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와 총명

 

1988. 12. 29. 목새벽

 

본문: 야고보서 3장 13절∼18절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 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  두느니라

 

지혜와 지식이 다릅니나. 지혜와 지식을 구별해서. 지혜는 앞으로 낙 쳐올 그  미래에 대한 것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지식은 지나간 일과 현재 내가 닥쳐본  그런 모든 것이 다 지식입니다.

 그래서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있느냐" 그러면 자기의 미래에 대해서 아는  자가 있느냐? 미래에 대해서 아는 것은 뭐 참 천도 만도 넘습니다. 사람마다 다  지혜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 지혜를 크게 구별하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위에서 내려온 지혜가 있고 땅에서 일어난 지혜 있어서 위에 속한 지혜  땅에 속한 지혜 두 가지로 구별 할 수 있습니다.

 또 총명이라는 것은 모든 것에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또 물질이나 일들이나  모는 존재에 대해서 다 자기대로 모든 것을 아는 그 전면을 아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총명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사람들도 총명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삐뚤어진 걸 가지고 있든지 바른 것 가지고 있는지 총명은 다 가졌습니다.

 이래서 다른 말로 말하면 지혜라 말은 모는 미래에 대해서 자기가 아는 것  미래관이라 그렇게 다른 말로 말하면 할 수 있습니다. 미래관이라, 미래를 보는  것이라.

 미래에 대한 나는 어떤 일이 올 것이라 어떤 물건이 올 것이라, 어떤 사람을  만날 것이라, 하나님과 나와는 어떨 것이다, 어떤 시험이 올 것이다 자기의 미래에  대해서 어떻다고 생각하고 아는 그것이 지혜요 총명이라 하는 것은 미래나  과거나 현재나 모든 만사물 존재에 대해서 아는 그 요소 우리 마음에 모든 것을  다 보고 아는 그 요소를 가리켜서 총명이라 또 미래의 것만을 보고 아는 그것을  지혜라 이렇게 말하는데 사람마다 지혜와 총명은 제대로는 다 가졌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영과 육 또 금생과 내세 모든 그 성공과 실패는 어데 달렸는가?  우리 현재의 움직임에 달렸습니다. 우리가 현재에 이렇게 움직였든지 저렇게  움직였든지 이렇게 살았든지 저렇게 살았든지 그대로 보응이 닥쳐오는 것이  우리의 미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재 움직임은 미래의 원인이 된다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미래에 좋은 것은 현재에 그것을 만들어야 되지 현재에 만 들지 않고  미래에 좋은 것을 오리라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래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사람은' 좋은 날이라 말은  오늘보다 내일이 좋고 내일보다 모레가 좋고 하는 것이 좋은 날이겠습니다.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사람은 그 혀를 금하라.' 말을 조심해라.

그래서 '악한 것을 버리라 자기 중심의 그 말을 버리라." 말은 사람이 말하는 그  말은 뭣과 같다고 했습니까? 말은 말굴레와 재갈과 같습니다. 또 배에 대해서는  뭐와 같다 했습니까! 키와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자기의 그 말이 자기의 미래를 끌고 간다 그렇게 깨달으면 바로  깨달음입니다. 말은 어데로 갑니까? 말은 말굴레와 재갈먹인 거게 끌려갑니다.

제가 아무리 큰 말이라도 굴레를 씌워 가지고 재갈을 먹여 가지고 고삐를 당기면  안 따라올 수가 없습니다.

 이런 데서는 그런 걸 책으로만 글로만 읽으니까 독서만 가지고는 참 한 시간 뭐  볼 것을 책으로는 여러 수십 권 읽어도 잘 그거 뜻을 깨닫지 못합니다. 지금은  모두 이 기계들이 있어서 그러나 그전에는 꼭 짐승들로서 무엇을 실어 나르고  끌어 나르고 이러는데 그 큰 말들 보면 조그마한 그 사람이 그놈을 말을 잘 안  들을 때는 마구 들고 뚜드리는데 그뭐 사람 몇 배나 힘이 세고 하지마는 굴레를  씌워가지고 재갈을 먹여 가지고 때리면 꼼짝을 못 합니다. 그러면 말이 재갈먹인  그 고삐를 따라서 가는 것처럼 인생은 자기가 말한 그대로 앞으로 돼 간다  그말이오, 말한 그대로 돼간다.

또 배에 대해서 키와 같다 큰 배가 광풍에 밀려서 달아나는데 그것이 그대로  달아나면 다 암초에 부딪혀서 그만 그 배는 다 파선이 돼 버리고 맙니다. 아무리  좋은 배라도 그 운전을 해서 위험을 피하고 이래야 되지 위험을 피하지 않고  그만 이렇게 하면 배가 암초에 걸려서 절단 나는 것처럼.

 사람이라는 것은 자기 앞에 뭐 망할 위험한 일도 많이 있고 또 자기의 행복도  그 앞에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는 행복과 불행이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런데  어떤 사람은 행복에서 행복으로 형통에서 형통으로 자꾸 요리 조리 요리  걸어가니까 그 사람은 항상 행복스러운 일만 닥치는데 어떤 사람은 뜻밖에  낭파들이 턱턱 당해 가지고 절단나는 그런 사람들 있습니다.

