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4 08:03
경건연습
본문:디모데전서 4장 1절∼16절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 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군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좇은 선한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 하도다 이를 위하여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네가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 없이 말며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희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본문 주해는 시간이 없기 때문에 다 할 수가 없습니다. 거기서 간추려서 몇 가지만 증거를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욕심을 금하는 금욕 생활이 의인줄로 착각하게 해서 사람들을 유혹시킵니다. 의와 죄는 하나님이 선포해 놓으신 그 계약에 위반된 것이 죄요 그 계약과 일치된 것이 의입니다. 요사이는 많이 변했지마는 불교에서는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금하는 그런 것은 금욕 생활이니까 금욕하지 못한 사람들을 미혹시켜서, 금욕을 하니 그것이 의가 되겠다고 생각을 해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유혹시켜서 동양뿐 아니라 서양까지도 그 불교는 많이 전해져 가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도 변해졌지마는. 여기 성경에서는 그런 것으로 의를 삼는 것들이 다 미혹의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받아 가지고 그와같이 하는 것이라고 성경이 정죄했습니다.
또,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은 다 선하시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진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거게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 때문에 그 말씀을 준해서 그 말씀을 따라서 사용을 하고 또 하나님에게 기도함으로 그런 것이 다 거룩하여집니다. 또 사람을 가르칠 때에나 배울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말씀이 말하고 있는 믿음을 가르침으로 사람들은 올바른 구원의 양육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구약 성경 말씀과 또 이 말씀을 의심 없이 확실히 믿는 믿음을 가르치고 배움으로 사람들의 구원은 이루어집니다.
사람들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말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외부적으로는 세상을 지내가는 동안에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이 나타나고 이면적으로는 하나님의 능력이 동행을 하고 영원적으로는 하나님의 심판에 옳다 인정함을 받는 이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7절에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망령된 말을 버리고, 다시 말하면 망령된 지식을 버리고, 허탄한 지식을 버리고, 신화를 버리라 그렇게 여게 말씀했습니다.
망령된 말은 어떤 것이 망령된 말인가? 없는 가운데에서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도 하나님 한 분이시요 모든 창조된 것들에게 대해서 방편이나 거게 대한 모든 약속이나 그런 것은, 하나님 한 분이 만드신 것들에게 하나님 한 분이 거게 대한 것을 세밀히 선포해 주셨습니다. 이랬는데 하나님이 있게도 하시고 없게도 하시고 망하게도 하시고 흥하게도 하시는 것은 하나님 한 분이 주권을 가지고 하시는데 털끝만치도 주권도 가지지 못했고 또 존재를 저는 만들지도 하나도 아니한 것이 거게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제가 주권을 가진 자처럼 ‘이렇게 하면 된다 저렇게 하면 된다’ 하는 그런 말들을 다 가리켜서 망령된 말이라 그랬습니다. 요 망령된 말이라 말은 망령된 지식이라 말입니다. 창조주도 아니요 주권자도 아닌 그것이 제가 창조주처럼, 주권자처럼, 거짓되고 허탄한 말들 하는 그 지식을 가리켜서 망령된 지식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망령된 지식은 어떤 게 망령된 지식인가? 하나님의 지식을 신구약 성경에 선포해 놨으니 이 선포한 지식 외의 것은 다 망령된 지식입니다. 물리인 과학은 그거는 정확합니다. 그러나 물리만 정확했지 그 물리를 어떻게 인간이 접촉해야 된다 하는 데 대해서는 아무런 올바른 법칙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과학을 하나님의 뜻대로 이용하면 그는 하나님의 선물이 되는 것이지마는 하나님을 떼내버린 과학은 목을 끊은 몸뚱이와 꼭 같은 것들입니다.
그러기에, 여게 망령된 지식이라 말은 창조주요 주권자요 주재자요 그분에게 모든 것이 홀로 주관 파괴 酪 죽이고 살리는 것이 그분에게만 있는데 그분 아닌 것이 제가 무엇을 가진 것처럼 말한 것은 전부 망령된 지식이라 말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의 지식이 다 틀렸으나 과학은 부분적으로는 맞지마는ㅡ그거는 맞다 말이오ㅡ그 물질이 인간과의 조화성이 다 틀렸기 때문에 다 틀린 반거짓말의 지식이 되기 때문에 망령된 지식이라 말한 것입니다.
‘허탄하다’ 허탄하다 말은 근거 있는 데서 나온 것이 아니고, 절대 주권자 창조주 그분에게서 선포한 것이 아니고 아무런 권리 없는 것이 다 허공에서, 허공을 두고 치는 것처럼 이렇게 아무 실상 없는, 실권 없는 그 모든 거짓된 데에서 발원돼 나온 것을 표시해서 허탄한 지식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신화라 말은 실상은 없는 것인데 사람들의 그 호기심이 고만큼에서 말하면 그것은 너무 뿌리가 얕으니까 그 이상의 어떤 뿌리를 자기네들 생각대로 만들어 가지고 그 근원을 만들어 놓은 그것이 신화입니다. 없는 근원을 사람들이 추상하고 추론해 가지고서 만든 것이 다 신화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신화를 버리라 말은 사람들에게는 부패성의 호기심, 부패성 속에는 호기심이라는 그 부패성이 있어 가지고 그것이 확대된 것을 가리켜서 철학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나타난 그것을 가지고 그것의 원인이 어데 있느냐 그 원인을 찾고 찾아서 그것의 원인은 무엇이며 그것의 원인은 무엇이냐? 원인을 찾아 들어가는 것을 가리켜서 그 학설을 철학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철학은 신화보다 조금 조직적이요 논리적인 그 단계를 밟은 것을 가리켜서 철학이라고 말하고 그것이 없이 미신적인 정신으로 된 것을 가리켜서 신화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대개 국조는 신화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래서 우리나라는 곰 아들, 단군의, 곰 아들의 우리라, 곰의 자손이 우리라 하는 그거 다 신화입니다. 아담의 자손입니다. 박씨는 우리가 나물해 먹는 그 박에서 나왔다고 박씨라 박 혁거세라 하는 그렇게 말해 가지고 말하고 괭가라는 괭가는 그걸 꺾괭이 자손이기 때문에 괭가라 그렇게 해서 그거 다 신화들입니다.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대속되는 이 구원의 도를, 15절에 보면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희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너의 진보라 말은 구속의 도리에 전심 전력하는 것이 경건인데, 전심 전력하여 경건을 연습하면 자신이 진보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볼수 있다 그 말입니다.
