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06 11:59
제2 스위스 신앙고백서(1566) 21장-30장
21장. 주님의 거룩한 성찬
주님의 성만찬
주님의 만찬은 보통 만찬(주님의 식탁)이라고 불리어진다. 왜냐하면 주님이 그의 최후의 저녁식사 때에 이것을 제정하셨고, 아직도 이것은 그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요, 성도들이 이 만찬을 통하여 영적으로 먹고 마시기 때문이다.
성만찬의 창시자와 봉헌자
주님의 만찬의 창시자는 천사나 사람이 아니라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신 하나님의 아들 자신인바 이분이 최초로 이 만찬을 교회를 위하여 구별하셨다. 동일한 구별 혹은 축복이 주님께서 제정하신 만찬 이외에 그 어떤 것도 베풀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늘날까지 유효하다. 즉 오늘날 성만찬을 베푸는 사람들은 이 성만찬에서 주님의 만찬의 말씀을 반복하면서 그 무엇보다도 한 그리스도를 참 믿음으로 바라보고 성도들은 교회의 교역자들의 사역을 통하여 받되 사실상 주님의 손으로부터 직접 받는 것처럼 받는다.
하나님의 은혜의 기념
주님께서는 이 거룩한 의식에 의하여 그가 죽을 인류에게 보여 주신 엄청난 은혜를 항상 다시 회상시키시기를 원하신다. 즉, 주님께서 그의 몸을 내어주시고 피를 흘리시므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고, 영원한 죽음과 악마의 권세에서 우리를 구속하셨고, 지금은 그의 살로 우리를 먹이시고 그의 피를 우리에게 주사 마시게 하시는바 우리는 참 믿음으로 이를 받아 영생을 위한 양육을 받는 것이다. 주님의 성만찬이 베풀어질 때마다 이 엄청난 은혜는 항상 다시 새롭게 나타난다. 왜냐하면 주님은 "나를 기념하여 이것을 행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 성만찬은 또한 주님의 참 몸이 우리를 위하여 찢겨졌고 그의 참 피가 우리의 죄의 속죄를 위하여 흘려졌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확인시키는 것이다. 즉 우리의 신앙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신다.
표징과 표징의 대상
이것은 교역자들을 통해 이 성만찬에 의하여 가시적으로 표현된다. 사실상 이것은 우리의 눈에 보이도록 우리 앞에 제시되나 성령에 의하여 우리의 영혼 속에서 불가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교역자가 떡을 외적으로 제공하나 "받아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라", "떼어서 나우어 먹으라. 그것을 마시라.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것은 내 피니라"고 하는 주님의 말씀이 들린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주님의 교역자들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을 받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들은 주님의 떡을 먹는 것이요, 주님의 잔을 마시는 것이다. 동시에 이들은 성령을 통한 그리스도의 사역에 의하여 주님의 살과 피를 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요, 이 양육에 의하여 영생에 이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살과 피는 영생에 이르는 참 음식이요, 그리스도 자신이 이 성만찬의 중심 내용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무엇도 이 그리스도를 대신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어떻게 신자들의 음식과 음료가 되며 신자들에 의하여 영생에 이르는 음식과 음료로 받아들여지는지를 더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를 더 언급하고자 한다. 먹는 다고 하는 것은 여러 의미를 갖는다. 첫째로 음식을 입에 넣고 이로 씹어서 위 속으로 삼켜들이는 물질적 먹음이 있다. 언젠가 과거에 가버나움 사람들 중에는 주님의 살을 이런 식으로 먹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는 요한복음6장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살을 물질적으로 먹으면 그것은 추하고 야만스러운 행동이기에 그것은 결코 위를 위한 음식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은 이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에고 베렝가리우스'(봉헌에 관하여/의 2부)라고 하는 교황의 칙령에 들어 있는 법조항을 인정하지 않는다. 옛 성도들이든 오늘 우리들이든 간에 그리스도의 몸을 육체적인 입으로 물질적으로 먹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주님을 영적으로 먹는다는 것
다음으로는 그리스도의 몸을 영적으로 먹는다고 하는 먹음도 있다. 그런데 이것은 음식 자체가 영으로 변화하는 그런 영적 먹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몸과 피는 그것의 본질과 특성에 있어서 그대로 남아 있으되,성령에 의하여 물질적인 방법으로가 아니라 영적인 방법으로 우리에게 전달되는바, 여기에서 성령은 십자가상에서 희생된 주님의 몸과 피의 제사에 의하여 우리를 위하여 준비해 주신 그러한 은혜를 우리에게 적용하시고 베풀어 주신다. 이것은 다름 아닌 죄의 속죄요, 해방이요, 영생인데, 이것의 결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살게 되고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게 하심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한 영적 음식과 음료, 곧 우리의 생명이 되게 하신다.
우리의 음식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생명을 지탱시키신다.
물질적인 음식과 음료가 우리의 몸에 생기를 공급하고 힘을 주고 계속 살게 하는 것처럼 우리을 위해서 찢기신 그리스도의 살과 우리를 위해서 흘려진 그의 피는 우리의 영혼에 생기를 공급하고 힘을 주고 계속 살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육체적으로 먹고 마실 때가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영적으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참여할 때 일어나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을 들어 보자. "(요6:51)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요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임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그것이 우리의 체내에 들어와 작용하고 어떤 효력을 일으키는 것처럼 이 음식이 우리 몸 밖에 있는 한 그것은 아무 소용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여 그분이 우리의 것이 되게 해야 하고, 그분이 우리 안에 우리가 그분 안에 살아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요6: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6: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요6:57)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영적음식
이런한 모든 것을 미루어 볼 때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의미하는 영적음식이란 결코 상상적인 음식이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주어진 주님의 참 몸이라는(실제적인 몸)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성도들은 이 몸을 신앙에 의하여 영적으로 받는다. 결코 육체적으로 받는 것이 아니다. 이 문제에 관하여 우리는 구주 자신의 가르침을 따른다. 즉,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요한복음 6장에서 가르치신 가르침이다.65)
구원을 위해서 꼭 필요한 먹음
이처럼 주님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시는 일은 구원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 이 일 없이는 아무도 구원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영적 먹음과 마심은 주님의 성만찬을 떠나서도 일어난다. 즉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을 때마다 이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왜 너희들은 너희의 이와 위를 위하여 준비하느냐? 오히려 믿어라! 그러면 너희는 이미 먹은 것이다"라고 하는 어거스틴의 말이 여기에 적용된다.
