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 있는 믿음이 믿음

 

1987. 2. 21. 새벽 (토)

 

 본문:마태복음 9장 1절∼8절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리에 이르시니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참람하도다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세를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선지자선교회

언제나 우리는 성경 가운데에 기록한 말씀은 우리에게 생명을 얻는 이 도리, 길을 걸어가는 길을 가르쳐 주신 말씀인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무슨 병 하나 고치면 병 고친 그것을 우리에게 소개하는 게 아니고 그 병 고쳐진 그 형식을 통해 가지고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도리, 도리라면 길 도자, 이치 리자인데, 어떻게 우리가 살아가야 되느냐 하는, 걸어가야 되느냐 하는 그 이치를 가르쳐 주신 것이 신구약 성경 말씀입니다. 계약이라고도 할 수가 있고, 하나님의 지식이라고도 할 수가 있고,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가르쳐 준 도리라고 할 수도 있읍니다.

 

이래서, 요한복음 1장에 지금은 태초에 말씀이 있었으니하는데 그전에는 태초에 도가 있었으니이렇게 도라고 그렇게 말씀을 했읍니다.

 

그러면 여게서는 중점되는 게 뭐냐 하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하는 요 믿음, ‘믿음을 보시고이랬읍니다.

 

또 지난 주일에 증거한 마가복음 1046절 이하에 있는 그 소경에 대해서도 그 믿음에 대해서 믿음을 보시고이랬읍니다. “믿음을 보시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이래 했읍니다.

 

그러면 여기에는 그 중풍병자가, 믿음을 보시고 주님이 그의 소원을 완전히 이루어 주셨읍니다.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라 하시니 일어나 집으로 제 매여 가지고 왔던 침상을 제가 이제는 들고 집으로 돌아갔읍니다. 그러니까 왔던 소원이 이루어졌읍니다. 그러면 그 소원을 이루게 된 믿음이 무슨 믿음인가? 그것을 우리가 여게서 찾아봐야만 합니다.

 

이 믿음은 그 결과 있는, 결과가 있는 믿음을 말씀을 합니다. 중풍병자가 침상에 누운 것을 사람들이 데리고 오는데, 데리고 온 그 사람에게는 어떤 믿음이 있어야 되느냐? 그 사람에게는 데리고 가는 그 중풍병자가 예수님 앞에 이래 가면 예수님께서 네 모든 이 불행을 다 치료해서 고쳐 주실 것이라하는 것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되지, 데리고 가는 사람에게 그 믿음이 있도록 해서 데리고 가야 되지, 데리고 간 사람 그저 사람만 데려다 놓으면은 아무 소용이 없읍니다.

 

데리고 가는 그 사람들의 믿음은 그 사람들이 데리고 가는데 믿음 없이 데리고 가면 아무 소용 없읍니다. 전부 예수교는 믿음 가지고 일을 하는데 믿음 없이 데리고 갔으면 아무 소용 없소.

 

믿음을 가지고 데려가야 되는데 어떤 믿음인가? 자기는 내가 이 사람을 데리고 가면은, 예수님 앞에 가면은 예수님께 은혜받아 가지고 이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면 이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리라.’ 하는 소망을 가지고, 믿음을 가지고 갔읍니다.

 

그러면 데리고 간 그 결과는, 데리고 간 사람의 결과는 어떤 결과를 맺는 믿음이 돼야 되느냐? 데리고 가는 사람의 그 믿음은 자기가 데리고 간 그 중풍병자가 주님에게 가면은 이제 은혜받아서 자기의 모든 어려움이 다 해결될 것이라 하는 그 소망의 믿음을 가지도록 그렇게 하는 것이 그것이 데리고 간 사람의 믿음입니다.

 

데리고 가는 사람 자기가, 물론 이 사람을 데리고 가면 주님 앞에 가서 은혜를 받으면 이제 이 중풍병자가 나을 것이라 이런 생각 없이 데리고 가면 소용이 없고 자기가 그 생각을 가지고 가게 되면 데리고 가는 그 사람이 주님 앞에 갈 때에 주님으로 말미암아 자기는 은혜받아서 병이 고쳐질 것이라 하는 그 마음, ‘내가 주님 앞에 가는 것은 지금 이 병을 고치기 위해서 간다하는 그런 소망을 가지도록 그렇게 인도하는 그것이 데리고 가는 사람의 결과 있는 믿음입니다, 결과 있는 믿음.

