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4 09:08
고범죄
1985. 1. 14. 월새벽
본문 : 요한계시록 3장 1절∼6절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 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일곱 영을 가지셨다 하는 말씀은 성령의 은사를 사데 교회에 주실려고 가지고 오신 것을 말합니다. 사데 교회는, 사데 교회와 같은 형태에 있는 사람들은 다 사데 교회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사데 교회와 같은 이런 형편을 가졌을 때에는 제일 중요한 것이 뭐인고 하니 하나님께서 성령의 은사와 하나님의 종들을 장중에 붙들고 계시는 이 사실을 우리가 믿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자들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우리를 언제나 잡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을 잊어 버려서 거게서 낭파가 되는 것이지 주님은 변함없이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또 성령님은 꼭 한 하나님이신데 주님은 우리를 대속하신 것을 언제든지 나타내서 주님을 말씀하시고 성령은 대속하심으로 인해서 우리에게 오는 모든 은혜를 우리에게 다 운반해다가 주시는 이가 성령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대속의 공로를 베푸셨고, 설정해 놓은 이 공로의 모든 은총을 우리에게 갖다가 우리의 것이 되도록 이렇게 역사하시는 역사를 성령님이 하십니다. 일곱 영은 성령을 말하고 일곱 별은 하나님의 복음으로 살고 복음을 전할려고 하는 모든 사람들을 가리켜서 말한 것입니다.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우리는 자기 혼자 있든지 누가 같이 있든지 또 자기가 무슨 말 하든지 주님이 우리의 행위를 보고 계시는 것을 언제든지 기억해야 됩니다. 자기 행위를 모르면 벌 말 하기 쉽습니다. 언제나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주님이 내 과거 현재의 모든 행위를 다 살피고 계십니다.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의로운 행위를 해 놓고 사람들이 암만 몰라 줘도 상관 없습니다. 의로운 행위를 한데 대해서 보상하실 이는 주님 이십니다. 보상할 권리가 있는 주님이 아시면 됐지 사람들이 알아서 무엇을 말을 하면은 칭찬하고 높이고 이렇게 하면 그것은 전체가 그 사람을 해치는 것뿐이지 유익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행위를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원하는 그 사람은 자기 행위가 많든지 적든지 있는 행위를 다 까먹을라 하는 것입니다. 그 행위를 다 없앨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 말하기를 네가 남에게 보일려고 구제를 하든지 기도하든지 그런 것을 하지 말아라 다른 사람이 너를 보고 너를 칭찬했으면 너는 벌써 이미 상급을 받았다 이랬습니다. 받았으니까 자기 해 놓은 일 헛일 아닙니까? 또 아무도 모르게 구제하는 그런 일 할 때에는 은밀히 하라 했습니다. 왜? 은밀히 안 하면 다른 사람이 알고 너를 칭찬하면 그만 그 해 놓은 상급이 다 헛일이기 때문에 모르게 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런데도 사람들은 자기의 옳은 행위를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원하는 그것도 참 어리석은 외식이요 또 자시의 없는 행위까지도 다른 사람들에게 있다고 자꾸 이렇게 해 가지고서 과장을 해서 남에게 인정받으려는 그것도, 그거는 더 어리석은 게 아니라 미친 생활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행위는 낱낱이 주님이 다 털끝만한 것도 빠짐이 없이 심사하고 계시기 때문에 옳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게 좋고 잘못됨이 있으면 인간들은 몰라서 더듬어 넘어가 버려도 하나님은 알고 계시기 때문에 자기의 모든 잘못을 주님 앞에 낱낱이 고해서 회개해서 주님의 노를 푸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왜? 주님의 노를 풀지 안하면 주님의 노를 풀지 아니하면 그것이, 성전과 지성소 사이에 휘장이 가리워 있는 거와 같이 그것이 주님과 나 사이에 가리워 있기 때문에. 주님에게서 금생과 내세 영과 육의 모든 좋은 것이 다 내게 오는 것인데, 내가 잘못돼 있는 것을 그것을 주님 앞에 고해서 회개하고 그런 사람으로 살면 주님과 나 사이에 가리워지는 게 없으니까 모든 요긴한 축복이 다 내게 건너올 터인데 내가 그것을 회개치 안하고 사람들이 모른다고 주님도 모를 줄 알고 그렇게 뻔뻔스리 하기 때문에 주님과 자기 사이에 가리워지니까 그것이 자기로서는 망령된 행위요 스스로 자기를 망치는 속이는 행위가 됩니다.
자기의, 잘못을 주님 앞에 고하면 그만 사함은 받습니다. 사함은 받으나. 사함 받는다는 것은 고하면 사함 받는다는 것은 고할 때에 주님께서 그에게 죄를 거두시고 은혜 베푸시는 길을 빨리 틔우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후에 그 사람이 다시 그 죄를 범했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사하지 아니하시고 그때는 죄가 달라집니다. 자기가 알지 못하고 범한죄나 연약해서 범한 죄를 주님 앞에 고하면 사함 받고, 사함 받았으나 그 죄가 사함 받은 죄입니다. 사함 받은 죄이기 때문에 그다음에 다시 범하면 그 죄는 고범죄가 됩니다. 범죄한 것이 고범죄가 됩니다.
