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16 11:05
제목: 38년 된 병자
본문 : 요한복음 5장 1절-18절
그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거기 삼십 팔년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 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한대 저희가 묻되 너더러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가 누구신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 된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여기에 기록된 이 역사적인 이 사실은 과거에 있었던 역사를 우리에게 소개해 주시는 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요 또 기록해 주신 목적도 아닌 것입니다. 이는 우리 구속받은 자들에게 건설구원을 이루는 구원의 방편을 가르쳐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외부적으로 있었던 이 표적을 나에게 구원 도리로 주신 것을 우리가 찾아 깨닫고 구원의 방편으로 삼는 것이 이 말씀을 복음으로 받는 복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여게 유대인의 절기라 하는 것을 1절에 기록했습니다. 이 절기는 송구영신하는 절기입니다. 옛 것을 버리고 새 것을 취하는 송구영신의 이 절기입니다. 이 사실이 송구영신 그 절기 날에 된 것은 이것도 우연히가 아니고 하나님의 영원 전 구속을 위한 계획이요 예정인 것입니다. 여기에 기록된 이 내용은 언제나 우리 구속받은 자들에게는 송구영신되는 절기에 일어나는 일이라 하는 것을 가르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또 새롭게 증거함을 듣고 또 새로 이 도리를 한번 주님에게 깨우쳐 주심을 받는 오늘입니다. 그러면 오늘은 우리는 주님 앞에서 송구영신하는 절기를 맞이한 이 절기라 이렇게 깨닫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면, 여기에 기록한 이 도리는 일 년에 한 번만 이 도리를 써먹을 도리인가? 혹 일 년에 한 여남은 번 써먹을 도리인가? 날마다 이 도리를 우리가 써서 구원을 이루어야 할 것인가 하는 데 대해서 우리는 여게 기록되어 있는 이 형식을 가지고 우리 구원 도리를 가르쳐 주신 이 구원 도리는 날마다 우리가 써야 합니다.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계속 날마다 써야 합니다. 그러기에 이 도리를 우리가 써서 이 도리대로, 도리라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길 도(道)자 이치 리(理)자, 우리가 살아가는 이치라 그 말입니다. 도리라 그 말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치라, 걸어가는 이치라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 도리를 우리는 세상 떠날 때까지 날마다 이 도리를 사용해서 우리 구원을 이루어 가야할 우리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송구영신하는 절기라 하는 것을 명심하고 잃지 안해야 하겠습니다. 밤에도 이 시간 나는 잘못된 것을 다 던져 버리고 또 새로워져야 된다. 못쓸 것은 버리고 또 새로워져야 된다. 그래서, 우리는 밤이나 낮이나 언제든지 세상 떠나는 날까지 날마다 자신은 고쳐야 할 날이요 시간이요 또 더러운 것을 버리고 새로워지고 깨끗해져야 할 그 시간인 것을 언제든지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구원은 다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구원입니다. 믿음으로 이루어진다?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이 사실을 의심 없이 확실히 믿고 또 그 다음에는 그대로 지켜 행하는 것이 그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신구약 성경에 우리 구원 도리로 주신 이 도리를 믿지 않은 사람에게는 하나님도 이 도리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믿음으로 우리가 건설구원에는 관계가 시작되는 것이지 믿지 안하면 상관이 없습니다. 믿음으로 시작되고 행함으로 그 구원의 실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는 길을 가면서도 나는 송구영신의 절기를 맞이하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이 시간에도 송구영신할 시간이다. 밤에 자다가도 깨면, 나는 이 시간에 나는 송구영신할 이 시간이다. 뭐 낮이나 밤이나 바쁠 때나 틈날 때나 언제든지 죽는 날까지 우리는 시간 시간마다 자기는 새로워져야 할 시간이요 고쳐야 할 시간이요 더러운 것은 씻어 버리고 깨끗하게 해야 할 그 시간인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면서도 말씀하시기, 베드로가 '선생님이 어찌 제자들의 발을 씻기십니까? 내 발은 결코 씻기지 못합니다. 이랄 때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의 발을 씻지 안하면 너와 나와 상관이 없다' 했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말하기를 '내 발뿐 아니라 몸까지 다 씻어 주시옵소서' 이렇게 간청을 했습니다. 그럴 때에 주님이 대답하시기를 '이미 너희들은 목욕하였으니 발만 씻으면 깨끗해진다' 그렇게 말씀하신 일이 제자들의 발을 씻으면서 하신 교훈입니다.
그 교훈은, 전신을 목욕했다 그 말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어서 의인된 사람들은, 발만 씻으면 된다 말은 의인이 됐지만 하루 생활을 살고 보면 또 더러워진 것이 있으니까 더러워진 것을 주님의 공로에 고해서 사함받고 또 새로워지고 또 깨끗해지고 또 고치고 또 고치고 자꾸 이렇게 함을 받지 안하면 구원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말씀에서 첫째로 기억할 것은 밤이나 낮이나 언제든지 나는 고쳐야 할 시간이요 새로워져야 할 시간이요 더 온전해져야 할 시간입니다. 내가 감옥에 있어도 온전해져야 할 그 시간이요 무슨 이렇게 잘못 돼서, 억울하게든지 또는 죄를 지어서 처벌로 당하든지 만일 사형 선고를 받아 가지고 사형장에 나아갔다고 하면은 그때는 뭐 죽을 것밖에 없는 것이지만 거게서도 우리는 이 송구영신의 이 계시를 놓지 안해야 됩니다. '나는 이 시간 사형받을 자라' 그것보다도 '이 시간도 나는 새로워질 수 있고 깨끗해지고 이 시간도 나는 고칠 수 있고 이 시간도 나는 온전함을 이를 수 있는 내 시간이다' 하는 것을 기억하고 주님이 부르실 때까지 병석에 있든지 불행 중에 있든지 환난 중에 있든지 어떤 난제의 복잡 속에 들어 있을지라도 우리는 '이 시간 나는 새로워질 자다. 이것 때문에 주님이 송구영신 그날에 삼십 팔 년 된 병자를 고치신 것으로써 나에게 구원 도리를 가르쳐 주셨다.' 이것을 기억하고 언제든지 새로워지는 그 시간인 것을 깨닫고 새로워질라고 애를 써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계약한 것이기 때문에 새로워질 수 있다 '뭐 만신창된 게 내가 뭐' 아니다.! 만신창된 나도 새로워질 수 있다 하는 요것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이 계약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예수님께서 삼십 팔 년된 병자에게 제일 먼저 찾아 가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계시하는 것인가? 수많은 병자들이 있었지만 예수님의 마음은 첫째로 제일 중한 자에게 찾아가신 것을 여게 보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육신의 병도 병이지만 우리의 마음병은 더군다나 더 복잡하고 큰 병입니다. 사람이 팔 하나 없는 것도 병이요 눈 하나 어두운 것도 병이지만 우리 마음에 안 가질 성질 하나 가지고 그 병든 성질 하나 가져서 고 성질 하나 못 고쳐 가지고 일생을 망치고 영원을 망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자기 속에 안 가질 나쁜 욕심병 하나 들어 가지고 욕심 그놈 때문에 일생 동안 고생하고 실패하고 금생과 내세를 블쌍하게 되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또 자기에게 나쁜 그습성, 나쁜 버릇, 나쁜 구습, 나쁜 버릇 하나 있어 가지고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해서 그 버릇 때문에 망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가 가지지 안해야 될 그 취미, 가지지 안해야 될 그 취미 하나를 이것을 고치지 못하고, 가지지 안해야 될 그 취미, 자기를 망치는 취미, 자기를 망치는 그 즐거움, 자기를 망치는 그 시기, 자기를 망치는,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 원수 맺는 그 원수성을 가진 사람. 제가 삼대를 그 부모의 원수된 그 원수를 대대로 물려서 삼대를 망하는 것을 봤습니다. 아버지가 원수를 아들에게 유언으로 넘겨주고 아들이 원수 그래 가지고 그 가정이 마지막에 완전히 망하는 걸 봤습니다.
