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정치-② 침례교회의 '회중정치' 硏究

2007.05.14 15:51

반석 조회 수: 추천:

교회정치-② 침례교회의 '회중정치' 硏究
선지자선교회
이름 : 반석     번호 : 216
게시일 : 2006/12/19 (화) AM 00:10:46  (수정 2006/12/21 (목) PM 00:42:41)    조회 : 36  

■ 교회정치-② 침례교회의 '회중정치' 硏究

◎ 1차 원고, 추후 재정리

<서론>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직에는 제사장직, 선지자직, 왕직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대제사장이셨고, 대선지자이셨고, 만 왕의 왕이셨습니다.

우리들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직에는 제사장직, 선지자직, 왕직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만인제사장이며, 만인선지자이며, 만인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중보자 되셔서 우리 그리스도인을 왕직으로 다스리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자기에게 속한 자들을 왕직의 중보직으로 다스립니다.

예수님께서 다스림의 권세가 없으시면 그리스도가 아니시며 또 우리들도 다스림의 권세가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본론>

로마 천주교의 교황정치는 그 천주교를 다스리는 정치가 세속적입니다.

감리교회의 감독정치는 그 다스리는 교회정치가 교회적인 면도 있고 세속적인 면도 있습니다.

장로교회의 장로정치는 그 다스리는 교회정치가 개혁교회 초기에는 거의 교회적이었으나 지금은 세속적인 면이 좀 섞어있습니다.

침례교회의 회중정치는 그 다스리는 교회정치가 교회적인 것 같은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교회적에서 이탈 된 부분이 있습니다.


침례교회는 교회 안에 직분을 장로(목사)와 집사만을 두고 있습니다. 현재 침례교회 중에 장로직분을 두고 있는 교회가 있다면 그 교회는 침례교회의 정통성을 벗어나서 그 면에서는 장로교화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면을 두고 정통 침례주의자들은 이런 면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로마천주교의 교황정치와 감리교회의 감독정치는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습니다. 또 장로교회의 장로정치에 대해서는 좀 자세히 알고 있는 편입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이 글의 제목대로 우리들이 어렴풋이 알고 있는 침례교회의 회중정치에 대해서 좀 살펴보고자 합니다.  

●아래의 1-6번 글은 남침례교의 대표적인 신앙사상입니다.

1. 신약성경을 신조와 삶의 완전하고 유일한 원전으로 삼는다.

사람이 만든 모든 신경은 신앙의 원전으로부터 배제한다.

◎비평: 사람이 만든 모든 신경은 신앙의 원전으로부터 배제한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침례교회가 구약성경은 두고 신약성경만을 신조와 삶의 완전하고 유일한 원전으로 삼는다는 것은 성경적이지 못합니다. 구약성경도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 모든 신자는 대제사장 예수님 밑에서 평등한 제사장이다.

신자 위에 신자 없다. 이 제사장들은 업무상 구분이 있을 뿐이요 계급은 없다. 예수님 이외에 아무도 다른 신자로부터 지배를 받지 않는다.

◎비평: 성경에는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딤전5:17)'하셨습니다. '잘 다스리는 자는 했으니' 그러면 다스림을 받는 자들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신자 위에 신자 없다' 또 ' 아무도 다른 신자로부터 지배를 받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은 성경을 깊게 깨닫지 못해서 가지는 신앙사상입니다. 그렇다면 침례교회는 그리스도인의 다스리는 왕직을 부인해버리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배치되는 신앙사상이 되겠습니다.

(딤전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3. 교회의 직분은 목사와 집사다.

목사는 목회직이요 집사는 목회보조직이다. 이것은 사도행전6장과 20장17절, 28절에 의해 장로=감독=목사의 분명한 기록에 의한 것이요, 빌립보서 1장1절과 디모데전서 3장에 의하여 신약성경적으로 깨끗이 정리가 되어 있는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목사, 장로, 목독을 어느 한 단어로 목회직을 통칭하는 것은 가능하다. 16세기 영국침례교회는 이 목회직을 장로로 통칭한 적이 있었다. 남침례교에서는 이를 목사로 통칭하고 있다.

