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4 08:01
경건연습
1982. 3. 24. 수새
본문 : 디모데전서 4장 1절∼10절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 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의 예수의 선한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좇은 선한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공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여기에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금한다」 이 말은 금욕 생활을 몇가지 예를 들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 이런 것은 욕심을 내도 안 되고 해도 안 되고 이런 것은 먹어서 안 된다' 이렇게, '또 이런 것은 먹으면 된다.' 사람들이 그것을, 어떤 사람의 주장세우는 그 주장을 실행을 하려 하니까 힘이 듭니다. 결혼 안 하고 독신 생활 하려 하니까 그것도 힘들고, 또 먹는 음식도 여러가지를 먹을 음식을 안 먹으려고 하니까 그것도 힘듭니다.
그러면 이 두 가지를 들어서 말한 것이 생명 문제를 내놓고 난 다음에는 이 두 가지 문제가 제일 힘드는 것입니다. 먹는 음식 문제, 또 결혼 문제라는 것은 사람이 사람으로 더불어 사귀어서 서로 재미를 붙이고 정을 붙이고 또 위로와 협조를 받고 이러는 것이 이것이 참 사람에게 중대한 일인데, 생명 문제 다음에는 먹는 문제가 크고 또 먹는 문제 다음에는 사람이 사람으로 더불어 이렇게 사귀고 재미를 붙이고 또 정을 붙이고 위로가 되고 하는 이것이 둘째로 중대 한 문제입니다.
우리나라는 옛날에 비해서 아주 경제가 풍부하게 되었습니다. 이러니까 사람이 의식주 문제가 크다 이래도 그렇게 느끼지를 못합니다. 옛날 하나의 예화를 들면, 어떤 사람이 배가 하도 고파서 물을 보니까 큰 양푼에 한 그릇 있는데 그 밑에 보니까 쌀같이, 쌀낱이 한 개 있어서 그놈 쌀낱 그것 하나 먹으려고, 그것만 건져 먹지는 못하고, 그물을 다 마시고 보니까 쌀낱이 없더라고. 자기 눈에 백내장이 와서 명씨가 박혀서 그게 거기 물에 비쳐서 하얀 것인데 그것을 쌀낱인 줄 알고 그 쌀 한 낱, 밥띠기 한 내끼를 욕심내서 그물을 다 둘러 마셨다고 하는 그런 말, 그와 같은 비슷한 말들이 많습니다.
제2차 대전에도 사람 없는 무인도에 파선해서 걸려 가지고 죽은 사람들이 있는데 모두 보니까, 처음에는 짐승이니 버러지니 잡아먹다가 나중에는 없으니까 모두 모래를 먹고 죽어서 배에 모래가 가득 가득 채여 죽었더라고.
사람이 먹는 이 문제가 중대한 문제입니다. 배 부르면 친구도 생각나고 부모도 생각나고 부부도 생각나고 남녀 이성도 생각나지만 그만 배가 고파 놓으면 그런 것은 아무 간 곳이 없습니다.
이런데 악령이, 악령이 사람들을 미혹시키기 위해서 사람들이 제일 절제하기 어려운, 아주 금욕하기에 어려운 이런 식욕을 금하고 또 인인 교제욕, 인인 교제욕을 금하고 하는, 이것이 제일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이걸 하나 주장을 해 가지고 '이래야 네가 좋은 곳에 간다. 이래야 네가 복을 받는다.' 사람들이 너무 쉬운 것을 말하면, 쉬운 일 해 가지고 복받는다 하면 마음에 믿어지지 않고 어려운 일 해서 복받는다 하면 사람들 이 인정을 하기 때문에 '네가 백 날을 산에 가서 호랑이 있는 데 가 가지고 산제를 지내라. 그래야 네 소원이 이루어진다. 또 네가 어떤 구제를 해라. 네가 3년 동안 새벽마다 찬물에 목욕하고 어떤 일을 해라' 이렇게 무슨 공이 드는 일, 힘이 드는 일, 힘드는 일을 그걸 마귀란 놈이 인생들에게 가지고 꾀우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의 그 본능은 자기가 무엇이든지 수월하고 편한 그런 일 하는 것은 가치 없고 힘들여 하나님을 섬기도록 이렇게 해 놓은 것인데, 그 본능이 그것이 죽지 아니하고 살아 있는 그 본능을 이용해 가지고 어쨌든지 힘드는 일을 시키면서 '이 일 하면 복받는다' 이렇게 하면 그 힘드는 일을 하면 복받을 줄 알고 말을 믿고 그렇게 할 터이니까 '무슨 인간이 힘드는 것을 하나 주장을 세워 가지고 네가 이렇게 하면 복받는다 요렇게 할까?' 마귀란 놈이 꾀워 가지고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고 이러면 네가 구원을 얻는다. 복을 받는다' 이렇게 말을 했으나 이것은 믿음을 떠난 자들이 이렇게 지금 주장하는 것에 미혹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 말을 결론으로 말하면 어떤 종류의 고행이라도 고행이라고 가치있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고행이란 말은, 고생하는 것이라고 가치있는 것 아닙니다.
사람들은 고생만 하면 가치있는 줄 알아 고생하는 이것을 가지고 사람들을 꾀워서 넘어지고 망하도록 그렇게 만듭니다 수월하고 좋으면 좋아하지만 이것은, 사람들이 좋아하면서도 수월하고 평안하고 이러면 이것은 좋아하면서도 마음에 늘 가책을 받으면서 '이러니까 뒤에 아마 앞으로 고생이 올 거다' 이렇게 마음에 염려스러운 그런 평안을 누리지만 무엇을 힘을 들이고 수고하고 고생하고 이런 일을 하면 '내가 이렇게 수고하고 고생하니까 이 다음에 무엇인가 좋게 안 되겠느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사람의 본능입니다.