 

자기가 아무리 데리고 가 봤자 그 사람에게 대해서, 그런 것도 혹 애를 쓰지 안하고 오다 가다 보니까 진주를 만난 그런 것도 있기는 있지마는, 그래도 보화를 찾는 사람이 보화를 만나는 일이 많고, 또 자기는 오다 가다 보니까 우연히 만나 가지고 되는 그런 것도 있기는 있읍니다마는 인도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어쨌든지 속으로 믿든지 안 믿든지 예수님 앞에 나아가면 내가 모든 치료를 받고 복을 받는다 한다하는 그것을 그 사람에게 인식을 시키는 그 인식을, 데려감을 받은 그 병자가 그런 인식을 가지도록 그렇게 하는 그런 결과가, 결과 있는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 사람이 속에 믿든지 안 믿든지 해도 그 사람에게는 참 내가 이거 예수 앞에 가면은 큰 문제 해결이 되고 은혜를 받아서 지금 모든 것이 치료될 것이라하는 그런 걸 믿지 안한다 할지라도 이제 그 데리고 가는 사람은 이 사람을 주님 앞에 인도하면 이 사람이 은혜 받아 가지고 뭣이 형통해지고 변화가 될 것이라하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인도해야 되고, 그 인도하면은 자기 인도하는 그 결과는 무슨 결과냐?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 이것이 나를 그저 예수 믿어라 하며 예배당에 데리고 가는데, 그 백지 소용 없는 데 데리고 간다, 나한테 이래 하도 그래 쌓으니까 내가 뭐인고 구경하러 가지. 구경하러 가지.’ 이렇게 속에는 하나도 믿어지지 안한다고 해도 이 사람이 나를 지금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것은 지금 그 때문에 인도한다하며 비웃어도 어째 그 사람은 지금 인도하는 목적이 뭐이냐 하는 그런 걸 그 사람이 알 수 있도록, ‘인도하는 목적은 그거다하는 것을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 알 수 있도록 그렇게 하는 그 결과를 가진 인도라야 됩니다. 그 이해가 됩니까? 인도하는 사람의 결과 있는 믿음. 인도하는 사람의 결과 있는 믿음은 그 결과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 인도 받을 때 , 예수님 앞에 가면 모든 것에 복을 받고 뭐 네게 뭣 되고 뭣 되고 어떻다고 이렇게 한다고 하면 그 사람이 비웃읍니다.

 

그렇게 믿는 사람도 있지만 비웃는 사람도 있어.

 

비웃어도 이게 나를 인도하는 건 지금 나한테 무슨 무슨 그런 목적을 가지고 인도를 한다. 그러나 내가 지금 가는 것은 봐라 공연히 소용 없는 거 하지 않느냐?’ 내가 지금 한번 반발을 하기 위해서 지금 끌려가는 것이지, 끌려가나 이 등신 같은 거는 나를 지금 그란다고 지금 그렇게 말하며 나를 인도하고 간다.

 

이러니까 이 사람의 속는 걸 내가 요번에 지금 인도해서 한번 따라가는 것은 이 사람이 지금 속고 있는 것을 한번 깨우쳐서 이 사람을 도로 예수 믿는 사람, 이 속는 일을 예수 믿지 못하도록 말리기 위해서 간다.” 하는 그런 속에 가졌다 할지라도 어쨌든지 인도하는 사람은 인도를 받는 사람에게 이 사람이 인도하는 것은 예수님 앞에 나가면은 모든 것이 해결된다 하는 이런 지금 그 마음을 가지고 나를 인도한다.’ 마음은 다릅니다. 그 사람은 그리 인도해도 이 사람은 내가 너거 인도하는 예수교를 바짝 부수기 위해서 내가 한번 가 볼라고, 책잡기 위해서 가지 내가 뭐 참으로 거기 뭐 있다고 해서 가는 건 아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인도하는 사람은 인도 받는 사람에게 뭣 때문에 인도를 한다 하는 것을 그 사람이 알 수 있도록 그렇게 인식을 시킬 수 있는 그런 결과 있는 믿음이 돼야 됩니다. 그 인도하는 사람의 믿음 고거 이해가 됩니까? 인도하는 사람은 인도를 받는 사람에게, ‘나는 지금 예수교를 박멸할라고 이 사람에게 한번 따라가 시험해 볼라고 간다이리 해도, 그렇게 속 마음은 가지고 지금 가지고 가지마는 그래도 인도하는 이자는 속아서 내가 예수님 앞에 오늘 나가면 뭣을 받으리라 그런 지금 참말로 이거는 어리석게 그래 믿고 지금 나를 데리고 간다 하지마는 내 속에 마음은 다르다.’ 이래도 인도하는 사람이 그 믿음을 가지고 그렇게 생각하는, 자기 믿는 믿음이 인도 받는 사람에게 그런 결과가 맺어지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인도해야 된다 하는 그것을 여게서 우리가 배워서 기억해야 됩니다.

 

그러면, 결과가 있는 믿음이라야 되지 결과 없는 믿음은 소용이 없다. 결과 있는 믿음이라야 된다. 인도하는 사람이 결과 있는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그것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 속으로 비웃어도 이것은 지금 나를 인도하는 것은 예수 앞에 나가면 뭐 된다고 지금 그렇게 생각하고 나를 인도하기는 인도한다.’ 비웃으면서도 인도하는 사람에게 대해서 이 사람은 그렇게 지금 알고 나를 인도하고 있다.’ 비웃으면서 그렇게 알아도 인도 받는 사람이 인도하는 사람은 그런 소망과 믿음을 가지고 자기에게 지금 권면하고 말한다 하는 요걸 똑똑히 보여줘야 됩니다. 그러면 자기 할일 다 했어. 자기 할일 다 하고, 그 다음에 할 거는 중풍병자 그자 할일이지요.

