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6 00:19
성령과 물과 피
1981. 11. 10. 화새
본문 : 야고보고 1장 13절 - 15절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이 지식을 확고히 가져야 됩니다. 이 지식이 확고하지 안하면 우리는 언제나 신앙 추수할 때는 실패합니다. 이 지식이 십자가의 지식인데 이 지식이 확고해야 우리가 평소에 신앙 생활이 잘되고 또 그 신앙 생활에추수할 그 추수기에 추수를 잘하게 되지 이 지식이 흐리면 모든 것 다 헛일입니다.
우리는 어데서나 언제나 무엇에서나 주님의 이 피공로와 또 영감과 진리 이 세 가지 안에서 걸어가면 됩니다. 주님이 주신 사죄를 버리지 않고 칭의를 버리지 않고 하나님과 화친된 이 화친을 버리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인도 하시는 성경 말씀대로 또 성령이 자기를 감화시키는 그 감화대로 그대로만 살면 됩니다.
어데서든지 여기에서도 그대로 살고 또 다른 데서도 그대로 살고 이 시간도 그대로 살고 다음 시간도 언제든지, 시간적으로 언제든지, 또 장소적으로 어데든지, 또 종류적으로 무엇에서든지 이 피와 물과 성령 피와 진리와 성령이 우리를 증거해 주는 대로 성령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대로 그대로만 걸어가면 우리는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현실을 줄 때에는 또 이 계명을 지키야 되고 주님의 피는 언제든지 피와 피로 인한 사죄 칭의 새생명 이 세 가지는 언제든지 같지마는 진리와 영감은 각각 다릅니다. 이 현실을 줄 때에는 이 진리 지키야 되고 또 그 진리와 같은 영감 지키야 되고 또 저 현실을 줄 때에는 저 진리 저 영감을 지키야 됩니다. 이 무슨 말인고 하니 어떨 때에는 거기에는 '사랑해라.' 사랑이 우리에게 계명을 지키라고 주는 것이고 어떨 때에는 사랑이 필요 없고 여기에서는 네가 '담대하라.' 할 때에 담대함을 또 가져야 되겠습니다.
어떨 때에는 여기서는 '네가 하나님의 도를 외치라.' 또 거기에대한 또 그 시기는 외치는 그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하라는 일이지 거기서 뭐 '사랑해라.' '기도해라.' 하는 그런게 아니라 그말이오. 그런 것 아니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현실을 주시는 그 현실에 따라 그 현실에 따라 맞추어서 하나님 말씀을 지키야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현실을 주는 대로 이제 우리는 거기에서 진리 중에 이 현실에는 이 진리 지키야 되고 저 현실에는 저 진리 지키야 되고 또 그러니까 이 현실에는 이 진리와 함께하는 영감을 따라야 되고, 저 현실에서는 저 진리와 함께 하는 영감을 따라야 되고, 사죄 칭의 새 생명은 언제든지 언제든지 여기에서도 죄없어야 되고, 저게서도 죄 없어야 되고, 여기에서도 의로워야 되고, 저게서도 의로워야 되고, 여기에서도 하나님과 화친해야 되고, 저게서도 하나님과 화친해야 되니까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언제든지 변동이 없지마는 진리와 영감은 변동이 있다 그말이오.
'변동이 있다.' 그말은 진리와 영감이 이거 좀 범위가 많으니까 세상에 인간들이 말하는 법도 그렇지 않습니까. 요게서는 요 법을 지키지 안하면 죄가 되고 조게서는 조 법을 지키지 안하면 죄가 되는 그것이 세상 법도 다 그러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 현실을 주든지 저 현실을 주든지 어떤 현실을 주든지 어데서든지 어떤 때든지 그거는 장소나 시간이나 또 종류를 가리지 않고 어데서든지 거기에 해당되는 하나님의 말씀 영감을 따라서 행해야 된다 그말이오.
