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선교회 4가지 주기위한 3가지 방편

 

1987. 5. 27. 밤 (수)

 

본문:이사야 1장 18절∼20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여호와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계약을 선포해 놓으시고 호리도 어김 없이 그 계약대로 이행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뜻으로 여호와라 요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표시한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할 때는 언제든지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계약을 선포해 놓고 계약대로 이행하시는 하나님이라 하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창세기 2장 4절부터 여호와라는 이름을 나타냈고 그후 신약 교회에 와서는 여호와라는 그런 이름을 나타내지 안했고 다 하나님이라, 그리스도라, 예수라, 성령님이라, 성부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신약 시대나 구약 시대나 한 하나님이시요 이 하나님은 우리에게는 계약을 선포해 놓으시고 계약을 가지고 상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신약에도 그러하고 구약에도 그러합니다. 그런데 다만 하나님의 이름을 그리스도라 예수님의 신성이라 이렇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약 중에 대속하시는 대속을 하신 이 계약을 중심으로 해 가지고서 나타내신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그 말은 의논하자, 서로 의논하자, 의논을 하는데 모든 인간이 단독이 할 수 없는 어떤 문제라도 서로 의논해 가지고 다 해결을 짓고 모두가 다 구원이 되어지도록 그렇게 하자 하시는, 우리에게 대해서 큰 은혜와 사랑을 베푸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서로 의논하자” 의논이되 심판적인 의논이 아니고 건설적 의논, 사랑과 은혜의 의논의 뜻을 말합니다.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사람은 다 주홍같고 진홍같은 그 흉악한 죄를 가진 것이 사람인데 이 계약을 선포하신 이 하나님으로 더불어 의논하고 서로 상의해서 이렇게 하면 해결되지 못할 그런 죄가 없다. 어떤 죄라도 주홍같고 진홍같은 그런 참 측량 못 할 죄악이라도 다 성결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변론하자” 의논하자 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19절에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즐겨 순종하면’ 하는 말은 하나님께서 주홍같고 진홍같이 붉은 멸망 가운데 깊이 빠져 있고 헤어날 수 없는 이런 멸망 가운데 있는 자를 하나님이 서로 의논하고 협조해 가지고 하나님과 둘이 힘을 합해 가지고 이 모든 어려움을 벗어나서 온전한 생명과 평강을 갖도록 그렇게 하자 하시는 데에도 여게 응하지 아니하고 거절하는 그런 자는 하나님이 부득이 죄대로 심판할 수밖에 없고, 이 의논해서 하나님과 함께 힘을 합하여 해결을 짓도록 하자고 하시는 이 역사에 달게 받아서 순종을 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이 말은 네가 땅에서 평안하게 산다.

그러면 땅에서 평안하게 살면 땅에서만 평안하게 사느냐? 땅에 평안하게 살면 하늘나라에서도 평안하게 삽니다. 땅에서 사람 보기에는 평안한 것 같으나 큰 멸망과 화를 내포해 가지고 있는 멸망과 화를 끌어오는 그런 것을 눈이 어두워서 보고서 평안이라 구원이라 이렇게 말하는 그런 것은 다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평안이 아닙니다.

이러기에 땅위에서 사는 생활 가운데에 하나님이 보실 때에 진리가 볼 때에 흠이 없는 참 땅위에서 행복된 생활을 하고 있는 참 행복이라면 그 행복은 금생도 내세도, 영도 육도, 또 자체도 자체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도 전부가 다 행복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러나 땅위에 인간의 지식이 어두워져 가지고서 멸망을 행복이라, 참 사망을 자취하고 멸망을 자취하는 그런 그 도적같은 행위를 임시 외부만 보고서 행복이라는 그런 행복은 다 조만간에 그것이 사망으로 화해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땅에서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하는 이말은 이러기 때문에 이 세상과 영원 내세, 육과 영, 금생 내세가 다 행복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으로 더불어 서로 상의해 가지고 해결지울라 하는 자는 주홍같고 진홍같은 어떤 죄악이라도 어떻게 잘못 저질러 놓은 것이라도 다 해결돼서 영육이 금생과 내세가 다 행복을 누릴 수 있다 하는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20절에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하나님이 이렇게 상의하자고 해도 상의를 듣지 안하고 패역을 부리면 “땅에 삼키우리라” 칼에 삼키우리라 말은 이는 세상의 환난으로 다 망하고 만다 그 말입니다.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이렇게 말씀 한번 해 놓으면 영원히 추호도 가감이 없이 요대로 절대성을 가지시고 이행하시는 하나님이 지금 선포해 놓은 말씀이다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요 본문에 대한 해석입니다. 거게 대해서 참고로 잠깐 요령만 들어서 증거하겠습니다.

