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16 11:00
제목: 마리아의 향유
본문: 요한복음 12장 1절-8절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의 있는 곳이라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감이러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14장 1절-9절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궤계로 잡아 죽일 방책을 구하며 가로되 민요가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말자 하더라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어떤 사람들이 분내어 서로 말하되 무슨 의사로 이 향유를 허비하였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만 두어라 너희가 어찌 저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광고 몇 가지 합니다. 이번 성탄에는 풍년도 들고 했으니까 모두 식구들이 모여 가지고 떡국 잔치를 한번 하기로 그렇게 결정을 했습니다. 중간반 장년반 합해서 한 5천5백명 잡고 그렇게 할려고 작정을 했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여러 이웃을 여러번 대접할 만한 그런 일들이 있지마는 우리는 그것이 우리 교리와 신조에 맞지 않기로 그렇게 하지 못하다 보니까 너무 이웃에 대한 사귐이 없는 셈입니다.
불우한 이웃을 돕기 위해서 관서를 또 방송국을 통해서 그렇게 하는 일은 있지마는 그래도 너무 이웃에 대해서는 참 좀 성글게 되어집니다. 그래서 이 성탄 때에 떡국 한 그릇이라도 끓여 가지고 요 부근 이웃도 같이 나눠 먹고 또 우리 믿는 교인들도 한 영원한 형제이지마는 서로 한 번도 그런 교제가 없고 이래서 금년에는 그렇게 할려고 했습니다. 작년에는 너무 흉년이 들어서 그래 못 했고.
그러면 14일날 밤 열한시로부터 한시까지 중간반에 오는 학생들 한 2천명 잡고 대접을 하려고 하고 또 15일날은 열시로부터 열두시까지 장년반을 대접을 할려고 그렇게 하자고 모두 의논이 됐습니다. 왜 그리 일찍 시작하고 일찍 마치는가? 그날 주일학교 학생들이 아무래도 금년에도 만여 명 참석이 될 터이니까 두시부터 시작해도 네시 반 다섯시라야 끝나게 되니 그때 되면 어두워지니까 집에 돌아가는 데에 미아의 위험성이 있고 이래서 그러다 보니까 부득이 잔치는 열두시 안으로 끝내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이해하시고,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만 교회 접대하는 것을 접대받는 사람들도 도리어 그것이 시험이 되고 접대하는 분들에게도 너무 좀 힘들게 되고 이래서 그런 것을 전혀 폐지했었습니다. 결혼할 때도 장례할 때도 이렇게 모든 폐단을 좀 없애기 위해서 그랬는데 이제 이러고 보니까 그만 교인들 그 어떤 상습이 되어졌느냐? 교회야 대접할 것 아무것도 없고 소용없는 이방에, 다른 데 쓸데없는 대접을 해야 된다고 해서 그 대접 함으로 하나님과 멀어지고 죄와 가까와지고 방탕과 가까와져서 참 도로 낭비가, 죄짓고 손해가는 화받는 낭비가 되어진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이래서 이제는 앞으로는 결혼식도 힘껏 하도록 그렇게 할 한번 그런 때가 올런지 모르겠습니다. 결혼비가 없어서 아이를 서이 너이 낳고도 항상 죄지은 것 모양으로 결혼식을 못 해서 고통을 당하고 아이를 서이 낳아 놓고, 결혼식을 못 하니까 한번 예배라도 한번 봐 달라고 하는 그런 소리, 또 결혼식을 교회서 한번 해 달라고 하는 그런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폐단을 없애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지 교회에, 교회를 통해서 대접하는 것이 할 만한 가치 없어 그런 것도 아니고, 교회에 혼인 예식이나 장례할 때에 대접을 할 만한 그런 가치 없어 그런 게 아니고 그 본인들의 어려운 폐단을 줄여 주기 위해서 했는데 이것은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교회는 대접하지 않으니까 업신여기고 안된 데에 대접하면서 그것이 큰 것으로 여겨서 도리어 이 선이 악용이 되어지는 것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이래서 정 그렇게 하면 부모가 별세를 해 당상을 당했으면 네가 마지막으로 부모를 위해서 하는 것이니까 네 힘껏 있는 대로 살림을 톨톨 털어서라도 장례식에 바치라 중국 사람들은 그럽니다. 부모의 장례는 자기 있는 살림을 다 떨어서 바칠 만치 그 장례를 아주 크게 합니다. 효성은 세계에 중국이 제일 으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중국 나라만은 역사 후에 다른 민족이 와서 통치한 일이 없습니다. 언제든지 자기네들이 통치합니다. 5계명 그대로요. 다른 나라는 그뭐 이 사람이 왔다 저 사람이 왔다 그렇습니다.
결혼식에도 돈을 못 쓰게 하니까 그게 지금 병이라서 교회에서 결혼하는 것은 밤에 하니까 모두 과부 장가인가, 무슨 창기 장가인가 이렇게 욕질하고 그러니까 안 들으니까 그런 것은 결혼식에 돈을 많이 들여서 하도록 그런 때가 있을런지 모릅니다 그런 것을 우리가 돌이켜서 그런 미개한 생각을 버리고 좀 깊이 넓게 생각을 해야 됩니다.
그러고 참 접대하는 것은 해야 되는데 평소에 못 하니까 이럴 때는 좀 한 번이라도 하도록, 다른 데에 돌아다니면서 접대하는 거는 많이 하고 교인들이나 예수 믿는 이름으로 접대해 보지 못한 그런 사람들 돈을 몽땅몽땅 내 놓으십시오. 제 성의대로.
예수믿어서 깎쟁이 모양으로 아주 인색하게 남 대접하는 일 하나도 없고 어만 데, 대접 안 해도 될 데에 그 대접하는 거 이건 대접해야 되는갑다. 교회서는 대접 안 해도 되는가보다. 목사 대접도 안 해도 되는가보다. 그 못씁니다. 목사 대접도 제일 대접 많이 해야 될 이가 목사입니다. 대접하기가 어렵거든 대접하는 돈을 가져오십시오. 올해도 제가 저 대접하는 그 돈을 가지고 여기 학생들 복음 운동에 6백만 원 그거 모아 가지고 내놨습니다. 대접하러 오는 것이오, 오기는.