그러면 이렇게 행할 때에 행하기가 쉬운 때도 있고 어려운 때도 있습니다. 쉬운 때는 왜 쉬운고 하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려고 해도 그 하나님 말씀에 마찰되는 것이 적을 때에 말씀대로 살기가 쉽고, 또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할 때는 마찰 되는 것이 많으면 살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마찰되는 것이 적이면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되니까 쉽지마는, 마찰되는 것이 크고 중대한 그것이 마찰되니까 그것을 버리야 하나님 말씀대로 살게 되니까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래서 어려워 하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사는 데에 아주 어려움이 없는 때도 있고 또 어려움이 적은 때도 있고 어려움이 많은 때도 있습니다. 적은 아주 적은 때는 어떤 때인고 하니, 마찰되는 것이 적은 때는 하나님의 그 인도를 따르는 데 고 면에서는 하나님 인도를 딸른 데에 하나님의 인도 밖에, 하나님의 인도 하시는 그 진리 밖에, 영감 밖에, 또 주님의 구속 밖에 있는 것이 적은 때 있습니다.
또 마찰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때는 주님 인도하시는 고 법칙에 하나님의 법칙이 하나님의 영감에 하나님의 구속 밖에 것이 하나도 없는 때입니다. 하나도 없을 때에는 마찰이 하나도 없고 그게 적을 때에는 마찰이 적고 그게 많을 때에는 마찰이 많습니다.
그러면 요 현실을 닥칠 때는 보니까 고 면으로서는 마찰되는 것이 하나도 없고, 또 조 면으로 보면은 마찰되는 때가 조금 있고, 조 면으로 보면은 마찰되는 것이 많고, 요렇게 마찰되는 것들이 많고 적고 없고 하더라 이거요.
그러면 마찰되는 그것을 하나님의 인도가 마찰되니까. 하나님 인도는 진리인데 그것이 진리 밖에 있는 것입니까 진리 안에 있는 것입니까? 진리 밖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인도 밖에 있는 것이요. 하나님의 구속 밖에 있는 것이요.
하나님의 구속 밖에 있는 그것이 언제든지 그대로 유지가 됩니까. 하나님 구속 밖에 있는 그것이 언젠가 없어지는 때가 있습니까. 언젠가 없어지는 때가 있습니다. 언젠가 없어지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없어지는 때가 있어. 없어지는 때가 닥쳐오기 전에는 없어지지 안하지요.
그러나 없어지는 때가 되면 없어집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인도와 구속 밖에 것이 그것이 하나님과 진리와 구속에게 속했습니까 거기에 속하지 안하고 그 밖에 있는 것입니까? 밖에 있는 것이지요. 밖에 있는 것은 구속을 받지도 못한 것이요. 또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보호도 없는 것이요. 또 진리 밖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진리가 보호하는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니까 그것은 주님의 구원을 받지 못한 것들이기 때문에 그것은 언젠가 시간 문제지 멸망하기는 멸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뭐인고 하니, 있기 위해서 없어지는 것입니다. 있는데 없어지는 것 있는데 없어지는 것이요. 살았는데 죽는 것이요. 있기는 있는데 없어지는 것이요. 살기는 살아 있는데 죽은 것입니다. 살아 있으나 죽은 것이요. 있으나 없는 것이라. 그걸 가르쳐서 썩어진 것이라. 썩어진 것이라. "너희들이 육신의 생각으로 살면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으로 살면 영생을 거둔다."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밖에, 진리 밖에, 하나님 밖에 있는 것은 있기는 있는데 그것이 죽어 있는 것입니까 살아 있는 것입니까? 죽어 있는 것입니다. 죽어 있는 것인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죽어 잇는 것입니다. 죽어 있는 것인데 죽어 있는 그것이 이 구속 밖에 있다. 또 진리 밖에 있다 하는 그것이 다른 때에는 진리 밖에 있는지 구속 밖에 있는지 그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진리 밖에 있는 것인지, 구속 밖에 있는지, 구속 안에 있는지, 진리 안에 있는지 자기가 분별을 못 했지마는, 하나님이 고 현실을 요렇게 바꿨다가 딱 데 주니까 고것이 진리 밖에 있다, 진리 안에 있다, 구속 밖에 있다, 구속 안에 있다, 하나님 떠나 있다, 하나님 안에 있다 하는 그것이 자기에게 알게 됩니다. 알게 되는 것은 왜 주님과 진리와 구속에 마찰이 있다 그말이오. 구속에 마찰이 있고 이 구속을 구속대로 살라 하니까 요것을 대립이 되고 요것을 버리야 되겠고, 마찰이 될 때사 그때사 비로소 아 요거는 주님 밖에 있다 안에 있다 하는 것이 그때 나는 몰랐는데 과거에는 몰랐는데 고런 현실을 딱 만들어 주니까 고 현실을 탁 닥치고 보니까 요거는 구속 밖에 있다. 구속 안에 있다 하는 것이 그것이 표가 난다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게 표가 나는 것입니다.
