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1 13:34
1988. 9. 27. 화새.
본문: 히브리서 2장 1절∼4절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러 떠내려 갈까 염려하노라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신구약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주신 지극히 큰 구원에 대해서 다 증거하는 말씀입니다. 기본구원에 대한 증거의 성구들도 있고 또 건설구원에 대한 증거의 성구들도 있습니다. 양으로 말하면 기본구원에 대한 증거는 간단하게 돼 가지고 있고 거의가 다 건설구원에 대한 말씀들입니다.
1절에,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들은 것이라는 것은 사도들이 우리에게, 선지 사도들이 전해 준 이 말씀을 우리가 이 성경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들은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들은 이 말씀을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이 말씀 한 말씀 한 말씀에 대해서 우리는 조심을 가져야 합니다.
왜?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노라" 잘못하면 듣고만 버리는 사람 되기 쉽습니다.
듣고 버리는 사람은 제가 아무리 기억하려고 해도 기억이 안 됩니다. 기억하는 방편은 말씀대로 지켜 행해야 기억이 된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 보고 있는 사람은 그저 듣고 버리고 듣고 버려서 이 세상 지식 모양으로 그렇게 채우는 자가 아니고 듣고 실행하자는 자가 이 말씀을 항상 들여다 보고 간수하고 있는 사람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간수하는 방법도 주신 대로 해야 되지 제대로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통해서 하신 말씀도 견고해서 행한 대로 보응을 공변된 보응을 받았습니다. 그랬는데 하물며 하나님이신 주님께서 대속을 완성하시고 오셔서 우리에게 직접 말씀해 주신 이 말씀을, 또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친히 양성 일위의 이 대속의 지극히 큰 역사를 이루신 이 구원을 우리가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피한다 말은 보응을 피할 수 있겠느냐 그말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지극히 큰 이 대속의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그 피하는 것은 보응을 네가 피하겠느냐? 천사를 통한 말씀은 과거에 구약 때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 또 이 하나님이 나타나셔 가지고 직접 말씀하신 그 말씀은 전부 다 천사를 통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서 나타나셨지, 당신이 나는 여호와로라 이렇게 하신 데도 곧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서 신비하게 나타나셨지 하나님은 보지를 못합니다. 나타나시지를 아니하고 천사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 구약 계시 모두 주신 것을 가리켜서 천사들을 통해서 증거한 말씀이라 이랬습니다.
이 구원은 주님이 친히 오셔서 이 일을 완료하셨고 또 사도들에게 말씀하셨고 사도들이 우리에게 증거해 주셨고 하나님도 이 증거하기 위해서 표적과 기사와 여러 가지 능력으로 우리에게 전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나 또 단체적으로나 알기 쉽게 대구와 거창집회에 표적 나타난 것을 자기네들이 신고한 대로 기록한 것이 그 기록한 책이 다섯 권이 있습니다. 다섯 권 나왔지요? 몇 권? OOO. 다섯 권 나왔는데 그 다섯 권의 총 계수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 이천 팔백 몇 종류? 이천 몇 종류가 종류로, 병 종류로. 이천 몇 종류가 병이 나았고 나은 사람 숫자는 잘 모르지? 이천백 몇 명, 똑똑히 이제 이 사람도 뭐 그 대략을 말하는 것이지. 이천백 몇 명이 나았고 이렇게 하는 이것이 뭐이냐? 하나님이 이 구원이 확실하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 말씀이 하나님이 친히 오셔서 말씀하신다.
이 노선에 하나님이 같이 하시고 이 집회에 하나님이 같이 하신다는 그 증거입니다.