이번에 떡국 대접에 모두 힘을 내서 내가 지금 이 믿는 형제들 한번 대접을 할려 하면 얼마나 낼까? 또 이웃을 이 기회에 한번 대접할 그런 생각을 가지고 그저 힘껏 내서, 자기 혼자 대접해도 됩니다. 그걸 바로 알고 해야 될 겁니다.
또 올해는 중간반만 새벽찬양을 합니다. 작년에는 모두 다 했지만. 새벽찬양을 하니까 새벽에 두시부터 나서서 새벽찬양을 할 것입니다. 이러니까 부지런히 애껴 쓰고 벌고 해 가지고 그럴 때는 예물도 좀 톡톡하게 해서, 가치없고 무거운 거 하지 말고 좀 맛있고 값비싸고 가벼운 그런 것을 해 가지고 예물을 하십시오. 그런 데 좀 써도 괜찮습니다. 너무 인색하게 했으니까.
그래서 미리 준비해 놓고 찬양 소리가 나거든 자기 집에는 갈 수 없으니까 많은 데 가니 그저 중간 중간에 바둑 순장점 놓듯이 그렇게 찬송할 터이니까 찬송 소리 나거든 들고 쫓아가서 대접을 하도록, 자기 집에 오도록만 기다리지 말고.
그렇게 갔다가 서부교회가 아니고 다른 교회가 되면 도로 가져올건가? 어느 교회라도 찬양은 하나이니까 거게 대접을 하십시오. 대접하는 데는 대접할 때에 그 이름을 서부교회라는 이름을 써 가지고 대접하면 서부교회서 우리 대접한 것이 얼마 된다 하면 또 더 친목이 돼지고 더 좋을 것입니다.
예물을 정성되이 준비해 놨다가, 돈은 많지 않아도 성의있게 준비해 놨다가 찬송 소리 나거들랑 쫓아 들고 가서 대접할 것, 대접하는 데에는 자기 교회 남의 교회 상관없이 찬양대면 만나는 대로 대접을 할 것. 또 자기 집이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아예 그것을 교회로 가져오십시오. 가져오면 찬양한 그분들에게 우리가 드리겠습니다.
또 오전 예배, 오늘 오전 예배 후에 4층에서 82년도 2월 중간반 졸업 예정자의 모임이 있다고 합니다. 중간반 중에 학교를 다니는 학생이나 아니나 4학년 계급에 있고 급수에 있고 또 학생으로서 있는 분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4층 예배당에서 다 모여 달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특별히 그 중간반사 선생님들이 12월 1월 2월 석 달 동안을 전적으로 그 학생들과 서로 사귀면서 좀 믿음에 굳게 세울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권찰님들도 또 주일학교 반사님들도 힘을 써서 협조해서 중간반 반사들의 하는 일에 해서 석 달 동안 잘 기르도록 그렇게 협조해 주면 좋겠습니다.
또 계속하고 있는 기도회에 빠짐없이 다 참석하도록 그렇게 합시다. 그러고 이번에는 성탄 연보도 또 성의껏 내십시오. 우리가 그걸 가지고 1년에 한번 모든 구제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다 구제를 합니다. 동회를 통해서도 방송국을 통해서도 또 직접 우리가 송금하는 데도 몇십 군데 됩니다. 그래서 1년에 우리 서부교회를 합해 가지고 서부교회서 한번씩 방문하면서 위로하는 그런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니까, 그 성탄 연보는 우리 본교회 경비로 쓰지는 않습니다. 이러니까 그리 알고 연보도 성의있게 힘써 합시다. 힘써 해야 되지 힘써 하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제물이 되지 않습니다. 찬송가 하나 더 합시다.
오늘 요한복음 12장 1절 이하와 마가복음 14장 1절 이하를 봉독했습니다. 거게 초두에 보면 요한복음 12장에는 유월절 엿새 전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또 마가복음 14장에는 유월절 이틀 전이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엿새 전이 되는 날에는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다가 부었고 또 이틀 전인 날은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부을 때마다 사람들의 반대를 받았습니다. 이 값진 향유를 무엇 때문에 이렇게 허비하느냐? 이것을 팔아서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 얼마나 많이 도울 수 있는데 이렇게 이 향유를 허비하느냐? 팔면 삼백 데나리온이나 될 가치 있는 것인데 허비했다고 책망도 받고 반발도 당했던 것입니다. 삼백 데나리온이라 하면 보통 잡부 노동자 삼백 일 노동한 그런 댓가가 되는 것이니까 상당한 가격입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그를 괴롭게 하지 마라. 가만 두어라. 내게 좋은 일을 했다. 잘했다. 왜? 내 장사, 내가 죽어 장사하는 장사를 예비한 것이니 잘 하였다. 가만 두어라. 그가 있는 힘을 다해서 나에게 좋은 일을 했으니 이 복음이 천하 어디에 전파되든지 이 사실도 같이 전파해 가지고 모든 사람들이 이 향유를 부은 것을 기념하도록 그렇게 해라. 가난한 사람들은 항상 너희들과 같이 있으니 마음만 있으면 언제든지 도울 수가 있느니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구원의 도리로 가르쳐 주신 한 계시입니다. 한 형식계시를 문서계시로 또 우리에게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두 군데 다 유월절 엿새 전에는 발에다 부었고 이틀 전에는 머리에 부었는데, 유월절은 기독교의 큰 절기 셋 중에 첫째가는 절기, 우리가 지난번에도 추수감사절 때에 거게 대한 도리를 배웠습니다.
유월절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4백년동안 종노릇한 그 종노릇, 4백년동안 착취당한 모든 착취 그것을 완전히 회복받는 그 절기입니다. 4백년동안 종노릇에서 해방되어 자유 얻는 절기요, 또 4백년동안 착취당한 그 모든 것을 다 변상 댓가를 받는 그 절기요, 이제까지 패전했던 그 패전을 승리하는 절기입니다.