주님을 성례전으로 먹는다는 것
고차원적인(신비한) 영적 먹음 이외에 주님의 몸을 성례전적으로 먹는다는 것이 있다. 성도는 이 성례전적 먹음에 의하여 영적으로, 그리고 내면적으로 주님의 실제적인 몸과 피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주님의 식탁으로 나옴으로 주님의 몸과 피의 가시적 성례전을 외면적으로 받는 것이다. 신자가 믿었을 때 그는 이미 생명을 주는 음식을 받았고 지금 그것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그가 성만찬을 받을 때 아무것도 받지 않은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계속해서 주님의 몸과 피에 참여하기 때문이요, 그의 신앙이 불붙으며 점점 더 성장하고 영적 음식에 의하여 생기를 얻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신앙은 계속해서 자라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만찬을 참 믿음으로 외적으로 받는 사람은 표징을 받을 뿐만 아니라 이 표징이 가리키는 대상 혹은 내용 자체를(그리스도) 받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그는 주님의 제정과 계명에 순종하고 자신의 구속과 인류의 구속에 대하여 기쁜 마음으로 감사드리고, 주님의 죽으심을 신실하게 기억하고, 그가 한 지체인 교회 앞에서 증거하는 것이다. 주님의 몸이 주어졌고 그의 피가 흘려진 것이 단순히 모든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 특히 각각의 수찬 자격자를 위한 것이라고 하는 확신이 성찬을 받는 사람들에게 주어진다. 이 수찬 자격자에게 이 성찬은 영생에 이르는 음식이요, 음료이다.
불신자들이 성찬을 받을 때 자신들의 심판을 자초하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 주니의 식탁에 나오는 사람은 떡과 포도주에는 참여하되 본질적인 생명과 구원의 근원인 성찬의 본질은 받지 못한다. 이런 사람들은 주님의 식탁에서 합당치 못하게 먹고 마시는 것이다. 누구든지 주님의 떡과 잔을 합당치 않게 취하는 사람들은 주님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를 범하는 것이요,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이다.66)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참 신앙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죽음을 모독하는 것이요, 따라서 자신들에 대한 저주를 먹고 마시는 것이 된다.
성만찬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임재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몸과 피를 떡과 포도주에 긴밀히 연결시킨 나머지 떡 자체가 성례전적 방법 이외의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몸 자체라고 하거나, 그리스도의 몸이 물질적으로 떡 속에숨겨져 있으므로 떡의 형태로 그것이 예배되어야 한다거나 이 성찬의 표징을 받는 사람은 누구나 그 대상 혹은 내용을 받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은 하늘에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계시므로 우리의 마음은 빵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저 높은 하늘을 향하여 올리워져야 하고 주님은 결코 떡 속에 갇혀진 체 예배되어질 수 없다. 그러나 교회가 성만찬을 베풀 때 주님께서는 그의 교회로부터 부재하는(계시지 않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있는 태양은 우리를 떠나 있으나 우리들 속에 효과적으로 임재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의의 태양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실제적으로 임재하고 계신 것인다. 즉 그리스도는 그의 몸으로는 우리를 떠나 하늘에 계시지만 그의 생명 주시는 역사에 의하여 물질적으로가 아니라 영적으로 우리에게 임재하신다. 주님은 그의 최후의 만찬에서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 없는 성만찬을 받는 것이 아니요, 동시에 교부시대 사람들은 누구나 알고 있었던 피흘림이 없는 신비적 성만찬을 받는 것이다.
성만찬의 다른 목적들
그 뿐만 아니라 우리는 성만찬에 참여할 때마다 우리가 누구의 지체인가를 생각하고, 다른 지체들과 더불어 한마음을 품고 거룩한 삶을 영위하고 사악함과 이상한 종교에 의하여 우리 자신을 더럽히지 말고, 우리의 생이 끝날 때까지 참 믿음을 견지하면서 거룩한 삶을 탁월하게 살려고 애써야 할 것이다.
성만찬을 위한 준비
우리들이 성만찬에 동참하기를 원할 때에는 사도의 명령을 따라 다음과 같은 측면들에 관하여 자신들을 검토하는 일이 적합하다. 즉, 우리들 자신이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고자 오셨고, 이 죄인들을 불러 회개케 하시기 위하여 오셨음을 믿고 있는지, 또는 우리 각자는 자신이 그리스도에 의하여 해방 받아 구원받은 사람들의 수에 속해 있는지, 또는 각자는 자신의 악한 삶을 변경시키고 거룩한 삶을 영위하고 주님의 도움으로 참된 종교 안에서 계속 견디어 나가고 형제들과 조화를 이루고 하나님의 해방에 대하여 합당한 감사를 드리기로 결심하였는지를 살펴야 한다.
