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4.20 20:15
9. 변승우(큰믿음교회)
● 인물과 단체 개요
변승우는 1982년 성결신학교(현 성결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신학교육에 실망하여 도서관에 들어가 혼자 성경을 연구하였다고 말한다.(다림줄, 54). 그는 졸업 후 1989년에 교회를 개척하였다가 실패하였으며, 다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정통(백석측) 울산교회에서 10년간 목회를 하다가 2005년 서울로 상경하였다.
처음에 서초구에서 개척하였던 큰믿음교회는 현재 강남구 논현동 111-13번지에 있는 노벨빌딩 지하1-3층을 사용하고 있으며, 2010년 7월 현재로 재적 인원 8,500명에, 주일 출석 6,000명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교회에서 김옥경, 변애경(전도사)을 중심으로 중보기도학교와 예언을 훈련하는 선지자 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인터넷 카페와 방송을 통해서 자기 사상을 유포하며, 자신의 추종자들의 댓글을 통해 확대 재생산하고, 특히 젊은이들에게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또한 외국의 수많은 신비주의 혹은 은사주의 강사들을 초청하여 자신에 대한 예언과 찬양을 하게 만들고 있다. 그는 소속 교단인 예장 합동정통으로부터 2009년 9월 알미니안주의, 진짜 그리스도인이 진짜 버림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함, 구원에 있어서 십자가의 객관적 의미와 근거를 버린 점, 행위의 의를 주장한 점, 기존 교회를 바리새적 범주로 규정한 점, 등으로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출교조치를 당하였다.
변승우는 이단 규정에 대해 “모든 교회가 다 이단이라고 해야 이단이다”(위조 영분별, 50)라고 항변하였다(예장합동의 경우는 알미니안주의 혹은 신율법주의 구원관으로 연구를 계속하되 집회참석 금지로, 예장 통합의 경우는 기성교회 비판과 부도덕한 목회행위 및 직통계시로 성경의 권위를 훼손함 또는 정통교회와 다른 구원관과 예언과 방언 등의 극단적 신비주의를 강조하는 비성경적 이단으로, 기하성(순복음)은 뉴에이지적이며 부도덕한 은사주의자들과 연결되고 성경훼손 및 잘못된 계시관으로 비성경적 신비주의 이단으로, 고신은 극히 위험한 불건전 사상으로, 합신은 행위구원론을 주장하는 이단성이 심각한 것으로, 학원복음화협의회는 이단적이어서 주의대상으로 규정하였다). 그는 현재 전국과 해외에 60여 지교회를 둔 대한예수교장로회 부흥총회 교단을 설립하고 총회장이 되었다.
● 변승우의 이단성 교리에 대한 반증
1. 이단적 구원론
1) 교회를 다녀도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
「지옥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하나는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다. 세상에서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100% 지옥에 온다. 또 하나는 교회에 다니던 사람들인데 회개하지 않고 죽은 사람은 모두 지옥에 온다.(변승우, 지옥에 가는 크리스쳔, 58쪽)」
● 반증
고전3:10-15에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하셨으니,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세운 공력은 불타 해를 받으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는 것과 같으리라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움 받은 자는 지옥에 가지 않고 다만 범죄한 행위 공력이 붙 타는 것을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변승우가 믿는 자 중에서 회개치 않고 죽은 사람은 모두 지옥에 간다는 말은 비성경적 오류이다. 믿는 자가 천국 가는 것이 예수님의 피 공로에 있지 않고 그 사람의 행위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예수님의 피 공로를 부인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이단적 주장이 된다.
벧후2:1에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하셨으니, 우리를 십자가의 피로 구속하신 주님의 대속공로를 부인하는 것이 이단이라 하셨다. 또한 이단 교리를 가만히 끌어들여 주의 피 공로를 부인하고 흐리는 자가 곧 거짓 선자자이며 거짓 선생이라 하셨다.
롬3:24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하셨으니, 우리들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가 된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공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된 것이라 하셨다. 우리가 의를 행하는 그 값을 치르고 구속 받은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변승우가 우리의 의에 근거를 하여 천국가고 지옥 가는 것으로 말하는 것은 값없이 은혜로 베푸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부인하는 주장이 되므로 이단설이다.
딤후1:9에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하셨으니, 우리를 구원하신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가 아니라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택하신 은혜라 하셨다.
2) 천국에는 예수 믿는 모든 사람이 가는 것이 아니다
「천국에는 예수 믿는 모든 사람이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 말씀대로 산 사람만 들어갑니다.(변승우, 아무도, 71쪽)」
● 반증
요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셨으니, 독생자 예수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셨다.
요6:47에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하셨으니, 예수를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자는 영생을 가진 자가 예수를 믿는 자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님이 구주이심을 인정하고 아는 그 정도를 예수 믿는 것이라 여기는데 그것은 잘못된 깨달음이다.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를 믿어 영생을 가진 자가 예수를 믿는 자이다. 그러면 예수를 믿어 영생을 가진 자는 어떤 자인가?
요일2:23-25에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의 안과 아버지의 안에 거하리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하셨으니, 우리가 아들의 안과 아버지 안에 거하는 것이 영원한 생명 곧 영생이라 하셨다. 그러니까 아들 되신 주님 안과 아버지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이 예수 믿는 것이며, 이 예수를 믿으면 영생이다. 변승우는 ‘천국에는 예수 믿는 모든 사람이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 말씀대로 산 사람만 들어간다’고 말하는데 이 주장은 성경을 잘못 깨달은 오류이며 또한 예수 믿어 영생을 부인하는 주장이 되기 때문에 이단설이 된다. 벧후2:1말씀대로 주님과 주의 피 공로를 부인하거나 그 도리를 흐리는 자는 이단이며 또 이단성이다.
