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3 12:13
결말
1981. 11. 2. 월새
본문 : 야고보서 5장 7절 - 11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니라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농부가 그 농사의 성공은 추수까지 돼야 이제 성공입니다. 농부가 노력할 때에 추수를 해서 곡간 안에 넣은 다음이라야 그 농사의 성공은 완성이 된 것입니다.
도시 사람은 그걸 모르지마는 시골서는 자주 봅니다. 지금은 새마을 운동이 나서 가지고 이웃돕기를 그렇게 힘을 쓰지마는 옛날에는 그게 희박했습니다.
보리 농사는 잘 지었는데 그만 그 남편이 죽어버렸소. 보리라는 것은 잘못 거두면 그만 삭이 나서 다 헛일입니다. 다 각각 자기 일이 바쁘니까 요새는 기계로 하니까 쉽지마는 그때는 사람의 힘으로 하니까 힘이 들어 제 곡식 썩우고 남의 곡식 거두어 주려하는 그런 사람은 없어.
이러니까 모두 다 일꾼있는 사람들은 뭐 밤을 낮으로 알고 가리지 아니하고 장마가 지니까 이 보리를 베 가지고 나무에 다 단다. 또 불을 떼놓고 집안에서 말린다. 이래 쌓는데 누가 그래 해 줄 사람이 있습니까? 농사는 잘 지었는데 그만 싹이 나서 보리 전부 다 버렸어.
이러니까 이웃이 보다 안되니까. 우리 일 못하고 가야 된다. 가 가지고 하니 뭐 모두 보리쌀마다 전부 싹이 나서 쑥쑥 다 올라놨으니 그 거둬봐야 그거 뭐 있습니까 농사를 다 지어 놓고도 추수를 잘못하면 그만 헛일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너희들이 길이 참아라." 언제까지 참을까 주님 강림하실 때까지 참아라 그랬습니다. 주님 오시면 세상 끝날 아닙니까 세상 끝나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세상 살이가 끝날때까지 참아라 그말이오. 주님 강림하실 때까지 참아라 뭘 참아 변동하지 말고 견뎌라 그말이오. 뭘 견뎌 주님의 말씀대로 사는 그것을 그만 집어 치우지 말고 참아라. 주님의 말씀대로 사는 그것을 네가 계속하라 그말입니다.
'오래 참아라.' 아이구 말씀대로 살아봐도 아무 소용도 없다. 이렇게 네가 경거한 행동 하지 말고 주님 강림하실 때까지 네가 말씀대로 사는 것을 계속해라. 그말은 주님이 강림하시면 세상 끝나는 그 시간인데 개인이 죽는 그 시간은 그 사람의 세상으로서는 끝나는 시간 아닙니까? 이러니까 '네 세상살이가 끝나기까지 말씀대로 사는 일을 계속해라.' 그말입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헛일 하나도 안 시킵니다. 손해갈 일 하나도 안 시킵니다.
우리가 이 마귀의 지식이 들어와 가지고 꺼꾸로 되서 좋은 것은 나쁘다 나쁜 것은 좋다 그렇게 꺼꾸로 해석하도록 해놔. 그렇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헛일을 시키지 안하십니다. 손해갈 일을 시키지 아니하시요.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순종을 하되 언제까지 순종할기냐? '네가 오늘까지만 순종해보자.' '이번만 순종해보자.' 그렇게 네 자율이 주장이 되 가지고 네 자율이 허락하면 순종하고 자율에 거슬리면 안하는 그런 자는 믿음이 없는 자기 때문에 성공을 못 합니다. "주님 강림하실 때까지 참아라 세상 끝날까지 참아라." 네 세상이 끝날 그 시간까지 순종하다가 세상 끝을 마치라 그말이오.
왜 뭣 때문에 "욥에게 대한 것을 보라 선지 선지 사도를 봐라." 그이에게 필요없는 환란 같지마는 그 환란이 아니면 그 속에 있는 멸망할 요소를 뽑을 수 없을 것인데 그 환란을 통해서 뽑지 안 했느냐? 욥은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천하에 욥과 같은 의인이 없다." 이랬는데 천하에 욥과 같은 의인이 없는 그 의인 속에 들어 있는 그 찌기는 이것을 여간해야 그 찌기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찌기가 나와야 뽑는데 그 찌끼가 일어나야지 자 살림살이를 다 일시 없어져도 다른 사람이 와 가지고 '전부 이 많은 목장 농장 다 절단났습니다.' '하나님이 주셨던 걸 하나님이 가져 가시니까 뭐 그것은 무슨 우리가 상관이 있느냐? 우리가 죄지어 가지고 그런거는 하지마는 하나님이 주셨던 것 하나님이 가지고 가시니까 그 뭐 대해서 염려할 것이 뭐 있겠느냐?' '자녀가 싹 다 죽었습니다.
아이구 자녀가 전부 아들 딸이 다 죽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셨던 자녀를 또 하나님이 불러가셨으니 당신이 좋도록 잘하시지 틀리게 하시지 않는다.' 또 마음에 불만이나 불평이나 그런게 하나도 없었다 이거야. 안 올려와 암만 흔들어봐야 그게 알 올러와 저 밑에 너무 깊히 들어서 또 조금 남은 게 되놓으니까 이제는 몸에 질병이 걸리 가지고 몸이 모두 다 막 기와장 같았소.
어떻게 많이 갔든지.
마누라가 있다가서 '욥아! 하나님이 너를 저주해서 이렇게 네가 만신창이 되어도 그래도 하나님 하나님 만날 하나님 제일로 하나님 하나님 노래를 부르느냐?' '네 건강도 주의 것이요. 이몸이 주의 것이니까. 당신이 당신의 뜻대로 병들게 하든지 죽게 하든지 살게 하든지 네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주님의 것을 주님의 뜻대로 하는데 무슨 망령된 소리를 하느냐?' 요동치 않는다.
거기에 다 친구 셋이 와 가지고 자꾸 이렇게 촛분을 지르고 저렇게 촛분을 질려도 꿈적도 안했는데, '네가 하나님이 축복한다 하지 저주 한다고 되나? 그 네 당한 일이 전부 하나님의 진노인데 네가 의인인척 하고서 하나님이 널 의인으로 인정해서 그렇다고서 그렇다고서 그렇게 하겠느냐?' 자꾸 조롱을 하고 촛분을 지르고 이러니까 욥 속에 하도 흔들어 싸니까 속에 밑잘미에 가라 앉았던 안치가 꾸정물 안치기가 올라 온다 그말이오.
'참 하나님이여! 네게 무엇이 있어서 이렇게 하십니까? 모든 사람이 이렇게 죄를 범해 그렇다고서 저주 받아서 이렇다고 이러니까 뭣 때문에 저주 받아 이렇습니까? 무슨 저주입니까? 뭣 때문에 원인입니까?' 하는 불만과 이해 못한다는 원망의 속한 하나님의 사랑을 절대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던 것이 좀 흔들렸다 그말이오.
흔들리는 말을 하고 나니까 죄를 지었거든 욥이 그때사 '주여! 나는 참 죄인입니다. 내 속에 이런것이 있을 줄을 내가 몰랐습니다. 나는 참 이렇게 새까만 죄인입니다.' 할때에 하나님께 '됐다 이제는 너에게 가져 간것을 전부 배를 주마.' 아들도 배 살림살이 모두 배를 다 줬소.
배준 그것이 큰것이 아니라. 무궁세계 가서 거리낄 그 찌끄러기 가라앉아 있는 그 죄악 요소가 있는 고것을 그런 환란이 아니면 그게 나오들 안한다 그말이오.
