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28 11:22
진리는 하나
1987. 8. 2. 주일새벽
본문:요한계시록 3장 20절∼22절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진리는 하나입니다. 진리는 하나인데 하나인 이 진리가 수십 수백 수천 수만으로 퍼져 나갑니다. 하나 비유컨대 이 태양은 하나이나, 태양은 하나이나 그 태양이 빛을 발해서 빛이 이렇게 퍼져 나가기는 그 빛이 온 지구에 바로 관련된 곳과 이 공간 넓은 데에 그 빛이 가득하고 충만합니다. 빛이 가득하고 충만합니다.
태양은 하나인데 그 하나의 빛이 가루어지지 아니한 데는, 가루어지지 안한 데는 어데까지나 그 빛이 퍼져서 충만해지는 거와 같이 하나님의 진리는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하나인데 이 진리가 여러가지로 이렇게 넓게 퍼져 나가서 가루어지지 아니하는 데는 어데까지든지 퍼져 나갑니다.
퍼져 나가서 어떤 사람에게는 사랑으로 퍼져 나가고, 어떤 사람에게는 또 하나님의 미움으로 퍼져 나가고,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퍼져 나가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징계로 이렇게 퍼져 나갑니다. 그러나 그 징계가 들어가 보면 사랑이요 사랑이 또 징계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어떤 자에게는 칭찬으로 그게 비추어 가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그 사랑이 책망으로 또 그에게 퍼져 나갑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그 사랑이 주의 주는, 조심하라고 주의 주는 것으로서 퍼져 나갑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그 사랑이 ‘네가 앞으로 이리 이리 될 터이니까 이 면을 준비하라’ 예비로 퍼쳐 나갑니다.
우리가 이 사람이 무지하고 참 그렇게 사랑이 없는 아주 악할지라도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했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인간은 악하다고 성경이 말했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했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시니 너희 아버지일까보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인해서 책망이 그 아들에게 필요할 때에는 책망을 합니다. ‘네가 이렇고 이렇고 하니까 이거 잘못했다. 이래 하지 마라.’ 책망을 합니다. 또 주의가 필요한 데는 또 주의를 합니다. 또 ‘앞으로 이래 될 터이니까 너는 이런 점을 이렇게 준비해라’ 또 준비로 자녀에게 말합니다. 또 그에게 위로로 말합니다.
이렇게 여러가지로 부모가 자녀에게 말을 하나 그 실은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랑이 상대방에게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을 책망이 좋을 때는 책망하고, 또 준비시킬 때는 준비시키고, 또 주의 주라 할 때는 주의 주고, 또 칭찬할 때는 칭찬하고 이렇게 그 사랑함으로 그 자녀에게 이렇게 저렇게 하는 거와 꼭 같습니다.
같은데 이와 마찬가지로 진리는 하나이나 그 진리가 이런 것으로 퍼져 나가고 저런 것으로 퍼져 나가고 한 진리가 퍼져서 한 진리 속에는 수많은 진리가 다 들었습니다. 진리가 억만이라면 억만이 한 진리 속에 다 들었고 또 한 진리에서 그 모든 것이 퍼져 나가서 그러기 때문에 진리는, 진리는 모가, 뭘 비유로 말하자면 진리는 모가 수천 수만 수억도 넘습니다. 그러면 그 진리가 요리 보면은 요거고 조리 보면 조거고 이렇게 해서 한 진리가 이렇게 퍼져 가지고서 여러가지로 작용을 해 가지고 그 사람을 구원합니다. 요게 이해가 됩니까? 요거 이해가 안 되면 요다음이 알기 어려워요.
그러기 때문에 진리는 하나라 하는 것을 이것을 여러분들이 기억하고, 그런데 우리에게 나타난 진리는 신구약 성경 말씀은 다 진리입니다. 그러면 신구약 성경 말씀이 다냐 하면은 우리에게 필요한 진리를 신구약 성경 말씀으로 기록해 주셨지 또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신구약 성경 말씀에 기록한 거 외에 얼마나 많이 있느냐?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문서 의지라 이랍니다. 문서로 나타난 하나님의 뜻이라 이랍니다. 또 성신의 감동으로 나타나는 것은 영감 의지라 그렇게 말해. 영감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뜻이라 그렇게 말해. 영감 의지라 그렇게 말합니다. 영감 의지라 문서 의지라, 또 영감으로도 문서로도 인간들이 알지 못하는 한없는, 하나님만이 아는 그 탁월한 영감 의지가 있습니다. 문서 의지 영감 의지 안에 하나님의 은밀한 의지가 있는데 은밀한 의지 그거는 또 사람들이 다 알 필요도 없고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성경이면 다가 아니고 성경에 성신의 감동의 의지가 있고, 성신의 감동의 의지면 다가 아니고 성신의 감동 의지 안에 저 안에 또 은밀 의지가 있다 말이오.