갈2:16에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하셨으니,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다고 했다. 변승우는 ‘천국에는 예수 믿는 모든 사람이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 말씀대로 산 사람만 들어간다’고 말하는데, 이 주장은 ‘우리가 천국 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가 아니라 주님 말씀대로 사는 율법의 행위에서 천국 간다’는 주장이 되므로 이 성구와 정반대되는 주장이다.
롬3:28에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하셨고, 롬10:4에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하셨으니, 사람이 의로운 것은 율법을 지키는 행위에 있지 않고 예수를 믿어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 의가 되므로 율법의 마침이 된다고 하셨다.
3) 한 가지라도 끊지 못한 죄가 있다면 그 죄와 함께 지옥에 던져진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여기서 손, 발, 눈 즉 여러 가지 죄를 지어야만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라도 끊지 못한 죄가 있다면 그 죄와 함께 지옥에 던져진다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지옥에 가는 크리스쳔, 27)」
● 반증
계21:8에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하셨으니,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 등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는 둘째 사망을 받는다고 하셨다. 이 성구만보면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 등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는 둘째 사망이다. 그러나 고전3:10-15에 보면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 등은 그 사람 자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행위 공력을 말한다. 그러므로 변승우는 ‘한 가지라도 끊지 못한 죄가 있다면 그 죄와 함께 지옥에 던져진다’고 말하는데 이 주장은 비성경적 오류다. 사람 자기와 행위 공력을 바로 구분하지 못한 오류이다.
4) 십일조를 제대로 내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 한다
「여러분이 신자라고요? 기독교인이라고요? 예수 믿는다고요? 주님 앞에서 보십시오. 여러분을 안다고 하나? …뺀질뺀질거리고 주일 낮 예배나 나오면서 천국을 들어가겠다고요? 돈이 아까워서 십일조도 제대로 내지 않으면서 천국에 들어가겠다고요?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원망하면서 천국에 들어가겠다고요? 구원받는 사람이 적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변승우, 거짓선지자들을삼가라, 설교)」
● 반증
변승우는 ‘주일과 십일조를 바로 지키지 못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하는데 이 주장도 위의 4번에서 반증한바와 같이 사람 자기와 행위 공력을 구분하지 못한 오류이다. 주의 피로 구속 받은 자는 천국에 간다. 다만 그 사람의 행위 공력은 상 받는 공력과 불타는 공력이 있다.
5)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가 누구이든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가 누구이든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변승우, 지옥에 가는 크리스쳔, 289쪽)」
● 반증
변승우는 ‘남을 용서하지 못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하는데 이 주장도 위의 4번에서 반증한바와 같이 사람 자기와 행위 공력을 구분하지 못한 오류이다.
6) ‘도덕적 개혁이 있을 때까지 영적 중생이 있을 수 없다’를 지지한다
「에이든 토저는 ‘개혁없는 중생은 없다’라는 제목의 탁월한 글에서 지극히 중요한 지적을 하였습니다. “도덕적 개혁이 있을 때까지 영적 중생이 있을 수 없다.... 죄인이 자기 생활방식을 기꺼이 개혁하려고 하지 않는 한 그는 중생의 내적 체험을 결코 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인기 있는 복음주의 신학의 나무 밑에서 잃어진 지극히 중요한 진리이다.(지옥에 가는 크리스쳔, 150쪽)」
● 반증
벧전1:3에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하셨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다. 곧 영을 중생시키셨다. 이 거듭남의 중생은 우리의 선행과 상관없이 주의 사활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값없이 은혜로 거저 주셨다. 이 거듭남의 중생은 육체의 사람 곧 영이 죽었던 자를 산 영이 되게 하사 성령의 사람이 되게 하신 것이 거듭남의 중생이다. 변승우는 ‘도덕적 개혁이 있을 때까지 영적 중생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하는데 이 주장은 예수님의 사활대속으로 중생시킨 공로를 부인하는 주장이 되기 때문에 이단적 주장이다.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하셨고, 고전15:45에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하셨으니, 흙으로 지은 그 육체의 사람에게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으셔서 생령이 되게 하셨다. 즉 산영이 되게 하셨다.
요20:22에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하셨으니, 죄로 말미암아 영이 죽은 육체의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 하시니 생령이 되었다. 즉 산 영이 되었다. 이때에 산 영이 된 것을 중생이라 한다. 영의 중생은 우리의 행위와 상관없이 오직 은혜로 거저 받는다.
7) 사람은 믿음으로만 아니라 행위로도 의롭다함을 얻는다
「만일 우리가 행위를 믿음의 행동이나 표현으로 이해한다면, 행위는 우리의 칭의에서 배제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람은 믿음으로만 아니라 행위로도 의롭다함을 얻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은 마음속에 있는 믿음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것이 아니라, 마치 몸의 움직임과 활동이 몸에 있는 생명의 표현이듯 믿음이 가지고 있는 생명의 표현인 행위들도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말입니다.(변승우, 지옥에 가는 크리스쳔, 127쪽)」
● 반증
딛3:5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하셨으므로,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한다 하셨다. 그런데 변승우는 ‘마음속에 있는 믿음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것이 아니라, 몸의 행위들도 의롭다함을 얻어야 천국에 간다’고 말하는데, 이 성구에서는 우리 구원은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에 있지 않고 주의 피로 말미암은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받는 구원이라 하셨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피 공로를 믿는 그 마음의 의와 몸의 의를 말해야 성경적이지, 예수님의 피 공로를 믿는 이 믿음을 떠나서 아무리 마음과 몸의 의로운 행위를 말할지라도 이 주장은 율법적 의로운 행위를 말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비성경적 오류이며 이단설이 된다.