그것을 평소에 몰랐는데 주님이 주시는 현실을 따라서 주님과 마찰되고 구속과 마찰되고 또 진리와 마찰되는 그것이 발견됐다 말이오. 발견이 됐으면 고것이 어떤 시기입니까? 고것이 어떤 시기인고 하니, 이 주님 밖에 있는 것 진리 밖에 있는 것이니까 고게 죽어 있는 것이요 살아 있는 것이요? 죽어 있는 것인데, 죽어 있는 것을 죽어 있는 것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알려주는 것입니다. 죽어 있는 것은 뭘로 가지고 압니까? 진리와 마찰되면 죽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또 하나님과 대립되면 죽어 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주님의 구속 밖에 있으면 죽어 있는 것을 죽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죽어 있는 것을 나는 몰랐는데 죽어 있다는 것이 그것이 그때에 들어났다 그말이오. 들어났으니까 이제는 이거는 하나님과 진리와 구속과 대립이 되니까 하나님과 진리와 구속을 버리면 이걸 가질 수 있고 이걸 가질려면 구속을 버리야 되고, 둘 중에 하나 취하지 둘다 취할 수는 없는데 여기에서 비로소 아! 그것은 구속 하고 같이 가지지는 못하고, 진리하고 같이 가지지는 못하고, 하나님과 같이 가지는 못하고 하나님과 진리와 구속을 내가 배반해야 이것과 함께 있을 수 있고 그 함께 있으려면 이것을 버리야 내가 들어가서 주님과 진리와 이 구속과 함께 있을 수 있다. 요것이 판명이 났다 말이오. 그렇지 않습니까. 그 확실히 판정이 났습니다.
판정이 나면 고때가 어떤 때인고 하니 죽어 있는, 죽어 있는 게 많이 있지요.
죽어 있는 게 많이 있지마는 고 현실에서는 요 면이 죽어있다,요게 죽어 있다 하는 죽어 있는 그것이 그때에 비로소 하나님이 고 현실을 줌으로 말미암아 서로 대립되는 고것으로 인해서 죽어 있는 때를 아는 때, 죽어 있는 것을 알았으면 죽어 있는 것을 아는 때입니다. 고것이 죽어 있는 때를 아는 때, 죽어 있는 것을 알았으면 죽어 있는 것이 죽어 있는 그대로 죽어 있는 그대로 있다가 영원히 사는 것도 있습니다. 영원히 사는 것도 있고 영원히 죽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면 죽어 있는 그것이 어째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죽어 가지고 있는 것입니까? 어떻게 되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죽어 있는 것이지요? 예 거 떨어져 있기 때문에 죽어 있는 것이지요. 떨어져 있기 때문에 죽어 있는 것이니 그것이 죽어 있는 것이 살아 나려고 하면은 어떻게 하면 살아나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살아나지요? 저 뒤에 어떻게 하면 살아 납니까? 연결이 되면 살아나지요. 죽어 있는 것은 왜 죽어 있습니까? 떨어져 죽어 있지요. 살아 나려면 연결되면 살아났지요.
