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4 12:04
교회 안에 있는 여러 종류의 인물들
1988. 7. 24. 주일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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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도행전 4장 1절∼4절.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한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백성을 가르침과 예수를 들어 죽은 자가운데서 부활하는 도 전함을 싫어하여 저희를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문고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여게 기록한 이 말씀들은 교회 안에서 각종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인물들의 그 실상을 나타내서 우리에게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첫째로 부정모혈로 난 사람은 남녀노소 유무식 빈부귀천간에 모든 사람은 나면서 앉은뱅이와 갈은 사람이라 하는 것을 우리에게 알리십니다.
이 앉은뱅이는 항상 다른 사람의 도움을 입기를 원하고 또 입어야하고 그의 사업은 다른 이의 도움을 입는 것이 저희의 직업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많은 도움을 입으면 잘 됐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도움을 적은 사람들에게 적게 입으면 실패라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저희의 생애입니다.
이 자연인, 부정모혈로 나서 예수님으로 변화받지 못한 사람들은 다 자연인인데 자연인은 누구든지 다 나면서 앉은뱅이 구걸하는 사람들, 모두 다 남을 의뢰하고 이용하고 도움을 받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라 그렇게 여게 나타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차차 만들어서 먼저, 인간들의 도움을 받지 아니하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사는 것이 자기의 생애에 본성입니다. 또 어떤 물질이라도 물질에 그 도움을 입을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그거는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 한 분에게 모든 은혜를 받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쳐 모든 사람을 유익되게 복되게 참 행복되게 하는 그것이 자기의 직책이요 혹 얻고 받는다고 해도 그것은 상대방을 줄 수 있고 도울 수 있는 그런 길을 마련하는 것이지 사람의 도움이 아니면, 자기는 견딜 수 없어서 도움을 필요로 해 가지고서 하는 그런 사람은 안 되는 것입니다.
마치 요한복음 4장에 보면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 하는 이 성구가 모든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의 교회에 월급을 요구하고 이런 거 저런 거 필요한 모든 물질을 요구하는 것이 이 성구에서 가르치는 이 본질 본성이 아니면 그것은 다 삯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물을 달라 하니까 그 여인이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지 안하는데 어떻게 나는 사마리아 여인인데 당신은 보니까 유대인이면서 나에게 물을 달라고 그렇게 요청을 하느냐 하면서 이의를 달았습니다.
그때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한테 물을 달라고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고 그에게 구하면 생수를 줄 것인 것을 네가 알지 못해서 그러하다. 네가 말하고 있는 이 야곱의 우물은 암만 먹어도 또 목마르거니와 내가 주는 생수는 먹으면 뱃속에서 샘이 되어서 영원토록 솟아나게 된다 하는 말씀을 할 때에 여인이 깨닫고, '내가 보니 당신은 선지자로소이다. 물을 길을 그릇도 없고 거리도 멀고 이러니까 어떻게 우리 조상' 위대한 야곱도 여게서 지하수 파 가지고 우리에게 주었는데 생수를 주겠다고 그렇게 합니까?' 이래서 주님이 그 말씀을 했습니다.
이 우물은 먹어도 목마르지마는서도 내가 주는 우물은 먹으면 다시 목마르지 안하고 영원토록 네 뱃속에서 솟아나서 넘친다 하는 그 말씀을 듣고 여인이 나에게 이 생수를 주시옵소서 말했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그때부터 말을 걸어 가지고서 '네 남편이 있느냐?''남편이 없습니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없다고 하는 네말이 옳다. 너는 그런 음란한 사람이지마는서도 실상 이 시간에 정신차려서 너는 남편 없는 독신의 사람인 것을 네가 깨달은 것이 바로 깨달았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또, 앞으로도 교회라는 그 직책은 뭐인고 하니 하나님 한 분에게 받는 은혜로 영계의 천군 천사와 이 물질계의 모든 만물들에게 충만케 해주는 이 직책을 영원히 가진 것이 중생 성화된 성도들이며 이것이 하나님에게 받은 영원한 기업입니다.
