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혁 목사 학위논문

 

  선지자선교회

. 서론

 

 

1. 문제제기

 

하나님께서는 한 시대마다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을 통하여 그 분의 뜻을 이 땅에 이루어 가신다. 교회의 역사를 통하여 볼 때 초대교회가 기독론 논쟁시대라면, 교부시대는 삼위일체 등의 신론 논쟁 시대라고 볼 수 있고, 종교개혁시대에는 구원론 논쟁시대이고, 현대는 성령론 논쟁시대라고 로이드 존슨은 말하지만 본인은 종교개혁시대 때의 구원론에서 멈추지 말고 한 차원 높은 구원론 논쟁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이 논문을 대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유일한 소원도 구원이며 하나님의 가장 큰 기쁨도 구원이기 때문이다.(1:3-6) 하나님은 구원을 위하여 모든 수고를 아끼지 아니하셨으며 친히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가난, 고난, 멸시, 조롱, 천대를 받으시다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성령을 보내어 주시고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 있을 곳을 예비하고 계신다. 뿐만 아니라 천사와 만물까지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며 고대하는 것도 역시 우리의 구원을 이루기 위함이다(8:19-22). 그러므로 구원관을 바로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신사참배가 하나의 국가 의례라고 제27회 조선장로교총회는 결의했다. 죄가 되는 줄 알지만 무서워서 찬성한 사람, 물 만난 고기처럼 앞장서서 찬성한 사람, 여러 형편이 있었겠지만 신사참배가 6년간 계속되니까 나중에는 완전히 습관이 되어져 양심에 큰 가책도 없이 습관적으로 하게 되었다. 신사참배를 반대하던 종들은 제2계명을 어기고 귀신에게 절하면 지옥간다고 생명을 내놓고 끝까지 반대했다. 신사참배를 앞장서서 하다가 회개할 기회 없이 사고를 만나 갑자기 죽은 사람이 있다면 이런 사람의 구원 문제는 어떻게 되겠는가?

주일을 어기고 관광을 가다가 차가 굴러 교통사고로 즉사했다면 이런 경우의 구원문제는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이런 유사한 경우의 문제들이 우리 현실에서 수 없이 많이 일어나는데 이런 문제들을 목회자들이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

수 십년 동안 예수를 믿어 온 사람들에게도 당신이 오늘 죽는다면 천국 갑니까? 지옥 갑니까? 물으면 대다수 성도들이 확신 있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 이것은 구원론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며 이것을 바로 가르치지 못한 목회자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오늘날 목회자들이 듣기 좋은 설교, 기복주의, 병 고침 받는 설교를 많이 하고 구원과 영생의 소망에 대한 설교를 많이 하지 않는다는 증거이다.

구원파에서는 이런 약점을 노리고 성도들에게 파고들어 많은 사람을 유혹시키고 있다. 그들은 질문하기를 선생님은 선생님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을 확실히 알고 믿습니까? 선생님은 거듭나셨습니까? 선생님은 의인입니까 죄인입니까? 모든 죄가 용서되었습니까? 당신이 구원받은 것이 확신되어집니까? 이런 질문 모두가 함정으로 몰아넣어 두 손을 들 수밖에 없는 난처한 지경에 처하게 할 가능성이 내포된 것이다. 예컨대 죄인입니까? 의인입니까? 라고 물어왔을 때 대부분의 대답이 그야 의인이 어디 있습니까? 세상에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했는데.... 물론 죄인이지요. 라고 대답하기가 무섭게 그럼 선생님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으니까 지옥으로 가야 하겠습니다. 라고 몰아붙여 난처하게 만든다. 이단들은 불신자를 대상으로 하여 직접 전도하기보다는 기성교회에 다니는 성도들을 겨냥하여 그들을 정죄하여 침륜에 빠뜨리고 자기들이 구원의 길을 인도해 주겠다고 현혹한다.

성경에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칭의 사상과, 행한 대로 심판을 받는다는 공로사상을 가르치는 것이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10:9-13)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7:15-27).

위와 같이 성경에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과, 행함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데 이 문제를 오늘날 명확하게 해석되고 믿어야만 될 것으로 생각된다.

