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례와 세례에 대한 소고 <첫 번째 글>
선지자선교회
이름 : 중선 번호 : 65
게시일 : 2003/09/15 (월) PM 00:35:27 (수정 2004/05/15 (토) PM 01:08:40) 조회 : 73
■침례와 세례에 대한 소고
(서론)
침례의 유래는 할례>결례>침례>의 순서입니다.
세례의 유래는 할례>결례>침례>세례>의 순서입니다.
*할례
[(창17:9~11)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할례는 더러운 정욕을 끊어 버리고 깨끗하게 살겠다는 표시의 의식입니다.
이 할례가 오늘의 세례가 됐습니다.
*결례
[(레8:23-24) 모세가 잡고 그 피를 취하여 아론의 오른 귓부리와 오른손 엄지가락과 오른발 엄지가락에 바르고 *아론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 오른 귓부리와 오른손 엄지가락과 오른발 엄지가락에 그 피를 바르고 또 그 피를 단 주위에 뿌리고]
짐승의 피는 예수님의 피를 예표한 것입니다.
제사장이 피를 바르고 뿌려서 부정한 것을 거룩하게 하였습니다.
이 결례가 오늘의 세례가 되었습니다.
*침례
【(롬6:3-4)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물에 잠겼다가 나오는 의식으로 더러운 옛사람이 죽고 깨끗한 새사람으로 거듭남을 의식한 표시입니다.
이 침례가 오늘의 세례가 되었습니다.
*세례
【(벧전3:20-21)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물을 머리에 뿌리는 의식으로 이것도 죄짓던 옛사람은 물에서 죽고 다시 영생하는 새사람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징표로 세례를 하는 것입니다.
(본론)
할례, 결례, 침례, 세례는 의식을 베푸는 형식에 차이는 있으나 근본 뜻은(롬6:3-4),(골2:12),(갈3:27),(벧전3:20-21) 같습니다. 그러므로 침례와 세례에 대한 그 근본 의미에서는 차이가 없고 의식(儀式) 유래의 순서적 차이로 보아야 하겠습니다.
<관련성구>
【(롬6:3-4)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골2: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갈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벧전3:20-21)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주님의 피공로로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을 기념하는 의식을 실감 있게 느끼는 강도(强度)로는
세례>침례>결례>할례>의 순서로 구약적으로 올라가는 것이 더 나겠습니다.
그러나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다시 살아나는 원형적 실상을 이루는 가는 강도(强度)로는
할례>결례>침례>세례>의 순서로 신약적으로 내려오는 세례가 더 낫겠습니다.
침례는 교회사에서 할례> 결례> 침례>에서 머문 것이 되겠고
세례는 할례> 결례> 침례> 세례>로서 침례보다 한 걸음 더 나아 간 의식이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신령적으로 나아가야 할 신약교회적 순서에서 보면 세례는 침례를 이어 받았다고 보겠습니다.
할례> 결례> 침례> 세례>는
구약에서 신약으로 내려오는 순서입니다.
육체적에서 신령적으로 내려오는 순서입니다.
그러므로
할례와 결례는 구약적이요.
침례는
구약 말기와 신약 초기의 중간점에서 초대교회가 행하였던 의식이라 보여집니다.
예수님도 사도들도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꼭 침례의 근거를 둘 수 없는 것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셨고, 사도들도 처음에는 안식일 지켰으나 후에 초대교회는 주일을 지켰습니다.
오늘 신약시대 말기인 현대교회가 말세를 감당할 성령세례를 받음에 있어서 침례보다는 세례가 보다더 신약적 의식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침례가 성경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막1:5에 근거하여 사람이 물에 잠겼다가 나오는 의식으로 그 실상은 롬6:3-4, 골2:12에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다시 살아나는 사활을 강조하는 깨달음입니다. (기본구원)
세례가 보다더 성경적이라 주장하는 것은 구약 레8:23-24에 짐승의 피를 부정한 것에 뿌려 거룩하게 속량 했기 때문에 그 성구를 근거하는 것과 또 신약 벧전3:20-21을 근거하여 예수님의 대속을 상징하는 물을 뿌려 우리의 심신이 점점 거룩하고 깨끗해져 가는 성화를 강조한 깨달음입니다.(건설구원)
침례가 세례보다 더 성경적이라 주장하고 있고, 세례가 침례 보다 더 성경적이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장하는 그 결국의 중심은 꼭 같습니다.
다만 침례는 신약 성경을 부분적으로 적용한 깨달음이라면
세례는 신구약 성경을 전체적으로 연결한 깨달음으로 보겠습니다.
(결론)
[(고전1: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은 침례, 세례 같은 의식을 전하려 함이 아니라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함이라 하셨습니다.
복음은 피와 성령과 진리입니다.
피와 성령과 진리만이 우리를 거듭나게 합니다.
그러기에 실상을 기념하는 의식이
구약에서 점점 신약으로
모형에서 점점 원형으로
형식에서 점점 실상으로
육체적에서 점점 신령적이라야 한다면
물에 잠기는 침례보다
물을 뿌리는 세례가 보다 성경적이라 깨달아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