 바다에는 그 배가 요리 조리 피해서 가면 잘 가서, 짐을 실었으나 사람을  실었으나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데 그만 바람에 밀려서 배가 바람대로 그만 이래  밀려서 가면 그 배는 뭐 틀림없이 암초에 부딪쳐서 파선이 됩니다. 그러면  암초라는 것은 물 속에 숨어서 보이지 않는 그 바위입니다. 물에 바위가 안  보이지 또 보여도 할 수 없어. 바람에 밀려서 가니까.

 그런데 그것을 뭘 사람이 그 배를 그렇게 앞에 저 암초를 향해서 가니까 이  배가 파선이 되겠다 싶으지마는 그 배를 그리 가지 못하도록 할 수가 없어. 나쁜  데로 깨질 대로는 안 가고 즈은 수로로 이렇게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뭐이냐  사공의 조그만한 키라 했어. 조그만한 키. 뒤에. 운전대와 같애요.

 키인데 이와 마찬가지로 혀는 자기에 대한 키다 자기가 앞으로 망하고 흥하고  하는 그런 모든 미래가 있는데 미래에 좋은 것을 향하여 행복스러운 그 행복을  찾아가는 그 방편은 뭐이냐! 기구는 뭐이냐? 그것은 혀다.

 그러면 혀 가지고 자기 앞에 있는 모든 불행을 다 피할 수 있고 가기 앞에 있는  행복을 찾을 수 있고 또 혀로 가지고 자기 앞에 있는 모든 불행에 가서 부딪힐  수가 있는 것입니다. 혀 놀리는 대로 인생은 그의 모는 운명은 간다. 이러기  때문에 혀를 단속해서 혀를 재갈먹이라 이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이래서 그 사람이 벌써 '나는 내 입술 놀리는 대로 내 장래는 된다' 하는 그것을  아는 사람은 자기 혀를 재갈먹입니다. 재갈먹인다 말은 말을 재갈먹이면 꼼짝  못하는 것처럼 혀를 단단히 단속해서 혀 제 맘대로 날뛰지 못하도록 그렇게 그  것을 단속하는 데에 전력을 기울입니다.

 이래서 혀를 단속했으면 그 사람은 벌써 온전한 사람이라 그렇게 할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혀를 마구잡이로 놀리는 사람은 참 그 사람은 죽도록 애써 봤자  혀를 잘못 놀리는 데에서 절단납니다. 그러면 자꾸 말을 많이 하는, 인제  잘못하니까 말을 많이 안 하는 그것이 좋지마는 내가 사람을 접한 대로는 말을  많이 하는 그런 사람은 큰 해를 닥치지 않으나 말을 안 하고 딱 다물고 있으면  그 사람은 참 말이 없는 사람 같은데 말 없는 그 사람이 가다가 말 한 마디씩 할  때 큰 낭파를 지웁니다. 말을 안 하니까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이 저 사람 말은  그래도 뭐. 실없는 사람이 아니니까 저 사람 말은 신실히 들어야 되겠다 이렇게  다른 사람이 평가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말하는 게 힘듭니다.

 이래서 제일 위인이 누구가 위인인가? 하루 종일 말합니다. 하루 종일 말을, 안  믿는 사람들은 말을 잘하는 사람은 은이라면 말을 전연히 안 하는 사람은 금이라  이렇게, 무언은 금이라 이랬어. 말을 안 하는 사람은 금이라. 이렇게 말하나 그거  다 경험이 없어서 안 믿는 사람이니까 몰라 그렇지 말 안 하는 그 사람의 말로써  모든 큰 일들이 다 나고 좋은 일도 나고 나쁜 일도 납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은 제일 복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말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말을 많이 하는데 아무나따나 하면 그 사람은 자기 망하고 남 망하고  다 망합니다. 이래서 '윤회하는 만물을 불사르는 것이 혀라' 했습니다. 그러면  만물과 만사물을 다 망치는 것이, 자기에게나 남에게나 망치는 것이 그게 혀다.

혀가 들어서 망친다.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자기의 미래의 모든 불행을  막고 행복을 끌어오는 그것이 혀 하나 단속하는 데에 있습니다.

지난밤에 우리가 증거했는데, 인생의 행불행은 현재에 있다. 그러면 현재에는  현재에 앞으로 망할 것을 만드는 사람도 있고 또 행복될 것을 만드는 사람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다.

 망할 것도 만들고 행복될 것도 만들고 이러니까 참 현재에서 한없는 행복을  만드는 사람도 있고 현재에서 한없는 불행을 만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마다 다 행복을 만들고 싶지 불행을 만들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면 현재에 행복을 만들고 불행을 만드는 거, 그러면 현재에 행복이나  불행이나 만들었으면 그 행복과 불행이 언제 자기에게 옵니까? 앞으로 닥쳐오는  것입니다. 미래를 행복되게 만들어서 내 게 오도록 하느냐 미래를 불행이 돼서  내게 오게 하느냐 하는 그것이 현재의 언행심사의 행동에 그 매여 있습니다.

 그러면 다 현재의 언행심사를 복되게 하려고 사람들은 애를 다 쓰게 되는데  사람들이 이것을 모르면 그저 현재 좋도록만 합니다. 현재 좋도록만 하고 지혜  있는 사람은 현재 좋도록 하는 게 아니라 현재는 미래의 원인이기 때문에  어쩌든지 현재는 미래 좋도록만 자꾸 그래 합니다.

