니까 곧 그때가 그때입니다.
이래서, 사도행전에도 보면은 “베뢰아 사람들이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는 그런가 안 그런가 성경을 보고서 상고하므로 그 대학자들이 많이 예수 믿게 됐고 또 아주 세상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예수 믿게 됐다” 그런 말이 기록돼 가지고 있습니 다.
이러기에 성경을 읽으면 어떤 사람이 되느냐? 성경을 읽으면은 지켜 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성경을 읽으면 사람이 지켜 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지켜 행하지 못하는 것은 왜 지켜 행하지 못하느냐? 지켜 행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속에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영이 있습니 다.
중생된 영이 속 사람이요 요것이 산 영이요 영생을 가진 자기인데 이 중생된 영이 있고 그 밖에 마음과 또 뜻이니 생각이니 지식이니 모든 행위니 이런 데는 악령, 귀신 말이오. 악령과 악성과 악습이 들어 가지고 이것이 항상 우리 마음과 우리 몸을 점령할라고 애를 쓰고 있고 중생된 영은 중생된 영이 우리 마음과 이 몸을 점령할라고 애를 쓰고 항상 싸움입니다.
싸움인데 그때에 우리 마음과 우리 몸이 중생된 영에게 복종할 때에는 참사람 새사람이 된 때고 그만 중생된 영을 배반하고 악령 악성과 악습으로 더불어 합합될 때에는 옛사람이 돼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래서, 성경을 읽는 것은 어떤 역사를 하느냐? 성경 읽는 것은 악령과 악성과 악습을 이걸 자꾸 말려 죽입니다. 마치 요새 암병 치료할 때에 그 치료하는 법이 수술해서 째내는 것도 있지마는 광선을 가지고 이렇게 쪼아 가지고서 말려서, 암병을 차차 차차 말려 가지고 그 세포를 죽여서 없애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을 자꾸 읽을 때에 우리에게 있는 악령과 악성 악습이 죽습니다.
악습이 죽으니까 그게 견디지 못하니까 쫓겨 나가게 됩니다.
성경을 읽을 때에 그저 아무나따나 줄줄 이래 읽는 것도 효력은 있습니 다. 줄줄 그래 읽어서 아무 뜻을 생각지 안하고 그저 성경을 이래 읽기만 해도 악령 악성 악습 그놈이 배가 쫄쫄 곯아집니다. 그놈 먹을 것이 없습니 다. 먹을 것이 없어서 그놈이 곯아져서 차차 약화됩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을 때에 ‘보자. 하나님은 내게 뭐라고 말씀하시느냐, 또 내가 이 성경 말씀에 위반된 게 뭐 있느냐, 내가 또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래서, 제가 제일 처음에 ○○목사, 목사 그분들 그때 교역자로 나가기 전에 제가 연경과라 해 가지고 성경 공부하는 것을 시켰습니 다.
공부하는 것을 시킬 때에 그때 공부하는 그 방법이 성경을 읽으면서 ‘이 성경에서는 내가 고칠 것이 뭐인가, 또 내가 하지 못한 것이 뭐인가, 내가 행할 것이 뭐인가?’ 고칠 것, 행하지 못한 것, 자기가 행할 것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공부해라, 그래 가지고 그걸 기록하라 했습니 다. 여게는 고칠 게 뭐뭐 고칠 것이다, 여게는 내가 행할 것 뭣뭣이다, 내가 행하지 못한 거는 뭣뭣이다 이런 것을 자꾸 기록을 하면서 성경을 보라고 이랬습니 다.
그래 보니까 그때 삼학기까지를 해서 졸업을 시킬라 했는데 일학기를 하고 나서 이학기 반 하니까 사람들이 어떻게 성경을 잘 알고 이래 돼지는지 나중에 그만 너무 교만해 가지고, 담대하고 교만해져서 ‘너거가 이러니까 더 시켜서는 안 되겠다, 그만해야 되겠다.’ 이라고 말았습니 다.
