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4 11:29
교리신조에 대하여 확정
본문 : 출애굽기 20장 1절∼17절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살인하지 말지니라 간음하지 말지니라 도적질하지 말지니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오늘 증거하는 말씀은 여러분들이 들을 때 기도를 많이 하고 성령의 돕는 은혜를 입어서 듣고 깨닫고 작정하도록 그렇게 힘을 써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도 이렇게 저렇게 방편을 써 가지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감동되도록 하는 그런 설교도 있고, 또 이렇게 저렇게 모든 과거 현실의 세계 분위기를 소개하고 움직여 가지고 또 우리의 마음에 길을 확정짓도록 그렇게 하는 일도 있고,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포해 놓으신 이 구원 도리에 대한 그 강령과 줄기를, 다시 말하면 신조와 교리를 말씀하는 때도 있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어지러워져 있는, 이 교리와 신조가 통일되어 있지 않고 많이 어지러워서 수많은 주장들이 서로 대립되고 충격되는 그런 신조와 교리에 대해서 증거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여기서 들어 확신을 가지고 확고한 신조와 교리를 작정해야 합니다.
여기 무슨 감정이나 그런 것들을 층격 주는 그런 일을 피할라고 애를 씁니다. 왜? 그러면 잘못하면 감정에 충격을 받아서 올바른 길에 대한 확정을 짓지 못하는 그런 유혹이 될까 해서 그런 것입니다.
기독교가 율법주의의 기독교가 있고, 또 미신주의의 기독교가 있고, 또 우상 기독교가 있고, 믿음의 기독교가 있습니다. 율법주의의 기독교도 다 치우친 거짓부리요, 미신주의의 기독교도 치우친 거짓부리요, 또 우상주의의 기독교도 다 치우쳐서 거짓부리입니다. 신앙주의의 기독교가 참된 기독교입니다.
며칠 전에 진해에 개척교회를 하고 있는 OOO조사님을 제가 만나 가지고 좀 책망을 해 줬습니다. 그것은 거기 있는 어느 교파는 제가 말하지 않습니다. 교파 소개를 합디다. 그러나 나는 그 교파 말은 하지 않는 것은 그 교파는 바로 서 있는데 그 사람 하나가 잘못됐지 그 교파가 잘못됨이 없는 것으로 제가 알고 있기 때문에 교파는 말하지 안하고 진해 그 시내에 목회하는 어떤 목사님이 개척교회 하는 그 교회에 제일 기둥으로 삼고 있는 그 사람을 만나 가지고 말하기를 `그 총공회는 이단이니까, 그 이단으로 왜 네가 속해 가지고 이단 교회를 세우노?' 그전에 서로 친한 자리랍니다. `그러니까 우리 진영으로 돌아와서 우리 진영 교회로 개척교회를 세워라. 그러면 우리 진영에서 예배당도 잘지어 줄 것이고 또 모든 면에 보조도 잘해서 어려움 없이 지낼 터이니까 그렇게 하라,' 그리 말을 찾아와 가지고 하더라고.
그 사람이 거기서 대항할라 해야 대항할 수도. 없고 이래서 자기 보기에는 그 말하는 것이 틀린 말은 말이지만 거기 대해서 그만 말을 대항하지 않고 `무엇이 이단이냐?' 이래, 서로 친한 터이니까 이래 물으니까 `거기는 중생된 영이 죄를 안 짓는다는 그런 주장의 그 이단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그 O조사님에게 `그러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틀렸으면 그 사람을 틀렸다고만 말한 게 아니고 또 그 사람은 우리가 깨닫는 것은 다 한목 다 깨닫는 게 아니고 먼저 깨달은 사람도 있고 그 다음에 깨달은 사람도 있기 때문에 못 깨달은 사람은 못 깨달은 것을 말하는 것이 필연한 일이니까 깨달은 네가 됐다면 그 깨달은 것을 성구를 가지고 말을 해 주면 그런 것으로 인해서 그 사람을 바로 세울 수가 있지 않느냐?' 그러기에 들을 때에 잘 듣고 굳게 서서 성구를 가지고 이래야 미혹을 받지 안하지 그저 말해도 예사로 듣고 이래 가지고 그런 모든 악령의 역사들이 오면 그 사람을 거기서 구출하지 못하고 도리어 그만 적당시해 가지고 이렇게 서로 변론이나 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쉬운 거기 대해서 내가 책망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저하고 대할 시간이 없어서 그렇지 대하면 제가 성구를 알기 때문에 그 성경을 가지고 말을 할라고 하고는 있습니다' 그렇게 말을 합디다.