'표적과 기사로' 뭐 기사들도 기이한 일, 인간이 하지 아니한 일, 인간이 하지 안하고 아무래도 인간이 했다고는 할 수 없는 그런 일들이 얼마나 많이 나타나서 본인들에게 '하, 하나님이 날 버리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이 과연 내 아버지 됐구나.' 하나님이라는 뭐 측량도 못 할 지극히 크신 분이신데 그분이 내가 밤중에 불러도 당신이 대답하시고 내가 기도하는 것을 다 응답하시고 내가 몰라 그렇지 그분은 찰나도 나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이렇게 하시는 이런 것을 다 표적과 기사로, 그분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눈을 뜨고 보려고 하면 전체는 함께 하시는데 함께 하시는 그 모든 것을 우연히 됐다 자연히 됐다 원 순환지 이치로 됐다 자꾸 뭐 이거 마귀란 놈이 이래서 그것을 다 부정하니까 그렇지 하나님이 참 말로 다 할 수 없는 표적과 기사와 여러 가지 능력을 가지고 우리에게 증거해 주셨고 또 하나님이신 성령님을 우리 각자에게 나눠 주셔서 다 성신의 감화를 받았다 말이오.
자기도 '내가 정말로 성신의 감화를 받았나? 정말로 하나님은 내 기도에 그 기도를 들어 주시나? 내 형편과 사정을 당신이 살피고 계시나? 나를 버리지 않았나?' 이렇게 자기가 살펴 보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나중에 가다 보면 '하나님은 찰나도 나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다는 하나님의 은혜의 사랑의 보호 속에 들어 있다' 이래서 모두 다 경험한 사람들이 말하기를 '우리는 세상 지나가는 동안에는 하나님의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의 태 속에 나는 지금 자라고 있다' 이러니까 불미 속에 들어가는 것도 이것도 하나님의 태 속으로, 사자 구덩이에 들어가는 것도 하나님의 태 속으로, 공산주의 되면 공산주의 속에 싸여 있는 것도 하나님의 태 속으로, 하나님의 태 속에 있는 자를, 하나님 축이기 전에 태 속에 있는 것을 어떻게 하겠소? 이렇게 하나님을 전체로, 태 속에 있는 아이는 전체 하나님을 입고 있는 것입니다. 위에도 하나님 아래도 하나님 옆에도 하나님 이 모양으로 이렇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나눠 주심으로 우리에게 확증했다.
그런고로 이 큰 구원, 우리가 요새 생각하는 것을 큰 구원, 지극히 큰 구원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이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이 일이 말할 수 없는 큰 잘못입니다. 이거 뭐 상상 못 할 큰 잘못입니다. 그런데, 큰 구원을 몇 가지로 지금 말했습니까? 손가락으로? 큰 구원을 몇 가지로 말했습니까? 손 가락 다 들어 봐. 새로 한번 더 들어 봐. 저 뒤에는 그거 뭐 그렇츰 들어도 모르나? 손 안 드는 사람 몰라 뭐 안 들지. 에이고 참. 불쌍해요. 아무리 남편 잘났고 자녀 잘났고 저 잘났고 또 재물이 많고 넉넉해도 불쌍하고 가련해. 그까짓 거는 오늘 벗을지 내일 벗을지 몰라! 이 말씀만이 영원해. 어리석지 말아요.
네 가지 구원을 말했는데 또 그거 다 잊어버려 버리고 손 들라 하니까 손 못 드는 사람이 많이 있어. 뭐, 뭐 봤어? 테레비 봤어? 그까짓 거 암만 봐도, 암만 봐도 그까짓 게 그까짓 거지 별 게 없어 그 죽음 선 아래 있는 것인데 그까짓 거 죽는 것뿐이지 무슨 소용이 있어? 뭐 보는 거는 나쁘지 않지마는 그만 거게 빠져버리면 헛일이오. 거게 빠질 게 뭐 있어, 있기를? 영생, 우리에게 주님이 영생을 주셨어. 이 영생 주시는 그 배경은 굉장해.
여러분들 저 미국과 소련이 뭐하려고 있어요? 뭐하려고 있어요? 우리 구원 위해서 하나님이 지으셨어. 택한 자들, 미국에 있든지 소련에 있든지 택한 자들 구원 위해서 지으셨어. 좀 뭘 생각해 봐야지.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어요. 영생은 우리가 이미 받았기 때문에 지금 영생을 하는 것만치 영생으로 자랍니다.