 

 

2. 연구의 목적

 

본 논문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을 붙잡고 행위 면을 무시하는 경향과, 행함으로 온전케 되며 구원을 이룬다고 하여 믿음을 무시하는 경향을 바로 잡고, 믿음으로 이루는 구원은 기본구원이며, 행위로 이루는 구원은 한 단계 성숙된 행위구원임을 밝혀 혼동하는 것을 막고 확신과 기쁨으로 주의 형상을 온전히 이루게 하려는데 목적이 있다.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시민권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 분의 아들 된 자로서 천국 가는 기본구원은 이미 받았고, 그 나라의 영광과 상급을 위하여 끝까지 십자가를 지고 기쁨으로 주를 따를 것을 밝히며 그 나라의 영광스러운 행위구원을 잘 이루어 천국에서 상급 받고 주의 형상을 온전히 이루는데 주력하게 하려는데 목적이 있다. 로마서 10:2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는 것이 아니라 하셨다. 말세에 잘못된 열심이 너무도 많다.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핍박자요 훼방자요 폭행자였다고 고백하고 있다(딤전1:13). 그러나 다메섹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변화 받고 올바른 지식을 가진 후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로 사명을 감당했다.

권성수는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절실히 느낀 것을 말하기를 기독교 신자들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칭의(justification)의 교리를 붙잡고 살면서도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칭의된 자녀답게 살아야 한다는 성화교리에 매우 약하다고 지적했다. 일단 의롭다 함을 받아 천국행 티켓을 확보해 놓았기 때문에 이 땅에서 어떻게 살든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 같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 이유 중에 하나가 하나님의 자녀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정한 평가를 받는다는 행위와 행위에 따른 상급교리가 무시되거나 등한시 되는데 있는 것이다. 개신교는 특별히 카톨릭의 공로사상에 반기를 들고 개혁을 하였기 때문에 성도가 무엇을 하여 그 결과로 하나님께 평가를 받는다는 행위구원에 따른 상급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경향이 많다. 실지로 하나님의 자녀 된 자들이 자녀답게 살지 못함으로 인해서 오늘의 기독교는 사회적인 공신력을 상실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사느냐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보시고 평가하시며 그 결과 행위에 따른 상급(부정적으로 형벌)을 주신다는 교리를 다시 회복해야 될 필요성을 느낀다.

본 논문은 행위를 등한히 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고 성경이 부여하는 행위의 구원론적 가치 의미를 찾아 교회와 성도들의 약점을 보완하고 교회가 재무장하여 사회에 변혁을 선도 내지는 주도하는데 도움을 주며, 말세에 성도를 넘어지게 유혹하는 마귀의 역사를 대적하고 온전한 사람과 온전한 행위를 이루어 주의 형상을 닮게 하며 주님이 주시는 상급을 받도록 현실에서 마음과 뜻과 성품과 목숨을 다하는 성도들이 되게 하려는데 목적이 있다.

 

 

3. 연구 방법과 범위

 

시대마다 구원론에 대한 이해는 차이가 있고 점진적으로 변화하면서 발전해 왔다. 어거스틴, 칼빈, 웨슬레 같은 학자들도 불확실하고 불완전하며 오류와 모순을 내포하고 있으면서 그들의 구원론을 발전시키거나 유지시키기도 하였다. 구원론의 차이로 인한 갈등, 대립, 마찰은 급기야 교회 분열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하나님의 주권을 높이는 칼빈을 정점으로 해서 인간의 자유를 의지하는 펠라기우스의 구원론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변화와 반복의 역사가 되풀이되었다. 본 논문은 앞서 나타난 모든 구원론을 수렴하여 그보다 높은 차원으로 구원론을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로 교회사에 나타난 구원론의 발자취와 조직신학을 살펴보며 다양한 입장들의 문헌을 참고하고 무엇보다도 신구약 성경을 최고의 참고서로 채택하여 개혁주의적 성경해석의 방법으로 연구에 임할 것이다.

 

본 논문은 다음과 같이 구성하고자 한다.

1장에서는 구원론의 기본문제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먼저 구원의 의미를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에서 관찰하고, 두 번째로 구원론의 역사에 대해서 세 번째로 구원을 얻는 방법에 대해서 구원은 하나님의 공의로 얻는가 사랑으로 얻는가? 만민이 다 얻는가 선민만 얻는가? 믿음으로 얻는가 행함으로 얻는가? 에 대해서 살펴본다. 네 번째로는 구원의 순서에 대해서 로마교회가 주장하는 구원의 순서와 루터파가 주장하는 구원의 순서 그리고 개혁파가 주장하는 구원의 순서에 대해서 살펴본다. 다섯 번째로는 구원의 서정에 관한 여러 견해들을 살펴본다. 먼저는 개혁주의의 견해와, 루터교회의 견해, 그리고 로마 카톨릭의 견해, 그리고 알미니안 주의의 견해를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구원론를 분류해 보겠다. 즉 구원의 시간적 구분과, 성질적 구분, 그리고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으로 구분해 보겠다.