     

그거 또 인제 중풍 병자가 인도를 받아서 갔읍니다. 인도 받아 갔는데 그 믿음을 보시고주님이 그라면 또 인제 인도 받은 중풍병자는 어떤 믿음을 가졌던가? “그 믿음을 보시고그 믿음 가지고 해결을 해 줬는데. 그 중풍병자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던가? 중풍병자의 믿음은 예수님 앞에 지금 내가 요 병을 고칠라고 인도함을 받아 가지고 가는데, 병 고칠라고 지금 이렇게, 사람이 병들었으니까 병든 이 병을 고칠라고 지금 내가 인도함을 받아 가지고 가는데, 병고침을 받을라고 인도함을 받아 가는데.’ 하는 그 병 고침을 받는 그 병 고침을 받는 그 믿음, 병 고침은 주님 앞에 가서 이제 내가 병을 고침을 받아야 되겠다, 아무래도 요번에 가 가지고 내가 병이 나아야 되겠다, 요번에는 뭣이 해결이 돼야 되겠다.’ 그렇게 병고침을 받는 그 믿음을 가진 그 믿음은 결과 있는 믿음이라야지 결과 없는 믿음이면 아무 소용이 없읍니다.

 

그 결과 있는 믿음, 그러면 자기가 중풍병 이 병을 고침을 받을라고 주님 앞에 갔는데 주님 앞에 가면은 이 병을 주님이 고쳐 주실 것이다하는 그것이 믿는 믿음입니다. 믿음인데, 그 믿음의 결과는 어떤 결과가 있어야 되느냐? ‘병을 고침을 받을 것이다. 주님 앞에 가면은 주님이 나를 고쳐 줄 것이다.’ 그 마음을 가지고 그 소망을 가지고 믿는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되고 결과 있는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결과 있는 믿음.

 

그 사람은 무슨 결과 있는 믿음을 가졌느냐? 그 사람이 두려워 떨었읍니다.

 

떠니까 여기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이렇게 주님이 안심하라이렇게 하는, 이 안심하라 하는 것은 뭣 때문에 안심하라 했느냐? 그 사람이 염려하고, 걱정하고, 근심하고, 두려워했기 때문에 안심하라고 위로를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에게 대해서 소망을 가지는 그 소망은, 주님에게 소망 가지는 그 소망은 두려움의 결과가 맺어지는 그 소망의 믿음이라야 되지 두려움의 결과가 맺어지지 않는 그런 소망의 믿음은 다 그것은, 물론 다른 데는 또 그런 면도 있지마는, 우리가 믿음도 이런 면 저런 면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런 여러가지 종류가 있는데 여게는 결과 있는 믿음을 가르친 것이라고 제가 처음에 말했읍니다.

 

자기가 주님에게 지금 은혜를 참 받을라고 소망하면, 주님에게 참 은혜를 받을라고 지금 자기가 믿고 은혜 받을 믿음을 가지고 은혜 받을 소망을 가지게 되면 필연적으로 그 결과에 두려움이라는 그것이 생겨집니다. 두려움이라 하는 게 생겨져.

 

무슨 두려움이 생겨지느냐? ‘이 어른은똑똑히 모른다 할지라도이 선지자고 또 거룩한 선생님이고 이것은 이분은 하늘에서 오신 분이라고 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내가 이분 앞에 은혜 받으러 가는데 내가 지금 이런 이런 이런 잘못이 있고, 이런 숨어 있는 죄가 있고, 이런 일이 있고, 내가 이런 행동이 있으니,’ 해서, 자기가, 선지자요 자기를 모든 데서 은혜 베풀어 주실 그분을, 그분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알고 그분에게 소망을 가지게 되면은 자연히 자기의 그 언행심사의 행동에 대해서 과거를 자기가 알고 현재를 자기가 알고 또 미래에 대해서 욕망하는 그런 모든 계획을 하고 하는 것도 자기가 아니 그분은 완전하신 분이시고 알지 못하는 게 없으신 분이시니 내가 그분에 뭘 얻으러 갈라고 이래 보니까 이런 것이 생각난다. 이거 내가 잘못했다. 저런 거 잘못했다.’ 자꾸 자기 과거 현재 미래에 있었던, 미래에 대해서 닥치지 안한 일이 무슨 있겠느냐? 미래에 대해서 자기가 계획하고 소원한 것이 있다 말이오. 내가 이런 소원 가진 거, 내가 이런 계획 가진 거, 또 이런 과거에 말한 거, 행동한 거, 이런 거 뭐 한 거, 자기에게 잘못이 있는 그것이 자기가 생각해 가지고 그 두려워지는 그 결과 있는 소망의 믿음이라야 되지 그거 없는 거는 아무 소용이 없읍니다. 그거 이해가 됩니까? 양산동에 가 가지고도 모두 기도하고 지금도 그 산에 가서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읍니다. 기도하고 있는데 기도하고 있으면 내가 가 가지고 주님 앞에 무슨 은혜를 지금 받을 그 각각 모두 은혜 받을 그런 소망을 가지고 가서 있을 것입니다, 뭐이든지 말이오. 물론 감사하는 것도 있겠지마는 은혜 받을 그런 소망을 가지고 있을 터인데 그게 주님 앞에 은혜 받을 그 소망 가진 그게 다 믿음이라 말이오. 믿음인데 그 믿음에는 결과 있는 믿음이라야 되지 결과 없는 그런 믿음은 안 된다 말이오.