그러면, 우리 사람들이 마음 안에 자기 망치고 다른 사람 망치고 자기에게 가까운 사람 망치는 그 병이, 마음병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육신의 병이 든 그것은 불편하지만 불편하지 자기를 망치는 병은 많이 하지를 못합니다. 육신이 병들수록 오히려 자기 망치는 일은 좀 적게 하게 되고 못하게 되기 때문에 육신의 병 들어 가지고 큰 손해가는 것은 없지만 건강하면서 마음병 든 그 사람이 아주 비참합니다.
어떤 사람은 안 될 취미 안 될 욕심, 보면, 그 사람은 참 일생 동안 여자 얼굴 뺀드히리한 미인 하나 욕심 들여 가지고 그 미인이라는 여자를 하나 하나님 법칙을 어겨서 욕심대로 취해 가지고 일생을 망치고 대대로 완전히 그 가정을 망치는 그런 것도 얼마나 많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육신의 병든 것만 알지만 육신의 띵보다도 마음병 든 것은 그 해독이 극히 심한 것입니다.
이랬는데 예수님께서 삼십 팔 년된 병자에게 가셔 가지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 먼저 이 삼십 팔 년된 병자와 서로 대화를 나눴습니다. 이것이 둘째로 우리가 깨달을 것입니다. 깨달을 것은 예수님은 사랑의 주님이시기 때문에 제일 약자, 제일 망해 있는 자, 제일 비참한 자, 제일 가련한 자, 제일 그 영육이 가련하고 경제면으로도 가련하고 활동적으로도 가련하고 신체적으로도 가련하고 그 지능적으로 가련하고 성 질적으로 제일 가련하고 쓰지 못하고 참 비참하고 가련한, 제일 가련한 그 자에게 예수님의 사랑은 먼저 가게 되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자기에게 먼저 오도록, 그 사랑이 내게 더 강하게 오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그 못쓸 사람 병든 사람 그런 사람 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자! 게 제일 먼저 사랑의 마음이 가셔서 동정하시고 구원하셨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이라면 이 말씀을 믿을 때에 예수 믿는 사람으로 제일 불쌍하곳 비참한 사람이 제일 큰 소망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공연히가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자연 계시예서 보면 그 가정에 가 보니까 미끔미끔한 그런 아들 딸들이 많이 있습니다. 거기에 보니까 참 비참하고 가련한 꼴막거려서 얼른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 하는, 야주 못나고 병신, 온갖 병신 다 가지고 있는 그 가련한 쪼그만한 그 병신이 하나 있습니다. 있으면 그 가정에 그 형제들의 사랑이나 동정이나 관심이나 부모의 사랑이나 동정이나 관심이 누구에게 가서 있다고 생각합니까? 제일 병신에게 가 가지고 있기 마련인 것입니다. 이 사랑의 세계는 그런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가정이 아닌 다른 이 사회에서야 가 그런 사람 있으면 피할 것이고 그런 사람 있으면 집어 던져 버릴 것이고 이런 건데 사랑이 있는 그 세계에는 그렇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불우한 이웃을 돕는다는 이것은 아주 귀한 일입니다.
이것은 민족적인 사랑 국가적인 이 사랑이 있다는 표시입니다. 약자를 찾아서 돕자 하는 이것은 그 사랑의 나라요 사랑의 사회요 사랑의 민족이라 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세계 모든 열국들이 우리나라에서 불우의 이웃돕기에 그 찬조금 오는 그런 것을 이 테레비에서 보고 '이 나라는 사랑의 나라요 사랑의 민족이요 사랑의 백성들이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지금은 빈약하지만 조만간에 큰 행복이 와서 성공될 터이니까 이 나라에 우리가 투자하기를 아끼지 말자' 해 가지고 그분들이 북 투자해 가지고 사업을 자꾸 동업하자고 그렇게 같은 제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도성인신 하셨고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신 사랑의 주님이시기 때문에 주님은 가장 약하고 병들고 못쓰고 더러운 죄인 아주 못쓸 죄인 그 죄인에게 주님의 사랑과 관심과 그 능력의 은혜 역사는 더 크다는 것을 둘째로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에, 이 사실을 믿을 때에 자신이 어떤 큰 암흑을 당했을 때에 그때에 절망하지 말고 암흑 당하기 전보다 암흑 당했을 때에 주님이 나를 긍휼이 여기시고 나를 챙기시는 것은 이전보다 더하다는 것을 우리가 그때에 믿어야 합니다. 그게 공연히가 아니고 또 사실입니다.