이제, 성경을 자기가 읽으면서, 이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이 보자,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라고 성경에 기록했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알기 위해서 성경을 보고, 그라다가 하나님이 나오면 ‘아, 여게는 무슨 하나님으로 나오노 보자.’ 그 성경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알기 위해서 성경을 보고, 또 성경에서 자기는 어떠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 성경을 보고, 모든 사람은 어떤 것인가 알기 위해서 성경을 보고, 이 세상은 무엇인가 알기 위해서 성경 보고, ‘하늘나라가 있다는데 하늘나라는 뭐이 하늘나라냐?’ 하늘나라를 알기 위해서 성경 보고, 또 ‘사망은 무엇이며 생명은 무엇인가? 모든 인간들이 멸망은 어떻게 멸망했는가, 인간들이 이렇게 다 이렇게 성공하고 복된 거 다 복을 원하는 데 어떤 사람은 복되고 어떤 사람은 복되지 못했으니까 인간이 복된 것은 어떻게 해 복됐는가?’ 이거 전부 성경에 정확하게 다 가르쳐 놓고 있습니 다.
요것을 알기 위해서 성경 보면은 얼마 안 봐서 옛사람 그놈이 그만 절단나 버립니다. 옛사람 그놈이 절단나니까 미혹이 없어진다 말입니다. 옛사람이 이놈이 그 자리 못 배깁니다. 빼빼 말라 가지고도 고집을 부리고 이놈이 안 나가고 있다가는 조금만 더 성경 보면 이놈이 견디지 못해 가지고 튀어 달아나 버립니다.
튀어 달아나고 달아나 가지고 절대로 그 사람 속에는 못 들어옵니다.
속에는 못 들어오고 이래 있다가 옆에 기다리고 있다가 노리고 있습니 다. ‘어느 때 이 사람 속에 들어가야 되나?’ 하고 노리고 있다가 그 사람에게 들어갈 수 있는 그런 틈이 있으면 그때 퍼뜩 들어갑니다. 누구한테 말 한 마디 들을 때에, 무슨 말 한 마디 들으면 말 한 마디 들을 때 감정이 나오고, 말 한 마디 들을 때에 욕심이 나오고, 말 한 마디 들을 때에 부애가 나오고, 뭐 하나 눈으로 하나 볼 때에 나오고 그때에 볼 때에 우리 심신이 변동될 때에 그놈이 재빨리 퍼뜩 들어와 가지고 우리 속에 나 아닌 놈이 내처럼 이래 가지고 내가 돼 가지고 야단을 지깁니다.
그러기에, 자기 속에 있는 악령 악성 악습이라는 이놈을 빼빼 마르구로 만드는 데, 이놈을 또 쫓아내는 데는 성경 읽는 거 이상 없습니 다.
어떤 사람이 만일 자기가 아주 노름하는 그 노름의 습성이 있으면은 그 노름의 습성을 제가 손가락을 끊어도 안 됩니다. 성경을 읽으면 그놈이 악령 악성 악습이 거기 들어가 그라기 때문에 나가 버립니다.
또 어떤 남자나 여자가 그 음행으로서 이렇게 칠계 범하는 그런 게 속에 들어 있으면은 절대 제가 못 끊습니다. 집구석이 망해도 못 끊고 제 모든 직장이 떨어져도 못 끊고 못 끊습니다. 고거는 성경을 읽으면 그놈이 나가 버립니다.
이래서, 성경 읽으면 우리 원수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옛사람 그놈이 차차차차 말라서 달아나 버립니다.
또 자기가 안 된 욕심이 자기 속에 있습니 다. 뭐 물질 욕심이라든지, 사업 욕심이라든지, 권세 욕심이라든지, 자기 심지어 생명 욕심, 살고자 하는 생의 애착욕 이거는 참 제일 강한 놈인데 이것도 자꾸 성경을 읽는 가운데서, 그놈이 악령인데. 사람이 살고 싶다고 사는 것도 아니고 죽고 싶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정한 것이 있는 것을 이걸 믿지 못하기 때문에 죽을까 염려하고 또 좀 더 살라고 야단을 지기는 것인데 물론 우리가 하나님의 생의 법칙으로서 위생 같은 걸 하고 그런 것은 할 수 있는 것이지마는 그게 다 하나님의 법을 떠나서 말이지요,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하는 말은 하나님이 정한 그 법칙을 떠나서 욕심내는 거는 전부 탐심입니다.
