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3 14:19
상회 불복종죄. 찬송가에 대해서
1988. 11. 8. 새벽
본문:마태복음 7장 13절∼14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이 말씀을 교역자만 오면 제가 이 말씀을 증거합니다. 금요일날 내가 몇 번 증거했 고 또 교역자들 오면 증거하고 또 오늘 아침에도 이 말씀을 증거합니다. 증거하는 것은 내가 설교할 설교가 없어서 자꾸 이러는 게 아니고 우리 진영에 이 말씀을 깨 닫고 이 말씀에게 복종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급선무라 하는 것을 제가 알기 때문에 그렇게 증거하는 것입니다.
문이라는 것은 들어가고 나오는 것이 문인데, 문이 좁은 문과 넓은 문이 있습니다.
좁은 문은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이고 넓고 큰 문은 멸망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좁 은 문 넓은 문, 작은 문 큰 문 이렇게 문으로 말씀을 하신 것은 사람들이 들어갈 때 든지 나갈 때든지 좁은 문을 찾으라 그렇게 이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면 생명 만나고 넓은 문으로 들어가면 멸망 만난다. 생명 만나 는 것은 하나님 만나는 게 생명 만나는 것이요 멸망 만나는 것은 마귀 만나는 것이 멸망 만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좁은 문으로 인도하는 이는 곧 성령이시요 넓은 문으로 인도하는 영은 악 령입니다. 우리가 하나하나를 시작하고 매듭지을 때에 항상 좁은 문이라는 이것을 생각하고 좁은 문의 출발을 해야 되고 또 성공도 좁은 문의 성공을 해야 되지 넓은 것은 다 멸망이요 헛일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이 '동산을 다스리고 지키고 또 일반 과실은 먹고 선악과는 먹지 말라' 하는 그 교훈도 제가 일반 과실은 먹고 선악과는 안 먹으려고 암만 애써 도 안 됩니다. 인간이 못 합니다. 인간보다 강하고 큰 세력을 가진 마귀가 왔기 때문 에 마귀와 인간과 그 둘은 서로 적수가 될 수 없는 그런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이 마귀는 인간을 완전히 다 삼켜서 인류의 왕이 돼 가지고 예수님 오실 때까지 다 왕 노릇 했고 지금도 중생되기 전 자는 다 왕노릇 하고 있습니다. 그자에게는 왕노릇 하고 있습니다.
그 먹고 안 먹는 그것보다 더 속으로 들어가서 지키는 것이 문제요. 지키고 난 다 음에 먹고 안 먹는 그게 문제이지 지키지 못하는 자가 먹고 안 먹는 그런 거 하려 하는 그런 것은 안 됩니다. 헛일입니다. 속에 병이 들었는데 안 돼 또 지키는 것도 제가 다스리는 일부터 먼저 해야 지키지 다스리는 일은 하자 않고 지키는 일 하는 그런 것은 헛일입니다. 또 자기가 다스리는 일을 암만 하려고 해도 안 됩니다. 다스 리는 일을 하기 전에 하나님이 명령하신 그 말씀을 자기가 먼저 가지고 있어야 됩니 다. 그 말씀을 모시고 생각하고 있어야 됩니다. 말씀을 가지는 것보다도 자기를 인도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모시고 있어야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 모신 자가 하나님 말 씀을 자기의 생명의 법으로 지킬 수 있고 하나님과 생명을 모신 자가 자기의 현실도 다스릴 수 있고 또 지킬 수 있고 그러고 난 오랜 후에 먹을 것 먹고 안 먹을 것 안 먹을 수 있고 그러고 난 다음에 죽지 않을 수 있는 것이지 항상 껍데기로 나와 가지 고 날뛰어 가지고는 헛일입니다.
이래서, 여게 생명은 곧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생명이요 하나님과 접하는 것이 생 명이오. 다른 진영에서는 생명이 뭐이 생명인고 하는 것을 아는 목사들이 많지를 못 합니다. 이거 설교록에 나갈 터이니까 저희들이 다 볼 것이오. 생명은 하나님과 연결 됨이 생명이요 사망은 하나님과 끊어짐이 사망이라는 것을 그것도 그렇게 그 아는 숫자가 많은 것 아닙니다.
여러분은 만날 들어 놓으니까 이거는 예사로 여겨서 이제 여기 사람들은 이거 예사 로 여기니까 우리에게 주신 복음을 다 여게서는 버리니까 이제 다른 사람들이 지금 이 복음을 영접해서 이 복음의 복을 받을런지 모릅니다.
과거에 이스라엘에도 하나님이 그렇게 이스라엘을 사랑하셨지마는 본족속들은 교만 하고 하나님의 이 도를 만홀히 여기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거둬 가지고 이방 족속에 게 구원을 주신 것이 곧 오늘 신약 시대에 이방 족속에게 이 구원이 왔지 이스라엘 본족속에게는 지금도 없습니다. 그 약간에 있지.
그러니까 기독교 말년에 이스라엘 그때도 그렇고 그때 그런 것이 지금까지도 뭐 그 렇게 부패성이 계속하고 있습니다. 우리 총공회 진영이 더러워지려면 다른 데에 비 교 못 할 만치 아주 더러워집니다. 굉장히 부패해지고 아주 패역하고 망령될 것입니 다.
이렇게 여게서는 이 말씀을 들어야 뭐 그거 아주 항상 들으니 자꾸 말하니까 '그 말은 저거 할 말이 없어 저라는가보다, 또 그까짓 거야 뭐 국민학교밖에 못 했는데 대대학을 졸업맡은 사람들이 하고 우리가 다 있는데 그까짓 거야,' 이래 여기니까 그 사람들이 이 도를 제 도로 삼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이 나 공부 못 하게 한 것도 그래 못하게 한 것 같아. 이러니까 나는 내게는 그게 있어. 아예 내가 못 해서 그런지 어쩐지 몰라도 세상 자식은 내가 그것을 하나 님의 지식에 억억억억만분의 일로도 가치를 여기지를 않아. 이러니까 하나님의 한 말씀 모르는 그것은 천하 지식 다 모르는 것보다 더 큰 손해다. 그러면 하나님의 지 식 하나를 깨달은 것은 천하의 지식을 통달한 그것보다 나는 가치 있다는 것을 깨닫 고 나는 귀하게 가져.