또 우리가 이 사실을 믿을 때에 나는, 세상에서는 잘난 사람은 높이고 대우하지만 가련한 사람은 피하지만 주님은 그 사람에게 관심이 더, 심각하시니 내가 도울 것이 없는 그런 훌륭한 사람을 돕는 거보다도 아주 그렇게 허무하게 가련하게 돼 가지고 있는 그 사람을 도울 때에 주님은 더 기뻐하시고 더 주님을 대접하는 일이 된다는 것을 또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둘째로는 이것을 기억해야 되겠고
또 셋째로는 양문 곁에 솔로몬의 행각이 있는데 거게는 뭐 별별 환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수많은 환자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 예루살렘 그 성 안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는 예루살렘 성전 안이라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면 예루살렘 성전 울타리 안에는 이 세상에서 보기 드문 수많은 환자들이 뭉쳐 있다는 것을 그것을 여게 계시했습니다. 또 성전 안에는 그런 병신들만 있느냐 하면 병신이 아닌 참 심신이 다 거룩하고 깨끗한 의인들이 그 안에는 많이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교회라는 것은 세상이 알지 못하는. 거룩하고 의인들도 하나님의 교회 안에는 많이 있습니다. 동시에 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면 의인이지 이렇게 생각하지만 교회 안에는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참 참혹하고 비참한 그 악인들도, 죄인들도 잔인한 자들도, 동정 없는 자들도, 무정한 자들도, 흉측한 절도 강도 이런 자들도, 이런 못쓸 인격을 가진 그런 사람들도 교회에는 많이 있는 것을 여게 표시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각자들은 생각하기를 하나님의 교회에는 참 흠없는 성자들과 성녀들도 많이 있는데 나는 보자 하여 자기를 찾아 가지고 자기는 세상에서도 볼 수 없는 그런 못쓸 죄인이요 독사와 시랑이와 같은 거짓된 참 흉한 그런 죄인이라 하는 그 죄인을 찾아 가지고 자기는 그런 죄인이라는 것을 찾아서 아는 그것이 셋째로 중요한 것입니다. 공연히 교회는 나오면 나는 성도라 의인이라고 하는 그것만 생각지 말고 세상이 나를 몰라 그렇지 나는 세상에서 볼 수 없는 그런 참 죄인이다 하는 그 죄인을 찾아서 자기는 죄병든 그 죄인이라 하는 것을 아는 것이 그게 여기 교훈에서 셋째로 중요한 교훈입니다.
또 네째로는 주님이 낫고자 하느냐 이래 물으실 때에 낫고자 한다고 그 소리는 하지 안하고 이 환자가 무슨 대답을 했는고 하니 '이 물이 동할 때에 내가 가기 전에 다른 사람들이 먼저 내려가고 또 다른 사람들이 나를 도와서 먼저 갖다 넣어 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나는 이 병을 고치지 못하고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에 주님이 거게 대해서 그것을 부정했습니다.
내가 말하기를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니 네가 낫고자 하는지 안 하는지 그것만 대답하면 될 일이지 여게 물이 동할 때에 내가 제일 병이 중하기 때문에 나보다 다른 사람이 먼저 들어가서 안 됩니다. 나를 도와 줄 사람이 없어서 안 됩니다. 물이 동할 때 먼저 들어가서 내가 들어가지를 못해서 안 됩니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을 주님께서 꾸중했습니다. 그런 것은 네가 말하지 말고 그런 것은 네가 생각지 말고 내가 말하는 대로 낫고자 하느냐 할 때에 네가 낫고 싶으면 낫고 싶다고 말하고 낫기 싫으면 낫기 싫다고 그거나 대답할 일이지 그런 쓸데없는 말을 하고 있느냐 하는, 네 가지, 그 병신이 말하는 것을 거부하고 책망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대속하신 주님 앞에 있는 우리들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받아서 사죄와 칭의와 화친을 받아 하나님의 의를 입은 오직 나의 의인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히브리서 10장에 말씀하신 거와 같이 '오직 나의 의인이라'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의인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앞에 있는 사람들인데 예수님이 낫고자 하느냐 이 말씀하시니까 거게 대한 대답은 하지 안하고 엉뚱한 대답 네 가지를 했습니다.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메어다 줄 사람이 없고, 내가 가기 전에 다른 사람이 먼저 들어가고, 내 발로는 걸어가지 못할 중한 병이 들었고, 이 네 가지를 말했습니다.
물이 동할 때에 사람들이 고쳐지는 과거 방편, 과거 역사가 지나가는 가운데에 이런 방편도 있었고 저런 방편도 있었고 안 믿는 사람들에게도 별별 그런 기적들이 있었고 믿는 사람들에게도 여러 가지 방편이 있지만 과거 방편 말하는 것을 주님이 부정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이 세상에서 무슨 어떤 그 도의 수양을 가지고 그 사람의 정신을 고쳤다 마을을 고쳤다 인격을 고쳤다 하는 과거에 역사에 지내간 어떤 수양의 도라든지 무슨 종교라든지 또 방편이라든지 그런 것을 완전히 부정하라 했습니다. 그거 말하는 거 주님이 듣지 안했습니다. 그런 말 하지말고 내가 묻는 말 대답이나 해라 그랬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이 교훈에서 버려야 되겠습니다. 오늘까지에 사람들이 이렇게 수양하고 이렇게 개량하고 이렇게 자기를 건설하고 이런 저런 수많은 참 창세 이후에 육천 년이 지나가는 이 긴 세월에 별별 방편들이 있었지만 이제까지 있던 그 모든 방편을 다 완전히 버려야 하는 그것을 여게 말씀합니다. 그것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의 과거에 이런 사실은 이래 됐던데 저런 사람은 저래 됐던데 해 가지고 그것이 우리를 미혹시키는 마귀의 미혹이 되지 우리에게 유익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전에 역사에 지나갔던 어떤 방편이라도 다, 부인해서 다 버려 버리고, 그 방편 다 버리고, 하나 버리고, 또 하나는 나는 모든 사람보다 병이 제일 중하게 들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나를 안 업어다 주면 못 들어갑니다. 이 중에는 내가 제일 중한 병자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나보다 먼저 그래도 좀, 가게 되기 때문에 나는 병이 제일 중하기 때문에 낫지를 못합니다. 그것을 말했습니다. 그것도 주님이 부정하고 버리라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사람으로서는 자기에 육적 형편이나, 경제적 형편이나, 사회적 형편이나, 자기의 신체적 형편이나, 자기 정신적 형편이나, 자기의 총명적 형편이나, 자기의 지식적 형편이나, 기술적 형편이나 어떤 것이든지 나는 인간 중에 제일 무지 무능하고 가련한 병신이요 비참한 자라 제일 비참하고 가련한 자라고 자기가 그렇게 자기는 그런 자이니까, 그런 자이니 이것이 예수 앞에서 어찌 되나 하는 그런 것을 예수님 앞에 나온 사람은 문제로 삼지를 말아라 해서 주님이 거부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그 환자가 이제까지 자기 속에 가득히 차 가지고 있는 거, '이 모든 방편에서 틀렸다. 이 방편에, 나는 이 방편에 구원을 얻지 못한다' 이제까지 있는 방편으로 자기를 탄식시켰고, 방편으로 자기를 근심과 탄식을 시켰고 또 자기 병이 제일 중하기 때문에 자기는 근심과 탄식 시켰고 자기에게 도움은 하나도 주지 못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 도움도 주지 못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또 뭐인고 하니 '다른 사람이 나를 도와다가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도와 주지 않는다는 그것이 항상 머리에 쌓여 가지고 있어 봤자 자기에게 하나도 효력은 없고 유익은 없고 도리어 자기에게 고민만 준 것뿐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다 하는 그것도 다 던져 버리라 했습니다. 그러면 몇 가지 다 버리라 했습니까? 세 가지. 이제까지에 종전에 모든 방편 그거 다 치워 버려라. 종전에 이런 방편 저런 방편 예수 앞에 있는 네가 종전 역사에 있던 그런 방편 가지고는 너는 고칠 수 없다. 너는 치료되지 못 한다. 이제 종전에 있는 모든 신불신자에 어떤 뭐 방편이든지 그런 방편, 과학이나 도덕이나 종교나 무슨 방편도 다 집어 던져 버려라. 다 버려라. 부인하라. 고거 부인하라고 했습니다.