그러면 죽어 있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이거 떨어져 있으니까 죽어 있다는 걸 압니다. 떨어졌으니까 죽어 있습니다. 떨어져 있으니까 죽어 있느니 그것을 살리는 데에는 연결하면 살아납니다. 그럴것 아니겠습니까. 연결되면 살아나지요.
그러면 그 기회가 떨어져 있는 것이 연결될 수도 있는 길이요. 또 떨어져 있는 것이 떨어져 있는 그대로 이제 영원히 떨어져 있는, 떨어져 있는 그게 될 수 있습니다. 떨어져 있는 게 연결될 수도 있는 시기요. 떨어져 있는 것이 떨어져 있는 것으로 그대로 영원히 떨어져 있는 것이 된 시기도 됩니다.
그러면 그 시기는 세 가지 시기입니다. 떨어져 있는 것을 아는 시기, 또 떨어져 있는 그대로 영원히 결정되 버리는 시기, 또 떨어져 있는 것이 이제는 하나님과 진리와 구속과 연결이 되는 시기 고 셋씩이지요. 연결이 되는 시기. 그러면 떨어져 있으면 영원히 죽고 연결이 되면 영원히 사는 것인데, 떨어져 있으면 죽는 고것을 가르쳐서 둘째 사망이라 말했고 또 떨어져 있는 고것이 연결이 되면 고것이 다시 살아났다 그말이오. 살아났다 그 말씀인데 그것이 연결이 되려고 하면은 어떻게 하면 연결이 됩니까? 연결 되는 그게 문제입니다.
이제 연결이 되려고 하면 떨어져 있는 것이 그대로 있으면 그때야 연결이 됩니까? 떨어져 있는 그것이 떨어져 있는 데에서 없어져야 연결이 됩니까? 떨어져 있는 것이 고게서 없어져야 연결된 그 자리에 있지요.
그러면 없어지면 그것이 없어지는 법칙이 몇 가지가 있습니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연 법칙으로 이거 없어지는 것입니다. 자연 법칙으로 늙어지는 죽어지는 것, 또 하나님이 예정이 되어서 없어질 때가 되면 없어지는 것, 제가 암만 안 없어질라 해도 안 없어지려고 해도 없어지는 그것을 가르쳐서 자연 법칙으로 없어지는 것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자연 법칙으로 없어지는 그 길이 하나 있고, 자연 법칙으로는 없어질 시기가 되지 안했기 때문에 없어지지 아니 하는데 자연 법칙으로는 없어지지 아니 하는데 그것이 하나님과 진리와 이 구속 때문에 그것을 놓지 아니 하려고 하니까 없어지야 되는데, 그런 없어지는 길 하나 있습니다.
이 하나님과 구속을 버리면 유지할 수가 있고 하나님의 구속을 가지려고 하면은 이것을 내놔야 되지 포기해야 되지 구속 때문에 포기를 해야 되지 포기 안하면 이 구속을 버리야 되겠다 말이오. 둘 중에 하나를 버리야 되니까 구속을 버리야 되든지 그걸 버리야 되든지 할 때에 자기가 이것을 포기하게 됩니다.