 

주님에게 소망을, 주님에게 은혜 받을 소망을 믿는, 이 소망을 가진 이 소망을 자기가 은혜를 주시고 은혜를 받을 그 소망을 가지고 보니까, 소망을 가지고 보니까 뭐이 생겨지느냐? 소망을 가지고 보니까 내가 그 소망하는 그분은 선지자요, 완전자이시요,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이렇게 하고 거룩한 선생님이라 이렇게 하니 이분에게 내가 가면 이분은 내 속에 모든 거 마음 생각 뜻, 과거 현재 미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니 그분에게 갈라 하니까 먼저 지금 자기에게 대해서 그 잘못된 그것이 발견되어지는 그 결과가 있는 믿음이라야 되지 그거 없으면 소용없다 말이오.

 

그러니까 소자야 안심하라이랬읍니다. “안심하라뭐 안심했소? 뭐 안심해? 주님이 몽둥이로 뚜드릴까 싶어서 겁을 냈읍니까, 주님이 무슨 거게서 어떻게 무엇을 요구를 많이 할까 싶어서 그래 지금 근심 걱정이 났읍니까? 뭣 때문에 무슨 근심, 뭣 때문에 근심 걱정이 생겼읍니까? 그 근심 걱정이 생긴 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랬다 말이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이라니까, 중풍병자가 주님에게 은혜 받을 그 믿음, 은혜를 주님이 주실 것이고 내가 은혜를 받아야 되겠다 하는 그 소망과 믿음을 가졌을 때에 주님이 은혜 주실 것이다하는 이것만 가지는 그것은 진짜가 아니라 말이오. 진짜가 아니라.

 

진짜는 그 결과 있는 믿음이라야 진짜라.

 

그러면 중풍병자가 병고침을 받을 것을 자기가 믿고 소망하고 보니까 이거 병 고치면 얼마나 잘 고쳐 줄 것이가, 어떻게 고치는가, 뭐 고치는가?’ 그게 아니고 그것보다 그 믿음을, 주님에게 은혜 받을 그 믿음을 가지고 보니까 그 믿음에 결과가 무슨 결과가 나오느냐 하면은 아이고, 내가 주님 앞에 죄를 지었는데, 주님 앞에 거리낌이 있는데 이거 어떻게 하노?’ 이라니까 그때 갑자기 해결하지도 못하고 과거에 그래 되는 거 이제까지 숨겨 가루고 모두 다 덮어 놓고 왔지마는 이제 이분은 모르시는 게 없으니 이분이 다 아시니까 이분 앞에 나갈 때에 이게 문제다 해 가지고 이제는 중풍병 고치는 그 문제보다도 주님 앞에 지금 이 죄 문제가 더 커져서 근심하는 그 사람이 됐다 말이오.

 

그 중풍병, 병고침을 받을라고 주님 앞에 나왔는데 주님 앞에 나와서 주님 앞에 턱 대하고 보니까 병 고치는 것보다도 그 믿음의 결과, 죄에 대해서 근심하는 그 결과가 있었기 때문에 그 믿음을 주님이 기뻐하셨다 그말이오.

 

그러면 인도하는 자의 믿음, 무슨 믿음? 또 인도함을 받은 자가 주님 앞에 나타날 때에 믿는 믿음의 그 믿음을 무슨 결과를 가진 믿음을 주님이 보시고, “그 믿음을 보시고나중에 해결해 줬다 그말이오.

 

그러면, 자기는 주님 앞에 그 죄에 대해서 떤 믿음을 가졌다 말이오. 죄에 대해서 내가 이런 죄가 있다하는 그것을 모두 생각하면서 죄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떤 믿음이 있었어. 떨린 그것도 믿음이라 말이오. 주님 앞에 내가 이런 이런 잘못이 있는데하는 그런 것을 발견해 가지고 주님이 소자야 안심하라하기까지, 안심을 주님이 주시기까지 그가 두려워 떤 그런 믿음을 가졌다 말이오.

 

그 믿음을 가졌으면 자기가 참 바로 떨었으면 말이요, 바로 두려워하고 바로 떨었으면 그 결과는 무슨 결과가 나옵니까? 그 결과는 또 무슨 결과가 나오지요? 이러면 자기에게 이제는 주님이 소자야 안심하라하는 안심의 결과가 나옵니다. 안심의 결과가 나와요.