 그러니까 현재에 하기 어려운 것은 그 결과인 미래에는 좋고 또 현재에 하기  좋은 저 하고 싶은 대로 좋은 대로 현재를 행동해 놓으면 미래에는 불행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앞으로 복을 받을 건지 화를 받을 건지 뭘 보고 알겠느냐?  아는 것은 그 사람의 현재를 보고 알 수가 있습니다. 현재를 보고 '저희는 지금  미래에 복이 오겠다. 현재에 제가 어떻게 위대하고 훌륭하게 돼 가지고 있지마는  미래에는 비참하겠다.' 그거 뭘 보고 아느냐? 그 사람의 뭐, 상쟁이들은 상을 보고 안다 하고 또 이  미신가들은 사주보고 안다 하고 이거 다 소용없는 것이고 사람의 언행심사를  보고 그 사람의 미래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행심사가 행복된 미래를 만드는 사람도 있고 불행한 미래를 만드는  사람도 있고 이렇게 있는데 사람마다 자기의 미래를 행복된 미래로 현재에  만들려고 하는 이런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자기가 현재 행동하면서 '내가 앞으로 행복되게 하려면 내가 행동 어찌 해야  되느냐?' 미래가 현재에 매였다고 이것을 알고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단속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참 지혜가 있는 사람입니다. 사소한 일에도 '내가 지금  이래 말해 놓으면 앞으로 어떤 미래가 오겠다, 이렇게 내가 마음을 쓰면 내가  어떻겠다. 이렇게 행동을 하면 어떻겠다.' 자기가 미래가 현재에 매였다는 것을  생각하고 현재를 조심하는 사람이면 대단히 슬기로운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은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조심하고 단속을 해야 되는데  단속을 하려고 생각지도 않고 현재 좋도록만 사는 사람 있으니 그 사람은  막살이로 하는 사람이오. 그 사람은 믿음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오. 믿음이라는  것은 미래를 보고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니까 뭐 우선 현재 좋게만 하고  미래가 어찌 되나? 자기 미래는 생각지 않고 현재 좋도록만 사는 그 사람을  가리켜서 무슨 사람이라 합니까? 막사람이라, 마구잡이 사람이라, 그뭐 아무 가릴  것 없이 마구잽이로 사는 사람이라 마구잽이라 말이 이거 뭐 표준어인가  사투리인가 모르겠어. 이거 뭐이요? 표준어라? 마구잽이? 그래 마구잽이로 사는  사람은 마구잽이로 사는 그것을 고쳐야 됩니다. 여게서 너무 거리 먼 것을  말하니까 잘 모르는데 바구잽이로 사는 사람은 마구잽이로 사는 그 어리석은  행위를 버려야 합니다.

 마구잽이로 살아지지 않습니다. '사람의 심은 것은 무엇이든지 그 대로 거둔다'  그 말은 심으는 거는 현재에 심습니다. 거둔다 말은 미래에 닥쳐온다 그  말입니다.

 이러니까 내가 현재 사는 것은 내 미래를 내가 결정하는 것인 것을 깨닫고  마구잽이로 살지 말고 조심해서 자기 현재를 미래에 나쁜 거 오는 것을  싫어하면은 현재에 그것을 바로 살아서 고쳐야 되는 것이지 그 불행이 오는데  그때에 아무리 싫어서 그걸 막을라 해도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미래를 생각하고 현재를 사는 사람은 지혜 있는 사람이지마는  미래는 생각지 안하고 미래는 미래야 어찌됐든지 우선 현재 좋도록만 하는 그  사람은 참 그게 무슨 사람입니까? 마구잽이 사람이요, 마구잽이 사람.

 사람이 대개 보면은 마구잡이로 살아 가지고 자기를 망쳐 버립니다. 그래도 그  사람이 마구잽이로 살지 안하고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조 절해서 현재에 좀 싫고  어려워도 미래를 생각하고 그것을 시작도 하고 참기도 하고 계속도 하고 이라는  사람이면 슬기 있는 사람이라 그 사람은 그래도 뭐이 됩니다.

 그러나 대개 사람들이 그만 현재에 좋으면 좋은 것만 생각하고서 마구잽이로  살기 때문에 그 사람이 행복이라 하는 것이 뭐 계속되지를 못하고,  또 행복도 종류가 여러 수백 종도 넘습니다. 그러니까 한 가지만 있으면 그것을  그만 한 가지 가지고 다인 줄 알고 살지마는 이 면도 저 면도 여러 면을 다  생각하면서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라면 대단히 슬기로운 사람입니다.

 이래서 마구잽이로 사는 우리들이 현재만 보고 미래를 생각지 안하고 현재만  보고 사는 이 마구잽이 사람들이 이것을 고쳐야 됩니다. 마구잽이로 살지 말고  현재는 미래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미래를 좋은 미래가 오기를 원하는  사람이거든 네가 현재에 그것을 단속해 가지고서 조심해서 살아라 성경이 다  그렇게 말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마구잽이 사는 생활은 그것을 버리고 그 사람이 고쳐서 이제  조심해서 현재는 미래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이 현재를 조심해서 살아야 되겠다  하는 이 사람이 되어야 하겠고 현재를 조심해서 살아야 되겠다 하는 이 사람이  되는 데는,  현재를 조심해 살고 싶다고 조심이 됩니까? 그러면 현재를 잘 살고 싶다고 잘  살아지지를 않습니다. 날뛴다고 되는 게 아니고 열심을 낸 다고 되는 게 아니고  꽁 하이 참는다고 되는 게 아니라.