8) 행함이 따르는 믿음으로만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다
「저는 이런 구절들을 설명할 때에 ‘기독교의 교리에 동의하는 사변적인 믿음만으로 절대로 의롭다함을 받을 수 없으며, 행함이 따르는 믿음으로만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물론 이것은 옳습니다.(지옥에 가는 크리스쳔, 119쪽)」
● 반증
변승우는 ‘사변적인 믿음만으로 절대로 의롭다함을 받을 수 없으며, 행함이 따르는 믿음으로만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데 이 주장 또한 위의 7번에서 반증한바와 같이 예수님의 피 공로를 믿는 그 마음의 의와 몸의 의를 말해야 성경적이지, 예수님의 피 공로를 믿는 이 믿음을 떠나서 아무리 마음과 몸의 의로운 행위를 말할지라도 이 주장은 율법적 의로운 행위를 말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비성경적 오류이며 이단설이 된다.
2. 율법적 의론
1)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는 결코 십자가 공로가 아니다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5:20) 그런데 어떤 이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는 의라고 생각합니다. 즉 예수님의 피의 공로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절대 아닙니다. 분명 예수님은 ‘너희 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이 말씀의 전후문맥을 보면 더욱 명백해집니다. 율법은 폐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의입니다. 그런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문자만 이해하고 있었고 따라서 행동으로만 지켰습니다...... 그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율법을 몸으로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는 결코 십자가 공로가 아닙니다. 그것은 실생활에서 몸과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것을 가르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의가 없는 자는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변승우,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68-69쪽)」
● 반증
마22:36-40에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하셨으니, 율법의 강령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면 율법의 강령이 되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무엇인가?
요일3:23-24에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하셨으니,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신다 하셨다. 그러므로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저가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계명은 지키는데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즉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신 그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힘입고 사는 자 곧 저가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는 것이 없었다. 그러므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다.
창6:9에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하셨으니, 의인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마5:20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하신 말씀에서 ‘너희 의’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의를 말씀한다. 저가 주 안에 거하고 주가 저 안에 거하는 것이 우리의 의이다.
변승우는 마5:20에서 말씀한 ‘너희 의는 예수님의 피의 공로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의가 절대 아니라’ 말하는데 이 주장은 비성경적 오류일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피 공로를 부인하는 주장이기 때문에 이단설이 된다./ 벧후2:1에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하셨으니,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는 자들이 이단이라 말씀하셨다.
또 변승우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는 결코 십자가 공로가 아닙니다. 그것은 실생활에서 몸과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것을 가르킵니다’ 말하는데 이 말도 비성경적 오류이다./ 요일3:23에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하셨으니, 하나님의 계명은 이것이니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하셨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하셨다. 변승우는 바리새인들보다 나은 의는 결코 십자가 공로가 아니라고 주장하는데 이 주장은 이단설이다.
2)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로 살지 못하는 자는 지옥에 간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율법의 의를 가져야만 지옥에 가지 않는다는 주장)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지 말라, 이것이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에 대한 예수님의 해석이에요. 간음하지 말라, 창기와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다고 해서 깨끗한 것이 아니고, 이웃집 여자와 불륜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깨끗한 것이 아니고,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맹세가 필요 없을 정도로 진실한 사람이 돼라. 너희가 예하면 예하고 믿어 줄 수 있는 사람, 너희가 아니라면 아니라고 믿어 줄 수 있는 사람, ··· 너희는 그렇게 진실한 사람이 돼라. 원수가 핍박할 때도 ‘사랑하라’ 믿습니까? 이것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예요. 여러분 이해하세요? 너희가,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말씀하시고 주님께서 보여 주시고 해석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라면 만일에 이렇게 살지 못하는 자는 지옥에 간다는 말이 아니겠어요? 그쵸? ‘아니 목사님, 그렇게 살지 못하는 자가 정말 지옥에 가는 겁니까?’ (언성을 높이며: 녹취자 주)정말 지옥에 갑니다!!! (목청을 더욱 높이며: 녹취자 주)정말 지옥에 가요!! 목사라도 지옥에 가고!! 아홉 가지 은사를 다 받았어도 지옥에 가고!! 평생을 교회 다녀도 지옥에 갑니다. 예배당을 지어서 바쳐서도 지옥에 갑니다 !!!(변승우, 2004. 5. 27. S교회 집회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 반증
요일3:23-24에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하셨으니,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는 것이 바리새인들보다 나은 의이다.
변승우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지 말라, 이것이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에 대한 예수님의 해석이에요. 간음하지 말라, 창기와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다고 해서 깨끗한 것이 아니고, 이웃집 여자와 불륜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깨끗한 것이 아니고,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맹세가 필요 없을 정도로 진실한 사람이 돼라. 너희가 예하면 예하고 믿어 줄 수 있는 사람, 너희가 아니라면 아니라고 믿어 줄 수 있는 사람, ··· 너희는 그렇게 진실한 사람이 돼라. 원수가 핍박할 때도 ‘사랑하라’ 믿습니까? 이것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예요.’ 말하는데, 이런 의가 곧바로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지키고 가진 율법적 의이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이런 율법적 의를 행하는데 그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율법의 강령이 되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곧 주님의 십자가 대속공로를 힘입고 사는 것 곧 저가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는 곧 주님과 동행하는 의인이 되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는 말씀이다. 그렇기에 변승우는 바리새인들보다 나은 의에 대해서 정반대 거꾸로 주장하고 있다. 결국은 주의 피 공로를 부인하는 이단설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요일2:24-25에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의 안과 아버지의 안에 거하리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하셨으니, 너희가 아들의 안과 아버지의 안에 거하면 이것이 곧 영원한 생명 곧 영생이라 하셨다. 천국 구원은 영생 구원이다. 즉 우리가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우리 안에 거하는 동행이 영생이며 이 영생이 우리의 구원인 것이다.