 

여러분들이 신앙 경험에서 다 이거 알고, 이 진리를 경험, 자기에게 그렇게 행하게 하는 그 영감이 들어서 자기에게 알려 주는 것이지 그리 안 하면 이거 껍데기로 하는 사람들은 이 설교 암만 해 봤자 속에 실지로 성신이 감동시켜서 감동 받는 그 자기 심령 속에서 작용하는 것은 그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그거요.

 

이런데, 요 중풍병자가 자기가 병 나을라고 주님 앞에 나오고 보니까 그 믿음의 결과는 근심 걱정이 생겨버렸다 말이오. 죄로 말미암아 근심 걱정 두려움이 생겨버렸고, 그 두려움을 참 바로 두려움을 가진 생명 있는 믿음, 바른 그 믿음, 진실된 믿음을 떡 가지고 보니까 그 다음에 근심 걱정을 했는데 소자야 안심하라주님의 위로가 왔읍니다. 위로가 오는 것입니다.

 

반드시 주님 앞에 바로 떨고 바로 두려워하고 바로 울고 바로 했으면 그 다음에는 반드시 넘치는 위로가 오는 것이 그게 신앙의 순서라 말이오. 그 위로의 결과가 왔어.

 

지난 밤에 설교하는○○○조사님의 하는 것은 아마 다른 사람들이 보고 그 태도가 너무 교만하고 암만 좀 은혜는 있지마는 너무 교만하더라. 너무 뻔뻔하고 너무 자신만만하더라.’ 그거 자신만만한 그게 필연적이라. 필연적인 것은 이제 주님 앞에, 자신만만한 것은 주님 앞에 떨고 나왔기 때문에 위로 받은 그 위로라 말이오. 알겠소? 그 경험한 게 맞아? 주님 앞에 떨고 나니까 많이 주님이 위로해 준 위로를 받았다 말이오.

 

위로받을 때 그때 사람들이 넘어가기 쉬운 것이 뭐입니까? 위로받을 때 넘어가기 쉬운 것이 그럴 때 교만으로, 너무 자신만만이거든. 자신만만인데, 울고 나면은 웃을 일 있고, 떨고 나면은 담대한 일 오고, 주님 앞에는 이렇게 돼지는 것이 이것이 주님 앞에 바로 정상적인 교제를 가지는 것이라 그거요.

 

그런고로, 주님 앞에 소망을 가진, ‘주님이 주신다하는 소망의 믿음을 가지고 보니까 그 결과에는 자기에게 죄의 문제가 나타나 가지고 떪이 나왔고 내가 이런 죄가 있다이 걱정을, 자기 혼자 그 자리에서 뭐 말도 못 하고 지금 도근도근 그래 도근거려. 주님 앞에 내가 이 죄 있읍니다 이 죄 있읍니다그래 고하지 안했어. 고하지 안하나 속으로 지금 이런 내가 죄가 있는데 이런 죄가 있는데여러가지 죄를 생각하면서 중풍병자는 지금 근심 걱정했다 말이오.

 

근심 걱정을 한 그 근심 걱정이 바른 믿음이라면 반드시 그 근심 걱정에는 열매가 맺는 것이니까 무슨 열매가 맺었읍니까? 그 열매를 맺는 것은 위로의 열매가 맺었다 말이오. “안심하라. 안심하라.” 위로의 열매. 이제 평안한 열매가 맺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 앞에 운 자는 반드시 위로로써 웃음이 나오게 되고, 참 큰 두려움이 있는, 두려움이 있는 그 사람은 뒤에 가서 평안을 얻기 마련인 것이 그것이 신앙의 순서입니다. 죄에 대해서 두려워한 그 결과에는 위로를 받았다.

 

안심하라. 안심하라.” 위로를 받았고, 그 다음에, 위로받은 뒤에 위로받은 그 결과 안심하라위로를 받았읍니다.

 

안심하라위로를 받았는데, 위로받은 믿음의 그 결과는 어떤 결과를 맺어야 됩니까? 위로받은, 소자야 안심하라는 그 위로를 받았읍니다. 마음에 위로가 왔어.

 

바로 근심했으면은 위로가 왔어. 또 위로가 왔을 때에 그 위로에 대해서 자기가 바른 믿음을 가졌으면, 위로할 때에 위로를 바로 받았으면은 그 다음에 오는 결과는 뭐입니까? 오는 결과는, 실지로 죄가 사함 받는 그 죄사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까지가 믿음의 결과의 순서인데 그라고 난 다음에 죄사함을 받았느니라이렇게 주님 앞에서 죄사함을 받았는데 죄사함 받고 나니까 지금까지는 생명의 믿음으로 쭉 계속해서 왔읍니다.

 

왔는데, 그라고 나니까 무엇이 생겨졌읍니까? 그라고 난 다음에는 시련이 생겨졌읍니다. 그 생명 있는 믿음이 쭉 계속되고 나면은 반드시 시련이 옵니다.