진보된다 말은 자신이 성장돼 가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고 변화돼 가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고 그는 땅의 사람이 아니고 별개의 사람이라 하는 것을, 성화되고 영화되는 것을 볼 수 있고 그는 자기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그와 보이지 않는 무한한 그 능력이 함께 하시는 것을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말씀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봉독한 목적은 경건을 연습하라 하는 데에 있습니다. 경건은 어떤 것이 경건인가? 경건은 동기와 목적이 하나님을 향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고 바라보는 동기와 목적이 경건입니다. 또 하나님이 선포해 놓으신 하나님의 지식을 따라 그때 그때 성신의 감화가, 우리 살아난 양심을 통해서 우리에게 영감시켜 주실 때에 그 영감을 따라서 움직이는 것으로 방편을 삼는 것이 그것이 경건인 것입니다. 이렇게 동기와 목적과 방편을 가졌을 때에 그 결과로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 하나님의 것이 되고 하나님은 저의 하나님이 되어지는 그 결과를 맺는 것이 경건인 것입니다.
그러면, 경건의 동기와 목적이 하나님을 향해서 소망하는 것이 경건의 동기와 목적이고, 우리가 무슨 일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 일을 하는, 말이나 행동이나 경영이나 할 때에 그것의 동기가 하나님을 소망하는 것이 동기여야 되고 목적이 하나님을 소망하는 이것이 달성되도록 하는 그것이 그 목적이 되어지는 것이 경건입니다.
또, 경건의 방편은 동기와 목적이 이러하다 할지라도 방편이 세상의 과학이나 세상의 온갖 찬란한 지식들이나 그런 것이 방편이 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육십 육 권 도리가 윤곽적 방편이요, 윤곽적 방편, 울타리, 울타리와같이 거게 벗어나지 못하도록 윤곽적 방편이요, 그 속에는 우리 살려 놓은 양심을 통해서 성령님께서 그때 그때 감동시켜 우리 각자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명할 때에, 요한1서 2장 27절에 말씀하신 대로, 기름 부음이 너희에게 옳고 참되고 바르게 가르칠 터이니까 그대로 거하라고 하는 성신의 감동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뜻 고 뜻으로 방편을 삼는 것이 그것이 경건입니다.
그다음에 그러한 결과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 결과는, 나는 완전히, 하나님을 바로 앎으로, 그를 믿으므로, 그를 바라봄으로, 그를 믿고 바라봄으로 나를 맡기고 의지하고 그분에게 복종하는 이 사람이 완전히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는 완전히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완전히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이요 하나님은 내 육과 영과 금생과 내세와 내 모든, 내게 관한 모든 소유, 그 전부를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담당해 주시는 고 결과를 이루는 것이 고것이 결과인 것입니다. 요것이 경건입니다.
경건의 동기와 목적, 그것은 하나님을 향망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향하여 소망 가지는 것이 그것이 경건의 동기입니다. 경건의 방편은 육십 육 권의 하나님의 도리와 성신의 감화 감동, 진리와 영감이 그 방편입니다. 그 결과는, 나는 하나님의 영원을 완전히 책임지고, 우리가 타락했을 때에는 자기가 자기를 책임지고 자기 힘으로 어떻게 해 볼라고 하는 거게서 다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사람의 사망은 자기가 자기를 책임진 데에서 사망된 원인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면, 나와 내게 대한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 완전히 다 맡겨지는, 다 하나님께 맡겨지는 이것이 이루어져야 되고, 내가 맡겨지지마는 내 주관적으로 맡기는 것인지 하나님께서 맡으시는 것인지가 문제입니다. 나는 그분에게 맡기고 그분은 내 영원에 모든 것을 홀로 다 책임지시는 이 일이 이루어졌을 때에 이것이 경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경건의 결과입니다.
그러기에, 요 경건에 대해서 잘 기억합시다. 경건의 동기와 목적, 경건의 방편, 경건의 결과, 요런 것은 기억하고, 놓지를 말아야 됩니다.
기독 교회사에, 교리사에 경건파라고서 하는 그런 유명한 교파가 있었습니다. 그 경건파가 처음에 경건파일 때에는 그 경건파가 깨끗하게 나갔고 세계에서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는 것이 되어졌으나 그 경건파가 나중에는 또, 그 속에 마귀들이 미혹을 줘 가지고서, 이래서, 이리저리 모두 변질이 돼 가지고서 실패된 일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여러분들이 경건에 대한 정의, 경건이 뭐인가? 경건에 대한 정의, 동기와 목적 그 방편 그 결과 요 셋을 굳게 잡고 놓지 안하면 경건을 이루어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말씀하시기를,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버리라 말은, 이게 다 세상에 있는 지식인데, 세상에 있는 지식을 버리라 말은 아주 세상 지식을 반지식, 무시하라 말 아닙니다. 요걸 잘 알아야 됩니다. 사람들은 세상 지식을 자기를 구출할 수 있는, 자기 위에다가 둡니다. 자기 위에다가 둬서 그 지식이 자기의 생사 화복을 주권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그 지식 나래 아래에 다 깃들어 가지고서 그 지식을 의지하고 그 지식을 우상으로 섬기는 자들이 됐습니다. 그런 것을 버리라 말입니다.