다 같이 한자리 살고 있는 것 같지마는 어떤 사람은 (영생은) 영원한 생명 이 생명으로 살아서 산 그것이 영원히 죽지 않는 영생으로 살아 지금 영생이 자꾸 자라가는 사람 있고 죽을 사람으로 살아서 점점 죽어져 가는 것 있어. 이걸 알아야 돼. 안 믿는 사람들이 사는 생활 같은 그 생활은 전부 그거는 하루 살았으면 영원히 죽어 버려. 그거 하루 산 거는 영원히 죽었어. 다시 만나지 못해요. 영원히 죽어. 죽는 자로 살아 가지고 점점 죽음으로 쌓여 가는 자 있고, 이미 있는 생명이 자꾸 감소돼서 죽음으로 지금 쌓여져 가는 자 있고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아서 영생으로 점점 자라가고 쌓여져 가는 사람 있어.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뭐 여게 대해 잘 깨닫지를 못하더란대도 자꾸 영생을 자꾸 입에 익혀요. 그러면 속에 배 들어가요. 다른 것 생각할 여지 없이 영생! 영생! 아, 주님이 나에게 영생 주셨다! 나는 영생을 가졌다. 나는 영생한 자다. 내가 영생으로 살 수도 있고 영생하는 생명이 살 수도 있고 죽어가는 죽음이 시간을 지내서, 죽는 시간 지나가면 나중에 차차 차차 완전히 죽어버리고 마는 거라, 나는 영생, 나는 영생을 주님이 주셨다. 나는 영생을 가지고 가진 사람이라. 나는 영생을 가진 자다. 영생 영생 자꾸 영생을 생각해서 자기 지식이 있는대로 뭐, 성경 지식 세상 지식 있는 대로 영생에 대해서 자꾸 생각하고 생각해 보면 그 속에 나오는 것을 자기가 알 거라. 그보다 더 큰 것이 없어. 하나님 아버지 아들되는 것보다도 영생이 제자 우리에게 제일 중요해. 영생이 제일 중요해. 영생 중요하고 그 다음에는 뭐이요? 하나님의 형상은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그 실력과 같은, 실력을 가진 자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형상을 지금 우리가 자꾸 입고 있어. 덧입고 있어. 하나님의 형상을.
세상에서 입은 것만치 무궁세계에도 그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 영광도 사랑도 지혜도 능력도 모든 온전도 완전도 불변도 그거 다 하나님의 형상인데 하나님의 형상을 자기가 세상에서 입은 것만치 그 사람의 것이 됐지 세상에 지나는 동안에 현실에서 이거 할래 저거 할래 하는데 이 세상 인간의 대가리서 나온 것 또 인간들의 모든 역사에서 경험하고 체험하고 모두 쌓아 놓은 역사 그런 것들이 좋다 해서 거게는 과학에는 대가리를 짜매 가지고 이거는 기억할 가치가 있고 내가 사용할 가치가 있고 가질 가치가 있고 이렇지마는 하나님의 형상은 업신여기고 자기가 보지도 않는데 무슨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질 것이오? 위로부터 오는 것을 덧입기를 원한다 하는 것이 그거 다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오늘에 하나님의 모든 속성을 (내가)속성을 내가 입어. 단박에 다 입는 것 아니고.
우리 심신이 지금 입는 것입니다. 영은 다 입었지마는서도. 법적으로 입은 그것을 입었으니까 법적으로 입었으면 내것 됐는데 이제 현실에서 입고 사느냐 현실에 벗어 내 버리느냐 하는 그것 이 중대한 문제가 있어.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 입는 거라. 하나님의 형상을 모든 면에 하나님과 꼭 같은 자, 하나님은 아닌데 하나님과 꼭 같아. 틀림이 없어.
포도나무는 포도나무 둥치는 아니지마는 포도나무 둥치에서 나와서 자란 가지는 포도나무 둥치하고 달라요 같아요. 같아요? 같아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했어. 주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루어진 거는 주님과 꼭 같아요. 그러면 우리가 창조주 돼요? 아니오. 영원히 피조물이오. 다만 그로 인해서 그분과 같아.