그게 아니면 나오겠습니까? 평안 무사한데 그게 나옵니까? 그래서 '보라 인간이 이해 못 했지마는 욥 속에 있는 찌끼 그걸 뽑아 가지고 참 흠없는 조그마치라도 흠있는 걸 다 고쳐 가지고 하기 위해서 하지 안했느냐?'
사도 바울 같은 사람은 참 의인이요. 그는 신앙의 사람이요. 그는 뭐 칼날도 하나님께 대해서 환란이냐? 곤고냐? 기근이냐? 적신이냐? 위협이냐? 칼날이냐? 무엇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를 끊으리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그 사랑에 대한 신망이 요동치 안해.
이렇지마는 그에게 실족할 것이 있는 것은 자꾸 이렇게 모든 것이 하나님의 권능이 같이하고 이렇게 형통하고 승리하고 아 지중에 가 가지고 풍랑이 일어 가지고 열나흘 동안을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다 죽을 지경이고 다 그 물건도 다 내던져 버리고 이제는 다 이제는 죽는다하고 있는데, 그런 가운데서도 그는 죽는게 문제가 아니고 그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이 구원얻지 못하고 죽는 그것이 애가 터져서 거기에 대해서 기도하다 보니까 풍랑이 이는지 모르는지 뭐 그것도 모르고 지금 어쩌든지 거기에만 열중했다 그말이오.
하나님의 사자가 와 가지고 '안심하라! 네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여기에 있는 승객 이백일흔여섯 사람입니까? 이 사람들 네 손에 붙여서 다 구원하겠다 이제는 안심을 하라.' 자 이렇게까지 거기에서도 그래 가지고 이제 하나님의 그 천사가 와서 말하는 소리를 듣고서 '너희들이 안심하라 이제는 너희들의 생명은 염려가 없다.' 그리고 나서 보니까 차차차차 참 걸릴 섬이 있고 생명이 구출됐다 말이오. 거기에 있는 사람 한 사람 남김없이 솔박 다 믿어 구원얻게 됐어.
이렇게 하니까 바울의 손일랑 놔두고 바울의 손수건 그 많은 사람이 모이니까 언제가서 안수할 수도 없고 이렇 수 없으니까 손수건을 들고서서 설렁 설렁 흔들면 손수건 흔드는 데 이 대인 사람마다 전부 다 낫는다 말이오. 병든 것 다 낫았소.
이러니까 지금은 그때보다 하나님 점점 더 주십니다. 지금은 그래 손수건 흔들 것 없이 그만 기도만 하면은 나술자는 전부 다 나수어 버려요. 미국에서 어떤 사람 와서 하는데 그 어떤 목사가 와서 설교하면서 그란다 하기 때문에 어떤 그 무신론자가 가 가지고 뭐 지까짓거들이 가 가지고 공연히 그 떠든다고서, 이 사람이 손에 천식 병이 있어. 켈락 켈락것는 기도를 한다 하는데 이 장난치는 것을 보자하고서 앉아 있었더래요.
앉아 있었는데 아 기도를 하는데 뭣이 자기에게 좀 이상하게 뭐 접선되는 것 같은 것이 있더니마는 나중에는 그만 그 천식이 그 자리에서 없어져 버렸어.
그래 이 사람이 그 자리에서 이상하다 하고서 그때는 말 못하고 좀 있어보니까 천식이 다시 없거든. 그래 그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이 증거하는 사람이 되졌어.
이렇게 지금은 그때보다 더 합니다.
바울이 이렇게 하니 빌립보 옥중에서도 찬송하니까 지진이 나고, 옥문이 열리고, 죄수들이 떨어지고, 하루밤 동안에 교회를 세우고 이러니까 교만 안할 수가 없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잘못하면 바울이 우쭐해질까 싶어서 자기가 우쭐해질까 하나님 높히지 안하고 자기 높혀 우쭐해질까 싶어서 "나는 죄인중에 괴수죄인이라." 죄인이 자기에게 죄인된 그것만 자꾸 파 가지고 요면이 죄로구나! 요면이 죄로구나! 아 죄인으로서 죄인 그것만 파내 가지고 자꾸 죄인으로만 살아야 될터인데 그거는 그 죄인을 파내 가지고 치료받는 그일은 하지 안하고 자기 잘된 것 그것 보고서 자랑하는 사람 될까 해서 뭐 줬습니까? 몸에 찌르는 가시를 주지 안했어.
찌르는 가시를 줬다 그거야.
그것도 그분도 이제 속에 없지마는 새로 찌끼가 생길까 싶어서 찌기가 생길까 싶어서 교만해 가지고 자기를 지나치게 높히 생각하는 그런 죄일랑 생각지 안해.
죄인된 그면은 생각지 안하고 자꾸 요면 제일이로구나! 죽는날까지 잘못된 고면만 찾아 가지고 고쳐가는 이 사람이 돼야 될터인데 그거는 생각지 아니하고 고쳐논 것 좋은점 그것 자랑한다면 자기 구원에 실패라 말이오.
그럴까 싶어서 찌르는 가시를 몸에 줬다고 하지 안했습니까 그걸 눈병이라. 어떤 사람은 문둥병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박혀 있는 것을 뽑는 것도 환란이요. 또 탈선되 나가지 못하게 붙들어주는 것도 환란이요. 이거 없으면 안 됩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구주이신 하나님이 어떻게 큰분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어제 종일 그말이오. 그분이 얼마나 크다. 아무리 큰것도 미국이 크다.
허 나를 사랑하시는 내 주님이 미국을 지으신 분이시다. 그것의 주인이시다.
김일성이는 무섭다. 나를 사랑하시는 내 주님이 김일성이를 지으셨다. 그의 생명을 주님이 보존하고 계신다. 주님이 지금이라도 부르면 생명이 딸칵 끊어진다. 김정일이라도 끊어진다. 그가 움직이고 있는 것은 주님이 힘을 줘서 움직이고 있다. 그가 지금 믿는 사람을 야단치는 것은 뭐이냐? 믿는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지금 아이구 이렇게 죽을 지경이니 하나님께로 돌아가라.
양을 이리가운데 넣으면 어찌됩니까? 양을 이리가운데 집어 넣어 놓으면 양이 이제는 느리 느리 하고 거기에서 아무리 혈기를 부려도 양이 오지 아니하고 망령을 부리겠소? 어쩌겠소? 제 눈에 이리가 띠이면은 그 양이 어쩌겠습니까? 후닥닥 놀래서 뭐 목자있는 대로 물이 있어도 달아갈 것이고, 가시덤불이 막아도 달리고 죽자껀 목사에게로 갈 것 아닙니까? 이와같은 세상에서 세상에 이 어려움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주님에게 가까이 달라붙도록 하기 위해서 그러면 김일성이를 가지고 자꾸 이렇게 지금 몽둥이를 들고 자꾸 때린다 때린다. 이 싸으면서 하는 그것은 우리 믿는 사람이 이제 죽을 지경이요. 이거 넘어오면 죽는 지경이니까 하나님께로 달아붙어 가지고 요새 모두 우리 교회서는 기도회 열어놓고서 매일 삼십 분씩 기도하자 해도 느른느른 하고 잠꼬대나 하고 그 헛된 욕심이나 품어 가지고 자꾸 이러고 있는데, 그런것 없어보십시요. 세상으로 얼마나 달려가는가? 이러니까 이거 이래도 안 들으면 부득히 한번 버쩍 두드려 가지고 버쩍 두드려서 그만 이게 되든지 그리 안하면 개인적으로 살림 보니까 불이나 가지고 버석 타버리니까 아이구 이제 뭐 바랐던 것 다 소용없다. 암만 해봐야 소용없다. 이리 되든지 이래 가지고 하나님께로 갈기라 그말이오.