그런 것을 버리고, 세상 지식은 내가 물을 건너갈 때에 또 내가 길을 걸을 때에 제일 좋은 이런 방편 저런 방편을 내가 써서 물을 헤엄쳐 가고 길을 걸어가고 또 이런 물건을 내가 이렇게 사용하고 저렇게 사용하고, 요새는 모두 원자탄이 좋은 것이라고 하지마는 원자탄을 사용하는 방편을 잘 알아서 바로 사용하면 이익이 있고 그것을 사용 방편을 몰라서 잘못 사용하면은 폭발돼 가지고서 많은 해를 보게 될 것인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 지식이 그런 것이라 말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하나님이 지어 놓으신 모든 만물이 있는데 고것을 이렇게 사용하고 저렇게 사용하는 고 사용법을 배워 가지고 그것을 잘 사용하면 된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을 사용하는 데에 이용하는 지식입니다.
그러나, 그 지식은 내 이용물이요 지위가 내 밑에 있습니다. 나보다 가치가 작은 것입니다. 낮은 것입니다. 내가 그것을 내 소유물로 가지고 이용할 것이요, 그 지식을 내가 숭배하면서 그 지식이 나를 살릴 줄 알고 그 지식을 따라서 복종하고 움직이게 될 때에 그때 인간은 그 지식이 자기를 망치는 지식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지식을 네 우상으로 삼는 그런 착각을 버리라, 네 우상적으로 섬기는 지식은 다 버리라, 그걸 가지고 너 망한다. ‘아, 이 지식이라야 내가 잘 먹고 산다’ ‘그 지식을 암만 네가 가져도 하나님이 쫙 그어 버리면 그 지식으로 인해서 네가 죽는다’ ‘나는 이 물질로 인해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네가 그 물질로 인해서 너는 완전히 멸망받을 수도 있다’ 이래 가지고서 모든 이 세상에 있는 지식이나 물질이나 그것을 우상시 하다가 망하는 것이 역사에 전면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당장에도 한 백 년을 두고서 계산을 대면은, 세상에 있는 것들과 지식을 그것이 인간의 생사 화복을 주권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것으로써 삼사 대까지 망한다고 말씀하신 대로 삼 대만에 망한 거, 사 대만에 망한 거, 백 년을 계산 대면 그것으로써 망하는 것은 다 그것 때문에 망했다 이렇게 총 결론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하는 요 말씀을 단단히 기억해야 됩니다.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네가 크고 작은 모든 언행 심사에 그 동기가 하나님을 향하여 소망하는 그 동기가 되고 목적이 돼야 된다. 그렇기를 연습해라. 또 네가 아무리 동기와 목적이 좋다 할지라도 그 이루는 방편에 있어서, 신구약 성경 말씀 도리대로 하는 것도 좋지마는 그 도리는 하나의 윤곽이지 그 속에 중심되는, 네게 해당되는 하나님의 진리는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윤곽을 잡고 그 윤곽의 테두리 속에 있으면 하나님의 성령의 감화 감동이 네 양심을 통하여서 ‘이렇게 하라’ 너에게 가르쳐 주심이 있으니 성신의 감화대로 고대로 하라.
그러면 그것이 옳고 참된 그 경건을 이루는 방편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연습하라.
네가 모든 언행 심사에 동기는, 네가 공부를 하든지 무슨 출세를 하든지 취직을 하든지 뭘 하든지 어떤 걸 하든지 네 동기와 목적이 하나님을 향망하는 동기와 목적이 돼야 된다. ‘나는 이 공부를 해 가지고서 하나님을 더 똑똑히 바라보고 더 의지하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나는 축복받는 이 일을 하겠다’ 그래야 되고, 또 내가 어떤 것을 지금 착수해 가지고 할지라도 ‘나는 이것을 경건 연습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직장에서, 이 지위에서, 이 권세에서, 이 모든 노력에서, 이 연구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법칙을 나는 방편으로 삼겠다’ 아무리 내가 공부하다가도 꼭 요 공부할 때 ‘요때는 공부하는 것이 요렇게 하면 하나님의 법을 어긴다’ 될 때에는 딱 중단해 버립니다.
