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팔년 된 인간병


선지자선교회 1985년 6월 2일 주일오전 

 

본문 : 요한복음 5장 5절∼18절  거기 삼십 팔년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 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한대 저희가 묻되  너더러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가  누구신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 된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이 말씀은 읽을 때에 어떤 사람은 어떤 외국어로 기록한 그런 무슨 글 보다  업신여기는 사람들 많습니다. 왜? 그것은 다 공부를 많이 한 학자들이 읽는  글이지만 이 성경은 우리 한글로 기록했기 때문에 국민학교도 가지 못한  사람들도 다 읽을 수 있는 책이요 거기에 또 아주 고급 고등 술어를 다 써서  문자나 쓰고 이래 가지고 참 학자가 아니면 알기 어려운 그런 문장으로 쓰지  안하고, 아주 고급 술어로 그렇게 쓰지 안하고 그저 보통 어린 아이들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그런 쉬운 말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업신여깁니다.

그것은 인간의 지식이 그 사람을 지배해서 세상 지식으로 인하여 하나님 말씀을  업신여기는 사람인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 기록한 내용이나 사건이 그렇게  무슨 문체가 있고 위엄스러워서 이것은 국제간에 말썽되는 말이라든지 또 세상에  이 나라의 머리 저 나라의 머리, 머리되는 사람들이 모여 가지고 얘기한 그런  말도 아니기 때문에 업신여깁니다.

 쓰이기를 한글로 쓰였지, 또 아주 무식한 사람이라도 알 수 있는 술어로  기록되어 있지, 무슨 세상이 아는 아주 고위층에 있는 그런 인물들이 말하는 말도  아니지. 또 그 내용이 뭐 '병신 병 나았다' 요사이는 병원이 점점 늘어 나가는데  제가 저녁으로 보면 병원마다 다 불이 꺼져 있는 칸이 없고 전부 불이 켜져  있습니다. 거기에는 분명히 보나 안 보나 환자들이 다 들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일 것입니다. 이렇게 수많은 종류의 병 환자들 이 날마다 수천 명 수만 명,  우리나라만 해도 수만 명 병 들고 수만 명 낫고 수만 명 죽고 이렇게 하는 이  세상인데 뭐 삼십 팔 년 된 병자 하나 나은 걸 가지고 뭐 그렇게 아주 떠들고  말하는가 해서 그 사건 자체가 또 보잘 것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업신여깁니다.

 업신여기는 것은 이 말씀의 실상아 업신여김을 받을 만해서 업신여기는 것은  아닙니다. 업신여기는 사람들은 다 택함을 입지 안한 사람들은 평생 가야 모르고  영원히 가도 모릅니다. 지옥에 가 있으면서도 모릅니다. 또 택함을 입은  사람들로서도 양심이 마비된 사람은 모릅니다.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거기에 대해서 그렇게 자극 있게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 대속의  공로를 입고 성신의 감화의 충만한 사람들은 이 말씀 보다 더 큰 말씀이 없고 이  말씀 앞에서 다 자기를 숙여서 이 말씀을 가지고 자기를, 자기의 영원한 문제를  해결지울려고 그렇게 심신을 다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서, 세상의 억만금이라 할지라도 돈 보고는 눈도  꼼짝거리지 안하는 그런 사람인데 이 말씀 앞에서는 자기의 전심 전력을 기울여  뻘뻘 떨면서 이 말씀을 상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천하에 어떤 사람이든지 인생으로 태어난 사람이라고 하면 이 말씀이  교훈해 주시는 이 방편을 들어 깨닫고 이 방편을 자기가 힘입지 못한 사람이라고  하면 왕이든지 고관 대작이든지 그는 멸망입니다. 이 말씀에 대해 혜택을 입지  못하고 이 말씀의 교훈과 지도의 방편을 자기가 힘입어 혜택을 입지 못한다고  하면 천 명이고 만 명이고 억만 명이고 어떤 고귀한 사간이라 할지라도 그는 다  멸망입니다. 영원한 멸망입니다. 만일 택함을 입은 자라 할지라도 이 말씀에 대한  혜택을 제가 입지 못했다고 하면 그는 천국을 갔다 할지라도 혜택을 입지 못한  그로서 부분적으로 그는 영원한 멸망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고 영원한 수치를  받아야만 하는 것이고 영원한 원통과 후회를 제가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술어적으로 술어 표준으로 평가하고, 또  세상들이 평가하는 그 평가를 표준해서 평가하고,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딿고  거부하는 그런 것을 가지고 평가하는 사람은 이 말씀은 그에게 해당치 않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십자가에서 대형 대행 대화친의 이  공로를 베푸신 이 공로를 힘입은 사람만이 이 말씀을 상대할 수 있습니다. 또  상대는 하지만 이 말씀에 대한 그 권위와 중량과 우리에게 대해서 그 중요한 그  가치성을 아는 것은 순전히 성신의 감화가 아니고는 알지 못합니다. 성신의  감화를 받은 것만치 그는 이 말씀에 대한 저에게 중대성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말씀은, 어떤 사람이든지 이 말씀이 말씀해 주시는 이 법칙을 이  도리를 힘입은 사람이 복있고 이 법칙대로 지켜서 준비한 사람들이 복 있습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다 그러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서도 이 말씀을  상대할 때에 저는 이 말씀으로 인하여 정죄를 받고 있는지 이 말씀으로 인하여  영원히 핑계하지 못하고 변명 못 하고 하나님의 심판에서 멸망받을 그런 길을  걷고 있는 자기인 줄도 알지 못하고 그저 여기 글자 몇 자로 쓰여 있는 이 글에  기록되어 있는 이 기록을 알고 기억하고 자기 나름대로 거기서 해석하는 것으로  다 된 줄로 아는 그 사람도 외식자요 불쌍하고 가련한 자요 화 있는 자입니다.

화를 받을 자인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인생으로서는 이 말씀을 걷지 않고는 행복의  자리에 나아가지를 못합니다. 이 말씀을 걷지 않고는 후회 없는 평강에 도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삼십 팔 년 된 병자 고친 것을 기록했는데 이것은 표적입니다. 삼십  팔 년 된 병자를 고쳐서 삼십 팔 년 된 병자가 나아서 모든 육안을 가진 자들이  보고. 그 사람이 삼십 팔 년이 된 연수는 모를지라도 그 솔로몬 행각에 늘 누워서  있던 그 누운뱅이가 아니냐 그렇게 사람들이 알도록 그렇게 이 병이 나은 것은  그 병 나은 것으로 다가 아닙니다. 이 병 나은 것은 표적입니다. 이 병 나은 것은  무엇을 가르쳐 주는 표적인가? 이 표적이 가르치고 있는 이 표적의 속의 그  실상은 무엇이며 안에 들어 있는 이 표적이 표시하고 있는 실상 본체는 무엇인가  하는 그것을 우리들 이 깨달아 자기의 구원의 복음으로 받아야 할 것입니다.