그러기에 해방받아 자유를 얻는 절기요, 이제까지의 모든 노고의 댓가를 받는 절기요, 승리를 이루어 존귀한 선민이 되는 그 절기입니다.
우리 신약 교회에 있어서는 구약 4천년동안 이방인은 완전히 악령과 죄악과 세상에게 종되어 있던 그 애굽에서 해방되어 구원받기 시작한 것이 창세 4천년 후 예수님 부활 승천 이후부터 시작된 것이 그것이 곧 유월절입니다. 그러면 지금은 유월절 절기를 우리가 기념하는 때요 또 이 유월절로 인하여 해방된 우리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가는 거와 같이 하늘나라를 향하여 가는 시기인 것입니다.
그런 중에도 우리에게는 이 해방의 자유와 모든 손해의 변상과 존영의 이 승리가 이루어지는 그런 신약 시대이지마는 자기 신앙 평생이지마는 그 중에도 또 특별히 그런 시기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 유사 6천년으로 말하면 이방인은 4천년동안은 종되어 있던 시기요 신약시대 2천년은 유월절을 맞이해서 해방되는 시기요 또 우리 개인으로 말하면 대대로 종되어 있던 그 사망에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속을 받아서 구원얻는 시기인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하는 전 생애는 유월절 생애요, 오순절 생애요, 장막절 생애를 기념하는 생애인데, 그중에도 우리의 생활에 각종 현실에 있어서 유월절을 맞이하는 그런 현실도 있고, 오순절을 맞이하여 기념하는 현실도 있고, 장막절을 맞이하여 기념하는 그런 현실도 있어서 다 같은 우리가 구원의 날이지마는 특별히 거게 대해서 나타나는 그런 시기가 있습니다.
여기에 이 말씀에서 유월절을 특별히 말씀한 것은 유월절은 환난을 통해서 이 일이 이루어지는 것인데 우리 믿는 사람들이 교회적으로나 혹은 교계적으로나, 6․25 같은 것은 교계적으로 어려움을 당한 때이고, 왜정말년의 신사참배되는 그런 것도 교계적으로 어려움을 당한 때이고, 또 혹은 교회적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이렇게 지금은 유월절이다, 지금은 오순절이라, 지금은 장막절이다. 그렇게 우리가 구분을 할 수 있을 만치 뚜렷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유월절은 삼대절기 중에 환난 절기인데 우리 기독자들이 작은 환난이든지 큰 환난이든지 환난을 당할 때는 기독자의 환난은 반드시 유월절 환난이라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그 환난으로 인해서 이제까지 우리가 세상과 불의와 혹은 자기의 자율, 사욕, 온갖 사망의 것들에게 종되어 있던 데에서 환난을 통해서 우리가 해방과 자유를 얻을 그런 시기인 것입니다. 또 그때에 이제까지 내가 죄악에게 이용당한 그 모든 것을 다 변상받아서 그것이 내 유익의 자본이 될 수 있는 그런 시기인 것입니다. 또 이제까지 내가 패전했던 패전에서 승리할 수 있는 그 승패가, 최종적으로 승패가 결정되는 시기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기독자에게 조그만한 환난을 닥치든지 큰 환난을 닥치든지 그것은 반드시 해방의 자유를 얻느냐 완전히 속박을 당하느냐? 또 이제까지에 모든 손해본 그것을 바꾸어 유익으로 이제 바꾸어 가지게 되느냐, 또 패전했던 것을 승리로 이루느냐 영원히 패전하느냐 하는 그런 유월절적인 이 세 가지 역사가 이루어지는 환난이라 하는 것을 우리가 언제든지 기억해야 됩니다.
신체적 환난이나 경제적 환난이나 가정적 환난 어떤 환난이라도 우리 기독자에게 환난이 오거든 이 환난은 유월절 환난이라, 유월절 환난이면 반드시 이 세 가지 승패가 결정되는 환난이라 하는 것을 기억하고 이 환난이 올수록 이렇게 예수님에게 기름붓는 이런 일을, 예수님은, 교회는 주님의 몸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주님을 사랑하고 위함으로 그 행동은 교회를 사랑하고 위함으로 복음을 사랑하고 위함으로 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고 위함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시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실 때는 다 신인양성을 가지시고 누구든지 만나볼 수 있게 오시고 그때는 같이 음식도 우리가 먹고 다 할 수 있지마는 지금은 주님이 영으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면서 주님의 피로 값주고 산 이 교회를 주님의 몸이라 이렇게 했습니다.
그러면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우리는 주님의 몸에 기름붓는 이 일을 놓치면 안 되는 것을 여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월절이 많이 남아 있을 때에는 발에다가 부었을 때에 주님이 칭찬을 하셨고 아주 긴급하게 되었을 때에는 머리에 기름을 부었을 때에 주님이 칭찬을 하셨습니다. 이 환난이 멀리 있을 때에는 주님의 몸된 교회의 이 사소한 일에, 사소한 일에 기름을 붓고 환난이 급박할 때에는 교회의 머리에다가 기름을 부었을 때에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이 나드 향유는 그 여인이 가진 것을 다해서 부었다 이랬습니다. 어떤 사람들의 해설에 의하면 그 여인이 결혼할려고 1년 내내 번 것의 품삯을 모아서, 3백일이면 3백일 모은 품삯 모은 것을 한꺼번에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발에 부었습니다. 자기의 소유를 다 기울여서 부었다고 그렇게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저가 있는 힘을 다해서 내게 좋은 일을 하였거든 너희가 그를 괴롭게 하지 말아라. 천하에 복음이 전파될 때에는 다 이도 전파해서 이 사실을 기념하도록 해라. 말씀을 했습니다.
환난이 멀리 있을 때에는 주님의 발에, 교회의 그 사소한 일, 주님에게 관한 일이라면, 주를 위하는 일이라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면, 주께 대한 일이라면 자기에게 가진 것을 아낌없이 다 기울여서 바치는 이것이 주님 앞에 칭찬받는 일이요 또 복된 일이요 모든 사람들에게 빛이 되고 감화 감동이 되는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환난이 급박해지면 주님의 몸된 교회의 그 사소한 일을 위해서가 아니고, 환난이 급박해 오면 주님의 몸된 교회에 제일 간추려서 머리되는, 머리되는 그 머리만 간추려 잡습니다.