이것이 전부 옛사람이 이라는 것인데 자기 속에 온갖 옛사람, 오만 종류의 옛사람, 그거 옛사람은 악령 그놈하고, 내 속에 내 중심 내 위주 그것이 원죄입니다.
원죄하고, 또 악습이라 하는 것은 내 중심으로 하나 둘 행동 해 가지고 모은 것이 그것이 악습인데 그것이 본죄입니다. 이래서, 악령과 원죄와 본죄 이 셋이 들어 가지고 우리 구원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것인데 이 셋 이놈을 절단내는 데에는 딴거 가지고 절단내지 못합니다. 성경을 읽는 것밖에 못 합니다.
성경을 읽으면 이놈이 나갑니다. 이놈이 나가면 그 다음에는 지켜 행할 수 있는데 이놈이 나가고 지켜 행하면 이제는, 행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와 가지고 우리에게 건설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을 읽는 것은 행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하는 데에는 제일 좋은 방편입니다. 성경을 읽는 거.
그래서 자기가, 예를 들어서 어떤 만일 처녀가 어떤 연애하는 총각이 있는데 그놈은 분명히 그놈하고 결혼하면 망할 줄 알아도 연애가 깊어져 가지고 못 이깁니다.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잊어버리지 못합니다. 잊어버리지 못하고 이거는 밤이고 낮이고 시간 그놈이 다 차지하고 암만 그 연애를 다 그만 결과적으로 안 될 줄 알기 때문에 끊어버릴라 해도 못 끊어버려. 못 끊어버립니다. 제가 뭐 결심한다고서 끊어버려지는 것이 아니고 금식한다고서 끊어버려지는 것이 아니고 딴데 피해 간다고 끊어버려지는 것이 아니고, 피해도 아무리 멀어도 소용 없어.
다만 그거는 무조건 성경을 고요한 데 가 가지고 읽어야 됩니다.
성경을 처음에 읽을라 하면은 잠이 옵니다. 잠을 누가 줍니까? 그놈이 들어서 자꾸 잠을 오게 합니다. 잠 오거들랑은 그만, 잠 오는데 자꾸 읽을라 하지 마.
잠이 올라 하거들랑 얼른 나가요. 나가 가지고 돌아다니면서 또 조금 돌아다니다가 잠이 깨거들랑 다시 성경 읽습니다.
성경 읽기 시작하면은 얼마 좀 처음보다는 조금 더 많이 읽으면 또 잠이 옵니다.
잠이 오거들랑은 또 나가 가지고 돌아다니다 잠을 깨 가지고 또 성경을 읽습니다.
그래 가지고 늘 성경 읽는 신앙 생활 하는 사람은 한 번 나가서 잠 깨면은 그 다음에 그만 시험에 들지 안하고 성경을 읽을 수 있습니 다. 또 좀 어린 사람은 두 번 나가서 잠 깨면은 읽을 수 있습니 다. 또 더 어린 사람은 세 번, 몇 번이든지 나가 가지고 성경을 읽으니까 까랑까랑하이 그만 정신이 돌아오는 게 성경 봐도 깨달아지고 잠이 안 오거들랑은 그때 얼마든지 읽으십시오.
읽어서 그뭐, 물론 읽다가 다른 사람하고 약속한 일이 있다든지 또 무슨 자기 의무와 책임이나 그런 일이 있을 때에는 부득이 시간이 가도 할 수 없어서 성경 보는 것을 중단해 놓고 가지마는 그렇게 보는 사람들 다 그만 성경을 읽다 보니까 약속한 게 지나가 버렸고, 성경 읽다가 약속한 거 지나갔다고 또 낭파 아니오. 지나가 버리면 잘됐습니 다. 뒤에 가보면 별 낭파될 게 없어, 하나님이 모두 주권하고 계시기 때문에.
이래서, 성경을 읽는 것이 무슨 복이냐? 성경 읽는 것은 지켜 행할 수 있는 모든 실력을 갖추게 된다. 성경을 읽어 가지고 지켜 행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지게 된다.