또 그러고 하나님의 사람은 땅위에 있는 피조물을 하나도 의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한 분만을 믿고 의지하여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없는데서라도 자산에도 푸른 초장이 있고 또 흑암에서 드러나고 이 세상 모든 죄악의 결박에서 풀려 나오게 되면 길에서 먹으리라 말씀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없는 가운데서도 있게 해 주시고 오만 것을 당신이 지은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이것을 바라보고 사는 것이 기독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만물이 있어도, 만물에게 파묻혀 죽을 만치 가득히 쌓여 있어도 하나님이 안 주시면 자기에게는 터럭만치도 유익이 없다는 이 사실을 깨닫고 또 하나님이 도와 주신다면은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도 모든 것이 다 있게 하시고 풍성케 되기 때문에 전적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합니다.' 아브라함이 이 걸음을 걸어서, 롯은 땅에 있는 모든 조건 좋은 그런 조건들을 자기의 행복의 원인으로 삼았으나 아브라함은 땅위의 조건고것이 행복의 원인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행복의 원인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 한 분만을 따라서 그는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축복으로 만민의 조상이 됐고 성공을 했고, 하나님 없어도 피조물만 구비하면 된다고 하는 그 걸음을 걸은 믿음의 조상 롯은 그는 가정과 자체가 아주 비참한 것으로 완전히 전멸되는 것으로서 끝을 맺고 말았습니다. 이래서, 나면서 앉은뱅이 이 구걸하는 앉은뱅이가 곧 모든 자연인이라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자꾸 생각해서 고 뜻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모든 자연인, 자연인이라 하는 것은 부정모혈로 난 모든 자연인, 이거 자연인이라 말하는 것은 특수인이 있기 때문에 자연인을 말합니다. 특수인은 성령으로 잉태하신 예수님만이 특수인이고 모든 사람은 일반인이요 자연인입니다.
자연인을 여게서 나면서 앉은뱅이된 구걸하는, 남에게 메여서 이리저리 다니는 그런 불쌍하고 가련한 자가 곧 타락한 인생이라는 것을 여게 가리키고 있습니다.
어것을 자기가 이해가 안 돼도 자꾸 깨닫고 생각하면 확실히 이해가 될 것이고 이해가 안 되면 마지막에 죽을 때에 운명하기가 가까워지면 그때는 확실히 이해가 돼서 아멘이 될 것입니다.
또 그러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며 다 모두 은혜를 입어서 건강한사람들인데 하나님의 교회의 일꾼 중에 그저 사람들을 동서남북에서 끌어다가 성전 안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성전 미문에 앉혀 놓으니까 외부 사람들은 볼 때에 성전 안에 들어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마는 실은 성전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성전 담장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을 전도해서 교회로 인도하니까 안 믿는 사람이 볼 때는 저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이라 이렇게 생각을 하지마는서도 안에 들어와보면 실상 하나님을 만나지도 못하고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니고 다만 그 사람은 그저 다른 사람에게 구걸하고 항상 병신 노릇하는 그런 사람을 메어다가 놓는데, 이렇게, 하나님이야 만나든지 못 만나든지 구원이야 되든지 말든지 그 사람들을 세상에 이렇게 구걸하는 행동 해 가지고 얻는 수익을 서로 할당해서 교회에 출물꾼을 모집하는 이런 일꾼들이 참 무익한 일꾼들이며 아무 희망 없는 그런 일꾼들인 것입니다.
이래서 교회서는 동서남북에서 모든 구걸자들을 주 모아다가 이렇게 그 이익 배당이나 하고 그 인도한 사람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을 만나게 하지 못하고 구원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그 일꾼들은 다 가리켜서 이런 사람으로 비했습니다. 이것도 참 불쌍한 사람이요 하나의 직접이 아니라도 구걸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또 거기에 하나님의 성전에 출입하면서 이 나면서 병신된 이 모든 구걸자를 그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지 못하고 구원 얻지 못하고 있는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이 그저 배고프다 하면 돈푼이나 줘서 입이나 막고 그냥 그 기회를 놓치고 있는 사람, 다 같이 믿는 사람이라고 다른 사람들은 보고 있지마는 그 사람은실은 교회 나오기는 나오지마는서도 신앙이라 하는 거는 없는 사람, 신앙이 없이 하나님 만나지도 못하고 구원도 얻지도 못한 그런 사람을 서로 협조하고 부조하고 서로 화목하고 사랑하고 이렇게 마음으로 돕고 생각으로 돕고 이렇게 몸으로 돕고 물질로 도와서 서로 협조나 하면은 이것이 예수 믿는 신앙 생활인 줄 알고, 예수님을 만나게 하는 그 인간병을 고치게 하는 그 일에는 아무 관심없고 그저 심신으로 서로 협조하고 우애 있고 화목하고 이렇게 지내는 그런 일꾼들도 다 희망 없는 불쌍한 일꾼들인 것입니다. 이것을 여게서 가르칩니다. f 구걸만 주고 달라 하니까 한 푼 구걸 주고 이제 도복을 입고 썩 나가고 또 썩 들어오고 하는 그런 사람들, 이제 요새는 지금 이것이 신사입니다. 이래서 너무 꼭닥 거려서 그 사람을 무엇을 파고 해부를 하고 수술을 하고 이래 가지고서 인간병을 고칠라 하는 사람들은 다 싫어하고 이렇게 수수하게 점잖하게 신사로 그저 화목하게 화평하게 무골호인으로 이렇게 지내는 그런 사람들이 지금 아주 판을 칩니다.
