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4 07:41
경건
1981. 11. 11. 수야
본문 : 디모데전서 4장 6절 - 10절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군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좇은 선한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만하도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여기에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어떻게 네가 하나님의 일을 해야 된다 하는 그것을 초두에 말을 했습니다. 믿음의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람들을 기루는 그런 방편도 있고 또 망령되고 허탄한 말들 신화들 이런 것을 가지고 사람들을 양육하는 그런 방편도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람을 양육하는 것과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 망령된 말 허탄한 말 신화의 말 이런 것을 가지고 사람을 양육하는 그런 방편 둘이 있는 것을 여기에 말씀했습니다.
믿음의 말씀으로 양육하는 것은 경건을 연습하는 것이고 망령된 말 허탄한 말 신화의 말 이런 말을 가지고 사람을 양육하는 것은 다 육체의 연습이라 그렇게 마지막에 결론을 지웠습니다. 망령된 말 망령된 지식이 무엇인가? 그것은 간단하게 해석해서 믿음의 말씀 믿음의 지식에 반대되는 것들입니다. 그것을 총칭해서 하나님의 지식을 떠난 모든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지식들입니다.
세상에 과학이 좋지마는 과학은 그것은 실물의 것이요.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과학이라는 그 지식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지식에게 다스림을 받으면 그 지식은 보배입니다. 그러나 그 지식이 하나님을 부인케 하고 멀리하게 하면 그것은 음행의 포두주도 되고 망령된 지식입니다. 또 그것들이 다 허탄한 말이오 지식입니다.
왜? 인간에게 알속 있는 지식이 되지 못하고 유익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유는 사람은 이 세상으로 끝나는 사람이 아니고 사람은 무궁을 향하여 시작하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남아 있는 무궁이 있는데 하루밤 나그네와 같은 이 세상만을 기준해서 말하고 가진 지식들이기 때문에 다 그것은 속이는 지식이요. 허망한 지식입니다.
신화는 어떤 게 신화인고 하니, 아닌 것을 사람들이 꾸미내 가지고 사람들의 그 인기를 끌고 마음을 유혹시켜 주는 그런 모든 말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것이나 지금 지어낸 것이나, 그런 것을 다 신화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믿음의 말씀은 어떤 게 믿음의 말씀인가? 하나님을 쫒는 지식, 하나님을 딸른 지식, 하나님을 본받고 닮는 지식, 하나님과 연결되는 지식 그 지식을 가리켜서 믿음의 말씀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것을 그 밑에 믿음의 지식의 역사를 경건이라고 말했고 망령되고 허탄하고 신화의 이 지식에 행동을 가리켜서 육체의 연습이라 그렇게 여기에 표현했습니다.
육체의 연습도 좋고 유익이 있지마는 그것은 잠깐있다 약간 유익이 있다. 그러나 경건을 연습한 것은 금생에도 유익하고 내세에도 유익하고 영원무궁토록 유익하다 말씀했습니다. 간단하게 연습은 우리 이 마음과 몸에는 온갖 요소가 들어 있습니다.
(안 들려. 안 들려요. 그러면 무슨 소리 그 큰 소리가 나오노) 마음에도 여러 가지 요소가 있고 몸에도 여러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이런 이런 그 기능을 이런 기술을 이런 기능을 그 요소에다가 넣을 수 있고 저런 기능을 넣을 수가 있어서 그 요소가 이런 기능으로 화해지고 저런 기능으로 화해지는 그것을 가리켜서 연습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다 같은 머리를 가지고 있고, 몸을 가지고 있고, 마음을 가지고 있지마는 어떤 사람은 이 과학 이라는 그 학문을 연습을 합니다. 기억 니은 디귿 또 뭐 영어니 뭐 뭐 독일어니 이런 걸 자꾸 어학을 자꾸 이걸 처음에는 모르지마는 단어를 또 외우고 외우고 또 기억하고 기억하고 이러면 그게 연습입니다.
연습해서 어떤 사람은 어학을 연습해서 여러 나라 말이 그 이 두뇌 속에 다 박혀 가지고 그 연습이 두뇌의 요소에 다 박혀서 기억도 되어 있고 또 거기에 대한 모든 이치도 알고 있고 또 입술로 가지고 자꾸 이렇게 말을 해서 대화를 하면 그 입이 또 그 다른 나라 말을 하는 그런 연습하 돼서 혀가 잘 돌아가고 하게 됩니다.