이러니까 현재라는 그 모든 언행심사의 생활이나 행위 그것은 어데서 나옵니까?  현재의 언행심사의 현재 행위 현재 생애는 어데서 나온다고 했지요? 어데서  나온다 했습니까? 지혜와 총명에서 나옵니다. 지혜와 총명에서 나옵니다.

자기의 현재의 생활은 지혜와 총명에서 나오고 미래의 행불행은 현재의 행동이  만들어 버립니다. 현재에 만들어 놓은 그 미래의 행복을 다른 사람이 방해해도 안  올 수 없고 만들어 놓은 불행이 아무리 막으려고 해도 안 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스스로 속지 마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느니라. 사람의심은 것은 그대로 거두느니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딱 보고 그 사람 행동한 대로 그대로 딱딱 보응을 시키는  것이 마치 사람들이 종자를 이런 종자 저런 종자 심은 대로 그 땅이 움을 내고  열매 맺고 이렇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이 모든 절대 자유법 자연법 이 법칙을  하나님이 딱 가지고 심사하고 계시는데 그 사람의 행동한 그대로 미래의 보응은  닥쳐오게 됩니다.

이런데 사람들은 뭐 어쩌든지 자기가 지혜 있게 꾀 있게 하면 자기는 행복되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살지마는 그것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거라. 하나님이 자기가  불행스러울 그런 원인이 되는 행동이 현재는 좋으니까 현재 좋은 대로 그렇게  하는 그 사람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사람이라.

 왜? 제가 그렇게 마구잽이로 살면서 앞으로 행복이 오리라고 생각하지마는  하나님이 그 행한 대로 갚아 주는 보응은 조금도 착오나 틀림이나 어누리가 없다.

 뭐와 같으냐? 심은 것은 그대로 추수하는 거와 같다. 네가 콩을 심어 놓고 팥이  나리라고 생각하는 것도 틀린 짓, 콩을 심어 놓고 팥 추수를 할라고 하는 그것도  틀린 일, 팥을 심었으면 팥 나고 콩을 심었으면 콩 나고 벼를 심었으면 벼 나는  것과 같이 심은 대로 난다. 또 심은 그대로 추수를 한다. 그러기에 또  말씀하시기를 '행한 대로 갚으리라' 또 '자기의 행동은, 자기의 행동의 열매는  자기가 먹는다. 자기 행한 그 열매를 누가 먹겠느냐? 자기 행한 열매는 자기가  먹게 된다.' 그렇게 성경에 말했습니다.

 이래서 이거 좀 자꾸, 일생을 문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간단하게  되는 것 아니라. 요거 뭐 조그만한 의학도 배우려 하면 과학도 배우려 하면  그것이 힘이 드는데 하물며 자기의 행불행을 이것을 배워 가지고 행복되게 하는  데에는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라 그말이오. 너무 이 큰 것을 쉽게 보기 때문에  사람들이 못 배운다 그거요.

마구잡이로 사는 사람이 고쳐서 뭐해야 되겠는가? 조심을 해서, 자기 현재의  언행심사는 미래의 행불행이 된다. 자기가 아무리 미래를 행복되기를 원하고  아무리 애써 봤자 현재에 망할 노릇을 하면 자꾸 미래는 원치 않는 망함이 오지  행복이 오지 않는다 그러기에 마구잡이로 살지 말아라.

어쩌든지 현재는 모든 장래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장래가 좋기를 원하면 현재를  단속해서 네가 현재에서 그것을 바로 해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 요것을  깨닫고 마구잽이로 사는 사람이 되지 않고 조심해서 사는 사람이 돼야 되겠고,  그러면 조심해서, 현재를 조심해서 미래의 행복을 내가 맞이해 가도록 조심해  살아야 되겠다. 조심해 살려고 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조심해서 바른 좋은  미래가 되는 그 현재를, 좋은 미래가 되는 미래의 원인이 되는 그 현재를 바로 잘  살 수가 있느냐?  그러면 자기가 현재를 바로 살아 가지고 현재의 보응인 미래가 잘 되기를  원하다고 하면 현재를 잘 살아야 되겠는데 현재를 잘 살려고 하면 뭣을 어떻게  해야 현재를 바로 살고 행복되게 살 수가 있느냐 하는 그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현재라는 생활은 어데서 나옵니까? 현재라는 생활은 어데서 나와요  나오기를? 지혜와 총명에서 나옵니다. 지혜와 총명에서 나 온다 그말은,  지혜는 자기의 미래에 대해서, 미래에 대해서, 미래에 대해서 이렇게 하면 자기  미래에 '내가 이 미래에는 이런 암초도 있고, 이런 위험도 있고 이런 망하는 것도  있고, 이런 참혹하게 망하는 것도 있고, 미래에는 이 몸이 망하는 것, 경제가  망하는 것, 인격이 망하는 것, 사업이 망하는 것, 구원이 망하는 것, 평강이 망하는  것, 모든 망하는 것이 미래에 가득 찼고 또 미래에는 모든 행복이 가득 찼다.'  이래서 그 미래에 대한 것을 그 사람이 바로 알면 현재 생활을 바로 할 수가  있습니다. 미래에 대해서.