그런 것도 어러분들이 그 교리가 쉬운 교리가 아니고 신약 교회가 근 이천 년이 돼 가는 가운데에 많은 신학자들이 거기서 분분하게 진리와 신조를 세워서 세계의 조직신학들이 여러 종류의 조직신학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조직신학에 중생된 영이 범죄하지 않는다 범죄한다 하는 데 대해서 언급한 일이 별로 없습니다. 또 언급할 수 없는 것은 중생된 영을 중생된 사람의 마음으로 보기 때문에 마음은 실수가 많이 있으니까 영과 마음을 혼돈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구별하지 못하면 거기서 바른 도리를 깨달을 수는 절대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세계에 문제가 되어 있는 것이고 또 우리 한국에서도 이 문제 때문에 경북노회서, 합동측 경북노회서 중생된 영이 범죄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정죄를 노회적으로 정죄한 일이 있었으니까 그 노회원들은 중생된 영이 범죄하지 않는다는 이 교리를 다 부인한 연고인 것입니다.
또, 그후에 고신에서도 이렇게 분분해서 중생된 영이 범죄하느냐 안하느냐에 대해서 많은 말들이 있고, 그 뒤에 고려신학교에 있는 교수 이근삼 목사님에 대한 말을 들었는데 그 목사님은 `중생된' 영이 범죄할 수가 있겠느냐? 범죄 안 한다는 말이 옳다.' 그렇게 말한다는 말을 들었고, 어떻게 해서 범죄하지 않느냐 하는 데 대해서 그 뒤에 논리하는데 대해서는 조금, 의문되는 일이 있었습니다만 그 뒤에 어찌됐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이 문제 때문에 이인재 목사님과 저와 나뉘게 됐고 또 박윤선목사님과 저와 나뉘게 됐는데 그분들이 중생된 영이 범죄한다는 주장으로 논문을 내겠다고 그렇게 많은 말들을 했지만 그 후에 논문을 내지 안 했습니다. 그분들은 다 실력 있는 분들이라 논문을 쓸라 하면 하루밤만 하면 쓸 터인데 내지 않는 것은 확정되지 않기 때문에 내지 않는 것입니다. 이만치 어려운 문제들입니다.
지금은 그런 것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저도 이인재 목사님을 그후에 다시 그 때문에 나뉘어진 것을 서로 화친해서 그 목사님도 저를 사랑해주고 저도 그 목사님을 존경하고, 또 박윤선 목사님도 저를 사랑해 주고 저도 또 존경을 하고 이래서 서로 이렇게 화친하고 존경하고 이렇게 있으나 그 교리에 대해서는 제가 만났을 때에 `이 교리는 지금 어떻게 생각합니까?' 하는 것을 다시 묻지를 안했습니다. 거기 대해서는 각각 그만하면 깨닫고 피차 있겠지 하고 묻지를 안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여기서 듣고 배울 때에 똑똑히 바로 듣고 배워야 여러분들이 모처럼 받은 이 생명의 도를 빼앗기지 안하고 여러분들이 죽지 안하고 또 그 어두움에 있는 형제들을 구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비유해서 시장터로 말씀을 했습니다. 시장은 이 사람의 것 저 사람의 것 또 모두 다 각각 자기에게 있는 보배로운 물건을 가져가면 보배로운 물건 그거 하나 팔아 가지고 자기에게 필요한 많은 사람들이 가져온 보배로운 물건을 사 가지고 필요하게 구비해 가지고 올 수 있는 것이 시장인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사람은 이 면을 심각하게 정확하게 깨닫고 있고 저 사람은 또 저 면을 심각하게 정확하게 깨닫고 있기 때문에 이 모두 하나가 다 깨닫게 하지 안하시고 부분적으로 깨닫게 해서 이 부분적으로 깨달은 사람들이 한테 주 종합을 하면 원만한 깨달음이 돼 가지고 구원을 이루어가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섭리하십니다.
마치 한 몸에 여러 지체가 있으나 각 지체가 가지고 있는 그 은혜는 각각 다릅니다. 눈은 보는 것만 잘하고, 귀는 듣는 것만 잘하고, 입은 먹는 것과 발표하는 것만 잘하고, 손은 잡는 것만 잘하고, 발은 걷는 것만 잘하는 것처럼 여러 지체가 있으나 가진 그 은혜와 능력이 각각 달라서, 한 손이 다 가졌다면 발도 필요 없고 눈도 필요 없고 다 필요 없지만 한 몸에 여러 지체가 있어 여러 지체가 각각 가진 은혜와 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이 지체가 저 지체를 무시하지 못하고 저 지체가 이 지체를 무시하지 못하고 모두가 다 합해 가지고 한 몸을 강건하게 이루어 가는 거와 같다 그렇게 성경에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기에 한 사람이 다 깨닫지 못하고 각각 하나님이 주셔서 이 사람에게는 이거 깨닫고 저 사람에게는 저거 깨닫게 해 가지고 장터처럼 이렇게 한테 주 모으면 성경을 구비하게 깨달아 구원을 이루어 가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깨달은 것은 자기가 얼마든지 주장해 가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증거할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또 자기 깨달은 그것뿐이라고만 생각하면 자기는 어두움에 묻혀버리고 맙니다.