또 변승우는 ‘여러분 이것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라면 만일에 이렇게 살지 못하는 자는 지옥에 간다는 말이 아니겠어요? 그쵸? ‘아니 목사님, 그렇게 살지 못하는 자가 정말 지옥에 가는 겁니까?’ (언성을 높이며: 녹취자 주)정말 지옥에 갑니다!!! (목청을 더욱 높이며: 녹취자 주)정말 지옥에 가요!! 목사라도 지옥에 가고!! 아홉 가지 은사를 다 받았어도 지옥에 가고!! 평생을 교회 다녀도 지옥에 갑니다. 예배당을 지어서 바쳐서도 지옥에 갑니다 !!!’ 말하는데, 이 주장은 비성경적 오류이다. 뿐만 아니라 천국은 택한 자이면 예수님의 대속공로로 은혜로 값없이 얻는 구원인데 우리의 행위에 따라 지옥 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주의 피 공로를 부인하는 주장이기 때문에 이단적 주장이다.
• 변승우와 구원파 비교
1. 변승우
변승우는 진짜 구원을 받은 사람도 진짜 버림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의 피 공로로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행한 의로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구원파와 정반대로 하나의 죄라고 끊지 못하면 지옥에 간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예수 십자가의 대속구원을 부인하는 주장이다. 왜 그런가? 주의 피 공로와 상관없이 회개할 것이 없어야 천국 간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2. 구원파
구원파는 이미 죄 사함 받아 구원받았으니 회개할 필요가 없고 회개를 계속하는 것은 구원받지 못한 증거라고 말한다. 자기가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깨달으면 어떤 죄를 지어도 구원이 취소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깨닫고 거듭난 시각 곧 구원받은 시각을 알아야 구원받은 증거가 확실하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변승우와 정반대로 자기의 지은 죄와 상관없이 거듭난 자는 예수님의 피 공로로 천국 간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예수 십자가의 대속구원을 부인하는 주장이다. 왜 그런가? 주의 피 공로를 힘입어서 회개할 것을 부인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변승우는 예수를 믿는 자라도 하나라도 회개할 것이 없어야 천국 갈 수 있다고 주장하고 또 구원파는 예수를 믿으면 이미 죄 사함 받았기 때문에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구원파와 변승우는 극단적 대조를 보인다. 그러나 이 두 주장은 결국 예수님의 피 공로를 부인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이 두 주장의 성격은 동일하다. 변승우는 예수님의 피 공로로 말미암은 영의 중생을 부인하는 주장이고, 또 구원파는 예수님의 피 공로를 힘입어서 심신의 성화를 부인하는 주장이다.
3. 이단적 성경관
1)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이 바리새인의 신앙이다
「성경 공부를 많이 하면 점점 바리새인이 되어간다.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이 바리새인의 신앙이다.(변승우, 교회에서 가장 해악을 끼치는 이단의 정체, 2007. 8. 12 설교)」
● 반증
마23:1-7에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하셨으니,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1)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2)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3)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서기관과 바리새인이다.
행17:11에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하셨으니, 베뢰아 사람은 날마다 성경을 상고한다 하셨다. 그런데 변승우는 ‘성경 공부를 많이 하면 점점 바리새인이 되어간다’ 말하는데 이 주장은 성경과 배치되는 주장이다.
요5:39에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하셨으니, 성경이 곧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라 하셨다. 변승우는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이 바리새인의 신앙이다’ 말하는데 이 말은 예수님을 증거 하는 성경을 연구하여 가르치지 말라는 말이 되기 때문에 이단성의 주장이다.
2) 성경대로 사는 것은 기독교가 아니라 종교다
「성경공부 가르치고 성경을 이해하고, 성경대로 살도록 하는 게 기독교가 되어 버렸다, 근데 이건 기독교가 아니라 종교다.」
● 반증
마28:20에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하셨으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 곧 하나님 말씀 성경을 가르쳐 지켜 살도록 하라 하셨다.
3) 성경만 아는 것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지금은 성령운동의 시대이기 때문에 단순히 성경만 아는 것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 반증
요17:17에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하셨으니,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진리라 하셨다.
요일5:7에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하셨으니, 성령은 진리라 하셨다. 즉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 성경 진리와 함께 역사한다는 말씀이다.
엡1:13에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하셨으므로, 진리의 말씀 곧 성경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 하셨다. 변승우는 ‘지금은 성령운동의 시대이기 때문에 단순히 성경만 아는 것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말하는데 이 말은 성경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말이기 때문에 이단적 주장이다. 진리의 말씀 그 안에서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는다는 말씀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요일3:24에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하셨으니, 1)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2)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신다 하셨다. 그리고 3)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안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안다는 말씀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성령은 진리 안에서 역사 한다. 그런데 변승우는 ‘성경만 아는 것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 그의 성령운동관은 반드시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다. 왜냐 하면 성경 진리 밖의 운동을 성령 운동이라 여기고 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4) 교사가 성경을 사용하는 것은 선지자가 성경을 사용하는 것과 다르다.
「교사가 성경을 사용하는 것은 선지자가 성경을 사용하는 것과 다르다. 교사는 성경 저자의 의도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선지자는 자신이 성령으로부터 들은 말씀을 성경말씀을 빗대어 설명한다.(변승우목사 카페)」
● 반증
딤후3:16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하셨으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이다. 모든 성경은 저자의 의도는 일점일획도 첨부되지 않고 오직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런데 변승우는 성경 저자의 의도 운운 하는데 이 주장은 성경의 본질을 훼손하는 오류이다. 변승우는 교사는 성경 저자의 의도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고 말하는데 이 말은 성경에 없는 자의적 주장이다.