 이 표적이 가르치고 있는 것은 육체의 병 치료하는 그 속에 마음의 병 이 든  것을 표시하고 마음의 병 속에 영의 병들어 있는 것을 표시해서 몸의 병든 이  병이 치료된 것은 볼 수 없는 그 마음의 병이 치료된 것을 표시하는 것이요 그  속에 영이 병든 그 병이 치료된 것을 표시하는 표시로 기록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는 모든 성경이 다 성경학자들이 공통적으로 번역할 때에 이것은  삼십 팔 년 된 병자가 병 나은 표적이라 그렇게 다 번역들을 했습니다.

표적이라고 다 번역한 것은 모든 성경학자들 신앙의 사람들 영의 사람들이 다  공통으로 표적으로 그렇게 다 인정을 하고 번역도 하고 그 번역을 옳게 되었다고  찬성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여기 삼십 팔 년 된 병자가 있는 것은 곧 영과  마음의 몸의 병자가 있는 것을 하나 표시한 표적입니다.

 그러면, 이 성구는 어떤 사람에게 한해서 주신 성구인가? 이 삼십 팔 년 된  병자가 나은 역사적인 이 사실인 이 형식인 이것을 우리에게 기록 해 주신 이  성구는 누구에게 주신 성구이며 누구에게 해당되는 성구인가 하는 것을 좀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다 심령이 어두워서 썩은 것은 보나 산 것은 보지  못합니다. 소용없는 것은 보나 소용 있는 것은 보지 못합니다. 화가 아닌 것은  화로 여기고 화는 화로 여기지 못합니다. 존귀한 것은 존귀한 것으로 여기지  못하고 아무것도 아닌 천한 것 백해 무익인 염병 같은 그것은 아주 존귀한  것으로 여기는 이렇게 인간의 심령들이 다 꺼꾸로 되었으니 죽을 때에 후회되는  그것만 다 좋아합니다. 죽음이 왔을 때에 '아, 죽음이 오니, 과연 인생이 죽기  때문에 내가 이것을 취한 것이 잘되었다'하여 죽을 때에 가치 있는 것은 사람들이  생각지를 못하고,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설 때에 가치 있는 것은 생각지 못하고  영원 무궁세계에 가치 있는 것은 생각지를 못하고 죽으면 다 끝장나는 것. 늙어도  끝장나는 것, 병만 들어도 끝장나는 것, 젊음의 씽씽한 모든 생기만 병들어도  끝장나는 것 그런 것들만 다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고 사람들은 일생을 거기에  기울여서 날뛰고 있습니다. 있으면서 저는 저 잘난 재미로 '내가 있으니까 천하에  내가 제일이다. 모든 사람이 나를 부러워 하겠지' 너 같은 인간이 너를  부러워하지 성령의 사람이 너를 부러워하지는 절대 안 한다! 절대 안 합니다!  성령의 사람이 썩을 것을 부러워합니까! 욕된 것을 부러워합니까! 약한 것을  부러워합니까! 더러운 것을 부러워합니까! 성령의 사람은 그런 것을 부러워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삼십 팔 년 된 이 병자는 영육으로 된 사람병을 표시해서 이렇게 삼십  팔 년 된 병자로 계시하신 것이요, 이 병자가 나은 것을 표적으로 기록한 것이니  여기에서 자신이 삼십 팔 년 된 이 병자의 병이 들어 있는 자신이라는 것을  발견치 못하면 그는 멸망할 사람입니다. 아무리 택함을 입은 자라도 그의  건설구원은 멸망입니다. 하늘나라 들어가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는 반드시 세상  위주로 살 것입니다. 그는 육체 위주로 살 것입니다. 그는 자기 멸망을 취하고  있을 것입니다.

 인간들의 늙고 젊고 높고 낮은 모든 사람들이 마음에 고통을 느끼면서 후회를  하고 하는 그 모든 인간의 고통과 인간의 비참과 인간의 가련 그것은 어느  구멍에서 나왔느냐? 후회를 하면서 딱딱 오그라지고, 젊어서 안 오그라진 것은  늙어서 오그라지고 늙어서 안 오그라진 것은 죽을 때 오그라지고 하는 그 모든  비통의 것은 어디서 나왔느냐? 어느 구멍에서 나 왔느냐? 그것은 자율이라는  구멍에서 나왔습니다. 제 생각대로 살고 제 주장대로 살고 제 뜻대로 살고 제  지혜대로 산 자율이라는 구멍에서 나온 그 모든 인간의 비참입니다. 그 외의 것은  자기 좋게 자기 위주로 자기 소원대로 자기 욕심대로 자기 뜻대로 자기 목적대로  살고 자기 위하는 자기 위주라는 구멍에서 나와 가지고 인생들을 다 삼킨  것입니다. 그 나머지기는 주님을 믿지 안하고 어떤 피조물을 믿었든지 피조물을  믿은, 믿은 그 구멍에서 나와서 인간을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이래서, 인생아!  너를 멸망시키는 자율의 구멍을 막아라! 인생아! 너를 비참케 하는 네 위주의  구멍을 막아라! 인생아! 후회해도 소용없는 영원한 멸망이 나오는 피조물을 믿고  의지하고 그를 딿은 그 구멍을 막아라 하는 것이 자기를 부인하라 한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이게 좋다 하면서 꼬운 것이 에덴동산 인류 시조 때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제 뜻대로 되면 성공인 줄 알고 저를 위하는 상대방이나 환경이나  현실을 만나면 좋아 행복인 줄 알고, 모든 피조물이 저 믿으면 좋아하고 이런 것  저런 것 피조물 가운데에 믿을 것들을 마련하면 '나는 무위 무탁의 인간이었는데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 믿을 수 있는 상관을 만났다, 믿을 수 있는  고관대작을 만났다, 믿을 수 있는 재벌 가를 만났다 믿을 수 있는 어떤 예술가를  만났다. 학자를 만났다' 좋은 것 만났다! 그것으로 네가 망하느니라! 그것으로  망하느니라! 이런 기쁨과 쾌락을 가진 자들아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 안 하면  망한다! 하나님의 말씀이라!  삼십 팔 년 된 누운뱅이 환자인 줄도 모르니 그가 얼마나 깊은 비참 가운데  파묻쳐 있으며, 삼십 팔 년 된 누운뱅이 병자가 한 사람 두 사람에게서 혜택을  입어서 인인 관계의 혜택을 입으면 웃고 즐거워하고 성공이라고 박수치는 비참한  인간아, 네가 병든 인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 자기의 병든 것도 모르고 병을  고칠 줄도 모르고 이렇게 삼십 팔 년이나 누워서 날마다 구걸하는 대로만 소망을  두고 산, 피조물 혜택으로만 사는 소망만 두고 살고 있던 자기 자신인 것을 깊이  깨달아 느낌이 없으면 다 비참합니다. 뭐 크면 뭣하며 부하면 뭣하며, 다  멸망인데, 어린아이 송장이나 거인 송장이나 송장은 송장이지 별 것 뭐 있습니까?  작은 똥 덩어리나 똥 구덩이나 다 똥은 똥이지 뭐입니까? 죽은 것은 죽은 것이고  썩은 것은 썩은 것이지 별 게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병자에게 와서 말씀하시기를 이제까지 분망하고 욕망 가졌던 이  구걸하는 이것으로서 전 저의 살이를 삼고 있고 희망으로 삼고 있는 그자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하는 것을 주님께서 그에게 대해서 먼저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음성을 들어야겠습니다. '네가 낫고저 하느냐' 네가  인간병 들었음으로서 세상에서 답답한 생활하고 세상에서 부득이 생활하고  가련하고 비참한 생활하고 영원히 비참하게 되는 것은 인간병이 들어 그렇다.