자기에게 하나님이 주신 교리와 신조이기 때문에 자기가 그것을 널리 전파해서 깨닫지 못한 사람들에게 알려 주는 것이 자기 의무와 책임이기 때문에 열심히 증거를 하는 동시에 자기 깨달은 것이 다가 아니고 또 자기에게 있는 것으로만 다인 줄 알고 다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는 이 은혜를 자기가 필요로 느껴서 기다려 빨리 받아서 그 은혜를 자기가 입어야 사는 것인데 그 은혜를 입지 못하는 그것도 하나의 악으로 돌아가 가지고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돌아가서 그런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 중심은 하나요. 하나님 위주는 하나이니까 하나로 돌아가 가지고 이렇게 구원을 이루어 가는 이 진리를 깨달으면 교회와 교회 사이에 이와같이 분쟁은 있을 수가 없고 교리와 교리 사이에 분쟁은 있을 수가 없고 얼마든지 대화 논리는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 교리는 이렇고 이렇고 하니까 그게 잘못되지 안했는가 이거 좀 고쳐보자. 또, 그 교리는 옳으니까 그 교리를 똑똑히 좀 우리가 들어가지고 배워서 효력을 같이 봐야 되겠다.' 이렇게 얼마든지 화합 논리 서로 협의는 있을 수가 있는 것이지만 적대시해서 대립이 되어지는 이것은 전부 마귀의 작용이고 옛사람의 작용이지 새사람의 운동들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받은 바의 은혜를 똑똑히, 하나님이 주시면 받아서 똑똑히 강직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의문 없이 그 모든 것을 똑똑히 이해하도록 간단 명료하게 증거해서 다 가지도록 그리 할 의무가 있는 줄 알고 그것을, 심각하게 연구해서 성경적으로 똑똑히 가지고 증인 노릇을 바로 하도록 노력을 해야 될 것이고, 또 다른 내가 깨닫지 못하는 걸 다른 사람의 깨달은 것이 소문으로 들리든지 서적으로 보든지 말로 들리든지 들릴 때에는 즉시 받아 가지고 적대시하지 말고 하나님이 내게 필요해 주신 것인지 마귀가 나에게 미혹 줄라고 준 것인지 이것을 딱 잡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것이면 받아들여서 보배를 얻었고, 생명을 얻었고 마귀가 주는 것이면 그 미혹을 물리쳐서 자기가 피해를 보지 아니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옳은 것을 대적하면 그것은 곧 스스로 속는 자살 행위가 되어지는 것이고, 또 삐뚤어진 것을 환영하면 미혹받아서 자기가 또 멸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는 장터라 주님이 비유했습니다. "장터에 나서 가지고 피리를 불되 춤추지 안하고" 하는 것으로서 말씀하신 그 시장터로 말한 것은 우리의 이 깨달은 교리와 신조의 교훈 교류로 서로 서로 이리 서로 바꾸고 서로 합해 가지고 온전함을 이루는, 수많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한 지체요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어 가는 이 단일 교회의 이 비밀을 모르면 모순돼서 스스로 자기 발을 자기가 찍는 그런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리가 옳다 하면 그것을 똑똑히 생각해서 '옳으면 다른 사람에게 얼마든지 증거해서 알려 줄 그런 의무와 책임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충분한 증인이 되도록 똑똑히 알아야 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서 내게 오는 것이라면 그것이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도리가 되든지 악령이 준 유혹이 되든지 생명의 진리나 악령의 유혹이나 둘 중에 하나기 때문에 그것을 그저 지내보내지 말고 단단히 들어서 생명의 진리라면 내가 그것은 내 생명보다 귀중히 모셔서 가져야 되고 악령의 유혹이라면 내가 그것을 물리칠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물리치는 그 의무가 내게 있기 때문에 그 의무를 또 하여야 합니다.
이래서, 우리가 이 종적으로나 횡적으로나 또 이 모든 두루두루 체계적으로 다각도로 우리의 의무와 책임이 있고 또 연결과 관련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면을 생각해서 우리는 점점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 나가서 단일 교회를 이루어 가야 합니다.
또 얼마 전에 그런 말을 제가 들었습니다. 여기 OO서점이라 하는 기독교 서점에서 말하기를 `서부교회 백영희 목사님은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율법주의라고 그렇게 말을 하더라' 하는 그런 말을 어떤 사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아마 그분이 말한 것은 그분은 나를 보지 못하고 나도 그분을 알지 못하지만 그분이 서부교회를 사랑하고 좋아하고 아끼는 줄은 제가 알고 있습니다.
영리로 그런지는 모르지만 제가 보는 대로는 서부교회서 뭘 하면 잘 협조를 하고 그렇게 힘을 써서 도와 준다는 말 들었습니다.
이랬는데 아마 그런 말하는 것은 율법주의라 하니까 혹 율법주의가 뭐인지는 모르지만 율법주의 같으면 그거는 잘못된 것이니까 이런 말이 있으니 그 면에 대해서 좀 참고로 삼아 가지고 실수되지 안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런 말을 해 준 것은 분명하다고 제가 압니다.
그런데, 율법주의에 대해서 여러분들에게 간단하게 말합니다. 율법주의라는 것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 7가지를 부인하고 신구약 성경 말씀을 지켜 행함으로 자기 구원을 이룰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 율법주의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 율법주의를 똑똑히 분해해서 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나 신구약 성경 말씀을 지켜 행하는 그것으로써만 구원이 된다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율법주의입니다. 단단히 알아야 돼요.