딤후1:11에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하셨으니, 사도 바울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했다. 사도바울은 사도인 동시에 교사라 했다. 사도 바울은 교사로서 성경 저자의 의도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에 초점만을 맞추었나? 그러므로 변승우가 성경에 대한 교사와 선지자의 관점에 대한 말은 비성경적 오류이다.
엡4:11-12에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하셨으니, 선지자와 교사는 다 같이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직분이다.
4. 배타적 교회론
1) 종교적인 사람들이 정통이 되고 성령의 사람들이 이단시 되고 있다
「지금 한국교회는 ‘종교의 영’의 영향 아래 있다. 그래서 종교적인 사람들이 정통이 되고 성령의 사람들이 이단시 되고 있다.(변승우, 대부흥이 오고있다 p246)」
● 반증
요일3:24에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하셨으니, 성령의 사람은 저가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는 자이다. 변승우는 ‘성령의 사람들이 이단시 되고 있다’고 말하는데, 현재 변승우를 교계가 이단이라 판단하는 것은 성령의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성령의 사람이 아니라서 판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변승우는 ‘종교적인 사람들이 정통이 되고 성령의 사람들이 이단시 되고 있다’고 말하는데, 이 말은 저희들을 이단 판정 하는 교계에 대한 공격적이고도 배타적인 말이다.
2) 신약시대에도 90%이상이 거짓선지자들은 목사들이다
「신약시대에도 90%이상이 거짓선지자들은 목사들이다.(거짓선지자들을 삼가라 2006. 5. 26. 설교)」
● 반증
벧후2:1에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하셨으니, 우리를 십자가의 피로 구속하신 주님의 대속공로를 부인하는 것이 이단이라 하셨다. 이단 교리를 가만히 끌어들여 주의 피 공로를 부인하고 흐리는 자가 곧 거짓 선자자이며 거짓 선생이라 하셨다.
변승우는 ‘교회에 다니던 사람들도 회개하지 않고 죽은 사람은 모두 지옥에 온다’고 말하는데, 이 주장은 주의 피 공로의 은혜로 천국 가는 것을 부정하는 주장이기 때문에 변승우는 거짓 선생과 거짓 선지자에 포함된다. 또 변승우는 ‘신약시대에도 90%이상이 거짓선지자들은 목사들이다’ 말하는데, 이 말 또한 저희들을 이단 판정하는 교계의 목회자들에 대한 공격적이고도 배타적인 말이다.
3) 일반교회는 영적 창기가 되었다
「바벨론의 영이 교회 안에 들어와 영적인 ‘창기’로 만들었다.(변승우, 대부흥이 오고 있다 .p143)」
● 반증
계18:2에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하셨으니, 큰 성 바벨론이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다고 하셨다. 변승우는 이 성구에 대한 성경적 교훈보다는 저희들을 이단 판정하는 교계의 교회들에 대한 공격적이고도 배타적인 말이다.
4) 구원받는 사람이 적다
「무엇보다도, 목회자들이 너무나도 복음에 물을 타서 희석시켜서 복음전파는 더 이상 의를 전파하는 것이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즉 귀신도 가지고 있는 사변적인 믿음을 낳을 뿐 사람들로 하여금 의를 행하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교회 안에서 노아나 롯처럼 의로운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그러므로 구원받는 사람이 적다는 것은 결코 이상한 말이 아닙니다.(변승우, <주여>, p.30)」
● 반증
창18:20-33에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하노라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가까이 나아가 가로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그 성중에 의인 오십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심도 불가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만일 소돔 성중에서 의인 오십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리라 *아브라함이 말씀하여 가로되 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 *오십 의인 중에 오 인이 부족할 것이면 그 오 인 부족함을 인하여 온 성을 멸하시리이까 가라사대 내가 거기서 사십오 인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또 고하여 가로되 거기서 사십 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사십 인을 인하여 멸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 주여 노하지 마옵시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거기서 삼십 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거기서 삼십 인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내가 감히 내 주께 고하나이다 거기서 이십 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이십 인을 인하여 멸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말씀하리이다 거기서 십 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십 인을 인하여도 멸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즉시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 하셨으니,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십 인이 없어서 멸망 받았다. 변승우는 이 성구에 대한 성경적 교훈보다는 저희들을 이단 판정하는 교계의 교인들에 대한 공격적이고도 배타적에 이용했다. 그리고 창18:20-33 말씀은 구원 받는 사람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 구원 받는 공력(고전3:10-15)에 대한 말씀이다.
5) 목회자들이 설교를 할 때 보면 마치 두 갈래의 혀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가르친다
「많은 설교자들이 좀 심하게 표현하면 뱀의 혀를 가지고 있습니다. 뱀은 그 혀 끝이 두가닥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그런데 목회자들이 설교를 할 때 보면 마치 두갈래의 혀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로마서 4장을 설교를 할 때는 “믿음만 있으면 된다” 이렇게 말하고 야고보서 2장을 설교를 할 때는 “믿음으로만 안된다. 행함이 있어야만 한다”고 가르칩니다.」(지옥에 가는 크리스쳔, 171쪽)
● 반증
롬4:2-3에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하셨으니,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다 하셨다./ 약2:21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하셨으니,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하셨다.
약2:24에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하셨으니, 성경 말씀 롬4:2-3에는 ‘믿으매 의가 된다 하셨고’ 또 약2:21에는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하셨고, 그래서 약2:24에는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라‘ 하셨다. 그런데 변승우는 목회자들이 설교를 할 때 보면 마치 두 갈래의 혀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로마서 4장을 설교를 할 때는 ’믿음만 있으면 된다‘ 이렇게 말하고, 야고보서 2장을 설교를 할 때는 ’믿음으로만 안된다. 행함이 있어야만 한다‘고 가르친다 말한다. 그러나 목회자들의 혀가 두 갈래이라서가 아니라 성경 말씀이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변승우의 이 말 또한 저희들을 이단 판정하는 교계의 목회자들에 대한 공격적이고도 배타적인 말이다.