만일 환난이 오면 서부교회서는 제가 신앙으로서는 머리가 될런지 모르지마는 그래도 제도적으로 담임 목사가 돼 가지고 있으니까 환난이 오면 제일 먼저 목사를 찾을 것이고 그다음에는 장로님들 권찰님들 이렇게, 구역장들을 찾고 부장 반사님들을 찾고 집사 권찰들을 찾게 될 것입니다. 환난 때는 머리를 찾고 평소 때는 그 밑에 하부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평소에는 주님의 몸된 교회의 사소한 일, 평범한 일, 다른 사람들이 다 하지 아니하고 버리는 그 천한 일, 그렇게 귀중히 여기지 않는 일, 사소한 일, 말하자면 앞집 뒷집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 또 사람으로 그리 인정도 하지 않는 학생들 하나 둘을 인도해서 전도하는 일 이런 일, 이런 일에 자기의 보배를 기울여야 합니다. 거게 자기의 보배를 기울이는 것이 그것이 주님 앞에 칭찬받을 일이요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할려고 하면 반드시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뭣 때문에 그 사소한 일에 대해서 네가 이렇게 지나치게 네 있는 것을 다 기울일 필요가 뭐 있겠느냐? 네 시간을 기울이고, 정성을 기울이고, 마음을 기울이고, 힘을 기울이는, 너무 이렇게 할 게 뭐 있겠느냐? 타산적으로 얼마만 하면 될 터인데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지나치게 한다고 반대하는 그런 일이 반드시 있을 것을 여게 보이는 것입니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핑계하기는 무슨 핑계를 하는고 하니 이것 가지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 사람 돕는 것이 낫지 않느냐? 주님의 이 복음 운동, 주를 위해서 하는 것보다도 사람을 위하는 것이 낫지 않느냐? 하나님 위하고 사람 위하고 둘을 갈라 가지고 반드시 그것으로써 시비가 날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 시비를 당하지 않고 벌써 그 시비가 일어나기 전에 부어 버렸습니다. 붓고 난 다음에 시비가 오니까 소용이 없습니다.
또 환난이 가까왔을 때에는 교회의 말단은 찾지를 않습니다. 교회의 제일 우두머리에 자기의 이 옥합을 참 깨뜨려 부어야 되겠습니다. 이 교회에, 평소에는 이 교회에 주장된 사람이 누구며, 영광받을 사람이 누구며, 책임자가 누구며, 제일 으뜸가는 사람이 누구냐 할 때에는 평소에는 그 교회에 발치, 제일 사소한 것, 이 교회에 작은 자가 누구냐? 자기가 나설 것이요 이 교회에 제일 말단이 누구냐? 자기가 나설 것이지마는 환난이 올 때에는 이 교회에 책임자가 누구냐? 하면 그때에는 목사 아니라도 `내가 이 교회 책임자라고.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을 다 잡아 죽일 터이니까, 이 교회서는 책임자부터 잡아 죽여야 되니까 책임자가 누구냐? 하면 내가 책임자라고. 나한테 말하라고. 할 말 있으면 나한테 말하라고 이렇게 하는 것. 환난이 왔을 때 그 환난을 자기가 책임지고 거게 자기를 기울이는 것. 평소에는 찌꺼기 아무 존영 없는 거기에 자기를 기울이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말씀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유월절이라는 이 환난이 올수록 더욱이 더 그러하고, 이 환난을 중심해서 우리는 걸어가는 것인데 우리가 아무리 평안하게 살아도 반드시 그 평안으로만 살려고 할 것이 아니고, 그 평안으로 사는 그것이 성패가 이루어지는 거는 언제 이루어지느냐 하면 반드시 환난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유월절을 통해서 이스라엘 4백년이 해방이 되었지 유월절 통하지 않고는 해방되지를 못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기독자들이 자기가 어떤 생애를 하든지 그 생애에 무슨 정직의 생애를 하든지, 봉사의 생애를 하든지, 희생의 생애를 하든지, 화평의 생애를 하든지, 사랑의 생애를 하든지, 서로 이렇게 심방하고 전도하는 생애를 하든지, 자기 공장 그 직장에서 빛을 위해서 신앙 생애를 하든지 어떤 생활 하든지 반드시 그 하는 그것이 평범할 때에는 결성이 안 되고 그것의 승패의 결정이 되어지는 시기는 언제든지 환난입니다. 환난을 통해서만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밤중에 신랑을 맞이했다 그말이 절정되는 그 어려움에서 승패가 결정된다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승패가 결정되는 것, 내가 주님을 참 기쁘시게 하는지 기쁘시게 하지 못하는지 그것이 확정되어지는 것, 이 모든 것이 결성이 되어지는 그 결말을 우리가 바라보고 사는 전생활인데, 이 결말을 바라볼 때에 이 결말이 멀리 있을 때에는 주님의 몸된 교회에 명예 영광 없는 사소한 일 여기에 우리에게 있는 것을 아낌없이 기울여야 되겠고,
또 이 결성이 가까운 어려움이 가까울 때는 그때에는 그 사소한 일들은 파묻히게 되기 때문에 제일 그때에 머리가 되는, 그 모든 환난이 먼저 와서 부딪치는 머리가 되는 중직되는 거기에 자기의 모든 것을 기울이는 이것을 해야 주님에게 영광이 되고 기쁨이 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그렇게 할려고 하면 반드시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평소나 환난 때나 자기에게 있는 그 보배를 아낌없이 다 기울여서, 두 군데 다 보니까 왜 이런 것을 허비하느냐? 지나치게 허비하지 않느냐? 또 머리에 부을 때도 허비한다, 발에 부을 때도 허비한다고 인간들은 반대를 했습니다.
환난이 멀리 있을 때에는 예수님의 발에 부었고 환난이 임박할 때는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는데 부을 때마다 모든 사람들이 보기에는 허비한다 할 만치 자기에게 있는 보배를 아낌없이 쏟았습니다. 그럴 때에 주님은 그것을 기뻐 받으셨고 사람들은 반대를 했습니다. 왜? 저희들 보기에 허비같이 보여지기 때문에 반대를 했습니다.