내일 시험을 칠 터인데 오늘은 주일날이니까 그런 거 하지 말라고 계명에 말했기 때문에 공부하다가서 이거 밤잠을 안 자고 열 두시까지 공부했지마는서 열 두시가 딱 지나가니까 ‘이제 주일날이니 나는 이 공부는 할 수가 없다. 내가 잘 수는 있을지라도 할 수 없다. 누워 자자.’ 이라고, 내가 어떤 유력한 자리에서 정권이나 어떤 유력한 기업체에서 중직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그 일을 할 때에 죽도록 충성하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일이라면 죽도록 충성하라, 그러나 그라다가, 하나님의 법칙을 어기는 일이든지 네 양심에 거리끼는 일이 되든지 영감에 거리끼는 일이 될 때에는 그 자리에서 당장 목이 끊겨서 나와도, 네가 거게서 어긴다고서 사형을 받아도, 하나님의 법에 어기는 그 법칙은 할 수 없다 해 가지고 딱 중단해라, 요것이 그 방편을 바로 하는 것입니다. 경건의 방편을 바로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결과적으로 어떤 결과가 맺어지느냐? 너는 완전히 하나님이 책임지는 하나님의 것이 되고 하나님은 너의 하나님이 돼서 하나님의 그 무한하심은 다 너의 것이 되고 너희 모든 연약하고 무능한 것은 하나님이 다 책임져서 당신이 담당하는 것이 되어진다. 이것이 기독교인의 완성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경건을 연습하는 일을 하라. 이래서 오늘은 여게 대해서 말씀을 할라고 합니다. 경건을 우리가 연습한다 연습한다는 이 뜻은 여게 연습이라고 썼는데 연습이라는 이 단어의 뜻은 세 가지로 나타나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에게 없는 타에게 있는 지식을 자기가 배워 가지고서 아는 것입니다. 그러면 배워서 지식이 자라가는 그것이 경건 연습의 하나입니다. 그러면, 무슨 세상의 과학에 대한 지식이 아니고, 하나님에게 대한 지식을 신구약 성경에서 배우고 또 다 기록할라고 하면은 온 세상에도 둘 곳이 없다고 하는 복잡하고 세밀한 하나님의 지식이 있으니 하나님을 바라보는 지식, 내가 하나님을 소망하는데 하나님을 어떻게 소망해야 되며 어떻게 바라봐야 되며 어떻게 믿어야 되며 어떻게 의지해야 되며 그분이 어떤 분인가? 하나님을 향한 지식, 하나님에 대한 지식보다도 하나님을 향망하는 지식, 하나님을 향하는 지식 그 지식을 신구약 성경에서 배우고 자기가 기도 가운데서 배우고 명상 가운데서 배우는, 눈감고 이래 명상함으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그렇게, 하나님에게 대한 것을 배우고 배워서 그 지식이 자라가는 것이 경건이 숙달돼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고 지식 ‘내가 하나님을 대할 때에 어떻게 대해야 되느냐’ 하나님을 향하는 고 지식을 자꾸 배워서 배워서 그 지식으로 자라가는 것.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한 지식이 자라가는 것이 그것이 경건을 연습하는 것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또 둘째로는 하나님을 향한 그 지식을 내가 지식으로 익혀 갑니다. 익혀 가는 것 지식으로 자꾸 익히는 것, 하나님을 향한 지식을 또 아이들이 글을 배워 익히는 거 모양으로 그 지식을 또, 내가 또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새김질하고 자꾸 새김질해서 하나님을 향한, 내가 하나님을 소망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지식,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라, 하나님은 어떻게 크신 분이시고 어떤 분이시고 그 성질은 어떻고 그 권위는 어떻고 그 영광은 어떻고 위엄은 어떻고 그의 권세는 어떠하고 그분의 통치는 어떠하고 그분이 모든 피조물을 어떻게 냈으며 피조물을 어떻게 관리하시며 어떻게 섭리하시는가 고것을 자꾸 배웁니다.
그것이 경건을 연습하는 것입니다.
연습이라는 것을 잘못 알면, 연습이라는 것을 고것을, 이미 있는 것을 자꾸 재연습 재연습하는 것으로만 이렇게 생각하는데 경건 연습하는 것은 첫째가, 하나님을 향한 지식을, 또 알고 알고 알고 그 지식이 자꾸 자라가는 것이 그것이 경건 연습의 일호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자라가라’ 그렇게 성경에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자라가라’ 그것이 경건의 일호.
그다음에는 경건 연습의 이호는, 이미 배워서, 성경에게 배우고 또 성령님에게 배운 그 지식을 내가 자꾸 익힙니다. 익힘. 연습이라는 연 자는 익힐 연(演)자입니다. 익힐 연(演)자는 자기가 이미 아는 그 지식을 자꾸 익히는 것이 익힐 연(演)자의 익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전능자시라. 전능자시라.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 곳이 없으신 분이시라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시라.
하나님은 주권의 능력을 가지시고 섭리하시는 분이시라.’ 이런 지식을 자꾸 자기가 익히고 익히고 복습하고 복습하고 연습하고 연습하고 자꾸 익혀서 자기가 익히고 익히고 자기가 새김질하고 자꾸 새김질함으로, 자다가 깨도 이 지식이 내게 꽉 채여서, 내 감각에 가득 배었고, 내 기억력에 가득 배었고, 내 사상에 가득 배었고 내 비판과 평가에 가득 배었고 내 신경에 가득 배었고 내 감정에 가득 배어서 하나 예를 들면은, 여게서 내가 무슨 나쁜 죄를 지으러 가다가서 어떤 사자가 와 가지고 응크리고 달라들면 그때에 ‘아, 내가 하나님을 거슬리는 이 걸음을 걸었구나.’ 걸었으면 즉시, ‘하나님을 거슬리는 걸음을 걸었으니 하나님이 진노해서 이것을 통해서 내 걸음을 막는 것이다.’ 그게 퍼뜩 자기 지식에 떠오르고 ‘이럴 때에는 예수님의 피 공로에 이 죄 용서를 구해야 되겠다. 주여 용서해 주시옵소서’ 구하는 요 지식이 자기 현실을 만날 때에 지체되지 안하고 즉시즉시 자기에게 생각나도록 이렇게 숙달시키는 이것이 하나님을 향한 그 지식을 자꾸 익히고 익히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데에 비유컨대, 사자가 와 가지고서 응크립니다.
처음에는 깜짝 놀래 가지고서 내 전신에 머리카락이 쭈삣하고서 온 얼굴에 소름이 끼칩니다. 다닥 다닥하이 소름이, 깜짝 놀래서 그만 상이 새파래집니다.
