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23 01:06
■ 이견과 충돌
- 이견(異見): 서로 다른 의견
- 충돌(衝突): 서로 맞부딪침
하나를 아는 자와 둘을 아는 자는 반드시 이견이 생길 수 밖에 없다.
하나를 아는 자와 둘을 아는 자는 반드시 충돌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적군이 아군 복장을 하고 위장을 해서 쳐들어 온다고 가정하자.
이럴 때에 하나를 아는 자는 아군이 오는 줄 안다. 그러나 둘을 아는 자는 적군이 아군 복장을 하고 위장을 해서 쳐들어오는 것을 안다.
이럴 때에 하나를 아는 자와 둘을 아는 자는 적군이 오는 것에 대한 작전에서 이견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충돌이 있을 수 밖에 없다.
하나를 아는 자는 적군이 오는 것을 아군이라 주장한다.
둘을 아는 자는 아군 복장을 하고 쳐들어 오는 적군이라 주장한다.
하나를 아는 자는 적군을 아군이라 하는 것이 제게는 맞다. 그런 것은 아군 복장을 하고 오기 때문이다.
둘을 아는 자는 적군을 적군이라 하는 것이 분명히 맞다. 그런 것은 적군이 아군 복장으로 위장을 해서 쳐들어 오기 때문이다.
하나를 아는 자는 아군이라 주장하고, 둘을 아는 자는 적군이라 주장을 하는 이견에서 충돌의 관점도 다르다. 하나를 아는 자는 단순히 아군이라고 주장하는 데에 대한 이견의 충돌이지만, 둘을 아는 자는 하나를 아는 자가 적군을 아군으로 여길 때에 적군에게 당할 것을 염려하는 데에 대한 이견의 충돌이다.
그렇기에 하나를 아는 자가 주장하는 것에 대하여 둘을 아는 자가 이견에 대한 충돌을 피하기 위하여 허허! 하고 관용을 하는 것이 과연 인격적 존중를 하는 좋은 사람일까? 피해를 방관하는 나쁜 사람일까?
위는 하나를 아는 자와 줄을 아는 자에 대한 극단적 상황을 가상해서 예를 든 것이다.
믿는 우리는 현실 현실에서 영생을 이루기도 하고 사망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믿는 우리는 현실 현실이 극히 중요한 상황이다. 이런 극히 중요한 상황에서 하나를 아는 자의 주장과 둘을 아는 자의 주장에서 생기는 이견에는 충돌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것은 하나를 아는 자는 하나만 알고 또 현실 그 사건만 상대하지만, 둘을 아는 자는 둘을 알고 또 현실 그 사건에서 영생과 사망이 규정지어지는 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를 아는 자와 둘을 아는 자가 영생과 사망이 규정지어지는 정도의 주장이 아니라면 허허! 하고 관용하여 충돌은 피하는 것이 상대의 인격을 존중하는 좋은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사람에게 맞추는 중용(中庸)이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께 맞추는 진리(眞理)이다.
- 2021. 02. 18∥
- 선지자문서선교회∥김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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