 

시련이 무슨 시련이 왔읍니까? 옆에 있는 사람들이 속으로 수근수근거리기를, 수군거려 참람하도다 제가 뭐인데 사람의 죄를 사해? 네 죄를 사해 줬다 해?’ 지금 주님이 네 죄를 사하셨다' 하면은 아이구, 그렇습니까?’ 모두 감사해야 될 터인데, 옆의 사람들이 수군거리면서 죄사함 받았다 하는 거는 그거는 공연히 엉터리 말이고 참람된 말이고 가증한 말이고 죄는 하나님만이 사해 주시는데 무슨 죄사함을 줬다고 그와같이 말하느냐?’ 주님이 하시는 말씀을 부인하는 일이 수군거린다 말이오.

 

이것이 우리 신앙 순서의 하나의 시련입니다. 반드시 시련이 있읍니다. 어떤 일이든지 보십시오. 주님과 관계되는 일에는 그 밑에 기초 작업이 있어서 순서가 나오고 순서가 다해서 그것이 건축이 돼 가, 건축이 완전 건축이 아니고 엔간히 중간 건축이 돼서 나왔을 때에는 반드시 건축된 것을 시험합니다. 건축된 것이 이것이 견고하게 됐나 안 됐나 검사가 나온다 말이오. 건축된 것의 검사가 나와.

 

검사가 나오는데 그 검사가 무슨 검사냐? ‘공연히, 참람하다. 이 사람이 참람하도다. 무슨 제가 죄 사할 권이 있다고 저와같이 말하고 있는가? 죄는 하나님만이 사할 수 있는 것인데 제가 무슨 죄 사할 권세가 있어?’ 이라면서 이 사람이 죄사함 받았다 하는 그 말을 그만 흐리게 만들어 가지고 그 마음에 믿음이 흐려 가지고 죄사함 받았다 하는 확신이 없도록 그렇게 만드는 그런 시련이 왔다 그말이오. 그 시련에서 떨어지면 헛일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그런 시련이 옵니다.

 

베드로도 물위로 걸어가는데 물위로 걸어가면 다가 아니라. 물위로 걸어가고 난 다음에 물위로 걸어가고 나서는 반드시 시험이 옵니다. 시험이 오는 게 뭐이냐? 시험이 오는 것은 풍랑을 보게 됐었는데 그때 안 떨어져야 되는데 그때 그만 떨어졌기 때문에 물에 빠졌다 말이오.

 

그러니까 뭣이든지 반드시 주님과 나와의 관계가 돼 가지고 이제 반쯤 그것이 됐으면 한번 시험을 해 가지고 그것이 검사를 해서 요게 바로 됐다바로 됐다 할 때에 그 다음에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다음에 그런 시험이 왔어.

 

그런 시험이 왔는데도 주님이 그 말씀하시기를 네가 죄사했다 한 것과 중풍병자로 일어서 걸어가라 하는 그 말과 어느 말이 어렵겠느냐?” 이렇게 주님이 말씀을 하시니까, 주님이 말씀을 하시니 이 사람들과 서로 대립이 돼 가지고 말하고 있다 말이오.

 

말하고 있는데 그 뒤에 요 환자가 이제까지 믿어 나온, 소망하고 나서 죄가 두려워졌고, 두려워지고 난 다음에 주님의 위로가 왔고, 위로가 오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는 그 결과로 죄사함을, “네 죄사함을 받았다죄사함을 받았다 하는 거게까지는 잘 왔는데 거기까지 잘 오고 나니까 옆에서 참람하도다이래 가지고 죄사함 받았다는 거기 대해서 그 확신을 다 뭉케버려서 없애 버리도록 그렇게 작용을 했다 말이오.

 

작용을 했는데 그때에 작용에 없어졌느냐 안 없어졌으냐? 그 믿음이 그래, 죄사함 받았다 하는 거는 참 그거는, 죄사함 받았다 하는 거야 눈에 보이나 안 보이나?’ 우리가 주님 앞에 고해 가지고 죄사함을 받았다 하는 그거는 눈에 보입니까, 손에 쥐입니까? 뭐 이런 거 주는 것같이 주는 게 아니라. 죄사함 받았다 하는 건 자기 마음이지. ‘내 마음으로 그런 것이지 여게 대해 참말로 죄사함을 받은 건가 안 받은 건가?’ 하는 그 확신은, 그 믿는다는 믿음, 죄사함을 받았다는 데 대해서 반드시 시험이 왔었는데, 그 믿음을 깨뜨릴라고 시험이 왔었는데 그 시험에서 그 믿음이 깨졌느냐, 깨지지 안하고 그 믿음이 그대로 유지가 됐느냐 안 됐느냐 하는, 믿음의 결과는 뭘로 나타났읍니까? 그때에 그 믿음이 깨졌으면 헛일이라. 믿음이 깨졌는지 안 깨졌는지 뭘 보고 알아요? 믿음이 깨졌는지 안 깨졌는지 뭘 보고 압니까? 그 결과는 뭘로 나타났읍니까? 믿음이 깨졌는지 안 깨졌는지? 그때 옆에 사람들이 공연히 참람된 소리하고 있다. 무슨 죄사할 권세가 사람에게 있느냐?’ 이라니까 그만 그 사람이 그 죄사함 받았다는 게 무슨 뭐 뭉텅이를 떡 줬으면 손으로 받았으면 이거 내가 죄사함 받았다이거 이래 알지마는 그게 아니고 자기 마음의 작용이라. 마음의 작용이라.