허비하는 것같이 보여지기 때문에 반대를 했지마는 그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한 일이 됐고 또 주님이 그 일을 온 천하에 복음이 전파되는 데마다 이것을 기념하라고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주님에게 대해서는 자기의 바치는 것이 인간 생각으로서는 너무 지나치다. 너무 허비다. 이럴 정도로 해야 주님에게 바침이 되고 주님을 대접하는 것이 되어지지, 인간이 인간적으로 계산을 해 가지고 인간 계산에 맞도록, 또 자기의 모두 다 하고 나머지기 찌끄러기 그것을 주님에게 바치는 그런 것은 주님이 받지를 아니하십니다.
그러기에 주님을 향한 것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바치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고,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라고 할 때도 이삭을 바치는데 나무를 그 먼데까지 지고 갈 것 없이 거게 나무가 많이 있으니까 할 것이지마는 그는 밤새껏 집에 있는 나무를 패다 짊어지고 갔으니까 이것은 지나친 일입니다. 지나친 일이오.
엘리야가 엘리사를 하나님이 부른다 할 때에 부르면 가 가지고 일하고, 자기 뭐 농우니 농장이니 하는 그런 것은 그대로 두고 갈 건데 이것을 다 패서 불로 사뤄서 번제로 드리고 주님을 따라갔으니 이것도 다 지나친 일들입니다.
또 베드로가 주님이 이제 나를 좇으라 하시니까 자기가 대대로 생애했던 배고 고기고 그물이고 다 집어던져 버리고 주님을 향해서 이렇게 따라갔으니 이것도 다 지나친 일들입니다.
아브라함이 소돔 왕으로 더불어 시비할 때도 자기가 전쟁해서 뺏든 것이니까 뭐 그렇게 그거 취하라고, 이거는 다 취하라고 소돔 왕이 말해 줬으니까 취할 수 있는 것인데 주님에게 조그마치라도 영광 돌아갈 게 돌아가지 못하고 너 때문에 치부했다고 할까 염려가 돼서 하나도 실낱끝 하나도 안 하겠다. 그렇게 버린 것도 다 보면 치우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한 사람들마다 다 주님이 기뻐했고 그로써 큰 성공을 가져온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봅니다.
그러기에 여기서 환난이 가까울수록, 환난이 가까울수록 환난 때는 자기의 보배를 사람들이 보기에 너무 지나쳤다, 너무 지나치다, 너무 그거는 그리 안 해도 될 건데 허비다. 할 만치 주님에게 대해서 지나친 정도로, 모든 사람의 논리로서는 허비의 정도로 너무 지나치게 주님에게 했다고 모든 사람이 다 반대하고 조롱하는, 주님에게 대한 지나침이 있는 그것이 사람 보기에는 지나침이나 그것이 정상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당신을 위한다고 기뻐하는 게 아니고 그것이 우리가 걸어갈 정상의 길이기 때문에 주님이 칭찬하고 기뻐했습니다.
왜? 이가 내 죽음을 처리하는 죽음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렇게 발표를 했습니다. 주님은 나 위해서 모든 것을 다 희생하신 하나님이신데, 이분이 내게 그와 같이 하셨으니 내게 있는 것이야 그분이 하신 데 비해서 참 똥찌끼 같은 것인데, 거기다 비하면 똥찌기 같은 것인데 그분에게 할 때에 이거는 너무 아깝다. 이거는 좀 덜하자. 내가 수고를 너무 했다. 좀 적게 하자. 이렇게, 세상 일에는 타산적으로 해야 그것이 맞는 것이지마는 나를 대속하신 주님을 대해서는 이 타산을 쓰는 것이 그것이 합당치 않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우리가 지금 준비하는 것은 주님과의 관계를 위해서 준비를 하는 것인데 주님의 일이라면,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라면, 주의 명령이라면 자기의 이해를 돌보지 아니하고 자기에게 제일 귀한 것을, 주님의 뜻이라면 자기에게 제일 귀한 것을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 기울여서 주님을 위하고 주님에게 순종하고 주님을 섬기는 그자면 주님이 그를 등용할 수가 있습니다.
주님이 그를 등용해서 하나 있던 자에게 열을 주니까, 열 주니 열 다 주님에게 드려 살고, 그에게 과거에 없던 아주 제일 좋은 보배를 그에게 주니까 제일 보배를 주님에게 드려서 이렇게 사니 그에게는 아무리 많은 것을 맡겨도 그가 악용하지 않겠고 아무리 보배를 맡겨도 그가 보배를 딴데에 남용하거나 외용하지 아니하고 주님에게 기울여서 주의 뜻, 곧 주님의 뜻 진리, 만물을 구원하는 이 진리에 기울여서 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등용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에게 자기의 가진 것을 타산을 한 사람들은 다 버림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창조주시요 또 주재시요 모든 것을 다 기울여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분이신데, 그분과 상대하는 그 일에 자기의 있는 그것을 타산해 가지고 주님을 향하는 자는 주님이 자기에게 다 들여서 구속해 주신 이 은혜를 자기가 이해를 못 하는 사람이며 그 사람에게 있는 것을 다하지 못하고 내가 이거 주님에게는 10분지 1만 하면 된다. 혹은 여게서 제일 귀한 거는 안되고 제이 귀한 것만 된다. 하는 그것은 자기를 주님보다 더 높이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은 언제나 마지막에 절정이 되는 그 단계에 가 가지고는 자기를 위하는 사람 되고 주님을 위하는 사람이 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은 그 사람에게 줄 수도 없고 그 사람을 붙들고 쓸 수도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왜? 그 사람은 자기가 주요 자기의 가진 것을 주님에게 다 드리는 게 아깝기 때문에, 자기 위해서는 다 드릴 수 있지만 주를 위해서는 다 드릴 수가 없고 한 사람이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그 사람을 들고 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전에 여기 고려성경학교에 오종덕목사님이라고 계셨는데 그분이 복음 운동을 위해서 우물을 파다가 무너지니까 그 이튿날 또 새로 파야 됩니다. 안 무너지구로 옆에다가 판자로 이래 붙이면 안 무너질 줄 압니다. 그분이 압니다. 아는데 안 붙입니다. 안 붙이고 그 이튿날 파니까 또 무너졌습니다. 또 파라 합니다.