또 둘째로는 뭐입니까? 자기는 제일 중한 환자라 하는 거 그것도 다 생각에 두지 말아라. 네가 제일 중한 환자이기 때문에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치료자 주님이 먼저 찾아 오셨다. 네가 제일 중한 환자이기 때문에 먼저 찾아 오셨다.
이러기 때문에, 나는 중한 환자니 안 되겠다 하는 그런 공연한 이 세상 인간 생각 버려야 했습니다.
또 셋째로는 뭘 버리라 했습니까? 다른 사람이 나를 도와 주지 않는다 나를 도와 주는 사람이 없다 하는 그런 것도 네게 백해 무익이니까 해뿐이지 유익은 하나도 없으니까 도와 주는 이가 없다 하는 그까짓 거 다 버려라. 다 버려라.
이제까지는 우리가 아이구 아무것이 덕택 아니면 안 되는데' 이래 가지고 이 사람 종도 돼야 되겠고, 사람 종도 되어야 되겠고 저 사람 종도 되어야 되겠고 이 창기 모양으로 이 사람도 마음 좋게 해야 되고 저 사람도 마음 좋게 해야 되겠으니까 이제 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안하면 안 되기 때문에, 그 도움받아 보았자 유익도 아무것도 없는 건데. 이래 가지고 '다른 사람이 나를 도와 주지 안하면 나는 이 탈이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라고 할라는 애쓰는 그것도 네가 너만 가련해지고 비참해지고 네 근심 걱정 고통만 돼지고 네가 행복받는 데는 방해만 되지 아무 소용없다. 남이 도와 주지 않는다 하는 그런 것도 네 염두에 다 씻어 버려라. 던져 버려라.
네째로 또 하나 버리라 했습니다. 네째로 또 하나 버리라 하는 것은 뭐입니까? 내가 들어가기 전에 다른 사람이 먼저 들어가서, 다른 사람이 먼저 들어가서, 내가 나을 때에 다른 사람이 먼저 들어가 가지고 방해함으로 내가 낫지 못합니다. 다른 방해에 대해서 걱정했습니다. 그러면 이 성신이 예수님 앞에서 걱정한 문제가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소. 네 가지 문제입니다. 네 가지 문제를 이걸 예수님께서 예수 앞에 구속받은 성도들이 이 네 가지 문에 중에 이 한 가지라도 문제를 문제로 삼을라고 했습니까 이 문제를 완전히 무시해 버리라고 했습니까? 이 문제를 완전히 그까짓 문제를 다 집어 던져 버리라 했습니까 그 문제를 해결하도록 걱정하라 했습니까? 버리라고 하셨다고, 예수님이 버리라고 한 것을 아는 사람 손들어 봅시다. 네,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제부터 종전 방편, 이제 과거에 과학적인 방편 도덕적인 방편 종교적인 방편 이 모든 윤리적인 방편 이런 정치적인 방편 종전에 어떤 방편이라도 예수 앞에 선 사람은 종전 방편을 다 버려야 합니다. 요거 단단히 기억하십시오.
둘째로는 자기가 어떻게 무지 무능한 비참한 가련한 죄인이라도 상관없습니다.
나는 무지 무능하다 이 근심 걱정에 눌린 그런 거 다 포기해 집어 던져 버리라.
'내가 제일 머리가 나빠서 공부 못하니' '나는 제일 제일 둔한 사람이다'그것도 던져 버리라 둔한 너를 제일 명철한 사람도 만들 수 있다. 없는 가운데 창조하신 주님이 오셨기 때문에 만들 수 있다. '나는 이렇게 돈이 없는 거지다' 걱정 말아라' 예수님이 너를 당장 세계 갑부도 만들 수 있다, '나는 이렇게 권세가 없는 사람이다' 세계에 제일 권세자를 만들 수도 있다 이분이 네 앞에 계시는데 뭐 그따위 그런 것을 걱정하느냐? 이래서 종전 방편을 다 포기하라 걱정하지 말아라.
종전 방편 그런 거 가지고 문제시하지 말아라. 네 중한 제일 중한 환자 된 그 문제에 대해서 너는 걱정하지 말아라.
또 셋째로는, 다른 사람이 너를 도와 주지 않는다는 데 대해서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있지 않느냐? 창조주 내가 있지 않느냐? 네가 왜 그런 거 걱정하느냐? 다음에는 네째로는 '다른 사람이 나를 방해하니까 이거 문제 아닙니까? 이것도 그것도 버려라. 천하 인간이 다 너를 방해할지라도 하나님이 너를 도우실라고 하면 너는 문제가 없다. 이러기 때문에 그분 한 분에게 도움을 받도록, 그분 한 분이 나를 방해하지 안하도록, 그분 한 분이 나를 고치시도록, 그분이 고치면 되는 것이지 종전 방편 그런 거 다 포기해라. 이래서 이 교훈에서 예수 앞에 하나님의 의로써 의인된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님 앞에서 예수님의 이 구원을 받는 이 이치에 버릴 거 네 가지를 말씀했었으니까 네 가지 이것을 버려야 됩니다. 네 가지 이것을 버리지 안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네 가지, 병자가 말한 이 주장한 거 네 가지를 버리라 한 이것이 몇째 순서입니까? 첫째 순서가 뭐이요? 송구영신절. 또 둘째가 뭐입니까? 삼십 팔 년 병자에게 온 거. 막 희망이 넘칩니다. 희망이 넘치요. 잘난 사람에게 아니라 제일 못난 사람에게 먼저 왔습니다. 그러면 잘난 사람이 삐꿀 건가? 하나님은 사랑의 세계이기 때문에 못난 사람에게 먼저 가고 그 다음에는 차차차차 잘난 사람에게 맨 뒤에 와서 고쳐 주신다 그 말이오. 이제 삼십 팔 년된 병자에게 오신 것.