또 흑백을 가리지 안하고 무엇이든지 그저 다 자기가 아무런 마찰 당하지 안하고 거게서 어려움을 당하지 않기 위해 가지고서 무사 태평주의로, 이렇게 지내는 그런 사람들을 신사라, 관대한 사람이라, 관용하는 사람이라, 그 사람의 인간성 인간미가 있는 사람이라 그렇게들 지금 말을 해서 교회는 자꾸 그렇게 타락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랬는데, 베드로와 요한이는 다 같이 지나가면서 그 사람들을 보고 그저 지나가지 안하고 주목을 했습니다. 어떤 점을 주목했는가? 이 사람이, 여게 다 성경에는 기록되지 안했지마는서도 아마 뭐 그것을 물었을지도 모를 것입니다.
이렇게 언제 앉은뱅이가 됐으며 앉은뱅이된 지가 얼마 됐으며 또 이 성전 미문에 와 가지고 구걸한 지가 얼마나 됐는가 하는 그런 것도 서로 문답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고래서, 자세히 뭘 묻고 이라니까 무슨 구제나 해 줄 줄로 알고 뭐를 얻을까 해서 바라봤다 이랬습니다.
이라니까, 베드로와 요한이가 말하기를 은과 금은 내게 없다, 나는 은과 금을 내 소유의 전부로 은과 금을 내게 필요한 것으로 여기지 안하고 은과 금은 내게 없고 다만 내가 가진 것 있으니 나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내가 가졌다 이랬습니다.
이름이라는 것은 행사를 말합니다. 그 사람 이름이 떨어진다면 행사가 떨어진다 말이요 그 사람의 이름이 커진다 말은 행사가 커진다 말이요 그 사람의 이름이 위대하다 말은 행사가 위대하다 말이요 그 사람이 요새는 아주 이름이 파묻혔다 말은 그 사람의 이력이 이제 없어지고 다 묻혀져 간다 그말입니다.
이래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행위를 했고 지금도 예수님의 행위가 있다. 뭐하느냐? 피와 성령과 진리 이 세 가지 역사가 있는데 이 세 가지 역사 외에는 내게 없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 이름 그것만 내가 가지고 있다 하는 것을 베드로와 요한이 말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뭐 마실까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생각할 것이나 염려할 것은 아닌 것입니다.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믿는 사람들은 뭐 하루 아침부터 저녁까지 전심전력은 여게 기울이고 있는데 그러면 이거 안 한다 말은 그거는 말도 아닌 소리가 아니겠느냐? 하나님이 거짓말하시는 하나님 아니신데 그분이 똑똑히 말씀하시기를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말씀을 했고 또 마태복음 4장에도 보면은 '이 돌들로 떡이 되게 하라. 이 사람들이 배고파서 모두 못 견디니까 돌들로 떡 되게 하라'이랄 때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이 사람되시기까지 하셔 가지고서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이 대속을 주셨고 또 영감과 진리를 줬기 때문에 어짜든지 예수님의 사죄, 칭의, 죄 안 짓고 의롭게 하나님하고 떨어지지 안하고 하나님하고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진리대로 살고 영감대로 살라고 하면 사업이고 물질이고 전체는 다 그에게 필요한 대로 다 주신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이래서, 내가 얼마 전에도 지금 현재 정권에, 정치에서 정권을 욕망하고 있는 사람에게 만나 가지고서 내가 말하기를 너무도 하나님이 볼 때에 중량이 가벼워서 하나님이 요거만 조그만한 나라도 맡길 만한 그런 사람이 없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이 더해 주신다고 했다.
이러기 때문에, 정권 주고 안 주는 것은 하나님께 주권되어 있지 인간들이 뭐 가지고 싶다고 가지는 것도 아니요 주고 싶다고 주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껍데기만 보니까 그런것 같지마는 실은 그런 것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기면 가지게 되고 안 맡기면 안 가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 믿는 사람은 크나 작으나 그저 죄짓지 안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에서 진리로 자기 생애 법칙을 삼고 영감으로 자기의 생애 법칙을 삼아서 사는 사람이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다 맡겨 주십니다. 얼마든지 맡겨 주섭니다. 이것은 믿은 사람들은 다 '이것을 얼마든지 다 경험했습니다.
이래서, 베드로와 요한은 자기의 소유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와 그이름 이것만 가지기로 단정지운 사람들이 사도들입니다. 우리는 사도적 신앙을 가지고 사도를 본받아서 사도의 제자가 돼야 합니다.
우리는 천만 금을 준다 해도 그 돈에게 현혹 당하지 안해야 됩니다. 온 천하 권세를 다 준다 해도 거게 유혹 받지를 안해야 합니다. '있는 전부를 다 빼앗아서 없앤다고 할지라도 거게 대해서 피동되지 안해야 됩니다. 나를 벗기고 굶겨 죽일 자도 주님 한 분뿐이요 입히고 먹일분도 그분 한 분 뿐입니다. 이외에 딴거는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해라. 그리하면 이 모든 거 너에게 더 해 주신다. 요것을 똑똑히 우리가 구별해 가지고 판별 해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베드로 요한은 다른 거 하나도 가지지 안하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이름만 가지고 이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에게 이 이름을 그에게 주면서 일어서서 걸어가라 하니까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가 일어서서 걸어 갔으니까 그 앉은뱅이의 인간 문제는 완전히 해결해 줬습니다.