 

마음의 작용이니까 그뭐 참 죄사함 받았나 안 받았나 하는 것을 내가 공연히 혼자 생각하는 것이고 그 사람도, 이 선생님도 공연히 그말 하는 것이지 이 정말로 이 죄의 문제가 해결됐느냐?’ 하는 그것이 흐미하다 말이오. 흐미하나 또 그게 더 견고하고 확실하지마는 육적으로 돌아가면 흐미해. 흐미하다 그거요.

 

그랬는데, 그렇게 그 믿음을 까뭉케려고 세상이 와 가지고 한번 흔들어 봤다 말이오. 흔드는 건 주님이 흔들게 해요, 이 속에 믿음이 있나 없나? 참람하다 하는 그것이 그 사람들이 참람하도다. 무슨 죄사할 권세가 있느냐?’ 그말을 그 사람들이 했는데, 그 사람들이 했는데 그 사람들이 말한 그것은 그 말을 누가 하라고 시켰읍니까? 누가 하라고 시켰어? 그 말을 누가 하라고 시켰어? ○○○목사님? 주님이 시켰어. 알겠어? 시험하는 거라, 시험하는 거. 주님이 시켰다 말이오.

 

주님이 시켰는데 그때 그 말할 때에 이제 주님이 어느 게 어렵겠느냐?’ 이렇게 말하고 `어느 게 어렵겠느냐?’ 하는 게 지금 시험 문제라. ‘사함 받았다는 그게 어렵겠나 중풍병자를 걸어가라 하는 그게 어렵겠느냐 둘 중에 어느 게 어렵겠느냐?’ 이럴 때에 이제 벌써 그 시험이 들어왔기 때문에 이 사람은 참 그렇다. 죄사함이 됐는지 안 됐는지 그게 내 마음으로 그런 것인지?’ 이 죄사함 받았다는 데 대해서 확신을 까뭉케는 이런 큰 시험이 왔다 말이오.

 

시험이 온 그것은 네 믿음이 과연 이 성공을 할 만한 그런 견고한 믿음을 네가 가졌느냐 네 믿음이 그렇게 견고치 못한 믿음이냐? 흔들어 보니까, 흔들어 보니까 깨져 버렸으면 그거 실력 없는 믿음이기 때문에 그 결과를 맺을 수 없는 믿음입니다.

 

그랬는데 그 믿음이 그렇게 옆에서 그 믿음을 헤칠라고 그 믿음을 없앨라고 옆의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이렇게 말했는데 그 미혹으로 말미암아 그 믿음이 깨졌는지 안 깨졌는지, 깨졌는지 안 깨졌는지, 어때요? 그 믿음이 깨졌읍니까 안 깨졌읍니까? 조사님? ○○○조사님, 믿음이 깨졌나요 안 깨졌나뇨? 뭐 안 깨져? 안 깨진 건 뭘 보고 알아? 시키는 대로 뭐 순종했는데? 걸어가라 한 그게 중풍병자가 걸어가고 싶기는 걸어가고 싶지마는, 걸어가는 걸 보면 그래, 순종한 걸, 순종이라고 그래 말해도 되기는 되지마는, 순종은 순종이지마는 병나은 걸 봐서 그 사람이, 병 고침을 받은 걸 봐서 그 사람에게 믿음이 흔들리지 안했다 말이오. 그렇지 안해? 내가 말은 답은, 믿음이 흔들리지 안 했어. 그 순종이라 하면 좀 핀트가 잘 안 맞아.

 