고범죄라 하는 것은 제가 알고 범한 죄가 됩니다. 고범죄가 될 때에는 그 고범죄부터는 고하면 사함 받는 것 아닙니다. 고범죄는 사함을 받지 못한다 이랬습니다. 그러면 사함 받지 못하면 고범죄는 언제든지 그대로 있을 것인가? 고범죄는 사함 받지는 못하고 회개를 해야 그 죄가 해결이 됩니다. 그저 고하기만 해 가지고 되는 것 아니고 회개를 해야 되어집니다.
자기가 약하든지 몰랐든지 이래서 범한 죄는 고하면 사함 받습니다. 그것이 그다음에 다시 범죄하면은 제가 고하고, 잘못된 걸 알고 잘못되는 줄 알고 고했으니까 죄를 알고 범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가리켜서 고범죄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종들이 고범죄를 범하지 않도록 해 달라는 그 기도를 늘 합니다. 고범죄. 고범죄는 회개를 해야 사함이 되는 것이지 회개하지 안하고 그냥 고함만 가지고 사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에게 있는 칭찬이라도 칭찬 받는 것은 자기의 상을 도적맞은 것이기 때문에 칭찬 받는 것은 자기의 것을 도적한 것이기때문에 그 사람이 가지고 가는 것도 아니고 그만 그것을 까뭉캐 없애 버렸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칭찬은 피할라고 하는 것이 믿음의 사람들이요, '자기에게 거짓 걸로 핍박하면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없는데 공연히 사람 들이거짓 걸로 됩박할 때에는 그때에는, 자기에게는 상 받을 만한 일이 없었는데 거짓 걸로 정죄를 했는데 정죄가 안 됐으면 그것이 상이 된다 이랬습니다. 거짓 걸로 핍박하면 기뻐하고 즐거워해라 하늘에 상이 크다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하늘나라 가 보면은 참 놀랠 일이 많을 것입니다. 자기 변명에 급급하고 자기 선전에 급급한 사람 있고, 자기 변명이나 선전에 대해서는 그것을 힘을 쓰지 안하고 그저 은밀한 가운데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살피고 계시는 그분이 계시기 때문에 말할 것도 없고 그분에게 대해서 상대해서 무엇을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네가 은밀히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희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살았다는 이름을 가졌다 말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그 믿음을 이름을 가졌다 말이오. 예수 믿는 사람이라 예수 믿는 사람이라. 왜? 예수를 정말 믿는 것은 다 산 것입니다.
그러면 살았다는 이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말씀했습니다. 이것도 계약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다 산 사람입니다. 산 사람인데 네가 예수 믿는다는 것이 참 믿는 게 아니고 말로만 믿고 이름만 믿는 신자이기 때문에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죽은 자로다.' 여게는 번역이 '죽은 자로다' 돼 가지고 있지마는 그전에 번역할 때는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자로다' 실상이라는 말이 거게 번역 돼 있습니다.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너는 일깨워' 지금부터 네가 점점 죽어 가는 그 일을 스톱하고 죽음으로 달리는 그 걸음을 네가 중단하고, 그말입니다. 일깨워라 말은 죽음으로 달리는 그 걸음을 중단하고 생명으로 걷는 걸음을 출발해라 그말입니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남은 바 죽게된 것을 굳게 하라' 남은 바라 말은 다 죽었다 그말이오. 하루 신앙으로 안 살면 죽었오. 열흘 신앙으로 안 살면 죽었습니다. 십 년을 신앙으로 안 살았다면 십 년은 죽은 생활 했습니다. 하나도 건설구원 이루어진 거는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남은 바' 하는 요 남은 바라 말은, 사람들이 언제든지 믿으면 되겠다 하지마는서도 하루 하루 지나가면 사람들은 자랍니다. 사람이 한 이십 세까지는 하루 하루 살아가면 자라나고, 벌써 이십 세에서 한 삼십까지 한 십 년 동안은 그 가운데에서 머물고 있고 삼십 세부터는 하루 살면 그만치 늙어지고 쇠해지고 자꾸 줄어지지 않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믿는 사람은 하루 살면 그시는 것이 점점 영생으로 자라가는 사람도 있고 하루 살면 산 것만치 죽어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루 사는 생활이 죽어지든지, 죽음이 커져서 죽어겼든지 살아 자랐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여게 '너는 일깨워' 하는 말은 벌써 다 죽고 남은 거 있으니까 남은 그것도 계속해서 죽음으로 미끄러져 가지를 말고 거게서 돌아서라, 돌아서 가지고서 살아 자라가라 그 말은 빗사람으로 살면 점점 죽어져 가는게 되고 옛사람으로 살면 그 마음의 기능도 하루 살았으면 하루 산 거는 죽어 버렸습니다. 또 몸의 기능도 죽었습니다. 새사람으로 살면 하루 산 것이 없어지 기는 없어지는데 어째 없어지느냐? 하루 산 것이 그것이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겼다 이랬습니다.