떡과 포도주 모두를 사용하는 성만찬
우리는 성만찬의 의식과 방법과 형식이 주님께서 처음 제정하셨고 사도들의 가르침이 말하는 바에 가장 가까운바 단순하고 가장 탁월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성만찬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 경건하게 기도하는 것, 주님 자신의 행동, 그리고 이 행동의 반복, 주님의 몸을 먹는 것과, 그의 피를 마시는 것, 주님의 죽음을 적합하게 기억하는 일, 신실하게 감사올리는 일, 거룩한 사귐으로 교회의 몸과 일치하는 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자들에게 주님의 잔을 주지 않는 것을 거부한다. 이는 주님의 제정을 어기는 일이다. 주님은 "이것을 다 마시라"고 하셨는데 떡에 대하여는 이렇게 분명히 말씀하시지는 않았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그것을 용납하든가 말든가는 논하지 말고 교부시대에 어떤 종류의 성찬이 있었는지 논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히 말해 두자. 즉, 현재 로마 카톨릭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미사는 여러 가지 타당한 이유 때문에 우리 교회에서 거부하고 있다. 건전한 행동을 공허한 구경거리로 만들고 공로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고 어떤 보수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만드는 것을 우리는 결코 인정할 수 없다. 사제가 미사에서 주님의 참 몸을 만들어 그것을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의 속죄를 위하여, 그리고 이어서 하늘에 있는 성도들의 영예와 존경과 기억을 위하여 제물로 바친다고 하는데 우리는 이것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
22. 교회의 집회에 관하여
예배를 위한 모임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누구나가 집에서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을 수 있고 피차간에 교훈을 통해서 참된 종교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그러나 교회에 모이는 일이나 종교적 집회가 꼭 필요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적절히 설교되어야 하고, 기도와 간구가 공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성례전이 옳게 베풀어져야 하고, 가난한 자들과 교회의 경비를 위해서 헌금이 모아져야 하고, 사회적 사귐이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사도시대의 초대교회에서는 그와 같은 모임이 모든 경건한 사람들에 의하여 부단히 회집되었다는 것이 확실하다.
예배를 위한 모임들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
그와 같은 모임들을 무시해 버리고 그와 같은 모임을 멀리하는 사람은 참 종교를 경멸하는 사람들이다. 목사들과 신앙이 있는 관원들은 이들을 권고하여 그와 같은 모임에 참석하도록 권고해야 할 것이다.
모임들은 공적이다.
교회의 모임들은 비밀리에 회집되거나 은밀히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원수들과 교회의 원수들이 박해하는 이유로 교회의 모임들이 공적이 되지 못한 것을 예외로 한다면 교회의 모임들은 항상 공개적이 되어야 하고 어떤 사람들이라도 출석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로마제국의 황제의 폭군정치 치하에서 초대교회의 집회가 어떻게 비밀한 장소에서 일어났는가를 알고 있다.
품위 있는 집회장소
뿐만 아니라 성도들이 모이는 장소는 품위가 있어야 하고 모든 점에서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적합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넓은 건물이나 장소를 택하되 교회를 위해서 적합지 않은 것은 무엇이든지 제거해야 할 것이다. 교회의 모든 내부장치는 단정하고 품위 있게 배열되어야 하고 꼭 필요한 것을 적합한 장소에 놓아야 한다. 예배와 교회의 꼭 필요한 기능을 위해서 요구되는 것이 꼭 있게 해야 한다.
교회의 모임들에서 우리는 정숙해야 하고 겸손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손으로 만들어진 건물 안에 거하시지 아니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믿는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예배를 위해서 헌납된 장소들이 속된 것이 아니요, 거룩한 것으로 인정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요, 그 장소들이 거룩하게 사용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장소 안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현존과 그의 거룩한 천사들의 현존과 더불어 거룩한 장소에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면서 점잖고 정숙하게 행동해야 할 것이다.
교회당 본당이 갖춰야 할 참된 장식들
따라서 우리는 교회의 본당과 그리스도인들의 기도하는 장소로부터 모든 사치스러운 치장들과 모든 교만과 기독교적 겸손과 훈련과 절제에 적합지 않은 것을 제거해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교회의 참된 장식은 상아나 금.은 보석으로 꾸며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의 검소함과 경건함과 덕망으로 꾸며지는 것이다. 교회의 모든 일들은 적절하고 정중하게, 그리고 질서 있게 처리되어야 하며 모든 일들이 건설적인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일상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예배
그러므로 예배를 위한 집회에서 우리는 이상한 방언들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 예배시의 모든 일은 이 모임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수행되어야 한다.
23장. 교회의 기도와 찬송과 교회 법적으로 정해진 시간에 관하여
기도
성도들의 모든 기도는 신앙과 사랑으로부터 오직 하나님께만 드려져야 하는데 오직 그리스도를 중보로 해야 한다. 즉 주님이 제사장직을 갖는 것이 참 종교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늘에 있는 성자(聖者)에 대한 기도나 이들을 중보자로 생각하는 것을 금한다. 우리는 국가의 공직자들과 왕들, 그리고 권위의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교회의 교역자들과 교회들의 모든 필요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을 때, 특히 교회의 어려운 문제들을 위하여 우리는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끊임없이 기도해야 할 것이다.
자유로운 기도
그 뿐만 아니라 우리는 억지로 기도하거나 보상을 위해서 기도할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기도해야 할 것이다. 어느 한 장소에서만 기도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미신적이라서 합당치 않다. 마치 교회의 본당만이 기도의 처소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런데 공중기도의 경우, 그것의 형식과 시간에 관하여 모든 교회들에 있어서 꼭 같을 필요는 없다. 각 교회는 이에 관하여 자유롭다.
공중기도에서 사용되어야 할 방법
다른 일들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공중기도에 있어서도 그것이 쓸데없이 길어지거나 지루해지지 않도록 어떤 표준이 있어야 한다. 예배를 위한 집회의 보다 큰 부분을 우리는 복음 설교를 위해서 할애해야 하고, 누가 기도를 너무 길게 함으로 설교말씀을 들을 즈음에는 지루해서 회중을 떠나 설교말씀과 관계가 없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우리는 유의해야 한다. 이처럼 기도가 길어질 경우, 짧은 설교말씀도 길고 지루한 설교말씀처럼 들린다. 이런 이유에서 설교자는 일정한 표준을 가져야 한다.
찬송
예배를 위한 집회에서 찬송을 부를 때에도 공중기도 때나 마찬가지로 절제가 필요하다. 로마 카톨릭이 사용하는 그레고리안 찬트에는67)
여러 가지 어리석은 것들이 들어 있다. 이 때문에 많은 개신교들이 이것을 거절하는데, 이것은 옳은 일이다. 어떤 교회들이 참되고 정당한 설교는 갖고 있으나 찬송은 갖고 있지 않을 때, 우리는 이러한 교회들을 정죄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모든 교회들이 찬송할 수 있는 조건을 구비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찬송의 역사는 교부들의 증거에 의하면 찬송의 관습이 동방 교회에서 먼저 행했고, 서방 교회에서는 후에 행한 것을 알 수 있다.