또 미신주의는 어떤 것이 미신주의냐? 예수님의 대형, 대행, 대화친, 대생 -부활 말이오 -이것으로써 7가지 예수님이 대속을 하셨기 때문에 이 대속이 우리 구원이라. 이 대속만 믿으면 우리 구원이 된다 이렇게 생각하고, 이 대속에 대해서도 여러분들에게 말하기를 지금 세계 나돌고 있는 것은 대형으로 사죄, 대행으로 칭의, 대화친으로 하나님 아버지 아들 된 3가지 대속을 말씀을 합니다.
그런데 제가 가르친 것은 곧 예수님이 죽은 가운데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한 예수님이 우리 대신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중생이 되는 이 중생의 하나님을 향해서 진리로 영생하고 영감으로 영생하는 두 가지 이 영생을 합해서 예수님의 대속을 7가지를 말을 하는 이것은 지금 아직까지 그렇게 7가지로 종류를 계속해서 말한 거는 없습니다.
다 다른 사람들도 깨닫고 중생으로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로 중생됐다는 교리는 알고 있지만 그 7가지를 간추려서 말하는 것은 내가 별로 많이는 못 봤지만 모든 조직신학들을 읽을 때에 제가 보지를 못했고 또, 부활 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제사장, 선지, 왕직의 이 영원한 성직을 가지게 되는 3가지 구속도 말은 하나 어떻게 간추려서 말한 것은 별로 없습니다.
이랬는데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 대속이라면 7가지요, 또 구속이라면 11가지인데 11가지를 순전히 하나님께서 이일을 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순전히 해 주시는데 은혜로 우리가 받습니다.
받는데, 미신주의는 어떤 것이 미신주의인고 하니, 이거 잘 들어요. 이거 기독교 미신주의라 말이 없습니다. 기독교 미신주의라. 하면 이것은 제 외에 말하는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제가 지금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잘 안 들으면 또 이단이라고 몰려 가지고 욕 얻어먹습니다.
기독교 미신주의는 예수님의 11가지 구속이면 우리 구원에 다다, 이 11가지 구속만 믿으면 된다, 이 11가지 구속을 내것으로 믿기만 하면 된다하는 그것이 하나의 미신주의 입니다. 이거 똑똑히 아십시오.
예수님의 도성인신 사활, 또 그리스도의 구속 이 11가지가 우리에게 은혜로 주시는 구원인데 이 구원을 내것으로 믿기만 하면, 이 구속을 내것으로 믿기만 하면 내 행동이야 이래 하든지 저래 하든기 상관없이 11가지를 믿기만 하면 우리의 구원은 완성이 된다 하는 그것이 미신 신앙입니다.
미신 신앙은 어떤 존재를 가정해 놓고 그것을 믿어서 모든 전부의 책임을 그에게다 다 맡겨버리고 저는 하나 그것을 인정함으로 자기의 소원이 다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그 모든 미신들 그것을 가리켜서 미신이라 합니다.
기독교도 예수님의 11가지 구속을 자기가 빌고 자기 행동이야 하나님의 율법은 상관 없이 '하나님의 율법 지킬 거는 없다, 하나님의 계명 지킬 거는 없다. 이 성경 말씀대로 살 것이나 지킬 필요는 없다.' 그것은, 필요 없다 소리는 안 하지만 '그것은 그거 지킴으로 구원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건 지킨 필요가 없다.
예수님의 11가지 구속만 자기 것으로 믿으면 된다.' 하는 이것이 기독교 미신주의.
또 기독교 우상주의는 예수님의 11가지 구속에 대해서는 낱낱이 자기가 알 필요도 없고 그저 예수님이라는 구주가 한 분 있으니까 예수님이라는 이 구주만 자기 구주로 믿으면 된다 하는 그것이 하나의 예수님을 우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독교 우상주의입니다.
기독교 율법주의는 예수님의 이 대속을 필요로 하지 안하고 신구약 성경 말씀대로만 살면 구원 얻는다 하는 그것이 기독교 율법주의입니다.
그러면 기독교 신앙주의는 우리 시조 아담으로부터 우리가, 신인 계약의 대표자가 아담인데 아담 한 사람이 신인 계약을 위약했을 때에 아담 하와에게 소속한 모든 자연 생육법으로 나는 이 자연인, 부정 보혈이 있어서 나는 이 자연인, 모든 자연인들은 아담의 범죄의 정죄에 다 동참하게 돼서 원죄로 말미암아 다 죽었습니다. 원죄로 말미암아 다 사망과 저주와 하나님의 원수 편에 서게 됐습니다.
원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 또 범죄, 또 사망 이래 가지고 하나님과 원수되고 마귀에게 속했습니다, 하나님 배반하고 마귀에게 속했고, 또 의를 배반하고 죄에게 속했고, 영생을 배반하고 사망에 속한 이것이 우리의 멸망한 멸망입니다.