생명으로 옮겼으니까 살아졌습니다. 살아났습니다.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어떻게? '굳게 하라' 그 죽게 된 것을 이제. 다 죽어 가는 것을 죽은 거는 할 수 없지마는서도 살아 있는 그런 거는 죽지 안하도록 그것을 돌아서서 살아서 자라가는 데로 새사람으로 살아라 그 말이오.
새사람으로 살아라.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내 하나님 앞이라 말은. 내라는 것은 누구를 말합니까? 내라는 것은 주님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내 하나님 앞이라 말은 주님은 삼위 중에 제 이위인 우리를 대속의 책임을 맡고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본체는 하나이지마는서도 하나님은 한 하나님이 삼위라 말은 지위가. 위가 격위가 서이라 말이요. 격위가 서이라 말은 직책이 서이라 그말입니다. 그러면 성부의 직책이 있고. 성자의 직책이 있고, 성령의 직책이 있는데. 한 하나님이 일을 맡을 때에는. 이 직책을 맡을 때에는 이 지위의 이름을 가졌고 저 직책을 맡을 때는 저 지위의 이름을 가지게 됩니다.
그것이 비유는 될 수가 없는 것 같지마는 약간 좀 알아 듣기 쉽구로, 한 사람이 한 사람인데 그 사람을 보고서 어떤 사람이 남편이라 이랍니다. 남편.
남편이니까 '저 사람은 남편인 갑다' 이라는데, 또 좀 있으니까 말하기를 누가 오디마는서도 이집에 호주가 누구냐 하니까 또 그 사람이 나갑니다. 호주라고 또 그 사람을 부릅니다. 또 좀 있으니까 어떤 사람이 와 가지고 '아버지' 또 이렇게 부릅니다. 그러면, 한 사람이지마는서도 이 면으로는 여게 대해서는 아버지가 되고, 여게 대해서는 호주가 되고. 여게 대해서는 남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한 하나님이신데 그 격위가 다르고 직책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는 것인데, 내 하나님 앞이라 그 말은 우리를, 우리 구원을 책임지신 주님께서 삼위일체의 하나님 앞에. 이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을 두고서 말합니다. 내나 그것이 내 하나님 앞이라 말은 구속할라고 하시는 우리 주님이또 모든 것을 지공 지성법으로 십판하실 그 하나님 앞에 하는 말입니다. 내나 그 말이,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내 하나님 앞에' '네가 내 심판 앞에' 하는 말과 간습니다. 내 지공 앞에 네 지성 앞에라는 말과 같습니다.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행위의 온전 한 것을 찾지 못했다. 행위가 온전한 것, 온전한 것을 왜? 온전하다는 걸 뭐 할라고 말하는가? 온전치 안했다 그말이오. 온전치 안한 것은 뭐인 데? 다 죽었다 그말이오. 죽게 된 거, 죽은 것은 온전치 안한 것입니다. 온전치 안한 것은 그것은 다 죽어 버린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네가 죽게 된바 남은 것 죽게 된 거, 죽은 거는 뭐이 죽은 것인데? 온전치 못한 것이 죽은 것이다 그말이오.
온전치 못한 것이 죽은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행위구원이라고도 하고 건설구원이라고도 하고 성화구원이라고도 하는데, 이 구원을 위해서 우리가 합니다. 기본구원은 다 얻은 놓은 것이고, 그러면, 행위구원 건설구원 성화구원은 이것은 그 행위가 어떻게 되면 되느냐? 백분지 일이 되면 되느냐? 백분지 구십 구가 되면 되느냐? 백의 백이 되는 온전한 행위가 될 때에 건설 구원이 고 부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온전한 행위가 되지 안할 때에는 부분적인 구원도 이루어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것을 주님이 말씀하시시를, 죄는, 의는 하나 있으면 하나 고것만 의로웠다 고것만 말하고, 죄는 하나 있으면 그 하나로 인해서 전부가 다 더러워진다 이랬습니다. 그 사람이 예를 들어서 손으로 범죄했으면 온 몸뚱이가 다 죄인이라고 수갑 질려 가지고서 감옥소에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행위의 온전 자기 딴에는 뭐 요거는 옳고 요거는 나쁘니까 좋은 거는 옳은 대로 요것을 채용하지 않겠느냐 하지마는 옳은 것이 아홉이 있고 잘못된 것이 하나 있으면 잘못된 거 하나 때문에 옳은 것은 옳은 것이지마는서도 잘못된 거 하나 때문에 정죄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구원은 좋은 점을 따라서 이루어 가야 됩니까, 우리 구원은 잘못된 그 점을 지금 따라서 구원을 이루어 가야 됩니까? 예? 잘 못된 점을 따라서 구원을 이루어 가야 됩니다. 언제 비유하기를 나무를 가지고서 동글 동글한 공과 같이 흠 없는 공을 만들어라 이렇게 했는데, 어떤 목수는 보니까 나무를 가리는데 껍데기가 험하고 얼턱덜턱한 그것을 가지고 갑니다. 어떤 사람은 보니까 겉이 반들반들하고 참 아주 나무가 좋습니다. 반들 반들 합니다.