그런고로 어제 순서대로 첫째 우리 주 되신 하나님이 얼마나 크시고, 얼마나 능하시고, 얼마나 지혜로우시고, 얼마나 강하신 분이신 그분의 실력이 우리 주 하나님의 실력이 어떠한가 하는 그것을 자꾸 우리가 연구해야 됩니다. 그분이 모든걸 지었소. 주제자요, 주권자요, 그분이 얼마나 부자며, 얼마나 능력있으며, 얼마나 실력있는 분이신가? 그분의 크심을 우리가 알아가야 알아가는 가운데서 자라가야 되지 이거 모르는 무식군이 예수 잘 믿는다 소용없소.
주님의 크신 그 다음에 둘째는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사랑하심 주님이 날 사랑하신 최고도의 사랑, 최고도의 사랑 한번 해석 해봐. 고 간단하게 해도 되긴 됐는데 문체도 좀 붙여야지 주님이 당신의 부요를 우리 구원하기 위해서 다 희생했지, 당신의 영광 지위 다 버리셨지, 당신의 생명까지 우리 좋다하니까 우리 구원하기 위해서 다 했으니까, 당신과 당신의 소유 다 드려도 우리 좋도록 우리를 구출하려고 했으니까, 이런 최고도의 사랑 이 사랑을 가지신 주님의 사랑을 연구를 해야 된다.
또 셋째는 주님이 이 사랑 가지고 이미 우리에게 기본구원을 주셨지마는 기본구원 받은 우리들에게 하늘나라에 가서 살때에 필요하고 요긴한 건설구원 우리 심신의 기능 말이오. 건설구원 이 구원을 지금 우리에게 주시려고 계약했다 선포해 놓고 이런 건설이 있으니까. 이 구원을 네가 차지해라. 이 구원을 받아라. 이 건설구원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지금 하고 있다 그말이오.
그러면 이 건설구원은 성경에 다 기록 해놨어. 이런 구원은 기록 해놨어. 네가 하늘과 땅에 있는 것을 네것을 만들 수 있다, 네가 그리스도와 같은 제사장이 될 수 있다, 선지자가 될 수 있다, 왕이 될 수 있다, 네가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해질 수 있다, 네가 말하는 것은 하나님 다 시행하실 수가 있다, 이거다, 우리 소망이라 그말이오. 건설구원의 소망이라 그말이오.
그러면 셋째는 우리에게 건설구원의 소망을 기록하고 요걸 주시려고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 구원을 이루어 가지라 내가 도와 줄터이니까 요 구원을 다 받아 가지고 하라.' 이 건설구원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주님이 허락을 하셨다 그거요.
그런데 요건 딴말입니다. 요 건설구원이 없으면 "하늘나라가서 구원을 얻되 불가운데서 구원 얻은 거와 같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하늘나라 간 중에는 수치스럽게 제일 말단 구원이지. 그러면 이 구원은 어찌됩니까? 지옥보다는 못 합니까? 이 말단 구원 얻을 진대야 지옥가는 게 낫지. 말단 구원 이거 얻는 거 그게 좋습니까? 어떻습니까? 지옥하고 말단구원하고 비교하면 어찌되지요? 어느 게 낫습니까? 예 어느 게 낫습니까? 말단 구원은 아무래도 형벌은 없소, 고통은 없소, 죽는 것은 없소, 쇠잔하는 것은 없소, 늙는 것도 없소, 낡아지는 것도 없소, 하나님의 사랑안에 진리안에 있소, 평강의 세계에 있소, 영생하고 있소, 지옥에는 그게 없어. 지옥과 건설구원이 아무리 없다해도 지옥과 하늘나라는 비교 못 합니다.
그러니까 건설 기본구원을 얻은 자에게 건설구원이 필요하지 기본구원과 건설구원과 둘을 비교하면 어느 구원이 큽니까? 기본구원이 건설구원의 억억억만배도 더 큽니다. 이렇지마는 기본구원 얻은 자 중에 건설구원이 얻지 못한 자는 하늘나라 가 가지고 조금 놀기만 하고, 평안하기만 하고, 자기만 하고, 쉬기만 하고, 기쁘기만 이렇게 쓸모가 없다 말이오. 쓸모가 없어. 쓸모가 없어. 잘못하면 건설구원을 강하게 주장하다 보면은 기본구원을 무시하기 쉽습니다. 그 주의해야 되요. 그걸 주의해야 돼 그걸 주의 안하면 안되요.
그러면 건설구원의 이 소망 성경 가운데 있는 것 우리에게 다 주시려고 지금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이걸 우리가 다 받아 가지도록 하려고 애를 씁니다.
넷째로 이것을 다 받아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자꾸 지도를 합니다.
요래라 그러면 그렇게 하면 하나 얻어지고 또 요렇게 해라 그러면 또 하나되고 자꾸 이 약속한 이 건설구원 이것을 우리에게 차지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열심히 쉬지않고 지금 시키십니다. 요렇게 자꾸 지도하요. 그게 뭐입니까 복음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인도하심이라 말이오. 우리를 시키심이라 말이오.
요렇게 시키시는 대로 졸졸 순종하니까 뭣이 나옵니까 고 부분이 성공하기 전에 성공 앞잡이로 뭐이 나옵니까. 네 어려움 이제 고 앞잡이로 다섯째로 다섯째지요. 다섯째 아닙니까 다섯째로 이제 시험이 옵니다. 어려움이 옵니다.
어려움이 오요. 다섯째로 어려움이 옵니다. 밤중같은 어려움 다니엘을 사자구덩이 집어 넣은 어려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불미속에 불속에 집어 넣은 어려움 자기 신체의 어려움 별별 어려움들이 온다 그말이오. 별별 어려움들이 와요.
이런데 이 다섯째로서 별별 어려움이 오는데 이 어려움을 어려움을 당할때에 사람들이 고통을 당해서 그만 어려움을 당하니까 그만 예수 믿는 일을 그만 집어 치워버립니다. 계명 지키다가 그만 계명지키는 걸 중단해 버립니다.
그러면 여섯째로 이 어려움이 오는 것은 뭣 하려고 어려움 오지요. 이 어려움이 아니고는 건설구원의 이 소망하는 것은 자기 것을 만들 수가 없어. 자기 건설구원에 우리에게 이것 차지해라. 이거 네가 하라하는 그것을 우리것을 삼을 수가 없어. 삼을 수가 없어. 이 환란이 아니면 삼을 수가 없어. 환란을 통해야 삼지 환란이 아니면 삼을 수가 없어.
'몇째가 환란이지요?' '몇째가 환란 여섯째 아닌가? 시험 그게 내나 환란인데 다섯째가? 나는 다섯째 내가 손가락을 여섯개는 지금 여섯째 하려고 지금 말하는가 다섯째가?' 그러면 여섯째 이제 여섯째 그러면 이 환란이 오면 환란에 뭐하기 위해서 이 환란이 왔는고 하는 고게 여섯째입니다. 뭐 하기 위해서 환란이 왔는고 이 환란은 우리 믿는 사람들을 한번 쥐 박아 가지고 한번 고통을 줘 가지고서 그래 이 소망하는 것을 주시려고 그렇게 하는 것일까 필요없는 한번 고생을 시키기 위해서 하시는 것일까? 아닙니다. 필요없는데 고생시키기 위해서 하는 것 아니요. 아주 필요합니다. 이게 아니면 일을 주지 못해.