원죄로 죽었고 본죄로 인해서 자기 심신을 다 죽입니다. 원죄로 영을 죽이고 육을 정죄했고. 본죄라 하는 것은 자기가 하나 둘 범죄한 죄인데 이것으로써 심신의 기능도 완전히 죽이는 이것이 원죄와 본죄로 죽는 것입니다.
원죄와 본죄로 죽을 죄를 범해서 원죄와 본죄로 죽어 있는데 지금부터 하나님의 율법을 하나도 범하지 안하고 율법을 완전히 지킵니다. 완전히 지킵니다. 완전히 지켜도 과거 범해 놓은 원죄와 본죄 그 문제가 있기 때문에 오늘부터 하나님 앞에서 털끝만한 죄도 짓지 안하고 완전히 행한다고 해도 과거 이미 지어 놓은 그 죄가 해결이 안 되기 때문에 그 죄로 말미암아 그 죄인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벗어나지 못하는데, 이러기 때문에 여기서 예수님의 대형으로 우리가 하나님 배반하고 마귀와 하나되고 죄와 하나되고 사망과 하나돼 가지고 멸망받는 이 값을, 이 댓가는 사망인데 이 댓가를 예수님이 대신 그 댓가로 영원한 사망을 예수님이 받았기 때문에 이것이 대신 형벌받아서 우리를 거기서 사죄해 가지고 죄와 사망과 마귀에게서 해방시켜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심으로써 이 3가지에서 해방을 시켜 주셨습니다. 또 예수님이 하나님의 공법을 순종하고 또 하나님과 화친하는 이 두 가지가 예수님이 또 대신 행해서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두 가지로 죽었습니다. 우리의 멸망을 대신해서 죽으셨습니다.
또 우리를 하나님과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온전을 이루기 위해서 대신 행해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우리는 몇 가지를 받았습니까? 다섯 가지. 형을 받아 죽으심으로 우리가 구원받은 것이 3가지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대신, 우리 대신 행하심으로 구원 받은 것이 두 가지. 하나님과 화친, 하나님의 공심판 통과.
이래서 두 가지를 받아서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총 합하면 다섯 가지 대속을 받았습니다.
또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써 하나님을 향한 영감 진리 생활의 영생 두 가지를 받았습니다. 이래 7가지를 받았습니다.
받았는데, 신앙주의는 예수님이 사활하셔서 나를 3가지 멸망에서 완전히 해방시켰고, 하나님과 화친을 시켰고, 하나님의 공심판에 의로 통과를 시켰고,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나에게 진리 영감의 두 가지 영생을 주신 이 7가지를 자기가 입은 것을 깨닫고, 입었으니 다시는 이것을 범하지 아니하면 내가 입고 있고, 예수님의 대속은 다시는 죄의 종이 되지 안하고, 마귀의 종이 되지 안하고, 사망의 종이 되지 안하고, 하나님의 공심판에 율법을 어기지 안하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불목하지 안하고 이 다섯 가지를 안 하고 있을 때에는 예수님의 7가지 대속을 입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다가 자기가 어느 계명이든지 어기면예수님의 대속을 입었던 것을 활딱 벗어버렸습니다. 벗었으니까 대속이 없습니다. 그에게 대속이 없습니다. 영은 대속을 입고 있지만 심신은 대속을 완전히 벗어버립니다.
벗었다가 다시 그 죄를 잘못된 줄 알고 회개하고 그러면 잘못된 줄 알면 그 죄를 자기가 벗을 수 있습니까? 죄를 짓고 잘못된 줄 알면 그 죄를 벗을 수 있습니까? 불택자는 벗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다 담당해 놓으셨기 때문에 담당해 놓으신 걸 깨닫고 주님 앞에 담당한 주님께 다시 이 죄를 '주님이 담당해 주셨는데 내가 이걸 다시 범했습니다.' 다시 범한 그것도 주님이 다 미래까지 다 담당했기 때문에 다 담당한 것입니다. 마귀란 놈이 착각시켰는데, 담당한 죄인 걸 깨닫고 이 죄를 다시 회개할 때에 예수님의 일곱 가지 대속을 다시 입습니다.
벗었다가 입었다가 합니다.
벗었다가 입었다가 하는데, 입으면 한 번 입었으면 다라. 한 번 입었으면 벗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 미신 종교입니다. 기독교 미신주의요.
또 "이거 입히신 예수님 그분만 믿으면 된다" 하는 것이 기독교 우상주의입니다.
또 기독교 율법주의는 신구약 성경 말씀대로 행함으로 자기가 살고 행함으로 구원 얻고 하는 그것이 기독교 율법주의입니다.