이것은, 그것을 가지고 갑니다. 그래 가지고 가서 물었습니다. '나는 나무가 이렇게 반들반들한 좋은 나무가 있어서 가지고 왔는데 자기네들은 와 그리 억떡억떡한 험한 나무를 가지고 왔느냐?' '아, 그거 잘못 가지고 왔다.' '왜 그러냐?' '고거 봐라. 거게 못 구멍이 있다. 못 구멍이 있어서, 못 구멍이 있는데 그 못 구멍이 없도록 깎을라 하면은 동글동글한 공 하나도 돼도 안하고 다 깎아 내버려도 그 구멍이 그 안에 까지 다 들어가 있다.' 조그매 들어가 있는데 그거 흠 없게 만들라하니까 못 구멍 있는 그놈이 저 안에까지 들어가 있으니까 그거 없도록 깎아내려 하면 헛일이라 그말이오.
우리 구원이 하나님 앞에 심판될 때에는 흠 있는 것은 다 깎여 버리고 남은 것만 남기 때문에 제 딴에는 구원을 잘 이루는 줄로 알았지마는 서도 그 흠된 거 자꾸 이래 깎다 보니까 헛일이라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 이루는 방편이 자기에게 있는 잘못된 점을 자꾸 고쳐 나가는 그것이 우리 구원 이루는 방식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회개하는 것이 우리 구원 이루는 방식에 대해서는 제일 중요합니다.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다' 우리 구원 행위는 표준이 뭐이냐? 표준이 사람들이 뭐 이만치 하면 안 됐느냐 하나 표준을 온전으로 삼아야 됩니다. 온전이 아니면 안 됩니다. 온전이라는 것은 예를 들면 언행 심사, 말도 행위도 마음도 생각도 그 언행심사의 모든 온전한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것이 필요하냐? 자기에게 있는 장점을 다른 사람이 알고서 칭찬하는 그 칭찬 받기를 찾아 돌아다니는 사람은 망할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강단 앞에서도 자기의 아무것도 아닌 것을 장점 만들어서 칭찬을 해 주면 좋아서 칭찬하는 그 교회 찾아가고, 어떤 사람은 칭찬하는 교회는 찾아가지 안하고 자기의 단점을 말해서 첵망해 주는 그 교회를 찾아갑니다. 단점은 아무리 주흥 같고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그 단점을 죽기 전에 회개했으면 됩니다. 죄악을 고하면 사함 받습니다. 사함 받고 난 다음에는 고 뒤에 고런 죄를 범할 수 있는 고 현실을 당면할 때에 고때에 범죄하지 안하면 벌써 고거는 주님 앞에 완전히 깨끗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이사야 1 장 18절에 그 말씀을 해 주신 것입니다. '주홍 같고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나와 의논하면 눈과 같이 양털 같이 회게 될 수가 있다'하는 그것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인 것입니다.
'온전함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그러므로' 네가 지금 예수를 믿은지 수 년이 되고 수십 년이 되고 이렇게 무슨 성직을 가졌지마는서도 너는, 네게 장점이 있지마는서도 단점 그것 때문에 구원이 헛일이다. 단점 그걸 따라서, 전부 단점을 표준해 가지고 다 깎아 버린다. 왜? 단점 그것이 하나 있으면 그것 때문에 모든 장점이 다 더러워지고 말았다.
그것을 학개서에도 말씀했고 마태복음 23장에도 말씀을 했습니다. '죄와 의가 다르다. 의는의 하나 있으면 고거는 의로 고대로 있지마는 죄는 죄 하나 있으면 죄 하나 때문에 전부가 다 죄가 돼버리고 만다' 고것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네 행위의 온전 한 것을 찾지 못하였으니 어서 돌아서서 온전한 행위를 해라. 그리면 네 구원이 이루어져서 죽은 것은 할 수 없지마는서도 남은 바 죽지 안하고 님은 그것은 네가 성화구원을 건설구원을 이루어 가질 수가 있다. 그기능은 구원을 심신의 기능 남은 기능은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