셋째로는 뭐입니까? 네 가지 조건에 눌리지 말아라, 네 가지 조건에 얽매이지 말아라 네 가지 이 조건에 걱정하지 말아라 하는 그것이 셋째 순서입니다. 셋째 순서. 물이 동할 때에 종전 방편 그런 거 다 포기해라. '나는 이렇게 제일 가련하고 불쌍한 자이니' 하는 낙망을 포기해라.' '다른 사람이 나를 도와 주지 안하니 하는 그런 희망을 포기해라. '다른 사람이 나를 방해하니' 하는 모든 염려를 포기해라. 다 포기해라.
그라고 네째로 주님이 말씀하신 것이 '낫고저 하느냐? 하는 것이오. '낫고자 하느냐?' '낫고자 하느냐?' 그 병자들이 이제까지 뭣하다가 고생 받았느냐 하면 오고 가고 하는 사람들 만나면 구걸이나 좀 해 가지고 뭘 좀 얻기나 할까 그런 것만 생각했지 병 나을 것은 생각지 안했어. 그만 구걸하는 그것만 생각했지 병 나을 거는 생각지 안했어, 고러니까 예수님이 가셔도 뭐 예수님이 뭘 주실까 싶어서 좀 이래 기다리고 손이나 내밀어야 구걸했지 병 낫기를 원하는 그것이 완전히 없어졌다 그 말이오. 이래서, 네째로 주님이 그들에게 경고하기를 낫고자 하느냐 하는 것을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네째 순서일니다.
오늘 우리 예수 앞에 있는 이 중생된 사람들, 하나님의 의로써 의인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은 네째로 중요한 것이 뭐이냐? 네째로 중요한 것은 낫고자 하는 것이 네째로 중요합니다. 낫고자 하는 거.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를 믿어도 어떻게 하면 가정에 우환이나 없을까 어떻게 하면 이 병이나 나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축복을 해 줘서 좀 사업이나 잘될까 뭐이 어떨까 이런 건만 생각을 하지 낫고자 하는 것은 까마득히 잊어 버리고 있습니다. 병든 병만 나으면, 병만 나으면 그 병막에 들어앉을 필요 없습니다. 병만 나으면 자유릅고 다른 사람 구제할 수도 있고 모든 거 다 할 수 있습니다. 이런데 낫고자 하는 것을 생각 가지지 안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 예수 믿는 사람들도 내가 모든 금생과 내세에 불행은 사람병이 들어서 이렇게 불행한 것이니 내가 사람병 낫는 것이 제일 중요한문제다. 사람병 낫는 것이 제일 중대한 문제다. 자기에게 제일 중대한 문제가? 사람병 낫는 것이 제일 중요한 문제로 아는 이 사람이 되라고 주님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병은 몇 가지가 사람 병입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소. 몇 가지가 사람병입니까? 네, 이 세 가지가 사람병입니다.
하나는 영병이니까 영은 중생했으니까 뭐 죄는 없습니다.만 영이 자기 심신을 통치하지 못하는 그 통치력이 약한 것이 영의 병입니다. 영의 병. 예수님의 영은 망신의 이 심신을 완전히 지배했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세포 하나도 다른 주장을 하지를 안했습니다. 세포 하나도,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세포 하나도 아야 소리를, 그건 신경을 울리지 안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심신을, 완전히 통치했습니다. 그러면, 우리 영이 자기의 마음과 자기 몸을 완전히 통솔하고 통치하지 못하고 마음 제마음대로 돌아다니지만 이 영은 마음의 주인이면서도 이 마음을 잘 다스리지 못하는 이것이 영의 병입니다. 영이 약한 병입니다. 영이 약한 병.
영은 죄 짓는 거는 아니오. 죄 짓는 거는 아니고 영은 은전하기는 온전하고 깨끗하지만 영이 자기 심신을 통치하지 못하는 연약 병이 있다 말이오. 영이 자기 심신을 완전히 통치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것이 고통입니다. 그러면, 통치하지 못하고 세상을 지나가 버리면 하늘나라에서 그 영은 심신의 기능을 다 세상에서 죽여 버리고 왔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가 가지고 그 영이 사용할 마음과 몸은 자기의 큰 도구인데 이 도구를 다 뺏기고 왔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가서 영광 없는 무능한 사람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렇기에, 영은, 영은 연약병, 마음은 악령 악성으로 물들어 있는 병. 마음은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살려고 하는 그것이 우리 마음에 제일 큰 병입니다. 이제 이 병이 들어와 가지고 마귀란 놈이 우리 마음에 들어와 가지고 우리 마음을 병을 들려서, 우리 마음은 하나님 위주로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될 터인데 우리 마음이 마귀가 들어와 가지고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살도록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 마음에 가질 마음은 안 가지고 안 가질 마음을 가집니다. 우리 마음은 누구를 따라서 살라 했습니까? 성령을 따라서 우리 마음은 살아야 됩니다. 그러면 성령이 하고자 하시는 것을 이 마음도 하고자 해야 될 터인데 성령이 하고자 하는 것을 하지 안하고 이 악령이 하고자 하는 그것을 하기 때문에 우리 마음을 이제 육체 소욕으로 살면 다 사망이요 다 고난이라 성령의 소욕으로 살면 생명과 평강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마음병 든 것을 이것을 우리가 알고 마음병을 고쳐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해야 되지 어떤 사람은 생각하기를, 내가 이렇게 빚이 많이 졌으니까 자기 아버지 어머니에게 빚을 안 갚아 준다고 칼을 내대고 또 원수를 삼고, 어떤 사람은 신문에 보니까 자기 어머니도 죽였어요, 차기 빚 안 갚아 준다고.
그것보다도 그것보다도 내가 왜 빚이 지느냐 빚지는, 빚지게 되는 고놈이 마음 속에 있기 때문에 마음이 빚지게 되는 고 마음, 빚을 지게 되는 고 마음, 고놈을 완전히 고쳐서 고 병을 고칠라고 해야 되는데 고 병을 고칠 줄은 모릅니다.
내가 어떤 사람 아주 무식한 사람이오. 무식한 사람인데 그 사람에게 내가 어째 애기를 하는데 그 사람이 말하기를, 자기 형제간에 뭐 빚진 것을 말해 쌓아면서 뭐라 하는 게 아니라' 그뭐 빚을 암만 갚아 줘토 되겠습니까? 빚을 지는 그 성질을 고쳐야 되지. 빚지는 성질을 고쳐야 되지 빚을 갚아 준다고 해결이 되겠습니까?' 이렇게 말해요. 빚진 사람을 한 번 갚아 주면 또 빚지고 열 번 갚아 주면 또 열 한번째 빚지고 백 번 갚아 주면 또 백 한 번째 빚지고. 빚지는 성질을 고치지 못하는 자는 항상 빚집니다. 왜? 허욕이 가득히 있기 때문에 항상 빚집니다.