 또 총명이 있으면 바로 할 수 있습니다. 총명이라 하는 것은 미래도 알고 모든,  과거도 알고, 현재도 알고, 자기도 알고, 남도 알고, 일도 알고 물건도 알고, 또  하나님도 알고, 모든 이 사회도 국가도 모든 것 다 전부를 다 총명이라는 것은  무슨 총 자인고? 다 밝을 총(聰)자입니다. 또 밝을 명(明)자, 다 밝다. 모든 것을  다, 다 밝다.

 이러니까 사람마다 다 총명을 가졌는데 그 지혜와 총명을 가졌는데 그 지혜와  총명이 위에 하늘에 속한 것도 있고 땅에 속한 것도 있다. 위에 속한 하늘에 속한  지혜와 총명도 있고 땅에 속한 지혜와 총명도 있는데 땅에 속한 지혜와 총명은  흥하는 것 같은데 망한다. 땅에 있는 지혜와 총명은 안 망하는 게 하나도 안  들었다. 전부 멸망뿐이다. 생명이나 평강이라 하는 거 하나도 없고 멸망뿐이다. 또  하늘에 속한 지혜와 총명은 그것은 불행이 하나도 섞여 있지 않다. 전부 행복만  섞여 있다.

 이러니까 인생이 자기를 행복되게 하는 데에는 제일 단속할 것이 무엇이 단속할  것입니까? 현재를 단속할 것이냐? 지혜와 총명을 단속할 것이냐? 또 행불행이  오는 것을, 행복이 닥치도록, 행복이 오도록 자꾸만 그것만 원하고 행복만 지금,  남의 행복이든지 제 행복이든지 행복은 전부 제가 뭐 도적질하든지 끌어  붙이든지 그 행복을 제가 차지하려고 애쓰는 그것만하면 되느냐? 그러면 자기를  행복스럽게 행복되게 하는 데에는 뭣만 가지면 되느냐? 하늘에 내려온 위에서  내려온 총명을 가지면 된다.

왜? 지혜와 총명을 가지면 그 현재의 행동이라는 그 행동은 자기가 가진  지혜대로 총명대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개에게서 개가 나오고 소에게서  소가 나오고 사람에게서 사람이 나오고 팥에서 팥이 나오고 콩에서 콩이 나오는  것처럼 그 사람이 지혜와 총명을 가진 그대로 현 생활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자기가 현재의 언행심사의 행동이 어떻게 하느냐? 언행심사의 행동은 자기가 잘  가졌든지 못 가졌든지 지혜와 총명대로 그렇게 행동이 나옵니다. 이러기 때문에  지혜와 총명 이것을 선택을 바로 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 참 인생의 행복에  근원이 됩니다.

 이래서 잠언서 성경을 보면 그 잠언서는 여게 대한 것을 말한 것입니다.

잠언이라 말은 자기가 모르는 것을 지혜로운 말을 자기가 듣는 그것을 가리켜서  잠언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래서 혹 이 얘기할 때도 '내가 여게, 대한 좀 잠언을  내가 배우려고 지금 찾았습니다. 이 일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 거게 대한  지혜의 말을 내가 좀 배우려고 내가 찾아왔습니다. 이거 좀 여게 대한 잠언을 좀  주십시오.' 그러면 지혜 있는 말이라 그말이오.

이래서 사람이 자기가 지혜와 총명 그대로 망하고 흥하는데 지혜와 총명은  수억억만도 넘지마는 지혜와 총명은 두 가지로 나누면 된다 하나는 위에서  내려온 거, 17절에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이랬습니다. 위에서 내려온 지혜가  있고, 이거는 위에 내려왔다 말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라 말이오. 또 땅에 속하고  세상에 속한 것은 마귀가 주는 지혜와 총명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망하지 안하려면 마귀가 주는 지혜와 총명을 벗어나야 되지  마귀가 주는 지혜와 총명을 가지고 있으면서 멸망을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나지지  않습니다. 또 하나님의 주시는 지혜와 총명을 가지면 그 사람은 행복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왜? 자기 지혜는 이런데 행동은 이래 못 합니다. 지혜대로 행동합니다. 또  총명대로 행동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혜와 총명이 삐뚤어 졌으면 그 사람  행동은 삐뚤어지지 딴을 수가 없습니다. 지혜와 총명이 망할 지혜와 총명  가졌으면 망하지 딴을 수 없습니다. 지혜와 총명을 행복된 지혜와 총명을 가지면  그 사람은 행복을 언행심사를 안 할 수가 없어요.

 그러기 때문에 자꾸 우리는 이거 모든 것이, 신구약 성경은 과학적이오. 신구약  성경은 사람 만드는 과학이오. 이 세상 과학은 그거는 물질을 만드는  과학이지마는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은 사람을 만드는 과학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은 무엇을 가리키느냐? 하늘에서 내려, 온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하늘에서 내려온 지혜와 총명  이것을 자기 것으로 삼아서 자기 지혜와 총명을 만들면 자기의 언행심사는  하나남이 원하시는 대로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그 지혜와 총명을 가졌으니까 그  행동을 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위에 속한 지혜와 총명을 여게 기록한 대로 말하면, 하나님 중심의  지혜와 총명, 자기가 미래를 계획할 때에 내가 이 미래를 지금 뭐 사업을 하든지  말을 하든지, 우리의 말하는 것도 자꾸 미래를 지금 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서로 둘이 얘기할 때도 자기 속에 지혜와 총명이 가르쳐 주는 대로  말합니다. 그러면 자기 말함으로써 모든 멸망을 피하는 것도 있고 자기 말로써  멸망을 자꾸 자취해 나가는 것도 있다 말이오.