’믿음‘은 주님의 십자가의 대속공로를 믿는 것을 말하고, ’행함‘은 이 주님의 십자가의 대속공로를 힘입고 사는 것을 말한다.
6) 거의 대부분의 주석과 강해집과 설교들은 다림줄이 아니라 눈대중에 불과하다.
「충격적이지만 진실을 말씀드리자면 대부분의 주석과 신학서적, 대부분의 강해설교집과 성경공부 교재, 그리고 대부분의 설교자들의 설교와 심지어는 대형 교회 목사님들의 설교에 이르기까지 이런 불완전한 과정을 통해서 탄생되었습니다. 즉 거의 대부분의 주석과 강해집과 설교들이 사실상은 다림줄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실 눈대중에 불과합니다.(변승우, <다림줄>, p.60)」
● 반증
변승우는 성경을 깨닫는 다림줄이 있고, 교계의 주석과 신학서적, 대부분의 강해설교집과 성경공부 교재, 그리고 대부분의 설교자들의 설교는 눈대중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이 말 또한 저희들을 이단 판정하는 교계에 대한 공격적이고도 배타적인 말이다.
7) 성경을 연구하고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바리새인의 신앙이다
「바리새인은 뭐냐! 바리새인은 성경을 연구하고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그들의 신앙이에요. 이게 바리새인이에요. 신앙이 어떻게 어떤 내용으로 구성이 돼있어요? 성경을 연구하고 성경을 가르치고! 여러분 이게 무서운 얘기에요. 이런 현상이 지금 교계에서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어요. 신앙이 뭐냐? 목회라는 것이 도대체 뭐냐? 그냥 성경 연구하고 그 다음에 성경 가르치고 이게 되어버렸다고! 성경 연구하고 성경 가르치고! 여러분 신앙이 이런 것으로만 형성되어 있으면 안돼요.(변승우, ‘교회에 가장 큰 해악을 끼치는 이단의 정체’, 2007, 8, 12, 설교)」
● 반증
마23:1-7에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하셨으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라 하셨다.
그런데 변승우는 ‘바리새인은 성경을 연구하고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그들의 신앙이에요. 이게 바리새인이에요’ 하는데, 이 말은 비성경적 제 주장입니다. 이 말은 저희들을 이단 판정하는 교계의 성경 연구와 성경 가르침에 대한 공격적이고도 배타적인 주장이다.
8) 교회 안에서 삼위 하나님이 성령님이 아니라 성경이 되어버렸다.
「정말 요즘 교회 안에서 삼위일체가 바뀌어 버렸습니다. 삼위 하나님이 성령님이 아니라 성경이 되어버렸습니다.(변승우, <대부흥이 오고 있다>, p.245)」
● 반증
엡1:13에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하셨으니, 진리의 말씀 안에서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 하셨다. 즉 진리와 함께 성령이 역사하신다./ 엡6:17에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하셨으니,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하셨다./ 요일5:7에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하셨고, 요15:26에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하셨으니, 성령은 진리니라 또 진리의 성령이라 하셨다. 그러므로 성경 진리에 성령이 함께 한다는 말씀이다.
변승우는 ‘삼위 하나님이 성령님이 아니라 성경이 되어버렸습니다’ 말하는데, 이 말은 저희들을 이단 판정하는 성경에 대한 공격적이고도 배타적인 말이라 할 수 있다.
5. 신비주의
1) 쓰러지는 현상, 비명을 지르는 현상, 등이 성령 역사의 현상이다
「지금까지 저는 성령이 임하셔서 역사하실 때 일어나는 현상 중 쓰러지는 현상 하나에 대해서만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셔서 강하게 역사하시면 이 외에도 많은 현상들이 일어납니다. 어떤 사람은 비명을 지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로 말미암아 그 사람 속에 있는 귀신이 노출되거나 떠나갈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비명을 지른다고 그 교회가 잘못된 곳이라고 생각해선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몸을 심하게 떱니다. 이것을 진동이라고 하는데 마치 전기에 감전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능력이 그 사람에게 임할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좋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터트립니다. 이것은 ‘거룩한 웃음’이라 하는데 주님이 기쁨을 주실 때 일어나는 현상이며 이 때 마음의 상처들을 치유 받고 각종 억압에서 사람들이 자유케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침을 하고 구역질을 합니다. 이것은 귀신이 떠나갈 때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며 특히 구역질은 깊은 회개를 통해 죄를 토설할 때 일어나며 이때 귀신과 더불어 우리 속에 있는 죄성들이 떠나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현상들을 넘어지는 현상과 함께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성령께서 하나님으로서 교회 안에서 마음껏 역사하시게 해드려야 합니다.(변승우,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pp.280-281)」
● 반증
눅4:18-19에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하셨으니,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이다.
요14:26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하셨으니,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는 것이 성령의 역사이다.
요15:26에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하셨으니, 주님을 증거 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이다.
요16:13에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셨으니,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것이 성령의 역사이다.
행1:8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셨으니,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게 하시는 것이 성령의 역사이다.
롬8:16에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하셨으니, 우리 영으로 더불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이다.
롬8:26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하셨으니,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는 것이 성령의 역사이다.
고전3:16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하셨으니,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이시다.
고전6:11에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하셨으니,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고전12:8-11에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하셨으니,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지식의 말씀을, 믿음을, 병 고치는 은사를, 능력 행함을, 예언함을, 영들 분별함을, 각종 방언 말함을,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는 것이 성령 역사이다.