그럴 때에, 그게 아직까지 경건 연습이 덜 돼 그런 것인데, 그럴 때 ‘아. 주님은 전능하신 주님이시요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이시요 모든 것을 주권하고 계시는 주님이시다. 믿을 때에 되는데, 믿을 때에 그 능력이 와서 역사할 수 있는데 믿지 안할 때에 내게 역사하지 못한다 내가 믿어야 된다. 나는 지식으로 잊어 버렸고 믿음도 없습니다. 주여 믿습니다.’ 딱 하고 나니까, 자기 그거 주관 행동입니다.
그럴 때에 자기 얼굴은 펴집니다. 자기 얼굴은 펴지고 자기 얼굴에는 평강과 기쁨이 넘치고 그런 것이 물러갑니다.
그러면, 그것이 뭐이냐? 그것은 실습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경건 연습, 연습에 연에 속한 것이 아니고 습에 속한 것입니다. 그것이 실습한 겁니다. 실지로 내가, 하나님을 향망하는 그 일에 대해서, 하나님의 크심에 대해서, 주권에 대해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내가 그 지식으로 떠올라서 지식할 때에, 지식할 때에 그 지식은 나를 믿는 자 만들고, 믿는 자 만들어서 그 현실에서 믿는 자 될 때에 내 자체는 변해지고 모든 상대방도 다 변해지고 만물이 다 변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매 시간마다 이 경건을 연습하는 이 일을 우리는 쉬지 안하고 해야 됩니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다 그 말은, 약간의 유익이 있다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육체의 연습은 어떤 게 육체의 연습인가? 이 세상에 온갖 공부하는 것이 다 육체의 연습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수학을 연습하고, 암산을 연습하는데, 암산 연습하는 데에 자꾸 옆에서, 한 이 단으로 부릅니다. 그 돈으로 부르면은 단 십 하는 이 단을 가지고서 자꾸 부르면은 혼자 앉아서 암만 빨리 불러도, 음이 틀리지 않게 똑똑히 발표했으면은 고것을 딱 암산해 가지고 맞춥니다. 이것을 연습하면 되는데, 나중에 가서는 혼자가 아니라 두 사람이 양쪽에서 부릅니다. 두 사람이 양쪽에서 부르는데, 이 단의 수를 부를 때에 두 사람이 불러도 그것을 딱 암산해서 딱 들어 맞춥니다. 요것도 연습입니다.
나중에는 숙달되면 삼 계단, 단, 십, 백까지 삼 계단을 두 사람이 불러도 합니다.
그다음에는 사 계단, 단, 십, 백, 천, 사계단까지 두 사람이 양쪽에서 불러도 그것을 암산으로 딱 맞춥니다.
제가 국민학교 다닐 때에 그때에 일본 교양 가르치는 선생이 그것을 많이 연습을 시켰는데 그때에 있는 학생들, 머리 좋은 학생들은 대개는 이 단으로 부를 때에는 두 사람이 불러도 그걸 다 맞춰 냈습니다. 삼단까지 불러도, 두 사람이 불러도, 아무리 빨리 불러도 맞춰 내는 사람이, 제가 그때에 웅양 공립 보통학교에 다녔었는데 그때에 거게서 상급생 오학년들은 그것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게 다 연습입니다. 또 자기가 이렇게 글씨를 쓰는 것도 이것을 처음에 요렇게 써라 하면은 체를 받아 가지고 그대로 한 번 써 보고 두 번 써 보고 자꾸 그래 쓰면 인제 글씨 쓰는 것이 연습돼서 숙달돼 가지고서 잘 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이런 모든 기계 체조라든지 이런 것도 그것도 다 육체의 연습입니다.
그런 것도 자꾸 하면은 그것이 숙달돼 나갑니다. 그러면 그런 것도 일생 동안 사람들이, 또 이는 인체에 대한 연습을 해서 다른 사람이, 인체는 몇 세포로 돼 가지고 있으며 몇 기관으로 되어 있으며 신경은 몇으로 되어 있다 하는 것을 자꾸 배워서 익힙니다. 안과 의사를 하나 할라 하면은 눈에 대해서는, 눈에서는 전신의 어떤 신경과 연결이 있고 그 신경이 잘못되면 눈에 와서 어떤 결과로 나타나고 하는 그런 것을 이제 자꾸 배워 가지고서 그것을, 그 지식을 익히는 것이 육체의 연습이오. 그래 가지고 자기가 실지로 칼을 가지고 수술을 해서 한번 치료를 해 보고 약을 가지고 치료를 해 보고 하는 것이 이제 실지로 실습하는 것입니다.
실습과, 그 지식을 연습하는 거, 또 그것을 배우는 거, 이것이 다 육체의 연습이요 또 우리 경건 연습은 그것이 경건 연습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지식을, 그 지식을 내가 배우고 그 지식을 내가 또 익히고, 익혀서 자꾸 내가 익히고 그다음에는 그 지식대로 내가 실지로 실습을 한번 해 보고 자꾸 해서 그것이 숙달되는 데에서 나는 하나님의 것이 되고 하나님은 내것이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요 경건 연습하는 이 일이 귀중하다는 이것을 우리가 깨닫고 이 일을 전심 전력을 기울여서 연습하는 사람이 되어집시다. 하나님을 향한 지식 ‘하나님은 어떻게 크시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전능자시다' 고거 알고 또 ‘하나님은 알지 못하심이 없다.’ 그러면, `하나님은 내 세밀한 것도 다 감찰하고 계신다. ‘감찰하고 계신다’ `그분에게 거슬릴 때에는 그분이 사랑하는 자면 징계로 때리고 강퍅한 자는 버려 둔다.’ ‘그분에게 거슬리면 징계 받는다.’ ‘그분에게 일치될 때에 그분이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축복하신다’ 자꾸 연습합니다. 자꾸 익힙니다.
