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7 10:29
나의 행복과 불행은 하나님의 축복과 저주에서
1987. 1. 9. 밤(금)
본문:갈라디아서 2장 16절∼21절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그러나 어떤 피조물에게는 창조와 양육의 하나님이 되시고 금생만 은혜의 하나님이 되시고 영원한 내세에는 심판의 하나님 복수의 하나님이 되시는 그런 피조믈들도 많이 있습니다.
또 같은 피조물이나마 어떤 피조물에게는 창조 양육의 하나님만이 아니고 특수한 은혜로 대속의 하나님이 되시는 그런 피조물들도 있습니다. 또 금생만이 아니고 영원 무궁토록 긍휼과 은혜의 하나님이 되셔서 역사하시는 그런 피조물들도 있습니다.
이래서 피조물을 나누어서 일반적 피조물과 특수 피조물로 이렇게 나눌 수 있습니다.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입고 또 택함 안에서 예정되고 또 예정 안에서 창조되고 이래 가지고 하나님의 특수 은혜인 이 구속을 받은 성도들도 있고 일반적인 피조물로서 일반적인 하나님으로 상대하는 그런 존재들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에 모든 피조물을 우주와 우주 안에 있는 것을 지으시고 이것을 총 대리하는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사람을 지으셔서 하나님의 대리 통치와 모든 관할을 하도록 이렇게 하나님이 인류 시조 때에 허락하셨습니다.
이래서, 다른 피조물은 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기로 작정하신 일반적 창조에서 창조하셨으나 사람은 특별한 회의를 삼위일체의 하나님께서 여시고 “우리가 사람을 어떻게 지을까?” 하시는 그 특수 회의에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짓는 것과 모든 피조물을 정복하는 것과 통치하는 이 특수 권위를 주어서 창조된 것이 사람입니다.
이랬는데, 사람이 하나님과 약속한 그 약속을 어기지 안할 때에는 항상 의인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 약속을 어길 때에는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 인류의 시조 아담이 이 일반인 자연인의 모든 대표와 모든 피조물들의 대표로 하나님과의 계약한 것이 “모든 것은 임의로 하되 선악을 결정 지우는 그 선악과는 먹지 말아라” 하는 것이 하나님의 금령이었습니다.
이랬는데, 인류 시조가 이 법령을 지켜 있을 때에는 우주 안에 있는 모든 피조물은 다 주권적으로 통치했습니다. 그 하나를 예를 든다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만물을 아담 앞에 서게 하고 그 모든 것에 대한 이름을 짓는데 하나님이 당신이 가지신 그 소원대로의 모든 이름들을 지었습니다. 이래서 하나님께서 보시고 대단히 좋아하시고 또 선하다 했습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그 모든 것들이 다 바로 됐습니다.
이라다가 하나님과 계약한 그 계약, 선악과는 먹지 말라는 그 계약을 어기고 난 다음부터 사람은 본 지위에서 정죄받아 타락했습니다. 그러면 정죄받을 때 그때에 아담의 일반적 생육법으로 출생하게 되는 모든 자연인은 다 그 정죄에 동참하게 된 것입니다. 그 계약은 우리를 대표해서 계약했기 때문에 그 위약에 동참하고 그 정죄에 동참하고 그 죄의 댓가인 멸망에 동참하게 된 것입니다.
이래서, 사람에게는 전혀 의가 없어서 멸망하게 됐습니다. 다만 대속주로 오신 주님은 아담이 범죄한 그 대표에 포함된 일반인이 아니고 특수인이기 때문에 그 계약에 상관없어 의인이었습니다. 그렇게 그 범죄로 인해서 일반인은 다 멸망 가운데에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랬는데, 하나님이 인간을 볼 때에 사람으로서는 거게서 헤어날 수가 없고 또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그 완전법을 이행할 자가 없기 때문에 그 일반인은 멸망을 받았고 또 멸망에서 벗어날 희망은 없고 또 멸망을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는 그 존재인 것을 하나님이 아시고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대속주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이것은 유래를 간단하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은 완전자시며 또 지극히 공평된 자시고 또 거룩한 자시고 깨끗한 자이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그 본성과 본질에는 당신의 본질과 본성에 위배되는 것은 그것은 멸하지 안할 수 없는 하나님이시요 당신과 동성 동질의 것은 그를 협조하고 또 보호하고 복되게 하실 수 있는 그것이 또 하나님의 필연성이십니다.
그러기에 쉽게 말하면 하나님은 죄를 용납지도 묵인하지도 못하시고 죄는 멸하시고 또 의는 용납하고 환영하고 또 하나 되어서 온갖 은혜와 축복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고로, 사람들은 알든지 모르든지 다 하나님의 주권 통치와 심판 아래에 있는 것이 사람들이요 모든 피조물들입니다. 하나님의 주권 통치라 말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또 어떤 것에게 추호의 간섭도 받지 안하고 당신 본질과 본성대로의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시행하시고 또 심판하시고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고로, 사람들은 이걸 이 비밀을 모르고 자기에게 모든 불행스러운 것은 다 벗어나고 영육간에 행복된 것은 취하려 하는 것이 그것이 사람들의 생의 본능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당하는 일은 원하는 대로는 당하지 안하고 원치 안하는 일들이 자꾸 저희들에게 부딪혀 오고 있는 것이 이것이 현실입니다.