그뭐 날마다 구걸 안 해 줘도 구제를 안 해 줘도 이제는 다시 구제받지 않는 사람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구제를 하고 살라 하는 그런 사람을 만들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게서 보니까 제일 그 행복된 사람은 어떤 사람이 제일 행복된 사람인고 하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진 베드로와 요한에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아 가지고서 이병이 나아서 이제 고침 받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성전에도 자유 출입, 하나님 만났지, 또 하나님 찬미할 수 있는 영감 받았지, 또 그가 정상적인 걸음을 걷게 됐지 이러니까 뭐 그 군중 가운데에 제일 기쁜 사람은 이 사람입니다. 제일 기쁜 사람은 이 사람이오.
그때 누가 기뻤겠소? 그 부자가 기뻤겠소 이 사람이 기뻤겠소? 아마 그 현장에서 제일 기쁜 사람이 이 사람이었겠고 또 제일 만족한 사람이 이 사람이겠고 또 희망에 넘친 사람이 이 사람이겠고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을 당하고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다 존대해서 존경을 받는 그 인기가 아주 집중된 그 사람도 이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여게서 그뭐 사람들이 아직까지 인간 맛을 모르고 눈이 소경이 돼서 다음이 어찌 된다는 그것을 몰라서 다 썩은 것을 거머쥐고 좋다고 날뛰고 있지 이 외에 땅위에서는 가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공연히?' 하나님의 사람들은 온 천하 권세를 준다 해도, 아마 천하 권세를 준다고 거게 피동돼서 움직일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진짜는 아닙니다. 그 가짜입니다. 천하에 재물을 다 준다 할지라도 그것을 가치로 삼는 사람도 하나님의 사람으로서는 진짜의 사람은 아닙니다.
그가 밤낮으로 갈급한 것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이름입니다. 그분의 행사. 그분이 동할 때에 동하고 정할 때에 정해서 그분과 함께 동거 동행하는 이것을 제일 그리워하고 가치로 삼지 딴것은 삼지를 아니합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 믿는 사람들이 뭐 자기가 자기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자기의 소왼을 달성할라고 자기의 소욕을 달성할라고 자기가 평가를 높이 하는 자기 평가하는 그것을 한번 만족히 가져 볼라고서 이렇게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참 철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건 참 철때기가 없어서 아직까지 늙어보지 안했고 그것은 죽기 전세 죽어보지 안해 그렇습니다.
기독자는 죽기 전에 여러 수천 번 죽어보는 것입니다. 내가 죽었다. 이제 다, 내가 죽으면 다 손 몌고 다 맡겨 주고 빈손 들고 나는 가야된다, 여러 수백 번 수천 번 죽어도 보고 또 살아도 보고 오만 것을 자기가 다 책상 위에서 또 하나님 앞에서 무릎 꿇고 이제 오만 거 다 경험해 본 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그런 것으로서 자기가 만족이 되리라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정반대로 오히려 그것을 죽일라고 날뜁니다. 자기의 소원과 욕망과 자기의 희망 자기의 계획 이런 것을 죽여서 그거 하나 죽일라고, 자기에게 그 욕심 하나 있으면 그놈 죽일라고 눈물을 얼마나 흘리고 애를 얼마나 써 가지고서 그것을 죽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좋아하고 달성하기 위해서 전심 전력 기울이고 달성되면 만족하고 좋아하지 마는서도 네 만족과 좋아하는 것이 며칠이 가겠느냐? 몇 시간이 가겠느냐? 어데까지 가겠느냐? 그 면적을 얼마나 차지하겠느냐? 다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한고 말했어. 그저는 솔로몬이 천하 영광 다 차지해 보고 그가 노경에 들어서서 모든 거 경험하고 난 다음에 인간 일생을 탄식하면서 그가 마지막에 기록한 것입니다.
이래서, 그저 어쩄든지 자기에게 있는 인간병 고치는 이것이 인간의 행복 중에는 제일 행복이다. 만족 중에는 제일 만족이다. 이 행복과 만족은 권태 나는 것도 아니고 지루해지는 것도 아니고 그 가치가 갈수록이 노쇠해지는 것도 아니고 갈수록 가치 더 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새로와집니다. 더 청청해집니다.
이것을 깨닫고 자기에게 달라들어서 뭐 자기의 소유나 몸이나 생멍이나 그런 것도 다 자기 인간병 고치는데 애낌 없이 투자합니다. 투자해서 인간병을 고치기 위해서 자기의 전심 전력을 기울여서 하는 사람은 이 가운데서 세상이 뺏들어 가지 못할 행복을 자기가 가지게 될 것이고 온 세상 사람들이 하나도 경험하지 못한 참 생명에 속한 하늘에 속한 그 경험을 자기가 경험할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도 그 세상에서도 행복된 사람은 어떤 사람이 행복된 사람이냐? 다 썩을 것으로 심고 썩을 것으로 거두는 사람이지마는서도 자기에게 세상이 보는 대로에 인간병을 고칠라고 하는 그 사람이 세상에서도 머리가 됩니다.