이러기 때문에, 원어 뭐 헬라어니 허브리어니 원어 하는 것도 어쨌든지 원어 헬라 어 히브리어 이거 가지고 자랑하는 것 박살을 내려고 지금 내가 작정을 하고 내가 오늘까지 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뭐 우리 나라 말로 여기 지금 히브리어도 번역이 돼 가지고 있고 헬라어도 번역이 돼 가지고 있는데 히브리어 핼라어 번역한 그 사람들이 요새 뭐 우 리 양성원에 히브리어 학자, 히브리어 가르치는 선생 헬라어 가르치는 선생 그 선생 십 배도 지금, 백 배도 지금 높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뭐 번역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말할 게 아니라 번역한 것만 하면 족하다고 나는 생각해요. 이래서 여게서 는 예사로 여기는데 다른 데서는 귀중히 여깁니다.
이러니까 앞으로 얼마 안 가서 이 총공회에 있는 이 진리를 뺏아다가 딴 데 줄런지 모릅니다. 왜? 성경이 다 그래 놨어. 성경에 보니까 그 귀하게 여기는 자에게는 자꾸 더 주시고 귀하게 여기지 않는 자에게는 있는 것도 뺏들어다가 딴데 줘.
생명은 하나님과 연결된 게 생명이오. 지난밤에도 OO목사님이 아주 은혜 있는 설 교를 했습니다. 했는데 거게도 보니까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하나도 없다' 영생은 자기가 행한 후에 영생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영생은 먼저 있는 게 아니고 행한 후에 이루어지는 것이오.
행한 후에 이루어지는 그것도 구원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건설구원이라 행위구원 이라 말합니다. 그전에 이루어진 구원은 나기 전에 벌써 영원한 때 전부터 있는 구 원이 있으니까 그 구원은 그것은 너희들의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고 순전히 하 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았다 이렇게 구별해 놨습니다.
이랬는데, 내가 며칠 전에 말 들으니까 무슨 어떤 사람이 책을 냈는데 초판이 다 나갔고 재판째 나오는데 거게 보니까 여기 이름은 전연히 기록치 않았고 기본구원이 니 건설구원이니 뭐 무슨 또 뭐, 다른 데 없어. 모두 이단이라고 정죄받은 그것을 그 책에다 기록을 해 가지고 거게다 다른 살을 붙이고, 이래 가지고 해 놨더라고.
그런 사람들은 이것을 책을 낼 만치 이거 지금 참 귀중한 것이다 하지마는 여게서 는 하이고, 어짜든지 까다롭다고 지질리기만 치지 받아 들이는 사람이 없어.
그래 이 생명으로, 하나님 만나게 하는 것은 좁은 문이고 또 마귀 만나게 하는 것 은 넓은 문이고 또 하나님 앞으로 좁은 문으로 인도하는 자는 성령이고 넓은 문으로 인도하는 자는 마귀입니다.
이런데, 이 말씀을 내가 자꾸 하는 것은 왜 그러냐? 이 넓은 문이라 말은 그 하나 를, 옳은 것, 옳은 거는 하나뿐인데 하나를 벗어난 것, 좁은 문은 옳은 거는 하나뿐 인 유일 문이라 그 말이오. 옳은 거는 하나뿐인데 옳은 것 하나를 벗어난 것에 삐뚤 어진 거는 천도 만도 있을 수 있고 만들어 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옳은 것은 하나 이상은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도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하는 말은 네가 유일 사색을 가져라, 유일 사색을 가져라, 유일 목표를 가져라, 유일 의 존재를 네가 찾아서 그거 만나라, 유일의 이치를 찾아라, 유일의 길을 찾아라, 이 것을 가리켜서 좁은 문이라 이렇게 말씀을 했는데 민주주의 독재주의, 독재주의 이 는 좁은 길이요 유일의 길이요 이거 둘이 없는 길이오.
이런데 민주주의카 지금 세력을 얻고 독재주의는 마구 매장을 당하고 이 독재주의 하는 것은 하나 괴벽스러운 이거 트집잡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지금 정죄를 받고 멸 시를 당하고 있습니다. 멸시당해도, 멸시 당해도 독재는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가서도 큰소리 할 것이고 무궁세계에도 큰소리 할 것이고 또 언젠간가 민주주의라 한 자는 독재주의라 한 자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할 것입니다. 기어코 뭐, 양보 안 합니다. 양 보 안 하고 심판 앞에 가서도 하나님이여 저희들은 민주주의라 했고 우리는 독재주 의라 했는데 성경은 독재주의입니까 민주주의입니까? 성경은 독재주의지 민주주의가 아니라. 기독교 정치는 독재주의지 민주주의가 아니라.
그래서 여러분들이 기억을 하는지 안 하는지 몰라도 '우리 나라는 둘이다. 우리 나 라는 둘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는 하나다.' 하는 그걸 제가 벌써 몇십 년 전부터 그 것을 종종 말해도 자꾸 말하니까 권태증을 내니까 이거는 많이도 말고 삐꿔 돌아갈 까 싶어 권태증 내 못 하지, 이제는 삐꿔 돌아가고 뭐 그거 그럴 때가 아니라. 아니 기 때문에 마구 부숴서 아닌 거는 아니라고 말하고 옳은 거는 옳다고 말해 가지고 이렇지 뭐 나중에 가서 보면 노아가 그 시대에 저거 여덟 식구밖에 없었으니까 얼마 나 자꾸 갈라지고 갈라지고 하는 길이겠소? 이러니까 그거 만일 하나라도 데리고 가 려 했으면 안 될 거라.
성경을 깨달은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라도 가지고 가면 너는 멸망 받는다. 있는 것 을 다 버리라. 다 버리고 뭐하려고? 유일 하나만 가지라 그 말이오. 하나님 한 분만 모시면 돼요. 이래서, OOO목사님이, 그게 짧아도 논문이라. 자기 팜프렛 낸 게 있는 데 그걸 가지고 성구를 말하는 것이 이 성구를 가지고 참으로 기독교는 민주주의를 가리키고 있느냐 독재주의로 하고 있는 것이냐? 그러면 성경은 민주주의냐 독재주의 냐? 이것을 똑똑히 판정해서 아는 그게 여러분들이 죽고 사는 것이오. 사소한 게 아 니라. 죽고 사는 것이라, 앞으로 환난 때에 귀신 자식이 되느냐 하나님의 자녀가 되 느냐 하는 결정되는 거라, 그게. 그냥 뭐 이 잔소리 모양으로 자꾸 그래 하는 건 줄 알아요? 이러니까, 그걸 찾아서 그런 걸 하나 결정을 똑똑히 지우고 나가야 되지 그까짓 거 다른 뭐 이런 무슨 말 암만 이래 쌓아도, 뭐 선악과는 먹지 말아라 일반 과실은 먹 으라 그런 소리 암만 해 봤자 그 위에 지키는 일 못 하면 헛일이오. 지키는 일 제가 암만 하혀고 해 봐도 다스리는 일 못 하면 헛일이오. 다스리고 뭐 지키고 뭐 먹고 안 먹고 하는 것 암만 그래 쌓아도 진리와 하나님은 하나라. 하나님의 말씀 잊어버 린 속에는 그에게는, 하나님 말씀 잊어버렸어, 하나님 말씀 잊어버리고, 잊어 버린 데에 자기는, 마귀보 다 더 큰 능력이 속에 없는 게 인간인데, 인간은 하나님이 지으실 때에, 의종하는 자 로 지었지 독립자로 자존자로 그렇게 짓지를 않았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안에 하 나님 모시면 하나님 다음에 위대한 자가 되는 것이고 하나님 안 모시면 그까짓 거 뭐 이런 뭐 마귀만도 못할 것이고, 또 이런 짐승만도 못해요.