그러면. 온전한 행위를 할라 하면 어떻게 할 수 있는가? 할 수 있는 그 방편을 여게 말씀해 줬습니다. '어떻게 받았으며' 이것만 하면 됩니다.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받았다 말은, 어떤 것을 네가 받았느냐?또 어떻게 된 것을 받았느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모든 부요를 다 내놓고 낮아질 대로 더 없는 이상 낮아질 대로 낮아지시고 오만 고난 죽음 모든 모욕을 이렇게 당하시고 예수님이 그렇게 어떻게 하셔 가지고서 너희에게 이 삼대 구속을 주셨느냐? 그러니까 네가 이 삼대 구속을 받을 때에는 어떻게 받았느냐? 그 구속을 받았으니까 너는 주의 구속에 팔린 것이 됐기 때문에 먼저 주의 것이 된 거 아니냐? 이 구속을 받을 때에는 주의 것이 된 거 아니냐? 주의 종이 아니냐? 주의 구속을 받았으니 너는 주님의 성전이 아니냐? 네가 왕이 아니라 주님의 집이 아니냐? 너는 주님의 지체가 아니냐? 너는 주님의 몸이 아니냐? 너는 주님의 나라요 주님의 백성이 아니냐? 너는 주님의 제 사장이요 선지자요 왕이 아니냐? 너는 주님의 신부가 아니냐? 네가 이렇게 이 직분도 받았고 이 지위도 받았고 이름도 받았고 영생도 받았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도 받았고 사죄 칭의 화친을 네가 받지 안했느냐? 어떻게 받은 것을, 어떻게 이루어 놓은 그 구속을 네가 어떻게 계약하고 받았느냐? 네가 이 횐 옷을 구속을 받을 때에는 값을 주고 사라고 하지 안했느냐? 값이 없어도 사라고 하지 안했느냐? 그 값이 댓가가 뭐이냐? 너를 드려야 되지 않느냐? 예수님이 대속해 주신 것을 네것으로 삼으려 하면은 너는 예수님의 것이 돼야 되지 않느냐? 네가 상점에 가 가지고서 물건을 가지고 올라면 네게 있는 돈은 주인에게 주고 주인의 물건을 가지고 와야 되지 않느냐? 너를 주님에게 바쳐야 주님이 네것 되지않느냐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들은 것은 우리가 성경 말씀을 읽든지 또 말씀을 배웠든지 하는 것이 그거 다 들은 것 아닙니까? 어떻게 들었느냐? 어떻게 들었느냐? 네가 말씀을 들을 때에 듣고만 지내 보냄으로 구원 된다고 했느냐? 들은 것을 듣고 기억만 하면 된다고 했느냐? 네가 들은 것을 기억도 하든지 안 하든지 한번 들었으면 된다고 했느냐? 듣고 행하지 않으면 죽은 믿음이라고 하지 안했느냐? 들을 때는 네가 행 할 것을 책임지고 그렇게 네가 듣지 안했느냐?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요것이 우리 할 일입니다. '생각하고' 그러면 생각한다고, 그 받은 거 들은 것을 내가 과거를 생각한다고 해서 그거 가지고 되겠느냐? 사람이 생각한다고 되는 것 아닙니다. 생각한다고 되는 것 아니지마는 계약에 입곱 영과 일곱 별을 주님의 장중에 잡고 계시기 때문에 성령의 은혜와 당신이 우리를 붙드시는 이 계약이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생각하면 나옵니다.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 안에는, 우리 심령 안에는 조명의 영감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을 환하게 비춰 주는 조명의 영감이 우리 마음 안에 계시지, 또 우리 안에는 역사의 영감이 있습니다. 우리를 그 말씀대로 살도록 하려는 역사 영감이 있습니다. 성경 말씀 안에는 내재적 영감이 있습니다. 말씀 안에서 말씀을 나에게 사람을 통해서 전해 주도록 하는 성령의 역사가 있고, 그 말씀을 받아 들이도록 내 마음을 환하게 밝게 하는 그 성령의 감화가 우리 속에 있고 또 받은 대로 실행하도록 자꾸 이렇게 역사해 주시는 역사적 영감 이 우리 안에 계시고 이라기 때문에 우리○는 생각하면 된다 그말이오. 이것이 예수님의 공로 때문에 그렇습니다.
생각한다고 됩니까? 생각하면, 생각하면 뭐이 나오는가? 지킬 것이 나옵니다.
생각하면 지킬 것이 나옵니다. '아, 나는 주님의 대속을 지켜야 되겠구나. 나는 중생됐으니까. 나는 중생된 자이니 중생된 자인 것을 이것을 지켜야 되겠구나.
나는 새사람이 됐으니 새사람을 지켜서 내가 새사람으로 살아야 하겠구나. 나는 영감과 진리를 받았으니 영감과 진리를 지켜야 되겠구나.' 여게 지킨다 말은 입고 있으라 말이요 뺏기지 말라 말이 오. 지킨 것은 뺏기지 말라 말이오.
우리가 뺏겨 버리거든. '뺏기지, 이거는 뺏기면 헛일입니다. '뺏기지 안해야 될것을 알게 되겠고, 그다음에는 회개하라 그러면. 빼앗기지 안하고 잘못된 거 자꾸. 고치면. 고치면 뭐 나옵니까? 고치면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모든 명령, 네게 명한 모든 명령.