그러면 여섯째로 이 환란에서 하는 일이 뭐인가? 고게서 하는 일 첫째 바라보지 못할 것을 바라보는 그것을 제거하려고, 또 둘째 의지 하지 못할 것을 의지하는 고것을 제거해서 주님 의지하도록, 바라보지 못할 것을 그것을 제거해서 주님을 바라보도록, 또 지도받지 못할 것을 제거해서 주님에게 지도받도록, 또 기뻐하지 못할 것을 제거해서 참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 만족하지 못할것을 가지고 만족을 누리는 이것을 제거해서 영원히 만족할 수 있는 주의 것으로 만족하도록 하기 위해서, 또 하나만 더 합시다. 실력되지 못할것 자기에게 실력이 되지 못한 참 자기의 힘이 되지 못하는 것을 힘으로 삼아 가지고 날뛰는 그것을 제거해서, 영원히 참 힘 참말로 힘 인생의 참힘 이것을 자기 힘으로 삼도록 하기 위해서 환란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몇가지요. 그게 여섯 가지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려고 하니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려고 하니까 하나님의 계명 지키는 그 일을 인해서 어려움을 닥쳤는데 그 어려움을 닥칠 때에 죽겠다고, 고통이라고, 이렇게 어려워하는, 고통스럽게 여기는 그자가 어떤자지요. 누가 그렇게 고통을 누리고 있지요. 고통을 누가 고통을 느끼지요.
꼭같은 입장에 꼭같은 환란을 당했는데 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환란이 하나도 환란되지 안하고 기쁘고 즐겁고, 한 사람에게는 환란이 되고 하는데 그때에 고통하는 자가 누구입니까. 누가 고통하지요. 여러분들 요게 잘 알아야 돼.
이제 몇가지 기록했어요. 여섯 가지 여섯 가지 그놈이 깨지니까 그놈으로 즐거워하는 그놈이 고통을 당합니다. 네 여섯 가지 그게 깨지니까 그놈이 고통을 하요. 자 그놈은 여섯 가지 그것 보고 살고 하나님보고 살지말고 여섯 가지 그거 보고 사는데, 여섯 가지 그것 보고 사는 그것은 믿는 사람입니까 안 믿는 사람입니까? 네 안 믿는 사람 아니요. 안 믿는 사람, 그러면 그것만 보고 살면 그것만 보고 사니까 그것만 위해 살지, 그것만 보고 사니까 그것만 보고 살지, 그것으로 살지, 그것으로 부강해지지, 그것으로 만족하고 좋아하지 이러니까 그것만 좋아하고, 그것으로 만족하고, 그것만 중하게 여기고, 좋은 줄 알고 하니까 그 사람의 모든 생활이 뭐 준비하겠소? 여섯 가지 그것 준비하지.
그러면 하늘나라 준비가 됩니까 안 됩니까? 안되지 그것만 준비하지. 준비했는데 그놈이 과연 가서 끝까지 자기와 같이 갑니까 똑똑 떨어져서 다 없어집니까? 네 다 없어지지. 없어질 때마다 참 슬퍼하고 고통을 느끼지.
그러면 주의 계명대로 지키는 이것때문에 어려움 당하는 그 어려움을 계명 안지키면 그 어려움 당할 어려움이요 안당할 어려움이요? 계명 안 지키면 그 어려움은 언제든지 그 어려움 안 당하고 지나갑니까? 요말 또 못 알아듣네.
그러면 자 계명 안 지키면 계명 안 지킨 고 어려움 고게 깨지는 어려움인데 계명 안 지키면 고거는 안 깨집니까? 영원히 안 깨집니까? 한번 그것을 미리 지금 깨지는 것이지요. 지금 깨지는 것이죠. 자기에게 계명지키다 예를 들면은 계명지키다가 계명을 지키려고 하면 이제 이 살림살이가 절단나겠고, 살림살이 붙들라 하면은 계명을 버리야 되겠고 양갈레가 됐습니다.
이러니까 그 사람이 고통을 당합니다. 고통당하는 것은 살림살이보다 주님이 크고, 살림살이 보다 진리가 크고, 살림살이 보다 의로운 행위가 큰데, 살림살이 보다 새사람 의롭게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그 사람 새사람이 자라는 것이 큰데, 살림살이 이것보다 큰데 이 둘이 갈레길이 되어놓으니까 살림살이 그놈 가지고 계명지킬 수 있으면 좋았는데 이제는 계명 지키려면 살림살이 내놔야 되고 살림살이 (내놔) 가질려면 계명 내놔야 되고 이 둘이 딱 갈레길이 되니까 이제까지 계명지킬 때에 없던 어려움이 자기에게 딱 닥쳤다 그말요.
그러면 어려움 닥친것은 무엇이 끼지기 때문에 이 어렵습니까? '뭐? 맞았어.' '큰소리 해봐.' '뭐? 살림살이,' 사람살이 그놈이 지금 깨질판이니까 어렵지. 그 고통 아니요. 그 고통이지요. 살림살이가 깨질판이니까 어려움 아닙니까? 그러면 그 살림살이가 이 계명 때문에 깨지는 일 안한다면 그 살림살이가 언제든지 안 깨질 것입니까 언젠간 한번 깨지기는 깨질 것입니까? 자기에게는 그 소유가 한번은 두고가도 하나도 물한방울도 상관없이 다 내놓고 가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안해요? 그러면 나중에 그때 죽을 때에사 이 살림은 다 어떻게 할꼬. 이 돈을 다 어떻게 할꼬.
이러니까 그 돈 많은 노파가 있다가서 '아이구 먹기나 할걸. 먹기나할걸. 먹도 못하고 참 두고간다.' 원통해서 그래 원통해서 돈을 '돈 좀 가져오라. 지금 에라도 먹어보자.' 그 돈을 오십전짜리 오십원짜리 주니 옛날 오십원짜리 까끌까글해요. 나 목사한테 들었어. 오십원짜리 주니까 하도 돈이 원통해 먹어본다고 먹어보도 못하고 다 내버리고 가거든. 이러니까 목아지 삼키다가 딱 걸리니까 그만 코로록 것디마는 그만 가버렸다고서 그 사실인지는 몰라도 그렇게 말합디다.
