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4 11:45
교역자의 외식
1986. 3. 17. 총공회
본문:사도행전 8장 1절∼24절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청종하여 가로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오래 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저희가 청종하더니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말게 하소서 하니라
1절에,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에 그때의 교회들의 형편과 또 그 후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의 교회들의 육체의 이스라엘과 신령한 이스라엘의 연관점을 기록해 놓은 것이 오늘 밤에 봉독한 말씀입니다.
그때 육체의 이스라엘에는 사두개 교인이라는 그 신앙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구약 성경을 자기네들의 신경으로 읽고 역연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고 이스라엘의 법칙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다른 것은 그들은 하나님을 섬겨 세상 것으로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받는 것만을 소망으로 하고 하늘나라에 소망과 부활의 소망은 전혀 가지지 안하고 열심히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한 거울이 되는 줄 압니다. 그때는 성경이 구약 성경 뿐이요 신약 성경은 없었습니다.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 구약 성경을 저거들의 하나님 공경하는 유일한 도리로 알고 열심히 상고도 하고 지키기도 하고 그렇게 소망도 가졌었습니다. 그러나 사두개 교인이라는 그 사람들은 하나님을 공경하되 땅의 소망만 가졌지 하늘의 소망은 하나도 가지지 아니하고 열심히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거울로 주신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들도 첫째로, 그때는 구약 성경이지만 지금은 신약 성경이 있으니까, 신구약 성경을 우리는 하나님의 도리로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하나님 공경하는 백성들 가운데에 사두개 교파가 있었고 그 교인들이 있은 거와같이 오늘도 신구약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고 듣고 배우고 열심히 이 말씀을 준해서 순종도 하고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로는 하늘나라의 소망도 말하고 하지마는 말과 그 행동과 그 모든 중심이 다 같아야 되는데 하늘의 소망의 지식은 가졌으나 믿지 아니하면 소용이 없고, 또 지식과 믿음을 가졌으나 그대로 소망하지 안하고 소용이 없고, 또 지식과 믿음과 소망을 가졌다 할지라도 행하지 아니하면 소용이 없고, 또 알고 믿고 행한다 할지라도 사람 자체가 이 말씀과 같이 성화되지 아니하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중에도 예수 믿는 사람 중에 우리가 자칫하면 예수님 믿어서 땅의 소망만 가지고 예수님을 이용해 먹고 하나님 믿는 이 모든 신앙 행위를 이용해서 땅의 것만을 소망하는 이런 신자들이 되기 쉬운 것을 신약 성경에도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희가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삼기 때문에 신앙 생활하는 자들에게 분요와 분쟁이 있다’ 그렇게 말씀 했습니다.
먼저 우리는 우리가 조그만한 진영이라 많은 사람은 보이지 못했지마는 그래도 전국적으로 모였는데 우리는 각 교회에서 아마 대표로 보냄을 받은 사람들이라 할 수 있고 또 거게서 신앙의 장성한 사람들이라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말씀하신 거와같이 땅의 소망만 가지고 예수 믿는 신앙 생활을 하는 사두개 교인과 같은 이런 신앙 사상의 신자들이 만일 되어 있다면 오늘 밤이라도 회개하는 것이 지혜로울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지식으로는 알고, 또 인정하고, 또 그대로 소망하고, 그대로 말하고 한다 할지라도 하늘의 소망을 위한 행동이 없으면 그것은 외식이요 가짜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또, 하늘의 소망을 가진 행동을 한다 할지라도 하늘의 소망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안했으면 그것은 자기에게는 아무 소용없은 다 허사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3장에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 교인들이라고 책망한 거와같이 이런 것이 다 외식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하늘의 소망을 가지지 못하고 땅의 소망 가진 것이 그것이 외식이요 알고 믿고 말하고 행동하나 이 하늘에 있는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자체가 되어지는 데 대해서는 관심 없이 이루지를 못하면 그것이 다 외식이요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또, 그때에 바리새 교인들이라고 있었습니다. 바리새교는 열심 있는 신자들이라 하는 그 이름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열심히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 바리새 교회는 제사장도 있고 대제사장도 있고 서기관들도 있고 참, 하나님의 말씀을 철두 철미하게 지키는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 예를 들면 그들은 주일 날은, 그들은 안식일 지킬 때인데, 구약이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킬 때요 지금 신약에는 인제 주일로서 성경에 바꿀 것을 말씀했습니다. 안식일 지킬 때인데 안식일은 밥을 해서 불을 때면은 일한 것이라고 불 때지 안했습니다. 또, 닭을 모이를 줘 가지고 그 모이가 혹 한 개라도 흘러서 싹이 난다고 하면은 곡식을 심은 일한 것이 된다고, 범하는 게 된다고 안식일날은 닭의 모이를 주지 안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채소의 사소한 것까지도 다 십일조를 철두 철미하게 드렸습니다.