영감으로 우리에게 나타내 주시는 은밀 의지가 있어. 그러면 그거는 한정없어.
그런데 그게 한 진리입니다. 한 진리가 그렇게 이래 퍼져 나간다 그 말이오.
한 진리가퍼져 나가는데 그러면 한 진리, 무엇이든지 저 퍼져 나가는데 퍼져 가는 어떤 한 부분에 나타난 진리를 거머쥐고 찾아들어가면 진리의 근본으로 들어갑니다. 근본으로 들어가서 그 진리에서 이제 또 찾으면 그 진리에 속한 것이 한없이 있습니다.
이걸 뭘로 생각할꼬? 예를 들면 만일 진실이라 하면은 그 진실이라는 것이 그것이 진리입니다. 진실이 진리입니다. 그러면 진실 속에는 뭐이 들었느냐? 진실 속에는 거룩도 사랑도 의도 주권도 지식도 지혜도, 그 진실 속에 든 진리가, 진실 속에 들어 있는 진리가 만일 억만이라 합시다.
진실 속에 들어 있는 진리가 억만입니다. 그 억만 중에 하나를 가리켜서 만일 바르다 이래 합시다. 바르다. 그러면 진실 속에 보니까, 들어가 보니까 진실 속에 바르다는 바른 것 곧은 것, 곧은, 그 곧다는 그 곧은 진리가 진실 속에 들어 있어.
진실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면 진실 속에 들어 있는데 진실 속에, 곧다면은 무슨 하나 곧다 정직이라든지 자, 정직이라 하나 합시다. 진실 속에 정직이라는 것이 하나 들어 있는데 그러면 진실 속에는 진리가 억만이 들어 있다 이렇게 우리가 그저, 그보다도 더 무한하지마는 그리 계산을 해서 ‘진실이라는 그 한 진리 속에는 억만이 들어 있다. 들어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보니까 정직이라는 것이더라.’ 그러면 정직이면은 정직 속에는 얼마가 들어 있느냐? 정직 속에도 그 진리가 억만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면 정직 속에는 뭐이 들었더냐? 정직 속에는, 진실 속에 정직이 들었었지요? 그렇지 않소? 진실 속에 정직이 들었는데 그러면 정직 속에는 진실이 들었나 안 들었나? 들었습니까 안 들었습니까? 들었습니까 안 들었습니까? 정직 속에 진실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면 정직 속에 뭐이 들었나? 또 보니까 정직 속에 또 사랑이 들어 있습니다. 사랑이 들어 있습니다.
‘정직 속에 사랑이 들어 있으니까 정직은 그릇으로 말하면 큰 그릇이고 사랑은 조그만한 아마 보스래기 같은 작은 그릇인가보다’ 큰 그릇 속에 작은 그릇이 들어가지 작은 그릇 속에 큰 그릇이 들어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작은 그릇 속에 큰 그릇이 들어갈 수 있습니까? 조그만한 접시 속에 큰 도가지가 들어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없는데, 정직 속에 사랑이 들어 있습니다. 사랑이 들어 있는데 그러면 사랑이 정직 속에 들어 있습니다. 정직을 파서 헤쳐 보니까 그 속에 사랑이 들어 있더라 그거요.
그러면 사랑 속에는 정직이 들어 있습니까 없습니까? 정직이 들어 있습니까 없습니까? 정직 속에 사랑이 들어 있다니까 정직 속에 사랑이 들었으니까 정직은 큰 그릇이고 사랑은 그 속에 들었기 때문에 작은 그릇인데 사랑 속에 어찌 또 정직이 또 그 안에 들 수가 있겠습니까? 정직 속에 사랑이 들었는데 사랑 속에 정직이 들어 있습니까 없습니까? 들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말하기를 그릇이 아니다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생각하면 됩니다. 진리는 그릇이 아니다. 진리는 그릇이 아니다.