 인생은 하나님으로 자기 전부를 삼아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진리로 자기의  전부를 삼아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피조물을 다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는 이 위치에서, 그 존영에서, 고 권위에서 사는 것이 정상의  사람입니다. 아무 공로 없어도 이걸로 사는 것이 인생으로 지음받은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지으실 때에 땅을 정복하고 모든 것을 통치하고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지음 받은 것이 사람인 것입니다. 사람은 전능자가 아니면서 전능자로  살 수 있는 것이 사람이요. 전지자가 아니면서 전지자로 살 수 있는 것이  사람이요. 완전자가 아니면서 완전자로 살 수 있는 것이 사람으로 이렇게 지음  받은 것이 인생인데 인생이 이 위치에서 떨어졌습니다. 이 연결에서  끊어졌습니다. 마귀에게 미혹받아 가지고 하와가 끊어졌고, 끊어진 하와의 미혹  받아 가지고 아담이 끊어 졌습니다. 오늘도 여인은 남자를 미혹시키는 이것이 큰  죄악 중에 죄악이요 심판받을 것인 줄 알고 남자를 미혹하는 여인이 안 되겠다는  요것을 두고 싸우는 여인이라야 여인을 탁월한 남아의 위치에 들 수 있는 자인  것입니다. 남자도 여인의 미혹을 벗어난 자라야 그자라야 비로소 인생의 정상길을  걷기 시작한 자인 것입니다. 이길이 삼식이나 사십이나 오십이나 육십이나  칠십이나 팔십이나 어찌 됐든지 죽기 전에 이 길을 시작했으면 복있는 사람이요  성공한 사람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시간에 사람병이 들어서 아무 짝도 못 쓸 사람, 마귀에게나 쓸모  있고 죄에나 쓸모 있고 사망에나 쓸모 있고 불법에나 쓸모 있고 세상에나 쓸모  있지 하늘나라에 쓸모 없는 사람, 영생에 쓸모 없는 사람, 인간을 영생으로  구출하는 데에 쓸모 없는 사람, 영생을 마련하는 데에 쓸모 없는 그 사람은 다  병든 사람인 것입니다. 자기가 정말로 병든 사람인지 정상의 사람인지, 정상의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된. 사람이 정상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모형의  사람이 정상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속성대로의 사람이 정상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에게 속해서 하나님으로 동하고 정하고 하나님과 연결됨으로, 하나님의  완전과 모든 것이 자기의 완전 과 모든 것이 되어진 이것이 정상의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도 정상의 사람이 될라고 죽는 날까지 애쓴 것이 사도 바울의  생활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양심이 자기에게 흠점을 찾지 못할 때에 그는 탄식을  하면서 하나님에게 부르짖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잘난 사람이고 의로운 사람이기에 사람병 든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성경에 기록한 이런 병 저런 병이 이런 방편으로 치료되었고 저런  방편으로 치료되어서 이런 건강자가 되고 저런 건강자가 된 것은 다 표적이니까  이런 방편으로 인간병이 치료되고 저런 방편으로 인간병이 치료된, 인간병이  치료된 이 성구를 보고 자기는 하나의 역사에 지나간 그 저 쓸데없는 이야기처럼  그렇게 업신여기고 지나가는 그자의 받을 보응이 큽니다. 네가 죽었다! 네가  죽었다! 완전히 마귀의 자식이 되었다! 너에게는 성신의 빛이 없다! 너는 오늘  죽어도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었으면 기본구원은 얻어 갔지만 하늘나라에  벌거벗은 자라 네 소유는 하나도 없다. 네 영광도 없다, 네 기능도 하나도 없다!  이 비참한 자신인 것을 깨달아 낫기를 원하라 하는 것을 주님께서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낫고저 하느냐' '낫고저 하느냐' 하는 말씀은 네가 병든 자인  것을 아느냐, 네가 하고 있는 것은 인생 중에 비참한 구걸 행위인 것을. 가련한  생활인 것을 알고 있느냐, 모든 구걸과 비참이 병신인 그것이 원인이라 병신이  원인이라는 것을 네가 아느냐, 네가 인간병이 든 것을 네가 알고 있느냐! 이 시간  자신이 인간병 든 것을 발견한 사람은 그 사람은 복의 희망이 있는 사람이요,  인간병 든 것을 어디까지 고쳤든지 나는 다 고쳐서 인간병 고칠 것이 없어  인간병 없는 자라 해도 그도 비참한 사람, 하나도 고치지 못하고 인간 병든 것을  모르고 있는 사람도 비참한 사람, 인간병이 없는 정상의 부분, 정상의 사람은.