구속을 잡기 위해서 포기하게 됩니다. 이제 자기가 극단으로 말하면 그 안에 많은 것 있지마는 그런 건 다 이 안에 속한 것이니까 자기가 지금 자기 목숨을 구원 하려고 자기가 살려면 이 구속을 버리야 되겠고, 이 구속을 버리지 안하려면 자기 목숨을 내놔야 되겠고 하는 그때라 말이오. 그럴 때에 그러면 이 구속을 안 버릴려면 목숨을 내놔야 되는데 이 목숨을 내놓으라고 누가 조웁니까? 제가 내놓습니까? 누가 조아 댑니까? 구속을 자기가 버리지 안하려고 하면 자기 이 목숨을 내놔야 되고 목숨을 안 내놓으려면 구속을 버리야 되고 하는 요런 경우가 있을 때에 구속 안 버릴려면 목숨을 내놔라. 목숨을 네가 죽기 싫거들랑은 이제 구속을 버리라 하는 그가 누가 그렇게 합니까? 무엇이 그렇게 하지요? 세상이 그렇게 하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세상이 그렇게 하지요. 세상이 그렇게 조아대지 않습니까. 세상이 그렇게 조아대지요. 그 압니까? 다 세상이 그렇게 조아대지요.
이렇게 조아 될 때에 자기가 안된다. 나는 목숨도 안 내놓고 이 구속의 구원도 내 놓지 안 할란다. 구원도 내놓지 안하고 목숨도 안 내놓으련다. 두 가지 다 안 내놓을 수 있으면 자기가 내놓는 게 좋소. 안 내놓는 게 좋소. 안 내놓은 게 좋지요. 안 내놓을 수 있습니다. 구속도 안 내놓고 그 목숨 안 내놓으면 그 목숨은 그것은 구속과 하나되 가지고 있는 것이지 세상을 이긴 것이지.
이런데 그럴 수 없다 말이오. 세상이 세상은 구속 밖에 있는 것이 세상의 것입니다. 악령의 것입니다. 악령을 가리켜서 세상 뭐이라고 했습니까? 세상 임금, 악령은 세상 임금입니다. 그것은 이 구속 밖에 있는 이 생명은 그것은 세상이 죽이려면 죽이고 그대로 두려면 두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 권리가 가진 세상에 속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럴 때에 자기가 이 구속을 버리지 안하려고 하면은 목숨을 버리야 됩니다. 목숨을 내놔야 됩니다. 자살한다 말이 아니고, '어라 살 소망 버리 버리고 뭐 이제는 죽을 각오 하자.' 하고서 자기 목숨을 내놔야 된다 그말이오.
그만 죽을량 하고 목숨은 생각지 아니하고 내게야 내 생명이야 너거 마음대로 어떻게 하든지 해버리라 하고서 목숨을, 생명을 일단 내놔야 된다 말이오.
그 뭣 때문에 내놔. 이 구속과 진리와 하나님 때문에 일단 그를 내 놓는다 말이오. 내 놓으면 내놓는 이것은 내 놓은 이것은 자기가 내 놨으니까 무엇 때문에 내 놨느냐? 요거는 구속과 진리와 하나님 때문에 내 놨습니다. 이거 떨어지지 않기 위해 내놨습니다.
그러면 내 놔진 내 놔진 이것은 하나님과 진리와 구속을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이것이 희생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지요. 그렇지요. 희생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건 전쟁하다가 전사자라 그말이오. 전사자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없어졌고 죽어졌지요. 그래 없어지고 죽어졌으면 없어지고 죽어졌지마는 없어지고 죽어진 것은 사망 안에 있는 것이 사망 안에 거기에서 없어졌습니까 생명 안에서 없어졌습니까? 사망 안에서 없어졌지요. 사망 안에서 저주 아래에 있던 것이 없어졌고 마귀에게 속해 있던 것이 없어졌지요.
없어졌으니까 그 없어진 것은 그것이 어디로 갔겠습니까? 없어진 그것이 생명으로 옳겨진 것입니다.
그 없어진 것이 이제는 없어진 그것이 마귀와 죄와 사망에게 속하여 진 것으로 없어졌지요. 네 죄와 마귀와 사망으로, 사망에 속하여 있던 것이 진리와 영감 하나님 때문에 없어졌지요. 없어졌으니까 사망에 속한 것들이 없어졌으니까 이제는 생명에 속한 것으로써 세상에서 없어졌습니다. 생명에 속한 것으로 세상에 없어졌습니다.