사람은 택함을 받은 사람들과 불택자 두 종류가 있습니다. 택자들은 예수님이 대속의 공로를 베풀어서 구원의 길이 열려 있고 불택자들은 하나님의 심판만 향하여 가지 예수님의 대속이 상관이 없습니다.

이래서 성경 보고 말하는 가운데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대속은 전인류를 위해서 대속의 공로를 베풀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있고, 또 성경을 보고 ‘예수님이 대속하신 것은 택함을 입은 자들에게 한해서 대속을 하셨다’ 이래 가지고 우리 신앙의 선배되는 요한 웨슬레는 ‘전인류를 하나님이 대속하셨다’ 이렇게 말을 했고 칼빈은 `택한 자들만 대속했다’ 이렇게 깨닫고 말했는데 우리는 칼빈의 깨달은 것이 성경적인 것을 알고 믿고 웨슬레의 깨달은 것은 성경대로가 아니라 해서 우리는 그 교리를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을 두 종류로 이렇게 분류해서 보는 것이 성경대로입니다. 그러면 택함을 입는 사람들과 불택자 두 종류로 이렇게 분류해서 보고, 신구약 성경은 전인류에게 대해서 한 말씀도 있기는 있지마는 그것은 택한 자들이 참고로 삼을 만한 그런 몇 가지를 들어서 말했고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은 택한 자들의 복음으로 주신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은 택한 자들이 지켜야 할 이 영생법이지 불택자들은 지킬 필요도 없고 지킬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택자와 불택자로서 사람은 두 종류로서 나누어져 있다. 그런데 불택자들은 이 세상을 저희의 분깃으로 삼아 가지고 어쨌든지 세상에서 잘 살든지 못 살든지 세상만을 소망으로 삼고 살다가 세상 떠날 때에는 영원한 유황불못으로 간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다 죽는데 죽으면 불택자는 죽는 것이 다시 영원한 사망을 받기 위해서 심판의 부활을 받고 택한 자들이 죽는 것은 생명의 부활을 받는다고 성경에 말했습니다.

불택자들은 아무리 불행스러워도 세상 그 불행보다 더 영원한 사망의 불행이 앞으로 계속되는 것이 불택자들에게 대해서 그러하다고 말씀하셨고 또 택한 자들은 죽으나 그 죽는 것이 이 혈과, 피와 고기덩어리로 되어 있는 이 혈육의 몸은 이것은 다 시공에 제한을 받는 저급의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죽는 것은 이 저급의 제한되어 있는 이 심신이 제한을 초월한 무한의 완전한 심신의 것으로 거룩하게 성화함을 받기 위해서 벗기 때문에 이것은 더 좋기 위해서 벗는 것이고 하나는 벗음으로서 영원히 멸망하는 것이라 그렇게 성경이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믿는 자에 한해서 말씀합니다. 믿는 자는 두 가지 길이 있어서 하나는 예수님이 모든 멸망과 멸망할 길을 예수님이 대형으로 대속하셔서 그 길을 벗어날 수가 있는 길을 마련해 놨고 또 믿는 사람은 예수님이 대행하셔서 의를 주셨기 때문에 영원히 의로 살 수 있는 그런 모든 밑받침을 설정해 주신 것이 예수님의 대속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택함을 받아 중생된 사람들은 죄인으로도 살 수가 있고 의인으로도 살 수 있는 것이 택자들의 재세 생활입니다. 재세, 세상에 있는 재세 기간의 생활입니다. 그래서 택함받고 중생된 기독자는 땅위에서 범죄하면서 살 수도 있고 의롭게 살 수도 있고 두 길이 있어서 자기가 자유 선택해 가지고서 두 길을 걷게 되는 것이 기독자의 걸음입니다.

그런데 이 기독자에게 있어서는 멸망케 하는 것이 무엇인가? 멸망케 하는 것은 죄입니다. 죄가 없을 때에는, 죄가 없을 수 있느냐? 예수님이 대형으로 사죄해 주신 이 대형의 공로를 벗지 안하면 그 사람은 예수님이 대형해서 사죄해 주셨기 때문에 그 공로를 입고 범죄하지 안하면 그 사람은 근본 죄가 다 없어집니다.

원죄나 본죄나 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없어집니다.