제가 어떤 청년을, 나보다 나이가 조금 많은 사람 하나 아는데, 그 동네에서 산제를 지내면서, 매년 산제를 지내는데 그 사람이 산제 지내는 일을 늘 맡아 가지고 합니다. 자기는 큰 복을 받으리라 생각하고, 산제를 지내도록 그걸 책임 맡으면 나흘 동안 먹기는 횐죽만 먹고 또 매일 찬물에 목욕을 세 번씩 하고 또 입기는 삼베옷만 입고, 아주 제일 추운 한겨울에 가서 산제를 지내는데, 음력 정초이니까, 삼베옷 입고 새벽에 찬물에 목욕하고 계속해서 미음만먹고 그래 가 가지고 힘을 들여서 산에 가서 공을 들이고 산제를 지내니까, '내가 이렇게 힘드는 일을 하면 아마 모르는,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나에게 복을 줄 것이다.
산신이 복을 줄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생각해서, 본능적으로 자기가 수고하고 고생하고 이렇게 하면 반드시 그 댓가는 좋은 것이 온다 이런 본능을 이용해서 악령이 사람들을 미혹시켜 가지고 이런 주장들을 세우는 일들이 있게 됩니다.
그런데 그 뒤에 말씀하시기를, 2절에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이렇게, 이런 고생을 하면, 아주 고생을 하면, 어려운 일을 하면 복받고 구원 얻는다 이렇게 말하는 이자들은 양심이 벌써, 화인 맞았다 그 말은, 양심은 이것도 전부 어려운 말들입니다. 양심이 화인 맞았다 말은, 양심은 어디든지 자유하는 것이 양심입니다 양심은 아무 데도 붙들려 매이지 아니하고 어디든지 그것의 충격을 받지 않는 마음이 양심이라는 말입니다.
지남침이 어떤 쇠의 충격이라도, 많은 충격이나 적은 충격이나 충격을 받으면 정남을 가리키지 못하는 것처럼, 인간의 마음이 어딘가 충격을 받고 어딘가 붙들려 매이고 어딘가 그리 치우쳤으면 그 마음은 정평 정가를 못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의 마음이 원수의 일에 대해서는 자기가 그 사람을 미워하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대한 사건은 정평이 안 됩니다. 또 자기가 좋아하는, 사랑하는 자에게 대한 것은 또 거기 마음이 좀 끌렸기 때문에 정평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왜 정평 정가를 못 하느냐 하면 자기 마음이 자기에게 붙들려서 '이것은 내게 필요있다' 하면 거기 대해서는 정평 정가가 안 되고, '이것은 내게 해롭다' 하면 정평 정가가 안 됩니다. 또 '이것은 원수의 것이라' 하면 정평 정가가 미워서 안 되고, 사랑하는 자의 것이라면 또 그것을 너무 지나치게 좋게 생각해서 또 정평 정가가 안 되는 것 입니다.
그러기에 마음의 양심이라는 것은 첫째로 자기에게 붙들리지 않는 것이 양심이요 또 다른 피조물들에게 붙들리지 아니한 것이 양심입니다. 배가 고플 때에 음식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그만 정평정가가 떠나 버립니다. 배고플 때에 '아' 이렇게 판단이 되었던 그것이 배가 부르고 나니까 판단이 달라진다 그거요.
그것도 자기 때문에 그렇게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양심은 자기에게 붙들리지 않는 것이 양심이요, 어떤 피조물에게 붙들리지 않는 것이 양심이요, 자기와 피조물에게 붙들리지 아니하고 냉정스럽게, 아무것에게도 붙들리지 아니하고 아무것에게도 충격이나 자극을 받지 아니하고 그 사건이나 문헌에 대해서 비판하면 그것이 정평 정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디 붙들려서 안 되는데, 사람이 평소에는 그 일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평소에는, 하나 예를 든다면 신사에 절하는 것은 죄라, 신사에 절하는 것은 우상 숭배이기 때문에 죄라 이렇게 되었는데, 신사참배 안 하는 사람은 몇이든지 죽인다 이렇게 사형이라는, 죽인다는 그 죽음이라는 것이 턱 연결되어 가지고 있고 보니까 신사참배 이것을 해야 되나 안 해야 되나 하는 이것이 여러가지로, 단순하게 안 해야 된다는 판단이 되지 아니하고 또 해야 된다는 그런 판단, 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그런 의문 그런 것이 생겨져서 그게 우상 숭배 안 해야 된다는 그 판단이 아주 빈약해지고 허약해지고 이렇게 변동되어진다 그거요. 그것은 뭐이냐? 그 사람이 양심을 가지지 못했고 죽음이라는 거기 붙들린 것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바로 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양심이 화인 맞았다 그 말은 양심이 무엇에겐가 붙들려졌다 그말입니다.
양심이 무엇엔가 붙들려졌다.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라는 화인에 양심이 맞았다 말이오. 쇠를 불에다 달궈서 인을 탁 치면 이제 그 인친 것의 것입니다. 무슨 좋아서 화인을 쳐도 그러면 그만 그것이 좋다는 것이 벌써 그것이 좋다는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또 임자의 화인을 가지고 탁 인을 쳤으면 '아,이거는 아무것이의 물건이라' 하는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등급을 이거는 일등이라 하는 것을 무슨 공판에서 화인을 탁 치면 '아 이것은 일등으로' 다 그만 일등의 물건이 되어 버렸다 그말이오. 화인쳤다는 말은 그것의 것이 되었다 그거요.