믿음이, 그 믿음이 삭아졌느냐 그 믿음이 계속해서 보존됐느냐 하는, 보존이 됐느냐? ‘보존이 됐읍니다.’ 뭘 보고 보존 된 걸 아느냐? ‘주님의 기적과 표적이 왔으니까 온 걸 보니까, 병 고친 걸 보니까 믿음이 요동되지 안했다는 것이 확실합니다.’ 이래 답을 해야 될 거라 말이오. 그렇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제 병 고침을 받았읍니다. 병 고침을 받았는데 병 고침 받은 그것이, 그 병고침 받은 그것이 참 바로 고침을 받은 것이요, 복된 고침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하는 건 또 뭘 보고 압니까? 복된 고침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그것의 결과는 뭐입니까? 병 고침을 받았는데 병 고침 받은 것이 그 사람에게 참 복이 됐는지 안 됐는지 하는 것은 결과가 뭘 보고 압니까? 그것도 결과가 있는데요. 병 고침 받은 그 믿음도 결과 있는데 그것의 결과는 뭐입니까? 그것의 결과는 그것입니다. “이런 권세를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반대하던 사람들이, 반대하던 사람들이 보고 이제, 반대를 했지마는 반대한 사람이 정반대로 과연 이 사람과는 하나님이 같이 하신다. 이 권능은 하나님에게서 왔다.’ 하면서 반대하던 사람들이 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분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이라하는 그런 증거가 됐더라 그거요.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요 알기만 알고, 여게는 결과 있는 믿음이라야 된다. 결과 없는 믿음은 안 된다. 그 사람이 중풍병자가 나았다 할지라도, 중풍병자가 나았다 할지라도 그 사람의 나은 것은 많은 사람에게 증거하기 위해서 나았는데, 중풍병자가 나았다 할지라도 그 사람의 나음이 많은 사람들이 보고 이 권능을 주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고하는 그 증거가 없으면은 저는 병 나아야 또 병으로 돌아가고 소용이 없다 그말이오. 알겠읍니까? 우리 교회는 천여 명, 뭐 근 천여 명이 병이 나았는데, 병 나은 결과가 없기 때문에 앞으로 병이 다 돌아갑니다. 알겠읍니까? 하나님께서 기적이나 표적이나 주시는 것은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증거해 가지고 구원을 주도록 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지 저 병 고침만, 병고쳐 주기 위해서 하는 것 아니라 말이오.

 

병은 고쳤는 데 딱 거석해 놓고 딱 예수 믿어서 병 고쳤답니다부끄러워한다 말이오. ‘에이, 그뭐.’ 실실 해 가지고 부끄러워해.

 

그게,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증거가 돼서 많은 사람들이 그것 보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이 결과가 맺어져야 되지 그 맺어지지 않은 그 결과 없는 믿음은 소용 없다 그말이오.

 

그러면 병 나은 데 대해서, 축복 받은 데 대해서 자기가 예수 믿어 가지고 재산 축복이라든지 건강 축복이라든지 사람이 인품 축복이라든지 별별 축북이 많이 있지 않소? 사건이 해결된 사건 해결의 축복이라든지 했는데 축복받은 그 축복은 결과가 있어야 됩니까 없어야 됩니까? 있어야 됩니까 없어야 됩니까? 오늘 아침에는 결과 있는 믿음을 지금 말해.

 

, 이래 이 퍼뜩 하니까 여러분들이 돌아가서 자꾸 생각하면 그 진리를 알게 될 것이라 그말이오.

 

결과 있는 믿음이 돼야 되는데,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을 받은 데에는 결과가 있는 기적과 축복이 돼야 되는데 그 결과가 뭐입니까? 기적과 축복의 결과가 뭐이요? 뭐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보고 , 이 능력은 참 하나님께로서 왔다. 이 사람에게 하나님이 권능을 주셔 가지고 이와같이, 하나님의 권능은 크다.’ 이래 가지고 모든 사람들이 반대하고 수군거리며 죄사함 받았다, 뭐 받았다, 뭐 참람하다.’ 이렇게 반대하는 사람들인데 반대하는 사람들이 전부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도록 그런 증거의 결과가 맺어져야 된다 그거요. 그게 없으면 그 지금 병 낫고 축복 받은 그것은 결과가 없기 때문에 그건 잡탱이고 마지막에 다시 병으로 돌아갈 것이라 그말이오. 알겠읍니까? 여게서 결과 있는 요거는 믿음을 가져. 결과 있는 믿음이라야 믿음이지 결과 없는 믿음은 소용 없다, 그러기 때문에 결과 있는 믿음이라야 그게 믿음이다 하는 것을 여게서 가르치고 있읍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인생은 멸망할 것을 보지 못하고 구원 얻을 길을 보지 못하고 멸망과 구원을 보지 못한다. 죽고 사는 걸 보지 못한다. 어짜면 죽고 어짜면 사는 그걸 보지 못한다. 이 보지 못함으로 죽는다는 요것을 학생들에게 오늘 주일 요거 하나만 가르치는 게 좋을 거야. 보지 못하는 것을 인간으로 멸망한다. 요거 하나를 단단히 가르쳐서 그 사람들이 그만 그 아이라도 아, 보는 육안으로 보는 것입니까 생각으로 보는 것이요 지혜로 보는 것이요 비판으로 보는 것이요 평가로 보는 것이요 모든 거 그걸 깨달음으로 보는 것이요 보는 것은 꽉 찼는데 마음의 눈이라 말이오. 마음의 눈이 어두워서 망하는 거라. 마음의 눈이 어두워서. 여러분 속에 느껴지는 것만치 그들에게 들어갑니다. 강하게 들어갑니다. 느껴져야.

 

여러분들이 믿어야되지 안 믿으면 소용 없어. 모두 거짓말쟁이는 성령이 같이 하지 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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