그래서 택한 자들이 멸망하는 것은 죄로만 멸망하고 또 생명과 행복을 받는 것은 의로만 생명과 행복을 받습니다. 요것이 택자들에 대한 특수법입니다. 불택자들은 죄를 지어도 또 흥할 수도 있고 또 의를 행해도 망할 수도 있고, 물론 근본적인 의는 아니고 다 죄 가운데 있는 것이지마는 그들은 죄를 짓고 의를 행하는 것으로서 그의 모든 생명과 평강과 행복이 좌우된다 그렇게 되어 있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택한 자들은 요것이 다 절대성으로 결정돼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중생된 기독자가 자기에게 어떤 패망이 오면 어떤 그 실패나 멸망이나 오면 그 실패와 멸망이 온 그 원인은 범죄입니다. 그 원인은 죄를 범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자들이 모든 면으로 그 실패나 멸망이 왔을 때에 그 멸망과 모든 실패를 벗고자 하는 것은 다 생의 본능으로 있습니다. 아무리 벗고자 해도 벗는 그 방편은 죄를 회개하는 그 방편밖에는 없는데 그 방편은 쓰지 안하고 제가 오는 불행을 어떻게 벗을라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것은 절대 안 됩니다.

요것을 우리 믿는 사람이 알아야 됩니다.

또 그 사람이 멸망의 원인이 되는 그 죄를 회개하고 청산한 그 사람을 이 세상 사람들이 미워서 그를 매장시키고 어떻게 해 볼라고 아무리 많은 사람이 달라들고 정권이 달라들고 세계가 다 달라들어도 죄 없는 자를 절대 멸하지 못하는 것이 기독자입니다. 죄 없는 자를 멸할 수가 없고 죄 있는 자를 건져 구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요것이 절대성 있는 법입니다.

그러면 믿는 사람이 생명과 평강과 모든 행복을 가져오는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의입니다. 의. 의로만 생명과 평강과 행복이 오지 의 외에 딴걸로써는 오지 않습니다. 아무리 그 사람이 생명과 평강과 행복을 원치 안해도 의롭게 살면 생명과 평강과 행복은 그의 것이고 딴데로 가지를 못합니다. 또 그 사람이 아무리 생명과 평강과 행복을 원한다 할지라도 그가 의가 없으면 그런 것은 절대 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기독자들은 모든 사망은, 망하는 것이나 죽는 것은 다 죄로 인하고 또 생명과 평강의 성공은 의로 인한다. 멸망의 근거는 죄요 생명과 평강의 성공의 근거는 의다 하는 요것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믿는 사람들이 자기가 죄를 안 짓는다고 죄가 없어지는 것 아닌데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 죄를 다 대속했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 예수님의 사죄를 받았는고로 이 사죄를, 죄 없이 해 주셨기 때문에 자기는 죄 없는 자인데 죄 없는 자로 살면 그 사람에게는 사망이라 하는 것은 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망은 절대 안 옵니다.

한 시간 살아서 그 시간 지내갔다고 해서 그것은 썩을 것이 생명으로 옮겨졌고 또 세상 마지막 별세하는 그 시간이 오는 것은 모든 제한된 것이 신령한 것으로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받기 위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지 죽음이라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또 기독자들이 의를 행한다고 어떻게 인생이 의를 행할 수 있느냐? 의를 행하는 것은 예수님이 대신 행해서 의를 행해 주신 대행으로 주신 이 의를 벗지 안하면 의가 있는 것입니다.

기독자의 생활은 죄는 멸망이요 의는 성공인데 죄는 어떻게 하는 게 죄냐? 죄는 자기가 예수님의 사죄의 공로를 벗는 것이 죄인데 자기가 현실에서 죄를 지으면 사죄의 공로를 벗었기 때문에 그는 전체가 죄인 돼 버리고 현실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예수님이 죽기까지 하셔서 사죄해 주셨기 때문에 죽기까지 하셔서 사죄해 주신 이 사죄를 내가 벗을 수가 없다. 나는 다시 이 사죄를 벗고 죄를 입을 수가 없다.’ 하여 죄를 입지 안하고 죄를 범하지 안하면 그는 완전히 무죄자가 되고 맙니다.