학문을 연습하는 사람도 있고, 과학을 연습하는 사람도 있고, 또 도덕을 연습하는 사람도 있고, 윤리를 연습하는 사람도 있고, 이런 저런 기술 그것도 다 과학 속에 들어가기는 들어간 건데 이런 기술을 연습하는 사람도 있고 저런 기술을 연습하는 사람도 있어서 사람이 어떤 걸 연습하든지 연습하면 그것이 자기 마음에 요소에 베이고 몸의 요소에 베이서 그 기능을 가지게 되는 것이 그것이 연습인 것입니다.
다 같은 키도 같고, 체중도 같고, 머리도 같고 꼭 같은데 한 사람은 그 속에 요소가 그대로 있고 하나도 연습을 하지 안했습니다. 연습하지 안해서 그 사람은 기억 자도 모르고 니은 자도 모르고 아무 것도 할 줄을 모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똑같은 사람이지마는 보기에는 뭐 머리가 꼭같은 머리지마는 그 머리는 연습을 많이 해서 그 굉장합니다.
뭐 소련이 크고, 미국이 크고, 중공이 크고, 일본이 크고 하지마는 아주 그 머리에 인간이 가지지 못한 굉장한 것을 연습해서 그 사람의 한 머리로 무엇을 만들어 내면 그만 세계가 그 앞에 굴복을 할 수 있는 그런 머리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이러니까 어떤 사람은 속에 아무 것도 없어. 그 사람은 머리는 뚱뚱하이 크지마는 속에 연습을 안해서 아무 것도 없어. 그 말하기를 '아 그 사람은 골이 퉁빈 사람이다. 그 사람은 그 골이 비었다. 골에 아무 것도 골에 두골에 아무 것도 안 들어 있다.' 또 '그 사람은 그 두골에 불경만 들어 있다.' '그 사람은 두골에 이 악기를 다루는 그 악기에 대한 기술만 들어 있다.' 사람이 그 머리 속에 다 같이 외모는 같지마는 그 사람이 연습하는데 따라서 그 머리에 들어 있는 것이 다릅니다.
또 손도 똑같은 손이지마는 똑같은 손이지마는 아 그 사람의 손은 사람이 곧 (죽는다고 하) 죽는다고 하는데 칼로 가지고 사람을 슥슥 그리 가지고 병을 끊어내 버리고 딱 집어 놓으니까 그만 성한 사람이 됩니다.
그러면 사람이 보기에는 머리도 같고 몸띠도 같지마는 그게 연습해 가지고 자기 이 심신 속에 담겨 있는 그 실력 그 실력대로 한 사람은 나라에서 어떤 강대국이라도 그 나라의 반을 주고라도 그 사람을 사올라고 데려올 수만 있으면 데려오려고 이래 가지고 그 사람 소원대로 다 해 주고 그 사람이 딴 데로 빠져 나갈까 싶어서 온 전국에 국방보다도 그 사람을 더 방어를 해 가지고 이래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딴 데로 못 가게 안 빼앗기려고.
그래 우리가 이 사람들의 심신이 연습하는데 따라서 똑같이 보이기는 보이지만 다릅니다. 요새는 저 변두리에 가 가지고 아이들 요만하이 하나 육 학년될까 육 학년되도 이래도 이거 싶어 보지 못합니다. 꺼트머리는 조그마하지마는 그것이 무슨 연습을 해 가지고 있는지를 모른다 그기요.
나 언제 한번 그 테레비를 보니까 음식점에 그 심부름하는 아이가 조그만한데 그 주인은 아주 뚱뚱하이 크고 이런데 이 뭐 주인이 고만 그 아이한테 좀 무리하게 잘못하니까, 아 고게 그만 쪼만한 것이 주인을 그 나무래니까 주인이 이놈의 새끼 이래 주먹으로 때려주니까, 아 딱 때리주니까 때리주는 손을 거머쥐고 훼탁하니까 주인이 저 뚝뚝 떨어진다 말이오.