그들은 평생 소망하는 것이 메시야 오기를 고대했습니다. 메시야는 곧 예수님이십니다. 메시야 오기를 고대하고 메시야를 바라보는, 메시야의 모형이 되는, 예표로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짐승으로 제사 드리는 그 일을 성의 있게 그들은 해 나왔었습니다. 그들은 구약 성경대로 산 사람들입니다. 열심히 성경을 지켰습니다. 다 자기네들이 양심에 가책 없이 성경을 지켰습니다. 또 그들은 일편 단심 메시야만 소망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랬는데, 기다리던 메시야가 오셨을 때에 차차차차 메시야와 대립이 되어져서 마지막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정죄해서 못 박아 죽이는 사람들이 되어졌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 못 박아 정죄로 죽이면서 말하기를 그것이 구약 성경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대적을 죽여서 없애는 것이요 하나님을 소망하는 자들의 정당한 행위요 그것이 아니면 다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을 해서 바리새 교인들은 하나도 빠짐 없이 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데에 동참하고 협동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는 어떻게 해서 그들이 성경대로 다 지키고 행하고 메시야를 소망했는데 정작 메시야가 오니까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사람들이 되어졌던가? 그것을 우리가 생각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신구약 성경 말씀을 읽고 그대로 신앙 생활하고 또 우리는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실 것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소망하는 것이 이스라엘과같이 소망하는 메시야를, 재림하시는 주님을 죽여 버린다고 하면은 우리는 얼마나 비참한 사람이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그들이 그렇게 지나간 후에 우리가 살펴볼 때에 분명히 그들은 착각했다 잘못 깨달았다 그들은 잘못 믿었고 잘못 소망해서 그들의 믿는다는 것이 오히려 구원을 크게 절단냈고 저들의 구주와 원수가 되어졌다. 그거 왜 그리 됐을까? 그걸 우리가 무심히 지내갈 수는 없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주님도 말씀을 했습니다. 「내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믿는 사람이 아주 없다는 말인지 그 희귀하다는 말인지 어쨌든지 두 말 중에 한 마디지 좋은 말은 아닙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인자의 때도 노아의 때와 같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노아가 방주에 들어갈 때까지 그저 땅의 것만 생각하고 먹고 마시는 것 사고 파는 거 시집 가고 장가 가는 거 집 짓는 거 순전히 이것은 땅의 운동입니다. 땅의 건설만 위해서 그들이 노력하다가 홍수에 다 멸망받은 거와같이 하나님이 준비하라는 이 준비는 하나도 하지 안하고 순전히 땅의 것만을 준비하다가 준비한 자들과 준비한 것들이 다 홍수에 매몰되고 말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자가 올 때도, 인자가 올 때에 어떻게 준비하라 하는 그 준비를 말씀 했지마는 준비는 하나도 하지 안하고 땅에, 사고 파는 것은 장사일 것이요 또 먹고 마시는 것은 모든 물질일 것이요 또 집 짓는 것은 자기의 안일의 주택일 것이요 시집 가고 장가 가는 것은 가정의 모든 재미일 것이요 이것만 위해서 전심 전력을 기울이고 주님이 구름타고 오실 때에 맞이해서, 불로 전부를 멸하는 이 불 심판을 피하도록, 불 심판을 피하도록, 불 심판 피하는 것은 모든 만물이 뜨거운 불에 타서 녹아지려니와 의는 타지 안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데 이 의를 준비해라, 노아에게는 방주를 준비하라 했지마는서도 여기는 의를 준비하라 했는데 의를 준비하는 데는 하나도 관심 없이 땅의 것만 준비하다가 멸망을 받게 될 것이다.