이 지식을 성경에 가르친 대로 자꾸 익히고 익히고 익혀서 내 신경에 가득찼고 감정에 가득찼고 내 지식에 가득찼고 비판에 가득찼고 평가에 가득찼고 내 모든 마음에 가득차서 이것이, 이것이 내 행동에 이대로 가득차 가지고서 내가 내 몸 밖에 있는 모든 사물을 접할 때에 이대로의 이 경건이 가득차도록 이래 하는 것이 금생과 내세에 대해서 약속함이 있다.
경건이 어떤 게 경건인가? 경건의 동기, 방편, 그 결과, 경건의 동기와 목적이 무엇이며 방편이 무엇이며 그 결과는 무엇을 이루는 것인가 고것을 단단히 기억하고 놓지를 맙시다. 우리 기독자의 성공은 자기의 모든 것을 주님에게 완전히 맡길 수 있는 사람되는 것이 그것이 성공입니다.
그러면, 맡기고 나는 뭐할 것인가? 맡기고 나는 하나님이 나에게 맡겼기 때문에 그분이 나에게 인도하시는 그 인도대로 따르는 것이 나 할 일인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편히 쉬게 하겠다.
그러면 수고하는 것은 무엇이 수고하는 것인가? 수고하는 것은 헛수고를 가리켜 말합니다. 헛수고가 어떤 게 헛수고인가? 인간의 자기 주관대로, 주관대로, 자율대로, 사욕대로, 제 힘으로 하는 것 이 모든 것은 다 수고하는 것입니다.
헛수고라 그말이오. 수고해 가지고서 결과가 좋으면은 수고 안 할 사람 어데 있습니까? 여게 수고한다 그 말은 헛수고한다 그말이오. 이것이 다 헛수고입니다.
그것이 사람들이 어리석게, 이 죽음이라는 한 토막 인간 칠십이면 칠십 그 토막 안에서 뭐 그래 가지고 돈이 이루어지고 뭐 소망이 이루어지니까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성공 같으나 실패자입니다. 많은 것을 사고 팔고 했으니까, 마태복음 22장에 혼인 잔치에 청하니까 ‘나는 소를 사서 안 되겠습니다. 밭을 사서 안 되겠습니다. 나는 지금 가족 때문에 안 되겠습니다.’ 하고서, 왕이 혼인 잔치에 청할 때에 가지 안 했는데, 저 변두리에 아주 천물들은 가 가지고서 그 혼인 잔치에 들어갔지마는, 왕의 청한 혼인 잔치에 참여하지 안한 자들은 마지막에 어땠습니까? 왕이 그 사자를 보내서 ‘전부 불로 다 사뤄서 전멸해 버려라’ 그것이 세상 끝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이 그것은 다 헛된 놀음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요 경건 세 가지, 동기와 목적은 다 하나님을 향망하는 그것이 동기와 목적이 돼야 되고 방편은 하나님의 신구약 성경 말씀과 양심이 소개하는 성령의 감화 감동 요것으로서 방편을 삼아야 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거는 영생이라 했습니다. ‘내가 이것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은 영생인 것을 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했지 그 외에 딴것은 하나도 안 했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어겨서 천하를 얻어도 마지막의 결론은 다 사망이요 유황불 구렁텅이입니다. 다 심판에 불타고 맙니다. 그것이 무슨 하나님의 심판을 이기겠습니까? 이것이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짓는 집입니다. 다 집 짓는데, 집 짓는다 말은 자기를 건설한다 말이오.
자기 자체를 건설한다 말입니다. 자기를 유력하게 실력 있는 인물로 자체를 건설하는 것을 말하고, 자기 모든 지위와 권세 자기 처소 건설하는 것을 말하고 자기 위치 건설하는 것을 말하고, 셋째로는 자기의 소유 건설을 말합니다. 이것이 자체 건설이요 행동 건설이요 소유 건설입니다.
건설하는 데,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것은 더 번들번들하게 잘 지었습니다.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것은 그 건설이 더 웅장하게 되고 잘 됐습니다. 크게 되고 웅장하게 되고 잘 됐습니다. 아,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을라 하니까 다른 사람이 이만한 집을 지을 때에 저는 그걸로 지을라 하면은 조그만한 오두막이나 하나 지을까 뭐 지을 게 있겠습니까? 지을 때는 그것이 아주 빈약한 것 같고 약한 것 같지마는 나중에 하나님이, 불로 심판한다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가지고서 그리스도의 심판에서 다 심판한다 말입니다. 심판을 하니까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것은 다 불에 타 버립니다.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것은 타지 안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와 영감대로의 건설, 그리스도의 피에 합당한 건설, 피와 성령과 진리로 건설된 건설은 요거는 건설하기가 어렵지마는, 힘들지마는 하나도 썩지 안하고 타지 안하고 다 영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게 맞지 안하고 제 욕심대로 제 주장대로, 제 욕심 성공을 합니다. 제 욕심 성공을 하고 이라면 됐으니까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기독자가, 참된 기독자는 어떤 게 기독자입니까? 자기 욕심을 죽일라고 날마다 싸웁니다. 자기 욕심을 달성시킬라고 하는 게 아니고, 자기 목적을 달성시킬라고 하는 게 아니고, 자기 명예나 자기 중심 자기의 위주의 것을 달성시키면 성공했다고 기뻐하지마는 그것을 저주로 보고.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것을 멸할라고 애를 쓰고 하루 종일 이놈 멸하고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 진리대로의 요대로의 살라고 애를 쓰는데 그 일이 안 되니까 울고 불고 날뛰는데, 예수 믿는 사람 쳐 놓고, 이제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짓는 거. 하나님의 영감과 진리는 다 떠나서 제 욕심대로 제 주장대로 제 위주 제 중심, 제 위주 제 중심대로의 일이 돼 나가니까 성공했다고 기뻐하니까 그것이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집입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이 그것입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은 이 세상 피조물들이 다 기초가 됐다 말이오. 피조물. 이것으로 인해서 모든 것이 건설됐지마는, 반석 위에 지은 것은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하나님 한 분으로 인하여 그분이 원인이 돼 가지고서 건설된 것이라야 남지 나머지기는 남지 않습니다. 우리는 깨어서, 이렇게 멸망에 속해서 살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런고로, 경건은 세 가지라. 동기와 목적, 이것은 하나님을 향망하는 것이라.