그 이유는 뭣 때문에 그런가? 하나님이 멸하실 수밖에 없는 모두 다 삐뚤어진 거, 굽은 거, 더러운 거, 불완전한 거, 거짓된 거, 전부 하나님의 본질과 본성에 반대되는 것들만 사람들이 가지고 있고 행하고 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에 공변된 심판과 보응을 하시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권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분에게 배치되니 그분으로 말미암아 오는 모든 원치 않는 멸망들이 오고 있는 것입니다.
또 원하는 것을 그분과 이질된 데에서 그분이 주지 안하니까 모든 원하는 행복스러운 것은 오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든 것의 근본이신 자존자, 창조주, 주권자, 대주재자, 주권 통치자 이분의 그 섭리와 보응은 알지는 못하고 원치 않는 것들이 피조물을 통해서 오고 원하는 것들이 피조물을 통해서 오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고 이러니까 사람들은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원수가 되고 또 복수를 하고 또 사람으로 인하여 무엇을 좋은 것을 이루어 볼라고 인인 관계에서 노력해서 전부 사람들은 하나님을 떼 버리고 인본의 사람이 되어서 살고 있는 것이 이 세상인 것입니다.
간단 간단 결론만 들어서 말하겠습니다.
이런고로, 사람들이 자기가 알든지 모르든지 자기에게 모든 불행도 다 이 한 분이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오는 것이고 모든 행복도 이 하나님 한 분으로 말미암아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이런 피조물 저런 피조물을 통하셔 가지고 역사하시니까 사람들 보기에는 피조물만 보이고 그 주권자이신 하나님은 보이지 안하기 때문에 인인 관계만 중하게 여기고 모두 다 인본으로 점점 기울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를 이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시편 1편에 보면은 “하나님께서 의인의 길은 하나님이 인정하신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의인의 길은 하나님이 인정하신다” 의인이 걸어가는 걸음, 의인이 생활하는 생활, 의인 생활은 하나님이 다 ‘됐다, 이는 참되다, 이는 온전하다.’ 이렇게 인정을 하시고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 신약에 와서 베드로후서 3장에 보면 “예수님이 구름타고 오시면 모든 우주 안에 있는 피조물들은 다 불에 타서 그 체질이 녹아지고 모든 비밀이 드러난다” 했습니다. 이렇게 모든 만물들이 다 불에 타서 다 녹아지고 절단날 때에 하나님께서 “의로운 사람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유업으로 받는다” 그렇게 거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 천지 창조 근 이천 년이 돼 갈 때에 한번 땅위에 큰 변동이 있었는데 그 변동은 사람과 곤충 짐승 코에 호흡이 있는 모든 것들은 다 물 속에 매몰되어서 다 죽었습니다. 이것을 노아 홍수 심판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다 죽고 그때에 사람으로서는 노아의 여덟 식구만 남았고 뭐 모든 과학자, 문학자, 예술가, 정치가, 모든 재벌가, 온갖 미남 미인, 행락가 말할 것 없이 모조리 다 홍수 심판에서 멸망을 받고 다만 노아의 방주 안에 있는 여덟 사람과 약수의 생명 호흡 있는 것들이 거게서 죽음을 면했습니다. 거게 대해서 하나님이 표시하시기를 “당시에 노아는 의인으로서 온 세계가 멸망받을 때에 그 의인은 구원을 받았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 일이 많습니다. 소돔 고모라 성이 유황불비로 타서 소돔 고모라 성이 지금은 바다보다 깊은 사해가 되어 있습니다. 그 사해는 바다보다도 더 깊은 바다가 돼 가지고 있는데 그 바다에는 벌레 한 마리도 살지를 못하는 사해인데 그 사해가 될 때에 하나님이 그 성에 죄악이 관영한고로 그 성을 이렇게 다시 나타나지 못하게 멸망시킨다고 예언하신 대로 멸망을 당했고 그런 멸망 가운데서도 롯이라는 그 의인은 영광은 가지지를 못했지마는 의인으로서 하나님이 그 멸망 가운데서 구출을 하셨습니다.
오늘 저녁에 지금 말할라고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다 멸망하는 것은 죄값으로 멸망받는다. 또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그 복을 받는 것은 전부 하나님이 의라고 인정하는 거게서 복을 받는다.