이러니까 이러면 헛일 아닙니까? 이러니까 `한 번 파니 안 판 것보다 좋고 두 번 파니 한 번 판 것보다 좋고 열 번 파니까, 열 번 파니 아홉 번 판 것보다 더 좋고. 왜? 주님을 위하는 것이기 때문에 힘을 많이 들여야 좋다. 주님을 위해서 힘을 더 들이게 되니까 좋다. 하는 그 말을 학생들에게 말하는데 그 말은 저에게 전달돼서 왔습니다마는 그 학생들은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는 못했다는 것을 제가 그때 느꼈습니다.
이 향유를 부은 여기에서 유월절을 특별히 말하는 것은 너희 성도들이 최후 결정을 짓는, 결정짓는 그 결정에 대해서는, 결정짓는 결정에 대해서는, 너희들이 주의 일을 순종하는 것이나 주의 일을 하는 것이나 승패가 결정되는 그 일에 대해서는 너희들이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이 칭찬하시고 기뻐하시고 또 성공을 가져올 수 있는 일이냐? 너희들이 신앙생활에서 승패의 결정이 되는 때, 화복이 결정되는 때, 모든 멸망에서 구원으로 옮겨지는 때 그때에 이 승패 결정이 되는 그 단계를 향해서 가는 너희들의 생애는 어떻게 돼야 되느냐? 주께 대한, 주의 발에 대해서든지 머리에 대해서든지 주의 몸된 이 복음 운동과 주를 위한 일에 대해서 너희들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람들이 말하기를 모두가 왜 이것은 이렇게 허비하느냐? 하는 그 반대가 일어날 만치, 인간 생각으로 허비된다는 반대가 일어날 만치 너에게 있는 것을 다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요 조그만 요 사소한 일에 다 기울일 게 뭐 있겠느냐? 다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때에 반드시 인간면을 생각하고 하나님면만을 생각지 말아라. 인간면도 생각해라. 할 그때에 인간면은 내비두고, 인간면은 언제든지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그 기회는 그때만 있으면 뒤에 기회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기회는 한 번이지 두 번 있는 것은 언제든지 아닙니다. 현실에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때문에 어떤 현실이든지 성패를 향하여 나아가는 너희들의 신앙생활에는 그 현실에서 인간들이 반대할 만치, 이해 못할 만치 비합리적으로 비 인간의 타산적으로 있는 것을 다 기울여라. 있는 것을 다 기울여라. 지나치다 할 만치 다 기울여라. 그럴 때에 네가 주님에게 대해서 하는 일이 정상이요, 그럴 때에 또 주님이 기뻐하시고 또 주님은 너에게 주실 수 있고 또 주님은 너에게 일을 맡겨서 쓸 수가 있다 하는 이 비결을 여기서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이 복음이 전파하는 땅끝까지 이를 때마다 이 일을 다 전파해서 기념하게 해라. 어떻게? 승패가 결정되는, 종이냐 자유냐, 성공이냐 실패냐, 이제 모든 것을 손해냐 그것을 다시 배상받는 것이냐, 세상 것이 되느냐 하나님의 것이 되어지느냐, 구원이냐 실패냐 요것이 결정되는, 결정되는 이 결정을 두고 가는 너희들이니까, 이 결정을 향하여 가는 너희들이니, 유월절을 향하여 지금 가고 있는 너희들이니, 결정을 향하여 가고 있는 너희들이니 결정을 향하여 가는 너희들은 주님에게 대한 모든 너희들의 움직임은 생활은 사람들 계산으로는 지나치다. 허비한다. 이것은 인간 생각은 하지 않고 하나님과 복음만 생각한다. 이렇게 반대하는 그 반대가 반드시 있을 정도에서 해라. 반드시 있을 정도에서 해라.
그래서 주님에게 대해서는 자기가 제일 귀중히 여기는 것, 보배로 여기는 것 그것을 주를 위해서 그것이 참 깨어질 때, 주를 위해서 바칠 때에, 자기가 제일 애착하는 것을 주를 위해서 버릴 때에, 또 자기가 제일 보배로 여기는 그것을 주님에게 바칠 때에 그때에 주님은 정상적으로 대접함이 되고 그분에게 합당한 대접이 되고 주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또 보는 제삼자들에게는 아름다운 향기가 번지게 됩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물 길러 그 먼 데서 갔던 여인이 물동이를, 물 이고 오다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왔기 때문에 보는 사람들이 보고 야, 이상하다. 물 이러 가서 물도 안 이고 온 것 보니까 뭐 좀 이상한데 가 보자. 해서 갔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성도의 승패를 향하여 승리를 바라고 가는 자라면, 주님이 쓸 수 있는, 주님에게 쓰일 수 있는 자가 되려면, 주님이 그에게 아낌없이 무엇이든지 맡겨 줄 수 있는 그런 자가 될려고 하면, 주님에게 쓰일 수 있는 자가 될려면, 주님이 보배를 맡길 수 있는 자가 될려면, 승리를 이루려면, 많은 사람들에게 덕을 세워서 감화를 주는 이런 형제 사랑하는 일을 되도록 할려고 하면 너의 현실에서 주께 대한 일에 인간 생각의 타산을 버리라. 인간 생각 타산을 버리고 지나치게 해라.