또 의도 우리가 행하는 것이야 얼마 행하지 안하지마는 예수님이 대행해서 의가 됐기 때문에 그 현실에서 그 사람이 예수님의 대행으로 주신 그 의를 입고 아무리 어려워도 그 의를 벗어나지 안하고 죽어도 생명을 버렸으면 버렸지 그 의를 벗지 안할 때에 그 사람은 완전한 의인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기독자들은 현실에서 사죄를 벗고, 사죄를 벗어서 완전한 죄인이 되어지느냐? 또 사죄를 입어서 죄 없는 자가 되어지느냐? 또 칭의를 입고 벗지 안함으로 완전한 의인이 되어지느냐? 아무리 칭의를 입었지마는 칭의를 벗어버리면 그 사람에게는 의가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현실에는 죄냐 멸망하고 의냐 다 성공하는데 죄는 어떤 게 죄냐? 현실에서 예수님의 사죄를 벗는 그것은 제가 죄를 범하면 예수님의 사죄를 벗습니다. 현실에서 죄를 범해서 예수님의 사죄를 벗음으로서 완전한 죄인되고 현실에서 예수님의 대행의 의를 입고 벗지 안하고 대행의 의를 입고 의를 그대로 계속해서 행하고 있을 때 그는 완전한 의인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는 죄로만 망하고 의로만 성공하고 구원된다 요것을 단단히 기억하시고, 그러면 기독자가 죄인되는 것은 어떤 게 죄인되는 것이냐? 예수님의 사죄를 벗는 것이 죄인되는 것이요 의인은 예수님의 대행의 의를 입고 벗지 않는 것이 의인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 기독자들은 자기에게 어떤 그 불행이라든지, 실패라든지, 고난이라든지, 고통이라든지, 사망이라든지 이런 모든 나쁜 거 이런 것이 자기에게 오는 것은 예수님의 사죄를 벗은 연고입니다.

예수님의 사죄를 벗은 연고이기 때문에 내가 현실에서 어려워서 예수님의 형을 대신, 대형, 대신 형벌받아 가지고 우리에게 사죄 주셨는데 이 현실에서 어렵다고 벌써 그 사죄의 공로를 벗어버리고, 자기가 죄를 지으면 사죄 공로 벗기 때문에 죄를 범하여 사죄 공로를 벗으면 그 사람에게 오는 것은 사망밖에는 다른 거 오는 게 없습니다. 아무리 천하가 다 달라들어 구원할라 해도 안 됩니다. 사망만 그에게 계속 소낙비 퍼붓듯이 퍼붓게 됩니다.

또 그 사람이 현실에서 죽기까지 대신 행하셔 가지고 우리에게 의를 주신, 하나님의 공심판 통과하는 의를 주신 이 의를 자기가 죽어도 이 의를 벗지 안하고 이 의만 벗지 안하면 결단코 그 사람을 해칠 자가 없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사자구덩이 들어갔지마는 의를 벗지 안했기 때문에 그의 생명 전에 죽지를 못합니다. 사자가 해하지 못합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도 그가 아무리 불 가운데 넣었지마는 그가, 그때는 예수님이 대속하기 전이지마는 대속을 그림자로, 모형으로, 예약으로 한 것이 짐승으로 대속하는 것인데 짐승은 예수님을 모형한 것입니다. 짐승의 대속으로 대속을 입고 범죄하지 안했기 때문에 범죄하지 안하는 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불이 태우지 못하고 사자가 먹지 못합니다.

그때만 그런 게 아니라 오늘도 그러합니다.

우리가 사망의 해를 당하는 것은 다 사죄의 공로를 벗음으로 사망의 해가 오지 사죄의 공로를 벗지 안하고 계속해 입고 있으면은 사망의 그 해는 우리에게 오지를 못하는 것이고 또 칭의의 공로를 입어야 모든 생명과 평강의 그 행복이 오지 이 의를 입지 안한 데에 생명이나 평강이나 행복이라 하는 것이 올 수 없는 거 이거 다 절대성입니다. 이게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선포해 놨기 때문에 이거는 변해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원치 안하는 것이 있으면은 내가 예수님의 사죄 공로를 벗어 죄인된 그것이 원인이라 하는 것을 깨닫고 그걸 찾아서 청산하면 속히 그 모든 것이 수습되고 또 자기가 원하는 모든 생명의 그 행복이 영광스러운 것이 오지 안하면은 나는 그 행복의 근거요 원인이 되는 칭의를 내가 벗었기 때문에 그렇으니까 칭의를 빨리 입어야 되겠다 해서 예수님의 대행의 칭의를 빨리 입으면 그에게는 생명과 평강이 안 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요것을 확정지워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몇 가지를 주시는가?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현실을 주시고, 현실. 이런 저런 모든 각종의 현실을 주시고 그 다음으로 주시는 것은 영감을 주시고 진리를 주십니다. 현실을 주시고 영감을 주시고 진리를 주십니다.

그러면 현실을 주시고 영감을 주시고 진리를 주시는데 영감과 진리는 이 현실을 내가 어떻게 지금 걸어가야 되느냐 이 현실을 어떻게 작용하느냐 하는 데에 영감과 진리대로 작용하면 그 현실은 다 생명이 되어지고 구원이 되어지고 현실을 영감과 진리로 작용하지 안하고 그 현실을 악령 악성 악습인 자기 인간 주관 만물보다 거짓된 자기 욕심이나 모든 자기 주관이나 자기 선입적 관념이나 기존 지식 이런 것들 가지고서 현실을 해석해서 그대로 처리하면 전체가 다 사망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그 세 가지가 있는데 세 가지 하나는 현실을 주시고 하나는 영감 주시고 진리 주시고 셋 줍니다. 요거 기억하십시오.