그러기에 안 믿는 사람들도 안 믿는 그대로에 옳은 것이 있는 그 보응을 해서 하나님이 그것을 땅위에 멸하지 안하시고 조금 유지가 되도록 하시고 또 죄악이 관영한 것은 하나님이 급하게 진멸하시고 그렇게 하십니다. 그러나 안 믿는 사람들은 그것은 멸망 안에서 잠깐 이리저리 조금 그 융통성 있는 것뿐이지 멸망을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이 택함을 받은 사람들은 멸망을 완전히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금생에도 벗어날 수가 있고 내세도, 금생과 내세 영과 육이 멸망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하나님의 긍휼과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이 그것이 믿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제 안 믿는 사람들은 그만치 그것으로 결론을 지워 두고 우리 택함을 받고 중생받은 사람에게 대해서, 중생받은 사람들이라면 다 영과 육으로 된 사람인데 영은 구원을 받은 사람들을 가리켜서 중생한 사람이라 하고 마음과 몸으로 되어 있는 이 육이라는 것은 아직까지 구원 받지 못하고 있는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서 세상에 있는 중생된 기독자들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오늘 이 자리에 와서 있는 우리들도 중생됐으니 영은 하늘나라를 다 얻어 있고 영생을 얻어 있기 때문에 중생된 사람은 지옥을 못 갑니다. 그 사람은 중생된 사람이 세상에서 잘못 살았으면 수치를 당해도 하늘나라에서 수치당하고 잘 살았으면 영광을 누려도 하늘에서 누리지 중생된 사람은 지옥은 못 가고 하늘나라를 안 갈래야 안 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택함을 입고 중생된 사람들의 문제는 어데 다 봉착돼 있는고 하니 우리들이 이 심신의 구원, 이 심신의 구원이 어찌 되나 하는 이것이 우리들에게 중대한 문제가 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 믿어 애를 쓰는 것은 지옥 안 가고 천국 갈라고 애를 쓰는 것이 아니고 다만 자기의 이 마음과 몸의 기능이 이것이 세상에서 멸망을 받나 영원한 하늘나라에 부활을 해 가지고 가서 자기의 모든 의무와 책임을 다 감당하고 봉사와 의의 일을 해서 영광과 존귀를 영원히 누리느냐 하는 그것이 우리에게 문제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제 영의 문제는 생각할 필요도 없고 또 거게 대해서는 노력할 필요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전심 전력은 우리 이 심신 구원에 대해서 우리가 노력하고 또 이 심신의 구원을 이루는 데에 필요 있게 쓰여지는 이 세상에 있는 온갖 자연은총, 자연은총이라면 우리 몸에 건강이라든지 또 이뭐 어떤 처세에 평안하게 보호되는 안보라든지 또 거기에 물질의 모든 풍부라든지 그런 것이 다 이 자연은총에 속한 것인데 그런 것들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세상에 있어서 마음과 몸에 기능이 구원 얻는 이것이 제일 중요하고 다음으로는 이 기능이 구원 얻는 데에 필요 있게 쓰여지는 도움이 되는 그런 모든 요소들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혹 사람들이 못 알아들으면 간단하게 하나 말하겠습니다. 그 사람의 키라든지, 체중이라든지, 용모라든지, 또 연령이라든지 그런 것이 꼭 같은 그런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그 마음에 온갖 이 세상 기능을 다 얻어서 아주 기능이 풍부한, 마음의 기능이 풍부하고 어떤 사람은 그 마음의 기능이 하나도 없어서 한글 기역자 하나도 모르고 또 조그만한 지식도 가지지를 못하고 기술도 가지지 못하고 해서 그 모든 심신의 기능이 없는 사람이라면 사람은 사람이지마는 그 사람이 제일 천한 사람일 거요.
몸에 힘은, 몸뚱이는 있지마는 힘도 없고, 힘 그것도 몸의 기능인데. 힘도 없고 또 힘이 있어도 가치 있는 일을 하지 못하면 그런 것 다 기능이 없는 것입니다.
모두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가치로 평가하는 것은, 모두 다 용모를 말하지마는 용모는 그거는 실상은 아닙니다. 만일 이 세상에 이 코가 말이요, 코가 똑 배암 모양으로, 코가 배암 모양으로 코가 이래 쑥 코끼리 코 모양으로 쑥 이래 나와 가지고 이렇게 된 사람은 전부 그 사람이 지식으로 말하면 다 일류 학자고 박사고, 정치로 말하면 정치력이 굉장하고, 과학력이 굉장하고, 경제력이 굉장하고, 활동력이 굉장하고 이렇게 세계에 제일 잘난 사람들은 전부 다 코가 코끼리 코 모양으로 기단하이 이렇게 생기고, 또 세상에서 제일 못난 사람들은 요새 미남 미인이라고 하는 사람 모양으로 코가 뾰쪽하게 아주 콧대가 쪽 서고 보기 아주 미인 미남으로 생긴 사람들은 그이의 실력이 아무것도 없고, 코가 꼭 코끼리 코 모양으로 그래 생긴 사람은 아주 일등 그 심신의 기능을 가졌고 했다고 하면 아마 사위를 가리는 사람은 전부이 ‘그 사람 코가 어찌 생겼더노?’ `코가 아주 쪽 곧고 쪼그만하게 그래 생겼더라’ ‘아이 못 쓰겠구만.' `코가 어찌 생겼더노?' `꼭 코끼리 코 같더라.' 하면 ‘아이구 됐다’ 그럴 것이고 아마 여자도 그라면 그럴 것이요.
이러니까, 요새 모두 키 큰 사람이 좋다고 막 자랑하고 야단인데 그거는 미국 나라가 키가 크기 때문에 그 나라가 우리보다 부강하니까 그래 지금 모두 좋아서 키 큰 사람이 좋다 하지 과거에 이 중국이 대국돼 있을 때에는 그때는 사람들이 키 크면 어리석고 뚱뚱하이 넓어야, 뚱뚱해야 된다 했습니다. 이러니까 그때는 ‘그 사람 배가 나왔더나?’ `배가 나왔다' `아이구, 그라면 큰 사람 되겠고 부자겠다’ 배가 쏙 들어가 가지고 있으면은 ‘아무짝도 못쓴다, 그라면.’ 이러니까, 인간들은 이 세상에서 가치로 삼는 것이 많이 가진 용모가 다 용모를 좋게 보고 가치로 삼는 그것이 없으면 다 용모를 더럽게 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미인도 미남도 없어요, 늘 그렇지. 그거 똑 가치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에서도 이렇게 심신의 기능의 가치를 다 두고서 그 사람의 용모를 다 판정하는 것이 용모에 따라가지 안하고 심신의 기능 따라서 그 사람의 미남이라 미인이라, 못났다 잘났다 하는 것을 거게다가 기준해 가지고서 표현하는 것이라 그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이 말은 하나 비유입니다. 하늘나라에 가기는 갔는데 하늘나라에 가 가지고 심신의 기능이 천층 만층인데 심신의 기능이 아주 위대한 사람들은 그 나라에서 영광이 있고 존귀가 있고, 또 아주 심신의 기능이 하나도 없고 또 옷도 더러운 옷을 입고 있으면 천하게 봅니다.