그러면 자 이제 자연의 법칙에 따라서 그 살림살이가 자기에게서 없어지고 떠나가면 다시 찾을 수 있습니까 없지. 그 고통을 그거 없이 뭐 바꿀 수 있습니까? 바꿀 수 있소 없소? 그러나 미리 하나님의 계명 때문에 이 살림살이가 절단나는 살림살이 취하려면 하나님과 계명 버리야 되고 하나님과 그 계명을 가질라고 하면은 살림살이를 내놔야 되겠고, 요럴때에 제가 살림살이를 내 놓고 자원해서 그래 가는 길 하나 있고 살림살이안 내놓으려 하니까 억지로 살림살이가 깨지는 수가 있고, 하나님이 그만 내놔서 아이구 살림살이 버리도 주와 주의 계명을 따라야지 이러면서 가는 사람 있고, 암만 그래도 내가 주와 주의 계명을 버려도 살림살이는 내가 못 내놓겠던데 하니까 주님이 이거는 암만해도 이 살림살이 그거 암만 의지하고 바라보고 좋아해 봤자 소용없으니까 그 주님과 진리를 주의 뜻을 의를 행하는 것을 자기가 거룩하게 사는 것을 더 가치있게 여겨서 이것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만족해야 되어지지 이 헛된 백지 속아 가지고 그런 것이니까 이것이 제가 자원해서 이것보다 주님과 진리가 낫지 하고 이걸 척 버리고 바꿔 가지고 어찌됩니까 바꾸어 가지면 그 제물은 누 때문에 손해봤습니까? 주님 때문에 손해보면 성경에 어떻게 한다고 했지요. "나와 내 도를 위해서 부모나 형제나 자매나 친척이나 전토를 손해본 자는 여러배 백배" 이제 이거 일거양덕이요. 참 날 속이는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기뻐하고, 만족할 수 없는 도둑놈 그놈을 나로 하여금 하나님과 진리에게 가지 못하게 했는데 그놈을 척 버리니까 버리고 하나님과 진리를 척 잡으니까 하나님이 좋아할 것 아닙니까 만족하지 않소. 그리고 나니까 이 사람의 재산은 가진 재산은 우상입니까 그 사람의 소유입니까? 소유라는 것이 판명났지요. 그 재물 가져봤자 이 사람에게는 뭐 구원에 대해서는 뭐 꼼짝 요동 안하고 오히려 구원에 유익이 되지지요.
그러니까 그 사람에게 여러배를 주신다 자 이 사람은 암만해도 안 내놓습니다.
안 내놓으면 그것만 따라가도록 그만 하나님께 내둬야 됩니까 그 사람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데는 어째야 됩니까? 그것 바라보고 좋아하고 기뻐하는 그걸 그대로 살면 일생 헛일 할터이니까 어떻게 해야 됩니까? 바싹 깨버려야 되지.
바싹 깨버리니까 의지할게 있어야지. 재물이고 뭐 하나님께 주권있으니까 바싹 깨버리니까 의지할게 있어야지 바라볼게 있어야지 아이구 헛일했다. 헛되다.
그놈이 날 버리고 이렇게 갈줄 몰랐다. 그놈이 이 그 재산 이렇게 낭파되서 그만 전멸될 줄 몰랐다. 이제는 그때사 후회를 하고 주님과 진리에게로 돌아 가지요.
내가 이 재물 때문에 주님과 진리를 내가 어긴 죄를 많이 지었어.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제 쳐서 없애버렸어.
이러니까 주권이 하나님에게 있구나! 이것 바라보고 의지해야 소용없구나! 이제는 주여! 재물을 주십시요. 안 줘도 좋고 줘도 좋고 주면 내가 재물 그까짓거 때문에 계명 지키고 내가 계명을 어기고 주님을 떠나는 그런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런짓을 하지 않겠어요. 주님의 암만 억만금이 있어도 그것 때문에 내가 죄짓고 그렇지 않겠습니다. 내가 진것이 원통합니다. 한번 줘 보십시요.
이래도 속으로 안다 말이야. 하나님이 '야 이놈아 네가 그렇게 하지만 떡 줘 놓으면 그만 거 취미 붙여 가지고 또 그럴 놈인데 만날 그짓하다가 장 되풀이 하다가 헛일하고 장 되풀이 하다가 뭐 헛일하려고' 안 주고 참으로 마음에 불쾌해서 '내가 그걸 가지고 시험에 들어서 고 시험 이기지 못해 원통하다 이제는 한번 재물이 오기만 오면 내가 한번 본때있게 한번 이겨준다.' 보자! 한번 재물 떡 줬다 말이오.
이러니까 재물 줬는데 뭐 하나님의 뜻대로 가든지 말든지 하나님에 뜻대로만 회사를 경영합니다. 한번은 딱 외통에 몰아 가지고 하나님의 계명을 줘. 주일을 지키면 그날 회사가 지금 왔다 갔다 하면서 큰 계약이 되어지는 것인데, 주일을 지키면 그 회사가 그만 문이 딱 닫겨버리고 그 회사가 유지가 되려하면은 주일을 범해야 되겠고 요럴때 되니까. '주여! 이제 보십시요. 이제 됐습니다. 이제 내가 한번 이기고 난 다음에도 가져가든지 마들지 하십시요. 이제는 좋게 오늘 주일 지키면 그렇지마는 생각도 없습니다.' '오늘 주일은 새벽부터 일찍 정신차려 가지고 딱 주일 지키면 그까짓거 야 오늘 지금이라도 나와야 됩니다.' '지금이라도 나오면 됩니다.' '지금 안해. 가든지 말든지 나는 상관없어. 주님과 진리를 잡기로 나는 작정됐어.' 이러니까 마귀란 놈은 옆에 있다가서 '야 오늘 지금 회사 절단난다 나오니라 나오라 지금이라도 나오면 된다.' '그 나라에서 지금 결정을 지우는데 지금이 나와서 투표만하면 된다. 지금도 나오면 자기에게 주려고 지금 하고 있다. 땅에 빨리 나오라 빨리 나오라. 오후 예배 봤으니까 나오너라.' 마귀라는 놈이 이래 꼬우는데 주님은 '보자 네가 그놈한테 가나 내게 붙나? 그놈한테 가나?' 이래보고 있는데 뜩 속으로 '있으며 가볼까 지금 가도 되겠나?' 이러니까 마귀놈은 가슴이 도곤 '가면된다 가면된다.' 이쌓는데 속으로는 딱 결정했어.
그러니까 애만터진다 그말이오. 제게 애만 터지면서 속으로는 그래 말은 그 사람하고 말했는데 속으로는 '주여 날 꼬운 그놈을 지러 간담을 녹여서 간을 녹여서 그 안달을 달게 내가 하는 것 뿐이지 나는 안 갑니다. 어림이나 있습니까.' 이러면서 뜩 안가고 주님에게 척 가서 계명을 지키니까 주님이 '이제야 네가 날 사랑하는 줄 네가 알았다.' 이렇게 속으로 재미있는 신앙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계명 지키다 어려움 올때에 어떤 놈이 울지요. 그놈 가지고 사는 놈이 울지 그놈 가지고 사는 놈이 울지, 그놈을 그것 좋아하는 놈이 울지, 그거 위해서 노력하는 놈이 울지, 거기에 속한 놈이 울지, 그게 제 세계고 그거 가지고 사는 자가 울지 그것이 새사람이요 옛사람이요? 옛사람이지요.
그러니까 옛사람 그놈이 우니까 새사람은 꼬시고 좋소 나쁘요? 아 그놈이 우니까 새사람은 좋습니다. 옛사람 그런것이 하나도 없으니까 제것이 하나도 없으니까 옛사람 그놈이 쫒겨 나가야 됩니까 안 나가야 됩니까? 쫒겨 나가야 되지. 그게 간부지 그것이 뭘로 된 것인데 뭘로 된 인간인데 악, 악령, 또 악성, 악습, 악령이라 말은 자기중심으로 사는 사탄 마귀, 악성이라 하는 것은 인간의 영은 구원 얻었지마는 인간의 육체의 이 모든 심신의 것 자기중심으로 살게하는 그 성질 그 속성, 또 악습은 뭐이요 자기중심 자기중심으로 살아왔던 그 연습해서 익숙해진 습성 습관 연습해어 숙달된 그것 그거로 된 사람 아니요. 그놈이 죽습니다. 그놈이 이제 깨어집니다.