교회법에 의한 시간
교부시대에는 교회법에 의한 기도 시간이 없었다. 하루 중 일정한 시간들을 정해 놓고 기도한다든지, 교황주의자들처럼 기도를 노래로 올리거나 암송으로 올리는 일이 교부시대에는 없었다. 우리는 교황주의자들의 성무일과서(聖務日課書)나 여러 다른 문서들을 통해서 이와 같은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 이들이 지닌 모순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교회가 그와 같은 것을 제거시킨 것은 옳은 일이다. 교회는 이러한 것들 대신에 하나님의 전교회에 유익한 것들로 대치시켰다.
24장. 거룩한 날들과 금식들과 음식들의 선택에 관하여
예배를 위해서 꼭 필요한 시간
종교는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러나 종교를 배양시키고 종교생활을 영위할 수 있으려면 시간의 적절한 배열과 조정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각 교회는 공중기도와 복음의 설교와 성례전의 집례를 위해서 적당한 시간을 선택한다. 아무도 교회가 정한 시간들을 마음대로 변경할 수 없다. 종교생활을 위해서 시간과 힘을 할애하지 못할 경우, 우리는 틀림없이 종교로부터 거리가 멀어지고 자신의 일에 몰두하고 말 것이다.
주일
고대 교회는 교회의 집회를 위하여 주 중 일정한 시간들을 정해 놓았을 뿐만 아니라 사도시대 이래 주일이 교회의 집회일로 확정되었으니, 이 주일은 거룩한 안식을 위한 것으로 예배와 사랑을 위하여 오늘날까지 옳게 보존된 교회의 실천적 관습이다.
미신
이에 관련하여 우리는 유대인들의 종교적 관습과 미신을 인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느 한 날이 다른 날보다 더 거룩하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생각에는 나머지 날들도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날들이기 때문이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키는 것은 유대교의 안식일이 아니라 주일인 것이다.
그리스도와 성자(聖者)들의 절기들
만약 교회들이 기독교적 자유 안에서 주님의 탄생과 할례와 고난과 부활과 그 승천과 그의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신 일을 기억함으로 축하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인정하고도 남음이 있다. 즉 교리의 바른 내용을 이해하고 깨닫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절기로 표현하거나 또는 사람들과 성자들을 숭상하기 위한 절기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거룩한 날들은 십계명의 첫 번째 돌판에 관계된 것으로 오직 하나님을 위한 날들인 것이다. 결국 절기와 성자들을 위해서 제정된 날들을 우리는 이미 없애버렸는바 이날들은 모순투성이요, 아무 쓸데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도저히 용인할 수 없다. 한편 우리는 적당한 시간과 장소에서 설교를 통하여 성자(선조들)의 회상을 사람들에게 권하는 것이 유익하고, 이 성자들의 모범된 삶을 모든 사람에게 권하는 것이 좋다고 고백한다.
금식
그리스도의 교회는 포식과 술취함과 모든 종류의 탐욕과 무절제를 심하게 정죄하느니만큼 기독교적 금식을 우리 믿는 자들에게 강하게 권유한다. 그도 그럴 것이 금식이란 경건한 신앙인들의 금욕과 절제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요, 우리 육신의 돌봄과 징벌로서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꼭 필요한 일이다.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지며 육체는 그 연료를 빼앗기므로 더 자발적이고도 쉽게 성령께 순종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일에 관심하지 않는 사람들은 금식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하루에 한 번 정도 위장을 채우고 일정한 시간에 음식을 멀리하는 것으로 금식한다고 생각하고 이로써 하나님을 기쁘게 하며 선한 일을 성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믿는 성도들은 금식함으로 기도를 더 잘 할 수 있고 덕목을 잘 실천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언서들에서 우리가 읽을 수 있듯이 음식은 멀리하나 악행을 멀리하지 않았던 유대인들의 금식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공적인 금식과 개인적인 금식
금식에는 공적인 것이 있고 사적인 것이 있다. 교회가 박해와 환난과 역경 속에 있었던 고대 기독교 역사에는 공적인 금식들이 있었다. 이들은 함께 모여 새벽부터 저녁까지 금시하되 이 시간동안에 기도에 몰두하며, 하나님을 예배하고 회개에 힘쓴다. 이것은 애통함이나 다름없다. 이에 관하여 예언자들, 특히 요엘(2장)이 자주 언급하곤 하였다. 이와 같은 금식은 교회가 곤궁에 처할 경우, 오늘날에도 행해져야 한다. 한편 우리 각자는 성령으로부터 거리가 멀어졌다고 느껴질 때마다 개인적인 금식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렇게 할 때 우리 각자는 육체로부터 그 연료를 제거시키기 때문이다.
금식의 특징들
모든 금식은 자유롭고 자원하는 마음에서 행해져야 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행해져야 한다. 사람들의 칭찬과 호의를 얻기 위해서 금식이 행해져서는 안 되고, 금식함으로 의를 세우려는 의도는 더더욱 금물이다. 육체로부터 연료를 제거함으로 보다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고 기도에 전념하려는 것이 금식의 목적이어야 한다.
사순절(四旬節)
사순절 때의 금식에 관하여는 고대 교부들의 글들이 증언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금식을 성도들에게 강요할 필요가 없고 그럴 수도 없다. 이미 초기에도 변질된 금식의 여러 형태와 관습이 있었다. 이 때문에 초기 교부인 이레니우스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어떤 이는 하루만 금식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어떤 이들은 이틀을, 어떤 이는 그 이상 혹은 40일간을 금식하라고 말한다. 금식에 대한 이러한 다양성은 우리 시대에 생긴 것이 아니라 벌써 우리 시대 이전에 생겼다. 내(이레니우스) 추측으로는 이것이(사순절 금식) 사도시대로부터 전승된 것(금식)을 무시하고 또한 소홀히 여기거나 무식함 때문에 다른 습관에 빠진 사람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단편집) 3, Ⅰ, 824이하>.