그러면, 그 나라에는 옷을 뭘 입고 있느냐 하면은 이 세상에서 영감과 진리대로의 행위의 옷은 제일 아름다운 옷이고 영감과 진리대로의 행위가 없는 그 행위의 사람은 아주 떨어지고 제일 못쓸 두더기 같은 그런 것을 입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늘나라는 이 세상에 그 사람이 영감 진리의 영생 생활대로 얼마나 했느냐 하는 그것을 하늘나라는 의복으로 입고 다닙니다. 의복같이 입고 다닌다 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주력하는 것은 어데다가 주력을 하고 있는가? 어떤 사람은 오늘 떠날지 모르는 나그네 세상을 자기 소망으로 삼고 여게다가 가치를 두고 여게다가 전심 전력을 기울이지마는 또 어떤 사람은 ‘오늘 떠날지 내일 떠날지 모르니까 나그네 세상이니까 이 세상에 있는 거게는 가치 둘 것이 없다.
조만간에 퍼뜩거리면 영원한 세계로 옮게 이사가야 될 터이니까 그 나라에 준비를 해야 된다’ 해 가지고서 그 나라 준비하는 사람, 여기서 준비하는 사람, 이사갈 사람이 이사갈 걸랑 모르고, 이사 언제 갈지 명령만 내리면 이사가야 될 터인데 이사갈 사람이 지금 살고 있는 이 준비하는 바보도 있고 또 언제 이사갈지 모르니까 이사가서 영원한 세계에서 살 그 나라의 준비를 하는 사람도 있고 사람은 많은 층어리가 있습니다.
이래서, 이 세상을 보고 준비하는 사람은 영원을 준비하는 사람을 등신이라 이랍니다. ‘하, 저것이 뒤에 잘 살자고 우선 이 세상에 이런 꼴 당하느냐? 번연히 거짓말 한 마디 하면 돈이 올 것이고 또 불량 한번 부리면 거석할 거고 도적질 한번만 하면 될 터인데 사람이 뭐 정직이니 의니 깨끗이니 그래 가지고 쫄쫄 곯고 저거 등신이다. 미련타.’ 이랍니다. ‘십자가의 도는 미련타.' 또, 어떤 사람은 이 세상에 두고 갈 것, 영원히 가지고 가지 못할 것, 오늘 떠나면 다 내것 되지 안하는 그런 것을 인해서 죄를 짓고 종노릇을 하고 모든 영원을, 영원 내세를 팔아먹고 영광과 존귀와 영생을 팔아먹는 그런 사람을 볼 때에 참 측은하게 불쌍하고 가련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세상은 모두 다 저 잘난 재미로 사는데 또 세상 모두 마주 보고 등신이라 하고 저만 옳다 합니다. 그러나 참은 있기는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거 뭐 시간이 다 늦어서. 그러면 거튼거튼하게 해서.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에 있으면서 어데다가 주력을 해야 되느냐? 우리가 주력할 것은 이 심신의 기능, 건설구원, 성화구원, 행위구원, 부활은 했지마는 영광은 천층 만층 억억억억만층도 더 되기 때문에 그 나라에 그 준비를 위해서 그 나라의 실력, 그 나라의 환영, 그 나라의 영광과 존귀를 위해서 준비하는 것이 오늘 우리들의 할 일인 것입니다.
이래서, 하늘나라는 어떤 것이 하늘나라의 실력인고 하니 하나님으로 인하여 사는 그것이 그 나라의 실력이요, 다시 말하면 영감과 진리대로 사는 것이 그 나라의 실력이요 모든 피조물에게 봉사하는 것이 그 나라의 실력입니다.
하늘나라의 영광은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자기 아닌 모든 다른 것들에게 봉사하고 때를 따라 양식 나눠 주는, 유익을 끼쳐 준 그것이 하늘나라에 가면 영광이고 아름다운 의복이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세상에 가치로 삼아서 준비할 것은 영은 말할 것 없고 우리의 심신의 이 구원 얻는 이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심신의 구원 얻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또 둘째로는 이 심신 구원에 필요한 모든 자연은총이 둘째로 중요합니다.
자연은총이라면은 자기 육체의 생명, 몸, 건강, 모두 자기에게 필요한 처소, 지위, 지식, 지혜, 권세 이런 것들이 다 자연은총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필요 있게 가지고 사는 이런 모든 것이 자연은총이요, 또 믿는 사람들이 가지고 사는 이것을 가리켜서 특수은총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이 특수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되겠고 자연의 이 축복을 받아야 되겠고 하나님의 두 축복을 받아야만 하는데 이 사람들은 이 모든 흥망성쇠가 다 이것이 하나님에게 주권되어 있다는 것을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이 축복으로 잘될라고 하지를 안하고 자기 힘으로 잘될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하나님의 은혜로 잘될라 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게 사람들은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있는데, 사람들은 몰라서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나를 행복되게 하는 것이다 저렇게 하는 것이 행복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모두 생각들을 가지고 있지마는 실은 문을 닫아 놓고 나면 그밖에 뭐인지 모르지마는 확 열어 놓으면 환하게 보이는 것처럼 사람들은 이 모든 죄악에 가리워져 가지고 이 사실을 잘 모르지마는 죄악의 껍데기를 확 벗기고 보면은 그 속의 내용이 다 환하게 보고 알게 됩니다.