이러기 때문에, 고 성질 하나 가지고 망하는 사람, 안 가질 욕심 하나 가지고 망하는 사람, 안 될 허영 하나 가지고 망하는 사람, 어떤 사람은 죽자껏 벌어 가지고 저는 국회의원 못 할 게 국회의원 한다고 똘똘 털어서 저거 집안 살림살이까지 다 털어 가지고 내가 요번에 국회의원 되면 어쩐다 하면서 제 살림 하나 이웃 살림까지 톨톨 털어 가지고 국회에 출마해 가지고 그만 국회의원 떡 떨어져 놓으니까 갑자기 거지돼 버렸지 다른 사람 돈 빌린 거 갚지 못하니까 빚 투성이가 되고 거지가 돼. 그러면 그거는 허영 욕심이라. 헛된 영광을 탐한 허영욕 하나 가지고 망칩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자기 마음병 고치지 못해서 망한다는 요것을 알고 마음병을 고치고, 이 몸에 또 습성, 몸 이거 버릇이 있습니다. 내가 어제도 차를 타고 보니까, 가며 보니까 막 소나기가 내리 따루는데 그 소나기를 맞으면서도 뭐한다고 그 바닷가에서 낚시를 거머쥐고 이래 가지고 있어요. 이래 가지고 있는 그 사람도 그거 병든 사람이라. 왜 그러냐 하면 그 가지고. 있으면서 요래 있으면 고기가 물면 고게 자머리가 퐁 내려가면, 내려가면 고거 재미있는 거, 한 생명을 취하는 고 재미. 고 재미에 일생 동안, 낚시질 하다가 일생 동안 마치는 사람 많이 봤습니다.
우리 교회 앰프 기사가 하나 있었는데 그분이 참 민첩하고 휼륭한 사람이야.
이랬는데 옛날 그 극장에 앰프 기사로서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는데 이 사람이 항상 그라고 나니까 그만 고기 낚으러 가고 또 와서 그 기술만 가지고 있으면 살 수가 있고 이래서, 고기 낚는 그 신이 들려 가지고 자기 가정이 비참하게 망했어요. 비참하게 망해서 하도 먹고 못 살아서 내가 염소 새끼를 두 마리를 주며 이걸 길러 가지고 좀 살아 봐라 그렇게까지 해서 나중에 그 사람을 붙들고 이래 가지고 지금은 그걸 고쳐서 지금 저게, 필동인가 거게 가 가지고 지금 살고 있는데 벌써 집사가 됐을 것이오.
이렇는데 어떤 사람은 자기 신경, 낚시대 들고 요래 가지고 있으니까 고기가 무니까 이 낚시대가 까뜩 하니까, 거머쥐니까 고기가 물어서 까뜩하는 요 취미 요 신경이 한번 까뜩하는 요 취미에 반해 가지고 일생을 망친 사람 있다 말이오. 또 어떤 사람은 인간의 이성의 말초 신경, 말초 신경, 그거 말초 신경에 한 번 까딱 자극하는 고 취미해서 일생을 망친 사람. 인간은 허무합니다. 육신에도 우리를 망치는 병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 모릅니다. 이거 뭐 병신 눈병신 귀병신만 병신으로 알지만 그것보다도 이 신경병, 신경병 또 근육병 이거 또 이 뇌도 거석한 건데 이거 호르몬병, 호르몬 이것도 뇌도 호르몬 작용으로 되는 것인데 병, 뭐 병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영은 약해서 병이고 심신은 온갖 병이 들었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 나아와서 병 고치는 이 문제를 제일 문제로 삼고 '나는 이제 영과 육이 온전한 사람 한번 돼 봐야 하겠다' 하는, 요 낫고자 하는, 온전한 사람이 돼 보겠다 하는 요 욕망을 가진 사람은 다 성공하는 건데 요 욕심을 가지지 못하고 헛된 욕심을 가졌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낫고자 하느냐 네가 인간병이 낫고자 하느냐' 그것을 먼저 말했습니다. 그것이 네째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멀거니 있기는 있지만, 그 사람을 보니까 지식도 훌륭하고 아주 아주 최고의 학문을 가졌고 또 그 사람이 좋은 학위도 가졌고 또 그 사람이 좋은 학교에 그런 유명한 교수로 돼 있고 이런데 고 사람에게 마음만 하나 병들었으면 고 교수노릇 하는 것 전부 똘똘 뭉쳐서 고 병든 고게 쏙 다 들어가 가지고 마지막에 늙어 죽을 때는 비참한 사람되고 맙니다. 이렇게 사람병 든 것이 중요하지만 이 사람병 든 것이 중요하다 하는 것을 느끼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그 말이오.
오늘 여게서 앉은 '사람 중에서도 '내 이 영이 예수님의 영과 같이, 내 영이 내 심신을 통치해서 내 심신이 중생된 영의 지도만 받고 영을 거스리는 일을 하나도 하지 못하도록 이렇게 영이 강건해야 되겠다' 하는 이 소욕을 가진 사람, 이 소원을 가진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뭐 그 들지 말아요, 들지 마. 들지 말라고, 거짓말이라고, 거짓말. 뭐 들기는 들어? 이제 가져야 될 줄 아는 사람 하면 손을 들지요. 이제 그러 소원을 가진 사람, 소원을 가지지 안했어요, 그거. 아침부터 저녁까지 돈 소원이나 명예 소원이나 지위 소원이나 뭐 영광 소원이나 권세 소원이나 행락 소원이나 이 소원만 가득 차 가지고 있는데, 내 중생된 영이 내 심신을 통치해서 내 마음이나 고기덩어리가, 중생된 영은 진리와 성령대로 움직이니까 진리와 성령대로 움직이는 내 중생된 영에게 피동되고 거게 지배를 받아서 내 심신이 진리와 영감대로 움직여 살기를 원한다 하는 그 소원을 가지는 것이 그것이 이제 이 인간병 고치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께서 '낫고자 하느냐' 이거 말했어. 네째로 '낫고자 하느냐' 네가 공연히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니까 어떻게 하면 구걸해 가지고 좀 유익이나 볼까 그것만 네가 생각하지 병만 나으면 남한테 구걸할 것 없이 남에게 덕만 보이고 살 수 있는데 인간에게 구걸하는 그 천한 가난뱅이 그런 사람된 것은 병들었기 때문에 된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들이 항상 사람 접촉하면, 그만 더 접촉하면 그래. 친구든지 만나면 떡 만나면 '요 사람하고 이야기를 해 가지고 서로 교제를 해 가지고, 서로 의논을 해 가지고, 동사를 해 가지고 어떻게 하면 요 사람에게 내가 유익을 볼까' 천 명이면 천 명 만 명이면 만 명 다 그래. 이제 껍데기 가죽으로 덮어 가지고 있으니까 뭐 번들번들 이래 하지. 실은 전부 '어떻게 하면 이 사람 만나 가지고 내가 유익을 볼까? 종교가는 그렇지 안하지 싶으지만 모든 종교가들 보니까 '이 사람에게 가치 적은 것을 주고 가치 큰 것을 내가 뺏들어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 전부 저 믿는 종교를 믿어 가지고 다, 그 사람을 완전히 제 사람 만들자는 그런, 유익 보자는 것이지 다른 거 그 사람에게 유익을 보이자는 그런 사람 없어요.