떨어지니까 분하지만 조그마한 조게 조 이래 또 달라들어 가지고 그만 위에서 그만 자라 뭐 솥뚜껑으로 자라 잡듯이 그래 그만 디리 덥쳐 버립니다.
덥쳐버리니까 또 어쩌니까 또 휘득 저기가 떨어져. 그래 가지고 그 사람이 꼼작을 못하고 항복하는 거 봤어. 그걸 연습을 해서 그렇습니다.
이러니까 저 변두리 가서 이 조그만한 오륙 학년 돼도 그걸 싶어 보지 못한다 그말이오. 그게 지금 무슨 연습해 가지고 있는지 그 팔둑은 보면 불끈 거머쥐고 불라 버리면 부러질 것 같고 고걸 뭐 들어서 그만 내 던지면 던질만 해도, 그게 뭐 어떻게 연습을 해 가지고 있는지 다 같은 사람이지마는 그 머리에 뭐이 담겼는지를 모른다 그말이오. 뭐이 담겨 있는지.
이런 것이 육체의 연습니다. 육체 연습은 어떤 것이 육체 연습인고 하니 경건 연습에 정 반대가 육체 연습입니다. 경건 연습에 정 반대가 육체 연습이요.
과학을 많이 연습해 가지고 대과학자가 된 그것도 육체 연습이요. 세상에 있는 인간의 대가리에서 나온 문학을 많이 연구해 가지고 문학을 연구 해 가지고 문학을 그 안에 담은 그거는 또 문학 연습이요. 천인 만인이 말한 신학을 다 연구해 가지고 신학을 또 머리 담은 그거는 신학 연습이요. 사기 연습, 그 사람 인체를 치료하는 의사 연습, 뭐 별별 연습, 또 정치 연습, 또 노래 잘 부르는 연습, 뭐 별별 연습이 꽉 찼습니다.
그러나 경건 연습이 아닌 그 연습은 유익이 있기는 있지마는 시간적으로 그 유익이 오래 유지를 못 합니다. 잠깐이지 유지를 못 합니다. 또 그 연습이 시간뿐만 아니라 그 연습의 효력이 있어 봤자 항상 저주 아래 거 사망 아래의 거 죄 아래의 거 그것 밖에는 효력을 못 나타냅니다.
이러니까 그런 연습은 시간적으로도, 가치적으로도, 효과적으로도, 또 영광적으로도, 존귀적으로도 그 가치가 극히 작다. 그러나 경건을 연습하는 것은 금생과 내세에 영원무궁토록 유익이 된다.
경건 연습은 무엇이 경건 연습인가? 믿음의 말씀 그 연습인데 경건 연습은 어떤 게 경건 연습인고 하니 경건 연습은 처음에는 경건이 안되요. 안되니까 또 경건을 또 연습하고 연습하고 연습하면 나중에 경건이 숙달이 돼 가지고 아주 그 사람 보기에는 그 사람이나 그 사람이나 꼭같은 예수 믿는 사람 같지마는 경건 연습의 실력이 속에 연습해 가지고 속에 경건의 실력이 있는 사람 있고 없는 사람 있어서 그 차이가 많애.
그러면 경건 연습은 어떤 것이 경건 연습인가? 그 연습하는 법칙은 그 연습을 하는 그 법칙은 신구약 성경에 우리에게 기록해주셨습니다. 경건을 연습하는 경건을 이 종류의 경건도 연습하는 것을 신구약 성경에 기록해 줬고, 저 종류에 경건 연습도 신구약 성경에 기록해 줬고 그 경건 연습하는 그 모든 연습의 방편을 신구약 성경에 우리에게 기록해주셨고 또 신구약 성경 안에 내재하는 영감, 영감이 또 이 경건 연습에 대해서 이제는 부족함이 없이 다 완전히 경건 연습할 수 있도록 이렇게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경건을 연습하는 데에는 어떻게 해야 되나 연습하는 그 방편을 영감 도리가 경건을 연습하는 방편이기 때문에 이 방편만 하면 족합니다. 그러면 경건은 어떤 게 경건인가? 경건은 첫째 하나님의 크심을 자기가 인정하는 연습입니다. 크신 하나님은 어떻게 크신 분이다. 또 하나님은 어떻게 두려우신 분이다. 또 하나님은 사랑이 무한하신 분이다. 지혜와 지식이 능력이 무한하신 분이다. 그분은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다. 모든 것의 주재되신 분이다. 그분은 계시지 않는 곳이 없으신 분이시다.