내용은 어찌 되는가? ‘하나님의 축복으로 영과 육이 다 행복스러워지고 또 하나님의 징계와 저주로 영과 육이 다 불행스러워진다.’ 이것이 이 세상을 바로 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 어떤 사람이든지, 믿는 사람이든지 안 믿는 사람들이든지 안 믿는 사람도 안 믿는 사람 그대로의 그만한 범위를 가졌고 믿는 사람도 믿는 사람 그대로의 범위를 가졌는데 사람이 자기 힘으로 뭣을 해 가지고 해 보겠다 하는 그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인간은 절대 자기를 행복되게 하지를 못합니다. 자기에게 오는 징계와 저주를 벗어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축복으로만 잘되고 하나님이 저주하시면 다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결말적으로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영육이 다 잘되고 또 하나님의 저주로 영육이 망한다 요것을 세상은 모르지마는 우리 믿는 사람들은 요것을 확고히 거머쥐고 요동치 안해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잘되고 저주하면 망하니까 이 심신의 건설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라고 애를 쓰는 사람도 있고, 안 믿는 사람 그만 둡시다. 내비둬 버리고. 믿는 사람은 지금 말하고 안 믿는 사람은 지금 말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믿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가지고 이 구원 건설구원을 잘 이루어 갈라 하는 사람도 있고 자기 힘의 노력으로서 건설구원을 잘 이루어 갈라고 하는 이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 이 건설구원 이 영원한 구원 이것을 생각지 안하고 이 세상 것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그 믿음을 떨어진 사람이고 하기 때문에 그 사람 불쌍한 사람이니까 그 사람은 제쳐 놓고 믿는 사람 가운데에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되겠다, 하나님 앞에 노를 끼쳐서 저주받으면 망한다, 하나님의 축복 받아야 되겠다.’ 이라는데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라고 애쓰는 사람들 하나님의 저주를 피할라고 애쓰는 사람들 이 애쓰는 사람들이 두 종류 있습니다.
애쓰는 두 종류 그것을 가리켜서 오늘 본 말씀 가운데에 있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의 행위로서 난 것이 아니요” 그 말은,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저주를 받는 것은 어데 매였는가? 축복 받는 것는 하나님이 보실 때에 의로울 때에 축복해 주시고 또 저주는 어떤 데 하는가? 하나님이 보실 때에 당신과 동질이 아니고 당신과 이질이 되면은 저주합니다.
처음 시간에 그것을 많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완전자시기 때문에 당신의 완전과 같은 자는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고 당신의 완전과 이질이 돼서 당신의 완전과 정반대되는 것은 전부 멸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과 동질은 얼마든지 숭상해서 풍성하게 얼마든지 풍성하게 하시고 당신과 이질되는 것은 다 멸망을 시키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당신과 동질을 영원히 축복하시고 숭상하는 곳이 하늘나라요 당신과 이질된 것을 영원히 멸망시키는 것이 유황불 구렁텅이의 지옥인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완전자시기 때문에 완전에 배치되는 것은 무조건 망해 버립니다. 완전과 일치되는 것은 당신의 있는 힘을 다 기울여서 그를 숭상하고 이렇게 기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당신과 동질되는 것을 가리켜서 의로운 것이라 이렇게 말했고, 옳을 의 자. 의로운 것이라 말했고, 당신과 이질되는 것을 가리켜서 불의라 죄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사람이 뭐, 우리 신앙 생활하는 데는 첩첩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많은 가운데에서 나는 뭘 위해서 살 거냐? 내가 뭘 위해서 살 거냐? 나는 나와 내 가정, 좀 넓게 박애로 산다면은 내 민족 내 국가 내 사회, 이제 나는 무엇을 준비해야 나와 내게 속한 모든 것이 다 행복될 수가 있겠느냐, 또 내가 뭣을 정리해야 나에게 있는 모든 원치 안하는 것들을 다 이것을 다 치료해서 이것을 다 제거할 수가 있겠느냐 하는 거게 대해서 바로 생각을 가지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그저 하나님과 동질이면 그만 말할 수 없는 존영한 것이 되고 하나님과 이질되면은 멸망받습니다.