지켜 행하는 것은 다 지켜 행할 수가 있는데 왜 지켜 행하지 못하느냐? 방해하는 그놈 때문에 성경 말씀대로 지켜 행하지 못한다. 방해하는 그놈 때문에 안 된다.
방해하는 놈이 어떤 놈이냐? 악령과 원죄와 본죄 이 셋이 들어서 방해하기 때문에 성경을 자꾸 읽는 데에서 악령, 원죄, 본죄 이놈이 살살 녹아서 차차 차차 약해지고, 그놈이 잘 안 나가요. 안 나가고 이래 있다가 오래 동안, 어떤 사람은 예를 들면 다섯 달, 어떤 사람은 그리 안 하면 뭐 일 년, 아주 깊은 속에 빠져 있는 것은 한 일 년 읽어야 됩니다. 일 년 읽으면 그놈 다 나가 버립니다.
그놈 그만 곯아서 못 견뎌서 ‘이게 암만 이리 쌓아도 성경 한 번이나 읽고 말겠지!’ 이놈 또 기다리니까 또 두번째 읽거든. 이놈이 죽을 지경입니다. ‘설마 두 번 읽고 말겠지!’ 또 세번째 또 읽습니다. 이놈 죽을 지경이요, 지금.
이런데 한 달 읽어 두 달 읽어 자꾸 이래 읽으면은 그만 이놈이 견디지를 못해서, 자꾸 견디다가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니까. 이놈이 범죄를 해야, 그 사람이 범죄를 해야 이놈을 먹고 살고 살이 찔 터인데 한 번도 범죄하지 않으니까 그놈이 살 수가 없다 말이오.
못 사니까 이놈이 나가 가지고, 견디지 못하니까 나가 가지고 다른 데 범죄케 하고 이래 돌아다니다가, 악령이 돌아다니다가 옆에서 보고 가만히 기다리다가 뭐 그럴 수 있는 틈이 있으면, 그런 틈이 있으면 퍼뜩 재빨리 들어옵니다.
재빨리 들어와 가지고 자기같이, 그러니까 금방 처음에 말할 때는 성령으로 말했는데 금방 육체로 말하기가 쉽습니다. 그걸 여러분들이 보면 악령이 우리 속에 얼마나 재빨리 들어오는가, 옛사람이 우리 속에 얼마나 빨리 들어온다 하는 것을 그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래서 성경을 읽어도, 성경을 잘못하면 성경 읽는 데 마비가 되기 쉽다 말이오.
성경을 읽으면서 거게 대해서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요, 내가 어떤 자이며, 사람이 어떤 것이며, 세상이 뭐이며, 성경은 전부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 성경이요,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약속하고 이런 약속 저런 약속 약속을 맺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무슨 약속을 해 주셨나 이 약속을 자기가 살펴서 보고, 이 하나님과 나와 계약이기 때문에 이 계약 어기면 큰일 난다. 이 계약 지키면 복 받는다.
이리 계약으로 알고, 계약 조문이 뭐 있는고 계약을 알기 위해서 성경을 보고, 하나님 앞에서 배우기 위해서 성경 보고 자꾸 이렇게 하면 그 사람에게 이 원죄, 본죄, 악령 이것이 나가면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라 안 사는 게 어렵습니다. 안 사는 게 어려워.
마치 하나 예를 든다고 말하면 어떤 사람이 처음 신앙 생활에서 주일은 꼭 지켰습니 다. 주일 지켰으면 주일 지키는 것이 힘드는 게 아니라 주일 안 지키기가 힘이 듭니다.
그래서, 6 5 때에는 모두 다 이렇게 주일을 못 지키구로 하고 예배당에 와 가지고 인민군들이, 이런 데는 그걸 못 봤어요. 우리 있는 데는 인민군들이 와 주일 못 지키구로 해요. 주일 지키면 뚜드려 패고 죽인다 하고 예배당 다 뺏들어 버리고 이러니까 그때에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아이구, 어데 사람 없는 무인도라도 가 가지고 주일 마음대로 자유로 지킬 수 있으면 좋겠다, 성경을 자유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소리 많이 했습니 다.