그러면 우리 마음 양심이라는 것은 어떤 것의 것도 되지 아니하고, 어떤 것의 것도 되지 아니하고 자유롭게 모든 것을 비판하고 평가하는 것이 그것이 양심인 것입니다.
이런데 악령이 미혹을 시켜 가지고 사람들을, 사람들의 마음을 이런 것에게 붙들리도록, 불교는 불교라는 그 사상에 붙들리고 또 유교는 유교라는 사상에 붙들리고 어쨌든지 이런 것 저런 것 그런 것들에게 마음이 붙들리도록 해 가지고 붙들리면, 붙들리기 만 붙들리면 이제 그대로 그 마음은, 모든 비판도 그대로 되고 평가도 그대로 되고 소원도 그대로 되고 모든 방편도 그대로 되고 노력도 그대로 되기 때문에 그대로의 생활 그 대로의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 모든 이 종교들의 시발점인 것입니다.
모든 종교마다 사람들이 '그거는 하기 어렵다' 하는 그것을 반드시 하나인가 둘인가 가지고 있습니다. 가지고 있으면서 '이것을 해라. 이래야 복받는다' 하니까 어리석은 사람들은 '아, 그것 참 그렇게 하기가 어렵겠다. 어려운 것 보니까 그것 하면 복 받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어리석은 인간들입니다.
그런데 여기 3절에 말하기를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짐이니라」 이렇게 말씀을 밑에다가 해 놓으니까 '식물 그런 것을 금할 것이 없이 식물은 무슨 물건이든지 다 먹을 수 있다. 식물은 무엇이든지 다 먹을 수 있다. 하나님이 지으신 것은 다 선하매 믿는 사람이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무슨 식물이라도 다 먹을 수 있다. 하나님 말씀과 기도함으로 거룩하여진다. 또 혼인도, 혼인도' 혼인이라 말하면 절정을 가리켜 말하는 것인데 그 밑에 발치는 모든 인인 관계라 그말이오. 남자는 남자끼리 서로, 친구는 친구끼리, 또 집안끼리 형제끼리 뭐 이렇게 사람과 서로 사귀어서 관계를 가지는 것, 그러면 마지막에는 남자 여자의 이성 관계를 가지는 것, 이런 것은, '인인 관계를 가지는 것도 하나님이 다 지으신 것이고 믿음으로 가지면 관계없다. 또 모두 믿음이 모자라서, 믿음이 없어서 이런 관계는 가지면 안 된다 저런 관계는 가지면 안 된다....' 남녀의 관계도 별별 관계의 관계를 가지면서, 음식물 식물에 대해서도 별별 식물을 먹는 것, '그것 다 믿음 없어서 못 먹는 것이지 믿음으로 먹으면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믿음으로 먹으면 다 된다.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 선하기 때문에 믿음으로 먹으면 다 되고 또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 선하니 감사함으로 받으면 다 된다. 인인 관계도 감사함으로 받으면 인인 관계 못 할 것 없다. 감사함으로 받으면 인인관계 못할 것 없다.'(좀 어려운 말입니다. 어려운 말이오. 여기서 못 깨달으면 나가서 깨닫기 어렵습니다. 가서 주석들을 많이 사서 들춰 보십시오. 본 후면 알 것이라.)
이래서, 마귀가 인간은 본능에 하나님을 힘들여 섬겨야 된다는 요 본능을 하나님께서 지어 주셨기 때문에 이 본능이 있으니까, 무엇이든지 힘을 들여야 복받는다 하는 이 본능이 속에 들어 있으니까 이걸 마귀가 이용해 가지고 '네가 이렇게, 이것은 이래 힘이 들기 때문에 이러면 복받는다. ' 예를 들면 식물에 대한 것 또 인인 관계에 대한 것 이것이 아주 금욕하기가 힘드는 것이니까, 인제 이 둘뿐만 아니라 무엇이든지 '네가 복을 받으려면 꼭 한 달 동안·..' 석 달 열흘이면 백 일인데 '백 일 동안 네가 첫새벽에 일어나서 찬물에 목욕하고 하면 된다.' 또 그런 어려움을 하나 말합니다. '네가, 이는 꼭 네가 한 달 동안 만 해도 미음을 먹고 해야 된다.' 그러든지, '네가 한밤중 어두운 곳, 아주 한밤중 저 공동묘지를 지나가서 거기 가서 네가 공을 들이면 된다' 뭐이든지 어려운 것을 말하면 '하, 어려운 것이니까 이 것 하기만 하면 복받겠다' 이렇게 사람들이 .미혹을 받아 가지고, 벌써 빛이 없으니까 이런 미혹을 가지고 사람들을 미혹시키지, 또 이러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그것이 다 믿음이 없는 연 고요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그와같이 말하는 것이요 외식하는 것이 다.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은 다 선하매 믿는 사람이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 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함으로 거룩하여진다」 이러니까, 그거는 다 믿음 없는 사람들이 그렇지 이거는 뭐 먹는 거 식물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믿음으로 먹으면 되고 감사함으로 먹으면 된다.' 또 인인 관계도 어떤 것이라도, 어떤 사람하고, '공연히 사람을 삼가라 이러지만 어떤 사람이든지 친하지 못할 것 없다. 사귀지 못할 것 없다.' 심지어 혈육 근친에서도 '어떤 뭐 이성 관계도 할 수가 있다. 또 이중 삼중 십중이라도 할 수가 있다. 그거 다 믿음이 없어 그렇지 믿음으로 하면 된다. 또 우상의 제물이라도 암만 먹어도 된다. 그거는 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그렇지 믿음 있는 사람들이 믿음으로 먹으면 된다.' 또 이렇게 해 가지고 사람들을 멸망을 시킨다 그말이오.