2장에서는 구원론을 시대적으로 고찰해 보겠다. 먼저는 유대교의 구원관에 대해서 두 번째로는 고대와 중세 교부들의 구원관으로 먼저 고대교부들의 구원관과 다음으로 스콜라주의의 구원관에 대해서 살펴본다 세 번째로는 종교개혁과 그 이후의 구원관에 대해서 즉 루터와 칼빈의 구원관, 알미니우스와 웨슬레의 구원관, 한국 장로교회의 구원관에 대해서 고찰하게 될 것이다.

3장에서는 이미 받은 기본구원과 현재 미래적으로 이룰 성화 구원에 대해서 제시할 것이다. 1절에서는 기본구원의 특징으로 기본구원은 하나님의 단독사역이며, 단회적으로 완성되는 구원이며,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구원이며, 공통적으로 받는 구원임을 밝힌다. 그리고 기본구원의 내용은 선택, 예정, 창조, 대속, 중생, 하나님의 아들, 천국시민권, 성령과 진리와 피의 보증, 성화구원의 씨, 생명부활임을 밝히고. 2절에서는 이루어 갈 성화 구원에 대해서 먼저 성화 구원의 특징으로 인간의 동의를 조건으로 하는 구원과, 인간의 무한한 충성을 요구하는 구원, 영생의 기능으로 자라가는 구원, 완전을 목표로 하는 구원, 그리고 개별성의 구원임을 밝힌다. 둘째로는 성화 구원의 여러 명칭과 그 뜻을 밝힌다. 셋째로는 성화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방법으로 기본구원을 자본으로 이루어 나가야 하며, 마음과 몸과 행위가 거룩하게 변화를 받아야 하며, 영과 육이 하나되어 하나님과 함께 움직여야 하며, 제사장 선지자 왕의 자격과 실력을 이루어야 하며, 천국의 칭찬과 영광과 존귀와 실력과 상급을 마련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밝히고. 네 번째로는 성경에 나타난 성화 구원의 예를 들겠다. 고전3:10-15 터 위에 건축한 비유, 25:1-13 열처녀 비유, 19:16-30 부자청년, 신사참배문제의 예를 들어 설명하겠다.

마지막 4장에서는 행위에 따른 천국의 상급이 있음을 밝힌다. 1절에서는 상급이 무엇인가를 밝히고. 2절에서는 상급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밝히며. 3절에서는 상급을 부인하는 자들은 어떤 자들이며 어떤 이유에서 부인하는가? 먼저 철학적인 입장에서 상급을 부인함과, 신학적인 입장에서 부인함과, 주석적인 입장에서 상급을 부인함과 당시의 역사적인 상황을 보면서 부인함과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여 부인함을 밝힌다. 그리고 4절에서는 행위에 따른 차등의 상급이 있음을 밝힌다. 그것은 하나님이 공의로 심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며, 고후5:9-10, 그리고 순종의 정도와 질에 따라 차등이 있는 것과, 상급에도 여러 가지 명칭이 있다는 점과, 심판의 등급이 있기 때문에 상급에도 등급이 있음을 밝힌다. 마지막 5절에서는 현세 천국에서 받는 상과, 미래 천국에서 받는 상을 밝히며, 먼저 현세 천국에서 받는 상은 영적인 축복을 향유하게 됨과, 현세천국에서 기도응답의 상급과, 생명과 의식주의 상급이 있음을 밝히고. 둘째로 미래 천국에서 받는 상은 하나님의 칭찬과, 메시야의 잔치에 동참하는 것과, 하나님을 가까이 해서 섬기는 것과, 영광의 차등이 상급으로 주어지는 것과, 많이 다스리는 권세의 상을 받게 되는 것을 밝힌다.

그리고 마무리하는 단계로 주님의 대속의 공로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은 크고 귀한 것인데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거나 또는 무지해서 기회를 놓치지 말고 올바른 지식의 풍성으로 이미 받은 기본구원을 알고 감사하며 기본구원 안에서 한 단계 성숙된 성화 구원을 잘 이루어 금생과 내세의 상급과 주의 형상을 온전히 이루어 가는 자 되기를 바라며, 지금까지 논의했던 것을 정리하고 앞으로도 계속 연구되기를 제언하고 끝맺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