그놈이 죄인줄 알고 이 심신은 그놈에게 붙어 가지고 살다가 그놈이 절단나니까 이 심신이 참 주인을 찾게되지 이러니까 자 환란 그 환란이 다섯째 환란에서 환란은 무엇 때문에 오는 거라요. 여섯째지 환란은 무엇 때문에 오는 거라요. 뭣 때문에 온다는 그게 몇째입니까? 여섯째 여섯째인데 환란이 무슨 정리하려고 왔지? 몇가지 정리하려고 왔지? 여섯 가지 정리하려고 왔지. 요걸 꼭 잡아요.
여러분들이 가서 이제 다시 생각해 보고 생각해 따져봐 확실하지 안한가? 자 그놈이 여섯 가지 그놈이 정리됐으니까 이제는 그 사람이 땅에 있는 것, 인간이나 자기나 땅에 있는 의지하던 그 인간이 그게 절단나니까 뭐 의지합니까? 하나님 의지하게 됐지, 땅에 것 바라보던 자가 하나님 바라보게 됐지, 땅에 것에 지도를 받다가 자기 자율이나 인간이나 지도를 받던 자가 이제는 그거다 치워버리고 하나님의 인도만 받게 됐지, 땅에 것으로서 만족하던 자가 다 깨져버리고 하나님으로 만족하게 되지, 땅의 것으로 기뻐하던 땅의 기쁨 언제든지 없어질 놈의 기쁨 그걸 무한히 기뻐하던 자가 하나님이 주신 영원한 기쁨으로 가지게 됐지.
이러니까 이 모든 없어질 것이 다 없어지니까 이제는 하나님께서 땅의 것을 많이 줘도 위험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많이 줘도 위험성이 없지. 그러니까 땅의 것도 많이 줄 수 있지. 많이 맡길 수 있지. 아 찍해야 곡간 안에 금괘 안에 돈 만원밖에 안들었는데 만원 금궤든 것을 '요거 네가 관리해라.' 열쇠를 맡겼더니마는 고게 고만 못견딜 욕심이 나서 그 엉큼한 어두운 짓을 하는 그 사람에게 천만원짜리 금굽을 맡길 수 있소없소? 못 맡기지.
만원짜리 금궤 맡겨 보니까 착실하게 돈 그까짓거 주인이 크지, 또 내 신용이 크지, 인격이 크지 자존심에서 그 돈만원 그것 눈도 뜨고 안하고 착착 이거 내가 만일 잘못 관리하다가는 내가 사람 병신되고 다른 사람 보기 허무한 사람 보인다. 이래 가지고 하니까 햐 이놈은 괜찮다. 백만원짜리 금궤를 딱 맽겨서 백만원 한도 짜리의 금궤를 맡겨보니까 그것 가지고도 요동치 안하거든, 그런데 일억 한개가 되면 그 설합의 금궤를 맡겨놓으니까 일억이 되니까 눈이 퍼득 뜨며 '야 이거 어째 볼까?' 막 이래싸으니까 한번 보고 '이놈 위험하다.' 하고서 한번 범했으면 그만 두지 않습니까? 그것도 꿈적하지 안하면 더 큰것 맡기지 우리가 하나님이 주인이요.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바울이 아무것도 없지만 모든 것 가진자다. 그러기 때에 부강하고 가난하고 상관이 없다. 내게 능력 주신이 한테 능치 못할 것이 없다. 이것 필요하면 이것, 저것 필요하면 저것, 얼마든지 주시면 다 할 수 있다 이랬다 말이오.
다 여섯 가지가 정리되니 땅에 것을 그 사람에게 과거에 주와 진리 때문에 내 놓은 그 사람 그 사람에게 더 줄 수 있소 없소? 더 주지. 이제 주님과 진리를 버리고 달아나려하기 때문에 그놈을 바싹 깨트리니까 깨트리니까 어쩔 수 없이 주님에게 들어 붙은 그자에게 과거와 같은 그런 것을 줄 수가 있소 없소? 줄 수 있소 없소? 없지. 못주지. 또 주면 그리 달아나려고 안줘.
이게 회개를 억지로 회개를 하니까 그러면 좀 줘볼까 살모시 줘보니까 또 눈이 퍼득 퍼득 거리면서 그만 그리 들려 나간다. 직장 떨어진데 직장 주면 또 직장으로 기울어지고 '주여! 살든지 죽든지 주만 따라 가겠습니다.' 이래놓고 직장이 어데로 딴데로 바꾸어지면 직장이 그러니까 그기야 제가 직장 그 가도 되고 안가도 되지. 직장이 그러니까 내가 그리 가야지 그 뭐입니까 아브라함이요 롯이요? 아브라함이요 롯이요? 자기에게 닥쳐놓으면 말로는 잘해도 자기에게 닥쳐놓으면 털컥 털컥 넘어간다 그말이오. 주니까 또 허덕 거립니다. 이놈 또 안됐다. 이대로 두면은 이것만 바라보고 여기에 꼬임 받아 가지고 이 만년필 하나 사줬더니마는 이놈에 꼬임받아 가지고 만날 이것 때문에 공부도 못하고 헛일하니까 만년필 또 뺏들어야 되겠다. 만년필 빼뜰어 버립니다.
이제는 만년필 사줘도 안 그렇습니다. 만년필 사주니까 그기야 뭐 감사히 받아 가지고 그럴 수록 공부 더 잘합니다. 그러면 내비두지 또 보니까 만년필만 장보고 자꾸 이래쌓고 이러니까 이 공부 막살 또 빼들어야지. 어떻겠소? 줬다가 뺏들었다하는 그거요.
죽을 지경으로 가난하게 된걸 조금 숨쉬게 해주니까 또 그리 재미를 붙이니까 또 할 수 없이 없애야 되지 어쩌겠소? 이번에는 주니까 뭐 어림도 없소. 딱 거리면 아까도 말한거와 같이, 와 가지고 이제 이게 '절단난다. 주일날 지켰으니까 오후 아니가? 지금 이 밤아니가? 밤이니까 예배 다 보았잖아 오니라.' '안한다' 이러니까 됐거던 그 다음에 또 더 주시지 그 땅에도 더 주시지 그리 되면 그런 환란을 통해서 누구를 만나요? 신랑 만났지? 마태복음 25장에 밤중에 신랑 만났지. 밤중에 환란 아니요. 또 해산하니까 뭣 나왔지? 새사람 나왔지! 또 환란으로 어디로 들어가지? 주님의 사랑 속에 들어가지! 또 그 환란에서 보니까 다니엘에게는 뭐이 나왔지? 사자 입 막았지! 그 다음에는 큰 세월이 났지! 온 나라에 하나님으로 능력이 충만하지 안했소? 불귀신을 막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이 생겨졌지. 말씀대로 증거한 자에게는 홍수부텀 환란이 오는 것이 그 사람에게는 환란이 되지 않습니다. 준비 안한 자에게 환란이 되지는 것이지, 그러므로 이제 일곱째는 올곱째는 주님과 주의 모든 것이 자기에게 옵니다.
주님과 주님의 모든 것, 신령한 것, 물질계의 것 주님의 가지신 주님의 소유가 자기에게 옵니다. 주님이 주신 것이요. 마귀가 주는 것이 오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주시는 것이 옵니다. 여러분들 재산은 꼭 같은 재산입니까 속량받은 재산도 있고 속량받지 못한 재산도 있습니까? 구약에 보십시요. "십일조를 드리면 속량했다." 그렇게 말했소. 이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가진 그것은 속량 받은 것이요. 하나님의 계명을 어겨 가진것은 그것은 뭣입니까? 저주의 것이요. 네 자기가 가진 소유도 저주의 것 있고 깨끗한 속량 받은 것 있으니까 돈이면 꼭같은 돈인줄 압니까 아니요. 이제는 환란 지나가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주셔서 하나님의 뜻대로 와 주시는 것 있다 그말이오. 그런것은 속량받은 재물이오.