그러면, 이러니까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돈 벌기를 힘쓰는 사람들, 일을 잘해 가지고 뭐 성공할라 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가리켜서 여게 말하기를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를 얻은 자가 없다” 자기가 일을 잘 하고, 사업을 잘 하고, 계획을 잘 하고, 행위를 잘 하고 뭐 그런 걸 잘 해 가지고 자기 성공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영원한 성공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다만 사람들이 성공하는 것은 믿음으로만 할 수 있다. 그렇게 여게 말한 것이,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것은 하나님과 동질인 의이면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하나님과 이질이 되면 하나님이 저주해서 다 멸망을 시킨다. 인제 이것을 이제, 이제까지 해 나온 것은 그거 해 나왔습니다. 인제 그걸 하나 꼭 잡읍시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의인을 축복하시고 죄인은 멸망시킨다. 의인은 축복을 하시고 죄인은 멸망을 시킨다. 그러면 의인은 축복하시고 죄인은 멸망을 시키니까 이런데 사람들 가운데서는 자기가 멸망하지 안하는 일, 멸망 안 되는 일을 할라고, 멸망을 방어할라고, 자기가 복있는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일을 할라고 이렇게 자기가 직접으로 멸망을 다 벗어날라고 행복을 자기가 취할라고 제힘으로 할라고 하는 그 사람을 가리켜서 여게 율법의 행위로 가지고서, 네가 무슨 법칙을 지켜서 이래 행위 가지고 의롭게 될라 하는 그런 사람들이 다 여게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안하고 ‘나는 내 힘으로써 이렇게 하지 안하고 하나님 앞에 옳다 인정받는 거게 내가 주력을 하겠다.’ 이래서, 어떤 사람은 하나님과 동질되는 데에다가 전심 전력 기울이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화를 피하고 행복을 마련하는 데다가 전심 전력 기울이는 사람도 있고 크게 말하면 사람이 두 종류라 그 말이오.
어떤 사람은 그러니까 ‘야, 돈벌이 하러 가자.’ `야, 돈벌이보다도 하나님하고 나하고 동질이 돼서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는 것이 문제지 뭐 돈 버는 게 문제가?’ 또 ‘야, 이라면 너 지금 오늘 이렇게 하면 돈 여러 수천만 원 손해본다.’ ‘수천만 원 손해보는 게 문제가? 의를 손해보는 것이 문제지. 의만 만들면 된다.’ 의는 하나님과 동질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의에다가 전심 전력을 기울이는 사람도 있고, 의는 내비두고 자기가 자기 힘으로써 모든 화를 면하고 복을 만들라고 하는 그 사람도 있고 이 두 종류가 있는데 자기 힘으로 화를 면하고 복을 마련할라 하는 사람은 천이고 만이고 이 사람은 다 실패자입니다. 이거는 실패 안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 앞에 내가 의를 마련해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내가 이제 영과 육이 다 행복되어지고 성공하겠다. 그러면 하나님 축복으로 영육과 금생과 내세가 행복될라는 사람이 있고, 자기가 이 세상에서 실질적으로 이런 일 저런 일 자기 힘으로 어떻게 해 가지고 행복될라 하는 사람 있고, 그러면 그 사람은 그 모든 화를 면하고 복을 마련하는 거게다가 가치를 두고서 그것을 마련할라고 전심 전력을 기울이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이냐 저주에 흥망 성쇠가 달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저주와 축복에 그 모든 근거를 두고서 거게다가 주력하는 사람도 있고 사람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늘 저녁에 말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뭐 시간 다 됐으니까.
여러분들이 새벽으로 좀 나와야 이거 좀 가르치는데 가르칠 거는 이렇게 되는데 이걸 알아듣지는 못하고 둔하니까 이걸 뜨문뜨문 이라니까 뭐 십 리 가다가 뭐 한 발자국 뭐 오 리 가다가 한 발자국 하니까 이거 걸어가지도 못하게 되지 또 이해도 못 하게 되지 이라니까 이거 낭파입니다.
모르면 우리가 망합니다. 모르면 제가 멸망 안 할 수 없습니다. 모르면 망하지요.
다 자기딴에는 성공인 줄 알지마는 성공같으나 다 실패로 돌아가는 것이고 사람 볼 때는 실패 같으나 성공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게 다 성경 가운데에 믿음으로 성공한 사람들 아닙니까? 이런고로, 하나님의 저주냐 축복이냐 여기에 인간 영육의 흥망 성쇠가 다 달렸기 때문에 우리의 전심 전력으로 주력하는 것은 하나님이 저주를 벗어나는 것과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다시 말하면 하나님하고 나하고 하나되는 여게다가 전심 전력을 기울이는 사람은 되어지고 이것을 등한히 하고 무슨 이 세상에 이런 거 저런 거 되는 것을 자기가 주로 삼아 가지고 하는 사람들은 다 실패합니다.
왜? 하나님과 자기와의 하나가 되면 망한 것 같으나 그것이 다 성공이 됩니다. 또 하나님과 자기와의 삐뚤어진 것은 아무리 성공 같으나 그것이 망합니다.
아합 왕이 하나님과 삐뚤어졌는데 그 결과가 뭣 됐습니까? 요셉이라든지, 다니엘이라든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라든지, 아브라함이라든지, 이삭이라든지 뭐 그런 사람들 전부 다 보면 하나님하고 하나될라고 애를 써서 하나님하고 동질될라고 애를 써서 나갔을 때에 그때에 이로 인해서 세상 것을 크게 손해봤습니다. 크게 손해봐도 하나님 앞에 의를 팔지 안하고 의인될라고 애를 쓴 사람들은 다 성공을 했고 그 세상 그런 이해를 크게 여겨서 하나님 앞에 의인이 되느냐 죄인이 되느냐 하는 이 문제를 예사로 여긴 사람들은 다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 세상에 생사 화복, 흥망 성쇠는 하나님 한 분에게 주권되어 있다. 하나님 한 분에게 주권되어 있다. 아무도 거게 대해서는 간섭하지 못한다. 하나님 한 분에게 주권되어 있다.
그러면 하나님이 흥하게 하고 쇠하게 하고, 또 성공하고 실패하게 하고, 또 죽고 살게 하는 그것은 하나님이 그러면 어떻게 하면 축복해 주시며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저주하시느냐? 하나님이 의인이면 축복하시고 죄인이면 저주하신다.