그러면 그릇으로 말하면은 큰 그릇 속에 작은 그릇이 들었고 또 그 속에는 더 작은 그릇 들었고 자꾸 이렇지마는 진리는, 진리가 수억만이라 합시다. 억만이면 억만 진리인데 억만 진리 중에 어느 진리를 하나를 잡든지 그 진리 하나 잡든지 잡아 가지고서 그 진리, 어느 진리든지 하나 잡았으면 억만 진리 중에 한 진리를 잡았습니다. 한 진리 잡았으면 잡은 그 한 진리 속에는 억만 진리가 그 속에 들어 있습니까 없습니까? 예? 들어 있습니다. 요것만 알면 그만 됐어.
이제 억만 진리 중에 한 진리 그 진리 속에도, 그 진리 속에도 억만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또 억만 진리 중에 어느 하나라도 잡고 보면은 그 속에는 자, 그 속에 진실이 들었습니까 안 들었습니까? 거룩이 들었습니까 안 들었습니까? 사랑이 들었습니까 안 들었습니까? 진노가 들었습니까 안 들었습니까? 교훈이 들었습니까 안 들었습니까? 다 들었어.
한 진리 속에 억만의 진리가 다 들었고 억만 진리 속에 또 그 모든 억만 진리가 다 들어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것을 가리켜서 진리는 단일성이라, 진리는 하나의 본질과 본성을 가졌다. 그러기 때문에 한 진리, 진리는 하나다. 진리는 하나인데 그 한 진리가 수 억억억만으로도 더 퍼져 나간다.
이렇게 퍼져 나가는데 퍼져 나가는 그 퍼져 나가는 거 거기에는 그라면 퍼져 나간 것이기 때문에 원 진리는 그래 퍼져 나가지만 퍼져 나간 그 속에는 그라면 이 억만의 진리가 들어 있느냐 안 들어 있느냐? 다 들어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진리는 하나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왜 이 말을 하는고 하니 여러분들이 한 진리라도 거머쥐고 그 진리를 배척하지 안하고 그 진리를 자기가 잡고 놓지 안하고 그 진리를 자기 진리를 삼습니다.
자기 진리, 그 진리를 자기 진리를 삼습니다.
자기 진리를 삼는 방편이 어떠합니까? 자기 진리를 삼을라면 어떻게 하면 자기 진리를 삼을 수 있습니까? 자기 진리를 삼는 방편은, 자기 진리를 삼는 방편은 그 진리를 자기가 성경에서 봤든지 또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귀로 들었든지, 눈으로 봤든지 귀로 들었든지 그렇게 진리를 알았습니다. 그것은 진리를 구경한 것입니다.
진리를 구경한 것이요 진리를 본 거, 진리가 있는 것인 것을 알았고 자기 진리를 삼는 데에는 삼는 방편이 어떤고 하니 현실에서만 자기 진리로 삼을 수가 있습니다. 자기 진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 어찌 만드는가? 그 현실에 그 진리가 해당될 때에, 그러면 우리 현실이라 하는 것은 이 진리가 해당되는 현실이 있고 저 진리가 해당되는 현실이 있어서 이 현실에서는 이 진리를 지켜야 될 그 현실도 있고 저 진리를 지켜야 될 현실도 있지 어느 현실이든지 진리를 다 지킬 수 없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진리가 해당된 그 현실에서, 해당된 그 현실에서 그 현실에 해당된 진리를 그 시간에 그 진리를 제가 지킬라고 하면 그 진리대로 행할라고 하면은, 진리대로 자기가 말을 하든지, 진리대로 생각을 한다든지, 진리대로 소원을 품는다든지, 진리대로 경영을 한다든지, 진리대로 찾는다든지 어쨌든지 그 현실에 해당된 그 진리를 자기가 그대로 행할라고 하면은 여러가지 어려움이 옵니다, 여러가지. 어려움이 와도 현실에 해당된 그 진리를 버리지 안하고 그 진리를 자기가 지킵니다.