이러니까, 이게 문제인데 사이비하다 그거요. '사람은 화평을 가지고 이와같이 해야 된다' 바울이 말하기를 나는 율법 있는 자에게는 율법 있는 자같이 없는 자에게는 없는 자같이 이런 자에게는 이런 자같이 저런 자에게는 저런 자같이 이렇게 한다 하 는 그 말을 잘못 깨달으면 헛일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는 말씀이 거기 다 해석이 다 돼요. 우리는 자꾸 이렇게 지역을 넓혀가는 것이 그러면 이 어두움을 내가 대립하면 안 되니까 이 어두움을 내 가 타협해야 되겠다. 그러면 어두움하고 타협을 해 가지고 어두움하고 타협해서 자 꾸 자기의 활동 범위를 넓히는 것입니까? 이 전도 범위를 넓히고 구원 범위를 넓혀서 이래 하는 것은 그러면 어두움을 용납 하고 어두움과 타협해서 어두움하고 친해서 자기 활무대가 넓어지도록 하는 것이 기 독교입니까? 어두움과 나와 같이 해 가지고 자기 활무대가 넓어지는 것 아니오. '너 희는 세상의 빛이라' 빛이 강할수록 그 어두움을 점령하는 점령지가 지역이 넓어지 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진리가 더 강해지고 진리가, 둘을 가지고, 진리인데 이거는 둘을 가진, 이렇다고도 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할 수 있고 유이의 진리를 가진, 둘 외에는 다 점령했어. 다 점령해도 지금 둘이 하나는 되지 못하고 있는 그 유이의 진리를 가 진 그자의 능력과 둘이 아니고 하나를 가진 유일을 잡은 자의 능력과, 유이도 그거 진 자요. 이래서 이기는 자는 하나뿐인 줄 너희들이 알지 못하느냐? 이긴 자가 하나 뿐이라니? 삼등도 이겼고 이등도 이겼고 다 이긴 자 아닙니까? 다 진 자라. 진 자라.
이긴 자는 하나뿐이라. 하나는 이겼고 하나 외에는, 이등은 뭐이요.? 이등은 하나한 테 졌다 그 말이오. 삼등은 둘한테 졌다 그 말이오. 사등은 세 사람한테 졌다 그 말 이오. 이유일이라 하는, 이러니까 기독교는 이 빛이 밝음으로써 이 빛이 밝음으로 점 령해서 넓어지는 것이지 그 어두움과 하나돼 타협돼 가지고 넓어지는 것 아닙니다.
이러고, 우리는 넓어지는 거는 진리의 이 활동이 범위 넓게 넓어지는 것이지 진리 가 넓어져서 '그 하나를 자꾸 고집하고 그럴 게 아니라 둘 서이를 가져야 된다' 진리 자체가 넓어지면 죽었어. 진리는 유일에서 떠나면 죽습니다. 이거는 생명이오. 이거 는 생명이라. 이게 생명이라 말은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이오.
이러기 때문에, 자기가 사색을 하든지, 우리 교리도 신조도, 지금 여기서는 민주주 의 이 독재주의 이것이 있어 가지고 지금, 분명히 아는 것은 이제 독재주의가 되느 냐 안 되느냐? 독재주의가 자꾸 되면 자꾸 강해지고 독재주의가 자꾸 되면 이 독재 주의가 자꾸 강해지면 세계 교회에 하나님의 택한 자와 이 복있는 자는 다 점령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거 없어도.
독재주의가 강해질수록 자꾸 독재주의는 커져 나가고 이거는 강해 지지 이거는 그 인간 수자가 적어지고 약해지는 것 아닙니다 이 진리를 아는 사람들은 그런데 요동 하지를 안해 내가 OO교파에서 처음 나올 때도 내가 그렇게 그것 때문에 싸워서 내 가 나왔고, 그럴 때는 뭐 독재주의니 그런 말은 없어요. 민주주의란 말이 나오니까 독재주의라 말이 나와 버렸지.
그때도 그러기 때문에 내가 제일 처음에 혼자 나설 때에 그때 OOO목사님만 나하 고 같이 했고, OOO목사님은 나를 이렇게 협조는 해도 그분은 교리와 신조적으로는 나하고 하나는 안 됐었습니다. 언제든지 협조적으로 이렇게 하고 있었지 하나 안 됐 어. 그 OOO목사님이 나와 하나였는데 여기 박혜영 집사를 내가 그 집을 좀 그 교 회를 안내 받아 가지고 가 가지고 서이 앉아서 이 얘기하다가 나중에, 나는 내나 그때 이 좁은 문이라는 이것도 말 안 하고 해도 뭐 독재주위 그말 안 해 도 나는 그 주의를 가지고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맞지 않아. 그거 맞 지 않아서 내가 말하기를 '나는 내가 사상이 다수 가결이 아닙니다. 아니고 두 분이 타협을 해 가지고 두 분이 타협해서 OOO목사님하고 나하고 둘이 의논이 맞아야 내가 이걸 취하지 나는 그거 아닙니다. 나는 다수의 가결이 아니고 나는 유일을 좇 는 나는 사람입니다. 이러니까. 목사님은 자꾸 이러니까 그래 안 되니 자꾸 이 사람 저 사람 이래 가지고 이래 모두 서로 타협을 해 가지고 자꾸 이리 해야 된다 하는데 나는 타협이 아니고 꼭 옳은 걸 자꾸 찾는 것이것이기 때문에 O목사님이 나를 따라 서 지금 다른 사람이 뭐라 하든지 옳고 바른 걸 찾아서 요래 나가려면 나하고 같이 나가고 만일 지금 O목사님이 자꾸 그렇게 말하고 있으면 나하고는 맞지 않습니다.' 이러니까 몇 번 자꾸 말해도 그래서 내가 그 자리서 딱 말했어. 박혜영 집사님은 세 상을 떴지마는 그분도 지금 하늘나라 살아 있기 때문에 이 설교하는 것이 그분이 들 을 것이고 우리 가면 다 증거 돼. 거짓 증거 안 허요.