기독교 신앙주의는 우리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범죄, 정죄, 또 악령, 사망 여기서 예수님이 대속해 주신 것을 믿고 하나님과 화친된 거 공심판 통과한 것을 믿고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가 중생된 것을 믿고, 믿는데 영은 이 구원에 변동이 없지만 우리 심신은 이 구원에 변동이 있으니 내가 다시 죄를 범하면 죄를 환영한 것이요 예수님의 대속을 부정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은 벗어져버리고 죄만 내게 와 있습니다. 이럴 때에 다시 내가 회개하고 이제 예수님의 대속을 다시 입었으니 다시 그짓은 할 수 없는 줄 알고 대속을 입고 범죄를 끊어버리고 없애버리고 이제 자기가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 행하면 이것은 다시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주의는 예수님의 사활의 이 대속과 또 이 구속의 이 네 가지 이것을, 11가지 이 구속을 자기가 입었는데 범죄하면 벗어 놓은 게 된다. 범죄하고 다시 회개하고 새로 하나님의 계명대로 자기가 살 것인 줄 알고 다시 계명을 지키는자가 되면 11가지를 입은 자가 된다.
그러기에 심신은 벗었다가 입었다가 하기 때문에 벗었을 때에는 자기 건설구원은 이루어지지 안하고 입었을 때만 건설구원은 이루어진다. 그러나 영 구원은 기본구원에 속하기 때문에 영은 벗는 일이 없다. 이러기 때문에 벗으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은 자이나 법적으로는 입고 있지만 실지의 효과적으로는 자기가 벗으면 벗어진다. 입으면 입어진다. 하루 70번씩 7번도 벗을 수 있고 입을 수 있다.
입을 때에는 전설구원이 이루어지고 벗었을 때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게 된다.
이러기 때문에 이 대속을 구속을 벗지 않으면 벗지 않을 수 있고 벗으면 벗을 수 있다. 벗지 아니하고 사는 그것이 뭐이냐? 신앙주의다. 하나님을 따라서 움직이는 신앙주의다. 기독교 신앙주의는 벗으면 이 대속이 간 곳 없다. 순종하면 대속이 내것 되어서 11가지 구속의 은혜로써 구원이 이루어진다 하는 이것이 기독교 신앙주의입니다.
그러면, 기독교 율법주의 하나 있고, 또 기독교 신앙주의 하나 있고, 또 기독교 미신주의 하나 있고, 또 기독교 우상주의 하나 있고 이것이 제일 중요한 기독교를 삼키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또 더 나가면 기독교 지상 천국주의가 있습니다. 예수 믿는 거는 이 세상에 천국 오는 기독교 지상 천국주의가 있습니다. 이거는 여호와의 증인, 안식교도 약간 거기 조금 속해 있습니다. 또 여기 무슨 천년성이니 하는 그런 것도 다 여기 속한 종류들입니다.
또 기독교 유물주의가있습니다. 이것은 옛날도 바리새교가 있고 사두개교가 있었는데 사두개교는 세상 소망만을 가지고 하나님 섬기는 사람들이 사두개교입니다. 기독교 유물주의. 예수 믿어서 물질 성공만 하면 성공했고 물질 실패하면 실패한 줄로 이렇게 아는 게 기독교 유물주의입니다.
또 기독교 정치주의가 있습니다. 기독교는 모든정치와 하나돼 가지고 기독교로 퉁해서 정치의 정권을 얻는 게 기독교라 이래 가지고 기독교로써 정치를 중심으로 삼고 정치를 소망 삼고 사는 그것이 기독교 정치주의입니다. 이래서 기독교 세상주의, 기독교 유물주의, 기독교 정치주의, 기독교 도덕주의, 기독교 도덕주의는 예수믿는 것은 사람들 이 모든 행세가 세상 사람 보기에 `그 사람 참 점잖하고 잘한다' 이 세상 사람들이 말해 놓은 그 도덕을 맞추어서 그 도덕 생활을 성공하는 것이 기독교 도덕주의입니다. 이게 제일 유혹을 많이 받습니다.
요한계시록 13장에, 땅에서 올라오는 두 뿔 가진 양의 새끼가 있었다 하는 것은 그것은 기독교 도덕주의를 가리켜 말합니다.
또 기독교 사회주의, 기독교는 이 사회를 개량시키는 것이 기독교라 이래 가지고 이제 그 모두 이 사회 법칙을 개량시킨다는 기독교 사회주의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빠집니다.
얼마 전에 우리 한국에서도 그런 복음들이 나돌았습니다. 이 기독교는 이런 심심 산골에 있는 게 아니고 기독교는 도시나 사회를 이것을 기독교로 다 정화시켜서 하는 것이 그게 기독교라 해 가지고 기독교 사회주의가 편만했지만 한국에서는 그거 벌써 선지자들이 기독교 사회주의를 많이 말하기 때문에 거기 미혹을 받지 안해서 그게 나왔다 말았습니다.