◎비평: 사도행전 6장은 사도들이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기 위해서 공궤 하는 직분의 집사를 세운 것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장로를 폐하고 사도와 집사만 있는 것으로 받는다면 사도행전 6장만보고 해석하는 편협입니다.

사도행전 20장 17절의 '장로'는 성경 그대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28절의 '감독자'는 사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사도행전 20장 17절 하반절과 18절 전반절에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오매 저희에게 말하되' 입니다.

(행20:17-18)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오매 저희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바니

사도행전 20:28은 교회 안에 양떼가 있고 양떼를 치는 감독자가 있음을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다 꼭 같은 감독자도 아니며 또한 다 꼭 같은 양떼도 아닙니다.

(행20:28)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빌립보서 1장 1절에서 '감독들은'이라 하는 것은 '양떼를 치는 자들'을 통칭한 것입니다. 양떼를 치는 자는 목사도 그리고 장로도 양떼를 치는 감독입니다. 그러기에 장로=감독=목사라고 하는 것은 성경에 기록 된 '장로' 직분을 버린 것이 되어져서 성경적이지 못합니다.

디모데전서 3장은 '감독 직분을 얻는 자'에 대한 말씀인데, 성경에서 말씀하는 '감독' 직분은 목사와 장로입니다. 성경에는 사도와 장로가 분명히 별도로 구분 된 직분으로 말씀합니다.

(행15:2)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4. 교회의 의식은 침례와 성찬이다.

침례는 인간의 죄를 지고 죽으시고 장사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만 이를 베푼다. 따라서 죄를 깨닫지 못하는 어린아이에게는 이를 베풀지 않는다.

성찬(또는 주님의 만찬)은 인간의 죄를 위해 예수님께서 죽으실 때에 상하신 그의 몸을 기억나게 해주는 의식이다.

◎비평: 침례교회는 침례만을 세례로 인정하고 있는데 이는 성경적이지 못합니다. 침례나 세례나 하나의 의식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고전1:17)' 했습니다. 유아에게 유아세례를 베풀지 않는 것은 성경적이겠습니다.

(고전1: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5. 교회 위에 교회 없다.

모든 교회는 예수님의 주권 밑에 자율적인 영적 단체다.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 이외에 아무도 교회를 지배하지 못한다. 각 교회는 예수님의 주권 밑에 독립이며 그 정치체제는 회중정치이다. 지방회나 총회는 선교와 친교를 위한 자발적으로 결성된 협력단체이요 지배기관은 아니다.

◎비평:  각 교회는 예수님의 주권 밑에 '독립'이라고 하는데 그 표현은 성경적이지 못한 표현입니다. 각 교회는 '한 지체'입니다. 독립과 지체는 아주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독립'이라는 개념에서 '회중정치'가 나오고, '지체'라는 개념에서 '공회정치'가 나옵니다.

그래서 침례교회는 정치체제를 회중정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회중정치라는 것은 개교회의 결정을 최고로 삼으며, 어떤 상급회의의 판결에도 복종하지 않고, 교회의 모든 일을 결정 할 수 있는 최종적인 권위를 개교회의 회중에 두는 것이 바로 회중정치입니다.

그러나 사도시대 초대교회의 예루살렘공회는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모여서 하나님을 뜻을 찾아 '의논' '의결' '집행'을 하는 공회정치였습니다. 초대교회는 개교회가 모인 공회의 결정을 최종적인 권위로 삼았는데 이것이 곧 공회정치입니다. 초대교회의 교회정치는 '회중정치'가 아니라 '공회정치'였습니다.

◎사도행전 15장에는 예루살렘 공회가 열린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략적 순서를 성구로 살펴보겠습니다.

1) 교회의 다툼이 있었고

(행15:2)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2)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였고

(행15:6)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3)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였고

(행15: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4) 또 바나바와 바울이 고하는 말을 들었고

(행15:12)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이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 고하는 것을 듣더니

5) 그런 후에 야고보가 대답하여 말을 했습니다.

(행15:13)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가로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6)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의논'하고 '의결' 한 후 모세의 율법 중에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다' 하는 것으로 '집행'을 했습니다.

(행15:20)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니

6. 정치와 종교는 엄격히 구분한다.