갈5:22-23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하셨으니, 오직 성령의 역사로 나타나는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라 하셨다.
갈6:8에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하셨으니,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하셨다.
요일4:13에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하셨으니,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는 것이 성령 역사이다.
그런데 변승우는 성령의 역사로 나타나는 현상이 쓰러지는 현상, 비명을 지르는 현상, 몸을 심하게 떠는 현상,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터트리는 현상, 기침을 하고 구역질을 하는 현상이라고 하는데 이 주장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성령의 역사가 아니다. 이런 현상은 무속과 최면술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2) 새로운 유형의 기적에 대한 수용력을 키워야 한다
「이미 나타나기 시작한 금니나, 키가 자라거나 살이 빠지고 수술 자국이 사라지는 것 등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앞으로 우리가 과거에 전혀 듣지 못했고 심지어 상상조차 못했던 전혀 새로운 유형의 기적들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로운 유형의 기적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수용력을 키워야 합니다.
(변승우, <대부흥이 오고 있다>, p.274-275)」
● 반증
마16:4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시다’ 하셨으니, 표적을 구하는 저희들에게 주님은 떠나가셨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요나의 표적 밖에 보여줄 것이 없다 하셨다. 즉 주님의 십자가 대속공로를 힘입고 죄와 마귀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는 것이 표적이라는 말씀이다.
고전14:22에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 하셨으니, 표적은 믿지 않는 자를 위한 것이라 하셨다.
변승우는 기적에 연연하고 있는바 ‘주님은 저희들에게서 떠나가셨다’고 마16:4 말씀을 근거해서 분명히 말할 수 있다.
3) 입신을 매우 쉽게 그리고 자주 할 수 있다
「다른 은사와 마찬가지로 입신이 은사가 된 사람은 매우 쉽게 그리고 자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 교회에서 입신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입신이 은사가 됩니다. 지금까지 5번 입신한 우리 딸을 빼놓고 다른 분들은 하도 많이 입신을 해서 자신이 몇 번 입신을 했는지 그 횟수를 아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경험이 없는 분들은 ‘이것이 과연 가능한가?’ ‘혹 잘못된 것은 아닐까?’ 염려를 하실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아주 정상적인 것입니다. 한 예로 인도의 썬다 싱의 경우 초기에는 입신에 들어가는 일이 비교적 드물게 일어났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거의 매일 경험하게 되었으며 보통 기도나 명상을 하고 난 지 20분 정도 지나면 입신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는 얼마나 자주 입신하는지 도시에 있을 때는 입신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 매우 조심하며 자신을 통제했습니다.(변승우,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p.340)」
● 반증
고후12:1에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하셨으니, 사도바울은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한다고 했다. 믿는 자들이 정상적 입신을 했다면 주의 환상과 계시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변승우는 위의 2번에서 언급한대로 기적에 연연하고 있는바 저희들에게서 주님은 이미 떠나가셨으므로 자칭 입신을 한다고 하지만 주의 환상과 계시는 받을 수 없다. 그리고 성경에서 말씀하는 환상과 계시와 변승우가 말하는 환상과 계시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6. 신격화
1) 변성우가 집필한 책을 통하여 거룩해지라고 했다
「천사들에게 물었습니다. ‘이 계단이 무슨 계단이냐?’고 물었더니 계단이 아니고 그동안 지어오신 변승우 목사님의 책이 차곡차곡 쌓여 궁창입구까지 쌓여진 모습을 보았습니다. 천사들이 제게 하는 말이 ‘이 책을 통하여 거룩해지라’고 했습니다.(김OO 집사, 2005년 1월 5일자 입신간증코너)」
● 반증
사14:12-15에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로다’ 하셨으니, 아침의 아들 계명성 곧 마귀는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 곧 하나님과 비기려 하다가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또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라 하셨다.
변승우 측의 간증에 ‘천사들이 변승우의 책을 통하여 거룩해지라’고 했다 한다. 그것은 변승우가 집필한 책이 지극히 높은 성경 말씀과 비기려 하는 것과 같은 것이 된다. 변승우 측의 김OO 집사가 간증한 것을 그대로 소개하는 것을 보면, 변승우는 그 간증대로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결국 제 자신이 지극히 높은 자 곧 하나님과 비기려 하는 것과 같은 행태이다.
2) 변승우가 나팔을 부는 동시에 마른 뼈다귀가 변하여 사람의 형상으로 갖추어 졌다
「변승우 목사님이 나팔을 부는 동시에 에스겔서에 나온 것처럼 마른 뼈다귀가 변하여 사람의 형상으로 갖추어 졌습니다.(김OO 집사, 2005년 1월 9일자 입신간증코너)」
● 반증
사14:12-15에 ‘아침의 아들 계명성 곧 마귀는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 곧 하나님과 비기려 하다가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또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라’ 하셨으니, 변승우 측 김00의 간증에 ‘변승우가 나팔을 부는 동시에 에스겔서에 나온 것처럼 마른 뼈다귀가 변하여 사람의 형상으로 갖추어 졌다’고 한다. 그것은 변승우가 하나님의 신과 비기려 하는 것이 된다. 변승우 측의 김OO 집사가 간증한 것을 그대로 소개하는 것을 보면 그것 또한 변승우는 그 간증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결국 제 자신이 지극히 높은 자 곧 하나님과 비기려 하는 것과 같은 행태이다.