세상을 차지할라고 하는 사람은 머리가 되지 안하고 인간병을 고칠라고 자기에게 자꾸 치료해서 떼 버리는 사람이 그 사람이 위인이 되고 세상을 점령하지 차지할라 하는 사람은 남의 종이 되고 섬기는자 되고 발에 밟히는 자가 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안에서 이 인간병을 고칠라 하는 것은 이는 노쇠함이 없습니다. 갈수록이 청청합니다.
예를 들어서 참 아주 큰 거 하나만 시간 없으니까 말한다면은 자기가 사랑에 완전한 사람이 되겠다 자기의 소유와 몸과 생명을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데에 다 투자해 보겠다 하는 요것을 결심하고 고렇게 하는 사람은 땅위에 모자라는 것도 없고 아무것도 탐해 것이 없습니다.
구세군 창설자 읠리암 부우드라 하는 그 사람은 구세군 창설자인데 그 사람은 요 도리를 깨닫고 빈손 쥐고 이제는 나는 주님을 사랑함으로 인간들을 사랑하여서 구원하는 이 역사를 하겠다 하고서 빈손 들고 나가서 자기는 이 모든 물질로 인간들을 구원해 가지고서 하나님의도를 보여 주겠다고 해서 그는 나섰습니다.
나서서 세계에 구세군 구호 기관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세계에 아주 큰 유명한 감옥, 아주 몇천 몇만의 죄수들이 갇혀 있는 그런 감옥마다 그 앞에 큰 기업체를 꾸며 가지고서 그저 그 감옥에서 나오면 다 얼마든지 거게서 취직해 가지고서 자유업 하면서 사람을 다 예수 믿어 구원 얻도록 이렇게 뭐 감옥마다 또 필요한 지역마다 이렇게 해서역사에서 물질 가지고 사람을 구원하는 이런 봉사업에 제일 투자 많이 한 사람이 윌리엄 부우드라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 아무것도 없이 나섰습니다. 그 사람 아무것도 없이 나설 때에 다른 사람이 '네가 아무것도 없는 네가 나서 가지고 그렇게 인간 구제 구원을 할라고 하니까 어떻게 할라고 네가 하느냐, 돈 한푼도 없는데?'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는 데에는 물질은 우주에 충만한게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있다고 담대하게 장담하고 두 내외 나섰습니다.
과연 그에게는 일생 동안 그렇게 역사에 인간으로서는 물질로 인간구제는 제일 많은 구제액을 투자한 사람, 그 내외 빈손 쥐고 나섰지마는서도 하나님이 주석서 그렇게 많이 역사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꾸, 믿지 아니하고, 그 갈릴리 바다에서 주님만 믿으니까, 믿으니까 주님의 능력으로 물 위를 육지처럼 떠뻑떠뻑 걸어갔는데 제가 책임을 지고서 염려를 했을 때에는 그는 빠져 들어가 죽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그에게 도와서 돕는 그것을 깨달은 사람들은, 땅위에 아무 염려가 없습니다. 염려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도 하나님이 돕는 이 기적의 역사가 많이 있는데 이걸보고도 알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기적은 자꾸 잊어 버릴라고 하고 안 볼라고 하고 다른 사람들이 말하면 자꾸 끌어묻고 방해를 지기고 이렇게 합니다.
이 서부교회서도 하나님께서 모두 다 기적입니다. 전부 기적이오. 기적 아닌 일이 하나도 없어. 우리 주일학교가 이렇게 큰 것도 기적이오. 서부교회가 큰 것도 기적이오. 다 기적이지 사람 한 것 하나도 아닙니다. 백 목사는 그렇게 할라고 생각도 안 했어. 그런 꿈도 안 꾸었어.
다 하나님이 하셨고 모든 거 다 하나님이 하셨지마는서도 하나님이 하셨다 소리를 어떻게 듣기 싫어하는지! 꼭 인간이 했다 해야 좋고. '네가 했지?' 하면 좋아합니다. 그게 속에 악으로서 지옥 갈 옛사람, 자기 아닌 그것에게 사로잡혀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부터라도 참으로 네 행복을 구하느냐? 네 기쁨을 구하느냐? 평강을 구하느냐? 네가 모든 염려 없이 살기를 원하느냐? 가장 쾌락 생활을 하고자 하느냐? 할라면 딴거 없습니다. 자기에게 있는 인간병, 무엇이든지 인간병, 성경에 위반된 저는 다 인간병입니다. 성질이든지 마음이든지 생각이든지 계획이든지 욕심이든지 자기 무슨 기존 지식이나 선입적 관념이나 모든 자기의 체험이나 경험이나 어쩌든지 신구약 성경에 금하는 것은 다 인간병입니다.