그 진리를 지키면은 그 진리가, 지킬 때에는 뭘로 지킵니까? 지킬 때에는 눈으로 지킵니까 전신으로 지킵니까? 지킬 때는 전신으로 지킵니까 손 하나로 지킵니까? 전신으로 지킵니다. 지킬 때는 전신으로 그러면 몸뚱이로만 지킵니까 마음은 안 지킵니까? 마음도 지킵니다. 그러면 마음과 몸만 지킵니까 그때 우리의 그 영은 그것을 지킵니까 안 지킵니까? 영도 지킵니다. 지킵니다.
그러면 내가 지킬 때 그때에 지킬 때에 내가 그 지키면 영감과 나와 하나됩니까 안 됩니까? 영감과 나와 하나됩니다. 그러면 그 진리를 내가 지켜서 이행했으니까 그 진리와 나와 하나됩니까 안 됩니까? 하나됩니다. 그러면 그 영감과 진리를 나타낸 하나님과 자기와 하나가 됩니까 안 됩니까? 하나가 됩니다.
이렇게 해서, 한 진리를 찾아서 들어가면, 한 진리를 찾아서 들어가면 나중에 가 한 진리만 찾아 들어가면 그 속에 모든 진리가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 내가 말하는 것은 한 진리를 찾아 가지고서 그대로 내가 실행을 하게 되면은 그 한 진리로 통해 가지고서 또 자기가 좀 마음을 쓰고 양심을 가지고서 생각해 보니까 또 한 진리를 깨닫습니다. 그 진리를 깨달아 가지고서 또 자기가 양심을 써서 또 진리대로 살라고 하면은 또 그 다음에 진리가 또 보입니다.
그러면 한 진리 행한 그 속에 수억억만도 더 되는 진리가 그 안에 다 들었다. 한 진리를 자기가 자기 진리를 삼고 나면은 그 진리 속에 억억만 진리도 더 들었기 때문에 그 한 진리를 통해서 또 한 진리 또 한 진리 또 한 진리 또 한 진리 얼마든지 점령할 수가 있다.
그러기 때문에 한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이 그 한 진리 실행하는 거기에서 한 진리를 실행한 그 방편과 노력을 버리지 안하고, 한 진리를 실행한 그 노력과 방편을 버리지 안하고 그대로 노력하고 그대로 소원하고 욕심을 품고 가지게 되면은 나중에 모든 진리를 다 알게 된다. 그걸 지금 증거하기 위해서 제가 말하고 있습니다.
왜? 이 많은 진리를 여러분들이 한꺼번에 다 알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는데 한 진리라도 거머쥐어라. 한 진리라도 ‘요거 내가 거머쥐고 요거는 꼭 실행한다’ 한 진리라도 거머쥐고 실행을 해 봐라. 실행을 하는데 그 실행은 언제 합니까? 그 실행은 꼭 현실에서 합니다.
그러면 현실에서 하면은 어느 현실에서라도 그 진리를 실행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 그 진리에 해당되는 그 현실에 따로 있습니까 어느 현실에서든지 그 진리가 다 해당되고 있습니까? 그 진리가 해당되는 현실이 따로 있습니다.
따로 있는데, 따로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사랑하라 하는 그 진리라면은 자기가 사람과 접할 때는 사랑할 수 있고, 또 사람을 생각할 때에 사랑할 수 있고, 또 더 강하게 사랑할 때에는 미운 사람이 있을 때에 강한 사랑이 역사할 수 있고, 원수에게 대할 때에 더욱 강한 사람이 역사할 수 있고, 그러면 자기가 사랑이라 하는 것도 ‘요때는 사랑이라는 요 진리를 내가 지켜야 되겠다.’ 또 그뭐 아무 그런 것도 없고 자기 혼자 방 안에 있든지 또 아무 생각도 없고 이 모든 일을 하고 무슨 이런 직장에서 이런 일을 하고 할 때는 그때는 사랑이란 것이 해당이 아니고 첫째는 뭐 해당이 되느냐? ‘나는 여기 진실하게 해야 되겠다.’ 일할 때는 진실하게 해야 되고 진실을 그때 지킬 것이라 말이오.
또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물건을 팔 때는 그때는 물건 파는 그 현실에서는 해당되는 게 뭐입니까? 거기에는 해당되는 것이 첫째는 뭐이냐 하면은 친절이 해당되고, 또 정직이 해당되고, 또 그 사람을 대우하는 것이 해당되고, 이런데, 그러면 그런 친절 정직 또 상대방을 존대하는 것 그런 것이 해당되면은 거기에는 사랑은 거기에 해당이 됩니까 안 됩니까? 녜, 그 껍데기는 해당이 안 돼요. 거기에는 물건 사고 파는 데에는 친절과 정직이면 다 됐어.