속량받은 재물 이거 여러분들 위해서 간증합니다. 내 자랑으로 듣지 마십시요.
그 여러분들이 아직 내가 간증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 술도가해 가지고 그 골짝 돈은 거의 제 돈이라. 이랬더니만 예수 믿고 난 다음에 다 흩었습니다. 하나도 안 남고 다 흩었습니다. 마지막에는 다른 사람 돈준 차용증서 앞잡한 걸로 해서 아주 지금 그런 종이 없어요.
그 이만하면 그 백개는 몰라도 아마 수십개라 똘똘 뭉쳐 가지고 그만 불에 넣어버렸어. 이제 남한테 돈 주라 말하는 그 소리 하기 싫어서 다 그 불의의 재물했기 때문에 남 준건 그 사람 하라고 다른 사람으로 돌려버렸소. 그리고 나니까 뒤에와서 돈 가지고 와서 찾아와서 하는 사람 몇사람 못봤어. 못 받아도 아 필요없다. 게 있는 것도 다 이렇게 해버리고 이러고 나니까 이제는 하나님의 뜻대로만 사는데 그때보다 더 부자가 됐어. 그때보다 더 부자가 되버렸어.
그거는 뭐이냐 속량받은 재물이요. 술도가 해 가지고 번 돈은 저주받은 재물이요. 속량받은 재물 줬어. 속량받은 재물 줬는데 목회로 나오면서 요것도 다 처분했어. 가족들에게 다 분산을 해서 너는 어쩔래 아 나도 하나님께 받히겠습니다. 나도 하나님께 받히겠습니다. 다 받히겠다 했는데 한 사람만 받히지 않겠다 했어. 그러면 안 받히면 그거는 네 목아치 해라. 고것은 나중에 가서 보니까 악하게 쓰여졌고 그것 가지고 결국은 손해봤고, 본인도 손해봤고, 옆에 사람도 손해봤고 고립 되버리고 이제 하늘나라 구원에 받히지 못햇어. 그 다 이제는 속량받은 것 하나님에게 다 받혀 버리고 그래 빈손쥐고 목회 나왔어.
일곱째는 환란을 지난뒤에 이 자연 은총의 것은 속량 받은 것으로 줘 여러배 백배 주는데 그건 다 속량 받은거라. 저주는 붙어있지 안해. 그거는 옳게 쓰기만 쓰면 하늘나라가 그리고 난 다음에 신령한 은혜 줍니다. 성신의 감동을 진리의 깨닫음을 의를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시험에 들지 안할 것을 모든 견해를 자기의 실력 진리와 영감의 실력 진리와 영감대로 행할 수 있는 의의 행위 신령한 행위와 신령한 능력을 줘 그보다 더 좋은것 없어.
주님과 자기와는 이제는 신임해 주님이 자기를 심인하고 자기도 주님을 신임하고 주님과 자기와 사이가 이제 신임이 되져 그 환란 전부다 주님이 든든지 믿어지고 주님도 나를 믿고 나도 주님 믿고 주님과 사이에 신의로 연결이 되져 그것이 일곱째입니다. 일곱째에 신령한 은혜, 자연의 은혜를 우리에게 더 주십니다.
그러면 몇가지 배웠어요. 일곱 가지, 일곱 가지인데 몇째 것이 여섯 가지라요.
여섯째 것이 여섯 가지 그러면 그 다 들어갔어. 분류하려하면 많이 있지마는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모르면 못 믿습니다. 못 믿어.
우리 주일학교 반사 ○○○선생 와 가지고 '목사님 요번에 시험쳐 가지고 직장이 서울로 됐는데 어째야 되겠습니까?' '무슨 말이야?' '어째야 되겠습니까?' '아 가야지!' '아 직장이 서울로 됐는데 암만 서울로 됐지마는 죽을 먹어도 가서 되겠습니까? 안 가야지.' 그래 내 뭐라고 대답하기라 그것이 롯의 길이라 알겠어. 그게 롯의 길이라 알겠어.
그러면 그 직장도 그런데 데게 존영한 자리 있으면은 계명 어기고도 가지 그 계명 어기는 건가? 제가 앞으로 목회 하려하는 사람이 여기에서 배우는 것만침 가서 배워지나요. 여서 새벽으로 배운 것 거서 배워 아직까지 저는 전파할 때가 못돼. 지금 어쩌든지 배워야될 때라 그게 내나 롯이 길이지 뭐이 롯의 길인가? 어두우면 헛일입니다.
저 (손) 장로님이나 (정순)씨나 말해주지 말아요. 제가 돌아와야 되지 '너 여기에 있거라.' '나는 따라갈랍니다.' 엘리야가 엘리사를 인도하듯이 그래 인도해야 되지. 그 가지말라 하면 안가. 그러면 '나 가려는데요.' '엘리사야 너도 따라오너라.' 이와같은 방식이라. 그런 방식으로 지도하면 안돼 안돼요.
그거는 강제라 내비둬야 돼. 내비두고 '아이구 암만해도 거서 배워지는 걸 여서 하겠다.' '이러니까 가야 되겠다.' 이래 깨닫아서 와야되지 그게 뭐이냐? 이 말씀에 가치를 말씀의 능력을 참 보배롭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라 그말이오.
내가 어제 어떤 사람에게 말했어. 말 들어봤어 그 어떤 중간반 반사는 그 반사의 그 반의 학생이 시간되기 전에 제일 많이 와서 앉았는데 많이 와서 앉았더라.
그런데 숫자는 그렇게 많지는 안하지마는 그반의 학생이 시간 전에 오는 학생수로 말하면 그 반 학생수가 많다. 그래 말해 그반은 조금 있으면 실력이 있어서 점점 많아서 제일 많이 많아질 그런 반이 될 반이다. 실력으로 자라간다.
그게 나중에 쥐괭이 모양으로 그게 뒤에 가서 그 전도를 해 새끼를 쳐서 자꾸 붙을 것이다.
그 사람은 왜 그런고 하니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이 행동하는 가운데 뭐 특별히 보이는 것 보이는 것 없더나 그 사람 입에서 늘 나오는 말이 '아이구 이 학생이 이 말씀을 못 들었어.' 이 말씀을 듣고 깨닫아야 될긴데 은혜를 못 받아서 말씀을 들어 깨닫아 은혜 받은 그것이 그 마음 가운데에 사무쳐 있더라.
자꾸 '이 학생이 아이구 늦게 와서 이 늦게 와서 말씀을 못받네. 반밖에 못 받았네.' 말씀을 못 받는데 대해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말씀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그게 있더라.
그게 막바로 시간 안에 학생들이 와서 참여하게 하는 그 힘이다. 그것이 사람을 기루고 고치는 것이니 장차 그는 사람고쳐 놓으니까 이게 쥐괭이가 되고 이 사람 고쳐 놓으니 쥐괭이 되고, 아 이게 하나 고치니까 이 학생 이것이 반사가 되고 그게 반사가 되고, 전부 반사가 돼. 전부 보조반사라. 오십면 오십면이 다 보조반사라. 이러니까 그 부흥이 되겟소 안 되겠소? (배종일) 조사님 말해봐 된다 그거요. 이 말씀을 사람들의 행위를 뭘로 고칩니까 말씀으로 고치고 누가 지켜 줍니까 말씀이 든든히 지키줍니다.