그로 인해서, 그분에게서 나와서.
하나님의 형상을 입었으니까 이것도 항상 노래를 불러야 돼. 다른 노래 부르지 말고 가면서도 혼자 생각하면서도 '하, 나는 하나님의 형상을 주님이 입혀 주셨다.
이러니까 지금 이 시간에 하나님의 형상을 나는 자꾸 덧입어야 되겠다. 새사람을 입어 덧입어야 되겠다.' 우리의 심신(영육)은 첫째 아담에게서 얻은 그 심신(영육)이나 그 심신(영육)이 더러운 물이 들어 가지고 아주 새카맣게 됐던 것이 이제 하나님과 진리와 예수님의 대속으로써 참 알롱알롱하이 아주 아름다운 채색으로 우리를 지금 물들여, 감염해. 이러면 나중에 보니까 하나님과 꼭 같아.
'하나님의 형상' 항상 생각하면서, 이를 생각할 때는 귀신이 나가. 마귀가 달려들지 못해. 생각해 보면 알아. 하나님의 형상을 생각하면 귀신 그놈이 나갈 만치 하나님의 형상이 내 마음에 주관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귀신이 용납을 못 해. 하나님의 형상 말해도 속에 제가 알아. 하나님의 형상을 말하면 자기 속에 귀신이 주관하고 있고 하나님의 형상은 껍데기로 빙빙 돌고 있는 것도 알고 있어요. 하나님의 형상.
셋째는 뭐입니까?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 이것은 우리에게 영영한 제일 좋은 완전한 후견자, 완전한 배경을 가진 이 지위를 가리켜 말해. 지위.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상속받을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야. 하나님과 꼭 같은 자라.
개새끼는 개지 별게 뭐 있어? 개새끼가 사람 돼요? 그런 게 다 자연 계시라.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꼭 같지. 또 하나님의 모든 것을 우리가 다 상속받지, 유업으로, 하나님의 아들. 또 그 다음에 뭐이요? 영원한 자유. 영원한 자유도 우리에게 줬는데 자유도, 이것은 피와 성령과 진리로 자유하는 거라.
예수님의 피는 완성한 것이라. 완성한 것을 내가 입으면 어데든지 자유해, 또 영감대로 움직이는 것은 어데든지 자유해. 진리대로 움직이는 거는 어데든지 자유해. 하나님의 공심판에서도 마음대로라. 아무 제재를 안 받아. 이거 완전이기 때문에 완전은 어데든지 걸리는 것이 없어. 걸리지를 않아요. 피조물이 걸어요 어째? 피조물은 협조밖에 못 해요. 피조물은 협조하지 걸지는 못해요. 피조물은 자꾸 도와요. 이러기 때문에 이것이 완전 자유라. 영원한 자유.
전 인류 속에도 내 마음대로, 제가 암만 뭐 단속해도 내 마음대로 돌아다녀 제 속에도. 그 마음 속에도. 그 마음 속에 오만 데 다 가요 지옥은 못 가요? 지옥도 마음대로 가요. 지옥도 마음대로 돌아다녀요, 우리는 이다음에, 제일 구경 좋고 제일 좋은 데가 어데요? 하나님이야. 하나님 속에 마음대로 돌아다녀. 하나님 속에 마음대로. 인간 속에도 마음대로 하나님 속에도 마음대로.
제일 경치 좋고 제일 보기 좋고 가면 유익 있고 먹을 것 많고 제일 좋은 데 아주 좋은 데 피곤치 않고 제일 좋은 데가 하나님 안이야. 그 다음에는 기묘한 인간 속이라. 인간 안에. 그 다음에는 모든 천사 안에, 천군 안에, 모든 피조물들 안에.