지금 또 요새는 기독교 사업주의가 있습니다. 기독교 사업주의라 하는 것은 사업이 중심이 돼 가지고 기독교는 사업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회사는 욀요일을 주일날로 지키고 저 회사는 토요일을 주일날로 지키고 그 회사의 모든 사업 경영에 따라서 주일을 얼마든지 변경해서 지킬 수 있다 하는 그자가 기독교 사업주의인데 사업 전도, 사업 복음이라고 해 가지고 한 그자가 내나 그자고 그자가 들어서 지금 말하고 있는데 그자가 이래하다가 모두 다 눈치를 보니까 이거 다 불리하고 이거 도리어 무시하게 되니까 얼른 이놈 치워버리고, 이거 치워버리고 지금 딴걸로 이름 바꿔가지고 하면, 바꿔 가지고 말만 잘하고 열변만 토하고 세계 모든 어학이나 알아 가지고 에이 비이 시이 떠들어 쌓고 이리 쌓으면 그만 따라가 버립니다. 여러분들이 눈을 떠야 되지 안 뜨면 안 됩니다. 이것은 이 설교록이 나갈 터이니까 세계 교회가 거머쥐고 비판할 것입니다. 세계 교회가 거머쥐고 비판할 터이니까 여기서 이단으로 정죄하든지 다 이래 될 터이니까 많은 말이 있을 터이니까 한 마디라도 틀린 말이 있으면 나는 정죄받습니다. 하나님의 도리에 틀리면 백 목사 제까짓 게 어디라고 용납하겠습니까? 정죄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리대로 바로 됐으면 온 우주가 달라들어도 눈도 깜짝하지 안하고 그거 발 아래 자끈 밟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은 우주보다 큽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하나님 말씀은 획 하나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똑똑히 배워야 되는데, 내가 그래서 늘 말하기를 `이 설교를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이 서부교회에다 두고 자꾸 이 말씀을 주는가? 암만 봐야 들어서 강직할 만한 사람이 보이지 안 하는데 뭐한다고 이래 줄까?' 그래 내가 소망 생긴 것은 주일학교에 소망이 생겼어. 주일학교 학생들은 소망이 생겨.
하나 예를 들면, 저거 할머니가 `야야 너 조그만 너거 여동생 손잡고 가거라.
위험하다.' '안 해요.' '왜 안 해?' `주일학교 선생님이 여자하고 가까이 말라 했는데 내가 여동생하고 손을 잡아요? 안 해요.' 이라며 가더라고. 그렇게 깨끗한 거 그러면 진리를 깨달을 수가 있어! 이렇게 알아서 이 진리로 가지고 세계에 전파해야 될 터인데, 이게 다란 말은 아니오. 이것도 한 일부분인데 이거 지금 깨닫은 이것은 또 세계에 전파해야 될 터인데 전파할 사람이 없어. 여기 지금 목사 장립 많이 시켰지만 시시해. 봐야 자기 속에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악이 속에 가득히 찼기 때문에 도가 속에 들어가지 안해, 도를 팔아 먹고만 있지.
이래서 오늘 아침에도 내가 기도하기를 `주님이여, 당신이 보시기에 표준적인 교역자가 누굽니까? 표준적인 목자가 누굽니까? 표준적인 선지자가 누굽니까? 그가 있으면 주께서 높이 들어서 사람들에게 이를 봐라. 표준이요 바로 됐다.
당신이 증거하면 모든 사람이 저거 잘됐는갑다 하고 따라가지만 사람은 능력 없는데 그거나 저거나 똑 같으니까 뮐 보고 우리가 따라가겠습니까? 진짜인지 가짜인지 뭘보고 따라가겠습니까? 이걸 당신이 판명해야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 앞에 조아서 시비 고소를 했습니다.
`하나님 이거 판정하는 거 당신의 의무 아닙니까? 이 판정해야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말했는데 하나님이 언제 들으실란지 모르겠습니다. 분명히 들어 주시기는 들어 주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지금 이걸 딱지만 땠는데, 이래서 여기 1절에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을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여호와라 이러니까, 구약 성경에만 자꾸 여호와라 말해 놓으니까 이 십계명은 구약성경에 속한 것이지 신약에는 속하지 안했다 이렇게 보기 쉽습니다.
여기 여호와라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창세기 1장에 보면 1장 26절까지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그 다음에 26절에 삼위일체 하나님이 나타났습니다. 26절에 "하나님께서 우리가 사람을 어떻게 지을꼬?" 거기 `우리'라는 복수가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복수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여호와란 말이 1장에는 없습니다. 2장 4절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왔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계약을 선포하신 하나님인데 계약 선포하신 하나님으로서는 사람을 지으시고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사람을 에덴동산에 인도하실 때에 그때 여호와 하나님으로 나타났습니다. 인간과 계약을 선포하신 그때에 계약의 하나님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이 너거를 인도해 냈다. 그러기 때문에 이 계명을 지키라.' 하는 것은 여호와가 여기 주체가 돼 가지고 있습니다.
1장 25절까지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는데 그때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창조했습니다. 그러다가 삼위일체가 26절에 비로소 삼위가 나타났고, 그 다음에 인인 관계에 제일 중요하게 나타난 것은 계약을 선포하신 분이 나타났기 때문에 계약을 선포하신 분은 곧 그리스도시요 예수님의 신성이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구약에서 모두 짐승으로 제사지내는 것이 "세상 죄를 지고 갈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짐승으로 지내던 그것은 그 실물의 하나님의 영이 제물될 것을 모형으로 한 그림자 제물이요 실상의 제물은 예수님의 당신의 헌신의 대속이 실상이 되어진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말 하는 것은 이 십계명이 구약에 속했지 신약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이런 말을 여러분들이 유혹받으면 안 됩니다.