음식의 선택
음식의 선택에 관하여 알아보자. 육체의 욕정을 불러일으키거나 육체를 무모하게 하거나 육체를 즐겁게 하는 음식은 무엇이나 삼가야 한다(술, 담배, 마약 등). 그것이 고기든지 양념이든지 훌륭한 포도주이든지 간에 우리는 삼가 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을 사용할 수 있고 인간의 유익을 위하여 이용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이 좋은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절제하는 가운데에 이 모든 것을 사용할 수 있다.68)
그도 그럴 것이 사도 바울 역시 "(딛1:15)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고 하며, "(고전10:25)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고도 한다.
또한 사도는 고기를 먹지 말라고 가르치는 사람들의 가르침을 가리켜 '악마의 가르침'이라 하였다. 왜냐하면 "(딤전4:3)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딤전4:4)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도는 골로새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지나친 금욕으로 거룩하다는 평을 얻으려는 사람들을 꾸짖고 있다.69)
이단들
그러므로 우리는 타티안주의자들과 엔크라티스주의자들, 유스타티우스주의자들을 모두 정죄한다. 강그리아 종교회의가 열린 것은 이들의 가르침을 반대하기 위해서 였다.
25장. 세례받을 사람의 교육과 환자의 위로와 심방에 관하여
청소년들을 경건으로 교육시켜야 한다.
청소년교육은 유아교육에 이르기까지 최대의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주님은 그의 옛 백성에게 명령하셨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구약에서 청소년 교육을 교육해야 하고 성례전의 의미를 설명해야 한다고 명령하셨다. 복음서와 사도들의 글에 보아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새 백성의 청소년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갖고 계신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막10:14)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고 하는 말씀의 증언을 통해 알 수 있다.
교회의 목사들이 현명하게 목회를 하려면 청소년교육을 일찍이 시작해야 한다. 즉, 목사들은 십계명, 사도신경, 주기도문, 성례전에 대한 교리 등을 해석해 줌으로 신앙의 기초를 마련해 주어야 하고 기독교 종교의 기본을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교회는 믿는 성도들의 자녀들을 교육하는 일에 신실함과 근면함을 보여야 하고 자녀교육을 열망할 뿐만 아니라 기뻐해야 할 것이다.
병든자의 심방
사람이 허약함에 시달리고 병들고 영과 육의 병으로 쇠약해질 때 극심한 시험에 떨어진다. 그러므로 교회의 목사들은 교인들이 허약해지고 병들어 누어 있는 상태에 있기 전에 그의 양떼들의 건강을 잘 돌보는 것이 마땅하다. 따라서 사정이 허락하는 한 목사들은 환자들을 속히 심방해야 하고 적절한 때에 환자의 심방을 요구받아야 한다. 목사들은 환자들이 참된 신앙을 계속 유지하도록 위로해야 하고 확신시켜야 한다.
그리고 사탄의 위험한 흉계에 넘어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 목사들은 필요할 경우, 자신의 집에서도 환자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고 교회의 공적인 집회에서도 환자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목사들은 중환자의 경우, 이 세상을 떠날 때 기쁨으로 떠나게 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교황주의자들이 환자를 방문하여 베푸는 종유성사(終油聖事)를70)
인정하지 않는다. 성경이 이를 결코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26장. 믿는 자의 매장과 죽은 자들에 대한 배려와 연옥과 영들의 현현에 대하여
시신의 매장
성도의 몸은 성령의 전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도의 시신이 최후의 날에 부활할 것을 믿는다. 성경의 명령에 의한즉 성도의 시신들은 존중하는 마음으로 땅에 묻되 미신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71)
즉 미망인과 이미 잠든 성도들을 우리는 존중히 여겨야 하고, 유가족들인 미망인과 고아를 위해서 가정적인 모든 경건의 의무들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물론 죽은 자들을 위한 특별한 배려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은 자들의 시신을 무시하거나 부주의하고, 경멸적으로 그것을 땅 속에 묻어 버릴 뿐만 아니라 죽은 자들에 관하여 좋은 말이라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들의 유족들에 대하여 조금도 관심하지 않는 냉소학파(the Cynics)를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죽은 자들에 대한 관심
죽은 자들에 대하여 지나치게, 그리고 터무니없이 관심을 쏟는 사람들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이방 사람들처럼 죽은 자를 위하여 슬퍼하고 통곡하며,72)
죽은 자들을 위하여 미사(예배)를 올리고 삯을 받고 기도문을 중얼거림으로 사랑하는 죽은 영혼들을 연옥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몸을 떠난 영혼의 상태
우리는 성도들이 육체적인 죽음 직후에 직접 그리스도에게로 간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산 자들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찬양과 기도와 예배를 올릴 필요가 없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불신자들은 직접 지옥으로 던지움을 받아 살아 있는 사람들이 이들을 위하여 어떠한 예배를 올려도 이들은 이 지옥으로부터 나올 수 없다.
연옥
연옥에 관한 로마 카톨릭의 교리는 기독교 신앙에 위배된다. 즉, '죄의 용서와 영생을 내가 믿습니다'와 그리스도를 통한 완전한 씻음과 "(요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3:10)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라는 말씀에 위배된다.