그러니까 자기가 땅위에서 제일 주력할 게 뭐이냐 하면은 하나님 앞에 의인되는 것이 제일 중대한 문제요, 또 하나님 앞에서 죄인되지 않는 것이 제일 중대한 문제입니다.
그러면, 죄인이 됐으면 천하 걸 다 차지해도 그것이 들어서 자기를 망쳐 버리고 말고 결국은 망치고 또 의인됐으면 의인되기 위해서 어떤 손해를 봤다 할지라도 그 손해는 여러 배 백 배를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요것을 꼭 믿어야 됩니다.
인간은 흥망 성쇠와 생사 화복을, 금생과 내세의 것을 절대로 인간은 털끝만치도 주권하지 못한다. 제가, 노력에 달리지 안한다. 노력에 있지 않다. 과거에 한문에는 ‘소복은 재근이요 대복은 재천이라’ 그렇게 말해서 조그만한 복은 보면 사람들이 부지런히 하면 된다 하는 그것도 부지런히 하면 되는 그것이 뭐이냐 하면은 그대로의 그 자연은총에 속한 것이지마는 의가 됐기 때문에 그만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그리 되는 것입니다.
또, 사람들이 자기가 아무리 잘해도, 그러니까 부자가 망하고 거지가 잘되는 것은 그게 그 배후에 주권으로 저주와 축복을 주권하고 계시는 그분으로 인해서 그런 것이 다 되어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은, 안 믿는 사람은 세상밖에 모르지만 우리는 금생과 내세를 보고 있기 때문에 금생과 내세, 영과 육, 이 모든 온갖 행복과 온갖 저주가 있으니, 행복과 저주가 있으니 하나님이 복 주시면 모든 게 잘 되고 하나님이 저주하시면 모든 것이 안 된다. 하나님에게 주권되어 있다. 그외에 딴것은 아무것도 털끝만치도 권리가 없다. 사람 보기에만 권리 있는 것 같지 실은 조그만한 권리도 없다. 이 모든 것의 주권은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다. 요것을 믿는 것이 믿음 중에 좋은 믿음 중에 하나입니다. 요걸 믿고, 또, 그러면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을라면 어떻게 하면 축복 받을 수 있느냐? 하나님 앞에 의인이 돼야 된다. 의인이 돼야 된다. 의인이 되면은 축복받고 죄인되면은 저주받는다.
그러면 의인이 되면은 어떻게 하면 의인이 되느냐? ‘네가 힘써 양심 생활을 하고 말씀대로 살고 힘써 그렇게 계명을 지키고 성경 말씀대로 살고 애를 쓰고 그렇게 하면 네가 의인 된다.’ 하는 그런 주장들이 있고, 또 ‘아무리 애를 써서 육십육 권을 네가 지킬라고 네가 암만 애를 써도 너는 의인될라고 하는 것만치 너는 죄인이 되고 말지 절대 의인이 안 된다. 의인은 믿음으로만 된다. 행위로는 안 된다.’ 이게 문제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니라” 그러면 이상합니다. 이렇게 사람이 자기 그 행위를 하나님 말씀대로 할라고 애를 써서 행위를 옳게 바르게 할라고 애를 쓰는 그 사람은 결과로는 죄인 중에 죄인이 돼 버리고 말고, 하나님 앞에 저주만 받고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위주로 해 가지고 믿음에다가 주력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흠없는 의인이 됩니다.
요것은 지금 뭐 시간이 다 갔기 때문에, 너무 범위를 넓은 범위를 가지고 말하니까 좀 알아듣기도 그렇고 조직이 잘 안 됩니다. 그러니까 간추려서 오늘 밤에 요것만 기억하십시오.
사람은 자기를, 흥망 성쇠, 생사 화복을 자기는 털끝만치도 주관하지 못한다.
이거는 순전히 하나님에게 주권되어 있다. 요거 하나 알면 됐어요.
그라고 난 다음에 또 둘째로 알 것은 그러면 하나님 앞에 축복받으면 금생 내세 영육이 다 행복스러워지고 저주받으면 망한다 요거 둘째로 알고, 셋째로는, 그러면 하나님 앞에 축복 받을라고 하면은 어떻게 하며 저주받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저주받느냐? 하나님 앞에 의인되면 축복받고 죄인되면 저주받는다. 그것을 셋째로 아십시오.
그러면 하나님 앞에 의인되면 축복받으면 의인이 되면은 얼마나 의인이 돼야 되느냐? 얼마나 의인이 돼야 되느냐? 완전한 의인이 돼야 된다. 하나님의 전지로 가지고 정죄를 할라고 살펴봐도 정죄할 것이 하나도 없는, 하나님의 공심판으로 봐도 정죄할 것이 없는 완전한 의인이 돼야 된다.
그 사람은 하나님하고 사이가 빈틈없이 하나가 돼야 되지 쪼그매만 하나님과 벌어져도 안 된다. 죄인이다. 하나님과 완전 친합이 돼야 된다. 하나님이, 전지의 하나님이 입법해 놓으신 그 입법에 하나도 정죄에 걸릴 것이 없는 완전 율법 이행자로서 하나님 공심판에서 의인이라 인정을 받는 자라야 된다. 그 사람은 죄를 완전히 이겨서 죄를 정복한 사람이라야 된다. 사망을 이긴 사람이라야 된다.