이게 생명에 속하려고 하니까 세상에 없어지는 순서를 밟지 않고는 생명에 속할 수가 없어. 할 수 없어서 없어지는 그 세상에서 그게 자꾸 위협을 주니까 마지막에는 세상에서 뭐 세상 이까짓거 세상에 안 살아도 좋다. 세상에 안 있어도 좋다. 나는 진리를 저버릴 수 없다 해 가지고 없어진 것이니까 고것이 세상에서 죽어서 진리와 영감과 구속에 속한 것 되버렸습니다. 요것을 가르쳐서 "죽어도 다시 살겠고" 말했습니다. 죽어도 다시 그게 살아납니다. 죽어도 살아납니다.
그러면 그건 생명과 연결됐지요. 진리와 연결 생명과 연결됐지요. 연결됐으나 세상에서는 없어졌지요. 없어졌으면 연결된 것이 어데 가 있습니까. 영계 가 있습니다. 낙원에 가 있습니다.
그런데 고것도 있고 요렇게 그 없앨려고 하는데 진리 영감을 버리면 존재 될 유지될 수가 있고 안 버리면 유지될 수가 없는데 안됐다. 이제는 진리와 영감을 이거 버리도 안할 수 없다. 그 버릴 수가 없다. 진리와 영감을 놓을 수는 없다.
이러니까 아야 뭐 죽으면 죽지 목숨 내놨습니다. 아 또 안되면 회사가 그만 부셔져 버리면 부셔져 버리지 회사 내놨습니다. 뭐 이제 이 재물에 손해 갔으면 손해 갔지, 또 이 지위나 권세 이 직장 뭐 없어져 직장을 갖다 빼겼으면 뺏긴 것이 자기가 가진 그것을 어쨎든지 진리와 이 구속과 마찰이 될 때에는 진리와 이 구속 이것을 놓지 안 하려고 하면은 일단 이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포기하지 안 하면은 이걸 포기해야 되고 이 구속을 포기 하려면 이걸 포기해야 되고, 둘 중에 하나 포기해야 될 때에 구속을 포기하고 이것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이것은 살았으나 죽습니다. 또 구속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이것을 포기한 것은 내 놓은 것은 이것은 내 놨지마는 구속에 연결된 그 놓지 안하려고 연결된 그것 때문에 내 놨기 때문에 내 놨지마는 내 놓은 이것이 과연 구속을 내 놓지 안함으로 세상이 이것을 없애는 것도 있고, 없애 없앨려고 지금 달라 들었지마는 없앨 각오로 없애려고 없어지는 방편을 다 썼지마는 하나님이 이게 하시니까 없어지지 안하고 그대로 유지되는 것도 있고, 그 없어지는 방편을 쓰니까 없어지는 것도 있고, 없어지는 방편을 다 썼지마는 없어지지 안한 이것은 세상에 과거에 그것으로써 있는 것 남아 있는 것입니까, 없어지는 방편 다 써 가지고 없어지는 것인데 하나님이 없애지지 안하고 초 자연의 방편으로 하나님이 없애지 않게 새로 찾다가 보존되 가지고 있는 것입니까? 새로 보존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새로 보존되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세상이 없앨 수 있는 그게 아니고 세상은 없앨 대로 없앴는데 하나님의 능력은 없애지 안하고 없어지지 안하고 있기는 있지마는 그거는 구속과 연결되 가지고 있습니까 떨어져 가지고 연결되 가지고 있습니까? 떨어져 가지고 있습니까? 연결되져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연결되 가지고 있는 것이니 그것이 죽었습니까? 살았습니다.
살았습니다.