영들의 나타남
죽은 사람들의 영 혹은 정신이 살아 있는 사람에게 나타나서 어떤 의무 수행을 요구함으로 이 의무수행에 의하여 자신들이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은 웃기는 일이요, 악마의 속임수와 술책에 불과한 것이다.73)
악마는 자신을 빛의 천사로 둔갑시킴으로 참 신앙을 뒤집어엎거나 회의로 바꾸어 놓으려고 애쓰고 있다. 구약에서 주님은 죽은 자들로부터 진리를 찾지 말라고 하셨고, 죽은 자들의 영과 어떤 교제도 해서는 안된다고 하셨다.74)
복음서의 진리가 선포하듯이 지옥에 있는 부자는 결코 그이 형제에게로 갈 수 없다.75)
27장. 의식들과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들에 관하여
의식
한때 구약 백성에게는 의식법이 주어졌었다. 이는 율법하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교육으로서 몽학선생 밑에서의 상황과 같았다. 그러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에 이 법은 폐지되었다. 우리 믿는 자들은 더 이상 이 율법 밑에 있는 것이 아니다.76)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 이 의식법을 계속 사용하기를 원하지 않으며 이것을 회복시키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이들은 이 의식법으로 교회를 짐스럽게 하지 않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만약에 우리가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 고대 교회의 관습 중 유대교적 의식을 증가시키려고 한다면 우리는 유대교를 교회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여러 가지 의식으로 제약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우리는 이 의견을 결코 인정할 수 없다.
사도들이 신자들에게 의식법을 강요하지 않는데 도대체 바른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가 인간들에 의하여 고안된 것들을 그들에게 강요할 수 있겠는가? 의식의 양이 교회 안에서도 증가하면 할수록 교회는 기독교적 자유로부터 이탈되는 것은 물론, 교회가 믿음으로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찾아야 할 진리들을 의식에서 찾으려고 하는 한 그리스도와 이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에서 이탈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지 않는 몇 개의 간단하고 단순한 의식만으로 충분하다.
의식의 다양성
교회들이 여러 가지 의식을 사용한다고 해서 이런 이유 때문에 논란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오늘날 우리는 성만찬과 다른 일에 있어서 의식을 다르게 하고 있으나 교리와 신앙에 있어서는 결코 의견을 달리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의식의 상이성으로 말미암아 우리 교회들 상호간의 일치와 사귐이 결코 파괴되지 않는다. 교회는 지금까지 의식 사용에 있어서 자유를 누려왔다. 교회는 이것을 무관심거리로 여겨 왔다. 오늘의 우리도 꼭 같이 생각한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무관심거리가 아닌 것을 무관심거리로 여기지 않도록 사람들에게 충고한다. 즉 예배 대신에 미사를 드린다든가 성상(聖像)을 사용하는 것은 무관심거리가 아니다. 그것들은 큰 잘못이다. 그러나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은 것은 자유에 맡겨진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그것을 행하든 행치 않든 우리는 의롭지도 않고 불의하지도 않은 것이다"라고 제롬은 어거스틴에게 썼다. 그러므로 자유에 맡겨진 것을 신앙고백에 억지로 연결시킬 경우 우리는 자유를 상실하게 된다. 바울이 말한 대로 사람이 우상에게 제물로 받쳤던 고기를 먹을 경우, 누가 이 사실을 알려 주지 않았다면 괜찮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그것이 우상에게 드려진 제물이라는 사실을 알렸는데도 그것을 먹으면 그것은 합당치 못하다. 그 이유는 그렇게 고기를 먹음으로써 그는 우상숭배를 인정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77)
28장. 교회의 소유물에 관하여
교회의 소유물과 그것의 적절한 사용
그리스도의 교회는 왕들의 희사와 성도들의 헌금과 헌물을 통해서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와 같은 자원을 필요로 하며 옛날부터 교회 유지를 위해서 꼭 필요한 자원을 소유하고 있다. 교회의 재산은 모든 예배와 다른 의식, 그리고 교회 건물을 유지하며 학교와 교회적인 집회에서 가르치는 일을 위하여 사용되는 것이 옳으며, 나아가서 선생과 학자와 목사를 지원하고, 특히 가난한 자를 돕는 일에 사용되어야 하고 꼭 필요한 다른 일들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지혜로운 자로서 집안 일들의 경영관리를 잘할 줄 아는 사람들을 선택하여 교회의 재산을 적절히 경영, 관리하게 해야 한다.
교회 재산의 남용
만약 어떤 개인들의 불상사나 파렴치한 행위나 무지나 탐욕에 의하여 교회의 재산이 남용될 경우, 경건하고 지혜있는 사람들은 거룩한 목적을 위하여 이를 원상대로 회복시켜야 한다. 재산의 남용이란 끔찍한 신성모독이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이러한 짓을 시도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와 예배와 도덕에 있어서 부패한 학교나 기타 기관들은 마땅히 개혁되어야 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구제는 의무적이고 지혜롭게, 그리고 신실한 마음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29장. 독신과 결혼과 가정문제의 경영관리
독신자
하늘로부터 독신의 은사를 받았으므로 마음과 온 영혼이 청결하고 절제하고 정욕으로 불타오르지 않는 사람은 은사를 부여받았다고 느끼는 한 그 하나님의 부르심 안에서 주님을 섬기게 해야 한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보다 높다고 생각하지 말고 오히려 단순함과 겸손함으로 끊임없이 주님을 섬기게 해야 한다.78)
그도 그럴 것이 이러한 사람들이야말로 사사로운 가사에 의해서 마음이 산만하게 되는 사람들보다 하나님의 일에 더 잘 주의를 기울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은사를 상실하여 계속해서 정욕에 불타오를 경우, 바울의 말을 기억해야 한다. 즉 "(고전7:9)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
결혼
결혼이란 주 하나님 자신에 의하여 제정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결혼을 풍성히 축복하셨고, 남자와 여자가 하나로 결합하여 온전한 사랑과 일치 가운데 함께 살아가기를 원하셨다.79)
이 일에 대하여 사도는 "(히13:4)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고전7:28) 그러나 장가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라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는 일부다처를 주장하거나 결혼을 다시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정죄한다.
결혼은 어떻게 성립되는가?
결혼이란 주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에 합법적으로 맺어져야 한다. 근친상간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혈족혼인을 반대하는 법을 어겨서는 안 된다. 결혼은 부모 혹은 부모를 대신할 만한 사람의 승낙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하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제정하신 결혼의 목적에 부합되어야 한다. 그 뿐만 아니라 결합된 부부는 최대한의 신실함과 경건과 사랑과 순결로써 이 결혼을 거룩케 해야 한다. 따라서 논쟁이나 파쟁이나 정욕이나 간음은 절대 금물이다.