 또 우리의, 말보다도 마음은 더 보배인 것입니다. 자기가 행복스러울 마음을,  행복을 가져올 마음을 가지게도 되고 불행을 가져올 마음도 자지게 됩니다.

사람들은 마음이라 하는 그거는 마음 가진 것은 별로 중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자기가 모든 행동보다, 행동보다 말이 중요하고, 행동보다 말이 중요하고 말보다  자기의 그 생각이 중요하고 생각보다 자기 마음이 중요합니다. 마음보다 뭐이  중요한고 하니 자기의 지혜와 총명이 중요합니다. 지혜와 총명대로 말하고 있소.

지혜와 총명대로 마음을 가지고 있소.

 그러기에 마음 가진 대로 생각이 나오고 생각 가진 대로 자기 말이 나오고 자기  말 나온 그대로 자기 행동과 일생은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이러기 때문에 말을  단속하려 하면, 언어, 언어를 단속하려 하면 어데서 단속해야 단속이 됩니까? 언어  단속이 자기 생각을 단속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혀를 단속하려 하면 자기 마음을  단속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기의 마음을 단속하려 하면 자기의 모든 그 욕심을 단속하지 않으면 그게 또  안 된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뭐 층층이 그 층어리가 한없는 층어리로 돼 가지고  있는데 이 층어리가 이렇게 한 예를 들어 백 층어리나 되는 이걸 모든 거 다 세  내 버리고 하나만 보고 이래 하니까 그 알이 맞아 들어가지를 않는다 그거요.

이러니까 신앙생활 한다는 것도 다 그렇게 하고 있어요.

이래서 선행, 온유하고 성결하고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고 긍휼하고 편벽이  없고 거짓이 없고 의의 결과를 맺어지는 그것을 가지고 자기의 지혜와 총명을  심사를 합니다. 이거 하늘에 속한 게 이런 것이니까. 이것이 없으면 아예, 이것이  없는 그 미래관이나 이것이 없는 자기의 계획이나 경영은 버려야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거 자기가 무슨 경영을 한다든지 공부를 한다든지 뭘 한다든지  이런 걸 다 따져보면 '이 사람이 공부해 가지고 망할 공부를 하고 있나 자기가  행복될 공부를 하고 있나?'  아무나 따나 공부는 가지면 좋은 줄 알지마는 안 돼. 마치 '이 불은 필요하다.

불은 보니까 겨울에 추울 때 보니까 따시게 하니 불은 필요하다. 또 음식을  익히니까 필요하다.' 필요하지마는 그 불이 자기 자는 안방에 단스 속에 불이 나면  그거는 자기가 타 죽는 거라 말이오.

불도, 불이 필요하지마는 그 불이 있어야 될 장소에 있어야 되고 또 그 불이  있어야 될 때에 있어야 되지 그 때를 어겨서 있으면 또 안 된다 그말이오. 또 그  불이 장소도 바로 되고 있어야 될 장소에 있고 때도 또 불이 있을 때에 있고  한다 할지라도 그 불이 또 많아도 안 된다 그말이오. 많아도 큰일 나요. 또 그  불이 적어도 안 돼. 이거 많아도 안 되고 적어도 안 되고 참 이거 까다롭다  그말이오. 그 모든 것을 다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우리에게 필수품이라 하는 게  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러니까 때도 있고 장소도 있고 또 양도 있고,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당신이 시키시는 대로 믿음을 지켜서 이래 하면 모든 것을 당신이 조절해서,  조절하는데 신구약 성경 말씀대로만 나는 하려고 이렇게 하고 있으면 당신이 이  조절을 뭘로 가지고 조절해 주느냐 하면 우리 현실을 당신이 만든다 말이오.

현실을 만들기를 요건 현실을 만들어 가지고 말씀대로 살면 요 현실 만들면 그  현실에 맞은 말씀대로 사니까, 현실을 만드는데 나는 말씀대로 지키는 고것  가지고 하나님이 만드시는 그 현실을 따라서 졸졸졸 따라서 이리 저리 간다  말이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실 때에 뭘로 가지고 인도하십니까? 뭘로  인도하십니까? 행불행을 뭘로 인도하십니까? 현실. 현실을 가지고 인도합니다.

 그러면 현실을 가지고 인도하는데 하나님이 주시는 그 현실을 우리가, 현실을  가지고 인도하실 때에 그 현실에서 하나님이 인도하는 데에서 망하는 길도 있고  흥하는 길도 있으니까 망하는 길은 무슨 길입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현실에  어떻게 하면 행복이 됩니까? 주시는 그 현실에 우리는 그 현실 그걸 몰라요. 현실  닥친 무슨 현실이 닥칠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히 우리가 보배를 가진 거는 뭐이냐 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이 신구약 성경 법도를 줬어. 법도를 줬기  때문에 이 현실 줄 때도 하나님 말씀대로 이 현실에 행하고 저 현실 줄 때도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고 무슨 현실을 주든지 우리는 말씀대로 행하는, 말씀대로  행하는 게 믿음 아닙니까? 말씀대로 행하는 요 일만 해. 요 일만 하니까 하나님이  행복되게 하는 그 현실을 줄 때에 자꾸 말씀을 지키면 행복되고,  그러면 모든 불행은 어찌 됩니까? 하나님 시키는 대로 안 하고 하나님 시키는  거 어겨서, 어겨서 마귀 시키는 대로 제 생각대로 제 욕심대로 욕심이 시키는  대로 또 자기의 감정이 시키는 대로 욕심도 뭐 돈 욕심이 시키는 대로 명예  욕심이 시키는 대로 자기 감정이 시키는 대로 오기가 시키는 대로 자존심이  시키는 대로, 그게 다 소용이 없어.