왜 안식일은 그런가? 안식일은 성경에 보면 "안식일은 폐했다" 이랬어. 신약 성경에 안식일은 이거는 폐했다. `안식일은 참 것의 그림자라 말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안식일은 일차 창조하고 난다음에 거기 관한 안식일이요 이차 창조는 예수님의 사활로 이차 창조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죽으시고 살아난 사활의 둘이 결합된 게 뭐이냐 하면 예수님의 죽음의 끝 삶의 시작 이 둘이 딱 만난 이것이 주일날 새벽입니다. 사활로 주일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일날은 예수님이 죽으심으로의 모든 은혜,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의 모든 은혜 이 은혜는 주일날 종자적으로 받고 주일날 받은 은혜를 "엿새 동안에 네 일을 힘써 하라" 그 말은, 네 일이라 말은 돈벌이 하라 그런 게 아니고 주일날 받은 이 종자의 은혜를 엿새 동안에 네가 실지로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연성해서 실상을 만들어라, 종자를 만드는 것이고 엿새 동안은 기르는 날입니다.
주일날 받은 은혜를 엿새 동안에 길러서 자기 것을 완전히 만드는 것이 엿새 날인데 주일 지키고 엿새 동안에 다른 일 하니까 받은 바의 이 사활의 은혜를, 예수님의 사활의 은혜를 받아 가지고 그대로 엿새 동안에 제 실상의 구원을 만들어야 되는데 만들지 안하기 때문에 헛일이라 말이오.
그러니까 '예수님만 믿으면 된다' 하는 그것은 뭐이냐 하면, 기독교 무슨 주의입니까? 예수님만 믿으면 된다 하는 그거 무슨 주의입니까? 기독교 우상주의.
또 예수님의 이 모든 사활의 열한 가지 구속을 믿기만 하면 된다 하는 것은 무슨 주의입니까? 미신주의. 기독교 율법주의는, 예수님의 대속을 뒤로 두고 자기의 모든 행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하는 그것이 기독교 율법주의입니다.
기독교 신앙주의는 예수님의 구속을 안 입으면 안 돼. 예수님의 구속을 입고 범죄하면 벗어져 버리고 다시 회개하면 입어진다. 하루 백 번이라도 벗었다가 입을 수가 있다. 이러기 때문에 입고 산것만 자기 건설구원이 되지 벗고 산 것은 자기 건설구원이 안 된다하는 것이 신앙주의입니다. 알겠습니까?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니다.
<기도> 악령은 쉴새 없이 우리들 앞에 수많은 사이비한 갈래길을 내서 바른 길을 가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이렇게 갈래길이 많아 참 길을 찾기가 심히 어렴게 되는 복잡하고 분망한 사이비한 이 세상을 주신 것은 주님이 일으켜 주신 것인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이러므로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는 자는 이 미혹을 다 통과해서 주님이 섰는 시온 산에 설 리가 없습니다. 주님이 인도하시지 아니하시면 우리는 촌보도 바로 걸어갈 수가 없는 저희들입니다.
긍휼히 여겨 주사 우리를 주님 앞에 설 때까지 바른 길로 인도함을 받을 수 있는 겸손한 저희들이 되세 하시고 이 모든 원수인 악령 악성 악습이라는 이 사욕과 모든 땅에 속한 것들을 다 부인하고 주님의 대속을 날마다 사모하면서 대속하신 주님을 내 마음에 모시고 주님으로 인하여 내 언행심사가 다 움직여지게 하여 주시고 모든 것을 상대할 때에도 주님과 함께 상대하는 저희들이 되도록 하여 주셔서 한 시간 한 시간 사는 생활이 다 영생이 되게 하사 관련된 만물들도 기뻐하고 주님도 기뻐하시는 생명 생활을 하게 하사 둘째 사망의 해를 받는 일이 하나도 없도록 주님이 우리를 지켜 주시옵소서. 겸손케 이 한 소망을 전부 목표로 두고 달리는 일편단심의 저희들 신앙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많은 형제들을 불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저들은 주님의 피로 구속받은 것입니다. 주님의 식구입니다. 주님의 장중에 잡으시고 어지럽고 복잡한 이 모든 악령의 유혹과 해독이 가득찬 이 세상에 하나도 염려없이 평강 가운데서 주님 앞에 설 수 있도록 안보해 주시고 어떤 문제든지 주님에게 의논해서 주님의 인도를 받는 저희들이 되게 하시고 자기를 완전히 부인하고 주님께 다 맡겨 놓고 주님만 따르는 저희들이 됨으로 주님 앞에 부끄러움 없는 구원을 이루어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을 구원하느라고 수고한 사랑하는 종들에게도 주님의 피의 운동,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네가 나를 모든 사람보다 사랑하느냐, 내 어린양을 먹이라, 양을 치라, 양을 먹이라." 하신 주님의 음성을 생각하면서 주님 보고 이 일 하여서 피곤치 않고 있는 충성 다하고도 부족한 종인 줄 알고 충성하는 저희들이 되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이제 임명된 사랑하는 종들에게도 이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주님이 함께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