아무리 지나치게 해도 그것이 지나친 게 아니고 주의 계명 지키는 것입니다. 왜? 네가 어떤 일에만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라고 하지 않았소. 주께 대한 일은 큰 일이나 작은 일이나 어떤 일이든지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해서 다해서 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나를 대속하신 그 대속에 대해서도 내가 합당한 일입니다. 주님이 나에게 대속하신 그 대속에 대해서도 합당한 일이요, 그분이 모든 것 다해서 내 모든 일 모든 죄 모든 의 다해서 이렇게 하셨기 때문에 내가 다해서 그분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고, 또 그분은 지극히 높으신 분이요 나는 지극히 천한 자이기 때문에 그분이 요구하시고 그분의 명령이고 그분을 대접하는 것이라면 내게 있는 거 다해서 이렇게 대접하지 않고는, 더 할래야 더 하고 싶으나 없으니까 더는 못 하지마는 있는 대로는 다하지 않으면 그분을 모르는 것이요 그분을 대접을 한다고 해도 그분을 모르고 대접을 하는 것이요 또 그분에게 합당치도 않는 대접이요,
이러기 때문에 대속으로 봐도 있는 걸 다해야 되고, 또 그분이 크시고 나는 작은 것을 봐도 다해야 되고, 또 그분이, 그분에게 얻는 데도 내게 있는 거 암만 줘봤자 그거 다해서 당신에게 바치니까 다 줘 봤자 당신에게 바치는 건 당신이 가져가는 것 아니고 당신의 뜻대로 쓰는 것이니까 뜻대로 쓰면 하나님에게 기쁨이 되고 모든 피조물에게는 다 복이 되고 구원이 되어지기 때문에 암만 줘봤자, 있는 것 주님에게 다 바쳐서 주를 기쁘시게 하는 일, 주의 명령 순종, 주의 뜻을 이루는 데 다 바치는 자이니까 주님이 다 줘도 문제가 없다 말이오. 그러니까 주님에게 다 줄 수 있는, 주님의 것을 다 받을 수 있는 그런 자격을 갖추는 것이 되어지기 때문에 그게 정상의 일이고,
또 주님이 그 사람을 붙들고 쓰시려 하는 데에도 보니까 그 사람이 제일 좋은 걸 주를 위해서 씁니다. 있는 걸 다 주를 위해서 씁니다. 이러니까 그 사람은 어떤 권세를 줘 가지고 어떻게 쓴다 할지라도, 저게 보내도 거기 가 가지고 전부가 주를 위해서 하지, 좋은 것은 주를 위해서 하지 그러니까 거기 사욕이 없는 사람이요 자율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주님이 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주님을 향한 것은 지나치게 한다. 너무 지나치게 한다. 허비한다. 사람 생각으로 왜 이렇게 허비하느냐? 왜 사람을 생각지 아니하고 이렇게 주님만 생각하느냐? 왜 이렇게 지나치게 허비하느냐? 하는 이 두 가지의 책망을 받도록, 자기에게 있는 것을 제일 보배를, 제일 좋은 것을 요것을 탁 깨뜨려서 주님에게 드릴 때에 보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면서 향기를 맡을 수가 있고 또 주님은 기뻐하시고 주님은 그 사람을 들고 쓸 수가 있고 주님의 보배를 그에게 맡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것이 없으면 주님을 사랑치도 못하고 인정도 받지 못하고 받을 수도 없고 주님이 쓰실 수도 없고 또 자기의 구속받은 데에 합당한 행동도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새도 우리 교회 보니까 저 먼저 심장판막증이라고 신문사에서 방송에서 학교에서 모금해 가지고 미국으로 보내려 했는데, 그 주간에 그거 할 차례인데 안 하고 하나님 앞에 끙끙 앓으면서 가 가지고, 이래 부었었는데 그만 그게 그대로 거창집회 가서 나았습니다.
그래 내가 며칠 전에 물어봤어. 그 아이가 어떻지? 인제 뭐 살이 포동포동 찌고 아주 건강했는데 그 아이가 어떻게 사노? 이러니까 보조반사를 맡았는데 다섯시에, 그 먼 데서 다섯시에, 저 어데라더라? 서면 어덴가 있는데 저 장림까지 갈려 하니까 다섯시에 이래 나서 가지고 이래 가니 부모들은 위험해서 못 간다고 야단을 치고 그때 가면 학생들 집에서는 청승맞게 온다고 그렇게 하지마는 그들에게 향기가 됩니다. 그것이 향유의 옥합을 깨뜨린 것이요 향기가 된다 말이오.
그래 내가 그말 들을 때 나도 기뻤습니다. 아! 참 감탄이 됐습니다. 이것이 이렇게 이렇게 하는데 이거 나는 이거 가만히 누워서 안 되겠다. 그래서 엊저녁에 저 꽃마을에 내가 갔다 왔습니다. 내가 들을 때에 향기가 돼. 다섯시에 그러니까 그 학생은 그 반사가 맡은 학생들은 자꾸 불어 나가지 줄지를 않아요.
그런데 지난번에 우리가 큰 죄를 범했습니다. 주일학교 이 학생 예배 시간이 너무 일찍으니까 좀, 30분 늦췄나요, 그때? 몇 분 늦췄지? 한 시간 늦췄나? 30분 늦췄나요? 30분 늦춘 그것이 하나님 앞에 큰 죄가 됐습니다. 그거 다시 고쳤습니다. 그게 타산적으로 나간 그때부터 주일학교는 내리빵수로 내렸습니다.
이래서 그때는 다섯시에 다 모두 반사들이 뛰어 나서 가지고 여기 와서 기도하고, 모두 보면 그거는 너무 한다. 미리 그래 갈 게 뭐 있나? 전부 지나침이 다 있었어. 다 지나쳤다. 지나침의, 시간의 지나침이 있었고 활동의 지나침이 있었고 모두 다 지나침이 있었는데, 그때는 참 옥합을 깨뜨려서 주님에게 부었는데, 지나침이 있었는데 지금은 전부 타산적입니다.
지금 가면 사람들이 너무 청승맞다, 미쳤나? 다른 사람 자는 데 온다. 이렇게 할 터이니까 너무 일찍 안 됐다. 또 그리 떨 게 뭐 있겠느냐? 그래 안 가도 되는데. 이래 가지고 전부 타산적으로 나가서 빌립과 같이 되어졌고, 타산을 주장하는 그자는 가룟유다인데 예수님을 십자가에 팔았습니다. 가룟유다의 행동을 우리가, 반사들이 전부 다 했고, 내가 먼저 했고, 그 000선생이 먼저 안을 냈고, 그래 내가 000선생이 그 안을 낸 데 대해서 그거 나를 넘어지게 했는데 그 넘어짐에 내가 넘어졌다. 넘어졌다. 그걸 기억을 하고 저 먼저도 광고를 하고 회개를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향해서는 인간 생각으로 지나치다 할 것이 없으면 당신에게는 대접이 안 됩니다. 왜? 그분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 그러하고 또 그분이 나보다 크신 분이기 때문에.