전부 복수가 아니고 단수로 직접으로. 우리 현실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그 명령만 찾으면, 명령을 찾으면 뭘 찾았다고요? 명령 찾은 것은 뭣 이라고요? 예? 명령 찾은 것은 뭐 찾은 것이라요? 예? 주님을 대면한 거! 좀 들어. 귀를 열고 들어요. 뭐 하는 사람들이오 자꾸 잊어버리고? 그래 가지고 뭐 할 것이오? 명령을 찾은 것은 주님을 대면한 것이오. 내 현실에 주의 뜻이 무엇인 지. 요 현실에 해당되는 주의 말씀이 뭐인지 요것을 바로 찾을라고 애를 쓰는 것은 주님 찾올라고 애를 쓰는 것이오. 바로 찾으면 주님을 대면한 것입니다. 주님이 이 말씀과 같이 왔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 말씀대로 자기가 행할라고 애를 쓰면은 주님을 영접할라고 애를 쓰는 것이요 이 말씀대로 지켜 행하면 그것은 뭣 하는 것입니까? 예? 주님을 영접해서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과 동행하면은 어떤 거와 동행합니까? 전지와 동행이요, 전지자가 내안에 내가 전지와 동행하는데 그분은 형체가 없습니다. 전지와 동행하는데 형체는 없고 전지만 나와 동행하니까 내가 동행한, 내가 전지자가 되는 것 아닙니까? 전지자와 동행이요 전능자와 동행이요 지극히 큰 능력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에게 있는 모든 구원이 다 이루어집니다.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된다. 네가 전 인류에 뛰어나게 된다. 인류 위에 뛰어나는 그것이 교회의 위치입니다. 그것이 많든지 적든지 하늘나라 가는 것은 모든 인류 모든 피조물중에 뛰어난 고것만 심판을 통과해서 무궁세계에 가는 것이지 피조물 위에 뛰어나지 못한 것은 못 갑니다.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만일 네가 이제 깨지 안하면 깬다는 말은 이제 말씀한 대로 이 사실을 네가 잠고 이 사실에 합당한 자로 네가 살지 안하면 그말입니다. 이 사실에 합당한 자로 살지 안하면. 어떴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면 지키고 회개할 거 나오니 지키고 회개 하면 되고, 안 하면, 안 하면 그말입니다. '일깨지 아니하면' 그대로 하지 안하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네게는 너를 구원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회 생 당한 사랑의 주님이시지마는서도 '내가 도적 같이온다' 내가 네게 대해서, 내가 네게 대해서 하나도 구원하지는 못하고 심판주로 올 수밖에 없다. 그말입니다.
도적같이 온다 말은 주님은 구원하실라고 애를 쓰지마는서도, 하나님의 공평을 가진 하나님이신데 아무리 구원할라고 애를 쓰지마는서도 그게 회개를 안 하니까 제가 사는 동안의 그 모든 것은 다 도적맞는 자 로서 심판할 수밖에 없으니까 너는 몇십 년을 살았든지 네 산 것은 전부 다 마귀에게 죄악에게 사망에게 저주에게 다 뺏겨 버리고 말았다 그말이오.
도적같이 온다 말은 주님이 오실 때 주님이 도적으로 뺏으러 오는 게 아니라 주님이 와야 네게 구주로 와 가지고 네게 모든 그 영광을 주는 내가 될 터인데.
너를 심판해서 다 네게 있는 것이 정죄받아서 다 멸망하게 되는, 내가 네게 구주로 와서 이렇게 애쓰지마는서도 네가 구주로 영접하지 안 하면은 내가 네개 심판주가 되어지고 내가 네게 대해서는 멸망시키는 주가 된다. 주님을 구주로 영접지 않으면 심판주 멸망주로 영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회개 안 하면 당신이 멸망시킬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일깨지 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어느 시에, 어느 시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이 말은 어느 시에 네 생명이 거둬질란지 너는 모른다. 어느 시에 네가 죽을런지 모릅니다.
어느 시에 주님의 재림이 될지 모른다. 재림도, '어느 시에' 하는 요 시는 재림도 말하는 것이고 주님이 우리의 생명을 부르시는 것도 가리켜 말합니다.
'뭐 내가 젊은데' 이거 자꾸 자연 계시라 말이오. '젊은데.' 언제 말하기를 누가, 우리 집에 같이 있는 분이 말하기를 신문에, '아, 신문에 사람 들이 많이 죽었네요' 이라는데, 그 신문을 갖다 보이는데 보니까 버스가 다리에 떨어져 가지고서 한 명 살고 서른 여덟 명이 죽었던가? 뭐 젊은 사람은 거기 떨어지면 안 죽습니까? 아이는 떨어지면 안 죽습니까? 뭣을 젊었다고 나는 생명이 오래 있다 그런 망령을 부립니까? '너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이 이 시간에 없어질란지 모른다.' 그러기 때문에. 어느 시에 내게 끝이 이를지 모르는데 끝이 이르기 전에 네가 준비할 거는, 준비를 못 한 거는 할 수 없어. 죽은 것은 살려낼 수가 없어.
이렇지마는서도 내가 정죄받을 것은 고하면 됩니다. 고하면 되니까 '이거 이거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모든 거 하나도 고하지 안한 것이 없이 다 고해 놓으면 정죄받을 거는 없고, 상은 없지마는서도 정죄받을 거는 없다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들이 영원한 수치를 오늘에 그것을 돌이켜서 돌이키면 수치가 없어져. '아 저 사람은 이제 하늘나라 가면은 만신창이 고 제일 천한 자리에 갈 것이다' 했는데 그 사람이 제일 높은 자리에 있을 수 있습니다. '아, 저 사람은 위인이고 성자이니까 제일 높은 자리에 있겠다 싶었는데 아니 그 사람이 저 밑에 나가 있을 수 있어. 뭣 따라서 가기 때문에 그래요? 뭘 따라 가기 때문에? 예? 나쁜 점을 따라 가기 때문에, 그 사람은 아주 다 모든 사람이 성자인 줄 알았는데 자기가 못 구멍이 있는 것을, 못 구멍이 있는 것을 몰랐어.