내가 올 때에 믿는 자를 얼마나 볼란지 모르겠다 하는 이 말씀을 우리가 예사롭게 들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사롭게 듣는다면은 주님과 주님의 말씀은 부인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주님은 준비하라 할 때에 뭐라고 준비하라 했느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모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너희들이 어떠한 사람이 돼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이 모든 것이 불타지마는서도 의인들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옮겨간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준비는 거룩과 경건이요 결실은 의를 가리켜서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거룩이라 하면은 우리는 모든 모든 사사 건건을 다, 모든 물물 사사 건건을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별해서 요것은 가질 것 요것은 안 가질 거, 요것은 해야 될 거 요것은 안 해야 될 거, 요거는 귀한 거 요거는 천한 거, 요거는 인본주의 요거는 신본주의, 요거는 육신주의 요거는 영혼주의, 요거는 하나님 중심 인간 중심, 하나님 위주 자기 위주, 이 둘로써 구별하면 얼마든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런데 이렇게 구별해 가지고, 그러면 구별해서 뭘 하라 말인가? 구별 해 가지고 경건을 이루라. 경건은 뭐이 경건인가? 경건은, 하나님 중심 위주로 하나님의 법칙대로 사는 것이 그것이 경건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해 가지고서 하나님이 인정하는 것이 의입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이 인정해서 모든 것이 불에 타서 다 소멸될 때에 하나님이 인정하심으로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불 속에 들어갔지마는서도 불 내음새도 나지 안하게 거게서 다 구출 됐으니 하나님의 능력이 아무리 우주가 다 불타지마는서도 의는 불타지 안하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옮겨간다고 했으니 과연 그때에 탈 때에 소멸되지 안하고 거게서 의로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옮겨갈 수가 있는 이런 준비가 됐는지, 노아가 방주 만드는 데만 전심 전력 기울인 거와 마찬가지로 구별하는 데에만 전심 전력 기울이고 경건에만 전심 전력 기울여서 하나님이 의롭다 하는, 하나님이 의롭다 하는 사죄와 칭의와 화친을 입고 사죄의 것이 되고 칭의의 것이 되고 화친의 것이 되어서 완전히 주님의 것이 됐는지, 주님의 종이 됐는지, 주님의 성전이 됐는지, 주님의 지체가 됐는지, 주님의 몸이 됐는지, 목회를 하면은 참으로 주님의 제사장이 되고 주님의 선지자가 되고 주님의 왕이 됐는지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이러기에, 바리새 교인들이 그렇게 열심하고 충성했지마는서도 그들이 정작 메시야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또 바리새 교인 중에 아주 열심 있어서 그는 말하기를 성경, 구약 성경으로써는 한 성구도 거리낄 것이 없이 완전히 다 지켰다고, 율법으로써는 흠이 없는 사람이라고 장담한 사람 있습니다. 율법의 최고의 철저한 선생 가말리엘의 제자로서 아주 수제자로서 위대한 인물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이는 데에 대표자입니다.
스데반도 하나님 섬기는 좋은 사람인데 왜 그리 대립이 됐을까? 왜 그리 대적이 됐을까? 사울이 스데반을 죽인 그 스데반과 대립이 된 그 사실과 바리새 교인들이 메시야와 대립이 된 그 사실을 연관시켜서 생각해 보면 우리가 거게 대한 사실을 확실히 확정할 수 있습니다. 왜? 사도행전 7장에 보면은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7장 55절에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했습니다. 성령에 충만한 스데반을 왜 하나님 열심히 믿는 그렇게, 구약 성경으로써는 한 절수에도 흠이 없는 그렇게 말씀대로 열심히 믿는 그런 사울이 왜 스데반을 원수로 삼아 가지고서 돌로 쳐서 죽였을까? 여러분들 이거 뭐 어떻게 생각합니까? 뭐 때문에 죽였겠습니까? 왜 그럴까요? 만일 사울에게 성령이 계셨다면은, 스데반 속에 계시는 성령이 계셨다면은 사울이 스데반과 원수가 될 리가 없지요! 그러면, 사울에게는 성령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대답해 보십시오. 성령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사울에게는 성령이 계시지 안했다고 확실히 확정이 되는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이거 아닙니까? 여러분들 우리가 정신 차립시다.