하나는 인간에게 본능적, 수고하고 힘을 써야 된다는 이 본능을 이용해 가지고 어쨌든지 어려운 힘들이는 것을 말해 가지고 사람들을 미혹을 시키고, 또 여기 성경 말씀을 하나님이 이렇게 바르게 해 놨지만 마귀란 놈이 와 가지고 성경 말씀을 잘못 깨닫도록 해가지고 '아니다. 그것은 다, 보라. 성경에 외식하는 자들이, 양심이다 화인맞은 자들이 그렇게 하지 않느냐? 이러니까 얼마든지 인인관계는 상관 없다. 믿음으로 하면 된다. 얼마든지 인인 관계는 또 기도하면, 기도하면 다 사함받고 다 깨끗해진다.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기 때문에 다 선하매 믿음으로 이용하면 된다' 하는 이런 것으로 해석을 해서, 어떤 데는 붙들어 매므로 사람을 멸망을 시키고 어떤 데는 확 풀어놓음으로 사람을 멸망을 시키는, 이 마귀란 놈이 이렇게 역사하는 이것이 말세가 되어갈수록 심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말씀은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 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그러면 이 말씀을 가지고 해석을 삐뚤어지게 만들어 가지고 사람을 멸망을 시킨다 그거요.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셨지. 믿는 사람이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지. 그런데 믿는 사람이라는 이것을 그저 이름으로 믿는 사람, 또 말로 믿는 사람, 믿음의 표준을, 믿음의 정의를 삐뚤어지게 하기 때문에 이런 데에서 미혹과 혼돈이 생겨집니다. 믿는 사람이라 말은 하나님에게,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 말이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말씀을 인정을 하고 또 인도하는 대로 그대로 순종하는 그것이 믿음입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을,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인도하는 인도를 따르는 사람이라면 사람이나 식물이나 모든 것이 다 없어서는 안 될 하나님이 목적하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는데, 모든 것을 창조하셨는데, 또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때를 찬 경륜을 위해서 다 예정하셨다고 다 말씀하셨는데, 하나님이 예정을 해서 그 식물이네 앞에 닥쳤고 그 사람이 네게 닥쳤고 그 사건이 네게 닥쳤고 그 환경이 네게 닥쳤고, 이렇게 자꾸 네 현실이 변해지는 그 움직임그것이 하나님의 예정 속에 하나 있는 것이요, 또 너에게 지금 네 환경을 만든 부딪힌 모든 존재, 모든 존재가 하나님의 목적 곧 네 구원을 위해서 만든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네가 믿음이요,
그 다음에는 인정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이것은 이렇게 해라 저 것은 저렇게 해라' 빠짐이 없이 거기서 말씀을 하시고, 또 그보다 더 세밀하게 성령의 감화 감동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그 것을 빠짐없이 말씀을 하시나니, 이것을 깨닫고, 이걸 깨닫고, 그렇게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것이 이 시간에는 이것이 내게 와 가지고 등용되어 가지고 접선을 하고, 또 하나님이 예정해 놓으신 것이 여기는 이렇게 하라고 또 예정의 순서가 여기 와 가지고 이렇게 되고,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인 네 구원을 위한 것인 이 사실을 네가 깨닫고 보면, 모든 네게 부딪힌 것에 대해서 참 없어서는 안 될 필요한 하나님의 식물로, 하나님의 구원의 태속에, 구원의 태속에 네가 있는 이 사실을 깨닫고 네가 감사함으로 받으면, 감사함으로 받으면, 그 사실을 깨달으니까, 하나님이 영원 전 이 움직임을 내 구원 위해서 예정하셨고 영원 전 하나님이 태초에 창조하신 그 창조의 것이 내 구원 위해서, 이때 내 구원 위해서 여기서 등용되도록 이것이 대기해 있었고 이때에 등용되는 하나님의 광대하신 구원의 이 비밀을 네가 깨닫게 되면 네가 '참 감사합니다.' 이걸 깨닫기 전에는 네가 원망함으로 당하기도 쉽고 또 네 욕심에 합당하니까 감사함으로 대하기도 쉽고 또 네 욕심에 삐뚤어지고 주관에 삐뚤어지니까 불만 불평으로 대하기도 쉽고, 또 마귀란 놈이 너를 피우기 위해서 '이거는 고행이기 때문에, 고행이기 때문에 복받을 것이라' 해 가지고 고행주의로 또 이와 같이 해 가지고 복받을 것인 줄 알고, 그렇게 고행의 사상을 가지고 이것을 접선해서 고행 본위로 이걸 접촉을 하고, 또 어떤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귀가 미혹을 시켜 가지고 이것을 바로 뭐이든지 방종 방탕으로, 방종 방탕으로, '어쨌든지 뭐이든지 믿음으로 하면 못 할 것 없다. 믿음으로 하면 인인 관계 못 할 것 없다. 믿음으로 하면 못 먹을 것 없다. 믿음으로 하면 못 쓸 것 없다.' 이렇게 아주 전부 다 풀어 놔서 마구잡이로, 무엇이든지 마구잡이로 '어떤 것이라도 다 관계없다. 믿는 마음으로 하면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 선한 것이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라, 선물로 주신 것이라 하고 하면 안 될 것이 없다.' '한 남자가, 한 여자가 아무리 많은 여자를, 아무리 많은 남자를, 아무리 또 가까운 혈육을 또 어떻게 해도, 또 식물을 우상의 제물을, 이런 물건 을 저런 물건을 또 도둑 물건을 뭣이 어떻게 한다 해도 물건 사용하는 것 상관없다.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믿고 하면 된다' 이래 가지고 또 사람을 방종하게 해서 멸망을 시킨다 그거요.