'그리스도는 너의 것이라 그리스도는 너희의 의요 그리스도는 너희의 거룩이요  그리스도는 너희의 지혜요 그리스도는 너희의 능력이라 그리스도는 너희의  모두가 되는 전부라' 성경이 말씀을 했습니다. 이렇게 되어 있는지!  제가 어떤 장로님이 이 설교를 듣고 '아, 낫고저 하느냐 낫고저 하는 것만  가지면 이제 되겠다 낫을라 그만 하면 된다' 좋은 것을 잡았습니다. 좋은 것을  잡았습니다. 여기 지금 와서 참석하고 있습니다. '낫고저 하느냐' 좋은 것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지식뿐이지 낫고저 하는 그 간절한 소원은 많이 허약해졌고  빈약해졌고 많이 허무했습니다. 만일 그동안에 낫고저 하는 그것을 계속해서  낫고저 하였으면, 바리새 교인과 서기관들이 조롱하고 제가 믿는 예수를 죽일라고  하는 것처럼 저의. '네가 믿는 예수는 네가 믿는 예수는 옳은 예수가 아니라' 하고  핍박 가운데서 곤고한 가운데서 날마다 십자가의 길을 걸을 것이요, 또 그에게는  인간이 모르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오는 굉장한 영감의 깨달음과 역사가 있을  터이니 그에게 모든 생애가 나타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공연히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거튼 거튼 들어 가지고 마구 삼켜서 수박 겉 핥듯이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낫고자 하느냐' 네가 인간병을 고치고저 하느냐, 네가 하나님의 모형이 되지  못한, 하나님의 속성이 되지 못한, 하나님으로 동하고 정하는 그것이 새사람이요  정상인데 그게 되지 못한 네 단독이 움직이는 것. 네 주관이 움직이는 것, 네  욕심대로 움직이는 것, 피조물로 따라 움직이는 것. 네가 피조물로 동하고 정하고,  피조물로 동하고 정하지 안하면 네 욕심으로 동하고 정하고. 네 주장으로 동하고  정하고, 네 성질로 동하고 정하고, 네 모든 악습으로 동하고 정하고 네게 있는  악령 악성 악습으로 동하고 정하는 그 부분이 네게 있는 것을 찾느냐, 아느냐.

고치고저 하느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막 먹어서 이렇게 그저 지내 버리는  이런 버릇을 안 해야 됩니다. 기독교는 깊이깊이 새겨서 안팎에 눈이 있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이 삼십 팔 년 된 병자가 삼십 팔 년이나 병들어 있으면서 그만 처음에는 병든  것이 안 되었지만 그 병이 짙어지고 나니까 이제는 병든 것을 느끼지도 못하고  전심 전력은 구걸하는 데에 있습니다. 사람이 나고 난 다음에 양심을 가졌을  때에는, 어린 아이 때에는 조금만 하나 실수를 하면 깜짝 놀래고 가책을 가지지만  이 병이 차차 짙어져 놓으면 학교에서 가르치고 모든 세상에서 가르치는 것이 다  양심을 마비시키고 자기 가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정상적인 참사람으로 사는 그  일을 안 해도 가책 없이 살도록, 다시 말하면 세상 표준으로, 세상 표준으로 세상  위주로 인간 위주로 사회 위주로 국가 위주로, 일본 사람이 왜정 말년에  교훈하기를 학교에 입학할 때마다 시험 문제 문답에서 면담할 때에는 '네가 어떤  사람이 되고저 하느냐' '나는 우리나라에 필요 있는 인간이 되고 싶다 하면  합격시켜 줬습니다. 그것 때문에 일본 나라가 바싹 깨졌습니다. 아직도 이렇게  올라가지만 고치지 않으면 언제 또 깨질란지 모릅니다. 그까짓 거 올라가 봐야  깨질 것, 올라가다 깨지면 그것보고 '아. 저렇게 커졌다. 또 저리 깨졌다'  그런고로, 올라가는 것 보고 사는 사람은 멸망할 사람이요 깨지는 것보고 사는  사람은 구원 얻을 사람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일곱 머리가 상한 것보고 '아. 저것도  저래 상하는구나 보고 사는 사람은 성령의 사람들이요, 깨졌던 것이 나은 것보고  사는 사람은 멸망할 사람이라고 그렇게 말씀을 성경에 하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아, 나는 인간병을 사는 고치고 싶다'  인간병을 고치고 싶으면 인간병이 든 것을 알아야지, 진찰해서 무슨 병이  들었는지 알아야 고치지 인간병이 뭐인데? 악령으로 더불어 사는 것이  인간병입니다. 악령으로 더불어 사는 것이 인간병입니다. 악성으로 더불어 사는  짓이 인간병입니다. 악습으로 산다 말은 자기 위주로, 자기 생각대로, 하나님의  성신의 감화가 아닌 악령의 감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지배받고 있는 악령의  감화대로 산, 하나님의 성경 말씀이 의라 하나님의 성령이 의라 하나님이  인정해서 의라고 하나님이 칭찬하고 찬성하고 인정 할 수 없는 모든 생활이 다  악습입니다. 제가 인정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그걸 보고 '네 생활을 과연  모든 사람이 다 본받을 만하고 기념할 만하다. 네 생활은 옳다' 성도들이 볼 때에  '네 생활은 옳다' 찬성할 수 있는 성경이 찬성하는, 성령이 찬성하는 그 생활이  아닌 것은 다 악습입니다. 악한 행동을 해서 하나 더 보태면 또 그 연습이 됐고  연습이 돼서 악습 구습 인간대로 산 버르장이 못 쓸 그 모든 악습 그것이  인간병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살지 못한 것이 다 인간병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 못한 것이 그것이 다 인간병입니다.

 내가 인류 중심으로 산 것이 인간병입니다. 자기 가정 중심으로 산 것이  병입니다. 자기 사회 중심으로 산 것이 병입니다. 국가 중심으로 산 것이  병입니다. 인간은 그런 중심으로 살 수 없는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상관은. 주인은, 호주는, 사장은, 선생은 모두 다 제 중심으로 나를  살라고 합니다. 그것이 인간병입니다. 그럴때에 거기에 따라서 '아. 가족이 말하니  가족 중심으로 살아야 되겠다' 하면 그 가족을 망친 자요 가족의 원수입니다.

국가 중심으로 살아라 할 때에 국가 중심으로 살았으면 국가를 망친 국가의  원수입니다. 왜? 조물주 주권자 대주재자 만왕의 왕이 있는데 그 분 배반하고  국가 위했으면 그분이 국가를 깨지! 깨뜨리지! 그러기 때문에 일본 나라가 망했지!  왜정 말년에 신사 참배시키다가 망했지!  우리나라에서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하는 그 국가를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성도들의 기도로 지었는데 지금도 그 국가가 계속하고  있습니까 고쳤습니까? 예? 고쳐졌습니까 그대로 계속하고 있습니까? 하늘님으로  해 놨어? 하늘? 하느님? 하느님. 네, 차차차차 변해져 나가는구만요. 하느님이  아니오. 하나님입니다. 한을 하는 것은 새을(乙)자를 쓰다가, 크다는 것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한을님이라 말하는 것은 이 우주가 크니까 여게 주인이라 해  가지고 한을님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라고 표시한 것은 영원 자존자  유일하신 한 분 뿐이신 하나님인 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천주교 성경에서 하느님이라고 자꾸 고쳐 나갑니다. 천주교는 정상적인 기독교가  아닌 것입니다. 언제 말하니까 천주교에 대해서 그런다고 공박론이 나왔습디다.