열심 있고, 그는 열심 있는 사람입니다. 사울은 열심 있는 사람이요, 구약 성경을 철두 철미하게 지켜서 하나도 가책이 없이 지킨 사람이요, 모든 바리새 교회에서 제일 열심 있고 잘 믿는 청년이라고 인정 받는 사람이요, 그는 그 당시에 식민지로 있으면서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훌륭한 사람이요, 그는 많은 학문을 가진 사람이요, 그는 담대하고 배짱 좋은 사람입니다. 열심으로써는 사울 이상 가는 사람 없었다고 자신이 증거를 했습니다. 이래도, 그게 다 소용없어! 그게 들어서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였어! 오늘도 교회에서 이 껍데기 이것을 보고서 가치로 삼아 가지고서 이것을 교회의 가치를 삼으니 그게 들어서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를 삼킨 것이 교회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분이 뒤에 회개하고 난 다음에는 얼마나 철천지 포원이 됐든지 고린도전서 2장에 그는 말하기를 내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지혜로운 말이나 능란한 말이나 그런 데 있지 않기를 힘을 쓰고 성령의 감동과 권능이 전해지기를 그는 힘쓴다고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가 교회에서 가치로 삼지 못할 거, 세상 지식, 세상 간판, 이 정권의 모든 세상 권세, 열심, 이 세상 모든 권리, 아무것도 모르는 이름만 하늘나라에 속한 사람이지 순전히 세상 사람인 그 세상 사람인 그 사람들의 인정! 그 사람들의 인정! 그 사람들의 인정! 그것이 하늘나라 가는 것은 아닙니다! 이래도 성령이 그 안에 계시지 안하면 그는 다 진리의 적이요 하나님의 사람들의 적이요 성령의 적이 되고 마는 이 사실을 우리가 깨닫고 가치를 여게 두어야 합니다.
그러면, 바리새 교인들이 메시야를 죽인 것은 왜 그래 죽였을까? 마태복음 23장에 보면은 그들은 사람에게 공명 있기를 원하고 명예를 탐했고 대우를 탐했고 그들은 겉어머리 외식으로 수식을 했고 이렇게 한 사람들로서, 예수님이 진리의 말씀을 전하니까 저희들이 이제까지 가르친 교훈과 예수님의 교훈이 달라지니, 달라지면은 저거 것이 옳고 예수님의 교훈이 틀렸으면 다행이지마는서도 예수님의 교훈은 옳고 저희들의 교훈은 틀린 것을 알지마는서도 만일 저거 교훈이 틀렸다고 인정을 하고 예수님의 교훈을 옳다고 인정을 하면 저희들의 그때에 위신이 떨어집니다. 공명이 떨어집니다. 대우가 떨어집니다.
이러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저희들이 성경을 알면 서기관이나 바리새 교인이나 제사장이나 그런 분들이 성경을 왜 아는데 예수님의 설교 말씀이 왜 그렇게 못 깨달아졌겠습니까? 깨달았지요. 깨달았지마는서도 저희들의 세상에 속한 그런 지위나 권세나 명예나 그런 것이 절단나니까 ‘저거 예수님을 저걸 없애 버려야 되겠다’ 해 가지고서 예수님을 대적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대적하다가 마지막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는데 예수님이 죽으실 때 말씀하시기를 내가 삼 일 만에 부활한다 이라니까 ‘저게 삼 일 만에 부활한다 하니까 부활을 하는 날이면 안 되니까 군대 너거가 가서 지켜 가지고서 부활하거들랑은 끌어서 무덤으로 넣어 가지고 볼끈 묻어 버려라. 묻어 버리면 뒈질 터이니까 어쨌든 간에 만일 살아난다면은 너거들이 거기서 포위해 가지고 있다가서 죽여서 무덤 속에 집어 넣어라’ 이래 가지고 군대들을 세운 것입니다.