마귀를 완전히 이긴 사람이라야 된다. 하나님을 향하여 영감대로 살고 진리대로 사는 사람이라야 의인되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 이것을 누가 할 수가 있겠느냐? “사람으로는 할 수 없다. 하나님으로는 할 수 있다. 약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그것이 이 세상에 자기 것을 가지고 하늘나라 들어가는 사람보다 그게 쉽다.” 이러니까 좀 수수께끼가 풀어졌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온갖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여러 면으로 완전 무결한 사람이라야 됩니다. 털끝만치라도 죄가 있으면 안 됩니다. 흠이 있어도 안 됩니다.
불의가 있어도 안 됩니다. 털끝만치도 마귀에게 종이 돼도 안 됩니다. 죄에 종이 돼도 안 됩니다. 사망에 종이 돼도 안 됩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완전 행위를 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에도 완전타 인정을 받아야 됩니다. 하나님과 완전 친밀이 돼야 됩니다. 이 사람이면 하나님 앞에 온갖 축복을 받아서 다 잘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뭘로 되느냐? 이것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으로만 되는데 이 대속을 믿는 믿음으로 됩니다. 그러면 믿음으로면 어떻게 하는 것이 믿음으로 되는 것인가? 그것은 요다음 시간에 시간이 있으면 증거하겠습니다.
그러기에 말하는 것은 공연히 이 세상에 자기에게 원치 안하는 일들이 오는 것을 제가 벗어나겠다고 쓰는 그런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말아야 됩니다. 뭐 ‘내가 이 사람을 만나 가지고 뭐 교섭을 하고 저 사람 만나고 운동을 하고 뭐 어째야 되겠다.’ 어리석소.
인간이 자기에게 불행스러운 것을 자기는 벗어날 힘이 털끝만치도 없습니다.
포도나무에 포도나무를 해치는 그 해충이 갉아 먹고 있는데 포도나무 그 자체로서는 그 해충을 제거할 힘이 없습니다. 주인이 꼭 찝어서 죽이든지 뭐 약을 치든지 해야지 저는 할 권리가 없어.
인간이 자기 해를 자기는 벗어나지 못합니다. 자기의 행복도 자기가 만들지 못합니다. 자기 해도 자기의 행복도 영육간에 ‘화도 행복도 나는 만들 수 없다.
하나님이 화되게 하시면 화되고 복되게 하면 복된다. 하나님에게 주권이고 나에게는 털끝만치도 주권이 없다.’ 요걸 아는 사람을 하나님이 상대해 주십니다.
요래 알고, 그러면 하나님에게 축복을 받을라면 어째야 되느냐? 축복 받을라면 하나님 앞에 잘 보여야 된다. 하나님이 의인으로 인정을 해야 된다. 하나님 앞에 의인되면 성공이요 죄인되면 멸망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틀림없는 의인되고 틀림없는 죄인을 벗어나는 그것이 우리의 성공입니다.
그런고로, 그저 요걸 알고, 우리 믿는 사람들이 전부 제 일을 제가 할라고 날뛰기 때문에 ‘내가 뭐 주일을 범해도 공부해야 된다. 주일을 범해도 사업을 해야 된다.’ 여게 와서 앉았어도 ‘내 뭐 사업 뭐 하는' 암만 해 봐라 소용 있는가? 안 됩니다. 요거, 인간이 자기의 영육의 금생과 내세의 불행을 스스로는 털끝만치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 또 금생과 내세 영육의 행복을 인간 자기로서 털끝만치도 마련할 수 없다는 것.
그러면 어째야 되느냐? 하나님 앞에 의인되면 축복 죄인되면 멸망입니다. 그러면 의인되면 축복 죄인되면 멸망, 의인 죄인이 될라 하면, 의인이 될라 하면 어째야 되느냐? 의인이 될라면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열심히 지켜야 되느냐? 열심히 지켜서 하나님 말씀 지킴으로 의인이 되느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인이 되느냐? 성경에 “지킴으로 의인이 되지 못한다. 아무리 제가 율법을 지킬라고 생명을 다해서 한다 해도 의인되지 못한다. 믿으면 의인된다.” 믿음으로 의인되는 방법을 하나님 앞에서 배워서 이 믿음의 선물을 받아야 됩니다.
이래서, 우리 교인들이 전부 하나님 앞에 의인만 되면 우리가 전부 이거 뭐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될 터인데 의인이 안 돼서 문제라. 의인만 되면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 이 조그만치라도 가감이 있는 거 아니오. 우리 속에 ‘이건 천지는 변해도 조금도 에누리가 없고 가감이 없다,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다.’ 요렇게 자기에게 믿어져서, 믿어져서 요 도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전부가 전폭이 믿음으로 기울어지는 사람도 있고, ‘저거 사람 꼬우는 말이다, 저게 사람 꼬우는 말이다, 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의 말하는구나. 꼬우는 말이다.’ 그렇게 네 마음에 느껴지면 네 속에 성령이 떠나고 귀신이 들어가서 너에게 믿음을 가지지 못하게 해서 그런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오늘 밤에 이 말씀은 그저 영육의 생사 흥망 성쇠가 주님의 축복과 저주에 달렸다 요것만 기억하십시오. 축복과 저주는 의인에게는 축복하시고 죄인에게는 저주하십니다. 그러면 의인되는 방법이 뭐이냐? 의인되는 방법이 믿음이오. 죄인되는 방법이 뭐이냐? 믿음을 버린 것이 죄인되는 방법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