그러니까 그때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 요이불 자리에 눕지 안하고 모두 다 그래 거석한 사람은 다 심심 산골로 가 가지고 쫄쫄 곯면서 그래도 거게서 주일 지킬 수 있고 성경 볼 수 있고 자유 있는 걸 원했습니 다.
이러면 그 사람들은 주일을 어느 단계 가면 주일 안 지키는 것이 지키는 것보다 더 힘드는 때가 된다 말이오. 안 지키는 것이 지키는 것보다 더 힘이 들어.
그러니까 주일 안 지키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좋다 그 말이오.
이것 모양으로 하나님말씀대로 사는 것이 좋지 힘드는 게 아니라.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안 됐고 싫은 것은 언제 그러냐? 악령 원죄 본죄 그놈이 나를 붙들고 있을 때 내가 나 아니고 환장을 했기 때문에. 내가 나 아니고 변질이 돼서 환장을 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정상이 될 때는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좋고 쉽고 원하고 기뻐 되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우리의 방해물을 제거하는 데에는, 말씀대로 실행해서 이 구원을 이루어 가는 데에 방해하는 방해물을 제거하는 데는 성경 읽는 것이 제일 요긴하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는ㅡ 부도가 나 가지고서 지금 그래 있기 때문에ㅡ 너는 성경을 가서 기도원에 가 가지고 뭐 잡으러 오나 하는 그런 거 생각지 말고, 성경 읽는 동안에는 절대 잡지 안한다. 성경 읽을 때는 하나님이, 그 옆에 너를 잡을라고 막 아무리 해도 걱정하지 말고 성경 읽어라.’ 왜? 하나님이 모든 주권자이신데 요까지 왔더란대도 거기 못 가게 하면 못 갑니다.
‘이러니까, 성경을 읽어라.’ `몇 번이나 읽을까요?' `너는 너무 죄악이 짙어서 열 번 읽고 나오너라.’ 이랬더니만 어떤 사람 그만 다섯 번 읽고 나와 가지고, 다섯 번 읽고 나왔는데 그동안에 아마 오십 번 읽을 만침은 시간 허비했습니 다. 다섯 번 읽고, 열 번 읽고 나왔으면 그만 자유하고 이럴 건데 다섯 번, 애가 터져서 ‘다섯 번 읽느니 내가 나가 가지고 뭘 하면은 그래도 그게 더 될 터인데 이거 해결이 됐는데!’ 했지마는 오늘까지 해결이 잘 안 된다 그 말이오. 해결이 잘 안 돼. 알겠습니 까? 이런데, 성경 보는 시간을 그 시간이 아까와서 이거 안 보고 그만 행여나 뭐이 되겠다 이래 싶으지마는, 아니오. 성경 보는 것은 제가 죽자껏 일하는 거 몇천 배 몇만 배 더 큰 수입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성경 읽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또 그 다음에 “듣는 자들이 복 있다” 듣는 자들은 설교 듣는 거. 설교는 어떤 사람이 ‘집회 가 가지고서 은혜 받았다. 이러니까 집회만 다니면 되겠다’ 집회도 살리는 집회가 있고 죽이는 집회가 있고, 또 집회도 일학년 집회가 있고, 이학년 집회가 있고, 또 중학교 집회가 있고, 비유컨대 고등학교 집회가 있고, 대학 집회가 있고, 대학원 집회가 있고, 있기 때문에 대학원 집회에 참석해야 될 그 사람이 일학년 집회에 내려가 집회에 참석하면은 어찌 됩니까? 유익이 됩니까? 교만해져 버립니다. ‘아이구 나는 이 강사가 말하는 것보다 나는 훨씬 더 잘 믿었네. 너무 지나치게 믿었네.’ 이러기 때문에 그만 절단나 버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집회도 자기가 가서 볼 때에 ‘이 집회는 내 정도로 말하면 지금 내가 다 과거에 벌써 밟아 나온 거, 나로 말하면 지금 밟아 나온 집회기 때문에 이 집회는 나로서는 얻을 수입이 없다.’ 요런 것도 판단해야 되고, ‘이 집회는 내가 한 마디도 못 알아듣겠네. 너무 어려워서 못 알아듣겠네.’ 그라면 거기서 알아들을라고 애를 써서 얼마 동안 지나가서 한 닷새 집회하면 한 나흘이나 지나가면 한 마디 알아들어져. 조금 알아들려. 알아들리면 알아들리는 그걸 놓지 말고 그 다음에 자꾸 그 가르치는 소리를 자꾸 계속해서 떠나지 말고 들으면은 나중에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려지면 그 다음부터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말씀을 듣는 것도 그 속에 악령 악성 악습을 뽑아 버립니다.