결혼 재판소
교회 안에 합법적인 재판소를 설치하고 결혼문제를 취급할 재판관을 두어 모든 부정과 수치스러운 일들을 억제하고 결혼에 관한 논쟁을 해결하게 해야 한다.
자녀들의 양육
부모들은 주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자녀들을 양육해야 한다. "(딤전5: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 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라고 하는 사도의 말을 기억하면서 부모들은 자녀양육에 힘써야 할 것이다. 특히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정직한 상거래나 직업을 가르쳐 줌으로 생계를 유지하게 해야 한다. 부모는 자녀들이 게으리지 않게 해야 하고, 이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에 대한 참 신앙을 그들에게 교육시켜야 한다. 그래야 자녀들이 확신의 결핍이나 지나친 안일함이나 추잡한 욕심에 의하여 방탕하고 실패하고 마는 일을 우리는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부모들이 참된 신앙으로 가정적인 의무들에 의해서 집안의 일들을 경영함으로 성취하는 일들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선한 일들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가사는 기도나 금식이나 구제만큼이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사도 바울이 그의 서한들, 특히 디모데서와 디도서에서 이렇게 가르치기 때문이다. 결혼이 마치 거룩하지도 않고 순결하지도 않듯이 결혼을 금지하거나 공공연히 결혼을 혹평하거나 간접적으로 결혼을 불신하는 사람들의 교리를 우리는 사도 바울과 더불어 마귀들의 교리로 간주한다.
우리는 또한 불결한 독신생활을 싫어한다. 우리는 숨겨진 욕정이나 공공연한 욕정 모두를 싫어하고 모든 사람들 중에 가장 무절제 하면서도 절제하는 체하는 위선자들의 음행을 싫어한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심판하실 것이다. 우리는 어떤 부자가 경건하고 자신들의 부를 잘 사용할 경우, 이 부와 이 부자들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사도적 청빙주의자들"(Apostolicals/ 13세기 사도적 청빈을 회복하려는 열광주의자인 Gherardo Segareli의 추종자들) 등의 이단들을 배격한다.
30장. 국가의 공직에 관하여
국가의 공직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모든 종류의 국가공직이란 인류의 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하나님 자신에 의하여 세워진 제도이다. 따라서 그것은 이 세상에서 중요한 위치에 놓여 있다. 공직자가 교회를 반대할 경우 교회를 저해하고 소란케 할 수 있으나 교회의 친구요, 교회의 구성원이 될 경우 그는 교회의 가장 유용하고 탁월한 구성원으로 교회를 크게 유익케 하고 가장 잘 도울 것이다.
공직자의 의무
공직자의 주된 의무는 국가의 평화와 안정을 확보하고 보존하는 것이다. 공직자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종교적인 생활을 할 때 그는 가장 성공적으로 공직을 수행할 수 있다. 이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시말하면 공직자가 주님의 백성의 거룩한 왕들과 방백들의 모범을 따라 진리의 선포와 신실한 믿음을 증진시키고 모든 거짓과 미신을 뿌리채 뽑아 버리고 모든 불경건과 미신을 척결하고, 나아가서 하나님의 교회를 옹호할 때 그는 가장 성공적으로 공직을 수행하는 것이다. 교회를 돌보는 일은 거룩한 공직에 속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확실히 가르친다.
그러므로 국가의 공직자는 그의 손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야 하고 그 누구도 이 말씀에 위배되는 것을 가르치지 말게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공직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 주신 백성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제정된 좋은 법으로 다스려야 하고 이 백성을 계속 훈련시켜야 하고 의무와 순종을 다하게 해야 한다. 공직자는 공정한 재판에 의해서 일을 처리해야 한다. 공직자는 어떤 개인을 봐 주거나 뇌물을 받아서는 안 된다. 공직자는 과부와 고아와 괴로움을 당하는 사람들을 보호해야 한다. 공직자는 큰 범죄자와 협잡꾼과 야만인들을 징벌하고 추방해야 한다. 공직자가 칼을 가진 것은 이런 목적을 위한 것이다.80)
공직자는 모든 행악자들, 치안 방해자들, 도적들, 살인자들, 억압하는 자들, 신성모독자들, 거짓말쟁이 및 하나님께서 형벌하고 처형하라고 명령하신 모든 사람을 향하여 칼을 뽑아야 한다. 공직자는 고집 센 이단자들, 즉 하나님의 존엄을 쉼 없이 모독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어지럽히고 심지어는 파괴하는 이단자들을 진압해야 한다.
전쟁
만약 전쟁에 의해서 백성의 안전을 보존하는 것이 꼭 필요한 경우, 공직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쟁을 집행해야 한다. 그러나 공직자는 전쟁을 선포하기 전에 가능한 모든 방법에 의하여 평화를 추구했어야 하고, 전쟁 이외에는 그의 백성을 도저히 구할 수 없다고 생각될 때 전쟁을 선포하는 것이다. 공직자가 이러한 일들을 신앙으로 해낼 때 그는 참된 선한 일로 하나님을 봉사하므로 주님으로부터 축복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재세례파를 정죄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기독교인이 국가공직자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공직자의 사형집행권을 거부하고, 공직자의 전쟁선포권을 부인하고, 왕 등의 공직자에 대한 서약을 부인하기 때문이다.
백성들의 의무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의 안전을 공직자를 통하여 효과 있게 하신다. 하나님은 사실상 공직자를 백성의 아버지로 주셨다. 따라서 모든 백성은 이와 같은 공직자를 통한 하나님의 호의를 인정하도록 명령받는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백성은 공직자를 하나님의 일꾼으로 존경해야 하고 사랑해야 하고, 호의로 대하고 아버지로 여겨 그에게 간구해야 하고 그의 정의롭고 공평한 모든 명령들을 순종해야 한다. 결국 백성들은 모든 관세와 세금을 바쳐야 하고 기타 모든 다른 의무들을 신실하고 기쁜 마음으로 수행해야 한다. 만약 나라의 안전과 정의를 위해서 전쟁을 해야 한다면 백성은 자신들의 생명까지도 내놓아야 하고, 이 나라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백성은 물론 공직자들도 피를 흘려야 한다. 이런 일을 할 때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되 자발적으로, 용맹스럽게, 그리고 기백 있게 해야 한다. 공직자에게 불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를 자극시키는 것이다.