자기에게 있는 자기도 인정치 못 한 죄가 있는 걸 몰랐어.
이러기 때문에, 죄 중에는 자기에게 대해서는 제일 해를 많이 주는 해가 무엇이냐? 자기가 왕이 되고 주가 되는 그 죄가 제일 독한 죄요 그 죄가 손해가 제일 많습니다. 그다음으로 손해 많은 죄는 어떤 죄입니까? 여러 번 배웠는데? 어떤 죄요? 자기가 모르는 죄, 자기가 모르는 죄 자기가 모르는 죄니까. 그 죄를 자기가 몰랐으니까 회개를 안 했는데. 회개를 안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놈이 들어서 그것 때문에 깎이고 깎이고 깎이고 깎이고 하니까 다 깎여 버리고 나중에 보니까 아주 이 집채 같은 구원을 얻으려고 비유컨대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주먹 덩이만한 것도 안 남았다 그말이오. 다 깎여 들어가니까.
이러기 때문에, 다윗 같은 사람은 자기가 모태에서 잉태할 때부터 죄 가 운데 잉태했다 자기가 미루어서 내가 스무 살 먹을 때에, 열 다섯 살 먹을 때에, 열 살 먹을 때에, 다섯 살 먹을 때에, 한 살 먹을 때에, 어머니 뱃 속에 있을 때에.
어머니 뱃 속에 있을 때까지를 미루어서 찾아서 다 회개한 것이 다윗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 것도 알지 못하고 날마다 죄를 물 먹듯이 먹고 마시는 자가 뻔뻔스럽게 이걸 생각지도 안하고 하고 있으니까 얼마나 가련하고 불쌍한 자입니까?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알지 못하리라' '그러나' 4 절에 '그러나 사 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옷을 더럽히지 안했 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예수님의 삼대 대속을 벗지 안했다 그말이오. 입고 있었다.
그말이오, 입고. 사죄를 입고 있어. 주님이 죽기까지 하셔서 사죄 주셨으니 나는 죽어도 나는 죄는 범할 수 없다. 칭의를 주셨으니 내가 이 의를 더럽힐 수가 없다. 주님이 죽으심으로써 화친을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더불어 나는 끊어질 수가 없다. 내 생명이 끊어지면 끊어졌지 하사님을 내가 끊고 배반 할 수는 없다. 그것이 옷을 입고 있는 자입니다. 중생은 변동이 없지마는서도 주님의 대속은 벗을 수도 있고 입을 수도 있습니다. 이거는 기본적으로는 벗을수가 없지마는서도 행위구원으로서는 벗을 수도 있고 입을 수도 있다 말입니다.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횐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횐 옷 입은 자에게 주님이 동행하십니다. 헌 옷 입은 자에게, 헌 옷 입은 자라 말은, 예수님의 대속을 벗지 안하고 예수님의 대속을 입고 있으면 주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벗지 안하면 주님과 동행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벗으면 제가 아무리 주여 주여 해 봤자 주님은 동행은 안 됩니다.
그런데 그는 합당한 자라 횐 옷 입고 다닌다. 요 말을 왜 여게 했느냐 하면은 와 말했느냐? '사데 교회에 몇 명이 있어' 그 말은 네가 남을 보아서 깨달아라.
아무리 너거 교회가 다 부돼해져도 너거 교회에 횐 옷 입고 다니는 사람이 네 옆에 있을 것이다. 그런고로 네가 보고서 '아. 저 사람은 참 예수 믿는 사람이다. 저 사람은 참 옳은 사람이다.' 네 옆에 옳다 바르다 깨끗하다, 저 사람은 참 진실히 예수 믿는 사람이라 그렇게, 성경 볼 것이나 네 눈에 그렇게 된 사람도 네 눈에 보일 것이다. 보이거든 빨리 그 사람을 따라가라. 빨리 그 사람을 본받아라.
그러면 우리가 신구약 성경과 영감과 주의 대속의 공로도 있지마는서도 내가 사람을 보아서 깨달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내옆에 있다 말이오. '아, 저 사람은 저 점이 단점이니까 아이구 내게도 저 점을 피해야 되겠다. 저 사람은 저 점도 좋고 저 점도 좋고. 저 사람은 저런 면에 대해서는 저 사람에게 좋은 점이 있다.
저 면에 대해서는 저 사람이 장점이다.' 이래서 남을 보고 깨달을 수 있는 점이 있다 그말이오. 우리가 다 그거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 사람도 그렇습니다.
딱 아무라도, 뭐 못난 사람이라도, 자. 저 사람에 대해 단점이 뭐이냐, 단점 찾을 수 있습니다. 저 사람의 장점이 뭐이냐, 장점 찾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도 그사람의 단점을 찾을 수 있는데, 단점 있는 게 문제가 아니라 단점을 즉시 자기가 완전히 거게서 벗어 내버리고 그것을 완전히 돌이키면 주흥같고 진흥같이 붉었을 지라도 눈과 양털같이 회게 됩니다. 완전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몇 명이 네게 있어' 네게 있다 말은 네가 보고 본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지 않느냐?