공박론이 나왔는데 그 편지를 내가 가지고 있다가. 한 일 년 반 보존하고 있다가  다 많이 말하고 불에 사뤄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사람은 여게 있는지 몰라도  회개를 해야 됩니다. 안 하면 하나님의 화가 제 가정에 갈 것이요 제 신체에 갈  것이요 제 업체에 갈 것이요 제 활동에 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자이면 그럴  것이고 그게 마귀 자식으로서 택한 자가 아니라면 그대로 가구로 내버려 둘  것입니다. 택한 자이면 화가 있으니까 고쳐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요 하느님 아니요 한울님 아닙니다. 한을님도 아닙니다. 하나라는  하나님이 그것이 바른 뜻입니다. 하늘님은 저 높은 것을 표시해 가지고 그렇게  말했고, 하늘은 큰 것을 가리켜서 말했고. 울은 이 우주를 표시해서 말했는데  그것도 저것도 아니라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이라고 하나님께서 영원 자존하신 한  분이신 하나님이라고 당신이 성경에 기록해 주셨습니다. 성경 기자들에게  영감으로 그렇게 표시를 해 주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것을 단단히 기억해야 됩니다. '네가 온 것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고 검을 주러 왔다 분쟁을 주러 왔다' 왜? 그러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망치기 위해 왔다 말입니까? 그 밑에 해석하기를 그래 해석했습니다.

부모와 자녀가 서로 충돌되고 부부끼리 충돌되고 친구끼리 충돌되고 이 충돌을  주기 위해서 왔다 그렇게 말씀해 놓고 '내가 오기 전에 이런 불이 붙었더면 좋을  뻔했다 이 충돌이 있었더면 좋을 뻔했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주님은  분쟁의 주님이십니까? 주님이 오시기 전에는 온 세상은 한 덩어리였습니다.

마귀로 똘똘 뭉쳐서 한 덩어리였습니다. 이제 생명의 주가 오니까 이제는 서로 한  세력으로 세상은 되었는데 여게 딴 세례이 하나 와 가지고 두 세력이 왔습니다.

첫째 아담의 세력 속에 둘째 아담의 세력이 왔습니다. 생명의 세력이 왔습니다.

이러니까, 사망에 생명이 오니까 생명과 사방이 서로 충돌되는 이 충돌하기  위해서 왔다. 이 충돌은 충돌로 멸망하는 게 아니라 이 충돌로서 사망에 속한  것이 생명으로 옮겨지도록 하기 위해서 왔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첫째 아담에 속한 가정으로 타락해 가는 그 가정을 둘째 아담의 이  복음의 사랑의 생명 운동으로서 거기서 이끌라 할 때에 마찰이 되고 충돌이 될  것입니다. 마찰되고 충돌될 때에 자기가 마찰되니까 상대방을 좋아하기 위해서  마찰 안 하고 지내면 상대방을 죽이는 것이 되겠고 상대방으로 말미암아 마찰이  오니까 마찰을 피해서 내가 편하게 지내기 위해서 하는 자이면 자신이 멸망을  받게 되는 것이고, 내가 마찰을 당해서 마찰로서 내가 죽어도 죽음으로 나가는 이  가정을 구원해야 되겠다 하고 서 죽어도 그 생명의 역사를 계속하고 자기가 어떤  고난을 당해도 생명의 역사를 계속해서 거기에서 자신이 생명에 속한 자로서  소유와 몸과 생명을 이 생명 운동으로서 다 바쳤으면 이는 영원히 패전하지 않는  완전 승리자로 하나가 되어졌기 때문에, 그는 아벨의 피와 같은 피가 되었기  때문에 이는 생명 운동이 다시 피조물들에게 피해를 받지 안 할 수 있는,  피조물들에게 피해를 받지 안 할 수 있는 이 생명 역사가 뚜렷이 승리하고 섰기  때문에 그 가정은 그 사회는 구원 얻고 그 국가는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그 분쟁으로 양보하지 안하고 당신이 그거  죽으심으로써, 이 운동하는 생명 운동으로 죽으심으로써 끝을 마쳤기 때문에 그  운동은 세상이 해하지 못할 운동으로 굳게 섰기 때문에 마귀는 거기에 항복을  하고, 세상을 이겼고 점령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십자가의 이  분쟁을 피하는 자는 그 가정이나 국가나 사회나 자기 친척이나 구원할 도리는  없는 것이고, 구원할 수 없고 열망 가운데 다 같이 멸망하고 저는 택한 자이면  구원 얻었지만 하나도 영광은 하나도 없는 그런 자로서 가야 할 것인 것입니다.

 이 삼십 팔 년 된 병자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여기는 이렇게 기록했지만  예수님이 많은 말씀으로 설명을 했을 것입니다. '네가 여기서 날마다 구걸하면서  구걸 좀 많이 주면 감사하다 하고 또 머리 숙이고 또 구걸을 좀 많이 했으면  오늘은 재수있다고 그렇게 말하지만 네가 이 와 같이 구걸하게 되는 이  비정상적인 비참의 생활하는 것이 무엇 때문인지 아느냐?' '아, 내가 병들어  그렇습니다.' '그러면 내가 구걸하는 것이 나으냐 네가 병을 고치는 것이 나으냐'  '아, 병 고칠래야 병을 고칠 수가 있습니까' 말했습니다.