친절과 정직이라는 진리를 행해야 되는데 친절과 정직을 행하게 되면은 그 속에는 사랑은 들었습니까 안 들었습니까? 사랑도 들었습니다. 그러면 그 속에는 하늘나라 소망이라는 그 소망은 그 속에 들었습니까 안 들었습니까? 소망도 들었습니다.
요거, 요게 참 알기 어려운데 요게 요것을 알아서 다 요거 깨닫게 되면은 그만 그게 도통인데, 그래서 한 진리를 잡아라. 한 진리라도 나는, 내가 지금 생각하는 것은 여기에 이 서부교회 교인들은 뭐 자꾸 듣지마는 들어도 또 뭐 듣는 게 언제 끝날란지 알겠습니까? 듣지마는 먼 데서 온 이런 사람들은 모처럼 왔으니까 또 못 들을 거라 말이오. 그러면 어데든지 가거들랑은 요번 거창집회 가는데 거창집회 가서는 뭣이든지 하나만 잡아요.
‘나는 뭐이든지 하나라도 요거 내가 꼭 잡고 놓지 않겠다. 요건 평생 내가 잡고 놓지 않겠다.’ 하는 그 하나만 잡고 그것을 놓지 안하고 어데서든지 그 하나를 지키고 그 하나 해당되는 데에 지키고, 해당되는 데에 지키고 보면은 그 한 진리를 잡았는데 그 한 진리가 해당이 되는 현실과 해당 안 되는 현실과 그 현실이 구분이 있습니까 언제든지 해당이 됩니까? ○○○씨? 어째, 못 알아들어. 어림도 없어. 천리 만리 거리가 멀어. 그뭐 슬슬 졸며 알아들을 수 있는 줄 알아? 그런 게 아니야. 얼마나 거리가 먼 줄 알아? 자, 그러면 우리가 신구약 성경 말씀은, 우리가 자꾸 현실을 바꿔 가지 안해? 이 현실 저 현실 바꿔 가지고 가는데. 그 현실에 해당된 진리가 각각 있습니까 다 같습니까? 각각 있다고 생각하는 분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저 뒤에는 손도 안 들어. 각각 있습니다. 각각 있습니다. 그 현실에 해당된 진리가 각각 있습니다.
그러면 해당된 진리 그 진리를 자기가 지키고 그 진리를 지켜서 자기 진리를 삼아 가지고서 그 진리 속에 들어가 보면 거기에 해당되지 안한 진리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해당되지 안한 진리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다고 생각하는 분 손 들어 봅시다. 없다고 생각하는 분 손 들어 봅시다.
거기에 그 사람이 나에게 아주 못할 일을 많이 합니다. 못할 일을 많이 했습니다.
못할 일을 많이 한 그 사람을 내가 만났습니다. 못할 일을 많이 한 그 사람을 만났는데 거기에 해당된 진리는 뭐입니까? 사랑과 용서겠습니다. 안 그렇겠습니까? 사랑과 용서겠습니다. 또 좀 하나 더 들어가면 그 사람에게 내가 소망을 가지고 희망을 가지고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사랑, 첫째는 용서, 속에 사랑, 사랑 속에 또 그 사람에게 대해서 그래도 소망, 또 소망 속에 그 사람을 위해서 내가 기도하고 노력해야 되겠고, 그러는데, 그러면 그 속에 들어가 보니까 원수를 만난 그 현실에는 해당되지 않은 진리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거기에는 해당되지 안한 진리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해당되지 안한 진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 그러면 그 현실에 해당되지 안한 진리는 하나도 없다, 다 해당된다, 모든 진리는 거기에 다 해당된다.
그러면 다른 진리는 거기에 해당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분 틀렸습니다. 모든 진리는 다 해당이 됩니다. 껍데기 진리는 이 진리가 해당됐고 그 진리 속에 들어가니까 또 이 진리가 또 넓게 해당됐고, 그 속에 들어가 보니까 더 넓게 해당됐고, 그 속에 들어가 보니까 억억만의 진리가 다 해당이 다 돼. 알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사람의 행하는 것은 천층 만층이라 우리가 얼마든지 가고 가고 해서 크고 크고 자라갈 수가 있습니다.