3) 변승우의 설교가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었다
「목사님의 설교가 계속되고 불을 토하는 듯한 말씀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었습니다. 앉아있기도 힘들 정도로 주님의 임재가 강했고 힘이 빠지고, 뼈 속에서부터 진동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강대상에 서 계신 목사님의 양쪽 어깨에 흰 비둘기가 각각 한 마리씩 앉아있었고 강대상 위로 흰 비둘기들이 계속 날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목사님은 계속 설교하고 계셨는데, 교회 공간에 천사들이 하얗게 움직였고, 어느덧 마귀들의 무리들이 천사들을 공격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변승우, <하늘나라에서 온 이메일>, pp.223-224)」
● 반증
사14:12-15에 ‘아침의 아들 계명성 곧 마귀는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 곧 하나님과 비기려 하다가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또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라’ 하셨으니, 변승우 측 ‘하늘나라에서 온 이메일’의 간증에 ‘변승우(목사)의 설교가 계속되고 불을 토하는 듯 한 말씀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었습니다’고 한다. 그것은 변승우가 여호와의 말씀과 비기려 하는 것이 된다. 변승우 측에서 간증한 것을 그대로 소개하는 것을 보면, 변승우는 그 간증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결국 제 자신이 지극히 높은 자 곧 하나님과 비기려 하는 것과 같은 행태이다.
4) 변승우의 큰 두 손이 십자가의 밑 부분을 잡고 같이 딸려서 올라오고 있었다
「주님께서 ‘딸아 올라오라’하셔서 지구를 보고 있는데, 지구를 안개로 덮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위에서 너무너무 큰 대형십자가가 지상을 향해서 굉장한 빛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내려가다가 주님이 십자가를 다시 들어 올리셨는데 큰 두 손이 십자가의 밑 부분을 잡고 같이 딸려서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그 손이 누구 손인지 여쭈어 보니 주님께서 저보고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구약에 노아의 시대(노아가 방주를 짓는 모습과 사람들이 죄 짓는 모습)와 소돔과 고모라 시대(그 시대의 목욕탕과 여러 가지로 죄 짓는 모습)를 동시에 보여 주시면서 지구를 다시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시면서 그 시대와 똑같은 시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먹고 마시며, 시집가고 장가가고, 건물을 거창하게 짓고, 돈을 사랑하며, 교만하며 자긍하기를 좋아한다면서 주님께서 자기 백성들의 타락한 모습을 보며 한탄하며 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시면서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처음에 보여주신 십자가를 붙들고 올라오는 손을 보여주시면서 구원의 방주를 짓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방주가 전 세계를 위한 거대한 방주였고, 지금은 희미하나 금방 드러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위에서 보니 그 십자가 밑으로 변승우 목사님 책 <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 <진짜 구원받은 사람도 진짜 버림받을 수 있다!> 이 세 권의 책이 전 세계를 한 바퀴 도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 손이 변승우 목사님인걸 알았습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을 읽으시며 맞다고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김OO 집사, 2005년 1월 7일자 입신간증코너)」
● 반증
사14:12-15에 ‘아침의 아들 계명성 곧 마귀는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 곧 하나님과 비기려 하다가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또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라’ 하셨으니, 변승우 측의 ‘김OO(집사) 간증에 ‘주님이 십자가를 다시 들어 올리셨는데 큰 두 손이 십자가의 밑 부분을 잡고 같이 딸려서 올라오고 있었는데 그 손이 변승우(목사)의 손인 것을 알았다’고 한다. 그것은 변승우가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와 비기려 하는 것이 된다. 변승우 측에서 간증한 것을 그대로 소개하는 것을 보면 변승우는 그 간증대로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결국 제 자신이 지극히 높은 자 곧 하나님과 비기려 하는 것과 같은 행태이다.
5) 변승우는 성경을 정확하게 해석하는 <다림줄>이 있다
「내 손에는 성경을 정확하게 해석하는 <다림줄>이 있다. (변승우 ,다림줄 pp 103-104)」
● 반증
사34:16에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 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하셨으니,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 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다 하셨다. 그러니까 성경 모든 말씀에는 그 말씀에 대해서 짝이 되는 말씀 곧 그 말씀을 해석해 놓은 성구가 있다는 말씀이다. 그렇기에 성경 해석은 성경 안에서 성경 말씀에서 해석해 놓은 것을 그대로 나타내는 것이 우리가 말하는 성경해석이다. 성경 해석을 한다고 성경 말씀과 도리 외에 그 어떤 말도 첨부하면 그 해석은 인간 자의적 해석이 된다.
변승우는 ‘내 손에는 성경을 정확하게 해석하는 다림줄이 있다’고 말하는데 그의 성경 해석을 보면 성경적 해석이 아니라 자의적 해석이다. 변승우 자신에게 성경을 정확하게 해석하는 다림줄이 있다고 말하는 그 자체가 벌써 성경 해석관에 문제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성경 해석은 성경이 해석하고 있다.
6) 변승우는 마지막 때에 선지자이며 사도이다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마지막 때에 쓰시는 선지자’라고 하셨어요. ‘사도’라고도 하셨고요. 목사님에 대해서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이며 예수님의 앞길을 예비하는 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목사님 하시는 사역들이 정말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런 일인 것을 제가 알았습니다.(변승우, <하늘나라에서 온 이메일>, p.85)」
● 반증
안식교의 엘른 G, 화잇은 환상과 계시를 받았다고 말한다.
왕국회관은 저들의 교주 럿셀이 가르친 진리가 오랫동안 감추어있던 성경 진리이며 그의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하다고 말한다.
신천지는 요한계시록을 알려준 이만희를 보혜사 성령 대언자라 말한다.
안증회는 안식일과 유월절의 새언약을 알려준 안상홍을 성령 시대의 구원자라고 말한다.
큰믿음교회는 변승우를 마지막 때에 쓰시는 선지자, 사도,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 예수님의 앞길을 예비하는 종이라고 ‘하늘나라에서 온 이메일’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