방편은 진리와 영감이라, 결과는 나와 내 모든 것은 하나님이 다 책임지시고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시느니라’ 모든 걸 주께 맡겨 버렸어. 지금 다니엘이 다리오 왕 앞에서, ‘네가 꼭 안 들으면 할 수 없다’ 하루 종일 말해도, 왕이 말하니까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거절할 때에 다리오 왕이 ‘아깝지마는 네가 이렇게 거절하니 할 수 있나, 너는 사자구덩이에 던져서 사자 밥이 될 것을 모르느냐?’ 이럴 때에 다니엘은 변동되지를 안했습니다. 그는 다리오 왕이 그렇츰 그래도 자기의 생명을 인해서 하나님의 도리를, 영감을 꺾지 안했습니다. 자기의 생명과 이 모든 세상의 지위나 권세나, 총리대신이니까 얼마나 큽니까? 이런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그 방편, 진리와 영감대로 사는 그 방편은 영생을 이루기 때문에 그 방편과 이런 거와 비교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방편을 취하고 이런 것을 버렸던 것입니다.
그것이 뭐이냐? 반석 위에 지은 집입니다. 주님으로, 그 모든 근원이 주님으로 인해서, 이러기에 주님 말씀하시기를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나로 인하여 살리라’ ‘나로 인하여 살리라' `나로 인하여 살리라' 말씀했습니다. 주님으로 인하여 사는 거. 이것이 반석 위에 지은 집이요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집이요, 그 모든, 인간으로서 어떤 세력으로 돼도 그 세력도 잠깐입니다. 어떤 인물도 잠깐이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눈을 감고 ‘우리가 무엇을 의지할까?’ 이것도 저것도 다 허무합니다. 주님이여, 우리 가족을 주님이 맡아 주십시오. 주님외에는 믿을 이가 없습니다. 맡길 이가 없습니다. 의지할 이가 없습니다. 아무도 책임져 줄 이가 없습니다. 또 여게 저게 어데 따라서 내가 피동이 되겠습니까? 어데 순종하겠습니까? 나를 가르칠 자도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주님 한 분밖에는 없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 교회를 ‘하나님의 신부라’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만이 자기의 배우자로 삼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내 짝이 된다 말이오. 짝이 된다는 것. 이거 이라면 육체의 이 정욕의 이런 이성 관계 그런 것만 생각합니다. 그거는 없어. 하나님만이 나의 배우자라 말이오. 하나님만 내 짝이라. 하나님 외에 내 짝될 게 없어. 하나님 외에는 내 짝될 게 없어. 짝될 게 없어. 내가 그분만 바라보고 그분하고 둘이 붙어야 되지, 그분 외에는 내가 붙을 이 없어. 나도 그분하고 붙어야 되고 우리 부부도 그분하고 붙어야 되고 우리 가족도 그분하고 붙어야 되고 우리 자녀도 그분하고 붙어야 되고 어쨌든지 우리 가정도 그분하고 붙어야 되고 우리의 모든 사업도 그분하고 붙어야 되고 그분하고 짝이 돼야 되지 그분하고 짝되지 안하고 다른 거하고 짝될 만한 것이 없어.
이러기 때문에, 따지고 따지고 해서, 심령이 길게 보는 원시자들은 다 이 경건 외에 딴것을 연습하지 않습니다. 그런고로, 경건은 요 세 가지를, 동기와 목적 또 그 방편과 결과 요 세 가지를 단단히 기억하고. 경건을 연습하는 것은 그분을 향한 지식을 자꾸 넓혀 깊이 길게 길러가는 것이고 그 지식을 내가 재인식 재인식해서 익히고 익혀서 그 지식이 내 전 인격과 전 정신과 신경에 꽉 배어서 내 신경은 그 지식대로 움직이고 내 감정은, 내 마음은 그 지식대로 움직여 그 지식에 따라서 두려워할 때는 두려워하고 그 지식에 따라서 기뻐할 때는 기뻐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말하면 그분 한 분 외에는 두려울 분도 없고 그분 한 분 외에는 바라볼 분도 없고 그분 한 분에게 속하는 요게 되어지는 것이 하늘나라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그 지식을 자꾸 익히고 익혀서 밤에라도 갑자기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서 내가 자는데 칼로 콱 대어도 그때에 이 지식이 내게 충만해서 나는 그 지식대로의 언행 심사되어지는 사람이 되고 내 태도는 그 지식을 연습하는 일이 되어졌을 때에 그때에 하나님의 지극히 큰 능력은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빌립보 옥중에서 사도 바울이 그렇게 매를 맞고 곤고했지마는 거게서 새김질하고 새김질하고 이 경건을 연습하니까 그때에 이제, 하나님은 어떤 분이라는 그 지식이 확고해졌고 지식이 자기에게 명확했고 그 지식이 명확할 때에 그 지식을 실습하니까 모든 지진이 나고 모든 것이 다 되어졌던 것입니다.
오늘도, 필요 없는 그런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없지마는 기독자의 걸음은 다 이와같이 크나 작으나 전부가 다 기적이요 축복입니다. 기적과 축복이 아닌 걸음은 한 걸음도 없습니다. 한 자욱도 없는 것이 기독자인 것입니다.