셋을 줍니다. 셋을 주시는 목적이 뭐이냐? 하나님이 이 셋을 주시는 목적이 뭐이냐? 셋을 주시는 목적은 우리에게 모든 사망된 것을 치료하시기 위해서 이것을 주시고 생명된 것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주셔서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 이 세 가지를 주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하나님의 모든 진노의, 하나님의 진노의 징계와 멸망은 뭘로 오느냐? 멸망은 뭘로 오느냐? 죄를 통해 가지고 다 흘러내립니다. 하나님의 이 생명과 평강의 무한한 그 충만한 모든 은혜는 의를 통해서 흘러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 세 가지를 뭐할라고 주시느냐? 이 세 가지 주시는 것은 첫째는 우리에게 죄를 멸하기 위해서 이 세 가지를 주십니다. 또 이 세 가지 주신 것은 우리에게 의를 건설되도록 하기 위해서 이 세 가지를 주십니다.

또 하나님께서 죄를 정리하고 의를 건설하기 위해서 이 현실을 주시고 또 하나는 뭐이냐? 우리에게 하나님의 무한한 축복을 우리에게 주실 때에 이 축복을 가지고 누려서 감당할 수 있는 실력가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이 세 가지를 주십니다, 이 세 가지.

그라고 난 다음에 이 또 세 가지는 뭐할라고 주느냐? 이 세 가지는 하나님의 모든 충만한 그 생명과 평강과 모든 전지 전능의 영광과 존귀 하나님의 모든 좋은 것을 다 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이 세 가지를 주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한번 물어볼 터이니까 여러분들이 답을 해 보십시오. 소리로 답하지 안할지라도 속으로 자기가 답을 하고 ‘내 답은 맞았다 안 맞았다’ 그렇게 좀 확정을 지우십시오.

택한 자들 성도들에게 모든 사망과 불행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죄입니다. 답이 맞습니까? 자기가 답을 해 보라 말이오. 그러면 정답을 내가 말할 터이니까.

또 택자들에게, 택하고 중생받은 자들에게 모든 생명과 모든 좋은 것이 우리에게 오는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의. 다 그래 됐습니까? 자기 답과 내가 답하는 것이 맞습니까? 맞는가 봐요.

또 하나님께서 이 죄를 다 멸해서 치료하시고 우리를 의로운 자로 만드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이 두 가지를 작용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그 주시는 것은 몇 가지를 주십니까? 몇 가지를 주십니까? 녜, 세 가지를 주십니다. 현실과 영감과 진리를 주십니다. 현실과 영감과 진리를 주십니다.

현실과 영감과 진리는 뭐할라고 주시느냐? 죄를 청산하도록 하기 위해서 주십니다. 의를 가진 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주십니다. 그러면 두 가지, 죄 의 두 가지. 그 다음에는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온갖 권세나 지위나 영광이나 존귀나 부강이나 어떤 것이든지 그런 것을 받아 가질 수 있는 실력가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이 세 가지를 주십니다. 이해가 됩니까? 그 다음에 넷째로는 뭐 주시느냐? 이게 되면은 하나님께서 그 실력을 갖춤에 따라서 하나님이 온갖 그 충만한 은총을 그에게 내려 주십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하는 말씀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드시고 멸망의 원인을 정리하시고 모든 생명과 구원의 원인을 수립하시고 또 우리로 하여금 그런 모든 멸망을 피하고 행복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그런 영광스러운 생애를 영광스러운 지위와 그런 그 행복을 가지고 누릴 수 있는 감당할 수 있는 실력가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것을 이 세 가지를 베풀어 주십니다.

또 그라고 난 다음에 그라면 죄 청산, 의 건설, 우리 자체의 실력, 그라면 이제 또 남아 있습니까 없습니까? 남아 있습니까 없습니까? 몇 가지 남아 있습니까, 손가락으로? 하나 들어요, 다 하나. 손가락 하나 들어. 하나라, 하나. 하나 남았어.

뭐? 하나님의 충만한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그거 하나 남았다 그 말이오.

그러면 하나님의 충만이 우리에게 오는 데에는 어떻게 돼야 오는가? 충만한 것을 받아서 감당할 만한 자격자가 되어야 온다. 자격자가 되어야 온다. 자격 없는 자에게 지위를 줘도 그것은 사망이오. 자격 없는 자에게 돈을 줘도 사망이오.