권찰들도 그래요. '어떻게 하면 이 사람 전도해 가지고 내 구역이 돼서 구역 식구가 많아질까' 고 사람은 내나 세상과 꼭 같은 것입니다. '내 구역이야 되든지 말든지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이 예수를 바로 믿어 가지고 구원을 이룰까' 참 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노력하는 그 사람이 참사람인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네째로서 주님께서 '낫고자 하느냐' 내가 병들었는데 병이 낫고자 하느냐 병드는 것이 이거 중하기 때문에. 주님은 낫고자 하느냐' 이것을 물었습니다. 그러면 이 시간에 이 교훈에서 나는 과연 인간병 낫고자 하는 사람이냐 인간병 낫고자 하는 것을 무시하고 있는 사람이냐 내 소원이 어디 있느냐 내가 지금 주력을 어디다가 하고 있느냐?' 요것을 우리가 요게서 깨달아서 인간병, 자기에게 있는 인간병 고치기를 원하는 이 사람되는 것이 네째로 중요합니다.
뭐 인간병 고치는 것이 뭐인데? 삼십 팔 년된 병자가 그중에서는 제일 비참했습니다. 비참했지만 이 병자가 인간병 고치고 나니까 그 수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 안에 가뜩 찼는데, 많았는데 예루살렘 성전에 제일 그때에 유명하고 제일 인기를 끌고 모든 사람들에게 주목을 당하고 모든 사람들이 보고 놀라고 그 뒤에 줄줄 따르고 한 그때에 제일 인기를 제일 점령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제일 인기 점령한 사람이 누구지요? 누구였습니까? 대제사장이요, 서기관이요 제사장이요, 어떤 사람입니까? 삼십 팔 년된 병자가 나은 그 사람입니다.
삼십 팔 년이나 된 병자가 나아 가지고 막 뛰고 다니면서 성전에 뛰고 굴리고 다니니까 모든 사람의 주목은 다 그리 기울어졌고 모든 사람 가운데 인기가 제일입니다. 인기가 제일이라. 그러면. 그때에 제일 기쁜 사람은 누구겠습니까? 그 가운데 제일 기쁜 사람은 누구겠지요? 한번 대답해 봐요? 그때 예루살렘 성전 가운데 제일 기쁜 사람은 누구였겠소? 삼십 팔 년된 병자가 제일 기뻤습니다.
제일 행복스럽기는 누가 행복스러웠습니까? 삼십 팔 년된 병자가 나은 그 사람입니다. 주님에게 제일 관심과 사랑을 받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삼십 팔 년된 병자입니다. 요것을 우리가 다섯째로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깨달을 것은, 예수 믿는 사람들 많지만 '예수 믿어서 내가 출세해야 되겠다, 예수 믿어서 내가 어떻게 입신해야 되겠다, 예수 믿어서 내가 부자되겠다, 사업 잘해야 되겠다, 예수 믿어서 뭐 내가 가정이 잘돼야 되겠다' 이런 거 다 좋기는 좋습니다만 그건 다 부스러기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에 '내 인간병을 내가 고쳐야 되겠다' 하는 요 인간병 고치기를 제일 소원하고 인간병 고치기를 위해서 전심 전력을 기울이는 그 사람이, 그 사람이 자기가 아는 사람 가운데에 제일 행복된 사람이요 제일 존귀한 사람이요 모든 사람에게 인기를 끄는 사람이요 모든 사람의 주목을 끄는 사람이요 예수님의 사랑을 제일 많이 받는 사람이요 제일 기쁜 사람이요 제일 행복된 사람이요 제일 쾌활한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지 안해요? 이 삼십 팔 년된 병자 보다도 행복스런 사람이 그때 있었습니까? 더 기쁜 사람이 있었습니까? 이것이 다섯번째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 믿는 사람이 산인 양성 일위이신 주님 앞에서 자기의 인간병을 고쳐서 자기가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하고 흠과 점이 없는 사람되고 자기 언행심사가 영감대로 진리대로 돼서 하나님과 동하고 정하기는, 하나님의 지체같이 됐고 하나님의 수족같이 되고 하나님의 몸같이 되고 이렇게 하나님과 동거 동행하는 이 사람이 인간병 다 고친 사람이기 때문에 이 사람보다 더 존귀한 사람 없습니다. 이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존귀한 사람이 이 사람보다 더 존귀한 사람이 있습니까? 이 사람 보다도, 이 사람병 완전히, 고친 사람보다도 더 존귀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보십시요? 없습니다. 없소. 손을 들어 보지 왜 못 들어 봐요? 영원한 하늘나라에서는 인간병을 완전히 고쳐 가지고 간 사람보다도 더 존귀한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인간병 고쳐 가지고 간 사람보다 하늘나라 영원 무궁한 세계에서 더 존귀한 사람이 없는 것을 자기는 확실히 믿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이래 들어, 이래. 되고 싶은 마음이 없어. 이라면, 이라면, 들라 하면 주여! 말은 안 해도 주여! 이럴 건데 '주여 나는 이거 원합니다. 내가 이거 원합니다.
가난해도 좋고 죽어도 좋고 살아도 좋고 어짜든지 세상 나그네 세상에서 인간병 완전히 고쳐서 흠과 점이 없는, 진리와 영감과 주의 피의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요것이 소원되는 것이 이것이 제일 행복스러운 사람이오. 그러면 그렇게 되면 안 됩니까? 그렇게 하면 인간병 고치고자 하면 못 고쳤습니까? 못 고쳤습니까? 고쳤습니다. 인간병 고쳤습니다. 오늘 오전에 다섯 가지 말했습니다. 인간병 고쳤습니다. 인간병을 고쳤습니다. 고쳐서 그 예루살렘에 성전에 많은 사람이 있는 가운데서 제일 행복스러웠습니다.