이러니까 마귀란 놈이 공연한 고생을 시켜 가지고 어렵게 만들어 가지고 망치고 또 너무 쉽게 만들어 가지고 망치고, 쉬운 것도 그 것도 아니요 어려운 것도 그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해 놓으셨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네가 보면 하나님 말씀이 어떻게 해서 존재했으며 어떻게 해서 그 순서가 이루어지며, 그러면 이 존재 이 순서가 이루어지는 데는 네가 어떻게 해야 될 것을 하나님께서 명백히 가르쳐 놓으셨고 또 그보다 더 세밀히 영감이 가르쳐 놨으니까 이걸 깨달아지면, 하나님의 가르치신 그대로 인정하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그대로 따라서 행하는 이 믿음으로 행하는 이것만이 네가 바른 것이고 구원 얻는 길이지, 이것이 뭐이냐? 이것이 그 모든 데에서 경건 연습이다. 그 모든 데에서 경건 연습이다.
그 모든 데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며 어떻게 기쁘시게 하며 어떻게 영화롭게 하는 이 연습이다. 이것 연습하라고, 하나님을 위하는 것 곧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 위하는 그 실질의 것은 하나님이 법칙과 제도를 내놓은 거기 하나님의 인도를 딱딱 따라서 그래 하는 그것이 하나님 섬기는 것이요 하나님 위하는 것인데, 하나님을 위하는 하나님이 내 놓으신 그 법치대로 하나님을 위하는 이 일을 연습하라고 한 현실 한 현실, 한 현실 한 현실, 한 물건 한 물건, 한 인간 한 인간, 한 식물 한 식물을 하나님께서 너에게 접선시켜서, 이 사람을 접선을 시키니까 이 사람을 가지고 이 사람 대하는 일에 하나님 위해서 바로 하는 이 일 하나 연습하고, 이 물건 닥칠 때에 하나님 위하는 일 바로 하고 이것 경건 연습하라고 이래 놓은 것인데, 이 경건 연습 이것을, 경건 연습은 어디서 나오느냐? 믿음에서 나온다. 믿음은 어디서 나오느냐?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안에 영감이 들었기 때문에 말씀과 영감에서 이 믿음이 나온다. 믿음이 나오면 정말로 자기에게 부딪힌 그 현실에 대해서 이것은 '여기서 어쨌든지 고생을 해야 되겠다. 아, 여기서는 어쨌든지 고생보다는 어쨌든지 좋게 해서 해야 되겠다. '좋게, 수월하고 좋고 기쁘게 해야 되겠다 하는 이것도 다 망하는 길이요 저것도 다 망하는 길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하면 거기대해서 네가 깨달아진다. 이것이로구나 하는 그것을 바로 깨달아졌을 때에는 네가 진정 감사함이 생겨질 것이고 또 그렇게 그걸 깨닫고 그대로 받으면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이것은 나에게 저주인가 보다.' 저주가 아니다. 그것도 버리면 안 된다. 그것에 네게 필요해서 왔다. 또 '이 사람은, 여기 아름다운 남자가 하나 왔으니까, 여자가 하나 왔으니까 이것은 내가 친할것이다. 친할 것이라.' 그것도 마귀 멸망의 길이다. '아, 이거는 안 친해야 된다.' 안 친해야 된다는 그것도 멸망의 길이다.
다만 거기서 네가 깨달으면 거기 대해서, 이 미남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된다, 미인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된다. 이 원수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된다, 친척에 대해서 어떻게 된다 하는 거기 대해서 빠짐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해 놓은 것이 있다. 그걸 깨닫고 네가 거기 따라서 그것을 접촉을 한다면, 거기서 상관을 가진다면 거기서 버릴 것 하나도 없다.
네가 네 현실에서 하나도 버릴 것 없이 바른 접촉을 해 가지고 하나님 같은 온전함이 되고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는 이 경건을 지금 연습하고 있는 것인데 이걸 모르고 어렵게만 하면 되는 줄 알고 쉽게만 하면 되는 줄 알고 이래 가지고‥‥ 여기서,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데에서 기독교가 막 파선이 되어 가지고 있습니다. 파선이 되어 가지고 있어요. 이것은 참 말을 꼭 해 줘야 되는데, 이것 말해 주는 것이 이것이 녹음에 그대로 나가니까 나가면 지금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전부 원수가 되고 반대가 되고 자꾸 이단시해 가지고 몰아 붙인다 그말이오.
이름을 말하면, 실명을 말하면 안 될 것이고, 성경의 말씀대로 거짓 선지자가 가득 찼소. 여러분들, 거짓 신학자가 가득 찼소. 거짓 선지자가 가득 찼소. 거짓 목자가 얼마나 가득 찼는지? 이걸 알아야 됩니다.
이래서 그 다음에 말씀하시기를 「네가 이것으로」 이것으로라 말은 위에라 말이오. 돌뱅이가 있으니까, 돌뱅이 그거는 끊어진 게 아니오. 돌뱅이는 좀 구별하기 위해서 한 것입니다. 「네가 이것으로」 위에 지금 말한 대로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군이 되어」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군이라 하니까 이 선이라는 정의가 어떻게 거짓부리 되어 가지고 있는지, 선이라는 정의를 이거 바로 세워 나가기가 얼마나 힘드는지 몰라요. 암만 말해 봤자 그만 새가 와서 까먹어 버린다 그말이오.