내가 거게서 말하기를 'O목사님, O목사님은 O목사님대로 가십시오. 나는 O목사님 하고 나는 같이 안 가겠습니다. 갈 수가 없는 줄 압니다. 왜? 나는 하나님의 진리 가 결 유일 가결로 가는 이렇게 주장하고 있는데 자꾸 O목사님은 다수로 따라서 이래 가는 그런 다수를 따르는 가결이기 때문에 나하고는 가는 길이 정 동서 남북으로 정 반대입니다. 이러니까 나는,' 말하다 그만 그 자리서 내가 말했어. '이 자리에서 나는 선언합니다 나는 앞으로 O 목사님하고 나하고는 같이 가지 않습니다.' 내가 O목 사님 하나 꼭 동지라고 나는 아껴서 참 내가 뭐, 생명같이 아꼈다 말이 그게 뭐 아주 너무 입에 발린 말 같지마 는 그때 나는 동지가 없어요. 그래 동지가 없고, 전부 반대고 뭐 앞뒤에. 반대뿐이기 때문에 나와 같이 신앙 사상을 같이 하는 사람은 없었었는데 그 OOO목사님이 있 기 때문에 그거 내 생명같이 아꼈어.
그래서, 이분을 붙들고 가며 이분하고 같이 해야 되겠다 자꾸 이랬는데 그분이 암 만 얘기를 해도 그 얘기를 안 듣고 유일을 듣지 않고 다수 가결, 종다수 가결 하기 때문에 그 자리서 내가 '나는 종다수 가결은 나는 나의 적입니다. 나는 유일의 결정 이 그것이 내 신앙 사상이요 목표입니다. 이러니까 목사님이 이것을 인정하고 따라 오지 않으면 나는 이 자리서 선포합니다. 그래 나는 하나라도 데리고 나는 못 간다 는 걸 내가 알았습니다. 내가 O목사님 데리고 가려 하면 내가 반드시 내 신앙 사상 은 썩어야 되겠고 이러니까 내가 데리고 가지 못하겠습니다.' 나는 혼자 독보로 갑니 다.' 내가 그 자리에서 독보로 가면서 독보로 앞으로 갈 걸 쫙 그걸 하나님이 나에게 보여 주셔 그때 그 시간에 쫙 다 말했어. 그걸 그때에 녹음이 있으면 녹음 그때 했 으면 굉장히 좋을 건데 쫙 말하며 '이렇고 이렇기 때문에 내 사상은 이렇습니다. 그 러니 O목사 님이 나하고 가는 것은 동으로 서로 방향이 정반대이기 때문에 안 됩니 다.' 그러고 내가 갈라져 나온 그것이 첫 신앙 동지를 내가 서로 나늰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제가 그때 여기 한 서너 너덧, 너덧 사람 모였던가 모여 가지고, 지 금은 총공회라 있지만 그때는 총공회장 이름도 없었어 그때 이렇게 나간다는 그 사 람들 동지가 몇 해 지나고 나니까 한 삼사 인 모였어. 모였을 때에 그때 '우리는 종 다수 가결이 아니고 우리는 진리 가결이다. 진리는 하나뿐이기 때문에 하나인 그걸 찾아서 가결하지 그러기에 다수 따라서 자꾸 이렇게 가면 다수는 깨달음이 다 좋을 수 없기 때문에 바로 깨달은 숫자는 적지 많지 못하다. 그러기 때문에 수를 탐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하나인 진리를 내놔야 된다. 나는 수보다도 유일한 진리를 나는 찾 기 때문에 그들과 가는 방향이 다르다.' 그렇게 말을 하고 그때부터, 그게 아마 기록한 그게, 그때에 기록한 그 기록이 회의록이라고 기록한 제일 처음 에 있는 회의록에 우리는 종다수 가결이 아니고 진리 가결이라 하는 그것이 거게 명 문되어 있을 것입니다. 저 OOO장로님, 어데 있어? 그런 걸 처음에 그걸 다 열람해 봤어요? 그거 있어요? 그 회의록에 첫 회의록에 그게 있을 거라. 내가 지금 이래 뭐, 지금 말하는 게 아니고 그때부터 내 사상에 그것을 나는 깨닫기를 처음에 여게, 부 산 뭐 도시에 나오기 전에 저 산골에 있을 때부터 나는 깨달은 게 그것이오.
이래서, 우리가 넓어지는 것은, 넓어지는 것은, 그 진리로 자꾸 진리의 활동으로 넓 어져야 되지, 진리를 자꾸 넓혀서 '하나가 아니고 둘이야 좋다, 둘보다 셋이 좋다.' 이러면 진리는 넓힐 수 없어. 진리는 자꾸, 진리가 좁아지면 좁아질수록 넓습니다.
유일이라 하는 것은 영계와 물질계를 다 점령하고 폭 싸고 있는 것이 유일입니다.
이러니까, 뭣이든지."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유일을 찾아라. 네가 이렇고 저렇고 해 라. 자, 그러면 우리 총공회가 둘로 갈라졌으니까, 갈라졌으니 그러면 그냐 이냐? '그 도 좋고 이도 좋다' 그거는, 나는 생각하기를 그거는 잡년의 신앙이라. 잡놈의 신앙 이라. 나는 잡년 신앙이라 나는 그렇게 봐요. 이것도 저것도 좋다 그럴 수가 없다 이 게 좋고 저게 좋든지 좋은 거는 하나뿐이지 어떻게 둘 다 좋을 수가 있나? 거게다가 떡 붙이기를 그러면 이거는 자꾸 이렇게 하면 딱딱하고 바울은 이런 사람에게 이렇 게 저런 사람에게 저렇게, 이렇게 했다 이거 갖다 들이대지마는 바울은 그 사람들을, 파고 들어가 보면 얻기 위해서, 뭘 얻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 구속의 도로 점령하기 위해서 그 활동을 그렇게 했지 그 사람이 유일로 그걸 했지 유일을 버리고 한 것 아닌 것입니다.