군대들을 살아나나 안 살아나나 뭐 엿보라고 한 게 아니요. 살아나거든 죽이라고 지금 그렇게 그 군대들을 파송했습니다.
이랬는데, 군대들이 아주 까무러치고 기절한 사람도 있고 근근히 살아온 사람들이 와 가지고서 ‘예수님이 살아났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데서 부활했습니다. 천군 천사들이 옹호하고서 예수님이 부활했습니다’ 하니까 이들이 기가 막혀서, 그럴 때야 이제 메시야인 줄 확실히 알 거 아닙니까? 메시야인 줄 알았지마는서도 먼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놨으니까 만일 메시야라고 인정을 하는 날이면 저희들이 돌에 맞아 죽을 터이니까, 처음에는 명예와 지위가 아까웠지마는서도 이제는 생명을 내놓지 안하면 안 될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너희들에게 돈을 줄 터이니까 예수님이 살아났다고 말하지 말고 도적해 갔다고 그렇게 말을 해라’ 로마 병정들을 돈을 주고 매수를 했습니다.
이래 가지고, 이런 사상을 가져서, 그들이 예수님을 왜 죽였느냐? 죽인 이유는 사두개교와 꼭 같습니다. 땅의 소망을 가졌고, 땅의 소망을 가졌고 하늘의 소망을 가지지 안했고 인간들의 인정을 바랐지 하나님의 심판인 하나님의 인정은 생각지를 안했던 것입니다. 땅 위에 대우만 바랐지 하늘의 부활 후에 하늘나라의 영광은 그들이 바라지 안했습니다. 이름은 바리새 교인이지마는서도 본질적으로서는 사두개 교인과 꼭 같았습니다. 또, 그들은 이 문서 성경만 가지고서 사람의 눈만 속여서 이렇게 가리워 그랬지, 지식했고 그들이 외부에 행동만 했지 마음은 행하지 안했습니다. 양심은 행하지 안했습니다. 정신은 행하지 안했습니다. 중심은 행동하지 안했습니다. 그들이 성경 말씀만 봤지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상대하지 안했습니다.
왜? 그때 사람은 다 그랬습니까? 바리새인 교인 가운데에 시므온이니 안나니 하는 그런 사람들은, 문서는 하나의 법칙이요 그 문서는 하나님에게 소개해서 하나님 만나는 것이요 하나님을 섬기는 법칙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문서만을 믿는 사람이 아니고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상대하고 했기 때문에 그들은 말했습니다.
‘나는, 우리 메시야를 만나기 전에는 죽지 않겠다. 메시야를 만나기 전에는 죽지 않겠다’ 시므온도 안나도 그라면서 성전에서 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기도하고 있었는데, 사나이도 없는 처녀가 아이 낳았으니까, 저거 칠계 범해서 아이 낳았다고 조롱하고, 낳아도 베들레헴에서 말 구유에 아이를 낳아 놔서 그게 뭐 모양이사 없고 형편 없었지마는서도 그들은 와 가지고 경배했습니다. ‘메시야 하나님이 왔다’ 하고 경배했습니다. 왜 바리새인 교인들은 몰랐는데, 이렇게 장성해서 도를 전해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는데 그들은 어떻게 강보에 쌓여 있는 메시야를 알고 숭배를 했을까? 믿었을까? 요것을 우리가 좀 깨달아야 합니다.
나다니엘이 예수님이 오셨을 때에 ‘가 보자 메시야가 왔다’ 하니까 가서 보니까 메시야 왔다 좇아가니까 예수님이 말씀하기를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와같이 사특하지 안한 정직한 사람이 없다’ 이렇게 말할 때에 ‘주께서 나를 언제 보셨습니까? ‘무화과 밑에서, 내가 무화과나무 밑에서 네가 나를 늘 만내지 안했느냐?’ 말했습니다. ‘무화과나무 밑에서 너도 나 봤고 나도 널 보지 안했느냐? 그 내가 지금 이제 오지 안했느냐?’ 말했습니다.