 자존심, 어떤 사람은 일생 동안 자존심 시키는 대로 하다가 망해 버리는 사람  있다 말이오. 내가 여게 어떤 자기, 여기 몰라요. 아는 사람만 알아요. 어떤 내가  장로님의, OOO권사님하고 둘이 가 가지고 '장로님은 꼭 고칠 것이 하나 있는데'  이러니까 딱 달라 들며 '아이구 무엇입니까? 녜, 그러면 제가 고치겠습니다.

어쩌든지 말씀해 주이소.' 자꾸 이래요. '내가 말은 해 주면 고치지 않고 도로  반감이 돼서 뒤에 나하고 멀어질 건데요?' 이러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말해  주이소.' 이래서 그래 내가 정 그래요? 그러면 내가 말, 성 안 낼려요? 내가 말해  주지요.' 그 말 해 주려 하면 그때 내가 말한 것이 뭐인지 OOO권사님 같이  갔는데 알아요? 그 말이 '주관'이 아니고 자존심이라, 인제 '주관' 하는 거 같은  건데 내가 자존심이라 했지요. '자존심 그걸 고쳐야, 그걸 죽여야 됩니다.

 자존심 그걸 죽여야 되지 자존심 그놈이 항상 자기 생활은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남한테 자존심 안 꺾어지는 자존심이 주장이 돼 가지고 움직이니까  그놈이 내나 옛 사람이기 때문에 그놈을 죽이지 안하면 안 됩니다.' 이러니까  말하기를, 웃으면서. '예 나는 참 자존심에 걸리는 거는 못 해. 이래서 내가  죽었으면 죽었지 자존심은 꺾지를 못해요.'  그러니 그놈 꺾기 전에는 바른 길은 못 갑니다. 그거 자존심 그거 때문에 무슨  사건 하나 있는데 그런 사건이 뭐 꽉 찼는 사건인데 그 자존심에 걸리는 일 하나  돼 놓으니까 그것 때문에 그만 팔아 가지고 이사 가 버렸어. 그만 집을 팔아  가지고 이사를 가 버렸어. 자존심에 걸리는 그거 하나 가지고. 그뭐 언제 조금  여수 거래가 되는 거 가지고 그만 그래 돼 버렸다 말이오.

 그러니까 하나님이 현실을 주실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현실은 전부 우리를  행복되게 성공되게 하려고 현실을 주시는데 그 현실을 어떤 현실을 주시든지  간에 그 현실이 우리에게 행복이 되어지게 하는 그 방법이 하나 있고 그 어떤  현실이 오든지 그 현실에서 불행을 만드는 방법이 하나 있어요.

 불행을 만드는 방법은 뭣이 불행을 만듭니까? 불행을 만드는 방법은 뭐이요? 저  OOO조사님. 뭐이지? 불행을 뭐이 만들지? 땅에서? 땅에서 난 지혜? 그러면  어물거려 하니 그렇게 말은 됐는데 그것이 뭐이냐 하면 자기가 만든다 말이오.

알겠습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현실에서 불행을 만드는 것이 그것이 자기가 만듭니다. 인간의  불행은 전부 자기가 만듭니다. 이러니까 주님이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따라오라. 나를 따라오라 말은 주님 시키시는  대로 하라 그말이오.

현실 닥쳐오면 어떤 현실이든지 그 현실에서 여게는 하나님이 뭐라고 시키느냐'?  하나님이 뭐 시키시는 거 입으로 시킵니까 손으로 시킵니까? 뭘로 시켜요?  신구약 성경 말씀은 하나님이 시키시는 말씀이라 그말이오.

그러면 그 현실 닥칠 때 성경이 뭐라고 하노? 어떻게 하면 성경대로 하는 것이  되겠느냐? 요렇게 하는 그게 이제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이고 어떤 현실이든지  하나님의 시키시는 대로 한다 그 말은 성경 말씀대로 한다는 말인데 어떤  현실이든지 성경 말씀대로 하기만 하면 그것이 큰 행복이 돼 버리고 맙니다.

 이런 이것을 있기 때문에 자꾸 믿음으로 살아라.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해라. 뭐  잠시 한 이삼 년만 시키시는 대로 하면 그뭐 껍데기 이 물질계부터 나오는 건데  물질 행복은 당장 되어지는 것이라. 되어지는 건데 시키시는 대로는 이거는  하나도 안 하고 전부, 시키시는 대로는 하지 안하고 원수 그놈 시키는 대로 한다  말이오. 원수 시키는 대로 하니까 망할 수밖에 더 있어?  원수가 망하라고 시키지 뭐 좋으라고 시킵니까? 원수 시키는 대로 하니까  망하는데 원수 그게 뭐입니까? 그 원수가 뭐이 원수입니까? 이분? 맞았어. 늦게  와도 잘 배웠다 그말이오. 원수는 누구냐 하면 곧 자기입니다. 자기.