 그라면서 그가 말하기를 '이 병을 내가 고치고 싶기는 고치고 싶지만 여러가지  애로가 있어서 나는 고치지 못해서 낙망을 하고 포기를 했습니다.' '무슨 어려움이  있느냐?' '내가 이 가운데 있는 사람들 중에 제일 중환자입니다. 제일  중환자입니다. 제일 중환자이니까' 중환자라는 표시가 어디 있는가? 누운 지가  오래라고 삼십 팔 년 된 병자라고 주님이 제일 중환자라고 말씀을 하셨고. 또  저보다 다른 사람들이 다 앞서 간다 했으니까 제일 중환자 아닙니까? 활동이  제일 못한 중환자 아닙니까? 제일 중환자라 이것을 말했고 '그러기 때문에 내가  안 됩니다.' '나를 아무도 업어다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나를 돕는 사람이  없습니다' 말했습니다. '내가 가기 전에 다른 사람이 먼저 가서 들어가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먼저 들어가서 방해가 돼서, 아무도 안 들어가면 내가 구불라서라도  들어갈 터인데 다른 사람이 먼저 들어가서 방해가 돼서 안 됩니다.' 세 가지를  조건으로 말했습니다. '내가 중환자이기 때문에 안 됩니다. 아무도 나를 도와 주는  자가 없어서 안 됩니다. 나를 방해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안 됩니다' 요 세  가지를 그 환자가 말했어.

 환자가 말하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 이 인간병을 고치는 이 일을 하나님이  가르치시기 위해서 영원 전 예정하신 이 순서대로 되었을 때에 그 환자가 이 세  가지 말을 하도록 해 가지고 우리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곧 삼십 팔 년 된 병자가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비참한 사람들입니다. 삼십 팔 년 된 병자가 다른  이가 아니라 장로 내다, 삼십 팔 년 된 병자가 다른 이가 아니라 목사 내다, 삼십  팔 년 된 병자가 다른 이가 아니라 집사 내다, 권사 내다, 권찰 내다, 반사 내다,  부장 내다, 전도사 내다! 삼십 팔 년 된 병자가 자신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닫지  못하면 그 사람에게는 성령의 감화가 없는 사람이요 멸망 가운데 그대로 빠져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느껴집니까? 안 느껴지면 밥을 굶으십시오. 안  느껴지거든 산으로 가십시오. 이 병 안 고치면 호의 호식 하면 뭐할 겁니까? 송장  마련하지 뭐할 것입니까? 그것 다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이게 더 중요하기 때문에  다 중단시켜 놓고, 안 되면 나중에 잡품살이 품팔이하지. 요새 뭐 잡품살이를  하더란대도 일 암만 못해도 오천 원 받습니다. 여자들도 이천 원 받고 삼천 원  받습니다. 이천 원 받으면 저 혼자는 먹고 살 수 있자 않습니까?  이러니까, 염려하지 말고, 내가 삼십 팔 년 된 병자라고 절실히 말로만 느낄  것이 아니라 절실히 느껴져서, 절실히 느껴지고, 자기는 참으로 구걸 행동만  이제까지 하고 왔다 하는 것이 느껴지고. 자기는 나을라고 하니까 세 가지  방해물이 참말로 나에게 있구나 하는 것이 느껴지고, 이것이 예수님 앞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자기에게 느껴지고 용감스럽게 나을라고 달라드는 요  사람이 되지 못하면 불쌍한 사람입니다. 천하를 다 차지해도 가련한 자입니다.

불쌍한 자입니다. 온 천하를 손으로 쥐고 흔들어도 불쌍한 사람입니다. 세계 제일  재벌가라도 불쌍한 사람입니다. 온갖 행락을 다 구비해도 가련하고 불쌍한  자입니다. 그 불쌍한 것이 오늘인지 내일인지 언제 닥칠란지 오늘이라도 하나님이  부르면 그 시간부터 불쌍한 사람이오 그때야 깨닫게 될 것인 것입니다.

 우리는 진실되이 예수님을 믿읍시다. 삼십 팔 년 된 병자가 삼십 팔 년 동안이나  제가 낫고저 해도 헛일이오. 모든 것 다 헛일이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이 와서  그 앞에 섰기 때문에 낫고자 하면 나을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이  와서 계십니다. 주님이 이 가운데 오셨기 때문에 됩니다. 이 가운데 주님이 친히  오셔서 말씀합니다.

 내가 이 말씀 증거할라고 하지 안했소. 어제도 산에 가서 아침 먹고 올라가  가지고 저물기까지 있으면서 아무리 기도해도 무슨 말씀을 해야 될꼬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주지 안했습니나. 그러다가 마지막에 여섯시가 지나가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다시 이 말씀을 하라고 합디다. 이 말씀을 하라 하면서 나에게 알려  줬습니다. 어제는 거기에서 이 말씀을 증거하라고 받았기 때문에 기도만 하고  어제는 오늘 아침 예배 인도하러 이 설교하러올 때까지는 평안하게 지냈습니다.

뭣 평안하게? '무슨 말씀을 증거하오리까?' 주님 앞에 묻는 그 고통이  없어졌습니다. 그때 정했기 때문에 그 동안 평안하게 쉬었습니다. 아침에 내가  기도하고, 기도하고 난 다음에 아침에 그만 좀 정원에 돌아다니면서 이리 저리  돌아다니면서 평안하게 지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게 하셔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분명히 여기 와서 지금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이 이 가운데  계십니다. 낫고자 하면 낫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지자의 무덤은 짓고 선지자들의 비석은  만들어 세우면서도 선지자의 제일 머리되는 선지자가 와 있지마는서도 그  선지자는 핍박하면서도 '우리가 과거에 죽임 받은 그 선지자를 배척 당한  선지자를' 무덤을 수축하고 비를 만들어 세우면서 '우리가 그 시대에 있었으면 그  선지자를 배척하지 안하고 우리는 그 선지자를 죽이지 안 했을 것이다 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안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자들 아, 선지자를 죽이고 의인을  죽인 자의 자식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들이 너희 앞에 있는 선지자 선지자의  머리되는 내가 왔건만 너희들이 나는 모르고 나는 배척하고 지나간 선지자는  존경하고 숭배하고 원통허 여기지만 현재 닥친 선지자는 모른다고 주님이 그와  같이 탄식하면서 말씀하시기를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암탉이  병아리를 나래 아래 모음 같이 몇 번이나 모을려고 했지만 너희들이 듣지  안하는도다 이제는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가 복이 있다 할 때까지 다시 나를  보지 못하리라' 말씀했습니다. '아 예수님 다시 한번 만났으면 좋겠다' 암만  하지만 만나지 못할 것이고 재림의 주 밖에는 너희들이 만나지 못한다고 말하고  예루살렘에 돌 하나도 첩놓이지 못하게 다 열망할 것을 말씀했을 때에 주후 칠십  년에 예루살렘은 그렇게 참혹하게 전멸을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오늘도 그와 같은 때입니다. 내가 예수님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저라면 자기를  예수님' 내가 예수님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힌 주님이  여기 오셨습니다. 이 가운데 계십니다. 여게 오셔서 나를 당신의 지체로 삼았는지  당신의 마이크로 삼았는지 당신의 스피커로 삼았는지 당신이 나를 통해서  증거하는 이 말씀은 주님이 친히 말씀하시는 말씀입니다. 대구 집회에도 오백  삼십여 명이 눈에 보이게. 암병. 그 병 종류를 요번에 다 들라 했는데 그렇게 그  병을 낫운 것이 누가 낫았습니까? 백 목사가 낫았습니까? 주님이 오셔서  낫았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그 말씀을 친히 하고 계신다는 것을 나타냈지만  여러분들이 믿지 안하면 멸망합니다. 믿으면 구원 얻습니다. 창조주요 대주재시요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신 십자가의 대속하신 주님이. 부활하신 주님이,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같이 하시마고 약속하신 주님이 친히 이 강단에서 이  시간에 이 말씀을 주님이 하십니다. 내가 하는 말 아니요 주님이 나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이러므로 이 주님 앞에서 인간병을 낫고자 하는 자는 다 고침을  받을 것이요 멸시하는 자는 인간병을 고침을 받지 못할 것이오.