또, 여게 뭐 요번에 총공회 지금 이 교역자들이 모였는데 교역자회 모여서 이런 것 저런 것 백 가지 정리를 하고 뭐 저희들이 은혜를 아무리 받았다 해 봤자 그거는 다 뿌스러기요, 다 그거는 껍데기요. 이 총공회는 독재주의로 나가나 민주주의로 나가나 이거 결정하는 이것이 총공회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명이냐 사망이냐 하는 그것이 오.
그게 중요해 크고 작은 걸 알아야 되지 뭐 딴거, 간음하지 말아라, 도적질하지 말아 라 살인하지 말아라, 사람을 구제해라, 자비해라, 긍휼해라, 그런 것은 껍데기 껍데기 껍데기 저 껍데기이기 때문에 생명 없는 껍데기요 살이오. 뼈도 아니오. 그거는 살이 요 뼈도 아니오. 뼈도 생명이 아니오. 속에 생명 없으면 뼈 그게 암만 장사의 뼈라도 그까짓 거 썩어버리지 아무 소용없어. 생명이 있어야 돼. 생명은 "좁은 문으로 들어 가라" 하나를 찾아 거게 생명 있지, 이러기에, 전설에 의하면 사도 요한이, 그때는 사도 시대이니까 이단자들이 많이 있 어 이단으로 더불어 싸우는 그런 때인데, 사도 요한이 목욕탕에 가 가지고 목욕을 하는데 자기가 이단자로 정죄하고 지금 이단자로 대립이 돼 가지고 신앙 대립으로서 이단자가 거게 목욕하러 들어오니까 사도 요한이 급해서 옷을 발가벗고 옷을 거머쥐 고 바깥으로 뛰어나와 버렸어. 왜? '왜 그래 뛰어 나오느냐?' 이래 하니까 '이단자가 들어오니 하나님께서 벼락을 때려서 그 전부 집이 무너져 죽을까봐,' 이렇게 이단자 를 하나님이 미워하시고 절단내는 줄 알았기 때문에 그분이 사도요. 성신의 감화는 그렇게 그게 성신의 감화요. '아, 이단자가 와 봤자 이단자는 이단자지 뭐 거석하느 냐?' 거게 대해서 그렇게 급속한 고도의 강도의 그 멸망이라 하는 것을 느끼지 못하 는 자가 무슨, 그것도 좋다 이것도 좋다 하는 자에게 무슨 생명이 있어? 없어.
거게서 벼락 때려서 그만 치여 죽을까 싶어서 언제, '옷이나 입고 나가지' '옷입을 여가가 어데 있는가?' 옷을 입지 못하고 발가벗고 옷을 거머쥐고 뛰어 나갔어. 그것 이 그 사도 요한에 대한 전설이 있습니다.
이래도 다 팔방미인으로 아주 신사입니다. 뭐 유유하게 그거고 저거고, 어쨌든지 진 리는 넓히지 마십시오. 진리는 하나뿐입니다. 옳은 거는. 진리라 말은 옳은 것이라 말이오. 성경 해석도 옳은 해석은 하나뿐이오, 이렇고 저렇고 하면 다 취할 게 아니 라 '이렇게도 말하고 저렇게도 말한다,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도 진리다 저렇게 해석하는 것도 진리다.' 하는 그게 벌써 썩었다 죽었다 그 말이오. 생명을 잊어버렸다 그 말이오.
아니다.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고 저렇게 해석할 수 있다 그거는 물론 방편이야 이 렇게 저렇게 할 수 있지마는 이치는 둘이 아니라. 방편이야 농업 방편을 해 가지고 진리 증거할 수도 있고 공업 방편도 뭐 또 상업 방괸도 이거 어업 방편도 이런 걸 방편으로 써 가지고 할 수 있지마는 진리는 둘이 아니라, 진리는 하나뿐이라 그 말 이오.
이러니까, 이것을 여러분들이 힘을 써서, 다른 거 뭐 모일 것도 없어요. 이 지금 당 면한 것이 독재주의냐 민주주의냐 이 둘을 만났기 때문에 자기 속에 뭐 껍데기로 독 재주의 하는 그거는 껍데기로 하면 제가 껍데기로 살아 있지 속으로는 죽었고, 또 알맹이로 이걸 확실히 깨닫고 '뭣이든지 둘은 없다. 하나뿐이다.' 이래서 아무리 학자들의 이걸 봐도, 이걸 보고 학자들이 그 저서해 놓은 걸 보고 이렇다 이렇다 아무리 많은 재료를 수많은 학자들, 수십 신학자의 사상을 그 교리 신조를 갖다 인용을 해 댔다 할지라도 거게서 이렇고 이런데 이거 비판해 '이거보다 이게 낫고 이거보다 이게 낫고 이거 이래이새 해서 이거다 하나를 찾지 못했으면 그 거는 생명이 없다고 보는 것이 바로 본 것이라.
그 OOO박사의 그 책을 보고 '이 책은 죽은 책이로구만. 생명이 없는 책이라. 이 거는 하나의 글보따리라, 책 보따리라. 생명이 없다.' 그 사람 말하기를 '이 사람은 신앙이 죽은 사람인데, 이거는 책보따리인데, 아무것이 책도 들었고 막 책이 수십 권 이 들어 가지고 있으니까 이거는 책보따리지 이 사람은 산 신학자가 아니다.' 그렇게 딱 말해 놓으니까 막 신학자들이 달라들지만 그 말이 참말이라. 그 말이 생명 있는 말이라. 그 말이 틀린 말이요? O목사 생각해 봐.
'이거는 이거다' 자기는 '이거다' 하나를 잡았어야 생명 있지 하나 잡지 아니한 그자 에게 무슨 생명 있어? 진리가 둘이라? 진리가 둘 아니라, 바른 깨달음은 하나뿐이지.