'네게 있어 횐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기는 자는' 그 말은 생각하고,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은 것을 생각하면 생각으로 인해서 지키고, 지키면 회개할 거 나오고, 지켜 회개하면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고 명령을 바로 찾아 지키게 되기 때문에 그라면 모든 위에 뛰어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요와 같이 하는 자는, '이와 같이' '이와 같이' 위에 흰 옷 입고 다니는 사람. 옳은 사람, 네가 본받을 만한 사람이 있지 않느냐? '아, 저 사람은 참 저 사람을 참 본받을 만하다. 저 사람은 참 위대한 사람이다.' 네가 보는 데에 너거 교회에서 위대한 신앙가를 보든지 너거 교회 그런 사람이 없으면 이 교계에 위대한 신앙가가 있든지 어짜든지 네가 볼 때에 위대한 신앙가가 있다. 위대한 신앙가가 있는데 어떠한 위대한 신앙가라도 네가 지금이라도 달다들어 가지고서 힘쓰고 출발하면 그자와 같이 된다 그말이오.
요것이 우리에게 소망인 것입니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이와 같이라 말은 뭐와 같이 말이오? 이와 같이라는 말이 뭐와 같다 말이오? 예? 횐 옷 입은 사람들 몇 명이 있는데 그 사람들과 같이. 아무리 한국 교회가 부패해도 한국 교회에 횐 옷 입고 다니는 사람이 있으니 너는 눈을 가지고서 남의 단점을 보는 네 자살 행위를 하지 마라. 자살 행위 하지 말고 남의 장점을 봐라. '보자, 누가 잘 믿노?' 이렇게 보면은 네가 이 교계에서. 너거 교회 없으면은 이 교계에 네가 소문 듣고 어떻게 하시든지, 손 양원 목사님이라든지 주 남선 목사님이라든지 한 상동 목사님이라든지 어떤 위대한 목사님, 어떤 목사님' 이와 같이' 그 목사님을 보고 네가 회개를 하면 '이와 같이' 위대한 어떠한 위대한 목사님이라도 그 목사님같이 너도 된다 그말이오. '이와 같이' 이런 목사님과 같이 된다 그말이오, 이와 같이라는 말은.
'이와 같이 횐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 반드시 흐리지 안하고' 생명책에 흐리지 안한다. 생명책에 흐리지 안한다 그 말은 하나님께서 '이거는 산 자라' 하는 하나님의 인정에서 흐리지 안하면, 인정에서 흐리지 안하면 뭐 하는데? 인정에서 흐리지 안하면 뭐이 좋은데?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아버지 앞에서 시인한다, 아버지 앞에서 시인한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이 사람은 하나님께서 도와 주시고 동행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셔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 사람 옳다고 증거해 주겠다 그말이오. 천사들 앞에서, 천사들이 쑥 지나가니 '야, 천사야, 네가 이 사람에게는 도와야 된다.
이 사람에게는 수종을 들어야 된다.' 가서 그 사람에게 수종 들라고, 수종 들라고 천사들이 멈춤 멈춤하고 있으니까 '거게는 수 종들 거 없어. 나는 그거 몰라.' 천사들이 모르고 지나갈라 하니까 '아, 안 된다. 이 사람은 내가 안다.
이사람은 내가 책임졌다.' 안다 말은 책임졌다 말이오. 안다 말은 지식적으로 안다 말이 아니요 책임진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너 이거. 이거. 이 일에 대해서 아느냐?' '아, 나는 그거 모릅니다.' '이게 잘못되어 있는데 아느냐?' '나는 모릅니다.' 그거는 자기에게 책임 없다 말이오. 잘못 된 걸 '이거 아느냐?' '예, 제가 압니다.' '이 잘된 게 있는데 이 잘된 거 네가 아느냐?' '나는 모릅니다.' 자기는 상관 없다 말이오. 잘된 거 보고 '이거 네가 아느냐?' '예. 압니다.' 안다 말은 제 것이라 그말이오 이거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 안다, 천사들 앞에 안다 그 말은,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4장에 시험받으실 때에 '너는 홀로 그에게만 경배하라 하셨느니라' 하니까 마귀란 놈이. 뭐라 했습니까? 마귀란 놈이 패전하고 떠나지 안했습니까? '마귀는 떠나고' 또 뭐라 했습니까? '천사들이 와서 수종 들었다.' 오늘 우리 믿는 사람도 한 천사가 이 우주를 일시에 멸할라면 멸하고 할 수 있는 그 천사가 우리와 동행하고 안 하는 것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생명책에 흐리지 안하고 주님이 안다 하면 천사는 거기 와 가지고서. 안다 말은 내가 책임진다 그말이오.
안다는 말은 책임졌다 그말이오. 책임진 자는 천군 천사들이 그를 돕고 하나님의 모든 은총이 그를 도와서 아버지는 포도원 농부 노릇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횐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 시 인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말씀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