자격 없는 자에게 권세를 줘도 사망입니다. 제 실력에 맞은 것이 와야 자기에게 행복이지 실력 이상의 것은 자기에게 다 사망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실력 없는 자에게 무슨 행복이 올 수 있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행복은 실력의 소산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행복은 실력의 소산이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서로 의논하자. 네 죄가 주홍같고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눈과 같이 양털같이 희게 되고 땅에서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수 있다.

나로 더불어 변론하자. 나로 더불어 변론하자, 의논하자.” 변론하자와 의논하자와는 조금 다릅니다. 의논하는 것은 이랄까 저랄까 이런 거 수립하는 것이고 변론하는 것은 ‘야, 이것은 틀렸다. 이거는 틀렸다.’ 변증, 변호사의 변증, `이거는 틀렸다. 요라면 된다.’ 변론이라 하는 것은 안 될 것을 이렇게 저렇게 되도록 모든 것을 다 그렇게 조직해 가지고서 되도록 하는 그런 것이 변론입니다.

이래서 주님을 우리의 변호사라 이래. “하나님 앞에 우리 대변자가 있다” 예수님을 우리의 대변자라, 성령을 우리의 대변자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서로 의논하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첫째는 죄가 청산돼야 되겠고 의가 건설돼야 되겠고 하나님의 행복을 감당할 수 있는 실력가가 돼야 되겠고 또 하나님의 행복을 갖다 주어야 되고 하는데 이 네 가지를 하나님이 주시는데 이 네 가지 주시는 이 의논에 서로 합의해 가지고서 하자 하시고 말하는 것인데, 이 네 가지를 주시는데 이 네 가지를, 죄를 정리하고 의를 건설하고 또 실력 있는 자가 실력을 갖추고 하나님의 무한하신 것을 다 자기가 은혜로 다 받아 가지게 되고 이렇게 하면 그라면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십시오. 몇 가지 축복입니까? 녜, 한번 들어 봐요. 자, 이래 한번 들어 봐요. 녜, 네 가지 축복이요, 네 가지 축복.

이 축복이 참 큰 축복입니다. 암만 파고 나벼도 나비면 맛이 더 있소. 여러분들이 죄를 정말로 정리해 보십시오. 얼마나 맛이 있는지? 뭐 의를 건설하는 것이나 죄를 정리하는 것이나 다 맛이 같습니다.

사람이 된 사람은 빚을 청산하는 것이나 돈을 모으는 것이나 재미는 꼭 같습니다.

‘돈 모이는 재미는 있어도 빚 청산하는 재미는 없다’ 하면 그자는 빌어먹을 자입니다. 좀 있으면 빌어먹습니다. 남한테 빚진 그거 하나씩 갚아서 정리해 나가는 것이나 돈을 모아 나가는 것이나 재미가 꼭 같은 재미입니다. 죄를 정리하는 것이나 의를 건설하는 것이나 재미가꼭 같은 재미라 그거요.

그런데, 그러면 죄의 문제 의의 문제 우리 실력의 문제 또 하나님의 충만을 우리에게 주시는 문제 이 네 가지를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 네 가지를 주시기 위해서 주시는 방편이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맞았어. 이 세 가지, 세 손가락 맞아요. 이 세 가지 방편 가지고 네 가지 줘요. 세 가지 방편 이거 가지고.

세 가지 방편이 뭐인데? 세 가지 방편이 뭐이요? 첫째? 현실, 첫째 현실. 이러기 때문에 현실은 우리가 몰라서 ‘이 현실은 불행스러운 현실이다 행복스러운 현실이다’ 현실은 가치가 꼭 같습니다. 현실은 우리에게 이용 가치가 꼭 같습니다. 또 현실은 우리에게 그 효력이 꼭 같습니다. 이 현실마다 우리를 대속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구원 현실로 우리에게 만들어 주십니다. 현실, 또 하나는? 영감, 또 하나는? 진리. 이 셋이면 다 돼.