그것을 하나씩 고치는 여기다가 가치를 두고 이 고치는 데에 취미를 붙이고 이 고치는 데에 열중한 사람은 그 사람은 결단코 피곤이나 또 그 사람은 권태나 그 사람은 불안이나 불평이 있을 수가 없고 항상 행복 가운데서 삽니다.
이것을 지금 개봉을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믿는 가운데서도 여러가지 행복이 있지 마는서도 제일 큰 행복이 뭐이냐 하면은 자기 고치는, 자기 인간병을 고치는 그것입니다.
인간병 이것이 큰 건 줄 모르면 자기 인간병이 큰 건 줄 모르거든 건너다 보고 다른 사람의 인간병을 자기가 진찰해 보면 알 것입니다. 저 사람은 항상 고생하고 고통하고 걱정하고 근심하고 있는데. 왜? 돈이 없어? 돈도 있고 권세도 있는 데서 고통합니다. 그 사람은 저사람은 뭐인가? 그 사람도 두말 할 것 없이 인간병이다.
저 사람 인간병은 뭐인가? 그 사람 인간병은 하나의 허욕이라는 허욕 하나만 가져도, 그 허욕이 달성이 됩니까? 달성이 안 돼. 그거 달성시킬라고 죽자껏 달라들어서 하다가서 늙어 죽어버리고 맙니다. 또 허영 하나만 가져도 그러합니다. 자기가 가지지 안할 마음 하나만 가져도 그러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는 그 미움 하나만 가져도 자기에게는 일생 동안 참 중한 병 치료병 불치병이 들었습니다. 고걸 회개해야 되지 달리는 하는 수가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인간이 왜?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만물의 영장인데 만물의 영장 하나님의 아들이 뭐 그 미국 대통령만 못하겠소? 그런 것도 아니라. 그런 걸로 유가 안 돼. 하나님의 자녀인데. 하나님의 자녀의 행복을 왜 못 누리느냐? 못 누리는 것은 인간병 그것 때문에, 이거 때문에 아프고 저거 때문에 쑤시고 저거 때문에 찌르고 저거 때문에 괴롭고 고통스러워 그렇지 이걸 완전히 치료할 때에는 그에게는 평강과 기쁨과 만족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이 참된 행복이 우리 앞에 있는 것을 깨닫고 이것을 가치로 삼아서 구하는 사람이 됩시다.
이번에 장생골 집회에는 저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를 그래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이번 집회에서는 다른 것보다 둘을 주십시오.' 둘을 달라고 하는데 하나는 뭐이냐? 세계에서 지금, 미국서도 그 요새 비행기 표가 타기 어렵다고 하는데 거기서도 모두 다 두 딸 전에 석 달전에 모두 준비해 가지고서 온다고 그렇게 모두 다 여러 교회서 온다고연락이 왔고 또 저거 자녀들은 오라고 내가 했는데도 보니까 몇 사람은 오고 몇 사람은 안 온다고 하고 있는데 안 오면 그것들 망하고 손해갑니다.
안 오고, 뭐 때문에 안 오느냐 하면은 찍해야 죽을라고 자살 행위하느라고 안 오지 딴것 때문에 안 오는 건 아닙니다. 먹으면, 독약을 먹으면 죽지 않습니까? 사약을 먹으면 죽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주시지 안하는 것을 취하면 그것이 독약 먹는 것이요 사약 먹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는 것만 먹어야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오는데 주님이여 교통에 안보를 줘서 무사히 왔다가도록 해 주시고 그동안 은혜받는 데에 중은 일기도 주시고 은혜받기에 적당한 모든 환경 주위 분위기를 다 조절해 주시고 원하옵는 것은 인간병 고기덩어리병 요 둘을 고쳐 주옵소서, 무조건 다 고쳐 주옵소서 고쳐 주고 다시 죄를 짓거든 더 큰 증세를 주시옵소서. 죄지으면 더 악한 자가 됩니다.
거게서 나쁜, 예를 들어 물욕이나 명예욕 그렇지 않으면 한 가지 또렷히 표나게 할라면 음욕 그런 걸 있던 걸 그런 욕심을 이제 병을 고쳤습니다. '이제는 음욕을 다시는 버려야 되겠다' 고친 그자가 다시 범죄하면 다시 음욕을 시작하면 과거에 배나 더 큰 범죄를 합니다. 그런 자는 징계를 해 가지고 당장에 오글뜨려서 죽이지는 말고 죽을라고 이렇게 발발발 하거들랑 회개하거든 또 하나님이 축복 주시고 이래서, 사랑의 징계로 오글뜨리고 또 회개하거든 사랑위 축복으로 뻐들뜨려서 징계와 축복의 그 교체를 빨리빨리 하셔 가지고서 이 신속한 세윌에 어서 고침 받아 가지고서 주님 앞에 흠없는 자로 가도록 해달라고 그걸 늘 계속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이것을 우리가 힘을 써야 되겠고, 보니까 베드로와 요한 그 보니 그 사람들은 저거 인간병 고쳐 놓으니까 그 다음에는 남의 인간병 고치는 데에 자기 업을 삼았어. 다른 사람 인간병 고치 는 업을 자기네들 직업을 삼았어.