이렇게 그 외에도 하나님이 어떠한 어떤 분이신 것을 글을 배우듯이 마치 이 과학자가 처음에 글자를 배우고 그 뒤에 한 이치 두 이치 자꾸 배워 가지고 머리 속에 담아서 나중에 과학자가 되는 것처럼, 하나님에게 대한 지식을 자기가 자꾸 배웁시다. 성경을 읽으며 배우고, 또 새벽으로도 배우고, 낮으로도 배우고, 또 이 현실에서도 배우고, 저 현실에서도 배우고 자꾸 배웁시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자기가 지식하는 하나님게 대한 지식을 자기가 갖추는 그것이 경건이요.
또 이러니까 이분을 어떻게 모시야 되나? 이 하나님을 어떻게 모시야 되나? 어떻게 섬기야 되나? 이분을 어떻게 영화롭게 기쁘시게 해야 되나? 이제 하나님을 알고 난 다음에는 자기가 하나님을 어떻게 놓이며, 어떻게 두려워하며, 어떻게 섬기며, 어떻게 기쁘시게 하며, 어떻게 영화롭게 하나 이것을 이제 둘째로 연습을 합니다.
셋째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 것을 자기가 이제 자꾸 배우고 익히고 배우고 익히고 연습을 해서 하나님이 어떠신 분인 것을 자기가 알고, 이분을 어떻게 영화롭게 존귀케 기쁘시게 그분을 위하는 그것을 배우고, 이제 셋째는 뭐인고 하니 이 두 가지 하고 난 다음에 셋째는 그분의 주시는 것을 받을 연습을 합니다. 그분의 주시는 것을 받는 연습을 하요. 그분이 주시는 세상이 주는 것 말고 그분이 주시는 물질 받는 연습, 그분이 주시는 병 고치는 그 능력을 주시는 받는 연습, 또 그분의 능력을 세상에서 써 가지고 그분의 그 능력의 역사를 세상에 나타내는 연습.
그러면 하나님의 물질에 대한 면을 하나님께서 물질에 대한 것을 주시는 그것을 받는 연습, 또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입는 하나님 같이 되는 자 하나님 같이 되는 이 연습 이것을 연습하는 것이 경건을 연습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말로 말하면 경건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법도대로 행동하는 것이 그것이 경건입니다. 이 연습이 최고로 가치있는 연습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보자 내가 창조주요 모든 것은 내가 지어서 내가 창조주요 모든 것은 내가 솜씨에서 지음 받은 것이라고 네가 이제까지 배웠지.' '네 배웠습니다.' '그러면 얼마나 연습을 해서 얼마나 지금 숙달돼 가지고 있는고 보자.' 별별 세상에 큰 거, 두려운 거, 어떤 거, 위대한 거, 막 이런 걸 하나님께서 마구 몰아 붙입니다. 몰아 붙이고 이제 그럴 때에 보니까 그 사람이 이런 게 다 있구나! 그러면 그 큰 걸 보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이 크신 것은 잊어버리 버리고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안하고 이게 커집니다. 이게 큽니다. 이게 큽니다.