선이라는 선의 정의는 우리를 구속하신 조물주요 주재자요 창조주시요 만왕의 왕이신 그분 중심 그분 위주를 가리켜서 선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선이라는 것은 인간들 모임에는 다 있습니다. 살인 강도들도 저거끼리 모여 가지고 '이것이 선이다.' 저거도 주장하는 선이 있습니다. 불교에도 선이 있습니다. 이런 선인 줄 알고, 이제 성경 말씀 이거는 하나님, 창조주 조물주 구속주 위주 중심 이것이 선이요, 피조물 중심은, 피조물 중심은 국가 중심도 민족 중심도 가족 중심도, 뭐 부모 위해서는 자녀가 죽으면 효성이다 부모 위한 그 중심, 여자가 남편을 위해서 죽은 거는 열녀라 그것도 썩은 중심, 그 중심 다 썩었다 그말이오. 어떤 중심이든지 이것은 다, 피조물 중심은 악입니다.
이런데 「네가 선한 일군이 되어」 선한 일군이라는 말은, 불교에서, 유교에서, 세상 모든 이 종교에서, 이 세상들이 말하는 그 선한 그런 사람이 아니라 그말이오. 선한 일군이라 말은 구속주 창조주하나님 중심 위주의 일군이 되었다 그말이오!
내가 어제 아침에도 말한 것이 참 여기 강의하는 양성원의 강사는, 그 강사가 바로 깨달으면 눈이 바짝 뜨일 것이고, 왜? 한 시간,종일 한 시간 내내 했는데 자기는 정죄만 받고 멸망만 받고 하나님 앞에 저주만 저축한 그 생활이 되었기 쉬울 것이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것을 깨달으면 막 감사해서 못 견딜 것인데, '또 지금 목사님은 강사들 친다. 시기 질투한다. ' 시기 질투는 어디다 시기 질투를 하겠소, 하기를? 저거가 잘못 가르치면 나 해 놓은 일이 다 헛일이고 그게 바로 되면 좋을 것인데 무슨 시기 질투를 하겠소? 제가 시기 질투의 인간이기 때문에 그게 생겨진다 그말이오. 자기 주관에 따라서 보름달이 다, 아무 상관없는 좋은 밝은 달이지만 슬픈 자가 보름 달 보면 슬퍼지고 원수 보는 그 마음이 보름달 보면 자꾸 악해지고 자꾸 그리 되는 것은 자기 주관에 따라서, 자기 주관은 피 가수라는 말이오. 피가수가, 피가수가 다른 데 따라서 가수는 꼭 같은 것 같아도 피가수가 둘이면 달라지고 하나면 달라지고 서이면 달라지지 않습니까? 「선한 일군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믿음의 말씀과」 이 믿음의 말씀 여기 전부 결합이 다 되어 가지고 있는데 이걸, 믿음을 '인정만 하면 된다.
믿사옵나이다 하면 된다. 믿어지면 된다. ' 뭐이든지, 뭐이든지, 사람을 죽이고라도 이거 '이것이 뭐이라 믿으면 된다. 믿으면 된다' 이런 허무맹랑을 가지고 사람들을 자꾸 허영과 허욕의 사람들을 만든다 그말이오. 믿음이라는 것은 정확무오합니다.
「믿음의 말씀과 네가 좇은 선한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네가 이렇게 주장해 가지고 남을 가르치면 남을 가르치는 그것이 남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남 가르치는 것으로 네가 가르침 받는다. 남을 구원하는 것이 곧 네 구원이 되어 버린다. 제가 잘못 가르치는 그것이 그 사람 가르치는 것보다도 저 가르치는 것이 먼저 일호, 그 다음에 남 가르치는 것이 이호로 이 실상이 이루어져 가는 줄을 모르고 '나는 이렇지만 내가 속은 이래 두고, 이래 거짓말 하지만,나는 이 사람 속여서 거짓말하는데 거짓말은 이 사람은 속여서 거짓말했지 내야 거짓말인 줄 알기 때문에 나는 속지 않는다.' 거짓말한 거기서 제가 먼저 속고 그 사람은 이호로 속습니다, 이호로. 「양육을 받으리라」
7절에 이 말씀 있습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가 무엇입니까? 망령된 것이 뭐입니까? 망령된 것은 자타를 망하게 하는 것이 망령된 것입니다. 자타를 망하게 하는 정신 없는 일이라 그말이오. 내가 어제 말 들었는데, 어떤 사람이 '그 사람이 노망했단다. 노망을 했단다.' 망령이 났어. 정신 없는, 「망령되고 허탄한」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 이것의 정의를 알았으면 사람들이 깨어날 것인데. 망령이란 뭐이 망령인가? 망령은 정신 없는 말이라 말이오. 자타 망하는 말이라 말이오.