일국의 대통령이 와도 자기 집에 왔으면 대접한다고 하면 요거는 야 너무 비싼 것이니까 요거는 대접하지 말고 요거는 좀 싸게 하자. 시장도 얼마만 하고 좀 많이 들일 것 없다. 이렇게 하겠습니까? 힘껏 하지 않겠습니까? 하물며 하나님이신데.
그러기에 주님을 바라보는 그 승패의 승리를 결정하는 사람, 바라보는 사람은 인간이, 인간이 모두 다 너무 지나치다 하는 그런 논평을 받을 만치 지나침이 없으면 주님을 대접함이 되지 못하고, 또 주님에게는 제일 좋은 것 수지가 아니면 주님에게는 대접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다하지 않으면 대접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엇이든지 머리를 떼서 바치라, 머리를 떼서 바치라는 건 제일 좋은 걸 바치라는 그 뜻에서 말씀하신 것인데, 주님에게 자기의 있는 제일 보배를, 좋은 것을, 있는 걸 다 기울여서, 아무리 허비해 봤자 그분이 착취자 같으면 우리가 허비한 게 헛일이고 또 그분이 가난뱅이 같으면 하지마는 그분은 목적이 뭐이냐?
우리에게 있는 것을 다 당신에게 기울이고, 당신만을 바라보고, 당신만 의지하고, 당신이 동하는 대로 피동되는 이자만 되어지는, 하나님 다음 자를 만들어 가지고 모든 만물을 그에게 소유시켜서 다 통치할려 하기 때문에 그분에게 이와같이 하는 것이 지당한 구속에 대한 합리적 법이요, 또 그분과 우리에 대해서 그분에게 대해서 정당한 대우요, 또 그분이 우리에게 모든 걸 주실 수 있는, 받을 수 있는 자격이요 또 주님이 우리를 들고 쓰실 수 있는 자격입니다.
그러기에 이 네 가지 이 정상의 자격은 우리 마음으로 지나칠 만치, 다 바치는데 뭐 지나칠 게 뭐 있습니까? 사소한 거라도? 이렇게 안 하면 주님은 받지 않으십니다.
과거에는 우리 주일학교 반사들이 새벽이면 나섰습니다. 다섯시면 나섰어. 나서 가지고 이러니까 모두 다 다른 사람들은 열심 있다. 어떤 사람은 `청승맞다. 또 어떤 사람은 또 욕하는 사람은 미쳤다. 남 자지도 못하게. 그럴 때에 주님은 그것을 제물로 받으셨습니다. 지금은 그런 제물이 없습니다.
김현철씨 권찰님에 대해서 지난번에도 아드님과 사위님이 왔을때에 내가 메모지에 적어놨습니다. 아, 그분들에게 나는 빚을 졌다. 그 권찰님이 심방 가면서, 심방 가서 자꾸, 자기 맡은 식구들에 권면할 거 또 만날 거 이것만 생각하다 보니까 마음이 급해서, 거기도 가야 되고 거기도 가야 되고 저기도 가야 되니까 마음이 급해서 버스가 가는 버스가 서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말이오, 안 가서. 버스가 서니까 자기 마음에는 섰다 싶어서 내리다가 거게서 떨어져 가지고 세상을 떴습니다.
이다음에 가서 보면 주님에게 대해 지나치다가, 그분이 그리 안해도 죽을 그 시간 됐소. 그 시간 됐는데 주님의 사명을 하는 데 지나치다가 죽었으니 나는 그때 그 순교라고, 내가 다른 때 눈물 흘리지 않았는데 그 장례 때는 내가 눈물을 흘렸어. 어떻게 감사한지.
이다음에 가면 주를 위해서 인간이 보기에 지나쳤다고 할 수 있는 그 생애로 일생을 걸어가도 안 죽을 때 되면 안 죽고 그럴 때 주님은 그걸 제물로 받으십니다.
우리는 타산 행위를 버리고 주님이 나를 구속하신 데 대해서도 나는 다해야 되고, 또 주님이 지극히 크신 분이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이 제일 귀한 걸 가지고 하는 것이 마땅하고, 또 그분의 것을 받을려면 이 사람이라야 주지, 좀 주니까 그 나머지 그거 다 저를 위해서 저축하고 이래 하면 그 주면 그것이 나중에 가서는 마귀 중에 마귀 될 터인데 좋은 걸 주면 그것은 저 위해 돌려 놓고 이럴 터이니까 대마귀 될 터인데 어떻게 주며 그런 자를 어떻게 주님이 쓰실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고로 구속에 대해서 합당한 자로 살려거든 주님을, 높으신 주님에게 대해서 그를 참 바로 섬기고 높이는 자가 될려거든, 주님에게 무엇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될려거든, 주님에게 쓰일 수 있는 사람이 될려거든 우리는 자기에게 있는 제일 귀한 것, 제일 아껴서 놓을 수 없는 것, 놓을 수 없는 것, 이거는 버릴 수 없는 것, 이거는 할 수 없는 것, 제일, 자기로서는 제일 어려운 것, 제일 어려운 것을 할 때에, 제일 귀한 것을 바칠 때에, 제일 하기 싫은 것을 할 때에, 이 지나쳤다고 하는 이것이 있을 때에 당신에게는 제물이 되어지고 기뻐 받으십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반사들도 자기에게 평소에는 어림도 없는데, 잠 오는 그 아주 잠 오는 잠을 달게 올 그때에 그것을, 참 요것이야말로 참 꿀 같은 것인데 그 하나라도 요것을 주님에게 탁 깨뜨려서 바칠 때에 주님은 그것을 제물로 받으시고 함께 하시는 증거를 분명히 볼 것입니다.
설교: 백영희 목사(1981. 12. 6. 주일오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