여러분들, 그들은 문서만 보고 믿었고, 땅의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이용해 먹을라고 했고, 하나님의 심판도 부인했고, 인격자로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상대하지 안했습니다! 오늘 교역자들! 보이지 안하는 하나님을 정말로 살아 있는 것으로 믿습니까! 하나님이 보고 있다고 하나님의 눈을 인정합니까? 하나님의 눈을 멸시를 합니까? 하나님의 귀를 인정합니까? 안 할 말을, ‘하나님이 듣고 계시니 할 수 없다.’ 못 한 자, `이 말은 하면은 생명이 끊어지지마는서도 주님이 듣고 계시기 때문에 안 할 수 없다’ 하는 사람, 이게 믿는 사람입니다! 이게 주님의 귀를 믿는 사람이오! 주님의 눈을 믿는 사람이오! 오늘 살아 계시는 하나님은 상대하지도 안하고 입술만 놀려 가지고서 사람만 많이 모아서 연보나 나오고 생활만 부요해지면 다 됐다고, 어리석지 맙시다.
교회는 교역자들의 구멍 가게가 아닙니다! 점포가 아니요!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과연 오늘날 주님이 오시면 영접할 자가 누구인지, 공산주의의 독침 속에 주님이 오신다면은 누가 영접할란지, 공산주의의 고문 고형 속에 주님이 나타나신다면 누가 영접할란지.
이래서, 오늘 우리는 외식을 버립시다. 문서 계시는 성신의 감동을 맞이하게 하는 중매장이요 성신의 감화는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중매쟁이요. 이것을 거창 집회에서 며칠 동안 말해도 귀가 없어 못 알아 들어, 못 알아 들어. 얼마나 말을 해도 못 알아 들어.
그래서, 오늘 졸업식 설교 부탁을 받았는데 오늘 졸업하는 사람들이 사두개 교인 되어 있는 것을 회개를 하고, 바리새 교인되어 있는 것을 회개를 하고, 사울되어 있는 것을 회개를 하고, 시므온과 안나 같은 사람, 나다나엘 같은 사람, 돌쪼산 속에서도 성신의 충만함이 변치 안하고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면서 ‘하늘 문이 열렸는데 하늘에서 주님이 서서 나를 기다리고 계신다’ 하는, 주님하고 교제하고 연결하는 요 진실한 목회자 한 사람이라면 오늘 목사 천 명도 더 당합니다! 만 명도 더 당합니다! 이 사람을 하나님이 원하십니다.
<기도> 이렇게 성 공회를 무사히 모이게 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모든 순서를 주님이 주장하시고 우리 회원들 하나 하나와 참석한 모든 성도들 하나 하나의 심령 속에 주님의 피의 역사와 성령님의 역사와 진리의 역사가 한결같이 함께 하사 모든 의사가 하나되게 하시고 소욕이 하나되고 경영과 계획이 하나되어 여러 사람이 모였으나 주님의 한 뜻에 다 귀속되어 주님의 영영하신 뜻만이 이 시간에 이루어지게 하사 세상을 능히 감당하고 주의 영광이 가득 찰 말세지 말에 주님의 영광을 그대로 다 돌리고 세상에게 주 믿는 것을 보여 주며 세상에게 주님으로 말미암아 영영한 하늘나라와 부활의 영광이 있는 것을 똑똑히 세상에게 보여 줄 수 있는 참 주의 대속의 증인들이 넉넉히 될 수 있는 모든 의논과 계획과 이 자리에서 이루어지게 하시고 홀로 주관하시고 인간에게는 맡기지 말아 주시옵소서.
우리 회원 전부가 다 깨어서 주님의 노를 풀고 주님이 요구하시는 성도들이 되고 주님의 대속을 점점 깨달아 순교하고라도 정말로 무익한 종인 것을 깨닫고 겸손에서 끝을 마칠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