알겠습니 까? 악령 악성 악습을 뽑아 버리는 데에 이건 특효약이오.
성경을 읽는 것은 이것은 뭣하는 것인고 하니 자연 식품을 먹어 가지고 자꾸 치료하는 것입니다, 자연 식품을 먹어 가지고 치료하는 거. 요새 여게 뭐 자연식이니 뭐이니 하는 말이 많이 있는데, 자연식이니 그런 말이 많이 있는데 어떤 사람은 병원에 가서 수술도 안 하고 치료도 안 하고 자꾸 자연식을 해 가지고 음식을 가지고 그래 가지고 병을 치료하는 것이 있어. 그라면 음식을 가지고 치료하면 음식 가지고 건강도 만들고 하는 거 모양으로 신구약 성경 가지고 우리에게 치료하는 것은 자연식 치료와 같은 것입니다. 자연식 치료와 같애요.
자꾸 보면, 성경을 그냥 줄줄 읽는 거는 소용 없어. ‘성경이 뭐라고 가르치는가?’ 성경이 나에게 가르쳐 주는 것을 하나씩 자꾸 배워 가면서 성경을 읽으면은 내게 있는 모든 암병이든지 뭐이든지, 그뭐 마귀 암병, 원죄 암병, 이거 본죄 암병 오만 병이 살살 녹아져 버립니다. 차차차 녹아서 말라 붙어 버리요.
이러니까 아무래도, 그러면은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이 돼.
또 이 재독하는 것은 어떤 거와 같으냐 하면은, 제가 그렇게 생각해 봤어요.
재독하는 거는 이 설교 재독인데 자기가 깨닫지 못한 걸 깨닫게 해 가지고, 하는 걸 자꾸 들어 깨닫는 것이니까 이 재독은 특효약입니다. 알겠습니 까? 재독은 특효약이라. 특효약은 병 있을 때 거게만 필요하지 특효약 늘 쓰면 병신돼 버립니다. 특효약 늘 쓰면 병신돼. 특효약은 가끔 가다 써 가지고 그 병을 고쳐서 치료가 돼지면 그라고 난 다음에는 이제 자연식을 해서 이렇게 해야 되지 자연식 안 하면 안 돼.
그러기 때문에 어릴 때는 이 설교 재독을 들어 가지고 귀도 열리고, 또 심령도 열려지고, 또 비판도 생겨지고, 이성도 살아나고 그라면 그 다음에는 성경을 읽으니까 깨달아집니다.
이 설교 재독을 많이 듣고 이라고 나서 보니까 설교 말씀도 들으니까 깨달아지고 또 성경도 읽으니까 깨달아지고, 이거 여러분들 그 경험이 있습니 까 없습니 까? 재독 많이 듣고 난 다음에 오랫 동안 여러 달을 재독 듣고 나니까 이제는 성경을 보니까 조금씩 깨달아지고 감동이 되고 그런 감이 느껴지고 그런 걸 경험한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정직하게 손 한번 들어 봐요. 아마 신앙 생활 한 사람은 다 그럴 거야. 신앙 생활한 사람은 다 그럴 거라. 이거 특효약이라.
그러면 특효약은 자꾸 쓰면 죽어요. 이 설교만 자꾸 먹으면 설교면 다인 줄 알고 설교만 자꾸 그라면 안 돼. 설교 특효약 그래 가지고는 나중에 설교 말씀 들은 것이 성경으로 가 볼 때에 ‘성경이다. 과연 성경이다.’ 이 설교는 성경을 소개하는 중매쟁이라 그 말이오. 이거는 특효약을 안 쓰면 안 되기 때문에 써 가지고 하는 것이니까 거게서 은혜받아 가지고 나중에는 이제 성경을 읽는 데에서 은혜받는 그 일을 자꾸 해야 된다 말이오.