이 셋이면 이 셋은 뭘 하는 셋이냐? 이 셋은 현실 만나고 당신이 영감과 진리를 줘서 ‘요대로 해라’ 하는 그대로, 현실을 그대로 행해 나가면 거게서 죄가 절단났든지, 의가 건설됐든지, 자체가 온전한 사람으로 실력이 마련되든지,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가 오든지 넷 중에 어느 것이든지 옵니다. 넷이 한목 올 때도 있고 하나씩 올 때도 있고 이런 것이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우리에게 수많은 그 은혜를 주실 것이 수가 한도 없는데 무한한 수의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는데 그 은혜를 우리에게 주실 때에 돈을 줄 때는 어떻게 주며, 권세 줄 때는 어떻게 주며, 지금 자기가 자살할라 하는 그런 불행 가운데서 거기서 기쁨과 평강을 주실 때는 어떻게 주며, 자기가 멸시 천대 받는 데에서 존대함을 줄 때는 어떻게 주며, 거지가 돼서 가난해 있는 자에게 부요를 줄 때는 어떻게 주는가? 권세 줄 때는 어떻게 주는가? 지혜와 총명을 줄 때는 어떻게 주는가? 학생이 공부할 때에 공부를 잘하도록 명철을 줄 때에 어떻게 주는가? 하나님의 충만을 우리에게 주실 때에, 하나님의 충만을 우리에게 주실 때에 뭘로 주십니까? 하나님의 충만을 우리에게 주실 때에 뭘로 주십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몇 가지로 주십니까? 이 세 가지로 주십니다, 이 세 가지로. 요것을 볼끈 잡고 놓지 안하면 간단해도 그만 그 사람 다 돼요.

이러니까 영감과 진리만 줘도, 영감과 진리만 줘도 현실 안 주면 안 돼. 이 현실에 해당된 영감과 진리 있는데 영감과 진리를 주고 난 다음에 현실을 줘야 그 현실에 맞은 영감과 진리대로 행해야 되지 신구약 성경이 어데 영감 아닙니까? 신구약 성경대로 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라. 그 신구약 성경 구구절절을 행할 수 있는 그 현실에서 행해야 그것이 믿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것 주실 때는 이것을 만들 때는 당신이 ‘오늘은 백 목사에게 대해서는 오늘 백 목사 죄를 좀 청산해야 되겠다’ 하면 나는 모르지요.

그라면 죄를 청산할 수 있는 현실을 주십니다. 청산할 수 있는 현실을 줘서 그 현실에 하나님의 영감과 진리를 줄 때 그대로 행하면은 죄가 청산됩니다.

또 의를 행할 때는 또 의를 건설할 수 있는 현실을 줍니다.

나를 만들어야 될 때는 나를 만드는 데에, 나를 만드는 데 꼭 그 현실이어야 되지 그 현실이 아니면 안 될 때에는 그 현실을 주셔 가지고 나를 만들게 합니다.

또 하나님이 당신의 충만을 줄 터인데, 이 충만을 줄 터인데 요 충만을 주는 데에는, 요 충만, 요 종류의 충만을 주는 데에는 요 사람이 요 영감과 진리를 순종해야 될 터이니까, 그 영감과 진리를 순종해야 될 터이니까 그 영감과 진리를 순종할 수 있는 그 현실을 줘야 된다 말이오. 그 현실을 줍니다.

이렇게 전지 전능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현실도 네 가지 중에 요거 주실 때는 요런 현실 조거 주실 때는 조런 현실, 우리는 모르지마는 당신은 전지하신 그 지혜로 우리를 대속하신 그 사랑을 가지고서 우리에게 ‘너는 요면이 있어야 되겠다. 요면이 모자란다. 요면이 부족하다. 요면은 너무 지나쳤다.’ 이 모든 걸 조절하기 위해 가지고서 우리에게 각양의 필요한 현실을 주시기 때문에 이 현실에 지극히 보배로운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의 이 사랑의 역사인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현실을 뺏기지 않습니다. 이 현실 뺏기지 안해.

이 현실은 내가 되고, 이 현실은 죄가 정리되고, 이 현실에 의가 건설되고, 이 현실은 하나님의 충만을 내가 가져오는 현실이니까 이 현실을 놓칠 수가 없어.

그러기 때문에 현실을 닥쳤으면 좋은 보배가 담아 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은 참 좋은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은 전부 현실로 현실로 엮어 나가고 있지 않습니까? 현실 없는 어데 생명이 있습니까? 이러니까 이 현실마다 우리에게는 지극히 큰 보배이기 때문에 현실은 왔는데 이 현실을 악용하면, 현실을 악용하면 죄를 정리하면커녕 죄가 더 될 수 있고, 의를 건설하면커녕 도리어 의를 파괴시킬 수 있고, 또 현실을 잘못 이용하면 내가 사람 되는 게 아니라 내가 더 못쓸 사람 돼 버리고, 또 현실에 하나님의 축복받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수도 있고, 이러니까 현실을 잘못 사용하면 안 되기 때문에 요 현실에 대해서 ‘하나님이 선물의 현실을 주셨다. 주셨으니 요게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되나? 당신이 나에게 주시는 이 영감과 진리를 내가 바로 받아 가지고 요대로 하면 네 가지 중에 어느 것이든지 성공이 된다. 어느 것인지 나는 모르지마는 요게 된다.’ 그러나 영감과 진리를 받아서 그대로 하지 안하고 내 욕심대로, 내가 현실에서 내 욕심대로 행하고, 친구들이 권면하는 대로 하고, 내 감정대로 하고, 내 정욕대로 하고, 사회 여론대로 하고, 직장 따라 하고 모든 위에 있는 사람 아래 있는 사람 이런 것 따라 하고 이렇게 움직이면 그 현실은 악용한 것입니다.