어떤 일이 망령인가? 하나님을 근거하지 아니한 모든 것이 망령입니다. 하나님께 딱 들어붙은 그것이 생명이요 영생인데 하나님께 붙지 아니한 그것이 다 망령이라. 망령 하나님께 떨어진 것. 하나님 잊어버렸다 말이오. 하나님 떨어졌다 말이오 허탄한 것이 뭐입니까? 허탄한 것. 공연히 허공에다, 허공에다 뿌리를 박았어. 헛된 데서 나왔다 그말이오. 창조주 이분에게서, 이분에게서 뿌리박아서 이분에게서 뻗어 나온 것이 아닌, 이분에게서 뿌리박아서 뻗어 나온 것이 아닌, 이분에게 뿌리박은 것이 아닌, 이분으로 인해서 발족된 것이 아닌 어떤 인간으로, 어떤 뭐 민족으로, 어떤 팻말로 어떤 걸로 해도 그것은 다 헛된 데에서 나온 것입니다. 헛된 데서 나온 것.
이종교가 다 헛된 데서 나왔다 말이오. 탄생이라는 날 탄(誕)자라, 날 탄 자.
헛된 데서 나왔다 그말이오. 헛된 데서 나온 것.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라야 되는데 하나님에게서 그게 끊어져 버렸으니까 하나님에게 나을 수 있습니까? 이러니까 중보자,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자가 있어 가지고 하나님과 우리와 연결시킨 자가 예수 그리스도라 그말이오. 여기서, 연결된 여기서 나온 것이라야 되는데 여기서 나온 것이 아닌 것, 어렵기만 하면 되는가? 쉽기만 하면 되는가? 인간들을 좋게만 하면 되는가? 인간들을 고생만 하면 되는가? 마귀란 놈이 인간들을 공연히 어렵게 만들어 가지고 인간들을 피우고, 어렵게 만드는 데 피우는 데의 그 반대하는 자는 쉽게 만들어 가지고 쉬운 것으로 죄우고, 어려운 것도 멸망이요 쉬운 것도 멸망이요, 어렵든지 쉽든지 자존하신 그분으로 말미암은 근거라야 되고 거기 접선되어야 되고 거기 연결이 되어야 생명입니다. 생명은 하나님과 연결이 생명이라는 것도 여러분들이 자꾸 들으니까 쉽지만 이 말이 어디 있는가봐.
이러기 때문에 「선지자가 자기 고향에서는 대접을 못 받는다」 그말은 자꾸 들으니까 그 말씀을 예사롭게 들어서 업신여긴다 그말이오. 교훈의 효력을 저희들이 보지 못한다 그말이오.
「허탄한」 아무 근거 없는, 근거 없는 그 말은, 근거 없다 그 말은 권위 없는, 책임 없는, 실상 없는 그말이오, 실상 없는. 안 돼, 암만해 봤자. 불교 암만 믿어 봤자 없어. 이런 인간들의 이런 것을 암만해 봤자, 뭐 저거야 도덕도 말하고 삼강오륜도 말하고 별별 것을 다 말하지만 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멸망하는 것뿐이지 구원은 하나도 없어. 하나님께 딱 접선이 되어야 되는데 그분에게 타락했으니까 접선이 되는가?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인해서 접선이 돼. 그분의 피를 의지해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물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더듬어 가지고 성신의 감화가 와야 접선이 된다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성령과 물과 피가 우리에게 증거한다. 이 셋은 하나라」 말씀했습니다.
이런데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 신화가 무엇입니까? 신화는 없는 것인데 사람이 꾸며 낸 것이 신화입니다. 없는 것인데 꾸며 낸 것 이 신화라.
그러기 때문에 나라마다 족속마다 역사 중에 있는 그것만 가지고는 너무 세월이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시간이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그 위에 천 년도 들이대고 만 년도 들이대고, 어떤 데 보니까 무엇을 호 수를 해 왔는데, '아, 그렇게 집이 많나?' 천 일호 천 이호 이랬는데 '그렇게 집이 많나?''천은, 천은 없는 것인데 백지 숫자를 바꿔 가지고 천 일, 일호 그것부터 있는 것인데 천 백호의 백 개뿐인데 천은 외의 것 붙은 것입니다.' 그게 내나 신화 한가지라 말이오. 그와 같이 붙여 놓은 것들이 신화라 그말이오.
'이것은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과학은 하나님이, 하나님이 과학의 이치를 만들어 왔지만 사람이 어떤 사람의 과학은 신화도 되고 허탄도 되고 망령도 되고, 어떤 자의 과학은 그것이 믿음도 되고 하나님의 법칙도 됩니다. 조물주를 깨달아 조물주에 연결된 그 과학을 '하나님이 이렇게 만들어 왔다. 이것 봐라. 이것 봐라.
하나님이 이렇게 세밀하지 않느냐? 이렇게, 버러지 한 마리 만들어왔는데, 아무리 요새 의학이 20세기에 발달이 되었다 하지만 버러지 하나에 대한 것을 완전히 다 알지를 못할 만큼 이렇게 세밀하게 만드시는 이분이시니 네 심정 골수까지 다 폐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 이래 가지고 이 과학으로 '하나님' 저 과학으로 '하나님' 이래서 '아, 그것 보니까 하나님 과연 계시는구나' 이 모든 것을 자연 계시를 만들어 가지고 하나님을 증거하고, 자기가 무슨 뭐 과학을, 이 과학을, 이 과학을 가르치면서도 하나님, 저 과학을 가르치면서도 하나님, 이래 가지고 그것 배우고 보니까 '아이구, 하나님이 확실하구나. 확실하구나. 든든하구나. 같이 계시는구나.' 하나님께 더 들어 붙이고 더 깨닫게 하고 이러면 자기 한 일이 참 헛일이 아닌데, 이일을 하라고 이래 말하면 마귀란 놈이 와 가지고 얼른 그만 어려운 것으로 쉬운 것으로, 또 시기로 '이게 시기다. 이게 질투다. 이게 너 미워서 공격이다.' 요놈이 와 가지고 이것이다 해 가지고 사람을 피우고 저것이다 해 가지고 사람을 꾀워 가지고 망친다 그말이오.