이런 구원이야! 이런 구원을 안 자가 땅에, 뭐한다고 땅에 걸 탐하고 있어, 있기를? 이런 구원을 똑똑히 안 자는 다른 사람이 보니까 모든 것 다 포기해 버리고 이 구원에 전력 기울이니까 '저 예수 믿으면 버린다, 예수 믿으면 등신된다.' 등신이 아니라 그는 볼 걸 봤고 너는 볼 걸 보지 못하고 배암이 주는 선악과만 봤기 때문에 그게 좋아서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를 얻을 만치 이제 모두 다 탐이 날 만치 그렇습니다. 그래도 먹고 나니까 죽었어. 너는 배암에게 미혹받아서 이 구원 외에 딴것이 그렇게 보배다. '나를 목회하러 보냈지마는 나는 목회보다 내가 실력 있어야 된다, 내가 어학을 해야 되겠다.' 어학 그것 가지고, 여러분들, (무엇보다,) 무엇보다 무엇이냐? 무엇보다 무엇을 귀하게 여기느냐? 명예보다 지위보다 뭐 권위보다 실력보다 양성원에 공부 하는 것보다 '내가 이미 목회를 시작했으니까 이 목회에 내가 전심전력을 기울여 가지고 남은 시간 있으면 그런 것 하고 그리 아니면 안 해도 여게 전력을 기울이겠다' 이게 하나님이 맡겨 줬으니까 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이 소원한 일을 이루어야 되겠고 내가 맡은 바의 이 모든 생명들을 다 잘 기르고 보호해야 되겠다.' 거게다가 가치, 하나님에게 가치를 두고, 모든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피로 구속한 양떼에다 가치를 두고, 자기는 그거 위해서 녹아지고 희생할 자인 것을 여게다 가치를 둔 자와! 땅위에 있는 이런 저런 지식 자기 실.력이라고 그 지식에 가치 둔 차가 달라! 어리석지 말아요. 이러니까,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등한히 여긴다 말은 업수이 여긴다 말이오. 그러면 피하지 못해. 하나님의 보응을 피하지 못해. 천사들 말 한 마디 한 것도, 말 한 마디 한 것도 어기고 업신여기면 다 공변된 보응을 받았는데 하나님이 사람되기까지 하셔 가지고 또 죽으시고 살으시고 영원히 피조물을 입으시고 이렇게 큰 구원이 구원 위해서 우주를 예정하셨고 모두 다 창조하셨고 존재하시고 섭리하시고 관리하시는데, 이렇게 큰 구원인데 이 구원을 등한히 여기고 뭐, 이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자가 어떻게 피하겠느냐 그말이오. 피한다 말은 보응을 피하겠느냐 하는 그말인데 그 보응에 대해서는 기절할까 싶어 말하지 않아요. 여러분들 정신 차려야 돼요 믿는 일 속는 일 아닙니다.
하루 삼십 분 기도 놓지 말아요. 하도 매일 뭐 매일 한번도 광고 안 한 날이 없어. '하루 삼십 분 기도' 하니까 이제 그만 면역성이 생겼어. '뭐 원래 저래 하는 거다' 저래 하는 거다 하는 그자는 망하고 '삼십 분 기도' 아침마다 하니까 '아이구, 삼십 분 기도 나는 어제 온전히 못 했다. 오늘은 바로 해 봐야 되겠다.
어제 하루는 삼십 분 기도를 계속했었는데 오늘도 해야 될 터인데.' 할수록이 자꾸 책임이 무거워지고 뜨거워지고 간절해지는 자 있고, 설교를 하던 설교 또 하니까 더 책임성과 간절성과 이거, 실행하는 자는 더 마음이 무거워지고 은혜가 되어지고, 실행 안 하고 듣고 버리고 말씀을 구경하는 자는 '뭐 새것이 나올 줄 알았더니만 또 그렇다' 이제 듣고 버리는 자는 자꾸 들으니까 듣기 싫고 또 그대로 실행하는 자는 자꾸 들으니까 '하, 그거 어데 좀 희미했는데 또 깨우치니까 하이구 고거 또 해야 되겠다.' 자꾸 들으니까 더 좋고, 거게서도 망하고 흥할 것이 결정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