그뭐 무한한 것이기 때문에 유한한 것으로 자꾸 비추어서 할 수가 없는데, 그러기에 우리에게 우리 현실에 진리가 억만도 더한 진리가 있는데 말하자면 그 진리가 우리에게 축소돼서 나타난 것은 뭐이냐? 영감 진리.
영감 진리가 또 축소돼서 또 쪼불트려 가지고 축소돼 가지고 나타난 진리는 뭐입니까? 그 진리는 영감 진리가 축소, 축소라 말은 아주 줄여뜨려서 아주 작게 해 가지고 나타나는 거, 영감 진리가 축소돼 가지고 우리에게 나타난 진리는 뭐입니까? 뭐입니까? 신구약 성경입니다. 신구약 성경이 축소되어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면 신구약 성경이 내 현실에 나타날 때에 축소돼서 제일 거기에 제일, 거기에 제일 직접 해당되는 그 진리가 나에게 그 현실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는, 여기에는 진실을 지켜야 되겠다, 거룩을 지켜야 되겠다, 화평을 지켜야 되겠다, 여거는 인내를 지켜야 되겠다, 여기에는 용서를 지켜야 되겠다, 여기에는 소망을 가져야 되겠다, 그 모두 진리가 그 현실 현실마다 해당된 진리가 각각 따로 있는데, 따로 있는데 따로 있는 그 해당된 그 진리는 그 진리만 해당이 되고 딴 진리는 해당이 안 됩니까 그 진리는 제일 일차적으로 해당이 되고 그 다음에 그 진리가 해당되고 그 속에 한층 들어가면 이차적으로 해당되는 진리가 또 더 많고 또 삼차적으로 해당되는 진리는 더 많고 자꾸 들어갈수록이, 예를 들어서 이런 거와 같기 때문에, 이런 거와 같기 때문에 요 딱 요런데 요래 보니까 요 끝이 얼마 안 되지마는 자꾸 이래 나가면 어찌 됩니까? 끝이 넓어집니까 좁아집니까? 끝이 넓어지요. 자꾸 넓어져. 이와 마찬가지로 이 진리는 이렇습니다.
들어가 보니까 ‘거기에도 과연 요 진리가 들어 있구나.’ 그러면 한 진리 속에는 이거 수억억만의 진리도 그 속에 다 들어 있다. 억억만의 진리가 들어 있는, 그 진리 하나 속에 모든 진리가 다 들어 있다.
그런데 그 진리를 내것 삼는 데에는 현실에서만 내것 삼을 수가 있다. 현실에서 내것 삼는데 그 현실에서 그 진리를 자기 것 삼는 것은 그 현실에서 그 진리를 부인하지 안하고 그 진리를 자기가 인정하고 그 진리대로 실행할라 하면은 여러가지 애로가 있습니다. 여러가지 애로가 있어도 그 진리대로 실행을 했습니다.
실행을 했으면은 그 진리를 실행할라 할 때 여러가지 배치되고서 방해되는 것이 많은데 그 진리를 실행을 했으니까 실행할 때 그 진리에 반대되는 그것은, 내가 그 진리를 실행하면 반대되는 그것은 거기에서 어찌 됩니까? 저 ○○○씨, 어찌 됩니까? 그거는 어찌 되지요? 내 현실에서 해당되는 그 진리를 내가 실행할라고 하면은, 실행할라 하면은 이 세상은 실행하도록 도와 줍니까 실행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까? 내 속에는 실행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으면 그 이름을 뭐라 합니까? 옛사람인데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된 것입니다. 그러면 방해하는 데에 내가 그걸 실행을 하면은, 실행을 하면 뭐이 죽습니까? 실행을 하면은 자기 주관이 죽습니다. 자기 속에 옛사람이 죽습니다.
죄가 죽습니다. 세상이 죽습니다. 그래 가지고 점령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실에서만 진리를 자기 것을 삼을 수 있다. 그 진리를 삼는데 그 진리는 그라면 그 진리는 끄트머리 나타난 그 진리 하나뿐입니까 그 진리 속에 또 다른 진리가 들어 있습니까? 들어 있습니다.
그 진리 속에, 그 진리 속에 들어가니까 그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한 진리가 들어 있습니까 두 진리가 들어 있습니까? 한 진리가 들어 있습니까 두 진리가 들어 있습니까? 두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또 들어가니가 또 얼마 있습니까? 들어가니까 또 세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들어가니까 또 네 진리 들어 있습니다.