그러고 기도는 뭐냐? 기도는 내가 뭐라 했지요? 기도는 뭐라 했어? 진찰 받는 거.
기도는 진단하는 거라. 기도는 진찰 받는 거라. 진찰을 해야 무슨 병이 있는 줄 알지요.
이래 기도를 하면은, 기도를 해도 그냥 자꾸 뭐 주십시오 이 소리만 하지 말고 이 기도 해 눈 감고 ‘주님이여 내게 잘못이 무엇입니까? 내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자꾸 이라면서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 가르쳐 달라고 조우고 또 그라면 가르쳐 주면 하나씩 잘못된 게 있으면은 그것을 고쳐서 회개해서 자복을 해 회개를 하고 자꾸 이래 기도를 하다가 이렇게 보면은 자기 속에 이제 병을 알게 됩니다. ‘나는 이게 틀렸다. 나는 저게 틀렸다.’ 기도 안 하는 사람은 자기 속에 숨어 있는 병을 모릅니다.
이러기에, 기도가 없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 돼 버리고 맙니다. ‘내가 고칠 거 없는데 뭐?’ 기도가 없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 되고, 기도가 많은 사람은 죄인 됩니다. ‘나는 이것도 잘못이다 저것도 잘못이다’ 바울이 말하기를 ‘나는 괴수 죄인이다. 나는 만삭되지 못해서 낳은 아이와 같다.’ 이리 말한 것은 분명히 바울이 기도를 많이 한 가운데서 그 진찰을 받았다 말이오. ‘나는 모태로부터 죄 가운데서 났다.’ 바울이 그래 말했고, 다윗이 말하기를 그때에 우리야 아내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징계받아 가지고 그랄 때에 얼마나 회개를 했던지 ‘주여 내 눈물로 침상을 띄우나이다’ 다 옷이 바짝바짝 젖어들고 온 몸이 그만 가죽하고 뼈하고 그만 딱 들어붙을 그럴 때에 그때에 다윗이 자꾸 진찰 받았다 말이오. 진찰 받으니까 ‘내가 어머니 모태 때부터 이렇게 죄를 지었구나’ 거게서부터 거게 있는 죄까지 다 미루어 찾아가지고 다 회개했어. 회개하고 나니까 다윗이 그런 죄를 지었지만 회개하고 나니까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다윗을 더 크게 썼습니 다. 몇 배나 커졌습니 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있기 때문에 실수라는 게 문제가 없어. 그만 고치면 얼마든지 고쳐 가지고 굉장히 돼질 수가 있어.
이래서 제 경험으로서는 성경은 자연 식품과 같다. 건강하는 자연 식품과 같다.
설교는 특효약과 같다. 기도는 진단 받는 진찰과 같다. 그뭐 건강한 사람은 진찰 받을 필요가 없어요. 진찰 받을 필요가 없어. 진찰 받으면 자꾸 피 빼고 뭐 빼고 해야 되고 이러니까.
이러니까 이제, 건강해진 사람은 자기 전부가 그만 주님하고 그만 의논이라.
주님하고 의논. 그저 앉아서도 의논, 누워서도 의논, 항상 주님하고 소근거리는 의논이 돼 버리고 마니까 그저 항상 주님하고 동거 동행이라. 동행이니까 뭐 기도할 게 뭐 있어야지? 사람이 모처럼 만나야 뭐 달라 하지 장 한테 있는데, 한테 있는데 달라 할 게 뭐 있어? 그분의 것이 다 내것이요 내것이 다 그분의 것인데 뭘 달라 해요?
이러니까, 어짜든지 우리가 첫째는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상고해서 읽는 사람돼야 되겠습니 다. 인제 우리 교회가 이 부흥되는 비결은 성경 읽는 것이 부흥되는 비결이다 하는 것을 제가 깨달았습니 다.