비판에도 유일, 평가에도 유일, 그거는 이것만 못하다, 못하다 못하다. 그러니까 666 이라 하는 것은 666이 제일 크지마는 다 마귀의 숫자라 헛일이라. 7이 돼야 돼, 이래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그 인도자도 있어. 멸망으 로 인도하는 이는 누군데? 마귀가 인도해. 네가 좁은 걸 유일을 찾지 않고 자꾸 넓 은 것을 좋아서 이것도 저것도 괜찮다는 그게 바로 너를 멸망시키는 귀신이 네 속에 들어 있다 그 말이오! 이게 신사인 줄 알지타는. 아니야, 진리에는 신사가 없어. 진리 는 사람보다 무한히 높은 것이라. 어떻게 진리를 양보하고 제가 인간을 취하는, 진리 낳다 제가 커? 이런 것을 다 가리켜서 두 뿔 가진 새끼 양이라 했어, 새끼 양. 예수님은 어린 양인 데 어린 양보다 새끼 양은 더 깨끗하다는 거라. 기독교보다도 더 아주 더 선한 체 하고 더 관용하고, 하나님은, 예수님은 한 것이 좁은데 이는 예수님보다 더 넓어. 더 관대해. 더 관용해, 그것이 나오기를 땅에서 나왔기 때문에, 바다에서 나왔으면 죄악에서 나오니 이게 아닌 줄 알지마는 땅에서 나왔기 때문에 사람들이 속았어 나중에 보니까 말하는데 용처럼 말합니다. 용처럼 말해. 땅에서 나왔어. 그게 몇장에 있어요, 요한계시록? 몇 절이야? 11절. 11절에 있어.
그래 어쨌든지 이거는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기 때문에 좁은 문으로 들어갑시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해서 가는 사람이 찾는 사람이 적어요, 찾는 사람이. 찾는 사람이 적은데 인간보다 진리를 크게 여겨서 내가 귀중한 사람 중요한 사람 그 사람과 하나되는 것 보다도 진리와 하나되는 게 크지 그 사람이 진리보다 큽니까? 진리를 양보해도 사람을 잡아야 된다, 이는 사람은 뺏기고 해도 진리는 양 보할 수가 없다 하는 그 사상이 달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해서 찾는 사람이 적고 넓은 문으로 인도하는 그 길은 문도 크고 또 길도 평탄하고 좋기 때문에 찾는 사람이 많다. 늘 말하기를 인간보다 진리가 크다. 거게 보니 OOO목사도 뭐 다수보 다 진리라 그렇게 말은 해놨는데 말은 해놨는데 유일을 찾지 않는 사람이오. 그래 지금 요번에 집회할 때 말 들어 보니까, 나는 그말을 못 했어, 내가. 듣지 않았기 때 문에 그런지 몰라서. 이번에 그뭐 누가 한 시간 누가 한 시간 또 누가 한 시간 이래 가지고 자기네들끼리 쭉 나눠서 시간마다 갈아 강사가 몇이라더라? 이래 떡 나눠 가 지고 하니까 대단히 신사적이고 서로 화평적이고 서로 나눠먹고 이렇게 좋은 것이지 마는 그거 허무하다는 건 다 알고 있습니다.
왜? 찍해야 한 사오 일밖에 안 되는데 사오 일에 한 진리를 가르쳐도 못 가르치는 데 그거 이러니까 선이나 보이고 구경이나 시켰지 그 진리로 암흑을 깨뜨리고 꿰뚫 고 생명의 문을 하나라도 열 수가 있느냐? 못 열어. 아무리 능한 사람이라도 열 수 가 없어.
이러니까 그게 좋아서 자, 이러는데, 그런 것도 다 유일이 있어. 그게 좋으냐 이게 좋으냐 둘 중에 둘 다 좋을 리는 없어. 이것도 유익이고 저것도 유익이고, 아니야.
이것보다 저게 좋든지 저것보다 이게 좋든지 보다가 있어. 그래 성경에 보다를 말해 놨어. 보다가 있는데 보다를 찾기 전에는, 안 돼요.
이러면 다 자기에게 거치면 거석하지마는 아무리 그래도 나는 벌써 알기를 인간보 다 진리가 크다 하는 걸 알기 때문에, 무한히 크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이제 진리에 관계돼서는 사람을 상관하지 않아요. 그러기 때문에 내가 OO교파에 사람 끌어다 모 은 거를 말하면 내가 제일 많이 끌어 모았는가는 몰라도 아마 끌어다 모은 것은 몇 째 갈 것입니다. 몇째 가. 뭐 그때는 교인들이 많지를 못해. 많이는 몰라도 제가 끌 어 모으기는 수백 명 끌어 모았어요. 수십 교회를 끌어 모았어. 그러니까 하나 오고 둘 오고 자꾸 왔지.
나는 그 OO교파를 처음에는 이랬지마는, 내가 공력이 많이 드니까 이랬지마는 마 지막에는 거게서 쫓겨나와도 하나되는 하나 요것만 주면, 하나 요것만 양보해라, 하 나 그것만 양보했으면 나도 안 나와. 하나 그것만 양보했으면.
'네가 서부교회 여게서 이동해라.' 그 내 마음에는 그걸 이동을 해야 되느냐 안 해 야 되느냐, 그거 뭐 하고 싶고 가족들도 아이, 그만 귀찮다고 가자고 이래 쌓아도 하 나님의 뜻이면 그걸 어길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라는 그걸 나는 기도하고 결 정해서 만일 투표해 가지고 한 사람이 반대되면, 하나님의 뜻이면 한 사람이라도 반 대될 리가 없는데 하나도 반대한 사람이 없고 전부 다 이동 안 하는 것을 주장하면 그거는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지금 모든 사람 속에 마음에 성신의 감화가 있기 때 문에 한두 사람 말도 있지만 전체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것을 요게서 발표시키십시오. 이래서 만일 한두 사람이라도, 하나님은 능치 못함이 없기 때문에 한 사람이라도 반대한 사람이 있으면 나는 이동을 하겠습니다. 하나님 뜻이 면 이동하겠습니다. 반대 안 하면 하나님의 뜻이 이동하는 게 아닌 줄 알고 안 하겠 습니다. 그렇게 오랫 동안 기도하면서 그때 투표할 때에 저 다른 교회 사람들 여게 대려와 가지고 그 사람들이 여기 증인이라고 투표를 관리 해 가지고 그래 했어.
하니까 전부 일곱 표만 그 부표가 나왔어. 일곱 표는 전부 우리 가족뿐이야, 우리 가족 아닌 사람은 한 사람 없었어. 이러니까 하나님의 뜻이지,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게 뜻이고 그거 자기네들이 그 반대하고 그래 하려 하는 것은 마귀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 하는 것인 줄 알았기 때문에 내가 거게서 사람을 버려도, 그때 버림을 당해 도 또 거석하지 않아.
그러니까, 마지막에 정죄가 상회 불복종 죄로서 제명 통지가 왔어, 나한테. 나는 거 게서 진리를 말하다가 그들이 쫓아내니까 나왔지 내가 좋은 곳이라고 내가 피난 나 와서 나간 일은 없어. 내가 그것을 몇 번이나 또 말했어. 진리를 말하다가 거게서 책 임이 있기 때문에 그거를 고치는 대로 고치고 자꾸 고치다가 정 고치다가 나중에 싫 다고 밀어내면 예수님이 나갔기 때문에 거게서 나갈 일이지 제가 여게 나쁘니까 나 는 좋은 곳으로 피해 가야 되겠다 그렇게 탈퇴해 가는 것은 그거는 진리 운동이 아 니다. 쫓겨나가는 게 진리 운동이다.