이런데 이 지도자들이 말이오. 이번에도 내가 대구간다 이러니까 얼씨랑 그만 핑계되고 안온 사람들도 있고 이런 사람은 참 아이들 말로 뽕도 따고 임도 보고 겸해서 간다는 격으로, 여비는 교회서 데주니까 가서 은혜도 받고 제 볼일도 보고 거창집회니까 그거로인해 친척도 한번 찾아보고 어쩌고, 그 경겸해서 가는 사람 그 사람은 집회만 위해서 가는 사람 아닙니다. 그 벌써 그 나뉘었소.
그런 사람 요번에 그게 없으니까 다 안왔어. 대구가니까 이제 그 사람은 뭐 그런것도 모두 제가 은혜 받으로 가니까. 어쩌든지 대구도 어데든지 따라가서 대구가나 부산가나 받고 또 어떤 사람은 '오늘은 목사님이 서지를 아니하니까 오늘은 오지 마십시요.' 이러는데 행여나 설지 아나? 또 그것 바래서 온다 이기요.
지난번에는 내가 안선다 하다가 내가 섯지 내가 섯지. 그날밤에 요긴한 설교를 또 하나님이 해주셨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원하는 것이 각각 다릅니다.
이러니까 자기가 지도자가 되려하면은 은혜 받아서 거기에서 부활이 돼야 되고, 권능을 받아서 권능 받으면 벌써 부활받으면 권능 받는긴데 인류가 되지는데 자 학생들 데리고 오는 것보다 예배 시간이 중요하다. 예배 시간에 내가 은혜 받은 것보다 학생들 데리고 오는 것이 중요하나, 어느게 중요합니까? 그래도 꺼꾸로 생각하기 쉬워, 은혜도 안 받고 은혜 받은 것도 중요하게 여기지 아니하고 학생들 데리고 오는 것도 중하게 여기지 안하는 그자보다는 학생 데리고 오는 것을 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낫습니까 안 낫습니까? 낫지요.
올라가야 됩니다. 올라가야 됩니다. 어쩌든지 중간반 반사들도 또 주일학교 반사들도 그 학생들 데리고 오는 그게 중요합니다. 중요하지마는 데리고 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데리고 오는 그것보다도 그 속에 생명의 말씀을 넣워서 그것이 변화를 받는 그게 더 중요합니다. 하나 변화 받으면 그놈이 또 새끼를 쳐서 둘 서이되고 자꾸 이래 벌어집니다. 이거는 변화는 하나도 안 받고 끌고오는 것으로써 하면은 자 몇십명 되면 그 끌고 오려하면 제가 골빠져요. 안 빠져요.
나중에 또 됩니까 안 됩니까? 안되져 헛일이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어쩌든지 그 속에 말씀을 넣어줘야 돼. 또 공연히 앵무새 모양으로 자기 속에 간절치도 안하면서 자꾸 여기에 저게 찔찔찔 자꾸 주 갖다가 말씀만 이렇게 뭐 설사하는 것 모양으로 이래 놓으면 헛일이라 말이오. 자기가 저 할때는 자기가 그 사람이 되 가지고 자기도 그와같은 말씀을 지키는 그 사람 또 자기가 지금 소원되는 그 자기가 말씀대로 지켜주는 소원하는 그 소원되는 사람, 이 사람이 되 가지고 증거해야 돼요. 그러면 자기도 변화되고 그도 변화되고 이래서 그 말씀으로 사람을 구원해야 됩니다. 변화를 시켜야 되요.
구역장들도 보면 저 구역은 지금 앞으로 저 구역이 자꾸 늘겠다. 저 구역은 암만 해봤자 제가 발걸음 가지고 인도하는 그 방식이기 때문에 사람 발걸음이야 한정이 있지 발걸음이 얼마나 많아 돌아다닐 수 있습니까 그 한정을 넘지 못하요. 그러나 저거는 진리 가지고 사람 하나씩 만들어 가니까 만들어 지는 그놈이 또 만들고 또 만들고 자꾸 이런데 퍼져 가지고 한없이 번질 것이라 말이오. 한없이 퍼질것이라. 이런 권찰들은 희망이 있습니다.
어떤 권찰은 보면 자꾸 오라고만 하는 권찰 어떤 권찰은 그 사람에게 그 이래 해야 저래 해야 행동을 지도하는 그 권찰 어떤 사람은 그것보다도 그 속에 진리를 넣어줘야 되겠다. 진리의 말씀을 가르쳐 주면서 요렇고 요렇다 요렇게 하는 사람 고것은 제가 앞서가야 따라옵니다. 제가 고렇게 걸어가면서 고 사람에게 가르치면 백프로 효력이 납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도 걸어가지 안하면서 말만 하면은 이제는 그 밑에 있는 사람은 다 교만해서 나중에는 성경 말씀을 업신여깁니다. 가르치는 사람이 행하지도 안하면 자꾸 성경 말씀대로 고대로 말하니까 원 저거는 말쟁이들 말만 하는 것이라. 이러니까 그 성경 말씀을 업신여기기 시작하면 그 사람이 예수 믿는 것을 허푸게 생각하기 때문에 말씀은 상관 없이 제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사람 됩니다. 나중에 그 것잡지 못하요.
발걸음으로만 붙드는 사람은 발걸음에 한정이 있기 때문에 한정을 넘어가지 못하고 또 제가 행하지 안하고 말로만 자꾸 이와같이 말하는 그 사람은 그 사람을 말은 말대로 행동은 행동대로, 말과 행동이 상관이 없는 사람 만들어 놓으면은 나중에가서는 설교가 필요가 없어. 제 마음대로 사는 사람 아주 못쓸 사람 만들어 버리고 자기가 행하면서 말씀대로 요대로 살아야 되는 것을 가르쳐서 말씀으로 그 사람을 변화시킨 그 사람은 한 사람이 두 사람되고, 두 사람이 네 사람되고, 네 사람이 여덟 사람 되고 자꾸 번져 나가서 이렇게 번져 나가는 것입니다.
이 방식으로 그 생활 지도도 하지마는 말씀으로 소개해서 가르쳐주는 것 가르쳐 줄 뿐아니라 자기도 살고 자기가 살지 못한 것이 그들이 있으면은 그들에게 나는 요걸로 살지 못해서 요렇게 됐다. 고걸 자복을 하고서 고걸 회개를 하면은 요렇게 하는 사람은 뭐 가속도로 늘어나가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요것을 기억해요. 요 자리에서 떠나지 말고 십분 동안에 요걸 다시 세겨 꽉 잡아 나는 어떤 사람인가 꽉잡아 잡아 가지고 놓지 말아요. 십분 기도하고 난 다음에 권찰회 모입니다.
이 새벽으로 네 시 반에 시작했다가 이미 벌써 지금이 여섯 시가 다 되어가니까 얼마입니까 약 한 시간 반을 이 진리 여러분들이 알까 말까한 것을 자꾸 배우면서 이 배우는 게 얼마나 크느냐? 이 배워 가지고 자꾸 이대로만 변화가 되지면 괭장해지는 것입니다. 배워나가면 능력있어. 그러면 여러분들이 가서 하나 구원하면 둘 구원되고 둘 되면 셋되고, 자꾸 그리 되져 요렇게 요 방식 가지고 하도록 노력을 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