왜 지난번에 우리가 공회 연석회의에서 한 것이 참 복되고 좋은 길인데 무엇 때문에 그것을 오해 곡해를 딱 만들도록 해 가지고‥‥ 제가 아직까지 알기로는 제 후배에 대해서 나무랄 때에는 그것은 참 내가 희생하고 나무랍니다. 그 사람이 듣기 싫어하는 줄 알고 하지만 내가 이 말 안 하면 하나님 앞에 벌받는다 하는 희생을 가지고 나무라는데 이것을 인신공격으로 받아 가지고 떡 꾸중 들으면 그 사람에게, '봐라. 이게 참말이다. 나도 과거에 그럴 때에 고치니까 복이 되더라.
들을 때는 좀 마음에 불쾌했지만 나중에 보니까, 그대로 고치고 보니까 참 복이더라. 이래라.' 이래야 될 터인데, 속삭거려 가 가지고 저 다방에 가서 '그것 참, 오늘 참, 오늘 한번 당했제? 당하니까 안 좋더나? 당해 봐야 알아. 섭섭한 걸 당해봐야 알아. 나도 그전에 당하니까 섭섭했어. 섭섭하지? 이렇지 않느냐? 이거 뭐 교훈이 아니라 인신공격이라. 이래라, 저래라.' 그것 제가 경험자이니까, 타락의 경험자니까, 멸망의 경험자니까, 교훈을, 사랑을, 이것을 미움으로 이렇게 이렇게 곡해해 가지고 오해해 가지고 받은 경험이 있으니까 그래 가지고 피웁니다.
이러니까 이것으로 하나 돼.
예수님을 죽이자는 일로 빌라도와 하나는 뭐이요? 헤롯과 둘이 당일에, 원수인데 당일에' 그만 친구가 돼 버렸어. 옳은 것을 매장시키는 데는 아주 단합되는 것이 가속도로 강해지는 것입니다. 이래가지고 멸망합니다.
허탄한 신화가 무슨 신화입니까, 허탄한 신화가? 신구약 성경 말씀 외에는 전체가 신화인 줄 알아야 됩니다. 허탄한, 허탄한 것인 줄 알아야 됩니다. 그게 다 망령인 줄 알아야 됩니다. 신구약 성경말씀 밖에는 전부 다 이것이라. 이런데 이것을, 살아라. 예수님의 대속으로 살아라. 이것이 다 망령이요 허탄이요 신화인데 이것이 하나님에게 복종하고 그에게 좇으면, 믿음이면, 그에게 소속이 되면, 그의 것이 되면 다 살아나. 우리의 영육이 다 죽은 것 아니오? 죽었는데 우리 영이 죽은 것이 이것이 살아나는 이치나 그 이치나 꼭 같습니다.
이제는 주의 것이 되어 버리면 돼. 주님에게 피동되면 돼. 주님에게 피동되면 버릴 것 하나도 없어. 그것도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것이라. 이런데 이것을 근원에 연결된 그 줄을 끊어 버리고 그 줄을 떨어져서 허탕 방탕하고 이렇게 지금 탈선되어 나가기 때문에 모든 것이 다 사망한다 그말이오. 예수님이 오시면 이게 다 불타버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세에 약속이 있느니라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하도다」 이것 저것 모든 존재는, 네가 경건 연습하라고 밥도 다 짓고 또 남자도 다 짓고 여자도 짓고 원수도 다 짓고 친구도 다 짓고 가까운 가족도 다‥‥ 너거 가족이면 너거 가족으로 뭐 너거끼리 재미보라 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경건 연습, 먼 데서 연습하라 가까운데서 연습하라 여기서 연습하라, 경건 연습 이것 하나 해서 경건 달성하기 위해서 이 모든 것이 존재했고 모든 순서가 예정된 것이다 하는 말씀이오.
경건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경건이라는 것은 진리대로 행한다고 경건 아니오. 진리대로 행한다고 경건 아니오. 동기와 목적이 하나님 중심으로 진리대로 해야 경건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님 위주로 한다고 해도 진리 아니면 또 안 됩니다. 하나님 중심 위주로, 영감 진리대로 된 그것이 경건이라 그말이오. 그자를 연습합니다.
그러기에 바로 깨달으면, 권찰이 바로 깨달으면 그 식구에게 미리 평소에 한 마디씩 해 주면 그걸 발길로 차 보십시오. 다른 구역으로 가는가? 자기가 발로 차 보십시오, 가는가. 안 갑니다. 딴 교회로 가지 않습니다. 절대 안 갑니다 택한 자라면 안 갑니다. 이걸 몰라서 가지. 그러니까 가르치기를 잘못 가르쳤다 그말이오.
교회 오면 귀를 열어서, 듣는 귀를 열어 가지고 한 마디씩 들을 수 있는 자를 만들어야 되는 것이지, 끌어다 놓고 자기는 꾸벅꾸벅 졸아 버리고, 자기에게 안 된 것이 뭣이 전달이 됩니까? 앞서 가고 뒤에 따라온다 하는 그 말이, 자기가 먼저 되어야 그 다음에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리 안 하면 안 돼. 그렇게, 넘어가는 일은 없어. 넘어가는 일이 없기 때문에, 오면 귀를 열어서 한 마디씩 듣게 되면 한 달만 들어도 네 마디 들어. 네 마디만 들어도, 다섯 마디만 들어도 일만 방언보다 낫다 했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