또 하나는 설교 말씀을 자꾸 재독해 들을 거. 이러니까 어떤 사람은 설교를 뭐인지 몰라요. 요 우리 교회도 박사들은 설교 몰라요. 박사도 뭐 많이 있지는 안하지마는 박사 하면 내나 좀 유식한 사람들 내가 말하기를 박사라 해. 그거 박사 학위가 꼭 있지 안해도 말이지요. 안 해도 대학 졸업한 사람들은 다 모두 박사라. 또 대학원 졸업한 사람도 박사고. 그런 사람들은 설교를 못 알아들어요.
잘 알아들을 것 같아도 설교를 못 알아들어.
이러니까, 어짜든지 설교 재독을 아는 것을 몇십 번이든지 재독을 자꾸 들어요.
귀에다 레시바 꼽아 놓고, 돈 좀 있는 사람은 녹음기 조그만한 거 사 가지고 또 요래 보겟트 넣으면 딱 되니까 요래 가지고 요 귀에다 딱 꼽아 가지고 그저 얘기할 때도 듣고 밤으로도 듣고 낮으로도 듣고 그만 그래 틀어 놓고 자. 이래서 어짜든지 우리가 이 말씀과 우리와 접해야 됩니다. 우리가 말씀과 접해야 되지 말씀 떠나 가지고는 아무것도 안 됩니다.
제가 오늘 아침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몇 번이나 말씀하셨는가? 그것을 자꾸 넘겨 가면서 헤아려 보니까 천사백까지 헤아려 봤어요. 이러니까 전부 하나님이 말씀해, 하나님. 가만 그라고 나서 보니까 내가 자다 깬 거 같애.
전부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대한 것은 전부 말씀으로 대했어. 전부 말씀으로 대했어.
말씀으로 대했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큰 능력과 축복받은 것은 전부 말씀 주실 때에 그대로 하니까 다 됐지 딴거 주지 안했어? 뭐 돈을 줬습니 까 권세를 줬습니 까? 권세 주실 때도 말씀 주시는 대로 하니까 권세 됐고, 또 돈도 말씀 주실 때 말씀대로 하니까 돈 됐고, 또 죽음에서 피난도 뭐 다 ‘어떻게 나를 여게 살려 주십시오’ 살려 달라 할 때 하나님이 말씀 주시니까 말씀대로 하니까 살아났어. 이 말씀대로 하니까 다 됐어.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말씀과 접하는 데서 하나님과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 말씀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 다. 또 이 말씀 외에는 우리는 사는 길이 없습니 다. 오후에 이제 계속하겠습니 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기도>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신 것을 성경을 읽을 때에 구비구비 속속들이 우리를 사랑하사 빠짐 없이 훈계 해 주시고 또 말씀대로 순종할 때는 즉각즉각 다 보응해서 복과 영광으로 나타나게 하신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렇게 절대적인 조물주 창조주 대주재와 저희들과에 주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해서 이런 밀접한 관계가 있고 이렇게 큰 축복을 받았는데 우리들이 이 축복을 깨닫지 못하고 받지 못하고 악령에게 미혹받아 이 축복을 다 흐려버려 전지 전능자의 형상을 이룰 수 있는 저희들이 이렇게 땅위에서 맛 잃은 소금같이 밟힘이 되고 있는 이 비참한 여게서 주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사 또 오늘도 이렇게 한번 다시 깨우쳐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 참석한 모든 성도들 이 성경에서 배우는 이 성경 공부에 전심 전력하는 여기에서 영육과 금생과 내세에 성공의 비결이 있는 이 사실을 확신하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많은 형제들을 불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들에게 주님이 함께 하사 이 어두운 세상에서 이제는 처음 믿을 때부터 성경을 또박또박 읽기 시작하여 성경이 나에게 뭐라고 말씀하는 것을 배워서 자기를 항상 광명케 하고 어두움이 해하지 못하도록 하여 주님의 축복과 은혜 가운데서 염려 없이 평강의 생활로 구원 준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을 구원하느라고 여러모로 수고한 사랑하는 종들에게도 그리스도의 사랑이 저희들 심령 속에 항상 불붙게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