그 말을 여게 교역자로서 들은 사람 손 들어 봐요. 그말 들은 사람 손 들어 봐요.
들은 모두. 이것밖에 없어요? 나머지는 그 뒤에 뭐 그 뒤에 생긴 사람들이구만. 망각 이라. 내가 OOO씨 이런 이들도 몇 번 들었어. 그 말을 귀넘어 들으니까 속에 안 들어가 그렇지. 손 들었어? 그러니까, 이거 내 자랑 아닙니다. 내 자랑 아니고 나를 증거하는 것 아니오. 주님을 증거하는 것이오. 뭐 지금 설교록이 지금 뭐 미국에서 도 어데도 보고 자꾸 이래 가지고, 내가 뭐 여기 편집실에 물으니까 '미국서 지금 오는 게 자꾸 많은데 이거 범위를 보니까 아마 이리가 더 이 설교록이 선포해 나가는 이 선포량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이렇 게 말하는 것을 말을 하는 것은 또 거게서 참 그 오해되는 걸 풀어서 말해서 그분들 도 하, 그러냐고 그 오해한 것을 자기가 느끼는 것을 봤다고 이런 말하는 것은 백 목사 제 자랑이라고 했기 때문에 헛일이오. 백 목사 자랑 같으련 그거는 저주받소.
성경에 아무 육체도 자랑하지 말라 했는데? 우리 마음도 육체요, 우리 고기덩어리도 육체요. 이 심신은 육이라 하는 이것도, 이것도 오늘까지 없는 진리라. 이러니 이게 하나님 심판 앞에, '영은 따로 있고 마음은 영이 아니다. 심신은 육이다' 하는 이것도 오늘까지 세계의 교리에 없는 것입니다. 없어요. '마음이 영이지' 마음을 고리덩어리 육에 속했다 이렇게 영육의 이분설 인데, 이분설에 마음은 육에 속했다 하는 그 교 리는 없으니까 지금 시지부지하게 이래 말하고 있지마는 이것도 처음에는 정죄를 했 었어. 했으나 정죄하는 거게서 관심이 없기 때문에 거게 대해서는 보는 사람이 없어 서 그랬지마는 이것도 없는 교리라.
이러니까, 이거 하는 것이 하나님은 막대기를 통해서도 당신의 뜻을 이루고 당나귀 를 통해서도 당신의 말씀을 선포했고 이래 했는데 하나님이 그렇게 당신이 하셨기 때문에 하신 그걸 말하는 것이지, 그러기 때문에 우리 집회에서 인간병 나은 거는 그거는 말할 수 없고 고기 덩어리병 나은 사람만 한 것이 이천 몇 명이라. 책에 기 록한 이름 기록한 게 이천 몇 명이라.
이천 몇 명이니 이게, 이 말하면 '하, 백 목사,' 백 목사는 그거 하나도 할 수가 없 어, 나는 내 무좀도 안 나았어. 나는 내 무좀도 못 낫는데 누구 해를 낫아? 이게 백 목사님 한 게 아니고 하나님이 하신 걸 하나님 자랑하는 거요. 그걸 자랑하는 게 하 나님 자랑하는 거고 이거 아무래도 하나님께서 표적 베푼 이 일을 책에 기록해 가지 고 우리가 기억하고 선포하고 이새 해야 되겠다. 이 선포하는 게 하나님의 진리인데 그걸 가둬 버린다 말이오. 이거 백 목사 자랑이라. 백 목사 표적한 것이라고 이렇게 백 목사 자랑이라고 하는 자는 그자는 오해했기 때문에 고치십시오. 백 목사 자랑 아니오. 백 목사 그거 한 일 아니오. 우리 총공회에 이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신 그분 이 곧 이 진리가 하나님이 나타냉 진리라, 이 노선이 세계에 제일 좋은 노선이라고 나는 담대히 말합니다. 내 주관에 그런 게 아니라, 또 이 진리가 제일 옳은 진리고. 왜? 다른 걸 보면 다 유일이 아니라. 유일 이 아닌데 유일을 우리가 하지. 여게서야 뭐 노선으로 말하면 그 정치 행정돼 나가 는 건데, 행정해 나가는 건데 온 행정원들에게 우리 행정에 틀린 것 있거들랑은 그 걸 다 기록해 내라. 기록해 내 가지고 의논해 수정해서 자꾸 평가적으로 비판적으로 수정해 가지고 옳은 걸 찾자 하는 그런 그렇게 옳은 것을 찾으려고 하는 그런 노선 이 어데 있어? 나는 이런 면에 유일이라고 봐요, 없다고 봐요. 이게 제 일이라고 봐 요. 또 우리가 회의할 때에는 '언권을 잘난 사람들만 언권을 낼 게 아니라, 잘난 사 람들만 언권 할 게 아니라 그 회원들 중에 다 언권이 있어 회원들이 다 말할 수 있 다.' 언권을 다 주고 있고, '회원들만 아니다. 다 방청하는 사람들도 다 언권을 줘서 방청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언권을 얻어 가지고 말을 할 수가 있다. 언권 다 준다.
또 이뿐만 아니라 심지어 타진영 사람들이 와서 참여하면 그분들에게도 언권을 준 다.' 이거는 언권 줘서 뭐이든지 옳은 말 듣고 그거 바로 깨달으려 하는 것이고 나쁜 거 정죄받아 가지고 고치려 하는 것 아닙니까? 이게 세계 제일 좋은 노선이지 이런 노선이 어데 있어, 있기를? 있거든 말해 봐요, 있거든.
그래, 이러면서 다 해 가지고 이래 하다가 그것도 비판해 해도 하도 지루성을 내 가지고 못 하고 말았어. 건둥건둥 이래 했지. 또 찬송가도 이거 찬송가를 하면, 자, 찬송가를 지금 우리가 201곡을 이래 택해 했으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 인지 노여워하시는 일인지 둘 중에 하나지 노여워하시는 일도 될 수 있고 기뻐하시 는 일도 될 수 있고 그럴 수는 없어. 노여워하시면 노여워하시고 기뻐하시면 기뻐하 시고 둘 중에 하나라. 이것도 유일주의자는 이게 이건가 저건가 그 비판을 해야지.