 '낫고자 하느냐' 이런 세 가지 조건 때문에 나는 나을 수가 없습니다. 하는  그것을 예수님께서 부인했습니다. 그런 것을 다 버리라. 천하 인간이 다 너를  방해해도 상관없다. 너를 돕는 버러지 한 마리도 없어도 상관없다. 네가 인간  중에 어떤 중환자라도 상관없다. 네가 내 앞에서 낫고저만 하면 나을 수 있다  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자기가 참사람으로 새사람으로, 참사람으로  새사람으로,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의 지체로,  하나님의 몸으로,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의 성전으로. 하나님의 유일한 배우자로  살고저 하면 살수 있는 이 기회입니다. 낫고저 하면 나을 수가 있습니다. 이  말씀을 믿을 때에 치료함은 받는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음으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음으로 그 이름이 낫게 했다, 그 이름이 낫게 했다. 그 이름은 그 운동인 것을  몇 번이나 증거했습니다. 나사렛 운동, 예수의 운동, 그리스도의 운동 이 운동을  아는 자가 땅위에 무슨 운동이 눈에 보입니까? 뭐 공산주의 김일성이 내려오는  그 운동이 크게 보이는 줄 압니까? 그 운동이 나 위해 있습니다. 욕을 해도 할 수  없고 죽여도 나 위해 있다 하는 걸 증거하고 죽을 것입니다. 내 구원 위해서  있습니다. 미국도 내 구원 위해 있고 한국도 내 구원 위해 있고 세계도 내 구원  위해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구원 위해서 있습니다. 믿으십시오. 믿습니까! 아멘!  믿을 때에 그 이름의 그 운동의 능력이 완전히 성하게 하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가 무엇 때문에 있습니까? 모든 존재가 하나님의 목적 때문에  있습니다. 모든 순서가 무엇 때문에 전개되고 있습니까? 당신의 목적 때문에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 역사의 육천 년 역사가 자꾸 순서적으로 전개되는 전개가  하나님의 목적 위해 있습니다. 목적이라니? 그리스도인의 구원을 위해서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구원을 위해서 있습니다. 이 큰 운동이 광대한 운동 모든  것이 이 운동을 위해서 존재하고 모든 순서가 이 운동을 위해서 모든 순서가  전개되고 있는 이 운동, 그 운동을 간추려 말하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운동입니다.

 나사렛 운동은 하나님의 목적에서부터 도성인신 해 가지고 삼십 년 동안 인간,  인간의 그 새끼, 인간의 새끼 인간의 사람으로 나 가지고 삼십 년 동안 공생활  하기까지의 위에서부터 죽 낮아지신 그 토막을 가리켜서 나사렛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는 양성일위가 십자가에서 대형 대행 대화친의 이 대속의 공로  베푸신 것을 가리켜서 예수라고 말했고, 그리스도라고 말한 것은 부할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중생시켜서 산 소망을 가져 모든 산 소망을 이루어서  그리스도와 같이 완전한 제사장 완전한 선지자 완전한 왕, 실력을 갖추는 이 자의  실력가를 만드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의 영으로 나타나 가지고 있으니  이것을 가리켜서 그리스도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형상은 무슨  형상입니까? 예수님의 형상뿐 아니라 예수님의 그 직분을 대잇기 위해서 우리는  있는 사람들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이라 말은 예수님이 제사장 된 것처럼  예수님같은 제사장 예수님 같은 선지자 예수님 같은 왕 이렇게 되어 이  그리스도의 권위 있는 직책을 우리가 다 성장되고 연성하도록 하려는 것이  오늘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오늘 오전에 이것은 인간병을 고치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하나의 형식 계시로 표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하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에 두번째는 나는 곧 삼십 팔 년 인간병 들어 있는 이 삼십 팔 년 된 병자는  내라. 나는 삼십 팔 년 된 병든 병자라 하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서 자기가 확실히  가져야 할 것인 것입니다. 이 병자에게 대해서 여러 가지 방해물이 있지만 그런  것은 다 제외시키십시오. 그런 것은 다 상관하지 마십시오. 아무 상관없습니다.

이렇게 믿는 사람이 사람들이 지절거리는 소리가 무슨 상관이 있는 줄 압니까?  그 자체를 위해서 변명하지 그 자체를 살리기 위해서 그렇잖다고 말하는 것이지  자신을 위해서는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는 천하 인간이 다 말해도 눈꼽째기만치도  요동치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나도 안 도와도 방해해도  어떤 중환자라도 상관없습니다.

 세째로 알 것은 삼십 팔 년 병자가 이제까지와 다릅니다. 이제까지는 저와  인간들만 있었지만 저를 치료해 주실 저의 구주가 앞에 와 섰습니다. 구주가 앞에  와 섰습니다. 하나님이시요 사람이시요 십자가의 대속하시고 부활하시고 우리에게  산 소망을 주시고 영생하는 새새명을 주시고 우리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계대자 그리스도의 모형자 그리스도와 꼭 같은 자 만드는 그리스도와  같은 제사장 선지자 왕이되도록 하실라는 이 그리스도가 우리 앞에 서서  있습니다. 요 세 가지를 오늘 오전에 잡읍시다. 여기는 백 목사는 당신이  이용하는 당신의 지체요 말씀하시는 이는 당신이시요 역사하시는 능력은  신인양성일위 대형 대행 대화친으로 죽으시고 삼 일 만에 부활하시고 그리스도의  영으로 계셔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과 같은 온전한 자로 만들어 인간병을  완전히 고쳐 완전한 사람으로 새사람으로 참사람으로 고쳐 주시려는 주님이 이  가운데 와서 계시는 것을 여러분들이 믿어야 할 것입니다.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세 가지, 이 계시는, 계시의 표적은 인간병을 인간병을 고척 주시기 위해서 요  계시는 우리에게 주셨다는 이것, 이것 하나 똑똑히 알고 이것을 대구에서는 한  너댓 시간 증거했습니다. 그렇게 믿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걸  누가 모릅니까? 믿어지는 것이 문제이지 아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알면 아는  그것으로 네가 정죄 받는다. 하나님의 나라는 아는 데 있지 일다. 말에 있지 않다.