침례교인은 국교를 인정하지 않으며 국가로부터 신앙적인 간섭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국가로부터 신앙적인 지원도 받지 아니한다.

◎ 정교 분리는 성경적이겠습니다.


<결론>

침례교회의 회중정치는 예수님만이 그리스도의 왕직을 가진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되는 우리들도 왕직을 가졌습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이 왕직이 포함 된 말이며 또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왕직이 포함된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만 다스리는 왕직을 하시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우리는 왕직이 없이 누구나 평등하다고 말한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이 가진 왕직은 무엇이며 또 그 왕직으로 누구를 다스린다는 말입니까?

그래서 성경에는 장로를 다스리는 자라고 하셨고(딤전5:17), 사도도 기도와 말씀 전하는 것에 전무하나 또한 다스리는 자라고 하셨습니다.(벧전5:1-2)

(딤전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벧전5:1-2)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로라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교회 안에는 다스림의 직분이 있음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다스리는 직분은 사도와 장로입니다. 그러나 오해하는 것은 그 직분이 그리스도인의 왕직이지 세상 왕의 왕직이 아닙니다. 계급을 말하는데 계급이라는 말 자체가 성경적이지 못하며 세속적 발상입니다. 그래서 먼저 그리스도의 왕직을 먼저 성경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라 봅니다.

'다스리는 것'은 장로직분입니다. 그러면 다스리는 것이 어떠한 것인가? 다스리는 것은 장로가 먼저 하나님께 다스림을 받고 그러고 나서 교인들이 하나님께 다스림 받도록 하는 직분이 장로의 다스리는 직분입니다.

다스리는 것은 그리스도직의 왕직에 해당되는 직입니다. 왕직은 하나님께 먼저 다스림을 받고 그 다스림 받은 것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직입니다.

그러면 목사와 장로만 다스리고 집사와 평신도는 다스림을 받는 계급이냐?고 물을 법합니다. 그렇게 묻고 그렇게 생각하는 자체가 성경적이지 못합니다.

교회 안에는 하나님께 많이 그리고 잘 다스림을 받는 자라 하여 받은 직분이 목사입니다. 그 다음이 장로이며. 그 다음이 집사이며 그 다음이 평신도입니다.

그래서 목사는 하나님께 잘 다스림을 받아서 장로와 집사와 평신도를 잘 다스리는 직분입니다. 장로는 하나님께 잘 다스림을 받고 또 그 사이에 목사에게 다스림을 받아서 집사와 평신도를 잘 다스리는 직분입니다. 집사는 하나님께 잘 다스림을 받고 그 사이에 목사와 장로에게 다스림을 받아서 평신도를 잘 다스리는 직분입니다. 이렇게 다스림을 받고 또 다스리는 위치와 순서가 있는 것이 교회입니다.

목사> 장로> 집사> 평신도의 위치와 순서는 외형적입니다. 그 속의 실상적 그리스도인의 내형적 왕직의 위치와 순서는 얼마나 하나님께 다스림을 받고 또 다스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가지는 왕직의 참 실력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사는 동안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4;13)'를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 중에는 다스리는 왕직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스리는 그 다스림의 권세로 그 분량이 충만 하려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엡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부활 후 천년왕국에서도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을 연습합니다.(계20:6)

(계20: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천년왕국에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연습하는 기간이 끝나면 우리가 세세토록 왕노릇 합니다.(계22:5)

(계22: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그렇기에 예수교장로회 한국총공회가 가지는 공회정치는 침례교회가 가지는 회중정치와 비슷한 것 같아도 근본적 성질이 다릅니다.

아무리 살펴보고 아무리 비교해 보아도 예수교장로회 한국총공회가 가지는 공회정치는 초대교회의 예루살렘 공회와 가장 근접한 교회정치입니다.

<첨부>

더 세밀하게 그리고 더 정확하게 그러면서도 객관성 있게 다루어야 하나 더하지 못하여 여러 면으로 미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시간을 주시면 또 다른 제목으로 글을 추가하겠습니다. 그러면 나중에 같은 성격의 글들을 모아서 수정, 보완, 보충으로 일괄 정리를 하면 보다 안정감이 있는 글이 되지 않을까 기대를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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