또 이것이, 이것이 진리 운동인지 이단 운동인지, 이것이 속화를 방지하는 것인지 속화시키는 것인지? 그러면 통일찬송이 있으니까 그게 속화되지 않고 진리를 보수하 는 것이러면 그게 되든지. 그러면 이게 속화되든지 둘 중에, 똑 같지는 않을 거라.
이거냐 저거냐? 둘 다 좋다 하면 그거 다 틀렸어. 알겠습니까! 둘 다 좋다 하면 아직 까지 옳은 것은 안 나왔다 그 말이오. 그말 맞아요? 통일이나 우리가 한 찬송이나 이 둘 다 장점이 있고 둘 다 좋다 하면 그거는 지금 바로 그 유일을 찾은 것이요 못 찾은 것이요? 유일을 못 찾은 거라. '이거보다 이게 낫다' 이게 됐으면 그 사람으로서는 그게 유일이 될런지 안 될런지 몰라도 그 사람 은 하나는 잡은 것이지. 이거보다 이게 낫다 하면 하나는 잡은 것이지. 그러나 그게 유일이 될런지를 몰라. 그래 그 사람은 둘을 가지고 있는 창기 신앙은 아니라. 하나 를 잡았지. 그래 나가는데 그게 뭐 하나님 앞에 상을 받을런지 벌을 받을런지 그것 도 둘 중에 하나라. 공연히, 이 찬송도 이래도 뭐 예사로, 그 찬송에 대해서 뭣이든 지 틀린 거는 우리가 고쳐 나갈 터이니까 좀 통일보다도 이거는 못 하다 하는 그런 것이 있으면 그것을 지금이라도 말을 해 줘요. 이래도 도무지 이거는 뭐 도매금으로 막 배척이라. 도매금으로 막 배척하고 막 멸시라. 서울에서 제일 배척하고 멸시했어 요. 그래도 서울에서 그게 잘한 줄 알아도 광문다학해서 유식해 그런 줄 알아도 나 는 볼 새 하나님 앞에서는 가장 무식한 곳이 서울이오.
'서울 교회는 속화됐다' 이러는 것 다른 말이 아니라 우리 진영 교회는 속화가 됐 어. 우리 진영 교회로서는 서울 교회가 제일 속화됐어. 뭐 서울에서 뭐라 한다 해도 속화가 돼 버렸어. 자기도 모르게 속화가 됐어! 속화된 걸 자기는 몰라요. 서울보다 는 대구가 속화가 덜 됐어. 대구 보다는 부산이 속화 제일 덜 됐어.
이것도 뭐 미친 소리 같지마는 그 미친 소리 하는 것도 또 이것도 내가 정말로 여 러분들 위해서 내가 미친 소리를 했지 나 위해서 미친 소리 하지는 안해. 이거야 하 면 욕 얻어먹지 아무도 좋을 것 없어. 여러분들 좋고 주님의 복음 주님 좋지. 그러니 까 나도 그면으로 좋지 내 개적으로는 좋은 게 아니라. 이래서 우리는 유일이라는 이것을 기억하고, 이번에 그 독재냐 민주냐 하는 그것을 오늘 그것을 구별하십시오.
그거 구별 안 하고 덩더꿍이로 암만 해야 소용이 없습니다. 그저, 지난밤에 OO목사 님이 설교했는데 그 설교는 참 아주 잘했습니다. 그 설교대로라. 설교대로 그대로 하 면 돼. 뭐 천 만보다도 진리라. 하나님이라. 그거 없으면 안 돼. 에덴 동산에 하나님 모셨으면 진리 기억했을 것이고 진리 모셨으면 하나님 말했을 것이고 진리나 하나님 이나 둘 중에 하나만 가졌으면 그 나머지기 뭐 다스리는 것은, 지키는 것, 선악과 그 런 거는 범할 수가 없어. 선악과 먹을 수가 있어? 말씀이 선악과를 먹어? 하나님이 선악과를 먹어? 또 일반 과실은 하나님과 진리가 있는데 못 먹어? 또 그거는 자연히 다스려지고 지켜져요. 배암이 그때는 못 들어와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자꾸 이래 놓으니까 하지마는 나는 그걸 각오했어.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지만 나 는 지금 그래 하려고 하고 있어요. 왜? 노아가 여덟 식구만이, 동지가 여덟밖에 없 어, 저희 식구밖에 없었는데 그래 갈렸는데 주님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올 때에도 노 아 때와 같다고 했으니까 이렇게 뭐 다 나자고 나가고 떨어져 나가고, 나가기를 좋 아해 그런 게 아니라 떨어져 나가고 나가고 마지막에는 저 혼자 있을런지도 모른다 는 요것을 각오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 그러니까 그만 과거와는 내가 달라. 벌써 지 금 엔간히 컸고, 컸으니 이래 가지고 저거가 들어 왕이 해 가지고 이러니까 왕이 돼 나가려면 나가. 나는 진리 양보하고 사람 붙들지는 않을 터이니까, 이제. 과거에는 그걸 참 바울이 말하듯이 붙들고 이래도 저래도 자꾸 이래 했지마는 나는 지금 노쇠 해서 그 정력이 그런데 없기 때문에 인제 하나만 잡고 말지 그럴 여가 없어. 그만 진리면 따라오고 또 엔간히 가르쳤기 때문에 다 자기가 자기 속에 비판할 수가 있 어. 이러니까 하나를 따르려면 따르고 말려면 말고 그래요.
그래 내가 과거에, 진리를 가지고도 자꾸 인화를 이걸 중하게 여기는 가운데에서 나도 더러워지기도 많이 더러워졌어. 그래서 내가 부산 오고 내가 더러워졌다. 부산 에 와 가지고 내가 버려졌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에게 긍휼을 베푸셔서 이제는 내 가 좁아지고 이거 넓어지지 않고 이제는 인화주의로 나가지 않겠다 하는 것을 각오 했습니다. 그러니까 좁은 문을 모두 다 택하십시오.
뭐 이 문만 택해서 나갈 일이지 무슨 진영에서 정죄를 한다, 한국 교회가 정죄한다.
한국 교회가 얼마나 됩니까? 세계 교회가? 세계 교회가 얼마나 됩니까? 하나님이 정 죄 안 하고 인정하면 되는 것이지 그뭐 사람이 천이고 만이고 억이고 온 세계가 다 이제까지 있는 모든 전 신학계에서, 아무 상관도 없어. 눈도 꼼짝거리지 않아. 왜? 평가를 바로 하나님이 제일로 이래 알고 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