악이 뭐이 악입니까? 자기 중심 자기 위주가 악입니다. 그 현실을 악용했습니다.

악용은 자기 중심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그 현실에 맺어질 것은 네 가지가 맺어집니다. 뭐이 맺어집니까? 죄가 맺어지고, 또 불의가 맺어지고, 못쓸 사람 자기가 돼져 버리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가 자기에게 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 밤에 주신 이 말씀을 가만히 새겨 가지고서 이것을 놓지 마십시오. 믿는 사람이 죄 외에 해되는 게 없습니다. 천인 만인이 나를 그뭐 첩첩 속에 파묻어 놨다 할지라도 거게서 죄를 청산하면 그거는 나를 해할 수가 없습니다.

요나가 바다에 던짐받았지, 넓은 바다에, 다시스로 가는 넓은 바다에 던져버렸으니까 제까짓 게 어떻게 살 것이요? 바다에 던짐받았지, 큰 고기 속에 널컴 삼켜 들어가 버렸지, 헤고날 희망 없어.

마는, 그가 보면은 거게서 하나님을 바라봤어. ‘하나님이여, 내가 비록 내 위에 물이 수많은 물이 위에 채여 가지고 있고 내가 짐승 뱃속에 들어왔지마는 내가 회개합니다. 죄 없는 자를 삼킬 수 없습니다.’ 회개할 때에 고래 그놈이 확 토해서 육지에 토해 내트린 것을 이것이 우리에게 이 구원 도리의 계시로 보였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가 어떤 그 불행이라도 죄만 청산하면 불행은 다 바싹 말라버리고 마는 것이고 아무리 자기가 행복을 원해도 의를 마련치 안하면은 거게는 행복이 맺어질 수가 없는 것인 것을 우리가 똑똑히 기억합시다.

그러면 죄 청산과 의 건설은 언제 해야 됩니까? 현실에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현실은 보배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감당할 수 있는 실력가를 만드는 것은 언제 만듭니까? 현실에 만듭니다. 하나님이 모든 축복을 주고자 원하셔서 모든 축복을 들고 우리에게 쏟아 주실 때에는 언제 주십니까? 현실에 주십니다.

현실에 주시는데 뭘로 주십니까? 영감과 진리로 주십니다. 영감과 진리, 영감 진리대로 하니까 현물이 됐습니다. 영감과 진리대로 했더니마는 성공이 됐습니다.

영감과 진리대로 했더니마는 구원이 됐습니다. 영감과 진리대로 했더니마는 권세가 됐습니다.

그래 내가 답답한 것은 한국에 이미 목사도 못 되고 이 구원의 사람이 못 되고 이거 세상에 정권을 탐하거들랑 모든 것을 주권하고 계시는 이 하나님께서 ‘오, 너 중량을 달아 보니까 이 민족을 맡길 만하다.’ 할 수 있는 그 현실에서 얼마든지 네가 정권을 잡을 수 있는 그 현실이 닥쳐왔으니까 그 현실 놓지 말고 그 현실에 영감과 진리대로 행하면은 단번에 돼.

뭐 요셉이가 정권 잡은 것이 그게 시간이 걸렸습니까? 하나님이 주시니까 대번 줘 버렸어. 다윗이 정권 잡은 것이 그 사람이 꿈이나 꾸고 정권 잡았습니까? 주시면 그만 돼.

이러니까 돈을 보고 사는 자야, 너 권세를 보고 사는 자야, 이 무슨 복음을 보고 사는 자야, 뭐이든지 네가 소원하는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여게 있다.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요 세 가지에 있다. 세 가지에 있으니까 뭐이든지 세 가지 하면은 세 가지 그것이면 오만 것 다 돼.

자, 이 세 가지에서 몇 가지가 됩니까, 손가락으로? 네 가지. 네 가지면 다지, 뭐.

다 아닙니까?

광고합니다.

반사 선생님들은 공과를 꼭 외우시기 바랍니다. 기도록에 등록수는 등록한 사람은 팔천육백오십사 명입니다. 새벽기도 빠지지 말고 다 나오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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