분파주의와 치안 방해자
그러므로 우리는 공직자를 경멸하는 모든 사람들을 정죄한다. 예컨대 반역자들, 국가의 적들, 치안을 방해하는 악한들, 끝으로 자신들의 의무를 공공연히 혹은 교묘하게 수행하지 않으려는 모든 사람들을 우리는 정죄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유일한 주님이시오,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공직자들과 온 백성을 축복하실 것을 우리의 가장 자비로우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 간구한다. 감사와 찬송과 영광이 하나님께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1) (롬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렘31:3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겔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3) (롬1:10)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4) (눅1:22) 그가 나와서 저희에게 말을 못하니 백성들이 그 성소 안에서 이상을 본줄 알았더라 그가 형용으로 뜻을 표시하며 그냥 벙어리대로 있더니
5) (전7:29) 나의 깨달은 것이 이것이라 곧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많은 꾀를 낸 것이니라
6) (딤후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딤후1: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 내신지라
7) (빌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8) (히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9) (벧전4:1)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10) (고전2: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11) (행17: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12) 살전4:14)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3) (고전15: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14) (마25:46)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15) (갈5: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16) (롬2: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17) (출20:1)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신5:5) 그 때에 너희가 불을 두려워하여 산에 오르지 못하므로 내가 여호와와 너희 중간에 서서 여호와의 말씀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18) (신4:2)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신12:32)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말을 너희는 지켜 행하고 그것에 가감하지 말지니라
19) (롬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20) (갈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21) (고후3:6)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22) (딤후2:9) 복음을 인하여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23) (요20:23)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24) (마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25) (고후5: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26) (막3:29)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 하시니
27) (사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고전1:30)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28) (고후5:19)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고후5:20)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롬4:25)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29) (약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약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30) (고후1: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31) (빌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32) (롬12: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33) (갈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뿐이니라
34) (골2:23)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데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좇는 것을 금하는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느니라
35) (마6: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36) (마12:33) 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실과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실과로 나무를 아느니라
37)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38)(사64:6)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 가나이다
39) (고전4: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40) (엡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41) (행20:2) 그 지경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
42) (행15: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한가지로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하여 (행15: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 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3) (갈2:11)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44) (고전11:9)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45) (요일5:21)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
46) (계18: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고후6:17)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47) (고전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갈1:2) 함께 있는 모든 형제로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48) (왕상19:10)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히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왕상19:14)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히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49) (왕상19: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계7:3)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50) (마13: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마13: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마13:47)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마13:48)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느니라
51) (고전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엡4:11) 그가 혹은 사도로,혹은 선지자로,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52) (출19: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벧전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계1:6)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53) (눅22:24) 또 저희 사이에 그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눅22:25)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저희를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눅22:26)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54) (고후10:8)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파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내가 이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라
55) 오늘날 침례교에서 기존 세례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성령은사주의 자들이 소위 능력 있는 목회자에게 안수를 받아야 능력이 생긴다라는 표현과 일치
56) (고전9:11)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57) (딤전5:18)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58) 오늘날 침례교의 뿌리이다.
59) 남성의 성기 표피 끝을 잘라 내는 것
60) 애굽에서 해방되던 날 죽음의 천사가 애굽 백성들의 장자들을 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장자들은 양의 피를 문에 바름으로 살 수 있었던 사건을 기념하는 것
61) 아이들이 교육후 신부에게 나와서 기름을 붓고 안수를 받는 것. 즉 안수를 받아야 더 힘있게 살 수 있다는 것이 오늘날 성령은사주의 자들의 형태와 비슷하다.
62) 죽은 자를 장례하는 의식
63) 이런 정신에서 오늘날 '찬양예배', '열린예배'는 성경적이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말하는 예배는 일정한 질서가 있기 때문이다.
64) (롬3:3)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뇨
65) (요6:51)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요6: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요6: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66) (고전11: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고전11: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고전11: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고전11:29)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67) 오늘날 성가대에서 부르는 찬송들이 대부분 이곳에서 온 것이다.
68) (창2: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69) (골2:18)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70) 죽기 직전에 기름을 붓고 기도하는 의식
71) 무조건 땅에 묻는 것이 성경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즉 일반적인 매장 방식을 말하는 것으로 정당한 절차와 엄숙함을 가지고 장례를 치른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화장의 방식도 가능한 것이다.
72) 우리는 "(살전4: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에서 바울이 허락하는 만큼의 적당한 애도를 탓하는 것은 아니다. 즉 전혀 슬퍼하지 않는 것도 비인간적이다.
73) 우리 나라의 조상제사의 내용도 여기에 해당된다. 즉 조상신이 와서 음식을 먹는다든가 또는 꿈에 어떤 내용을 전달한다는 것 등.
74) (신18:11)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의 중에 용납하지 말라
75) (눅16:29)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눅16:30)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76) (롬6: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77) (고전8: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고전10:25)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78) (고전7:7)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니라
79) (마19: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마19:5)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80) (롬13:4)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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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 2021.02.23-6 | 김반석 | 2019.05.26 |
6 | 도르트 신조(1618년) | 선지자 | 2014.08.06 |
» | 제2 스위스 신앙고백서(1566) 21장-30장 | 선지자 | 2014.08.06 |
4 | 제2 스위스 신앙고백서(1566) 11장-20장 | 선지자 | 2014.08.06 |
3 | 제2 스위스 신앙고백서(1566) 1장-10장 | 선지자 | 2014.08.06 |
2 | 벨직 신앙고백(1561) | 선지자 | 2014.06.20 |
1 |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1560년) | 선지자 | 2014.03.13 |