야 이 공산주의 세력이 이렇게 크구나! 소련 세력이 이렇게 크구나! 세상 나라에 강대국의 세력이 이렇게 크구나! 이 세상 문화가 이렇게 크구나! 이 세상 과학이 이렇츰 크구나! 이 큰 걸 보니까 그 뭐 하나님이 제일 큰 줄로 알았는데 막상 닥치고 보니까 하나님은 그저 보스라기 같이 구석에 아무 것도 아닌 그런 하나의 자기가 무슨 추상 추론 하나 미신적으로 믿는 거 같이 이렇게 되어서 하나님은 작아지고 이것만 커져버립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경건에 그 면에 대해서 경건 연습이 아무 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한 사람은 온 천하에 모든 것이 자기가 평생 보지도 못했고 역사에 듣지도 못한 모든 큰 것 우렁차고 굉장한 것이 다 이래 오니까 떡 보고서 웃으면서 '참 주님이 솜씨 좋습니다. 아 이것도 주님이 다 이런 것도 만드네 나는 이런 걸 만든 줄은 몰랐는데 이거다 만들어 놨내요.' 이러니까 모든 게 오니까 자기를 구원하신 이 주님이 이 모든 것을 만드셨다는 것을 자기가 보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모든 것에 대해서 어떤 게 와도 창조주시요. 모든 것은 그의 지음 받았다 하는 이 지식이 자기에게 확고히 있고 또 자기 신신의 연습이 이러니까 그만 그 앞에 머리를 숙이고 야단을 지길 긴데, 그러니까 그 연습이 숙달이 돼서 그때에 하나님 앞에 경배를 드리면서 주님 참 솜씨 좋습니다. 주님이 이것까지 지었습니까 이것 지은 줄 나는 몰랐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위대합니다. 주님은 참 크십니다. 그분 앞에 경배를 드린다 그기요.
이제 이 연습이 경건의 연습입니다. 이걸 연습시키 가지고 무궁 세계에 이거 뭐 물질로 되어 있는 우주라는 이 물질계는 참 사소한 거지마는 영계는 굉장합니다.
굉장한데 그 영계에 굉장한 데 가 가지고 그만 하나님보다 그게 크다고 이거 착각이 되버린다면 전부 헛일이라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연습을 시키 가지고 고 사람이 하나님을 뭣보다 큰 분으로써 알고 창조주로 아는지 고 자기가 연습된 대로 고만한 세계 가서 살게 됩니다. 하늘나라에 어데든지 제가 가는 게 아니라, 자기는 하늘나라에 무궁 세계에 가서 피조물을 대할 때에 피조물을 대할 때에 피조물이 한없이 많지마는 하나님보다 요거는 적은 것이다. 요거는 하나님이 지은 것이다. 하는 인식을 가지는 고 범위 내에서 살지 고 밖에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이 세상에서 무궁 세계의 한계가 지금 다 자기에게 다 정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호리라도 갚기 전에는 그 가운데서 나오지 못한다 하는 그것이 자기 된 대로 갑니다. 또 자기에게 하나님은 제일 두려우신 분이다. 제일 두려우신 분이다. 이걸 연습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보다 두려우신 분인데, 그 이상 두려우신 분이 없는데, 그분이 지상으로 두려우신 분인데, 이것을 확고히 자기 지식에게 자기 속에 담겨서 이것이 연습이 돼서 숙달돼서 되는 그것이 우리 지금 경건 연습인데, 조그마한 두려운 것을 딱 갖다 보입니다.
보이니까 그만 하나님 두려운 것은 어디로 가버리고 그게 제일 두렵고 그러면 그것이 하나님보다 두려운 자는 자연히 두려운 것에게 복종을 당하고 끌리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 자는 그것에게 지기 때문에 그게 지금 우상이요. 거기에 끌리가게 되어 하나님 앞에는 얻을 것이 없습니다. 이제 고 수준의 말이오. 고 밑에 하나님보다 두려워하지 않는 거 그것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고 세계에서 저는 살지 그 이상 세계에 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보니까 피조물로써 제일 두려웁게 제일 두려웁게 하는 거 제일 두려운 거 그 이상이 두려울 수 없는 그 두려움이 부딪히니까 내가 이렇게 두렵다. 이러니 고만 그 사람이 그것이 두려우니까 그것이 제일 두려우면 그 명령에 복종할 수 밖에 없고 그 요구에 응할 수 밖에 없고 그 두려움에 자기는 끌릴 수 밖에 없는데, 그렇게 이 피조물로서는 더 이상 두려움의 연극을 할 수 없는 그 최고의 두려움에 연극이 와도 그것이 뭐라고 하니까 그 자기가 이거 하라하지마는 이거하면 이 큰 이 오야지, 이거 이 큰 분 이분이 계시는데 그분에게 거슬리면 안된다. 너 이거 안하면 어떻게 한다. 너 그런 소리 하지 말아라. 이 큰 분이 계신다. 이 큰 분이 계시는데 너 그러다가는 혼난다. 이 박살난다.