들어가니까 다섯 진리 들어 있습니다. 들어가니까 또 백 진리가, 나중에 자꾸 들어가면 억만 진리도 더 들어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구원이 천층 만층입니다.
왜? 보니까 요 사람은 요것만 했는데 그 다음에 안에 보니까 또 있고 또 있고 하니까 이래 하니 나중에 가서는 진리는 단일성이다. 하나다.
이라니까 그 안에 가 보니까 한 진리 그걸로 시작했지마는 나중에 보니까 요것도 가져야 되고 저것도 가지고 다 가져야 되지, 사람이 하나만 딱 가졌지, 껍데기 하나만 가졌지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자기가 상관하지 안했어. 그러면 그 안에 든 거와 자기는 상관했어. 또 상관했어. 상관했어. 자꾸 이래 가지고서 무한히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래서 한 진리라도 잡고 놓지 안하고 ‘요거는 나는 일생 동안 요거는 놓지 안하고 어떤 그 환경에서라도 지키겠다.’ 요 진리 하나 요거 지킬라 할 때에는, 어느 진리든지 하나 지킬라고 하면은 자기의 소유가 절단나는 그런 형편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한 진리 그걸 꽉 쥐고 요거 내가 놓지 안할라 하면 그거 놓지 안하고 꼭 그거는 자기가 지킬라고 하면은 그 진리 지킬라고 하면은 자기의 소유가 절단날 수 있는 그런 때가 옵니까 안 옵니까? 옵니다. 그러면 소유만 절단나면 하지만 자기 생명이 절단날 수 있는 그런 기회는 옵니까 안 옵니까? 생명이 절단날 수 있는 그런 기회도 옵니다.
이제는 소유가 절단나도 요 진리는 지킨다. 또 그 다음에는 자기 몸에 어떤 뭐 박해가 감옥에 들어가고 어떤 일이 있어도 요 진리는 지킨다. 또 그 다음에는 생명이 어찌 돼도 생명에도 지킨다.
그러면 그 한 진리를 지킬라 할 때에 자기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바치지 안하면 지킬 수 없는 거기에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그럴 때 양보하지 안하고 그 진리를 지키게 되면은 거기에서 하나 좀 어려움이 해당될 때에 어려움에 손해를 보고 진리를 지키면은 더 넓게 들어가고, 또 마지막에는 생명을 상관하지 안하고 생명을 애끼지 안하고 그 한 진리 지킬라고 할 때에 생명이 우리에게는 최고의 소유입니다. 그 하나 생명 하나 바칠 때에 그 안에 있는 진리는 다 자기 진리가 되고 다 그것을 자기가 가지고서 자기 것을 삼을 수가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이래서 이거 참 뭐 이거 가르치기는 얼마나 가르쳐야 되고 배우기는 얼마나 배워야 되는데, 이거 배우는 게 쉬워. 하나만 알고 자꾸 요렇게 들어가면 그만 되게 되는데 자기를 부인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르는 것입니다.
이 산만당에 올라갈 때에 여러가지 올라가는 것도 한 자욱으로 자꾸 이래 올라가고 올라가 가지고 백 메타 올라가서 보면은 백 메타 위에서 보는 전부 그 시야는 다 보입니다. 시야는 다 봐요. 또 천 메타 올라가면 천 메타 위에 올라가 가지고 보는 건 다 보이요.
이런데 그러면 백 메타 올라간 사람이 그 지금 배웁니다. 백십 메타 올라간 사람이 그 사람을 가르칩니다. 그러면 가르치면 가르칠 때에 백 메타 보는 사람이 배울 때에는 이해가 됩니까 안 됩니까? 제 눈에 안 보이기 때문에 이해가 안 돼.
그러면 가르치는 것이 백 메타 있는 사람을 가르칠라 하면은 자꾸 가르치는 게 주먹만치 납득하는 게 아니라 자기 몸과 생명과 소유를 바칠 만치 납득한 그 무한한 납득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그 가르쳐 증거하는 데도 인간 이상의 능력이 와 가지고 증거하게 되고 또 받아서 깨닫는 데도 인간의 총명으로 깨닫는 그 이상의 능력이 와 가지고 깨닫게 하고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방언의 은혜라, 방언의 역사라, 말, 방언의 역사라, 말은 주고 받는 것 아닙니까? 방언의 역사라.