능력에 있다. 요 인간병 고치려는 요 목적으로 당신이 이것을 표적으로 주신 요  사실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나는. 둘째로는 삼십 팔 년 된 병자가 내라는 것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발견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저런 문제 그까짓 거는 말  할 것도 없고. 세째로 도성인신 사활하신 주님이 이 강단에 지금 친히 오셔서  역사하신다. 친히 오셔서 당신이 친히 말씀하시는 요 주님을 영접해야 될  것입니다. 요 주님을 영접해서 여러분들이 눈을 감고 명상하든지 해서 주님이 요  가운데 오셔가지고 친히 말씀하신 것을 여러분들에게 믿어져 야 할 것인  것입니다. 오백여명의 표적을 나타내도 믿지 않는 자는 멸망을 받아야 되지  어떻게 할 것입니까!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출애굽 했지만 믿지 아니함으로  멸망했습니다. 주님이 이렇게 나타나서 역사하시는 역사를 하지만 믿지 않습니다.

안 믿으면 멸망합니다. 표적을 보고도 안 믿는 자는 멸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표적은 볼 수 있도록 믿을 수 있도록 나타낸 것이 표적인 것입니다.

어떻게 사람이 들어서 그렇게 많은 환자를 단시일에 많은 환자를 고치겠습니까?  과학으로 고쳤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거짓말입니까? 거짓말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여기 말하기를 '아 그 병이 나았다' 이라니까 '아, 그것은  신경성으로 오기 때문에 그때 설교하니까 신경에 자극이 와 가지고 그랬겠지'  '무슨 병이 나았습니다.' '그것은 내 눈으로 봐야 알지 공연한 잘못 된 오전의  선전이지' 안 믿는 자는 멸망할 것이요. 눈으로 봐도 안 믿는데 어짤 것이오? 안  믿는 자는 멸망이지 멸망할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하나님이 와서 역사하시는 것을 보고 놀라면서 '아, 하나님이 와서  역사하셨다' 하나님이 이제는 하나님이 오셔서, 여기뿐 아닙니다. 주님의 재림 때  가까왔으니까 역사하시는, 어디든지 여기뿐 아니고 다른 교파도 그럴 것입니다.

집회를 안 가도 주님만 생각한 사람들도 다 나음을 받았고 기도한 사람들도  나음을 받았고 나음을 받는 그것은 주님이 와서 너에게 착수하시고 네 죄를  사했다는 그 증거입니다. '네 인간병이 고침을 받아 나았으니 다시 병들지 말아라'  병 안 들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오전에 세 가지를 여러분들이 단단히 기록하고. 이것이 과연 나의  인간병을 고치기 위해서 계시로 표적으로 주신 가르침의 도라 이것이  여러분들에게 확실히 믿어져야 삶이 가치 있고 필요가 있고 효력 있지 그것  모르고 짜다라 고량 진미 먹으면 뭣 할 것이오' 비단 요 이불 자리에 누워자면 뭐  할 것이오. 미남과 미인을 안고 누웠으면 뭐 할 것입니까, 썩었고 가치 없습니다!  고관 대작을 하면 뭐 할 것입니까? 이걸 모르면 뭐 할 것입니까? 내가 삼십 팔  년 된 병자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면 죽은 자요 불행한 자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이 가운데 오셔서 친히 말씀하시는 요 기회이니까 기회를 놓치지 말고 고침을  받아야 된다는 요 사실을 믿으십시오. 믿지 못하면 불쌍한 자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소망을 바꿉시다. 땅에 있는 이런 것 썩은 소망을 가지기 때문에 하나님이 같이  하지 않습니다. 그까짓 거 얻어 봐야 소용없습니다. 인간병을 고쳐서 참사람만  되면. 흠 없는 사람만 되면 모든 게 거기에 다 있습니다.

 오늘 교회는 이 모든 악한 자들의 모두 다 정치주의로서 이용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래서 기독교는 현 정부에도 많은 오해를 받고 있습니다. 정상의  기독교는 그런 게 아닙니다. 정상의 기독교는 정치와 딱 분리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 지켜 행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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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2 삼대절기/ 출애굽기 23장 14절-17절/ 851120수야 선지자 2015.11.03
3411 삼대절기/ 출애굽기 23장 14절-17절/ 851117주전 선지자 2015.11.03
3410 삼대절지-빈손으로/ 출애굽기 23장 14절-15절/ 851116토새 선지자 2015.11.03
3409 삼등급 축복/ 신명기 28장 1절-19절/ 860430수야 선지자 2015.11.03
3408 삼분설과 이분설(영에 대하여)/ 베드로전서 1장 23절-25절/ 871231목새 선지자 2015.11.03
3407 삼분설-심신의 기능구원/ 마가복음 10장 20절-31절/ 840508화후집회 선지자 2015.11.03
3406 삼삼결합/ 히브리서 12장 1절-2절/ 860415화새 선지자 2015.11.03
» 삼십팔년 된 인간병/ 요한복음 5장 5절-18절/ 850602주전 선지자 2015.11.03
3404 삼위일체/ 베드로전서 1장 3절-7절/ 860711금새 선지자 2015.11.03
3403 삼위일체 하나님/ 요한복음 1장 1절-18절/ 870216월새 선지자 2015.11.03
3402 상반절/ 베드로후서 3장 10절-12절/ 811228월새 선지자 2015.11.03
3401 상반절/ 베드로후서 3장 10절-12절/ 811230수새 선지자 2015.11.03
3400 상식믿음, 산 믿음/ 요한복음 11장 20절-27절/ 850826월새 선지자 2015.11.03
3399 상전과 종/ 베드로전서 2장 18절-21절/ 1977년 34공과, 35공과 선지자 2015.11.03
3398 상회 불복종죄. 찬송가에 대해서/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881108화새 선지자 2015.11.03
3397 새 사람으로 사는 것/ 마태복음 24장 40절-51절/ 860205수야 선지자 2015.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