이래 놓으니까, 저 베드로전에 베드로 동상이 있는데 그 동상 이 키큰 사람은 입이 대이고 키 작은 사람은 발을 들면 대인답니다. 오는 사람마다 베드로의 발꿈치에 어떻게 입을 맞춰 놨든지 그 쇠가 반들반들 닳았대요. 반들반들 닳았어.
지금도 우리 같은 사람은 베드로 그 선생님이 있으면 그 앞에 좀 무릎을 끓면 싶으고 또 존경을 하면 싶으고 좀 모시면 싶으고 그런 마음이 있지 않습니까? 이러니까, 그 자리에서도 그랬어, 몇십 년 동안을 업고 돌아 다니고 메고 돌아다니면서 수고한 사람들은 뭐 내 몰라라 하고 딱 이별해 버렸습니다. 생전 초면 베드로와 요한의 사람이 돼 가지고 죽자 살자하고 따라다닙니다.
아마 베드로와 요한이가 누으라 하면 누울 것이고 앉으라 하면 앉을것이고 서라 하면 설 것이고 기라 하면 길 것이고 뭐 베드로의 발을 핥으라 하면 막 좔좔 할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들에게 존대함을 받는 자가 누구냐? 존대함을 받는 자는 인간병을 고치는 그 외에 존대함을 받는 것이 없습니다. 지금도 그러하고 영원도 그러합니다. 영원도 그러해요.
사람들이 속혀서도 뭐 석가모씨 저런 이도 모두 다 존대하는 것은 그분이 인간병을 고쳤다고 해 가지고서 그렇게 존대하는데 인간병 고친것이 '헛일이다!' 하는 날이면 그때는 박살이 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간병 고치는 것은 이제 변동이 없습니다. 그것이 파괴되는 때가 없어. 영원 무궁하고 완전합니다.
이래서, 우리가 하는 사업은 내가 공장 하는 것도 품파는 것도 인간병 고치는 이것을 자기 업으로 삼아서 그 자본으로 쓰기 위해서 하는 사람들 낙심하지 말고 게을리하지 마십시오.
지금은 그때만 못합니다. 이 품꾼들이 닷새 반 품들어 가지고서 또 주일 빼니까 품삯을 많이 안 줘. '그래 빼면은 우리는 안 쓸랍니다.' '좀 돈을 적게 주고 쓰십시오' 이라면 적게 받고 쓰니까 뭐 닷새 반, 월, 화, 수, 목, 금, 토요일날 반날밖에는 안 하니까 품삯이 적어, 그래도 이거 받아 가지고서 근근히 밥먹고 나머지기는 전부 인간병 고치는 토큰에다가 다 투자했습니다. 이렇게 투자한 자마다 마구 땅위에서 부자 안 되는 자 없습니다. 이제 조금 있어 보십시오.
우리 서부교회 뭐라고 쌓아도 제가 볼 때 저 사람은 돈이 좀 없는데 돈 좀 더 있어야 되겠습니다. 하는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돈이 너무 많아서 탈이지 돈이 저 사람 적어서 좀 안 됐다 싶은 사람은 내가보기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한 사람도 없어.
그 분수와 그 정신 사상과 그 인품에 따라서 좀 더 많으면 그 돈에 치여 죽지 돈이 자기를 도울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서 도울 돈은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래서 인간병을 고치는 이 일에 전력을 기울이는 것이 복 있고 인간병 고치는 자는 자신이 인간병을 고친 자라야 남의 인간병을 고칠 수 있지 자기 인간병을 고치지 못하고 돌아다니는 거는 내나 이제 메어다가 놓는, 앉은뱅이 메어다 놓는 사람들 뭐 구제하고 구걸해 주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종류에 들어가는 사람이지 인간병을 고쳐서 이렇게 대우받고 환영받는 사람은 못 됩니다.
그러니까 여기 봐서, 수고했지마는 헛일이오. 수고했지마는 헛일이라. 자녀를 있는 돈 다 들여 가지고서 공부를 시킨다, 외국에 유학을 시킨다 이렇게 모두 다 애를 쓰고 이라니까 나중에 가서 자기 자녀 되리라 생각하지마는서도 그 사람이 인간병을 고쳐 놓으면 나중에 가서 인간병 고치는 그 사람의 사람이지 자기 아버지 엄마의 사람이 안 됩니다. 요거 어짤 수 없어. 어짤 수 없어.