이래서 살아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살아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고것이 살아 믿는 것이니 고것은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그러면 살아 믿는 그것은 세상을 해할 수 없는 것으로써 지금 살아있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생명 내 놨는데 생명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면 그 생명이 남아 있으면 그 사람들 보기에 호흡하고 있는 그 생명이 남아 있습니까? 그 생명이 고것이 구속 받은 생명입니까? 고 속에 생명의 기능이 구속 받은 생명입니까? 고 생명 그거는 뭐입니까? 껍데기는 날마다 부패합니다. 껍데기 그거는 껍데기 그거는 그 구속을 받지 못하요. 속에 기능만 그러하고 껍데기 그거는 예수님의 재림 때 그거 구속을 받아서 부활하지 그 전에는 안되는 것입니다.
고 생명의 기능, 육체의 생명의 기능이 있지요. 고 기능 고것은 살리 가지고 살았기 때문에 고 육체의 생명의 기능이 살아났기 때문에 요거 참 어렵습니다.
육체의 생명의 기능이 살아났기 때문에 고 생명이 살아난 그 생명의 기능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삽니까 하나님 말씀과 같이 삽니까? 같이 삽니다. 고것을 가르쳐서 '순생이라' 이렇게 했습니다. '순생이라' 죽음으로 산다. 그 '순생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현실을 주시는 그때는 어떤 때인고 하니 하나님과 진리와의 진리 밖에 있는 것인지 진리 안에 있는 것인지 하는 것을 알려 주는 때입니다. 이걸 모르면 이걸 안 배우면 모릅니다. 네 안 배우고 알 것 같을 진데야 세상에 꽉찼지. 아무리 물어야 모른다 그말이오. 밖에 있느냐 안에 있느냐? 하는 것을 아는 때요. 또 하나는 밖에 있는 것으로 그대로 그만 요거는 결정이 되어지는 때요. 밖에 있던 것이 안에 것으로써 다시 옮겨 절정이 되어지는 때입니다.
그러면 고것이 이 옮겨져서 밖에 것이 이 안에 것으로 되는데 안에 것으로 되는 그 방편이 몇 가지입니까? 안에 것으로 되는데 방편이 그게 둘입니다. 하나는 없어짐으로 안에 것이 되어진 이눈으로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이것으로 없어짐으로 안에 것이 되는 것이 있고 또 육안으로 이제 볼 수 있게 안에 것 된 것 있고, 육안으로 볼 수 있게 안에 것 된 그것이 뭐이냐? 그것이 살아 믿는 것이고 볼 수 없게 안에 것으로 되어지는 그것이 왜 죽어 다시 살아날 자입니다. 죽었는데 살아날 것이요. 또 살아 있는데 그대로 살아 있는 것. 그러면 살아 있는데 살아 있는 그것은 세상이 해할 수 없는 것으로 살아 있어야 되지, 세상이 해할 수 있는 것으로 살아 있으면 아직까지 완전히 옮겨지지 안한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이 해할 수 없는 것으로 살아진 것은 그것은 무엇인가? 진리와 영감으로만 고것이 살지 아무리 세상이 거석해 봤자 진리와 영감으로만 살아 진리와 영감에 피동되 진리 영감에 기관으로만 살지. 진리와 영감의 기관 외에 딴것으로는 세상에 아무리 해봤자 살지 안할 요동치 않는 고것이 된 고것입니다.
그것은 물질이면 물질에 기능이요, 생명이면 생명의 기능이요, 몸이면 몸의 기능이요, 마음은 마음의 기능들입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의 기능은 생명으로 사는 기능도 있고 사망으로 사는 기능도 있습니다. 그 사망으로 사는 그 기능은 생명으로 사는 기능으로 자꾸 옮겨가야 됩니다. 이것을 안 들으면 모릅니다. 들어야 자기가 변화됩니다. 들어야 자기가 변화되고 자기가 변화되고 자기가 변화 되어서 변화되서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강해져야 하나님으로 사는 사람이 강합니다.
그래야 죄를 이기고 악령으로 이기고 하나님 뜻을 이룰 수가 있고 또 영능이 있습니다. 권위가 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