여러분들, 어떤 사람은 지금 머리 싸 짜매고 이제 좋은 일류 대학에 갈라고 또 외국에 가 가지고 박사 학위를 얻을라고 야단을 칩니다. 박사 학위 스물 셋을 얻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세계에 제일 되는 재벌가가 돼도, 제일 정권자가 돼도, 되는 것보다도 자기가 나그네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 입어 은전하고 깨끗하고 거룩하기를 하나님처럼 흠없는 이런 완전한 의인 만들어, 완전한 의인 만들어 가는 사람이 제일 행복스러운 사람입니다. 제일 기쁜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같이 내가 너희들을 사랑하노니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서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는 거같이 너희들이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너희들에게 이와같이 말하는 것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충만케 하려 함이라' 예수님의 기쁨을 세상에서 없앴습니까? 없애지 못했어. 우리 기쁨은 금방 다 기쁨이 있다가 금방 뛰이하니 슬픔이 생깁니다. 그런 기쁨은 아예 오거들랑 불로 살라 버려야 됩니다. 없어지지 안할 기쁨을 내가 영접해야 되지 없어질 그 기쁨 가지고 기뻐하는 것은 나를 속이는 것입니다. 잠시 후면 반드시 고통이 옵니다. 이래서 없어지지 안할 기쁨이 오면 그거는 보배로 영접하지만 없어질 기쁨 오면 발로 탁 차 내 버려야 됩니다. 기쁨의 원인이 없어질 것이면 그런 것은 그 기쁨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다섯째로 이제 '인간병 고치기를 원하느냐' 할 때에 '원합니다.' 해서 인간병 고친 사람이 예루살렘 그 가운데서 제일 행복스러웠습니다. 제일 기뻐했습니다. 제일 인기 집중입니다. 인기 독점 했소. 모든 사람 주목을 다 끌었소. 가장 행복스러운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제일 많이 받았습니다.
제일 기쁘고 즐겁고 명랑하고 쾌활합니다. 이 사람이 누구입니까? 인간병 고친 사람, 삼십 팔 년된 인간병 고친 사람은 이렇게 행복스러워졌습니다. 요것이 다섯째로 중요합니다.
오늘 예수 믿는 사람들이 요게 착수한 사람은 가면 갈수록 기쁩니다. 뭐 내 직장에 한 층 올라가고 내려가고 하는 고게 보는 그것도 아이구, 한 층 올라갔다 하며 기쁜 것은 반드시 네가 슬픔이 올 것이다. 이렇게 뭣이 형통해서 기쁘다.
반드시 형통해 기쁜 것은 불통이 와 가지고 네게 고통을 줄 것이다. 요렇게 내가 젊어서 미남이니까 기쁘다 반드시 네가 쪼글쪼글한 슬픔이 올 것이다. 나는 건강하니 좋다. 네가 병신이 돼서 송장될 때가 올 것입니다. 가치 없습니다.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것이 무엇이 자기에게 유익한고 했습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이 말 하는 것은 내 기쁨, 영원히 가도 변치 않는 기쁨, 온 천하가 없앨래도 없어지지 않는 기쁨 죽음도 고난도 어떤 것도, 불 속에 들어가도 없앨 수 없는 기쁨, 변치 않는 영생하는 이 기쁨을 너거들이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이 말을 한다 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기쁨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옥중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있어도 그는 기쁘고 즐거워서 다른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이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는 것이 옥중에 마지막 순교 직전에 말한 것입니다. 기뻐 즐거워서 말했습니다. 그들은 변치 않는 하나님의 기쁨을 가졌습니다. 이 기쁨이 어디서 나오는가? 사람병을 고쳐서 사람을 온전한 사람으로, 자기 마음병을 고치고 자기 몸에 더러운 습성병을 고칠라 하는 사람은 이런 기쁨을 점령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 중대한 문제는 생각지 안하고 땅에 있는 소용없는 거, 그런 것은 서로 가질라 하면 시비가 있습니다. 저 사람 가진 걸 덧들어야 되고 하니까 소용없어.
이렇게 인간병 고쳐서 제일 존귀한 자 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시기도 못 해요.
시기하면 더 잘돼요. 다른 사람이 방해하면 더 잘돼요. 아무도 해 되게 할 자 없어요.
이러니까, 주님께서 이 교훈에서 다섯째로 우리에게 알려 주신 것은 뭐이냐? 인간성 고친 사람이 제일 행복되다 하는 것을 보여 줬습니다. 그 다음에 여섯째 일곱째 계속해서 오후에 증거하겠습니다. 시간이 많이 돼서, 이제 첫째, 둘째 셋째 요것을 여러분들이 기억하고 자꾸 재독을 듣고 자꾸 기억해서 기도하러 가면, 직장에 가면 요 자꾸 다섯 가지를 기억해요. 자꾸 기억하면 속에서 사람이 자꾸 새로워지고 병이 고쳐지고 점점 행복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기도)
감사합니다. 악령이 들어서 썩어질 소망만 우리에게 가득 주어 미혹시켜 항상 여게만 분망하고 참 중요한 이 소망은 완전히 가리워 버렸던 이 소망을 이 시간 우리에게 다시 알려 주신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나그네 생활이요. 행인이오니 영원을 준비하는 나그네 생활에서 자신을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깨끗하고 거룩한 참사람으로 의인으로 만들어 가지고 가는 이보다도 더 큰 성공이 없고 욕망이 없는 것을 이 시간 다시 새롭게 깨우쳐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주님 간구합니다. 인간은, 이런 것을 깨닫고 느끼지를 못합니다. 주님의 피공로로 값 주고 산 저희들이오니 피공로로 인한 성령님의 감화 감동과 진리가 임하셔서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어른으로부터 어린 아이 한 사람도 빠짐이 없이 자신을 온전한 사람으로 주님 앞에서 고침을 받아 가지고 가는 이 한 욕망에 전부를 기울이게 하여 주시고 이 욕망으로 삶으로 근심 많고 걱정 많고 염려 많고 두려움 많은 이 세상에서 세상이 빼앗아 가지 못할 한없는 기쁨과 평강의 온유로 뿍뿍 걸어갈 수 있는 이 맛을 보고 이 생명 길에서 살 수 있는 저희들이 되도록 은총을 주시옵소서. 오후에도 이어서 주님께서 같이 하여 주시사 완전히 깨닫고 이 생명길 걷게 하여 주시옵소서. 많은 형제들을 구출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오늘 이제 나와서 호명된 형제들 주님의 자녀로 영원 전부터 작정된 것인데 이제 주님 앞에 나왔사오니 주님이 받으시고 주님의 장중에 잡으시고 품에 안으시고 주님이 친히 호주되어 주시고 언제든지 머리되어 주셔서 어떤 희로 애락이든지 항상 동거 동행하사 저희에게 모든 염려와 모든 어려움을 다 주님이 해결 해 주시고 염려 없는 평강 가운데서 의인의 걸음을 뿍뿍 걸어갈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주께 맡겨 놓고 믿음으로 사는 저희들이 되고 악령이 침해하지 못하도록 방어해 주시옵소서. 이들을 구원하느라고 수고한 사랑하는 종들에게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점점 뜨거워 불붙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설교: 백영희 목사(1986. 4. 27. 주일오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