이러니까, 어짜든지 자기가 인간병을 고치기 위해서 우리 OOO선생님 아버지가 저기 와서 계시는데 내가 보니까 그 아들을 미국에 돈 보내 가지고서 유학을 시켜도 목적이 '이놈을 미국에 보내 가지고 어짜든지 인간병을 고쳐서 이제 하나님이 쓸 수 있는 인간병 고치는 능숙한 자가 되도록 하겠다' 하는 요 목표를 가지고 하면은 그는 하나도 헛되지 안하지마는서도 저거 뭐 거석해 가지고서 어떻게 세상에 무엇을 바라서 이래 하면 뒤에 가서 다 후회하고 헛일밖에는 안 됩니다.
이래서, 우리가 인간병 고치는데는 자신의 인간병을 고쳐야. 그 다음에 인간병이 고쳐지는 것입니다.
그러고, 여게 이 불쌍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 가운데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줄줄 따르면서 이렇게 하니까 거게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백성을 가르침과 예수를 들어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 전함을 싫어하여' '싫어하여' 저희를 잡아서 옥에 가뒀다 이랬습니다. 이 사람이 제일 불행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베드로 요한 그 사람들이 이렇게 인간병 고치는 걸 보고서 제사장들 성전 맡은 자, 제사장 성전맡은 자 다 이거 레위 사람들인데 이게 누구냐? 이것이 오늘 교회 목사, 장로, 권사, 집사, 전도사, 권찰, 반사 이런 사람들이 다 성전 맡은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다 레위. 사람들입니다.
이런데, 이 사람들 중에 불쌍한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불쌍한 사람이냐? 그 사람들은 이렇게 나면서 앉은뱅이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쳐서 인간병을 고쳐 준 그 병 고쳐 준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지 안하고 시기해서 미워서 잡아 가둬서 그것을 없애 버릴라고 애를 쓴 그자가 제일 불쌍한 자입니다. .
이래서, 어찌 됐는가? 그 후 삼십 몇 년 지나고 난 다음에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에 전부 갇히워서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자기 자녀의 고기를 자기가 먹고, 먹어봤자 얼마나 살겠소? 또 강자가 약자의 고기를 잡아먹고 사람을 잡아먹고 그래 가지고 나중에 하다가 마지막에 남은 것은 싹 몰살시켰습니다.
예루살렘 그 주후 칠십 년에 함락돼 가지고서 비참하게 망한 것은 역사에 그런 멸망이 없습니다. 그게 뭐이냐? 다 이 인간병 고치는 것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해 가지고서 불의한 교권과 저거 세력을 가지고서 했던 그 사람들이 그렇게 다 비참한 멸망을 받았습니다.
이러니까, 어짜든지 우리가 허뻐도 인간병 고친 것을 시기하거나 질투하거나 이렇게 해서 훼방하고 폄론해서 그 일을 방해하는 이런 비참한 자가 되지 안하도록 깨어서 그런 자리에 서지 안하도록 그런 자리에 근방에 가지도 안하도록 우리가 회개를 해야 되겠고, 또, 인간병 고치는 이것이 복이니까 자기병부터 고치고 인간병 고치는데 여게 전력을 기울려서 하면은 하나님께서 뭐 조그만한 우리 서부교회하나 가지고라도 온 세계를 구원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착수는 하셨습니다.
여러분들 제가 설교하는 거 제가 뭐 주석 보고 설교하는 것도 아니고, 제가 여게 대해서 기도한 것은 한 오십오 년 걸렸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을라고 공든 거는 한 오십오 년 저도 공부했어. 오십오 년 들었지마는서도 제가 지금 설교하는 것은 항상 하나님께 배워 가지고서 하나님이 증거하라는 대로 증거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매일 설교는 어데 주석 보고 하지 안하고서' 제일, 설교 뭐 준비하는 거는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무슨 말씀을 주실랍니까? 그분이 하라고 하는 말이 아니면 내 단독이 어느 말씀을 증거해야 되겠다고 선택한 일은 한번도 없습니다.
언제든지 그분이 하라는 것을 하면은 뭐 준비 안 됐으니까 들고나서니까 준비 안 했으니 저게서 무슨 연구한 것도 없고 또 뭐 틀린 것도 많고 뭐 이리 되지요.
그저 하나님이 요거 증거하라 하면 증거한 것뿐입니다.
그랬는데, 이제 하나님께서 내가 보기에는 지금 일하기를 착수하고 계시는데 우리 서부교회서는 요 말씀을 들어서 꼭 실천을 하면서 하나님이 하시는 솜씨를 보면서 게을하지 말고 빨리빨리 서둘러서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에 동참하고 협동하는 자가 되어져야 할 것인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이래서, 이 인물들을 집에 가서 고요히 생각하면서 자기는 어떠한 자리에 있는 사람이며 무슨 사람인가 스스로 자기를 시험하고 확정을 지워야 될 겁니다. 나는 요자이다 확정을 지워서 멸망에 빠졌으면 어서 혜고나야 될 것이고 또 행복의 자리에 들어가지 못했으면 행복의 자리에 들어가야 되겠고 만일 기쁨을 가지고자 할라면은 제일 기쁨을 가질 길을 오전 오후에 말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