그렇게 말했는데, 그만 그 뒤에 사람들이 성경을 모르고 방언 하면 네빌네빌네빌 욜욜욜욜 하면 그게 방언인 줄 이렇게 알고 있는데 그것도 녜, 그것도 없는 거는 아닙니다. 그 종류 가운에 있으나 그거는 아주 말단의 아주 참 보스래기 은혜고 이 방언은 그렇습니다.
이래서 가서 들어서 이걸 깨달아야 될 건데 이라는데 여기에도 지금 여러날 말했는데 오늘 아침에는 뭐 그 진리를 다른 것도 말 못 하고 했으니까, 진리는 하나라. 하나기 때문에 어느 것이든지 하나를 잡아라. ‘내가 뭐이든지 하나 잡겠다. 요것은 내가’ 잡으면 그것을 가리켜서 예수님이 뭐라고 했어요? 그 뭐라 했습니까? 아버지의 말씀은 뭐라 했습니까? “아버지의 말씀은 영생이라” “그러면 내 말은 내 말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말씀이라. 내 말은 아버지의 말이라.” 그러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은 뭐라 말입니까? 영생이라 말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영생입니다.
한 말씀이라도 잡고 요대로 내가 행할라 하면, 그러면 처음에 그대로 행할라 하면은 쉬워요 어려워요? 어렵습니까 쉽습니까? 처음에 그 말씀대로 실행할라고 하면은 자, 시작할라고 하면은 시작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 어렵지 않소. 그러면 요 한 말씀이라도 거머쥐고 요대로 내가 실행해 나갈라 하면은 자꾸 실행을 할수록이 연습이 되니까 익숙하니까 실행해 갈수록 이제 실행하기가 쉽습니까 실행해 갈수록 실행하기가 어렵습니까, ○○○씨? 어? 어려워? 졸며 어려우니 하는 그런 거는 속에 능력이 안 들어가. 능력이 들어가야 돼.
그러면 이 한 진리를 거머쥐고 요대로 실행할라고 하면은 차차 갈수록 어려워집니다. 어려워지는데 마지막에는 얼마나 어렵습니까? 저 도장 상점 차린 저분 대답해 봐. 얼마나 어려워집니까? 어려움이 얼마나 어려워져요? 이 내나 그분이지? ○○○구역에 저분 아니요? 자, 한 진리를 거머쥐고 지킬라고 하면은 차차 어려워집니다. 어려워지는데 마지막에는 얼마나 어려워집니까? 한번 대답해 봐. 자, 또 저 ○집사? ○○○집사? 얼마나 어려워집니까? 참 어려운 모양이다.
○○○집사? 생명을 내놔야, 그만치 어려워진다 말이오. 속에 저 생명이 있어. 잘 믿어, 보면. 생명을 내놔야 지킬 만치 어려워집니다. 그러면 그때 생명 내놓고 지킨 사람은 뭐냐? 그거 가지고 세상을 다 이겨버렸어.
그러기 때문에 한 진리만 잡고 지켜 나가면 모든 진리 다 알게 된다. 한 진리 지키게 되면 모든 진리 다 지키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이 진리 저 진리 그래 잡지 말고 하나라도 잡고 가거라. 하나라도 잡고 가거라. ‘나는 요거 잡고 간다.
요거는 내가 죽어도 내가 어떤 현실에도 요거 실행하겠다.’ 하는 하나라도 잡고 가거라.
속담에 떼꿩에 매놓는다 말이 있어. 꿩은 매를 가지고서 꿩을 잡는 건데 꿩이 많은 데 매를 놓으면 이놈이 이놈 잡을라 하고 저놈 잡을라 하다가 나중에 다 놓쳐 버리고 하나도 못 잡아요. 그런데 한 마리만 있는 데만 매를 놓으면 틀림없습니다. 가서 그만 어데까지든지 따라가 가지고 잡아버립니다. 이러니까 떼꿩에 매놓기라. 그러면 우 한 떼 있는 꿩에다 매를 놓으면은 그만 이리 저리 이놈 저놈 잡을라 하다가 하나도 못 잡아버리고 말아요.
이 꼭 진리를 지금 잡아야 되겠는데.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