이 그 두려움을 두려움으로 여기지 안하고 이분을 제일 두려움으로 이렇게 자기가 섬기는 숭배하는 이것이 연습된 자, 이것이 이제 하나님을 뭐 그런 이치로써 하나님이 크신 하나님이신 것을 땅 위에서 연습을 시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현실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크냐 피조물이 크냐? 어느 게 크냐? 처음에는 조그마한 것 오니까 이게 크다. 이러다가 얼마 지나고나 아이구! 하나님이 이보담 크다. 이보담 크다. 또 그 다음에 큰거 이보담 크다. 나중에는 어떤 것이 완성이냐? 모든 피조물 어떤 것보다 하나님이 크시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지음을 받았다. 그분에게 나왔다. 이제 이것이 연습입니다. 이것이 경건 연습입니다.
그 다음에는 둘째 뭐입니까? 둘째 뭐이지요. 둘째 어떻게 남반에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존귀케 하며 기쁘시게 하며 그를 위하느냐? 이것이 둘째로 경건 연습입니다. 딱한 사정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우상에게 절하지 안하면 불미에 불위에 집어 넣는다고 해도 우상에게 절하면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쁘시게 하는 거는 우상에 절하지 안해야 되기 때문에, 불이 와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요동치 안습니다.
사자가 와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요동치를 안습니다. 수많은 천하 영광이 다 와도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것 절 한번 하면 되는데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 요동치 안했습니다. 이것이 이제 둘째로 경건 연습입니다.
경건 연습. 이 두 가지 연습이 되고 나면 그 다음에는 이제는 하나님의 능력을 갖다 쓰는 연습이요. 이제는 하나님의 것을 받는 연습입니다. 하나님과 꼭같은 인격성을 받아 하나님의 능력을 다 써. 아 사도 요한이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별죽나게 믿는다고 해서 잡아다가 '저놈은 기름 가마에다 잡아다 삶아라.' 기름이 다른 물보담 두수가 얼마나 높은지 알지 않습니까! 나는 얼마나 그 뭐 과학자 아니기 때문에 오르지마는 굉장히 높은데 그 가마에다 집어 놓고 부글 부글 삶았습니다. 삶았지마는 그 열도가 사도 요한이를 삶지를 못했어. 죽이지를 못했어.
마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불가운데 들어갔지마는 그들이 태우지 못한 것처럼 그게 하나님 능력 가지고 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불기운을 막았소. 기름 가마의 열도를 막았고. 사자 입을 막았소 지중해에 그렇게 넓은 풍랑이 있는데 그 풍랑을 억제를 했어.
성 마틴은 군인 장교인데 한번도 칼 가지고 싸워 본 일도 없고 전쟁에 패전해 본 일 없어. 하나님 능력을 갖다 썼어.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써서 전쟁을 났다 하면은 그 사람이 가 가지고 하나님의 능력 써서러 그 사람에게 다 돌이켜 회개하니까 모두다 다 자복하고 다 도망쳐서 공연히 칼 하나도 안 썼는데 화살 하나도 던지지 안했는데 저거끼리 겁이 나 가지고 그만 도망치고, 또 그러면 서로 화해 하자고 그 화친의 청원이 와 가지고 화친하고 전쟁을 났는데 전쟁을 한번도 져 본 일은 없고 또 칼이나 화살을 가지고 전쟁으로 사람 죽이는 싸움해 본 일도 없고 이 하나님 능력 쓴 것이라 그말이오.
우리가 제일 일 학년에서 자기가 사업을 하는데 다 같이 사업을 하는데 하나님의 축복의 능력을 써서 하나님의 축복의 능력을 써 가지고 다른 사람보다 사업이 잘돼. 또 그 축복을 능력을 써서 가정이 잘돼. 그 능력을 받아 써서 다른 사람보다 다 같이 나왔지마는 성자가 돼. 성녀가 돼. 선지자가 돼. 또 그의 능력을 써서 어떤 사람은 목회를 해도 몇명되도 안하는데 어떤 사람은 해 가지고 뭐 이십오만 명인가? 뭐 세계 아마 제일크다 하는데 순복음교회 그러츰 크다 하는데 많이 모였다고서 그것도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요새 제사 문제 가지고 말이 났는데 그 제사 문제는 그것은 제사 지내면 안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있어. 그런데 목사 열 분이 가운데 둘러놓고 고 이 제사 지내는 이것은 이단이다. 말만 잘못이라 이단이라 하지 열 명이 설교해 놓은 걸 그걸 보니까 하나도 옳게 정죄한 사람이 하나도 없어. 성경에 이렇다 하는 성구를 쓰는 사람 그 한사람 보니까 성구 한군데 썼어.