오후에 여게 대해서 또 말씀할 건데 여러분들이 거게 대한 성구를 좀 적어 줬으면 좋겠습니다. 가서 이 성구를 집에 가서 읽어 보고, 뭐인고 읽어 보고 오면 또 오후에 증거하겠습니다. 시편 37편 3절로 9절, 시편 84편 8절로 11절. 시편 112편 1절로 6절. 145편 19절로 20절. 잠언 19장 23절. 잠언 22장 4절. 마태 6장 33절. 마가 10장 29절로 31절. 베드로전서 3장 8절로 12절. 가 가지고서 읽어 보면 이 경건이 얼마나 유익한가 경건의 이익에 대해서 거기 기록한 것이 그 외에도 많이 있지마는 거게 보면 제일 주요된 것이 나타나 가지고 있습니다.
기억합시다. 기억해야 되지 기억 안 하면 안 됩니다. 이런 것도 지금 배울 때 배우지 한번 지나가면 몇 해 만에 돌아올란지 모릅니다.
경건의 동기와 목적. 그것은 하나님을 향망하는 것, 하나님을 향해서 바라보는 그것이 동기와 목적이요. 그 방편은 진리와 영감. 경건의 결과는 내가 완전히 내게 속한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 완전히 되고 하나님께 맡겨 버렸어.
하나님께서 완전히 책임지고 하나님은 그분의 모든 것이 다 내것이 되어지는 것 이것이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부요하심을 다 내어놓은 것은 그분이 가난해지심으로 그분이 하나님의 부요를 다 우리에게 주어서 우리를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경건 연습은 경건을 이루어 가는 것인데 하나님에게 대한 지식을 자꾸 배우고 배우고 해서, 누구한테 배워? 성경에서 배우고 또 영감에 배우고 또 영감의 사람들에게 배우고, 그래서 이 지식이 넓게 깊게 세밀하게 길게 높게, 그 지식도 억만 년 후 지식도 있고 천년 후 지식도 있으니까 넓이 깊이 높이 길이대로 자꾸 지식을 점점 배우고 요 지식이 내 전심 전력에 꽉 배도록, 자꾸 익혀야 됩니다. 자꾸 익혀야 됩니다.
하루 종일 딴것만 하고 이 지식은 다 잊어 버려 가지고서 뭐이 되겠습니까? 우리가 요것을 자꾸 익히는 데에서, 그라면 돈벌이는 언제하고? 사업은 어짜고? 익하는 데에서 나도 모르게, 얼굴도 변해집니다. 정신도 변해집니다. 생각도 변해집니다. 태도도 변해집니다. 자꾸 이라다 보니까 저도 좋고 남도 좋아합니다.
자꾸,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익히고 이라다 보니까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이 평소에 날 대할 때와 달리 대합니다. 달리 대할 때는 그 사람이 변한 게 아니라 내가 변하니까 그 사람도 변하는 것입니다. 이게 손해가는 것 아닙니다. 이래 가지고 그것을 내가 자꾸 실습합니다. 실지로. 실지로 한번 해 봐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현실을 주는 것은 지금 ‘네가 보자 하나님에게 대한 이 지식, 하나님을 향망하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네가?’ 하나님을 향한 지식이 있나 없나 그것을 우리에게 연습시키기 위해서 현실은 주는 것입니다. 고때에 그 지식을 자기가 깨닫고 ‘오!’ 그 지식을 깨닫고 그 지식을 기억하고 고 지식대로 실지로 한번 실습을 한번 해보고. 그라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시험을 받고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대해서 ‘옳다’ 하나님이 보실 때에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시리라. 진리가 승리하는 승리. 죄가 승리해서 죄로 성공하는 게 아니고, 옳고 바르고 참된 것이 성공하는 그 성공이 너에게 이르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기도> 없는 가운데서 우주와 영계를 창조하시고 홀로 보존하시고 관리하셔서 영원 전 주의 목적 안에서 예정 창조 구속을 받은 성도들을 주의 형상대로의 온전한 자를 이루시기 위해서 모든 것을 나열하시고 관할하시고 주권으로 개별 섭리하시는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들에게 주신 현실은 우리에게 먼저 가르쳐 놓고 하나님을 향한 어떤 지식을 가졌으며 어느 정도 깊이 인식하고 확신을 가졌으며 얼마나 이 지식대로의 사람이 되어 행동하는가 하는 것을 주께서 연습시키셔서 맞을 때에 빛으로 나타나게 하시고 기적과 축복으로 나타나 세상에 복음의 영광으로 나타나게 하시고 미진할 때에 다시 스스로 깨달아서 돌이켜 새로와지게 하려 하시는 주님의 이 사랑의 구속의 섭리를 감사하옵고 찬송함을 드립니다.
오늘 주께서 말씀해 주셨사오니 여게 있는 무리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경건을 연습하여 거룩한 행실과 경건이 이루어짐으로, 온 세상이 불탈 때에 새 하늘과 새 땅을 다 바라보고 이런 모든 소멸의 해를 조금도 보지 않는 저희들이 되도록 다 거룩한 변화와 영화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많은 형제들을 불러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들은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과 영광이 그들 위에 있고 주님의 피로 값주고 산 자들입니다. 주님이 붙드시고 동행하사 크고 작은 모든 것에 책임져 주시고 주님에게 맡겨 놓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순종함으로 모든 세상살이가 염려 없이 평온한 가운데에서 하나도 실패 없는 영원한 성공의 승리의 걸음을 걸어가도록 주께서 항상 동행해 주시옵소서.
이들을 전도하고 인도하느라고 수고한 사랑하는 종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들 속에 날마다 뜨거워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