 자기인데 무슨 자기냐? 옛사람 자기라. 옛사람 자기. 그러면 이 자기는 참  자기를 죽인 자기요 원수인 자기요 자기 아닌 자기요 자기 아닌 것이 참 자기를  죽이고 자기라고 가장을 둔갑을 해 가지고 가장을  해 가지고 그뭐 가발인가 뭐인가 이거 가장을 해 가지고 그래 나온 그놈인데  그걸 자기인 줄 안다 그말이오. 자기인 줄 알기 때문에 그놈 시키는 대로 하니까  전에가 망하고 말아. 자기 시키는 대로 하니까.

 그놈이, 그놈의 이름이 뭐입니까? 옛사람인데 옛사람 그놈이 무엇으로 돼 가지고  있는 놈이 옛사람입니까? 몇 가지로 돼 가지고 있어요? 옛사람 그놈이 몇 가지로  돼 가지고 있어요? 손가락으로? 옛사람 그놈이 명 가지로 돼 가지고 있어요? 이  세 가지로? 다 이거는 안다 말이오. 악령 악성 악습.

 악령 악성 악습이라, 악이라 하는 것은 자기 중심이라 말이오. 자기 중심의  귀신하고 자기 중심이라는 자기 인간성하고 자기 중심의 모든 버르징이 습성하고,  자기 중심, 피조물이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그게 행복되지 자기 중심으로 살면  천인 만인이 자기 중심으로 사니까 막 부딪뜨려서 다 멸망을 하고 만다 그거요.

이거 자꾸 좀 가서 읽어보십시오.

이제 또 계속해서 할 터인데, 우리가 새벽기도 나오고 어쩌든지 재독을 많이  하십시오. 재독하라 말은 어리기 때문에 재독하라 합니다. 장성하면 재독할 것이  없고 성경을 자꾸 읽어야 되지마는 어리니까 성경을 읽어도 뜻을 몰라요.

그러니까 자꾸 재독을 하면 이 귀간 열립니다.

 그러니까 재독, 교역자들이 어리석어. 교역자들이 어리석은 것이 왜 어리석으냐?  이거 재독을 자꾸 하면 하나님 말씀을 듣는 귀가 있는데 귀가 있으니까 말씀만  하면 들어서 그만 척척 제가 들을 줄 알면 행하지 않을 수가 없어. 이런데 그렇게  하지 안하고 자꾸 제 말만 하려고 자꾸 애를 쓰고 이거 제가 설교한 것이라야  되지 이거 좀 재독을, 여기서 증거한 이 재독을 가서 자꾸 하면 그만 귀가 열려요.

말귀를 알아들어져요. 그 마귀 말귀 아니고 하나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는  지혜가 돼. 그것만 해 놓으면 구역장이 구역장 하기가 일이 없어. 또 목회하기가  일이 없어. 인제 교인들이 다 순종해.

 순종 안 할 수가 없어. 순종 안 할 수가 있어야지? 안 하면 망하는데 어떻게 안  하고 되겠어? 그런데 이 말귀 듣는 귀가 없으니까 이게 자꾸 패역만 부린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어쩌든지 구역장들은 교인들을 이 테이프 재독을 그저 철야 기도할  때에는 그냥 기도 많이 한다는 그것보다도 그만 하루 저녁에 철야하거든 한  재독을 한 너덧 번 하십시오. 너덧 번 하면 벌써 그 사람에게, 처음에는 졸다가,  졸다가 듣다가 졸다가 듣다가 그래도 자꾸 그러면 그거 귀가 열려 가지고 벌써  말씀이 속에 들어가면 사람이 변화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씀이 그 속에 없으면 변화가 안 돼. 그 변화만 시켜 놓으면  그게 뭐 내 수족 같은데 바른 지도야 그게 종보다 더 낫지 않소? 얼마나  수월합니까? 그러나 이걸 안 듣고 하면 들을 귀가 없으면 안 돼요.

 그러니까 구역장은 재독을 많이 시키는 것이 지혜롭고 이제 재독을 한참 했으면  들을 줄 아는 사람이면 그 사람이 성경을 많이 읽어야 되는데 그래도 여게서  가르친 거는 잘 깨달은, 깨닫기 어려운 것을 말해 놨기 때문에, 자기가 성경을  봐도 그만치 알기가 어렵다 그말이오. 저도 재독을 종종 듣는데 거게서 은혜받고  그러면 저는 재독을 듣는 그것보다 성경 보는 것이 내게는 좀 낫다 말이오.

 성경을 보면 성경을 요번에는 내가 한 달 동안에 내가 저 내원사 가 있을 때도  '한 달 동안에 내가 성경을 신구약 성경을 한 몇 번 보고 오겠다.' 이렇게  작심하고 갔는데 그만 성경 그 몇 장 못 봤어. 몇 장을 보니까 자꾸 그  깨달아지니까, 깨달아지니 그뭐 한 장만 해도 뭐 며칠을 봐도 자꾸 그 깨달아짐이  있고 자꾸 이러니까 부득이 두고 이래 갈 수가 없게 된다 그거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자꾸 새벽기도 많이 나오도록 해 가지고 자꾸 들어서 이래 듣는 가운데서 그  마음이 밝아지고 지혜와 총명이 생겨집니다. 바른 지혜와 총명을 준비해 놓으면  금은을 준비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천천 금은보다 낫는데 천천  금은 준비하는 것보다도 옳은 말씀을 자기가, 속에 지혜와 총명을 가지면 그게  낫다 그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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