그 보면 기념하는 것은 성경에 안된다고 해놓은 성구들이 있다 그말이오. 우리가 경건을 연습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법도대로 사는 것이 그것이 경건 연습인데 종교를 말하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내 머리에 꽉배고, 내 정신에 딱배고, 내 지식에 꽉배고, 내 마음에 꽉배고, 내 성질에 꽉배고, 내 행동에 꽉배고, 그만 내 인품에 꽉배 버렸어.
그러니까 누가 불이 와 가지고 '이 불에 들어가면 네가 타지 안하고 그 불에 들어가면 네가 아주 몸에 병이 낫고 다 좋아진다.' 해도 벌건 불에 들어가면 타질 줄 아는 사람은 안 들어간다 그말이오. 요 지식처럼 하나님이 크심을 자기가 연습해 가지고 아까 육체 연습, 다 같은 아이로 같이 나 가지고 자랐지마는 하나는 연습 안하니까 그 골이 텅비버렸어. 손은 버들버들하니 다 같이 주먹이 크고 다 이런데도 이거는 연습한 게 없으니까 아무 것도 못해.
나팔을 갖다 대고 불라 하니까 입에 그저 삑소리도 안 나고 이 아무 것도 안되는데, 저 사람 연습해 놓으니까 어떻게 퉁소를 잘 부는지 사람들이 그만 퉁소에 녹는다 그말이오. 장병이 그 옥통소에 전쟁이 났는데 전쟁 났는데 사람 죽이지 안하고 장병이 옥통소를 부니까 그 군인들이 적군들이 다 그만 마음이 녹아 감동이 돼서, 에 뭐 죽이면 죽고 전쟁이고 뭐이고 자 치워 버리고 저거 집으로 다 돌아가버렸어. 연습이라 그말이오.
하나는 아무 연습 없으니까 모르는데 하나는 보니까 그 뭐 피아노를 치는데 보니까 어떻게 잘 치는지 이리 저리 하는데 나는 그 하나도 안돼. 그 연습을 안하니 그렇고 그 사람 연습을 했기 때문에 다같은 팔이지마는 이 속에 그 연습함에 따라서 별별 기능들이 있다 그기요.
우리는 고름 하나도 못 째는데 칼로 척척 그리 가지고 그만 사람을 또 뭐 짐승을 그리듯이 이래 가지고 척 그 병을 창수가 병낫으니까 썩 끊어내고 딱 잇어버리고 척 내놓고 그기다 연습 아닙니까. 이제 이 육체의 연습하는 이것이 자연 계시입니다. 다 같은 사람이지마는 그 연습한데 따라서 거트머리 보이지 아니하는 그 속에 실력이 내재하게 된다.
그러면 그 연습한 그 연습에 따라서 인간의 가치가 정해지고 실력이 정해진다.
어떤 사람은 과학을 연습해 가지고 과학적으로 굉장히 능한데, 그 연습 하나도 안한 무식한 사람들이 뚤 뚤 뭉치 가지고 저까짓 놈 그까짓 거 우리가 둘이만 가면 당장 없애버리지. 아 둘이 가도 뭐 둘이가면 됐걸로 서이가면 더 그렇지 우리 동네 사람이 다 뭉치가면 그까짓 거야 그만 전부 떡을 만들어 놓지 하는데, 이 사람은 과학의 연습을 해가지고 조그마한 때때대 하는 거 요런거 조그마한 것 하나 만들었다 말이오.
말들어 가지고 저 오니까 너거 나 해하려고 오지. 안가면 너거 죽어. 이러니까 저놈의 새끼 네까짓 게 뭐 어째 ( ) 이걸로 너거 죽이 이러니까 아 그가짓 게 뭐인데 하 예나 한방 턱 놓으니까 그만 저 한 뎃명씩 이래 죽어버립니다.
이러니까 또 따다다다 하니까 그만 한 수십명 죽어버립니다. 도망 다 쳐버리고 헛일이라 그말이오.
그기 뭐이냐면 연습해 가지고 속에 실력 있기 때문에 그렇다 이거요. 이거 뭐이냐? 육체의 연습을 해서 다 같은 사람이지마는 연습하는 그것으로써 그 사람의 가치 그 사람의 실력 그 사람의 가치 그 사람의 실력 이것이 되어지는 것처럼, 이 세상에서 경건을 연습해서 무궁 세계에 경건 연습 이것으로서 그 사람의 실력 그 사람의 가치, 그 사람의 가치는 뭐인데 하나님의 것이 전부 제 것이니까 고 이상 가치가 없지.
실력은 하나님이 실력이 전부 제 실력이라. 그 연습이라. 하나님 크심을 인정하는 연습 하나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당신 소원대로 당신 소원 당신 명령이라면, 당신 기쁘게 하는 거라면, 당신을 위하는 것이라면, 당신 높이는 것이라면, 당신을 좋게 하는 것이라면 다 연습해서 능숙했다 말이오.
능숙하니까 자 하나님 아는 것을 연습해서 아주 잘 통해 가지고 있지,하나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그 연습해서 아주 능숙해 있지, 이러니까 하나님 당신의 것을 뭐 때문에 애끼고 안 주겠습니까 다 주지, 또 주는데 그것을 또 주시지마는 받아 쓸 수 없으면 안된다 말이오. 받아 쓰는 연습을 해서 받았어.
이러니까 이래 가지고 어떤 것과 비교해도 하나님을 제일 높이고, 어떻게 복잡하고 미혹있고 무슨 문제가 생겨도 하나님을 기쁘게 영화롭게 하는 그 일이 요동치 안하고, 또 어떻게 바쁘고 어떻게 큰 일을 해도 하나님의 능력이 다 해결해 버린다 그말이오. 이것이 우리의 소원입니다. 이게 우리의 소망이요.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이 육체의 연습 이것 가지고 되는 것은 귀한 줄 알고 이렇게 하고 있지마는 경건을 연습하는 이 경건 연습은 가치 없는 줄 아는 것이 그게 뭐이냐? 그것이 성신의 감화가 그이에게 적고 그 축복이 적은 것입니다. 땅 위에서 모든 연습보다 경건 연습이 제일 크다는 것을 깨닫고 여기에 주력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영원 전부터 복되도록 하나님이 예정돼 가지고 있어 그런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세상에 같은 사람으로 낳지마는 그 골이 팅 비었고 그 사람 그 사지가 팅 비어서 아무 기능 없어. 그뭐이요. 짐승이나 한가지지 사람은 사람이 아니고 참 도야지 짐승 한가지라 아무 가치 없어.
다 같이 한 배 속에서 나온 사람이라도 하나는 그 세상 것도 연습을 많이 해 가지고 그리되면 그 사람이 가치가 이 사람과 가치가 같습니다. 실력이 같습니까? 이것 모양으로 그것도 그러한데 그것은 유익이 잠깐있다. 약간 있다.
그러나 경건 연습하는 것은 금생과 내세에 큰 유익이 있느니라 말씀했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그 새벽마다 와 가지고 이 경건 연습을 시키는데 오면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또 그분을 어떻게 하면 기쁘시게 하는가? 알려주고 그분의 것을 어떻게 하면 내 쓴다 이 경건을 연습시키는 것이 새벽기도 예배인데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일주일 모든 시간 가운데 제일 중요한 날이 주일날이요.
주일날 중에 제일 중요한 시간이 예배드리는 시간이요. 매일 매일 하루 중에 첫 시간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고것이 제일 중요한 시간인 것입니다. 거기에서 연습을 해서 자꾸 변화가 돼지는 데 이거 아무 것도 안하고 세상 것만 연습하면 뭐합니까.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저 신관에도 불 꺼주십시요. 이 자리를 떠나기 전에 경건 연습 육체 연습 요것을 자기 마음에 깊이 느껴서 뼈아프게 새기져야 됩니다. 여기에서 주님이 크다 이러지마는 뭐 공산주의 와서 들어와서 밀어도 그만 크다는 것이 휘덕 바꾸어질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